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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5. 11. 10:33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047 고인쇄

글/천혜봉●사진/천혜봉, 손재식

1993,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3065

082
빛12ㄷ 23


천혜봉------------------------------------------------------------------------

문학박사. 동국대학교 사학과와 연세대학교 대학원 도서관학과를 졸업했다. 성균관대 문리대 교수로 있으며, 동대학 박물관장을 겸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고서 분류 목록법」「고려 주자본 불조직지심체요절」「한국 고인쇄사」등이 있다.

손재식------------------------------------------------------------------------


신구전문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했고, 대림산업 홍보과와 대원사 사진부에서 근무하였으며,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85년 유럽 알프스 촬영 등반, 87년 네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촬영 등반 보고전을 가진 바 있으며, 사진집으로 「한국 호랑이 민예 도록」이 있다.

|차례|

사진으로 보는 고인쇄
활자란
활자 인쇄의 시작
금속활자 인쇄의 창안
활자의 종류와 인본들
활자 만들기와 인쇄법
참고 문헌
한국 주요 활자 연표


▲ 세계 최고의 현존 목판본 무구정광 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에서 발견된 목판 권자본으로, 서기 751년 이전에 간행되었다. 현존 목판본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국보 126호이다.

▲ 목판 나무판에 글자를 뒤집어 새긴 책판이다. 오래 간직하며 무한정으로 찍어 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비용, 품, 시간이 많이 걸리면서도 오직 한 문헌만을 찍어 낼 수 있는 것이 그 단점이다.

▲ 고려 금속활자판의 번각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1234년에 고려의 수도를 강화로 옮겨 몽고군에 대항하고 있을 때, 민심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그 이전에 찍은 금속활자판 증도가를 바탕으로 1239년에 거듭 새겨서 널리 보급하였다. 번각 후쇄이지만 새김이 정교하여 금속활자 인쇄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 고려 흥덕사자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청주목의 교외에 있던 흥덕사(興德寺)가 1377년에 금속활자로 상하권을 찍어 낸 것 중,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하권만 간직되어 잇다. 사찰 나름의 재래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활자가 조잡하며 크기와 모양이 고르지는 않으나, 원나라의 지배로 인하여 중앙 관서의 인쇄 기능이 마비된 무렵에 지방의 한 사찰이 고려 금속활자의 맥락을 이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현존의 금속활자본이다.

▲ 계미자본 동래선생교정 북사상절(東萊先生較正北史詳節) 1403년 조선조에서 최초로 주조한 동활자인 계미자의 큰 자로 찍은 것 중, 현재 권 제 4, 5, 6이 전해지고 있다. 활자의 글자본은 경연 소장의 옛 주가 붙은 남송 촉본(蜀本) 시 · 서 · 좌씨전에 의한 것이다.

▲ 계미자본 십칠사찬고금통요(十七史纂古今通要) 1403년 경연에 소장된 옛 주가 붙은 남송 촉본 시 · 서 · 좌씨전을 글자본으로 주조한 계미자로 찍은 것 중, 현재 권 제 16, 17이 전래되고 있다.


▲ 초주 갑인자본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1434년 조선조에서 세번째로 주조한 동활자인 초주 갑인자로 찍은 것이다. 갑인자는 경자자보다 크게 개량되었고 판짜기가 조립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활자의 네모가 바르고 판판하며 크기가 일정하다. 판짜기에서는 밀랍을 전혀 쓰지 않고 대나무만을 썼으며 인쇄 능률은 경자자의 두 배인 40여 지를 하루에 찍어 낼 수 있었다. 글자본은 경연 소장의 「효순사실(孝順事實)」「위선음즐(爲善陰隲)」「논어(論語)」에서 택하고 부족한 것은 진양대군 유가 닮게 썼다. 매우 아름답고 명정한 필서의 진체(晋體)이며, 일명 위부인자라고도 일컫는다.


▲ 무신자 병용 한글자본 맹자언해(孟子諺解) 1668년에 갑인자를 네번째로 개주한 무신자로 찍은 것이다. 무신자는 호조판서와 병조판서의 직에서 수어사까지 겸직하고 있던 김좌명(金佐明)이 호조와 병조의 물자와 인력을 동원하여 수어청에서 만들어 교서관으로 보내준 큰 자 66,100개와 작은 자 69,000개를 일컫는다. 이 활자는 1772년에 오주 갑인자인 임진자가 나올 때까지 오랫동안 사용되어 인본이 매우 많다.

▲ 정유자본 당송팔자백선(唐宋八字百選) 1777년에 평안 감사인 서명응에게 명하여 여섯번째로 갑인자를 더 주조한 것이 정유자이다. 이 활자는 교서관이 관장한 임진자와는 달리 본원인 내각이 따로 맡아 사용해 오다가 1794년 창경궁의 옛 홍문관 자리에 새로 설치한 주자소로 옮겨 사용하였다. 그러다가 1857년의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으므로 이후에 나온 책들 중에는 정유자본이 없는 셈이다.

▲ 초주 갑인자 병용 한글자본 석보상절(釋譜詳節) 1447년에 최초로 만든 청동의 한글 활자와 초주 갑인자로 찍은 것이다. 한글 활자는 강직한 직선으로 그은 인서체인 것이 특징이며 오늘날의 고딕체 활자를 방불케 한다.

▲ 초주 갑인자 병용 한글자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한글은 1147년에 새로 만든 동활자로, 한문은 초주 갑인자로 찍은 것이다. 이 한글 활자는 본시 어제의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의 국문을 찍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만든 목적에 따라 '월인석보자'로 부르기도 한다.

▲ 병진자본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자치통감강목」의 훈의(訓義)가 완성되자 세종이 진양대군 유에게 큰 자를 쓰게 하여 바탕으로 삼아 주조한 활자가 병진자이다. 인쇄는 2년 뒤인 1438년에 이루어졌지만 조선조에서 최초로 등장한 우리 글씨체의 독자적인 활자이고 또 재료를 연으로 만든 데에 의의가 있다.

▲ 을해자본 주자대전(朱子大全) 1455년에 강희안이 쓴 글자를 바탕으로 주조한 글자가 을해자이다. 글자체가 평평하고 대체로 폭이 넓으며 갑인자와 쌍벽을 이룬 활자로 임진왜란 이전까지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 정축자본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세조가 1457년에 젊은 나이로 이승을 떠난 왕세자(덕종으로 추존)의 명복을 빌기 위해 「금강경」의 정문 큰 자를 친히 써서 주조한 동활자인 정축자로 찍은 것이다. 그 당시 「금강경오가해」를 찍고 그대로 두었다가, 1482년에 이 「금강경삼가해」국역본의 정문을 찍는 데 또 사용한 것이다. 한문과 한글은 을해자와 병용 한글자를 사용하였다.



▲ 경서자본 중용언해(中庸諺解) 선조조의 1588년부터 1590년까지 사서(四書)와 소학, 효경 등의 경서 인출에 사용한 활자를 '방을해자''경진자''한호자'라 임의로 명칭해왔다. 그러나 그 모두가 정확한 고증을 거친 것은 아니었다. 이 활자가 선조 때 주조되어 유교 경서의 국역본 인출에만 사용되었으므로 정확한 내력이 밝혀질 때까지 '경서자'로 일컬어 두기로 하겠다. 이 책은 그 활자로 찍은 「중용언해」의 국역본이다.


▲ 초주정리자본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


▲ 초주정리소자본 두율분운(杜律分韻) 1795년에 생생자를 자본으로 주조한 초주 정리자 중, 작은 활자로 1805년에 찍은 것이다. 정리자는 인서체 활자로서 큰 자는 넙적하고 글자획이 굵으나, 작은 자는 모양을 섬세하게 만들어 오늘날의 활자와 같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 단자 활자

▲ 공신도감자(목활자) 본 개국원종공신녹권

▲ 계미소자본 도은선생 시집

▲ 동국정운자본 동국정운

▲ 홍무정운자본 홍무정운역훈

▲ 병진자본 자치통감강목

▲ 경오자본 고문진보

▲ 을해자 병용 한글자본 능엄경(오른쪽)

▲ 정축자본 금강경언해

▲ 무인자본 역학계몽요해

▲ 을유자본 원각경


▲ 활자 만들기와 인쇄 장면

▲ 조선조 중앙관서의 활자 주조법

▲ 민간 금속활자의 주조법

▲ 활자 보관 상자


▲ 먹비(墨箒)

▲ 조각칼(오른쪽)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