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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05'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6.05 2014-061 제주도 음식
  2. 2014.06.05 2014-060 보름달이 뜨면 배고픈 여자

2014-061 제주도 음식

 

글 / 김지순●사진 / 안승일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36

 

082

빛12ㄷ  214

 

빛깔있는 책들 214

 

김지순-------------------------------------------------------------------------

수도여자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제주전문대학 가정과 전임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 제주도 지부장, 김지순요리학원 원장, 제주전문대학 관광호텔조리과 전임교수로 있다.

 

안승일-------------------------------------------------------------------------

194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 사진학과를 중퇴하였다. 1969년과 1975년 두 차례에 걸쳐 '산악사진전'을 가졌고, 1995년 일본의 이와하시와 함께 '백두산 2인전'을 열었다. 1977년부터 '그린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산악사진가회 회원으로 있으며 사진집으로는 「산」(1982) 「삼각산」(1990) 「한라산」(1993) 「백두산」(1996) 「굴피집」(1997) 등이 있다.

 

|차례|

 

머리말

제주도의 자연 지리적 환경

알뜰하고 소박한 식생활

제주도의 고유 음식

절기 음식과 의례 음식

맺음말

부록 - 부엌 세간

삼성혈  제주 개국 신화의 발상지로 고, 양, 부씨의 시조인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세 신인이 솟아났다는 구멍이다.

천지연 폭포  폭포의 규모나 경관이 뛰어나 관광객들의 발길을 묶어둔다. 한여름에도 서늘한 냉기가 느껴지는 폭포 주위에는 상록수와 난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오름  제주도에서는 화산의 중턱이나 기슭에 새로 분화하여 생긴 기생화산을 오름이라고 부른다.

성산일출봉  제주도의 동쪽 끝머리에 위치한 기생화산으로 영주십경 중 제1경인 성산일출로 유명하다.

한라산  한라산은 제주도의 중앙에 솟아 있는 화산으로 남한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제주 전역을 지배하는 한라산은 제주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이자 마음의 의지처 역할을 한다.

메밀밭  하얀 꽃이 충성한 제주도의 메밀밭은 관광객들에게 서정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제주 사람에게는 생존 문제와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곳이다.

해녀  밭일에 물질에 집안일까지, 제주 여인들은 자신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힘겨운 생활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왔다.

빗물받이  먹을 물이 귀하였던 제주도에서는 한 바가지의 물이라도 헛되게 쓰지 않았다. 먹을 물은 길어 왔지만 그 외의 생활용수는 빗물을 받아 사용하였다.

허벅을 지고 물을 길어 오는 아낙  제주도에서는 물을 긷기 위해 몇 킬로미터씩 걷는 것이 보통이다. 허벅을 진 제주 여인의 모습은 제주를 대표하는 풍경 중의 하나이다.

낭푼밥상  다른 지방과 달리 제주에서는 밥을 가족 수대로 따로 뜨지 않고 낭푼이라 부르는 놋그릇 하나에 담아 밥상 가운데 두고 가족들이 같이 먹었다.

톳 채취  밥이나 국, 반찬에 두루 넣어 먹을 수 있는 톳은 제주도의 중요한 저장 식품 가운데 하나이다.

동지짐치  겨울이 지난 후 김치가 시어져 맛이 없어질 때쯤이면 싱싱한 동지나물이 나와 산뜻한 봄을 느끼게 한다.

호박잎국  다른 야채에 비해 부드럽고 소화가 잘 된다.

자리물회

자리돔을 제주에서는 ‘자리’라고 부른다. 제주 가까운 바다에서만 잡히는 생선 가운데 하나로 5월과 8월 사이에 많이 잡힌다. 특히 알을 배고 있는 시기인 음력 5월에서 6월 사이가 가장 맛있다.

자리는 강회, 물회, 구이, 조림, 젓갈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해 먹지만, 시원하면서도 진한 국물맛이 일품인 자리물회가 별미로 꼽힌다.



-. 자리물회 만들기

재료/ 자리, 오이, 파, 깻잎, 미나리, 부추, 풋고추, 재피잎, 마늘, 토장, 초고추장이나 고춧가루, 깨소금, 식초, 후추, 참기름, 설탕

만드는 방법/

1. 자리 손질하기 : 비늘을 긁어내고 양쪽 지느러미를 잘라버린다. 머리는 눈 있는 쪽으로 내장 있는 데까지 비스듬히 자른다. 꼬리는 자르지 않는다. 이렇게 손질하면 못 먹는 내장이 제거된다. 손질한 자리를 살짝 씻어 머리쪽은 곱게 다진다. 몸쪽은 등쪽으로 어슷썰기를 하면 가슴의 작은 뼈가 잘게 잘라진다.
2. 썰어놓은 자리에 식초를 약간 뿌려둔다.
3. 오이는 채 썰고 다른 야채들은 잘게 썬다.
4. 양념에는 꼭 토장을 써야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재피잎은 향도 좋고 비린내도 가시게 하는 야채다.
5. 자리에 모든 야채와 양념을 넣고 무친 후 물을 붓는다.

우럭콩조림  콩에 밴 우럭의 맛이 구수한 우럭콩조림은 영양가가 매우 높은 음식이다.

구살젓 영양이 풍부한 구살젓은 밥에 비벼 먹기에 좋다.

구쟁기구이  소라를 그대로 불에서 구우면 되므로 특별한 손질이나 양념이 필요 없다. 먹을 때는 쓴 부분을 빼고 먹는다.

전복죽  전복은 오래 전부터 뛰어난 맛과 영양을 널리 인정받은 귀한 음식 재료이다. 전복죽은 임산부나 어린아이, 노인, 환자의 영양식으로 인기가 높다.

 

보리쉰다리

보리쉰다리는 제주 사람들이 식생활에서 보여 준 알뜰한 지혜의 산물이다. 여름에 보리밥을 먹다가 그대로 두면 쉬기 쉬운데 제주 사람들은 이것을 버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다른 음식으로 만드는 생활의 지혜를 보여 주고 있다.

재료  보리밥, 누룩.

만드는 법  하루나 이틀쯤 지난 보리밥이 부패하기 시작하면 밥에 손가락을 넣어서 쑥 들어갈 정도가 되었는지 살펴본다.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가 되면 보리밥에 물과 잘게 부순 누룩을 넣고 발효시킨다. 여름에는 하루나 이틀 정도, 겨울에는 5, 6일 정도 발효시킨다. 밥이 발효되어 뭉글뭉글하게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이것을 체로 걸러서 끓여 마신다.

설탕을 첨가하기도 하는데 설탕의 양에 따라 신맛이 조절된다. 기호에 따라 끓이지 않고 먹기도 하는데 끓일 때보다 새콤한 맛이 더 강하다. 이 고장 사람들이 여름에 마실 수 있었던 유일한 음료이며 남녀노소 구별 없이 누구나 즐겨 마셨다.

갈치호박국  가을갈치에 가을호박으로 끓인 갈치호박국은 영양이 풍부하고 맛이 좋아 귀한 손님이 오면 대접하는 음식이다.

고구마차조밥  곡식이 귀한 제주도에서는 고구마 등으로 밥의 양을 불러 허기를 채웠다.

꿩토렴  꿩의 가슴살로 만든 꿩토렴은 먹는 방법이 샤브샤브와 비슷하다.

오메기술

제주고유의 술은 제조방법에 따라 ‘닦은 것’과 ‘생으로 한 것’ 두 가지가 있다.

닦은 술은 누룩으로 빚어 익혔다가 고소리에 내린 증류주인 ‘소주’가 있고, 생으로 한 것에는 감주, 청주, 탁주가 있다. 일반적으로 소주와 탁주를 많이 먹었다.
‘골감주’라고도 부르는 감주는 가장 귀하게 여기는 술이었다. ‘골’은 단맛을 내는 엿기름을 일컫는 것이다. 감주는 제사나 명절 때 제주로 올렸다.

청주는 좁쌀가루로 빚은 오메기술에서 떠낸 술이다.
노릇노릇한 기름이 위에 도는 청주는 귀하게 여겨 잔치, 제사, 굿 등에 쓰이고 ‘탁배기’라 부르는 탁주는 농주로 이용했다. 순 곡주여서 영양이 풍부하고 특별한 안주 없이도 마실 수 있는 술이다.

차조로 빚는 오메기술은 쌀로 빚은 술과는 달리 좁쌀의 독특한 양기와 새콤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허기나 갈증을 없앨 뿐만 아니라, 피로회복에도 좋다. 오메기술은 1983년 국세청에서 제주도지방민속주로 지정했다.

-. 오메기술 만들기

오메기술은 10월에서 1월 사이에 만드는데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는다.

재료/ 차조가루와 누룩을 3대 1의 비율로 준비한다.

만드는 방법

1. 차조가루를 반죽해 둥글게 빚어서 가운데 구멍을 내고 끓는 물에 넣어 삶는다. 이때 솥 밑에 떡이 눌어붙지 않게 잘 저어준다.
2. 떡이 익으면 물 위로 떠오르는데, 차례로 건져서 뜨거울 때 떡 삶은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잘 푼다.
3. 누룩을 잘게 부수어 넣는다. 좁쌀의 양이 3이면 누룩의 양은 1이 되도록 한다.
4. 된죽보다 조금 묽게 잘 섞여진 반죽을 술독에 넣고 뚜껑을 덮는다.
5. 온도의 변화가 적도록 옷이나 이불로 싸서 한 달쯤 발효시키는데, 잘 발효되도록 하루에 몇 차례씩 저어준다.
6. 어느 정도 발효돼 술이 괴기 시작하면 덧술을 한다. 발효되는 과정에서 위의 것을 청주라 하고 밑에 있는 것을 탁배기라고 한다. 한두 달 뒤에 먹기 시작한다.

몸국(모자반국)

제주에서는 모자반을 ‘ㅁ·ㅁ’ 이라고 한다.
제주에서는 큰일이라고 해서 혼례식이나 장례식, 소기, 대기 등에 돼지를 잡는다. 큰 가마솥에서 돼지와 순대를 삶고 나면 국물은 진한 육수가 된다. 이 육수를 가지고 국을 끓인다. 모자반은 지방을 흡수하고 비계의 역한 냄새를 없애주므로 많이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는다.
혼례식의 잔치 전날인 가문잔치에도 국은 꼭 먹는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영양이 풍부한 몸국은 마을사람들의 구수한 인정을 느끼게 하는 음식이다.

국 만들기
재료/ 돼지고기 삶은 국물, 모자반, 김치, 미역귀(돼지 내장인 장간막), 소금, 후추, 메밀가루나 보릿가루 또는 밀가루

만드는 방법

1. 모자반은 말린 것을 빨아 사용하는데, 제철일 때는 데쳐서 사용하기도 한다. 햇몸으로 끓인 국은 ‘몸국’ 이라 해서 별다른 맛으로 친다.
2. 돼지를 삶고 난 육수에 모자반을 넣고 김치도 있으면 약간 넣고 돼지내장인 미역귀를 썰어 넣어 끓인다.
3. 메밀가루를 푼다.

느르미전  제사상에 올리는 전으로 실파와 고사리가 주재료이다.

빙떡  메밀의 담백한 맛과 속재료로 사용한 무채의 시원한 맛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낸다. 빙떡을 지질 때 감귤이 옆에 있거나 보관중인 메밀가루 옆에 감귤을 놓아 두면 빙떡이 잘 지져지지 않는다고 한다.

곰박

양념단지(네성제단지)

구덕에 담긴 허벅

 

 

 

posted by 황영찬

2014-060 보름달이 뜨면 배고픈 여자

 

안숙경 시집

2007, 천우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03281

 

811.6

안56보

 

첫 월경이 터진 날부터 보름달을 그려 놓고, 그 안에 맨드라미를 심었다.

꽃이 필 때마다 헛꿈인 줄 모르고 꿈만 키웠다.

가슴은 보름달만큼 커지고, 눈은 작아지고, 귀는 멀어지고, 손발은 떨어져 나간다.

입만 살아서 골목을 죽이고, 길을 만들고 싶은 맨드라미는 울다 웃다 족보에 갇힌 술꾼이 되었다.

아버지 닮은 발가락은 떠도는 별이 되었다. 치매에 걸린 유년의 목걸이만 가슴을 치고 있다.

 

안숙경 詩人

 

부산 출생

쥬리아 소네트 공모전 동상(1993)

『문예한국』 「화장을 지우고」로 등단(1993)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시상문인 회원

시인의 세상 초대작가

공저시집 『사랑의 노래 소네트』

             『빈 가지에 이는 바람소리』

 

주소 :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원미2동 184-107

         청림파크빌라 나동 301호

이메일 : sundance425@hanmail.net

 

차례

 

■ 시인의 말

 

1 보름달이 뜨면 배고픈 여자

나 / 숫자판에 없는 번호표 / 밤…춤 / 빵 / 보름달이 뜨면 배고픈 여자 / 젖몸살을 앓는 여자 / 모자 속에 갇힌 여자 / 저 별이 위독하다 / 내 사랑 황소자리는 잠들고 / 아스피린 두 알 / 이 가을엔 삼나무 숲에 숨고 싶다 / 돼지꿈을 꾸고 싶은 날 / 아니면 말지 / 바람이 바람나면

 

2 골목 안의 죽음은 신문에 샬리지 않는다

어딘가에 /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 뒤꿈치가 권태로운 오후 다섯 시 / ?실화입니다 / 그래도 날개가 있는데 / 첼로 / 모기 / 바퀴벌레 / 늦가을 저녁 / 가을 남자 / 길에게 묻다 / 인사동 만다라 / 시(詩)방 / 골목 안의 죽음은 신문에 실리지 않는다 / 박쥐 / 당분간은

 

3 사주 도둑은 없다

사주 도둑은 없다 / 추락한 손금 / 전화가 묻는다 / 사철나무의 노래 / 연(緣) / 업(業) / 맛있는 죽음 / 맨발로 아침을 부른다 / 마침표 화가와 쉼표 여자 / 기억에도 없는 날들로 / 얼지 마 / 비상구가 없다 / 한번 흔들어봐 / 이사 가고 싶다 / 이 시대의 귀신

 

4 서울 집시, 2006

11월의 꿈은 바람도 피해 간다 / 봄비를 밟으면서 / 삼팔따라지 / 야단법석 · 1 / 야단법석 · 2 / 야단법석 · 3 / 야단법석 · 4 / 야단법석 · 5 / 정동진 / 방패연 / 아쟁 산조 / 신들린 뒤꿈치 / 너름새에 흥을 박고 / 노을로 태어난 춤꾼 / 서울 집시, 2006

 

5 위장은 춥다

오월의 숲 / 위장은 춥다 / 가을은 / 통조림 음악 / 황지우 조각전(展)에 부치다 / 달팽이 / 밥그릇 / 귤은 이 맛이 아니야 / 그는 · 1 / 그는 · 2 / 그는 · 3 / 이웃 / 지하철 2호선을 타본 적이 있나요 / 유리창에 핀 백합 / 어금니가 흔들린다 / 푸닥거리 / 화장을 지우고 / 병실에서 / 수제비에 관한 기억 / 거울 / 한 방울 안약 / 사철나무의 노래 · 3 / 밤의 기별 / 죽었니, 살았니 / 출입 금지 / 홀로 춤을

 

…춤

 

벗었지 모두 벗어 버렸지 가슴 한쪽에서 보라색 무덤이

커지고 있는 걸 느꼈지

 

꿈에 시달리는 기타 울음을 달래려고, 발이 예쁜 그 여자는

맨발로 춤을 추지

 

열매에 빛을 저장한다는 일월 달밤에, 인디언 소녀처럼

긴 머리 팔랑거리며 춤을 추지

 

생명을 수혈받은 팔과 다리는, 별꽃이 만발한 별밭으로

날아다니며 춤을 추지

 

보름달이 뜨면 배고픈 여자

 

   첫 월경이 터진 날부터 보름달을 그려 놓고, 그 안에 맨드라미를 심었다. 꽃이 필 때마다 헛꿈인 줄 모르고 꿈만 키웠다. 가슴은 보름달만큼 켜지고, 눈은 작아지고, 귀는 멀어지고, 손발은 떨어져 나갔다. 입만 살아서 골목을 죽이고, 길을 만들고 싶은 맨드라미는 울다 웃다 족보에 갇힌 술꾼이 되었다. 아버지 닮은 발가락은 떠도는 별이 되었다. 치매에 걸린 유년의 목거리만 가슴을 치고 있다.

(아아 가슴만 살아서 움직이네)

 

내 사랑 황소자리는 잠들고

 

노인네 씻기고

젊은 애 깨우고

주변의 초상화를 닦고, 쓸고

하루는 멀고, 내일은 지루하고

카페인에 담금질하면서

삶의 풍경에 주리를 뜰면

혼자만의 놀이에 하품이 비명이 된다

 

비틀어 잠가도 새어 나오는 수돗물처럼

흐르는 꿈에서 썩은 사과 냄새가 난다

 

토하는 일상의 권태로움

리듬을 타고 책 보따리 품었다 쌓았다

먼지로 가슴을 적시면

폐병 말기 환자처럼 기침이 나를 깨운다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내 안에서 펄떡이는 것들을

냄비에 안치고 서서히 고아내는 일

그것이 오후 4시에 해야 하는 일

제 몸 끓여가며 불과 싸우는 건

체념이 아니고

길들여가고 있는 한낮의 햇살 같은 것

냄비 뚜껑이 달그락거리는 건

물안개처럼 피어오르는 희망 같은 것

 

끓고 있는 냄새가 방 안 가득 채운 동안

젓가락이 필요 없는 국물은

또 다른 이름으로 7시를 만난다

 

땅거미가 찾아온 창문 너머

잠깐 눈 맞춤 했던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첼로

 

젖은 살결처럼 흐르는 아다지오

잿빛 그리움 타고 스며든다

자색 등꽃 터널을 빠져나온 나비 한 마리

구름에 떠밀리어

이슬로 바람 카고 흐른다

음(音)의 무게로 끊어진 혼자만의 날갯짓

금 간 손바닥으로 시린 가슴 쓰다듬으며

짙은 비음으로 깨우는

오늘의 장애, 내일의 장애

 

시(詩) 방

 

늘 깨어 있어 밤이 없는 방

책벌레가 춤을 추면 연필이 추임새를 넣고, 종이가 소리를 한다

진통은 신이 난 듯 산달을 채근한다

지우개로 지우고 싶은 그 방은, 자음과 모음이 꽃으로 피는가 하면

곧 시들기도 한다

 

전화가 묻는다

 

집으로 전화를 한다

울리던 신호음 끝나고

- 지금은 외출 중이니 말씀을 남겨 주십시오 -

또 다른 목소리는 남겨지지 않았다

외로움이 똬리를 틀고 있는 전화기

피아노곡 유령이 살고 있는 방

목소리의 유령이 녹음되고 있다

만질 수 없는 음(音)이 손가락으로 들어와

카타쥘리처럼 굳은 몸을 두드린다

불행에 맞추어 방을 슬프게 하는 조명들

울음에 맞추어 방을 눈물 젖게 하는 소리들

지나가는 여인 2가 욱음을 던져준다

 

평생은 얼마 만큼인가

전화가 묻는다

 

이사 가고 싶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신음 때문에, 방바닥은 갈라지고, 시(詩)는 버려지고, 머리카락은 까치집을 짓다 허연 가루를 밤새도록 깔아 놓는다. 긁어 부스럼 만든 손가락은 연필을 부러뜨리고, 절망은 벽을 타고 창문을 넘다가 피 흘리며 짜증과 욕설로 원고지를 찢는다.

 

   왼손은 왼발을 찍고, 오른손은 오른발을 찍는 나를 처형시키는 다락방에는 음악만 살아서, 트럼펫이 또 한번 죽여준다. 항아리 속에 갇힌 빗물처럼 부패한 감성.

 

   예매가 필요한 시어(詩語). 줄서기를 포기한 절름발이 시간 탓이야, 언젠가는, 언젠가는 되풀이하며, 게으른 미래를 점(占)치는 불길한 다락방.

 

야단법석 · 4

- 그냥 시인의 장례식

 

이 세상아 나는 빈손으로 간다 공수래 공수거

오복은 물복이다 술 석 잔은 살아도 석 잔, 죽어도 석 잔

간다 간다 한날한시를 모르는 세상아 춤을 추어라

산 사람 마음 풀고, 죽은 사람 마음 풀어

도깨비타령 진양조로 칠흑 같은 세상 가르네

한바탕 놀음으로 춤을 추어라

이 세상아 고부라지게도 질긴 세상아

 

꽃상여를 타고 떠나는 길손아

첫 잔은 사랑을 기억하는 맛이오

둘째 잔은 시(詩)의 행(行)을 가르는 맛이오

셋째 잔은 묶이고, 벗기고 푸는 맛이오

가오, 가오, 그냥 가오

폭죽을 터뜨리는 오월의 장미에 누워서

 

너름새에 흥을 박고

 

- 으이, 얼시구 -

 

고수의 추임새에

자귀나무에 앉아 있던 나비

노랑머리 풀어헤치고 요사를 떤다

쟁쟁 울리는 바람결

계면조로 풀리더니

두레박에 숨어 있던 어제의 내가

치마로 얼굴을 가리고 춤을 춘다

신명을 연필도 장단을 맞추고

소리꾼 북채 휘두르니

흥에 젖고 땀에 젖은 오늘의 詩가

나비 되어 날아다닌다

 

오월의 숲

 

나무는 서로 말한다

천년을 돌아 그 자리에서 약속도 없이

비 내리는 오월에 웃음으로 만나고 있다

선명한 사랑으로 젖은 잎사귀는 숲이 되었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만나는 크고 작은 나무 사이로

구름이 떠돌아다닌다

고요와 함께 내리는 비에 젖은 해맑은 그리움은

부풀어 오월의 마지막을 아쉬워한다

마음과 마음 사이에 생긴 삶의 산등성이를

걸어서 퉁퉁 부어오른 발등

나무에 기대어 젖은 잎으로 얼굴을 숨긴다

나무는 말한다

누구나 등에 지니고 다니는 인연으로

사람은 점점 작아진다고

몸 안으로 밖으로 굴러다니던 바퀴는

삶의 은유로 길을 트는 나무 사이로 굴러간다

완전한 자유로 숲은 하늘을 덮는다

 

화장을 지우고

 

누군가에 의해 다리는 잘리고

그 눈길은 심장을 가르고

입술을 트게 만들었다

 

떠도는 숨결은

숨겨진 또 하나의

껍질을 벗긴다

 

화장을 지운 얼굴은

속까지 드러내며

세수를 한다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가지런한 눈썹은

눈 뜨기를 거부하며

손바닥에 눈물을 심는다

 

골목 안의 죽음은

신문에 실리지 않는다

 

새벽 5時인지, 오후 5時인지 판토마임을 하는 세상

손짓, 발짓은 허무의 개그였다

허연 거품으로 몸치장을 하고

어둠의 박자를 긁어내듯 블루스로 움직인다

 

뼈까지 뒤틀리는 하루하루가

장애로 365日을 모두 삼켰다

 

네가 인제는 지겨워

치매 중인 세상 혼자만의 연기는 서툴다

만들어진 비극에는 재수 없는 이유만 등장했다

아니면 말지

 

못숨 걸고 덤빈다는 건 거짓말이다

울지 마 눈물은 마음을 마르게 하지

심장 뛰는 대로 살게 내버려둘걸 그랬나

즉석 사진기에 버려진 사람들의 증명사진에

내 얼굴이 찢어져 있다

 

모든문예지의등용문은전쟁중이다창칼에목이잘려도골목안의죽음은신문에실리지않는다

 

사주 도둑은 없다

 

   맥반석에서 구워지는 한치처럼, 가을 햇살이 가슴 속에서 구워지고 있는 종로에서, 늘 소풍 가는 여자가, 보따리를 풀고, 피리를 불며 춤을 추고 있다. 볼장 다 본 사람들만 모여 박수를 치고 있다. 며칠째 세수도 안 한 그들은 마음 안에 숨겨 논 것을 토하며, 생명이 된 눈물의 춤을 추고 있다. 이불로 포갰던 신문들이 찢어지며, 바람개비로 돌고 있다. 가난은 게으른 자의 책임이라고, 기사를 썼던 기자의 얼굴이 찢어져 종로 거리를 돌고 있다.

 

   가장 많은 이웃을 가진 시청 지하도의 식구들이, 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어젯밤 자고 간 여자를 보내려고 박수를 치고 있다. 그 소리에 나무젓가락들이 쏟아지며, 다른 세상의 다리를 만들고 싶어 한다. 전생에 안개를 사랑했다가, 안개를 임신해, 다시 거리의 안개로 태어난 그들은 집을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구워진 햇살로 다리를 감싸고 있는 그들은.

 

서울 집시, 2006

 

효자동 단발머리로 6년, 긴 머리로 4년을 걸어 다니면서도

4 · 19도 모르고, 5 · 16도 모른다

하이네 베끼고, 슈베르트 귀에 걸고, 니이체 가슴에 품고

세상은 몰라요 다

 

산(山)이 한 번 넘자 북한산이 보였고

산(山)이 또 한 번 넘자 이순신 장군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날마다 경례를 하면서 광화문을 떠돌았다

꿈과 이상이 소박맞고, 사람들에게 뺨 맞고, 화가 찬 마음 풀려고

화간을 쓰고, 화풀이 굿을 벌리고 싶어, 경복궁 은행나무를 안고 다녔다

 

빌딩숲에 갇혀 숨이 막혀도

실존의 단비 자판기 커피 맛과, 문화회관 계단에 앉아

오후 햇살의 게으름을 만나는 여유로 살고 있다

 

삶의 숨결 하나가 트였다

청계천에 한을 품었던 아들아 풀어라

둥글둥글 어울려 서로 도와 축축하게 살자

박수를 쳐라, 웃다 보면 즐겁고, 울다 보면 슬프다

사람들아, 서울아

신분을 죽여라 감탄사를 아끼지 마라

세상이 춤을 추고 있지 않니

긴 치맛자락에 붙어 다닌 독한 스트레스가

춤을 추고 있지 않니

 

위장은 춥다

 

밥알이 위벽을 부순다

구역질을 비린내가, 쉰내까지 게워내며

망가진 위장을 안고 병원 침대에 눕는다

빨간 꽃이 만발한 위장

신물로 채운 하루하루가

화살표 없는 위장은 하수구가 되었다

밥맛없는 삶은 밥만이 좋은 무기

예민한 위장을 무시한 죄

 

약 봉투를 들고 5층 계단을 내려올 때까지

귀찮게 따라다니는 구역질

삶을 기만한 죄

 

거리는 좋은 시절 만난 듯 가지마다 새순이 돋았다

봄의 설법으로 시방세계가 춤추는 바람으로 가볍다

그 바람결에 보이는 삶은 한 움큼의 절망이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