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6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손택수 지음, 정약전 원저
2006, 아이세움
시흥시대야도서관
EM052290
497.0911
정63바
나의 고전 읽기 1
인류를 이끌어 온 고전의 향기를 맡는다
고전의 새로운 발상
나의.고전.읽기
물고기 선비가 들려주는 바다 이야기!
바다로부터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지만 정작 내가 바다에게 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한 것은 바다를 떠난 뒤의 일이었다. 그때부터 『자산어보』를 일기 시작했다.
이백여 년 전 지상에서 추방당한 한 유배객의 삶을 추적하면서 나는 뼈에 사무치는 외로움을 견딘 자들이 어떻게 역사의 중심부로 귀환하는가를 목격할 수 있었다.
그 과정 중에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단순한 바다 백과사전이 아니라 실학과 천주교에 바탕한 민본주의를 실천하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 머리말 중에서
손택수
산골마을 전남 담양 봉산에서 태어나 남쪽 바다 항구 도시 부산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경남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보』신춘문예에 시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부산작가상과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호랑이 발자국』이 있다. 이번 집필 작업을 계기로 바다에 대한 빚을 갚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듬직한 시인이다.
임연기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 『방송반 아이들』, 『돌학, 날개를 달다』등에 그림을 그렸다.
이부록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워바타, 전쟁 그림 문자』를 펴냈고, 『보이는 세상, 보이지 않는 세상』,『나는 유령작가입니다』,『소박한 여행』등에 그림을 그렸다.
|차례|
머리말 · 이백 년 전 바다를 항해하다
1 유배지에서 만나는 자유인의 초상
물고기들이 감사패를 줄 만한 학자
물고기 절과 물고기 문과 어부 아이
유배지를 오간 편지
2 어둠 속에 띄운 별 『자산어보』
검은 색의 비밀
섬 소년 창대와 또 다른 저자들
물고기 이름 짓기, 물고기 족보 짜기
3 비늘 달린 물고기와 비늘 없는 물고기
빅 피시, 돗돔
조기 울음소리는 서울까지 들린다
숭어와 슈베르트와 예수님
청어의 등뼈 수는 몇 개인가
스필버그와 정약전의 상어
하늘 물고기, 날치
낚시하는 물고기, 아귀
외눈박이 물고기는 없다
우화의 주인공이 된 홍어
복어 독은 사랑을 꿈꾼다
오징어 먹물에 붓을 찍다
문어 다리에 꽃을
고래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
4 껍질이 있는 바다 생물과 잡류
바다 거북의 전설
게, 누구냐
전복의 가르침
새가 되어 날아오르는 조개들
고둥의 노래를 들어라
홍합은 언제 입을 여는가
불가사리의 불가사의
말미잘은 말 똥구멍
가마우지, 페루에 가서 죽다
너희가 수조를 아느냐
김과 미역과 어머니
5 바다가 보이는 교실
모든 생명체의 기원
참고 문헌 및 도움 주신 분들
부록 · 『자산어보』에 나오는 바다 생물 목록
…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는 경기도 남양주의 두물머리 부근 마재에서 태어났다.
…
늘 깨어 있는 지식인이고자 했던 정약전은 강학회 중간에 빙천에 나와 세수를 했다.
…
규장각 어수문을 드나들면서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개혁의 꿈을 꾸었다.
…
외증조부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에서 풍채가 좋은 정약전의 외모를 연상해 본다.
…
형제는 유배라는 참담한 상황을 딛고 보다 성숙한 학문 세계를 일궈 냈다. (위)는 정약전이 머물던 흑산도 사리의 복성재이고, (아래)는 정약용이 유배 생활을 하던 강진의 다산 초당이다.
…
흑산도 사리 앞바다의 섬들. 정약전은 불귀의 객이 되어 눈을 감을 때까지 흑산도를 온몸으로 사랑했다. 흑산도의 바람과 파도 소리와 흙냄새, 그리고 사람들의 눈빛을 몸속에 빨아들여 그의 살이 되게 하였다.
구름에 걸터 앉아 심해 낚시꾼들이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
눈높이까지 꼬리를 치렁대면서
흥건하게 퍼덕거림을 쏟아놓는 저 물고기
찢긴 아가미 사이로 피도 조금 내비치고 있다
심해는 어떤 빛조차 스며들지 않는다는데
어떻게 잡혔을까 발광의 몸 둥글게 말아
천 길 캄캄한 무덤 사이로
고요히 헤엄쳐 다녔을 저 물고기
수압을 견딘 무거운 납의衲衣를 벗고
한 번도 들어올려 보지 못한 듯 천근 공기를 밀치고 있다
심해는 크고 작은 운석의 산실이어서
두터운 고무옷 껴입고
머리에 철뢰를 두른 잠수부들도 다녀올 수 없는 천심千尋
물고기 한 마리가 하늘 길이로 끌고 간다
서슬 푸른 비늘 한 잎 꽂아 두려고
저 물고기 천애天涯 위로 솟구쳐 오르는 것일까
- 김명인, 「심해 물고기」
알을 가득 밴 여치, 그 알들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그 속이 다 들여다 뵈는, 연녹색 여치를 말한 일본 사람 요시노 히로시를 오늘 아침 우리집 식탁에서 확인했다 그의 연녹색 목소리는 가벼웠다 그 정도가 아니었다 청어구이를 먹다가 청어의 알들이 청어의 대가리까지, 아가미 바로 밑까지 가득 차오른 것을 나는 보았다 목이 메어서 밥을 먹는 일을 그만두었다 물고기는 목구멍까지가 아니라 대가리까지이다 대가리는 영혼의 장소라고 믿는 버릇이 있기에 더욱 그랬다 뱃속까지만 차오르게 하신,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배려에 대하여 우리는 은총이라 할 것인가 다른 까닭이 있다 할 것인가 사람에겐!
- 정진규, 「청어구이」
온통 입뿐이어서
웃음이 절로 나는 그놈을
저녁거리 삼아 배를 갈랐다
기분 나쁘게 미끈거리는
그 어둡고 답답한 내장 속에
아주 작고 이쁜 입을 가진
통통하게 살오른 참조기 한 마리가
온전히 통째로 들어 있지 않은가
큰 입 작은 입 보글보글 함께 끓여서
오랜만에 째지게 맛있는 저녁을
아귀아귀 먹어 치우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문득
저 텅 빈 허공의
주린 뱃속을 둘러보면서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본다
저 광대한 허기 속에서
우리들은 시원하게 숨쉴 수도 있고
모두가 공평하게
아주 서서히 소화되는 동안
이렇게 맛있는 것들을 즐기면서
아직 살찔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 김영석, 「아구」
홍어회는 흑산도産이 제격, 얼치기 홍어회에 속아 본 사람들은 모두 흑산도집을 찾는다 어둠이 폐사뭉치로 굴러오는 변두리 시장 골목 덜컹거리는 유리문을 밀면 뿌연 수증기 속 맵고 찝찔한 공기, 급한 소주 몇 잔에 벌써 불콰해진 사람들 연탄 화덕의 가스가 취기를 부추긴다 주점 밖엔 구죽죽한 늦은 봄비, 흐린 불빛 밖으로 열려진 연장통 안 밀려난 어둠이 웅크리고 있다 며칠씩 삭혀야 제 맛 난다는 홍어를 구하러 어저께 주인은 목포로 갔다 경상도 구미 땅에서 제바닥 홍어회를 먹기가 그리 쉬운 일인감 취객들은 모두 기다리는 데 이력난 사람들 오줌처럼 지린 입맛을 찾아 저녁마다 몰려든다 얼마나 삭아야 제 맛이 나는 걸까 짝 없는 젓가락이 술상 밑에 뒹굴고 환풍기는 쉴 새 없이 어둠을 뿜어 낸다 두 손으로 말아 쥔 술잔 속 출렁이는 비린 바다 탁한 물결 홍어를 구하러 바다로 간 주인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더러는 고개 꺾어 제 속에 코를 박고, 썩어 가는 익숙한 냄새에 취하기도 한다 고향 떠난 남도 사람 몰려드는 공단 변두리 흑산도집 위엔 밤마다 홍어 떼 무리져 날아다닌다
- 장옥관, 「흑산도집」
복어는 늘 화를 내고 있다.
최근의 화는 아직 부글부글 끓고 있다.
부글부글 메탄 가스처럼
그 때문에 우스꽝스럽게 복배가 튀어나온
만화 같은 불평분자
그러나 끓고 끓어서
청산가리 13배로 농축된 그 알맹이는
창자 속에 또는 핏속에 차갑게 간직된다.
사람들은 그 진짜는 질색이다.
세심한 주의로 모조리 제거하고
무해무득無害無得한 부분에만 입맛을 다신다.
그래도 속이 확 풀린다니 천만 다행이다.
겨우 술꾼들의
속이나 풀어 주는 그 속은 아랑곳없는
이 인공人工의 국물 한 그릇.
오 형제여 위선의 독자여
어릴 때 나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복어 대가리가
밤내 파란 인광을
뿜고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다.
- 이형기, 「복어」
오징어는 바다를 갈아 먹물 주머니를 채운다. 옛날에 오징어 먹물에 붓을 찍은 사람이 있었다. 바다 속에서 나온 책 『자산어보』, 바다를 벼루 삼아 먹을 갈며 캄캄한 유배를 살던 사람의 이야기. 정약전에 따르면 오징어 먹물로 쓴 글은 유난히 반지르르 윤기가 돌았다고 한다. 그 글씨들 오래되면 희미하게 지워져서 마침내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마는데, 바닷물에 담그면 먹빛이 그대로 되살아났다고 한다. 지상에서 잠시 반짝이다 져 버릴 운명을 위해 바다에 뛰어든 적이 있는가. 바다 속에 수장된 뒤 부활하는 말들을 꿈꾼 적이 있는가. 여기는 잠시도 망각을 견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땅. 그러니 먹물이 들려면 오징어 먹물쯤은 되어야 한다. 막막하게 뻗어 간 수평선 위로 번지는 먹물을 뒤집어쓸 줄 알아야 한다.
- 손택수, 「오징어 먹물」
뜰에 가득 차가운 비 내려 물가에 온통 가을인데
제 땅 얻어 종횡으로 마음껏 다니누나.
창자 없는 게가 참으로 부럽도다.
한평생 창자 끊는 시름을 모른다네.
- 윤우당
어미를 따라 잡힌
어린 게 한 마리
큰 게들이 새끼줄에 묶여
거품을 뿜으며 헛발질할 때
게 장수의 구럭을 빠져나와
옆으로 옆으로 아스팔트를 기어간다
개펄에서 숨바꼭질하던 시절
바다의 자유는 어디 있을까
눈을 세워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달려오는 군용 트럭에 깔려
길바닥에 터져 죽는다
먼지 속에 썩어 가는 어린 게의 시체
아무도 보지 않는 찬란한 빛
- 김광규, 「어린 게의 죽음」
내 귀는 소라 껍질
바다 소리를 늘 그리워한다
- 장 콕토, 「귀」
파도야 파도야 치지 마라
서풍아 서풍아 불지 마라
불가사리
불가사리
양식장에 왜 붙나?
파도치면 우리 남편 바다에서 못 돌아오고
서풍 불면 우리 남편 배 타러도 못 떠난다
불가사리
불가사리
겉모습만 아름답다
바라보면 별과 같고
바라보면 훈장 같지
양복쟁이 앞가슴에 휘장인가? 불가사리
꼬막 조개 해삼 멍게 슬그머니 다 잡아먹고
애써 가꾼 양식장도 거덜을 내버린다
파도야 파도야 치지 마라
서풍아 서풍아 불지 마라
떼 내어도
떼 내어도
되살아나는 불가사리
가난한 어부들은 한숨만 쉰다
가난한 어부들은 눈살만 찌푸린다
- 김명수, 「불가사리」
어부의 배에 실려와
나는 망망한 바다 위로 내던져졌다
어부가 내 발목을 잡아매고 있다는 것도
나는 한순간 깜박 잊어버리고
다만 물속의 고기떼를 쫓아 두리번거린다
넓은 갈퀴로 물살 헤치며
발밑으로 달아나는 저 물고기를 향해
온 힘을 다해 자맥질한다
내 큰 부리는
곧 한 마리의 물고기를 물고 떠오른다
눈부신 햇살에 어깨 으쓱이며
나는 내가 잡은 불고기를 대뜸 삼키려 한다
그러나 가늘고 긴 내 목에는
이미 노끈이 조여져
그 고기 결코 목구멍을 넘어가지 못한다
이때 어부는 재빨리 줄을 당겨
내 목에 걸린 고기를 뽑아 바구니에 담는다
나는 또 빈털터리가 되어
막막한 바다 위로 내던져진다
- 이동순, 「슬픈 가마우지의 노래」
옛날엔 통제사統制使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 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千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 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 냄새 나는 비가 내린다
- 백석, 「통영統營」
너희들 속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있구나
저 산에 들에 저절로 돋아나 한 세상을 이룬
유월 푸른 새잎들처럼, 싱싱한
한 잎 한 잎의 무게로 햇살을 퉁기며
건강한 잎맥으로 돋아나는 길이 여기 있구나
때로는 명분뿐인 이 땅의 민주주의가,
때로는 내 혁명의 빛바랜 꿈이,
칠판에 이마를 기대고 흐느끼는
무명교사의 삶과 사랑과 노래가
긴 회한의 그림자로 누우며 흔들릴 때마다
너희들은 나를 환히 비추는 거울,
나는 바다가 보이는 교실 창가에 서서
너희들 착한 눈망울 속을 조용히 들여다보노라면
점마다 고운 빛깔과 향기의 이름으로
거듭나는 별. 별들
저 선생의 별들이 살아 비출 우리나라가 보인다
내 아이들아, 너희들 모두의 이름을 불러 손잡으며
걷고 싶어라 첫새벽 맨발로 걷고 싶어라
너희들 속으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있고
내가 걷고 걸어 가 닿아야 할 그 나라가 있구나
- 정일근, 「바다가 보이는 교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