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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8. 23. 10:45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089 석불

글 / 진홍섭●사진 / 안장헌
1996,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3083


082
빛12ㄷ 43


빛깔있는 책들 43

진홍섭------------------------------------------------------------------------

문학박사. 일본 메이지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했다.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동대학 박물관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이다.

안장헌------------------------------------------------------------------------

고려대학교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신구전문대 강사, 사진 예술가 협회 부회장으로 있다. 사진집으로 「석불」「국립공원」「석굴암」등이 있다.

|차례|

불상 조각의 재료
석불 조성의 배경
한국 석불의 형식
한국 석불의 양식 변천
한국 석불의 주안점

▲ 동화사 비로암 석조 비로사나불 좌상

▲ 부여 군수리사지 출토 석불 좌상

▲ 석굴암 본존상 8세기 중엽에 이르러 인도의 석굴을 재현한 본격적인 석굴이 경영되기에 이른다. 석굴암은 전방후원(前方後圓)의 굴실 평면으로 후원의 본굴 중앙에 여래상을 안치하고 주벽에 부조상과 감실을 설치하였다. 원굴 중앙에 봉안된 여래 좌상은 굴내의 모든 조상에 비해 수단 높은 아름다움이 표현된 걸작이다. 불신의 비례는 물론 근엄과 자비를 겸비한 불성이 유감없이 표출된 상호, 손끝 발끝에까지 세심한 손길이 미친 석공의 기술, 대좌와의 적절한 비례 등을 볼 때 신라 조각의 최고봉이며 한국 불교 조각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 석굴암 인왕상 비도(扉道)를 등지고 원굴 입구 좌우에 배치된 인왕상이다. 부조이지만 두드러진 근육의 표현이 석굴암 조각 중 가장 역동적인 면모를 보인다.

▲ 석굴암 인왕상 상반신은 나형(裸形)이며 오른손을 들어 주먹으로 치려 하는 분노상이다. 본존불을 중심으로 위의 인왕과 대치되는 위치에, 대치되는 자세로 있는 입을 다문 음(吽)형의 상이다.

▲ 석굴암 팔부중상 전실 좌우벽에는 팔부중상이 부조되었는데 위의 왼쪽부터 찬, 야차, 마후라가, 가루라이고 아래 왼쪽부터 아수라, 긴나라, 건달바, 용이다.

▲ 석굴암 사천왕산 비도(扉道)에 위치한 4구의 사천왕상 중 2구의 모습이다. 무인(武人)의 복장을 하고 악귀를 딛고 있다.

▲ 석굴암 문수보살상 연꽃무늬의 대좌 위에 서서 몸을 굴 안쪽으로 향하였고, 오른손으로 잔을 받든 자세이다. 보관의 곡선과 유려한 천의에서 부드러운 실재감이 돋보인다.

▲ 십일면관시음보살상 석굴 안의 다른 상들이 약간 측면인데 반해 이 상은 정면을 향한 것이 특징이다.

▲ 석굴암 제석천상 오른손엔 불자(拂子)를, 왼손엔 금강저를 들고 있다. 석굴암내의 다른 상과는 달리 두광이 계란을 거꾸로 세운 형태에 주위에는 연주를 두른 것이다. 이 제석천과 대치되는 위치에 범천이 자리하고 있다.

▲ 석굴암 제자상 석굴암의 조각은 각 상의 이름에 맞는 적절한 표현을 해서 성격 묘사에 성공하였다. 특히 제자상에서는 극히 간명한 선을 쓰면서도 각자의 개성을 거의 완벽하게 표현하였다.

▲ 석굴암 제자상 십대 제자 중 목련존자로 추정되는 상이다. 이국적인 용모를 강하게 드러내는 튀어나온 턱과 길고 큰 코, 깊숙이 패어져 날카로운 시선을 느끼게 하는 눈 등이 인물의 특징을 표현하는 데에 손색없이 처리되었다.

▲ 문경 사불산 사방불 진평왕 9년(587)에 사방에 부처를 조각한, 사면이 반듯한 돌이 붉은 비단에 싸여 하늘에서 홀연히 산 위에 떨어졌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그곳까지 가서 예배하고 그 바위 옆에 절을 짓고 대승사(大乘寺)라고 하였다는 사불산의 사방불로서 왕가의 원불(願佛)이다.

▲ 계유명 삼존천불비상 조성 연대는 백제가 나라를 잃은 직후인 신라 문무왕 13년(673)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국왕 대신과 칠세(七世) 부모를 위하여 제작했다는 점과 조각 양식 등을 고려해 볼 때, 백제의 유민들이 나라를 잃은 후 소원을 담아 제작한 것으로, 개인의 기원에 의하여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연화사 무인명(戊寅銘) 석불상 및 대좌의 앞면(위)과 뒷면

▲ 군위 석굴의 삼존상

▲ 봉화 출토 반가상 현재 경북대학교 박물관 소장으로 원형이 반가상(半跏像)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복원 높이는 약 2.5미터이며 국내에서 가장 크고 잘 만들어진 원각상 중의 하나이다.

▲ 삼화령 미륵삼존상의 본존불 이 불상은 원래 경주 남산 삼화령에 있었는데 지금은 국립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두 다리를 앞으로 가지런히 하여 의자에 걸터앉은 의상(倚像)은 원각상, 마애상을 막론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자세이다.

▲ 예산 화전리 사면불상 방주형 석재 사면에 불상이나 보살상을 조각한 형식을 사면불 또는 사방불이라 한다. 사면에 조각하는 불상은 경전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여래상을 독존으로 조각하기도 하지만 협시보살이나 여러 권속상을 동반하는 수도 있다. 예산 화전리 사면불은 납석계 암석의 남면에 여래 좌상 1구와 사면에 입상을 새긴 것이다.

▲ 영주 신암리 사면불 높이 약 3미터의 석재에 조각하였는데 남면의 삼존상을 제외하고는 박락과 마손이 심하여 윤곽만 남아 있다. 삼존상 모두에는 원형의 두광(頭光)이 있는데, 고식의 화염문이 있어 육조(六朝)시대 말기의 불상 양식을 보여 준다.

▲ 굴불사 사면불 서면에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하는 삼존 입상을 조각하였는데 중존의 머리는 별석으로 조각하고 좌우 보살도 별석으로 조각하였다.

▲ 경주 분황사 석탑 인왕상 석탑 감실(龕室) 좌우에 있는 인왕상은 모두 8구이다. 충분한 입체감과 의문의 양식 등으로 보아 선덕왕 3년(634)에 건립한 석탑과 동시작임이 분명하다.

▲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 아미타삼존불 칠불암이라는 명칭은 사방불의 네 부처와 뒤에 있는 암벽에 조각된 이 세 부처를 합해서 붙여진 것이다.

▲ 비암사 미륵반가 석상 정면에는 반가사유상 1구를 조각하고 그 밑에 향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공양상을 배치하였다. 양 측면과 뒷면에 모두 조각이 있다.

▲ 비암사 기축명상 정면 상단이 반원을 이루며 밑으로 내려올수록 폭이 넓어졌고 뒷면은 밖으로 만곡된 석재를 사용하여 정면에만 조각이 있다.

▲ 신선사 마애 불상군 경주 단석산에는 약 30미터의 대암석 4개가 기둥처럼 솟아 서쪽이 개방된 ㄷ자형을 이루었고, 위에는 기와를 입혔던 흔적이 있어 암석을 이용한 석굴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암석의 내면에는 높이 약 8미터의 본존을 중심으로 삼존 거상을 조각하였고, 별도로 반가상과 공양상을 포함하는 작은 상 7구와 명문이 새겨져 있다.

▲ 중원 미륵리 석굴 고려시대에 조영된 현존 석굴은 유례가 매우 적은데 이 석굴은 그 대표가 될 만하다. 석굴의 상반부는 결실되어 중앙의 석불 입상이 노불(露佛)로 되어 있으나 굴 안팎으로 초석이 남아 있는 점으로 보아 위에는 목조 가구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 석조 여래 입상 미륵리 석굴의 중심부에 세워진 여래상이다. 상의 전체는 입체감이 없는 석주형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머리의 조각은 고려시대 양식이 비교적 잘 발휘되어 머리는 나발에 눈꼬리는 길고 다문 입술은 두꺼워 정적의 분위기가 감도는 데 이것은 고려시대 특유의 상호이다. 

▲ 익산 연동리 좌상 결실된 머리를 새로 조성하였고 몸에도 많은 손상을 입어서 볼품이 없으나 원각 좌상으로는 백제 최대의 거상이다. 이 석불은 규모로 보아 굴지의 대작이며 특히 복원치 5미터 가까운 일매 판석으로 광배를 조각한 석조 기술 또한 놀랍다. 고졸하면서도 대담하고 간명하면서도 힘이 넘쳐 백제 미술의 진수를 보여 준다.

▲ 정읍 소성 신천리 석불 입상 발 밑에는 원통형의 돌기가 붙어 있어 이색적이고, 머리는 체발(剃髮)에 육계는 크고 존용은 방형에 가까우며 입가에는 미소가 희미하게 보이나 풍화가 심하다. 더욱이 두 눈은 인위적인 손상을 입어 자세한 점을 알 수 없으나 서산군 태안면의 마애불 얼굴과 유사하다.

▲ 익산 태봉사 삼존상 일석(一石)으로 삼존과 광배를 조성하여 삼국시대에 유행하던 일광삼존의 형식을 갖추었다.

▲ 중원 비중리 보살 입상 머리에는 무문의 큰 원광이 있고 얼굴은 약간의 손상이 있으나 짧은 목걸이, 통인인 듯한 두 손, 천의의 X형의 교차, 두꺼운 상의 등 삼국시대 양식이 분명하다. 다만 소속 국가에 관해서는 고구려 작품과 백제 작품의 양론이 있다.

▲ 경주 배리 삼체 석불 각 상의 작품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세 상이 모두 고식을 따르고 있는 점에서 고신라 말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 청암사 수도암 비로사나불 좌상 통일신라 중기의 작품이다.

▲ 각연사 비로사나불 좌상 대좌에서 광배 끝까지 높이가 302센티미터로 불상과 대좌, 광배가 모두 갖추어진 상이다. 통일신라 중기인 9세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 석조 여래 입상 국립 경주박물관 소장의 여래상으로 통일신라 중기의 작품이다. 중기의 조상(造像)은 아미타불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외래 양식의 수용 정착과 축적된 조상 기술로 해서 우리나라 조각의 절정을 이루는 시기이다.

▲ 경주 남산 보리사 여래 좌상 화려한 광배와 불신의 비례, 상호의 표현 등이 원숙한 8세기 조각의 면모를 보여 준다.

▲ 감산사 아미타불 입상 주형(舟形) 거신광배의 화염문과 팔각 대좌의 앙련과 복련에 이르기까지 세련된 솜씨와 부드러운 질감을 강조하는 우수한 작품이다. 옷주름과 전체적인 조형미는 우리나라 조각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한다.

▲ 감산사 미륵보살 입상 석상의 광배 뒷면에 중아찬의 벼슬에 있던 김지성(金志誠)이 집사시랑으로 왕의 측근에서 봉사하다가 퇴관하여 한거하면서 먼저 간 일족의 명복을 위하여 미륵존상과 미타불을 조성하였다고 새겨져 있다. 719년이라는 뚜렷한 제작 시기가 있어 통일신라 중기 조각품의 기준작이 된다.

▲ 팔공산 관봉 여래 좌상 보물 제431호로 '갓바위'라고도 불리운다. 이 상은 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중기인 8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 거창 양평동 여래 입상 8세기말에 가까워지면서 조상은 차츰 정제된 조형미에서 벗어나 난조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 불상은 신체에 비해 머리가 커지고 어깨가 다소 솟아 올라 흩어진 조형성을 보인다.

▲ 예천 동본동 석불 입상 통일신라 말기에 제작된 상으로 유난히 큰 머리와 평면적인 가슴, 움츠린 듯한 어깨가 이 시기의 작풍을 보여 준다.

▲ 청량사 여래 좌상 경주 석굴암 여래 좌상의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인체 파악의 빈약으로 균형을 잃어서 불신의 각부가 부자연스럽다.

▲ 청량사 여래 좌상 대좌 부분 불상의 대좌에 새겨진 보살상이다.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이르러 이러한 지나친 장식성으로 전체적인 기력을 잃은 섬약화가 현저해졌음을 보여 준다.

▲ 부석사 자인당 비로사나불 좌상

▲ 축서사 여래 좌상

▲ 고운사 여래 좌상
통일신라 말기 조각의 조형적 변화는 혜공왕 이후에 나타나는 국정의 문란, 군웅의 할거와 선종이라는 새로운 사상 체계로 인한 조상의 약화, 풍수설 전래로 인한 잡신(雜信)과의 습합 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그 중에서도 국정의 문란과 선종의 유행은 중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 영주 석교리 여래 입상 불신과 불두의 조화되지 않는 비례는 형식화된 옷주름의 표현과 더불어 통일신라 말기 불상 조각의 변화를 드러낸다.

▲ 청양(靑陽) 삼존 입상

▲ 청룡사(靑龍寺) 비로사나불 좌상
고려 전기는 신라 석불의 양식을 계승하는가 하면 새로운 양식이 대두되는 시기인 동시에 신라 말기의 석불에 비해 월등히 큰 대작이 제작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경향은 철불이나 마애불에서 특히 현저히 나타난다.

▲ 만복사 여래 입상 이 불상은 높이가 2미터 가량으로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제작 시기를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 조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나주 철천리 여래 입상 충실히 전대의 형식을 따르고는 있으나 도식화된 광배의 문양과 얼굴과 신체의 어울리지 않는 비례 등에서 변회된 불상의 면모를 보인다.

▲ 관촉사(灌燭寺) 보살 입상 상호의 이형화, 의문 표현의 선각화, 선의 표현보다 면의 표현에 치중한 점, 6각형 대좌의 출현 등 새로운 양식이 등장한 예이다.

▲ 함안 대산리 보살 입상 운동감은 적으나 신체의 균형이 비교적 좋고 상호가 온화하며 두 다리에 동심 타원문의 의문이 있는 점 등 신라불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 고령 개포동 보살 좌상 보관에 화불이 새겨져 있고 연꽃을 손에 쥐고 있어서 관세음보살로 생각된다. 뒷면에 옹희 2년(985)이라는 기년명이 있어서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 조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 대조사 보살 입상

▲ 안국사 삼존 입상
고려 불상에 나타나는 속세화 곧 상호 각부의 비현실적인 강조, 인체 비례에의 무관심, 석주형(石柱形)에서 벗어나지 못한 비입체성 등은 새로운 양식으로 지적될 수 있으나 그 배경에는 풍수설과 결부된 현세적인 속신화(俗信化)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 거창 상동 보살 입상 전기에 이어 신라불의 기본형을 따르는 상이다. 그러나 어깨가 각지고 신체가 평판(平板)이어서 다소 생경한 느낌을 준다.

▲ 예산 삽교 보살 입상 고려 중기 불상의 특징은 원각상의 경우, 넓은 개석을 머리에 이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 월정사(月精寺) 보살 좌상 고관개석(高冠蓋石)의 형식은 강릉 지방에 있는 한송사, 신복사, 월정사 등의 보살상에서 볼 수 있는데, 이 상들은 한결같이 비만형이며 작은 입에 미소를 짓고 특이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 신복사(神福寺) 보살 좌상 한송사지나 월정사 보살상처럼 원통형의 높은 관을 쓰고 있으며 관 위에 천개(天蓋)가 놓여 있다. 이러한 양상은 지방적 특색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이 지방이 신라 왕족 김주원의 후예가 할거하던 곳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특색 있는 양식이 나타날 수 있는 문화적 소지가 다분히 있었던 것이다. 또 이러한 점은 충주 지방의 철불에서 볼 수 있는 배경적인 특색과도 합치하는 바이다.

▲ 한송사(寒松寺) 보살 좌상 대리석제 보살상으로 현재 국립 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높은 관을 썼으며 통통한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다.

▲ 아산 평촌리 약사여래상 높이 4미터의 장대한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둔중한 인상을 주나 온화한 얼굴의 부처 모습을 보인다. 곳곳에서 동심원을 그리는 옷주름은 삼국시대부터 보이던 옷주름이 도식화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 경천사 10층 석탑 표면 조각 고려 후기는 원의 침입을 받았으므로 송 문화에 대신하여 원 문화가 전반에 걸쳐서 침투하여, 불상 양식에서도 라마불의 양식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나 석불에서는 그다지 뚜렷하지 않다. 이 시기의 조상 자체도 현저하게 적어져서 이 탑의 표면 조각과 고도리 여래 입상 정도를 들 수 있다.

▲ 경천사 10층 석탑 상륜부와 탑신 고려 후기의 조각으로 대표되기는 하나 원나라 장인의 솜씨이므로 우리나라 조각사에서는 참고가 되는 작품일 뿐이다. 1348년에 건립된 이 탑의 탑신부 4층 이상은 방형(方形)으로 사방에 불 · 보살을 조각하여서 원나라 불상의 양식을 보여 준다.

 ▲ 운주사(雲住寺) 석불군 운주사의 계곡과 좌우 산상 일대에는 지금도 많은 석탑과 석불이 남아 있다.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과 천탑을 조성하였다는 바로 그 탑상들이다. 석불은 우수한 작품은 되지 못하나 많은 상의 집중상이나 안치된 위치 등을 생각하면 풍수설에 의한 조상과 배열임을 짐작할 수 있다. 위는 와불 2구이며 아래는 여래 좌상이다. 

▲ 창녕 관룡사 용선대(龍船臺)

▲ 용선대 석불 불상 높이 1.88미터, 대좌 높이 1.36미터의 거대한 불상으로 멀리서 바라보면 거대한 뱃전에 불상이 앉아 있는 듯하다. 이 불상은 얼굴의 표현, 신체의 양감 등이 8세기 신라 불상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나 조금은 위축되고 움츠린 신체 표현에서 고려시대 초기 석불임을 짐작케 한다.

▲ 실상사 서진암(瑞眞庵) 나한상 조선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 석조상의 면모를 반영한다. 

▲ 원각사 10층 석탑 표면 조각 경천사 10층 석탑을 그대로 모방한 대리석제 탑으로 표면에 12회상 등을 조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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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