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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6. 15:38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20 한국사傳

 

KBS한국사傳 제작팀

2008, 한겨레출판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20352

 

911

케68ㅎ

 

역사를 뒤흔든 '개인'들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

 

광대한 무대에서 펼쳐지는

역사 속 리얼 휴먼스토리

 

역사는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 본질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한국사는 획일적 역사 해석만이 횡행했다. 《한국사傳》은 바로 이런 문제점들을 해소하며 그다지 주목받지 못해왔던 측면들을 통해 역사의 다양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필연적으로 역사 무대가 확장된다. 이 책의 무대가 한반도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그리고 저 멀리 유럽까지 종횡무진하는 이유다. 광대한 무대의 주인공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따라 읽다 보면 불현듯 그 현장으로 답사를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역사는 왜곡되지 않은 거울이다. 동양의 역사가들은 역사가 감계(鑑戒)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역사에 비춰보고 경계할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역사는 부끄러운 치부마저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고 믿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만큼 역사는 리얼하다. 《한국사傳》은 시스템 이야기인 기(紀)를 잠시 접어두고 리얼 휴먼스토리로 가득한 전(傳)에 주목하고자 했다. - 서문 중에서

 

KBS 역사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도전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의 '드라마'를 추적하다!

 

한국사傳 제작팀

책임 프로듀서 : 장영주

프로듀서 : 윤한용, 김영두, 김형운, 송철훈, 정현모, 박건, 김현기, 김종석, 이호경

작가 : 지현주, 정윤미, 윤영수, 박소희, 박민경

 

차례

 

◆ 서문  역사를 뒤흔든 '개인'들의 리얼 드라마

 

1 조선을 구한 어느 외교관의 인연 - 홍순언

200년에 걸친 약소국의 이유 있는 항의

홍순언 앞에 나타난 놀라운 반전

유일한 역관 출신 광국공신

조선시대 역관은 유능한 무역상이었다

국가의 모든 실무를 담당한 '중인'들

임진왜란 승리의 숨은 주역

인연은 인연을 낳고

 

2 한국의 무희에서 파리의 연인으로 - 리진

조선의 '영혼의 꽃'

콜랭 드 플랑시와의 운명적 사랑

파리를 활보하던 최초의 근대여성

조선 여인의 파리 사교계 진출

낯선 문화 속의 이방인

거스를 수 없는 '관비'의 운명

파리로 인해 살고, 파리로 인해 죽다

 

3 중국대륙 속의 고구려 제왕 - 이정기

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 유민

용교를 막아 당의 숨통을 조이다

군인으로 명성을 날리다

부하들이 선택한 절도사

당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이정기의 나라

당 황실을 겨누고 칼을 빼들다

이정기 왕국의 흥망성쇠

 

4 세조의 일등공신인가, 단종의 배신자인가 - 신숙주

세조의 킹메이커

계유정난의 일등공신

공신의 길을 택한 신숙주의 지독한 배신

실패로 끝난 단종 복위운동

'넘버 쓰리' 세조가 선택한 신숙주

세조에 충성한 신숙주에 대한 논란

충신 성삼문 vs 공신 신숙주

신숙주의 길 vs 성삼문의 길

 

5 20일간의 치열했던 헤이그 장외외교 - 이준

헤이그의 문전박대

고종의 마지막 카드

고종이 선택한 남자

회의장 밖의 외교활동

급작스런 이준의 죽음

두 번 죽임을 당한 세 특사

 

6 슈퍼맨 아버지의 눈물 - 영조

21세기에 밝혀진 사도세자의 병

슈퍼맨 아버지와 평범한 아들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들

뿌리 깊은 당쟁의 씨앗

돌이킬 수 없는 부자의 갈등

뒤주에 갇힌 세자의 마지막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아버지의 회한

 

7 조선의 여성 CEO - 김만덕

제주를 수렁에서 구한 여인

관기에서 상인으로

승승장구한 김만덕의 객주

쌀과 소금을 장악하다

뱃길로 열린 팔도의 시장

최고의 부자로 거듭나다

왜 하필 만덕인가?

실학자가 인정한 전문경영인

 

8 비운의 라스트 프린세스 - 덕혜옹주

환갑에 얻은 늦둥이 외동딸

여덟 살에 겪은 아버지의 독살

덕수궁의 꽃에서 일본의 인질로

독살에 대한 공포와 어머니의 죽음

짧은 결혼생활과 정신병원 생활의 시작

잊혀진 덕혜와 딸 마사에

"우리나라에서 살고 싶어요"

 

9 김옥균을 쏜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 홍종우

조선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레가미와 홍종우의 운명적 만남

파리 인사들과 교류하며 한국을 알리다

한복 입은 파리의 신사

일본 극우파의 원조와 손잡은 김옥균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라를 걱정한 두 사람

엇갈린 두 사람의 평가

홍종우의 길 vs 김옥균의 길

 

10 조선 장수의 흑룡강 승전보 - 신유

원치 않았던 출병

흑룡강에서 격돌한 러시아와 청나라

코자크족이 두려워한 '대두인'

신유와 조선군의 흑룡강 승전보

효종과 조선의 딜레마

약소국 장군의 비애

200년 평화를 견인한 대장정

 

1

조선을 구한

어느 외교관의 인연

- 홍순언

 

낯선 이름 홍순언.

그는 조선의 운명을 바꾼 역과(외교관)이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중요한 인물이

바로 장수도 무사도 아닌, 중인 출신의 역관 홍순언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조선의 역사를 바로잡는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그 일이 가능하게 된 계기는 어느 여인과의 짧은 만남.

모든 것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통문관지通文館志》.  조선시대 중국, 일본 등과의 외교통상 관계를 수록한 책으로 역관 홍순언과 중국 여인의 일화도 실려 있다.

《대명회전》 정덕본(1510). 이성계의 아버지가 인인임으로 잘못 나와 있다.

북경의 동악묘. 중국에 간 사신들이 조양문으로 들어서기 전에 향을 피우고 제를 지냈던 곳이다.

조양문. 북경으로 들어서는 관문이다.

연경 성시도(일부). 중국 청나라의 북경을 그린 지도. 조선 사신이 들어가는 조양문이 오른쪽에 있고, 외국사신이 머물던 회동관은 정양문 오른쪽에 있다.

《광국지경록》.  종계변무를 축하하기 위해 선조와 여러 신하들이 화답한 시를 모은 것이다.

광국공신 칭호를 받은 신하들.  홍순언의 이름이 정철이나 유성룡보다 높은 2등에 올라 있다.

종계변무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온 홍순언에게 왕이 노비와 집을 하사해주어 그가 살았던 역사의 현장이 지금의 을지로입구다.

보은단동이란 지명이 적힌 도성도 일부.

《노걸대》.  조선시대 역관들이 공부했던 중국어 초급 회화책. 상인들 간의 대화가 주를 이룬다.

송조천객귀국시장(送朝天客歸國詩章).  명나라에 조회왔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조선 사신을 전송하는 광경을 묘사한 그림.

조선시대 문과 합격증서. 일반적으로 문과 합격자는 홍패를 받았지만, 역관은 일반적인 문과 합격자와 구별하기 위해 백패를 지급했다.

김정호의 수선전도.  홍순언과 같은 중인들이 모여 산 곳은 청계천 일대의 이른바 중촌이었다. 청계천을 기준으로 북쪽인 북촌에는 고급 관료와 중신들이, 남쪽인 남촌에는 선비들이 주로 살았다.

명나라가 조선을 도와 일본을 무찌른 이유는 일본이 조선의 길을 빌려 명을 칠 것이라는 '가도입명' 설을 믿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평양성 전투도.

해주 석씨의 시조이자 역관 홍순언을 여러 차례 도와준 석성의 초상.

 

2

한국의 무희에서

파리의 연인으로

- 리진

 

어느 프랑스인이 남긴 단 네 쪽의 기록. 이것은 조선 무희에 관한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114년전,

조선의 궁중 무희였던 한 여자가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프랑스는 지금도 비행기로 10시간을 가야 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선 매우 먼 나라.

무려 1세기 전에 프랑스까지 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의 무희였다는 그녀는 어떻게 파리까지 가게 된 것일까?

우리의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한 조선 여자의 삶과 사랑.

기구한 운명의 순간들,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국에서》.  이폴리트 프랑댕 · 클레르 보티에 공저, 1905.

이폴리트 프랑댕이 찍었다는 한국의 무희들 사진.

콜랭 드 플랑시.  1888년 프랑스 초대공사로 한국에서 근무했다.

고종이 콜랭 드 플랑시에게 수여한 대한제국 훈장.(오른쪽)

콜랭 드 플랑시가 소장했던 한국 여인의 도자기상.(왼쪽)

파리 부감.

리진과 콜랭 드 플랑시가 살았던 바빌론가 58번지.

리진의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봉마르세 백화점.

리진의 집 가까이에 있던 파리 외방전교회. 김대건 신부의 사진과 조선의 성경책이 보관되어 있다.

파리 외방전교회에 보관돼 있는 조선의 여성 신도들 사진.

플랑시는 자신의 중국어 이름을 갈림덕(길葛林德)이라 짓고 낙관을 만들어 수집한 책마다 '갈'자를 표시하곤 했다.

플랑시가 수집해간 정조 때 편찬된 병법서 《어정병학통》.

19세기말 프랑스에서 출간된 한국 여행기들.

파리의 여성들(위)과 달리 조선의 여성들(아래)은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했으며, 자기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아내 혹은 어머니로서만 존재했다.

프랑스 최고의 동양 전문 박물관인 기메 박물관. 이곳 한국관에 콜랭 드 플랑시가 가져온 가구들이 있다.

리진의 규방을 장식했던 한국 가구들. 기메박물관 한국관 소장.

서울시 을지로2가에 있는 장악원 표석. 서인화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원래는 서부 여경방 자리에 있었는데 임진왜란 이후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고, 러일전쟁 무렵까지 이곳에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무희는 관에 소속된 관비였다. 리진도 다르지 않았다. 프랑댕이 촬영한 무희의 사진.

콜랭 드 플랑시가 프랑스에 보낸 보고서 '한국의 노예제도'에 들어 있던 조선의 노비문서.

최초로 공개된 콜랭 드 플랑시의 인사기록에는 그가 죽을 때까지 독신이었다고 나와 있다.

 

3

중국대륙 속의

고구려 제왕

- 이정기

 

781년, 당나라 황실에 급보(急報)가 날아든다.

당대 최강의 10만 대군이 제음으로 이동해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시작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당 조정은 경악했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사태가 기어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10만 대군의 집결지는 제음벌판. 갑작스런 병력 이동이었다.

이동 행렬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군사들의 집결지 제음벌판은

당의 동쪽 수도인 낙양까지 단 며칠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10만 대군이 노리는 것은 당 조정.

이들을 이끌며 황제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사람은 바로 고구려 유민 이정기였다.

고구려 패망 64년 후 등장한 이정기. 그것은 또 다른 고구려 역사의 시작이었다.

청주성 박물관에 걸려 있는 이정기에 대한 소개글. 이정기의 번진이 청주에 있었을 때 청주, 치주…… 등 열다섯 개 주를 장악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765년부터 776년 사이에 이정기가 추가로 점령한 산둥성 6개 주.

당시의 용교는 남부의 식량과 물산이 집결하던 운하의 도시였다. 장안과 낙양에서 필요로 하는 물자들은 반드시 이 운하를 통해 운송해야 했다.

쑤저우 시내에 '용교루'라는 건물 간판이 보인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그린 벽화 <용교별업도>. 당시 용교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고구려 유민들의 이동 경로. 고구려 유민들은 영주를 거쳐 중국 각지로 흩어져 살았다.

고구려 벽화. 말을 타고 활쏘기를 즐겼던 고구려인의 기풍은 이정기의 군대에도 이어졌다.

산둥성의 철과 동 산지. 서주, 연주 등지의 생산량이 중국 전체의 10퍼센트를 차지했다.

산둥성의 소금 산지. 해주, 밀주 등지의 생산량이 중국 전체의 50퍼센트를 차지했다.

신라와 발해의 대당 무역 경로. 등주는 발해, 통일신라, 일본의 외교사신과 무역 상인들이 반드시 거쳐 가는 곳이었다.

 

4

세조의 일등공신인가,

단종의 배신자인가

- 신숙주

 

1392년, 조선이 개국한다.

새 왕조는 4대 임금 세종에 이르러 전성기를 누린다.

그러다 역사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계유정난을 일으킨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것이다.

이에 반발한 사육신들의 단종 복위운동과 세조의 처절한 응징.

조선 초기 최대의 피바람이었다.

이 정치적 폭풍의 한가운데에 수양대군 세조가 선택한 인물, 신숙주가 있었다.

신숙주 영정. 보물 제613호.

연행도(일부). 조선 사신들이 북경을 향해 출정하는 모습.

성삼문 영정.

《보한재집》. 신숙주가 남긴 시문집.

공신당. 공신 83인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신숙주는 조선 제9대 임금인 성종의 공신으로 배향되어 있다.

신숙주가 그린 일본 지도 <해동제국총도>는 혼일강리역대국지도(아래)보다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야전부시도>(일부). 1460년인 세조 6년에 함길, 강원 양도 도체찰사 신숙주가 조선군을 이끌고 여진족을 정벌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서울시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의 묘.

 

5

20일간의 치열헀던

헤이그 장외외교

- 이준

 

1907년 7월 14일 오후 7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한 한국인이 죽었다.

고종황제의 마지막 특사였던 이준.

그는 헤이그에 온지 20일 만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헤이그에서 치열하게 외교활동을 벌였던 이준 특사.

그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비넨호프 궁전.

제2차 만국평화회의. 1907년 6월 15일.

제1차 만국평화회의. 1899년.

고종이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외교문서. 1902년 2월. 파리 주재 한국공사를 통해 네덜란드 외무장관에게 전달했다.

회의주최국인 러시아가 네덜란드에 보낸 2차 만국평화회의 초청국 명단. 명단의 열두 번째에 한국(coree)이 초청국으로 올라 있다.

2차 만국평화회의 부회장이었던 보폴트와 그가 남긴 일기. 한국의 세 특사는 보폴트를 찾아가 회의에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한국의 세 특사가 만국평회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권리를 요청하며 네덜란드 외무장관에게 보낸 서한. 1907년 7월 1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외국인 묘지에 있는 힐버트(Homer B. Hulbert)의 묘.

만국평화회의가 열리자 비넨호프 주변에 많은 시민운동가와 언론인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1면에 한국에 관한 기사가 대서특필된 1907년 7월 5일자 <평화회의보>.

만국평화회의 당시 신문에 실렸던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열강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삽화.

헤이그 시립문서보관소에 남아 있는 이준의 사망기록부.

이준의 사망 소식을 다룬 네덜란드의 <뉴코란트>.

<평화회의보> 1면에 실렸던 이준의 사진.

이준 열사의 묘. 서울 수유동 산 127번지.

네덜란드 헤이그의 뉴에이크디우 공동묘지에 있던 이준 열사의 묘적.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