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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5. 27. 14:21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57 리씽킹 서울

 

김경민 박재민 지음

2013, 서해문집

 

 

대야도서관

SB093383

 

539.7091 16

김14ㄹ

 

Rethinking Seoul

 

도시, 과거에서 미래를 보다

 

서울에 남아 있는

오래된 가능성의 공간을 탐색하다

 

작은 개발, 착한 개발, 공정한 개발은 가능하다!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익선동 한옥집단지구

 

한강의 기적을 탄생시킨 근대 역사자원

가리봉동 쪽방촌

 

근대적 생산양식이 남아 있는 동대문패션타운 옆

창신동 봉제공장

 

대규모 철거 후 재개발의 시대는 저물었다!

전작 《도시개발, 길을 잃다를 통해

용산국제업무지구 실패를 예측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김경민의지역 커뮤니티 보존과 활성화의 균형전략

 

지 | 은 | 이

 

김경민

하버드대학교에서 도시계획/부동산 분야로 박사학위 취득 후 2009년부터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도시계획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1년 《도시계발, 길을 잃다》라는 책을 통해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주 연구 분야는 오피스와 쇼핑몰 등 상업용 부동산시장 분석과 어반 컴퓨팅(Urban Computing)이나, 현재 사회적 기업과 공유가치 활성화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비영리 커뮤니티 개발회사가 지역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지인들과 어반 하이브리드(Urban Hybrid)라는 소셜벤처를 설립했고, 현재는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창신동에 애착을 갖게 되어 지역 기반 커뮤니티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박재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장소기억으로 해석한 근대 산업경관>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지역주민의 집단 기억을 바탕으로 주민 관점의 경관 해석을 시도하였다. 근대 도시경관, 특히 산업유산의 개념과 역사적 가치, 시각화 등 다양한 연구를 수행 중이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후 2002~2005년 영등포 쪽방촌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지역민과의 공생과 기억의 보전, 문화예술 공간 활용 등을 고민하고 있다.

 

Contents

 

프롤로그

서울의 잊힌 가능성의 장소들

 

제1장

서론 - 왜 디벨로퍼인가?

 

제2장

종로 익선동 한옥집단지구

 

제3장

구로공단 가리봉동 쪽방촌

 

제4장

동대문 창신동 봉제공장

 

제5장

보론 - 신텐디에서 티엔즈팡까지

 

에필로그

개발과 보존의 균형 그리고 전략

 

감사의 글

참고문헌

프루이트 아이고는 커다란 찬사를 받으며 탄생했다(United States Geological Survey 자료)

 

우리는 우리 도시의 중심부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새롭게 건설해야 합니다. 각종 병리현상들을 동반한 슬럼지역은 우리 모두의 잘못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슬럼지역 같은) 병리현상을 치유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 조세프 다스트 세인트루이스 시장(민주당), 1951년

프루이트 아이고의 폭파 장면(U.S. Dept of Housing and Urban Development 자료)

르코르뷔지에는 파리 중심지역을 고층 건물들로 가득 채울 계획을 구상하였다.

익선동 166번지 바로 앞 종로3가역 주변

지도로 본 서울시 종로구 익선동 위치

커뮤니티가 살아 숨 쉬는 익선동 풍경

 

"근래의 경향은 일반이 개량식을 요구하는 모양입니다마는, 개량이라면 별 것이 아니라, 종래 협착하던 정원을 좀 더 넓게 하여 양기가 바로 투입하고, 공기가 잘 유통하여, 한열건습의 관계 등을 잘 조절함에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외관도 미술적인 동시에 사용상으로도 견확하고, 활동에 편리하며, 건축비, 유지비와 생활비 등의 절약에 유의함이 본사의 사명인가 합니다. 재래식의 행랑방, 장독대, 창고의 위치 등을 특별히 개량하여 왔고, 또 한편으로 중류 이하의 주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년부, 월부의 판매제도까지 강구하여 주택난에 대해서는 다소의 공급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정세권

 

이 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의 주택난에 대해 우리 회사는 중산층 이하 서민을 위한 주택이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주거 수준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당시 서민들은 초가집에서 거주했을 뿐이다.) 서민들도 업그레이드된 주거환경인 새로운 스타일의 개량된 한옥에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퓨전 한옥에는 상류층 한옥이 갖고 잇는 특징의 하나인 정원, 물론 상대적으로 매우 작은 규모의 정원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민 주택은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갖추기 위해서는 100% 전통적인 양식의 고전 주택이기보다는 개량형 주택이 더 적합할 듯합니다. 또한 우리는 그 주택을 분양하지만, 입주 시점에 주택대금을 모두 받지 않고, 다양한 금융기법을 이용하여 연 또는 월 단위로 분양금을 받고 있습니다."

 

"나는 그(정세권)의 소유인 가회동 가옥을 전세로 빌어서 3, 4개월 살았지만, 그가 어떠한 인물인 줄을 잘 몰랐다. 다만 가끔 그가 토목 두루마기를 입고 의복도 모두 조선산으로 지어 입고 다니는 것과 머리를 바짝 깎고, 좀 검고 뚱뚱한 영남 사투리를 쓰고 말이 적은 사람인 것만 보았었다. (중략) 조선물산장려를 몸소 실행할 뿐더러 장산사라는 조선물산을 판매하는 상점을 탑골공원 뒤에 두고 조선산 의복과 양복을 장려하고 《실생활(實生活)》이라는 잡지를 발행하여 조선물산장려를 선전하는 인물인 줄을 알았다. (중략) 조선식 가옥의 개량을 위하야 항상 연구하여 이익보다는 이 점에 더 힘을 쓰는 희한한 사람인 줄도 알았다. (중략) 기타 설계 변소, 마루, 토역재료(土役材料) 등 내가 안 것만 하여도 정씨의 개량한 점이 실로 적지 아니하다. 미닫이 밑에 굳은 목재를 붙이는 것도 아마 씨(氏)의 창의(創意)라고 믿는다. (중략) 나는 더욱 정씨의 인격을 존경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중략) 한 사람의 인격의 힘이 이처럼 영향이 큰가를 느꼈다. 이것도 내 집 성조에서 얻은 큰 소득 중에 하나다."

- 이광수

1946년 조선어학회 동지회 사진. 앞줄 왼쪽 2번째가 정세권이다.

새로운 피맛길 풍경

 

"한국이 (생각하는)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한 최상의 방법은 피맛골과 같은 역사적인 랜드마크를 파괴하고 서구에서도 볼 수 있는 똑같은 모양의 영혼 없는 현대적인 고층 건물들을 세우는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적 랜드마크를 부수고 현대적 고층건물을 세우는 것이) 외국 관광객들을 떼를 지어 불러들이는 확실한 방법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 스콧 버거슨

익선동 피맛길

 

"최근 수년 사이에 국악하시는 분들이 많이 오세요. 대략 이틀에 한 팀 정도 와요. 보통 오후 5시 넘어서 오시는데, 어떤 분들은 공연 마치고 한복을 입고 상모를 쓴 채 이곳에 오세요. TV에 나오는 유명한 분들도 오십니다."

- 익선동 피맛골 ○○식당 주인 인터뷰, 2013년 4월 23일

연한 선은 과거 피맛길이 존재했던 곳이고 짙은 선이 익선동 166번지의 피맛길이다.

고려와 조선시대 골목길

익선동을 중심으로 본 주변 지역

종묘 옆으로 이어진 순라길

정비된 순라길에서는 옛 모습을 찾기 힘들다.

 

"예전에 순라길 주변에는 한옥들이 엄청 많았어요. 그리고 순라길은 지금과 달리 좁디좁은 골목이었죠. 아이들은 밤에는 무서워서 못 갔어요. 망태할아버지가 잡아간다고."

- 과거 순라길 인근 한옥 거주자 인터뷰, 2013년 5월 10일

철거 중인 오진암 ⓒ 연합뉴스

오진암의 지붕기와가 뜯긴 모습 ⓒ 연합뉴스

익선동 한옥지구에서 바라본 비즈니스호텔

 

"지역주민 입장에서 오진암 내부를 가볼 일은 없었죠. 기생관광하던 곳을 서민들이 어떻게 가보겠어요? 하지만 제가 사는 집에서 오진암을 내려다보면 오진암에 있었던 매화나무들이 정말 멋있었어요. 그리고 오진암 담벼락의 매화가 너무도 탐스럽게 열렸고 향도 좋았어요. 오진암 지붕 기와가 하나하나 뜯겨나갈 때 마음이 아팠습니다."

- 익선동 주민 인터뷰, 2013년 5월 10일

오진암 자리에 들어선 짙은 회색의 비즈니스호텔

 

"저 호텔 벽돌이 진짜 비싼 거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도대체 주변하고 어울리지 않아요. 주민들은 벽돌 색깔에 불만이 많아요."

- 익선동 소재 ○○카페 사장 인터뷰, 2013년 4월 20일

기존의 커뮤니티에 다양한 문화예술 기능이 융합된 티엔즈팡

지역 커뮤니티의 삶이 잘 보존된 티엔즈팡

 

"서울시가 지난 1985년부터 2년여에 걸쳐 마련한 도시설계안 …… 장기적으로 낙원상가아파트를 철거하고 낙원상가와 파고다공원 사이의 환경불량지구를 재개발사업지구로 추가 지정하는 한편, 낙원상가 서쪽의 재개발구역은 주차 및 상업복합용도건물로 사업계획을 변경……"

- 1987년 《매일경제》 기사

아름다운 부조물이 새겨진 낙원상가, 낙원빌딩 ⓒ 서자민

당시 서울시가 제시한 청사진

 

"그때 서울시에서 이 청사진을 보여주면서, 근대적인 건축물인 낙원상가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고, 그래서 이 청사진 보고 상가 주민들이 대부분 긍정적인 방향으로 입장을 바꿨지. 그러고 나서 잘되는가 싶었는데, 서울시가 토지를 기부 체납하라고 하는 거야. 시장 사람들이 토지 기부 체납은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지. 우리나라 사람한테 토지는 의미가 다르잖아? 그래서 그때 서울시가 양보해서 토지의 기부 체납은 하지 않고, 대신 1층 도로는 서울시가 무상으로 사용하는 방향으로 조정한 거야."

- 낙원상가 주식회사 대표이사 ○○○ 인터뷰, 2013년 4월 23일

낙원상가 지하 재래시장 풍경

 

"최근에는 중국, 일본 관광객들이 단체로 낙원상가 지하 재래시장에 자주 와요. 사실 우리가게에서는 우리 농산물과 외국 것 모두를 취급합니다. 하지만 저도 그렇고 외국손님들도 오면 우리 콩과 고추 등을 사갑니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적인 것을 맛보고 싶겠죠."

- 낙원상가 재래시장 상인 인터뷰, 2013년 4월 30일

 

"또 하나의 문화가 사라진다. 50년대 중반부터 종로2, 3가에 하나둘 생겨난 악기점들이 거대한 상가를 이루어 우리 음악문화의 막강함을 세계에 과시했는데, (낙원상가가) 사라진다니 안타깝다."

- 가수 신중현 인터뷰

 

"교동초등학교 주변 지역주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파트는 낙원아파트와 운현아파트에요. 특히 낙원아파트는 방음도 잘 되고, 층간소음도 별로 없고, 잘 지어진 아파트에요."

- 낙원상가 재래시장 상인 인터뷰

북쪽에서 바라본 15층 낙원상가와 24층 프레이져 스위츠 호텔

낙원빌딩 5층에서 북쪽을 바라본 풍경(왼쪽)과 매우 넓은 5층 발코니(오른쪽)

왼쪽의 큰 건물이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왼쪽), 특이하게도 호텔 꼭대기층에 수영장이 있다.(오른쪽)

 

"지금이야 북촌이 세련되어 보이지, 2000년대 초 이전(북촌이 정비되기 전)에는 북촌 한옥이나 여기 익선동이나 한옥 보존 상태에 별 차이가 없었어요. 오히려 지하철 접근성이 좋다고 익선동 한옥이 더 비쌌습니다."

- 익선동 소재 ○○부동산 대표 인터뷰, 2012년 11월 12일

2000년 당시 북촌의 모습(서울시 홈페이지 자료)

익선동 인근의 한복집과 전통 공방, 국악인 사무실

익선동 소재 전통찻집 뜰안의 내부 모습

 

"어느 날 일본인 기자가 와서 한참 앉아 있다가 갔어요. 그리고 얼마 후, 일본 영화관계자가 찾아와서 영화 촬영장소로 쓰게 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한 달에 걸쳐서 영화를 찍었고, 이후부터 영화 때문에 일본인 여성들이 자주 찾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단골이 되어 찾아오고 있고, 지금은 중국인 관광객들도 오고 잇어요."

- 익선동 소재 전통찻집 '뜰안' 대표 인터뷰, 2012년 10월 20일

부결된 2010년 10월 익선동 도시환경정비계획 조감도(서울특별시 종로구 의회 제203회 제2차 본회의 <익선도시환경정비구역 변경지정 안에 관한 의견 청취 심사 보고서> 자료)

 

"저는 익선동내 비교적 큰 한옥에 오래 살았습니다. 부모님 세대부터 결혼해서 중학생 자식을 둔 현재까지 살고 있으니까요. 재개발이 될 거라는 소문이 있었던 십수 년 전에는 저도 사실 재개발에 찬성했어요. 그리고 재개발이 곧 된다고 하기에 집수리도 제대로 안 했죠. 지붕 고치는 데 천만 원이 들어가는데, 재개발이 곧 된다면 할 필요가 없죠. 하지만 그게 벌써 20년이 됩니다. 서울시가 재개발한다고 지역 묶어놓은 뒤에 지역이 완전히 쇠퇴했어요. 20년 전에는 익선동 한옥의 상태가 북촌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농담으로 북촌 한옥은 할머니 떡볶이 살 돈 아끼면 살 수 있다고 할 정도였어요."

- 익선동 주민 인터뷰, 2013년 5월 10일

 

"재개발로 한 20년이 흐르면서 뉴타운 개발의 잘못된 점도 뉴스로 알게 되고, 재개발 찬성이었다가 중립이나 반대로 돌아선 분들도 있어요. 저도 그렇고요. 제가 원하는 것은 한옥을 보존할 수 있는 충분한 지원이 존재하고, 미래의 익선동이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면 한옥에서 살고 싶어요. 한옥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보여요."

- 익선동 주민 인터뷰, 2013년 5월 10일

보스턴 자유의 길

미국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던 보스턴의 옛 주의사당(왼쪽)과 보스턴 자유의 길을 나타내는 길 위의 표식(오른쪽)

미래에 원형을 다시 복원한다는 가정 아래 3 ·1 독립의 길의 주요 동선

첨단 오피스 건물과 쇼핑몰이 들어선 구로공단의 현재

2013년 현재 구로구 아파트단지 현황(왼쪽)과 1970년대 공장 위치(오른쪽)

신도림과 목동의 아파트 가격 변화(부동산114 REPS 자료)

구로공단의 고용자와 업체 수 변화

2000~07년에 구로단지로 이주해온 벤처 인증업체의 이동경로(<구로공단 부활의 의미>, 《CEO Information》 제608호)

서울 시내 디자이너는 공간적으로 강남과 장안동, 구로지역에 몰려 있다.(왼쪽) 서울 시내 패션 생산인력(미싱사)은 동대문 주변, 장안동, 구로지역에 몰려 있다.(오른쪽)

옛 구로공단 지역에 남아 있는 1970년대 건축물

아울렛이 있는 가산동 거리 사이의 낡은 건물

가산동 까르뜨니트 물류센터

뒤스부르크노드 파크 거리(왼쪽)와 뒤스부르크노드 파크 전경(오른쪽)

졸퍼라인 탄광 지역 전경(왼쪽)과 깨진 유리창을 그대로 남겨둔 졸퍼라인의 공장(오른쪽)

삼우창고 전경(위)과 2011년 12월 삼우창고 철거 당시 모습(아래)

삼우창고 부지의 위치(왼쪽)와 삼우창고 부지에 들어설 건물 조감도(해안건축 홈페이지 자료)

2013년 초 대림창고에서 열렸던 BMW의 신차발표회 모습(BMW KOREA 자료)

오피스 건물로 둘러싸인 공원 전경(왼쪽)과 공원 바로 옆에 위치한 도서관(오른쪽)

간단한 미팅과 모임을 위한 공간(위)과 공원 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아래)

도요타 산업기술기념관 내부(왼쪽)와 도요타 산업기술기념관 전경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싶다."

- 카페 사장 인터뷰

창고를 재활용해 만든 카페

카페 내부 풍경

과거 공장이었던 곳을 사무실로 사용하는 Forever21

뉴욕 미트패킹 지구 전경 ⓒ 박호근

과거 기라델리 초콜릿 공장의 원형을 보존한 채, 내부에 레스토랑과 가게를 입점시킨 샌프란시스코의 기라델리 스퀘어

 

"저는 다운타운 (쇼핑시설) 개발에 한 푼도 투자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운타운은 너무나) 후져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황폐화된) 다운타운에 왜 오겠습니까? 사람들은 무질서한 지역, 그리고 위험한 지역에 가기 싫어합니다."

- 1970년대 당시 가장 성공적인 쇼핑몰 디벨로퍼였던 에드워드 드발토로 인터뷰, <Downtown, Inc>에서 재인용

문래동 창작예술촌 풍경

조선영단주택 위치

2012년 발표된 구로구 문래동 정비구역(안)

쪽방의 내부 구조

벌집의 1층과 2층 구조

벌집의 지하. 통로를 사이에 두고 '외딴 방'이 10여 채 있다.

쪽방을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부엌(왼쪽)과 건물 밖에 있는 공용 화장실(오른쪽)

벌집과 비슷한 형태의 19세기 맨체스터 주택 단면

가리봉동 소재 벌집의 1층 단면 구조

영국의회에 제출된 1842년 광산 및 제조업조사위원회 공식보고서의 삽화. 여자아이가 광산에서 석탄통을 끌고 있다.

 

"서울 구로공단 주변에는 '닭장'이라는 이름의 공원들 월세 자취방이 있다. 아마도 그들 스스로가 지어낸 자학적인 이름일 성싶다. 한두 평짜리 비좁은 방을 대개 6~8명이 공동으로 세를 얻은 다음 서로 번갈아가며 숙소로 이용한다고 한다. 24시간 쉬지 않고 가동하는 수출공단의 공장들은 흔히 3교대 근무로 공원들이 일을 하기 때문에, 가령 1조와 3조가 각각 4명씩 조를 짜면 근무조가 아닌 4명이 그들이 말하는 닭장에서 잠을 잘 수 있다.

이들은 닭장에서의 잠을 또 '칼잠'이라는 색다른 말로 부른다. 방이 너무 좁아 두 사람씩 머리의 방향을 반대로 한 채 다리를 서로 포개고 누워야 한대서 생긴 이름인 모양이다."

- <직업병에 우는 근로자들>, 1984년 2월 6일, 《동아일보》

 

"나는 그 뒤 89년 2월 가리봉동에 이른바 '닭장집'이라는 월셋방을 마련해 '지옥' 같던 기숙사에서 해방됐다. 나는 '14호'라는 호칭으로 통했다. 내 방은 가로 180cm 세로 200cm인데, 책상과 비키니 옷장을 들여놓으니 세로가 140cm로 줄어 대각선으로 누워 자야 했다……. 아침에는 한 칸밖에 없는 화장실 앞에 남녀 구분도 없이 길게 줄을 선다. 대문을 들어서면 '현금과 귀중품은 집에 두지 마시오'라는 글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 <르포 호화빌라촌 원인 규명 미흡, 닭장 전전하는 노동자 삶 서글퍼>, 1991년 7월 20일, 《한겨레》

 

"형과 함께 벌집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이군은 '세든 지 2개월이 넘었지만 옆방에 누가 사는지 모른다'며 '처음 상경했을 때 가끔 만나던 고향친구들도 이제는 거의 만나지 못하고 있으며 고작 직장동료 3~4명과 어울리고 있다'고 말했다. …… 이군은 야근을 마치고 오전에 집에 돌아와 연탄불이 꺼진 것을 발견한 경우가 많으나 이웃 방에서 탄불을 얻으려 해도 모두 문이 굳게 잠겨 있어 …… 이웃 없는 이웃을 이루며 살고 있다. 집주인은 보증금 낼 때 한 번 보고 본 적이 없어 탄불을 빌러 갈 생각조차 않는다며 이때는 도대체 사람들이 함께 산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고 때로는 두렵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이군은 말했다. ……

지난 76년 여관을 팔아 가리봉동의 방 30개짜리 벌집을 구입, 운영하고 있는 박모씨는 '세든 사람의 얼굴조차 모른다'며 '매달 각 호실 별로 방세와 전기료 수도료만 받고 있을 뿐 다른 관계는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처음에는 각 방마다 연탄불을 봐주는 등 세든 공원들에게 신경을 썼으나 금방 떠나 버리는 경우가 많고 나중에는 일일이 세든 사람을 알고 지내는 것이 오히려 귀찮을 때가 많아 요즈음은 말도 않고 지낸다는 것……."

- <공단 주변 단칸방 벌집>, 1987년 1월 8일, 《동아일보》

 

가리봉동 시장 내 조선족 가게

가리봉동을 철거하고 아파트 복합단지로 건설하려는 카이브시티 조감도 (2011년 구로구 구정화보집 자료)

오피스 건물의 주차벽으로 격리된 쪽방촌(왼쪽)과 오피스 건물 주변의 쪽방 건물(오른쪽)

요코하마 호스텔 빌리지 사무실 외부와 내부 모습

공유공간을 활용한 쉐어하우스 전략을 기초로 한 요코하마 호스텔

장소성 기억 : 불과 15년 안팎의 역사를 지닌 성수동 수제화 공장지대에 위치한 옥상의 조형물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