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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19. 09:50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51 萬人譜 19 사람과 사람들


高銀

2004, 창비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7



811.6

고67만  19

 

창비전작시

 

시인 고은은 20여년 전부터 한국사에 드러나고 숨겨진, 스러지고 태어나는, 추앙받고 경멸당하는, 아름답고 추악한, 떳떳하고 비굴한, 그 수많은 사람들을, 붓 대신 언어로, 그림 대신 시로, 거대한 민족사적 벽화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는 한국인이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지을 수 있고 짓지 않을 수 없는 숱한 표정들이 늘어서 있고 그들의 천태만상의 갖가지 삶의 모습들이 벅적거리고 있으며 절망과 한(恨), 운명과 열정, 기구함과 서러움의 삼라만상적 인간상들이 복작거리고 있다. 그것은 삐까쏘의 「게르니까」보다 더 착잡하고 내가 멕시코씨티의 정부청사 안에서 보았던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보다 더욱 거창한 서사를 담은 우리 한민족의 벽화를 이루고 있다. 고은은 『만인보』라는 벽화-민족사를 통해 우리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되새김질하며 그 역사를 만들어오고 혹은 그것에 짓밟힌 만상의 인간들을 사랑하며 껴안고 뺨 비비며 삶의 진의와 세계의 진수를 손가락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고은이 그린 사람들에게서 한을 듣고 그가 그린 세계에서 향기를 맡으며 그의 만인화(萬人畵)에서 세계와 시대를 읽는다. 그리고 이제, 나는 여기 그가 그려준 거대한 벽화를 보며 분노와 치욕 그리고 운명과 사랑이 점철된 그의 '역사'를 듣고 오늘의 삶을 생각한다.

■ ■ ■ 김병익  문학평론가, 인하대 초빙교수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어느 부부 / 연안 차씨 / 유해진 경위 / 토지국민학교 마당 / 오라리 / 청계천 3가 / 권애라 / 남산 언저리 / 송호식 모자 / 사명 / 도깨비 길달 / 고무신 한짝 / 토말 쌍봉이 / 김성주 1 / 김성주 2 / 고려 팔관회 / 남강전투 / 김지웅 / 남은 동생 / 천동이 / 김진열 / 현종 이후 / 남일병 / 방공호 / 상복이 / 유철 / 주명철 대위 / 김개남 / 밤행군 / 오대산 / 이만종이 / 그 무명 철학자 / 양진봉 하사 / 유관순 / 정일권 / 강성병 / 최익한 / 공서방 / 생일 / 위장결혼식 / 전태욱 / 박관혁 / 아낙 / 유상국 / 이영근 / 가막골 / 육군대위 고명곤 / 버린 이름 / 김소운 / 기황후 / 어부 피용구의 저승 / 한 여학생의 생애 / 오늘의 밥상 / 제비꽃 / 부청하 / 모본왕 / 하종숙 / 박영덕 / 귀신 여인 / 임환섭 / 강경 / 한재덕 / 대야성 함락 / 영랑 용아 / 키무라 타께오 / 절 / 조옥자 / 김정길 / 배순호 경사 / 삼태기 스님 / 타찌하라 세이슈 / 이기붕 / 이영원 / 임지훈 / 김소희 / 그의 행적 / 김춘길 소위 / 연등회 / 박천노인 / 이희주 / 오장원 / 홍제동 화장장 / 첫눈 / 을동이 / 아기 / 이달수 / 앨리스 현 / 외아들 상권이 / 그 아기 / 백형복(白亨福) / 서상훈 씨 / 길선주 목사 / 김규동 / 임경술 / 어느 어머니 / 할망구집 / 완월동 / 대륙의 10일 / 이장돈 마누라 / 오충남 / 어느 제자 / '폐허' 동인 / 미친 사내 / 관악산 연주암 / 한탄강 / 그 중학생 / 꼬마 존 / 장덕운 / 팔당 노인 / 을지로 1가 / 그들 / 만명부인 / 편종수 / 추교명 / 통불 / 장현 / 박근상 / 만성이 / 모함 / 지처사 / 영덕포구 / 이삼봉이 마누라 / 어린 안인석 / 민상기 / 을불 / 9 · 28수복 직후의 어느 풍경 / 조명희 / 김인종 / 남포동 거지 / 옥선이 / 인애 / 춘삼월 / 서면 주막 / 을지로 1가 파출소 / 성균관 과거장 / 환생 / 최훈장 / 그 피리소리 / 유진태 / 정수환 / 향도계 지길중 / 허윤석 / 이계선 / 이형도 중령 / 광복이 / 쇼리 팍 / 탄생 / 한순례 여사 / 신상봉 / 해인사 인민위원 / 두 청년 / 이정송 / 채호석 / 이일웅 / 임후남 여사 / 장명구 / 술꾼 윤구연 장수


유관순


충청도 천안 목천 만화천 감돈다

열여섯살 소녀 유관순

매봉에 올라

그녀가 보낸 봉화에 호응

천안

안성

진천

청주

연기

목천 여섯 곳을

산봉우리마다 봉화가 오르는 감격에 벅찼다


그뒤 아우내장에 모여든 만세소리

일본 헌병의 발포

일본 경찰의 폭거로

조선의 남녀노소 쓰러졌다


유관순 체포되었다

총대 얻어맞아

어린 등뼈가 튀어나왔다

젖가슴 칼에 찔려

옆구리 등짝으로 관통 피고름이 나왔다

자궁도 파열


그런 몸으로 감방에서 만세를 불렀다

다음해 1920년 10월 12일 새벽

먼동 튼 철창 바라보며 눈감았다

일제는 유관순 일가의 호적을 아주 말소시켰다


정일권


어린 시절 창호지 찢어진 가난 잊어버려라

북관 돌무지 출생지 떠난 이래

행복밖에 모르는 평생

암흑의

식민지도 행복

해방도 행복

전쟁도 더더욱 행복

전선 시찰의 밤엔

후방에서 스리쿼터에 미녀가 실려왔다

전쟁 이후도 내내 행복


이런 사람도 한국사람이었다


기황후


한 처녀의 커다란 운명 있다 사막 꽃이 아니라 사막이었다


1333년 원나라 공녀(貢女)로 끌려갔다

울음의 길

한나라 도읍 연경 대궐

고려 출신 환관 고용보의 눈에 번쩍 들었다

울음 접고

궁녀의 길 익혀갔다

몽골어

몽골 풍습을 익혔다

고려 풍습을 애틋하게 익혔다

용꿈 뒤 별궁에서 순제의 눈에 들었다

운우지정이 깊었다

황후 타나시리가

온갖 학대를 다했다


황후 축출의 정변이 일어났다


기궁녀는

순제의 아들 아이시리다라를 낳았다

황후 책봉

그로부터 고려여인 기황후가

원나라 전권을 떡 주무르고 양념 주물렀다

속국 고려에서도

그녀의 친정에서 권력을 주물렀다


고려 금강산 장안사도

원나라 황실 원찰이 되어 범패소리 바라소리 쉬지 않았다

보덕암도

기황후의 원찰

묘향산 보현사도

원나라 태자의 원찰이 되었다


고려 충숙왕은 기황후의 하인이 되어

기황후의 서찰 분부를 엎드려 받드는 변방 제후였다


부청하


제주 북촌

사람들 3백20명이 잡혀왔다


할머니가 말했다

네 아버지도 죽었다

너마저 죽으면 대가 끊긴다

너는 이 할미 치마 속으로 들어오너라


싸이렌이 울렸다


일제히 총소리가 났다

모두 일어섰다가

풀썩

풀썩 쓰러졌다

비명도 몇개 없었다


부대장은

막 제주도에 상륙한 병사들마다

사람 죽인 경험이 없어서

사람 죽이는 경험을 위해서

3대대 전원에게

총살작전을 명령했다


죽은 할머니의 치마 속에서

손자 살아 있었다


부청하

혼자 웃자라며

할머니가 보고 싶으면

아버지

어머니가 보고 싶으면

난바다 저쪽까지

마구 헤엄쳐갔다


중학교 중퇴하고 밀선을 탔다 이마 주름 여섯개였다


모본왕


고구려 5대 모본왕

무엇하러 이런 사람이 나오는가

무엇하러 이런 왕이 나오는가

모를 일


신하의 여인을 빼앗고

백성의 물건을 빼앗았다

남의 땅도 빼앗아

모본벌을 늘여놓았다


날마다 백성 괴롭혀야

사는 보람

밤마다 신하 괴롭혀야

왕의 보람

참다참다 늙은 신하가 울며 간하였다


폐하 부디 선정을 베푸소서


알았소 내가 깊이 생각하겠소


뜻밖에 이 대답을 들은 신하

죽음을 각오하고 간한 터라

기쁨 넘쳐 어전을 물러났다

왕이 활을 쏘아 돌아가는 신하의 등을 뚫었다


뒷날 신하 두로가

포학무도한 왕의 가슴에 탈을 박았다

다음날 아무도 시해라 하지 않았다

6대 왕좌는 모본왕의 아들이 아니라

다른 왕손을 추대했다 비로소 나라가 제자리에 섰다


이기붕


남을 모르는

이승만 집사로 시작해서

나를 모르는

이승만 집사로 끝난

어느 그림자


여기 끼니 거른 듯 슬픈 사진 한 장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