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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09 2016-026 신정일의 낙동강역사문화탐사
2016. 12. 9. 15:16 내가 읽은 책들/2016년도

2016-026 신정일의 낙동강역사문화탐사

신정일

2003, 생각의 나무

 

시흥시대야도서관

EM032377

 

981.102

신746낙

 

탐사와 산책 19

 

사라진 강 길을 따라 홀로 떠난 낙동강 천 삼백 리 역사찾기의 도정

 

물의 가르침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 물을 마셔라.

선종

 

강대국이 강의 하류와 같다면, 모든 것이 그에게 흘러 갈 것이다. 그에게서 세상의 여성적인 것이 구현될 것이며, 여성적인 것은 잔잔함을 통하여 영원히 남성적인 것을 이길 것이다.

- 노자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 괴테 『파우스트』에서

 

차례

 

추천의 글 임재해

길머리에

 

제1구간 낯선 곳에선 길을 물을 사람도 없다 _너덜샘에서 단천리까지

 

1일 강물이 흐르듯 내 마음도 따라 흐르고

      흔들리며 홀로 떠난다 | 너덜샘에 비가 내리고 | 황부자의 전설이 서린 황지

      낙동강 천삼백 리 예서부터 시작되다 | 구무소를 지난 강물 | 여울져 흐르는 강물이 석포에 접어들고

      전화는 불통이고 빈집들만 남아 있다 | 죽느냐 사느냐 그게 문제로다 | 정향사에는 스님의 그림자도 없다

 

2일 길을 물을 사람도 없는데

      풍애터널을 통과하다 | 모든 나무의 으뜸인 춘양목 | 걸어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을 | 삶도 죽음도 도처에 있다

      삶도 죽음도 도처에 있다 | 낯선 곳에선 길을 물을 사람도 없다 | 혼자서 가라, 그 길을 | 합강 나루엔 빈 배만 매어 있고

 

3일 청량산 자락을 흘러가는 낙동강

      청량산에서 바람이 소리를 만나다 | 바위 봉우리가 연꽃잎처럼 벌어져 있고 | 욕심 많은 자도 청렴해지는 산

      선비의 고장 안동에 접어들다 | 길이란 무엇인가 | 넓고도 넓은 낙동강을 건너다

 

제2구간 흐르는 저 강물 천리를 흐르는데 _단천리에서 삼강 나루까지

 

4일 안동댐을 지나 병산서원으로 가는 물길

      낙동강에서 물수제비를 뜨다 | 도산서원 앞으로 낙동강은 흐르고

 

5일 작살로 찔렀다 하면 은어가 올라오고

      작살로 찔렀다 하면 은어가 올라왔다 | 배나들에는 주진교가 떠 있고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임청각에서 낙동강을 바라보다

      왕건과 견훤의 싸움터였던 안동 | 하늘로 흐르는 강 | 고구려식이라는 봉정사 극락전

     요사채로 남은 고금당 |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 낙동강 변에는 메밀꽃들이 피어 있고 | 병산서원에서의 하룻밤

 

6일 하회 앞에서 물은 휘돌아간다

      만대루에 올라서서 낙동강을 굽어보다 | 그토록 맑은 물에 우뚝 솟은 절벽 | 연화부수형 하회 마을

      가버린 옛시절이 떠오르는 낙동강 | 한사코 길이 없다고?

 

제3구간 시간이 있거든 강물을 보고 배우시게 _삼강 나루에서 고령교까지

 

7일 한 배 타고 세 강을 건너던 삼강 나루

      내성천과 금천이 합쳐지는 곳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 | 비경 중의 비경 | 의성포 물도리동 | 꽃게 나루엔 배가 없다

      낙동강의 제일 절경 경천대 | 길만 나 있어도 행복하다 | 문득 바람이 세차게 일어나고 | 내가 오늘 갈 것이다

      나각산에 설치된 뱀 그물 | 낙동강에서 제일 큰 낙동 나루 | 신라 최초의 절 도리사 | 바람 부는 강변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8일 두 갈래 길에서 흔들리는 내 마음

      낙동강이 안개 속에 숨어 있고 | 인재의 고장 선산 | 신검이 진을 쳤던 송림 | 두 갈래 길에서 내 마음은 흔들리고

     페놀사태와 낙동강 | 길은 포기하는 순간 없어지고 | 워커라인으로 불렸던 낙동강 방어선 | 왜물고

      퍼내도 펴내도 생기는 모래

 

9일 비를 맞으며 걷는 강길

      젊은 사람이 오토바이도 못 타 | 낙동강의 오염벨트 대구 일대 | 어느 날 문득 강이 내게로 왔다

 

제4구간 한가함보다 즐거운 것은 없다 _고령교에서 삼랑진 나루까지

 

10일 내가 가는 길은 순탄치 않다

      지도 위에도 길은 없다 | 현풍에서 비슬산을 바라보다

      낙동강은 푸른 실타래를 풀어놓은 듯하고 | 홍의 장군 곽재우가 잠든 곳

      참을 수 없는 집의 가벼움 | 최치원이 즐겨 놀았던 청량사

      해인삼매에서 유래된 해인사 | 오광대놀이가 시작된 율지 나루 | 우포늪이 멀지 않다

 

11일 정암 사공아, 뱃머리 돌려라

      박진나루엔 빈 배만 매어 있고 | 낙동강으로 남강이 접어들다 | 고려 말의 혁명가 신돈이 태어난 곳

      세상을 내려다보는 용선대의 부처님 | 본포 나루에서 해가 저물다

 

12일 길은 없다, 그러나 길은 있다

      아침 강에 피어오르는 물안개 | 철새들의 낙원 주남 저수지 | 밀양강이 낙동강에 몸을 풀고

      강낭콩보다 푸른 절개

 

제5구간 낙동강은 그래도 낙동강이다 _삼랑진에서 을숙도까지

 

13일 뒷기미 나리는 눈물의 나리

      까마귀 두 마리를 잡은 사내 | 물금 나루에서 강은 바다와 같다 | 불보사찰 통도사

      금관가야의 중심지, 김해 | 눈에서 멀면 마음에서도 멀다 | 구포 나루는 흔적도 없고 | 낙동강에 그래도 희망은 있다

 

참고문헌

 

나는 걸르면서 나의 가장 풍요로운 생각들을 얻게 되었다.

걸으면서 쫓아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하나도 없다.

- 키에르케고르

 

훌쩍 떠나온 것이 나는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네!

친구여! 인간의 마음이란 대체 어떠한 것일까?

내가 그렇게도 사랑하고 헤어지길 섭섭해 했던

자네 곁을 이렇게 떠나와서는 기쁨을 느끼고 있다니!

-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보낸 편지의 첫 구절

 

발원지 태백시 화전동에서 정선군 고한읍으로 넘어가는 싸리재를 사이에 두고 금대봉과 함백산 사이 천의봉 너덜샘에서 낙동강이 발원한다.

한국에서 제일 높은 역 추전역에는 일반 객차가 쉬지 않는다. 다만 대처로 실려 가기 위한 석탄만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며 그 때문인지 온 천지가 시커멓다.

 

경상도의 낙동강은 태백산에서 나와서 동쪽으로 꺾어져 서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꺾어져 남쪽으로 흘러서 한 도[一道]의 중간을 그었으며, 또 동쪽으로 꺾어져 남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태백산 동쪽 줄기는 바다를 따라 남쪽으로 흐르고 서쪽 줄기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남으로 꺾어지며, 남쪽은 지리산에 이르고 다시 동쪽으로 가서 김해에 이른다. 경상도의 한 도는 모두 한 수구水口를 이루니, 낙동강은 상주 동쪽을 말함이다. 낙동강의 상류와 하류는 비록 지역에 따라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통틀어 낙동강이라 부르며, 이 강은 '가야진伽倻津'이라고도 한다. 강 동쪽은 좌도左道가 되고, 강 서쪽은 우도右道가 된다. 고려 때에는 이 강과 호남의 섬진강과 영산강을 배류背流한 삼대강三大江이라고 하였다.

- 이긍익 『연려실기술』 「지리전고」 낙동강에 대해

 

황수黃水는 태백산 황지에서 시작한다. 서남으로 흘러 3백 리 함창에 닿고 동으로 굽이쳐 남으로 또 3백 리 함안에 이른다. 북향으로 꺾어 동류東流 1백 리 김해의 동북 황산포구에 이른다. 여기서 남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낙동이라 함은 가락의 동쪽이라는 말이다.

- 다산 정약용 『대한강역고大韓疆域考』 낙동강에 대해

 

태백산의 황지는 산을 뚫고 남쪽으로 나와서 봉화奉化에 이르러 매토천買吐川이 되며, 예안禮安에 이르러 나화석천羅火石川이 되고 손량천損良川이 된다. 또 남쪽으로 흘러 부진浮津이 되며, 안동安東 동쪽에 이르러 요촌탄寥村灘이 되며, 물야탄勿也灘이 되고 대항진大項津이 된다. 영양英陽 · 진보眞寶 · 청송靑松의 여러 냇물이 모두 합하여 서쪽으로 흘러 용궁龍宮의 비룡산秘龍山 밑에 이르러 하풍진河豊津이 된다. 풍기豊基 · 순흥順興 · 봉화奉和 · 영천英川의 물은 합하여 예천禮泉의 사천沙川이 되고, 문경聞慶 · 용연龍淵 · 견탄犬灘의 물은 남쪽의 함창咸昌에 와서 합쳐 곶천串川이 된다.

상주 북쪽에 이르러 송라탄松蘿灘이 되며, 상주 북쪽 동북 35리에 이르러 낙동강이 되며, 의성義城 · 의흥義興 여러 냇물은 군위軍威 · 비안比安을 거쳐 와서 합쳐진다. 선산善山 북쪽에 이르러 견탄이 되며, 선산부善山府 동쪽에서는 이매연이 되고 여차니진餘次尼津이 되며, 선산부 동남쪽으로 보천탄寶泉灘이 되었다. 속리俗籬 · 황악黃岳 동쪽 물은 지례知禮의 감천甘川이 되어 금산金山 · 개령開寧을 거쳐 합친다.

인동仁同 서쪽에 이르러 칠진漆津이 되며, 성주星州 동쪽에 이르러 소야강所耶江이 되고 동안진東安津이 되니, 곧 대구 서쪽 경계이다. 영천永川 · 신령新寧 · 하양河陽 · 자인慈仁 · 경산慶山과 합하여 동쪽으로 흘러서 다시 합친다.

초계草례溪 동쪽 창녕昌寧 서쪽에 이르러 감물창진甘勿倉津이 되며, 거창居昌 덕유산德裕山 동남쪽 여러 냇물은 합하여 합천陜川의 남강南江이 되고, 또 초계의 황둔진黃芚津이 되어 동쪽으로 흘러가서 합한다.

영산靈山 서쪽에 이르러 기음강岐音江이 되어 촉석강矗石江과 합하여진다. 영산의ㅣ 기음강에 이르러 낙동강과 합하고, 칠원漆原 북쪽에 이르러 모질포毛叱浦가 된다. 이 물은 다시 흘러서 매포買浦가 되는 것이니, 이것을 무포라고도 한다. 창원昌原 북쪽에 이르러 주물연진主勿淵津이 되며, 밀양 남쪽 30리, 김해 북쪽 50리 경계에 이르러서 뇌진磊津이 되는데, 이속은 해양강海陽江이라고도 한다. 청도淸道와 밀양의 물은 응천凝川이 되어서 영남루嶺南樓를 남쪽으로 돌아서 합쳐진다.

또 동쪽으로는 삼랑창三浪倉이 있고 남쪽으로 흘러 왕지연王池淵 황산강黃山江이 된다. 또 남쪽으로 양산梁山의 동원진東院津이 되며, 또 남쪽으로는 세갈래 물이 되어서 김해부金海府 남쪽 취량鷲梁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 이긍익 『연려실기술』 지리전고에 낙동강에 대해

 

이정표 누구도 흐르는 물과 내 발걸음을 중단시키지 못할 것이다. 어느 날 문득 나는 낙동강의 하구인 을숙도에 도착할 것이다.

 

때로는 산봉우리에 내리는 눈이 되어 때로는 서리나 이슬이 되어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 물의 성질이라 아무도 그 뜻을 막을 수 없다.

- 게오르그

 

강물

 

오세영

 

무작정

앞만 보고 가지 마라.

절벽에 막힌 강물은

뒤로 돌아 전진한다.

 

조급히

서두르지 마라.

폭포 속의 격류도

소에선 쉴 줄을 안다.

 

무심한 강물이 영원에 이른다.

텅 빈 마음이 충만에 이른다.

 

푸르고 푸른데 어찌 태백이라 하였던가. 그 위에 당집을 짓고 천왕이라 이름하였네. 신라 고려 때부터 숭상하여 믿었고, 모두 무당과 박수의 도회로세. 저 동쪽을 바라보니 팽나무도 많고 저 남쪽을 돌아보니 크고 높은 언덕도 많네.

- 『삼척진주지』 「척주부」에서 태백산에 대해

 

천하의 명산이 삼한에 많고 삼한의 명승은 동남쪽이 가장 뛰어나며, 동남쪽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태백

- 최선(고려 때)의 예안 『용수사기』에서 태백산에 대해

 

멀고 아득한 태백산을 서쪽에서 바라보니, 기암괴석이 구름 사이에 솟아있네. 사람들은 신령님의 영험이라 말하는데 분명코 천지의 조화로세

- 매월당 김시습 「망태백산望太白山」

 

구무소 메밀뜰 마을을 지나 혈내촌에 다다르면 그곳에 구무소가 있다. 강이 산을 뚫고 지나가는 도강산맥이라는 세계적으로 진귀한 지형인 구무소는 '구멍' '굴'의 고어인 '구무'와 늪을 뜻하는 '소'가 어우러져 지어진 이름이다.

구무소 위의 정자 나는 구무소를 바라보며 "천하에 물보다 더 유약한 것은 없지만 굳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는 이보다 앞설 것이 없다. 천하의 지극히 부드러운 것이 천하의 가장  딱딱한 것을 부린다"는 노자의 『도덕경』을 떠올린다.

 

그칠 줄 모르는 시냇물 같이

시간은 그 시간의 아들들을 싣고

떠나가 버린다

시간의 아들인 만물은 동트면 사라지는 꿈과 같이

망각의 피안으로 옮겨간다

- 『시간의 정복』을 지은 웰즈

 

누구 한 사람 알아주는 이 없는 인파 속을 헤집고 다닐 때만큼 고독을 느끼는 경우도 없다고

- 괴테 『이탈리아 기행』에서

 

천천히 삶을 즐겨라, 너무 빨리 달리면 경치만 놓치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도 놓치게 된다

- 에디캔터

 

걱정의 40퍼센트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퍼센트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퍼센트는 사소한 고민이다. 걱정의 4퍼센트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4퍼센트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거이다

- 어니 젤린스키 『모르고 사는 즐거움』에서

 

사평역沙平驛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잇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죽음이란 저기 또는 여기에 있지 않고 모든 길 위에 있다. 너의 그리고 나의 내면에 깃들어 있다.

- 헤르만 헤세

 

삶이 때때로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지만 삶의 시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그 삶은 언제나 매일 매일 다시 시작된다.

- 장 그르니에 『지중해의 영감』 중에서

 

근심할 것과 근심하지 말 것을 분별케 하소서, 조용히 앉아 있기를 가르쳐 주소서.

- T. S. 엘리엇

 

찬란한 노을이 아름다워도 잠깐 사이에 스러지고 만다. 흐르는 물 소리가 듣기 좋지만 들을 때 뿐 듣고 나면 그뿐이다. 사람이 찬란한 노을을 통해 여생을 헤아린다면 허물이 가벼워지리라. 사람이 흐르는 물에서 거문고 소리를 들을 수 잇다면 정신에 유익함이 있게 되리라

- 도륭(명나라 때 문인) 『파라관청언』

 

나는 걸으면서 나의 가장 풍요로운 생각들을 얻게 되었다. 걸으면서 쫓아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하나도 없다.

- 키에르케고르가 1847년 제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모든 여행은 그 속도가 정확하게 결정되는 것에 따라 지루해진다.

- 러스킨(영국의 예술비평가)

 

책을 불살라 버려라. 강변의 모래들이 아름답다고 읽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 원컨대 그것을 맨발로 느끼고 싶은 것이다. 어떠한 지식도 감각을 통해서 받아들인 것이 아니면 아무런 값어치가 없다.

- 앙드레지드

 

분천역

갓바위 갓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갓바위라고 부르는 낙동강 가에는 깊디 깊은 갓바우 소가 있고 갓바위 다리를 지나자 음내마을에 이른다.

 

강물이 될 때까지

 

신대철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흐린 강물이 흐른다면

흐린 강물이 되어 건너야 하리

 

디딤돌을 놓고 건너가려거든

뒤를 돌아보지 말 일이다

디딤돌은 온데 간데 없고

바라볼수록 강폭은 넓어진다

우리가 우리의 땅을 벗어날 수 없고

흐린 강물이 될 수 없다면

우리가 만난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사람이 아니고

디딤돌이다

 

그리고 강물 소리는 불타는 듯한 그리움과 탄식과, 아무리 해도 멈출 줄 모르는 욕구로 가득 차서 울려왔다. 강물은 목표를 향해 애쓰며 나아가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그 강물이 바삐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자신과 그의 육친과 그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로 이루어진 그 강물은 황급히 흘러갔다. 모든 물결은 고뇌하며 목표를 향해 빠르게 흘러갔다. 그것들은 수많은 목표를 향해, 폭포를 향해, 호수를 향해, 여울을 향해, 그리고 대해를 향해 흘러갔다. 그리하여 모두가 목표에 도달하지만 거기에서 다시 새로운 목표를 향해 흘러가는 것이다. 물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오르고, 비가 되어 다시 떨어져 샘물이 되고, 시냇물이 되고, 다시 강물이 되어 거듭거듭 새로운 목표를 향해서 흘러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움에 찬 소리는 변했다. 그 소리는 여전히 고뇌하고 그리워하는 음색이었지만, 거기에는 다른 소리들이 섞여 잇었다. 기쁨과 슬픔의 소리, 선한 소리와 악한 소리, 웃음소리와 탄식의 소리, 그리고 여러 가지 다른 소리들이 뒤섞여 있었다.

-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도보로 산책하는 맛을 제대로 즐기려면 혼자여야 한다. 단체로, 심지어 둘이서 하는 산책은 이름뿐인 산책이 되고 만다. 그것은 산책이 아니라 오히려 피크닉에 속하는 것이다. 도보로 하는 산책은 반드시 혼자 해야한다. 왜냐하면 자유가 그 내재적 속성이기 때문이고 마음 내키는 대로 발걸음을 멈추거나 계속하여 가거나 이쪽으로 가거나 저쪽으로 가거나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걷기 챔피언 옆에서 뛰다시피 따라 걷거나 데이트하는 처녀와 함께 느릿느릿 걷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보조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 스티븐슨

 

확신하거니와, 내가 만약 산책의 동반자를 찾는다면 나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교감하는 어떤 내밀함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그 결과 나의 산책은 분명 더 진부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하는 취미는 자연을 멀리함을 뜻한다. 그렇게 되면 산책에서 얻게 되는 저 심오하고 신비한 그 무엇과도 작별인 것이다.

-소로

 

발걸음의 문화는 덧없음의 고뇌를 진정시켜 준다. 걸어서 하루에 30킬로미터를 갈 때 나는 내 시간을 일 년 단위로 계산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3천 킬로미터를 날아갈 때 나는 내 인생을 시간 단위로 계산한다.

- 레지스 드브레

 

해동 여러 산중에 웅장하기는 두류산(지금의 지리산0이고 청결하기는 금강산이며 기이한 명승지는 박연폭포와 가야산 골짜기다. 그러나 단정하면서도 엄숙하고 밝으면서도 깨끗하며 비록 작기는 하지만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청량산이다.

- 주세붕(조선조) 「청량산록」에서 청량산에 대한 예찬

 

청량산 옥류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 백구야 헌사하랴 못 믿을 손 도화로다. 도화야 떠나지 마라 어주자 알까 하노라.

- 퇴계 이황

 

이 산은 둘레가 1백 리에 불과하지만 산봉우리가 첩첩이 쌓였고 절벽이 층을 이루고 있어 수목과 안개가 서로 어울려 마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또 산봉우리들을 보고 있으면 나약한 자가 힘이 생기고, 폭포수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있으면 욕심 많은 자도 청렴해질 것 같다. 총명수를 마시고 만월암에 누워 있으면 비록 하찮은 선비라도 신선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 주세붕 「청량산 예찬」

 

길가의 무덤

 

길가에 외로운 무덤이 하나

자손들 지금은 어디에 있나.

- 김상헌 「노방총路倣塚」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물을 안다는 것은 우주와 대자연, 생명의 모든 것을 아는 것과 같다.

- 에오토 마사루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서

 

쾌락은 우리를 스스로에게서 멀리 떼어놓는다.

그런데 여행은 우리를 제자리로 데리고 가는 하나의 고행이다.

- 카뮈

 

청포도

 

이육사

 

내고장 칠원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 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을 흠뻑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전교당 도산서원 앞에 있는 전교당은 보물 제210호로 지정되었다.

도산서원 도산서원이 세워진 것은 선조 7년이었다. 서원을 창건하여 퇴계 이황을 배향하고, 그 다음 해에 사액을 받았다.

시사단 서원을 나와 낙동강을 보면 강 한 가운데에 작은 집 한 채가 서 있다. 시사단이라 부르는 이곳은 1792년 3월에 정조영남사림을 위해 도산서원 앞에서 과대인 별시를 베풀었던 것을 기념하여 단을 쌓고 정자를 세운 곳이다.

 

흐르는 저 강물 삼천 리나 되는데 집에서 온 편지는 겨우 열 다섯 줄

줄마다 줄마다 별다른 말 없고 고향으로 어서 돌아오란 말뿐.

- 원개

 

내가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내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 성경

 

안동댐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안동댐을 바라본다. 안동댐은 경상북도 안동군 와룡면 중가구리의 낙동강 본류를 가로막은 다목적댐이다.

안동기념탑 1971년에 착공된 안동댐은 우리나라 최초의 양수 겸용 발전소이다.

신세동 7층전탑 법흥동 중앙선 열차가 지나는 곳에 나라 안에서 제일 큰 신세동 7층전탑이 있다.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이 탑은 통일신라 전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뜻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임청각 보물 제182호로 지정된 임청각에 올라서 바라보면 멀리 낙동강이 보이고 동쪽의 작은 연못에는 수련이 피어 있다. 김수근은 이 집을 가리켜 '인간적인 치수를 반영하여 지은 집'이라고 극찬했다.

의성 김씨 종가 보물 제450호로 지정된 의성 김씨종가는 일반 형식에 궁전 형식을 덧보탠 것으로 고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제비원 석불 신라 때 도선국사가 새겼다고 전해지는 이 석불은 11미터 높이의 화강암 암벽을 이용하여 몸통을 만들고 2미터 높이의 바위로 부처의 머리를 만들었다.

 

매년 음력 정월보름 열엿새에 부 내에 사는 사람들이 부의 중앙에 있는 내를 경계선으로 하여 좌우편으로 패를 나누어 돌을 던져서 서로 싸워 승부를 결정한다. 정오년 왜적을 토벌할 때 석전을 잘하는 사람들을 모집하여 선봉으로 삼았더니 적이 감히 전진해 오지 못하였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석전에 대해

 

영호루 언제 지어졌는지 알 길이 없는 영호루에서 공민왕은 뱃놀이를 즐겼다.

봉정사 극락전 천등산 기슭에 있는 이 절에는 빼어난 문화재들이 보석처럼 숨어 있다.

 

어녀윤에 청계상에 놋다리야 놋다리야. 이 터이는 누터이로 나라님의 옥터일세

- 놋다리 노래

 

개목사 영산암에서 등산로를 따라 고개를 넘어가면 개목사에 닿는다. 인삼밭 너머로 살며시 몸을 드러낸 개목사는 신라시대 의상이 창건한 절이다.

 

안동부 서쪽 30리쯤 천등산 기슭에 절이 있어 봉정사라 일걸으니 절이 앉은 자세가 마치 봉황이 머물고 있는 듯하여 이와 같은 이름으로 부르게 됐다. 이 절은 옛날 능인대덕이 신라 때 창건하고 이후 원감, 안충 등 여러 스님들에 의해 여섯 차례나 중수되었으나 지붕이 새고 초석이 허물어져 1363년(공민왕 12년)에 용수사의 대선사 축담이 와서 중수했는데 다시 지붕이 허술해져서 수리하였다.

- 봉정사 극락전 상량문

 

마애동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바위에 새긴 부처가 있으므로 마애 또는 마라라고 부르는 마애리의 소나무 숲에는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17호인 마애동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있고 마애불 앞에는 진성 이씨가 그 조상 이돈과 이희보 부자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산수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낙동강

 

안도현

 

저물녘 나는 낙동강에 나가

보았다, 흰 옷자락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오래오래 정든 하늘과 물소리도 따라가고 있었다

그때 강은

눈 앞에만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내 이마 위로도 소리 없이 흐르는 것을 알았다

 

어릴 적의 신열처럼 뜨겁게,

어둠이 강의 끝부분을 지우면서

내가 서 있는 자리까지 번져오고 있었다

없는 것이 너무 많아서

아버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낡은 목선을 손질하다가 어느 날

아버지는 내게 그물 한 장을 주셨다

 

그러나 그물을 빠져 달아난 한뼘 미끄러운 힘으로

지느러미 흔들며 헤엄치는 은어떼들

나는 놓치고, 내 살아온 만큼 저물어가는

외로운 세상 강변에서

문득 피가 따뜻해지는 손을 펼치면

 

빈 손바닥에 살아 출렁이는 강물

아아 나는 아버지가 모랫벌에 찍어 놓은

발자국이었다. 홀로 서서 생각했을 때

내 눈물 웅얼웅얼 모여 흐르는 낙동강

그 맑은 마지막 물빛으로 남아 타오르고 싶었다

 

 

먼 훗날 다시 낙동강에 나갈 때 아우야 강물이 스스로 깊어진 만큼

우리도 내아가 부끄럽지 않고 서글프지 안은 물줄기 이루었을까.

- 안도현 「다시 낙동강」에서

 

병산서원  서원은 본래 선현을 제사하고 지방 유생들이 모여 학문을 토론하거나 후진들을 가르치던 곳이었으나 갈수록 향촌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사림 세력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이제 병산서원은 우리 나라내로라 하는 다른 서원과 비교해 보면, 소수서원과 도산서원은 그 구조가 복잡하여 명쾌하지 못하며 회재 이언적李彦迪의 안강 옥산서원은 계류에 앉은 자리는 빼어나나 서원의 터가 좁아 공간 운영에 활기가 없고, 남명 조식의 덕천서원은 지리산 덕천강의 깊고 호쾌한 기상이 서렸지만 건물 배치 간격이 넓어 허전한 데가 있으며, 환훤당 김굉필의 현풍 도동서원은 공간 배치와 스케일은 탁월하나 누마루의 건축적 운용이 병산서원에 미치지 못한다는 흠이 있다. 이에 비하여 병산서원은 주변의 경관과 건물이 만대루를 통하여 혼연히 하나가 되는 조화와 통일이 구현된 것이니, 이 모든 점을 감안하여, 병산서원이 한국 서원 건축의 최고봉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 유홍준

 

유성룡 씨 고택 유성룡은 총명했지만 정여립 같은 과격한 성품은 아니었고, 동인과 서인이 첨예하게 맞서 있을 때에도 동인에 속해 있었지만 서인에게도 항상 온건한 태도를 취했다.

 

천자가 총명하고 기상이 단아했다. 학문을 열심히 익혀 종일 단정히 앉아 있으면서 몸을 비틀거나 기댄 적이 없으며, 남들을 대할 적에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듣고 말수가 적었다.

- 실록의 사관의 유성룡에 대한 평가

 

하회 마을 안동 하회 마을은 경상북도 안동군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민속마을로 중요 민속자료 122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회 장승 하회 마을은 조선 전기 이후 전통적 가옥군의 존재와 영남의 명기라는 풍수적 경관과 아울러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유은룡 고택 하회 마을에서 유서 깊고 규모가 갖추어져 보물 또는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된 가옥들은 모두 풍산 유씨의 소유이다. 그중에서도 유운룡과 유성룡의 유적이 중추를 이루고 잇어 유씨 동족마을의 형성시기와 역사적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부용대 부용대는 저우리 동쪽 낙동강 가에 있는 대로서, 60미터가 넘는 기이한 바위가 깎아지른 듯 병풍같이 서 있다.

 

다시 낙동강

 

안도현

 

아우야

우리가 흰 모래밭 사금파리 반짝이는 소년이었을 때

앞서거니 뒤서거니 땅으로만 기어 흐르던 낙동강이

오늘은 저무는 경상도하늘 한 끝을 적시며 흐르는구나

아무도 모를 것이다 정말로

강물이 하나의 회초리라는 것을

우리 어린 종아리에 감기던 아버지 싸리나무 푸른 매

강물도 하회 부근에서 들판의 종아리를 때리며 가는구나

아우야

아버지 수십 년 삽질로도 퍼내지 못한 낙동강이

아직 철들지 않은 물고기들 하류로 풀어 보내며

조심하여라 조심하여라 웅얼대는 소리 듣느냐

아버지 등줄기에 흐르던 강물 보았느냐

그 곳을 거슬러 올라 헤엄치던 어린 날 우리는

그렇지 한 마리씩 빛나는 은어였을 것이다

 

먼 훗날

다시 낙동강에 나갈 때 아우야

강물이 스스로 깊어진 만큼 우리도

나이가 부끄럽지 않고 서글프지 않은 물줄기 이루었을까

저무는 강가에 아버지가 되어

푸른 매가 되어 돌아와 설 수 있을까

아우야

 

 

삶은 대단한 모험이다. 그런 삶이 아니라면 시간의 헛된 흐름일 따름이다.

- 헬렌 켈러

 

……중얼거린다. 무엇이 그를 이곳까지 질질 끌고 왔는지 그는 더 이상 기억도 못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는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박힌 길쭉하고 가늘은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고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 기형도 「여행자」

 

길은 또 없다! 주위는 심연! 그리고 죽음의 정적! 너는 그것을 바랐고 너 자신의 의지에 따라 길을 버렸다. 이제야말로 방랑자여, 냉정하고 명쾌하게 보아야 한다! 너에게는 파멸이 있을 뿐-만일 네가 위험의 존재를 믿는다면.

- 니체 『즐거운 지식』에서 토로한 방랑자

 

무엇을 찾아 노력하는 사람은 방황하게 되고,

방황하는 사람은 결국 잘못을 저질러도 구원받는다.

- 괴테

 

고향을 알기 위해서는 타향으로 가야한다.

- 프란츠 카프카

 

서산에 해지기를 기다리느냐

인생이 꿈 같은 걸 알고 있느냐

- 영화 <꿈>

 

부석사 내성천의 지류 중 하나인 낙화암천 끄트머리에 부석사가 있다. 부석사는 어느 때 어느 계절에 가든 항상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절 중의 절이다.

부석사 무량수전 하룻밤을 지내며 겨우 몇 시간 머무른 내가 부석사의 무엇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선묘 낭자의 의상을 향한 사랑도 무량수전 뒤편의 뜬 돌이나 무량수전 앞의 석등에서 바라보는 안량루도 그리움으로만 남겨 두어야지.

금성단 부석사 부근 소수서원 근처에 있는 금성단은 세종대왕의 여섯 째 아들이고 세조의 동생이었던 금성대군을 제사지내는 곳이다.

의성포가는 철다리 철다리를 건너면 천하 비경 물도리동에 닿는다. 아직까지 강물은 유유히 흐른다.

내성천의 회룡포 물도리동 내성천은 봉화군 물야면 북쪽 선달산과 옥석산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봉화면 포저리에 이르러 서쪽으로 꺾여 흐른다.

장안사 내성천을 건너면 비룡산이 한 눈에 들어오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1킬로미터쯤 올라가면 이곳 사람들이 남산절이라 부르는 장안사가 있다.

공갈못 노래비 고령 가야국 시대에 축조된 공갈못에는 '상주함창 공갈못 노래'가 전해온다.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 줄밥 내 따줄게

이 내 품에 잠자주소

잠자기는 어렵잖소

연밥 따기 늦어가오

상주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큰아가

연밥 줄밥 내 따줌세

백년 언약 맺어다오

백년 언약 어렵잖소

연밥 따기 늦어진다

- '상주함창 공갈못 노래'

 

경천대 크지 않은 소나무 숲이 우거진 경천대 국민 관광지

 

감나무는 한국 · 중국 · 일본 밖에서는 아무리 옮겨 심어도 살지 않는, 고집 있고 주체성이 대단한 동양의 나무다. 그래서인지 감나무를 칭송하는 예찬도 많다. 이를테면 감나무에는 사람이 따를 수 없는 오절 · 오상이 있다 했다. ① 수 - 몇백 년을 사니 목숨이 길고 ② 무조소無鳥巢 - 새가 깃을 들이지 않으며 ③ 무충 - 벌레가 꾀질 않고 ④ 가실嘉實 - 열매가 달길 그보다 더한 것이 없으며 ⑤ 목견木堅 - 나무가 단단하길 역시 비길 나무가 없다는 것이 감나무의 오절이다. 또 단풍 든 감나무 잎을 시엽지枾葉紙 또는 자연전自然箋이라 하여 글쓰는 종이가 되므로 '문'이 있고, 또 나무가 단단하여 화살촉으로 쓰였다 하여 '무'가 있으며, 만천하의 과실 가운데 속과 겉이 다르지 않고 똑같이 붉은 것은 감밖에 없다 하여 표리부동의 '충'이 있고, 이빠진 노인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과실이라 하여 '효'가 있으며, 또 서리를 이기고 만추까지 유일하게 버티니 '절'이 있다 했다. 문 · 무 · 충 · 효 · 절. 이것이 감나무의 오상五常이다. 또한 나무가 검고(흑) 잎이 푸르며(청) 꽃이 노랗고(황) 열매가 붉으며(적) 말린 곶감에서 흰가루(백)가 난다 하여 오색 · 오행 · 오덕 · 오방을 두루 갖춘 유일한 나무라 하여 우러러보기도 했다.

- 이규태, 감나무에 대하여

정기룡 경천대 남쪽 2백 미터 지점에는 바위가 있는데 임진왜란 때 정기룡 장군이 이곳에서 용마를 타고 훈련하겠다고 전해진다.

화달리 삼층석탑 조촐하지만 신비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사벌국 왕릉 옆에 신라 탑의 모습을 지닌 화달리 삼층석탑이 있다.

사벌국 왕릉 사벌면 화달리에 있는 사벌국의 왕릉은 정사에서는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없고 야사에만 등장한다.

 

가장 뚜렷한 침묵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입을 열고 얘기를 하는 것이다.

- 알베르 카뮈

 

인각사 선덕여왕 11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인각사에서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완성했다.

 

봄날의 구름은 산이라야 걸맞고, 여름 구름은 나무라야 어울린다. 가을 구름은 흐르는 물 위에, 겨울 구름은 드넓은 들판이라야 제격이다.

- 오종선 「소창지기」의 한 구절

 

낙동나루의 관수루 옛 시절의 낙동나루는 영남 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용무를 보러 가거나 과거를 보러 갈 때 꼭 거쳐야 하는 중요한 길목 중 하나였다.

 

백만 번이나 굽어진 푸른 산 속에

한가하게 행하여 낙동을 지난다

풀이 깊으니 아직도 이슬이 있고

솔이 고요하니 스스로 바람없는 것이다

가을 물은 오리 머리같이 푸르고

새벽놀은 성성의 피같이 붉도다

게을리 노는 손이 사해로 떠도는 한 시옹詩翁인 것을 누가 알리!

- 이규보

 

황지의 근원 물은 겨우 잔에 넘치는 데

냅다 흘러 예 와서는 넓기도 한지고

한 줄기에 예순 고을이 갈리고

나루 곳곳엔 돛대가 너울 너울

바다까지 곧바로 내려가길 사백 리

관풍에 왕래하는 장사꾼 배들

아침에 월파정을 떠나

저녁에 관수루에 묵네

누각 아래 배에서는 천만량을 실었으니

남민들이 혹독한 조세를 어찌 견디리

쌀독은 비고 도토리 밥도 없는데

강가에선 노래와 풍류 살찐 소를 잡는구나

나라의 사신들은 유성과 같건마는

강가의 해골들은 누가 허물이나 묻겠는가

- 김종직 '낙동요'

 

삶이 반복이며 삶의 아름다움이 반복에 있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살하며 (그에게 갑자기 닥쳐왔듯이) 파멸하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희망은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과일처럼 손짓하며 기억은 충분하지 않은, 쪼들리는 여비이지만 반복은 축복으로 만족시켜주는 매일매일의 빵이기 때문이다. 생을 마감하게 될 때면 그 사람이 삶은 반복이며 반복을 기다리는 기쁨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드러난다.

- 키에르케고르 반복의 개념에서

 

갈꽃이 피면

 

송기원

 

갈꽃이 피면 어이하리

함성도 없이 갈채도 없이, 산등성이에

너희들만 눈부시면 어이하리

눈멀고 귀 멀어 하얗게 표백되어

너희들만 나부끼면 어이하리

아랫녘 강어귀에는 기다리는 처녀

아직껏 붉은 입술로 기다리는 처녀

 

도리사 어느 날 신라의 스님 아도가 경주에 갔다가 돌아와 냉산 밑에 이르니 눈 덮인 겨울이었는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해 있었다. 아도 스님은 그곳에 절을 짓고 그곳을 '도리사'라 불렀다.

도리사 석탑(위)과 도리사 사리탑(아래) 1977년, 도리사에서 세모 사리탑이 발견되면서 도리사는 전국 불교 신자들의 명소가 되었다.

 

도리사 앞에는 도리꽃 피었더니

묵호자 가버린 뒤 아도가 왔네

뉘 알리요, 빛나던 신라 때 모습

모례의 움집 속엔 재뿐인 것을

- 김종직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노신

 

낙산동 고분 이곳에는 2~6세기에 만들어진 가야 · 신라시대의 고분인 2백5기의 무덤이 있다.

죽장동 5층석탑 선산읍 법륜사에 있는 죽장동 5층석탑은 우리나라에 있는 5층석탑 가운데 규모가 가장 커서 우러러 보아야 한다.

낙산동 3층석탑 보물 제469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탑은 바로 뒤편에 자리 잡은 병산과 어우러져 잔잔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야은 길재

 

팔공산 오동나무 숲에서 견훤에게 크게 졌던 왕건은 그로부터 8년 뒤인 935년에 지금의 선산 땅인 일선군의 숭신산성에 병력 10만 명을 모아 지금의 일선교 둘레인 태조 방천으로 불리는 낙동강 연안에서 견훤과 후삼국 통일을 위한 싸움을 벌여 크게 이겼다. 고려 태조 왕건은 이곳의 나루를 지나며 전승을 기려 '나의 나루'라는 뜻으로 '여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이듬해인 936년에는 견훤의 아들 신검이 고아면 관심리 앞들에서 왕건과 최후의 결전을 벌였는데 왕건이 이곳에서 신검을 막기 위해 병력을 주둔 시킨 곳이 '어검 평야', 곧 지금의 '어갱이'이고 그가 진을 쳤던 곳은 '장대'라고 불린다. 신검은 송심리 앞들에 진을 치고 잇다가 전세가 불리하자 군사를 거두어 괴평리로 옮겨 배수진을 쳤다. 송림리의 앞들은 지금도 이곳 사람들이 '발갱이', 곧 신검의 기세를 뿌리뽑았다고 하는 발검 평야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만 그들이 옛 역사를 알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또 왕건이 매봉산 서쪽 낮은 구릉으로 기습하여 신검을 사로잡은 곳은 점검 평야로서 지금의 '점갱이'가 되었다.

- 향토 사학자 김수기

 

걸어보지 못한 길

 

프로스트

 

단풍 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볼 수는 없어

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

잣나무 숲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간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나은 듯도 했지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사람이 밟은 흔적은

먼저 길과 비슷하기는 했지만

두 길은 그날 아침

똑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서리 내린 낙엽 위에는 아무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먼저 길은 다른 날 걸어 보리라! 생각했지요

인생 길이 한번 가면 어떤지 알고 있으니

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래서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것으로 내 운명이 달라졌노라고

 

 

큰 고통이야 말로 정신의 마지막 해방지다. 이 고통만이 우리를 최후의 깊이에 이르게 해준다.

- 니체 『즐거운 지식』에서

 

고통과 고뇌는 위대한 자각과 깊은 마음을 가지고 잇는 사람에겐 늘 필연적인 것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에서

 

우리들의 후방에는 더 이상 물러설 방어선이 없다. 우리 부대들은 적을 혼란에 빠뜨리고 그 균형을 깨뜨리기 위하여 끊임없이 역습을 감행해야 한다. …… 부산으로 철수한다는 것은 사상 최대의 살육을 의미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끝까지 싸워야 한다. …… 우리들은……차라리 같이 싸우다가 죽을 것이다.

- 워커 중장

 

왜관 기념비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통일의 그날은 아직도 요원하고 전쟁 기념물로 보존되고 잇는 왜관 인도교 밑을 낙동강은 유유히 흐르고 있다.

 

영령들이여!

우리는 보았노라, 들었노라, 기억하노라. 이곳 유학산 봉우리에

그리고 낙동강 기슭에 남긴 그때 그날, 그들의 희생을

고귀한 피의 발자욱을 우리 겨레는 영원히 소중하게 간직하리라

- 왜관 전적기념관 비문

 

한 줄기 낙동강 물에 조국의 운명을 걸어놓고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느냐 노예와 사막의 구렁에 빠지느냐? 피가 끓고 살이 튀는 화랑 정신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 지역의 전투에서 생생하게 아로새겼다

-다부동 승전비

 

다부원에서

 

조지훈

 

한 달 농성 끝에 나와 보는 다부원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피아彼我 공방의 포화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다부원은 이렇게도

대구大邱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의 국토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 해 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한 풍경이

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軍馬의 시체

 

스스로의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 옆에 쓰러진 괴리군 전사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을 받아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 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진실로 운명의 말마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안식이 있으랴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죽은 자도 산 자도 다함께

안주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하엽정 고개를 넘어 하빈면 묘리에는 박팽년의 11대 손인 박성수가 1747년에 세운 삼가헌이 잇고, 연꽃이 만발한 곳에 자리잡은 하엽정이 있다.

물과 같은 선을 실천하는 사람은 처신은 겸손하게 하고, 마음가짐은 고요하게 하며, 널리 베풀되 보답은 바라지 않고, 말은 진실되어 망녕되지 않게 하며, 정치에서는 좋은 성과를 얻고, 일에서는 좋은 효과를 거둔다. 또한 행동은 좋은 시기를 선택해서 한다. 그는 남과 다투지 않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지 잘못이 없다.

- 노자

 

자연에 대해 말하면서 자기에 대해서는 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 자신이 자연이라는 사실을-따라서 자연은 우리가 그것의 이름을 부를 때 느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다.

- 니체 『망각된 자연』(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에서

 

걷는다-멈춘다-걷는다. 이것이 이상적인 존재 방식이다.

- 한트케 『연필의 역사』에서

태고정 묫골은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3대 정문인 삼충각三忠閣이 있고 묫골 북쪽에는 태고정太古亭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오래 사느니라.

- 『논어』

 

금호琴湖는 영천시 서쪽 6킬로미터 지점에 있는데 금호읍 남쪽과 북쪽이 구릉지로 호수와 같아 갈대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 비파 소리와 같은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하여 금호라고 불렀다고 한다.

- 경상북도 『지명유래총람』(1984, 경북 교위)

 

낙동강 오염의 핵심 지역은 대구를 중심으로 한 김천, 구미, 달성과 구지쪽 중류권이다. 이곳엔 김천공단, 구미 국가 1~4공단, 왜관공단, 대구3공단, 다산주물공단, 서대구공단 등 지방공단급 이상의 중 · 대규모 공단이 밀집해 있다. 여기에다 대구 2백48만 5천, 김천 15만, 구미 29만, 달성 12만 5천 명 등 3백만 명 이상의 밀집 인구가 살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일 1백만 톤의 생활 하수가 나온다. 1991년 페놀이 유출된 것을 비롯해 낙동강으로 흐르는 중금속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을 '낙동강 오염 벨트'라고 부르고 있다. 낙동강 오염 벨트 지역은 대구 · 경북의 산업개발과 이에 따른 부산 · 경남의 수질 피해가 맞부닥치는 '딜레마' 지역이 된 셈이다.

- 《한겨레》 2001년 8월 8일자

 

사람들은 흐린 물에서 고기를 낚는 사람과 깊은 물에서 고기를 낚는 사람을 혼동하곤 한다

- 니체

 

가야산의 노을 붉게 물들고

금호강의 달밤 어부들의 피리 속에 깊어간다

늙고 늙은 강에 계수나무 솟은 듯

낙동강 물 헤치며 돛단배 하나 포구를 찾는다

- 작자 미상 「배성십경

 

어느 날 문득 강이 내게로 왔다.

- 『논어』「옹야」편

높은 곳에 오르는 뜻은 마음 넓히기를 힘씀이지 안계를 넓히기 위함이 아니다.

- 정구, 『가야산 기행』

 

현풍을 지나며

 

김지하

 

산 아래

구름 있어

 

현풍이다

 

바람도 바람

검은 바람

 

내 배 아래 바람

누이 바람

 

산 위에

물 있고

 

물 아래 산 있어

 

기이하다

 

오늘

여기 지나는

인연이 기이하다

 

훗날

다시 오는 날

 

흰 구름이

발끝을 적시리

 

산 위에

내 넋

높이 떠나리

 

박소선 할머니 전국적으로 알려진 현풍할매곰탕의 역사는 19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소선 할머니가 달성군 유가면에서 '일성식당'이라는 이름으로 가마솥에 끓여 뚝배기에 담아 팔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절 하나 연기와 안개 아무 일도 없는 속에 서 있으니, 어지러운 산 푸른 물방울 가을빛이 짙었네. 구름 사이 끊어진 돌층계 6, 7리요, 하늘 끝 먼 멧부리 천만경일세. 차 마시고 나니 솔처마에는 달 걸려 있고, 경 읽는 것 한참인데 바람부는 탑에 쇠잔한 종소리 들리네. 흐르는 시냇물 응당 옥띠玉帶 띤 손을 웃으리. 씻으려도 씻을 수 없는 이 티끌 속 발자취로다

- 김지대金之代 유가사에 대해

 

도동서원 선조 38년에 창건한 도동서원에는 한훤당 김굉필을 봉안하였다.

 

사람이 한가함보다 즐거움이 없다는 말은 아예 할 일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가하면 책을 읽을 수가 있고, 명승을 찾아노닐 수도 잇으며, 유익한 벗과 사귀기도 하고, 술을 마실 수도 있고, 책을 저술할 수도 있다. 천하의 즐거움 가운데 이보다 큰 것이 잇으랴.

- 유몽영

 

그들은 신의 창窓들을 과조하고 있다.

- 체코의 격언(고요한 한가로움에 대해)

 

에드거 포우의 '행복의 네 가지 조건'

첫 번째 '야외 생활'

두 번째 '어떤 존재에 대한 사랑'

세 번째 '모든 야심으로부터의 초월'

마지막 '창조 행위'

 

곽재우 장군의 묘 곽재우의 묘를 확실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시 전란이 소용돌이 치고 간 뒤 어느 누가 곽재우 장군의 무덤을 기억이나 했을까.

진흥왕 척경비 우리나라에서 세운 최초의 비인 평남 용강군 점제현의 신사비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이 비는 화앙산 기슭에 묻혀 있다가 1914년에 발견되었다.

 

가야의 산들

 

김지하

 

가야의 산들

심상치 않다

 

겨울 흰 햇살

너른 들에 우뚝 선

검은 봉우리

 

신내려

떨림

 

아아

가야여 가야여

 

망한 옛

동이의 아득아득한

솟대여

 

봉화군 명호면의 청량사 유리보전

해인사 대적광전 해인사의 이름은 '세계 일체가 바다에 찍히는 삼매'를 말한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유래하였다.

 

중첩한 산을 호령하며 미친 듯이 쏟아지는 물소리에

사람의 소리는 지척사이에도 분간하기 어렵고

시비의 소리 귀에 들릴까 언제나 두려움에

흐르는 물을 시켜 산을 모두 귀먹게 했구나.

- 최치원

 

그림 같은 무지개다리 급한 물결에 비치는데

다리위 지나는 사람 발길을 조심한다

나의 옷 걷고 물 건너려는 것

그대는 웃지마소

고운이 어찌 위태로운 길 밟았던가

- 김종직

 

조사祖師인 순응대덕은 신림대사에게서 공부하였고 대력(大曆, 766~779) 초년에 중국에 건너갔다. 마른나무 족에 의지하여 몸을 잊고 고승이 거처하는 산을 찾아가서 도를 얻었으며, 교학을 탐구하고 선禪의 세계에 깊이 들어갔다. 본국으로 돌아오자 영광스럽게도 나라에서 선발함을 받았다. …… 정원貞元 18년(802년) 10월 16일에 동지들을 데리고 이곳에 절을 세웠다. …… 이때 성목왕태후聖穆王太后께서 천하의 국모國母로 계시면서 불교도들을 아들처럼 양육하시다가 이 소문을 듣고 공경하며 기뻐하시어 날짜를 정하여 귀의하시고 좋은 음식과 재물을 내리셨다. 이것은 하늘의 도움을 받은 것이지만 사실은 땅에 의하여 인연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이 안개처럼 모여들 때 스님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하여 이정선백利貞禪伯이 뒤를 이어 공적을 세웠다. 중용의 도리를 행하여 절을 잘 다스렸고, 주역 대장大壯의 방침을 취하여 건축을 새롭게 하니 구름이 솟아오르듯, 노을이 퍼지듯 날마다 새롭고 달마다 좋아졌다. 이에 가야산의 빼어난 경치는 도를 성취하는 터전에 알맞게 되었으며 해인사의 귀환 보배는 더욱 큰 값어치를 지니게 되었다.

- 최치원 「신라가야산해인사 선안주원벽기新羅伽倻山海印寺 善安住院壁記」

 

팔만대장경 국보 제52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장경판고는 8만1천2백58매의 고려대장경판(국보 제32호)을 간직하고 있는 조선 초기의 건물로서, 여러 차례의 화재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소실됨 없이 보존되고 있다.

 

가능한 한 앉아 있지 마라. 야외에서나 자유로운 움직임에서 나온 생각이 아니면 믿지 마라. 모든 선입견은 내부에서 나온다. 오래 앉아 있는 것은-다시 한 번 강조한다-성령을 거스르는 죄이다. 단지 행동으로 옮긴 생각만이 가치를 갖는다.

- 니체

 

우포늪 우포늪은 우리나라 유일의 배후습지다. 이 늪은 1983년 식물학자인 정영호 박사에 의해서 자연늪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에서 태어나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사라져 가는 우리

그 사이의 빛나는 시간이 우리의 일생이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만년교 영산에는 그냥 지나치면 서운할 아름다운 돌다리가 남아 있다. 물 속에 드리운 보름달 같은 돌다리의 아름다움을 어디에 비유할 수 있을까.

연지못

 

낙동강

 

양우정

 

낙동강은 700리

몇 굽이더냐

눈물이라네

태백산太白山, 산골짜기

어린 초부樵夫의

구슬픈 노래 싣고

고이 흐르지

에-헤루 흘러서

어데를 가나

원정願情 말할 동무 찾아

흘러가지요

 

700리 강두던에

가을이 오면

낙엽이 주루루

강에 떨어져

다시 못을 고향길

뒤돌아보며

머나먼 700리를

길 떠나지요

에-헤루 흘러서

어데를 가나

구포 나루 님을 찾아

흘러간다내

 

낙동강은 700리

몇 나루더냐

나루마다 서러운

눈물이라네

 

덕천서원 덕천서원은 민족의 성산 지리산 자락에 있다. 그 아래로 진주 남강이 도도하게 흐른다.

정암나루 "정암 사공아 뱃머리 돌려라. 우리님 오시는데 마중갈까나. 아이고데고 성화가 났네."

 

나는 손만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다. 내 발도 항상 한몫을 하고 싶어한다. 때로는 들판을 가로질러서 때로는 종이 위에서 발은 자유롭고 견실하게 제몫을 담당해내고 있다.

- 니체

 

화왕산 남쪽에 있다. 고려 신돈의 어머니는 바로 이 절의 종이었다. 신돈이 죽음을 당하자 절도 폐사되었으니 고쳐 지으려다가 완성되기도 전에 돈의 일로 해서 다시 반대가 생겼기 때문에 헐어버렸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27권 「창녕현」편 불우조 옥천사

 

관룡사 용선대 관룡사가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아 있는 것은 용선대의 석가여래좌상에서 받은 강한 인상 때문일 것이다. 요사채의 담길을 따라 한적한 산길을 20여 분쯤 오르면 커다란 암벽 위에 부처님 한 분이 날렵하게 앉아 있다.

관룡사 돌장승 관룡사로 가는 좁은 산길을 오르다 보면 돌장승 한 쌍이 길손을 맞는다. 커다란 왕방울눈에 주먹코가 인상적이다.

곽재우 비 임진왜란 때 세운 공을 인정받아 경상좌방어사로 재직하던 곽재우는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창녕의 화왕산성에서 왜군과 맞섰고 그 싸움에서 왜군 수천 명을 무찔렀다.

 

방랑과 변화를 사랑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 바그너(독일의 작곡가), 여행에 대해

 

내게 여행은 정신의 젊음을 되돌려주는 샘물이다.

- 안데르센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은 책을 한 페이지밖에 읽지 않은 것이 된다.

- 아우구스티누스(로마)

 

햇빛 속에 이따금 머물 줄 아는 것만이라도 사람의 흐르는 세월은 다 흐린 것이리라, 다 흐린 것 아니다.

- 박재삼, 「남강 가에서」

 

주남 저수지에 와서

 

정일근

 

죽어 썩어가는 철새들의 주검과

등이 휘어진 기형 물고기들을 본다

우리나라 애국가 속으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속으로

무리지어 힘차게 날아가던 저 새들이

딸아이의 동화 속에서

함께 춤추고 노래하던 어린 물고기들이

여기저기 죽어 떠다닌다

보아라 어느 시인이

물의 안식과 사랑을 노래할 것인가

기쁨과 평등과 희망이 출렁이던 물에는

수은, 납, 구리, 카드뮴, 아연이 녹아 출렁이고

마산 앞바다에서 온산에서 금호강에서

아프다 아프다 하며 죽어가는 물과 강과 바다

이제 새와 물고기들은 우리 곁을 떠나리라

시인은 더 이상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못하리라

물과 산이 마르고

나무들 또한 꽃 피고 열매 맺지 못하리라

병이여 깊은 이 강산의 병이여

날개 꺾인 새들의 울음소리

등뼈가 휘어지는 고통의 소리

내 몸 속에서 내 몸이 썩어 들끓어 오르는

저주와 회한의 소리 듣는다

주남 저수지에 와서

 

문창축제 굿이요 동네 사람 다 모이소

지신 봅자 지신아 어연아 지진아

천년이나 울리고 만년이나 울리소이

…… 금일 명장 시헌공 극락 세계로 가옵시고

금년 농사짓거든 대풍년이 되시옵소서

아들딸을 잘 길러 효자 충신 점지하소서

우리 동네 농부들 동서남북 다 뎅기로

관제 구설 다 막아서 하늘같이 넘기소이

조푸굿에 집 나간다 어서 치고 술 묵자

- 문창제놀이 중 '성신신고'

 

영남루 수많은 사연을 지닌 채 흘러온 밀양강을 아름다운 절집 청도 운문사와 제약산 자락의 표충사 그리고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한 곳이며 영남 제일루인 영남루(보물 제174호)가 하직인사를 보냈으리라.

 

논개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은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이 흘러라

아리답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맞추었네

아! 강낭콩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 길이 푸르르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아니 흐르랴아!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남강 가에서

 

박재삼

 

강 바닥 모래알 스스로 도는

진주 남강 물 맑은 물같이는,

새로 생긴 흔이랴 반짝어리는

진주 남강 물빛 밝은 물같이는,

사람은 애초부터 다 그렇게 흐를 수 없다

 

강물에 마음 흘린 사람 두엇

햇빛 속에 이따금 머물 줄 아는 것만이라도

 

사람의 흐르는 세월은

다 흐린 것 아니다, 다 흐린 것 아니다.

 

그런 것을 재미 삼아 횟거리나 장만해 놓고

강물 보는 사람이나 맞이하는 심사로

막판에 강가에 술집 차릴 만한 세상이긴 한 것을

가을날 진주 남강 가에서 한정없이 한정없이 느껴워한다.

 

 

대지는 아직도 위대한 영혼들에게 열려 있다. 거기에는 의로운 사람들을 위한 장소, 하나 혹은 두 사람을 위한 자리, 침묵의 바다 냄새가 풍겨오는 그러한 장소들이 남아 있다.

- 니체

 

 

낙동강역 낙동강역은 작지만 아름다운 역이다. 일제 때인 1906년에 지어졌다.

 

 

뒷기미 나리는 눈물의 나리

임을랑 보내고 나 어찌 살라고

아이고데고…… 성화가 났네

- 뒷기미 뱃노래

 

 

부의 동쪽 41리에 있다. 원으로부터 남으로 5~6리 가면 낭떠러지를 따라 진도가 있어 매우 위험한데 그 한 구비는 돌을 깨고 길을 만들었으므로 내려다보면 천길의 연못인데 물빛이 짙은 푸른빛이고 사람들이 모두 마음을 조리고 두려운 걸음으로 지나간다. 예전에 한 수령이 떨어져서 물에 빠진 까닭에 지금까지 원추암이라고 부른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역원」조 작원酌院에 대해

 

물소리에 귀를 모을 일이다. 그것은 우주의 맥박이고 세월이 흘러가는 소리이고 우리가 살 만큼 살다가 갈 곳이 어디인가를 소리 없는 소리로 깨우쳐줄 것이다."

- 법정 스님 『말없는 관찰』

 

가야진사伽倻津祠

 

물금역

 

낙동강의 바람

 

강은교

 

그대 있는 곳을

나는 아네.

그러게 이리 정신없이

몸 흔드는 게 아닌가.

 

그대 잠들지 않는 이유를

나는 아네.

그러게 이리 한많은 소리로

뼈 부서지는 게 아닌가.

 

살이 살을 뜯는 거리에서

울음떼 무성한 언덕쯤에서

출렁임이 또 한 출렁임 낳아

돌아가지 못하는 것들이여.

 

오늘은 돌아가지 못하는 것들끼리

저무는 해를 만지고 있는데

그대 가는 곳을

나는 아네.

얼었다 녹으며

녹았다 얼며

 

이 구름 밑

살지 못해 죽는 그대

오, 죽지 못해 사는 그대.

 

김수로왕릉 지금의 김해시가 금관가야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듯이 김수로왕과 그의 아내였던 허씨의 무덤이 김해시에 남아 있다.

 

통도사 통도사의 대웅전은 금강계단을 등지고 서 있다. 부처의 형상이 놓이지 않았더라도 대웅전의 불단 자리를 보고 예배를 하면 석가여래 사리탑에 예배를 하는 형식이 되도록 되어 있다.

 

닮은 것과 닮은 것 사이에 마음이 흐른다.

- 인도의 잠언시

 

사람을 대하는 곳에 세상을 기화할 수 있고, 물건을 접하는 곳에 천지자연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나니라. 만일 이 두 가지 길을 버리고 도를 구한다면, 이는 허무에 가깝고 실지를 떠난 것이니 천만 번 법경을 외운들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 최시형(동학의 2대 교주) 강원도 영월군 직곡리 박용걸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대인접물'에 대해

 

1875년의 부산의 모습은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대창동, 남포동 일대는 그 뒤에 매축한 곳으로 그때는 모두 바다였다. 번화가로 알려진 광복동 같은 곳도 그때는 한복판에 도랑이 있고 풀만 무성하여 여우라도 나올 듯했다.

- 오이케가다스케 『부산 개항 50주년 회고록』(1926년 11월)

 내가 첫발을 들여놓은 부산항은 흰 모래와 푸른 솔의 해안에 종일 파도가 밀려 왔다갔다하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작은 어촌이었다. 육지에는 한국인들이 소뼈와 소가죽을 햇빛에 말리고 있었을 뿐이다. 배를 매어둘 만한 부두조차 없었다.

- 오쿠라 가하치로

 

나가사키항에서 한국의 부산항까지는 증기선으로 열다섯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부산에서 1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입구가 있는 낙동강은, 수심 1.5미터의 물을 거슬러 밀양에서 80틸로미터를 증기선으로 항해할 수 있고, 수심 1.2미터의 물을 거슬러 정크선으로 사문까지 1백60킬로미터를 더 갈 수 잇으며, 거기서는 짐을 가벼운 견인 포트에 옮겨 싣고 연안으로부터 2백74킬로미터 떨어진 상진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 이용 가능한 수로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서울-부산간 철도가 곧 이루어지리라는 어렴풋한 전망과 더불어부산은 상업의 중요한 중심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부산을 포함하고 있는 경상도 지방은 여덟 개의 지방(현재는 행정적인 목적으로 13개임)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다. 또 경상도 지방은 전라도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현재 한국에서 가장 번창하고 있는, 비옥한 지방임이 확실하다…… 나는 증기선 갑판의 먼 거리에서 한국인들을 처음 보았다…… 한국인들은 참신한 인상을 주었다. 그들은 중국인과도 일본인과도 닮지 않은 반면, 그 두 민족보다 훨씬 잘생겼다. 한국인의 체격은 일본인보다 훨씬 좋다. 평균 신장은 1백63.4센티미터이지만, 부피가 큰 흰옷 때문에 키가 더욱 커 보인다. 또 벗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없는 높다란 관 모양과 모자 때문에도 키는 더 커 보인다.

-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 부산과 낙동강에 대해

 

을숙도

 

박라연

 

몇몇은 공중에 둥지를 틀었다

가난은 깃털 같은 죄라며

아직도 물이 두려운 사람들

대낮에도 발이 빠진다

오랜 설움 안으로 안으로만 삭여온 녹슨 종처럼

눈물꽃 송이송이 목마른 갈대숲 적시고

삐삐꽃 쑥부쟁이 떠난 자리에

죽어도 죽지 않는 풀뿌리들 돋아나

동행을 재촉한다 모두가

잊혀진 어제는 눈발에 젖어

상처만큼 깊어지는 강물이 되어

한 세상 눈시린 풍경으로 떤다

뼈아픈 그림자 허옇게 드리운 채

속죄하며 흔들리는 늪

어둡고 쓸쓸한 지상의 한 끝에서

우리를 잠시 취하게 하는 가을산의 어스름

하염없이 울고 가는 두루미떼 따라가면

밀물과 썰물이 무작정 섞여지듯

우리들 인심도 그렇게 섞일 수 있을까

그대 묻힐 땅 한 뼘 없어도

을숙도의 뿌리 끝에

해마다 새끼를 치는 희망을 치는

강줄기 따라 만나고 헤어진 이웃들

한 해의 철새가 되어 그 저녁 하늘로 날아들면

우리도 등뼈에 묻어둔 비밀 몇 포기씩 안고

높이 더 높이 날아올라

만삭의 죄를 풀고 가벼이 아침을 따라 내려오리라

외로운 직립의 투박한 을숙도 뿌리 곁으로

 

낙동강

 

이동순

 

…… 잠시도 쉬지 않고 퍼부어대는 저 독하디 독한

강가의 쓰레기 매립

가축 분뇨 댐 공사에 광산 폐수

농약 생활 하수 가두리 양식 찌꺼기…… 탁한 강물을 마셔서

마음조차 흐려진 이곳 강 유역의 주민들은…… 밤마다 그들의 목을 휘감아오는

저 차고 무거운 쇠사슬이

사실은 죽은 강줄기의 망령임을

소스라쳐 깨어서도 눈치채지 못한다

 

낙동강

 

이기철

 

마흔몇 해를 낙동강 가에 살면서 나는 낙동강을 한 번도 노래하지 못했다

아카시아 그루터기같이 가시만 성성한

내 여름 몸살 같은 낙동강

내 송곳니 빼어서 던지며 예쁜 새 이 나 달라고 물살 세던 낙동강

댕기머리 내 누미 삼베옷 빨아 말려 입던 낙동강

지금은, 뒤웅박이 쌀 팔아 내 중학등록금, 검정운동화 사주시던

어머니 무덤만 황혼 속에 잠들어 있는 낙동강

 

낙동강이여, 부르면 몇 년 추억인 낙동강

거기서 스탠더드 영어책 배우고 페니실린 주사 맞아 말라리아 쫓아내고

거기서 쇠똥종이 공책 찢어 싸리꽃 같은 순이한테 편지 쓰던 낙동강

 

노을이여, 아무리 아름답게 걸려도, 그 드리운 치마폭엔 절로 한숨이 배어 있는 낙동강 노을이여

왜 피 같은 거, 죽음 같은 거, 왜 못견디게 그리운 것들만 네 곁에 서면 도라지꽃으로 피어오는지

서른아홉 해 전의 소련제 장총과 함경도 방언이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왜 너는 말하지 않느냐

아직도 탄피 묻힌 골짜기엔 원추리꽃 피고

네 곁에 공장 짓고 학교를 세우던 사람들도,

너의 맨살 배고 잠들었던 너를 가로질러 한 달에 한 번 월급 받는 나도

장롱 속에 담요를 내 아이 덮어주듯 네 추운 강자락 덮어주지 못했다

부디 너는 손톱 밑에 흙 넣지 말고 살거래이, 제발 너는 애비처럼

손등이 누릉지기 되지는 말거래이, 어머니 소원이던 나는 지금 흙 대신 분필을 만지는 선생이 되어 끝없는 회의의 교실을 오고 가지만

복도를 오가면서 저 스무살들의 남방과 블라우스 속에 감춰진 분노가 무엇인지를

그들 분노의 심연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면서도 그들의 연못 속에 발을 꽂진 못했다

강원도의 물줄기 불러모아, 봉화 청송을 마음 급해 쫓아오다가 돌밭에 가슴 찢긴 낙동강

 

금호강 남강 그 옷고름 같은 지류들도 다독거리며

물으면 터질까봐 입 다물고 흘러가는 낙동강

남원 거창 합천을 쓸어모아 남해로 달려갈 때

네 물결에 발을 씻고 잠드는 농부 있거든

낙동강이여, 보습날에 다친 그들의 발목 아물게 하라

네 흐르는 물소리 속에 첫밤을 맞는 신부 있거든 그녀에게 해 같은 첫 아일 갖게 하라

 

내 낙동강이라 부르지 않을 때 이 땅의 것 아닌 낙동강이여

내 낙동강이라 부르면 어느새 달려와 소나무 껍질 같은 내 삼촌의 목소리 되는 낙동강이여

 

마흔이 되어서도 겁 많은 사내 하나를 질타하라

닦아도 닦아도 닦이지 않는 사내 하나의 녹슨 심장을 난타하라

욕망에 눈먼 사람들이 네 위에 열 번 나라를 허물고 세워도

천년을 길 바꾸지 않는, 천년을 낙동강일 뿐인

댕기풀과 다람쥐와 내 맨발의 무덤일 낙동강.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