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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4. 11. 10:36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036 옛 다리

글/손영식●사진/안장헌, 임원순

1992,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3060

082
빛12ㄷ 18


빛깔있는 책들 18


손영식------------------------------------------------------------------------

육군사관학교와 단국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한양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중에 있다. 현재 문화재관리국 문화재보수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 성곽의 연구」공저로 「북한의 문화 유산」등이 있으며 다수의 논문이 있다.

안장헌--------------------------------------------------------------------------------

고려대학교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신구전문대 강사, 사진 예술가협회 부회장으로 있다. 사진집으로 「석불」「국립공원」「석굴암」등이 있다.

임원순------------------------------------------------------------------------

강원도 횡성 출생이며 현재 '연사진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집으로 「동산문화재 지정보고서」('80~'89)「주요무형문화재 지정보고서」('88~'89)「마사박물관도록」(88)외 여러 책이 있다.

|차례|

다리의 시작
전설과 민속 놀이
    전설
    민속 놀이
옛 다리의 구분
    재료에 따른 구분
    형식에 따른 구분
    다리의 구성
현존하는 옛 다리
    도성의 다리
    궁궐의 다리
    성곽의 다리
    사찰의 다리
    민간의 다리




안동 놋다리밟기 놋다리밟기는 영남의 안동, 의성, 영천, 상주 등지에서 젊은 부녀자들만 하는 놀이이다.

옛 그림 속의 다리 위는 '귀어도(歸漁圖, 이재관, 19세기 초)'에 그려진 흙다리이고 아래는 '금강산 표훈사(최북, 18세기)'에 그려진 돌다리로 홍예가 틀어진 모습이다.


하관계회도(夏官契會圖) 작가 미상, 16세기.

흙다리(土橋)

외나무다리
 
엇비슷한 고목을 앞여울에 가로지르니
걸음마다 아찔하는 마음 몇번이나 놀랐던가
평지에는 풍파를 사람들은 모르면서
다리에 와서는 오히려 두려운 길로 보는도다
(槎牙古木裁前灘 步步寒心幾駭瀾
平地風波人不識 到橋猶作畏途看)
金壽寧, 三陟 竹西樓, 臥水木橋

돌다리(石橋) 옛 사람들이 가장 바람직하게 생각한 다리는 돌다리였다. 석재가 풍부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돌다리의 가설 여건이 좋았다.


영산 만년교 가장 전통적인 형식의 구름다리로 조선 정조 4년(1780)에 가설되었다. 이 다리는 단칸 홍교로 홍예 지름이 11미터에 이른다.

징검다리(徒杠, 跳橋) 다리 바닥이 없는 불완전한 다리 형태이지만 오늘날까지 이용되고 있다. 디딤판의 간격은 건너기에 편리한 보폭에 맞추어 설치했고 불편하면 중간에 한두 개 더 놓게 되어 디딤판의 열이나 간격도 자연 불규칙하게 마련이다. 

송광사 삼청교의 우화루 사찰 입구나 빼어난 경관지의 다리 위에는 정자가 만들어져 주변 경관을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

매단다리

화성능행도 가운데 배다리 부분

배다리 설치 방법


수표교의 다리 바닥 다리 바닥은 전통적인 목조 건축과 상호 관련을 가졌음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여천 흥국사 홍교의 멍에

옛 살곶이다리

살곶이다리의 다리 기둥 구조

수표교의 다리 기둥 다리 기둥은 윗부분 부재를 받쳐서 하중을 지면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부재이다. 이 부분은 항상 물에 접하여 물의 저항을 가장 많이 받는 부분으로 이 저항을 줄이기 위해 기둥 형태를 배 모양으로 하거나 방형의 기둥을 모로 세웠다.

일정교 월정교 터

경복궁 영제교 난간 난간의 구조는 교량 끝 부분에는 난간 엄지 기둥, 난간과 중간에서는 난간 동자 기둥이 있다.

벌교 홍교의 다리와 용두석

창경궁 옥천교의 귀면상 벽사 시설로 궁중에 있는 다리에는 교면에 도깨비상을 새기기도 하고 다리 주변에 별도로 설치하기도 하였다.

벌교 홍교의 다리비 다리를 고칠 때마다 그 공덕을 후세에 기리고자 다리 비를 세워 현재 6개가 나란히 선 채로 보존되고 있다.

수표 청계천 수표교 옆에 세워 수량을 측정하던 것이다. 세종대왕 기념사업회관 소장

선죽교

경복궁 영제교 원래는 근정전 앞 박물관청사 뒤쪽에 놓여져 있었던 것인데 일정 때 조선총독부 건물을 신축하면서 헐어 내었던 것을 현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경복궁 영제교의 천록

향원지 취향교(醉香橋)

병영성 홍교(兵營城 虹橋) 이 구름다리는 일명 배진강다리라고도 한다. 병영의 관문으로 배진강에 축조된 다리는 폭 6.75미터, 높이 4.5미터의 확강석 홍예를 틀었다. 홍예 윗부분 중앙의 용두는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창경궁 옥천교(昌慶宮 玉川橋) 이 다리는 조선 성종 15년(1484) 창경궁을 경영할 때 함께 가설한 것으로 보인다. 다리의 규모는 길이 9.5미터, 폭 5.8미터의 아담한 다리이며 홍예 난간, 석수 등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창경궁 통명전 옆 지당석교
지당 위에 동서 방향으로 길이 3.54미터, 폭 2.5미터의 2칸으로 널다리 형식의 간결한 돌다리를 놓았다.

창덕궁 금천교(昌德宮 錦川橋) 이 다리는 현존하는 궁궐 안의 다리로서는 가장 오래 된 것으로 홍예2체로 구성하였다.

수원성 화홍문 수원성에는 수원천이 성 안을 남북으로 통하고 있어 남쪽과 북쪽에 2개소의 수문이 있었다.

홍지수문교 성벽의 다리로 길이가 30미터에 이르는 석조 아치교이다. 거의 없어진 것을 1977년에 복원하였다.

옥하리 홍교 다리의 규모는 길이 8.7미터, 높이 4.2미터이고 구조는 반원형의 단칸 홍예교이다.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다리이다. 이 다리는 중앙에 와장대석이 설치되어 있어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아래의 계단이 청운교이고 위의 계단이 백운교이다.

불국사 연화교, 칠보교 불국사 경내의 안양문 앞에 설치된 계단형 돌다리로 청운교, 백운교와 함께 경덕왕 10년에 조성된 것이다.

흥국사 홍교(興國寺 虹橋) 다리 외형이 가운데가 높고 양끝이 낮아 자연스런 곡면을 유지하고, 홍예틀은 반원형을 이룬다. 홍예석은 비교적 큰 화강석으로 하고 그 윗돌은 자연석에 가까운 절석을 쌓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선암사 승선교 다리의 형태는 아랫부분부터 곡선을 그려 전체 모양은 완전 반원형을 이루고 있다.

송광사 삼청교(松廣寺 三淸橋) 이 다리는 단홍예로 틀어 좌우 장대석을 잘 가공하여 쌓았다. 멍엣돌을 깔아 그 위에 장대갓돌을 좌우 5개씩 설치하였다. 다리 윗부분에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우화각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유래가 흔치 않은 누교 형식이다.

태안사 능파교(泰安寺 凌波橋) 이 다리의 특징은 다리와 누각을 겸한 점이다. 사찰에 들어서면 다리를 건너면서 세속의 번뇌를 씻고 불문(佛門)에 입문한다고 한다.

태안사 능파교 다리의 구조 계곡 양쪽에 석축을 쌓아 교대로 삼고 그 양쪽에 통나무로 보를 걸친 다음 굵은 바닥판을 깔았다. 그 위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 지붕 건물은 통나무를 걸쳐 주초를 대신하는 하인방을 걸치고 원주를 세웠다.

수표교(水標橋) 수표교는 조선 때 도성 안에 가장 많은 다리가 있었던 청계천에 세워진 다리로 현존하는 유일한 다리이다.

살곶이다리 이 다리는 세종 2년에 가교 공사를 시작하였다가 성종 14년에 완성되었다.


옥천 청석교

진천 농교(鎭川籠橋) 이 다리 위에는 길이 170미터 안팎, 두께 20센티미터 정도의 장대석을 1매로 놓거나 2매로 나란히 놓았다.

강경 미내다리(江景 渼奈橋) 홍예석은 긴 장대석을 쌓아올리고 가운데 홍예의 이맛돌에는 호랑이 머리를 조각하고 북쪽의 정상 이맛돌은 돌출시켜 용머리를 조각하였다.

논산 원목다리(論山 院項橋) 이 다리는 언제 세워졌는지 그 내력은 알 수 없으나 근처에 있는 강경 미내다리(1728년)와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남원 오작교 세조 8년(1462)에 부사 장의국이 광한루를 크게 수리하면서 연못에 다리를 가설한 것이 오작교이다.

광한루와 오작교(廣寒樓 烏鵲橋) 오작교는 화강암으로 가공하여 4개의 홍예를 석축으로 길게 쌓아 연결하였는데 길이 33미터, 폭 2.6미터, 높이 4미터를 홍예와 홍예 사이는 가공석으로 면을 처리하였다.

벌교 홍교 이 다리는 3칸의 화강석 홍예 구조로 된 다리로서 우리나라 홍교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함평 고막천 석교(咸平 古幕川 石橋) 이 다리는 교각석 위에 멍엣돌을 바닥면보다 바깥으로 많이 나오게 하여 받치고 장귀틀석을 걸쳤다. 귀틀석을 가구로 하여 바닥돌을 반턱 쪽매로 해서 빈틈없이 설치하여 바닥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형식은 상당히 옛 방식으로 보인다.

함평 고막천 석교의 다리 교각은 방형의 굄돌을 올려 놓아 멍엣돌을 받치고 있다.

진도 남박다리 진도 임화면 남문 밖에 흐르는 가는골에 세워진 2개의 홍예교 가운데 쌍홍교이다. 이 다리는 해방 직후에 마을 사람들이 놓았다고 전해지는데 편마암질의 판석을 불규칙하게 세로로 세워 배열하였다.

영산 만년교(靈山 萬年橋) 이 다리는 길이가 13.5미터, 홍예 넓이 11미터, 높이 5미터, 폭 4.5미터 규모이며 자연 암반 위에 32개의 층으로 홍예를 구축한 위에 자연석으로 난간 쌓기로 석축을 쌓고 아랫부분 바닥은 흙을 깔아 길을 만들었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