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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2. 26. 12:37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50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서울편

 

 

 

유홍준 지음

2017, 창비

 

대야도서관

SB126065

 

981.1

유95ㄴ  9  c.2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

 

'답사기', 드디어 서울을 이야기하다!

 

'답사기'가 돌고 돌아 마침내 서울로 들어왔다. 척째 권 '남도답사 일번지'가 세상에 나온 지 25년 만이다. '답사기' 새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오랜 독자들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정년(停年)이라는 것을 잊고 답사기에서 손을 놓지 못하여 마침내 한양 입성까지 하게 되었다.

실제로 '답사기'를 쓰면서 나는 항시 옛 친구 같은 독자들과 함께 가고 있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내가 삶의 충고로 받아들이는 격언의 하나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인의 진득한 마음자세이다. 어쩌면 그렇게 독자들과 함께 가고자 했기 때문에 '답사기'가 장수하면서 이렇게 멀리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계속 그렇게 갈 것이다.

- 「책머리에」에서

 

 

 

유홍준 兪弘濬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학과,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석사),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박사)를 졸업했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뒤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와 제1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1985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과 대구에서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공개강좌를 개설했으며,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대표를 맡았다.
영남대 교수 및 박물관장,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 문화재청장을 역임했다.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후 석좌교수로 있으며, 가재울미술사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국내편 1~10, 일본편 1~4), 평론집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 『다시 현실과 전통의 지평에서』, 미술사 저술 『조선시대 화론 연구』 『화인열전』(1·2) 『완당평전』(1~3) 『국보순례』 『명작순례』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1~3) 『석농화원』(공역) 『안목』 등이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저작상(1998), 제18회 만해문학상(2003) 등을 수상했다.

 

차례

 

책을 펴내며

제1부 종묘

종묘

종묘 예찬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 건축가 승효상의 고백 / 프랭크 게리 / 종묘와 사직 / 영녕전 / 공신당과 칠사당

종묘 제례

「보태평」과 「정대업」은 영원하리라
『국조오례의』 / 「보태평」과 「정대업」 / 세종대왕의 절대음감 / 종묘제례 / 이건용의 「전폐희문」 / 향대청과 재궁 / 전사청 / 정전, 영녕전, 악공청 / 신도


제2부 창덕궁

돈화문에서 인정전까지

인간적 체취가 살아 있는 궁궐
궁궐의 도시, 서울 / 5대 궁궐 / 경복궁과 창덕궁 / 「동궐도」 / 돈화문 / 내병조와 ‘찬수개화’ / 금천교 / 인정전 / ‘검이불루 화이불치’

선정전과 희정당

조선 건축의 모든 것이 창덕궁에 있다
창덕궁의 구조 / 내전의 파사드 / 빈청과 어차고 / 선정전 / 유교 이데올로기와 경연 / 희정당 / 선기옥형과 하월지 / 창덕궁 대화재와 복구 / 내전 벽화 프로젝트

대조전과 성정각

조선의 왕과 왕자들은 이렇게 살았다
대조전 / 경훈각 뒷간 / 대조전 화계 / 중희당 / 성정각 / 희우루 / 관물헌 / 승화루 서목

낙선재

문예군주 헌종과 이왕가의 여인들
헌종 / 낙선재 / 『보소당 인존』과 낙선재 현판 / 허련과 헌종의 만남 / 낙선재 뒤란 / 이왕가 여인들 / 이구와 줄리아


제3부 창덕궁 후원

부용정

자연을 경영하는 우리나라 정원의 백미
자연과 정원 / 창덕궁 호랑이 / 부용지 진입로 / 사정기비각 / 영화당 / 부용정 / 다산 정약용

규장각 주합루

임금과 신하가 하나가 되던 궁궐의 후원
어수문 / 취병 울타리 / 정조와 규장각 / 서호수와 『규장총목』 / 차비대령화원 / 단원 김홍도 / 희우정, 천석정, 서향각 / 표암 강세황

애련정과 연경당

풍광의 즐거움만이라면 나는 이를 취하지 않겠노라
불로문 / 숙종의 애련정 기문 / 의두합 기오헌 / 효명세자의 「의두합 상량문」 / 어수당 / 연경당 / 「춘앵전」

존덕정과 옥류천

만천명월(萬川明月) 주인옹은 말한다
후원 정자의 모습과 특징 / 관람지 / 관람정 / 존덕정 / 만천명월주인옹 / 옥류천 유상곡수 / 조선의 마지막 재궁 / 수령 700년 향나무


제4부 창경궁

외조와 치조

영조대왕의 꿈과 한이 서린 궁궐
창경궁 조망 / 명정전 / 창경궁의 역사 / 홍화문과 영조의 균역법 / 옥천교와 주자소 / 문정전과 숭문당 / 사도세자와 정조

내전

전각에 서려 있는 그 많은 궁중비사
함인정 / 환경전 / 소현세자 / 경춘전과 정조·순조의 기문 / 통명전 / 인현왕후와 장희빈 / 양화당과 내명부의 여인들 / 영춘헌과 집복헌

창경궁에서 창경원으로

춘당지 연못에는 원앙이 날아든다
자경전 / 혜경궁과 『한중록』 / 풍기대 / 앙부일구 / 성종 태실 / 명나라 석탑과 식물원 / 춘당대 관덕정

 

|종묘 정전| 종묘는 조선 역대 제왕과 왕비들의 혼을 모신 사당이다. 궁궐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라면, 종묘는 죽음의 공간이자 영혼을 위한 공간으로 조선왕조의 신전이다.

|정전 앞에 선 프랭크 게리| 파격적인 건축으로 이름 높은 프랭크 게리는 단순하면서 장엄한 종묘 정전 앞에서 조용히 이 건축의 미학을 음미하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본 정전의 풍경| 종묘를 부감법으로 내려다보면 서울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자연 속에 파묻혀 있는 자리앉음새가 확연히 드러난다. 과연 신전이 들어설 만한 곳이라는 감탄이 나온다.

|영녕전| 더 이상 종묘에서 모실 수 없는 조상의 신주를 모시기 위해 태종은 영녕전이라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고 영원히 후손들과 함께할 수 있게 했다.

|증축을 거듭한 영녕전| 왕조가 이어지면서 신주를 모실 분이 늘어나 정전과 영녕전을 계속 증축할 수밖에 없었다. 헌종 2년에 마지막으로 영녕전을 증축하여 현재의 규모인 16칸을 갖추었다.

|정전의 열주| 19분의 왕(왕비까지 49위)을 모신 각 산실 앞에는 열주들이 늘어서 있어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종묘 정전 신위 봉안도|

|종묘 영녕전 신위 봉안도|

|공신당| 공신당에는 각 임금마다 적게는 2명, 많게는 7명의 근신이 배향되어 모두 83명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종묘의 공신당에 배향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명예이고 가문의 영광이지만 그 인물 선정을 둘러싼 이론이 많다.

|공신당 내부| 공신당 내부에는 각 임금마다 배향 대신의 신위가 여러 칸으로 나뉘어 모셔져 있어 자못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칠사당 내부| 칠사당의 내부에는 붉은색의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데 창을 통해 들어오는 광선으로 인해 더욱 신령스런 분위기가 있다.

|종묘 건축의 미학| 100미터가 넘는 맞배지붕이 19개의 둥근 기둥에 의지하여 대지에 낮게 내려앉아 불가사의할 정도로 침묵이 감도는 공간을 보여준다는 점에 정전 건축미의 핵심이 있다.

|종묘의 낮은 담장| 아주 낮게 둘러져 있는 담장은 조용히 정전을 기록하게 만들고 있다. 정전에서 내다보면 담의 지붕이 거의 발아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종묘의 가을| 종묘의 단풍은 참나무 느티나무의 황갈색이 주조를 이룬 가운데 노란 은행나무와 빨간 단풍나무가 점점이 어우러져 있어, 늦가을 끝자락에 가면 인생의 황혼 녘에 찾아오는 처연한 미학을 느낄 수 있다.

|종묘의 겨울| 눈이 내려 정전의 지붕이 하얗게 덮일 때 종묘는 거대한 수묵 진경산수화 같은 명장면을 연출한다.

|『국조오례의』| 예를 제정하고 악을 짓는 '예악의 제도화'는 유교국가 정치의 핵심이었고, 조선은 예악의 정립을 위해 『국조오례의』를 편찬했다.

|편경| 계몽군주이자 자신이 절대음감을 지녔던 세종은 박연에게 제례악으로 쓸 순 국산 편경을 제작하도록 명했다.

|종묘제례 장면| 오늘날의 종묘제례는 간소화되어 행사 당일 아침 경복궁 광화문에서 출발하는 어가와 제관의 행렬을 시작으로 오전에는 영녕전에서 제향하고 오후에는 정전에서 제향을 치른다.

|신실 내부| 종묘제례 당일 새벽에는 정전과 영녕전 각 실의 문을 열고 신을 맞이한다.

|신실 앞에 차려진 제상| 제상은 19개 신실 중 태조 · 태종 · 세종 3위만 진설하고 나머지 16위는 술만 올린다.

|종묘제례악 연주| 종묘제례악에서 악사는 두 팀으로 나누어 배치했고, 악기는 박 · 편종 · 편경 · 피리 · 장구 · 대금 · 해금 · 북 · 아쟁 · 태평소 · 축 · 어 등 15가지로 편성했다.

|팔일무 장면| 제례악에 맞추어 추는 춤은 정연하게 열을 지어 춘다고 해서 '일무'라고 한다. 가로세로 8명씩이면 64명이 추는 팔일무다.

|제례 진행 과정들| 1. 입실을 기다리는 제관 2. 신위 앞에 진설된 제상 3. 신위마다 잔을 올리는 장면 4. 잔에 술을 담는 과정 5. 축문을 받들어 모시는 장면 6. 제례가 끝난 뒤 축문을 태우는 장면

|종묘제례를 바라보는 관람객들| 1970년대에만 해도 종묘제례 참관인은 월대 위로 올라가 악사와 팔일무 자리만 비워두고 제례 과정을 구경했다. 한번 들어가면 밖으로 나오기도 힘들었다.

|궤(簋)| 메조와 차조를 담는 제기

|보(簠)| 쌀을 담는 제기

|형(鉶)| 간을 한 국을 담는 제기

|등(登)| 간을 하지 않은 국을 담는 제기

|작(爵)| 술잔

|종묘의 건물과 연못| 위로부터 재궁, 향대청, 중연지, 망묘루

|악공청| 악사와 일무원의 공간인 악공청을 보면 종묘제례에서 음악과 춤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실감한다.

|한양의 5대 궁궐| 서울에 5개의 궁궐이 생기게 된 내력에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의 빛과 그림자가 서려 있다.

|창덕궁 전경| 서울은 '궁궐의 도시'라고 불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중에서도 조선 궁궐의 멋을 한껏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창덕궁이다.

|「동궐도」|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1830년 무렵에 그린 「동궐도(東闕圖)」(국보 제249호)를 보면 말로만 들어온 구중궁궐이 장대하게 펼쳐진다. 원래 16권의 화첩으로 만들어진 「동궐도」는 현재 그중 2부가 남아 고려대는 화첩 그대로, 동아대는 16폭 병풍으로 꾸며진 것을 소장하고 있다.

|돈화문| 창덕궁의 정문은 돈화문이다. 돈화문 앞 월대는 제법 크고, 옆면이 잘 다듬어진 장대석으로 둘려 있어 번듯하다.

|창덕궁 궐내각사| 창덕궁 안은 정원 같은 편안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나무들 너머로 보이는 전각들이 궁궐임을 확실히 느끼게 한다.

|내병조 건물| 궁궐 안에 근무하던 병조 관리의 출장소 같은 곳이다. 궁궐 안에 있는 병조라고 해서 내병조라 부른다.

|금천교| 창덕궁 금천을 가로지른 금천교는 한양 건설을 도맡았던 전설적인 토목 · 건설 기술자 박자청이 설계 · 시공한 명작이다.

|금천교 돌짐승 조각들| 금천교 양쪽 기둥엔 네 마리의 동물이 조각되어 있는데 어떤 동물도 마주치기만 하면 도망치고 만다는 전설 속 백수의 왕인 산예(철번째, 두번째)다. 금천교를 받치고 있는 쌍무지개 아치를 보면 북쪽엔 돌거북(세번째)이, 남쪽엔 홍예 사이의 부재에는 귀면(네번째)이 조각되어 있다.

|금천교와 진선문| 삐뚜름히 놓인 금천교가 궁궐의 정연함을 흩트려놓았다. 금천교를 복원하면서 진선문과 일지선을 이루게 하지 않고 금천 호안석축과 직각이 되게 했기 때문에 나온 실수였다.

|진선문 안쪽| 진선문에서 숙장문을 바라보면 왼쪽엔 인정문과 인정전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긴 회랑이 펼쳐진다. 이 회랑 자리에는 본래 오늘날로 치면 경호실인 호위청과 총무과인 상서원이 있었다.

|창덕궁의 하이라이트 인정전| 부감법으로 내려다보면 인정전은 회랑으로 둘려 있어 품위와 권위가 살아나고 있음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정전| 정면 5칸의 중층 팔작지붕으로, 품위 있고 듬직하고 잘생겼다. 낮은 듯 높게 쌓은 석축 위에 올라앉아 있어 대지에 내려앉은 안정감이 있다.

|인정전 내부의 용상| 일제강점기 근대식 알현소로 개조되었던 인정전은 현재 복원되어 용상의 단을 높여 세웠으나, 마룻바닥은 그대로 두어 상처의 흔적을 남겼다.

|인정전 천장| 천장엔 왕의 공간임을 상징하는 봉항 한 쌍이 조각되어 있다. 그 조각 솜씨가 대단히 뛰어나고 채색이 매우 아름답다.

|창덕궁 궁궐 건축의 미학| 후원의 아름다움에 가려 종종 그 건축적 가치가 지워지곤 하는 창덕궁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의 미학을 구현해놓은 대표적인 궁궐이다.

 

새로 궁궐을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 新作宮室 儉而不陋 華而不侈

- 김부식, 『삼국사기』「백제본기」 온조왕 15년(기원전 4)조에서 백제의 궁궐 건축에 대해

 

|'검이불루 화이불치'| 한 미장원이 내건 입간판에 '검이불루 화이불치, 최고의 미용실'이라고 쓰여 있다.

|창덕궁 전경| 창덕궁 건축의 조선적 특징과 세련미는 3조의 배치에서 두드러진다. 창덕궁의 3조는 산자락을 따라가며 어깨를 맞대듯 나란히 배치되었다. 그로 인해 창덕궁은 편안한 한국식 공간으로 인간적 체취를 풍긴다.

|경복궁 전경| 경복궁은 외조, 치조, 연조의 3조가 남북 일직선상에 있다. 그래서 경복궁에는 『주례』에 충실한 의례적인 긴장감이 있다.

|상서원과 호위청| 호위청은 임금을 뒤따르며 호위하는 경호실이고, 상서원은 옥새, 외교문서, 과거 합격자 사령장 등을 관리하는 곳이다.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 총무과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부서였다.

|선정전 앞 빈터| 숙장문을 들어서면 넓은 빈터 너머 늠름하게 잘생긴 건물이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어깨를 맞대고 길게 펼쳐져 있다. 가까운 맨 왼쪽 건물은 임금이 신하들과 국정을 논하며 나랏일을 보던 치조의 선정전이다.

|순종과 황후의 어차| 순종황제가 탔던 어차는 1903년에 미국의 제너럴모터스사가 제작한 캐딜락 리무진이고 황후가 탄 어차는 1909년 영국 다임러사에서 제작한 것으로, 오늘날 세계적으로 드문 앤티크 자동차가 되었다.

|선정전| 인조반정으로 인한 창덕궁 대화재로 소실된 선정전을 복원하면서 인왕산에 있던 인경궁 건물을 옮겨와 창덕궁 전각 중 유일한 청기와 집으로 남았다.

|선정전 내부| 보물 제814호인 선정전은 치조의 핵심 건물로 오늘날로 치면 국무회의나 비서관 회의 등이 열렸던 곳이다. 조선의 임금들은 여기에서 매일같이 대신들과 정치에 관해 논의했다.

|선정전 현판| 베풀 선(宣) 자, 정사 정(政) 자를 쓴 선정전이라는 이름에는 임금이 정치를 베푼다는 뜻이 담겨 있는데, 옛날엔 이를 청정(聽政)이라고도 했다.

|희정당 정면| 희정당은 앞쪽에 새로 신관까지 지어 창덕궁 어느 건물보다도 화려하다. 순종황제 때는 자동차가 신관 문앞까지 들어오도록 신관 정면에 캐노피 건물을 세웠다.

|희정당| 희정당은 본래 임금의 서재이기 때문에 규모가 크지 않았으나 순조가 희정당을 편전으로 삼으면서 창덕궁의 핵심 건물로 부상해 규모가 커졌고, 순종황제 때는 손님을 맞이하는 접견실로 쓰이면서 더욱 위상이 높아졌다.

|희정당 전각| 보물 제815호인 희정당 건물은 정면 11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기단부를 장대석 5단으로 거의 담장 높이까지 높직이 올려쌓아 자못 장중하다.

|『매일신보』에 실린 창덕궁 화재 소식| 1917년 11월 10일에 일어난 화재로 대조전, 희정당, 경훈각 등 침전의 주요 건물이 전소되었다. 당시 많은 신문들이 호외를 발행하고 연일 대서특필할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희정당 내부| 전소된 내전 건물을 복원하면서 전각 내부를 우리나라 화가들이 그린 벽화로 장식하기로 결정함으로써 한국미술사에서 전례 없는 장대한 미술 프로젝트가 시행되었다.

|희정당 벽화| 「총석정절경도」(김규진, 비단에 채색, 1920)

|희정당 벽화| 「금강산만물초승경도」(김규진, 비단에 채색, 1920)

|대조전 전체 모습| 궁궐 한가운데 있는 지밀한 곳이기 때문에 겹겹이 행각으로 둘러싸여 있고, 입구에는 별도의 대문까지 있다.

|대조전| 대조전 건물은 정면 9칸으로 그 규모가 상당히 크고, 앞에는 넓고 높직한 월대가 있어 장중함을 더한다.

|대조전 내부| 대조전의 실내 장식은 1920년 복원 때 근대식으로 바뀌었다. 창호지 대신 유리창과 무쇠로 만든 고전적인 전등이 달렸고, 기둥과 창방에는 예쁜 봉황 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대조전 벽화| 「백학도」(김은호, 비단에 채색, 1920)

|경훈각 회랑 바깥 풍경| 대조전 뒤쪽의 큰 건물인 경훈각은 임금과 왕실 가족들의 휴식 공간이다. 희정당, 대조전, 경훈각은 긴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경훈각 실내| 현재의 경훈각은 정면 9칸, 측면 4칸 건물로, 가운데에 3칸의 대청을 두고 동서벽 상인방에는 벽화를 걸었으며 좌우로 2칸씩 온돌을 들였다.

|매우틀| 경훈각 서북쪽으로 돌아나가는 모서리 섬돌 바로 위에 작은 나무문이 하나 나 있다. 경훈각 뒷간으로, 안에는 용변이 담긴 그릇을 끌어내는 바퀴 달린 편자가 있다. 사진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동식 변기 매우틀이다.

|경훈각 벽화| 위는 노수현이 그린 「조일선관도」(비단에 채색, 1920)이고, 아래는 이상범이 그린 「삼선관파도」(비단에 채색, 1920)이다.

|대조전 화계| 경훈각을 돌아나오면 산자락 따라 길게 뻗은 화계를 만난다. 아름다운 꽃계단이다. 장대석을 4단으로 쌓아올린 화계 위로 붉은 벽돌과 검은 기와가 어우러진 꽃담장이 높직이 올라앉아 있다.

|성정각| 왕세자의 독서와 서연이 이루어진 건물로, 동궁의 정전인 중희당은 후원으로 들어가는 길을 내면서 헐리고 맨 서쪽에 있는 성정각만 남았다.

|희우루 현판| 성정각 동쪽 머리에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려 기뻐한다'는 뜻을 담은 희우루(喜雨樓) 현판이 걸려 있다. 정조 당시 극심한 가뭄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누각 중건 공사를 개시한 날과 완성한 날, 반가운 비가 내려 누각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는 내력이 있다.

|관물헌과 '집희' 현판| 관물헌은 세자가 공부하며 생각에 잠기는 공간이었다고 하는데, 서까래 아래에 '집희(緝熙)'라는 작은 현판이 붙어 있다. 고종이 쓴 글씨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매화| 성정각 담장 밖 후원 가는 길가의 홍매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오랜 노매이다.

|승화루| 동궁의 동쪽 끝에 해당하는 서화 수장고로, 규장각의 주합루에 비견하여 소주합루라고도 불렸다. 안타깝게도 이 승화루의 서화들은 모두 망실되었다.

|낙선재 권역| 헌종은 문인 학자들과 자주 만나면서 그들의 삶을 동경하여 1847년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에 문인들의 사랑채를 본뜬 낙선재를 지었다.

|「헌종 가례진하도 병풍」| 헌종은 17세 때인 1843년에 왕비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에 남양 홍씨 홍재룡의 딸을 계비로 맞아들였다. 이를 기념하여 기록화로 그린 의궤도가 「헌종 가례진하도 병풍」(동아대박물관 소장)이다.

|낙선재 화계| 화계는 5단으로 아주 가파르게 짜였고, 아래쪽에는 괴석과 돌수조가 진열되어 있다. 대조전 화계가 장대하다면 여기서는 아기자기한 멋을 느낄 수 있다.

|낙선재| 낙선재는 문기(文氣) 있는 선비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할 만한 사랑스런 집이다. 앞마당이 널찍하고, 장대석을 5단으로 쌓은 석축 위에 건물이 높이 올라앉아 잇어 번듯한 인상을 준다.

|낙선재 빙벽 문양| 낙선재 누마루 아래로는 아궁이가 보이지 않게 가벽을 치고 이를 빙렬무늬로 장식했는데, 화재 예방의 의미를 담은 일종의 추상 벽화다.

|낙선재의 창살들| 낙선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창살이다. 수직 · 수평선만 사용하는 창살이지만 격자 · 만자 · 마름모꼴 능화 · 사방연속 무늬 등을 두루 사용하여 모두 다르게 디자인했다.

|'보소당' 현판| 낙선재 동쪽에는 '보소당(寶蘇堂)'이라는 아주 예쁜 현판이 있다. 원래 옹방강의 당호였지만 헌종이 이를 이어받았다. 전형적인 추사체의 멋이 잇으며 헌종의 글씨로 추정한다.

|낙선재 현판| 청나라 금석학자이자 추사의 친구인 섭지선이 쓴 현판이다. 당시 청나라의 신 문물을 적극 받아들였던 징표이기도 하다.

|유재 현판| 추사가 제자 남병길에게 준 당호다. 이 현판은 예서로 쓴 '유재' 두 글자도 멋있었지만 행서로 쓴 풀이 글이 참으로 감동적이다.

 

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고

녹봉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

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

내 복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자손에게 돌아가게 한다

盡之巧以還造化 / 盡之祿以還朝廷 / 盡之財以還百姓 / 盡之福以還子孫

 

|석복헌 화계에서 낙선재 뒤뜰까지| 왕비가 기거한 석복헌과 대왕대비가 기거하던 수강재 뒤뜰은 아름다운 화계로 연결되어 있다. 앞쪽은 세 채가 담으로 막혀 있으나 뒤란은 하나로 트여 있다.

|금사연지(위)와 소영주(아래)| 화계 앞 돌수조에는 고운 전서체로 '금사연지(琴史硯池)'라 새겨져 있는데, '거문고를 연주하고 역사책을 읽는 벼루 같은 연못'이라는 뜻이다. 괴석을 올려놓은 육각형 석함에는 반듯한 해서체로 '소영주(小瀛洲)'라 새겨져 있는데, 작은 영주산이라는 뜻이다.

|상량정| 낙선재 위로 올라가면 형태도 단청도 화려한 '평원루(平遠樓)'라는 정자가 나온다. 이 정자에는 최고로 시원하다는 뜻의 '상량정(上凉亭)'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상량정 전경| 평원루와 승화루 사이에는 벽돌 기와담 가운데에 만월문(滿月門)이라는 동그란 중국식 문이 나 있다. 그래서 창덕궁 안에서 가장 이국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이방자 여사(위)와 영친왕(아래)| 영친왕 이은은 일본 왕족의 딸 이방자 여사와 정략결혼을 했다. 영친왕은 1970년 향년 74세로 낙선재에서 세상을 떠났고, 이방자 여사는 1989년 역시 낙선재에서 세상을 떠났다.

|소학교 시절의 덕혜옹주|

|이구와 줄리아|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가 낳은 마지막 황세손인 이구는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줄리아와 결혼했으나 자손이 없다는 이유로 이혼을 종용당해 헤어져야 하는 운명을 겪었다.

|이구의 영결식| 마지막 황세손 이구의 장례식은 2005년 7월 24일 낙선재에서 9일장으로 화려하고 엄숙하게 치러졌다. 이때 줄리아는 장례 행렬을 조용히 지켜보았다고 한다.

|「동궐도」 중희당 부분| 창덕궁 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원래 동궁의 정전인 중희당이 있었다. 「동궐도」에는 중희당 전각들이 아주 상세히 나와 있는데 참으로 멋진 공간이었다는 인상을 준다.

|창덕궁 후원 입구| 창덕국이 아름다운 궁궐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은 후원 덕분이다. 10만 평에 이르는 산자락의 골짜기를 정원으로 삼고 계곡 곳곳에 건물과 정자를 지어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정원을 경영했다.

|창덕궁 후원 돌담길| 후원으로 향하는 길을 걷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다. 양옆으로 기와지붕의 사괴석 담장이 길게 펼쳐져 궁중의 내전임을 알려주고 담장 너머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길 위로 나무 터널을 이룬다.

|부용정 전경| 부용지와 그 너머의 장중한 규장각 2층 건물, 석축 위에 편안히 올라앉은 영화당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네모난 연못 가운데 섬에는 잘생긴 소나무가 주인인 양 넓게 자리잡고 있고 동서남북 사방으로 영화당, 부용정, 규장각, 사정기비각 4채의 건물이 제각기 이 정원에서 자기 몫을 하면서 의젓이 자리하고 있다.

|사정기비각| 멀리 산자락에 바짝 붙어 있는 보호각 안에는 숙종이 쓴 사정기비(四井記碑)를 보호하는 비각이 있다.

|사정기비| 숙종이 세운 이 비석에는 세조가 4개의 우물을 찾아낸 것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있다.

|「동궐도」 영화당과 춘당지 부분| 「동궐도」를 보면 지금은 없지만 영화당 양옆으로 긴 담장이 둘려 있어 영화당 안쪽의 부용지와 바깥쪽 춘당대로 열린 공간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다.

|영화당| 석축 위에 높직이 올라앉은 영화당의 정면은 춘당대로 열려 있다. 뒷면에서는 부용지와 부용정, 규장각, 비각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용지에 오면 누구나 이 영화당 툇마루에 앉아 부용지를 한껏 감상하고 가게 된다.

|영화당 현판| 영조의 영화당 현판 글씨는 획이 아름답고 글자의 구성이 반듯하면서도 멋스러워 명작이라 할 만하다.

 

빙그레 난간에 기대어 작은 연못 굽어보며                     㗛倚畫欄臨小塘

조용한 정원에 일 없으니 맑은 빛 구경한다                    閑庭無事玩澄光

한 쌍의 오리는 섬뜰 위에서 뒤뚱거리고                        玉砌緩行雙彩鴨

고기 새끼가 뽐내며 우쭐거리는 것이 희망에 차 있구나   漁兒自得意洋洋

 

|부용정| 다채로운 구조의 부용정은 한옥으로 지을 수 있는 화려함의 최대치가 구사된 정자다. 평면은 열 십(十)자 형을 기본으로 하면서 4면 모두 팔작지붕으로 날개를 펴고 있다.

|「동궐도」 부용지와 부용정 부분| 「동궐도」에서는 채색이 아름다운 비단 돛배 두 척이 부용지에 떠 있다. 정조는 부용정에서 신하들과 뱃놀이와 낚시를 즐겼고 달밤엔 불을 밝히고 시를 주고받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곤 했다.

|가을날의 부용정과 부용지|

|부용지 건너에서 올려다본 규장각 주합루|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부용지 북쪽 산자락에 역대 왕들의 어진과 글씨, 보책, 인장 등을 보관할 규장각 주합루를 짓게 했다.

|부용지 물고기 조각| 부용지 동남쪽 모서리 맨 위 장대석에 새겨놓은 물고기 한 마리에는 국왕과 신하의 원만한 어울림의 뜻이 담겼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수문| 부용지 연못가에서 규장각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어수문이라는 대문이 절집의 일주문처럼 서 있다.

|주합루 현판(위)과 규장각 현판(아래)|

|규장각의 주련들| 아래 2개는 정조가 내린 주련으로 '손님이 온 것을 보아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라''전임자가 아니면 들어오지 마라'라는 뜻을 새겼다.

|정조의 「국화도」(오른쪽)와 「파초도」(왼쪽)| 보기 드문 계몽군주였던 정조는 다양한 미술문화 진흥책을 지시했고, 그 자신도 글과 그림에 뛰어난 솜씨를 지녔다.(동국대박물관 소장)

|정조의 '정민시를 위한 송별시'| 정조는 신하들에게 편지도 자주 하였고, 송별시도 많이 썼다. 그렇게 신하와 가깝기를 원했는데 글씨도 윤기 있으면서 힘이 있다. 특히 정조는 아름다운 색지에 글씨를 써서 그 권위가 더욱 살아난다.

|개유와 현판| 규장각 부설 장서각에는 조선 책은 서고(西庫)에, 중국 책은 열고관(閱古觀)에 보관했는데 중국 책이 늘어나면서 새로 서고를 증축해 '개유와'라 이름 붙였다. 개유와란 '모든 게 다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김홍도의 「규장각도」| 부용지의 원 주인장 같은 규장각 주합루는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늠름하게 잘생겼다. 정조는 규장각을 설립하자마자 갓 서른을 넘긴 단원 김홍도에게 「규장각도」를 그리게 했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천석정| 기역 자로 된 누마루 집으로, 희우정과 마찬가지로 임금의 휴식처지만 소박한 건물이다. 그 이름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있으며 지금은 '제월광풍루(霽月光風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서향각| 규장각 서편에 동향한 정면 8칸, 측면 3칸 팔작지붕 큰 건물로, 규장각의 부속 건물이다. 규장각에 봉안된 어진, 임금의 글과 글씨 등을 보관하고, 이따금 서적을 널어 말리던 곳이다. '책 향기가 나는 집'이라는 뜻이다.

|'어친잠실' 현판| 서향각에는 '어친잠실(御親蠶室)'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는 '왕족이 친히 누에를 치는 방'이라는 뜻이다. 서향각에는 '친잠권민(親蠶勸民, 친히 누에를 쳐 백성에게 권한다)'이라는 현판도 있다.

|강세황 자화상| 정조 5년, 뒤늦게 출사한 69세의 표암 강세황은 정조의 부름을 받고 창덕궁 규장각 옆에 있는 희우정으로 들어갔다가 뜻밖의 후원 유람을 하게 된다. 이날 쓴 글이 「호가유금원기」다.

|희우정| 규장각 뒤편에 있는 희우정은 숙종 때 초가를 기와로 바꾼 정자로 아주 아담한데 정조는 표암 강세황에게 희우정에 와서 글씨를 쓰게 했고 직접 옥류천을 구경시켜주었다.

|불로문| 불로문은 넓적한 화강석 통판을 과감하게 다귿 자로 오려 세운 문이다. 모서리를 가볍게 궁글린 것 외에는 손길이 더 가지 않았다. 돌문 머리에 새겨넣은 '불로문(不老門)' 세 글자는 참으로 아름다운 전서체다.

|애련정| 불로문으로 들어가면 석축으로 반듯하게 두른 네모난 애련지가 나오고 건너편에는 사방 한 칸에 사모지붕을 한 애련정이 있다. 숙종 18년 연못 가운데에 섬을 두고 세운 정자였으나 후대 어느 때인가 연못가로 옮겨졌다.

|석축에 새겨진 '태액'| 애련지 석축 한쪽엔 '태액(太液)'이라고, 전서체로 새겨놓은 글이 있다. '큰 물'이라는 뜻으로 이곳이 전에는 '태액지'라고 불리던 곳임을 알려 준다.

|의두합 기오헌| 기오헌은 의두합 누마루의 별칭이다. 그래서 『궁궐지』를 비롯한 문헌에 이 집은 의두합이라고 지칭될 뿐 기오헌이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효명세자의 시호인 '문조'가 새겨진 어보| 고종은 효명세자의 공덕을 기려 문조(文祖)라는 시호를 내렸고, 어보를 제작해 '문조금보(文祖金寶)'라 새겼다.

|「무신친정계첩」에 나온 어수당| 「무신친정계첩(戊申親政契帖)」은 영조 4년(1728) 이조와 병조의 책임자들이 어수당에 모여 인사평가를 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순조 29년(1829)을 끝으로 사료에서 사라진 이곳은 창덕궁 복원공사를 한다면 가장 시급히 세워야 할 건물이다.

|연경당 장락문과 행랑채 전경| 연경당 대문인 장락문은 높직한 솟을대문으로 양옆에 바깥 행랑채(외행각)가 길게 뻗어 있다. 본채로 들어가기 위한 전실인 셈이다. 곧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 호흡 고르게 하는 이 공간이 주는 권위는 아주 크다.

|농수정| 사방 한 칸에 사모지붕을 한 농수정이 숨은 듯이 자리잡고 있다. 작은 마당이 있고 주변으로는 연잎 장식의 돌난간을 돌렸다. 정자의 자리앉음새와 구조 모두에 깊은 건축적 사고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동궐도」 연경당 부분| 연경당이 건축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구조가 긴밀하면서도 분리되어 있고, 건물들이 모두 단정하면서도 품위 있다는 점이다.

|「기축 진찬의궤」| 대리청정 기간의 효명세자는 기축년(1829)에 부왕 순조의 등극 30년과 탄신 40년을 기념하는 '기축 진찬의' 연회를 열었고 이를 의궤도로 기록했다.

|「기축 진찬의궤」 연경당 부분| 「기축 진찬의궤」에 따르면 효명세자 시절 연경당은 지금과 달리 디귿 자 모양의 큰 집이었고, 그 마당은 연회를 위한 야외 공연장으로 제격이었다.

|관람정| '연못에서 뱃놀이하며 구경하는 정자'라는 이름의 뜻이 형식을 지배해 건물 자체가 부채꼴 모양에 대단히 공예적이고 장식적이다.

|관람정 현판| 파초 잎에 글씨를 써놓은 듯한 이 현판은 관람정의 장식미를 한껏 높인다.

|존덕정| 인조 때 세워진 이래로 숙종, 영조, 정조, 순조 등 많은 임금이 이 아름답고 당당하고 기품 있는 정자에 와서 시와 문장을 남겼다.

|존덕정 내부에 새겨진 「만천명월주인옹 자서」| 정조가 지은 「만천명월주인옹 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장문의 글이 존덕정에 잔글씨로 새겨져 있어 이 정자의 주인공이 되었다. '만천명월주인옹'이란 '만 개의 냇물에 비치는 달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정조대왕 「송별시축」| 정조가 1799년 임지로 떠나는 철옹부사에게 써준 송별시다. 정조의 부드러우면서도 절도 있는 필치가 잘 살아 있는 명품이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폄우사| 낮은 기단 위에 세운 홑처마 맞배지붕의 아담한 집이다. '폄우(砭愚)'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돌침을 놓아 깨우친다'는 뜻이니 여기서 쉬면서도 어리석음을 경계하라는 뜻을 담아 붙인 이름인 듯하다.

|취규정| 인조 18년(1640)에 세운 정자로 홑처마 팔작지붕을 이고 있는데, 창호와 벽체 없이 사면을 모두 개방해 시원스럽다. 느긋이 쉬기보다는 잠시 걸터앉기 좋은 분위기다.

|취한정| 그 규모나 모습이 취규정과 닮았는데, 홑처마 팔작지붕이고 가운데 칸이 양쪽 칸보다 현저하게 넓으며 사면이 벽체나 창호 없이 트인 점 등이 흡사하다.

|옥류천|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깊숙한 골짜기로 골이 깊고 물이 많아 마침내 천(川)이라는 이름까지 갖게 되었다.

|옥류천과 유상곡수| 달리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조원(造園)의 명작이다. 흐르는 물줄기를 원형으로 한 바퀴 돌려 홈을 파서 술잔을 띄우면 돌아가게 했다. 유상곡수 뒤쪽으로는 '소요암'이라는 이름의 듬직한 바위가 있다.

|소요정| 옥류천의 대장격인 소요정에는 성종과 선조의 어필 현판이 걸려 있었다고 전한다. 그런 것으로 보아 소요정은 임란 전부터 있었던 듯하다. 여기서 옥류천을 가장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다.

|옥류천의 정자들| 농산정, 태극정, 청의정, 능허정(위로부터)

|청의정의 천장 무늬| '청의(淸漪)'는 '맑은 잔물결'이란 뜻이다. 정자 안에서 천장을 바라보면 서까래들이 정연히 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겉으로는 소박해 보이지만 디테일이 정교하여 더욱 매력적이다.

|신선원전 내부| 신선원전은 일반 관람이 허용되지 않는 관리 보호구역에 있는데, 선왕과 선후의 화상을 모시는 선원전 지역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천연기념물 제194호 향나무| 1404년 태종이 창덕궁 창건을 시작할 때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동쪽 가지가 꼬불꼬불 기형으로 자라 마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posted by 황영찬
2017. 12. 21. 12:24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49 바보시인

 

 

 

이승규 첫 시집

2016, 좋은땅

 

대야도서관

SB120553

 

811.7

0157ㅂ

 

증오는 사람을 악하게 하고

사랑은 증오를 약하게 한다.

 

세상을 바꾸는 바보시인

이승규의 통찰력

 

중요한 건 어떤 삶을 사느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어떤 삶이 주어져도

 

그안에서 주어진 어떤 삶보다

더 큰 어떠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느냐이다.

 

무엇을 이루느냐의 문제는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한 사람에게라도

어떠한 의미가 되는 것이다.

 

- 본문 <의미> 중에서

 

 

바보시인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를 쓰지 않았다면

누군가 시키는 글을 써야 하니까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당신을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바보시인

이승규

 

나는

바보다.

그리고 시인이다.

고로 바보시인이다.

장가도 가기 전에

첫 시집을 냈다.

 

kyucrates21@naver.com

www.facebook.com/kyucrates21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상대의 영혼을 통째로 뒤흔들어야 한다.

 

 

이 시를 읽는 그대여

오늘 하루는 그 어떤 날보다

특별한 날이 될 거예요!

 

제가 당신을

응원할 거거든요!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당신에게

 

 

나의 시 나의 이야기

 

현실과 이상의 모순 속에서도

꿈을 고집했던 선택들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평범하지 않은 도전들

 

길을 잃어 좌절하고

수 없이 무너졌던 순간들

 

그 안에서 깨달은 삶의 소중한 가치들

 

보편적이지만 진부하지 않은

소중한 나의 기록들

 

이 밖에도 모든 순간에서 얻은

영감들을 고이 담아

 

가장 특별한 당신에게 드립니다.

 

 

차례

 

 

1. 진부하게 봤지만 참 시인선한 것들

한 번의 용기
국밥
그 언덕
그녀
그렇게 살기로


끝까지
산다는 것
누군가
단풍
메어있지 마라
미룸
바라본다

부모와 아이
나의 소신
아이에게
어차피 순간
역발상
역할
의미
익숙함

젓가락
차이
학사모

새해 인사
할머니
시외버스
7가지 본질적인 질문
열차
정성이란 손님
벚꽃
당신이 밉다
사랑은 도자기
초승달
거리

2. 꿈을 이루는 비밀

외모
철교
시의 목적
사람
개나리
네모난 세상
동해
불가능
손길
오글거리다
스승과 배움
열두 시간
살아있는 삶
술에게
절벽에 핀 꽃
증오와 사랑


꿈이 필 때

멍청함
마음, 그 참을 수 있는 가벼움
미생
선과 악
아버지
아토피
연결

아름다움
웃음
착각
창의력
창밖의 소리
가까운 사람
간격
남자와 여자
모두의 법
끔찍함
기억과 추억 사이
소수와 다수

손톱
완전함에 관하여
입다
자아

정의
대화

고정관념
나이
이유 없는 시
거짓말

한강 같은 여자
아름다운 사랑
뒤바뀐 전제
삶의 신조
꿈을 이루는 비밀
사물의 이야기
경쟁률

3. 진다는 것에 관하여

늙는다는 것
권위
노력의 방향성
호의와 권리

주제

마음을 따르기 좋은 때
진다는 것에 관하여
시인
정의와 벌
사랑은 사계절처럼
외로움

나는
관상
빈 강의실
욕심

겨울이 봄에게 고함
봉은사

발걸음
세상
어불성설
어른과 성인
역행
열쇠
영화
오해에서 이해로

이기심
인생

전제
영원함
버릇


4. 바보시인

고통의 처방전
확률

태도
특이성

진짜 행복

거리의 도인
Wi-Fi
인정
신념
보이지 않는 것
표현
가치를 이어가다
아름다움
의심

내가 바라는 세상
시간
성공

일에 대한 성찰
완벽함
외로움
절망 속에 피는 꿈
창조
진지함
칭찬
구석진 자리
무엇
인간과 신

작은 소망
마음의 꽃
세 가지 관점

뒤바뀜
놓친 것들

 

 

한 번의 용기

 

당신은 수많은 사람에게 생명을 선물한

의사 슈바이처가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선물한

수녀 마더 테레사가 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수많은 사람에게 꿈을 선물한

이태석 신부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단 한 번의 용기로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백 명의 사람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그 백 명의 사람은 후에

의사가 되고 수녀가 되고 신부가 됩니다.

생명의 선순환을 이어가는 약속

백 명의 영웅을 살리는

진짜 명의는 바로 당신입니다.

 

 

국밥

 

오랜만에 고향에 와서

친구와 먹었던 국밥 집을 찾아갔다.

국밥 집은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친구가 하나 둘 떠나간

그 자리에

나 홀로 남아 국밥을 먹었다.

 

국밥이 참 맛있었다.

아니 사실은

추억이 참 맛있었다.

그래 추억!

 

추억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그 언덕

 

모두가 언덕을 오르기도 전에

그 언덕은 멀고 높아서

걸어 오르기엔 너무

지치고 힘들 것이라 얘기했다.

 

그 언덕에 오르기 위해선

버스를 이용해야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얘기했다.

 

그 언덕을 오르기 위해선

택시를 이용해야

편하게 갈 수 있을 것이라 얘기했다.

 

모두가 머리로 가능성을 판단할 때

난 내 마음을 믿고

두 발로 걸어 오르기로 했고

그 언덕에서 내려올 때

나의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삶은 허무함이다.

삶은 외로움이다.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꽃피우려 한다.

 

허무함 속에 순간이 피고

외로움 속에 사람이 피고

고통 속에 사랑이 피기 때문이다.

 

 

끝까지

 

끝까지 살아봐야 한다.

내게 고통을 준 존재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살아봐야 한다.

내가 고통을 준 존재들에 대한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살아봐야 한다.

이 세상에 죽음을 뛰어넘는 가치가

존재함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누군가

 

내가 인간적 관념에 얽매여

고통의 늪에서 헤매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심장을

계속해서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를

머리 아닌 마음으로

들어보기로 했고

그 순간부터

내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메어있지 마라

 

메어있지 마라

당신 안의 작은 세계에 매어있을 때

고통 역시 당신 곁에 머물러 있다.

 

메어있지 마라

당신이 쫓는 작은 가치에 메어있을 때

고통 역시 당신 곁에 머물러 있다.

 

메어있지 마라

모든 것은 바람처럼 지나가고

계절처럼 순환하며

우주처럼 광활하고 생명처럼 신비롭다.

 

메어있지 마라

당신의 작은 마음보다

더 큰 마음을 만날 때

 

당신의 생각보다

 

더 큰 가치가 세상에 잇음을 만날 때

 

당신은 깨어나고 머지않아

 

바람이 되고 자연이 되며

우주가 되고 생명이 된다.

 

그러니까 메어있지 마라

당신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증거이다.

 

 

미룸

 

우리는 미뤄야 한다.

삶에는 미뤄야 할 것이 참 많다.

미움, 걱정, 두려움, 후회, 화

모두 미루자 다음으로 미루자

 

그리고 가져와야 한다.

 

사랑, 긍정, 즐거움, 감사, 이해

우리는 미루지 않아야 한다.

삶에는 미루지 말아야

할 것이 참 많다.

 

 

바라본다

 

고집이 아집으로 변하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소신이 독선으로 변하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지식이 가식으로 변하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위안이 위선으로 변하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희망이 절망으로 변하는 세상이 되지 않기를

꿈에 대한 진심이 현실에 변심하지 않기를

 

나 역시 그렇게 변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부모와 아이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

직장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부모

 

자신 안의

작은 세계에 갇혀 힘들어 하는 아이

 

자신보다

큰 세계와 부딪혀 힘들어 하는 부모

 

삶에 무게에 짓눌리는 아이

삶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부모

 

이들이 단 하루만

서로 바뀌어 생활을 한다면

 

서로를 더 멀리 할까?

서로를 더 가까이 할까?

 

이들이 단 한 번만

서로의 차이를 이해한다면

 

서로를 더 미워하게 될까?

말없이 서로를 안아주게 될까?

 

 

나의 소신

 

생명을 위해 글을 쓰고

사랑을 위해 시를 쓴다.

 

아이에게

 

삶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줄 알 때

너는 비로소 어른이 된단다.

 

불공평한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할 때

그 과정에서 너 자신을 잃지 않을 때

 

너는 비로소

한 명의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이란다.

 

 

역할

 

벚꽃은 도시에 피어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산에는 진달래 피어 자연을 이롭게 하고

 

나는 당신 마음에 피어

 

지지 않는 사랑이고 싶네.

 

 

익숙함

 

어릴 땐 새로움이

사랑인 줄 알았는데

커 보니 익숙함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

더 큰 사랑이었네

 

 

새해 인사

 

아침에 온 문자 한 통

 

"새해에는 원하는 일 모두 이루길 바랄게"

 

사실 나의 바람은

당신의 마음 그거 하나였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당신의 마음 하나를 얻는 것이

 

"원하는 모든 일을 이루는 것과

같은 것이었구나"

 

 

시외버스

 

명절에 고향 가는

시외버스를 탄다.

조급한 마음이야 다 같으리 만

 

시외버스는 먼 길을 돌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간다.

그리운 마음이야 다 같으리 만

 

만 리도 더 되는 길에

 

넉넉한 마음 하나를 품고 간다

 

 

벚꽃

 

한 번씩 당신의 마음에 피는

벚꽃이 되고 싶다.

 

당신의 마음이 마른 땅처럼

허전하고 외로울 때

 

한 번씩 당신의 마음에 피는

벚꽃이 되고 싶다.

 

벚꽃이 되어서라도

잠시나마 당신의 마음에

기쁨으로 머물고 싶었노라고

 

한 번쯤은 벚꽃처럼

그렇게 용기 내어

말없이 말해보고 싶다.

 

 

당신이 밉다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 당신이 밉다.

 

나의 마음을 몰라주는 당신이 너무 밉다.

 

나를 떠나서 다른 사람의 품에 안겨버린

당신이 너무나 밉다.

 

사실은

 

당신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한

내가 미운 것이고

 

당신에게 먼저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내가 미운 것이고

 

당신을 붙잡고 좋아한다고 말 한 마디 못한

나 자신이 너무도 미운 것이다.

 

 

사랑은 도자기

 

사랑은 함께 만드는 도자기다.

한쪽에서만 급하게 생각하면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사랑은 함께 만드는 도자기다.

상대를 천천히 알아가며 이해할 때

비로소 모양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랑은 함께 만드는 도자기다.

 

둘이 함께하는 시간만큼 굳어지고

둘이 함께하는 마음만큼 단단해지니까

 

둘이 함께하는 시간만큼 굳어지고

둘이 함께하는 마음만큼 단단해지니까

 

 

거리

 

내가 널 보고 네가 날 볼 때

네가 날 보고 내가 널 볼 때

 

네가 앞서 걷던 거리를 나도 뒤따라 걸었을 것이고

내가 앞서 걷던 거리를 너도 뒤따라 걸었을 것이다.

 

내가 널 보고 네가 날 보지 못할 때

네가 날 보고 내가 널 보지 못할 때

 

너에게 의미 없던 거리가 나에게 큰 의미가 되었고

나에게 의미 없던 거리가 너에게 큰 의미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변해도

다시는 우리가 같은 공간에 걷는 일이 없다고 해도

 

가끔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같은 마음

 

그 마음만은 그 자리에 변치 않아주오

 

 

시의 목적

 

무릇 시란

삶의 본질을

탁 건드린 후에

인간의 영혼을

툭 쳐야 한다.

 

 

네모난 세상

 

세상 사람들은 네모난 것을 통해 세상을 본다.

대부분의 체계가 네모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는

텔레비젼, 책, 휴대폰

그 안에는 삶의 희로애락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이제는 그 세상마저도

자기 흥미에 맞추어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그곳은 이제 우리가 그토록 꿈꿔왔던

유토피아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완벽해 보이는

네모난 세상에도 빈틈이 있다.

바로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동그란 자기 마음 안에

삶의 모든 정답이 있는데 말이다.

 

 

살아있는 삶

 

이미 패배가 정해진 것이라 할지라도

깨지고 부서지게 될 운명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살아있는 삶이라면

 

가까운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을 견뎌야 할지라도

때때로 선택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고독과 고통에 절망할지라도

그것이 살아있는 삶이라면

 

모두를 위한 일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또한 원했던 결과를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살아있는 삶이라면

 

단 한 번만이라도 살아보고 싶다.

그러한 삶을

아니 살아가고 싶다. 그러한 삶을

그것이 살아있는 삶이라면

 

걸어보고 싶다. 내 전부를

걸어가고 싶다. 내 인생을

 

그것이 진정 살아있는 삶이라면

 

살아보고 싶다. 내 전부를

살아가고 싶다. 내 인생을

 

 

연결

 

세상 모든 것은 의미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의 몸이 하나 하나 연결되어 있듯이

모든 언어가 하나 하나 연결되어 있고

세상 모든 만물이 하나 하나 연결되어 있다.

 

당신이 창조의 비밀을 알고 싶다면

단 하나의 것도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창조의 시작은 일단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미와 의미를

마음과 행동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창조의 끝은

이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의미 하나로

연결해내는 것이다.

 

 

입다

 

집을 나서기 전

가장 비싼 옷을 꺼내 입는다.

 

집을 나선 후

더 좋은 학교를 골라 입는다.

 

사회에 나선 후

드디어 가장 좋다는 직장을 입었다.

 

시간이 지난 후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학교도 졸업했다.

 

남들 보기엔 번듯했던 직장도

결국 퇴직했다.

 

집에 돌아온 후

 

지금은 남루해진

가장 좋다는 옷을 벗는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한다.

 

이 모든 것들에

과연 나다운 나가 얼마나 있었는가?

 

 

 

꿈은 직업이 아니라

본질 그 자체여야 한다.

 

 

삶의 신조

 

성실과 인내는 내 동반자고

열정과 실력이 내 인맥이다.

 

 

 

책 한 권을 목적으로 알고

마음으로 품는 사람이

 

책 백 권을 수단으로 여겨

이용하려는 사람보다

 

훌륭하다.

 

 

나는

 

나는 어린 시절 집에 도둑이 들어

집안의 물건을 도둑맞아 봤기에

 

어떤 일을 하든지 대가 없이

보상을 바라지 않고

절대 타인의 것을 탐내지 않는다.

 

나는 어린 시절 지독한

괴롭힘을 당해 봤기에

 

나보다 여린 친구들을

절대 괴롭히지 않는다.

 

나는 가장 힘든 일을 경험하며

가장 적은 돈을 받아 봤기에

 

많은 돈을 얻어도 그것의 소중함을

알아 절대 낭비하지 않는다.

 

나는 믿었던 사람들에게

너무도 많은 배신을 당해 봤기에

 

정말 중요한 순간에 믿어야 하는 건

나 자신임을 알고 있다.

 

나는 삶에서 바라왔던 일들이

나의 의지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기에

 

나의 의지대로 노력할 수 있는 삶

그 자체에 항상 감사할 줄 안다.

 

나는 곁에 아무도 없는 고독의 괴로움이

얼마나 큰 것임일 잘 일기에

 

결국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임을 안다.

 

나는 탐욕을 쫓는 인간이 어떻게

타락하는지 보았기 때문에

 

항상 탐욕을 경계하고

진정한 진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모든 것은 순간으로 지나가기 때문에

영원한 것이 없음을 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이 없음을 알기에

 

모든 순간에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곧 영원히 살아가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살고 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 한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안으로 굽어야 하겠는가?

 

 

아름다움

 

아름다움의 첫 번째 의미는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이다.

 

이는 보이는 것의

외면적인 미를 뜻한다.

 

그러나 내면의 미를 발견하는 과정은

언제나 나와 당신의 만남에서

꽃을 피우기 마련이다.

 

그대 한 사람이

나에게는 바다보다 깊은 마음이며

하늘만큼 넓은 이해이자

별 같은 아름다움

태양 같은 생명력이다.

 

또한 당신은

우주처럼 표현할 길이 없는

신비로우며 끝이 없는 광활한 사랑이다.

 

시를 적어 내려간 뒤

다시 아름다움이 가진

사전적 의미를 찾았다.

 

아름다움이 가진

두 번째 진정한 의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다."

 

 

내가 바라는 세상

 

나의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절대 학벌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

 

성별로 사람을 차별하지 아니하며

외모로 상대방을 판단하지 않는다.

 

능력의 차이를 인정하고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한다.

 

항상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먼저 생각할 줄 알고

 

내가 남보다 더 가진 것에

부끄러워 할 줄 안다.

 

항상 잘못을 반성할 줄 아는

내면의 거울을 가질 줄 알고

모르는 것에 겸손해하며

 

내가 깨닫는 것에 감사한다.

 

삶의 의미는

돈이 아닌 꿈에 있으며

 

모든 불가능은

가능성을 담보로 둔다는 것을 안다.

 

또한 꿈은 서로 이해하고

도울 때 비로소 꿈으로 끝나지 않고

실현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나의 세상을 너의 세상으로

곧 너의 세상을 우리 모두의 세상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이것이 변하지 않는

내 삶의 신조이자 신념이다.

 

 

외로움

 

봄이 와서 그런 건가?

오랜 기간 혼자여서 그런 건가?

아니면 삶이 힘들어서 그런 건가?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니

 

아! 내가 사람이라 그런 거구나!

 

 

구석진 자리

 

사람들이 구석진 자리를

선호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 한 구석진 자리엔

누구에게도 침해 받고 싶지 않는

 

'나'라는 자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황영찬
2017. 12. 11. 12:15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48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1 - 해방에서 한국전쟁까지

 

 

 

박세길

2016, 돌베개

 

대야도서관

SB126000

 

911.07

박54ㄷ  1

 

남북의 민중을 민족사의 주체로 놓고 서술한

 

한국현대사 길라집이

 

 

이제 우리 민족은 지나온 과거를 잊고 싶은 비극이 아닌 영광의 장정으로 새롭게 인식함으로써 노예근성을 떨쳐버리고 민족적 자존심을 당당하게 회복해야 합니다. 또한 한때의 좌절을 더 큰 분노로 되씹음으로써 역사를 밀고 나가는 힘찬 동력으로 삼아야겠습니다. 민족은 본래 둘일 수 없습니다. 민족분열의 아픔을 강렬한 애국심으로 승화시켜 조국통일의 대업을 기필코 달성해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사의 뿌리를 찾는 작업은 몇몇 개인의 노력에만 국한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민족 전체의 깨달음과 자존심 회복의 과정입니다. 또한 현대사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우리 민족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의 일부입니다.

「책을 쓰고 나서」 중에서

 

지은이

박세길

 

1962년 충북 영동 출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대학 시절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후 줄곧 재야에 머물렀으며 1990년대 전반기까지는 노동자와 역사 인식을 공유하는 현대사 교양활동에 매진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시리즈는 그 과정에서 나온 저작으로 현대사를 진보적 관점에서 일관되게 정리한 1990년대 대학생 필독서로 꼽혔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진보적 사회단체와 연구단체의 정책기획가이자 이론연구자로 활동했다. 2000년대 중반 무렵 한국 사회의 변화를 진보세력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진보의 가치와 비전, 전략 모두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단체 상근직을 모두 사퇴하고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사회의 새로운 지평을 탐색하는 데 쏟아왔다. 앞으로 남은 시간 또한 새로운 시대의 좌표를 모색하는 연구와 교육활동에 전념할 계획이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 『자본주의, 그 이후』, 『한국경제의 뿌리와 열매』, 『미래를 여는 한국인史』(1~2), 『세계를 바꾸는 역사』, 『우리 농업, 희망의 대안』, 『혁명의 추억 미래의 혁명』, 『젊은 국가』 등이 있다.

 

차  례

 

왜 한국현대사를 다시 쓰는가

제1부 해방과 분단      제1장 해방의 길목에서

                                              1. 일제 침략전쟁 시기의 민족의 수난
                                              2. 조선 민족은 결코 죽지 않았다
                                              3. 민중이 주인 되는 시대
                                              4. 먹구름을 몰고 온 미군

                             제2장 좌절과 분노

                                              1. 모스크바 삼상 결정, 그 진실과 허위
                                              2. 참담한 남한의 실정
                                              3. 10월 인민항쟁
                                              4. 북한에서의 사회개혁

                             제3장 배신과 음모

                                              1. 위반된 약속
                                              2. 임시정부 수립 촉진 인민대회
                                              3. 미국, 유엔이라는 간판을 내세우다
                                              4. 2 · 7 구국투쟁

                             제4장 하나의 나라와 두 개의 정부

                                              1. 남북연석회의
                                              2. 망국적 단독선거의 강행
                                              3. 이승만 정권의 정체
                                              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

                             제5장 되살아나는 전쟁음모

                                              1. 끓어오르는 한라산
                                              2. 4 · 3제주항쟁의 불길

                                              3. 여순 봉기의 돌풍
                                              4. 전진하는 유격투쟁

 

 

제2부 한국전쟁          제1장 군사통치의 개막

                                               1. 역사를 미리 쓰는 미국
                                               2. 심상치 않은 일본의 상황
                                               3. 고조되는 긴장
                                               4. 불붙는 38선

                             제2장 전쟁의 발발과 미국의 개입

                                               1. 전면적 충돌로의 비화
                                               2. 미국의 개입
                                               3. 북한군과 남한 민중
                                               4. 남한에서의 사회개혁

                             제3장 격돌하는 두 세계

                                               1. 드러나는 미국의 야심
                                               2. 북한, 장기 항전 태세로 들어가다
                                               3. 누가 중국군을 끌어들였는가
                                               4. 인민전쟁의 마술
                                               5. 북한군과 중국군의 총반격
                                               6. 인해전술의 비밀

                             제4장 심판대에 오른 양심

                                               1. 다시 38선으로
                                               2. 융단폭격과 세균전
                                               3. 남한에서의 유격전과 피의 살육
                                               4. 교차되는 전쟁과 평화

                             제5장 전쟁 중의 남과 북

                                               1. 사람 죽여 배 채우는 자들
                                               2. 깡패 정권
                                               3. 북한의 후방정책

                             제6장 전투 없는 전쟁

                                               1. 좌절된 야망
                                               2. 강화되는 냉전체제
                                               3. 미군의 계속적 주둔
                                               4. 실패로 끝난 제네바 정치협상회의
                                               5. 뿌리내리는 반공 이데올로기


책을 쓰고 나서

참고문헌

 

 

 

 

 

posted by 황영찬
2017. 12. 4. 16:30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47 시가 있는 간이역

 

 

 

최  학 지음

2012, 서정시학

 

대야도서관

SB079844

 

811.7

최92ㄱ

 

지금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 하나도 우주에서는

지극히 작은 역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선로에 놓인 돌맹이 한 개 같은 지상의 역에서

사람은 떠나고 남는다. 아득한 만남과 아득한 이별이 그렇게

우주의 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역은 떠나옴과 떠나감의 지정학적 좌표다. 가고 옴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떠남의 동질성은 불변이다. 떠남은 공간의 이동, 관계의 유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움직이지 않았는데 상대가 변하는 것 또한 떠남의 양태가 된다. 이런 떠남의 형식 가운데 시간만큼 야멸스러운 것은 없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이윽고 모든 것을 무화시킨다.

 

근근이 우리의 기억이 흘러 간 것 변해 버린 것을 환원 혹은 복원시켜보려고 시간의 통로 속에서 안간 힘을 쓰지만 부질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역이 이런 안쓰러운 회억과 그 부질없음을 확인하는 공간으로 대체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회상과 과거 반추의 상관성으로 볼라치면 대도시의 역이건 산골 간이역이건 별반 차이가 없다. 전통적 농경사회의 몰락과 근대 산업사회 성립의 접합점에 철도가 있음은 누구나 아는 바다. 새로운 문명은 기존의 문명을 재빠르게 지우며 스스로 몸집을 불려가지만 그 또한 다가오는 새 문명의 먹잇감이 되게 마련이다.

- 본문 중에서

 

최  학

 

경북 경산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국문과 및 같은 대학 대학원 졸업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으로 문단 등단

1979년 한국일보 장편소설 공모 당선

현재 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저서로는 「잠시 머무는 땅」「그물의 눈」「식구들의 세월」「손님」 등의 창작집과 「겨울 소나기」「안개울음」「서북풍」「미륵을 기다리며」「화담명월」 등의 장편소설이 있음. 그밖에 「배갈을 알아야 중국이 보인다」「니하오 난징」 등의 중국 관련 저서가 있음

jegang@yahoo.co.kr

 

|차례|

 

중앙선 간현역  간현역에서_ 김용진

경춘선 강촌역  눈 내리는 강촌역_ 김종익

경춘선 경강역  경강역에서_ 이기인

경부선 고모역  고모역_ 구상

태백선 고한역  검은 민들레_ 정호승

충북선 공전역  천둥산 박달재_ 오탁번

전라선 관촌역  간이역_ 송종찬

장항선 광천역  기차표를 끊으며_ 이정록

중앙선 구둔역  구둔역_ 설태수

전라선 구례구역  구례구역의 사랑노래_ 고재종

정선선 구절리역  구절리 바람소리_ 이향지

영동선 나한정역  스위치백_ 복효근

경춘선 남춘천역  남춘천역_ 전동균

경전선 남평역  사평역에서_ 곽재구

영동선 녹동역  녹동역_ 곽대근

중앙선 단양역  단양역 앞에서_ 백우선

경부선 대전역  대전역에서_ 양애경

장항선 대천역  장항선 열차를 타고_ 정완희

영동선 도경역  도경역_ 박선옥

장항선 도고역  도고 도고역_ 류외향

영동선 동점역  귀가_ 허만하

경춘선 마석역  파초우(芭焦雨)_ 조지훈

경부선 매포역  매포역_ 이은봉

경전선 명봉역  명봉역_ 박라연

중앙선 모량역  모량역_ 도광의

동해남부선 모화역  모화역에서_ 구광렬

호남선 몽탄역  몽탄역_ 박라연

경부선 물금역  물금역_ 박해수

경부선 밀양역  새벽 밀양역_ 전성호

호남선 백양사역  백양사역_ 이진명

경부선 병점역  병점(餠店)_ 최정례

부산지하철 하단역  하단역 지나며_ 강경주

경부선 부산역  2월에 쓴 시_ 홍수희

장항선 삽교역(수덕사역)  수덕사역_ 정호승

서울역  서울역_ 유안진

중앙선 석불역  석불역(石佛驛)_ 나희덕

경전선 석정리역  다시 석정역_ 김정호

수도권 전철 성북역  다시 성북역_ 강윤후

진해선 성주사역  성주사 간이역_ 정영자

수도권 전철 송내역  송내역에 내리면_ 김승동

중앙선 송포역  송포역에서_ 김찬일

경의선 수색역  수색역(水色驛)_ 이수익

경부선 수원역  수원역_ 박덕규

영동선 승부역  그 소리들_ 나희덕

경춘선 김유정역  나의 고향_ 김유정

전라선 신풍역  신풍역_ 도광의

정선선 아우라지역  아우라지 간이역_ 최동호

안산선 대야미역  대야미역_ 홍신선

전라선 압록역  압록역이라고 있다_ 김종제

영동선 양원역  양원역에 가면_ 강봉환

전라선 여수역  여수역_ 정호승

경부선 연화역  연화역을 지나며_ 이성렬

전라선 오수역  오수역에서_ 안도현

경부선 왜관역  비 내리는 왜관역에서_ 김찬일

경부선 원동역  원동역_ 강영환

동해남부선 월내역  월내(月內), 바다가 보이는 간이역_ 손태수

경의선 월롱역  월롱_ 김성대

경원선 월정리역  월정리역_ 정일남

경부선 유천역  유천역_ 이우걸

호남선 익산역  솜리정거장_ 심호택

서울교외선 일영역  일영역의 어둠_ 함동선

태백선 자미원역  자미원역_ 조정

영동선 정동진역  겨울 정동진에 가면_ 최동호

호남선 정주역  정주역_ 이장욱

경부선 조치원역  조치원_ 기형도

수도권 전철 주안역  주안역을 지나며_ 원동은

태백선 증산역  증산역에서_ 박영희

경원선 철원역  철원역에서_ 정호승

경부선 청도역  청도를 지나며_ 정희성

태백선 추전역  추전역_ 고은

영동선 통리역  통리역_ 황주경

경부선 평택역  평택역에서_ 조석구

동해남부선 포항역  포항 역전을 지나며_ 정건우

경전선 한림정역  한림정 역에서 잠이 들다_ 강현덕

호남선 함열역  함열을 지나며_ 김완하

경부선 황간역  _ 한성기

 

 

간현역에서

 

김용진

 

언젠가는 다시 찾으리라던

간현역

황혼 길에 찾아오니

 

무심한 세월 그 자리

구석구석엔

사람 냄새 풍기는데

 

강줄기 끼고 돌아가는

중앙선 열차는

숨 가쁘게 허덕이고

 

오가는 사람들

깊은 사연 품에 끼고

말없이 오르내리네

 

유유히 흐르는 섬강 중기

천년 두고 흘렀어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세월 낚는 태공들

숨죽이고 앉았는데

백로 한 쌍 날아간다.

 

 

 

고모역

 

구  상

 

고모역을 지나칠 양이면

어머니가 기다리신다.

대문 밖에 나오셔서 기다리신다.

이제는 아내보다도 별로 안 늙으신

그제 그 모습으로

38선 넘던 그 날 바래주시듯

행길까지 나오셔 기다리신다.

 

천방지축 하루 해를 보내고

책가방엔 빈 도시락을 쩔렁대며

통학차로 돌아오던 어릴 때처럼

이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만큼이나

머리가 희어진 나를

역까지 나오셔 기다리신다.

 

이북 고향에 홀로 남으신 채

그 생사조차 모르는 어머니가

예까지 오셔서 기다리신다.

 

 

 

구둔역

 

설태수

 

간이역 모퉁이의 녹슨 철로

기차가 다니는 철길처럼

속살까지 부비며

달밤에도 빛나고 싶건만

그렇게 소멸되고 싶건만

버려진 철로는 바람과 비와 눈을

적막을 견딜 수 없어

소리 없이 제 몸 찔러가며

검붉게 사위어가고 있다

취한 듯 스러지고 있다

 

 

 

스위치백

 

복효근

 

기차가 앞만 보며 돌진한다고 말하지 말라 태백산을 넘어가는 기차를 타보았는가 동해 정동진에서 해돋이를 보기 위해 전라선 야간열차를 탔다가 기차가 영동선 흥전역에 들어서 갑자기 뒤쪽을 향해 거꾸로 되달릴 때 황당한 가슴을 어찌하지 못한 적이 있다 그러나, 한없이 물러섰던 기차가 다시 앞으로 치달아 영동선 흥전역과 나한정역 사이 태백 준령을 그렇게 지그재그로 넘는 걸 알고 다시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다 기차가 태백산을 넘는 방법, 스위치백이라고 하던가. 후진의 힘이 기차를 태백 너머로 밀어 올린다. 이제 어느 날 갑자기 나의 길이 나를 뒤로 끌고 갈 때 죽을 것처럼은 놀라지 않기로 한다. 기차를 타고 태백을 넘어보면 안다 깜깜한 가슴 깊이 처박힌 태양이 후진의 힘으로 산 너머 동해 저 너머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어둠 속에 깨어 퍼덕이는 정동진의 바닷새들도 스위치백으로 날아오른다.

 

 

 

도경역

 

박선옥

 

누구나 마음의 역 하나 지니고 사는가

키를 낮추며 들어간 세상의 막장에서

봉합된 시간을 뜯어보기에는

기억의 삽 끝이 너무 무디어 있다

 

한 번도 내게서 떠난 적이 없는 나

다시 돌아 갈 곳도 없는 삶의 간이역에서

추억을 유품처럼 챙기다가 털고 일어설 때

저마다 역 하나 지니고 사는 이유를

내 허물어져가는 얼굴에서 묻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의 간이역 하나 지니고 살아가는가

 

 

 

동점역

 

허만하

 

투명한 유리창이 거울이 되는 지점이 잇었다. 천천히 휘어지며 멀어져 가던 석포역 뒷모습과 도경을 지나서야 외로운 외등같이 모습을 드러내던 강원도 들머리 동점역 사이의 한 지점. 철거덕거리는 철교 건너는 소리가 조바심처럼 가슴에 울리던 산협의 짧은 구간. 이마를 차창에 기댄 채 한 사나이가 자기 얼굴 위에 겹치는 아내와 어린 두 딸의 기다림을 그림처런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지점. 윤곽을 잃어버린 먹빛 산덩이 헤치며 무수한 오렌지 빛 창이 아름다운 피리소리처럼 지나던 그 지점.

 

 

 

명봉역

 

박라연

 

역사의 느티나무도 조금,

6 · 25와 여순사건과 애주 사이에서 놓친

역 근처의 양조장도 조금,

안사 올 역장도

아버지를 기억할 역원도 없는데

호주머니 속 깊숙이 차표 감추시고

나가시려다 실랑이 벌이시던

시공(時空)도 조금,

 

산나물 장수 방물장수들의 노동을

통째로 사주시던

자네 밥 아직 안 먹었지? 내밀던

아버지 밥도 조금,

내 몫까지 함부로 인심을 써?

복(福) 한번 고파봐라, 신이 몸소

아버지 밥 다 가져가버린 것 같다는

 

어머니 세계관도 조금,

위치며 자태가

어진 아내 미안한 남편이어서

아버지 산소도 조금,

명봉역이다

 

명봉역을 MBC 베스트 극장에서

만난 날

화면 속의 느티나무더러

아버지! 불러본다

 

 

 

모량역

 

도광의

 

산수유꽃 개나리 하도 피어

역사(驛舍) 지붕도 노란꽃이 핀다

열차가 모량역을 지날 때

작은 못 수줍게 얼굴을 내미는

까치가 앉았다 날아가는 순간

나뭇가지 가늘게 떨리다가

찰방대는 못물에 잠긴다

산수유꽃 개나리 하도 피어

마을 지붕들도 노란꽃이 핀다

열차가 모량역을 지나면서

까치짐이 못물에 잠기면

박목월 선생을 생각하는

내 마음도 꽃이 피어 물에 잠긴다

 

 

모화역에서

 

구광렬

 

기다림이 있다는 건

사랑이 있다는 것

사랑 없인 하루도 힘든데,

오늘 철길따라 걷는다

 

떠난 기차는 정시에 돌아오지 않는가

그냥 스치어도 좋다

나, 사랑할 때 슬픔은 기억하나

외로움은 낯선데

오늘

모든 것 그리웁구나

 

내릴 사람 없고

반길 사람 없어도

기차를 보련다

너무나 그리워

기차라도 만나련다

 

 

 

몽탄역

 

박라연

 

밤 기차를 타본 사람은 안다

 

마음속엔 몇 개의 몽탄(夢灘)역이 있다는 것

역사 너머 저마다 연못 있다는 것

꿈으로나 만나보는

꿈이어서 다행인 풍경 있다는 것

옛날 그림자들 걸어 나와

구불구불한 생(生)의 왼편과 오른편에

달불을 켠다는 것

연꽃 눈 뜨는 순간의 떨림 수정으로

구른다는 것

앞마당에 목백일홍은 심지 마라

붉은 울음 빼내어 너, 주면 어쩔래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붓과는 눈 마주치지 마라

네, 속내 빼내어 화선지에 넣으면 어쩔래

어머니의 노래 끝날 무렵

만삭의 근심들 몸 푸는가

온몸에 반딧불 켜고 있는 저 허공

몽탄역!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

달불의 연기처럼 스며드는

지는 해도 문득 외박하고 싶어지는

첫사랑, 몽탄행(行) 열차에게

길은

꿈길뿐이라는 것

 

 

 

석불역(石佛驛)

 

나희덕

 

석불이라고는 잇을 것 같지 않은

작은 동네에 집이 세 채

 

그가 돌로부터 왔음을

불타는 돌이었음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모습으로

 

눈 녹는 역사 마당에

쓰러질 듯 서로를 고이고 잇는

연탄재들

 

기차가 석불역을 떠나려는 순간

나는 그를 알아보았다

 

소신공양을 끝내고 막 돋아나는 그 살빛!

 

 

 

송포역에서

 

김찬일

 

아직 열차 오지 않는다

어디쯤 오다가 바람에 져버린 꽃잎 싣고 있는지

빨간 잠자리 앉아 조는 여문 수수나무 몸짓에 눈 주고 있는지

이미 달려 온 길 되돌아 갈 수 없는 열차는 슬픈 가을처럼 달려 올 텐데

대합실에 앉아 기다리는 사람들은

가야할 길 흔들리는 코스모스 위로 나는

잠자리 따라 먼눈으로 그려 보는데 열차 오지 않는다

오지 않아도 그만일 완행열차는

송포역에서 흘러나오는 연착의 방송으로

안도하는 사람들의 기억 위로 달려오고 있다

이제는 가을빛 담은 보퉁이 머리에 이고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리는 사람들

열차는 시간을 떨어뜨리며

어디가 종점인지도 모를

기억의 언덕 넘어

가을 속 달려오는

송포역에서

 

 

 

그 소리들

 

나희덕

 

승부역에 가면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구름 옮겨가는 소리

지붕이 지붕에게 중얼거리는 소리

그 소리에 뒤척이는 길 위로

모녀가 손잡고 마을을 내려오는 소리

발밑의 흙들이 자글거리는 소리

계곡물이 얼음장 건드리며 가는 소리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송아지

다시 고개 돌리고 여물 되새기는 소리

마른 꽃대들 싸르락거리는 소리

소리만 이야기하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겨울 승부역

그 소리들로 하염없이 붐비는

 

고요도 세 평

 

 

 

신풍역

 

도광의

 

익산과 목포를 오가던

통일호 열차

덕양역, 여천역, 미평역을 지나

하루 두 번 기차가 지나가면

바람도 아물아물 숨을 쉰다

19시 45분 막차가 출발하면

오고 가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기차만 바다 곁에 머물다 떠나간다

 

 

 

압록역이라고 있

 

김종제

 

당신은 열차를 타고

저 윗동네 북녘의 어디 아닌

남도 땅을 휘돌아가다가

섬진강을 지켜보는

압록역에 닿을 수 있다

하루에 일곱 번 밖에 서지 않고

다섯 명도 채 타지 않는다는

빈손 같은 간이역이다

압록역에는 폐교처럼

사라져 가는 것만 있다

산안개처럼 떠나가는 것만 있다

여기가 나무 집결지였다

지게에 실려 온 놈에다

우마차에 끌려온 놈에다

뱃장 좋게 차 타고 온 놈까지

죄다 압록역에 모여 놓다가

서울로 올려보냈다

나무 대신 연탄을 땐다고

여기 모래가 최고 중의 최고라고

또 몽땅 서울로 실려 갔다

나를 먹여 살린 압록역이다

강도 흐르고 역도 흐르고

내가 또 압록역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데

베어지고 파냈던 상처도

압록의 강물로 흘러가고 있다

 

 

 

양원역에 가면

 

강봉환

 

눈과 귀와 가슴으로만 가야 하는 역이 있다 하늘 아래 땅이 있고

그리고 거기 역처럼 보이는

어쩌면 걸어서 가는 게 훪씬 나은 역이 있다

물어물어 찾아 와도 다시 갈 길이 먼 역이 있다

물 맑은 계곡에 손 한번 담그고 한참을 산야에 묻혀

그렇게 강줄기 따라 가야만 하는 역이 있다

좁은 길 따라 어르신에게 양보하며 물어 찾다보면

다리를 지나고 폐교분교를 지나 마치 성냥갑처럼

거기엔 간찬을 보고서야 겨우겨우 여기가 양원역임을…

번듯한 플랫폼 간판마저도 없는 간이역엔

주민들의 애환만이 서려있는 하늘아래 역이었다

철길 따라 걸어서 가는 게 왠지 편안한 양원역,

이 마을사람들이 지어 붙인 양원역이라는 간판부터

그렇게 보통사람들만의 역이 거기에 우뚝 서 있다

 

 

 

오수역에서

 

안도현

 

너의 아픔 곁에서

너의 아픔 속속들이 적시지 못할바에는

나, 서둘러 떠날란다

 

오수 발 서울행 새벽 기차 기적소리

 

 

 

월내(月內), 바다가 보이는 간이역

 

손택수

 

달 속에서 파도가 일렁인다

동해남부선이 가끔씩 철로보다 더 가늘고 긴

여운을 남기며 지나가는 간이역

지상에서 발톱을 다친 물새들이

하늘을 날고 있다 역사 가까운

초등학교 쪽에선 풍금소리가 새어나오고

풍금소리에 맞춰 개망초, 달개비, 참나리

고만고만한 꽃들이 하교길에

한눈을 팔며 놀고 있는 것도 보인다

돌담 위에는 푸른 고양이,

고양이 수염처럼 빳빳한 햇살이 설핏해졌다

선로보수 작업 중 잠시 머무는 동안

잠시 머물며 줄담배를 피우는 동안

달이 끄는 힘에 따라 내려선 눈

길은 플랫폼 벤치에 골똘히 앉아 있고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저 마을 어딘가에 생두부 한 모에

잔소주를 파는 민짜집이 있을 것이다

낮게 수그린 처마와 이마를 맞대고

틈틈이 손을 꺼내어 더운 음식을 주고받는

창문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믿음은 모두 저 바다 때문이다

고압선이 지직지직 달 속으로 들어간다

청어떼가 몰려온 바다, 어부의 집에서 나온

길 하나가 낚시줄처럼 팽팽하게 바다를 당긴다

바다가 먼저 신호처럼 집어등을 밝히면

집들도 따라 연연히 불을 켜고

둥근 불빛들이 내밀하게 속삭이며

살을 섞는 월내, 밤이면 배를 띄우리라

누군가 수심 위에 수심을 드리우며

지쳐나는 뭇새들이라도 쉬어가라

쉬어가라 수평선 위에 흐르는 불빛 하나를

내다 걸리라 한 번 빠져들면 좀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바다,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기차는 잘 알고 있다 다만 스치고 지나갈 뿐인

어디에도 머물 수 없는 자도

때로는 달의 인력을 이기지 못하고

저렇게 푸른 바다를 막막하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바다가 들려주는 소리에 속절없이

귀를 맡겨야 한다는 것을

달 속에서 풍금소리가 잦아든다

물새들이 느려터진 기차를 따라오다

멀어져 간다, 달빛 두 줄기만 남았다

 

 

 

자미원역

 

조  정

 

태백선 철도는 티베트선이라 불러도 좋습니다

기차가 서지 않는 플랫폼이 오백 년 된 양은냄비처럼

빛나는 소맷부리를 햇빛에 고스란히 내놓은 길목이 잇습니다

 

좁고 긴 의자는 드문드문 어깨가 벗겨져

빗소리에 쉬 젖거나

몸 무거운 새를 붙들고 안 놓아 주기도 합니다

심심한 철로를 혼자 두고 나올 수 없어서 놓친 버스가

가을 쪽으로 흘러가는 뒷모습을 따라

터널터널 터널 몇 개 여닫고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 이 길을 밟고 가면

비폭력 무저항으로 하늘을 사열 중인 포탈라 궁이 보입니다

 

고랭지 배추밭 비탈에는 울음 울 자리가 많습니다

증산역에서 하차하여 자미원역으로 돌아가

버스를 놓쳐야 합니다

사람이 내놓은 길에게 정 대신 눈물을 쏟아주고

마른 울음을 소리칠 자리만 많습니다

 

 

 

추전역

 

고  은

 

영동선 허위허위

해발 8백 55미터의 작은 역

너 누이야

석탄가루 날려

너하고 멜로드라마로 울며불며 헤어질 수도 없다

보아라 태백산 첩천한데

무엇하려고 십자가는 여기까지 와 솟아 있느냐

따라 모든 거룩한 말이여 너는 거짓말보다 못하다




통리역


황주경


눈 내리는 날

그대,

통리역에 내리면

미궁 같은 하얀 통속에 빠지리라

기차에서

지금 막 내린 사람이나

어디론가 떠나려는 사람, 모두

대합실을 마주보고 선 두 개의 문을 열어야

겨울을 밀봉한 통속 세상으로 들어 갈 수 있다

그곳에는 기차가 끌고 온 방황의 그림자가

배낭을 둘러멘 채 통속 세상을

낯설게 두리번거리고 있을 것이며

눈발을 몰고 다니는 하얀 바람은

시린 하모니카를 불며 통속으로 미끄러질 것이다

정신없이 빠져들며 두리번거리다

손이라도 잡아 주는 사람 하나 있다면

이미 당신은 돌아 나올 길을 잊었다는 얘기

만약 당신이 눈 내리는 날

통리역에 내리게 된다면

입구를 밀봉한 코르크 마개를 뗄 때부터

꼭 돌아올 길을 표시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잊었던 아리아드네의 눈물을 더듬어

역사를 찾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한림정역


강현덕


낙동강 물안개에

질식이라도 했는지

한낮의 미루나무

눈도 뜨지 못한다

기차는 오지를 않고

철컥철컥 오지를 않고


긴 의자에 삐죽 나온

못 같은 나를 돌아보다

안개 속에 감추어 둔

나의 아침을 생각하다

한림정 작은 역사에 기대

널 꿈꾸려 잠들다



 

 

 

 

 

posted by 황영찬
2017. 12. 4. 12:33 내가 읽은 책들/2017년도

2017-046-1 고사성어 문화답사기 2 섬서 · 산서 편

 

한성 사마천 사당의 편액들

사필소세, 한태사 사마사, 고산앙지, 하산지양(위로부터)

 

측백나무 세 그루가 있는 사마천 무덤

 

結草報恩

은혜가 사무쳐 죽어서도 잊지 않고 갚는다는 뜻.

結 : 맺을          결

草 : 풀             초

報 : 갚을          보

恩 : 은혜          은

 

증후을 편종

호북성 수주사에서 출토된 증후을의 부장품이다. 한 개의 박종鎛鐘. 45개의 용종甬鐘과 19개의 뉴종紐鐘으로 구성되었으며 곡척형으로 종을 걸 수 있는 걸대가 3층으로 되어 있다. 모든 종에는 각각 음의 명칭이 표시되어 있는데 두 개의 음까지 낼 수 있는 것도 있으며 12개의 반음을 모두 낼 수 있다.

 

증후을 편종 아래의 동인銅人 받침대

인물이 사실적이고 눈매가 또렷하며 자태가 위엄있다. 그리스나 로마 청동기의 해부학적인 면은 찾아 볼 수 없지만 개성표현에 치중하고 있다. 후세 진용秦俑의 선구를 이루었다.

 

명13릉 - 세계문화유산

 

명 인종의 헌릉입구

 

교가대원

 

북송 · 진사시녀상晉祠侍女像

이 상은 진사晉祠 성모전聖母殿 안에 있는 시녀상이다. 어린 소녀 하나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고, 한 소녀는 입을 삐죽 내밀고 곁눈질하고 있다. 생동적인 형상은 고대 장인들의 현실 생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숙련되고 정밀한 조소기술을 보여준다.

 

汗牛充棟

수레에 실으면 소가 땀을 흘리고 집에 쌓으면 대들보까지 닿게 된다는 뜻으로 책이 많은 것을 비유한 말.

汗 : 땀                한

牛 : 소                우

充 : 가득할          충

棟 : 마룻대          동

 

보구사

 

서상기에서 앵앵과 장생

 

관작루

 

등관작루

- 왕지환

 

하얀 해는 빛나며 서산에 기울고,

황하의 물결이 바다로 흘러드네.

아득한 먼 곳을 바라보려면,

한 층 더 높이 올라가야 하리.

 

백일의산진(白日依山盡)

황하입해류(黃河入海流)

욕궁천리목(欲窮千里目)

경상일층루(更上一層樓)

 

起死回生

죽은 사람이 일어나 다시 살아남.

起 : 일어날      기

死 : 죽을         사

回 : 돌아올      회

生 : 살            생

 

편작이 의술을 행하는 석상. '편작행의'라고 쓰여 있다.

 

서안의 편작기념관과 그 앞의 동상

 

편작사당(산서 영제시)

 

董狐直筆

사실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쓰는 것을 말함.

董 : 동독할      동

狐 : 여우          호

直 : 곧을          직

筆 : 붓             필

 

후마 동씨묘 안에 있는 연극무대

 

연극무대 위의 배우들

 

華而不實

꽃은 화려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다라는 뜻으로,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실속이 없음을 비유하는 말

華 : 빛날          화

而 : 말이을       이

不 : 아닐          부

實 : 열매          실

 

공상희고거

 

공상희 저택의 패문

 

태곡병

 

單刀赴會

칼 한 자루를 들고 모임에 나간다는 뜻으로, 여기서 모임이란 매우 위험한 자리를 가리킨다.

單 : 홑              단

刀 : 칼              도

赴 : 다다를        부

會 : 모일           회

 

단도회에 나가고 있는 관우의 모습

 

해주묘에 안치된 관우상 왼쪽이 주창이고 오른쪽은 관평이다.

 

해주 관제묘 전경

 

해주 관제묘

 

관림(하남성 낙양)

손권이 조조에게 보낸 관우의 머리를 묻은 곳이다.

 

관릉(호북성 당양)

동한 건안 24년(219)에 건립되었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관우는 오나라 군대와의 교전에서 목숨을 잃었다. 오왕 손권은 관우의 머리는 낙양의 조조에게 보내고, 머리없는 시신은 제후의 예를 갖추어 당양에 묻어 주었다.

 

관제묘 입구의 유리 영벽

 

관제묘 단문

왼쪽에 '대의참천', 오른쪽에 '정충관일'이라는 편액이 있다.

 

치문

 

오문

 

어서루의 편액

절륜일군 : 언여사의 글씨

 

신용

건륭황제의 친필이라고 한다.

 

종루

 

관우가 춘추를 읽고 있는 모습. 얼굴은 역시 붉은 대춧빛이다.

 

결의원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