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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9 공룡 - 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장 기 마샤르 지음, 양승영 옮김

1995, 시공사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009

 

차례

 

제1장 놀라운 다양성

제2장 공룡의 정체를 찾아서

제3장 공룡은 어떤 동물인가

제4장 과학자의 도전

제5장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의 공룡

기록과 증언

그림목록

찾아보기

 

장 기 마샤르 Jean-Guy Michard

장 기 마샤르는 저명한 공룡 전문 고생물학자이다. 그는 1985년 소명재단(Foundation of the Vocation)으로부터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아프리카를 탐험했다. 과학부 책임자로 프랑스에서 이루어진 국내 탐사에도 여러 번 참가했다. 그는 현재 파리 국립 자연사 박물관의 고생물학 연구소에서 육식공룡의 진화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가장 작은 체구의 콤프소그나투스(Compsognathus)가 그의 중심 연구 대상이다. 그는 공룡에 호기심이 많은 어린 학생들을 위해 강연도 열심히 하고 있다.

 

옮긴이 : 양승영

1938년 경기도 양평 출생. 서울대학교 지질학과를 졸업한 후 일본 규슈(九州)대학에서 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9년부터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지구 과학> <지구 환경 과학>, 번역서로는 <고생물학 원리> <지사학> <야외 지질학> 등이 있으며, 고등학교 <지구 과학> 교과서를 저술하기도 했다.

 

공룡은 진화에 실패한 거구의 파충류에

불과한 것일까? 지구를 통치하던 그들은 도대체

왜 사라진 것일까? 화산 폭발의 대재앙이나

소행성과의 충돌, 혹은 갑작스런

지각 변동으로 종말을 맞이했던 것일까?

이러한 물음은 공룡의 흔적이 최초로 발견됐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지구 역사와 생물의 변천사라는 비밀을 품은 채

공룡의 정체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을지도 모른다.

2억 2,000만 년 전에

출현한 공룡은 신비에 싸인 채 일시에 소멸되기까지

1억 5,000만 년 이상 모든 대륙에 군림했다.

이 먼 과거의 비밀을 줄기찬 노력은

생명의 새로운 면모를 낱낱이 보여 준다.

지층에 아로새겨져 있는 화석의 발굴을 통해 복원된

다양한 공룡, 다시 말해 '공포의 도마뱀'에 대한

20세기 첨단기술의 도전은 자못 경이롭기까지 하다.

어린이들의 상상력 속에서 다정한 친구로

살아 있는 공룡은 고생물학자들의 부단한 노력 덕분에

그 실체가 보다 명료해졌다.

공룡에 대한 자료들을 토대로 복원된 박물관의

공룡은 현실감 있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연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 공룡의 화석이

거듭 발견되고 이에 대한 탐구가 지속되어 공룡의

해부학적 구조와 생태가 서서히 제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때마다 또 다른 의문이 새롭게

제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룡을

탐구하기 위해 떠나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인류에게 크나큰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제1장

놀라운 다양성

 

공룡은 옛 자연과학 교과서에서처럼 '실패된 진화'를 대표한다기보다는 생물의 역사에서 경이로운 진화를 보여 준다. 잠정적으로 약 30여 개 과(科)로 분류되는 공룡의 화석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남북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 거의 모든 대륙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미 지구에서 사라져 버린 파충류에 대해 연구해야 할 부분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잇으며, 상당히 많은 잘못된 생각은 이제부터 고쳐져야 한다.

화석으로 공룡을 복원하려면 공룡에 대한 풍부한 해부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스테노니코사우루스공룡형인(恐龍形人) 같은 과감한 상상의 산물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콤프소그나투스의 표본이 최초로 발견된 것은 1861년 독일 켈하임 부근에 있는 석판석회암 채석장에서이다. 이 화석의 보존상태가 양호한 이유는 지층의 퇴적물 입자가 매우 고운 것과 관련이 있다.

에드워드 드링커 코프는 1866년에, 그림 왼쪽의 작은 육식공룡을 라엘랍스(Laelaps)라고 명명했으나, 1877년 미국의 오스닐 찰스 마시는 드립토사우루스(Dryptosaurus)라고 개칭했다. 왜냐하면 라엘랍스라는 용어는 이미 곤충의 학명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작은 육식공룡 한 마리가 거대한 체구의 아파토사우루스(Apatosaurus, Brontosaurus의 정확한 학명)를 공격하여 해칠 수 있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소형 육식공룡이 무리 지어 혼자 있는 대형 육식공룡을 공격했다는 것이 더욱 그럴듯하게 여겨진다.

해부학자들은 프테로사우루스(Pterosaurus)의 화석을 새나 다른 파충류와 곧 구별할 수 있었다.

찰스 나이트의 그림에는 소철류가 많이 있는 주라기 후기의 풍경 속에 세 종류의 대표적 동물이 공생하고 있다. 공룡으로서는 작은 몸집의 수각류(육식공룡)인 콤프소그나투스, 새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아르케옵테릭스(Archaeopteryx, 시조새) 그리고 날아다니는 파충류로서 람포린쿠스(Rhaphorhynchus)가 보인다.

마크 할렛은 오스트레일리아 백악기 전기의 대표적 공룡을 한데 그려 놓았다. 전면의 작은 풀구로테리움(Fulgurotherium)과 오른쪽에 있는 두 마리의 무타부라사우루스(Mutaburasaurus)가 두 발로 걷는 초식공룡을 대표하고 있다. 그뒤에 민미(Minmi)라는 이름의 세 마리의 온순한 흉갑공룡이 후면의 대형 용각류와 함께 네 발로 걷는 초식공룡을 대표하고 있다. 날카로운 발톱과 뾰족한 이빨을 지닌 육식공룡 라파토르(Rapator)가 먹이를 빼앗으려는 파충류를 쫓고 있고, 그 옆에는 날렵한 몸매의 코엘루로사우루스류(전면 왼쪽) 카쿠루(Kakuru)가 서 있다.

중생대 바다파충류는 흔히 공룡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고생물학자들은 무척 특이한 해부학적 차이로 일찍부터 이들을 구분할 수 있었다. 이크티오사우루스와 플레시오사우루스의 싸움은 19세기와 20세기 초 삽화가들이 자주 애용하던 그림의 소재였다. 이들에게는 볏이나 갈라진 혀, 혹은 작은 공 모양의 눈 등과 같이 다소 상상적인 특징이 추가되어 선사시대의 괴물들에게 잘 어울리는 사납고 잔인한 인상을 준다.

옛날부터 살고 있는 투아타라는 오늘날 사라져 가는 동물로서 그 조상은 공룡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뉴질랜드 쿠크해협의 작은 섬에 사는 살아 있는 유물과 같은 이 동물은 굴 속에 들어가 작은 무척추동물을 먹고 산다.

공룡형인의 파충류 같은 눈동자에서 발산되는 기이한 시선은 진화의 우연성에 대한 우리들의 소박한 질문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듯하다. 전적으로 상상력의 산물인 이 공룡인간은 외견상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과학적 사고와 극단적 상상력을 결합시켜 만든 결과이다.

 

제2장

공룡의 정체를 찾아서

 

인간은 항상 이상한 형태의 돌에 대하여 흥미를 느껴 왔다. 옛 그리스 학자 테오프라스투스도 조개껍질 화석에 관심을 보여 "대지는 뼈를 만들어 내고 …… 뼈로 된 돌이 있는데,"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이상한 돌이 생물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은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기존 질서 때문에 거부되었다. 오랫동안 화석은 자연 속에서 일어난 단순한 장난으로 생각되었으며 공룡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구아노돈 같은 공룡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암석 속에 기록된 정보를 잘 해독할 수 있어야 한다. 거대한 파충류의 뼈를 찾아 발굴하고 복원하는 일은 공룡이 어떤 동물이었는가를 밝혀 내려는 고생물학자의 노력의 일부일 뿐이다.

어느 문명에서나 용, 괴물, 전설적 괴수 그리고 여러 신화적 동물들이 등장하여 상상력을 자극한다. 불을 토하고 발톱과 날개 그리고 뿔이 달린 유럽의 대형 용들은 17세기 이후 과학이 발전하면서 더 이상 현실로 받아들여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1636년 안토니오 템페스타가 그린 동물처럼, 탐험가의 설명에 따라 덜 끔찍하고 훨씬 그럴듯한 가상의 동물로 대치되었다. 진짜 생명을 지닌 용, 다시 말해 공룡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는 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그리고 어떤 신화나 전설도 공룡이 지닌 다양성에 필적할 만한 것은 없었다.

로버트 플럿의 저서가 출판된 시기에는 공룡에 대한 인식이 보잘것없었다. 그때까지 화석화된 대형 뼈들은 거인의 뼈로 여겨지는 경우를 제외하면 자세히 묘사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렇게 생긴 메갈로사우루스의 이빨과 턱뼈의 움직임은 칼과 톱이 동시에 작용하는 효과를 나타내고, 이와 동시에 칼날이 이중으로 되어 있는 창의 끝처럼 이빨의 끄트머리는 먹이를 잘라 낸다. 이빨이 뒤쪽으로 굽어진 모양은 화살촉을 잡아 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단 잡힌 먹이가 어떤 식으로든지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인간이 여러 가지 기구를 응용했던 것을 연상하게 된다."

피기에가

《대홍수 이전의 세계》에서 인용한 버클랜드의 글

초기에 그린 이구아노돈과 메갈로사우루스의 그림은 오늘날의 그림과 매우 다르다. 당시에는 뼈의 해부학적 구조가 아직 완벽하게 알려지지 않아 현생 파충류를 본떴기 때문이다. 이구아노돈은 크기를 측정할 수 없는 큰 이구아나로 추정되었고, 메갈로사우루스는 대형 아프리카도마뱀과 같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가디언 맨틀이 그린 이구아노돈(아래). 19세기 중반 대중에게 현재 존재하지 않는 공룡이나 다른 선사시대의 동물을 실물크기로 복원하여 보여 주는 것 이상의 구경거리는 없었다. 리처드 오언은 조각가이자 화가인 워터하우스 호킨스에게 자기의 생각을 설명했다. 호킨스의 화실에는 대량의 벽돌, 시멘트, 목재 그리고 다양한 철재들이 여러 해에 걸쳐 오언의 지휘하에 쌓여 있었다. 1853년 12월 31일. 오언은 모형의 완성을 축하하기 위해 거행된 매우 독창적인 개막식에 20명의 인사를 초청했다. 초청객은 이구아노돈의 뱃속에 설치된 탁자 주위에서 향연을 베풀었다. 이 복원품은 1851년에 런던의 하이드파크에서 개최된 제1회 국제박람회 회장인 수정궁에 빅토리아 여왕의 명령으로 전시되었다가, 박람회가 끝난 후 교외의 시든햄 공원으로 옮겨졌다. 사람들은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 복원품은 후에 여러 면에서 부정확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나 공룡을 최초로 널리 일반에게 열린 공로는 인정된다. 그것은 현재에도 시든햄 공원에 전시되어 있다.

해부학자이면서 천재적인 고생물학자인 리처드 오언은 단순히 공룡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여기 보이는 뉴질랜드 새처럼 척추동물 화석에 대해서도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백악기 후기를 묘사한 이 그림은 즈드네크 뷔리앙의 유명한 작품이다. 이 장면의 시대를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는데, 세 종류의 공룡, 즉 왼쪽의 트라코돈(아나토사우루스, Anatosaurus), 가운데에 티라노사우루스(tyrannosaurus) 그리고 오른쪽의 스트루티오미무스(Struthiomimus)는 7,000만 년 전 같은 시기에 잠깐 존재했다.

"티라노사우루스의 등장은 다른 공룡에게 심각한 공포를 주었다. 어떤 것들은 늪 지대로 피신했고(예를 들어 트라코돈), 깃털 빠진 타조 비슷한 스트루티오미무스는 공포에 사로잡혀 위험 지역을 피해 도망갔다. 이 공포의 육식동물에 저항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선사시대 동물》, 오귀스타와 뷔리앙 공저). 그러나 오늘날 많은 전문가들은 티라노사우루스의 생활양식에 대한 해석에서 다음과 같은 의견일치를 보이고 있는데, 이 공룡은 짐승을 잡아먹기보다는 썩은 고기를 먹었으리라는 것이다.

마시는 1831년 뉴욕주의 아주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삼촌인 조지 피버디의 엄청난 재산 덕으로 예일대학에서 공부하고 교수가 되었다. 삽과 소총을 들고 마시는 화석탐사를 위해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소총은 인디언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지만, 호기심 많은 다른 경쟁자를 쫓아 버리기 위해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1840년 필라델피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코프는 지능이 뛰어났고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18세에 최초의 학술논문을 발표한 후 죽기 전까지 1,40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전재산은 공룡 화석을 발굴하는 데 몽땅 사용되었다. 아래의 그림은 그의 작품이다.

바넘 브라운은 뗏목을 이용하여 수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강 유역을 매우 효과적으로 답사할 수 있었다. 1913년에는 스턴버그와 그의 아들들도 같은 지역을 답사했으나 브라운은 이들을 견제하지 않았다. 이 지역에는 두 팀이 조사해도 될 만큼 풍부한 화석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백 개나 되는 수각류, 각룡류, 그리고 하드로사우루스의 두개골과 다른 여러 골격을 발굴했다.

저명한 고생물학자 오스본과 브라운이 1897년 와이오밍주에서 디플로도쿠스(Diplodocus)의 골격을 발견해 낸 뒤 즐거워하고 있다.

이구아노돈 두 마리가 정신없이 도망가고 있다. 벨기에 베르니사르에서 발견된 대량의 이구아노돈 골격을 설명하기 위해 당시 이구아노돈의 무리가 약탈자를 피해 한꺼번에 골짜기로 몰려들었다고 해석했으나, 오늘날에는 훨씬 오랜 기간에 걸쳐 뼈들이 쌓인 것이라고 해석되고 잇다.

지상에서 실시하는 발굴작업도 매우 힘든데, 탄광 밑바닥에서 10여 톤의 공룡 뼈를 캐내는 작업에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그리고 연구실에서 이 뼈들을 올바르게 재조립하려면, 이들을 현장에서 옮기기 전에 뼈의 배열상태를 정확하게 측량하고 그려 두어야 한다. 1882년 라발레트가 그린 이 그림은 산지에서 발견된 상태 그대로의 이구아노돈을 보여 준다. 이 화가의 작품은 매우 훌륭하여 드 포나 돌로의 업적과 함께 베르니사르의 이구아노돈을 유명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베르니사르의 공룡을 복원하고 재조립하는 데 여러 해가 걸렸다. 황철석병(黃鐵石病)에 걸린 골격을 치유해야 했으므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황철석병은 골격에 포함된 유화철이 물리 · 화학적으로 변화되어 생기는 것으로 이 병에 걸린 골격은 공기 중에서 서서히 분해되어 가루로 변하고 만다. 베르니사르 골격 화석에는 유화철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여러 가지 조치로 병의 진행을 방지할 수 있었다. 베르니사르 표본은 오늘날 벨기에 왕립 자연과학연구소 내에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거대한 유리관에 전시되어 있다. 처음 베르니사르 표본을 조립할 때에는 브뤼셀의 로얄 광장 근처 성 조르주 예배당이 작업장으로 이용되었다. 베르나사르에서 발견된 한 무리의 공룡을 통해 루이 돌로는 이구아노돈 골격의 구조와 생태를 밝힐 수 있었다. 그가 발표한 수많은 학술논문은 현재도 연구자의 참고도서로 널리 인용되고 있다.

 

제3장

공룡은 어떤 동물인가

 

자연과학의 연구대상이 모두 그러하듯 공룡도 분류되어야 한다. 더욱 정확하게 말한다면 인간은 생물들 사이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그리고 어느 생물과 다른 생물의 진화 정도를 이해하기 위해 분류를 한다. 공룡을 분류계통수에 포함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공룡의 정체를 알아내야 한다.

드로미케이오미무스(Dromiceiomimus)는 오르니토미무스(Ornithomimus) 과라는 매우 기이한 수각아목에 속한다. 타조 모양의 이 공룡은 완전한 빈치류(貧齒類)의 특징을 갖고 있어 이들의 식생활은 하나의 신비로 남아 있다. 이들은 백악기 후기에 살았는데, 그들의 뼈는 앨버타에서 발견되었다.

용반류의 골반(왼쪽)과 조반류의 골반(오른쪽).

"헤르만 폰 마이어는 현생 파충류와 달리 크고 두터운 발을 가졌다는 의미로 파키포드(Pachypods, 후각류)라고 했다. 리처드 오언은 어마어마한 체구 때문에 이들을 공룡류라고 했다. 헉슬리는 이들이 새와 비슷하다고 하여 오르니토셀리다에(Ornitoscelidae)라는 이름으로 기록했다 (고드리, 1890)." 오늘날 전문가들은 공룡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용반류, 조반류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용반류는 수각류와 용각류로 분류된다. 수각류는 2족보행의 육식공룡으로 체구와 크기가 다양하다. 용각류는 일반적으로 4족보행하는 대형 초식공룡으로 전용각류를 포함한다. 조반류는 조각류, 케라톱스(각룡)류, 스테고사우루스(검룡)류, 안킬로사우루스(곡룡)류로 분류된다.

오우라노사우루스(Ouranosaurus)의 골격. 이 표본은 파리 자연사박물관의 고생물학 교수인 필리프 타케가 1966년 니제르의 테네레 사막에서 발견한 것이다. 몸길이 7m인 이 이구아노돈 과의 공룡은 현재 알려진 조반류 가운데 유일하게 등에 '돛'을 지니고 있다.

디플로도쿠스의 골격(복제 모형)이다. 이 대형 초식공룡 디플로도쿠스의 골격은 미국의 대부호 앤드류 카네기가 프랑스에 기증한 것이며, 파리 국립 자연사 박물관 고생물 진열실에 전시되어 있다. 1908년 6월 15일에 행한 제막식에는 당시 프랑스 대통령 아르망 팔리에르도 참석했다. 이 사진은 제막식 며칠 전에 촬영한 것으로 앞줄에는 세 사람의 과학자들이 보인다. 왼쪽부터 카네기 박물관의 코그셜, 윌리엄 홀랜드, 파리 국립 자연사 박물관 고생물학 교수 마르슬랭 불이다. 공룡의 골격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이 마지막 단계에는 각각의 뼈조각을 해석하는 오랜 작업이 따라야 한다. 충실을 기하기 위해 모든 조각을 그림과 사진으로 남겨 둔다.

내용물이 그대로 보존된 콤프소그나투스의 위 화석. 공룡의 식생활을 아는 데 가장 좋은 것은 위의 내용물이다. 1971년 프랑스 남동부의 석판석회암에서 발견된 이 화석은 두번째로 발견된 콤프소그나투스인데, 먼저 발견된 바이에른 표본과 같이 위의 내용물이 보존되어 있다. 학자들은 처음에는 이 화석된 위의 내용물을 공룡의 태아라고 해석했으나, 지금은 오늘날의 도마뱀 비슷한 파충류일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엘리노어 키시의 눈부신 그림은 최근 10년 간 공룡에 대한 관심을 회복시키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키시는 공룡을 화폭에 담는 작업에서 예전의 작가들과 달리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재능에 최신 과학자료를 첨가했다. 오랫동안 키시와 공동작업을 한 데일 러셀 박사는 다음과 같은 감동 어린 말을 했다. "예술가들이 고생물학자의 눈을 가지고 그린 그림은 비전문가가 공룡의 세계를 감상할 수 있게 해주는 창이다. 옆그림에서는 오리주둥이 공룡 사우롤로푸스(Saurolophus)가 위험을 무릅쓰고 플레시오사우루스가 헤엄치고 있는 호수로 뛰어들고 있다(위). 벼슬 달린 하드로사우루스류에 속하는 히파크로사우루스(Hypacrosaurus)가 우거진 수풀 속에서 먹이를 주워 먹고 있다.(가운데) 앞다리의 크기가 티라노사우루스와 가까운 종류임을 말해 주는 다스플레토사우루스(Daspletosaurus)가 인도악어 모습의 훼두류 캄프소사우루스(Champsosaurus)를 공격하려 하고 있다.(아래)

힙셀로사우루스의 알(위) 뱀의 알(아래) 공룡의 알이건, 뱀의 알이건 간에 파충류의 알은 생물의 진화에서 비약적인 기술혁신을 증거한다. 양서류는 수중에 알을 낳는다. 그러나 파충류는 알 속에 물(양수)을 갖고 있으며, 통기성의 껍질로 보호되어 있어 물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알껍질은 단순하게 사용하고 버리는 용기가 아니라 칼슘이 용해되어 태아에 필요한 미네랄을 공급하는 영양공급원이다. 칼슘 성분이 빠져 나간 알껍질은 약해지는 데, 이로써 부화가 가능케 된다.

뷔리앙의 그림. 브라키오사우루스의 크기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그림이다. 이 공룡이 머리를 위로 들면 4층 건물의 높이에 달한다. 몸의 구조에서 보면 이 공룡이 브론토사우루스(Brontosaurus)나 디플로도쿠스보다 훨씬 깊은 물 속에서 생활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물 속에서 생활한 거대한 공룡이라는 이미지는 현재 부정되고 있다. 흉곽이나 폐가 수압에 오래 견딜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스테고사우루스의 꼬리에 달린 긴 창 모양의 가시(아래). 안킬로사우루스의 꼬리에 달린 곤봉(위). 이들 공룡의 꼬리는 중세의 기사가 사용한 무기 정도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이 무서운 방어장치는 무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를 움직이는 강력한 꼬리근육이 가장 강한 무기이다.

트리케라톱스. 케라톱스류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목깃이 짧아 목의 근육까지만 덮여 있는 것으로 대표적으로 트라케라톱스를 들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목깃이 길어 등의 중간까지 덮는다. 케라톱스 류에는 모두 뿔이 달려 있으나 크기는 종류에 따라 다르다.

공룡끼리 다투다 만든 화석. 1971년 세계 최초로 싸우다가 죽은 공룡이 화석으로 발견되었다. 프로토케라톱스(왼쪽)와 벨로키랍토르(오른쪽)가 서로 얽혀 있는 이 화석을 연구하여 벨로키랍토르와 같은 드로마에오사우루스과 공룡이 어떻게 먹이를 잡아먹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앞발로 상대의 머리를 단단하게 움켜잡고, 두번째 발가락에 달린 커다란 발톱으로 희생물의 배를 찢었다.

 

제4장

과학자의 도전

 

공룡에 대하여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 그러므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될 때마다 그때까지 알고 있던 많은 지식이 다시 고려되어야 한다. 세계의 어느 곳에선가 끊임없이 공룡이 발굴되고 있다. 그러나 완벽한 골격을 차지하기란 힘든 일이다. 전체 골격의 일부분이나 뼈조각 몇 개를 얻는 것이 고작이다. 그 순간부터 사체의 복원을 위한 기묘한 탐색이 시작된다.

디플로도쿠스의 그림.

메갈로사우루스는 2족보행의 육식공룡으로, 흔히 카르노사우루스류(육식룡)라고도 한다. 몸길이는 종에 따라 5~9m까지 다양하다. 메갈로사우루스 속에는 놀라울 정도로 잡다한 종이 포함되어 있으며 현재 몇몇 학자들이 이를 재조정하고 잇으나, 발굴된 골격이 대부분 불완전하여 분류작업이 매우 어렵다. 메갈로사우루스라는 속명을 주라기 후기의 공룡에 한정해서 사용해야 된다는 의견이 오래 전부터 있었는데, 이 제안은 공룡의 속명이나 종명의 정의를 명확하게 하자는 학문적인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매우 불완전한 뼈의 경우에는 현재 지식으로는 속명을 결정할 수 없다. 물론 종명을 결정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더 이상 분류를 모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속보다 상위개념인 과를 결정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오류를 줄이는 방법이라 생각하는 연구자가 많다.

에다포사우루스는 펠리코사우루스 류(돛을 달고 있는 도마뱀)에 속하며, 디메트로돈과 함께 원시 포유류형 파충류(공룡 이전에 번영을 누린 포유류의 먼 조상)로 유명하다. 둘 다 등에 돛을 달고 있는데, 해부학적 특징과 식성으로 구별된다. 에다포사우루스는 초식성이나 디메트로돈은 사나운 육식성이었다.

스테고사우루스.

마멘치사우루스. 마크 할렛이 그린 <도강(渡江)>. 디플로도쿠스 류에 속하는 마멘치사우루스는 중국 쓰촨(四川)성에서 발견되어 1957년 3개월 이상 걸려 발굴되었다. 골격은 완전하게 복원되어 현재 베이징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긴 목은 디플로도쿠스 류의 특징이며, 그중에서도 마멘치사우루스는 특히 목이 길다.

마멘치사우루스는 코끝에서 회초리 같은 꼬리 끝까지 전체 길이가 22m이다. 목은 19개의 상당히 긴 경추로 이루어졌고, 목 길이만 10m가 된다. 이렇게 긴 목을 움직이려면 목 부위의 근육이 매우 강력해야 한다. 이 그림은 로스앤젤레스 자연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세 명의 크룸호른 연주가>. 하인리히 알데그레베의 판화, 1511년. 그라피셰 잠룽 알베르티나, 빈

아르케옵테릭스(시조새). 독일의 졸른호펜에서 동쪽으로 20km 떨어진 곳에 있는 아이히슈테트 근처에서 1877년에 발견되었다. 이 훌륭한 표본은 독일인 실업가 베르너 지멘스가 2만 마르크에 매입했으며, 그후에는 베를린의 훔볼트박물관에 소장되었다. 현재로는 가장 오래된 새로 알려져 있는 이 동물이 최초로 발견된 것은 1860년에 하나의 깃털에서 비롯되었다. 그후 1년이 지나 아르케옵테릭스의 골격이 처음 발견되었는데, 이는 런던의 대영박물관에서 매입했다. 그후 다섯 개의 표본이 추가로 발견되었으며, 그중 최근의 것은 1987년 말에 발견된 것이다. 이들 표본은 콤프소그나투스의 바이에른 표본과 마찬가지로 1억 4,000만 년전 주라기 후기의 지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조새와 콤프소그나투스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아이히슈테트 박물관에 있는 아르케옵테릭스는 1950년에 발견되었는데, 콤프소그나투스의 새끼로 생각할 정도였으며 시조새의 골격이라고 정식으로 확인된 것은 1973년의 일이다.

 

제5장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의 공룡

 

공룡은 왜 사라졌는가? 신비스러운 소멸은 이들이 적응에 실패했다는 소박한 견해에 근거를 준다. 그러나 공룡이 언제나 안정된 생활환경 속에서만 살아온 것은 아니다. 그들이 살던 시대에도 주위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었다. 사실 그들의 기본 식량인 식물계가 변하고 대륙이 이동하던 시대에 1억 5,000만 년 간이나 존재했다는 것은 대단한 적응력을 증명한다.

플라벨라리아(Flabellaria) 화석(아래). 엑상프로방스 산 제3기 양치류 화석이다. 이처럼 충분히 감정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보존된 식물화석은 여러 가지 정보를 담고 있다. 위의 그림은 에드몬토사우루스(Edmontosaurus)이다.

봄박스 세폴티플로룸(Bombax sepultiflorum)의 꽃. 화석화된 식물 중에는 보존상태가 매우 좋아 속이나 종까지도 정확하게 감정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것도 그러한 예로서 꽃의 수술이 화석이 되어 있다. 이는 약 3,700만 년에서 2,400만 년전(신생대 점신세)에 살던 속씨식물로서 엑상프로방스에서 발견되었다. 백악기에 속씨식물이 출현하여 급속하게 발전한 것은 초식공룡의 먹이습성에 커다란 혼란을 주었음이 틀림없다.

폭우를 피해 무성한 숲으로 몸을 숨긴 파키케팔로사우루스가 독자를 응시하고 있다. 엘리노어 키시의 이 작품을 두고서 《구약성서》<창세기>에 등장하는 노아의 대홍수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난 세기 말에는 이러한 견해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음이 사실이나, 이는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신비적이다.

오늘날 홍수 때문에 공룡이 멸종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백악기 말기의 집단소멸 현상은 큰 규모의 해퇴(해수면의 저하나 지반의 융기 등으로 육지의 면적이 증대되는 현상)와 관련이 있다고 추정되기도 한다. 그리고 공룡의 소멸에 관해서는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가설이 많이 제시되고 있다.

마크 할렛의 그림 <새로운 날이 시작되다>. 소형 포유류가 트리케라톱스의 두개골을 자기 집처럼 차지하고 있다. 포유류의 천하가 도래했음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포유류는 공룡의 잔해를 밟고 세계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중생대의 대형 파충류가 쇠퇴하여 멸종된 것이 포유류가 발달한 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론도 있으나, 포유류는 공룡이 멸종되어 생긴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포유류는 제3기 초두에 공룡의 멸종으로 비어 있는 생태적 공간을 대신 점령한 것이다.

<카스모사우루스(Chasmosaurus)>.

<유독성 온천의 분출>. 장 랑가드의 《천지창조의 생물들》에서 발췌한 색판화, 1883년. 파리 국립 도서관

티라노사우루스의 골격. 미국 자연사 박물관, 뉴욕

카미유 플랑마리옹의 《인간 창조 이전의 세계》의 겉표지. 1886년. 파리

영화 포스터.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에서 따 온 어빈 알렌의 <사라진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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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