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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25. 15:55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34 간송미술 36 회화


글 ● 백인산

2014, 컬처그라퍼



대야도서관

SB102157


653.11

백68ㄱ


우리 문화와 역사를 담은 옛 그림의 아름다움


세상 밖으로 나온 간송미술관

백인산이 읽어 주는 우리 옛 그림 베스트 36


간송미술관의 주옥같은 옛 그림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24년 동안 우리 미술 연구에 매진해 온 간송미술관 백인산 연구실장은, 독자들이 그림을 통해 우리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읽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36폭의 옛 그림을 정성껏 골라냈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그림들에 얽힌 이야기와 깊이 있는 해설이 돋보이는 이 책은, 옛 그림을 제대로 일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최고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이 그림들은 우리 문화와 역사의 우수성과 독창성, 나아가서는 보편성까지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백인산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간송미술관에서 우리 미술과 문화에 대한 안목을 길러 왔고, 조선시대 회화를 중심으로 우리 문화와 미술에 대한 강연과 글쓰기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 현재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으로 있으면서 서울여대, 동국대, 이화여대 등에서 한국과 동양의 미술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조선의 묵죽』, 『선비의 향기 그림으로 만나다』, 『추사와 그의 시대』(공저), 『진경문화』(공저)가 있고,  「탄은 이정」, 「조선 중기 수묵문인화 연구」, 「조선 왕조 도석화」, 「삼청첩의 역사성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차례


     편집자와의 대담

     간송미술의 가치와 의미를 밝히다


01 신사임당 | 포도

    우리가 아는 사임당의 이름에 가장 가까운 그림


02 이정 | 고죽

    시련을 의지로 극복하고 탄생시킨 일세의 보물


03 이정 | 풍죽

    세찬 바람에도굴하지 않는 선비의 절개


04 이정 | 문월도

    은은한 달밤을 더욱 밝히는 맑은 정신


05 이징 | 고사한거, 강산청원

    왕실과 사대부가 사랑한 궁중회화의 품격


06 조속 | 고매서작

    세속의 명리를 버린 자유인의 자화상


07 김명국 | 수로예구

    최소한의 획으로 끌어낸 마음속 선심


08 이명옥 | 어초문답

    세상 이치를 논하는 현자들의 꾸밈없는 대화


09 윤두서 | 심산지록

    현세구복적 상징 속에 숨겨진 애달픈 현실 인식


10 정선 | 청풍계

    진경문화를 주도한 선비들의 자취가 스민 맑은 계곡


11 정선 | 목멱조돈

    시와 그림으로 화답한 평생지기의 우정


12 정선 | 단발령망금강

    30년간 그리고 또 그린 금강산의 아름다움


13 정선 | 풍악내산총람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겸재 진경산수의 본질


14 정선 | 서과투서

    노대가의 눈에 비친 따스한 일상


15 변상벽 | 자웅장추

    동물 그림에서 이루어 낸 또 하나의 전경


16 유덕장 | 설죽

    천재의 그늘에서 마침내 벗어난 노력가의 성취


17 조영석 | 현이도

    조선 후기 풍속화의 본격적인 시작


18 심사정 | 와룡암소집도

    세상이 버린 불우한 화가의 화흥


19 심사정 | 삼일포

    관념산수에 진경화풍을 더하다, 조선남종화의 탄생


20 심사정 | 촉잔도권

    화가의 인생을 닮은 험하고 아름다운 길


21 이광사, 이영익 | 잉어

    입신양명으로 시작하여 효성으로 마무리된 그림


22 윤용 | 협롱채춘

    고된 인생 속에 문득 스쳐 오는 봄바람


23 강세황 | 죽석

    담백한 문인의 심의를 담은 묵죽화의 새로운 경지


24 강세황 | 향원익

    멀어도 좋지만 가까이 봐도 맑은 연꽃 향기


25 김후신 | 대쾌도

    풍속화의 본질을 꿰뚫은 즐거운 그림


26 김홍도 | 마상청앵

    '단원다움'의 진면목


27 김홍도 | 황묘농접

    교감의 순간을 포착하는 섬세하고 따스한 필치


28 김홍도 | 염불서승

    삶과 예술, 예술과 종교의 혼연일체


29 김득신 | 야묘도추

    나른한 일상의 정적을 깨뜨리는 한바탕 소동


30 신윤복 | 미인도

    화가의 가슴속 가득한 봄기운을 풀어내다


31 신윤복 | 이부탐춘

    혜원이기에 가능했던 파격


32 김정희 | 고사소요

    단순함과 평범함 속에 감춰 둔 비범함


33 김정희 | 적설만산

    추사의 글씨를 닮은 강인한 묵란


34 조희룡 | 매화서옥

    매화 사랑으로 표현한 격정적이고 자유로운 정신


35 장승업 | 삼인문년

    천재가 살던 시대를 아쉬워하다


36 민영익 | 석죽

    조선 최후의 문인화가가 남긴 비바람 속 대나무


"이 책에 실린 36편의 그림은

조선시대의 문화와 예술,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이야기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그림들입니다."


01 신사임당

포도


申師任堂, 1504-1551

葡萄

비단에 수묵

31.5×21.7cm

간송미술관


자당께서는 묵적墨迹이 남다르셨다. 7세 때부터 안견이 그린 것을 모방하여 드디어 산수도를 그리셨는데 지극히 신묘했다. 또 포도를 그리셨다. 모두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것들로, 그리신 병풍과 족자가 세상에 널리 전해진다.

- 율곡이 사임당의 행장(行狀, 죽은 사람이 평생 살아온 일을 적은 글)에서 쓴 글


이 그림은 돌아간 증찬성 이 공李公, 이원수의 부인 신 씨가 그렸다. 사람의 손으로 그렸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자연스러워 사람의 힘으로는 범할 수 없는 것이다. 오행의 정수를 얻고 원기의 융화를 모아 이로써 참다운 조화를 이루셨다. 마땅히 그가 율곡 선생을 낳으실 만하다.

-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사임당의 초충도를 보고 쓴 글

신사임당, <훤원석죽>

(萱苑石竹 : 원추리꽃과 패랭이꽃)

종이에 채색

41.0×25.7cm

간송미술관


꽃밭에 원추리꽃, 패랭이꽃, 개미취꽃이 어울려 피었다. 꽃향기를 좇아 흰 나비 두 마리가 하늘하늘 날아들고, 땅에는 도마뱀이 몸을 틀어 먹잇감을 찾고 있다. 안정된 구도와 섬세하고 온화한 표현, 소박하지만 정갈한 채색에서 규방의 미감이 묻어난다. 그래서인지 이와 유사한 초충도 다수가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전해 내려온다.


임자 윤달 15일에 월성 김광국이 손을 씻고 삼가 배관한다.

壬子潤月之望, 月城金光國盥手敬觀.


우계와 율곡이 함께 유림을 머뭇거리게 했었는데,

청송의 글씨와 신 부인의 그림도 모두 세상에 이름을 날린 빼어난

재주였으니 이 또한 한 가지 기이한 일이다.

牛栗竝跱儒林, 而聽松書, 申夫人畵, 又皆名世絶藝, 亦一奇也.

- 영조시대 문인 동계東溪 조구명趙龜命, 1693-1737이 쓴 제사


줄기가 수척한 것은 청렴함이요, 마디가 굳센 것은 강직함이요, 가지가 약한 것은 겸손함이요, 잎이 많아 그늘을 이루는 것은 어진 것이요, 덩굴이 벋더라도 의지하지 않는 것은 화목함이요, 열매가 과실로 적당하여 술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재주요, 맛이 달고 평담하며 독이 없고, 약재에 들어가 힘을 얻게 하는 것은 쓰임새요, 때에 따라 굽히고 펴는 것은 도이다. 그 덕이 이처럼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으니, 마땅히 국화, 난 매화, 대나무와 더불어 선두를 다툴 만하다.

- 명나라 명필가, 화가 악정岳正, 1418-1472


02 이정

고죽


李霆, 1554-1626

枯竹 : 마른 대나무

검은 비단에 금니

25.5×39.3cm

간송미술관


전란 겪고 삼 년 만에 이렇게 모이니,

그래도 화첩 한 권 증표로 남겨 두셨구려.

부러질 뻔한 그대의 팔뚝 조물주가 보호해 준 덕에,

남은 생애 나의 눈동자도 흐리지 않게 되었소.

- 간이簡易 최립崔岦, 1539-1612


이 첩 하나가 잿더미 속에 떨어져 장갑粧甲에 불길이 미치고, 안쪽 면까지 번져 석봉의 서첩을 반쯤 태우고 돌아 나가더니, 석양의 대나무에 이르러 저절로 불이 꺼져 하나도 상하지 않았다. 이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늘이 단련시키고, 귀신이 보호하는 선물이라 훼손되지 않은 것이니, 아! 경탄할 만한 일이로다.

- 해숭위海崇尉 윤신지尹新之, 1582-1657

앙상하고 가는 가지 위에 짧은 댓잎이 성글게 매달려 있다. 겨울을 견디기 위해 무성한 잎을 떨궈 낸 마른 대나무이다. 하지만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지와 굳센 댓잎에는 부드러운 듯 강인한 대나무의 특성과 상징성이 잘 드러나 있다.


만력갑오이월십이일탄은사우공산만사음촌우

萬曆甲午二月十二日灘隱寫于公山萬舍陰村寓


03 이정

풍죽


李霆, 1554-1626

風竹 : 바람에 맞선 대나무

비단에 수묵

127.5×71.5cm

간송미술관

짙은 먹으로 댓잎을 반복하여 겹쳐 놓았지만 미묘한 농담과 필력의 변화로 전혀 답답하거나 탁하지 않다. 오히려 굳세고 상쾌하며 거센 바람에 댓잎이 부딪하며 내는 소리가 들릴 듯하다. 댓잎 한 획 한 획에서 올곧고 당당한 조선 선비의 정신과 숨결이 느껴진다.


04 이정

문월도


李霆, 1554-1626

問月圖 : 달에게 붇다

종이에 담채

24.0×16.0cm

간송미술관


탄은의 매화와 대나무, 난 그림은 곳곳에 있으나 산수와 인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이제 그가 그린 망월도를 얻었는데, 주로 대를 치는 필법으로 간략하게 묘사해 지극히 거칠고 성긴 운치가 있다. 예전에 예찬은 대나무 그림에 스스로 글을 지어 말하기를, '내 가슴속 일기를 그렸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탄은의 뜻 또한 이와 비슷한가.

灘隱梅竹難蕙在在有之, 至於山水人物, 余未賞見之, 今得其所作望月圖, 盖以寫竹之筆法, 草草爲之, 極有疎散之韻, 昔荊蠻民自題其竹曰, 聊以 寫吾胸中之逸, 灘隱之意, 其亦類是耶.

- 金光國

손을 들어 달을 가리키는 고사의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번져 온다. 세상 밖의 이치를 깨달은 희열일 것이다. 험난한 시대를 헤쳐 가며 묵죽으로 일세를 올렸던 탄은의 마음속에는 이처럼 어린 아이와 같은 천진함이 가득했나 보다.


탄은의 묵죽도를 몹시 좋아하여 기회 있는 대로 보러 다니기도 하고 또 많은 묵죽도를 수집했는데, 탄은의 좋은 작품을 대할 때마다 "이분이 대를 이다지도 잘 그렸으니 산수화나 인물화 같은 그림도 잘 그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었다. 그러나 탄은의 산수화나 인물화는 보았다는 이야기조차 들어 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6, 7년 전 우연히 어느 골동상에서 진귀한 화첩 한 권을 입수했는데 그 속에서 탄은의 인물도 한 폭을 발견했으니 그때에 기쁘던 생각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 간송 전형필, 『고고미술』(1961년) 「탄은필灘隱筆 문월도問月圖」


05 이징

고사한거

강산청원

(쌍폭)


李澄, 1581-?

高士閑居 : 고사의 한가로운 삶

江山淸遠 : 강과 산이 맑고 멀다

검은 비단에 금니

각 117.5×57.0cm

간송미술관

산석과 나무, 나귀와 인물을 묘사한 필치의 정교함이 경탄스럽다. 먹과 달리 운용의 제약이 큰 금물을 이렇듯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화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징을 '나라의 손'이라 부른 까닭을 알 만하다.


06 조속

고매서작


趙涑, 1595-1668

古梅瑞鵲 : 늙은 매화에 앉은 까치

종이에 수묵

100.0×55.5cm

간송미술관


만약 공중에 뜬 솔개나 매처럼 하늘에 있어 본다면 다 알 수 있겠지만, 짚신 신고 지팡이 짚고 찾아 나서 그 봉우리와 골짜기를 돌아본 후 반드시 앉은 곳에 따라 화폭을 달리해야 본 바를 그려 낼 수 있을 터인데, 장차 이 그림을 어디에 쓰겠는가.


몇 번의 붓질로 까치의 자태와 의취를 정확하게 옮겨냈다. 야무지게 다문 입과 똘망한 눈동자에서 당당함과 고고함이 느껴진다. 군자로 불리는 매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명리를 초탈하여 지유인으로 살았던 조속의 삶과 정신을 보는 듯하다.


"창강은 공훈을 사양하고 절조로 일관하여,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심복하고 흠모했다. 지금 그 먹의 오묘함을 보니, 맑은 기운이 그 사람을 닮아 감탄스럽다."

- 조선 후기 문인, 이봉환李鳳煥, 1710-1770


07 김명국

수로예구


金明國, 1600-?

壽老曳龜 : 수노인이 거북이를 끌다

종이에 담채

173.0×94.0cm

간송미술관

처진 눈매와 주먹코가 맘씨 넉넉한 촌가의 노인을 떠올리게 한다. 초인적인 권위와 신성을 강조하여 괴기스럽게 과장 표현한 중국의 수노인과는 확연히 다르다. 어쩌면 김명국의 생김새와 성정이 이처럼 소탈하고 푸근했을지도 모르겠다.

시원스럽게 휘갈겨 쓴 '연담'이란 호 아래 거북이 한 마리를 그려 무병장수를 바라는 마음을 한층 강조했다. 두어 개의 점과 몇 가닥의 선뿐이지만 거북이의 형상은 충분히 드러났다. 감필법의 달인이었던 김명국이 아니라면 흉내 내기 어려운 필치와 감각이다.


08 이명욱

어초문답


李明郁, 1640-1713 이전

漁樵問答 : 어부와 나무꾼이 묻고 답하다

종이에 담채

173.0×94.0cm

간송미술관


어부가 나무꾼에게 말하기를 너는 천지만물을 보는 도를 아느냐?

나무꾼이 아직 모른다고 하고 그 방도를 듣기를 원하였다.

어부가 말하기를 무릇 세상의 물상을 보는 것은……

간결한 필치의 의복 묘사와 달리 초상화 기법으로 정교하게 그려 낸 얼굴 표현이 특이하다. 속진을 멀리하고 어부와 나무꾼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현자들의 삶과 성정을 옷과 얼굴의 대비를 통해 암시적으로 표출했다.


이명욱이 그림 그리는 재주가 정묘했으니 맹영광 뒤에 제일가는 사람이다. 근세에 이징이 비록 명화가로 칭해지지만 신묘하지는 못했다. 수년 전에 '이명욱'세 자와 '속허주필의續虛舟筆意' 다섯 자를 가지고 두 개의 인장을 새겨서 특별히 이명욱에게 하사하여 모사한 그림 밑에 찍게 하였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이명욱 같은 신묘한 솜씨로 이징과 견주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 것 같아 '속악치필의續樂癡筆意' 다섯 자로 고쳐서 새로 주려 했으나 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가 죽은 지 벌써 오래되었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 숙종


09 윤두서

심산지록


尹斗緖, 1668-1715

深山芝鹿 : 깊은 산속 영지와 사슴

종이에 수묵

127.0×90.5cm

간송미술관


풀은 길고 영지는 빼어나니, 깊은 산은 색다른 봄일세.

중원은 비바람 치는 밤이니, 이곳에 몸을 숨기기 좋으리. 효언

草長靈芝秀, 深山別有春, 中原風雨夜, 此地好藏身. 孝彦


감히 진나라 궁전에 들어가,

헛되이 이세二世로 망하게 했네.

오록충종五鹿充宗도 오히려 뿔이 꺾였으니,

말을 베는 명검이 상방尙方에 있었네.

학포가 추가해서 쓰다.

敢入秦宮裏, 空令二世亡,

充宗猶折角, 斬馬在尙方, 學圃追題.

자신의 심경을 한 마리 사슴에 빗대어 표현한 사의적인 그림이지만, 뿔에 난 돌기와 터럭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그려 낸 사슴의 양태는 매우 형사적이다. 사의성과 사생성이 공존했던 공제의 회화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10 정선

청풍계


鄭敾, 1676-1759

淸風溪 : 인왕산 동쪽 기슭 청운동 골짜기

비단에 담채

133.0×58.8cm

간송미술관


청풍계는 인왕산 기슭에 있는데, 그 골 안이 깊고 그윽하며 경관이 아늑하고 아름다워서 놀며 즐길 만하다. 집 안에 태고정과 늠연당이 있어 선원의 초상화를 모셨다. 후손들이 근처에 살고 있어서 세상 사람들이 창의동 김 씨라 한다. 시냇물 위 바위에 '대명일월大明日月 백세청풍百世淸風' 여덟 자가 새겨져 있다.

-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에 실린 청풍계에 관한 글

정선, <청풍계>

종이에 담채

33.7×29.5cm

간송미술관


백악산과 인왕산 사이 장동의 여덟 승경을 그린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에 들어 있는 작품. 비교적 작은 화면이라 청풍계 내의 건물들을 한편으로 몰고 주변 봉우리들로 에워싸 청풍계의 전모를 드러냈다. 세로 축으로 긴 화면을 가진 본문의 <청풍계>와는 또 다른 시각법을 적용한 화면 구성이다. 겸재는 이처럼 다양한 형식으로 청풍계를 여러 차례 그렸다. 겸재가 얼마나 자주 이곳을 드나들었으며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 만하다.

복건을 쓴 선비가 나귀에서 내려 청풍계 경내로 들어서고 있다. 겸재 자신이거나 타계한 스승 삼연의 생전 모습을 그린 듯하다. 작은 부분임에도 실감나게 표현되어 겸재가 산수 못지않게 인물에도 능숙했음을 알 수 있다.


11 정선

목멱조돈


鄭敾, 1676-1759

木覓朝暾 : 목멱산에서 아침 해가 돋아 오르다

비단에 채색

23.0×29.2cm (그림 크기)

간송미술관

정선, <시화환상간>

(詩畵換相看 : 시와 그림을 서로 바꾸어 보다)

비단에 담채

29.5×26.4cm

간송미술관

 

겸재와 사천이 석별의 정을 나누면서 '시와 그림을 서로 바꿔 보자'는 약속을 하는 장면이다. 정면으로 얼굴을 보이고 앉은 노인이 사천이고 그와 마주 앉아 있는 사람이 겸재인 듯하다. 맨상투 차림의 모습에서 격의없이 우정을 나누던 두 사람의 소탈하고 편안한 정취가 물씬 묻어난다.

 

자네와 나를 합쳐 놔야 왕망천이 될 터인데

그림 날고 시 떨어져 양쪽 모두 허둥댄다.

돌아가는 나귀 벌써 멀어졌지만 아직까지 보이니

강서에 지는 노을만 원망스레 바라본다.

-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

 

겸재 정선과 더불어 시가 가면 그림 온다는 기약이 있어,

약속대로 가고 오기를 시작하였다.

내 시와 자네 그림 서로 바꿔 봄에,

그 사이의 경중을 어찌 값으로 따지겠나.

시는 간장에서 나오고 그림은 손으로 휘두르는 것,

누가 쉽고 또 누가 어려운지 모르겠구나.

-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

 

새벽빛 한강에 떠오르니,

언덕들 낚싯배에 가린다.

아침마다 나와서 우뚝 앉으면,

첫 햇살 종남산에서 오르리라.

-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

일출의 햇살이 붉게 물든 강 위로 어부들이 고깃배를 몰고 나온다. '새벽빛 한강에 떠오르니 언덕들 낚싯배로 가린다.' 사천이 보낸 시구를 겸재는 이렇게 그림으로 바꾸어 놓았다.

 

12 정선

단발령망금강

 

鄭敾, 1676-1759

斷髮嶺望金剛 : 단발령에서 금강산을 바라보다

비단에 담채

32.2×24.4cm

간송미술관

단발령 고갯마루에서 일군의 선비들이 금강산을 바라보고 있다. 인물들의 윤곽만 간략히 그렸지만 그것만으로도 금강산의 절경에 감탄하는 모습이 절로 연상된다. 저들 중에는 삼연, 겸재, 사천이 모두 있을 것이다.

 

13 정선

풍악내산총람

 

鄭敾, 1676-1759

風岳內山總覽 : 풍악내산을 총괄해 살펴보다

비단에 채색

100.8×73.8cm

간송미술관

무성한 솔숲을 경계로 삼엄한 암봉과 부드러운 흙산이 대비를 이룬 가운데 금강산 곳곳에 자리한 명승과 암자들이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겸재는 이렇듯 절묘한 화면 구성을 통해 금강산의 기세를 담았고, 정교한 세부 묘사를 통해 금강산의 속살까지 생생하게 전해 주었다.

 

다섯 번 봉래산을 밟고 나니 다리가 피곤하여

쇠약한 몸은 금강산의 신령과 이별하려 하네.

화가의 삼매에 신령이 녹아들어 있으니

무명 버선 푸른 신 다시 신어 무엇 하겠나.

- 삼연 김창흡

 

14 정선

서과투서

 

鄭敾, 1676-1759

西瓜偸鼠 : 수박 훔치는 쥐

비단에 채색

30.5×20.8cm

간송미술관

잘 익은 수박 살을 훔쳐 먹고 있는 쥐와 밖에서 망을 봐주는 쥐들의 묘사가 정확하고 세밀하다. 자세와 눈동자를 통해 두 마리 도둑 쥐의 속내까지 읽어 낼 수 있을 정도이다. 기세 넘치는 겸재의 산수화와는 전혀 다른 우아하고 여성적인 조형미를 보여 준다.

 

15 변상벽

자웅장추

 

卞相壁, 1730- ?

雌雄將雛 : 암수탉이 병아리를 거느리다

 

머리에 벼슬을 이고 있는 것은 문文이고, 발에 발톱이 달린 것은 무武를 가짐이며, 적이 앞에 있으면 감히 싸우는 것이 용勇이며, 먹을 것을 얻으면 서로 알려 주는 것은 인仁이며, 밤을 지켜 때를 잃지 않는 것은 신信입니다. 닭은 이처럼 이 다섯 가지 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춘추시대의 전요田饒라는 사람이 노나라 애공에게 충언을 하며 닭의 덕성에 대해 한 말

종이에 채색

30.0×46.0cm

간송미술관

 

변상벽이 변고양이로 불리는 것은 고양이를 잘 그린다고 사방에 이름이 나서이다. 이젠 또 닭과 병아리를 그려 내니, 마리 마리가 털이 살아 있는 것 같다. (중략)

형형색색 세밀하여 실물과 똑같고, 도도한 기상 또한 막을 수 없다. 듣자하니 이 그림을 막 그렸을 때, 수탉이 잘못 알고 울어 댔다 한다. 그가 고양이를 그렸을 때도 쥐들이 겁을 먹었으리라. 기예의 지극함이 여기까지 이르니, 만지고 또 만져도 싫지가 않다. 되지 못한 화가들은 산수화를 그린다며 이리저리 휘두르니 거칠기만 할 뿐이다.

- 다산 정약용

작은 꿀벌 한 마리지만 병아리들을 먹일 요량에 어미 닭의 눈에는 흐뭇함과 자애로움이 넘친다. 일곱 마리의 노랑 병아리와 시골 아낙처럼 후덕한 암탉이 어우러진 장면이 정겹고 천연스럽다.

 

푸른 수탉과 누런 암탉이 일고여덟 마리 병아리를 거느렸다.

정교한 솜씨 신묘하니 옛사람도 미치지 못할 바이다.

靑雄黃雌, 將七八雛, 精工神妙, 古人所不及.

- 표암 강세황

 

흰털 검은 뼈로 홀로 무리 중에 우뚝하니, 기질은 비록 다르다 하나 5덕德이 남아 있다. 의가醫家에서 방법을 듣고 신묘한 약을 다려야겠는데, 아마 인삼과 백출과 함께해야 빼어난 공훈을 세우겠지.

白毛鳥骨탁獨超群, 氣質雖殊五德存. 聞道醫家修妙藥, 擬同蔘朮策奇勳.

- 후배 화가 마군후馬君厚, 1750경-?

큰 벼슬에 긴 꼬리를 가진 조선의 토종 수탉이다. 햇빛에 반사되어 검푸르게 보이는 두 가닥 꼬리 깃과 꽃송이를 닮은 붉은 벼슬이 탐스럽다. 목털을 부풀리고 날개 깃까지 벌려 허세를 부리니 제법 위풍당당해 보인다.

 

16 유덕장

설죽

 

柳德章, 1675-1759

雪竹 : 눈 맞은 대나무

종이에 채색

139.7×92.0cm

간송미술관

세 줄기 왕대가 바위틈을 뚫고 나와 하늘로 솟구쳐 있다. 잔가지와 잎이 거의 없는 늙고 큰 대나무가 상단이 모두 부러져 있으니 비장하리만큼 완고하게 느껴진다. 탄은 이정이 즐겨 그렸던 소재와 형식을 그대로 계승했지만, 너무 경직된 필치 때문인지 다소 평면적으로 보인다. 이런 까닭에 추사 김정희는 수운의 묵죽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탄은에게는 한 수 양보해야 된다고 했던 모양이다.

초록빛 댓잎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이 탐스럽다. 부드럽고 윤택한 필치는 자연스럽고 푸근한 느낌을 연출한다. 불굴의 기상이나 절조와는 거리가 멀지만, 이런 담담한 운치와 아취 또한 문인들의 이상이 아니던가.

 

대나무는 설죽을 그리기가 어려운데, 색을 칠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는 대개 한번 색을 입히고 나면 천연의 자취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오직 그 초록 분가루를 칠했을 뿐인데, 신령하고 시원함이 날아 넘친다.

- 혜환惠寰 이용휴李用休, 1708-1782 「수운의 착색 설죽 병풍에 제하다題岫雲着色雪竹障」

 

계유년 여름에 수운 여든 늙은이가 그리다

歲癸酉夏, 峀雲八耋翁作.

 

17 조영석

현이도

 

趙榮祏, 1686-1761

賢已圖 : 장기 놀이

비단에 채색

31.5×43.3cm

간송미술관

장기판에 모여 있는 인물들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간략한 소묘풍의 필치이지만 어색함이 없다. 인물들의 자세와 표정을 통해 장기판의 행세는 물론, 구경꾼들의 성격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성중 김광수가 유령의 팔준 □ □ □ □ 2축을 가지고 나에게 현이도를 구하므로 황정경黃庭經을 거위와 바꾼 고사로서 드디어 즐겁게 그린다.

成仲以兪㱓八駿   □ □ □ □  二軸, 求余賢已圖, 用黃庭換鵝故事,  遂樂而作  □.

- 관아재 조영석


18 심사정

와룡암소집도


沈師正, 1707-1769

臥龍庵小集圖 : 와룡암에서의 조촐한 모임


그림을 천성으로 타고난 당대의 철장哲匠으로 현명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관아재 조영석, 겸재 정선과 더불어 그 명성이 같았는데, 혹자는 초충과 먹으로 용을 그리는 솜씨는 아무도 견줄 수 없다고 한다. 조영석, 정선 두 사람이 다 늙어서 세상을 떠났으니 지금의 대가를 논하자면 이 한 사람뿐이다.

-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가 1764년영조 40년에 현재玄齋 심사정의 집을 방문하고 쓴 글

종이에 담채

28.7×42.0cm

간송미술관


갑자년1744 여름 내가 와룡암에 있는 상고자김광수를 방문하여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며 서화를 논하는데 조금 있다가 하늘이 검은 돌처럼 새까매지더니 소나기가 퍼부었다. 그때 현재가 문 밖에서 비틀거리며 들어오는데, 옷이 흠뻑 젖어서 서로 쳐다보고 깜짝 놀라 말을 못했다. 잠깐 사이에 비가 그치자 정원 가득한 경치와 색채가 마치 미가米家 미불의 집안의 수묵도와 같았다. 현재가 무릎을 안고 뚫어지게 바라보다 갑자기 기이한 소리로 외치더니 급히 종이를 찾아 심주의 화의를 빌어 <와룡암소집도>를 휘둘러 그려 냈다. 필법이 윤택하고 흥건하여 나와 상고자가 서로 보고 감탄했다. 이에 조촐한 술자리를 마련하여 아주 기쁘게 놀다가 파했다. 내가 이 그림을 가지고 돌아와 늘상 사랑하고 아꼈다.

- 김광국

편복 차림에 공수한 채 시동을 거느라고 앉은 사람이 와룡암의 주인인 김광수이고, 갓 쓰고 도포를 입은 외출복 차림의 뒷모습이 와룡암을 방문한 심사정과 김광국일 것이다. 아마도 후원 뒷문을 등지고 앉은 인물이 심사정이 아닌가 싶다.


비 온 뒤 와룡암에 있으면서 흥에 겨워 석전을 방작하다.

雨後, 在臥龍庵, 乘興, 仿石田


19 심사정

삼일포


沈師正, 1707-1769

三日浦

종이에 담채

27.0×30.5cm

간송미술관


"우리나라의 이름난 산수를 널리 구경하지 않았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다만 금강산과 대흥산성을 구경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또 "왜 그처럼 넓지 못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가까이에 있는 북한산도 미처 유람하지 못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는 대체로 기이한 데 빠져 떠난 후에 돌아올 줄을 모르는 사람이다.

- 이덕무가 1764년 가을에 심사정의 집을 방문한 뒤 쓴 글

삼일호의 명물인 사선정으로 건너가기 위해 두 명의 선비가 호숫가 둔덕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다. 선비 일행을 이곳까지 데려왔을 구종과 나귀는 제 일을 마치고 돌아가고, 사공은 상앗대를 밀어 가며 조각배를 몰고 온다.


20 심사정

촉잔도권


沈師政707-1769

蜀棧圖卷 : 촉으로 가는 험한 길

종이에 담채

58.0×818.0cm

간송미술관


21 이광사 · 이영익

잉어


李匡師, 1705-1777

李令翊, 1738-1780

鯉魚

종이에 담채

120.5×57.5cm

간송미술관


원교 선생이 잉어 그림을 그렸는데, 머리와 눈만 그리고 마치지 못했다.

20년 후에 아들 영익이 동천 종형의 별장에서 이어 그렸으니 그때가 계사년 9월이다.

員嶠先生作鯉魚圖, 寫頭眼而未竟.

後二十年, 子令翊, 續成於洞泉從兄莊中, 時癸巳九月也.

마름과 부평초 사이를 노니는 세 마리의 작은 물고기가 담박하고 기품 있게 묘사되어 있다. 이처럼 잉어와 함께 어린 물고기를 그리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젊은 시절 고생을 이겨 내고 입신양명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세 마리를 그린 것은 이광사의 세 자녀를 의식했기 때문인 듯하다.


22 윤용

협롱채춘


尹愹, 1708-1740

挾籠採春 : 나물 바구니를 끼고 봄을 캐다

종이에 담채

27.6×21.2cm

간송미술관

한 여인이 긴 호미를 들고 옆구리에 망태기를 끼고 뒤돌아 서 있다. 도회지의 맵시 있는 연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세련미는 없지만 꾸밈없는 소탈함이 정겹고 아련하다. 인물을 묘사한 필치 또한 이 여인처럼 투박하지만, 꾸밈없는 건실함이 진솔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비 젖은 싹 바람 맞은 잎 초록이 무성한데, 고운 손 검푸른 머리 한궁漢宮에서 나온다. 눈앞 가득 만물이 모두 이럴진대, 차마 그림 속에서 칠하고 바른 것으로만 보겠는가.

雨苗風葉綠董董, 纖手靑絲出漢宮, 滿眼蒼生總如此, 忍看塗抹畵圖中.

-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747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정지용鄭芝溶, 1902-1950의 「향수鄕愁」


23 강세황

죽석


姜世晃, 1713-1791

竹石 : 바위틈에 솟아난 대나무


"글은 한퇴지, 글씨는 왕희지, 그림은 고개지,

사람됨은 두목지, 광지는 이를 겸했다.

文之退之 筆之羲之 畵之愷之 人之牧之 光之兼之"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열 개의 지之자 평十之評'이라고 한다.

- 청나라의 명사가 표암豹菴 강세황의 자字가 광지光之인 것에 착안하여 중국 역대 시문서화의 대가들에 빗대어 쓴 글

종이에 수묵

30.0×44.6cm

간송미술관

강세황 <묵란>

종이에 수묵

29.8×21.0cm

간송미술관


한 포기의 난을 소박하게 베풀어 놓았는데 표암 특유의 단아하고 정중한 필치와 통활한 공간감이 돋보인다. 전체적으로 화보풍의 느낌이 없지 않지만, 유연하고 단정한 필치로 쳐나간 난엽과 난화는 탈속무구한 아취와 여유가 흘러넘친다. "우리나라에 본시 난이라는 것이 없어, 묵란에 대해서는 이름 있는 사람이 없다"며, 자신의 묵란에 대해서 은근한 자신감을 피력했던 표암의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수작이다.


내가 묵죽을 그리는 것은 얼추 알고 있으나 산수에 대해서는 본디 능하지 못하다. 창해옹이 내가 그린 대나무를 두렵게 여겨 산수만 그리게 하니, 이는 수염으로 내시를 질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성의를 뿌리치지 못하고 그림 한 권을 그려서 보내 본다. 훗날 보는 자들은 구하는 사람이 산수를 잘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억지로 시킨 잘못은 모를 터이니, 좋아할 수 없구나.

- 후배인 창해滄海 정란鄭瀾, 1725-1791의 요청에 응해 그림을 그려 주고 난 후 소감을 적은 글

"근세에 강표암은 대를 그리면서 한두 가지만 그리고 '분分'자나 '개个'자형 잎 서너 개만 해놓고 그만둔다. 이는 죽화竹畵일 뿐, 어찌 화죽畵竹이라 이를 수 있겠는가."

- 다산 정약용

 

"사람들은 세밀하고 무성한 대나무를 그리기를 바라지만, 게으르고 나약하며 눈도 어둡다. 두어 가지 대를 그리다 그마저 다 못하고, 목판에 새겨 여러 사람의 번거로운 부탁에 응한다."

- 표암 강세황

 

24 강세황

향원익청

 

姜世晃, 1713-1791

香遠益淸 :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다

 

산수화의 명가는 간혹 일컬을 만한 사람이 있으나, '살아 있는 것을 그리는 것'에 이르러서는 고요하여 들리는 바가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대체로 화원체畵院體에서 나와 공교롭게 세세하며, 수묵으로 들어가서는 필히 내달리듯 성급하다. 4백 년 동안 오직 상서尙書 강표암 만이 또렷이 드러난다.

- 자하 신위

 

 

종이에 채색

115.5×52.5cm

간송미술관

물과 땅에 있는 풀과 나무의 꽃에는 사랑할 만한 것이 대단히 많다. 진나라의 도연명은 오직 국화만을 사랑했다고 한다. 또 당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대단히 사랑한다. 나는 홀로 연꽃을 사랑한다. 연꽃은 비록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잔잔한 물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다. 속은 비어 통하고 겉은 강직하며, 넝쿨도 없고 가지도 없다.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 높이 우뚝 솟아 깨끗하게 서 있으니, 멀리서 바라볼 수 있지만 함부로 가지고 놀아서는 안된다. 나는 말한다. 국화는 꽃 가운데 은일자요, 모란은 꽃 중의 부귀자며, 연은 꽃 중의 군자이다. 아! 국화 사랑은 도연명 이후로 들은 적이 드물고, 연 사랑은 나와 같은 이가 몇이나 될까. 모란 사랑이 많은 것이 당연하리라.

- 주돈이

진초록 큰 연잎 위로 하얀 연꽃이 피어 색조의 대비를 이룬다. 꽃잎 끝에만 붉은빛이 살짝 감도는 일점홍 연꽃은 연지곤지를 찍은 여인처럼 사함과 순수함을 동시에 전해 준다. 연밭의 터줏대감인 청개구리가 그림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염계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연꽃은 멀리서 볼 수 있지만, 함부로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는데, 나는 '그림의 연꽃 또한 멀리서 보는 것이 좋다'고 하겠다.

濂溪先生謂, 蓮可遠觀, 不宜褻玩, 余則曰, 畵蓮亦宜遠觀焉, 豹菴

농도와 색조의 미묘한 변화를 주며 묘사한 연잎에서는 서양화풍의 영향이 감지된다. 여기에 숨기듯 그려 놓은 여치 한 마리는 크기는 앙증맞지만 그림의 운치를 돋우는 데 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25 김후신

대쾌도

 

金厚臣, 1735-?

大快圖 : 매우 즐거운 그림

종이에 담채

33.7×28.2cm

간송미술관

수염도 나지 않은 젊은 양반이 술이 억병으로 취해 세상을 다 가진 듯 의기양양 희희낙락하고 있다. 다른 술동무들이 취객을 밀고 잡아당기며 어르고 달래지만 쉽게 따라 줄 성 싶지가 않다. 곤혹스럽고 남감한 상황이지만 그림을 보는 우리는 그저 웃음만 나온다.

 

26 김홍도

마상청앵

 

金弘道, 1745-1806

馬上聽鶯 :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

 

인생에서 날마다 접하는 백천 가지 일과 같은 세속의 모습을 옮겨 그리기를 잘했으니 저 길거리며 나루터, 가게, 시장, 과거장, 놀이마당을 한번 그려 내면 사람들이 모두 손뼉을 치며 기이하다고 소리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세상에서 말하는 '김사능金士能의 속화俗畵'가 바로 이것이다. 진실로 신령스런 마음과 지혜로운 머리로 홀로 천고의 묘한 이치를 깨닫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 표암 강세황이 제자인 단원檀園 김홍도의 그림을 두고 한 말

 

종이에 담채

117.2×52.0cm

간송미술관

김홍도, <호귀응렵>

(豪貴鷹獵 : 호탕한 귀인의 매사냥)

종이에 담채

28.0×34.2cm

간송미술관

 

어느 겨울 고을의 원님쯤으로 보이는 중년의 귀인이 휘하를 대동하고 매사냥을 즐기는 장면이다. 말 뒤로는 집사가 따르고, 그 뒤에 늙은 주모와 동자가 술상과 안주를 지고 따른다. 사냥매는 물론 짐을 지는 짐꾼과 사냥개까지 동원된 자뭇 성대한 행차이다. 매사냥의 풍부한 이야기들과 정취를 날렵하고 정확한 필치로 잡아냈다. 원숙한 기량이 한껏 발휘된 전형적인 단원 풍속화이다.

 

고운 여인 꽃 밑에서 천 가지 소리로 생황을 부는 듯,

시인의 술동이 앞에 귤 한 쌍이 놓인 듯하다.

금빛 베틀 북이 어지러이 버드나무 물가를 오가더니,

안개와 비를 엮어 봄강을 짜내누나.

佳人花底簧千舌, 韻士樽前柑一雙.

歷亂金梭楊柳崖, 惹烟和雨織春江.

- 이인문

나귀를 타고 가던 선비가 고개를 돌려 버드나무 위에 앉아 있는 꾀꼬리를 올려본다. 말을 모는 총각도 주인의 시선을 따라 같은 곳을 바라보고, 문득 멈춰 선 나귀는 귀를 종긋 세우고 숨을 고르고 있다. 매료된 듯, 아쉬운 듯, 혹은 아련한 듯한 선비의 표정이 복잡미묘하다.

 

27 김홍도

황묘농접

 

金弘道, 1745-1806

黃猫弄蝶 : 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

종이에 채색

30.1×46.1cm

간송미술관

변상벽, <국정추묘>

(菊庭秋猫 : 국화 핀 뜰 안의 가을 고양이)

종이에 채색

29.5×22.5cm

간송미술관

 

얼룩고양이 한 마리가 잔뜩 경계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고, 먹잇감을 노려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염과 터럭을 수천 번의 붓질로 묘사하고, 눈동자의 미묘한 색조와 귓속 실핏줄, 심지어 가슴 부분의 촘촘하고 부드러운 털과 등 주변의 성글고 오롯한 털의 질감까지 정확하게 잡아냈다. 변상벽이 왜 '변고양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는지 여실히 보여 주는 걸작이다.

 

벼슬은 현감이고 단원이라 자호自號, 스스로 호를 지어 부름하며,

다른 한 가지 호는 취화사醉畵士, 그림에 취한 선비이다.

官縣監, 自號檀園, 一號醉畵士.

 

"일흔 살 여든 살이 되도록 젊음을 변치 말고 장수하시고,

모든 일이 뜻하시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28 김홍도

염불서승

 

金弘道, 1745-1806

念佛西昇 : 염불하며 서방정토로 올라가다

모시에 담채

20.8×28.7cm

간송미술관

김홍도, <노승염불>

(老僧念佛 : 노승이 염불하다)

종이에 담채

57.7×19.7cm

간송미술관

 

노승이 서쪽을 향해 합장한 채 염불을 하고 뒤에는 동자승이 육환장을 대신 들고 시립해 있다. "입으로 항하(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 외우고 또 그 모래알만큼 외운다(口誦恒河沙 復沙)"라고 쓴 제사에서 염불 공덕으로 극락왕생하려는 염원을 읽을 수 있다. 제사의 앞에는 '필유이심(必有以心)' 즉 '반드시 마음으로 함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의 글귀를 새긴 도장이 찍혀 있다. 단원 최만년기의 작품으로 죽음을 앞둔 노대가의 간절하고 신실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정갈하게 깎은 머리, 살짝 솟은 귀, 야윈 목에서 오랜 세월 구도의 길을 걸으며 정진한 노스님의 성품과 공력이 절로 느껴진다. 보름달처럼 피어난 스님의 두광에서는 남빛의 상서로운 기운이 번져 나와 하늘빛을 신비롭게 물들이고 있다.

 

29 김득신

야묘도추

 

金得臣, 1754-1822

野猫盜雛 : 들고양이 병아리를 훔치다

종이에 담채

22.4×27.0cm

간송미술관

 

긍재가 그린 풍속도는 세상에 많지 않은 작품이다. 사람들은 모두 단원의 풍속도를 첫 손가락에 꼽지만 복헌 선생의 연원에서 같이 나왔으니, 마땅히 함께 귀중한 것일 뿐이다. 위창 노부가 쓴다.

-  위창 오세창 《긍재풍속도첩兢齋風俗圖帖》

병아리를 입에 문 채 나 잡아 보란 듯이 뒤돌아보는 여유까지 부리는 고양이는 얄밉기 이를 데 없고, 어떻게든 제 새끼를 지키려고 눈에 핏발을 세우고 달려드는 어미 닭은 절박하기 짝이 없다.

마당으로 몸을 날려 도둑고양이를 후려치려는 주인장과 이런 남편이 혹여 다칠까 염려하는 아내의 자세와 표정이 매우 실감난다. 순간적인 장면을 스냅 사진 찍듯이 포착하여, 동영상의 정지 화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30 신윤복

미인도

 

申潤福, 1758경-1813이후

美人圖

비단에 채색

114.0×45.5cm

간송미술관

갸름한 얼굴에 반듯한 이마, 얄따란 눈썹과 갸름한 눈, 오똑한 코와 도톰한 입술, 흠잡을 데 없는 조선의 미인이다. 단정하게 빗은 머리 위에 얹은 트레머리가 탐스러움을 더해 주고, 목 뒤로 하늘거리는 몇 가닥 머리칼은 더없이 고혹적이다. 무심한 듯 몽환적인 표정이지만 맑고 그윽한 눈빛에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이 가득하다.

 

풀어헤친 화가의 가슴속에 봄기운 가득하니,

붓끝은 능히 만물의 초상화를 그려 낸다.

胸中萬化春, 筆端能與物傳神

 

31 신윤복

이부탐춘

 

申潤福, 1758경-1813 이후

嫠婦耽春 : 과부가 봄빛을 즐기다

종이에 담채

28.2×35.6cm

간송미술관

소복을 입은 과부의 품새와 야릇한 미소에는 농익은 춘심이 흥건하다. 옆에 앉은 과년한 처녀는 짐짓 못마땅한 표정이지만 발갛게 달아오른 볼과 과부의 치맛자락을 움켜쥔 손이 그녀의 속내를 알려 주고 있다.

신윤복, <월하정인>

(月下情人 : 달빛 아래 정든 사람)

종이에 담채

28.2×35.6cm

간송미술관

 

눈썹달이 은은하게 비추는 밤, 어느 집 담장 아래에서 남녀가 밀애를 나누고 있다. 초롱을 든 사내는 열망이 가득한 눈으로 여인을 바라보고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린 여인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고 있다. 욕망과 교태가 농밀한 남녀의 연정을 담아낸 그림이지만, 혜원 특유의 섬세한 필선과 세련된 색채가 적절히 균형을 잡으며 애틋하고 은근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32 김정희

고사소요

 

金正喜, 1786-1856

高士逍遙 : 뜻 높은 선비가 거닐다

종이에 수묵

24.9×29.7cm

간송미술관

 

"그림의 길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네. 자네는 그림에 있어 이미 격조를 얻었다고 생각하는가? 자네가 처음 배우기 시작한 것이 공재 윤두서의 화첩이네. 우리나라에서 옛 그림을 배우려면 과연 공재로부터 시작하겎지. 그러나 신운의 경지는 부족하지. 겸재 정선과 현재 심사정은 모두 명성이 대단하지만, 그들의 두루마기와 화첩에 전하는 것은 한갓 안목만 어지럽게 할 뿐이니 절대 들춰 보지 말게. 자네는 화가의 삼매경에서 있어, 천 리 길에 겨우 세 걸음을 걸었을 뿐이네."

- 추사가 아끼던 그림 제자였던 소치小癡 허련許鍊, 1809-1892에게 한 말

김정희, 예서대련

<대팽고회>(大烹高會)

종이에 묵서

각 129.5×31.9cm

간송미술관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

일생을 고고하게 살았던 추사가 죽음을 앞두고 깨달은 진리와 회한을 토로한 글귀이다. 일체의 기교를 배제한 글씨가 어린 아이처럼 천진하고 졸박하기만 하다.

 

좋은 반찬은 두부 · 오이 · 생강나물,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 손자, 이것은 촌 늙은이의 제일가는 즐거움이 된다. 비록 허리춤에 말斗만큼 큰 황금인黃金印을 차고, 음식이 사방 한 길이나 차려지고 시첩侍妾이 수백 명 있다 하더라도 능히 이런 맛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추사

 

33 김정희

적설만산

 

金正喜, 1786-1856

積雪滿山 : 쌓인 눈이 산을 덮다

종이에 수묵

22.9×27.0cm

간송미술관

 

난을 치는 것이 가장 어려우니, 산수 · 매죽 · 화훼 · 금어는 옛날부터 잘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홀로 난 치는 데 있어서는 특별히 들리는 소리가 없다.

 

난을 치는 법은 예서隸書 쓰는 법과 가까우니, 반드시 문자향과 서권기가 있은 연후에야 얻을 수 있다. 또 난을 치는 법은 화법을 가장 꺼리니 만약 한 붓질이라도 화법이 있다면, 그리지 않는 것이 좋다.

- 1848년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 아들 김상우金商佑에게 보낸 글

 

예서를 쓰는 법은 반드시 모지고 굳세며 예스럽고 졸박한 것으로 으뜸을 삼아야 하는 것이나 그 졸박한 것은 또한 쉽게 얻을 수 없다. 예서는 대체로 번지르르한 모습이나 시정市井의 기풍을 걸러내야 한다. 또한 예서 쓰는 법은 가슴속에 맑고 드높으며 고아한 뜻이 있지 않다면 손에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김정희, <국향군자>

(國香君子)

종이에 수묵

22.9×27.0cm

간송미술관

 

난 한 포기가 화면 한가운데 놓여 있다. 분수처럼 솟구쳐 올라온 두 줄기 잎이 대각으로 교차하며 좌우로 벋어 나가 시원스럽게 화면을 가른다. 화면 오른편 지면을 따라 "이것이 국향이고 군자이다(此國香也, 君子也)"라고 간단명료하게 써놓았다. 대담하고 파격적인 화면구성과 화면을 완전히 장악하는 필선의 힘도 놀랍다. 추사가 아니라면 발상하기조차 힘든 묵란화이다.

 

쌓인 눈 산을 덮고, 강 얼음 난간을 이루나,

손가락 끝에 봄바람이니, 이에서 하늘 뜻 알다.

거사가 제題하다.

積雪滿山, 江水闌干, 指下春風, 乃見天心, 居士題.

 

34 조희룡

매화서옥

 

趙熙龍, 1789-1866

梅花書屋 : 매화가 피어난 서옥

종이에 담채

106.0×45.4cm

간송미술관

 

조희룡 같은 무리들이 나에게 난 치는 법을 배웠으나, 끝내 그림 그리는 법칙 한 길을 면치 못하였으니, 이는 가슴속에 문자의 향기가 없기 때문이다.

- 추사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

매화 숲 외딴 서옥에서 선비가 책상과 마주 앉아 있다. 책상 위에는 책이 가득 쌓여 있지만 선비는 오로지 화병에 꽂혀 있는 한 가지 매화만을 바라본다. 선비는 두말할 것도 없이 매화 사랑이 유난했던 우봉 자신이다.

 

좀벌레 둥지 속에서 묵은 종이 한 장을 얻으니, 곧 20년 전에 그린 매화서옥도이다. 장난으로 그린 그림이나 자못 기이한 기상이 있었는데 연기에 그을려 거의 백 년 지난 물건과 같다. 그림도 이와 같거늘 하물며 사람임에랴! 펼쳐 보고 나니 절로 3생을 신선으로 태어난 느낌이다.

蠹窠中得一故紙, 乃卄載前所作, 梅花書屋圖也.

盖遊戱之筆, 而頗有奇氣, 爲烟煤所昏, 殆若百年物.

畵猶如此, 況人乎, 披拂之餘, 不覺三生石上之感, 丹老

 

35 장승업

삼인문년

 

張承業, 1843-1897

三人問年 : 세 사람이 나이를 묻다

비단에 채색

152.0×69.0cm

간송미술관

 

세노인이 만나 서로 나이를 물었다. 먼저 한 노인이 말했다. '내 나이는 얼마나 먹었는지 알지도 못한다. 단지 내가 어렸을 적에 천지를 만든 반고盤古씨와 친하게 지냈던 생각이 날 뿐이다.' 또 한 노인이 말했다. '바다가 변하여 뽕밭이 될 때마다桑田碧海 내가 숫자를 세려 나뭇가지 하나씩을 놓았는데 지금 내가 놓은 나뭇가지가 벌써 열 칸 집을 가득 채웠다.' 다른 한 노인이 말했다. '내가 신선들이 먹는 복숭아를 먹고 그 씨를 곤륜산 아래에 버렸는데 지금 그 씨가 쌓여 곤륜산과 높이가 같아졌다. 내 나이로 본다면 두 사람이란 것은 하루살이나 아침에 니왔다가 저녁에 죽는 버섯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 송나라 문인 소식이 지은 『동파지림東坡志林』 속 「삼로문년三老問秊」

손짓과 동작에서 어떤 노인이 무슨 자랑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바위에 기댄 동방삭은 선도를 훔쳐 낼 계략을 짜고 있다. 유려한 선묘와 정교한 색채의 조화가 딱히 흠잡을 데 없을 만큼 뛰어나다. 얼굴이 거뭇한 것은 흰빛을 내는 안료인 연백이 산화하여 변색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장오원 선생이 중년에 그린 것이다. 인물과 나무 바위의 필법과 채색은 신운이 생동한다고 할 만하다. 평생 그린 인물이 적지 않지만 이 폭과 같은 것은 많지 않으니 참으로 보배라 할 수 있겠다. 선생이 돌아가신 지 벌써 18년이 되었다. 이 그림에 글을 쓰다가 술잔을 기울이며 호기롭게 휘두르시던 모습을 상상해 본다.

此乃張吾園先生, 中年所作也, 人物樹石之用筆賦采, 可謂神韻生動,

其生平所畵人物, 亦不尠, 如此幅者不多得, 眞可寶也, 先生歸道山,

已十八年矣. 今題此畵, 想見引杯揮豪之風采云.

 

36 민영익

석죽

 

閔泳翊, 1860-1914

石竹 : 바위틈에 솟은 대나무

종이에 수묵

135.0×57.0cm

간송미술관

 

대나무의 정신을 능숙하게 그려 내니, 비바람 소리 들물가에 많기도 하다. 필치가 때에 따라 미친 듯 움직여 막힘이 없어야 군자가 지닌 성정의 참됨을 펼쳐 낼 수 있으리라. 을사년 춘분에 포화가 짓다.

是能寫出竹精神, 風雨聲多野水濱. 筆致動時狂不礙, 可長君子性情眞. 乙巳春分節, 蒲華題.

민영익, <묵란>

종이에 수묵

124.2×61.3cm

간송미술관

 

칼칼한 농묵의 붓질로 힘이나 속도의 변화를 두지않고 쳐낸 잎들은 마치 철로 만든 회초리처럼 굳건하다. 뿌리를 모두 드러내고 흙도 그리지 않은 것은 여백의 미를 살리고자 함이 아니라, 뿌리내릴 땅이 없는 망국대부의 비통함을 담아낸 것이다. '민원정이 천심죽재에서 그리다(閔園丁, 寫於千尋竹齋)'라는 관서로 보아 상하이 망명시절에 쳐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밑으로 '송석원을 쓸고 닦는 남자'라는 의미의 '송석원쇄소남정(松石園洒掃男丁)'이라 새겨진 인장을 찍었는데, 송석원은 인왕산 아래 있던 집안의 별장이니 인장에서도 망명객의 애환이 절절이 묻어난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