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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9 노자평전

쉬캉성 지음 | 유희재 · 신창호 옮김
2002, 미다스북스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8909

152.222
쉬 872 노

▲ 노자기우도老子騎牛圖. 조보지 그림. 송宋

▲ 노담老聃으로도 불리는 노자는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고현苦見(지금의 하남성 녹음) 사람으로 일찍이 주나라 장서실藏書室 사관史官을 지냈다. 그리고 언제나 늙은 소를 타고 두루 돌아다니며 자연 방임과 무위無爲의 다스림이라는 도가의 사상을 전파하였다고 전해진다.

▲ 안이성 와양의 태청궁太淸宮의 노군전老君殿

▲ 복건성 천주 청원산의 노군암老君岩

기원전 5, 6세기 사람으로서 중국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노자는 오늘날까지 추앙과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연장자인 노자에게 예를 묻는 공자

▲ 승덕承德 여름 별장에 있는 청나라 황제의 의사청議事廳. "담박경성澹泊敬誠(담백함을 으뜸으로 함)"이란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는 노자학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노자의 도가 철학은 유학을 반대하면서도 유학을 발전시켰고 위진 현학에서는 한 시대의 주류 사상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도교와 불교뿐 아니라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도의 우주생성론을 주창한 그의 사상은 중국 철학의 체계를 세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 호남성 장사의 마왕퇴에서 출토된 백서본 『노자』현존하는 『노자』판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도덕경』이라고도 하는 『노자』는 '도道편'과 '덕德편'으로 되어 있다. 저작 시기와 주체는 분명하지 않다. 노자의 사상을 담고 있는 이 저작은 전국시대 중반부터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하였고, 장자를 비롯한 여러 사상가들과 정치가들이 이를 탐독하였다. 또한 이 책에 대한 연구도 오랜 기간 계속되어 여러 주석본들이 고증을 거쳐 제작되어 왔다.

|차례|

서문

제1부 노자의 생애
노자의 성씨
노자의 이름과 자字
노자의 본관

제2부 『노자』는 어떤 책인가?

제3부 노자의 지혜
도道는 만물을 낳는다
덕德은 만물의 본성이다
천도天道는 무위無爲하고 귀신은 조화를 부리지 않는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
고요함(靜)으로 움직임(動)을 제어한다
서로 반대되면서 서로 완성시킨다
현묘한 마음의 거울(心鏡)을 깨끗이 씻어낸다
억지로 행하지 않고도 다스린다
소박하고 겸하謙下하라

제4부 노자가 중국철학사상에 미친 영향
중국 철학사에서 노자의 지위와 영향
중국 도교 사상사에서 노자의 지위와 영향
노자 사상이 중국 불교에 미친 영향

저자 후기

부록 - 『老子道德經』上 · 下篇

제1부
노자의 생애

담이란 귀가 질펀하고 귓바퀴가 없다는 뜻이다.
『신선전』에서 이르기를, '외자外字는 담'이라고 했는데, 생각건대,
자字는 호號이다. 아마 노자의 귀가 질펀하고 귓바퀴가
없어 담이라고 부른 듯하다.
- 『사기정의』

노자는 초나라 고현 여향 곡인리 사람이다. 성은 이씨이고, 이름은 이, 자는 백양伯陽이며, 일명 중이重耳이고, 외자外字는 담이다.
- 『사기정의史記正義』에 인용된『주도옥례朱韜玉禮』와『신선전神仙傳』

갈현葛玄이 말하기를, "이씨 여인의 소생이었기 때문에 어미의 성을 따랐다." 또 이르기를, "태어나면서 오얏나무(李樹)를 가리켰기 때문에 성을 이씨로 하였다."- 『사기색은史記索隱』

노자는 호號이지, 이름이 아니다. 노老는 '밝힌다(考)'는 의미이고, 자子는 '낳는다(孳)'는 뜻이다. 모든 이치를 가르치고 밝혀 성스러운 것을 낳아 이룬다는 뜻이다. 이에 만물을 낳고, 모든 사물을 잘 화합하게 하여 남김이 없게 한다는 것이다.
- 『사기정의』

노탐은 무위無爲를 배우고 도덕을 귀하게 여겼으니, 그가 바로 주나라 사관인 백양이다. 세 강물이 마르는 것을 보고 주나라가 장차 망할 것을 알았으며, 공자의 스승이 되었다.
- 『여씨춘추』의 「중언重言」

유왕幽王 3년에 서주의 세 강물이 모두 지진이 일어나 진동하자, 백양보가 말하기를 "주나라가 장차 망하겠구나"라고 하였다. 이 해에 세 강물이 마르고 기산岐山이 무너졌다. 11년에 왕이 멸망하였고 주나라는 다시 수도를 옮겨 갔다. 이를 고유가 보고 주석을 했다.
- 『국어國語』의「주어周語」

『지리지』에서 고현이 진나라에 속한다는 내용은 틀린 것이다. 고현은 본래 진나라에 속했으나, 춘추 말기에 초나라가 진나라를 멸망시켜 초나라에 귀속되었다. 그래서 초나라의 고현이라 한다.
- 『사기색은』

연표에 의하면, 회양국淮陽國은 한漢나라 경제景帝 3년에 폐하였다. 천한天漢연간에 역사를 편찬할 때에, 이곳은 초나라 절왕節王이 도읍한 팽성과 가까웠다. 의심하건대 이때 고현이 초나라에 속한 듯하다. 그러므로 태사공이 이를 기록하였을 것이다.

『괄지지括地志』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고현은 박주亳州 곡양현谷陽縣의 경계에 있었다. 노자의 집과 묘가 있고, 묘 안에 구정九井이 아직도 남아 있다. 지금의 박주 진원현眞源縣에 있다. 여는 음이 뇌賴이다. 그래서 진晉나라 『태강지기太康地記』에서는 '고현성 동쪽에 뇌향사賴鄕祠가 있는데, 노자가 태어난 곳이다.라고 하였다.
- 『사기정의』

공자의 나이 17세가 되던 해, 노나라의 대부인 맹희자孟釐子가 병으로 죽어가면서 그 후손인 의자懿子에게 훈계하며 말하였다.
"공구孔丘는 성인의 후손이다. (중략) 지금 공구가 아직 어린데도 예를 좋아하니, 통달한 자가 아니겠는가? 내가 죽거든 반드시 그를 스승으로 삼도록 하여라."
맹희자가 죽자 맹의자와 노나라의 남궁경숙南宮敬叔은 공자를 찾아가 예를 배웠다. (중략) 남궁경숙이 노나라 왕에게 청하였다.
"바라옵건대 공자와 함께 주나라로 가십시오."
노나라 왕은 공자와 함께 수레를 타고 주나라로 가서 예를 물었는데, 아마도 노자를 만났을 것이다.
- 『사기』의「공자세가」

맹의자와 남궁경숙이 공구에게 사사했던 때는 소공 24년 이후이다. 『사기』의「공자세가」에는 '공자의 나이 17세가 되던 해 맹희자가 죽었고, 맹의자와 남궁경숙이 공자에게 예를 배웠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태사공은 그 해에 맹희자가 죽은 것으로 오인했고, 맹의자와 남국경숙이 소공 11년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중략) 즉 소공 24년에 두 사람의 나이는 겨우 13세에 불과했다.
- 『춘추좌전』

공자의 나이 51세였으나, 아직도 도에 대해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쪽의 패沛로 가서 노담을 만났다. 노담이 물었다.
"그대가 왔는가? 나는 그대가 북방의 현자라고 들었는데, 그대는 도를 터득했는가?"
공자가 대답했다.
"아직 터득하지 못했습니다."
- 『장자莊子』의「천운天運」

공자가 서쪽의 주나라 왕실에 자신의 저서들을 소장시키고자 하자, 자로子路가 의논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듣기로는 주나라의 서고 담당관으로 노담이란 자가 있는데, 지금은 물러나 고향에서 산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저서를 소장시키고 싶다면 그를 한번 찾아가서 부탁해보시지요."
공자가 말하였다.
"좋은 생각이다."
공자가 노담을 만났으나 노담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 『장자』의「천도天道」

공자가 말하였다.
"옛날에 내가 노담을 따라 항당巷黨에서 남의 장례를 돕고 있는데, 길에서 일식日食이 있었다.
노담이 말하였다.
'구丘야! 영구를 멈추고 길 오른쪽에 가서 곡을 그쳐라. 그리고 일식의 변동을 보아라'
일광이 회복된 뒤에 노담이 나아가면서 말하였다.
'이것이 예이다.'"
- 『예기』의「증자문」

길례吉禮에는 왼쪽을 높은 자리로 하고, 흉례凶禮에는 오른쪽을 높은 자리로 한다. 부관장군은 왼쪽에 자리하고, 상장군上將軍은 오른쪽에 자리한다. 이것은 상례喪禮로써 전쟁에 처하란 말이다. 많은 사람을 죽일 것이니, 애도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전쟁에 이겼어도 상례로 마무리한다.
- 『노자』제31장

증자문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옛날에 내가 노담을 따라 항당에서 남의 장례를 돕고 있는데, 길에서 일식이 있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소공 24년 5월 을미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고 『춘추春秋』에 나와 있다. 이때가 공자가 노담을 따르며 예를 물었던 때이다.
- 『사기』의 「노자전전증」

소공 24년 공자의 나이 34세 때, 맹희자가 죽었다. 남궁경숙은 출문出門조차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나이가 겨우 14세였다. 이때는 아마도 왕을 알현할 수 없었을 것이고, 주나라에 갈수도 없었을 것이다.
- 양옥승梁玉繩

기원전 518년 4월 9일에 일식이 일어났다. 시베리아 서부에서 일어나 동으로 약간 기울고, 서북으로 향하여 북방양으로 들어갔다. 노나라 도읍에서는 볼 수 없었다.
- 『춘추좌전』

그대가 말하는 옛 성인도 지금은 그 육신과 뼈마디가 썩어 문드러져서 그 말씀만 남아 있을 뿐이다. 군자는 때를 만나면 세상으로 나아가 정치를 하며 수레를 타는 귀한 몸이 된다. 그렇지 못하면 야인으로 떠돌이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이 보관해두어 속이 알차지만, 남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한다. 군자는 훌륭한 덕을 쌓아 속이 충실하지만 남보기에는 어리석은 것같이 보이게 한다. 그러니 그대는 교만함과 과욕과 잘난 척하는 마음과 산만한 생각 따위를 다 버려라. 그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이익도 되지 않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뿐이다.
- 『사기』「노장신한열전」

"새가 날아다니고, 물고기는 헤엄치며, 짐승이 달린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달리는 것은 그물을 쳐서 잡고, 헤엄치는 것은 낚싯대를 드리워서 낚으며, 날아다니는 것은 주살을 쏘아야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나 용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오른다고 하니, 나로서는 용의 실체를 알 수가 없다. 나는 오늘 노자를 만났는데, 마치 용과 같아 전혀 잡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 『사기』「노장신한열전」

공자가 노담을 만나고 돌아와서 왜 3일 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자,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노담을 만나서 도대체 무엇을 깨우치셨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나는 그곳에서 용을 보았다. 용은 합쳐지면 모습을 이루고, 흩어지면 아름다운 무늬를 그리며, 구름을 타고 음양 속을 훨훨 난다.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고, 혀가 달라붙어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내가 어찌 노담을 깨우친단 말인가?"
- 『장자』의「천운」

노래자老萊子의 제자가 나무를 하러 갔다가 중니(孔子)를 만나고 돌아와서 말하였다.
저기에 사람이 있는데, 위 몸통은 길고, 아래 몸통은 짧으며, 등은 굽고 귀가 머리 뒤쪽에 붙어 있습니다. 눈초리는 마치 천하를 다스리고 있는 듯한데, 누구네 자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노래자가 말하였다.
"공구孔丘일 것이다. 불러 오너라."
중니가 오자 노래자가 말하였다.
"공구야, 그대 몸에 배어 있는 자만과 현학적인 모습을 버려라. 그러면 군자가 될 것이다."
- 『장자』의 「외물外物」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노래자도 초나라 사람이며 15편의 책을 지어 도가의 깊은 뜻을 밝혔는데, 공자와 동시대 사람이라고 한다.
- 『사기』「노장신한열전」

장수절張守節은 『사기정의』에서 '태사공이 노자를 노래자로 의심했으므로 그렇게 기록하였다'라고 밝혔으나, 이는 장수절이 잘못 본 것이다. 『사기』의「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는 '공자가 존경하는 인물로서 주나라의 노담, 위나라의 거백옥, 제나라의 안평중, 초나라의 노래자, 정나라의 자산, 노나라의 맹공작 등 있다'고 적혀 있다. 그러므로 사마천은 본래 노담과 노래자를 다른 인물로 본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증거이다. 그리고 사마천은 '노자는 상하 두편의 책을 지었는데, 도덕의 의미를 밝힌 5천여 글자를 남겼다'고 했으며, '노래자는 15편의 책을 지어 도가의 깊은 뜻을 밝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사마천은 명확히 두 사람이 다른 사람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한나라 때에 『노담』과『노래자』라는 책이 모두 있었다. 이것이 두 번째 증거이다. 이외에도 신도愼到 · 전병田騈 · 접여接予 · 추연騶衍 · 공손룡公孫龍, 묵적墨翟 등이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에 부연된 것만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태사공이 노자를 노래자로 의심했다는 장수절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노래자가 초나라 사람인지, 공자와 동시대 사람인지를 태사공은 상세히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전해오는 말에 의거해서 썼을 뿐이다. 즉 태사공은 「맹자순경열전」에서  '묵적은 송나라 대부로서 성을 잘 지키고 비용을 절약하였다. 어떤 사람은 그를 공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공자 이후의 인물이라고 말하여 분명치가 않다'라고 적었는데 이것이 바로 그와 동일한 필법이다.
- 『사기』「노자열전전정老子列傳箋証」

노자는 허무虛無의 도덕을 닦아서 스스로 재능을 숨겨,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힘쓰는 데에 학문의 목표를 두었다. 주나라에 오래 머물렀는데, 주나라가 쇠퇴해지자 마침내 떠나기로 작정하고, 관문에 이르렀다. 관령關令 윤희尹喜가 "선생님께서는 이제 은거하시려고 하니 이 사람을 위해 가르침을 남겨주십시요"라고 청하였다. 이에 노자는 상하 두 편을 저술하여 도덕의 의미를 밝힌 5천 여 글자를 남기고 관을 떠났다. 그 후로 노자의 최후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사기』「노장신한열전」

공자가 죽은 뒤 129년 되던 해에, 주나라의 사관인 태사太史 담이 진헌공秦獻公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진나라는 처음에 주나라와 합쳐져 있다가 500년 뒤에 갈라질 것이며, 갈라진 지 70년이 지나면 패왕이란 자가 나타나리라"
어떤 사람은 담이란 자가 노자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세상에는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노자는 숨어 지내는 군자이기 때문이다.
- 『사기』「노장신한열전」

노자의 아들은 이름이 종宗이었는데 위나라 장군이 되어 단간段干 땅에 봉해졌다. 종의 아들은 주注이고, 주의 아들은 궁宮이며, 궁의 현손은 가假인데, 가는 한漢 문제文帝를 섬겼다. 가의 아들인 해解는 교서왕膠西王 앙卬의 태부太傅가 되어 그 제나라에서 계속 살았다."
- 『사기』「노장신한열전」

제2부
『노자』는 어떤 책인가?

아는 이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 구멍을 막고, 그 문을 닫고, 그 날카로움을 꺾고,
그 엉킴을 풀고, 그 빛을 누그러뜨리고,
그 더러움을 함께 뒤집어 쓰니
이를 일러 현묘하게 같아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멀리 할 수도 없으며
이롭게 할 수도 없고 해롭게 할 수도 없으며
귀하게 여길 수도 없고 천하게 여길 수도 없으니
그러므로 천하의 귀한 것이 된다.
- 『노자』제56장

노탐老耽은 유柔를 귀하게 여기고, 공자는 인仁을 귀하게 여긴다. 묵적은 겸兼을 귀하게 여긴다.
- 『여씨춘추』「불이不二」

형 땅 사람 중에 활을 잃어버린 자가 있었는데, 찾으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형 땅에 사는 사람이 잃어버렸으니 형 땅에 사는 사람이 얻을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찾아서 무엇하겠는가?"
공자가 그 소리를 듣고 말하였다.
"형 땅을 떠나는 것이 옳다."
노담이 그 소리를 듣고 말하였다.
"그 사람을 떠나는 것이 옳다."
그러므로 노담은 공적인 데에 이르렀다.
천지는 크다. 천지가 만물을 낳았는데 자기 지식으로만 기르지 않고 이루었는데도 자기 것으로 소유하지 않으니, 만물이 모두 그 혜택을 입는다. 이익을 얻어도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알지 못한다.
- 『여씨춘추』「귀공貴公」

노자가 말하였다.
"귀함은 반드시 천함을 근본으로 하고, 높은 것은 반드시 낮은 것을 터전으로 삼는다."
- 『전국책』「제책齊策」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은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것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 형체가 없는 것은 틈이 없는 데로 스며들어 갈 수 있다. 나는 무위가 얼마나 유익한 지를 안다.
- 『노자』제43장

몸은 몸으로 보고 집안은 집안으로 보며 마을은 마을로 보고 나라는 나라로 보며 천하는 천하로 본다. 내가 어떻게 천하가 그러함을 알겠는가? 바로 이런 방식을 가지고서이다.
- 『노자』제54장

나는 세 가지 보배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잘 지키고 보존한다. 하나는 자애이고, 둘은 검약이고, 셋은 감히 세상을 위하여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 『노자』제67장

나의 말은 아주 알기 쉽고, 아주 행하기도 쉽다. 세상에서는 알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한다.
- 『노자』제70장

만약 백성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할 수 있겠는가? 백성이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고, 범죄자를 내가 잡아죽인다면, 누가 감히 범죄를 저지르겠는가.
- 『노자』제72장

후왕은 하나를 얻어서 천하를 올바르게 한다. (중략) 후왕은 끊임없이 고귀하고 높게만 행세하려 들면 장차 실각하게 될 것이다. (중략) 후왕은 스스로 외로운 사람, 덕이 부족한 사람,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일컬었다.
- 『노자』제39장

도는 항상 무위하지만, 하지 아니함이 없다.
후왕이 이를 잘 지킨다면 만물은 저절로 교화될 것이다.
- 『노자』제37장

천하에 도가 있으면 예악과 정벌이 천자로부터 나오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예악과 정벌이 제후로부터 나온다.
- 『논어』「계씨季氏」

제후들이 피폐한 틈을 타고 들고 일어날 것이다.
- 『손자병법』「작전作戰」

제후들의 계책을 알지 못하는 자는, 만약에 대비하며 미리 외교를 하지 못한다.
- 『손자병법』「군쟁軍爭」

제후들을 굴복시킬 적에는 해로움으로써 하고,
제후들은 부릴적에는 일로써 하고,
제후들을 나에게 할 적에는 이로움으로써 한다.
- 『손자병법』「구변九變」

제3부
노자의 지혜

사람은 연약하게 태어나지만 단단하게 굳어져 죽고
만물초목은 부드럽게 나서 딱딱하게 말라 죽는다.
그러므로 단단하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삶의 무리이다.
그래서 군사가 강하기만 하면 이길 수 없고
나무가 강하기만 하면 베어진다.
강하고 큰 것은 낮은 곳에 있고,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높은 곳에 처한다.
- 『노자』제76장

은나라는 하나라의 예를 인습하였으니, 덜어내고 보탠 것을 알 수 있으며, 주나라는 은나라의 예를 인습하였으니, 덜어내고 보탠 것을 알 수 있다. 혹시라도 주나라를 잇는 자가 있다면, 비록 백 세 뒤라 할지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 『논어』「위정爲政」

사람으로서 인仁하지 못하면 예禮를 어떻게 사용하며, 사람으로서 인仁하지 못하면 악樂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겠는가?
- 『논어』「팔일八佾」

길례(吉禮)에는 왼쪽을 높은 자리로 하고, 흉례(凶禮)에는 오른쪽을 높은 자리로 한다. 부관장군은 왼쪽에 자리하고, 상장군上將軍은 오른쪽에 자리한다. 이것은 상례喪禮로써 전쟁에 처하라는 말이다. 많은 사람을 죽일 것이니, 애도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전쟁에 이겼어도 상례로 마무리한다.
- 『노자』제31장

나에게는 세 가지 보배가 있으며, 나는 이것을 언제나 지니고 보존하고 있다. 첫째는 자애이고, 둘째는 검약이고, 셋째는 감히 천하의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 『노자』제67장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 것을 미微라 하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것을 희希라 하며,
만져보지만 만져지지 않는 것을 이夷라 한다.
세 가지는 끝까지 따져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원래부터 섞여서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위쪽이라고 해서 밝지도 않고
아래쪽이라고 해서 어둡지도 않다.
끝없이 이어져 잇어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그것은 무의 상태로 되돌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형상이 없는 형상이라 하고
사물이 없는 형상이라고 한다.
이것을 황홀이라 말한다.
- 『노자』제14장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을 부린다. 형태가 없는 것은 틈이 없는 곳으로도 들어간다.
- 『노자』제43장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고,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참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을 천지의 시초라 하고,
이름이 있는 것을 만물의 근원이라 한다.
(중략)
이 둘은 같은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의 앞으로 나와서 이름을 달리 했을 뿐이다.
현묘하고도 현묘하니
온갖 묘한 것들을 빚어내는 문이다.
- 『노자』제1장

혼돈 상태에 잇으면서도 이루어지는 무엇인가가
천지만물보다도 먼저 생겼다.
그것은 소리가 없어 들을 수 없고,
형체가 없어 볼 수도 없다.
홀로 우뚝 서 있으며 늘 변하지 않는다.
두루 행해지면서도 위태롭지 않으니
천지만물의 어머니라 할 수 잇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하겠다.
억지로 글자를 붙여 도道라 부르고,
억지로 이름을 지어 크다大 할 뿐이다.
- 『노자』제25장

이 세계에는 시작이 있는데,
그것이 이 세계의 어머니같은 역할을 한다.
그 어머니를 알면 그 자식을 알 수 있다.
그 자식을 알고
다시 그 어머니에게 돌아가 지킨다면
죽을 때까지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 『노자』제52장

옛날부터 하나를 얻어서 된 것들이 있다.
하늘은 하나를 얻어서 맑고
땅은 하나를 얻어서 안정되며
신은 하나를 얻어서 영험하고,
골짜기는 하나를 얻어서 채워지며,
만물은 하나를 얻어서 살고,
통치자는 하나를 얻어서 천하를 바르게 한다.
- 『노자』제39장

리는 모나고 둥근 것, 길고 짧은 것, 거칠고 쏠리는 것, 굳고 허물거리는 것 사이의 분별이다
- 『한비자』「해로」

도라는 것은 정말로 황恍하고도 홀惚하다
홀하고 황하면서 그 안에 형상이 있다!
황하고 홀하면서 그 안에 형체가 있다!
그윽하면서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 정기가 있다!
그 정기는 참되고 믿음직스럽다.
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존재하니
그것을 통해 시작을 볼 수 있다.
내가 어째서 시작되는 상태를 알겠는가?
이것에 의해서이다.
- 『노자』제21장

세가지(微希夷)는 헤아릴 수 없는 혼돈된 하나이다. 온전하게 이름 붙일 수 없고 무물無物로 돌아가니, 무물의 형상이 황홀하다. 그런데 다음 장에서는 '도라는 것은 오로지 황하고 홀하다. 홀하고도 황하면서 그 안에 형체가 있다'라고 하였다. 이 두 장에서 어떤 때는 형체가 없음을 말하고, 어떤 때는 형체가 있음을 말하였으니 일치하지 않는다.
- 손성孫盛 『노자의문반신老子疑問反訊』

노자의 글에는 그 말이 서로 모순되어 있다. 이것은 마치 얼음과 숯처럼 서로 상극되어 용납되지 않는 관계와 같다.
- 『하남정씨유서河南程氏遺書』제18권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을 지고 양을 끌어안아서
텅빈 가운데 기가 충만하여 조화를 이룬다.
- 『노자』제42장

천하만물은 유에서 생겨나고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
- 『노자』제40장

만물이 다같이 자라지만, 나는 그것이 근원으로 돌아감을 본다.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지만, 결국은 모두 근원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고요함(靜)이라 한다.
- 『노자』제16장

오늘날 노자의 책을 자세하게 살펴보니, 생명력을 다스리는 것에 관한 글이다. 그러니 '덕은 만물의 본성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 고형高亨 『노자정고』

가장 훌륭한 덕(上德)은 덕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덕이 있다.
수준 낮은 덕(下德)은 덕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므로 덕이 없게 마련이다.
- 『노자』제38장

무엇을 낳고도 그것을 소유하지 않고
무엇을 하고도 그것을 자랑하지 않으며
무엇을 길러주고도 그것을 주재하려 들지 않는다.
- 『노자』제51장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일이요.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 것은 나라를 복되게 하는 일이다.
이 두 가지를 아는 것이 다스림의 법칙이다.
언제나 다스림의 법도를 아는 것을
현덕이라고 한다.
- 『노자』제65장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
- 『논어』「팔일」

죽음과 삶은 명에 달려 있고, 부와 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
- 『논어』「안연」

하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사시四時가 운행되고 온갖 만물이 잘자라는데, 하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 『논어』「양화」

인을 행하는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겠는가?
- 『논어』「안연」

하루라도 인에 힘쓰지 않는 자가 있는가? 나는 힘이 부족한 자를 아직 보지 못하였다.
- 『논어』「이인」

하늘은 응달과 양달, 추위와 더위, 시간의 변화와 관계되고, 땅은 먼 곳과 가까운 곳, 험한 곳과 평탄한 곳, 넓은 곳과 좁은 곳, 죽음과 삶과 관계된다.
- 『손자병법孫子兵法』「계편計篇」

그렇다면 누가 하늘의 의지에 따라 상을 받을 것인가? 누가 하늘의 의지에 반하여 벌을 받을 것인가? 묵자는 말하였다. 옛날 삼대의 성왕인 우 · 탕 · 문무는 하늘의 의지에 따라 상을 받았고, 옛날 삼대의 폭군인 걸 · 주 · 유 · 여는 하늘의 의지에 반하여 벌을 받았다.
- 「천지天志」상

명은 폭군이 지은 것으로 (중략) 어진 사람의 말이 아니다.
- 「비명」하

노력하면 반드시 다스려지고, 노력하지 않으면 어지러워진다.
(중략)
노력하면 반드시 귀하게 되고, 노력하지 않으면 천하게 된다.
노력하면 반드시 부유하게 되고, 노력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난하게 된다.
- 「비명」하

천지는 어질지 않다.
만물을 풀강아지(芻狗)와 같이 여긴다.
- 『노자』제5장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 단 이슬을 내리듯이
백성들은 명령하지 않아도
스스로 제 질서를 찾는다.
- 『노자』제32장

사람도 잘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기겠는가?
- 『논어』「선진」

신에게 제사 지낼 때는 신이 있는 듯이 한다.
- 『논어』「팔일」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한다.
- 『논어』「옹야」

도로써 천하에 임하면,
귀신도 조화를 부리지 못한다.
귀신이 조화를 부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신도 사람을 해치지 못한다.
- 『노자』제60장

지금 『노자』를 보니 많은 이야기를 했다. 사람으로서 어찌 사랑하지 않았으랴. 그 학문은 세상에 나와서 천하를 다스리는 데 기여했다.

노자는 무언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장자는 하지 않은 듯하다.
- 『주자어류朱子語類』권125

천하에는 겁쟁이들의 궘모술수가 많아 그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러나 지혜로 나아간다면, 필연적으로 세력을 넓혀 나갈 수 있다.
- 『제자학략설諸子學略說』

남성의 힘을 쓸 수 있으면서도 여성적인 겸허와 유약을 지키면
천하의 물이 모여 흘러가는 골짜기와 같이 될 수 잇다.
(중략)
밝게 알아서 미천한 자리를 지킬 수 있으면
천하의 골짜기가 될 수 있다.
- 『노자』제28장

백성들 위에 서려는 자는
반드시 자기를 낮추고
백성 앞에 서려는 자는
반드시 자신을 뒤로 해야 한다.
- 『노자』제66장

감히 세상을 위하여 앞으로 나서지 않음으로
온 세상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
- 『노자』제67장

나라의 허물을 받아 들이니, 사직의 주인이라 하고,
나라의 상서롭지 못한 것을 받아들이니 천하의 왕이라 하는 것이다.
- 『노자』제78장

노자의 학문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한가한 때에 낮은 자리에 처하는 사람이고 긴요한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가르침은 여러 갈래로 향하나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중략) 두렵도다! 두렵도다!
- 『주자어류』권22

무력은 좋지 못한 것이다.
부득이 해서 그것을 쓴다.
- 『노자』제31장

비록 무기가 있어도 쓸 필요가 없다.
- 『노자』제80장

천하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천하에서 가장 견고한 것을 부린다.
- 『노자』제43장

천하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하지만 굳센 것을 치는 데
물을 이길 것은 없다.
- 『노자』제78장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유약하지만,
죽으면 뻣뻣해진다.
초목도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지만,
죽으면 말라서 딱딱하게 된다.
그러므로 뻣뻣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이다.
- 『노자』제76장

사람들이 모두 앞서려고 하는데, 그만이 홀로 남의 뒤를 따르려 했다.
- 『장자』「천하」

굽히는 것만 알고 뻗는 것은 알지 못했다.
- 「천론」

병법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내가 싸움을 거는 사람(主)이 되지 말고,
부득이 하게 맞는 방어자(客)가 되어라.
한 치라도 감히 공격해나가지 말고
한 자 후퇴하라.'
- 『노자』제69장

적을 가볍게 보는 것보다 더 큰 화는 없다.
적을 가볍게 보다가는 나의 보배를 잃게 될 것이다.
- 『노자』제69장

강이나 바다가 온갖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잘 낮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온갖 계곡물의 왕이 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백성들 위에 서려는 자는
반드시 자기를 낮추고
백성 앞에 서려는 자는
반드시 자신을 뒤로 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인이 위에 있어도
백성이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다.
성인이 앞에 있어도
백성이 해롭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온 천하가 즐거운 마음으로 그를 추대하고
싫어하지 않는다.
- 『노자』제66장

움츠리게 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펴줘야 하고,
약하게 만들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해줘야 하고,
폐절하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흉하게 해줘야 하고,
빼앗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줘야 한다.
- 『노자』제36장

휘면 펴지게 된다.
패이면 꽉 차게 되고,
낡으면 새로워 진다.
적으면 얻게 되고,
많으면 미혹된다.
- 『노자』제22장

계속 채우려 드는 것보다
멈추는 것이 더 낫고,
잘 다듬어 날카롭게 하면
오래 갈 수 없다.
온갖 보화를 집안 가득 채우지만
그것을 지킬 수가 없고,
부유하고 높은 자리에 있다하여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기게 된다.
공이 이루어 지면 물러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 『노자』제9장

말이 없는 것이야말로 자연스런 것이다.
그러므로 강풍은 아침 나절 내내 불지 못하고,
폭우도 하루 종일 내리지 못한다.
누가 이렇게 하는가?
천지(자연)이다.
천지(자연)도 그렇게 오래 지속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 『노자』제23장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으나
결국은 모두가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마련이다.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고요함(靜)이라 하고,
그것을 본성으로 되돌아간다고 말한다.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변하지 않는 도라고 한다.
- 『노자』제16장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의 뿌리가 되고,
고요함이 조급함을 지배하게 된다.
- 『노자』제26장

고요함은 열기를 이기니
맑고 고요함이 천하의 올바른 것이다.
- 『노자』제45장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아름다운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추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착한 것을 착하다고 인식하는 것은
착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有와 무無는 서로를 낳고,
어려움과 쉬움도 서로를 성립시켜주며,
긴 것과 짧은 것도 서로를 이뤄주고,
높은 것과 낮은 것도 서로를 포함하며,
노래와 소리도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도 서로 따른다.
- 『노자』제2장

그러므로 귀한 것은 천한 것을 뿌리로 삼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을 바탕으로 삼게 마련이다.
- 『노자』제39장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다 같이 꽂혀 있으나,
바퀴통의 한복판에 있는 빈 공간이 바로 수레를 작동시키는 요인이다.
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들지만
그릇 가운데에 있는 텅빈 공간이 바로 그릇을 쓸모있게 만드는 곳이다.
문이나 창을 뚫어 방을 만들지만,
방 가운데에 있는 공간이 바로 방을 쓸모있게 만드는 곳이다.
- 『노자』제11장

착한 사람은
착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고,
착하지 않은 사람은
착한 사람의 거울이다.
- 『노자』제27장

화禍 속에 복이 깃들어 있고,
복福 안에 화가 숨어 있다.
누가 그 근원을 알 수 있겠는가?
정해져 잇는 것은 없다.
바른 것은 다시 기이한 것이 되고
좋은 것은 다시 악한 것이 된다.
- 『노자』제58장

아름드리 나무도
털끝 같은 싹에서 생겨났고,
구층이나 되는 높은 누각도
한 줌 흙을 쌓아 올려서 된 것이고,
천리의 걸음도
발 밑의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 『노자』제64장

어려운 일은 쉬운 데서부터 풀어야 하고,
큰일은 사소한 데서부터 치르도록 해야 한다.
세상의 어려운 일도 반드시 쉬운 데서 일어나고,
세상의 큰일도 반드시 작은 데서 일어난다.
- 『노자』제63장

학문에 종사하면, 지식이 나날이 늘고,
도를 닦으면, 지식이 나날이 줄어든다.
줄어들고 또 줄어들어 결국에는
무위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 『노자』제48장

그러므로 성인은 말했다.
내가 억지로 하지 않으니,
백성이 저절로 질서를 찾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니,
백성이 저절로 바르게 되고,
내가 억지로 일을 꾸미지 않으니,
백성이 저절로 부유하게 되고,
내가 지나치게 욕심내지 않으니,
백성이 저절로 소박하게 되었다.
- 『노자』제57장

그러므로 성인은 억지로 행하는 바 없이 세상일에 처하고,
말없는 가르침을 실천한다.
- 『노자』제2장

가장 훌륭한 덕은 무위이면서 무엇을 위하여 일부터 작위하지 않는다.
- 『노자』제38장

움직임은 한기를 이기고, 고요함은 열기를 이기니, 맑고 고요함이 천하의 올바른 것이다.
- 『노자』제45장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까닭은
그들이 지혜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활한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일이요,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 것은
나라의 복이 된다.
- 『노자』제65장

나라는 바른 도리로 다스리고,
용병작전은 기발한 전술로 치러야 하지만,
천하를 다스림에는 무위로 처해야 한다.
내가 어떻게 그러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바로 무위자연의 도로써 알 수 있다.
천하에 금기가 많으면
백성이 더욱 가난하게 되고,
백성이 이로운 기물을 가지면 가질수록,
나라는 더욱 어둡고 혼란하게 되고,
사람들이 간교한 꾀를 많이 부리면,
간사한 일들이 더욱 많이 나타나게 되고,
법령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도적이 늘어나게 된다.
- 『노자』제57장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기는 데 아끼는 것(嗇)처럼 좋은 것은 없다.
- 『노자』제59장

성인은 하나로 고정된 마음을 갖지 않고,
모든 백성의 마음을 자기의 마음으로 삼는다.
착한 사람에게도
착하게 대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착하게 대하니,
착함을 얻는다.
믿음직한 사람에게도
믿음직하게 대하고
믿음직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믿음직하게 대하니,
믿음직함을 얻는다.
성인이 천하를 다스리는 자리에 있으면,
모든 것을 포용하고
천하를 위해
자신의 마음을 도와 하나가 되게 한다.
- 『노자』제49장

옛날에 도를 잘 실천하는 사람은
백성을 똑똑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바보같이 만들었다.
- 『노자』제65장

어진 이를 숭상하지 않아야
백성이 다투지 않고,
얻기 어려운 재화를 진귀하게 여기지 않아야
백성이 훔치지 않고,
명리를 좇는 탐욕을 보이지 않아야
백성의 마음이 흐르러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도를 체득한 성인은
백성의 마음을 허정하게 만들고,
배를 충실하게 채워주고,
뜻을 부드럽게 하고,
기골을 강하게 한다.
항상 백성이 앎이 없게 하고,
지혜로운 자가 감히 무엇을 한다고 하지 못하게 한다.
무위에 따라 다스리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
- 『노자』제3장

찬란한 오색五色의 빛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며,
난잡한 오음五音의 음악 소리는 사람의 귀를 혼란스럽게 하며,
잡다한 오미五味의 음식 맛은 사람의 입맛을 상하게 한다.
말몰이 사냥은 사람을 들뜨게 만들고,
진귀한 재물은 사람을 타락시킨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생명의 근원인 배를 채울 뿐,
눈을 위하여 꾸미지는 않는다.
- 『노자』제12장

나라는 작고 인구는 적다.
각종 병기나 문명의 이기가 있어도 결코 쓰지 않는다.
백성으로 하여금 저마다 생명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멀리 떠돌지 않게 한다.
비록 배나 수레가 있어도 타는 일이 없고,
무기가 있어도 쓸 일이 없다.
백성으로 하여금 문자를 버리고
다시 새끼줄을 엮어 뜻을 표시하게 한다.
백성으로 하여금 거친 음식이 맛있고
거친 옷이 아름다우며
초라한 풍속이 즐겁고
띠풀로 지은 집이 편안하다고
생각하도록 한다.
이웃 나라와 서로 마주보며,
닭이나 개의 울음소리가 들려도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 『노자』제80장

과감하게 하는 용기가 있으면 죽고,
과감하게 하지 않는 용기가 있으면 산다.
- 『노자』제73장

강이나 바다가 온갖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그러므로 온갖 계곡물의 왕이 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백성들 위에 서려는 자는
반드시 자기를 낮추고,
백성 앞에 서려는 자는
반드시 자신을 뒤로 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인이 위에 있어도
백성이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다.
성인이 앞에 있어도
백성이 해롭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온 천하가 즐거운 마음으로 그를 추대하고
싫어하지 않는다.
그는 다투지 않으므로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와 다투려 하지 않는다.
- 『노자』제66장

큰 나라는 강물의 하류와 같다.
천하의 모든 나라와 사람들이 모여들게 마련이다.
큰 나라는 천하의 암컷과 같은 존재이다.
암컷은 항상 고요함으로써 수컷을 이기며,
고요함으로써 아래에 처해 있다.
그러므로 큰 나라가 겸하의 태도로
작은 나라에게 자기를 낮추면,
작은 나라를 다 모아 다스릴 수가 있고,
작은 나라도 겸하의 태도로
큰 나라에게 자기를 낮추면
큰 나라에 합해질 수가 있다.
따라서 큰 나라도 겸하로써 얻고,
작은 나라도 겸하로써 얻을 수 있다.
큰 나라는 오직 모든 나라를 합하여
그 백성을 잘 양육하고자 원할 뿐이고,
작은 나라는 오직 큰 나라에 합해져
백성을 잘 섬기기를 원할 뿐이다.
서로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큰 나라가 자기를 낮추어야 한다.
- 『노자』제61장

하늘의 도는
오직 만물을 이롭게만 하고 해치지 않으며,
성인 도는
오직 남을 위해 베풀기만 하고 다투지 않는다.
- 『노자』제81장

사물은 흔들리지 않을 때 유지하기 쉽고,
드러나지 않았을 때 도모하기 쉽다.
연약한 것은 부서지기 쉽고,
눈에 띄지 않는 것은 흐트러뜨리기가 쉽다.
일은 드러나기 전에 처리해야 하고,
나라는 혼란해지기 전에 다스려야 한다.
- 『노자』제64장

어려운 일은 쉬운 데서부터 풀어야 하고,
큰 일은 사소한 데서부터 치르도록 해야 한다.
천하의 어려운 일도 반드시 쉬운 데서 일어나고,
천하의 큰 일도 반드시 사소한 데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성인은
끝내 크다고 자처하지 않는다.
따라서 큰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 『노자』제63장

만약 백성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죽음으로 그들을 두렵게 할 수 있겠는가?
만약 백성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데도 이상한 짓을 하는 놈이 있다면,
나는 그놈을 잡아서 죽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그를 죽일 것인가?
하늘에는 늘 죽음을 다스리는 자가 있어
나쁜 것을 죽게 한다.
그러나 사람이 하늘을 대신하여
남을 죽이는 것은
목수를 대신하여 나무를 깎는 일과 같은 말이다.
목수를 대신하여 나무를 깎는 자로서
자신의 손이 다치지 않는 자는 거의 없다.
- 『노자』제74장

백성이 굶주리고 있다.
통치자가 세금을 많이 거둬 먹어치우기 때문에
백성이 굶주리는 것이다.
- 『노자』제75장

백성이 사는 곳을 들들 볶지 말라.
백성이 사는 것을 지겹게 느끼지 않게 하라.
- 『노자』제72장

하늘과 도는 남는 것을 덜어내어
모자라는 곳에 보태준다.
- 『노자』제77장

조정은 심하게 썩었고, 전답은 황폐해졌으며, 창고는 텅텅 비었다. 그런데도 통치자들은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고, 날카로운 칼을 차고, 맛있는 음식을 물리도록 먹고, 재물을 쌓아놓고 있으니, 바로 도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 『노자』제53장

무위자연의 도道가 없어지자 덕이 있게 되었으며,
덕이 없어지자 인仁이 있게 되었으며,
인이 없어지자 의義가 있게 되었으며,
의가 없어지자 예禮가 있게 되었다.
예는 진실한 마음이 희박해져서 나타난 것이며,
모든 다툼의 시초이다.
미리 앞질러서 안다는 것은
도의 장식물에 지나지 않으며
우둔함의 시원이다.
그러므로 어른스러운 사람은 돈후한 데에 처하고
천박한 데 살지 않는다.
- 『노자』제38장

성인은 자기를 알면서도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자기를 아끼면서도 스스로 높이지 않는다.
따라서 위압을 내세우는 정치를 버리고
청정무위를 실현한다.
- 『노자』제72장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므로
도리어 드러나 보이고,
스스로 옳다고 주장하지 않으므로
도리어 밝게 주장하지 않으므로
도리어 밝게 빛나고,
스스로 뽐내지 않으므로
도리어 공이 두드러지고,
스스로 자만하지 않으므로
지도자가 된다.
- 『노자』제22장

귀한 것은 천한 것을 뿌리로 삼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을 바탕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임금은 스스로를
외로운 사람, 덕이 적은 사람, 여물지 못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바로 천한 것을 뿌리로 삼는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자주 명예롭기를 바라면,
도리어 명예롭지 못하게 된다.
- 『노자』제39장

만족함을 모르는 것보다 큰 화는 없다.
얻어가지려고 애쓰는 것보다 큰 허물은 없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만이 영원히 만족한다.
- 『노자』제46장

성인은 쌓아두지 않는다.
남을 위하면 위할수록
자기가 더 있게 된다.
힘써 남에게 주면 줄수록
자기가 더 풍요롭게 된다.
- 『노자』제81장

제4부
노자가 중국철학사상에 미친 영향

다른 사람을 아는 이는 지혜롭고 스스로를 아는 사람은 밝으며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고 자신을 이기는 이는 강하다.
만족할 줄 아는 자는 부유하고, 굳세게 행하는 사람은 뜻을 얻으며
제자리를 잃지 않는 이는 오래가고
죽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사람은 오래산다.
- 『노자』제33장

억지로 행하지 않고 저절로 다스린 사람은 순 임금일 것이다. 무엇을 하였겠는가? 몸을 공손히 하고 바르게 남면南面하였을 뿐이었다.
- 『논어』「위령공衛靈公」

위대하도다. 요 임금의 임금됨이여! 높고 크도다. 저 하늘이 가장 큰데. 오직 요 임금만이 그와 같으셨으니, 그 공덕이 넓고 넓어 백성이 무어라 형용하지 못하는구나.
- 『논어』「태백」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는가? 사시사철이 저절로 운행하고 만물이 자라나거늘,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는가?
- 『논어』「양화陽貨」

병법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내가 먼저 싸움을 거는 사람이 되지 말고,
어쩔 수 없이 맞이하는 방어자가 되라.
- 『노자』제69장

적군의 형태를 드러내게 하고 아군의 형태를 없는 듯이 보이게 한다면, 아군은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장악하게 되고 적은 분산될 것이다. 아군은 오로지 한 군데에 전투력을 투입하고, 적군은 열 군데로 전투력이 분산되도록 한다. 그러므로 열(十)로 하나(一)의 병력을 공격하는 셈이 된다. 아군은 병력이 많고 적군은 병력이 적다. 많은 병력으로 적은 병력을 공격하므로 상대방을 이기는 것은 쉽다. 우리가 공격하려는 곳을 적군이 알 수 없게 해야 한다. 적군이 알지 못하면, 그들이 대비하여야 할 곳이 많아진다. 적이 대비하여야 할 곳이 많으면, 우리가 싸울 상대가 적어진다.
- 『손자』「허실虛實」

어지러움은 다스림에서 생겨나고, 비겁은 용기에서 생겨나며, 약함은 강함에서 생겨난다.
- 『손자』「세편勢篇」

여러가지 전세는 기습 공격과 정면 공격에 불과하다. 기습 공격과 정면 공격의 변화는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기습 공격과 정면 공격은 서로를 낳게 하는 것이어서 마치 끝없이 돌아가는 것과 같으니, 누가 그 궁극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 『손자』「세편」

군사들을 멸망할 처지에 몰아넣으면 용감히 싸워서 살아남게 된다. 군사들을 죽게 될 처지에 빠뜨리면, 힘을 다해 싸워 살아나게 된다.
- 『손자』「구지편九地篇」

전쟁이란 속이는 수단을 써야만 한다. 그러므로 능력이 있으면서도 능력이 없는 듯이 보이게 하며, 사용할 것인데도 사용하지 않을 것처럼 보여야 한다. 가까운 것인데도 먼 것처럼 보이게 하며, 먼 것인데도 가까운 것처럼 보여야 한다.
- 『손자』「계편計篇」

어려운 일은 쉬운 데서부터 풀어야 하고,
큰일은 사소한 데서부터 츠르도록 해야 한다.
천하의 어려운 일도 반드시 쉬운 데서 일어나고,
천하의 큰일도 반드시 사소한 일에서 일어난다.
- 『노자』제63장

바른 것이 다시 기이한 것이 되고
착한 것이 다시 악한 것으로 된다.
- 『노자』제58장

군대의 형세는 물과 같아야 한다. 물이 높은 곳을 피하여 낮은 곳으로 나아가듯이, 군대의 형태도 실實을 피하여 허虛를 쳐야 하는 것이다. 물은 땅으로 말미암아 흐름이 제어되고, 군대는 적으로 말미암아 승리를 제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대에는 일정한 형세가 없고, 물은 일정한 형상이 없는 것이다.
- 『손자』「허실虛實」

강이나 바다가 온갖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잘 낮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온갖 계곡물의 왕이 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백성들 위에 서려는 자는 자기를 낮춘다.
- 『노자』제66장

천하에 물보다 더 유약한 것은 없다.
굳센 것을 치는 데는 물보다 더 뛰어난 것이 없다.
- 『노자』제78장

최고의 착한 덕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해주지만 다투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비천한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물의 특성은 도에 가깝다.
- 『노자』제8장

천도는 차면서도 넘치지 않는다. 무성하면서도 교만하지 않는다. 수고로우면서도 자랑하지 않는다. 성인은 때에 따라 행동하는데, 이것을 때를 지킨다고 한다. 하늘의 때는 만들지 않아도 행함이 없는 객이 오고, 사람의 일은 일어나지 않아도 행함이 없는 시작이 있다. (중략) 하늘의 때가 일어나지 않아도 먼저 객이 행하고 인간의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창조의 행위가 있으니, 이는 하늘을 거슬러서 사람에게 화합되지 않은 것이다. (중략) 때가 이르지 않으면 억지로 생기지 않고 일이 궁구되지 않으면 억지로 이룰 수 없다. 스스로 처하여서 천하를 헤아리고, 그 오는 곳을 얻어 바르게 하면, 때에 따라 베풀어져 정해진다.
- 『국어』「월어越語」

가장 완전한 것은 마치 덜 된 것과 같다.
아무리 써도 닳아지지 않는다.
가장 알찬 것은 마치 빈 것과 같다.
아무리 써도 끝이 없다. 가장 곧은 직선은 마치 굽은 것 같고,
최고의 웅변은 말을 더듬는 것 같으며,
최고의 기교는 서툰 듯하다.
- 『노자』제45장

천지사물은 유有에서 생기고, 유는 무無에서 생긴다.
- 『노자』제40장

도란 실제로 나타나는 작용이 있고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으니, 행위도 없고 형체도 없다. 그것은 전할 수는 있으나 주고 받을 수는 없다. 터득할 수는 있으나 볼 수는 없다. 스스로 근본이 되어 천지가 생기기 이전 옛날부터 존재하며, 그것은 귀신이나 상제를 영묘하게 하고, 하늘과 땅을 낳았다.
- 『장자』「대종사大宗師」

만물이 무설하게 자라고 있으나, 결국은 모두 근원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정이라 한다.
- 『노자』제16장

조물주란 사물을 낳는 작용으로 죽은 것에 삶을 주지도 않고, 사물을 죽이는 작용으로 산 것에 죽음을 주지도 않는다. 죽음과 삶은 서로 기대고 있는 것이 아니며, 제각기 독자적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천지에 앞서 생겨난 것이 있다는데, 그것이 과연 사물인가? 사물을 사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다. 사물이란 사물에 앞서 무물無物의 상태에서는 생겨날 수가 없는 것이다. 생기는 이상 거기에는 이미 사물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사물이 있으면 사물은 사물을 낳아 만물이 끝없이 생겨서 자라게 된다.
- 『장자』외편「지북유」

도에서 보면 사물에는 귀천이 없다. (중략) 그것을 명백히 하기 위하여 작은 풀 포기와 큰 기둥, 나병 환자와 미인 서시를 대조해본다면 매우 기이하고 야릇한 대조이지만, 참된 도의 입장에서는 다 같이 하나가 된다.
- 『장자』내편「제물론」

화 속에 복이 깃들어 있고,
복 안에 화가 숨어 있다.
누가 그 근원을 알 수 있겠는가?
정해져 있는 것은 없다.
바르게 되어 있는 것은 다시 기이한 것이 되고
착한 것이 다시 악한 것으로 된다.
- 『노자』제58장

예와 아니오의 차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좋고 싫음의 차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 『노자』제20장

예악에 따라 몸을 굽히고 인의에 순순히 좇아 사람들의 마음을 뒤로 하는 것은 본래의 모습을 잃은 것이다.
- 『장자』외편「변무」

자연 그대로의 나무토막을 손상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술 단지를 만들겠는가? 자연 그대로의 백옥을 훼손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규나 장을 만들겠는가? 참된 도덕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어찌 인과 의를 택하겠는가? 본래 그대로의 천성이나 진정이 떠나지 않는다면 어찌 예의나 음악이 필요하겠는가? 오색이 문란해지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무늬를 만들겠는가? 오성이 어지러워지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육률을 맞추겠는가? 통나무를 헤쳐서 그릇을 만든 것은 목수의 죄이지만 참된 도덕을 망쳐가며 인의를 만든 것은 성인의 잘못이다.
- 『장자』외편「마제」

성인이 죽지 않으면 큰 도둑이 없어지지 않는다. 비록 성인을 존중하고 천하를 다스린다 해도 결국 그것은 도척 같은 인간을 존중하고 이롭게 하는 셈이 된다. 되를 만들어 용량을 재려 하면, 그 되까지 훔쳐버린다. 저울을 만들어 물건을 달려 하면 그 저울까지 훔쳐버린다. 어음이나 증서를 만들어 신용 있게 하려 하면, 그 어음이나 증서까지 모두 훔쳐버린다. 어째서 그런 줄 아는가? 따쇠를 훔치는 자는 사형되고, 나라를 훔치는 자는 제후가 된다. 그 제후의 가문에 인의가 보존된다.
- 『장자』외편「거협」

저 백성에게는 공통된 속성이 있다. 옷감을 짜서 옷을 지어 입고, 땅을 갈아 식량을 얻는다. 이것을 누구나 다 갖춘 동덕同德이라 한다. (중략) 때문에 최고의 덕으로 다스려지는 평화의 세상에서는 사람들의 거동이 유유자적하며, 눈매가 밝고 환하다. 그런 시대에는 산에 길이 나 있지 않고 못에는 배나 다리도 없으며, 만물이 무리지어 생겨나 사는 곳에 경계를 두지 않았다. 새와 짐승은 떼지어 살고 초목은 마음대로 자랐다. (중략) 지극한 덕으로 다스려지는 세상에서는 새와 짐승과 함께 살았고, 만물과 함께 모여 살았다. 그러니 어찌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겠는가? 모두 무지無知하여 본래의 참모습에서 떠나지 않았다. 모두 무욕無慾하여 그야말로 소박하다 할 수 있었다. 소박하기 때문에 백성의 자연스런 본성도 온전했다.
- 『장자』외편「마제」

그 시대 백성은 글자 대신 노끈을 매듭지어 기호로 썼고, 음식을 맛있게 여겼으며, 입는 옷을 훌륭하다고 했고, 풍속을 즐기며, 집을 편안하게 여겼다. 이웃 나라가 바로 내다보이고, 닭이나 개 울음소리가 들릴 정도였지만, 백성은 죽을 때까지 왕래하지 않았다. 이런 시대야말로 가장 잘 다스려졌던 시대이다.
- 『장자』외편「거협」

도가의 술은 음양학에 바탕하고 유가와 묵가의 장점을 채용하며, 명가와 법가의 요점을 가려 뽑은 것이다. 시대 상황의 추이에 따르고 사물의 변화에 대응한다. 풍속을 세워 일에 베푸니 마땅하지 않는 것이 없다. 사상은 간략하면서도 쉽게 잡히고, 일은 적지만 공은 크다.
- 『사기』「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

선왕이 유세하는 선비들에게 글을 배웠다. 추연 · 순우곤 · 전병 · 접여 · 신도 · 환연 등 76인 모두를 상대부로 삼아 정치에 대한 의론을 일삼았다. 그러므로 제나라 직하학의 학자들이 부흥하여 수백 수천에 이르렀다.
- 『사기』「전경중완세가田敬仲完世家」

신도는 조나라 사람, 전병과 접여는 제나라 사람, 환연은 초나라 사람인데 모두 다 황로의 도덕을 배우고, 그로 말미암아 터득한 것이 있어 그 주요한 뜻을 저술하였다. 신도는 12론을 저술하고, 환연은 상 · 하편을 저술하였으며, 전병과 접여도 모두 저술한 것이 있었다.
- 『사기』「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

성은
- 『노자』제46장

박담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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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1. 11. 28. 10:37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28 봄가을 음식

글, 사진 / 뿌리깊은나무
1996,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6447

082
빛 12 ㄷ 64

글 / 고현진, 정성희(샘이깊은물 전 기자)
사진 / 강운구(샘이깊은물 사진 편집위원)
          김승근(샘이깊은물 사진 기자)
          권태균, 백승기, 이창수(샘이깊은물 전 사진 기자)

|차례|

봄나물 세 가지
두릅적
미나리강회
물쑥나물
칡수제비
파전과 쑥굴리
절 "밥상"
도미국수
굴비 찌개
게감정
물김치
감동젓무
박속
미꾸라지국
손두부
송이 산적
토란대 나물
섭산적
어복쟁반
모시떡과 작고편

▲ 두릅적

▲ 미나리강회

▲ 물쑥나물

▲ 칡수제비

▲ 파전

▲ 도미국수

▲ 굴비찌개

▲ 게감정

▲ 물김치

▲ 감동젓무

▲ 미꾸라지국

▲ 송이산적

▲ 토란대나물

▲ 어복쟁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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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7 겨울 음식

글, 사진 / 뿌리깊은나무
1996,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6446

082
빛 12 ㄷ 63


빛깔있는 책들 63

글 / 고현진, 정성희(샘이깊은물 전 기자)
사진 / 강운구(샘이깊은물 사진 편집위원)
          김승근(샘이깊은물 사진 기자)
          권태균, 백승기, 이창수(샘이깊은물 전 사진 기자)

|차례|

평안도 온반
메밀묵
꼬리찜
족볶음
대하찜
참게장
대구 구이
갈치 조림
알젓 찌개
비지 찌개
김치 저냐
장김치
떡찜
감떡
가자미 식해
안동 식혜
동지팥죽
강정
약과와 정과
소곡주

▲ "피양도 온반" 한 그릇. 옛날에 평안도 사람들은 정월에 세배온 손들에게, 남쪽 사람들이 떡국을 대접하듯이, 이런 온반을 대접했다고 한다.

▲ 메밀묵

▲ 꼬리찜 한 그릇. 뜨거울 때에 먹는 꼬리찜은 구수하고 깊은 맛이 있는 꼬리곰탕과는 또다른 맛을 지녔다.

▲ 대하찜

대하찜 만드는 법
1. 대하는 찜통에 쪄서 껍질을 벗겨 칼을 뉘어 포를 뜨듯이 옆으로 길게 자른다.

2. 사태는 삶아서 눌러 놓았다가 납작하게 썬다.

3. 죽순은 삶아 빗살무늬로 썰어 소금과 흰후추로 간하고 기름에 살짝 볶아 식힌다.

4. 오이는 반을 갈라 어슷하고 도톰하게 썰어 소금에 살짝 절였다가 꼭 짠다. 기름에 볶아 냉장고에서 바로 식혀 푸른색을 유지해 둔다.

5. 도마에 한지를 깔고 칼날로 잣을 다져 잣가루를 만든 후, 나머지 잣즙 양념을 넣어 충분히 저어 뽀얀 잣즙을 만들어 모든 재료에 버무린다.

▲ 깔끔하게 담긴 갈치 조림 한 그릇

▲ 뚝배기에 끓여 그대로 상에 올린 알젓 찌개. 새우젓으로 간한 찌개가 흔히 그렇듯이 그 국물이 시원하여 입안에서 알을 터뜨려 먹는 재미나 씹는 맛이 고소하다.

▲ 장김치. 간을 소금으로 하지 않고 간장으로 한 젓갈이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은 이 장김치는 매운 음식을 먹기 어려운 아이나 환자에게 적당하다.


▲ 고기와 야채와 떡이 어우러져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떡찜


▲ 얼핏 보아 김치 같아서 보는 이에게 친숙함을 주는 가자미 식해 한 접시

▲ 안동 식혜 한 동이. 맵싸하고 화한 맛이 나는 이 안동 식혜를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담가 두었다가 찾아오는 이에게 따뜻한 아랫목을 내 주고 이 식혜의 별미를 맛 보여 준다면 그 맛이 온몸에 번져 모처럼 찾아온 손님의 몸과 마음을 덥혀줄 것이다.


▲ 먹음직스런 팥죽 한 그릇. 추운 겨울날 찬바람이 도는 밖에서 막 들어와 먹는 팥죽 한 그릇은 웅크린 마음까지 녹여 훈훈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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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6 공문의 사람들

김덕균 지음
2004, 논형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2087


152.21
김241공


스승은 제자를 만들고 제자는 스승을 만든다


공자와 그 제자들의 사상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를 수천 년간 사로잡았다.
『논어』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어렵기도 하지만
재밌기도 하다. 원문을 고집하면 어렵지만,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하면 흥미로워진다.
공자의 제자들은 각계각층을 망라하고 있다.
그들의 캐릭터를 살펴보면 『논어』만큼 재밌는 책도 없다.
공자의 수제자 안연은 현대적 안목에서는 예스맨이다.
가장 갑갑한 사람이다. 용기가 출중하고 정의로웠던 자로는
스승 공자에게 유일하게 노라고 대답할 수 있었던 제자이다.
주변에서 공자보다 칭송 받았던 자공은
오늘날에 가장 적합한 인물로 여겨진다.
공자와 그 제자들은 파란만장한 대화를 통해
다양한 인생의 파노라마를 보여주며, 우리에게 다양한
학문의 세계를 가르쳐 준다.


지은이 김덕균金德均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중국 산동사회과학원 박사후과정(Post-Doc)을 수료하였다.
1991년부터 성균관대, 중앙대, 동덕여대, 한국예술종합학교, 감신대, 협성대, 대전대, 유한대에서 강의하다가 중국산동사범대학 외국인교수, 산동사회과학원 연구학자, 서일대학 교양과 교수를 역임하고, 지금은 성산효도대학원대학교 효학과 주임교수로 재직중이다.
공저로는 『현대중국의 모색』(동녘),『왕양명철학연구』(청계),『동양철학의 자연과 인간』(아세아문화사),『동양사상』(전통문화연구회), 『정보기술사회의 윤리매뉴얼』(서광사),『儒家傳統與人權 · 民主思想』(齊魯書社, ※中文板)이 있고, 역주서로 『명이대방록』(제41회 백상출판문화상 번역부문 수상작, 한길사),『잠서』(한국학술진흥재단 동서양명저번역 지원사업, 소명)와 번역본으로 『중국봉건사회의 정치사상』(동녘)이 있다. 그밖에 효학, 양명학, 실학 등 관련분야의 연구논문 30여 편이 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논어』「위정」)


 ▲ 공자성적도(孔子聖蹟圖)

▲ 공자의 고향 곡부(曲阜) 니산(尼山)

▲ 행단(杏壇)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쳤던 장소

 목차

저자서문
천리마와 파리
수많은 제자들
끼니는 굶어도 학문을 좋아했던 안연
의리의 사나이 자로
스승보다 높게 평가된 자공
소극적이었지만 약삭빨랐던 염구
말 많고 비판적이었던 재여
겁쟁이면서도 효자였던 증삼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썼던 자유
정렬이 넘쳤던 자장
대기만성형 자하
독야청청했던 민자건
군주감으로서의 중궁
말 많고 근심 많던 사마우
공자집안의 가신 원헌
전과자이면서도 공자의 사위로 선택된 공야장
능력있고 근실해서 조카사위로 삼은 남궁괄
군자 자천
인정받았지만 벼슬을 사양한 칠조개
삐딱했던 자금
공자의 운전기사 번지
스승 공자의 외모를 닮았던 유약
덕행이 뛰어났으나 몹쓸 병에 걸린 염백우
시세파악능력이 뛰어났던 자고
품격있는 예절로 손님을 대접하던 공서화
낭만이 넘쳤던 증석
자식 사랑이 절절했던 안로
스승의 잘못을 전달한 무마기
청렴하였던 담대멸명
욕심 많은 신장
동료를 헐뜯은 공백료
참고자료

▲ 중국 곡부의 대성전(大成殿)

▲ 공자와 안연 앞선 사람이 공자이고 뒤가 안연이다.(先聖小像)

 끼니는 굶어도 학문을 좋아했던 안연

안연(顔淵, B.C. 521~490)의 이름은 회(回)이고, 자는 자연(子淵), 혹은 안연, 존칭해서 안자(顔子)라 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공자의 수제자였다. 공자보다 30세 연하이고, 29세때 머리가 세었으며, 31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628년 당나라 시절 선사(先師)로 추존된 이후 739년 연공(兗公), 1009년 송나라 때 연국공(兗國公), 1330년 원나라 때 연국복성공(兗國復聖公), 1530년 명나라 때 복성(復聖)이라 추봉되었다. 시호를 통해서도 명실공히 공자의 수제자였음을 알게 된다.

 『논어』 속으로…

 공자가 말했다. "안연은 나와 하루종일 마주앉아 공부할 때 듣고 만 있었다. 그래서 난 저가 어리석은 바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물러가 행동하는 것을 보았더니 내가 가르친 것을 제대로 실천하였다. 안연은 절대로 어리석은 바보가 아니다." (子曰 : 吾與回言終日, 不違如愚. 退而省其私, 亦足以發. 回也不愚. 「爲政」)

 공자가 안연에게 말했다. "기용하면 나아가 행동하고 버리면 은둔하는 것은 오직 너와 나만이 할 수 있을 뿐이다." (子謂顔淵曰, 用之則行, 舍之則藏, 惟我與爾有是夫. 「述而」)

 애공이 물었다. "당신의 제자가운데 누가 가장 학문하는 것을 좋아합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안연이란 자는 배우기를 좋아하고,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거듭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는 단명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없으니 아직 학문을 좋아하는 제자가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哀公問 : 弟子孰爲好學? 孔子對曰 : 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 「雍也」)

 공자가 말했다. "안연은 그 마음이 3개월 동안 인을 떠나지 않았고, 나머지 제자들은 한 달에 한번 정도만 인에 이를 뿐이었다." (子曰 " 回也, 其心三月不違仁, 其餘則日月至焉而已矣. 「옹야」)

 공자가 말했다. "어질구나 안연이여! 밥 한 그릇과 물 한 바가지로 누추한 곳에서 사는 것을 다른 사람같으면 그것을 근심하며 견디지 못할 터인데, 안연은 그 즐거움을 변치 않으니 어질구나 안연이여!" (子曰 : 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 「옹야」)

 공자가 말했다. "안연은 나의 어떠한 말에도 기뻐하지 않음이 없으니 나를 도와주지 않는 사람이다." (子曰 : 回也非助我者也, 於吾言無所不說. 「先進」)

 공자가 말했다. "안연은 (진리를 깨우친데) 가까이 갔지만, 끼니를 자주 굶었다." (子曰 : 回也其庶乎, 屢空. 「先進」)

 공자가 말했다. "(진리를) 알려주면 게을리 하지 않는 자는 안연일 뿐이다." (子曰 : 語之而不惰者, 其回也與! 「子罕」)

 의리의 사나이 자로

자로(子路, B.C. 542~480)의 성은 중(仲), 이름은 유(由), 자가 자로, 혹 계로(季路)라고도 했다. 공자보다 9세 연하로 제자중 최고 연장자였다. 노나라 변(卞), 지금이 산동성 사수현(泗水縣) 천림(泉林) 사람이다. 공문십철의 한사람. 739년 위후(衛侯), 1009년 송나라 때 하내후(河內侯), 그 뒤 위공(衛公)으로 추봉되었다.

▲ 공자가 태산을 지날 때 폭정에 시달려 울고 있는 여인을 보고 자로와 자공 등 제자들에게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고 말하는 장면.(泰山問政)

 『논어』 속으로…

 자로가 말했다. "선생님께서 삼군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으려 하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려다 죽어도 후회함이 없는 자와는 함께 하지 않겠다. 반드시 일을 할 때에는 두려워할 줄도 알고, 일을 잘 도모할 줄도 알아서 성공하게끔 만드는 자와 함께 하겠다." (子路曰 : 子行三軍, 則誰與? 子曰 : 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 「述而」)

 공자가 말했다. "자로야! 내가 너에게 안다는 것에 대해서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이것이 아는 것이다." (子曰 :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爲政」)

 공자가 말했다. "진리가 행해지지 않으니, 내 뗏목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려 한다. 이 때 나를 따라올 사람은 아마 자로 뿐일 것이다." 자로가 스 소릴 듣고는 기뻐하였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넌 용기는 나보다 나을지 모르지만 사리를 헤아려 맞게 하는 분별력은 한참 떨어진다." (子曰 : 道不行, 乘桴浮干海, 從我者其由與? 子路聞之喜. 子曰 : 由也好勇過我, 無所取材. 「公冶長」)

 맹무백이 물었다. "자로는 인한 사람입니까?" 공자가 대답햇다. "모르겠다." 다시 (맹무백이) 묻자, 공자가 대답햇다. "자로는 천승의 나라에서 군사를 다스리게 할 수는 있지만, 인한 지는 잘 모르겠다." (孟武伯問 : 子路仁乎? 子曰 : 不知也, 又問, 子曰 : 由也,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 「공야장」)

 공자가 말했다. "자로가 비파소리를 어찌해서 내 문안에서 연주하는가?" 문인들이 자로를 불경하게 생각하자 공자가 말했다. "자로는 당에는 올랐지만 아직 방에는 들어오지 못했다." (由之瑟, 奚爲於丘之門. 門人, 不敬子路. 子曰, 由也, 升堂矣, 未入於室也. 「선진」)

 "자로는 거칠다." (由也, 喭. 「선진」)

 공자가 말했다. "내 나이가 너희들보다 많다해서 나를 어렵게 여기지 말라. 너희들이 평소에 말하기를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고 하는데, 만일 혹시라도 알아준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자로가 경솔하게 대답하였다. "천승의 제후국이 강대국사이에 끼어 간섭을 받으며 전쟁의 위협이 가해져 그 때문에 기근이 들었다 하더라도 제가 그 나라를 다스리면 3년 안에 위축된 백성들을 용맹스럽게 하고, 또 의리를 실천하게 할 것입니다."라고 하자 공자가 살며시 웃었다. (子曰 : 以吾一日 長乎爾, 毋吾以也. 居則曰 : 不吾知也! 如或知爾, 則何以哉? 子路率爾而對曰 : 千乘之國, 攝乎大國之間, 加之以師旅, 因之以饑饉 ; 由也爲之, 比及三年, 可使有勇, 且知方也, 夫子哂之. 「선진」)

 자로가 물었다. "군자도 용맹을 좋아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군자는 의를 소중하게 여긴다. 군자가 용맹한 것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세상을 어지럽히게 되고, 소인이 용맹한 것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도적이 된다." (子路曰 : 君子尙勇乎? 子曰 : 君子義以爲上. 君子有勇而無義爲亂, 小人有勇而無義爲盜. 「陽貨」)

 공자가 말했다. "한마디 말로 송사를 결단할 수 있는 사람은 자로일 것이다. 자로는 승낙하는 것을 묵히지 않았다." (子曰, 片言可以折獄者, 其由也與. 子路, 無宿諾. 「顔淵」)

 자로는 좋은 말을 듣고 아직 미처 실천하지 못했으면 혹시나 다른 말을 들을까 두려워하였다. (子路, 有聞, 未之能行, 唯恐有聞. 「公冶長」)

 공자가 음란하기로 소문난 남자를 만나자 자로가 화를 내었다. 그러자 공자가 맹세하며 말했다. "내 맹세코 잘못된 짓을 하였다면 하늘이 나를 버리실 것이다. 하늘이 나를 버리실 것이다." (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옹야」)

 스승보다 높게 평가된 자공

자공(子貢, B.C. 520~?)의 성은 단목(端木)이고, 명은 사(賜), 자가 자공이다. 위(衛, 지금의 하남)나라 사람이다. 공자보다 31세 연하라고 전한다. 공문십철의 한사람. 739년 당나라 때 려후(黎侯), 1009년 송나라 때 려양공(黎陽公), 려공(黎公)으로 추봉되었다.

▲ 만인궁장(萬仞宮牆) 곡부성(曲阜城)의 남문(南門)으로 자공이 스승 공자를 높이 추앙하며 한 만인(萬仞)을 상징하는 담장.

▲ 대성전 용기둥(龍柱)과 현판 생민미유(生民未有) 용무늬는 황제와 황제에 준하는 성인에게만 부여된 특권이고, 그 자리에 오른 공자를 "후대에 태어난 사람가운데 아직 이런 이는 없었다(生民未有)"고 칭송한 현판

▲ 공자 사후 3년상을 치른 제자들이 각기 고향으로 돌아갔고, 그 후에도 무덤 주위를 지키며 살던 사람들이 100여호나 되었다. (治任別歸)

▲ 공자 사후 보통 제자들이 3년상을 치뤘지만 자공만이 홀로남아 3년을 더한 3년상을 치룬 묘막 앞에 자공이 손수 심었다는 해나무(子貢水植楷)

 『논어』 속으로…

 자공이 물었다. "가난하면서 아첨함이 없고, 부유하면서 교만함이 없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햇다.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자이면서도 예의를 좋아하는 자만은 못하다." (子貢曰 :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學而」)

 공자가 말했다. "자공과 더불어 비로소 시를 논할 수 있게 되었구나. 지나간 것을 말해 주자 다가 오는 것을 아는 구나." (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知來者, 「학이」)

 숙손무숙이 조정에서 대부들에게 말했다. "자공이 공자보다 낫다." 자복경백이 이 말을 자공에게 일러주자 자공이 말했다. "나의 담장은 겨우 어깨 정도 만한 높이에 지나지 않다. 그래서 누구나 짐안의 좋은 것들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런데 선생님의 담장은 여러 길이나 되어 도저히 볼 수 없다. 그래서 그 문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집안의 아름다운 모습과 수많은 사람들의 오가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런데 그 문안으로 들어가 이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러니 숙손무숙의 말이 또한 당연하지 않겠는가." (叔孫武叔語大夫於朝, 曰 : 子貢賢於仲尼. 子服景伯以告子貢. 子貢曰 : 警之宮牆, 賜之牆也及肩, 窺見室家之好. 夫子之牆數仞, 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 百官之富. 得其門者或寡矣, 夫子之云, 不亦宜乎! 「자장」)

 숙손무숙이 공자를 비난하며 헐뜯자 자공이 말했다. "그렇게 하지 말라. 공자는 비난할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의 똑똑함은 언덕과 같아서 넘을 수 있지만, 공자는 해와 달과 같아서 넘을 수 없다. 사람들이 비록 스스로 관계를 끊고자 하여도 어떻게 해와 달이 같아서 넘을 수 없다. 사람들이 비록 스스로 관계를 끊고자 하여도 어떻게 해와 달이 해가 되겠는가? 다만 자기의 분수를 알지 못함을 보일 뿐이다.." (叔孫武叔毁仲尼. 子貢曰 : 無以爲也, 仲尼不可毁也. 他人之賢者, 丘陵也, 猶可踰也 ; 仲尼, 日月也, 無得而踰焉. 人雖欲自絶, 其何傷於日月乎? 多見其不知量也! 「자장」)

 자공이 고유제를 지내면서 바치는 희생양을 없애려고 하였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너는 그 양을 아까워하느냐" 나는 예를 아까워한다." (子貢, 欲去告朔之餼羊, 子曰 : 賜也, 爾愛其禮. 「八佾」)

 공자가 말했다. "자공은 천명을 받지 않았는데도 재산을 늘렸다. 억측하면 자주 맞았다." (賜不愛命而貨殖焉, 億則屢中. 「先進」)

 소극적이었지만 약삭빨랐던 염구

염구(冉求, B.C. 522~489)는 자가 자유(子有), 혹은 염유(冉有)라 했다.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29세 아래로, 염백우(冉伯牛, 冉耕) · 중궁(仲弓, 冉雍)과는 가족관계이다. 공문십철의 한사람. 안연 · 자로 · 자공과 함께 공자의 주요 제자 4명으로 공자의 유랑 14년간 동행하였다.  739년 당나라 때 서후(徐侯), 1009년 송나라 때 팽성공(彭城公), 그 뒤 서공(徐公)으로 추봉되었다.

 『논어』 속으로…

 (공자가 만일 너희를 써준다면 어찌하겠는가 라고 묻자 염구가 대답하였다) "사방960~70리, 혹은 50~60리쯤 되는 작은 나라를 제가 다스리게 된다면 3년 안에 백성들을 풍족하게 해 줄 수 있으며, 그 예악과 같은 것은 군자를 기다렸다 맡기겠습니다." (方六七十, 如五六十, 求也爲之, 比及三年, 可使足民. 如其禮樂, 以俟君子. 「선진」)

 염구가 말했다. "제가 선생님의 가르침9道)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힘이 부족할 따름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힘이 부족한 사람은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보고 포기하지만, 너는 그것조차 하지 않는다. 너는 스스로 한계를 긋는 것이다." (冉求曰 :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子曰 : 力不足者, 中道而廢, 今女畵. 「옹야」)

 계씨가 주공보다 부유하였는데도 염구는 그를 위해 가혹하게 세금을 거둬들여 재산을 더 늘려주었다. 공자가 말했다. "염구는 이제 우리 무리가 아니니, 애들아! 북을 울려 죄를 성토함이 옳다." (季氏富於周公, 而求也爲之聚斂而附益之. 子曰 : 非吾徒也. 小子鳴鼓而攻之, 可也. 「선진」)

 "염구는 숫자만 채우는 신하라고 말할 수 있다." (求也, 可謂具臣矣. 「선진」)

 "염구는 천 가구 정도 되는 큰 마을이나 백승정도의 경대부 집안에서 관리 노릇할 수는 있지만, 인 한지는 잘 모르겠다." (求也, 千室之邑, 百乘之家, 可使爲之宰也, 不知其仁也. 「공야장」)

 "염구는 다재다능하기 때문에 정치에 종사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求也藝, 於徒政乎何有. 「옹야」)

 말 많고 비판적이었던 재여

재여(宰予, B.C. 522~458)는 자가 자아(子我), 혹 재아(宰我)라고도 하였다. 739년 당나라 때 제후(齊侯), 1009년 송나라 때 임치공(臨菑公), 제공(齊公)이라 추봉하였다.

 『논어』 속으로…

 재여가 낮잠을 자자 공자가 말했다.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 만든 담장은 흙손질 할 수 없다. 내가 재여를 꾸짖어봤자 무엇하리요!" (宰予畵寢. 子曰 : 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不可杇也, 於予與何誅. 「공양장」)

 공자가 말했다. "전에는 사람들의 말을 단지 듣기만 하고 그들이 그것을 실행할 것으로 믿었으나, 지금은 말하는 것을 듣고 동시에 그 행동을 관찰한다. 재여와의 경험때문에 이렇게 변한 것이다." (子曰 :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改是. 「공야장」)

 재여가 물었다. "인자는 비록 우물에 사람이 빠졌다 말해 주더라도 (우물에 빠진 사람을 구제하고자 하여) 따라서 우물에 들어갈 것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어찌 그렇게 하겠는가? 군자를 (우물까지) 가게 할 수는 있으나 빠지게 할 수는 없다. (이치에 있는 말로) 속일 수는 있으나, (터무니없는 말로)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宰我問曰 : 仁者, 雖告之曰 : 井有仁焉, 其從之也? 子曰 : 何爲其然也? 君子可逝也, 不可陷也 ; 可欺也, 不可罔也. 「옹야」)

재여가 물었다. "3년상은 너무 길다고 생각합니다. 군자가 3년 동안 예를 시행하지 않으면 예가 반드시 무너지고, 3년 동안 음악을 익히지 않으면 음악이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묵은 곡식은 다 없어지고 새 곡식이 오르며, 불씨 만드는 나무도 바뀌어지니, 1년이면 그런대로 족할 것 같습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3년상을 치르지 않고서도) 쌀밥을 먹고 비단 옷을 입는 것이 너는 편안하냐?" 재여가 대답했다. "예, 편안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네가 편안하면 너는 그렇게 해라. 군자가 상을 당하면 맛있는 것을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하며,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거처함에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인데, 네가 편안하면 너는 그렇게 하거라." 재여가 나가자 공자가 말했다. "재여의 인하지 못함이여! 자식은 태어나서 3년이 지난 뒤에야 부모의 품을 벗어나게 된다. 3년상은 온천하의 공통된 상례인데, 재여에게도 그 부모에게서 받은 3년의 사랑이 있었는가?" (宰我問 : 三年之喪, 期已久矣. 君子三年不爲禮, 禮必壞 ; 三年不爲樂, 樂必崩. 舊穀旣沒, 新穀旣升, 鑽燧改火, 期可已矣. 子曰 : 食夫稻, 衣夫錦, 於女安乎? 曰 : 安. 女安則爲之! 夫君子之居喪, 食旨不甘, 聞樂不樂, 居處不安, 故不爲也. 今女安, 則爲之! 宰我出. 子曰 : 予之不仁也! 子生三年, 然後免於父母之懷. 夫三年之喪, 天下之通喪也. 予也有三年之愛於其父母乎? 「양화」)

 애공이 재여에게 토지신 제사에 쓰는 위패의 나무종류에 대해 묻자 재여가 대답했다. "하후씨는 소나무를 심어 사주로 사용하였고, 은나라 사람들은 잣나무를 사용하였고, 주나라 사람들은 밤나무를 사용하였으니, (밤나무를 사용한 이유는) 백성들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하려고 해서였습니다." (哀公問社於宰我. 宰我對曰 : 夏后氏以松, 殷人以柏, 周人以栗, 曰使民戰栗. 「팔일」)

 겁쟁이면서도 효자였던 증삼

증삼(曾參, B.C. 505~436)은 남무성(南武城)사람으로 자는 자여(子輿)이고, 공자보다 46세 연하였다. 668년 당나라 때 태자소보(太子少保), 739년에 성백(郕伯), 1009년 송나라 때 성후(郕侯), 1111년 무성후(武城侯), 1267년 성국공(郕國公), 1330년 원나라 때 성국종성공(郕國宗聖公)으로 추봉되었고, 대대로 추존되면서 스승 공자보다는 못하지만 '종성(宗聖)'이란 칭호를 받았다.

 『논어』 속으로…

 "증삼은 아둔한 인간이다." (參也, 魯. 「선진」)

 공자가 말했다. "나의 도는 하나로 꿰뚫고 있노라." 증삼이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공자가 나가자 증삼에게 문인들이 물었다. "무슨 말입니까?" 증삼이 대답했다. "선생님의 도는 충과 서일 뿐이다." (子曰 : 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 : 唯. 子出. 門人問曰 : 何謂也? 曾子曰 :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이인」)

 증자가 말했다. "선비는 넓고 굳세지 않을 수 없다. 임무는 막중한데 갈 길은 멀구나!" (曾子曰 :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태백」)

 증자가 말했다. "나는 하루에 세 가지로 나를 돌아본다. 남을 위해 일을 도모하는데 충성스럽지 않았는가? 친구와 사귀는데 성실하지 않았는가? 스승에게서 전수 받은 것을 복습하지 않았는가? (曾子曰 : 吾日三省吾身 :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 「학이」)

 증자가 말했다. "마지막을 삼가하며 잘하고, 오래 전에 돌아가신 분을 잘 추모하면 백성의 덕은 후한 데로 돌아간다. (曾子曰 :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학이」)"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썼던 자유

오(吳)나라 출신인 자유(子游, B.C. 506~?)의 성은 언(言)이고, 이름은 언(偃)이니, 우리 식으로 부르면 언언이다. 공자보다 45세.(『가어』에는 35세) 연하이다. 공문십철의 한사람으로 예법을 공부했고 문학으로 이름을 날렸다. 739년 당나라 때 오후(吳侯), 1009년 송나라 때 단양공(丹陽公), 그 뒤 오공(吳公)으로 추봉되었다.

 『논어』 속으로…

 공자가 무성 땅에 가서 현악소리를 듣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닭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느냐?" 자유가 대답했다. "예전에 전 선생님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가 쉽다고 말입니다." 공자가 말했다. "얘들아, 자유의 말이 옳다. 방금 내가 한 말은 농담이었다." (子之武城, 聞弦歌之聲. 夫子莞爾而笑, 曰 : 割雞焉用牛刀? 子游對曰 : 昔者偃也聞諸夫 子曰 : 君子學道則愛人, 小人學道則使也. 子曰 : 二三子! 偃之言是也. 前言戱之耳. 「양화」)

 자유가 말했다. "군주를 섬김에 자주 간언하면 욕을 당하고, 친구 사이에 자주 충고하면 소원해 지는 것이다." (子游曰 : 事君數, 斯辱矣, 朋友數, 斯疏矣. 「이인」)

 공자가 질문했다. "너는 인물을 얻었느냐?" 자유가 대답했다 "담대멸명이란 자가 있는데, 길을 다닐 적에 지름길을 따르지 않으며, 공적인 일이 아니면 일찍이 저의 집에 들른 적이 없습니다." (子曰 : 女得人焉爾乎? 曰 : 有澹臺滅明者, 行不由徑, 非公事, 未嘗至偃之室也. 「옹야」)

 자유가 효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지금의 효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봉양 잘하는 것만을 말한다. 그러나 개나 말에게도 모두 길러주는 것은 있으니, 공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무엇이 그것과 다르겠는가?" (子游問孝. 子曰 :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 不敬, 何以別乎? 「위정」)

 정렬이 넘쳤던 자장

자장(子張)의 성은 전손(顓孫), 이름은 사(師), 자장은 자이며, 공자보다 48세 연하이다. 진9陳)나라 사람으로 전해진다. 739년 당나라 때 진백(陳伯), 1009년 송나라 때 완구후(宛邱侯), 그 후 진공(陳公)으로 추봉되었고, 공문십철의 한사람.

 『논어』 속으로…

 자공이 물었다. "자장과 자하 두 사람가운데 누가 현명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 자공이 물었다. "그렇다면 자장이 나은 것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지나친 것과 미치지 못하는 것은 다 같다." (子貢問 : 師與商也孰賢? 子曰 : 師也過, 商也不及. 曰 : 然則師愈與? 子曰 : 過猶不及. 「선진」)

 자장이 벼슬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하자, 공자가 대답했다. "많이 듣고서 의심나는 것을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삼가해서 말하게 되면 허물이 적어질 것이다. 많이 보고서 그 위태로운 것을 빼버리고 그 나머지를 삼가해서 행동하면 후회하는 일이 적어질 것이다. 말하는 것에 허물이 적고, 행동하는 것에 후회가 적으면, 봉록은 그 가운데 있다." (子張學干祿. 子曰 : 多聞闕疑, 愼言其餘, 則寡尤 ; 多見闕殆, 愼行其餘, 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위정」)

 자장이 질문했다. "선비가 어떠하여야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물었다. "네가 말하는 도달이란 무엇인가?" 자장이 대답했다.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며, 집안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는 것입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네가 말하는) 그것은 소문일 뿐이지 도달한 것은 아니다. 도달했다고 하는 것은 질박하고 정직하며 의를 좋아하며 남의 말을 살피고 얼굴빛을 관찰하며 생각해서 몸을 낮추는 것이니, 나라에서도 반드시 도달하고, 집안에서도 반드시 도달하는 것이다. 소문이라는 것은 얼굴빛은 인을 취하나 실제로는 위배되며 그대로 머물면서 의심하지 않는 것이니,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며, 집안에 있어도 반드시 소문이 나는 것이다." (子張問 : 士何斯可謂之達矣? 子曰 : 何哉, 爾所謂達者? 子張對曰 : 在邦必聞, 在家必聞. 子曰 : 是聞也, 非達也. 夫達也者, 質直而好義, 察言而觀色, 慮以下人. 在邦必達, 在家必達. 夫聞也者, 色取仁而行達, 居之不疑. 在邦必聞, 在家必聞. 「안연」)

 자유가 말했다. "나의 벗 자장은 어려운 일을 잘하나 인하지는 못하다." (子游曰 : 吾友張也, 爲難能也, 然而未仁. 「자장」)

 증자가 말했다. "당당하구나 자장이여, 그러나 함께 인을 실천하기는 어렵다." (曾子曰 : 堂堂乎張也, 難與竝爲仁矣. 「자장」)

 자장이 말했다. "선비가 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바치며, 이득을 보면 의로운지 생각하고, 제사할 땐 공경을 생각하고, 상사엔 슬픔을 생각한다면, 괜찮다." (子張曰 : 士見危致命, 見得思義, 祭思敬, 喪思哀, 其可已矣. 「자장」)

 자장이 말했다. "덕을 잡음이 넓지 못하고, 도를 믿음이 독실하지 못하면, 어찌 있다고 말하며, 어찌 없다고 말하겠는가?"

 대기만성형 자하

자하(子夏)는 성이 복(卜)이고, 이름은 상(商)으로, 공자보다 44세 연하였다. 진(晉)나라 운국인9溫國人)이라고도 하고 위(衛)나라 사람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온국이 원래는 위나라에 속해 있었기에 통상 위나라 사람으로 통했다. 공문십철의 한 사람. 739년 위후(衛侯), 1009년 송나라 때 동아공(東阿公), 혹은 하동공(河東公), 그 뒤 위공(衛公)이라 추봉되었다.

 『논어』 속으로…

 자하가 물었다. "(전해져 내려오는 시구 가운데) '아름답게 웃는 얼굴에 보조개가 예쁘며, 아름다운 눈의 맑은 눈동자가 선명하구나! 흰 비단으로 광채를 내도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먼저 흰 바탕이 있은 뒤에 색을 칠해 다듬는다는 뜻이다." 자하가 말했다. "예가 뒤라는 말이군요." 공자가 말했다. "나를 불러일으키는 자가 자하로다!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子夏問曰 :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子曰 : 繪事後素. 曰 : 禮後乎? 子曰 : 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 「팔일」)

 자하가 효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어렵다. 부형에게 일이 있으면 제자가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술과 밥이 있으면 부형을 잡숫게 하는 것을 일찍이 효라고 할 수 있겠는가? (子夏問孝. 子曰 : 危難, 有事弟子服其勞, 有酒食先生饌, 曾是以爲孝乎? 「위정」)

 자하가 말했다. "온갖 노동자들은 공장에 있으면서 그 일을 이루고, 군자는 배워서 그 도를 지극히 한다." (子夏曰 : 百工居肆以成其事, 君子學以致其道. 「자장」)

 자하가 말했다. "큰 덕(큰 일)이 한계를 넘지 않으면, 작은 덕(작은 일)은 출입하여도 괜찮다." (子夏曰 : 大德不踰閑, 小德出入可也. 「자장」)

 자하가 말했다. "군자는 (백성들에게) 신임을 얻은 뒤에 그 백성을 부리니, 신임을 얻지 못하고 부리면 자신들을 괴롭힌다고 여긴다. 신임을 얻은 뒤에 간해야 하니, 신임을 얻지 못하고 간하면 자기를 비방한다고 여긴다." (子夏曰 : 君子信而後勞其民, 未信則以爲厲己也 ; 信而後鍊, 未信則以爲謗己也. 「자장」)

 자하가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속성으로 뭔가를 하려고 서두르지 말고, 작은 이익에 한눈 팔지 말아라. 서두르면 이르지 못하고 작은 이익에 한눈 팔면 큰 일을 이루지 못한다." (問政. 子曰 : 無欲速, 無見小利. 欲速, 則不達 ; 見小利, 則大事不成. 「자로」)

 공자가 자하에게 말했다. "너는 군자유가 되고, 소인유가 되지 말라." (子謂子夏曰 : 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 「옹야」)

 자하가 말했다. "벼슬하면서 여가가 있으면 학문을 하고, 학문을 하고서 여가가 있으면 벼슬을 하라." (子夏曰 : 仕而優則學, 學而優則仕. 「자장」)

 자하가 말했다. "배우기를 널리 하고 뜻을 독실히 하며, 절실하게 묻고 가까이 (현실에 필요한 것을) 생각하면 인이 그 가운데 있다." (子夏曰 :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 「자장」)

 자하가 말했다. "날마다 모르는 것을 알며, 날마다 능한 것을 잊지 않으면 학문을 좋아한다고 이를 만하다." (子夏曰 : 日知其所亡, 月無忘其所能, 可謂好學也已矣. 「자장」)

 독야청청했던 민자건

민자건(閔子騫, B.C. 536~478)은 성이 민이고 이름은 손(損), 자가 자건이다. 공자보다 15세가 적었다.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어려서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계모의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런 계모에게도 효성을 다해 증삼과 더불어 효의 대명사로 불린다. 당나라 개원(開元) 8년(720) 조칙으로 십철(十哲)이 되었고, 개원 27년(739)에는 비후(費侯)로 추봉되었다.

 『논어』 속으로…

 계씨가 민자건을 비재로 삼으려고 하자, 민자건이 말했다. "나를 위해 잘 말해 다오. 만일 다시 나를 부르러 온다면 나는 반드시 노나라를 떠나 제나라 문수가에 있을 것이다."(季氏使閔子騫爲費宰. 閔子騫曰 : 善爲我辭焉. 如有復我者, 則吾必在汶上矣. 「옹야」)

 군주감으로서의 중궁

중궁(仲弓, B.C. 522~?)의 성은 염(冉)이고, 이름은 옹(雍), 자가 중궁, 혹은 자궁(子弓)이라고도 하였다. 노나라 사람이다. 공문십철의 한 사람. 739년 당나라 때 설후(薛侯), 1009년 송나라 때 천하비공(天下邳公), 1265년에는 설공(薛公)으로 추봉되었다.

 『논어』 속으로…

 공자가 말했다. "중궁은 군왕의 지위에 오르게 할만하다." (子曰 : 雍也可使南面. 「옹야」)

 중궁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문밖을 나서서는 귀중한 손님을 대접하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 제사를 받들 듯이 신중하게 하라.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그렇게 하면 제후의 나라에서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대신의 집에서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仲弓問仁. 子曰 :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施於人. 在邦無怨, 在家無怨. 仲弓曰 : 雍踓不敏, 請事斯語矣. 「안연」)

 중궁이 계씨의 재상이 되어 정치를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유사에게 먼저 시키고 (그들의) 작은 허물을 용서해 주며, 어진 사람과 재능 있는 사람을 등용해야 한다." 또 중궁이 물었다. "어떻게 어진 사람과 유능한 사람을 알아보고서 등용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네가 아는 자를 등용하면, 네가 미처 모르는 자를 남들이 내버려두겠는가?" (仲弓爲季氏宰, 問政. 子曰 : 先有司, 赦小過, 擧賢才. 曰 : 焉如賢才而擧之? 曰 : 擧爾所知. 爾所不知, 人其舍諸? 「자로」)

 중궁이 자상백자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그의 간략함도 괜찮다." 중궁이 말했다. "자신이 공경하면서 간략하게 행동하며 인민을 대한다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간략함에 처하고 다시 간략하게 행동한다면 너무 간략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중궁의 말이 옳다." (仲弓問子桑伯子, 子曰 : 可也簡. 仲弓曰 : 居敬而行簡, 以臨其民, 不亦可乎? 居簡而行簡, 無乃大簡乎? 子曰 : 雍之言然. 「옹야」)

 공자가 중궁에게 말했다. "얼룩소 새끼가 색깔이 붉고 또 뿔이 제대로 났다면 비록 쓰지 않고자 하나 산천의 신이야 어찌 그것을 버리겠는가? (子謂仲弓曰 : 冢牛之子騂且角, 踓欲勿用, 山川其舍諸? 「옹야」)

 어떤 사람이 말했다. "중궁은 인하기는 한데, 너무나 말재간이 없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는가. 약삭빠른 구변으로 남의 말을 막아서 자주 남에게 미움만 박을 뿐이니, 그가 인한지는 모르겠으나, 말재주를 어디에다 쓰겠는가?" (或曰 : 雍也仁而不佞. 子曰 : 焉用佞? 屢憎於人. 不知其仁, 焉用佞? 「공야장」)

 말 많고 근심 많던 사마우

사마우(司馬牛)에 대해서는 『집주』에 "이름이 리(犁)이고 상퇴(向魋)의 아우"라고 하는 기록이 전부이다.

 『논어』 속으로…

 사마우가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인이란, 그 말함을 참아서 하는 것이다." 다시 물었다. "그 말하는 것을 참아서 하면 인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이것을 행하기 어려우니, 말함에 참아서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마우가 군자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군자는 걱정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사마우가 또 물었다. "걱정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으면 군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안으로 반성하여 조그마한 하자도 없으니, 어찌 근심하며 어찌 두려워하겠는가?" 사마우가 걱정하며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형제가 있는데, 나만이 홀로 없구나! 자하가 그 소리를 듣고 말했다. "죽고 사는 것은 명에 달려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려 있다고 하더라. 군자가 공경함에 잃는 게 없으며, 남에게 공손함에 예절이 있으면 사해 안의 모두가 형제인데, 군자가 어찌 형제 없음을 걱정하겠는가?" (司馬牛問仁. 子曰 : 仁者其言也訒. 曰 : 其言也訒, 斯謂之仁已乎? 子曰 : 爲之難, 言之得無訒乎? 司馬牛問君子, 子曰 : 君子不憂不懼. 曰 : 不憂不懼, 斯謂之君子已乎? 子曰 : 內省不灸, 夫何憂何懼? 司馬牛憂曰 : 人皆有兄弟, 我獨亡. 子夏曰 : 商問之矣 : 死生有命, 富貴在天. 君子敬而無失, 與人恭而有禮. 四海之內, 皆兄弟也. 君子何患乎無兄弟也? 「안연」)

 공자집안의 가신 원헌

원헌9原憲)의 자는 자사(子思)이고, 이름이 헌(憲)이며, 원사(原思)라고도 한다. 공자보다 36세 연하이고, 송나라사람이다.

 『논어』 속으로…

 원헌이 (공자의) 가신으로 있을 때 녹봉으로 곡식 9백을 주었지만 원헌이 이를 받지 않았다. 공자가 말했다. "사양하지 말고, 너의 이웃집과 마을 및 향당에 주려므나!" (原思爲之宰, 與之粟九百, 辭. 子曰 : 毋! 以與爾鄰里鄕黨乎! 「옹야」)

 원헌이 부끄러움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 녹만 먹으며,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 녹만 먹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또 물었다. "이기기를 좋아하고, 자기의 공로를 자랑하며, 원망하고, 탐욕을 행하지 않으면 인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것도) 어렵다고는 할 수 잇으나, 인인지는 내가 알지 못하겠다." (憲問恥. 子曰 : 邦有道, 穀 ; 邦無道, 穀, 恥也. 克伐怨欲不行焉, 可以焉仁矣? 子曰 : 可以爲難矣, 仁則吾不知也. 「헌문」)

 전과자이면서도 공자의 사위로 선택된 공야장

공야장(公冶長)의 성은 공야(公冶), 이름은 장(長), 자는 자장(子長)이다. 일설에는 이름이 장(萇), 자가 자지(子芝)라고도 했다. 제나라 사람이라고도 하고, 노나라 사람이라고도 한다. 739년 당나라 때 거백(莒伯), 1009년 송나라 때 고밀후(高密侯), 1530년 명나라 때 선현공야자(先賢公冶子)라 추봉되었다.

 『논어』 속으로…

 공자가 공야장을 평가하면서 "그를 사윗감으로 삼을 만하다. 비록 그가 포승줄에 묶여 옥중에 있었으나 그의 죄가 아니다."하고는 그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子謂公冶長, 可妻也. 踓在縲絏之中, 非其罪也. 以其子妻之. 「공야장」)

 능력있고 근실해서 조카사위로 삼은 남궁괄

남궁괄(南宮括)은 자가 자용(子容), 시호는 경숙(敬叔)이고, 노나라 대부 맹의자(孟懿子)의 형이다. 본래 성은 중손(仲孫)이고 이름은 문(聞)이었는데, 거주하던 곳이 남궁(南宮)이라서 남궁을 성으로 했다고 한다.

 『논어』 속으로…

 남궁괄이 공자에게 물었다. "예라고 하는 사람은 활을 잘 쏘았고, 오라고 하는 사람은 힘이 세어 육지에서 배를 끌고 다녔지만, 모두 제대로 죽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우왕과 직은 몸소 농사를 지었는데도 천하를 소유하였습니다." 공자가 대답을 않고 잇다가 남궁괄이 나가자 공자가 말했다. "군자로구나! 이 사람이여! 덕을 숭상하는구나! 이 사람이여!" (南宮括問於孔子曰 : 羿善射, 奡盪舟, 俱不得其死然 ; 禹稷躬稼, 而有天下. 夫子不答, 南宮括出. 子曰 : 君子哉若人! 尙德哉若人! 「헌문」)

 공자가 남궁괄을 평가하며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버려지지 않을 것이요,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형벌을 면할 것이다"하고, 형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냇다. (子謂南容, 邦有道, 不廢 ; 邦無道, 免於刑戮. 以其兄之子妻之. 「공야장」)

 "남용이 백규란 내용의 시를 (하루에) 세 번 반복해서 외우니, 공자가 그 형님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南容三復白圭, 孔子以其兄之子妻之. 「선진」)

 군자 자천

성은 복(宓), 명은 부제(不齊), 자가 자천(子賤)이고, 공자보다 30세(「가어」엔 49세) 연하이다.

 『논어』 속으로…

 공자가 자천에 대해 평가했다. "군자로구나! 이 사람이여! 노나라에 군자가 없었다면,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러한 덕을 취했겠는가?" (子謂子賤, 君子哉若人! 魯無君子者, 斯焉取斯? 「공야장」)

 인정받았지만 벼슬을 사양한 칠조개

칠조개(漆雕開, B.C. 540~?)는 성이 칠조(漆雕), 이름이 개(開), 자가 자약(子若) · 자개(子開)이다. 노나라 사람이라는 설도 있고, 채(蔡)나라 사람이라는 설도 있다. 공자보다 11세 연하이다. 원래 이름은 계(啓)였는데 한(漢)나라 경제(景帝)의 이름이 계(啓)였기 때문에 개(開)로 개명한 것이다. 옛날부터 왕의 이름은 피하는 관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739년 당나라 때 등백(滕伯), 1009년 송나라 때 평여후(平輿侯)로 추봉되었고, 현재 산동성 곡부 공묘 동무(東廡)에 종사되어 있다.

 『논어』 속으로…

 공자가 칠조개에게 벼슬하도록 하자, 칠조개가 대답했다. "저는 벼슬하는 것에 대해 아직 자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흐믓하게 여겼다. (子使漆雕開仕, 對曰 : 吾斯之未能信. 子說. 「공야장」)

 삐딱했던 자금

자금(子禽, B.C. 511~?)은 성이 진(陳), 이름이 항(亢), 자가 자금이고, 때론 자항(子亢)이라고도 했다. 진(陳)나라 사람이다. 739년 당나라 때 영백(潁伯), 1009년 송나라 때 남돈후(南頓侯)로 추봉되었고, 1530년 명나라 때 선현진자(先賢陳子)로 칭송되었다.

 『논어』 속으로…

 자금이 자공에게 물었다. "공자가 이 나라에 오시면 반드시 정치에 대해 물으시던데, 그것은 공자가 구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까?" 자공이 말했다. "공자는 온순하고 양선하고 공손하고 검소하고 겸양하시는 것으로 얻었으니, 공자가 구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구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子禽問於子貢曰 : 夫子至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子貢曰 : 夫子溫良恭儉讓以得之.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 「학이」)

 자금이 공자의 아들 백어에게 물었다. "그대는 (선생님으로부터) 무슨 특별한 가르침을 들은 게 있는가? 백어가 대답했다. "없었다. 일찍이 혼자 서 계실 때에는 내가 빨리 그 앞을 걸어가는데 '시를 배웠느냐?'하고 물으시길래 '못했습니다'라고 했더니,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 하시기에, 물러나 시를 배웠노라. 또 다른 날 홀로 서 계시는 앞을 빠른 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는데, '예를 배웠느냐?'고 물으시길래 '못했습니다'라고 했더니,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설 수 없다'고 하시기에 물러나 예를 배웠노라. 이 두 가지를 들었다." 자금이 물러나와 기뻐하며 말햇다. "하나를 물어서 셋을 들었으니 시를 듣고 예를 들었으며, 또 군자가 그 아들을 멀리하는 것을 들었노라." (陳亢問於伯魚曰 : 子亦有異聞乎? 對曰 : 未也. 嘗獨立, 鯉趨而過庭. 曰 : 學詩乎? 對曰 : 未也. 不學詩, 無以言. 鯉退而學詩. 他日又獨立, 鯉趨而過庭. 曰 : 學禮乎? 對曰 : 未也. 不學禮, 無以立. 鯉退而學禮. 聞斯二者. 陳亢退而喜曰 : 問一得三, 聞詩, 聞禮, 又聞君子之遠其子也. 「계씨」)

 "선생(자공)이 공손해서 그렇지 공자가 어찌 선생보다 낫겠습니까?" (陳子禽謂子貢曰 : 子爲恭也, 仲尼豈賢於子乎? 「자장」)

▲ 번지가 무우에서 공자에게 "덕을 숭상하고, 악함을 바로잡고, 의혹 분별하는 것"을 질문하는 과정(舞雩從遊)

 공자의 운전기사 번지

번지(樊遲)의 성은 번(樊), 이름은 수(須), 자는 자지(子遲), 혹 번지라고도 했다. 노나라 사람이라고도 하고 제(齊)나라 사람이라는 설도 있다. 공자보다 36세(「열전」) 혹은 46세(「가어」) 연하라고 전한다. 용력(勇力)이 있어서 어린 나이에 계씨 밑에서 벼슬하였다. 노나라 애공(哀公) 11년(B. C. 484) 제나라가 노나라를 정벌할 때 그는 염구(冉求)를 도와 제나라 군대를 물리쳤다고 하며, 이로 인해 그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739년 당나라 때 번백(樊伯), 1009년 송나라 때 익도후(益都侯)로 추봉되었고, 현재 산동성 공묘 서무(西廡)에 종사되어 있다.

 『논어』 속으로…

 번지가 인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거처함에 공손히 하고, 일을 집행하는데 경건히 하고, 사람들을 대할 때에 진실해야 한다. 이것은 비록 이적이 사는 지역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 (樊遲問仁, 子曰 : 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踓之夷狄, 不可棄也. 「자로」)

 번지가 농사짓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나는 저 농촌의 늙은 농부만도 못하다." 번지가 채소 농사에 대해 질문하자 공자가 대답했다. "나는 저 늙은 채소 농사하는 사람만도 못하다." 번지가 나가자 공자가 말했다. "번지는 소인이로구나!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윗사람을 공경하지 않는 이가 없고, 윗사람이 의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고, 윗사람이 신을 좋아하면 백성들이 감히 실정대로 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방의 백성들이 자식을 포대기에 업고 올 것이니, 어찌 농사짓는 것을 쓸 필요가 있겠는가?" (樊遲請學稼, 子曰 : 吾不如老農. 請學爲圃. 曰 : 吾不如老圃. 樊遲出, 子曰 : 小人哉, 樊須也! 上好禮, 則民莫敢不敬, 上好義, 則民莫敢不服 ; 上好信, 則民莫敢不用情. 夫如是, 則四方之民襁負其子而至矣, 焉用稼? 「자로」)

 번지가 지혜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사람이 지켜야할 도리에 힘쓰고 귀신을 공경은 하되 멀리한다면 지혜롭다고 하겠다." 또 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인자는 어려운 일을 먼저하고 얻는 것을 뒤에 한다. 이렇게 한다면 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樊遲問知. 子曰 :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問仁. 曰 : 仁者先難而後獲, 可謂仁矣. 「옹야」)

 번지가 공자를 따라서 무우 아래에서 유유히 노닐면서 물었다. "감히 덕을 높이며, 간특함을 닦으며, 의혹 분별하는 것에 대해 묻습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좋은 질문이로구나! 일을 먼저하고 이득 얻는 일을 뒤에 하는 것이 덕을 높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기의 악함을 다스리고 남의 악함을 다스리않는 것이 간특함을 닦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루 아침의 분노로 자신을 잊어서 화가 부모에게까지 미치게 함이 의혹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樊遲從遊於舞雩之下, 曰 : 敢問崇德 脩慝 辨惑. 子曰 : 善哉問! 先事後得, 非崇德與? 攻其惡, 無攻人之惡, 非脩慝與? 一朝之忿, 忘其身, 以及其親, 非惑與? 「안연」)

 번지가 인을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 지혜를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번지가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자. 공자가 말했다. "정직한 사람을 들어 쓰고 모든 부정한 사람을 버리면 부정한 자로 하여금 곧게 할 수 있는 것이다." (樊遲問仁. 子曰 : 愛人, 問知. 子曰 : 知人. 樊遲未達. 子曰 : 擧直錯諸枉, 能使枉者直. 「안연」)

 스승 공자의 외모를 닮았던 유약

유약(有若)은 자가 자유(子有), 세칭 유자(有子)라고 했다. 공자보다 43세(「가어」는 36세) 연하라고 했다. 노나라 사람이다. 739년 당나라 때 변백(汴伯)으로 1009년 송나라 때 평음후(平陰侯)로 추봉되었고, 현재 중국 산동성 곡부 공묘에 종사되어 있다.

 『논어』 속으로…

 유약이 말했다. "그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공경하면서 윗사람 범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윗사람 범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혼란 조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 근본이 확립되면 도가 발생한다. 효와 공경함은 인을 행하는 근본이다." (有子曰 : 其爲人也孝弟, 而好犯上者, 鮮矣 ; 不好犯上, 而好作亂者, 未之有也. 君子務本, 本立而道生. 孝弟也者, 其爲仁之本與! 「학이」)

 유약이 말했다. "예의 쓰임은 조화를 귀하게 생각한다. 선왕의 도는 이것을 아름답게 생각햇다. 그래서 작은 일도 큰 일도 모두 이것으로 말미암는다. 행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조화를 알았다고 해서 조화만 하고,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역시 행할 수 없는 것이다." (有子曰 : 禮之用, 和爲貴, 先王之道斯爲美, 小大由之. 有所不行, 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 「학이」)

 유약이 말했다. "약속이 의리에 가까워야 그 약속한 말을 실천할 수 있다. 공손함이 예에 가까워야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 그렇게 하여 가까운 사람들을 잃지 않음으로써 또한 섬길 수 있는 것이다." (有子曰 : 信近於義, 言可復也 ; 恭近於禮, 遠恥辱也 ; 因不失其親, 亦可宗也. 「학이」)

 애공이 유약에게 물었다. "매년 흉년이 들어 재용이 부족하니, 어찌 했으면 좋겠는가?" 유약이 대답했다. "어째서 철법을 쓰지 않습니까?" 애공이 반문했다. "10분의 2도 오히려 부족한데, 어떻게 10분의 1인 철법을 쓰겠는가?" 유약이 대답했다. "백성이 풍족하면 군주가 누구와 더물어 부족할 것이며, 백성이 풍족하지 못하다면 군주가 누구와 더불어 풍족하시겠습니까?" (哀公問於有若曰 : 年饑, 用不足, 如之何? 曰 : 二吾猶不足, 如之何其徹也? 對曰 : 百姓足, 君孰與不足? 百姓不足, 君孰與足? 「안연」)

 덕행이 뛰어났으나 몹쓸 병에 걸린 염백우

염백우(冉伯牛, B.C. 544~?)의 성은 염(冉), 이름은 경(耕), 자가 백우(伯牛)이다. 정현(鄭玄)은 그를 노나라 사람이라고 하였다. 739년 당나라 때 운후(鄆侯)로, 1009년 송나라 때에는 동평공(東平公)으로, 1265년에는 운공(鄆公)으로 추봉되었다. 중국 산동성 공묘에 종사되어 있다.

 『논어』 속으로…

 염백우가 질병에 걸리자 공자가 문병할 때 창문 너머로 손을 잡고 말했다. "이런 병에 걸릴 리가 없는데, 운명인가보다. 이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이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다니!" (伯牛有疾, 子問之, 自牖執其手. 曰 : 亡之, 命矣夫! 斯人也而有斯疾也! 斯人也而有斯疾也! 「옹야」)

 시세파악 능력이 뛰어났던 자고

자고(子羔, B.C. 521~?)의 성은 고(高), 이름은 시(柴), 자가 자고(子羔)이고, 자고(子高)라고도 했다. 공자보다 30세(『가어』엔 40세)연하이다. 제(齊)나라 사람이라고도 하고 위(衛)나라 사람이라고도 한다. 739년 당나라 때 공백(共伯)으로, 1009년 송나라 때 공성후(共城侯)로 추봉되었다. 현재 산동성 곡부 공묘 서무(西廡)에 종사되어 있다.

 『논어』 속으로…

 자로가 자고를 비재로 추천하자, 공자가 말했다. "남의 아들을 해치는 구나!" 자로가 말했다. "백성이 있고 사직이 있는데, 어찌 반드시 글공부만을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래서 난 말만 잘하는 사람을 미워한다." (子路使子羔爲費宰. 子曰 : 賊夫人之子. 子路曰 : 有民人焉, 有社稷焉. 何必讀書, 然後爲學? 子曰 : 是故惡夫佞者. 「선진」)

 품격있는 예절로 손님을 접대하던 공서화

공서화(公西華)의 성은 공서(公西), 이름은 적(赤), 자가 서화(西華) 혹 자화(子華)이다.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보다 42세 연하이다. 당나라 때인 739년 변백(汴伯)으로 추봉되고, 공자묘에 종사된 이후 1009년 송나라 때 평음후(平陰侯)로, 1530년 명나라 때 다시 선현공서자(先賢公西子)로 추종되었다.

 『논어』 속으로…

 공자가 말했다. "성과 인으로 말하면 내 어찌 감히 자처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성과 인을) 실천하기를 싫어하지 않으며, 남을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으로 말하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공서화가 말했다. "바로 이것이 저희 제자들이 배울 수 없는 점입니다." (子曰 : 若聖與仁, 則吾豈敢? 抑爲之不厭, 誨人不倦, 則可謂云爾已矣. 公西華曰 : 正唯弟子不能學也. 「술이」)

 맹무백이 공자에게 "공서화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대답했다. "공서화는 예복을 입고 띠를 띠고서 조정에 서서 빈객을 맞아 대화를 나누게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인한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孟武伯問 : 赤也何如? 子曰 : 赤也, 束帶立於朝, 可使與賓客言也, 不知其仁也. 「공야장」)

 공서화가 제나라에 심부름을 가자 염자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곡식을 줄 것을 요청하였다. 공자가 말했다. "부(6斗4升)를 주어라." 더 줄 것을 청하자, 공자가 말했다. "유(16斗)를 주어라." 그런데 염자는 이 보다 많은 5병(16斛)을 주었다. 공자가 말했다. "공서화가 제나라에 갈 때에 살찐 말을 타고 가벼운 갖옷을 입었다. 내가 들으니, '군자는 궁핍한 자를 돌봐주고 부유한 자를 계속 도와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子華使於齊, 冉子爲其母請粟. 子曰 : 與之釜. 請益. 曰 : 與之庾. 冉子與之粟五秉. 子曰 : 赤之適齊也, 乘肥馬, 衣輕裘. 吾聞之也, 君子周急不繼富. 「옹야」)

 공자가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공서화가 대답했다. "제가 능력이 잇다는 말은 아니지만, 배우기를 원합니다. 종묘의 일과 또 제후들이 회동할 때에 현단복을 입고 장보관을 쓰고 작은 집례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赤! 爾何如? 對曰 : 非曰能之, 願學焉. 宗廟之事, 如會同, 端章甫, 願爲小相焉. 「선진」)

 낭만이 넘쳤던 증석

증석(曾晳)은 증삼의 부친으로, 이름은 점(蒧)이다.

 『논어』 속으로…

 (제자들의 포부를 묻자) 비파를 옆으로 놓고 증석이 말했다. "(제 생각은 앞서 말한) 세 사람이 갖고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공자가 말했다. "무엇이 나쁘겠는가? 또한 각기 자신의 뜻을 말하는 것이다." 증석이 말했다. "늦봄에 봄옷이 이미 이루어지면 관을 쓴 어른 5~6명과 동자 6~7명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쐬고 노래하면서 돌아오겠습니다." (舍瑟而作, 對曰 : 異乎三子者之撰. 子曰 : 何傷乎? 亦各言其志也. 曰 : 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 夫子曰 ; 吾與點也! 「선진」)

위구인해미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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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1. 11. 18. 15:13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25 디지털 건축사진

GERRY KOPELOW 지음 김이삭 옮김
2008, KUKJE BOOKS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24897

662
코 894 ㄷ


ARCHITECTURAL PHOTOGRAPHY
THE DIGITAL WAY


갈수록 건축가와 디자이너는 중요한 마케팅과 출판 분야에서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 디자인 부문에서 성공하려면 품질이 높은 사진을 건축잡지, 신문, 웹사이트에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전문 사진을 제대로 제작하자면 비용이 많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사진 분야에 불어 닥친 디지털 혁명 덕에, 사진가가 혼자라도 많은 작업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그것도 디지털 인화 및 프레젠테이션의 새로운 수요에 딱 부합되는 방법으로 말이다.
게리 코펠로는 《디지털 건축사진》에서 디지털 장비를 사용해서 건물의 내부 사진과 외부 사진을 최상급으로 촬영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이 책은 단계별 설명을 통해서 독자들이 적절한 디지털 카메라를 선택하는 방법, 카메라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포토샵 등의 이미지 편집 소프트웨어로 사진의 질을 높이고 보정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돕는다. 이 책은 디지털 촬영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내용을 포함한 완결 과정으로서, 먼저 디지털 이미지를 소개하고 독특한 미학 이론을 고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여러 상황에 따라서 건물의 외부와 내부를 촬영하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준다. 이어서 여러 장에 걸쳐서 이미지 편집 소프트웨어로 작업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은 물론, 원근 조절 및 색 조정 방법을 설명한다. 이 입문서에는 색감이 풍부한 컬러 사진과 illustrator가 삽입되어 있고 내용이 명료하게 기술되어 있는 데다 사용하기가 편리해서, 디지털 카메라로 건축물을 촬영할 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자료이다.

작가 게리 코펠로(Gerry Kopelow)는 건축 사진가로 수많은 출판물에 작품을 게재해 왔다. 그는 《건물 및 인테리어 촬영법(How to photograph Buildings and Interiors)》을 포함해 건축 사진을 다룬 여러 책을 집필했으며, 뉴욕 쿠퍼 유니언(Cooper Union)에서 동일한 주제로 강의를 한다.

옮긴이 김이삭은 현재, 중앙대학교 디지털 미디어 박사과정에 있으며 중앙대학교, 경민대학, 호서전문학교, 건국대학교 대학원 강사로 출강하고 있다. 또한 한국사진학회, 한국전시디자인학회 정회원이다.
MOBIL. 011.9131.3862 / E-MAIL. photolux@empal.com

CONTENTS

서문

1       카메라의 기초
1-1   카메라의 종류
1-2   뷰카메라의 기초
1-3   소형 카메라의 기초
1-4   중형 카메라의 기초
1-5   카메라의 포맷 선택

2      DSLR 입문
2-1  노출
2-2  디지털 카메라의 렌즈
2-3  디지털 이미지란 무엇인가?
2-4  이미지의 디지털화 방법
2-5  센서의 종류

3      디지털 작업 공정
3-1  메모리 카드
3-2  로우 파일(RAW FILES)
3-3  파일 포맷 및 압축 기법
3-4  색 관리
3-5  이미지 편집
3-6  건축 사진의 디지털 작업 공정

4      스캐닝
4-1  장비(HARDWARE)
4-2  스캐닝 기법

5      미적 고려 사항
5-1  하늘, 계절, 시간
5-2  명암과 색
5-3  시점과 이미지 구성

6     건축물 외부(EXTERIOR) 사진
6-1  카메라 앵글과 시간 선택
6-2  시각적 고려 사항
6-3  저층, 중층, 고층 건물 촬영 방법

7     유효광(AVAILABLE-LIGHT) 인테리어 사진
7-1  유효광(AVAILABLE-LIGHT)과 디지털 캡쳐
7-2  조명의 일반적인 문제
7-3  유효광(AVAILABLE-LIGHT) 상태 평가
7-4  컴퓨터와 연결해서 작업하기
7-5  실내 일광(DAYLIGHT)
7-6  백열등
7-7  형광등
7-8  나트륨 및 수은-가스등
7-9  혼합 조명

8      인테리어 사진 조명
8-1  사진 조명 장비
8-2  전자 플래시
8-3  텅스텐 조명
8-4  알맞은 시스템
8-5  라이트 페인팅

9     구체적인 적용 방법
9-1  건축물의 디테일
9-2  드로잉, 랜더링, 투시도 촬영하기
9-3  건축 모형
9-4  야경 사진
9-5  공사 진행 및 건설현장 사진
9-6  항공 촬영
9-7  필터
9-8  실제 고려 사항

10     촬영 후
10-1 파일 고속 전송
10-2 인쇄 종류
10-3 출판하기

인터넷상의 디지털 이미지 자료
용어 사전
IND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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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16. 17:04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24 노장사상

박이문 지음
2006, 문학과 지성사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36249


152.22
박 68 ㄴ


철---학---적---해---석

노장의 위대성은 2천 년 전 이미 반체제에 나섰던 데에 있고, 그들 나름의 새롭고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안한 데에 있다. 그들은 그야말로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절에, 유교로 대표되는 기성 체제, 기성 가치를 비판 · 거부하고, 우리들을 향해,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이 진리인가를 다시 생각해보라고 가르쳐 주었으며,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가리키면서 그것이 정말 가치가 있는가를 다시 검토해 보라고 일깨워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노장의 그러한 가르침을 하나의 상징적 거울로 삼아, 우주와 인간의 관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로운 눈으로 보고, 새로운 인간관, 새로운 인생관을 세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한 것과 결별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해묵은 언어로 되풀이되는 고전의 재해석은 독자들을 식상케 할 뿐이다. 그러나 박이문은 분석철학이라는 새로운 눈으로 노장 사상을 바라보고자 한다. 이에 기존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노장 사상의 새로운 면모가 자취를 드러낸다. 이 책에서 저자가 노장 사상을 해명하기 위하여 동원하고 있는 '존재의 차원'과 '의미의 차원'이라는 개념은 철학적으로 매우 유의미한 범주이다. 이 범주는 노장 사상의 해명뿐 아니라, 서양 철학 내에서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논쟁거리들을 해소하는 데에도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_ 이승환(고려대 철학과 교수)

박이문 교수는 노장 사상을 고색창연한 경전이 아닌 살아 숨쉬는 텍스트로서 새로이 이해하고 그 '철학'의 차원, '종교'의 차원, '이념'의 차원을 명쾌하게 해명한다. 이 세갈래 길에서 그가 수행하는 '도' '무위' '소요' 개념의 철학적 분석은 동서 사유의 만남과 가로지르기의 이정표가 되는 중요한 작업으로 꼽힌다.
_ 이승종(연세대 철학과 교수)

박이문(朴異汶)

1930년 충남 아산 출생으로 서울대 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미국 남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화여대 불문학과 조교수(1957~1961)를 시작으로 미국 랜슬레어 공과대학 철학과 전임강사(1968~1970), 시몬스 대학 철학과 조교수 · 부교수 · 정교수(1970~1993), 이화여대 및 서울대학교 철학 / 미학과에서 풀브라이트 초청교수(1980~1982), 미국 하버드 대학 교육대학원 철학연구소 선임연구원(1983~1991), 독일 마인츠 대학 초청교수(1985~1986), 일본 인터내셔널 크리스천 대학 초청교수(1989~1990)을 거쳐 시몬스 대학 명예교수 및 포항공대 교양철학부 교수를 역임하였다. 『시와 과학』『현상학과 분석철학』『하나만의 선택』『노장사상』『인식과 실존』『예술철학』『명상의 공간』『삶에의 태도』『철학 전후』『우리 시대의 얼굴』『문명의 위기와 문화의 전환』『이성은 죽지 않았다』『다시 찾은 파리 수첩』『철학의 여백』『이성의 시련』등 40여 권의 저서와 논문이 있으며 『눈에 덮인 찰스 강변』『나비의 꿈』『공백의 울림』등의 시집이 있다.

|차례|

개정판을 내면서
책머리에

1. 문제와 방법
    문제
    방법

2. '도'와 진리
             - 철학으로서의 노장 사상
    존재와 언어
    존재와 '도'
    자연과 도
    존재와 인간
    인식과 직관

3. '무위'와 실천
            - 종교로서의 노장 사상
    공포와 우환
    구원과 해탈
    속세와 열반
    '행위'와 '무위'

4. '소요'와 가치
            - 이념으로서의 노장 사상
    지락과 타락
    비극과 희극
    속죄와 소요

5. 노장과 우리
    역설의 논리
    노장과 우리

부록 도와 이성
            - 동서 철학 : 사유의 두 양상
    '철학'의 개념과 동서 철학 비교의 가능성
    동서 철학의 모체 개념 - '도'와 '이성'
    '도'와 '이성'의 개념 비교 분석

맺음말

참고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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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1. 11. 14. 09:09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23 떡과 과자

글, 사진 / 한복려
1994,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6445


082
빛 12 ㄷ 62

빛깔있는 책들 62

한복려------------------------------------------------------------------------

서울시립대학 원예과와 일본 조리사 전문학교를 졸업했다. 고려대학교 식량개발대학원 식품공학과를 졸업했으며 중요 무형문화재 38호 국가 전수 장학생을 이수했다.
현재 사단법인 궁중음식연구원 원장이며 대전보건전문대학 전통조리과 강사이다.
사진은 탑스튜디오, 그린스튜디오, 포타운 등에서 촬영했다.

|차례|

사진으로 보는 떡과 과자
떡 이야기
    떡의 역사
    떡의 쓰임새
    시식과 절식
    통과 의례

    떡의 기본
    떡가루 만드는 법
    떡고물 만드는 법
    가루에 섞는 것
    시루떡 찌는 법
    떡의 종류
    시루떡, 물편, 각도 별떡
한과
    과자의 쓰임새
    한과의 종류
화채와 차
    화채
    차
    다과상


▲ 정월 초하루가 가까워오면 어느 집에서나 마당에 모여 떡을 쳤다. 명절을 쇠기 위해 떡을 치는 것은 아주 큰 일 가운데 하나였다.

▲ 떡을 다 치고 나면 양손으로 잡고 늘여서 가래떡을 만든다. 떡이 적당하게 굳었을 때 썰어 두었다가 떡국을 끓인다.
▲ 골무떡 떡을 쳐서 가래떡으로 만들기 전에 떡을 한입에 들어갈 만큼 작게 썰어서 꿀에 찍어 먹기도 한다.

▲ 약식 약식은 잔칫상에 빠질 수 없는 전통 음식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신라 시대에 경주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만드는 정월 대보름의 절식이다.

▲ 큰송편 음력 2월 초하루인 중화절이면 대갓집에서는 송편을 크게 빚어서 노비들에게 나이수대로 나누어 주었다.

▲ 화전 화전은 기름에 지지는 찰전병이다. 3월 삼짇날에 해먹는 절식으로 진달래 꽃을 많이 써서 '화전'하면 곧 진달래화전을 연상한다. 꽃이 없을 때에는 대추와 쑥갓잎을 써서 화전을 만들었는데 주로 웃기떡으로 많이 쓴다. 둥글납작하게 빚은 반죽을 기름에 부치다가 웃기를 놓는다.

▲ 쑥버무리 이른 봄에 새로 돋아난 애쑥 곧 어린 쑥을 뜯어서 날 것 그대로 맵쌀가루에 훌훌 섞어서 찌는 떡이다. 의례적인 떡은 아니고 봄철 시식의 하나이다.

▲ 개피떡 떡자락으로 뚜껑을 덮은 생김새를 한 개피떡은 바람떡이라고도 하는데 한입 베어 물면 바람이 후루룩 빠져서 그렇게 이름이 붙었다. 통통한 것이 팥소와 함께 바람이 꽉차 있어서 생김새가 예쁘다. 쑥이 나는 봄에 곧잘 해먹는 떡이다.

▲ 수리치절편 오월 단오의 절식으로 수리치의 잎을 섞어 만든 절편으로 떡살로 떡을 찍어 만든 생김새가 수레바퀴처럼 생겼다.

▲ 깨소밀쌈 초여름에 햇밀을 거두어 가루를 내어 밀쌈을 만들어 먹는다. 밀쌈은 밀전병을 부쳐서 그 가운데에 소를 넣고 도르르 만다는 뜻이다. 사진은 꿀로 버무린 깨를 소로 넣은 것이다. 보통 후식으로 먹으며 안주로 먹는 밀쌈은 고기나 채소를 소로 넣는다.

▲ 송편 송편은 모든 지방에서 잘 만드는 떡으로 지방에 따라 생김새나 소가 다르다. 가장 먼저 나오는 햅쌀로 빚은 송편을 조상의 차례상과 묘소에 빠뜨리지 않고 올린다.

▲ 물호박떡 노랗게 익은 호박을 썰어 맵쌀가루와 섞어 흰팥고물로 켜로 하여 찌는 시루떡이다. 추석 무렵부터 많이 해먹는다.

▲ 시루, 시루밑, 짚방석 떡을 찔 때 쓰는 기구들이다. 시루 밑에 깔고 떡 재료를 넣은 다음 짚방석을 덮고 찐다.

▲ 다식판, 약과판, 떡살 다식, 약과, 떡의 생김새와 무늬를 만들어 주는 틀이다.

▲ 함지박, 쳇다리, 체 함지박은 통나무 속을 파서 큰 바가지같이 만든 그릇이다. 쳇다리는 곡식 따위를 갈 때 맷돌 밑에 받쳐서 간 물이 떨어지게 하거나 가루를 내릴 때 체 밑에 받치는 것이다. 체는 음식을 갈 때 쓰는데 가는 체 굵은 체로 종류가 다양하다.

▲ 떡을 만들려면 먼저 쌀을 나무 절구로 빻아 가루로 만들어야 한다. 요즈음에는 보기 힘든 옛날 아낙네들의 정구질 모습이 재미있다.

▲ 고사떡 붉은팥시루떡은 고사떡으로 동신제라는 제사 때에 하던 떡이다. 시루떡은 한 켜의 두께를 두껍게 하고, 크고작은 시루에 여러 개를 쪄서 대청이나 우물가, 광, 부엌 같은 곳에 시루째 놓고 고사를 지낸다.

▲ 정월의 차례상이다. 떡국을 끓여 올려 놓고 정편을 만들어 편틀에 고인다. 그 밖에 과일, 약과, 다식 등도 놓는다.

▲ 돌상에는 백설기, 송편, 수수팥단지를 올려 놓는데 각각 순수함을 축원하는 뜻과, 속이차라는 뜻 그리고 잡귀를 예방하는 등 아기의 장래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 회갑 잔칫상에는 갖가지 떡과 과일, 조과류를 높이 고여 회갑을 맞은 사람이 더 오래 살기를 빈다.

▲ 추석날 손님에게 내는 상차림이다. 송편과 밤초, 대추초를 놓고 화채는 배숙을 놓는다.

▲ 여러 가지 떡 가운데에서도 편은 고임에 가장 적합한 떡이다. 메편과 절면을 번갈아 고이고 맨 위에는 웃기떡으로 장식한다.

 ▲ 무지개떡 시루떡 가운데에서 쌀가루에 아무 것도 섞지 않고 찌는 떡은 무리떡이라 하며 고물을 쓰지 않고 한덩어리가 되게 찐다.

▲ 잡과병 설기떡 또는 버무리떡이라고도 한다. 병(餠)은 떡이라는 뜻이다. 잡과병은 쌀가루에 여러 가지 과일을 버무린 시루떡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 삼색인절미 인절미는 한자로 '인절병'이라고 하는데 차진 떡이라 잡아당겨 끊는다는 뜻으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찹쌀을 가루로 하지 않고 그대로 쪄서 절구에 찧거나 떡메로 친다. 쫄깃한 맛이 특징으로 콩가루, 흑임자를 갈아서 고물로 묻힌다.

▲ 각색단자 찹쌀가루로 만드는 물편 종류로 소를 넣고 빚어 고물을 묻힌다. 단자를 몇 가지 만들어 어울리게 담아 각색단자라 한다.

▲ 밤단자 봄에는 쑥구리단자, 가을에는 밤, 유자단자, 겨울에는 대추, 석이단자가 어울린다. 밤 고물을 묻힌 밤단자이다.

▲ 경단 경단은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둥글게 빚어 만든 떡이다. 파란 콩가루, 노란 콩가루, 팥고물, 깨소금 같은 여러 가지 색의 고물을 묻혀 목기에 깔끔하게 담는다.

 ▲ 각색주악 주악은 마치 조약돌처럼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이며, 궁중에서는 조악이라고 불렀다. 순찹쌀가루 반죽에 대추, 깨, 유자 다진 것을 넣고 작은 송편처럼 빚어 기름에 튀겨낸다.

 

 ▲ 수수부꾸미 부꾸미는 찹쌀, 차수수, 밀가루 또는 녹두를 갈아서 전병처럼 기름에 지지다가 소를 가운데에 넣고 반달로 접은 떡이다. 수수로 만든 부꾸미이다.

 

 ▲ 찹쌀부꾸미 찹쌀전병에 소를 넣고 반을 접어 지진 떡이다.

 

 ▲ 녹두빈자병 햇녹두를 갈아 팥소를 넣고 지진 떡으로 요즈음에는 거의 볼 수 없다.

 

 ▲ 증편 송편이 가을 떡이라면 증편은 여름 떡이다. 맵쌀가루에 막걸리로 부풀려 찐 떡으로 설핏설핏 혀 끝에 감겨오는 술 맛에 코끝이 간지럽고 살짝 달짝지근한 맛이 설탕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 두텁떡 본디 봉우리떡이라고 한다. 궁중에서 전해 내려온 떡이라서 가정집의 떡과는 만드는 법이 드르다. 꿀로 버무린 팥고물과 밤, 대추, 유자를 소로 써서 생김새와는 달리 맛이 특별하다.  

▲ 쇠머리떡 충청도 떡으로 팥, 콩, 밤, 대추 같은 것을 넣어 찐 시루떡이다. 떡이 약간 굳었을 때 쇠머리 편육처럼 썬다.

▲ 개성주악 술과 밀가루를 섞어 반죽한 다음 튀겨서 조청에 담근 개성의 주악이다.

▲ 수수도가니 햇수수가루를 넙적하게 만들어 풋콩을 얹어 찐 경기도 특유의 떡이다.

 ▲ 메밀총떡 물에 푼 메밀가루를 기름에 부쳐서 가운데에 소를 넣고 양편에서 접어 길쭉하게 만든 떡이다. 강원도에서는 이것을 총떡, 제주도에서는 빙떡이라고 부르며 소로 무나물이나 호박나물을 많이 넣는다. 나물이 들어간 것은 초장에 찍어 먹으나 팥고물이나 깨고물을 소로 넣으면 떡이나 과자 대신으로 먹을 수 있다.

 ▲ 감자송편 감자를 저절로 삭혀 녹말을 만들어 시루떡도 하고 송편도 빚어 찌면 맑게 비치는 멋이 있다.

▲ 호박찰시루떡 전라도 지방의 떡으로 늦가을, 누렇게 익은 맷돌호박이나 청둥호박의 껍질을 깎아서 둥글둥글 켜를 돌려 말려두었다가 겨울에 시루떡을 해먹는다.

 ▲ 고치떡 누에를 쳐서 마지막 잠을 재운 다음 잠박에 올려서 고치짓기를 기다리며 만드는 떡이다. 떡가루에 분홍, 노랑, 파랑의 물감을 들여 절편하듯이 한 다음 누에고치처럼 빚어 만든다.

 ▲ 오쟁이떡 인절미에 팥소를 넣고 오쟁이처럼 빚어 만든 떡이다.

▲ 유과 유과는 우리나라 과자 가운데에서 으뜸으로 치며 잔칫상이나 제삿상에 빼놓지 않고 올린다. 생김새와 고물에 따라 이름이 다르며 입에 넣으면 바삭 부서지면서 사르르 녹는다. 장가 온 신랑의 후행(後行) 또는 상객(上客)이 돌아갈 때 신부집에서는 대나무나 버들로 엮은 그릇에 각종 음식을 담아 보내는데 이 때 보내는 유과는 잣, 대추 따위로 모양을 내어 정성껏 만든다. 

 ▲ 산자 반죽을 큼직하고 편편하게 하여 튀긴 다음 밥풀을 고물로 묻힌 것이다.

 

▲ 매화산자 보통 산자보다 조금 더 크고 편편하게 튀겨서 매화산자에 쓰이는 나락과 그것을  볶아 껍질을 벗겨낸 나락 튀긴 것을 고물로 묻힌다.

▲ 약과 유과가 아닌 유밀과의 일종으로 약과의 약(藥)이란 꿀이 많이 들어가는 음식에 붙인다. 밀가루에 기름과 꿀 또는 술을 넣고 반죽해서 만든다.

▲ 엿강정 흑임자, 들깨, 파란콩, 검정콩 따위를 볶은 것이나 잣, 호도, 땅콩같이 고소하고 향기 좋은 재료에 단맛을 더해 만든 과자이다.

▲ 다식 다식은 깨, 콩, 찹쌀, 송화, 녹말을 가루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모양틀에 찍어낸 것이다. 수복강령의 글귀나 꽃 무늬, 바퀴 무늬, 완자 무늬 따위의 여러 문양이 있으며 무늬가 몹시 정교하여 옛날 조상들의 예술성을 엿볼 수 있다.

▲ 구절판에 곶감쌈, 생률, 어포, 대추초, 도라지정과, 호두튀김, 은행볶음, 육포, 잣솔 같은 마른 안주를 담았다.

▲ 섭산삼 산삼은 더덕의 한자 이름으로 더덕의 생김새와 효능이 삼과 비슷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섭자가 붙은 음식들은 주로 두드려서 요리한다. 섭산삼에 관한 조리법이 삼백년 전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매우 오래된 음식임을 알 수 있다.

▲ 과편 앵두, 살구, 모과같이 신 과일에 설탕을 넣고 조리다가 녹말을 넣어 굳힌 것으로 서양의 젤리와 비슷하다. 보통 생률과 같이 먹는다.

▲ 곶감쌈 주머니곶감에 호두를 넣고 말아 얇게 썰면 예쁜 생김새의 곶감쌈이 된다. 주로 정월에 먹는데 곶감은 겨울철 영양 공급에 큰 몫을 차지하는 중요한 과일로 당분이 많고 비타민씨가 많이 들어 있어 신진대사에 도움을 준다.

▲ 떡수단 덩어리 흰떡을 가늘게 콩알만큼씩 끊어 놓고 가운데를 손바닥으로 누른다. 이 수단거리를 녹말에 묻혀서 끓는 물에 삶아 찬물에 건졌다가 꿀물에 띄운다. 통잣을 몇 개 띄우면 매끄럽고 유두에 먹는 시원한 여름철 음료가 된다.

▲ 수정과와 배숙 수정과는 정초에 만드는 화채로 시원하고 향긋한 국물 맛과 말랑하면서 달콤한 곶감의 맛이 어우러져 누구나 즐겨 찾는 한식 음료이다. 국물 맛을 내는 계피와 생강은 같이 넣고 끓이면 서로 맛이 상쇄되어 향을 낼 수 없으므로 따로 끓여서 합해야 제맛이 난다. 배숙은 배로 만든 수정과류의 음료로 보통 민가에서는 곶감수정과를 많이 만들어 먹었으며 배숙은 주로 궁중에서 만들어 먹었다.

▲ 제호탕 우리나라의 음료 곧 뜨거운 차와 화채는 거의 모두 한방재를 기본으로 하여 만든다. 제호탕은 여러 한약재를 가루로 만들어 꿀을 넣고 오랜 시간 저어 중탕한 다음 백자항아리에 담아 두고 찬물에 한 숟가락씩 타서 마시는 여름철의 건강 음료이다. 궁중에서는 단오에 임금은 부채를 하사하고 궁중 안의 의원에서는 제호탕을 임금께 진상하였다. 임금은 일흔 살이 넘은 정이품 이상의 문관이 모이는 기로소(耆老所)에 이 제호탕을 하사하였다.

▲ 송화밀수 봄철에 송화 곧 소나무의 꽃가루를 받아 두었다가 꿀물에 타서 마신다. 이 가루는 가벼워서 물 위에 뜨며 섞여 풀어지지 않는다.

▲ 진달래화채 오미자를 우려낸 찬물에 꿀이나 설탕을 타고 진달래 꽃잎을 띄운 것으로 3월 삼짇날 먹는 시식 음료이다.

▲ 보리수단 햇보리가 나오는 5월에 만든다. 햇보리를 삶아 알알이 녹말을 묻혀 다시 삶은 다음 꿀물이나 오미자 국물에 담근다.

▲ 유자화채 유자는 귤과 함께 겨울 화채의 재료이다. 초겨울에 나오는 햇유자를 배와 함께 채썰어 색색으로 곱게 담아 놓고 석류알과 잣을 띄운 다음 꿀물이나 설탕물을 살짝 붓는다. 유자화채는 그 향과 맛이 뛰어나 최고의 화채로 친다.

▲ 오메기떡 제주도 지방의 특별한 좁쌀떡으로 가운데 구멍을 내고 콩고물을 묻힌다.

▲ 손가락강정

▲ 빙사과

▲ 원소병 떡수단과 같은 음료로 정월 보름날 만들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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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10. 09:40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22 팔도 음식

글, 사진 / 한복진
1996,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3094


082
빛 12 ㄷ 61

한복진------------------------------------------------------------------------

이화여자대학교 가장대학을 졸업하였고 한양대학교 대학원 식품영향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국가전수장학생을 이수하고 일본 조리사 전문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 사단법인 궁중음식연구원 전임강사이며 한림전문대학 전통조리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도움 주신 곳----------------------------------------------------------------

그린 스튜디오

|차례|

사진으로 보는 팔도 음식
한국 향토 음식의 특징
서울
    대표적인 서울 음식
경기도
    대표적인 경기도 음식
강원도
    대표적인 강원도 음식
충천도
    대표적인 충청도 음식
전라도
    대표적인 전라도 음식
경상도
    대표적인 경상도 음식
제주도
    대표적인 제주도 음식
황해도
    대표적인 황해도 음식
평안도
    대표적인 평안도 음식
함경도
    대표적인 함경도 음식 

▲ 신선로 조선조 오백 년의 수도였던 서울에는 조선 시대 풍의 요리가 많이 남아 있다. 또 궁중 음식의 영향을 많이 받아 고급스럽고 화려한 것도 많다. 신선로는 궁중 음식이 민간에 전해진 대표적인 보기로 숯을 넣는 화통이 가운데에 달려 있는 남비에 육류, 해산물, 채소 따위를 둘러 넣고 끓여 먹는 음식이다.

▲ 육개장 여름철 복중 음식으로 쇠고기를 넣고 맵게 간하여 끓인 음식이다. 개고기를 꺼렸던 옛날 양반들이 쇠고기를 대신 넣고 개장국처럼 끓여서 먹은 데서 유래한다.

▲ 장김치 배추와 무를 소금이 아닌 진간장에 절여 담그는 김치이다. 밤, 배, 표고버섯 따위도 함께 넣는데 다른 김치에 견주어 빨리 익으며 겨울철에 더 맛이 난다.

▲ 육포, 대추 서울에서는 폐백을 할 때 쇠고기 육포와 대추를 마련한다.

▲ 다식 깨, 콩, 찹쌀 따위를 볶아서 가루로 만든 다음 꿀과 물엿으로 반죽하여 다식판에 넣고 박아낸 것인데 의례상에 빠지지 않고 올려진다. 노란색은 송화다식, 분홍색은 오미자다식, 갈색은 흰깨다식, 검은색은 흑임자다식, 녹색은 청태다식이다.

▲ 홍합초
초(炒)란 일종의 조림을 말한다. 홍합을 데쳐서 물, 간장, 마늘, 생강과 함께 조리다가 녹말을 풀어 걸쭉하게 익힌다. 서울 지방에서는 홍합초같이 깔끔한 밑반찬을 준비해 두는 집이 많았다. 전복으로 전복초를 만들기도 한다.

▲ 경기도 음식은 서울 음식보다 소박하며 양념도 수수하게 쓰이는 편이다. 그러나 고려 시대의 수도였던 개성의 음식은 서울, 진주 음식과 더불어 호화스럽고 사치스럽다.

▲ 냉이국 봄철에 식욕을 돋구어 주는 시원한 국이다. 쌀뜨물에 된장을 풀고 조개와 냉이를 넣어 끓인다.

▲ 개성 무찜 무에 고기, 밤, 대추, 은행을 넣고 만든 찜요리로 무의 맛과 다양한 재료가 잘 어울리는 별미이다.

▲ 조랭이떡국
개성에서는 정초에 누에고치의 생김새를 본떠 만든 떡으로 국을 끓인다. 누에는 길(吉)함을 뜻한다. 흰떡을 대나무 칼로 썰어 육수에 끓인 다음 계란과 고기를 고명으로 얹는다.

▲ 비늘김치 무에 어슷하게 칼집을 내어 절인 다음 그 사이에 양념을 채워 배추김치 사이에 한켜씩 넣어 익힌다. 요즈음 서울 지방에서도 김장을 담글 때에 이 김치를 담그는 집이 많다.

▲ 닭젓국 새우젓으로 간을 한 국물이 많은 찜요리이다.

▲ 개성 주악
보통 주악과는 달리 찹쌀가루와 맵쌀가루를 섞은 것에 막걸리를 조금 넣고 반죽한다. 반죽을 둥글게 빚고 기름에 튀겨 조청에 넣는다. 개성 주악은 크게 만드는 것이 특색이고 담을 때는 가운데에 대추쪽이나 통잣을 하나씩 박는다.

▲ 장떡 햇된장에 찹쌀가루나 밀가루나 밀가루 그리고 다진 고기, 풋고추, 파, 마늘을 넣고 양념하여 섞은 다음 둥글납작하게 빚어 찜통에 찐다. 찬으로 하거나 찐 것을 말렸다가 석쇠에 구워 먹기도 한다. 경기도뿐 아니라 다른 지방에서도 즐기는 음식이다.

▲ 개성 편수 네모진 서울의 편수와는 달리 둥근 껍질에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두부, 배추김치, 숙주 따위로 만든 속을 가득 채워 통통하게 만든다. 끓는 장국에 익혀서 초장에 찍어 먹거나 뜨거운 장국에 넣어 먹는다.

▲ 강원도 지방의 특산물 가운데 하나인 옥수수이다.

▲ 강원도는 한류와 난류가 엇갈리는 동해와 면하고 있고 태백산맥을 잇는 산과 골짜기, 분지가 어울려 있는 곳이다. 따라서 그 산골마다 각각 생산물이 다르고 해안 지방에서 나는 산물이 또 다르다. 감자, 옥수수, 메밀, 도토리가 많이 나서 이것들을 주식의 재료로 삼았는데 이 식품들이 평상시에는 주식이면서 또 향토 별미로서 사랑을 받는 음식이었다. 산악 지방에는 육류를 쓰지 않는 음식이 많으며 해안 지방에서는 멸치나 조개를 넣어 음식의 맛을 낸다.

▲ 감자경단 강원도에서는 감자가 많이 난다. 따라서 감자를 써서 만든 음식이 많다. 녹말가루를 반죽하여 찐 다음 콩고물과 거피팥고물을 묻혀 경단을 만들었다.

▲ 오징어구이 동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오징어에 칼집을 내서 고추장 양념을 한 다음 불고기처럼 구워 먹는다.

▲ 더덕생채 더덕의 껍질을 벗겨 두들긴 다음 가운데를 갈라 초고추장에 무친다. 더덕은 향이 좋은 산채로 구워서 먹기도 한다.

▲ 팥국수 팥을 무르게 삶아 건져서 팥물에 밀국수를 넣었다.

▲ 막국수
춘천 막국수는 강원도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에 김칫국물을 부어서 먹는데 김칫국물은 양념을 많이 한 것보다는 맑은 김칫국물이좋고 김칫국물과 함께 차게 식힌 육수를 섞으면 더 맛이 난다.

▲ 충청도 음식은 꾸밈이 없고 소박하다. 충청도는 농업이 성한 곳으로 곡식의 생산이 많아 죽, 국수, 수제비 같은 음식이 흔하다. 늙은 호박으로 죽을 쑤거나 범벅을 만드는 것이 다른 도와 견주어 특이하다. 또 국물을 내는데 고기보다 해물을 많이 쓴다. 충청도에서는 농업이 성해서 쌀, 보리, 고구마 같은 곡식과, 무, 배추 따위의 채소 그리고 목화와 모시가 많이 생산된다. 또 서해와 접해 있는 해안 지방은 좋은 어장을 갖추고 있다. 천원군에서는 과수 재배가 활발하고 특히 성환의 배와 참외가 유명하다. 껍질의 생김새 때문에 개구리참외라고도 부르는 성환 참외는 맛이 아주 뛰어나지만 요즈음에는 거의 보기가 힘들다.

▲ 청국장
흰콩을 삶아 따뜻한 곳에 이삼 일 두어 발효시킨 다음 먹는 된장으로 독특한 향이 있다. 겨울철에 두부, 김치를 넣고 찌개를 끓인다.

▲ 굴냉국 충청남도 서산에서는 굴이 많이 난다. 이곳에서는 생굴에 청장, 파, 마늘을 넣고 양념한 다음 동치미 국물에 부어 굴냉국을 만든다. 찰밥과 맛이 잘 어울린다.

▲ 호박꿀단지 늙은 호박의 꼭지 부분을 동그랗게 도려 내어 그 속에 꿀을 한 홉쯤 넣고 막아 큰 솥에 쪄서 한김 나가면 속의 고인 물을 따라 마신다. 이것은 부증을 가라앉히는 데 효과가 있다.

▲ 생떡국 쌀가루를 익반죽하여 납작하게 빚은 다음 조개를 우린 국물에 넣고 끓인다. 날떡국이라고도 한다.

▲ 묵볶음 도토리묵이나 상수리묵을 썰어서 말렸다가 다시 불려 채소와 같이 볶는다. 쫄깃한 맛이 독특하다.

▲ 전라도의 여러 특산물 가운데 하나인 약산 흑염소이다. 전라남도 완산군 약산에서 나는 갖가지 약초 가운데에 삼지구엽초를 먹고 자란 이곳 흑염소들은 다른 지방의 것보다 효험이 훨씬 더 좋아 값이 곱절이나 더 나간다.

▲ 전라도는 곡식과 해산물과 산채가 두루 풍부하다. 음식을 만들 때에도 넉넉한 재료들을 가지고 정성을 많이 들여 음식이 매우 호사스럽다. 조선 왕조 왕가인 전주 이씨의 본관이 되는 전주를 비롯하여 전라도의 여러 곳에서 부유한 토반들이 대를 이어 좋은 음식을 전수하고 잇으므로 어느 지방도 따를 수 없는 풍류와 맛의 고장이라고 하겠다.

▲ 전주 비빔밥
전라도 음식 가운데에서 전국에 가장 널리 퍼진 음식으로 전라도에서 나는 풍부한 산물을 골고루 넣어 만든다. 철에 따라 여러 가지 나물과 청포묵, 육회를 얹는다.

▲ 유곽 조갯살을 다져서 된장을 넣고 양념한 다음, 껍질에 채워서 구워낸 조개구이이다.

▲ 두루치기 쇠고기의 살과 내장류, 무, 배추, 버섯 같은 여러 가지 재료들을 볶아서 잣, 은행, 실고추 따위를 고명으로 얹는 호화로운 음식이다.

▲ 미나리강회 미나리의 잎과 뿌리를 따고 살짝 데쳐서 만든다. 미나리, 편육, 실고추, 알고명을 두어 개씩 나란히 몰아잡고 늘어진 미나리줄기로 똘똘 감아서 잡아맨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그 맛이 상큼하다.

▲ 더덕장아찌 더덕을 고추장에 박아두었다가 꺼내서 양념을 하여 반찬으로 먹는다.

▲ 갓김치 갓을 절여서 실파와 함께 만드는 김치로 젓국을 넉넉히 넣고 간을 맵게 한다.

▲ 홍어어시욱 홍어를 토막내어 양념을 뿌린 다음 짚을 깔고 찐다. 말린 홍어를 불려서 쓰기도 한다.

▲ 낙지구이 낙지 발을 볏짚으로 돌려 말아서 양념장을 여러 번 바르며 굽는다.

▲ 부각 부각은 여러 가지 재료에 찹쌀풀을 발라 말려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튀겨서 먹는 음식으로 밑반찬이나 안주로 먹으면 좋다. 부각을 만들 수 있는 것으로는 김, 들깨송이, 동백잎, 감자, 다시마, 가죽나무잎 따위로 다양하다.

▲ 경상도 지방의 특산물 가운데 하나인 영양의 고추이다. 이곳은 옛날부터 고추 재배가 성했던 곳으로 고추의 껍질이 두꺼워 가루가 많이 나고 매우면서도 단맛이 있어 높은 값을 받는다.

▲ 미나리찜 미나리와 부추를 썰어서 된장, 밀가루, 마늘,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린 다음 찐다.

▲ 재첩국
낙동강 하류에서 많이 잡히는 재첩으로 끓인 맑은 국이다.

▲ 벌떡게장 바닷게를 큼직하게 토막 내어 양념장을 붓는다. 오래 두고 먹지 못하므로 벌떡게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 미더덕찜 미더덕을 여러 가지 채소와 함께 끓인 다음 찹쌀가루를 풀어 되직하게 한 매운찜이다.

▲ 애호박죽 바지락조개를 참기름으로 볶다가 쌀과 애호박을 넣고 끓인 죽이다. 색도 곱고 맛도 산뜻하다.

▲ 진주 비빔밥 진주 비빔밥은 제사를 지내고 난 뒤에 자손들이 음복(飮福)을 할 때 차린 제물을 모아 비벼서 나눈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오색 나물과 고명을 화려하게 얹어 화반(花飯)이라고도 부른다. 내장류와 나물이 든 선지국을 반드시 함께 낸다.

▲ 제주도의 특산물 가운데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감귤이다. 감귤은 삼국 시대부터 재배하였고 전복과 함께 임금께 올리는 진상품이었다.

▲ 제주도 음식은 채소와 해초가 주된 재료이다. 음식을 많이 하거나 양념을 많이 넣거나 한번에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서 만드는 음식은 별로 없다. 재료가 가지고 있는 자연의 맛을 그대로 내려고 하는 것이 이곳 음식의 특징이다. 제주도에서만 나는 자리돔, 옥돔이 있고 전복과 꿩이 많으며 한라산에서는 표고버섯과 산채가 난다.

▲ 자리물회 자리돔이라는 작고 까만 도미 종류의 생선으로 만든 물회이다. 생선을 잘 다듬어서 뼈째 잘게 썰어 깻잎, 부추, 풋고추 따위를 넣고 된장과 간장으로 양념하여 물을 붓는다.

▲ 양애산적 양애와 고기를 양념한 다음 꼬치에 꿰서 굽는다. 양애는 생강과에 속하는 채소이다.

▲ 고사리국 고사리와 돼지고기 삶은 것을 다져서 양념하여 국을 끓이는데 밀가루를 풀어 걸쭉하게 한다. 제주도는 고사리가 흔하여 고사리로 전을 부치기도 한다.

▲ 옥돔구이 옥돔은 제주도에서만 나는 생선으로 비린내가 없고 맛이 담백하여 옛날부터 귀한 생선으로 여겨 왔다. 옥돔을 말려서 만든 구이이다.

▲ 황해도는 북부 지방의 곡장 지대로 연백평야와 재령평야에서의 쌀 생산이 풍부하고 잡곡도 많이 난다. 육류는 닭고기를 많이 쓰고 김치를 담글 때에는 독특한 향을 가진 고수와 분디라는 채소를 쓴다. 음식은 구수하고 소박한 편이며 겉모양을 내는 일도 별로 없고 큼직하고 푸짐하게 만들어 먹는다.

▲ 황해도에서 나는 과일로는 사과, 배, 밤들을 꼽을 수 있는데 사과는 특히 황주의 것이 유명하다.

▲ 연안 식혜 조갯살을 쌀밥과 함께 엿기름에 버무렸다가 삭히는데 보통 식혜나 안동 식혜와는 다른 특이한 식혜이다.

▲ 행적 배추김치, 돼지고기, 실파, 고사리 따위를 잘게 썰어서 대꼬치에 꿴 다음 계란옷을 입혀 지진 누름적이다.

▲ 김치순두부 불린 콩을 갈아서 끌 끓이다가 신김치를 넣고 끓인다. 요즈음에 서울에서 볼 수 있는 순두부와는 조금 다르게 두부가 엉겨 있다.

▲ 평안도의 특산물 가운데 하나인 밤은 함종이 중심지로 성천, 강동, 양덕에서 재배하여 평양 약밤으로 파는데 품질이 좋다.

▲ 평안도는 산세가 험하지만 서해안에 면하고 있어 해산물이 풍부하고 곡식과 산채도 많이 난다. 평안도 사람들의 성품은 대륙적이고 진취적이어서 음식도 큼직하고 먹음직스럽고 푸짐하게 마련한다. 추운 지방이어서 기름진 육류 음식을 즐겨 먹으며 메밀로 만든 냉면과 만두국같이 가루로 만든 음식도 많다. 음식의 생김새보다는 소담스럽게 많이 담는 것을 즐긴다.

▲ 평양 냉면 고원에서 재배한 질 좋은 메밀과 감자로 국수를 만들어서 잘 익은 동치미 물과 육수를 합한 국물에 말아 먹는다. 추운 겨울, 뜨거운 온돌방에서 즐기는 차가운 냉면의 맛이 일품이다.

▲ 어복쟁반 큼직한 놋쟁반에 쇠고기 편육, 국수, 버섯, 배, 계란들을 돌려 담고 뜨거운 육수를 부으면서 먹는 온면이다.

▲ 되비지 불린 콩을 갈아서 돼지갈비와 함께 끓인 일종의 찌개로 배추김치나 배추 절인 것도 함께 넣는다.

▲ 황태 덕장이다. 함경도와 닿아 있는 동해안은 리만 한류와 동해 난류가 교류하는 세계 3대 어장의 하나로 여러 생선들이 두루 잡힌다.

▲ 함경도는 험악한 산간 지대로 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발달하여 잡곡의 생산이 많으며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동해의 어장을 끼고 있어 여러 가지 생선들이 많이 난다. 이곳 음식의 간은 짜지 않고 담백하나 마늘, 고추 같은 양념을 강하게 쓴다. 함경북도로 올라갈수록 간은 세지 않고 담백하며 음식의 모양도 큼직하고 시원스럽다. 장식도 단순하며 기교를 부리거나 사치스러운 음식은 별로 없다.

▲ 가릿국밥 쇠고기와 사골을 고아 만든 육수에 두부, 삶은 선지, 육회를 얹었다.

▲ 청어구이 청어를 소금에 절였다가 구워서 양념장을 뿌린다.

▲ 동태순대 함경도에서는 동태가 많이 잡힌다. 다른 지방처럼 돼지 창자로 만드는 순대도 있지만 동태로 만든 순대가 더 유명하다. 동태의 내장을 모두 빼내어 깨끗이 한 다음 돼지고기, 두부, 숙주 따위로 만든 소를 뱃속에 채워 넣고 얼렸다가 쪄서 먹는 겨울철 별미이다.

▲ 가자미 식혜 가자미를 소금에 절인 다음 좁쌀밥, 부, 고춧가루, 파, 마늘, 생강, 엿기름과 같이 버무려서 삭힌다. 조금씩 익으면서 물이 생기고 새큼한 맛이 난다. 이 식혜는 음료가 아니라 생선과 곡류로 만든 일종의 젓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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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1. 11. 10. 07:58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21 동양철학 에세이 개정증보판

김교빈 · 이현구 지음 | 이부록 그림
2006, 동녘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9978


150
김 15 ㄷ
2

동녘선서 70

혼란 속에서 피어난 철학의 향연

인류 역사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혼란스러우면서도 사상적으로는 가장 자유로웠던 춘추 전국 시대. 이 책에 나오는 사상가들은 550년에 걸친 그 긴 혼란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그 혼란을 바로잡으려 한 사람들이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논리와 강한 실천 의지를 담고 있는 그들의 사상 속에는 다양하고 풍요로운 삶의 지혜가 가득하다.

지은이

김교빈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유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와 인문콘텐츠학회 회장,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를 지냈고, 현재 호서대 철학과 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철학 에세이》《하곡 정제두》가 있고, 여럿이 함께 지은 책으로 《강좌 한국철학》《기학의 모험》《동양철학과 한의학》등이 있으며, 여럿이 함께 옮긴 책으로《중국 고대의 논리》《중국 고대철학의 세계》《중국 의학과 철학》《기의 철학》등이 있다.

이현구

1957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유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균관대, 호서대 등에서 강의하면서, 동의과학연구소 편집위원 및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전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지금, 내게 가장 절실한 것》이, 여럿이 함께 지은 책으로 《박물관에서 꺼내온 철학 이야기》《기학의 모험》등이 있고, 여럿이 함께 옮긴 책으로 《중국 의학과 철학》《기의 철학》이 있다.

그린이

이부록

1971년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 동양학과를 졸업했다. 비디오아트, 일러스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회에 말걸기를 시도하고 있다. 《워바타, 전쟁 그림 문자》를 펴냈고, 《보이는 세상, 보이지 않는 세상》《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 그림을 그렸다.

차례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책 머리에

바로보기  우리들의 동양철학
공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노자  인생의 보배를 간직하라
묵자  약자를 지키는 방패
장자  광활한 정신 세계의 끝없는 이야기
맹자  유가의 파수꾼
순자  동양의 프로메테우스
법가  인간을 조직하고 인간을 활용한다
명가  상식을 부순 사람들
농가  영원한 농사꾼의 벗
주역  점쟁이와 철학자
돌아보기  남은 이야기들

더 읽으면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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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동양철학

환공이 어느 날 서재의 창가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뜰에서 수레를 손질하던 늙은 일꾼이 그것을 보고 일손을 멈추고 환공에게 말을 걸었다.
"어르신이 읽고 계시는 것은 무슨 책입니까?"
"성인의 말씀이 적힌 책이다."
"그 성인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
"그러면 그 책에 쓰여 있는 것은 성인의 찌꺼기 같은 것이군요."
환공이 벌떡 일어서며 칼자루를 잡고 말했다.
"일꾼 주제에 무례한 말을 지껄이는구나. 잘 해명하지 못하면 네 목숨을 잃을 줄 알아라."
그러자 늙은 일꾼이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제 자신의 경험에서 그렇게 생각했을 뿐입니다. 제가 만드는 수레바퀴는 너무 꼭 끼게 하면 잘 돌아가지 않고, 너무 느슨하면 겉돕니다. 꼭 끼지도 않고 너무 느슨하지도 않고, 손에도 마음에도 딱 맞는 그 정도를 맞추는 요령은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 아들 녀석에게도 가르칠 수가 없어 이 나이가 되도록 직접 수레바퀴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성인이라는 분도 진정한 것은 말하지 못하고 죽어 버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책에 쓰여 있는 것은 성인의 찌꺼기 같은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장자》<천도>

공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공자가 제자들과 더불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도덕과 예의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부국강병의 논리가 아니라고 받아들여 주지 않는 무도한 임금에게 실망을 느끼고, 다시 자신의 뜻을 받아들여 줄 새로운 임금을 찾아가는 고단한 여행길이었습니다. 얼마를 가자 앞에 큰 강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일행 가운데 나루터가 어디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침 저만치에 밭을 가는 두 사람이 보였습니다. 혼탁한 세상을 떠나 숨어 사는 장저와 걸닉이었습니다. 공자는 제자 자로를 불러 그들에게 다가가서 나루터 가는 길을 물어 보라고 했습니다. 자로가 두 사람에게 다가가서 나루터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묻자 장저가 되물었습니다.
"저기 수레에 올라앉아 점잖게 고삐를 쥐고 있는 사람은 누구냐?"
"공구이십니다."
"노나라의 공구란 말이냐?"
"예, 그렇습니다."
"그가 나루터 가는 길쯤은 알고 있을 텐데?"
장저는 더는 대꾸하지 않고 부지런히 제 할 일만 했습니다. 답답해진 자로가 이번에는 걸닉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걸닉도 자로에게 되물었습니다.
"나루터 가는 길을 묻는 너는 누구냐?"
"중유입니다."
"공구란 사람의 제자인가?"
"예, 그렇습니다."
"온 세상이 물처럼 거세게 흘러가는데 누가 감히 고칠 수 있단 말이냐? 그러니 자네도 나쁜 사람이나 피해 다니는 그런 공자 같은 사람을 따라다니지 말고 차라리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우리와 같이 지내는 게 어떠한가?"
걸닉도 더는 자로를 거들떠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머쓱해진 자로가 돌아와서는 공자에게 그들이 한 얘기를 전했습니다. 말을 다 듣고 나서 공자가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날짐승이나 길짐승과 더불어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가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누구와 더불어 살겠느냐? 온 세상에 질서가 잡혀 있다면 내가 구태여 바꾸려 애쓰지도 않을 것이다." 《논어》<미자>


어느 날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죽음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삶도 아직 다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말하겠느냐?"
자로가 다시 물었다.
"귀신 섬기는 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사람도 다 못 섬기는데 어찌 귀신을 말하겠느냐?" 《논어》<선진>

"만일 백성들에게 널리 베풀어서 모든 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면,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어찌 사람답다고만 할 수 있겠느냐, 반드시 성인의 경지일 것이다. 요순도 오히려 그렇지 못할까 봐 항상 근심했다." 《논어》<옹야>

어느 날, 재아라는 제자가 공자에게 삼년상이 너무 길지 않느냐고 하면서 1년 만에 상을 마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공자는 재아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렇게 하고서 쌀밥을 먹고 비단 옷을 입어도 편하겠는가?"
"예, 편할 것 같습니다."
"군자가 상을 당했을 때는 기름진 음식을 먹어도 맛있지 않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으며, 마음 편히 안락하게 거처할 수 없기 때문에 삼년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네가 편하다면 네 생각대로 해라."
재아가 나가자 공자가 다른 제자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재아는 사람답지 못하구나. 자식은 태어나서 삼 년이 지나야 부모 품을 벗어날 수 있다. 삼년상은 세상 사람이 다 지내는 것이다. 재아도 부모에게 삼 년 동안 사랑을 받지 않았는가?" 《논어》<양화>

어느 날 만년의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나이 어린 제자 증삼을 불렀습니다.
"삼(參)아, 내 도는 하나로 꿰뚫어져 있다."
"예, 알고 잇습니다."
공자가 나가자 다른 제자들이 증삼에게 조금 전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얘기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증삼이 말했습니다.
"선생님의 도는 증과 서일 뿐입니다." 《논어》<이인>

위나라 임금의 초청을 받은 공자가 제자들과 더불어 위나라를 향해 가고 있을 때, 자로가 공자에게 물었다.
"위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모시고 정치를 잘해 보려 하는데, 선생님께서는 어떤 일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명분을 바로잡겠다."
"선생님은 사정에 너무 어두우십니다. 어째서 명분 같은 것부터 바로잡으려고 하십니까?"
"거칠구나, 자로여. 군자는 자기가 알지 못하는 일에는 함부로 나서지 않는 법이다. 명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할 수 없고, 말이 순하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질 수 없고,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문화가 일어나지 못하고, 문화가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이 적절할 수 없고, 형벌이 적절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데가 없다." 《논어》<자로>

섭나라 임금이 공자에게 자기가 다스리는 어떤 마을에서 아버지가 남의 양을 훔쳤는데 그 아들이 증인을 섰다고 하면서 자기 나라 백성들의 정직함을 자랑했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숨겨 주고, 자식은 아버지를 위해 숨겨 줍니다. 정직이란 바로 그 속에 있습니다." 《논어》<자로>

"정치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경제를 풍족하게 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백성들이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세 가지 중 어쩔 수 없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하시겠습니까?"
"국방을 포기하겠다."
"둘 가운데 다시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하시겠습니까?"
"경제를 포기하겠다. 예부터 사람은 누구나 죽는 법이지만 믿음이 없으면 아예 사회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논어》<안연>

노자
인생의 보배를 간직하라

큰 도가 사라지니 인의(仁義)가 나오고 지혜가 생겨 큰 거짓말이 있게 되었다. 가까운 친척이 서로 화목하지 않자 효도니 사랑이니 하는 말이 생기고, 국가가 혼란하니 충신이 나오게 되었다. 《도덕경》18장

모기가 물어 대면 밤새잘 수가 없다. 지금 인의 도덕을 말하는 것은 귀찮게 인심을 어지럽혀 혼란만 더하는 것이다. 백조는 매일 목욕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매일 물들이지 않아도 검다. 하늘은 저절로 높고, 땅은 저절로 두껍고, 해와 달은 저절로 빛나고, 별은 저절로 늘어서 있고, 초목은 본래 종류가 여럿이다. 거기에 다시 인의를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것은 마치 북을 두드려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과 같다. 《태평광기》<신선> 1장

천지는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만물을 추구(芻狗)로 여긴다. 성인은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백성을 추구로 여긴다. 《도덕경》5장

큰 덕의 모습은 도와 같다. 도는 오직 황홀하기만 하여 그 형상을 분간해 인식할 수 없다. 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그 속에 물(物)이 있다. 잡을 수도 볼 수도 없는 그 속에 형상이 있다. 도는 아득히 멀고 그윽이 어둡기만 한데, 그 속에 정기가 있다. 그 정기는 지극히 진실[眞]하다. 그 속에 믿음[信]이 있다. 《도덕경》21장

혼합하여 이루어진 것이 있는데, 천지보다도 먼저 생겼다. 고요히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다. 짝도 없이 홀로 있다. 언제나 변함이 없다. 어디나 안 가는 곳이 없건만은 깨어지거나 손상될 위험이 없다. 그것은 천하 만물의 어머니가 될 만하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저 부르는 이름이 '도'다. 억지로 이름 붙여 '큰 것[大]'이라 한다. 《도덕경》25장

보려 해도 보이지 않으니 '이(夷)'라고 한다.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니 '희(希)'라고 한다. 손으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으니 '미(微)'라고 한다. 이 세가지는 말로 밝힐 수 없다. 그래서 뒤섞어서 '하나(一)'라고 한다. 그것은 위가 더 밝지도 않고, 아래가 더 어둡지도 않다. 긴 끈처럼 꼬여서 이어져 있으니 이름 붙일 수가 없다. 결국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돌아간다. 이것을 꼴 없는 꼴이라 하고, 실체[物] 없는 형상이라고 한다. 이것을 황홀이라고 한다. 《도덕경》14장

도는 일(一)을 낳고, 일은 이(二)를 낳고, 이는 삼(三)을 낳는다. 만물은 음기(陰氣)를 곁에 가지고 양기(陽氣)를 안에 간직하며, 충기(沖氣)로 조화를 이룬다. 《도덕경》42장

천하 만물은 유(有)에서 나오고, 유는 무(無)에서 나온다. 《도덕경》40장

도는 비어 있는 듯하나, 그 작용은 가득 찬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다. 깊고 아득하여 만물의 근원[宗]이며, 맑아서 있는 듯 없는 듯하다. 나는 그것이 누구의 지식인지 모른다. 하느님보다 먼저인 듯하다. 《도덕경》4장

도가 크고 하늘이 크고 땅이 크고 인간도 크다. 우주 안에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인간이 그중에 하나를 차지한다. 인간은 땅을 따르고, 땅은 하늘을 따르고, 하늘은 도를 따르고, 도는 자연을 따른다. 《도덕경》25장

나라가 작고, 백성 수가 적어야 한다. 온갖 도구가 있지만 쓰지 않게 하며 백성들이 생명을 중시하도록 하면, 살던 곳을 버리고 멀리 옮겨 가는 일이 없을 것이다. 배나 마차가 있어도 탈 필요가 없고, 갑옷과 무기가 있어도 쓸 일이 없다.
노끈을 묶어서 글자 대신 쓰던 고대의 소박한 상태로 되돌아가게 하면, 먹는 그대로 맛있고 입는 그대로 아름답고 사는 그곳이 편하다고 여기고 그 풍속을 즐겨서, 이웃 나라가 바라보이고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려도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가 없을 것이다. 《도덕경》80장

총명과 지혜를 끊어 버리면 백성의 이익이 백 배로 늘어날 것이다. 인과 이 같은 도덕을 끊어 버리면 백성의 이익이 백 배로 늘어날 것이다. 인과 의 같은 도덕을 끊어 버리면 백성들이 옛날처럼 효성스럽고 자애롭게 될 것이다. 정교하고 편리한 물건들을 없애 버리면 도적이 없어질 것이다. 이 세 가지 소극적 방법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외모는 수수하고 마음은 소박하게 하며, 이기심과 욕망을 줄이게 한다. 《도덕경》19장

똑똑한 사람을 높이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이 다투지 않게 만든다. 얻기 힘든 물건을 귀하게 여기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이 도적질하지 않게 한다. 욕망을 일으킬 만한 것을 보여 주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우며, 의욕을 줄이고 뼈를 튼튼히 하여 늘 백성들이 무지(無知)하고 욕심이 없게 만들며, 지식인들이 제멋대로 주장할 수 없게 만든다. 무위(無爲)로 다스리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 《도덕경》3장

천하는 불가사의한 그릇이어서 인위적으로 어찌할 수 없다. 잘하려고 애쓰면 실패하고, 꽉 잡고 장악하려 하면 천하를 잃고 만다. 《도덕경》29장

큰길이 넓으나 백성들은 샛길을 좋아한다. 관청은 깨끗하게 지었으나 논밭이 황무지가 되었고, 창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데 권력자들은 좋은 옷을 입고 고급 마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밤마다 연회를 열어 음식이 싫증날 정도다. 그러고도 재물을 남도록 가졌으니, 이것은 도둑질하여 사치에 쓰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도가 아니다. 《도덕경》53장

정치가 너그럽고 간섭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순박해진다. 정치가 자질구레한 구석구석까지 감시하면 백성들이 불만을 품게 된다. 《도덕경》58장

최고 수준의 통치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알게 할 뿐이다. 그 다음 수준의 통치자는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알게 할 뿐이다. 그 다음 수준의 통치자는 백성들에게 인기가 있고 칭송을 듣는다. 그 다음 수준은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그 아래는 백성들이 그를 경멸한다. 《도덕경》17장

장차 그것을 축소하려면 먼저 그것을 확장해야 한다. 장차 그것을 약화하려면 먼저 그것을 강화해야 한다. 장차 그것을 없애려면 먼저 그것을 진흥해야 한다. 장차 빼앗고자 하면 먼저 주어야 한다. 이러한 것을 은미한 지혜라 한다. 《도덕경》36장

부드럽고 약한 것이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긴다. 그러므로 강한 물고기가 부드러운 물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국가를 이롭게 하는 수단을 백성들이 보게 해서는 안 된다. 《도덕경》36장

최고의 덕을 가진 사람은 의식적으로 덕을 얻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래서 덕이 완전하게 나타난다. 수준이 낮은 사람은 의식적으로 덕을 얻고자 하며, 또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안달한다. 그래서 덕이 완전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최상의 덕은 덕을 얻고자 애쓰지 않으며 그것을 바깥으로 자랑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낮은 덕은, 덕을 얻고자 애쓸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깥에 나타내어 남에게 과시하려 한다. 《도덕경》38장

높은 덕은 오히려 골짜기처럼 낮아 보이고, 넓은 덕은 부족한 것처럼 보이고, 꾸준한 덕은 건전하지 않아 보이고, 진실한 덕은 변하기 쉬워 보인다. 《도덕경》41장

정말로 덕을 지닌 사람은 갓난아이와 같다. 갓난아이는 무지하고 무심하므로 독충도 찌르지 않고 맹수도 덤벼들지 않고 사나운 짐승도 발톱을 대지 않는다. 뼈가 연약하고 근육이 부드러우나 꽉 움켜쥔 주먹은 단단하다. 아직 남녀의 성교도 모르는데 고추가 서 있다. 정기가 최고로 충만해 있다는 증거다. 하루 종일 울부짖어도 목이 쉬지 않는다. 자연과의 조화가 최고로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다. 《도덕경》55장

지혜는 도의 시각에서 보면 단순한 장식물에 지나지 않고, 인간을 어리석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도덕경》38장

지식과 분별심이 발달하고 나서 인간의 기교에 의한 큰 거짓이 나타났다. 《도덕경》18장

안다는 것이 사물의 실상을 아는 게 아님을 아는 것은 최상의 지혜요, 안다는 것이 사물의 실상을 아는 게 아님을 모르는 것은 착오다. 착오를 자각하는 것에 의해 비로소 착오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도를 체득한 사람은 착오에 빠지지 않는다. 《도덕경》71장

제나라의 전씨가 저택 뜰에서 어떤 사람의 송별회를 열었다. 손님이 천 명이나 모여들었는데, 그중에 물고기와 기러기를 선물로 가져온 사람이 있었다. 전씨는 고마워하면서 말했다.
"아, 하늘의 은총이 참으로 깊도다. 인간을 위해 오곡을 만들고, 물고기와 새를 길러 인간에게 쓰이게 해 주시는구나."
둘러선 손님들이 입을 모아 전씨의 말에 찬동하였다. 그때 포씨의 열두 살짜리 아들이 나서며 말했다.
"당신의 말은 틀렸습니다. 천지 만물은 모두 우리와 같은 동료입니다. 동료들 사이에 귀천의 차별은 없습니다. 다만, 크고 작은 차이, 지혜와 힘의 차이에 따라 서로 잡아먹고 있을 뿐이지, 다른 것에게 소용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제멋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을 잡아먹을 따름이지, 하늘이 인간에게 먹이기 위해 그것들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모기나 파리 떼가 인간의 피를 빨고 호랑이와 늑대가 동물들을 잡아먹는다고 해서, 하늘이 모기와 파리를 위하여 인간을 만들고, 호랑이와 늑대를 위해서 동물들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열자》<설부> 1장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에게 큰 이익을 주면서도 자기를 주장하여 다투지 않고, 누구나 싫어하는 낮은 장소에 머무르고 있다. 그래서 도의 본래 모습에 가깝다. 《도덕경》8장

만들어 내고도 소유하지 않으며, 일을 하고도 공로를 자랑하지 않으며, 윗자리에 있으면서도 마음대로 간섭하지 않는다. 이것을 '심원한 덕[玄德]'이라고 한다. 《도덕경》51장

정말로 흰 것은 언뜻 보면 물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큰 사각형은 각이 보이지 않는다. 큰 그릇은 완성이 더디다. 큰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는다. 《도덕경》41장

정말로 똑바른 것은 마치 굽어 있는 것 같고, 정말로 능란한 것은 마치 몹시 서투른 것 같고, 진정한 웅변은 오히려 말주변이 없는 것 같다. 《도덕경》45장

수컷의 강함을 알고 암컷의 약함을 지켜 가면, 온갖 냇물이 모여드는 계곡이 된다. 그러면 도가 몸에서 떠나지 않고, 무심한 갓난아이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도덕경》28장

영광이 무엇인지를 다 안 다음에 치욕의 입장을 지켜 가면, 만물을 포용하는 골짜기가 된다. 그러면 도가 온전히 그 몸에 실현되어, 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통나무같이 자연 그대로의 소박한 상태로 되돌아간다. 《도덕경》28장

세상에서 물만큼 부드럽고 약한 것이 없지만, 단단하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 물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 《도덕경》43장

재주의 날카로운 칼끝을 누르고, 마음의 이해타산을 버리고, 지혜의 빛을 감추고, 속세의 먼지 속에 묻혀 산다. 이것이 도와 일체가 되는 것이다. 《도덕경》4장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도의 운동 모습이며,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도의 작용 방식이다. 《도덕경》40장

모든 현상은 세계의 어머니[道]에게서 태어난 자식이다. 모든 현상의 근원인 도를 알아야 그 자식인 사물을 알고, 그래야 일생을 통해 불행이나 재난을 만나는 일이 없는 것이다. 《도덕경》52장

송나라의 한 시골 사람이 가종하지 않은 옥돌을 주워 대신인 자공에게 선물로 바치려 했다. 그런데 자공은 극구 받지 않았다. 그래서 그 사나이가 자공을 만나 말했다.
"이것은 값비싼 보물입니다. 대신 같은 고귀한 분에게나 어울리는 것이지, 우리 같은 천한 자들이 가질 물건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째서 거절하시는 겁니까?"
자공이 대답했다.
"자네는 옥돌을 보배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것을 받지 않는 것을 보배라고 생각하네." 《한비자》<유로>

세상 사람들은 마치 진수성찬이라도 받아 놓은 듯 신바람이 났네.
화창한 봅날, 정자에 올라 꽃구경이라도 하듯이.
그러나 나만은 담담하고 조용하며 마음이 동하는 기미가 없네.
마치 아직 웃을 줄도 모르는 갓난아이처럼.
마치 아주 지쳐 돌아갈 집도 없는 강아지처럼.
사람들은 무엇이든 남아돌 만큼 가지고 있지만,
나만은 모든 걸 잃어버린 것 같네.
아, 나는 바보같구나, 아무것도 모르고 멍하니.
세상 사람들은 똑똑한데, 나는 그저 멍청할 뿐.
남들은 딱 잘라 잘도 말하는데, 나만은 우유부단, 우물쭈물.
흔들흔들 흔들리는 큰 바다 같네.
쉴 줄 모르고 흘러가는 바람이네. 《도덕경》20장

묵자
약자를 지키는 방패

초나라에 공수반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천민 출신인데도 기술이 뛰어나서 대부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공수반은 아무리 높은 성에도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구름까지 닿을 만큼 높은 사다리를 제작해 놓고 송나라를 공격하려 했습니다. 제나라에 있다가 이 소식을 들은 묵자가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꼬박 열흘을 걸어 초나라로 와서는 공수반을 찾아갔습니다. 공수반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선생이 무슨 일로 이 먼 곳까지 오셨습니까?"
"북쪽 지방에 사는 어떤 사람이 나를 귀찮게 하는데, 당신이 그 사람을 없애 주었으면 합니다."
이 말을 들은 공수반이 매우 불쾌해 하자 묵자는 다시 정중하게 부탁하였습니다.
"그렇게 해 주면 첨금을 드리지요."
"나는 의기가 있는 사람이라서 남을 죽이지 않습니다."
묵자는 마음속으로 비웃으면서도 겉으로는 탄복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수반에게 두 번 절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듣자하니 당신이 구름 사다리를 만들어 송나라를 공격하려 한다던데 송나라가 무슨 죄를 지었나요? 땅과 백성이 남아돌 정도로 많으면서 땅도 좁고 백성도 적은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더구나 죄 없는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어질지 못합니다. 지혜롭지도 어질지도 못한 일임을 알면서도 임금에게 그만두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고, 잘못임을 지적하면서도 임금을 끝내 설득하지 못한다면 강직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한 사람도 죽일 수 없다고 하면서 왜 많은 송나라 사람을 죽이려 합니까?"
묵자의 말을 들은 공수반은 그제서야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구름 사다리 공격 계획을 왕에게 보고한 뒤라 이제 와서 취소할 수는 없다며 난감해 했습니다. 묵자는 공수반과 함께 초나라 왕을 만났습니다.
묵자가 왕에게 말했습니다.
"좋은 것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이 가진 보잘 것없는 것을 훔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사람일까요?"
"도벽이 있는 사람이겠지요."
"제가 보기에 넉넉하고 풍요로운 초나라가 가난하고 약한 송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도벽과 다를 게 없습니다. 더구나 임금께서는 포악하다는 비난만 듣게 될 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수반은 내게 구름 사다리를 만들어 주면서 반드시 송나라를 이길 수 있다고 장담했소."
묵자는 허리띠를 끌러 땅에다 원형으로 둘러놓고 그 안에 들어가 선 다음, 품속에서 첩이라는 이상한 도구를 꺼냈습니다. 그러고는 공수반더러 모형 구름 사다리를 이용해 공격해 보라고 했습니다. 공수반이 아홉 가지 방법을 써서 공격했지만 묵자는 다 막아냈습니다.
공수반의 공격 기술이 바닥났는데도 묵자에게는 아직 쓰지 않은 방어 기술이 여럿 남아 있었습니다.
공수반이 묵자에게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내가 선생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알기는 하지만 말하지 않겠소."
"나도 당신이 얘기하는 그 방법이 무엇인지 알지만 얘기하지 않겠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왕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 방법이라는 게 도대체 뭡닊?"
"공수반의 생각은 저를 죽이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저만 죽여 없애면 송나라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 송나라에선 제가 훈련시킨 제자 300명이 이 도구로 무장한 채 기다리고 잇습니다. 그러니 저를 죽여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초나라 왕은 공격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묵자》<공수>

묵자를 따르는 무리가 180명인데, 그들은 우두머리의 명령이 떨어지면 불 속에 들어가는 일이건 칼날을 밟고 서는 일이건 절대 주저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회남자》

진나라의 복돈이 거자를 맡고 있을 때 그의 아들이 살인죄를 저질렀다. 복돈은 나이도 많은 데다가 대를 이을 사람이라곤 그 아들 하나뿐이었다.
진나라 혜왕이 복돈에게 말했다.
"당신은 늙었고 또 외아들이니 죄를 감해 주겠소."
"묵가의 법에 따르면 남을 죽인 자는 죽어야 하고, 남을 해친 자는 벌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온 세상의 대의입니다. 나는 묵가 사람이니 묵가의 법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복돈은 이렇게 대답하고 자기 아들을 처형하였다. 《여씨춘추》<거사>

거자 맹승은 형나라의 양성군과 아주 가까이 지냈다. 양성군은 맹승에게 성을 지켜 달라고 부탁하고 왕의 장례에 참석하러 갔다가,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돌아오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망명해 버렸다. 그러자 형나라에서는 양성군의 땅을 몰수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였다. 맹승은 양성군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면서 묵가 집단에게 성을 사수할 것을 명령했다.
한 제자가 반론을 제기했다.
"우리가 여기서 모두 죽는 것은 양성군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그러다간 묵가 집단이 끊어지고 말 것입니다."
"묵가의 지휘권은 송나라에 있는 전양자가 계승할 것이니 묵가가 끊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양성군과의 약속을 어긴다면 앞으로 그 누구도 묵가 집단돠 약속을 하지 않을 것이다."
맹승은 이렇게 말하고 끝까지 싸울 것을 명령했다. 그 말을 들은 제자는 자기 잘못을 깨닫고 자결했고, 맹승과 그 부하들도 모두 전사하였다.
전양자에게 거자 자리를 넘겨 준다는 맹승의 서신을 전하러 간 두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서신을 전하고 나서 전양자에게 말했다.
"저희는 이제 다시 돌아가 싸우다 죽겠습니다."
전양자가 그들을 말렸다.
"이제는 내가 거자이니 내 말을 들으시오."
그러나 두 사람은 극구 돌아가서 자결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보인 행동은 후대 묵가 사람들에게 거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여씨춘추》<상덕>

묵자는 자신의 사상을 인과 의라는 말로 자주 표현하였습니다. 어느 날 공수반이 이를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해전에서 상대방의 배를 잡아당기는 갈고리와 상대방의 배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밀어내는 밀대를 만들었습니다. 선생은 걸핏하면 인이니 의니 하는데, 선생이 떠드는 인의에도 내가 만든 갈고리나 밀대 같은 것이 있소?"
"내가 만든 갈고리와 밀대는 당신이 만들어 낸 것들보다 더 훌륭하지요. 나는 사랑을 이용해서 남을 끌어들이고, 겸손을 이용해서 남을 밀어냅니다. 사랑이 아니면 남들이 당신을 가까이하지 않고, 겸손이 아니면 남들이 당신에게 대들게 되지요." 《묵자》<노문>

만일 당신이 무슨 일 때문에 어딘가로 떠난다고 하자. 맡은 임무가 위험하고 길이 험해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면, 당신은 처자식을 어떤 사람에게 맡기겠는가? 자기 가족이나 다름없이 당신 가족을 돌봐 줄 사람에게 맡기겠는가, 아니면 당신 가족보다 자기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에게 맡기겠는가? 《묵자》<겸애 하>

장자
광활한 정신 세계의 끝없는 이야기

아프리카에는 양과 닮은 스프링복이라는 야생 동물이 있답니다. 그 놈들은 수백, 수천 마리씩 떼를 지어 풀밭을 찾아다니는데, 풀밭을 만나면 뜯어먹고 다 먹으면 또 다른 곳으로 옮겨 간답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풀밭이 있어도 계속 달리는 경우가 있답니다.  그건 앞쪽에서 풀을 죄다 뜯어먹어 버려 먹을 게 없어진 뒷놈들이 앞에 가는 놈들을 밀어붙이기 때문이랍니다.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점점 더 빨라져 새로운 풀밭이 나타나도 먹지 못하고, 떼를 지어 계속 달리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한꺼번에 죽는 수도 있답니다.
장자의 눈으로 우리 현대인들을 본다면, 바로 이 스프링복이라는 양 떼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우리는 날마다 바쁘게 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토록 바쁘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고, 대부분은 이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장자와 함께 산에 오르면 이런 대화를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 아래 차들과 사람들을 보게. 분주히 무엇인가를 쫓아다니지 않는가? 저들이 무얼 찾고 있는지 알겠는가?"
"저 사람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여 바쁘게 뛰고 잇습니다. 벌건 눈으로 권력과 명예와 부와 사치 향락을 좇는 자들도 있겠지만, 저나 선생님처럼 실업자가 되어 산기슭이나 어슬렁거리는 것보다는 부지런히 살아가는 게 좋지 않습니까?"
"답을 모르면 모른다고 할 것이지, 왜 딴소리를 하는가? 나도 실업자가 되고 싶어서 된 것은 아닐세. 그건 그렇고 나는 저 사람들이 저렇게 바삐 찾아다니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네. 저들은 매우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게 분명해. 그러니까 열심히 찾아다니는 것 아니겠나? 그런데 저 사람들을 너무 바빠서 이제 자기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아."
《장자》를 읽고 낸 독후감의 일부

한번은 장자가 문혜군이라는 왕을 초청해 놓고, 소 잡는 기술자를 강사로 내세워 도를 강의하게 했다. 강사는 먼저 실기로 왕에게 시범을 보였다. 그의 손놀림과 자세, 칼을 쓰는 동작은 마치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문혜군이 경탄하며 말했다.
"아아, 훌륭하도다! 기술이 이런 경지에 이를 수도 있는가?"
소 잡는 기술자가 칼을 놓고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입니다. 기술이 아니지요. 제가 처음 소 잡는 일을 시작했을 때는 보이는 것이 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나자 소가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마음으로 소와 만날 뿐 눈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감각의 작용이 멈췄고, 마음만 움직입니다. 오직 소의 결대로 칼을 움직여 살과 뼈 사이의 큰 틈을 쪼개 벌리고, 뼈와 뼈 사이의 빈 곳에 칼을 밀어넣고, 소의 몸에서 원래부터 빈 곳을 따라가니, 뼈나 살이 엉겨 붙은 곳에 칼이 잫는 일이 없으며, 하물며 큰 뼈에 닿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솜씨 좋은 사람도 해마다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살이 엉긴 곳을 베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백정은 다달이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의 칼은 지금 19년이 되었습니다. 잡은 소가 수천 마리는 됩니다. 그런데도 칼날이 금방 숙돌에 간 것 같습니다. 원래 소의 뼈마디 사이에는 빈틈이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틈이 있는 곳에 집어 넣으니, 자연히 넉넉하고 넓어 아무리 칼을 휘저어도 반드시 남는 구석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19년이나 쓴 칼날이 아직도 금방 숫돌에 갈아 낸 것 같지요.
하지만 살과 뼈가 얽히고설킨 곳에서는 저 역시 어려워집니다. 두렵고 조심스럽기만 하고, 눈이 한곳에 고정되어 손놀림이 더뎌집니다. 따라서 칼의 움직임도 매우 미묘해집니다. 그래서 찢고 벌려 다 가르고 발라내면, 마치 흙덩이가 땅에 쌓이듯 고깃덩이가 쌓이는 것입니다.  그제야 비로소 저는 칼을 들고 서서 사방을 돌아보며 흐뭇해합니다. 그러고는 칼을 닦아 넣어 두지요."
"정말 훌륭하다. 나는 그대의 말을 듣고 비로소 양생의 비결을 알았다." 《장자》<양생주>

남쪽 바다의 황제는 숙이고, 부쪽 바다의 황제는 홀이며, 중앙 땅의 황제는 혼돈이다. 숙과 홀이 때로 혼돈의 땅에서 만나면 혼돈이 극진히 대접해 주었다. 숙과 홀은 혼돈의 덕에 어떻게 보답할까 의논한 끝에 이렇게 결정했다.
"사람은 모두 일곱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쉬는데, 혼돈은 홀로 이것이 없으니 우리가 뚫어 주세."
그리하여 날마다 한 구멍씩 뚫었는데, 일주일째에 혼돈은 죽고 말았다. 《장자》<응제왕>

우리의 삶은 유한하고, 알아야 할 것은 무한하다. 유한한 것으로 무한한 것을 좇는 일은 위태로울 뿐이다. 그럼에도 스스로 알았다고 여기는 것은 더욱 위태롭다. 착한 일을 하더라도 유명해지지 말고, 나쁜 짓을 하더라도 형벌에 걸리지는 말라. 중도(中道)를 기준으로 삼으면 몸을 상하지 않고, 생긴 대로 자기를 실현할 수 있으며, 부모를 잘 모실 수 있고, 타고난 수명을 다할 수 있다. 《장자》<양생주>

주나라 5대 천자인 목왕이 서쪽 제후국들을 둘러보는 길에 어느 나라에서 언사(偃師)라는 이름을 가진 기술자를 선물로 받았다. 그는 천자를 위해 특별히 솜씨를 발휘하여 꼭두각시 인형을 만들었다. 걸음걸이도 능숙하고 몸놀림도 능란하여 살아 있는 사람과 다름없었다. 턱을 움직여 노래 부르고 손을 흔들어 춤추는 모양을 보고 천자는 진짜 인간이 아닌가 의심하였다. 그런데 연기를 한 차례 끝낸 이 인형이 천자를 모시고 있는 총희에게 윙크를 하는 게 아닌가.
천자는 크게 노하여 당장 언사를 죽이려 하였다. 언사는 벌벌 떨면서 인형을 풀어헤쳐 천자에게 보였다. 가죽 · 나무 · 아교 · 옻 · 백흑(白黑) · 단청(丹靑)을 합쳐서 만든 것이었다. 천자가 하나하나 살펴보니, 안에는 간 · 쓸개 · 심장 · 폐 · 비장 · 신장 · 창자 · 위장이 있고, 겉에는 근육과 뼈, 마디, 가죽과 털, 이빨과 머리털이 있는데 모두 모조품이었다. 천자가 시험 삼아 인형의 심장을 떼어내니 입으로 말을 하지 못했다. 간을 없애니 눈으로 보지 못했다. 신장을 없애니 발로 걷지 못했다.
천자는 비로소 기뻐하며 말했다.
"사람의 기술이 이처럼 조물주와 같을 수 있는가!" 《열자》<탕문>

북쪽 바다에는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을 곤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다. 변하여 새가 되니, 그 이름을 붕이라 한다. 붕의 등은 몇 천 리인지 알지 못한다. 한번 떨쳐 날면 그 날개가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남쪽 바다로 옮겨 간다. 남쪽 바다는 하늘의 못[天池]이다. 《제해》는 괴상한 것을 기록한 책이다. 그 책에 "붕이 남쪽 바다로 옮길 때, 물길을 갈라 치는 것이 삼천 리요, 요동쳐 오르는 것이 구만 리이며, 여섯 달을 가서 쉰다"라고 하였다. 《장자》<소요유>

동곽자가 장자에게 물었다.
"도는 어디에 있는가?"
"없는 곳이 없다."
"구체적으로 이름을 지적하여 말해 보시오."
"쇠파리에 있다."
"도가 어찌 그렇게 지저분한 데 있는가?"
"가라지나 피 같은 잡초에 있다."
"어째서 더 하찮은 것에 있는가?"
"옹기 조각에 있다."
"왜 점점 더 심해지는가?"
"똥오줌에 있다."
"……."
장자가 말하였다.
"당신의 질문은 본질을 물은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사물을 벗어나 도를 이야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지극한 도는 이와 같고, 위대한 말도 이와 같다." 《장자》<지북유>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고 궤짝을 여는 도둑에 대비하려면, 반드시 끈으로 묶고 자물쇠를 채워야 한다. 이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현명함이다. 그러나 큰 도둑은 궤짝을 지고 상자를 들고 주머니를 둘러메고 달아나면서 오히려 끈과 자물쇠가 약해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 세상에서 말하는 현명함이란 결국 큰 도둑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 아닌가(지식인이란 자들은 나라를 전쟁으로 빼앗는 군주들의 종이 아닌가)? 《장자》<거협>

도덕은 명예욕 때문에 흔들리고, 지략은 전쟁 속에서 나온다. 명예욕은 서로를 파괴하고, 지략은 전쟁 무기가 된다. 이 두 가지는 흉한 것이니 추구할 만한 것이 아니다. 《장자》<인간세>

너와 내가 논쟁을 하여 네가 이겼다면, 과연 너는 옳고 나는 틀린 것인가. 내가 너를 이겼다면, 과연 나는 옳고 너는 틀린 것인가. 우리가 결론을 내릴 수 없어 제삼자를 부른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바르게 판정해 달라고 할 수 있을까. 너와 의견이 같은 사람은 이미 너와 의견이 같으므로 바르게 판정할 수 없다.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은 이미 나와 의견이 같으므로 바르게 판정할 수 없다.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이라면, 이미 우리와 다른데 어떻게 바르게 판정할 수 있겠는가. 우리와 의견이 같은 사람이라면 이미 우리와 같은 데 어떻게 바르게 판정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너와 나와 제삼자가 모두 서로 알 수 없는데, 또 다른 사람을 부른다고 해결되겠는가. 《장자》<제물론>

(세계가 하나라면) 이미 하나라고 했으니 말한 것이 있지 않은가. 이미 하나라고 했으니 말한 내용이 있지 않은가. 하나인 세계와 하나라는 말이 있으니 둘이 되고, 둘과 하나가 셋이 된다. 이 이하는 계산이 뛰어난 사람도 다 헤아릴 수 없는데, 처음부터 여럿일 경우는 어떠하겠는가. 《장자》<제물론>

장자와 혜자가 호의 다리 위에서 한가하게 거닐고 있었다.
장자 : 피라미가 자유롭게 놀고 있구나. 이것이 물고기의 즐거움이지.
혜자 :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가 즐거운 줄 아는가?
장자 :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을 아는가?
혜자 : 나는 자네가 아니니 자네를 모르는 것은 당연하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니니 자네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도 틀림없네.
장자 :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세. 자네가 나에게 어떻게 물고기가 즐거운 줄 아느냐고 물은 것은, 이미 내 말을 알아듣고 물은 것이네. 어떻게 알았는지 말하겠네. 나는 이 물가에서 알았네. 《장자》<추수>

장자가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옹이가 많고 구불구불한 수천 년 된 고목을 보고 "이 나무는 사람들이 쓸모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다.라고 하면서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을 강의하였다. 그런데 잠시 후 주막에서 쉬는데, 주인이 잘 울지 않는 닭을 '쓸모가 없다'고 목을 비트는 것을 보고 장자는 '쓸모 잇음과 쓸모없음의 사이'에서 처신해야 할 것이라고 강의하였다. 《장자》<산목>

세계는 항상 홀연히 흘러가니 일정한 형태가 없다. 모든 존재는 무상하게 변화해 가는 것이다. 무엇이 삶이고 무엇이 죽음인가? 나는 자연과 함께 가는 것인가? 정신은 어디로 움직여 가는 것인가? 그들은 훌훌 어디로 가고 총총히 어디로 떠나는가? 모든 존재가 눈앞에 펼쳐져 있으되, 돌아갈 곳을 모르느구나! 옛날 도술에 이러한 것이 있었으니 장주(장자)가 듣고서 기뻐하였다.
ㄱ그는 언제나 터무니없는 환상, 황당한 이야기, 끝없는 변론으로 제멋대로 사설을 늘어놓지만, 편견을 고집하지 않았고, 한쪽 면으로만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이 더러워서 정중한 말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두서없이 흘러가는 말로써 변화무쌍하게 담론하고, 옛 성현의 말씀으로 진실을 믿게 하고, 비유로써 도리를 펼쳤다. 그는 홀로 천지자연과 더물어 정신을 교류하였으나 스스로 뽐내어 다른 사물을 경시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세속에 섞여 살았다. …… 그의 정신은 위로는 천지를 만든 자와 함께 노닐었고, 아래로는 삶과 죽음, 처음과 끝을 넘어서 존재하는 자연과 벗이 되었다. 그의 철학 사상은 원대하고 넓고 깊고 무한하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조화와 적절함에 있으니,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잇다. 그러면서도 모든 변화에 적응하고 모든 존재를 해석하는 데에서 그의 이론은 무진장하다. 그 이론의 전개는 끝이 없고 홀홀망망하여 다 파악될 수 없도다!

맹자
유가의 파수꾼

"사람들은 모두 선생님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들 말하는지 말씀해주십시오."
"내가 어찌 말하기를 좋아하겠는가. 어쩔 수 없어서 그럴 뿐이다. 우임금은 황하를 다스려서 온 세상을 편하게 했고, 주공은 오랑캐를 막아 내고 사나운 짐승을 쫓아내서 백성을 편하게 했으며, 공자는 《춘추》를 지어 못된 신하와 불효자 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나는 이분들을 본받아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잡고 못된 이론들을 막아내려고 한다. 말솜씨가 뛰어난 것이 어찌 말하기를 좋아해서겠는가?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이다." 《맹자》<동문공 하>

입이 단맛을, 눈이 아름다운 빛깔을, 귀가 밝은 소리를, 코가 향기를 좋아하고 팔다리가 편안함을 원하는 것이 본성이긴 하다. 하지만 그 속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命]'이 있기 때문에 군자는 본성이라고 하지 않는다. 《맹자》<진심 상>

대인이 할 일이 따로 있고, 소인이 할 일이 따로 있다. 사람이 살아가자면 여러 기술자들이 만든 물건이 필요하다. 하지만 만일 그 모두를 반드시 스스로 만들어 쓰게 한다면, 온 세상 사람들을 끌어다가 일에 지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어떤 사람은 몸을 수고롭게 한다고 했다.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은 남을 다스리고, 몸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은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남을 먹여 주고, 남을 다스리는 사람은 남에게 얻어먹는 것이 온 세상에 통하는 원칙이다. 《맹자》<동문공 상>

어느 날 맹자가 양나라 혜왕을 만났다. 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선생께서 천릿길을 멀다 않고 저희 나라를 찾아 주셨으니 저희 나라에 무슨 이로운 일이 있게 될까요?"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 임금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에 이로울까를 따지면 벼슬아치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안에 이로울까를 따지게 되고, 선비나 일반 민중은 어떻게 하면 내게 이로울까를 따지게 됩니다. 그러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맹자》<양혜왕 상>

예전에 요임금이 순에게 왕위를 주었다. 그러자 순은 요의 아들이 있는데 자신이 어떻게 왕이 될 수 있느냐고 하면서 숨어 버렸다. 백성들이 모두 순을 쫓아갔다. 순은 신하인 우에게 왕위를 주었다. 우도 순의 아들이 있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없다고 하며 숨어 버렸다. 역시 백성들이 우를 쫓아갔다. 우도 신하인 익에게 왕위를 주었다. 익 또한 우의 아들이 있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없다고 하며 숨어 버렸다. 그러나 백성들은 익을 쫓아가지 않았다. 《맹자》<만장 상>

순자
동양의 프로메테우스

사람들이 선을 행하고자 하는 것은 본성이 원래 악하기 때문이다. 이는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고자 하고, 천한 사람이 귀해지려 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법가
인간을 조직하고 인간을 활용하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는 사랑 말고 그 무엇이 있다. 아들이 태어나면 부모는 서로 반가워하고, 딸이 태어나면 죽일지도 모른다. 아들과 딸은 다같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왔다. 그런데도 아들일 때는 기쁨이 따르고, 딸일 때는 죽음이 따르는 것은 어째서인가. 부모는 나중에 편할 것을 생각하고 장기적 이익을 계산한다. 부모까지도 자식과의 관계에서 이해타산적인 계산을 하고, 이에 따라 아들과 딸을 다르게 대하는 것이다. 《한비자》<육반>

하인이 주인을 위하여 일하는 것은, 그가 충실하기 때문이 아니라 일에 대한 보수를 받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주인이 하인을 잘 대우하는 것은, 그가 친절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인이 열심히 일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각은 이용 가치에 집중되고, 서로 자기의 이익만을 도모한다. 《한비자》<외저설 좌상>

사람은 이기적 목적으로 주고받는다. 이해관계가 맞으면 낯선 사람이라 할지라도 서로 화목하게 살 것이고, 이해가 충돌한다면 아비와 자식 사이라도 서로 충돌할 것이다. 《한비자》<육반>

뱀장어는 뱀을 닮았고, 누에는 송충이와 흡사하다. 사람들은 뱀을 보면 깜짝 놀라고, 송충이를 보면 소름이 오싹 끼치지만, 고기잡는 이들은 뱀장어를 손으로 주무르고, 여자들은 누에를 손으로 만진다. 이득이 생기기만 하면 사람은 누구나 최고의 용사가 되는 것이다. 《한비자》<설림 하>

수레 만드는 기술자는 사람들이 모두 부귀해지기를 바라고, 관을 짜는 기술자는 사람들이 일찍 죽기만 기다린다. 수레 만드는 사람이 더 착하고 관 만드는 사람이 더 악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부자가 되지 않으면 수레가 팔리지 않고, 사람들이 죽지 않으면 관이 안 팔린다. 종사하는 일의 업종에 따라 이해타산이 서로 다르다. 이해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람이 선해질 수도 악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한비자》<비내>

미자하라는 미소년이 위나라 왕의 총애를 받고 있을 때, 어머니 병환이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왕의 수레를 몰래 훔쳐 급하게 타고 나간 일이 있었다. 위나라 법에는 국왕의 수레를 몰래 타면 다리를 자르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왕은 그의 효심이 극진함을 가상히 여겨 문책하지 않았다. 또 어느 날 위나라 왕이 과수원에 나들이할 때 그가 함께 수행하여 복숭아를 따서 먹었다. 그 가운데 아주 단 복숭아 하나 있어 그것을 먹다가 말고 나머지 반쪽을 왕의 입에 넣어 맛보게 하였다. 왕은 이를 무례하다 아니하고 오히려 고맙게 여겼다.
그런 뒤 미자하가 늙고 보기 싫어지자 왕은 싫증이 나서 전에 한 일을 들추어 벌주었다. 미자하가 취한 행동은 달라진 게 없었으나, 앞서 칭찬 받은 그 일로 뒤에 벌을 받게 된 것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의 변화에서 온 것이다. 《한비자》<설난>

방경이 현령이 되어 시장 관리 책임자를 시장에 순찰을 보내게 되었다. 책임자를 내보내고 나서 다른 관리를 시켜 그를 다시 불러들인 다음, 잠시 같이 서 있다가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순찰하러 가게하였다. 시장 관리 책임자는 현령이 다른 관리에게 무언가 이야기한 것 같다는 생각에서 혹시 감시하고 있나 싶어 감히 나쁜 짓을 할 수가 없었다. 《한비자》<내저설 상>

이회는 위나라 문후에게 벼슬하여 태수가 되었다. 그는 백성들에게 활을 보급할 생각으로 이런 포고령을 내렸다.
"소송에서 판결을 내리기 어려울 때는 둘 다 활로 과녁을 쏘게 해서 맞춘 사람을 이긴 것으로 하고, 못 맞춘 사람을 진 것으로 한다."
포고령이 나붙자 사람들은 너나없이 활을 배우기 시작하여 밤낮을 쉬지 않게 되었다. 이윽고 진나라와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적을 여지없이 쳐부수고 승리하였다. 모든 사람이 활을 잘 쏘았기 때문이다. 《한비자》<내저설 상>

진평공이 가까운 신하들과 술을 마시다가 문득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임금이 되었다고 해서 이렇다 할 즐거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슨 소리를 하든 내 말을 거역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이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장님 악사 사광이 거문고를 번쩍 들어 평공을 콱 찌르려 했다. 평공이 급히 피하는 바람에 거문고가 벽을 허물어뜨렸다. 평공이 놀라서 물었다.
"너는 지금 누구를 치려고 했더냐?"
"방금 옆에서 못된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를 치려 했습니다."
"그게 바로 나다."
"아아, 그런 말은 임금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뒤에 일꾼들이 허물어진 벽을 고치려 하자 평공이 이를 중단시켰다.
"그대로 두어라. 나의 교훈으로 삼겠다." 《한비자》<난일>

초나라에 창과 방패를 파는 사람이 있었다. 우선 그 방패를 자랑하기를 "나의 방패는 아주 견고하여 어떤 것으로도 뚫을 수 없다"라고 하고, 곧 그 창을 칭찬하기를 "나의 창은 아주 예리하여 어떤 물건도 뚫지 못하는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가 "너의 그 창으로 너의 그 방패를 뚫어보아라. 어찌 되겠는가?" 하니, 그 사람은 아무 말도 못했다.
무릇 꿰뚫을 수 없는 방패와 뚫지 못하는 것이 없는 창은 같은 때에 함께 존립할 수 없는 것이다. 《한비자》<난세>

오늘날 나라 안의 사람들은 너도나도 정치를 논하고 있고 관중과 상앙의 법률서를 가지지 않은 자가 하나도 없건만 토지는 자꾸 황폐해 간다. 이것은 농사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은데 쟁기를 드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나라 안의 사람들이 너도나도 방법을 말하지만 우리의 군대는 자꾸 약해지고 있다. 이것은 병법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으나 무기를 드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한비자》<오두>

어떤 사람이 주나라 왕을 위해 말 채찍에 그림을 그렸는데, 삼 년이 걸려서야 일을 끝냈다. 왕이 그것을 받아 보니 보통 채찍에 옻칠한 것과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왕이 버럭 화를 내니 그 사람이 말했다.
"두 길쯤 되는 높은 벽을 만들어 거기에 여덟 자 정도의 창문을 낸 다음,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채찍을 그 창에 비추어 자세히 보십시오."
왕이 들은 대로 방을 꾸미고 채찍을 보았더니, 거기에는 용과 뱀, 새와 짐승, 수레와 말, 그 밖의 여러 가지 모양들이 보기 좋게 새겨져 있었다. 왕은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이 채찍에 그림을 그린 재주는 과연 놀라운 것이지만, 그것의 쓸모로 말하면 보통 채찍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 《한비자》<외저설 좌상>

옛날 송나라에 농부가 잇었다. 그 사람의 밭 가운데에 나무 그루터기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토끼 한 마리가 마구 달려와서 그루터기를 정면으로 들이받고 목이 부러져 죽었다. 그러자 이 농부는 쟁기를 버리고, 토끼가 또 와서 부딪쳐 죽기를 기대하며 서서 기다렸다. 그러나 당연히 더 잡을 수 없었고, 그는 다른 사람들의 웃음거리만 되었다. 만약 옛날의 통치 방법으로 오늘날의 민중을 다스리려 한다면, 이 농부와 똑같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한비자》<오두>

훌륭한 임금으로 기록된 요는 평민이었을 때 세 집을 다스리지 못했고, 폭군이었던 직은 황제가 되어 온 천하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었다. 이로써 나는 권세와 지위가 반드시 필요하고, 지혜와 착함이 믿을 수 없는 것임을 안다. …… 착함과 똑똑함으로는 민중을 복종시킬 수 없으나 권세와 지위로는 복종시킬 수 있다. 《한비자》<난세>

현명한 군주가 절대적 권능을 가지고 다스릴 때 신하들은 모든 비행을 삼간다. 그렇게 되면 신하들은 감히 군주를 속이려 하지 않는데 그것은 그들이 군주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군주의 권능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민중은 기꺼이 봉사할 것인데 그것은 군주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군주의 권능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높은 지위에 있는 현명한 군주가 민중을 다스릴 수 있으며, 절대적 권능을 가진 사람이 백관을 제어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민중과 백관이 명령에 복종하고, 군주의 지시 사항이 잘 시행된다. 군주가 존중을 받고 백관이 복종하게 된다. 그러므로 법에는 "군주는 높이고 백관은 천대한다. 그것은 특별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최고의 권능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한비자》<팔경>

예를 들어, 어떤 나라에 시와 역사, 예절과 음악, 도덕과 효도, 사랑과 신분 질서 등의 도덕과 문화가 있다고 해도 통치자가 나라를 지키고 싸우는 데 쓸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셈이다. 만일 어떤 나라가 이런 것들로 다스린다면 적이 쳐들어오자마자 무너지고 말 것이다. 적이 쳐들어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나라는 가난할 것이다. 《상군서》<거강>

한 나라가 항상 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항상 약한 채로 있을 수도 없다. 법이 엄격히 운영될 때 그 나라는 강하고, 법이 허술하게 시행될 때 그 나라는 약하다. 《한비자》<유도>

학생들은 교과서가 너무 간략하면 그 뜻을 멋대로 추리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법이 지나치게 간결하면 민중은 그 의도를 이러쿵저러쿵 논의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저술할 때 그 논지를 자세하고 명확하게 해 놓는다. 현명한 통치자는 법을 제정할 때 모든 우발 사건에 꼼꼼히 대비한다. 《한비자》<팔설>

상앙은 사소한 비행에 대하여 중벌을 제정하였다. 큰 죄를 범하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사소한 비행은 잦다. 최선의 정책은 민중으로 하여금 범하기 쉬운 것을 피하고 큰 죄를 범하지 않도록 인도하는 데 있다. …… 그러므로 상앙은 "벌이 무겁다면 아무도 감히 법을 어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처벌로 범죄를 없애는 방법이다"라고 말하였다. 《한비자》<내저설 상>

한자(한비자)는 도덕을 법률에 맞추도록 하되, 마치 먹줄을 친 것처럼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그 줄을 벗어나지 않도록 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는 인정에 비추어 생각할 때는 절박한 일이요, 잘잘못을 분명히 가리자는 것은 좋으나, 결과적으로 인간의 따뜻한 아름다움을 없애는 일이다. 《사기》

법은 문서로 편찬하여 관청에 비치해 두고 인민에게 공포하는 것이지만. 술은 군주의 가슴속에 넣어 두고 신하의 언행 등 많은 단서를 수집하고 검토하여 은연중에 여러 신하를 지배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은 명확할수록 좋고, 술은 알려지면 안 되는 것이다. 현명한 군주가 법을 말하면 나라 안의 비천한 자까지도 알아들어야 하며, 방 안에 가득 채워 두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한비자》<난삼>

임금으로서 술이 없으면 윗자리에서 정보에 어두워지고, 신하로서 법이 없으면 아래에서 혼란을 일으킨다. 이 술과 법은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모두 제왕이 쓰는 기구다. 《한비자》<정법>

옛날 정나라 무공이 오랑캐를 정벌하려 했다. 무공은 먼저 자기 딸을 오랑캐 나라 임금에게 시집보내 그로 하여금 안심하게 했다.
어느 날, 그는 신하들에게 물었다.
"내가 한바탕 전쟁을 벌이고 싶은데, 누구를 치는 것이 좋겠소?"
대부 관기사가 대답하였다.
"오랑캐를 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무공은 크게 노하여 그를 처형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오랑캐는 이제 형제와 같은 나라인데, 네가 그를 치라는 것은 무슨 말이냐!"
오랑캐 나라 임금이 이 말을 전해 듣고, 마침내 정나라를 방비하지 않았다. 그때 정나라 군대가 오랑캐 나라를 습격하여 점령해 버렸다. 《한비자》<설난>

명가
상식을 부순 사람들

"왕께서는 뿔이 양쪽으로 달린 달팽이를 잘 아시지요?"
"잘 압니다."
"옛날에 달팽이의 왼쪽 뿔 위에는 촉씨가 다스리는 나라가 있었고 오른쪽 뿔 위에는 만씨가 다스리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나라는 항상 서로의 땅을 빼앗으려고 싸웠습니다. 한번 전쟁이 벌어지면 20일씩이나 싸우다가 물러나고는 했는데 죽거나 다친 사람이 수만 명씩 되었습니다."
얘기를 듣던 양혜왕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허허, 그거 참 재미있는 이야기군요. 지어낸 얘기지요?"
대진인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지어낸 얘기라니요? 임금께서는 동서남북이나 위아래가 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끝이 없겠지요."
"임금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끝없는 우주와 비교해서 생각해 보시지요. 끝없는 우주 속에서 양나라와 제나라는 달팽이 뿔 위에 있는 만씨의 나라와 촉씨의 나라보다 과연 얼마나 클까요?" 《장자》<칙양>

사물을 보는 방법 열가지 : 역물십사(歷物十事)

1. 지극리 커서 밖이 없는 것을 가장 큰 것[大一]이라고 하고, 지극히 작아서 안이 없는 것을 가장 작은 것[小一]이라고 한다.
2. 두께가 없는 것은 쌓을 수 없지만 그 크기는 천 리가 된다.
3. 하늘과 땅은 높이가 똑같고 산과 연못은 똑같이 평평하다.
4. 남쪽은 끝이 없으면서 끝이 있다.
5. 나는 세상의 중심이 어디인가를 안다. 연나라의 북쪽과 월나라의 남쪽이 바로 그곳이다.
6. 오늘 월나라에 가서 어제 돌아왓다.
7. 해가 막 하늘 가운데 뜬 상태는 막 지는 상태이며, 어떤 존재가 막 태어났다는 것은 막 죽어 가는 것이다.
8. 많이 같은 것과 조금 같은 것은 다르다. 이것을 조금 같거나 조금 다른 것이라고 한다. 만물은 어떤 점에서는 완전히 같지만 또 어떤 점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이것을 크게 같거나 크게 다른 것이라고 한다.
9. 둥근 고리는 풀 수 있다.
10. 만물을 사랑하라. 온 세상이 한몸이다.

나는 다른 것과 같은 것을 한데 합티기도 하고, 한데 붙어 있는 개념을 떼어 놓기도 했다. 나는 옳지 않은 것을 옳은 것으로 만들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서,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장자》<추수> 공손룡

흰 말은 말이 아니다? - 공손룡

첫째, 말이라는 것은 모양을 가리키는 개념이고 희다는 것은 빛깔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빛깔을 가리키는 것은 형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흰 말은 말이 아니다.
둘째, 말이라고 하면, 흰 말, 검은 말, 누런 말이 모두 해당되지만, 흰 말이라고 하면 누런 말이나 검은 말은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흰 말은 말이 아니다.
셋째, 말에는 여러 가지 빛깔이 있을 수 잇다. 그런데 말에서 빛깔을 빼 버리면 말 그 자체만 남는다. 흰 말은 바로 그러한 말에다가 흰색을 더한 것이다. 이처럼 말에다 흰색을 더한 것이 흰 말이기 때문에 흰 말은 말이 아니다. 《공손룡자》<백마론>

첫째, 흰 돌과 단단한 돌은 두 가지다. 왜냐하면 희다는 것은 보고 아는 것이고, 단단하다는 것은 만져 보고 아는 것이다. 따라서 보기만 해서는 단단한지를 알 수 없고 만지기만 해서는 희다는 것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흰 돌과 단단한 돌이라는 두 개념으로 나누어진다.
둘째, 희다는 것과 단단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대상에만 한정된 것이 아닌 보편 개념이다. 따라서 이 두 개념은 돌과 별개로 존재할 수 있다. 사실 물체 가운데는 희지만 단단하지 않은 것도 있고, 단단하지만 희지 않은 것도 있다. 따라서 희다는 것과 단단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것임이 분명하다. 《공손룡자》<견백론>

농가
농사꾼의 영원한 벗

신농씨의 가르침대로 사는 허행이 초나라에서 등나라로 와서 임금 문공에게 아뢰었다. "먼 곳에 사는 사람이 임금께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정치를 베푸신다는 말을 듣고 왔으니 살 곳을 얻어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등문공이 거처할 곳을 주었더니 굵은 베옷 입은 무리 수십 명이 몰려와 신발을 만들고 돗자리를 짜서 내다 팔아 먹고살았다. 얼마 뒤 진량의 제자인 진상이 아우 신과 함께 쟁기와 보습을 짊어지고 송나라에서 등나라로 왔다. 그리고 문공에게 "임금께서 성인의 정치를 하신다고 하니 성인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등나라에 거처할 곳을 얻은 진공이 나중에 허행을 만나 보고 크게 기뻐하여 이제까지 한 공부를 다 버리고 허행에게 가서 배웠다.
어느 날 맹자를 만난 진상이 다음과 같이 허행의 말을 전하였다.
"등나라 임금이 참으로 어질기는 하지만 아직 도를 모릅니다. 어진 사람은 백성과 함께 밭을 갈아서 양식을 마련하며 직접 밥을 지어 먹으면서 정치를 하는 법인데, 지금 등나라에는 곡식과 재물 창고가 있으니 이는 백성을 뜯어다가 자신을 봉양하는 것입니다. 어찌 어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맹자가 물었다.
"당신 선생 허행은 반드시 곡식을 직접 심어서 먹는가?"
"그렇습니다."
"당신 선생 허행은 반드시 삼베를 직접 짜서 입는가?"
"아닙니다. 우리 선생님은 굵은 베옷을 입습니다."
"허 선생은 모자를 쓰시는가?"
"쓰십니다."
"어떤 모자를 쓰시는고?"
"흰 비단 모자를 쓰십니다."
"직접 짠 것을 쓰시는가?"
"아닙니다. 곡식을 주고 바꾼 모자를 쓰십니다."
"허 선생은 어째서 직접 모자를 만들어 쓰지 않으시는고?"
"농사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허 선생은 가마솥과 시루에 밥을 지으며 쇠로 만든 농기구로 농사를 짓는가?"
"그렇습니다."
"그것들은 스스로 만든 것인가?"
"아닙니다. 곡식을 주고 바꿔 온 것들입니다."
그러자 맹자가 신이 나서 열변을 토하기 시작하였다.
"곡식을 가지고 농기구를 바꾸는 일은 도자기 굽는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니, 구운 도자기나 농기구를 가지고 곡식과 바꾸는 일이 어찌 농부를 해치는 일이 되겠는가? 그리고 허 선생은 어째서 직접 도자기를 만들지 않으시는가? 도자기 만드는 가마를 집에 만들어 놓고 직접 구워서 쓰지 않고 어째서 번잡하게 온갖 기술자들과 물건을 바꾸시는가? 어째서 이러한 번거로움을 싫어하지 않으시는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진상이 마지못해 한마디 하였다.
"온갖 기술자들의 일을 농사일과 함께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자 맹자는 더 신이 나서 이야기를 끌어갔다.
"그렇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만은 농사일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인가? 큰 사람이 할 일이 있고 작은 사람이 할 일이 있는 법일세. 그리고 한 사람의 몸에 온갖 기술자가 할 일이 다 갖추어져 있다고 하여 반드시 무엇이건 자신이 직접 만들어 쓰게 한다면 이는 세상 사람 모두를 수고롭게 하는 것이지. 어떤 사람은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어떤 사람은 몸을 수고롭게 하는 법이라서,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은 남을 다스리고 몸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은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고 하였네.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 자는 남을 먹여 살리고, 남을 다스리는 사람은 남에게서 얻어먹는 것이 세상 이치라네." 《맹자》<등문공 상>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치는 반드시 경계를 제대로 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니, 경계가 바르지 못하면 백성들의 토지가 같지 않게 되고 벼슬아치들의 봉록이 고르지 않게 된다. 그런 까닭에 못된 임금이나 부패한 관리들은 반드시 그 경계 정하는 일을 태만히 하는 법이다. 이미 경계가 바로잡히면 농토를 나누고 봉록을 정하는 일은 앉아만 있어도 안정된다. …… 이렇게 되면 죽거나 집을 옮기더라도 고향 마을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니 고향 마을 같은 논에서 함께 일한 사람들은 나가고 들어옴에 서로 짝하고, 싸움에 나아가 지키고 망을 볼 때에도 서로 도우며, 병이 나면 서로 의지하고 도와서 화목하게 된다. 《맹자》<등문공 상>

무릇 땅을 가지고 있으면서 백성들을 기르는 사람은 사시사철 때 맞추어 해야 할 일에 힘써야 하며, 창고에 재물이 넉넉하도록 해야 한다. 나라가 살 만하면 먼 곳에서도 사람들이 여기서 살려고 찾아 오며, 땅을 더 많이 개간하면 백성들이 그곳에 머물게 된다. 창고에 먹고살 것이 넉넉하면 백성들이 예절을 알게 되며, 입을 것과 먹을 것이 풍족해지면 여예와 굴욕을 알게 된다. 《관자》<목민>

백성은 곡식이 아니면 먹을 수 없고, 곡식은 땅이 아니면 만들 수 없으며, 땅은 백성이 아니면 일할 자가 없으니, 백성이 일하지 않으면 재물을 모을 수 없다. 모든 생산물은 힘을 쓰는 데서 나오고, 힘쓰는 일은 몸을 수고롭게 하는 데서 나온다. 《관자》<팔관>

성인은 나라를 다스리는 요점을 알았기 때문에 백성들로 하여금 농사에 마음을 쏟도록 하였다. 농사에 마음을 쏟으면 백성들이 순박해져서 바로잡을 수 있으며, 농사일에 열심이다 보면 부리기 쉬워진다. 《상자》<농전>

"허선생의 가르침을 따르면 시장의 물건 값이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에 나라 안에 거짓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비록 어린아이를 물건을 사오라고 시장에 보내도 아무도 속이려 들지 않습니다. 면과 비단의 길이가 같으면 값도 같으며, 삼과 실, 비단실과 솜의 무게가 같으면 값도 같고, 곡식의 양이 같으면 값도 같으며, 신발의 크기가 같으면 값도 같을 것입니다." 《맹자》<등문공 상>

농사를 열심히 짓지 않는 자는 삶을 제대로 꾸려 갈 수 없고, 옷감을 열심히 짜지 않는 자는 몸을 제대로 가릴 수 없다. 넉넉함이나 모자람은 일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그렇게 되면 입을 것과 먹을 것이 풍요롭게 되고 옳지 못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며, 먹고사는 일이 편안하고 정치적으로 아무 일도 없게 되어 세상이 두루 고르게 된다. 따라서 공자나 증자까지도 선을 주장할 일이 없다. 《회남자》<제속훈>

아주 옛날에는 임금도 없고 신하도 없었다. 사람들은 우물 파서 물 마시고 밭을 갈아 먹었으며,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었다. 매이지 않은 배처럼 자유로웠고, 편안하며 만족했다. 경쟁이 없고 영리를 바라지 않았으며, 명예도 없고 치욕도 없었다.
만물이 서로 화합하여 자연의 도에 들어가므로 역병이 유행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은 완전한 삶을 누릴 수 있었고, 마음이 착해서 욕심이 없었다. 입에 먹을 것을 물고 즐기면서 배를 두드리고 놀았다. 그들의 말은 화려하지 않았고, 그들의 행동에는 꾸밈이 없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어떻게 무거운 세금을 매겨 백성의 재산을 빼앗을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엄한 형벌을 받아 굴에 갇힐 수 있었겠는가?

임금과 신하의 신분이 생기면 변화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본래 수달이 많아지면 물고기가 놀라고, 매가 많아지면 작은 새가 근심하는 법이다. 부리는 사람이 늘어나면 인민은 고통스러우며, 위에 바치는 것이 많아지면 아랫사람은 가난해진다.

주역
점쟁이와 철학자

"나에게 몇 년만 더 삶이 주어진다면, 《주역》에 통달할 수 있을 것이다." - 공자

"수십 년간 역을 연구하였지만, 나 자신의 일을 가지고 점을 쳐 보지는 않았다." - 정약용

복희씨가 처음 팔괘를 그렸고 신농씨가 64괘로 나누었다. 주나라 문왕이 비로소 괘에 풀이하는 말을 붙여 역이란 이름이 생겼고, 그 후 문왕의 아들 주공이 <효사>를 지어 우선 완성되었다. 공자가 다시 십익, 즉 <단전> 상 하, <상전> 상 하, <계사전> 상 하, <문언전>, <설괘전>, <서괘전>, <잡괘전>을 지어 보충 설명하였다.

1981년 1월, 미국 해군 천문대의 두 과학자는 태양계에 열 번째 행성이 존재한다고 예언하였다. 매스컴이 이 특종을 대서 특필하자, 사람들은 감격하고 토론하고 찬탄했다. 일찍이 1940년에 한 중국인 학자가 역학의 특수한 방법을 사용하여, 열 번째 행성의 존재를 계산하고 목왕성이라고 이름 붙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1940년 11월 1일, 프랑스 파리대학에서 통과된 쓰촨 출신 류쯔화(劉子華) 선생의 박사 학위 논문 <팔괘 우주론과 현대 천문학 - 한 행성에 대한 예측>이다.

최근 10년 동안 《주역》신봉파는 중국 학술계에서 다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점차 흥성하고 있다. 새로운 신봉파들은 근대 이후 국내외의 성과 외에도 《주역》속에 포함된 현대 과학 내용을 계속 끌어내고 또 새로운 방향을 개척하였다. 《주역》을 중국 고대 자연과학 모든 분야의 원류라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역》속에는 고대 천문학이 있고, 중국 의학의 기본 이론이 있고, 고대 수학의 성과가 있다는 식이다.
그리고 요 몇 년 사이에 기공이 인기를 끌고 있다. 송대 이후 기공의 이론적 근원인 내단설은 역학의 도식을 많이 끌어왔으므로 기공의 유행 역시 역학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인체의 건강과 장수는 여러 요인에 달려 있기 때문에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체에는 산과 바다를 움직이고 백만 대군을 막아 내는 능력이 얼마나 숨어 있는지, 얼마나 많은 신비가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현대 과학의 진보로 일반인들은 우주의 신비는 이제 거의 없다고 생각하게 된 반면, 현대 의학의 결함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인체의 신비가 도리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인체의 신비는 태극, 음양, 오행, 팔괘, 선천 · 후천 따위의 관념 속에 들어 있고, 다양한 역학 도형 속에 들어 있다. 특히 흑백이 서로 휘감아 도는 '음양어도'는 더욱 사람들을 오묘 무궁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의식적으로 또는 무심코 만든 S형 곡선에 수학 원리가 있고, 물리학 원리가 있고, 천문 기상학이 있고, 인체의 신비가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중국 의학의 표시가 되었고, 기공 학회의 상징이 되었고, 《주역》의 대표가 되었고, 중국 고대 문명의 상징이 되었다.
주희가 《주역》앞부분에 하도와 낙서를 붙였는데, 황백가는 이것을 '양자를 데려와서 할애비로 삼은 꼴'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음양어도'는 특별히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만일 황백가가 지금 살아온다면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다. 리신(李申), 《주역지하설해(周易之河說解)》

《주역》의 괘상 배열은 2진법을 담고 잇다. 《주역》의 사상은 현대 물리학의 상대성 이론, 양자론을 담고 있다. 《주역》의 방형도에서 디락 방정식, 화학 원소 주기율을 끌어낼 수 있다. 역수 속에 현대의 원자 모형이 들어 있다. 흑백이 서로 휘감고 있는 '음양어도'는 바로 양자도이며 이는 보어의 상보성 이론의 설명이고, 생물학자가 보면 그 그림은 동물의 배태다. 《주역》이론에 중국 의학의 모든 이론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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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이야기들

공자 제사가 있었던 이튿날, 공자는 제자들과 함께 공자 사당에서 식어 버린 돼지 머리를 먹고 있었다. 그때 젊은이 넷이 주홍색 옻칠을 한 가마를 들고서 사당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가마 속에서 뺨이 온통 수염으로 뒤덮인 서양인이 나왔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칼 마르크스였다. 그 이름은 요즈음 인기가 높아서 이미 공자의 귀에까지 들려왔던 터였다.
공자는 자기를 찾아온 사람이 바로 마르크스라는 말을 듣고는 너무나 놀라 기쁨에 넘쳐 외치듯 말했다.
"유붕 자원방래니 불역열호아! 마르크스 선생, 저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시려고 먼 길을 오셨습니까?"
이렇게 해서 공자와 마르크스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저는 제 사상이 중국에서도 실현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제 사상과 선생님의 사상이 너무 달라서 선생님의 사상이 지배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제 사상이 실현될 수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도대체 선생님의 사상은 어떤 것입니까? 제 사상과 어디가 얼마나 다릅니까?"
"요즘 외국의 유명 인사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여는 것이 우리나라의 최신 유행이니 선생께서 먼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좋습니다. 제가 먼저 이야기하지요. 우선 제 사상의 출발점부터 말씀드려야겠군요. 저는 종교가나 형이상학자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 현실 세계에서 최고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는 가를 탐구합니다.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그건 제 사상의 출발점과 똑같군요. 그러면 어떤 세상이라야 우리가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제가 이상으로 삼은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고, 모두가 생활 보장을 받아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일이 없습니다. 이만하면 지상 천국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선생의 이상 세계는 나의 대동 세계와 완전히 똑같군요. 제가 문장 하나를 읊을 테니 한번 들어 보십시오. '대도가 실행되면 천하는 공유된다. 덕 있고 재능 있는 사람을 뽑아 정치를 맡기니 모두가 화목하다. 노인들은 편안히 여생을 마칠 수 있고, 젊은 이들은 능력을 발휘할 곳이 있으며, 아이들은 모두 양육된다. 이것이 대동 사회니라.' 어때요? 선생과 똑같지요?"
공자는 목소리를 길게 빼며 읊다가 나중에는 자기최면에빠지는 듯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조금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하고 힘을 주어 말한 마르크스는 연설을 하듯 말을 이었다.
"저는 공상가각 아닙니다. 저는 역사와 경제를 깊이 연구한 결과 산업이 점차 발전하면서 자본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어 노동 계급의 투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증명해 냈습니다. 그래서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아, 물론이지요. 저도 일찍이 '적음을 걱정 말고, 균등하지 못함을 걱정하라'하고 말했지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적은 것도 걱정합니다. 저는 사유재산에는 반대하지만 산업의 발전은 적극 제창하는 사람입니다."
"예, 예. 저도 '먼저 민중을 부유하게 하고, 그 다음에 가르치라'하고 말했고, 경제력 · 군사력 · 민심 획득이 정치의 근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우선 산업을 발전시켜야 균등한 분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재물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싫어하지만, 반드시 자기 것으로 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물질을 아주 중요시하는 사람입니다. 저기 있는 제 제자 자공만 해도 장사를 해서 돈을 엄청나게 번 인물입니다."
여기까지 대화를 나눈 마르크스는 비로소 감탄하기 시작했다. 공자의 사상이 자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공자도 2000년 동안이나 사당에서 식은 돼지 머리나 씹고 있는 마당에 자기의 사상이 중국에서 실현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그는 그만 돌아가기로 했다.
"전 이제 돌아가서 마누라 얼굴이나 보아야겠습니다."
공자는 부러워하며 말했다.
"아, 선생은 부인이 계시군요?"
"왜 없겠습니까? 제 마누라는 제 동지인 데다 굉장히 예쁩니다."
공자는 마르크스가 부인 자랑을 늘어놓는 것을 보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다.
"모두가 부인이 있는데, 나 혼자만 없구나!"
그러나 공자는 이내 안색을 바꿔 마르크스에게 말했다.
"하지만 저는 '우리집 어른을 공경함으로써 남의 집 어른에게까지 미치고, 우리집 아이들을 사랑함으로써 남의 집 아이들에게까지 미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내 처를 사랑함으로써 남의 처에게까지 미치니, 선생의 부인도 내 처가 아니겠소?"
마르크스가 이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아니, 저는 공산을 외칠 뿐인데 선생님은 공처(共妻)까지 주장하시는군요. 선생님은 저보다 더 위험한 인물입니다."
그러고는 서둘러 사당을 빠져나갔다. 그는 공자가 정말 유럽까지 쫓아와 자기 부인을 공유하자고 할까 봐 내심 두려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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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1. 11. 7. 09:56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20 전통 음식

글, 사진 / 한복진
1996,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6441

082
빛 12 ㄷ 60


빛깔있는 책들 60

한복진------------------------------------------------------------------------

이화여자대학교 가정대학을 졸업했으며 고려대학교 식량개발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했다. 중요 무형 문화재 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을 전수했으며 일본 조리사 전문대학 교수를 지냈다. 현재 춘천전문대학 전통조리학과 교수이며 궁중음식연구원 강사로 있다.

|차례|

사진으로 보는 전통 음식
식생활사
산물과 특징
    넉넉한 곡식과 해산물
    음식의 특징
조리법
    대표적인 음식의 조리법
상차림법과 궁중 음식
부엌 도구와 식기
    부엌 도구, 식기, 상
양념과 장
    양념, 고명, 장
김치와 젓갈
    김치, 젓갈, 장아찌
술과 화채
    술
    누룩 디디는 법과 삭임법
    차와 화채
떡과 한과
시식과 절식, 통과 의례

▲ 우리 식생활에서 기본이 되는 장은 때가 되면 어느 집에서나 빠뜨리지 않고 만들었던 음식이다. 여러 가지 장을 제가끔 독에 담아서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두는데 장맛이 변하면 집안에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믿어 주부들은 장독대의 관리에 정성을 다했다. 그래서 부정한 것을 막는다는 뜻으로 금줄에 버선과 고추를 매달아 놓는 풍습이 있었다.

▲ 연자방아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부터 곡식을 거의 모든 음식의 재료로 사용하였다. 곡물로 만든 음식은 주식이 되는 밥을 비롯하여 떡, 과자, 술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연자방아는 곡식을 찧을 때에 쓰던 기구로 소가 방아를 끌면 큰 돌이 구르며 방아질을 한다.

▲ 시루

▲ 팥밥 팥밥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쌀밥과 더불어 가장 즐겨 먹는 잡곡밥이다. 쌀과 팥을 섞어 짓기도 하고 팥을 삶은 물만으로 짓기도 한다.

▲ 냉면 날씨가 추운 북쪽 지방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다. 메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찬 육수나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는다.

▲ 회냉면 국물 없이 고기나 생선회를 고명으로 얹어 얼큰하게 비벼 먹는 냉면이다.

▲ 칼국수 곡류로 만드는 음식 가운데 하나인 국수의 종류로는 밀가루로 만든 밀국수와 메밀로 만든 메밀국수 그리고 녹말국수가 있다. 칼국수는 집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별미이다. 밀가루나 메밀가루를 반죽하여 얇게 민 다음 칼로 썰어 장국에 끓인다.

▲ 만두 만두는 북쪽 지방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다. 만두는 껍질의 재료와 소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고, 지방에 따라 생김새도 조금씩 다르다.

▲ 떡국 흰떡을 타원형으로 어슷하게 썰어 육수에 넣고 끓이면 떡국이 된다. 지방에 따라 쌀가루를 반죽하여 빚어서 끓이기도 하고 가늘게 썬 흰떡을 대칼로 누에고치처럼 만들어 끓이기도 한다. 어느 지방에서나 정월 초하룻날이면 떡국을 끓여 조상께 차례를 지내고 그것으로 새해의 첫 식사를 하였다.

꼬리곰탕 탕은 국물 음식이다. 우리 식생활은 밥이 주식이지만 국도 거의 빠지지 않고 끼니마다 밥상에 오른다. 소의 꼬리로 만든 것으로 밥을 말아 먹는 탕반이다. 비슷한 탕반류로 설렁탕, 갈비탕 따위가 있다.

▲ 완자탕 맑은 쇠고기장국에 고기완자를 빚어서 넣은 것으로 교자상에 어울리는 탕이다.

▲ 북어탕 북어를 고기장국에 넣어 끓인 것으로 시원한 맛이 난다.

▲ 각색전골 전골이란 각각 색이 다른 재료를 합이나 그릇에 담고 상 옆에서 볶아 먹는 음식이다. 쇠고기와 각색의 채소들을 어울리게 담아 놓은 각색전골이다.

▲ 송이전골 가을철에 많이 먹는다. 송이버섯을 납작하게 썰어 조갯살, 쇠고기와 같이 넣고 만든다. 맛이 담백하고 송이의 향이 독특하다.

냉이토장국 국은 크게 장국, 토장국, 곰국, 냉국으로 나뉜다. 국에는 육류는 물론이고 어패류, 채소류, 해조류 같은 재료를 거의 다 쓴다. 쌀뜨물에 된장을 풀고 봅철에 나는 냉이와 함께 끓인 토장국이다.

조기국 육수에 조기를 토막 내어 넣고 청장으로 간을 하여 맑게 끓인 다음 쑥갓, 파 따위를 띄운다.

미역냉국 여름철에 많이 즐기는 냉국으로 생미역을 살짝 데쳐서 간장, 식초 따위로 양념한 다음 냉수를 붓는다.

된장찌개 된장찌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토속적인 맛이 나는 음식이다. 토장국과 마찬가지로 맹물보다 쌀뜨물로 끓이면 맛이 더 좋다.

갈비찜 찜은 국물을 적게 하고 뭉근한 불에서 오래 익혀 재료를 연하게 하는 조리법이다. 쇠고기 가운데에서도 질긴 부위에 드는 갈비는 간을 약하게 해서 오랫 동안 끓이면 맛 좋고 연한 갈비찜이 된다.

도미찜 도미의 등에 칼집을 내어 그 안에 양념한 쇠고기를 채워 넣고 찐다.

▲ 장조림 밥상에 오르는 찬의 가장 흔한 조리법 가운데 하나는 조림이다. 장조림은 소의 사태나 홍두깨살, 우둔 따위를 덩어리째 무르도록 삶은 다음 간장에 조린 것으로 오랫 동안 저장해 두고 먹을 수 있는 좋은 밑반찬이다.

▲ 멸치조림 멸치와 풋고추를 약간 짜게 간하여 볶은 것이다.

▲ 녹두빈대떡 녹두를 갈아 고기와 나물을 섞어서 번철에 노릇하게 지진다. 녹두빈대떡은 평안도 지방에서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이다.

▲ 전유어 전유어는 기름을 많이 쓰는 음식으로 어느 상차림에나 빠지지 않고 올린다. 보통 한 가지 재료로만 하지 않고 세 가지나 다섯 가지를 준비하여 어울리게 담는다.

▲ 화양적 화양이란 도라지를 말한다. 도라지, 쇠고기, 지단, 오이 따위를 익혀서 대꼬지에 꿴다.

▲ 떡산적 흰떡과 실파와 쇠고기를 번갈아 대꼬치에 꿴 다음 양념간장으로 간을 하여 굽는다.

▲ 청어구이 청어는 동해안에서 많이 잡히는 생선이다. 소금을 뿌려서 굽거나 양념간장을 발라 굽는다.

▲ 더덕구이 향기가 좋은 더덕을 방망이로 자근자근 두들겨 펴서 고추장 양념을 발라 굽는다.

▲ 김부각, 다시마부각 부각은 재료를 그대로 말리거나 풀칠을 하여 바싹 말렸다가 그 때 그 때 튀겨서 먹는 밑반찬이다. 제 철이 아닐 때에 별미로 먹을 수 있다.

▲ 김구이 김에 기름을 발라 바삭하게 구워서 먹기 편하도록 잘라 놓는다.

▲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과 아홉 가지의 묵은 나물을 먹으면서 한 해 내내 병이 없이 잘지내기를 기원한다. 또 보름날 아침에는 부럼이라 하여 껍질이 단단한 밤, 잣, 호두, 땅콩 같은 것을 깨물면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고 믿었다.

▲ 산나물 나물은 반찬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대중적인 우리 음식이다. 산나물은 대개 쓴 맛과 함께 독특한 향이 나는데 무칠 때 고추장이나 된장을 약간 넣으면 맛이 더 좋다.

▲ 도라지생채 생채는 채소를 익히지 않고 초장이나 초고추장이나 겨자장에 무친 것을 말한다. 도라지를 가늘게 갈라 소금으로 주무른 다음 신맛이 나는 초고추장에 무친다.

▲ 탕평채 녹두로 만든 청포묵과 쇠고기볶음, 채소를 한데 넣어 초간장으로 무친 것이다.

▲ 잡채 고기와 채소 볶은 것을 삶은 당면과 함께 고루 무친다.

▲ 두부선(위), 오이선(아래) 선이란 찜과 비슷한 조리법인데 재료로 식물성 식품을 많이 쓴다. 두부는 으깬 다음 양념하여 찌고, 오이는 칼집을 내어 소를 채운 다음 찐다.

▲ 미나리강회 미나리를 데쳐서 가운데에 지단과 편육을 놓고 만다.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다.

▲ 갑회 소의 내장으로 만든 회이다. 양, 처녑, 간을 얇게 저며서 양념을 섞은 소금이나 참기름을 찍어 먹는다. 회는 무엇보다도 신선함이 가장 중요하다.

▲ 사각반에 차린 칠첩 반상이다. 첩수에 드는 반찬은 숙채, 생채, 구이, 조림, 전, 마른반찬, 회이다.

▲ 밥과 국, 김치를 기본으로 차리는 밥상을 반상이라고 하는데 쟁첩에 담는 찬품의 가짓수에 따라 삼첩, 오첩, 칠첩, 구첩, 십이첩 반상으로 나뉜다. 기본이 되는 밥, 국, 김치, 장 이외에 반찬 세 가지를 더 올린 삼첩 반상이다.

▲ 국수를 주식으로 한 면상이다. 찬으로 배추김치, 편육, 회, 전 따위를 준비하고 후식도 같이 올린다.

▲ 이른 아침에는 죽상을 올린다. 물김치, 마른찬 따위를 놓고 덜어 먹을 그릇과 간을 맞출 소금이나 청장을 놓는다.

▲ 구첩 반상이다. 민가에서는 살림이 아무리 넉넉해도 구첩 반상까지만 차릴 수 있었으며 십이첩 반상은 궁중에서만 차렸다.

▲ 술을 대접하기 위해 차린 주안상으로 술과 함께 마른안주, 육회, 장김치, 빈대떡 따위를 안주로 마련했다.

▲ 국수를 주식으로 한 면상으로 임매상이라고도 한다.

▲ 교자상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에 여러 사람이 함께 둘러앉아 식사할 수 있도록 차려 놓은 큰 음식상이다. 보통 한상에 네 명이 앉을 수 있도록 차리는데 주식은 계절에 따라 냉면, 온면, 떡국, 만두 가운데 하나로 하고 탕, 찜, 전유어, 적, 회, 신선로 같은 찬을 놓는다.

▲ 수라상 궁중에서 평상시에 임금에게 올리는 아침과 저녁상이다. 대원반, 소원반, 사가반의 세 가지 상에 차리는데 기본찬 이외에 찬 열두 가지를 놓는 십이첩 반상이다.

▲ 도미면 도미에 당면을 곁들여 만든 생선찜의 일종이다. 도미의 내장을 빼낸 다음 지져서 고기완자, 버섯, 계란지단, 미나리 들과 같이 전골틀에 담고 육수를 부어 끓인다.

▲ 신선로 궁중 음식 가운데 하나인 신선로는 입을 즐겁게 해 준다는 뜻으로 열구자탕(悅口子湯)이라고도 한다. 신선로틀에 육류, 해산물, 채소 따위를 색스럽게 돌려 담고 장국을 부어 끓이면서 먹는다. 흔히 신선로를 전골류로 아는데 본디는 탕류에 속한다.

▲ 김장이 끝나면 메주를 쑤어서 따뜻한 방에 두었다가 말린다.

▲ 잘 말린 메주로 우리 식생활에 빠뜨릴 수 없는 양념인 간장과 된장을 만든다. 채에 굵은 소금을 담고 위에서 물을 뿌려 소금물(물 1말에 소금 2되)을 만든다.

▲ 소금물에 메주를 넣는다. 사십 일쯤 지나서 장 맛이 들면 간장은 고운 채에 밭여 다른 독에 채우고 메주는 건져서 으깨 된장을 만든다.

▲ 고추장을 만들 때 필요한 재료들

▲ 음식에 양념을 하는 것은 간이 없는 식품에 간을 하고 맛을 줌으로써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니 음식을 잘 한다는 것은 곧 양념을 적절히 쓴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마늘, 파, 생강, 고춧가루, 소금, 깨소금, 고추장, 식초, 후춧가루, 참기름 같은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빠뜨릴 수 없는 여러 가지 양념들이다.

▲ 고명은 맛과는 상관없이 음식의 모양과 빛깔을 곱게 하여 식욕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오행설에 따라 흰색, 노란색, 빨간색, 검정색, 녹색의 자연색을 쓰는데 흰색과 노란색은 계란, 빨간색은 고추, 검정색은 석이버섯이나 표고버섯, 녹색은 미나리, 호박, 오이, 파잎 따위로 낸다.

▲ 바닷게장 싱싱한 꽃게를 토막내어 양념장에 버무린다. 저장 기간은 이틀쯤이다.

▲ 게장 민물게에 간장을 부어 오랫 동안 두고 먹는다

▲ 대구아가미젓 대구아가미를 소금으로 절여 만든 젓갈로 잘 삭으면 잘게 썰어 갖은 양념을 한다.

▲ 어리굴젓 굴을 고운 고춧가루, 파, 마늘, 소금 따위로 양념한 다음 잘 삭힌다. 충청도 서산의 명물이다.

▲ 무말랭이장아찌 장아찌는 제철에 많이 나는 채소나 쓰다 남은 음식 재료들을 오래 저장하여 두고 먹을 수 있도록 간장, 고추장, 된장 또는 식초에 담가 놓은 것이다. 무를 길게 썰어 말려서 만든 장아찌로 참기름, 설탕, 깨소금 따위로 조미했다.

▲ 오이갑장과 오이를 절였다가 볶은 장아찌로 갑자기 만든다 하여 갑장과라는 이름이 붙었다.

▲ 마늘장아찌

▲ 고추장아찌

▲ 김치는 부식 가운데에 가장 기본이 되는 찬으로 김치를 뺀 식생활은 생각할 수 없다. 김치는 소금에 절이는 염장법을 이용하여 적당히 발효시킨 것으로 독특한 신맛이 식욕을 돋운다.

▲ 장김치 간장으로 간을 맞춘 물김치로 무, 배추, 밤, 배, 대추, 표고버섯, 석이버섯 같은 다양한 재료가 쓰인다.

▲ 씀바귀김치 씀바귀를 소금물레 삭힌 다음 멸치젓국에 고춧가루와 양념을 넉넉히 넣어 담근다.

▲ 백김치 고추를 전혀 넣지 않은 김치로 배추 속에 채우는 소에 밤, 배, 대추채 따위를 섞는다.

▲ 정월 초하루에 세배 온 손님에게 대접하는 상차림으로 떡국과 함께 전, 적, 찜, 과일 그리고 한과까지 음식을 푸짐하고 정성스럽게 마련한다.

▲ 폐백은 신부가 신랑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서 처음 드리는 음식으로 내용은 가풍이나 지방에 따라 다르다. 서울에서는 폐백 음식으로 대추를 붉은 실에 꿰어 둥글게 돌려 담고 고기를 다져 편포나 장포를 만든다.

▲ 폐백 음식은 청, 홍보자기에 싸는데 대추는 자손 번영을 상징하므로 붉은 색이 겉에 오도록 싼 다음 묶지 않고 근봉을 고리로 만들어 낀다.

▲ 곡식을 타거나 가루를 낼 때 쓰는 맷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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