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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9. 14:57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08 三國志 2 풍운이 감도는 천하

 

나관중 지음 · 정비석 옮김

2004, 은행나무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14855

 

823.5

나15삼6 2

 

정비석(1911~1991)

 

평북 의주 출생으로 일본 니혼대학 문과를 중퇴하였다. 1936년 단편 <졸곡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된 데 이어, 1937년 단편 <성황당>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1954년에 성 윤리에 대한 사회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킨 《자유부인》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한국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부상하였다. 그 이후 그는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여 오랫동안 인기를 누렸는데, 1981년에 발표한 《소설 손자병법》은 한국 출판사상 최대 판매부수를 기록하였다.

또한 1985년에는 조조, 유비, 제갈량 등 수많은 영웅호걸들의 인생 흥망사가 펼쳐지는 동양 최대의 고전인 《삼국지》를 출간하여 명실상부한 베스트셀러 메이커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 책은 정비석 특유의 생동감 잇고 웅장한 표현으로 소설적인 재미를 극대화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작가의 최고 영예는 끝까지 글을 쓰는 것이라는 소신을 가졌던 그는 고희를 넘긴 80년대 이후에도 《여수》, 《김삿갓 풍류기》 등 단행본으로 따지면 14권 분량이나 되는 작품을 일간지에 연재하며 전업 작가의 한 전범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위의 작품 이외에도 《청춘산맥》(1949), 《여성전선》(1951), 《홍길동전》(1953), 《산유화》(1954), 《야래향》(1957), 《유혹의 강》(1958), 《여성의 적》(1960), 《혁명전야》(1962), 《여인백경》(1962), 《욕망해협》(1963), 《명기열전》(1976), 《소설 명성왕후》(1987) 등 수십 권에 달한다.

 

◎ 등장인물

 

손권孫權(182~252년)

오(吳)의 초대 황제. 재위 222~252년. 손견의 둘째 아들. 200년에 형 손책이 죽자 그 뒤를 이었다. 손권은 남하한 조조의 대군을 촉나라의 유비와 함께 적벽에서 격파함으로써 강남에서 그의 지위를 확립했다. 그 후 형주의 귀속 문제를 둘러싸고 유비와 대립했으나, 219년 조조와 결탁하여 유비의 용장 관우를 격파하고 형주를 공략했다. 그 결과 위 · 촉 · 오 3국의 영토가 거의 확정되었다. 221년 조조가 죽고 그의 아들 조비가 황제로 즉위하자, 이에 손권도 황제위에 올랐다.

 

조운趙雲(?~229년)

유비의 맹장. 자는 자룡(子龍). 처음에는 공손찬 휘하에 있다가 나중에 유비의 신하가 되어 용맹을 떨쳤다. 유비가 장판에서 조조에게 쫓겨 아들과 감 부인을 버리고 도망갔을 때 그가 단신으로 이들을 구출해냈다. 219년에 한중 공방전에서 정찰 도중 위의 주력부대를 만나 뛰어난 전술로 후퇴에 성공하였다. 221년, 유비가 손권을 공격할 때 반대를 무릅쓰고 강주 수비에 나서 공을 세웠고 228년, 제갈공명이 기산에 출전할 때도 등지와 함께 양동작전으로 시곡에 진주했다가 위의 대군을 만나 소수의 군대로 용감하게 싸웠다.

 

유장劉璋(?~219년)

후한 말의 군웅의 하나. 자는 계옥(季玉). 아버지 유언의 뒤를 이어 익주목이 되었다. 그는 조조가 원정군을 이끌고 오자 구원세력으로 유비를 맞아들였다. 촉에 들어온 유비는 한중(漢中) 방위에 나서는 체하면서 군사를 동원하여 유장이 있는 성도로 진격했으며, 곧 유장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 후 손권이 형주를 탈취한 뒤 유장은 그에 의해 다시 익주목에 임명되었다.

 

정욱程昱

위(魏)의 모사. 자는 중덕(仲德). 194년 조조가 두 번째 서주 공격에 나섰을 때 장막과 진궁이 배반하여 근거지인 연주를 여포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이때 정욱은 순욱과 함께 진성과 다른 두 현(縣)을 확보하고 조조를 맞아들였다. 그리고 196년에는 헌제(獻帝)를 맞아들이자는 조조의 제안에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순욱과 함께 적극 찬성했으며, 유비를 경계해 그를 죽이자고 진언했다.

 

장수張繡

후한 말 군웅의 하나. 양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변장 · 한수의 군사를 무찔러 이름을 날렸다. 삼촌인 장제의 군대를 인계받아 조조에게 투항했으나 아내를 빼앗긴 원한으로 다시 반하여 완(宛)에서 조조를 무찌르고 조조의 장남 조앙을 죽였다. 그러다가 관도의 싸움 때 모사 가후의 진언에 따라 조조 휘하에 들어가 큰 공을 세웠다.

 

장소張昭(156~236년)

오(吳)의 건국공신. 자는 자포(子布). 황건적의 난을 피해 강남으로 이주했다가, 197년에 손책이 강동에 발판을 마련했을 때 그의 참모가 되었다. 200년, 손책의 유촉(遺囑)을 받은 그는 비탄에 잠긴 손권을 꾸짖어 상복을 군복으로 갈아입게 했다. 그 후 주유 등과 협력하여 손권을 잘 보좌했다.

 

양표楊彪(142~225년)

양수의 아버지. 자는 문선(文先). 사도 벼슬에 있으면서 동탁의 천도에 홀로 반대하다가 파면당했다. 또 조조의 미움을 받아 죽임을 당할 뻔했으나 공융의 간언으로 목숨을 건진 일도 있었다. 후에 한(漢) 황실이 종말에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 신병을 핑계로 은퇴했다.

 

우금于禁(?~222년)

위(魏)의 명장. 자는 문측(文側). 원소와의 싸움에서 맹위를 떨쳐 호위장군에 임명되었다. 219년, 번성에서 관우의 군대와 싸우다 홍수를 만나 투항했다. 그 후 손권이 관우를 무찔렀을 때 위나라에 귀환했으나, 예전에 자기가 촉나라에 투항했던 모습이 조조의 무덤에 그려진 것을 보고 굴욕감을 느껴 끝내 병을 얻어 죽었다.

 

순유荀攸

조조의 모사. 순욱의 조카. 일찍이 황문시랑을 지냈으나 낙향해 있다가 숙부와 함께 조조의 막하로 들어갔다. 조조가 적벽대전의 보복을 계획할 때 높은 벼슬을 미끼로 서량의 마등을 불러다가 죽여 후한을 없앴다. 뒤에 조조가 위왕이 되려 하자 이에 반대하다가 그의 노여움을 사 결국 그로 인해 병을 얻어 죽었다.

 

미축

촉(蜀)의 중신. 자는 자중(子仲). 서주의 명문 출신. 서주목 도겸의 부관이었다가 그의 유언에 따라 유비를 서주로 맞이하는 사신이 되었다. 그 후 유비를 섬기면서 가장 큰 재정적인 후원자가 되었다. 195년, 유비가 여포에게 하비성을 빼앗기고 유랑하게 되었을 때도 그가 자금을 대고 누이동생을 그에게 출가시켰다.

 

유대劉岱(?~192년)

후한 말의 군웅의 하나. 189년, 동탁에게 발특되어 연주 자사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임지에 도착하자 반 동탁군을 일으켜 원소 등과 연합군을 형성했다. 192년 4월, 청주의 황건적 백만이 연주에 침입했을 때, 지구전으로 싸우라는 포신의 책략에 따르지 않고 무리하게 공격하다가 전사했다.

 

동승董承(?~200년)

헌제(獻帝)의 장인. 196년, 헌제를 맞이하기 위해 안읍에 온 조홍의 군사를 물리쳤다. 후에 헌제를 따라 허도에 들어가 유비 등과 함께 조조 암살을 시도했으나, 유비가 서주 정벌을 나간 사이에 계획이 발각되어 죽임을 당했다.

 

정보程普

오(吳)의 장수. 자는 덕모(德謨). 오나라 장수 중에서 가장 연로하고 인물 등용이 뛰어나 존경을 받았다. 손견을 따라 황건적을 무찌른 후 더욱 신임을 받았고, 그가 죽자 손책과 함께 거의 모든 전투에 참가했다. 또 손책이 죽자 그의 동생 손권을 잘 보좌했다.

 

진규陳珪

후한 말의 명사. 자는 한유(漢瑜). 197년 원술이 여포와 연합하려는 것을 보고 이것이 유비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걱정하여 여포를 설득하여 조조에게 합류하도록 했다. 그 공으로 조조의 영접을 받고 원술 군을 격퇴했다. 후에는 여포를 물리치는 데도 큰 공헌을 했다.

 

손건孫乾

유비의 심복. 199년, 유비가 서주에 근거하면서 조조에게 반기를 들었을 당시에 원소와 손을 잡기 위해 사절로 갔다. 또 201년에는 여남에 있던 유비가 조조의 공격을 받아 유표에게 의지하려 했을 때도 사정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장요張遼(171~221년)

위(魏)의 장수. 자는 문원(文遠). 정원, 하진, 동탁, 여포 등을 섬기다가 조조의 막하에 들어갔다. 여러 차례의 전공 가운데서도, 합비를 에워싼 손권의 군대를 8백의 돌격대로 격퇴한 무공이 가장 빛난다. 그 후에도 자주 손권의 군대를 무찔러 오나라 군사를 두렵게 했다.

 

조앙曹昻(?~197년)

조조의 맏아들. 자는 자수(子修). 생모인 유 부인이 일찍 죽어 정 부인에게 양육되었다. 197년, 조조를 따라 남양의 장수(張繡) 정벌에 참가하여 항복을 받았으나, 이해 장수의 두 번째 반란 때 죽었다.

 

저수沮授

원소의 모사. 원소의 조조 공격을 반대하다가 진중에 감금되었다. 그러면서도 천문을 보아 적의 야습을 예견하고 대책을 건의했다. 그러나 결국 이 싸움에서 대패하게 되었고 달아나다가 끝내 붙잡혀 죽었다.

 

장흠蔣欽

오(吳)의 장수. 자는 공혁(公奕). 손책 · 손권을 섬긴 장수로 많은 전공을 세웠다. 여몽과 함께 학문으로 명성이 높았으나 후에 관우를 공격하다가 전사했다.

 

진궁陳宮(?~198년)

여포의 참모. 198년 10월, 하비성에서 조조 군의 포위를 받고 여포에게 재삼 작전을 헌책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항복하여 여포와 함께 죽임을 당했다.

▲ 관우

 

차례

 

허수아비 천자

근왕병 일어나다

간웅의 싹

이리를 끌어들이다

손책의 등장

강동의 소패왕

정략결혼

조조의 실책

원술의 참패

조조의 지략

함락되는 소패성

진규 부자

여포의 패망

천자의 은밀한 조서

피로 쓰는 연판장

유비, 조롱을 벗어나다

멸망하는 원술

적장을 살려 보내다

독설가 예형

태의 길평

잔인한 보복

약조삼장

안량 · 문추를 베다

금석 같은 충의

난관을 돌파하여

다시 만나는 삼 형제

손책의 최후

관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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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