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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25. 09:15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81 코끼리 - 세계의 기둥


로베르 들로르 지음, 이한헌 옮김

1995,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2119


082

시156ㅅ  14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014


4천 년 동안이나 인간과 공존해 온 코끼리,

인간 대신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충실한 일꾼으로,

귀중한 상아의 제공자로, 서커스 공연에선

빼놓을 수 없는 재간동이로 코끼리는

인간에게 많은 이로움을 주었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이 불러일으킨 결과는 참혹하다.

코끼리의 수는 격감되고 있고, 이대로 계속된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인간들은 박제된 코끼리만

보게 될지도 모른다.


티무르의 후예 바부르(Babur : 1483 - 1530)는

장차 인도를 지뱌하게 될 무굴 제국을 창건하였다.

뛰어난 정치가이자 군사 전략가, 역사가, 시인으로

이름을 날린 그의 진면목은 투르크어로 씌어진 그의

자서정 <바부르나메 Babur-nameh>에 잘 나타나 있다.

세계의 명저 중 하나인 그의 자서전 속에는

코끼리가 자주 등장한다.


"인도인들이 하티(Hati)라고 부르는 코끼리는

인도의 특이한 동물 가운데 하나이다. 코끼리는

거대한 체구와 뛰어난 지능을 갖춘 동물이다.

이 동물은 사람의 말을 모두 알아듣고,

사람의 명령을 그대로 따른다."


"인도의 군대에는 코끼리를 보유한 사단이 있으며, 이들은 코끼리와 함께 전투에 참가한다. 무거운 짐을 싣고서도 코끼리들은 강과 급류를 쉽게 건넌다. 그러나 코끼리들은 엄청나게 많은 사료를 필요로 해, 두 무리의 대상(隊商)에 속해 있는 낙타들이 먹는 만큼 먹어 치운다."


"나는 코끼리와 코뿔소가 서로 맞닥뜨리면 어떤 행동을 보일까 궁금해했다. 코끼리 조련사가 코끼리를 계속 앞으로 몰아붙이자, 코뿔소는 그만 견디지 못하고 반대쪽으로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식사 전에 사람들이 나에게 선물을 바치는 동안, 우리들 정면에 있는 섬에서는 성난 낙타들과 코끼리들이 싸움을 치르고 있었다. 격투장 한쪽에서는 숫양끼리 맞서기도 했고, 다음은 격투사들의 차례였다." (아그라에서)


바부르는 기병대와 함께 코끼리를 전투부대로 편성하기도 했다.


차례


제1장 코끼리의 가계

제2장 아시아와 아프리카, 양면성을 띤 하나의 이미지

제3장 서구의 기억

제4장 사냥에서 살육으로

기록과 증언

그림목록

찾아보기


로베르 들로르 Robert Delort

문학 박사이자 이학 학사인 로베르 들로르는 파리 제8대학과 제네바 대학에서 중세 역사를 가르쳤으며, 중세에 관한 수많은 저서들을 펴냈다. 그가 동물사의 기초를 세우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쓴 <동물들은 역사를 갖고 있다>는 세계 각국어로 번역 출간되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모았다. 현재 그는 생태환경사를 연구하고 있다.


옮긴이 : 이한헌

1958년 광주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홍익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현재 외국어대학교와 강원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에릭 루이의 <인간과 언어예술> 등이 있다.


제1장

코끼리의 가계(家系)


"매머드가 울하므르족을 가로막았다. 매머드는 부드러운 풀을 뜯어먹고 짓밟으며 뿌리째 뽑아 버렸다. 세 사람의 눈에 비친 매머드들은 행복하고 위험을 모르는 멋진 존재였다. 매머드의 거대한 발 밑에서는 큰 사자도 깨지기 쉬운 질그릇이나 다름 없었다. 매머드의 상아는 떡갈나무를 뿌리째 뽑아 버릴 수도, 화강암처럼 단단한 머리는 나무를 산산 조각 낼 수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너무나 부드러운 코를 가진 매머드를 보면서, 나오(Naoh)는 '매머드는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의 우두머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스니, 《불을 찾아서》

왼쪽부터 모에리테리움(Moeritherium), 피오미아(Phiomia), 팔라에오마스토돈(Palaeomastodon), 곰포테리움(Gomphotherium), 데이노테리움(Deinotherium), 마스토돈(Mastodon), 맘무투스(Mammuthus), 록소돈타(Loxodonta) 등이 보인다. 이들은 모에리테리움의 가계를 형성한다. 모에리테리움은 매머드나 아프리카코끼리보다 더 큰 마스토돈보다 예닐곱 배 작다. 데이노테리오이데아(Deinotherioidea)는 19세기 과학자들의 눈에 그 최후 생존자들의 모습이 무서운 형상(deinos)으로 비쳐졌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엘레판토이데아(Elephantoidea)는 경직성을 뜻하는 'gomphos'와 야생동물을 뜻하는 'therion'이 결합된 곰포테리오이데아(Gomphotherioidea)를 포함한다. 마스토돈은 원형돌기(mammelon) 형태의 어금니네서 착상해 퀴비에가 붙인 이름이다.

선사시대인은 매머드를 즐겨 그렸다. 프랑스의 페슈메를에서 발견된 이 벽화도 그러한 예들 중 하나이다. 둔부에서 뒷머리로 흐르는 선이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자못 흥미롭다.


제2장

아시아와 아프리카,

양면성을 띤 하나의 이미지


수천 년 동안 아시아는 코끼리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아이사에서 코끼리는 신성시되거나 신격화되었고, 우수한 투사로서, 사냥의 동반자로서, 때로는 다정하고 충성스런 친구로서 인간과 공존해 왔다. 반면에 아프리카 문명권에서는 코끼리를 동물의 왕으로 존중하면서도, 코끼리와 목숨을 건 격렬한 싸움을 계속해 왔다.

아프리카를 비유한 시칠리아의 벽화.

아시아에서 코끼리는 숲 속 황무지를 개간하거나 습지에서 작업하는 데 주로 이용된다. 코끼리는 전력을 다해 이마로 나무를 들이받아 쓰러뜨린다. 그래도 나무가 쓰러지지 않으면 앞발을 사용하기도 한다. 일단 뿌리가 뽑힌 나무는 가지를 잘라 내고 통나무 형태로 자른다. 그러면 코끼리가 코로 말아 올려 상아 위에 올린 다음 운반한다. 그러나 매우 무거운 통나무들은 모래 위나 진창 속을 지나 뗏목을 흘려 보낼 수 있는 강이나 선창가까지 끌고 간다. 통나무를 끌고 가는 코끼리는, 긴 상아와 그 나이와 함께, 막강한 힘과 많은 경험을 추측케한다. 조련사의 감시를 받으며, 쌍둥이처럼 함께 일하고 있는 두 마리의 젊은 코끼리들은 암컷이다.

사로잡힌 수컷 한 마리가 나무에 매여 있다. 악바르가 코끼리를 살펴보고 있다. 수많은 하인들이 그를 수행하고 있고, 그 코끼리를 길들이는 데 이용할 길들여진 코끼리들도 대동하고 있다.


제3장

서구의 기억


1886년 찰스 F. 홀더의 뛰어난 저서 《상아의 왕》은, 오랜 옛날부터 중요한 상아 공급원이었던 아프리카코끼리에게 25장 중 단 한 장만을 할애했다. 그후 93년 뒤인 1979년 월트 디즈니는 너무도 진부한 다음과 같은 말을 편지에 적어 보냈다. "모든 코끼리가 아프리카에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에도 역시 코끼리가 있다."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사이에 서구 문명은 코끼리 이야기가 나오면 아시아를 '망각'한 채, 우선 흑아프리카를 먼저 떠올리게 된 것이다.

<피지올로구스(Physiologus)>는 12~15세기에 서구에 널리 전파된 작품이다. 이 작품에 따르면 코끼리가 새끼를 낳으려면, 신부인 암컷이 마치 이브처럼 먼저 맛을 본 뒤 건네준 맨드레익(mandrake, 중세에 마법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가지과의 약용식물 : 역주)의 열매를 수컷이 받아먹어야 한다. 곧바로 수태가 된 암컷은 커다란 호수를 찾아가서, 그곳에서 악마의 화신인 용의 방해를 이겨내고 새끼를 낳는다.

파라오 프삼틱 3세는 페르시아 왕 캄비세스에게 펠루지움 전투(B.C. 525년)에서 패배한 후, 포로가 되어, 정복자의 명령에 따라 처형되었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아래서 이루어진 이집트 정복은 동쪽에서 데려온 수많은 코끼리들 덕분에 가능했다. 이 그림의 '전형적인' 세부사항은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에서 가져온 19세기의 '역사적 문화유산'과 미술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둔 것이다.

에트루리아 접시는 코끼리 등에 망루가 설치된 것으로 보아 피루스가 공격에 이용했던 아시아코끼리를 형상화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여기에 묘사된 아시아코끼리(귀가 작고 등이 둥근 것을 통해 알 수 있다)의 암컷은 아프리카코끼리에게서나 볼 수 있는 특징들(상아와 긴 꼬리)을 지니고 있다.

B.C. 255년, 아프리카에 상륙한 로마의 집정관 레굴루스는 카르타고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평화조건을 강요했다. 카르타고의 크산티포스는 기병대로 하여금 로마 군단을 포위토록 했다. 로마군은 깊숙이 돌진해 온 코끼리 100마리에게 쑥밭이 되었고, 뒤를 이어 카르타고 보병이 로마 군단을 철저히 격파했다. 그러나 B.C. 202년 자마 전투에서는 제대로 길들여지지 않은 카르타고의 코끼리들이 등을 돌려 자기 군대에게로 덤벼들었고, 덕택에 로마의 동맹군인 누미디아 기병대는 마음놓고 카르타고군을 칠 수 있었다. 후세에 많은 화가들이 이 전투를 화폭에 담았다.

한니발의 원정 당시 가장 커다란 장애물은 자연이었다. 코끼리는 고여 있는 물에서는 헤엄을 잘 치지만, 론강처럼 흐르는 물에서는 오랫동안 버티지 못한다. 따라서 뗏목을 둘씩 연결해서 일종의 부교를 만들어야 했다. 폭이 30m, 길이가 60m에 달하는 부교는 바닥에 흙을 깔아 놓아, 코끼리들이 땅 위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하여 부교가 흔들리더라도 놀라지 않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암컷들이 앞장을 선 코끼리들은 마침내 반대편 강둑에 무사히 도달하게 되었다.

아슬아슬한 공포의 순간이 있었다. 겁에 질린 일부 코끼리들은 감히 뗏목을 벗어날 엄두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별탈없이 강을 건넜다. 그러나 나머지 코끼리들은 흐르는 강물 속에 뛰어들어 헤엄을 치기 시작하더니 제각기 반대편 제방에 도달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몇몇 조련사들이 익사했지만 57마리의 코끼리는 모두 강을 건너 알프스 산맥을 넘을 채비를 했다.

B.C. 217년 트레비아 전투에서, 삼중으로 전선을 형성한 로마 군단을 향해 카르타고 코끼리들이 무시무시한 공격을 가했다. 앞세대의 병사들이 코끼리와 싸운지 30년이 흐른 지금, 로마 군단의 대부분 병사들은 이 괴물 같은 코끼리와 맞서 싸우는 것이 처음이었다. 조련사들이 변덕스러운 코끼리가 대오를 벗어나지 못하게 조종하는 동안, 버드나무 잔가지 따위로 만든 망루 속의 사수들이 로마 보병의 기세를 꺾었다. 뒷걸음질 치던 로마 군단의 보병들은 매복해 있던 카르타고 기병대에게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승리한 집정관들에게는 로마에서 개선행진을 벌일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집정관이 승리한 군대의 맨 앞에 서고, 적군들의 포로들이 뒤를 따랐다. 베네벤토에서 피루스를 물리친 쿠리우스는 사로잡은 여덟 마리 코끼리 중 네 마리를 자신의 개선행진에 동원했다.

로마에서는 대(大) 중개상인들이 거래를 통해 야생동물을 원형경기장에 넘겼다. 피아자 아르메니아의 큰 별장을 묘사한 모자이크화를 통해 로마의 중개상인들 중 일부는 시칠리아에서 온 사람들이었을 거라고 추정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 그림의 상징체계는 간단하다. 인사라도 하려는 듯이 코를 치켜 올린 채 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대결자세를 취하고 있는 무모한 코끼리의 모습을 그린 듯하다. 그러나 그림의 구도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과 잔뜩 구름이 낀 하늘 사이에 우뚝 선 어두운 빛깔의 코끼리를 부각시키고 있다. 기다란 코를 들어올린 코끼리의 모습은 자그마한 인간들이 살생무기 주위에 몸을 숨기고 있는 창백한 빛깔의 납작한 배를 압도한다. 사정거리가 너무 짧아 포격은 코끼리에게까지 미치지 못한다. 포격으로 생긴 물기둥은 그림을 두 부분으로 나누면서, 코끼리 코와 배의 상층부 사이의 수직적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1858년 이 그림을 그린 영국 확가 바네스의 의도는 이러한 대립관계를 통해 단지 식민지 개척이 기승을 부렸던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고자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좀더 심오한 다른 의미가 부여될 수도 있다. 탁월한 기법과 재능을 갖춘 화가는 그림을 보는 사람의 머릿속에 나름대로의 판단과, 뇌리를 떠나지 않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 준다.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코끼리가 일상생활 속에 도입되었다. 예를 들자면 프랑스 담배종이의 선전광고.

코끼리 - 왕의 신인동형론(神人同形論)은 <바바르>의 수백만 어린이 독자들에게 다소 의도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제4장

사냥에서 살육으로


현재 생존해 있는 코끼리의 수를 조사하는 일은 끈기 있는 노력을 요구하는 역동적인 작업이다. 생식 가능 기간이 대단히 길기 때문에 코끼리 암컷 한 마리는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을 수 있다. 그리고 포식동물로부터 잘 보호된 어린 코끼리는 다수가 성년기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남획과 자연의 황폐화로, 현재 코끼리는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함정을 이용한 사냥은 길들여진 코끼리와,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장성한, 따라서 위험스러운 수컷이 좁고 둥근 함정에 빠졌다. 함정 안에서 독을 바른 예리한 말뚝이나 다른 코끼리 살생도구를 찾아볼 수는 없다. 가죽띠나 가죽끈과 밧줄을 이용하는 것은 코끼리를 함정에서 끌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실 수십 명의 사람으로도 역부족이고, 투박한 도르래로 사용되는 커다란 통나무도 코끼리의 무게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동원된 사냥도구들은 모두 코끼리가 밖으로 나왔을 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함으로써, 코끼리가 사람들을 상아로 꿰뚫거나 코로 후려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림에서도 사람들은 삽을 이용해서, 팠던 흙으로 함정을 조금씩 메우고 있다. 이렇게 해서 함정 밖으로 나온 코끼리는 이미 붙잡혀 매여진 동료들과 다시 얼굴을 맞대게 된다.

레스푸그의 상이나 빌렌도르프의 상

파리 국립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매머드 골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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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4. 8. 21. 16:11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80 서원 건축


글, 사진 / 김봉렬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44


082

빛12ㄷ  222


빛깔있는 책들 222


김봉렬-------------------------------------------------------------------------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시절에는 건축연구소 아키반과 삼정건축에서 실무를 익혔다. 울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와 문화관광부 문화재전문위원, 김수근 문화재단 전문위원, 한국건축역사학회 상임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의 건축 - 전통 건축편』『법주사』『한국 건축과 만남』(전3권) 등이 있고, 한국 건축에 관한 30여 편의 연구 논문과 다수의 현대 건축 비평들이 있다.

도면 작성에 도움 주신 분

서울대학교

영월대학

삼성건축

도용호

김은중

조상순


|차례|


서원, 성리학 그리고 사림파

성리학적 정신과 서원 건축

서원 건축의 입지와 배치 형식

서원의 기능과 건물

서원 건축의 역사

서원 건축 순례

소중한 건축 자산, 서원

참고 문헌

도동서원 강당

안향 영정  백운동서원(소수서원)에는 성리학을 이 땅에 최초로 수입한 회헌 안향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흥암서원 전경  교육 시설과 종교 시설이 결합된 서원 건축은 사람들의 성리학적인 정신 세계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도산서당에서 도산서원으로 연결되는 진입로  앞쪽의 도산서당 영역에서 뒤쪽의 서원으로 연결되는 진입로의 한쪽을 벽과 담의 수직면으로 구성하였고, 다른 한쪽은 수평적인 화단으로 중첩시켜 자연스럽다.

도동서원 강당의 원장석에서 바라본 전경  강당의 원장석에 앉아 앞을 내다보면 안산을 향해 배열된 누각과 정문의 축선이 강렬하게 드러난다.

병산서원 강당  서원의 마당은 철저하게 인위적인 건물들로 둘러싸인 인공적인 장소이다. 누각에서 본 강당 기단부의 커다랗게 뚫린 아궁이와 돌출된 계단이 주요한 형태 요소가 된다.

대둔사 대웅전  사찰의 대웅전에서는 뒤로 산이 배경을 이루어 건물과 자연이 일체화되고 있으나 서원에서는 주변 자연을 인지할 수 없도록 건물 위치를 정하고 거리를 조절한다.

도산서원도 부분  서원이 자리잡을 이상적인 장소는 교육과 연구를 위해 번화한 곳에서 격리된 한적한 곳이어야 한다. 강세황. 1751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필암서원 풍수형국도  서원은 강이나 내를 앞으로 면하고 나머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장소에 입지한다.

무성서원 강당에서 본 사당  서원은 대개 앞쪽에 강당을 중심으로 한 강학 공간을, 뒤쪽에 사당을 중심으로 한 제향 공간을 배열한 건축 형식이다.

도동서원 전경  오른쪽부터 누각, 정문, 강당, 사당(소나무에 가려진 부분)이 일직선상에 배치되고 강당 좌우로 동재와 서재가 대칭으로 놓여 있다.

1.강당(중정당)  2.사당  3.외삼문과 수월루  4.환주문  5.동재(거인재)  6.서재(거의재)  7.장판각 8.내삼문  9.증반소  10.일각문 11.사주문  12.전사청  13.문간채  14.곡간채  15.변소 16.비각  17.서원목(행단)

도동서원 구성도

남계서원 강당과 재실  강당은 강회의 공간으로 사용되며 평상시에는 학생 접근이 제한되는 교수진 전용의 건물이다. 강당 좌우로는 유생들의 기숙사에 해당하는 2개의 재실을 놓는다.

창절서원 문루  누각은 학생들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때때로 누각 위에서 사회를 열어 서원 구성원들의 풍류를 겨루기도 하였다.

도산서원 장판각  목판본이나 서책류가 습기에 노출되면 쉽게 상하기 때문에, 장판각이나 장서각 건물들은 흔히 판벽의 나무집으로 만들어진다. 사방을 둘러싼 나무판들이 내부의 습도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옥산서원 경각  학문 도야에 필수적인 것은 서적이며, 서적을 보관할 수 있는 시설 역시 교육 기관의 필수 기능이다.

무성서원의 사당

홍살문  선현들의 위패를 봉안한 신성한 지역임을 의미하는 유교적 시설물로 서원 입구에 세워진다. 필암서원의 홍살문 뒤로 확연루가 보인다.

도동서원의 차(炊)  이중으로 쌓은 담장의 굴뚝 같은 구멍 속에 제문을 넣고 불태우는 일종의 망료위다.

도난문화재 편집사진자료

회연서원의 정료대  밤중에 관솔불을 밝히기 위해 강당 앞에 세워 둔 옥외 조명 장치이다.

소수서원 전경  소수서원을 비롯한 초기의 서원 건축은 형식이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자유스러웠던 것 같다. 물론 서원이 갖추어야 할 최소의 기능인 강당, 사당, 기숙사, 장판각 등은 구비되었지만 이들 사이의 규범적인 질서를 찾아내기는 무척 어렵다.

병산서원 구성도

필암서원  급증기의 서원들은 완전한 건축 형식적 틀을 구축하게 된다. 중심축선상에 누각과 대문, 강당, 사당을 일렬로 세우고 필요 시설들을 여기에 부가하는 형식이다.

필암서원 전도  출전 『필암서원지』

월봉서원 전경  19세기 말 이후에 복원된 서원의 전형을  보여 준다. 동서재의 교육 기능은 약화되거나 사라지고 향사 기능만 유지되어 사당이 가장 높은 위계를 차지한다. 건물들의 배열이 극히 형식적이고 외부 공간의 짜임새가 흐트러졌다.

경렴정  유생들의 휴식을 위해 개울가에 세워진 정자 안에는 유명 시인과 묵객들의 시구들이 걸려 있다.(소수서원)

소수서원 배치도

일신재와 직방재  3칸씩의 일신재와 직방재는 하나의 건물로 연결된 '연립형 기숙사'다. 2칸의 온돌방과 1칸의 마루방으로 된 양재는 좌우 대칭으로 구성되었다.(소수서원)

명륜당  건축적인 형식을 모색하던 초기의 서원에서는 관학인 향교 건축의 명칭들도 사용하였다.(소수서원)

지락재  학구재와 지락재에서는 건물 자체의 완결성보다는 건물을 무엇인가 담기 위한 틀이요, 그릇으로 생각한 초기 성리학자들의 건축관을 읽을 수 있다.(소수서원)

남계서원 배치도

남계서원의 홍살문과 정문 누각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된 유서 깊은 서원이다. 어귀에는 홍살문과 하마비가 서 있어 품격을 더해 준다.

시습당에서 바라본 영귀루  평지에 조성된 서원답게 건물들의 높이가 낮고 옆으로 길쭉한 수평적인 형태를 취하였다.(서악서원)

시습당 내부  시습당의 대청 쪽으로 난 방의 개구부는 모두 창이다. 출입은 정면 벽에 난 문으로 가능하다.(서악서원)

읍청루  급한 경사지 위에 위치하여 3칸의 문루가 더욱 높아 보인다. 입지와 건물 구성에서 상주와 선산 지역 서원과 향교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금오서원)

7조 규약  금오서원 강당에는 서원 내에서 지켜야 할 7가지 금기 사항들을 적어 놓았다.

옥산서원 배치도

독락당 계정  이언적이 낙향 은거하여 경영하던 독락당은 옥산서원과 동일한 건축적 어휘를 가진 곳으로, 옥산서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아야 할 필수적인 건축물이다.

체인묘  정교하게 축조된 기단과 계단이 사당 마당의 정숙함을 고양시킨다. 체인묘의 북쪽에는 희재의 신도비를 위한 비각이 있다.(옥산서원)

구인당에서 무변루를 본 모습  바깥의 경승을 폐쇄적인 문루 건물이 가로막고 있다. 옥산서원 전반에는 폐쇄적인 공간 개념이 배어 있다.

도산서원 배치도

전교당  4칸으로 구성된 규모가 이채롭다. 통상적으로 있어야 할 오른쪽의 원장실이 없으며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퇴계의 사당인 상덕사가 나타난다.(도산서원)

농운정사  창과 문이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으며 오른쪽이 상급반인 상재이고 왼쪽이 하재이다. 창호의 구성에서도 상하재 간의 위계가 나타난다.(도산서원)

도산서당  퇴계가 직접 설계한 건물로 퇴계의 소박하면서도 엄격한 건축적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두 칸 마루 가운데 왼쪽 것은 고정 마루, 오른쪽은 가설 마루의 개념을 보여 준다.(도산서원)

도동서원  질서와 규범의 정신으로 꽉 짜여져 조직된 건축물이다. 18개의 좁고 긴 석단들로 비교적 급한 경사지의 터를 닦았다.

도동서원의 집합적 입면도(위), 주축 단면도(아래)

입교당 내부  강당인 입교당 내부의 대청과 방 사이에 난 개구부이다. 왼쪽이 창이고 오른쪽은 문이다. 문 뒤에는 방의 이름인 경의재라는 현판을 걸어 놓았다.(병산서원)

존덕사 내부  사당의 내부는 술잔과 향로와 제수를 진설하는 크고 작은 3개의 제상으로 구성되었다. 오른쪽의 것은 류성룡의 아들인 류진의 위패와 제상이다.(병산서원)

병산서원 배치도

만대루  만대루는 외부 경관에 대한 시각적 틀이다. 강당 대청 가운데 원장 선생의 자리에 앉으면 만대루의 마루면과 지붕 사이로 낙동강의 흐름이 포착된다.

흥암사  흥암서원의 사당으로 장대석 3벌대의 당당한 기단이 인상적이지만 상부 건물의 구조와 부재는 빈약하다. 아래는 현판.

진수당 내부의 지붕틀  대들보 위에 세워진 항아리 모양의 동자대공이 장식적이다.(흥암서원)

청월루에서 본 온휘당  전형적인 5칸 강당이며 동서재가 없다. 사당이 강당에 비해 크고 높아서, 제향 중심으로 기능이 변한 18세기 초 서원 건축의 형식을 대표한다.(옥동서원)

청월루  옥동서원의 가장 특징적인 건물이다. 회보문이라는 이름의 아래 출입구는 3칸, 위의 누각부는 5칸이다. 양 옆 축대 위에 다리를 놓듯이 세운 복합 건물이다.

돈암서원 배치도

내삼문  사당 영역에 들어가는 안대문이다. 보통은 3칸의 소슬대문 형식으로 구성되지만 돈암서원에서는 3개의 문으로 분리시켰다. 들어갈 때는 동쪽문, 나올 때는 서쪽문을 사용하는 '동입서출'의 예법을 따랐다.

응도당  칸살이 넓고 높이가 훤칠한 건물이다. 본체는 매우 높은 맞배지붕을 이루며, 양 측면에 가적지붕을 단 희귀한 형태를 취하였다.(돈암서원)

응도당의 장식 부재  구심포 구조의 첨차와 화반들이 마치 절집에서 표현되는 것과 같이 매우 장식적이다.(돈암서원)

노강서원 강당  돈암서원의 응도당과 같은 형식이다. 5칸의 맞배지붕의 몸체 좌우로 가적지붕이 붙고, 높은 바닥면 등이 이 지방 강당 건축의 지역적인 형식을 엿보게 한다.

강당의 장식 부재  공포 형식은 익공계가 변형된 주심포식이며 기둥 사이에 복화반을 설치하여 장식적인 경향을 드러낸다.(노강서원)

노강서원 배치도

우동사 쪽에서 본 청절당  앞면 전체에 분합문을 달아 여름에 모두 들어올리면 확연루에서 사당까지 시선이 통과하게 된다.(필암서원)

필암서원 배치도

무성서원  무성서원 강당인 명륜당의 대청은 앞뒤가 완전히 개방되어 마치 카메라에 포착되듯 사당의 전경이 드러난다. 무성서원과 같은 구성은 제향 기능이 위주가 된 후기의 서원 건축에서 나타나고, 사당에 강당이 부속된 듯 보인다.

무성서원 배치도

창절서원 육신사  전면 5칸의 규모로, 조사된 서원의 사당 가운데 가장 크다.

파산서원 사당  한국전쟁 때에 서원 전체가 불타 버린 후 사당 부분만 복원되었다.

자운서원의 사당과 묘정비  남한에 있는 율곡의 서원 가운데는 가장 유명한 곳으로 대원군 때 훼철되었다가 뒤에 제향 공간만 복원되었다(위). 사당 옆에는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비석이 있는데 당대의 명필이며 노론의 영수였던 김수증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아래)

우저서원 여택당  4칸의 흔치 않은 규모지만 좌우에 온돌방을 들였다. 방의 벽 하부에는 경기, 충청 지방에서 유행한 방화벽을 덧붙여 마치 일상적인 살림집 형태같이 되었다.

심곡서원 내삼문과 사당  외삼문과 강당, 내삼문, 사당을 중심축선상에 배열하였다. 3칸의 사당은 사각 초석 위에 사각기둥을  쓴 소락한 모습이다.

용연서원  정문, 강당, 사당만으로 이루어진 가장 간략한 규모의 서원 건축이다. 한국전쟁 때 사당만 남고 모두 훼손되었는데 최근 강당과 정문을 복원하였다.

내삼문과 기단부  초석과 기단석, 계단석을 정교하게 다듬은 솜씨나 정치한 결합법 등은 이 서원이 당시에 최상급의 건축이었음을 입증한다.(덕봉서원)

덕봉서원  5칸의 길쭉한 모습으로 1960년대 고쳐 지어 원형이 많이 바뀌었지만, 전면의 높은 사각초석은 경기 지역의 고급 건축에 자주 쓰였던 궁궐 형식을 엿보게 한다.


posted by 황영찬
2014. 8. 19. 09:10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79 공명의 시간을 담다


구본창

2014, 컬처그라퍼



대야도서관

SB099966


660.4

구45ㄱ


사물의 영혼을 훔치는

한 사진가의 필름 속에 스며든

시간과 인연의 기억


사라져 가는 일상의 순간순간을 기록하며

그 매 순간의 공명을 담아내는 것이 사진가의 일이다


"잘 들리지 않는 떨림이나 사소한 일상이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들, 삶의 표면 아래 감춰진 자국들, 스쳐 지나기 쉬운 수많은 이야기를 사전에 담아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것, 사진가로서 나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사진 매체의 실험적 가능성을 개척해 온 국내의 대표 사진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 후 독일 함부르크 조형미술대학에서 사진 디자인을 전공, 디플롬 학위를 취득하였다. 계원예대, 중앙대, 서울예대 등에서 강의하였고 현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로댕 갤러리(2001), 피바디에섹스 박물관(2002), 국제 갤러리(2006), 필라델피아 미술관(2010) 등 국내외에서 40여 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작품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휴스턴 뮤지엄 오브 파인아트, 교토 가히츠칸 미술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리움미술관 등 다수의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으며, 작품집으로는 한길아트에서 출간된 『숨』, 『탈』, 『백자』, 일본 Rutles에서 출간된 『白磁』, 『Everyday Tresures』 등이 있다.


시간을 수집하는 사진가


차례


프롤로그 \ 사진가로 산다는 것


01 낡은 시간을 수집하다

02 비상飛上

03 자신의 사진을 찍으라

04 나와 화해하는 방법

05 운명 속의 존재들

06 슬로우 토크

07 목적이 있는 것과 없는 것

08 도구와 방법

09 사진가의 여행

10 사물에 귀 기울이다

11 일상의 보석

12 잃어버린 얼굴들

13 마음의 그릇

14 비어 있기에 아름답다

15 상흔傷痕

16 내 마음속의 폴더들

17 볼 수 있는 만큼 보인다

18 교감의 통로


에필로그 \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독


ⓒAxel Beyer



함부르크. 1980

독일 유학 시절에 찍은 스냅사진들, 구도와 명암 대비가 부각된 간결함을 추구하였다.

함부르크 전철역. 1980

처음으로 나만의 이야기를 담기 시작한 <일 분간의 독백> 시리즈. 1980-1984

<긴 오후의 미행> 시리즈. 1985-1990

<기억의 회로> 시리즈. 1988

<탈의기> 시리즈. 1988

<열두 번의 한숨> 시리즈. 1985

<생각의 바다> 시리즈. 1990

<빛을 찾아서>. 1982

유학 시절 집 안에 들어온 빛에 비친 그림자를 촬영하였더니 옆 모습이 밥 딜런의 앨범 사진을 연상기키는 셀프 포트레이트가 되었다.


<굿바이 파라다이스> Box 시리즈. 1993

<굿바이 파라다이스> Blue 시리즈. 1993

<굿바이 파라다이스> 전시. 서미 갤러리. 1993

<태초에> 시리즈. 1995-1996

<태초에> 시리즈. 1998

<태초에> 시리즈. 1994

<태초에> 시리즈. 1991

<태초에> 시리즈. 2002

<숨> 시리즈. 1995

<숨> 시리즈. 1995

<시간의 그림> 시리즈. 1998

<오션> 시리즈. 2002

<리버 런> 시리즈. 1998

<자연의 연필> 시리즈. 2000

<화이트> 시리즈. 1999

<스노우> 시리즈. 2011

<스노우> 시리즈. 2001


ⓒ《보그》. 2002년 12월 호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주연배우 황신혜


로마. 1983

<사진 새시좌전> 포스터.

런던 트래펄가 광장. 1983

<백자> 시리즈. 오사카 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2006

도쿄 이타미 준 건축설계 연구소에서 그의 백자 컬렉션을 촬영하는 장면. 2010




<비누> 시리즈. 2006

<비누> 시리즈. 2004

<비누> 시리즈. 2006

<샤스루> 시리즈. 2003-2004


<탈> 시리즈. 가산오광대. 1998-2003

<탈> 시리즈, 북청사자. 1998-2003

<탈> 시리즈. 강릉관노. 1998-2003

<탈> 시리즈. 가메 탈. 2009

<백자> 시리즈. 런던 대영박물관 소장. 2006

<백자> 시리즈. 서울 리움미술관 소장. 2005

<백자> 시리즈. 오사카 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2005

<백자> 시리즈. 오사카 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2006

<백자> 시리즈. 서울 리움미술관 소장. 2005

<백자> 시리즈. 교토 고려미술관 소장. 2004

<인테리어> 시리즈. 2003

<인테리어> 시리즈. 2004

<곱돌> 시리즈. 도쿄 민예관 소장. 2007

<침묵의 무기> 시리즈. 2010

왼쪽  \ <침묵의 무기> 시리즈. 6.25 당시 아들이 전사한 101세 박외연 할머니. 2010

오른쪽 \ <침묵의 무기> 시리즈. 1953년 4월 12일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故김종철 하사가 전쟁터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2010










posted by 황영찬
2014. 8. 11. 16:42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78 마곡사


글 / 조명화, 김봉건, 이은희●사진 / 박보하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43


082

빛12ㄷ  221


빛깔있는 책들 221


연혁 - 조명화-------------------------------------------------------------------

서울대학교에서 중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원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이다. 저서로는 『돈황강창문학의 연구』가 있고 「중국불교와 전기문학」 「중국불교의 송찬문학」 「범패와 전독」 등의 논문이 있다.


건축 - 김봉건-------------------------------------------------------------------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런던대학교 도시계획학과를 졸업하였다.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공예연구실장으로 재직중이다. 「전통중층목조건축에 관한 연구」「닫집에 관한 연구」「한국의 전통유교건축」「조선초기 다포집에 관한 연구」 등의 논문이 있고 『한국의 고건축 : 10 - 19호』『불교상식백과』『건축학전서2 - 한국건축사』 등의 저서가 있다.


유물 - 이은희-------------------------------------------------------------------

성균관대학교와 홍익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 미술공예연구실에 근무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고려 충렬왕대의 사경연구」「고려사경 변상도에 나타난 신장상 연구」「운흥사와 화사 의겸에 관한 고찰」「조선후기 미륵 보살도 연구」 등이 있다.


사진 - 박보하-------------------------------------------------------------------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으며 네 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가졌다. 1993년 『월간 사진예술』에서 주최하는 올해의 사진가상을 수상하였고 1994년에는 코리아헤럴드에서 발행한 『Korean Culture』의 사진 촬영으로 한국일보에서 주관하는 한국출판문화상 사진예술상을 수상하였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사진들을 주로 촬영하고 있다.


|차례|


봄의 사찰, 마곡사

마곡사의 연혁

가람 배치와 건축

마곡사의 유물

마곡사 가는 길

참고 문헌

대광보전 일곽  자장 율사가 신라시대에 창건하였다는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마곡사의 규모와 전통은 여느 절 못지않게 자랑할 만하다.

자장 율사의 영정  「사적입안」에 따르면 자장 율사가 당에서 돌아와 창건한 7대 가람 가운데 세 번째 절이 마곡사라고 한다. 통도사 소장.

5층석탑의 상륜부  청동으로 만든 둥근 복발의 독특한 양식은 고려 말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영산전 전경과 현판  세조가 이 절에 다니러 오셨다가 '靈山殿'이라는 세 글자를 써서 내리셨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지금도 영산전 현판에는 '세조어필(世祖御筆)'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금호 약효 영정

남원과 북원을 이어 주는 극락교  마곡사는 사찰 중간을 흐르는 하천을 경계로 영산전을 중심으로 한 남원과 대광보전을 중심으로 한 북원으로 나누어진다.

1920년대 마곡사 전경  절 뒤쪽의 국사봉과 서쪽의 옥녀봉, 동쪽의 무성산 등 나지막한 산들이 절을 에워싸고 있다. 『조선고적도보』.

마곡사 가람 배치도

대광보전 일곽  대광보전은 화엄 사상에 근거를 둔 불전으로 대중들의 교화를 상징한다. 길게 수평으로 깔린 대광보전과 그 뒤쪽으로 중층 건물인 대웅보전의 수직적 요소가 강한 대비를 이루며 중첩되어 시야에 들어온다(위). 대광보전의 동쪽 담장 너머로 영각과 중층 창고의 지붕, 재래식 굴뚝이 보인다.(아래)

5층석탑의 사방불  사방불 개념은 밀교와도 일맥 상통하는 것으로 대광보전 앞에 있는 5층석탑 탑신에도 사방불이 새겨져 있다.

영산전의 측면  남쪽 수행 지역의 중심 불전으로 북원의 불전들과는 달리 동향으로 놓여 있다. 기둥 위에만 공포를 놓는 주심포계이며 살미 끝을 올린 듯한 독특한 공포 장식에서 당시 공사를 담당하였던 장인의 독창성을 느낄 수 있다.

영산전 천장과 불단  천연스럽게 흰 부재를 대들보로 사용하였고 우물천장 방식으로 내진을 외진보다 한 단 높게하였다.(위) 'ㄷ'자형 불단에는 석가모니불과 좌우 보처불 등의 칠불과 소형 불상들을 봉안하였다.(아래)

대광보전  네모지게 다듬은 자연석을 가지런히 쌓아 한 단의 기단을 축조하고 그 위에 건립한 정면 5칸, 측면 3칸의 장방형 건물이다. 전면 길이가 길어 불전보다는 마치 강당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귀공포의 살미

용 머리 안초공

도리의 학 문양

대광보전 바닥의 삿자리  대광보전의 바닥에는 어떤 앉은뱅이가 비로자나불에게 백일 기도를 드리면서 정성껏 짯다고 하는 참나무 삿자리가 깔려 있다.

쌍아자형의 닫집  빈틈없이 꽉 짜인 공포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용, 기둥 사이를 장식한 돋을새김(낙양각)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대광보전 측면의 벽화  남방 화소인 마곡사는 대대로 많은 화승을 배출하였으며 이를 반영하듯 건물 내외부에 금강역사(위)와 인물도(아래) 등 많은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대웅보전  위층의 툇간 한 칸을 체감한 온칸물림 방식으로 처리하였으나 위아래층의 체감률이 지나치게 크고 건물 규모가 대지에 비해 협소하다.

대웅보전의 불단  왼쪽에 서방의 아미타여래를, 온른쪽에 동방의 약사여래를,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셨으며 삼존 모두 목불이다.

해탈문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장방형 건물로 출입을 위하여 중앙의 어간을 개방하고 나머지는 판장벽(板張壁)으로 막아 마감하였다.

보현동자와 문수동자상  좌우 협간에 홍살대를 꽂아 출입 통로와 구분하고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동자상(위)과 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동자상(아래)을 봉안하였다.

천왕문  중앙 한 칸을 개방하여 출입 목적으로 사용하였으며 익공계 맞배지붕이고 옆면에는 바람막이판인 풍판을 대었다.

사천왕상  천왕문의 서쪽에는 동방 지국천왕(첫번째)과 남방 증장천왕(두번째)을, 동쪽에는 서방 광목천왕(세번째)과 북방 다문천왕(네번째)을 봉안하였다.




posted by 황영찬
2014. 8. 11. 16:06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77 느리게 느리게 걸어유 충남도보여행


(사)한국여행작가협회 지음

2014, 상상출판



대야도서관

SB099948


981.17502

한16ㄱ


길 위에 섰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한 사람 살아서 숨 쉬는 인간이 된다. 사람마다 길을 되찾아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가 다시 한 번 인간답게 사는 길이다. 건강하게 사는 길이다. 길이 참으로 우리의 길이다. 우리를 살리고 우리를 바로 세우고 우리를 건강하게 이끄는 길이다. 길과 함께 했을 때 우리의 인생은 고행이 아니라 아름다운 여행이 되리라. 이러한 생각과 소망에 바탕에 두어 우리 충청남도에 도보길이 열리고 그것을 알리는 책자가 나온다는 것을 매우 반갑고 고맙고 고무적인 일이다. 쾌거다.

- 나태주 시인, 공주문화원장


이 세상에는 바닷길, 산길, 숲길, 돌담길, 오솔길 등 많은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별다른 생각 없이 일상처럼 걷는 길이 있고, 일부러 찾아가서 걷는 길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힘든 길이 있고, 걸으면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길도 있습니다. 골목길이나 논둑길처럼 옛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길도 있습니다.

- 송일봉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


(사)한국여행작가협회

저자 사단법인 한국여행작가협회는 2001년에 창립한 국내에서 유일한 국내 전문 여행작가들의 모임이다. 우리나라의 숨은 여행지를 발굴하고 보석 같은 여행지를 취재해서 신문, 잡지, 방송, 사보, 블로그, 카페 등의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거나 소개하고 있다. 이 땅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 각 고장의 특색 있는 별미와 내력 깊은 역사 유적 등을 맛깔스러운 글과 멋진 사진으로 담아내는 것은 이들의 보람이자 즐거움이다. 이들 모두가 스스로 보고 느낀 우리 땅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여러 분야에 다채로운 방식으로 널리 알리고 나누는 여행전문가다. 한국여행작가협회에서는 2003년 『7인 7색 여행 이야기』를 시작으로 『잊지 못할 가족 여행지 48』 『가족 체험여행지 45』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여행』 『호젓한 여행지』 『1박2일 실버여행』 『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111』 『대한민국 머물기 좋은 방 210』 등의 도서를 공저로 해마다 한 권씩 세상에 내놓고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전문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 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 「행복」 전문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귀한 선물은

오늘입니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당신입니다


당신 나비막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 콧노래 한 구절이면

한 아름 바다를 안은 듯한 기쁨이겠습니다.

- 「선물」 전문


목차


01 바다와 함께 걷는 길

태안 바라길 1구간(학암포~신두리해변) · 바다와 사막이 이어진 길

태안 바라길 2구간(신두리해변~의항해변) · 질퍽한 갯벌을 곁에 두고 걷는 길

태안 바라길 3구간(의항해변~파도리해변) · 십리에서 만리로 이어지는 바닷길

태안 솔향기길 1코스 · 치유와 소통의 길에서 명품 도보길로 거듭나다

태안 솔향기길 2코스 ·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 속의 길

태안 해변길 솔모랫길 · 곰솔숲과 해안사구를 걸으며 자연의 생명력을 느끼다

태안 해변길 노을길 · 그림 같은 풍광의 끝에서 황홀한 해넘이를 만나다

태안 태배길 · 고난의 세월을 지나 상생과 희망을 노래하다

당진 바다사랑길 · 서해대교를 한눈에 바라보며 걷다

당진 대난지도 둘레길 · 난초와 지초가 많이 자생한다는 당진시의 유일한 섬

보령 외연도 둘레길 · 천연기념물 당산 숲과 낙조가 아름다운 걷기 천국

보령 삽시도 둘레길 · 바다가 감춘 숨은 보물찾기

서산 아라메길 3-1구간 · 서해의 한려수도를 발아래 두고 걷는 삼길포 봉수대길

서산 아라메길 4구간 · 산길, 호수길, 바닷길이 어우러진 아라메길 4구간


02 역사와 문화를 느끼며 걷는 길

백제큰길 부여 구간 · 사비백제시대의 맥을 찾는 길

백제큰길 공주 구간 · 찬란한 백제문화를 찾아가는 비단강길 여행

공주 고마나루 명승길 · 백제의 고도 공주의 상징을 거닐다

당진 내포문화숲길(백제부흥군길) · 산길, 밭길, 둑길 따라 걷다보면 모든 상념 사라진다

당진 버그내 순례길 · 역사 깃든 천주교 성지 따라 순례에 나서다

부여 사비길 · 1400년 전 백제로 떠나는 시간여행

홍성 홍주성 천년여행길 · 옛 성곽과 장터, 과거와 현재의 흥겨운 어우러짐

예산 내포문화숲길(원효 깨달음의 길) · 길을 걸으며 마음을 비우고, 길을 걸으며 깨달음을 얻는다

예산 느린꼬부랑길 · 느린 걸음으로 삶의 지혜를 배운다

서산 아라메길 1-1구간 · 백제의 미소를 품으며 걷는 천년 숲길

서산 아라메길 2구간 · 신앙을 지키기 위한 순교자길


03 경관이 아름다운 길

천안 태조산 솔바람길 · 후삼국 통일의 기틀을 다진 산, 태조산 솔바람길

아산 봉곡사 솔바람길 · 새 소리, 바람 소리 벗 삼아 걷는 반나절의 행복

논산 계백혼이 살아 숨 쉬는 솔바람길 · 충효정신을 그리며 걷는 서원 순례길

계룡 사계 솔바람길 · 선비를 따라 느긋하게 산책하는 길

금산 금강 솔바람길 · 투박한 산길을 걷는 재미가 있다

부여 성흥산 솔바람길 · 옛날은 가고 없어도 새삼 마음 설레라

청양 칠갑산 솔바람길 1구간 · 길에서 만나는 '느림의 미학'

청양 칠갑산 솔바람길 2구간 · 충북 알프스 칠갑산 최고 코스

홍성 거북이마을 솔바람길 · 명당 내현을 감싸는 보개산의 명품 솔숲길

예산 온천과 함께하는 솔바람길 · 솔향기 따라 걷고 600년 전통의 보양온천도 즐긴다

공주 마곡사 솔바람길 · 솔바람길 따라 마곡사의 신록을 노래하다

서천 천년 솔바람길 · 천년 솔바람길에서 느낀 옛사람들의 향기


04 물길 따라 걷는 길

서천 철새 나그네길 · 서천 바닷가 생태 탐방로, 부사호에서 다사항까지

서천 금강2경 도보여행길 · 습지의 꽃, 갈대를 만나는 금강2경

서천 봉선지 둘레길 · 봉선지 물가를 노닐다가 월명산에 오르다


05 생태체험 길

아산 천년비손길 · 산길, 들길, 호수길, 숲길, 시골길 모두 걷자!

금산 금성산 술래길 · 한적한 숲길을 걷는 재미에 빠지다

부여 장암 송죽 억새길 ·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건너는 은빛 억새바다

서천 장항 성주산 탐방로 · 오래된 항구 도시를 만나다

청양 남산 녹색둘레길 · 이 길 있어 청양 사람들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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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4. 7. 25. 09:08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73 모차르트 - 신의 사랑을 받은 악동

 

미셸 파루티 지음, 권은미 옮김

2009, 시공사

 

 

시흥시군자도서관

SE011672

 

082

시15ㅅ  11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1

 

생기발랄하고 천진난만했던 천재 중의 천재,

모차르트! 그는 35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오페라 <마술 피리>를

완성한 직후였다. 그는 기적과도

같은 재능으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음악을 창조해 냈다.

음악가를 하인 취급하던 시대를 살았지만,

그는 자유인이었다. 그를 자유롭게

한 것은 바로 음악이었다.

 

1971년 여름.

작열하는 태양빛이 텐트를 뚫고 들어왔다.

숨막히는 텐트 속에서는 한 독일 삽화가가

이미지 재현에 몰두하고 있었다.

로테 라이니거.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이제 막 여러 인물들이 태어나고 있었다.

파파게노, 파파게나, 레포렐로, 피오르딜리지,

돈 조반니, 피가로, 밤의 여왕…….

그들은 모두 빛과 그림자의 경계선상에 도착해 있었다.

그림자놀이로 본 모차르트, 그것은 놀라운

마술이었다. 가볍고 암시적인 실루엣은 독특한

특징으로 오페라 대본을 환기시키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을 주었다. 거기에는 음악이 있었다.

장중하고도 가벼운 음악이…….

 

모차르트에 대한 사랑, 그리고 가위 하나와

검은 종이만 있으면 로테 라이니거는 오페라 속의 인불들을

멋지게 그려낼 수 있었다. 그녀의 펜 끝에서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시 판 투테>,

<마술피리>의 주인공들이 차례로 탄생했다.

 

음악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대본 : 다 폰테, 시카네더

무대 장치 및 의상 : 로테 라이니거

LA VENDETTA, OH LA VENDETTA!

(복수, 그래, 복수다!)




 

차례

 

제1장 신이 주신 재능

제2장 신동에서 작곡가로

제3장 음악가와 하인

제4장 깨져 버린 환상

제5장 이제 나의 행복이 시작된다!

제6장 볼프강을 위한 레퀴엠

기록과 증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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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미셸 파루티 Michel Parouty

1945년에 태어났으며, 철학, 문학, 음악 이론을 전공했다. <국제 오페라>지에서 기자로 활동을 시작했고, 1986년부터 프랑스의 고전음악 잡지 <디아파종>의 상임 멤버로 활약하면서 국내외의 다양한 출판사업에 참여했다. <알페> <몽살바> <오페라 캐나다> <무대 잡지> <1막 잡지> <목요일의 사건> 등은 그가 출판에 참여한 잡지들이다. 1986년 페이아르 출판사에서 나온 <교양 음악의 안내>의 공동 저자이기도 한 그는 최근 오비에 몽테뉴 출판사에서 <라 트라비아타>를 출판하기도 했다.

 

옮긴이 : 권은미

1956년 대구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파리 제4대학(소르본)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불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전문 번역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불행한 존재>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인간과 성(聖)> 등이 있다.


제1장

신이 주신 재능


1756년 1월 27일, 가는 눈발이 잘츠부르크에 내리고 있었다. 게트라이데가 9번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마치 우리에 갇힌 곰처럼 방안을 빙빙 돌고 있었다. 침실에서 발자국 소리와 속삭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 왔다. 사랑하는 아내 안나 마리아가 지금 일곱번째 아이를 낳고 있는 중이었다. 아기는 볼프강이었다.


"레오폴트(아래)는 그저 평범한 인물로, 천재성은 없었으나 나름대로 재능이 있었다. 그가 남긴 《바이올린 교본》과 몇몇 교회 소나타곡은 볼프강의 초기 음악교육에 발휘되었을 그의 뛰어난 교육적 재능을 보여 준다. 그의 어머니(위)는 쾌활하고 냉정하며 상상력이 풍부하나, 소극적이고 가벼운 사람으로 보인다. 자식들의 증언에서도 그녀의 참모습을 알아낼 수 없었다."

에마누엘 부엔초트


열한 살 때의 나네를. 역시 신동이었던 그녀는 동생의 성공으로 그늘에 가려졌다. 그녀는 33세에 자작과 결혼했고, 1829년에 죽었다.

여섯 살 난 볼프강의 초상. 그가 입고 있는 의상은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에게서 받은 것으로, 황후의 아들 막시밀리안이 입던 옷이다.


화려한 도시 빈

1760년 요제프 황태자와 이자벨라의 결혼식 때 황궁에서 열린 축하연. 황태자의 결혼식은 황실의 화려한 축제를 여는 구실로서 백성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적절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즐거워하는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고독감, 즉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적당한 순간 두각을 드러내야 하는 것은 공식 직함을 찾는 음악가들의 운명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에서의 일자리보다 더 매력적인 장래가 어디 있겠는가? 앞줄에 앉은 한 소년의 모습에서 2년 후 빈 궁정에서 환영받게 될 여섯 살의 볼프강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의 수도

요제프와 이자벨라의 결혼 축하 음악회. 1558년부터 1806년까지 독일 신성 로마 제국의 중심지였던 빈은 마리아 테레지아 시절, 계속 번창하는 도시였고 인구도 8만 8,000명에서 17만 5,000명으로 늘어났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수도는 외국인에게도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이러한 전통은 20세기까지 남아 있으며 모든 예술분야에도 반영되었다. 한 국가가 유럽 인종의 완벽한 결집체를 이루었다면 그것은 바로 합스부르크 제국이었다. 모차르트 당시 빈은 계몽주의 시대 유럽의 등대였으며 그 도시를 특징짓던 세계주의가 그 증거였다. 18세기 말, 빈의 활력이 가장 화려한 빛을 발했던 부분은 바로 황실의 보호 아래 벌어졌던 각종 예술활동, 특히 음악분야이다.

빈 궁정의 꼬마 볼프강.  "우리는 3시부터 6시까지 황후와 같이 있었소. 황제께서 친히 아이가 바이올린 연주할 방까지 안내해 주셨소."

1762년 10월 16일

레오폴트

볼프강과 퐁파두르 후작부인.

그림 남작.

콩티 공(公)의 다과회

이 풍속화는 1766년 여름 볼프강이 두번째로 파리를 방문했을 때 미셀 바르텔레미 올리비에가 그린 것으로 콩티 공의 저택 템플궁의 거울홀에서 펼쳐진 장면이다. 당시 열 살이던 볼프강은 하프시코드 앞에 앉아 있다. 그 옆에는 라모 작품의 명해석가인 테너 피에르 젤리오트가 서 있다. 악기를 조율하고 있는 그는 왕실악단의 바이올린 및 기타 연주자이다. 프랑스에서는 모임을 자주 가졌다. 그들 모임에는 항상 음악이 뒤따랐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음악에 큰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몇 년 후 1778년 5월 1일 편지에서 "의자와 탁자, 벽에게 연주해야 한다."고 불평했다.


여덟 살 된 작곡가의 본격적인 첫 작품. 두 곡의 <하프시코드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K. 6~7>로, 1763~1764년 겨울 동안 작곡되었다(위). 1716년의 프랑스 하프시코드(아래).Six Sonates pour le clavecin qui peuvent se jouer avec l'accompagnement de violon ou flute traversière... Oeuvre III. [KV 10-15]

피아노에 앉은 볼프강(아래)과 소나타 모음곡 표지(위). "지금 나는 엄청난 지출을 감당해야 하오. 영국 여왕에게 (그녀의 요청으로) 헌정될 볼프강의 소나타 여섯 곡을 인쇄해야 하기 때문이오."

1764년 11월 27일

레오폴트

30세의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와 아홉 살 된 볼프강과의 우정이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문화에 젖어 있던 바흐는 독일 음악보다 덜 엄격한 아름다운 선율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


제2장

신동에서 작곡가로


모차르트는 이제 열한 살이 되었다. 그는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고, 어린 두 어깨 위에는 영광의 무게가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신동의 후광은 끝났다. 이제 볼프강은 자신이 '꼬마 괴물'이 아니라 진정한 음악가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야 했다. 그가 시선을 돌린 곳은 오페라의 나라 이탈리아였다.

어린 볼프강.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할레에 있던 그는 1712년에 런던에 정착했고 1742년 <메시아>를 작곡했다. 그는 이탈리아식 오페라 및 오라토리오 장르의 최고 권위자였다.

모차르트 당대의 유명 작곡가였던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위)와 요한 아돌프 하세(아래). 원래 테너 가수였던 하세는 이탈리아 오페라 세리아 작곡가가 되었다. 그는 어린 볼프강에 대해 "언젠가 이 아이가 우리를 능가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음악가의 초상화. 이 그림을 통해 열두 살경의 볼프강을 연상해 볼 수 있다. "볼프강의 오페라 <보아라, 바보 아가씨>에 관해서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이가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빌어먹을 음악가들 전부가 들고일어났다는 것뿐이오. 그런 음모가 꾸며졌소. 엄청나게 나쁘게, 파멸시킬 만큼……."

1768년, 9월 14일

레오폴트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와 <알체스테> 이후 1768년 최고의 영광을 누렸다.

밀라노의 테아트로 두칼레(궁정극장). 이곳에서 모차르트의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와 <루치오 실라> 그리고 하세의 <루지에로>가 초연되었다. 1776년 화재가 난 이 극장은 2년 후 '스칼라'라는 이름으로 다시 개관되었다.

학자이자 교수로서 전유럽의 존경을 받았던 마르티니 신부.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 "누나가 로마에 와 봤으면 싶어. 이 도시는 분명 누나 마음에 들 거야. 로마에 있는 수많은 다른 것들이 균형 잡힌 선을 갖고 있듯이 성 베드로 성당에도 균형미가 있어."

1770년 4월 14일

볼프강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이미 글루크가 영광을 받았던 황금박차훈장을 볼프강에게 수여했다.

황금박차훈장을 달고 있는 볼프강. 1777년 잘츠부르크에서 그려진 이 초상화에는 그가 볼로냐와 베로나의 음악원 회원임도 쓰여 있으며, 볼프강의 평소와는 다른 격식 차린 모습이 담겨 있다.

오스트리아의 여제이며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여왕이었던 마리아 테레지아는 정치가이자 예술애호가인 계몽군주로, 1762년에는 볼프강을 친절히 맞아 주었으나 1771년에는 그의 앞길을 막았다. 


제3장

음악가와 하인


밀라노와의 작별은 모차르트에게 쓰라림을 주었다. 변덕스러운 이탈리아는 어제까지만 해도 연인으로 떠받들던 모차르트를 더 이상 거들떠보지 않았다. 볼프강은 잘츠부르크에 갇혀 지냈다. 자극을 찾아 빈으로 가 보기도 했지만, 고향에서 풍기는 우울함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궁정음악가로서의 고달픈 생활에 적응해야 했다.

19세기에 그려진 그림의 이미지처럼 모차르트와 잘츠부르크는 항상 같이 연상되었다.

그러나 1773년, 그에게 잘츠부르크는 감옥처럼 느껴지는 비좁은 시골도시였다.

"내 동생은 상당히 귀엽게 생긴 아이였다. 그러나 천연두자국으로 얼굴이 약간 흉해졌다. 게다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왔을 때는 안색이 이탈리아인처럼 누래졌다."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그는 훗날 친구 에커만에게 프랑크푸르트에서 보았던 어린 모차르트를 이야기했다. "나는 일곱 살이던 모차르트가 여행중에 연주회를 열었을 때 그를 보았네. 그때 나는 열네 살쯤이었는데 가발을 쓰고 긴 칼을 찬 꼬마아이를 아직 똑똑히 기억하네."


"하느님 앞에서 정직하게 말하는 바이지만 당신 아들은 내가 아는 작곡가 중 가장 위대합니다. 그는 감각이 뛰어날 뿐 아니라 작곡에 대한 최고의 지식도 갖고 있소."

레오폴트 모차르트에게 한 하이든의 이야기


밀랍 위에 그려진 모차르트와 하이든.

볼프강의 사인.


"어제 난 코미디극인 <유행을 좇는 가족>을 보ㅓ 갔어. …… 누나의 뮌헨 동생이. 1774년 12월"

볼프강이 누나에게


"볼프강의 오페라는 리허설 과정에서 무척 인기가 많았소. 그래서 가수들이 작품을 더 잘 배울 수 있도록 공연은 1월 5일로 연기되었소. …… 한마디로 이 곡은 놀랄 정도로 인기가 있소. 이제 성공은 극장에서의 공연에 달려 있소. 하지만 배우들이 우리에게 호감을 갖고 있으니 잘 될 것이오."

1774년 12월 28일

레오폴트

<바이올린이 있는 정물>. 우드리. 18세기. 파리 루브르박물관.

잘츠부르크의 콜로레도 대주교. 볼프강과 그의 아버지는 그를 '계율가'라는 암호로 불렀다.


제4장

깨져 버린 환상


다시 숨이 트였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음악활동에 간섭하려는 자들이 부과해 놓은 독재적 제약과 지긋지긋한 단조로움에서 탈출하고자 투쟁했고, 잘츠부르크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자신의 재능이 세상에 빛을 발하리라 확신했던 그는 부푼 희망을 안고 뮌헨을 향해 떠났다. 스물한 살, 아직도 환상을 가질 수 있는 나이였다.


"저는 요즘 계속 최고의 기분입니다. 모든 압박에서 벗어나니 마음은 새털처럼 가볍기만 합니다."

1777년 9월 26일

볼프강

레오폴트 모차르트.


"사랑하는 아빠, 저는 시인이 아니기 때문에 단어와 구절을 예술적으로 배합해서 시를 쓸 수 없어요. 그리고 화가도 아니므로 명암의 효과를 낼 줄도 몰라요. 또 손짓과 몸짓으로 저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줄도 몰라요. 무용가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음을 통해서는 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요. 저는 작곡가거든요."

1777년 11월 8일

볼프강

모차르트 음악의 세련된 경쾌함은 눈부신 창의와 단련된 표현에서 나오는 완벽한 균형의 결과이다. 프라고나르의 <그네>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18세기의 상투화된 천박성과는 다른 것이다. 유쾌한 느낌을 주는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우수의 그늘이 배어 있다.

마리아 안나 테클라 모차르트 연필화. 1777-1778.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박물관.


"나는 내 사촌누이가 아름답고 총명하며 유쾌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그녀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고 뮌헨에서도 얼마 동안 지냈습니다. …… 우리는 서로 잘 통합니다. 그녀와 짓궂은 농담을 하면서 사람들을 비웃는 것이 아주 재미있어요."

1777년 10월 17일

볼프강

필리프 메르시에의 <음악회>. 현대 영어의 아카데미(academy)는 연구기관, 교육기관, 훈련기관 따위를 뜻한다. 그러나 모차르트 당시의 독일에서는 음악회를 준비하는 단체였으며 더 나아가 음악회 자체를 의미했다.

알로이지아 베버는 뛰어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가수였다. 모차르트가 그녀를 위해 쓴 콘서트 아리아 <테살리의 사람>은 높은 C음계 위의 G음계까지 올라간다.

프라고나르의 <음악 레슨>. 교사로서의 볼프강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편지에서 그는 단조로운 레슨에 대한 혐오감과 재능 없는 학생을 대할 때의 견디기 힘든 지루함을 밝혔다. 그는 가르친다는 것은 단지 피아노밖에 칠 줄 모르는 사람에게나 맡겨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천재임을 알았고, 천재성은 가르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볼프강의 어머니 장례식을 치렀던 파리의 이노상 교회와 묘지. "하느님의 은혜로 저는 이 모든 일을 꿋꿋하고 담담하게 견디어 냈습니다. 어머니의 상태가 몹시 심각했을 때 전 하느님께 두 가지만 즉 어머니를 위해선 행복한 죽음을, 그리고 저에게는 힘과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1778년 7월 3일

볼프강

1781년의 모차르트 가족. 나네를, 볼프강, 레오폴트 그리고 고인이 되어 그들과 함께 있는 안나 마리아의 초상화가 보인다.


"만약 너의 어머니가 만하임에서 돌아왔더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 너는 더 나은 때에 파리에 도착했을 것이고, 가여운 너의 어머니는 아직 잘츠부르크에 있을 텐데."

1778년 8월 27일

레오폴트


제5장

이제 나의 행복이 시작된다!


모차르트는 투쟁을 포기하고, 또다시 구역질 나는 콜로레도 밑에서 고통 속에 몸을 내맡기기로 했다. 그러나 그의 창작의 샘물은 이탈리아 · 독일 · 프랑스 음악과의 접촉으로 더욱 풍부해졌다. 대중은 아직 알아주지 않았지만, 모차르트는 자기 자신이 비할 데 없는 천재임을 확신했다.

18세기 그림으로 작곡에 열중하는 모차르트.

모차르트. 바바라 크라프트, 1819년, 빈 음악동우회.

"이곳 빈에서 저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유익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 저에겐 많은 영광이 주어졌고, 계약조건도 훌륭합니다. 잘츠부르크에서는 제대로 된 대우나 격려도 받지 못하면서 기껏 400굴덴을 위해 괴로워해야 합니다. 그 결과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언제나 같은 것입니다. 끔찍한 모욕을 받은 다음 다시 떠나야하는 거겠죠."

1781년 5월 12일

볼프강이 레오폴트에게

1774년 빈 궁정의 작곡가로 임명된 안토니오 살리에리. 1790년 <코시 판 투테>의 계획적인 방해로 모차르트를 난처하게 했지만, 그는 경쟁자라기보다는 선배였을 뿐이다.

모차르트와 카타리나 카발리에리. 모차르트는 그녀를 위해 <후궁으로부터의 탈출>에서 콘스탄체라는 인물을 그렸고, 빈에서 <돈 조반니>가 초연되었을 때 그녀가 엘비라 역을 맡자 아리아 <미 트라디>를 추가로 작곡했다.

19세기 판화로, 쇤브룬궁의 요제프 2세 앞에서 연주하는 모차르트. 황제는 그림에서처럼 감상에 몰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빈의 성 슈테판 대성당. 여기서 볼프강과 콘스탄체가 1782년 8월 4일 결혼식을 올렸다. 볼프강이 죽기 얼마 전인 1791년, 그는 이 성당의 악단장인 레오폴트 호프만의 무보수 보조직 임용과 함께 호프만의 사후 그의 자리를 이어도 좋다는 약속을 시청으로부터 받았다.

콘스탄체 모차르트의 초상화(1802년). 그녀는 낭비벽이 있었으며 부주의했다는 등 무성한 소문으로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의 많은 자료에 따르면 그녀는 오히려 재정문제를 처리하는 데 유능했고, 남편의 음악을 꾸준히 성원해 주었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전기작가인 프리드리히 슐리히테그롤은 콘스탄체가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나 살아 남은 두 아이의 훌륭한 어머니였으며, 모차르트의 어리석은 결정과 지나친 행동을 견제했던 훌륭한 아내였다."라고 기록했다.

<피가로의 결혼>에서 최초로 수잔나 역을 맡았던 낸시 스토레이스.

1790년 빈의 프리메이슨 모임. 그림에서 제일 오른쪽의 얼굴이 모차르트로 확인되었다. 프리메이슨 결사는 단원의 정신적 진보수준에 따라 세 계급으로 나누었는데 입문자(apprentice), 동료(fellow), 지도자(master)가 그것이고, 각 계급에 독특한 상징물과 표지가 있었다. 모차르트가 언제 지도자가 되었는지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빨리 진급했다고 한다. 프리메이슨 결사는 단원에게 일정한 규율과 의무를 부과했다. 프리메이슨의 사상, 특히 형제애와 자비심의 영향은 그의 후기작품에 분명히 드러난다. 프리메이슨을 위한 그의 첫 작품인 가곡 <동료장인의 여행>은 1785년 3월 26일 작곡된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그의 진급 축하의식 때 쓰였을 것이다. 모차르트의 프리메이슨적 작품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칸타타 <프리메이슨의 기쁨>이다. 프리메이슨적 음악은 율동적이고 형식적인 것이 특징이다.


제6장

볼프강을 위한 레퀴엠


1787년, 모차르트는 서른한 살이었다. 앞으로 4년은 오래 전부터 그랬듯이 끊임없이 괴롭혀댄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어두웠던 이 시기에 모차르트는 자신의 최대 걸작을 작곡했다.

미완성된 이 초상화는 1789~1790년 사이에 알로이지아의 남편 요제프 랑게가 그린 것이다.

19세기의 모차르트 전기작가인 오토 안은 젊은 베토벤이 모차르트를 만나러 왔던 장면을 묘사했다. "모차르트의 요청에 따라 베토벤은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그것이 평소 외워 두었던 기교적인 작품이라 여겨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그걸 눈치챈 베토벤은 자유롭게 즉흥연주를 할 수 있는 주제를 달라고 그에게 간청했다. …… 어찌나 훌륭하게 피아노를 치던지 모차르트는 몇몇 친구들이 있던 옆방으로 들어가 큰소리로 "저 사람을 지켜보시오. 언젠가 온 세계를 떠들썩하게 할 것이오."라고 말했다."

 

니슬레의 석판화로, 체를리나에게 치근덕거리는 돈 조반니와 1막 마지막 부분의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을 표현했다.

모차르트와 콘스탄체 사이의 여섯 아이 중에 두 명만 살아 남았다. 카를 토마스(오른쪽)는 공무원이 되었고, 프란츠 볼프강은 작곡가가 되어 자신의 작품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라고 서명했다. 둘 다 독신으로 자식 없이 죽었다. 이 초상화는 1798년도에 제작되었다.

<코시 판 투테>의 초연 프로그램. 이 오페라의 핵심 주제가 되는 욕망과 이성 사이의 갈등은 모차르트 당대의 사람들은 물론 다음 세대에게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 19세기에는 원래 대본 대신 다른 이야기로 대체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오페라의 근본적인 모호성은 현대의 청중에게 가장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마술피리>의 초연 프로그램. 이 작품은 요정이야기. 철학적 우화, 프리메이슨적 오페라였으며, 그 이상으로 훌륭했다.

1791년 판화로 표현된 새잡이 파파게노(위). 가운데와 아래 그림은 1793년 공연된 <마술피리>의 장면으로, 타미노가 동물을 불러모으고 자라스트로가 등장하고 있다.

걸작의 기

독일 오페라를 쓰고자 했던 모차르트에게 <마술피리>를 제안한 사람은 시카네더였다. <마술피리> 대본구성의 바탕이 된 것은 테라손 신부의 소설 <세토스>와 브라니츠키의 오페라 <오베른, 요정들의 왕>이었다. 대본의 상당부분을 쓴 시카네더는 그 스스로 초연 때 파파게노 역을 맡기도 했다. '밤의 여왕'의 궁전을 위한 이 무대는, 1816년 베를린 공연 때 독일의 위대한 건축가 카를 프리드리히 신켈이 디자인한 것이다.

<마술피리>의 등장인물

<마술피리>의 궁성은 세 쌍의 인물에 집중된다. 젊은 타미노는 사랑하는 파미나 곁에서 입문의식을 치러 낼 준비가 되어 있다. 새잡이 파파게노는 타미노의 상대인물인 것 같다. 순진한 어린아이 같은 파파게노는 파파게나를 찾지 못할 경우 기꺼이 죽을 각오를 한다. 그리고 빛과 미덕을 상징하는 현자 자라스트로는 밤의 여왕으로 표현되는 어둠의 세력과 싸워 승리를 거둔다. 그림은 신켈이 디자인한 자라스트로의 정원무대장치이다.

프리메이슨의 영향

<마술피리>에 나오는 괴물과 요정, 변신(變身) 등의 줄거리는 마치 동양의 우화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프리메이슨에 대한 모차르트와 시카네더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주인공이 겪는 입문의식과 고대 이집트에 대한 암시, 숫자 상징으로 명백해진다. 하지만 그런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보여 주는 사랑과 우정, 지혜의 메시지이다. 그림은 1818년 뮌헨 공연시 시몬 크바글리오가 구상한 밤의 여왕이다.

"그의 마지막 숨결은 마치 <레퀴엠>의 팀파니 파트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그 소리는 아직 내 귀에 생생하다."

모차르트의 처제

소피 하이벨

"나는 내 재능을 다 펼치기 전에 생을 마치게 되었다. 인생은 너무나 아름답고 내 생애는 무척이나 전도유망하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운명을 바꿔 놓을 수 없고,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예측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될 것이다. 이제 나의 생을 마감한다. 여기 내가 미완으로 남겨서는 안 되는 <레퀴엠>이 있다."

모차르트

덕이고

분발이 

 

 

 

 

posted by 황영찬
2014. 7. 10. 09:17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70 보고 싶은 님

 

하정님 지음

1998, 예영카뮤니케이션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9935

 

811.6

하746보

 

약속

 

정다운 님 반가운 님

언제 뵙게 되오리까

밤이 새고 날이 밝아

또 한 날 접혀지니

안타운 이 마음은

소쩍새 울음소리 따라

산등성을 넘어 보네

 

내 사랑 예수님

그 언제 오시려나

내 가슴에 묻어 둔

오신다는 그 약속

빛나는 눈물 방울되어

햇빛에 반짝이네

 

반짝이다 떨어지는

눈물 방울엔 아쉬움만

소록소록 새어나오네

 

하정님

지은이 하정님은 1948년 서울 출생으로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학교)을 졸업했으며 1973년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 동부 버지니아주에 살며 부군과 대학생인 두 딸과 함께 주님을 잘 섬기는 가정주부이고 지난 1993년에 첫 시집 『기뻐서 울고 싶어라』를 출판한 바 있습니다.

 

차례

 

주님 생각 · 큰 날개 · 은빛 날개 · 약속 · 그리움 · 내 청춘의 날들이여 · 땅 투기 · 메마른 사랑 · 말씀의 옷 · 사랑의 모양 · 참즐거움 · 내 사랑 드리고 싶네 · 길 · 내 기도 · 그 곳 · 마음과 생각 · 그리운 님 · 아름다운 곳 · 기다립니다 · 내 하나님 · 마음의 바다 · 과거 · 희망의 꽃 · 달리는 세월 · 농촌의 즐거움 · 사슴 한 마리

 

영광의 그 길 추수할 날 · 바람 · 발자욱 · 베짱이 · 내 사랑 · 잡초 · 내 주님 · 거미 · 은혜의 빛 · 참사랑 · 올라가세 · 짝사랑 · 성난 파도 · 참기쁨 · 그사랑 · 밤 바람 · 보드라운 꽃잎 · 님 발자욱 · 인생은 종이배 · 꽃잎 한 조각 · 떠난 님 · 부끄러운 인생 · 빈 마음 · 사랑은 수수께끼 · 귀한 사랑 · 눈송이 사랑 · 춤추는 내 사랑 · 약속의 님 · 국화꽃과 파랑새 · 갈보리 십자가 · 찬란한 주님 영광 · 그리운 그 날이여 · 해바라기 · 청소년 · 참소망 · 천성문 · 차돌멩이 · 측량 못할 사랑 · 영생의 삶 · 세상 끝날 · 주님 오시는 날 · 보고 싶은 님

 

내 청춘의 날들이여

 

봄날의 내 청춘 찾을 길 없어라

봄은 피고 지는데

내 청춘은 지기만 하네

 

싱그러운 여름 같은 마음도

애달픈 가을 같은 마음도

모두 흩날려 버렸네

 

겨울 같은 차거운 마음

한 구석에 움추렸네

파릇파릇 새싹도 간 곳이 없어라

푸른 잎도 간 곳이 없어라

 

단풍잎 되어 부서져 버린 날들이여

나는 너를 어디 가서 찾으리

찾을 수 없는 내 청춘의 날들

아쉬움만 쌓여가네

 

아쉬움은 미련인가

덧없이 지나버린 내 청춘의 날들이여

나는 너를 목 놓아 불러 보네

 

땅 투기

 

먹자 놀자 잠자자 하던 인생

만족할 날 없으리

입맛도 잠시요 노는 것도 지루하리

잠자는 게으름 마귀는 손뼉쳐 주고

내 인생 내 맘대로 휘둘러 보나

만족은 없고 기쁨도 잠시라

흘러가는 공간 속에

꽂꽂이 서 있지 못하는 인생이라

한판 승부 어디다 걸었나

땅 위에 깃발 꼽았나

땅 땅 땅

땅소리 소란하여

발 펴고 잠 못 자고

내 땅 네 땅 누가 주었나

땅자락이 웃음짓누나

너는 내게 묻힐지라

나는 네게 묻히지 못함이여

 

메마른 사랑

 

내 영혼에 사랑이 메말랐네

주기도 싫은 사랑

받기도 싫은 사랑

부서진 마음이어라

 

물 위에 떠내려가는 뗏목처럼

흐르고 흐르는 마음이어라

흐르고 흘러버린 강물

돌이킬 수 없어라

 

강물도 흐르네 내 마음도 흐르네

정수기 받쳐 걸러 보나

미련만 걸러지네

메마른 사랑 속에

미련이 웬말인가

 

걸러져서 앙금 앉은

내 마음은 부서지네

돌 바위에 철썩이는

파도처럼 부서지네

갈급한 내 영혼에

찬바람만 스며드네

 

과거

 

보라빛 꿈이련가

다홍치마 나풀거리던 시절

흘러 버린 빗물 같구나

검정띠 띠고 가던 마을 아낙네

호호 백발 늙어 버린 지금이어라

오 ~ 애잔한 세월이여

내 꿈 싣고 달려가 버린 세월이여

다시 못 만날 인연만 지어 놓고

떠나 갔구려

또 보고 싶은 젊은 날의 시간들이여

영영 돌아올 희망 없이

자취를 감추었구려

슬퍼해도 손짓해도

돌아올 수 없는 과거 그대여

보라빛 내 꿈 싣고

먼지도 남김없이

날아가 버렸구나

 

앞장 서시오 어차피 나는

당신을 따라가야 하는

서글픈 인생이올시다

 

농촌의 즐거움

 

덩덕꿍 덩덕꿍

어깨춤이 절로 나네

애간장 녹이는 피리 소리

내 마음 녹여지고

 

영글은 과일 가지

늘어져 흥이 나네

에헤라 즐거운 가락

풍년을 읊어 보세

 

춤추자 내 날개춤

기쁜 풍년 대풍년

오곡백과 영글었네

덩덕꿍 얼시구

 

어깨가 들썩들썩

좋아라 대풍년

농촌의 즐거움

땀 흘린 소산일세

 

너의 침묵

 

앞뜰에도 뒤뜰에도

꽃은 만발하건만

내 마음의 꽃밭은

피지도 못하고 시들었나

유난히 추웠던 겨울

잘도 견디고 터져 나온

뜨락의 꽃봉오리야

추울 때도 말없이

잘도 견디어낸 너의 침묵

나도 배워 온갖 세찬 비바람도

잘 견디는 너의 모습 닮으련다

 

사슴 한 마리

 

산 속에 홀로 된 사슴 한 마리

슬픈 눈 굴리며 어디로 가고 있나

하염없이 홀로 가고 가다가

벼랑 위에 우뚝 서

먼 산을 바라보네

가고 간들 산뿐이라

길 없는 험난한 산골짝

뉘라서 나를 반기리요

어디로 가야하나

산 속이 고향이건만

갈 곳 찾는 슬픈 마음

갈 곳 몰라

고개만 두리번거리누나

 

추수할 날

 

산천초목 푸르르니

산새가 노래하네

오곡백과 익을 날도 멀지 않았고

익은 곡식 추수할 날

물결처럼 다가오네

추수할 일꾼들

밭에 나가 열심이나

열매 없는 밭을 보니

찬서리 두렵구나

적막한 이 가슴엔

슬픔만 쌓여 가네

 

바람

 

사막에 바람 부니

먼지가 자욱하고

갈대밭에 바람 부니

공허한 소리 흩날리누나

 

내 마음에 바람 부니

인생 여정 쓸쓸하고

뒷동산에 바람 부니

부엉이가 화답하네

 

들녘에 바람 부니

메밀꽃이 떨어지는데

바람은 어디서 오는가

너도 몰라라

나도 몰라라

 

베짱이

 

베짱이가 찌꺽찌꺽

구슬프게 울부짓네

하룻밤 풋사랑

나눌 자 없음이요

가엾은 이 내 사랑

가져갈 자 없음이라

엎드려 노래하는

개구리가 부럽구나

찬 이슬 이불 삼아 누워 보네

아득한 밤 하늘이라

구슬픈 이 내 가슴

그 누가 알리요마는

이 내 가슴 내 몸 베틀에

눈물 실을 짜누나

 

인생은 종이배

 

인생의 절반은 내일을 생각하고

인생의 절반은 지난날을 생각하누나

생각하던 내일도 지나고 생각하니

어설픔뿐이요

지난 일 생각해도

뿌연 안개와 같구나

내 생명이 시간을 만들었나

시간이 내 생명 업고 돌아갔나

시간은 멈출 줄 모르는데

내 마음 멈추고 어딜 서성이나

과거와 미래의 여로에서

마음 가는 곳 없어

앞도 뒤도 볼 수가 없구나

인생은 슬픔도 기쁨도 아니어라

종이배 접듯이

접었다 풀어 버리는 그런 것

인생은 종이배

그냥 흘러흘러 가는 것

 

꽃잎 한 조각

 

아름다운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정다운 사람과 다정다감일까

풍족한 물질 위에 앉아

만족한 웃음지음일까

 

좋은 환경에서 멋진 교육 받고

좋은 직장 가짐일까

가진 재능을 만인이게 알리는 것일까

아픈 곳 없이 오래오래 잘 사는 것일까

 

아무리 열거를 해 본들

잠시 지나가는 기차 소리와 같은 것

청춘을 불사른들 노년이 안락한들

풀의 꽃과 같은 인생

 

잠시 피고 지는 꽃

아름다워도 잠시요

부끄러워도 잠시요

꽃은 떨어지고 잎은 마르고 지니

 

인생의 아름다운 삶이랴

오직 꽃잎 한 조각

 

부끄러운 인생

 

서럽고 부끄러운 인생이여

작은 입 열고 닫아

상처만 내었구려

 

작은 혀가 뿌리는

날카로운 씨는

상대방의 가슴 밭에

비수처럼 꼽혀지고

 

그래서 얻어지는 것은

상대방의 아픔보다

몇 갑절 더 아픈 내 가슴

 

말하지 말자 듣지도 말자

서러울 때 그저 속으로 울자

울지도 못하고 비명에 가는

인생도 많쟎은가

 

입열어 나팔 불어도

가슴 속은 여전한데

긴긴 세월 찬바람을

오늘 어찌 바꾸리

 

빈 마음

 

동지 섣달 밤 하늘엔

찬 이슬 맺어지고

도토리 까는 다람쥐는

바쁘기만 하구나

 

종일토록 달리던 차

잠자러 들어가고

한산한 길거리엔

소음도 자고 있네

 

소음에 절은 나무

맥없이 늘어지고

여울목 개울가에

쉬고 싶은 이 내 심사

 

푸른 초장 그리워

산 속으로 달려가는

빈 마음뿐이어라

 

사랑은 수수께끼

 

사랑은 수수께끼 같아라

쉽게 풀면 쉽고 어렵게 풀면 안 풀리는

저마다 다르게 풀어 보는 수수께끼

알쏭달쏭 꽃바구니 속

아른아른 아지랑이

알 것 같고 모를 것 같은 사랑이어라

사랑 사랑 수수께끼 사랑

너도 몰라 나도 몰라

그러나 난 느낄 수 있지

수수께끼 풀어 버리는 그 기쁨

그것이 사랑이야

사랑 사랑 수수께끼 사랑

오늘도 내일도 매일매일 풀어 가는

사랑은 수수께끼야

 

국화꽃과 파랑새

 

송이송이 맺힌 이슬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들녙에 핀 야생 국화

꽃 향기 뿜어내네

찬바람에 나부끼는 국화 꽃잎

파랑새 날아오라 손짓하누나

국화꽃 향내 맡고 날아온 파랑새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 벗삼아

예쁜 노래 부르며 날개를 퍼득이네

종일토록 아름다운 국화꽃과 파랑새는

못난 인생 비웃으며 둘이서 속삭이네

속절없는 인생살이에 노예된 인생들아

향기도 노래도 없이

눈동자 굴리며 어디를 보는가

주인 없는 야생 국화 향기 가득하고

공중에 머무는 파랑새도 기쁘건만

생각하는 인생들은

향기도 없고 기쁨도 없구나

날아라 파랑새야 마음껏 날아라

날고 싶은 인생들은 마음뿐이란다

 

청소년

 

청춘도 아니어라

노년도 아니어라

질퍽한 흙탕물에 목욕하고 나온 양

텁텁하고 껄끄러운 가슴은

긴 한숨만 쉬누나

 

따스하고 잔잔한 온천물에

앞뒤로 뒤집어 헹궈 보고픈

행주 같은 마음은

비눗물 없이 빨아 놓은

빨래더미 같구나

 

아름다운 노래 어디 갔나

사랑 노래 어디 갔나

지나간 청춘이

엄하게 뒤돌아보고

돌아온 노년이

한심하게 바라보누나

 

바닥에 내려앉은

청소년 시절이여

한심타 푸념 말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자

 

차돌멩이

 

올망졸망 차돌멩이

반들반들 윤기 나네

크고 작음 상관없이

생김생김 꼭 같구나

 

빛깔빛깔 꼭 같아라

단단함도 꼭 같아라

흐르는 물줄기 따라

데굴데굴 구르는 차돌멩이

 

구르고 굴러 그토록 단단한가

물결에 부딪히고

바람에 흔들리고

빗물에 상처 입고

 

세상 풍파 이기느라

반들반들 해졌는가

모든 역경 다가와도 미끄러져 내리는

차돌멩이 껍질을 나도 닮고 싶구나

 

올망졸망 세상 근심

다 미끄러져 내려라

세상을 이기려네

세상을 이기려네

 

보고 싶은 님

 

보고 싶은 님이 있어

잠 못 이루네

어느 때 뵈오리까

 

알고 싶은 이 가슴은

타다 남은 숫덩이 되어

재가 되려 하네

 

열화 같은 이 내 사랑

내 님은 아실는지

모르시기에 아니 오시나

 

내 님이시여 이 내 사랑

모른다 마옵소서

당신 때문에 태어난 이 생명

 

기억하여 주옵소서

살아서 못 뵈오면

죽어서는 뵈올는지요

 

아 ~ 보고 샆은 이 가슴은

울지도 못하누나

울지도 못하누나

 

 

 

posted by 황영찬

2014-069 여기! 내가 찾던 여행지 100

 

· 사진 유정열

2014, 상상출판

 

 

대야도서관

SB099503

 

981.102

유74ㅇㄱ

 

이번에는 여기로 국내여행 가자!

 

내 생애 최고의 여행을 꿈꾸는 사람을 위한 감성가이드북!

 

주말 · 1박2일 · 당일여행 일정에 따라

어떤 여행이든 OK!

 

유정열 작가의 시선은 따뜻합니다. 아무리 어두운 세상도 그의 시선을 거치면 금세 밝아집니다. 유정열 작가의 시선은 예리합니다. 같이 여행을 하면서 똑같은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그의 시선. 유정열 작가가 오랫동안 발품을 팔아 만들어 낸 결과물이 이제 세상 빛을 보려합니다. 그 힘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기에 기대 또한 큽니다. 그가 따뜻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 송일봉

 

서른이 되던 해였다. 24시간 장거리 버스를 타고 성자의 나라 어느 산을 넘고 있었다. 결승점을 눈 앞에 둔 마라토너처럼 지쳐갔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버스가 산허리를 돌아설 때, 어둠 속 산 아래에서 빛나고 있던 작은 마을. 아, 별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그리고 『여기! 내가 찾던 여행지 100』을 받아들고 다시 깨닫는다. 사진으로도 시를 쓸 수 있구나. 사진도 찬란한 시어가 될 수 있구나. 이제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시인들이 태어나겠지. 그래서 성자의 나라 시골 마을보다 더 많은 별들이 세상에서 빛나게 되겠지.

여행가 · 사진가 · 작가 박동식

 

유정열 작가의 사진은 간결하다. 간결함 속에 바람 내음과 햇살의 따사로움, 사람의 향기가 가득 들어있다. 유정열 작가의 사진은 아름답다. 그의 렌즈가 잡아낸 우리나라의 모습은 빛을 흠뻑 받은 찬란한 꽃망울처럼 반짝인다. 이 책에는 탐나는 그의 사진을 훔칠 수 있는 비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친절한 그의 설명과 함께 하면 누구라도 행복한 사진 여행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당장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사진 속 여행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지구별 워커홀릭』『안녕, 여행』 작가 채지형

 

유정열

 

사진가이자 여행가이다.

일러스트레이터라는 별도의 직업도 있다.

사진을 세상과 자신을 이어주는 끈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한 장으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 풍경을 담아낼 수 있고, 세상의 보이지 않는 이면도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세상을 방랑하는 동안 카메라는 분신처럼 따라 다녔고 그걸로 열심히 세상을 담았다.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며 소통하는 즐거움이 사진에 있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길 위의 행진을 멈추지 않는다.

지난 10년 동안 여행에서 마주한 풍경을 사람들에게 글과 사진으로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민국 베스트 촬영지 55』, 『놀라운 우리나라 여기가 어디지?』와 공저 『서울여행사전』, 『대한민국 여행사전』, 『대한민국 머물기 좋은 방 210』, 『여행작가들은 여행 가서 뭐 먹을까?』, 『서른이 되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28』 등이 있다.

 

목차

 

Prologue

계절별 추천여행지 BEST 5

 

강원도

001 구룡령 옛길 | 홍천군 내면

      가을 냄새가 물씬 피어난다

002 설악산 흘림골 | 양양군 서면

      기암 위에 깊어가는 가을

003 상고대 | 춘천시 동면

      엄동설한에 피는 서리꽃

004 자작나무 숲 | 인제군 인제읍

      노란 단풍이 전하는 가을 속삭임

005 운탄고도 | 정선군 사북읍

      광부의 애환 서린 길

006 준경묘 | 삼척시 미로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

007 청령포 | 영월군 남면

      천혜의 절경 속에 둘러싸인 외로운 감옥

008 공현진해변 읍바위 | 고성군 죽왕면

      격렬한 파도의 유희

009 산천어축제 | 화천군 화천읍

      겨울아! 물러 섰거라

010 추암해변 | 동해시 추암동

      한명회의 능파대, 사람들의 추암

011 풍수원 성당 | 횡성군 서원면

      찬찬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곳

012 양떼목장 | 평창군 횡계리

      몽글몽글 양떼들의 오물오물 합창

013 한탄강 얼음트레킹 | 철원군 갈말읍

      추워야 제 맛이다

 

전라도

014 사도 | 여수시 화정면

      안나네 민박집은 사도에 있다

015 세량지 | 화순군 화순읍

      마음속에 쏟아지는 봄 햇살

016 곡성 기차마을 | 곡성군 오곡면

      추억을 나르는 기찻길

017 전주 한옥마을 | 전주시 완산구

      명랑한 문화와 전통이 숨 쉬는 곳

018 명옥헌 원림 | 담양군 고서면

      백일 동안의 붉은 연정

019 금성산성 | 담양군 고서면

      남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

020 화엄사 흑매 | 구례군 마산면

      붉게 달아오른 홍매화

021 덕유산 | 무주군 설천면

      곱디고운 능선이 펼쳐진다

022 미륵사지 | 익산시 금마면

      상상하는 재미가 잇다

023 옥정호 | 임실군 운암면

      그곳에 가면 붕어가 산다

024 선운사 꽃무릇 | 고창군 아산면

      애틋한 그리움 선홍빛으로 물들다

025 대한다원 | 보성군 보성읍

      차밭의 아름다움은 패턴이다

026 위도 띠뱃놀이 | 부안군 위도면

      어기여차 칠산 바다로 돈 실으러 가자

027 정도리 구계등 | 완도군 완도읍

      골목을 벗어난 아이들처럼

028 순천만 | 순천시 대대동

      S자 물길이 참 섹시하구나

029 가거도 | 신안군 흑산면

      가히 살 만한 섬

030 비금도 | 신안군 비금면

      거시기 달짝지근한 섬이어라

031 홍도 | 신안군 흑산면

      뒤돌아보며 눈물 흘리는 섬

032 조도군도 | 진도군 조도면

      새들처럼 훨훨 날아보자꾸나

033 관매도 | 진도군 관매도리

      사랑한다면 관매도처럼

034 산포수목원 | 나주시 산포면

      잘빠진 메타세쿼이아 길

035 소등섬 일출 | 장흥군 용산면

      활짝 웃어보자구요 장흥

 

경상도

036 창녕 우포습지 | 창녕군 유어면

     우포늪에서 들려오는 생명의 노래

037 불영사 | 울진군 서면

      아름다운 사찰에서 마음을 씻는다

038 주산지 | 청송군 부동면

      깊고 그윽한 사색의 공간

039 근대문화유산 골목 | 대구시 중구

      다 같이 돌자 골목 한 바퀴

040 회룡포 | 예천군 용궁면

      커다란 항아리처럼 강물 돌아가는 곳

041 주상절리 | 경주시 양남면

      붉은 바다 위에 핀 재돌

042 경주 남산 | 경주시 배동

     늠비봉 석탑 앞에서 잠든다

043 진남교반 | 문경시 마성면

      길도 아름다울 수 있다

044 통영 미륵산 | 통영시 도남동

      이곳에 오르면 통영이 보인다

045 위양지 | 밀양시 부북면

      하얀 쌀밥 수북이 쌓였네

046 주남저수지 | 창원시 의창구

      깃털만의 세상

047 악양 평사리 | 하동군 악양면

      섬진강과 무딤이들이 낳은 풍요

048 물건 방조어부림 | 남해군 삼동면

      나무와 바다와 사람이 어우러지는 곳

049 지품면 복사꽃 | 영덕군 지품면

      봄날 마음을 달뜨게 하는 복사꽃

050 슬도 등대 | 울산시 동구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은 등대

051 하회별신굿탈놀이 | 안동시 하회마을

      걸지게 한판 놀아보세

052 함양 상림 | 함양군 함양읍

      함양사람들이 부럽다

 

충청도

053 화양구곡 | 괴산군 청천면

      속세를 떠난 이상향

054 온달산성 | 단양군 영춘면

      바보 온달의 거대한 배

055 삼년산성 | 보은군 보은읍

      천만 개의 돌로 쌓은 보은 삼년산성

056 마애삼존불 | 서산시 운산면

      1,400년 전의 살인미소

057 외연도 | 보령시 오천면

      망망대해 위에 안개에 가려진 섬

058 꽃지해변 | 태안군 안면읍

      나를 붙들어 준 바다

059 한산 모시 | 서천군 한산면

      인고의 세월 속에서 핀 단아함

060 예당지 | 예산군 응봉면

      겨울의 울림이 맴도는 호수

061 신두리 해안사구 | 태안군 원북면

      아파하지 마라

062 궁남지 | 부여군 부여읍

      선화를 위한 서동의 꿈꾸는 정원

 

부산

063 이기대와 오륙도 | 남구 용호동

      부산의 상징 이기대 해안산책로와 오륙도

064 영선동 | 영도구 영선동

      하늘과 바다 사이의 벼랑 끝에 걸려 있는 꿈

065 오랑대 | 가장군 기장읍

      슬퍼도 기뻐도 한결같은 바다

066 다대포 | 사하구 다대동

      모래와 황금빛 일몰이 그리운 곳

067 보수동 책방골목 | 중구 보수동

      헌책방에 관한 달콤한 추억

068 해운대 | 해운대구

      뜨거운 태양 아래 사랑이 익어간다

 

제주도

069 광치기해변 | 서귀포시 성산읍

      그날의 기억을 보듬어 주는 바다

070 금능으뜸원해변 | 제주시 한림읍

      누구에게나 파라다이스

071 한라산 백록담 | 제주시 조천읍

      은하수를 만질 만큼 높고 눈부시다

072 외돌개 | 서귀포시 서흥동

      파도에 닳아 더욱 처연한 바위

073 용눈이오름 | 북제주군 구좌읍

      억새와 빛이 만들어 낸 축제

074 가파도 | 서귀포시 대정읍

      바람이 넘실대고 청보리가 춤추는 가파도의 봄

075 군산오름 | 서귀포시 안덕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076 거문오름 | 제주시 조천읍

      신령스러운 세계자연유산

077 방주교회 | 서귀포시 안덕면

      물과 빛으로 빚어진 제주의 방주

078 이호테우해변 | 제주시 이호동

      바다를 지키는 트로이 목마

079 우도 | 제주시 우도면

      소는 사실 사람이었다

080 따라비오름 | 서귀포시 표선면

      제주 오름의 여왕

 

서울

081 달빛무지개분수 | 서초구 반포동

      오색커튼 같은 분수의 장관

082 선유도공원 | 영등포구 양화동

      마음도 가볍게 마실 간다

083 N서울타워 | 용산구 용산동

      서울 구경 1번지

084 창덕궁 후원 | 종로구 와룡동

      조선의 왕이 되어보자

085 하늘공원 | 마포구 상암동

      함께 산책하기 좋은 공원

086 서촌 | 종로구

      길을 잃어도 좋은 골목

087 북촌한옥마을 | 종로구

      한옥 사이로 느려지는 발걸음

088 안산 | 서대문구 봉원동

      500년 도읍지 서울의 야경

089 낙산마을 | 종로구 동숭동

      정감 어린 골목과 벽화가 있는 마을

090 백사동천 | 종로구 부암동

      서울이 품은 비밀의 정원

 

경기 · 인천

091 남한산성 | 경기도 광주시

      땅 위에 내려앉은 별

092 원당 종마목장 | 경기도 고양시

      목가적 풍경 속으로

093 수원 화성 | 경기도 수원시

      정조가 남긴 위대한 유산

094 조무락골 | 경기도 가평군

      조물조물 새소리 가득한 곳

095 두물머리와 세미원 | 경기도 양평군

      여름, 느긋한 연꽃 산책

096 풍도 | 경기도 안산시

      영원한 행복을 기다립니다

097 옥죽동 해안사구 | 인천시 옹진군

      푸른 바다 위의 하얀 사막

098 동막해변 | 인천시 강화군

      먹고 마시고 쉬어라

099 교동도 | 인천시 강화군

      어릴 적 상쾌한 줄달음의 추억

100 홍예문 | 인천시 중구

      무지개꿈이 스며 있는 문

 

Index

 

 

 

posted by 황영찬

2014-068 홍도와 흑산도

 

글 / 고동률●사진 / 박보하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39

 

082

빛12ㄷ  217

 

빛깔있는 책들 217

 

고동률-------------------------------------------------------------------------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8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현장검증」이 당선되었다. 산악전문지 『사람과 산』 등에서 기자 생활을 하였으며 현대그룹 계열사 홍보실에서 근무하였다. 저서로는 『성공과 실패는 법칙이 있』 등이 있다.

 

박보하-------------------------------------------------------------------------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으며 세 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가졌다. 1993년 『월간 사진 예술』에서 주최하는 올해의 사진가상을 수상하였고, 1994년에는 『Korean Culture』 사진 촬영으로 한국일보에서 주관하는 한국출판문화상 사진예술상을 수상하였다. 한국의 전통 문화를 주제로 한 사진들을 주로 촬영하고 있다.

 

|차례|

 

섬을 찾아서

외딴 섬의 아름다움

인간과 자연의 발자취를 따라

섬생활의 다양한 모습

여행중에 만나는 풍경

관광 안내

참고 문헌

 

장도와 내망덕도 뒤로 보이는 홍도  아득한 서해 한가운데 고즈넉이 떠 있는 홍도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의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절실히 느끼게 된다.

내연발전소로 올라가는 길에서 바라본 홍도 해안  홍도는 바다에 떠서 파도에 흔들리며 잘 그려진 풍경화를 감상하듯 바라보고 느끼는 섬이다.

홍도의 기암절벽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홍도는 보는 위치나 빛의 각도에 따라 모양과 느낌이 전혀 달라져 신비롭다.

남문바위  홍도항 오른편에 있는 남문바위 일대는 더 빼고 붙이고 할 것 없는 완벽한 조각 예술품인 동시에 잘 그려진 풍경화이다.

홍도의 일출  홍도 1구에서는 멀리까지 나가지 않아도 멋진 일출을 볼 수 있다. 밖에 나가 미리 아침해를 맞을 준비를 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창문만 열면 해가 떠오르는 장관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

병풍바위  12폭 병풍을 뒤로 비스듬하게 세워 놓은 것과 같다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12폭 병풍바위라고도 한다.

주전자바위  용왕이 바다의 질서를 관장하는 사해 충신들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하여 베푼 잔치에서 술을 담았던 주전자가 남아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홍도 앞바다의 밤을 밝히는 등대  홍도 2구에 있는 등대는 어두운 밤 서해를 헤매는 배들의 뱃길을 잡아 주고 있다. 등대 너머 멀리 독립문바위가 보인다.

독립문바위  서울의 독립문과 모양이 흡사하여 이름붙여졌다. 지난 날 중국으로 가는 배들은 반드시 이곳을 지나갔다고 한다.

흑산도 일주도로  상라산 정상에서 본 일주도로. 홍도 관광이 유람선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면 흑산도 답사는 이 일주도로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쌍룡동굴  두 마리 용을 눈 앞에서 만난 듯, 웅장한 바위의 무게가 눈길을 잡아 끈다.

칠성동굴  신라시대 청해진을 설치하여 서해 해상 무역을 장악한 장보고 장군이 당나라와 교역을 할 때 이곳에 칠성탑을 쌓고 안녕을 비는 용왕제를 지냈다고 한다.

촛대바위  날카로운 바위의 위용을 자랑하는 흑산 5경 촛대바위. 돛단배를 닮아 돛대바위라고 불리기도 한다.

고래바위.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외딴 섬 처녀의 애환을 담은 이미자 씨의 노래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노래비로 일주도로 변에 있다.

홍도해수욕장  해안의 경사가 심하고 바닥이 암반이나 빠돌로 형성되어 있으므로 바다에 들어가는 것보다 해변에서 파도를 즐기는 기쁨이 크다.

지석묘군  선사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흑산도의 지석묘는 타원형 남방 형식으로 발굴 당시 빗살무늬토기, 생활용기 등이 출토되었다.

반월성  반월성은 원형을 많이 잃은 데다가 온통 풀숲으로 변하여 버렸다. 그러나 반월성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예리 항구의 아름다움은 오래도록 못 잊을 정취를 안겨 준다.

읍동리 삼층석탑  이승에서의 고달픈 생을 달래고자하는 섬사람들의 작은 정성이 모아지는 곳이다.

상라산 봉화대  중국 사신이 오는 길을 밝혔던 흑산도 봉화대는 시대가 바뀌면서 그 기능을 다하고 쇠퇴하여 이제는 허물어진 봉화대와 터만 남아 있다.

복성재가 자리잡고 있는 사리  『자산어보』를 남긴 손암은 흑산도에서 15년의 유배 생활을 하였다. 손암이 집을 짓고 살았던 곳으로 추정되는 자리에는 현재 복성재가 복원되어 있다.

지장암에 새겨진 면암 최익현의 글씨와 면암선생적로유허비  지장암은 산에 붙은 자연석으로 면암 선생의 친필이 남아 있어 유명한 곳이다. 면암의 문하생들은 지장암 앞에 그를 기리는 비를 세웠다.

실거리나무  덩굴져 뻗어 자라며 줄기에는 가시가 있다. 초여름에 노란 꽃이 피며 가을에 긴 타원형의 꼬투리가 생긴다.

콩짜개넝쿨  산지의 나무줄기나 바위에 붙어 자라며 원형의 잎이 성기게 난다.

청띠제비나비  날개에 청색 띠를 가지고 있는데 이 띠는 청색에서 황백색에 이르기까지 무늬의 변이가 심하다.

슴새  여름 철새인 슴새는 남해안의 외딴 섬이나 울릉도의 댓섬 등 무인도에서 살며 하루 종일 바다에 나가 생활한다.

금새우난초  남부 지방의 낙엽수림 밑에서 자라며 새우난초와 형태가 비슷하고 황색의 꽃이 피는 데서 이름이 붙여졌자. 노랑새우난초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도풍란  상록수림과 침엽수림의 나무나 바위에 붙어 자라며 풍란에 비하여 잎이 크다.

초령목  흑산도 주민들은 초령목의 가지가 신을 부른다고 믿어 매우 소중하게 여겼으나 몇 년 전 고사목이 되고 말았다.

흑비둘기  햇빛을 받으면 품위있는 흑자색으로 변하는 날개를 가진 흑비둘기를 흑산도 주민들은 길조로 여긴다. 후박나무 숲 주변에서 주로 서식한다.

진리 처녀당  흑산도 당집 가운데 보존이 가장 잘 된 진리 처녀당은 주변에 희귀목인 초령목, 용신당, 당샘 등을 두고 잇어 효험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홍도 1구.

홍도 2구  홍도 2구는 홍도 1구와는 달리 보기만 하여도 가슴 훈훈해지는 전형적인 섬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붉은빛을 띠는 홍도 해안의 바위  홍도는 바위들이 홍갈색이어서 섬이 빨갛게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홍도의 바위들은 전체적으로 붉은 색조를 띤다.

흑산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깃대봉  흑산도에서는 많이 걸으면걸을수록 얻는 것이 많다. 아무 길이나 선택하여 걸으면 그대로 산책길이 되고 등산로가 된다.

 

 

 

posted by 황영찬
2014. 6. 25. 17:16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67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천양희 詩로 쓴 영혼의 자서전

1998, 작가정신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7358

 

811.6

천636그

 

시인 천양희는 기쁘거나 슬프거나 내색 않는 바위를 스승으로 삼아 동짓밤 같은 긴 침묵을 지켰다. 고통의 숟가락으로 자기 삶을 파먹으며 속 없는 공어空魚처럼 자기를 비우려 했다. 그것은 기다림이었고 천양희에겐 기다림이 곧 사는 것이었다. 죽은 듯한 겨울나무에서 봄꽃이 피지 않던가. 고독은 순수조차 진창에 빠지게 하지만 천양희는 결코 고독과 타협하지 않았다. 집념이라 할지라도, 선인장처럼 가시로 자신을 지키며 형벌 같은 사막에서 꽃이 피길 기다렸다. 긴긴 낮 하지에 수도승처럼 면벽하고, 정신의 시퍼런 파도소리를 들으며 고독의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는 심연에서 잠언을 캐어와 현자처럼 우리에게 들려준다.

- 강석경(작가)

 

천양희 선생은 맨발로 물 위를 걷는 시인이다. 그는 물 위를 걷다가 물 속으로 발이 쑥 빠질 때마다 시를 쓰면서 다시 묵묵히 물 위를 걸어갔다. 시로 쓴 이 영혼의 자서전은 그가 일찍이 물 위를 걷다가 우리들에게 남겨놓은 고독의 신발 한짝이다. 나는 그 신발을 신고 물 위를 걸어가본다. 한번씩 발이 물에 쑥쑥 빠질 때마다 멀리 수평선 너머로 인간의 외딴섬이 보인다. 고통스러우나 견딜 만한 인생의 비밀이 보인다. 쓸어도 쓸어도 늘 가슴이 아픈 사람들은 이 책을 가슴에 안고 길고 긴 밤을 맞으라. 아침이 되면 햇살처럼 맑고 따스한 시인의 손길이 당신의 아픈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을 것이다.

- 정호승(시인)

천양희

 

부산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65년 <정원 한때> 등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등단했으며, 소월시문학상(1995), 현대문학상(1998)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는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사람 그리운 도시》《하루치의 희망》《마음의 수수밭》이 있다.

 

차례

 

서문

침묵 / 한마디 / 외길 /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시간이 필요하다 / 사람의 일 / 여행 / 하루살이 / 외딴 섬 / 한잔 술 / 그때 / 너에게 쓴다 / 나의 숟가락 / 20년 동안 / 기차 / 탓 / 가시나무 / 자리 / 추억 / 관계 / 하루 / 숨바꼭질 / 봄 / 혼자서 가느냐? / 나의 변辨 / 나는 누구인가 / 붉은머리 오목눈 / 집 / 나무의 꿈 / 나는 공어空魚 / 나의 잔 / 아이 생각 / 아비 / 꽃점 / 파문 / 혼자되다 / 어둠 / 축복 / 허기 / 교감 / 여식女息 보아라 / 우두커니 / 닦는 일 / 근시 / 날씨 / 손 / 못 / 마음아 / 비 / 벽 / 귀뚜라미 / 시작과 끝 / 자취 / 몰두 / 동행 / 한 쌍 / 상실 / 지혜 / 어깨동무 / 계단 / 나의 거울 / 중요한 얘기 / 나는 알지요 / 자연 / 바람 부는 날 /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것들 / 진실 / 반딧불 / 친구 / 길 / 실패 / 생각하는 사람 / 답答 / 밥 / 바보 / 주인공 / 차이 / 상처 / 하나밖에 없다 / 오래된 미래 / 결론 / 지독한 사랑 / 옷 / 눈 / 바위 / 말 / 단 한 번 / 열쇠 / 감 / 붉은 우체통 / 누가 내게 묻는다면 / 악수 / 무소새 / 마음에 점찍기 / 그 사람 / 화석 / 수족관 / 나의 기원 / 나이 / 가치 / 사람 / 발전소 / 연어 / 부재不在 / 폐허 / 중년 / 얼굴 / 마침표 / 좌우명 / 나의 죄 / 독신

고독의 심연에서 캐낸 영혼의 기록 / 강석경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산 넘어버렸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강 건너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집까지 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그땐 그걸 위해 다른 것 다 버렸지요.

그땐 슬픔도 힘이 되었지요.

그 시간은 저 혼자 가버렸지요.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었지요.

 

계단

 

빛을 너무 옹호 마라

빛은 어둠을 통해서 왔거니.

매혹을 너무 탐하지 마라

매혹은 환멸을 통해서 왔거니.

행복을 너무 축복 마라

행복은 불행을 통해서 왔거니.

사랑을 너무 찬탄 마라

사랑은 이별을 통해서 왔거니.

죄를 너무 비난 마라

죄는 삶을 통해서 왔거니.

삶을 너무 믿지 마라.

세상은 끝간 데 없는 계단이니까.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