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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5. 16. 10:10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049 수원성

글/김동욱●사진/손재식

1996,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3066

082
빛12ㄷ 24


김동욱------------------------------------------------------------------------

공학박사.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 대학원 과정을 수료했다. 경기대학교 부교수로 있으며, 문화공보부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이다.


손재식------------------------------------------------------------------------

신구전문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했고, 대림산업 홍보과와 대원사 사진부에서 근무하였으며,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85년 유럽 알프스 촬영 등반, 87년 네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촬영 등반 보고전을 가진 바 있으며, 사진집으로 「한국 호랑이 민예 도록」이 있다.

|차례|

사진으로 보는 수원성
축성의 동기
축성 계획과 조영의 실제
수원성의 여러 시설들
화성행궁
오늘의 수원성
수원성의 특성과 의미


▲ 장안문
서울을 향한 북문이다. 돌로 높이 쌓은 사다리꼴의 융축(陸築) 가운데에 홍예문을 내고, 육축 위에는 2층으로 된 장중한 누각을 세웟다. 앞쪽에는 반원형의 옹성을 쌓았다.

▲ 동쪽에서 본 장안문

▲ 서북 적대(敵臺) 성문 옆에는 성벽보다 돌출된 적대가 있어 적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게 했다.

▲ 장안문 홍예 부분 「화성성역의궤」에 의하면 장안문은 높이가 17척 5촌, 너비 16척 2촌, 두께는 40척이다. 이 문의 아치는 두 짝의 나무 문을 달고 큰 나무 빗장을 걸었다.

 ▲ 오성지 옹성 아치 상부에 설치된 누조(漏槽)로, 적이 성문에 불을 질러 파괴하려 할 때를 대비하여 만든 것이다.

▲ 판문 수원성의 문루는 사면에 판문(板門)을 대고, 문에 짐승이나 태극 무늬 중의 하나를 그려넣은 것도 특징이다.

▲ 팔달문 남쪽을 향해 난 성문으로, 크기나 형식은 장안문과 같다. 이 문 역시 옹성의 문과 성문이 맞뚫려 있다.

▲ 팔달문 옹성 반원형의 옹성을 전돌로 쌓고 좌우에 적대를 설치하였다. 아래 사진은 적대에 이르는 문으로, 성가퀴와 통행로 그리고 홍예 부분까지를 전돌로 쌓은 구조미를 보여준다.

▲ 창룡문 동문인 창룡문은 규모도 작고 형태도 간략한 편이다. 역시 옹성이 있는데 아치문이 정면에 있지 않고 서울의 동대문처럼 왼쪽 모서리에 설치되어 있다.

▲ 다른 성문들 위의 사진은 옹성이 있는 서울의 동대문이고, 아래 사진은 강화의 광성보 안해루이다.

▲ 화서문 수원성의 서문으로 제도는 창룡문과 비슷하다. 다만 성벽의 일부가 휘어져 있는데 지형에 맞추어 쌓은 까닭이다.

▲ 성벽 수원성의 성벽은 지형에 따라 다르지만 4내지 6미터 높이로 쌓고 그 위에 1내지 1.2미터 높이의 여장(女墻)을 쌓았다.

▲ 다른 성의 성벽 위쪽은 홍주성 남쪽 성벽의 일부이다. 역시 화강석을 재료로 하여 쌓았는데 성 안과 밖의 땅 높이가 다르다. 아래쪽은 남한산성의 암문으로 크고 불규칙한 돌로 쌓은 성벽의 중간에 문을 낸 것이다. 이러한 성벽은 모두 지형을 이용하여 성벽을 높게 한 예이다. 

▲ 서장대 팔달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어 성의 안팎이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이다. 성 주변 사방을 조망하면서 장병들을 지휘하는 곳이다.

▲ 서노대 서장대의 뒤편에 선 노대(弩臺)는 쇠뇌를 쏘는 노수(弩手)가 머무는 곳으로, 전돌과 화강석을 이용하여 건축하였다.

▲ 동장대 성의 동북간에 위치하고 있다. 건물 주변에 터를 넓게 잡아 동서 180보, 남북 240보의 조련장을 두었다. 역시 노대를 두었는데 치성 위에 전돌로 대를 높이 만들어 성벽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수어장대 남한산성의 장대로, 하층이 개방된 형태이다.

동북공심돈

공심돈 돈(墩)은 일종의 망루와 같은 것으로, 속이 빈 돈대로는 우리나라에서는 수원성이 최초이다. 동북 공심돈은 큰 원통 모양으로 수원성에서 가장 특이한 건물의 하나이다. 동장대 옆 동북 노대 서쪽에 위치하는데 중국 요동 지방의 계평돈을 모방하여 전돌로 둥그렇게 만들었다.

동북 공심돈 높이 17척 5촌, 바깥 둘레 122척, 벽의 두께 4척, 안쪽 둘레 71척인 동북 공심돈은 내부에 나선형의 계단을 설치하였다. 

▲ 서북 공심돈 화서문 북치(北雉) 위에 전돌로 네모지게 쌓았다. 높이 18척, 아래 넓이 23척, 위의 넓이는 21척으로 위로 갈수록 좁아졌다. 내부는 3층으로 꾸며 2층과 3층 바닥에는 마루를 깔고 사닥다리로 오르내리게 하였다.

▲ 강화도 광성보 조선 후기 성곽 보완의 일환으로 강화섬의 주위 51개소에 새로이 돈대를 설치하였다. 이러한 성곽 보완 노력은 나중에 수원성을 축조할 때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 용두 돈대 강화도 광성보의 돈대이다. 17세기 후반에 강화의 성곽을 보수하면서 이전에 없었던 돈대를 설치하였다.

▲ 동1치

▲ 북동치

▲ 서남각루(화양루)
▲ 치성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서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측면에서 격퇴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치(雉)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유성룡의 「징비록」에서 강조하고 있다.

▲ 포루(砲樓)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치성과 유사하게 하면서 내부를 공심동과 같이 비워 그 안에 화포를 감추어 두었다가 적을 공격하도록 만든 것이다. 사진은 동포루의 모습이다.

▲ 총안과 포혈 좁은 구멍을 내어 밖에서는 안으로 공격을 할 수 없게 하고 안에서는 밖을 향해 포나 총을 쏠 수 있게 하였다.

▲ 남포루와 북서포루 포루는 전체를 벽돌(塼)로 만들어 적의 화포에 의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에 대비하였다. 수원성에는 모두 5개의 포루가 있는데 위는 남포루, 아래는 북서포루이다.

▲ 북동포루 화강석과 전돌의 치밀한 구조를 보여준다.

▲ 동북포루 성의 바깥에 위치하고 있는 포루의 모습을 보여 준다.

▲ 포루(舖樓) 이 포루는 화포를 장착한 것이 아니고 치성 위에 대를 만들고 그 위에 건물을 세운 것이다. 이것은 치성의 군사들을 가려 적이 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수원성에는 모두 5개의 포루가 있는데, 위의 두 사진은 동포루, 그 다음은 동2포루, 마지막 사진은 동1포루이다.

▲ 동북 포루 각건대라고도 하는데 방화수류정 동쪽으로 지세가 갑자기 높아져서 용두를 굽어보는 곳에 위치하였다.

▲ 북포루 북서 포루의 서쪽에 위치한 포루(舖樓)이다.

▲ 해미읍성의 포루 성벽의 튀어 나온 부분 위에 사방이 트인 건물을 세워 판문이 있는 수원성의 포루와 다른 형태를 보여 준다.

▲ 성벽의 안과 밖 수원성의 성벽은 지세를 이용하여 드나듦이 있게 축조하였는데, 성의 안은 바닥이 높고 바깥은 낮아서 상대적으로 바깥 성벽이 높아지게 하였다.

▲ 서남각루

▲ 동남각루
▲ 각루 비교적 높은 위치에 누각 모양의 건물을 세워 주변을 감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한 시설물을 각루라 한다.

▲ 방화수류정 북쪽 수문인 화홍문에서 동쪽으로 경사져 올라간 위치에 있는 동북 각루이다. 이 건물은 형태가 불규칙하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주변 경관과의 어울림이 뛰어나 조선시대 정자 건물의 높은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 수문 수원성에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개천이 성내를 관통하고 있어 북수문과 남수문을 설치했다. 이 중 북수문은 용연이라는 연못이 있는 비교적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 장대하게 꾸몄는데, 일곱 개의 아치형 수문 위에 화홍문이라는 누각을 세웠다.

▲ 용연의 풍경

▲ 봉돈 봉돈(烽墩)은 행궁을 지키고 성을 파수하며 주변을 정찰하여 인근에 사태를 알리는 역할을 하는 시설이다. 다섯 개의 커다란 연기 구멍을 두어 신호를 보낼 수 있도록 했다. 성벽 일부를 치성처럼 밖으로 돌출시키고, 아래는 돌로 쌓고 위는 전돌을 성벽보다 높이 쌓아 상부에 성가퀴를 두었다.

▲ 북암문 북암문은 동북 각루 남쪽 약간 골짜기진 곳에 있어서 성 밖에서는 잘 눈에 띄지 않는다.

▲ 동암문

▲ 서암문
▲ 암문 성곽에는 흔히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는 출입구를 내어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양식 등을 나르도록 하는데 이것이 암문(暗門)이다.

▲ 서남 암문 암문에는 일반적으로 위에 건물을 세우지 않지만 서남 암문에는 포사(舖舍)를 세웠다. 이곳은 팔달산 한쪽의 높은 곳이어서 성의 서남 방향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곳이기 때문에 특별히 적을 감시할 수 있는 시설을 한 것이다.

▲ 행궁의 낙남헌 화성행궁이 지어진 것은 정조 20년 가을로, 정조대왕이 사도세자의 묘에 행차할 때 머무르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낙남헌은 무술과 관련하여 장병을 지휘하던 곳이 아닌가 추측된다.

▲ 행궁의 낙남헌 화성행궁이 결정적으로 파괴된 때는 20세기 초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것은 수원에 최초의 서양식 의료 기관인 자혜의원이 행궁터에 들어서면서 비롯되었다.

▲ 「화성성역의궤」의 화성전도

▲ 「화성성역의궤」의 장안문 내도

▲ 「화성성역의궤」의 장안문 외도

▲ 「화성성역의궤」의 창룡문 외도

▲ 「화성성역의궤」의 남수문 내도

▲ 「화성성역의궤」의 서북공심돈 외도 동북노대 내도

▲ 「화성성역의궤」의 남공심돈 외도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