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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6 천년의 지혜

이소영 · 한정주 지음
2010, 일월담


시흥시대야도서관
SB052945

199.1
이55ㅊ


우리 고전에서 힘을 얻다

예나 지금이나 인가人家의 자제들이
밀랍 먹인 종이로 바른 창문에 화려하고 높은 책상을 두고
그 옆에 비단으로 장정한 서책들을 빽빽하게 진열해두고서,
머리에는 복건을 쓰고 흰 담요 위에 비스듬히 누운 채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얘기들을 지껄이고
기침이나 캉캉 뱉다가 한 해가 다 가도록
책 한 글자 읽지 않는 것이 참말이지 제일로 유감스럽다.

발버둥쳐도 현실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을 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사에 무릎 꿇어야 할 때, 끼니를 때우고 몸 의탁할 곳 없어 방황할 때, 옛사람들은 모두 책을 들었다. 먹고사는 일이 모두 그곳에 있다는 듯.
미물한테서라도 배울 것이 있다면 자세를 낮추고 열린 마음으로 따라야 한다. 하물며 긴 세월을 살아온 옛 성인들의 깊은 성찰이 담긴 책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어디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팍팍한 삶에 지친 어깨를 펴게 해줄 친구가 바로 저기 아주 가까운 곳에 수북이 쌓여 있으니, 그저 더불어 즐기고 노닐며 지혜를 구하면 될 일이다.

이소영

서울 출생.
사람, 그리고 세상에 대한 애정을 끊임없이 글로 풀어쓰는 작가이다. 역사는 시대를 관통한다 믿기에, 고전에 관한 다각적 해석과 연구 또한 게을리하지 않는다.
현재 프리랜서 기자로도 활동 중이다.
저서로 『자식으로 산다는 것(공저)』,『조선의 논객들 대한민국을 말하다(공저)』,『치심(공저)』등이 있다.

한정주

동국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역사와 고전을 현대인들의 문화적 혹은 사회적 욕구에 맞도록 해석해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저술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고전이 학자와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인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데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저서로 『한국사 전쟁의 기술』,『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영웅격정사』,『천자문뎐』,『한국사 천자문』,『조선의 거상, 경영을 말하다』가 있으며, 쓰고 엮은 책으로는 『조선 지식인의 독서 노트』와『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노트』,『조선 지식인의 말하기 노트』, 『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조선 지식인의 비평 노트』등이 있다.

|차례|

프롤로그

1장 세상을 읽다

돌밭이라고 초록이 없을까
● 정온의 『동계집』중 '거친 밭을 일군 데 대한 설(說)' 편

수북이 쌓인 책을 즐기다
● 박지원의 『연암집』「공작관문고」중 '소완정기(素玩亭記)' 편

걸음을 멈추고 뒤를 보라
● 정약용 『다산시문집』중 '여유당기(與猶堂記)' 편

형체란 부질없는 것
● 이남규의 『수당집』중 '소재기(小齋記)' 편

기다림의 미학
● 장유의 『계곡집』「계곡선생집」중 '잠와기(潛窩記)' 편

변화하는 사람
● 장유의 『계곡집』중 '화당설(化堂說)' 편

묻는 곳에 길이 보인다
● 박지원의『연암집』「종북소선」중 '북학의서(北學議序)' 편

나는 나로소이다
● 박지원의 『연암집』중 '선귤당기(蟬橘堂記)' 편

뿌린 만큼만 거두어야 복
● 박홍미의 『관포집』중 '몽포설(夢飽說)' 편

2장 마음을 읽다

게으름이 나를 해쳐
● 이규보의 『동국이상국문집』중 '게으름을 풍자함' 편

귀를 기울이면
● 강희맹의 『훈자오설』중 '요통설(溺桶說)' 편

천지간에 내 것이 있을까
● 이곡의 『가정집』중 '차마설(借馬說)' 편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니
● 장유의 『계곡집』「계곡선생집」중 '용졸당기(用拙堂記)' 편

흐르는 강물처럼
● 신흠의 『상촌집』「상촌선생집」중 '기재기(寄齋記)' 편

나를 잃은 자
● 정약용의 『다산시문집』중 '수오재기(守吾齋記)' 편

여유는 즐기는 자의 것
● 윤순의 『백하집』중 '차군정기(此君亭記)' 편

허허 웃으니 수가 보이네
● 정도전의 『삼봉집』중 '무열산인 극복루기 후설(無說山人克復樓記後說)' 편

뉘우치는 삶
● 정약용의 『다산시문집』중 '매심재기(每心齋記)' 편

행복의 기회
● 허균의 『성소부부고』중 '임창헌기(臨滄軒記)' 편

분수를 안다는 것
● 안정복의 『순암집』중 '안분설(安分說)' 편

부끄럽게 사는 삶
● 권근의 『양촌집』중 '졸재기(拙齋記)' 편

순수가 나를 깨워
●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중 '영처고 자서(嬰處稿自序)' 편

통곡하는 집
● 허균의 『성소부부고』중 '통곡헌기(慟哭軒記)' 편

자신을 사랑하는 자
● 심낙수의 『은파산고(恩坡散稿)』중 '애오헌기(愛吾軒記)' 편

3장 사람을 읽다

나의 빈천함을 아는 벗
● 박제가의 『초정전서』중 '송백영숙기린협서(送白永叔基麟峽序)' 편

내겐 너무 소중한 친구
● 박지원의 『연암집』중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 편

나를 위로하는 여섯 친구
● 이색의 『목은집』「목은문고」중 '육우당기(六友堂記)' 편

옳다구나, 미쳐보세
● 박제가의 『정유각문집』중 '백화보서(百花譜序)' 편
● 이규상의 『병세재언록』중 '석치(石癡) 정철조' 편

충고를 구하다
● 최익현의 『면암집』중 '성헌기(誠軒記)' 편

책 속의 빛을 좇아
●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중 '간서치전(看書痴傳)' 편

형제만 한 벗 있으랴
● 이곡의 『가정집』중 '의재기(義財記)' 편

우정도 공을 들여야
● 박제가의 『초정전서』중 '백탑청연집서(白塔淸緣集序)' 편

사람의 마음속에도 각각 좋은 밭이 있게 마련이니, 그 이랑은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이며 그 곡식 종자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이다. 그 땅은 평평하여 험한 데가 없고 그 토질은 비옥하여 식물이 잘 자라니, 처음에야 어찌 묵어버리겠는가, 사심이 일어나서 이랑이 되고 욕심이 생겨서 좋은 곡식을 해친 뒤에 이 밭이 드디어 황폐해지고 생생함이 멈추게 된다.

진실로 일구려는 자가 있어서 능히 안자顔子의 사물四勿을 건장한 재료로 삼고, 증자曾子의 삼성三省을 농기구 삼아서 이기기 어려운 곳을 따라서 이겨가면, 한 번 깨뜨린 위에는 느긋하게 여유가 있게 된다. 그리하여 일구는 일이 예전과 같이 될 것이니 어찌 좋은 곡식이 자라지 않을까 걱정하겠는가, 진실로 나의 밭이 이미 황폐해져 일굴 힘이 없다고 한다면 이는 스스로 포기한 탓이다.
■ 정온의『동계집』중 '거친 밭을 일군 데 대한 설(說)'편

"자네는 방 안에서 물건을 찾아 헤매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 앞을 바로 보고 있자니 뒤를 보지 못하고, 왼쪽을 돌아보자니 오른쪽을 놓치게 되지. 왜 그렇겠는가? 방 한가운데에 앉아 있으면 눈과 공간이 너무나 가까이 있어 몸과 사물이 서로를 가리게 되기 때문이라네. 허니 차라리 제 몸을 방 바깥으로 옮겨두고 들창에 구멍을 뚫어 안을 엿보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일세. 그렇게 한다면 한쪽 눈만 가지고서도 방의 물건들을 모두 살필 수 있지 않겠는가."

"자네가 이미 핵심 이치를 알았으니, 내가 다시 자네에게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인지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겠네. 해日는 지극한 양기太陽라고 할 수 있네. 온 세상을 감싸주고 만물을 길러주지. 습한 곡일지라도 해가 비추면 마르고, 어두운 곳일지라도 햇빛을 받으면 밝아지네. 그렇지만 태양의 열기가 나무를 태우지도 쇠를 녹이지도 못하는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빛이 두루 퍼지고 정기가 분산되기 때문이네. 만약 만 리를 비추는 햇빛을 거두어 아주 작은 틈으로 들어가는 빛이 되도록 모은 다음 돋보기로 받아서 그 정기를 콩알만 하게 만들면, 처음에는 불길이 자라나 빛을 발하다가 갑자기 불꽃이 일어나 활활 타오르는 까닭은 무엇인가? 태양의 빛이 한 곳으로 모아져 분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네."

"무릇 하늘과 땅 사이에 흩어져 존재하는 것은 모두 이 책들의 정기이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가까운 공간에서는 자신의 몸과 사물이 서로를 가로막아 제대로 관찰할 수도 없고, 방 가운데에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어찌 눈으로 보고 살피는 것뿐이겠는가. 입으로 맛을 보면 그 맛을 알 수 있고, 귀로 들으면 그 소리를 알 수 있고, 마음으로 깨달으면 그 핵심을 얻을 것이네. 지금 자네는 들창에 구멍을 뚫어 오로지 한쪽 눈만으로도 방 안의 사물을 모두 보고, 돋보기로 햇빛을 모아서 마음에 깨달음을 얻었네. 그러나 비록 그렇다고 해도 방의 들창이 비어 있지 않으면 밝음을 받아들일 수 없고, 돋보기가 비어 있지 않으면 밝음을 받아들일 수 없고, 돋보기가 비어 있지 않으면 태양의 정기를 모으기란 불가능하지. 따라서 뜻을 밝히는 이치란 본래 자신을 모두 비우고 사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네. 또한 담백하고 아무런 사욕이 없어야 하고, 이것이 아마도 소완素玩하는 방법이 아닌가 싶네."
■ 박지원의 『연암집』「공작관문고」중 '소완정기(素玩亭記)'편

하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은 그만둘 수 없고, 하고 싶지만 다른 사람이 알까 두려워서 하지 않는 일은 그만둘 수 있다. 그만둘 수 없는 일이란, 늘 그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내켜하지 않기 때문에 때때로 중단된다. 반면 하고 싶은 일이란,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알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또한 때때로 그만둔다. 이러하다면 참으로 세상천지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을 것이다.
내 병은 내가 잘 안다. 결단력은 있으나 꾀가 없고, 선善을 좋아하지만 가릴 줄을 모른다. 마음 내키는 대로 즉시 행동하며 의심할 줄도 모르고 두려워할 줄도 모른다. 스스로 그만둘 수 있는 일인데도 마음이 움직이면 억제하지 못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도 마음에 걸려 찜찜한 구석이 있으면 그만두지 못한다.
어려서부터 마음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도 의심하지 않았고, 나이가 들어서는 과거 공부에 빠져 돌아볼 줄을 몰랐다. 서른이 넘어서야 지난날의 잘못을 깊게 깨달았으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선을 끝없이 좋아하였으나 세상의 비방을 홀로 짊어지고 있다. 이것이 내 운명이란 말인가. 이 모두가 타고난 나의 본성 때문이니, 어찌 내가 감히 운명을 탓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 경전과 예절에 대해 같음과 다름을 논하려고 하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구태여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해로울 것이 전혀 없었다. 하지 않아도 해로움이 없다면 부득이한 일이 아니다. 부득이한 일이 아니라면 또한 그만두어도 된다.
다른 사람을 논하는 글을 임금에게 올려 조정 신하들의 옳고 그름을 말하려고 하다가 또 가만히 생각해보니 남이 알까 두려운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알까 두려운 것은 마음에 크게 거리낌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크게 두려움과 꺼림이 있다면 또한 그만두어야 한다.
진귀하고 즐길 만한 옛 골동품을 두루 모아볼까 하다가 이 또한 그만둔다. 벼슬자리에 있으면서 공금을 멋대로 쓰고 훔치겠는가? 이 또한 그만둔다. 온 마음에서 생겨나고 뜻에서 싹튼 것은 아주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만두고, 아주 부득이한 경우일지라도 다른 사람이 알까 두려워하는 일 또한 그만둔다. 진정 이와 같이 한다면 세상에 무슨 해로움이 있겠는가?
■ 정약용 『다산시문집』중 '여유당기(與猶堂記)'편

'소재'의 취지는 바로 용龍에 있다 하겠다.
용이 자신을 줄일 때는 깊은 물속에 엎드려서 아무런 행태나 생각도 없는 양 고요하고 담담하며, 마치 이 세상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없는 양 멍청하다. 그러나 한번 기지개를 켜면 온 우주를 두루 누비면서 마구 구름을 불러일으켜 천둥과 번개를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빛과 그림자를 제압하고 강과 바다를 진동시키니, 그 신통한 변화는 이루 다 상상할 수가 없다.
외형으로부터 용의 본질을 추구하는 자는 용이 잠복한 모습을 보고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이다지도 작구나!' 하다가는, 용이 우주를 누비는 모습을 보면 입을 딱 벌린 채 '저렇게도 크구나!' 한다. 그러나 그 시대에 따른 처신의 권도權道를 잘 아는 자는 '저것이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하는 것은 모두 그 시대가 그렇게 만든 것일 뿐이다. 용 자신이야 이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한다. 그런데 저처럼 그 형체에 매달리는 자는 말할 것도 없이 그 시대에 통달한 자 또한 아직은 미흡하다 하겠다.

만일 용이 몸을 웅크려 자신을 줄이고 있을 때 장차 이를 크게 펼치려는 포부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 또한 작은 것에 안주하고 마는 것이다. 아무리 때가 이르렀다고 한들 이런 용을 어떻게 할 수가 있겟는가. 포부가 커야만 공이 클 수 있으며, 공이 커야만 그 조화가 참으로 위대할 수 있다. 따라서 그 포부를 크게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저 산은 높고 큰데 이를 쭈그러뜨려 주먹만 한 돌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저 우람한 고목나무를 다시 되돌려서 본래의 어린 두 떡잎으로 만드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어째서인가. 이들은 형체에 의해 구속을 받지 않고 시대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으며, 자그맣게 웅크리고 살면서도 능히 아무 걱정 없을 수 있는 것은 단지 용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하겠다.
어른께서는 바로 저 용과 같은 분이라고 해야 하겠다. 어른께서 작다고 하신다면 누가 감히 큰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내 어른을 위하여 점을 쳐서 용이 장차 깊은 못에서 나와 저 푸른 하늘로 올라가려고 하는 길흉의 운수를 얻어서 어른이 성취하는 것을 기다리겠다.
■ 이남규의 『수당집』중 '소재기(小齋記)'편

재질才質이 높은 경지에 미치지 못함을 침잠沈潛이라 하는데 이와 함께 세상에 나타나거나 뛰어오를 수 없는 때가 있으니 이러한 경우는 의리상 엎드려 숨어 있어야 마땅하다. 배움에 있어서도 그 재질을 헤아리지 않으면 성취되는 바가 없고, 움직여야 할 때가 아닌데도 움직일 경우에는 흉해지기 마련이다. 바로 이런 내용이 성인께서 경계했던 요지라 할 것인데, 지금 그대가 '잠'이라는 글자를 취한 것은 이와는 다른 의미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대는 이른 나이에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른 뒤 뛰어난 재주와 곧은 기상으로 고관에게 귀히 여김을 받았을 뿐 아니라 어떤 관직을 맡더라도 일처리를 능수능란하게 한다는 평을 받아왔다. 그러고 보면 그대야말로 그 기질 면에서 지나친 점이 있다고는 할지언정 미치지 못하는 점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밝은 것은 어두운 곳에서 생겨나고 느낌이나 생각이 통하는 것은 고요함을 바탕으로 하니, 모습을 감추는 것이야말로 밝게 드러나는 기초가 되고 조용히 존재하는 것이야말로 움직임을 좌우하는 주재자가 된다. 그러므로 자벌레도 몸을 구부리지 않으면 펼 수 있는 방도가 없고 뱀들도 칩거하지 않으면 몸을 보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군자가 도를 행하는 것 역시 이와 같다. 안으로 마음을 쓸 때 드러나지 않게 속으로 감출지언정 분명하게 밖으로 나타나게는 하지 않는 법인데, 급기야 때가 이르면 아무도 몰래 닦아온 실력이 온누리에 펼쳐지고 마음에 품고 있던 경지가 천지의 표준으로 확립되는 것이다. 잠潛의 효용성이 이처럼 극명히 나타나는데, 그대의 뜻도 어쩌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 장유의 『계곡집』「계곡선생집」중 '잠와기(潛窩記)'편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존재치고 변화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매가 비둘기로 바뀌고 참새가 대합으로 바뀌며, 뱁새가 수리로 바뀌고 올챙이가 개구리로 바뀌며, 풀이 썩어 반딧불로 바뀌는 것 등은 서로 다른 물건으로 변화하는 현상이다. 초목이 처음 나와 싹을 틔웠다가 줄기와 가지로 바뀌고 다시 꽃과 열매로 바뀌다가 누렇게 낙엽이 지고 마는데, 이는 하나의 물건이 자체적으로 변화하는 현상이다. 어찌 만물만 그러하겠는가. 천지 또한 그러하다.
(중략)
사람의 형체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 태어나서는 갓난아이였다가 조금 자라서는 방긋 웃을 줄도 알고 말할 줄도 알고 걸어 다닐 줄도 알며, 소년기를 지나 청년이 되었다가 장년기를 거치면서 쇠해진 뒤에 노년을 맞아 마침내는 죽고 마는데, 이 과정의 어느 하나 변화 아닌 것이 없다.

하늘이 우민을 걱정하시어 성인을 보내 가르침을 베풀고 학문을 익히게 도우니, 쇠를 녹여 틀을 조형하고 도구를 사용하여 나무를 재단하듯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신 것이다. 그 결과 어리석은 사람도 명철해지고, 나약한 사람도 소신 있게 행동하고, 번잡스러운 사람도 평정을 되찾고, 오염되었던 사람도 깨끗해지고, 한 쪽에 치우쳤던 사람도 바른 위치에 서게 되고, 이것저것 뒤섞였던 사람도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보면, 세상 사람으로서 변화될 수 없는 자는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방면에 힘을 쓰려 하지 않고 좋지 않은 쪽으로 바뀌어도 모르는 척하고 있으니, 겉모습만 사람일 따름이지 그 속마음은 이미 금수禽獸가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어찌 슬픈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장유의 『계곡집』중 '화당설(化堂說)'편

우리나라 선비들은 한쪽 구석 땅에서 편벽된 기운을 타고나 발은 대륙의 땅을 밟아보지 못했고 눈은 중원의 사람을 보지 못했고,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을 때까지 제 영토를 떠나본 적이 없다. 그래서 학의 다리가 길고 까마귀의 빛이 검듯이 각기 제가 물려받은 천성대로 살았고, 우물의 개구리나 밭의 두더지처럼 제가 사는 곳이 제일인 양 여기고 살아왔다. 예는 차라리 소박한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누추한 것을 검소하다고 여겨 왔으며, 이른바 사민四民(사(士), 농(農), 공(工), 상(商)의 네 가지신분이나 계급의 백성)이라는 것도 여우 명목만 남아 있고 이용후생利用厚生(기구를 편리하게 쓰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넉넉히 하여 백성의 생활을 나아지게 함)의 도구는 날이 갈수록 빈약해져만 갔다.

우리를 저들과 비교해본다면 진실로 한치의 나은 점도 없다. 그럼에도 단지 머리를 깎지 않고 상투를 튼 것만 가지고 스스로 천하에 제일이라고 하면서 "지금의 중국은 옛날의 중국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 산천은 비린내 노린내 천지라 나무라고, 그 인민은 개나 양이라 욕을 하고, 그 언어는 오랑캐 말이라고 모함하면서 중국 고유의 훌륭한 법과 아름다운 제도마저 배척해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장차 어디에서 본받아 행하겠는가.

학문의 길은 다른 길이 없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길 가는 사람이라도 붙들고 물어야 한다. 비록 어린 하인이라도 나보다 글자 하나라도 더 많이 안다면 우선 그에게 배워야 한다. 자기가 남만 같지 못하다고 부끄러이 여겨 자기보다 나는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면, 종신토록 고루하고 어쩔 방법이 없는 지경에 스스로 갇혀 지내게 된다.

박제가는 농잠農蠶, 목축牧畜, 성곽城郭, 궁실宮室, 주거舟車로부터 기와, 대자리, 붓, 자尺 등을 만드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눈으로 헤아리고 마음으로 비교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물어보았고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배웠다. 시험 삼아 책을 한 번 펼쳐서 보니 내가 지은 『열하일기熱河日記』와 조금도 어긋나는 것이 없어 마치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 같았다. 이러한 까닭에 그가 진정 즐거운 마음으로 나에게 보여준 것이요, 나도 흐뭇이 여겨 3일 동안이나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 박지원의 『연암집』「종북소선」중 '북학의서(北學議序)'편

너의 모양이 파리하니
너의 마음 마땅히 깨끗하리라
옛사람 많고 많은데
어찌하여 구양수와 굴원을 취했으며
물건의 종류 많고 많은데
어찌하여 매미와 귤을 취하였느냐
너의 좋은 점이 이미 이와 같으니
더러운 세상에 버려둔들 또한 무엇이 안타까울까
맑고 깨끗하며 한적하고 즐거우니
그 누가 너의 자질을 알랴

爾貌癯 宜爾心潔
古多人 奚取歐與屈
物多類 奚取蟬與橘
旣爾好如斯 寘之塵穢
亦奚恤淸澄而恬愉 孰知爾資質

"심하도다, 너의 미혹됨이여. 중이란 육체가 마른나무와 같아 목비구木比丘라 부르고, 마음은 식은 재와 같아 회두타灰頭陀라 부른다. 산 높고 물 깊은 이곳에서 이름이 있다 한들 어디에 쓸까. 네 육체를 보아라. 이름이 어디 붙어 있느냐? 육체가 있기에 그림자도 있는 것이라지만 이름은 본래 그림자조차 없으니 버릴 것도 없지 않은가? 오. 네가 이름을 버리려 한다지만 이름은 차고 다니는 칼이나 향낭처럼 풀어버릴 수 있는 게 아니요, 관복이나 서대처럼 벗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 베개나 비단 장막처럼 팔아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때나 먼지처럼 물로 씻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잖나. 생선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물까마귀 깃으로 토해 내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부스럼이나 마른 딱지처럼 손톱으로 떼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름은 네 것이긴 하지만 네 몸에 속한 게 아니라 남의 입에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움과 욕심에 대해 말을 하면 기운이 없어지고, 산과 나무를 말하면 정신이 맑아진다. 문장을 말하면 마음이 즐겁고, 도학道學을 말하면 뜻이 정돈된다.
전주의 이자李子(이덕무 자신)는 옛날부터 도에 뜻을 두고 있었기에 세상 물정에는 영 어둡다. 그래서 산림, 문장, 도학에 관한 이야기만을 좋아할 뿐 그 나머지는 보지도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또한 귀로 들어도 달갑게 여기지 않으니, 그 바탕을 오로지 한결같게 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선귤'을 취하고 말하는 것이 고요하고 담박했다.
■ 박지원의 『연암집』중 '선귤당기(蟬橘堂記)'편

아주 먼 옛날, 한 달에 겨우 아홉 번 밥을 먹고 그밖에는 늘 굶주릴 만큼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하여 일 년 내내 배불리 먹고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였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밤, 그는 꿈을 꾸었다. 성대한 밥상을 받아 배부르게 먹는 꿈이었다. 뒤엔 밥과 떡이 넘쳐나고 앞엔 가지각색의 성찬들이 끝도 없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는 너무 기쁜 나머지 음식을 먹으며 배를 두드리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홀연 꿈에서 깨어난 그는 이 모든 게 한바탕 꿈인 것을 알았다. 이상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처음 꿈에서 깨어났을 때는 뱃속이 든든한 듯하더니, 조금 지나자 허기가 더욱 심해지고 밥을 먹고 싶은 마음이 전보다 두 배나 심해진 것 같았다. 차라리 꿈을 꾸지 않은 것이 더 나을 성싶었다.
역시 굶주리거나 배부르거나 한 번 지나고 나면 모두가 허무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꿈속인지 알지 못하게 된다.
자고로 배를 불리는 방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제 힘으로 밥을 구해 먹어 배를 불리는 경우가 있고, 남에게 얻어서 배를 불리는 경우가 있다. 제 힘으로 밥을 구해 먹어 배를 불리는 경우는 그 포만감이 항상지속되지만, 남에게 얻어서 배를 불리는 경우는 포만감이 항상 지속되지 못한다. 어째서 그러한가? 남에게서 얻는 경우는 주거나 빼앗는 일이 남에게 달려 있고, 제 힘으로 밥을 구해 먹는 경우는 굶주리든 배부르든 전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 박홍미의 『관포집』중 '몽포설(夢飽說)'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남에게 빌리지 않은 것이 뭐가 있겠는가.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존귀하고 부유하게 되는 것이요, 신하는 임금으로부터 권세를 빌려서 총애를 받고 귀한 신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은 어버이에게서, 지어미는 지아비에게서, 종은 주인에게서 각각 빌리는 것이 또한 심하고도 많다. 한데 대부분 자기가 본래 가지고 있던 것처럼 여기기만 할 뿐 끝내 돌이켜 보려 하지를 않는다. 이 어찌 미혹된 일이 아니겠는가.
■ 이곡의 『가정집』중 '차마설(借馬說)'편

둔중함은 예리함의 기초가 되고 고요함은 움직임의 뿌리가 된다하였다. 그래서 옛날 군자들을 보면 광채를 속에 간직하고 활용을 잠시 유보한 채, 지혜로우면서도 바보처럼 행동하고 달변가이면서도 어눌한 듯 말하면서, 스스로 굽혀 장차 펼 기회에 대비하고 뒤에 머무는 것을 앞장선 것으로 여겼는데, 이처럼 속에 온축된 것이 항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밖으로 내놓을 때가 되면 무한정 쏟아져 나오곤 하였던 것이었다.

拙이 돌아가신 부친의 가르침에 근본을 두고 있음을 보면 선조의 의식을 계승하는 것이 민성휘에게 얼마나 중한지 알 수 있고, 형제의 자호自號와 뜻을 같이한 것을 보면 그가 형제간의 우애를 도모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알 수 있다. 당우堂宇에 이름과 호를 붙이는 의리가 얼마나 갸륵한가.
■ 장유의 『계곡집』「계곡선생집」중 '용졸당기(用拙堂記)'편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독차지하려는 자는 망령된 자이고, 가지고 있으면서 가지고 싶지 않은 듯 구는 자는 속임수를 쓰는 자이며,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잃을까 걱정하는 자는 탐하는 자이고, 가진 게 없으면서 꼭 갖고 싶다 하는 자는 너무나 성급한 자이다.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고 있거나 없거나 집착할 것도 없고 배척할 것도 없이 나에게는 아무 득실이 없는 것, 그것이 옛 군자였다.
붙인다奇는 붙어산다寓는 말이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오고 가고가 일정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살고 있는 것이 참으로 있는 것인가, 아니면 참으로 없는 것인가? 태어나기 이전의 상태에서 본다면 원래 없는 것이고, 이미 태어난 상태에서 본다면 완전히 있는 것이며, 죽음에 이르고 보면 또 없는 데로 돌아가는 것이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사람이 산다는 것도 붙어 있는 것뿐이니 설마 밖에서 오는 얻음과 잃음이며, 밖에서 오는 이로움과 해함이 그것일까. 이 모두는 인성과 천명이 아닌데 어찌 일정할 수가 있겠는가. 영예와 치욕도, 재화와 복록도, 얻음과 잃음도, 이로움과 해로움도, 결국 사람이 죽고 나면 함께 사그라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정하지 않은 것들을 다 죽어 없어지고 일정한 것만이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것 아니겠는가.

죽어 없어지는 것은 사람이요, 소멸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하늘이다. 따라서 하늘과 합치되는 자는 필위 사람에는 맞지 않게 되어 있다. 때문에 사리에 통달한 자는 하늘이 시키는 대로 편안히 살라 하였고, 성인은 평이하게 운명을 따르라 일렀다. 배경을 잠자코 따름으로써 구속에서 풀려난 것이나, 천성을 다해 하늘을 섬기는 것이나 그 결론은 똑같은 것이다.
붙어 있을 것이 와도 붙어 있는 게 없는 듯 행세하고, 붙어 있다 가면 원래 없었던 것으로 여기며, 상대가 나에게 붙어 있을지언정 나는 상대에게 붙어 있지 말고, 마음에 형체가 붙어 있을지언정 마음은 형체에 붙어 있지 않도록 한다면 못 붙어 있을 것이 또 뭐가 있겠는가.
풀이 무성했다 하여 봄에 대해 감사하지 않고 나뭇잎이 졌다고 가을을 원망하지 않는 것처럼 나의 생애를 잘 꾸려가는 것이 바로 내가 좋게 죽을 수 있는 길이다. 붙어 잇는 동안을 잘 처리하면 돌아갈 때 잘 돌아갈 수 있을 것 아닌가.
■ 심흠의 『상촌집』「상촌선생집」중 '기재기(奇齋記)'편

천하의 만물이란 지킬 것이 없으나 오직 나吾만은 지켜야 한다. 나의 책을 훔쳐 없애버릴 자가 있는가. 성현의 경전이 세상에 퍼져 물과 불처럼 흔한데 누가 능히 없앨 수 있겠는가. 천하의 실이 모두 내가 입을 옷이며, 천하의 곡식은 모두 내가 먹을 양식이다. 도둑이 비록 훔쳐간다 하더라도 한두 개에 불과할 것이니 천하의 모든 옷과 곡식을 없앨 수 있겠는가. 그런즉 천하의 만물은 모두 지킬 것이 없다.
유독 나吾라는 것은 그 성품이 달아나기를 잘하여 드나듦에 일정한 법칙이 없다. 아주 친밀하게 붙어 있어서 서로를 배반하지 못할 것 같으나 잠시라도 살피지 않으면 어느 곳이든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이익으로 유도하면 떠나가고, 위험과 재화가 겁을 주어도 떠나가며, 심금을 울리는 고운 음악소리만 들어도 떠나가고, 새까만 눈썹에 흰 치아를 한 미인의 요염한 모습만 봐도 떠나간다. 그런데 한 번 가면 돌아올 줄을 몰라 붙잡아 만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천하에서 가장 잃어버리기 쉬운 것들 중 나 같은 것이 없다. 그러니 어찌 실과 끈으로 매고 빗장과 자물쇠로 잠가서 굳게 지키지 않겠는가.

나는 잘못 간직했다가 나를 잃은 자이다. 어렸을 때 과거가 좋게 보여서 과거에 빠져든 것이 10년이었다. 마침내 처지가 바뀌어 조정에 나가서 검은 사모에 비단 도포를 입고 미친 듯 대낮에 큰 길을 뛰어다니기를 12년을 하였다. 또 처지가 바뀌어 한강을 건너고 조령을 넘어, 친척과 분묘墳墓를 버리고 곧바로 아득한 바닷가의 대나무숲에 달려와서야 멈추게 되었다. 이때는 땀이 흐르고 두려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나의 발뒤꿈치를 따라 함께 이곳에 오게 되었다.
둘째 형님께서도 그의 나吾를 잃고 나를 좇아 남해지방으로 왔는데, 유독 큰 형님만이 그의 나吾를 잃지 않고 편안히 수오재에 앉아 계신다. 이는 본디부터 지키는 것이 있어 나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아니겠는가. 이것이 큰형님께서 거실에다 이름 붙인 까닭일 것이다.
■ 정약용의 『다산시문집』중 '수오재기(守吾齋記)'편

세상에서 금덩이와 돈꿰미를 내어 정자와 별장을 경영하는 것은 대개 능력이 있는 자들이 하는 일이다. 그렇게 정자와 별장을 경영하고자 한 뜻 또한 심공과 같았으리라. 허나 여러 곳에 있는 넓고 한적한 땅에 탁 트이게 지은 건물에 대해 주인이 현재 있는지 없는지 물어본다면, 대개 사람이 없다고 한다. 눈으로 만나고 마음으로 깨닫게 하는<당나라 시인 유종원(柳宗遠)의 '맑은 모습은 눈과 함께 도모하고, 시원한 소리는 귀와 함께 도모하며, 여유 있게 텅 비는 것은 정신과 함께 도모하고, 고요하게 깊이가 있는 것은 마음과 함께 도모한다'는 문구에서 빌은 표현> 광경을 하나같이 지나는 길손이 감상하게 맡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지위가 높고 녹봉이 많으면 마음을 갉아먹기에 족할 뿐, 강과 산과 바람과 달을 취해 즐길 겨를이 없다. 때문에 부귀한 사람은 한가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지 않은 적이 없지만 한가함을 얻을 수 없는 법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부귀한 사람은 늘 많았고 한가한 사람은 늘 적었다. 그렇다면 한가함을 얻는 것이 부귀해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 윤순의 『백하집』중 '차군정기(此君亭記)'편

일찍이 산인의 기를 읽고서
극복루에 오르리라 생각했다오
이끼 낀 오솔길을 더듬어 찾아
깊숙한 동문에 들어왔네
천 길이라 고목은 빼어나고
팔월이라 계곡은 가을이로세
번거로운 생각이 씻은 듯하니
여기서 오래 오래 머물렀으면

曾讀山人記 思登克復樓
試尋苔徑細 來入洞門幽
古木千章秀 深溪八月秋
灑然滌煩慮 聊可此淹留
■ 정도전의 『삼봉집』중 '무열산인 극복루기 후설(無說山人克復樓記後說)'편

사람이란 신체와 기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제아무리 빼어난 지혜를 지녔다 하여도 실수가 없을 수 없다. 성인聖人과 광인狂人은 뉘우침의 여부에 따라 차이가 난다. 그래서 은나라의 현자인 이윤伊尹은 "광인이라도 지극히 생각하면 성인이 될 수 있고, 성인이라도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광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때 생각한다는 말은 곧 뉘우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공자는 "주나라의 어진 정치가인 주공周公처럼 훌륭한 재질을 지녔다고해도,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다른 것은 볼 가치조차 없다"고 하였다. 이때 인색하다는 말은 곧 뉘우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덧붙여 공자는 "내가 몇 해를 더 살아서 『주역』공부를 마칠 수 있다면 큰 과오가 거의 없을 것이다"고 했다.
주공과 공자와 같은 성인들은 의당히 뉘우칠 만한 잘못이 없을텐데도 이러했는데, 평범한 사람에 불과한 우리들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주역』은 잘못을 뉘우치는 책이다. 성인은 근심과 재앙을 만나더라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 않으며 자신의 잘못만을 스스로 뉘우칠 뿐이다. 만약 성인이라고 해서 뉘우침이 없다면, 그들은 우리와 같은 부류가 아니니 무엇 때문에 흠모할 것인가. 공자의 수제자이면서 요절한 안연顔淵을 어질다 하는 이유는 '불이과不貳過', 즉 같은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한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를 용맹하다고 칭송하는 이유는 '희문과喜聞過', 즉 자신의 잘못을 남으로부터 듣는 일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잘못은 허물이 될 수 없다.
■ 정약용의 『다산시문집』중 '매심재기(每心齋記)'편

"나는 세속에서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만약 하루만이라도 내 뜻을 펼칠 수 있다면 그 영광이 벼슬하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나의 적의適宜(무슨 일을 하기에 알맞고 마땅함)를 굳히자는 것이지요. 벼슬아치로서 금띠를 두르고 옥패를 울리는 자들의 몸은 비록 영예로울지 모르나, 이는 스스로 적의에 맞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되길 원치 않습니다."
■ 허균의 『성소부부고』중 '임창헌기(臨滄軒記)'편

누군들 부자가 되고 싶지 않고 귀해지고 싶지 않고 장수하고 싶지 않을까마는 사람마다 그렇게 안 되는 것은 분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누군들 가난을 싫어하지 않으며 천한 것을 싫어하지 않으며 요절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을까마는 사람마다 면할 수 없는 것은 분수가 정해져 잇기 때문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부와 귀는 사람들이 다 원하는 바이지만 정당한 도리로 얻은 것이 아니면 누리지 않고, 가난과 천함은 사람들이 다 싫어하는 바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도 버리지 않는다" 하였고, 맹자는 "요절에 의혹됨이 없이 몸을 닦고 주어진 수명을 기다리는 것이 명을 세우는 것이다" 하였으니 이것이 안분安分의 말이다.
『주역』에는 "군자가 이를 보고 생각하기를 그 지위에서 벗어나지 않게 한다" 했고 『중용』에는 "군자는 현재 처해 있는 지위에 따라 행한다" 하였으니, 지위란 분수가 있는 곳이다. 그 분수를 편히 여기지 않고 일을 하려 한다면 이는 하늘을 거역함이요 도리를 거스르는 일이니 반드시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제 분수에 순응하여 길하고 소인은 그에 어긋나서 흉한 것이다.

제齊나라와 양梁나라 임금은 지위가 높지 않은 것이 아니요 재물이 부족한 것이 아닌데도 성을 차지하려고 싸웠다. 그리하여 시체가 성에 가득하도록 사람을 죽였다가 끝내는 나라가 망하고 자신도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이것 역시 제 분수를 편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평범한 사람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오직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어찌 모욕을 당하고 재앙을 맞는 일이 없겠는가.

왕공王公 귀인의 분수는 내가 감히 말하지 못하겠지만 나 같은 사람의 분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대바구니의 밥과 바가지의 물을 마시며 도를 즐긴 것은 안자顔子의 분수요, 굶주림을 참고 글을 읽은 것은 주자朱子의 문인 채원정蔡元定의 분수이다. 도道와 서書는 진실로 선비가 가지고 있는 바이거니와, 이를 즐기고 읽는 것은 바로 그 분수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기驥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 말은 또한 기와 같은 말이요, 안자顔子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또한 안자와 같은 사람이다" 하였으니, 진실로 능히 하기만 한다면 지금 사람도 옛사람이 될 수 있다.
■ 안정복의 『순암집』중 '안분설(安分說)'편

졸拙은 교巧의 반대이다. '임기응변과 교묘한 짓을 하는 사람은 부끄러워하는 것이 없다" 하였으니,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시람의 큰 병통이다. 남은 이욕을 즐겨 취하려고 하나 나는 부끄러워할 줄 알아 의리를 지키는 것이 '졸'이요, 남은 속이기를 좋아하여 교묘한 짓을 하나 나는 부끄러워할 줄을 알아 진실을 지키는 것 역시 '졸'이니, 졸이란 남이 버리는 것을 내가 취하는 것이다.

취한다고 꼭 소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교묘하게 움직인다고 꼭 되는 것도 아닌데 정신만 날로 피로해져 한갓 스스로 폐만 보게 되니, 어찌 나의 진실을 버리고 교묘함과 허위에 의탁하여 이득만 구할 것인가. 오직 의리대로 하여 진실을 지키는 사람은 자신을 잃지 않기 때문에 바라는 것이 없어 편안하고, 부끄러울 것이 없어 태연해지는 것이다. 이래서 '졸'한 사람은 부끄러워할 줄 앎으로써 마침내는 부끄러워할 게 없어지고 호연히 존재하게 된다. 때문에 '졸'을 기름은 곧 덕을 기르는 것이 된다.
■ 권근의 『양촌집』중 '졸재기(拙齋記)'편

어린 시절부터 나는 달리 좋아한 것 없이 문장만을 즐길 뿐이었다. 문장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좋아하기 때문에 잘하지 못하면서도 때로는 문장을 지어 혼자 즐거워하기도 했다. 또 드러내어 자랑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남을 향해 명예를 구하는 것을 부끄러워해 사람들은 더러 괴이하다며 꾸짖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했던 나는 이런저런 질병이 많았다. 그래서 독서를 부지런히 할 수도 없었다. 때문에 강론하고 학습하는 것이 고루하였으며, 가르치고 이끌어주는 벗조차 없었다. 또한 집안이 가난하여 간직한 책도 없었으니 지식을 기를 수도 없었다. 제아무리 깊이 즐긴다 하여도 그 학문이 민망할 정도였다.

한덩이의 먹을 갈고 세 치쯤 되는 붓을 휘둘러서, 아름다운 문장을 따오고 주워 모아 마음에 있는 것을 화공처럼 그려낸다. 그리하여 답답하게 서린 근심을 기쁘게 풀기도 하고 서로 배치된 감정을 합하기도 한다. 휘파람 불고 노래하며 웃고 꾸짖으니 산수의 밝고 아름다운 것과 서화의 기이하고 고상한 것과, 구름, 안개, 눈, 달의 변화하고 고우며 희고 조촐한 것과, 꽃, 풀, 벌레, 새의 예쁘고 아름답고 울고 나는 모든 것이 내 붓에서 표현되었다. 다만 그 천성이 사납지 않아 과격하거나 괴팍하거나 꾸짖고 비방하는 따위의 언사를 쓰지 않으며, 또한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다 하여 찢어버리지도 아니하고 그저 엮는다. 붉고 푸른 색깔로 포장한 뒤에 표제를 붙여 책 한 벌을 짓는다. 이것을 주머니에 넣고 봉합하여 베고 깔고 휴대하며 찬송도 하고 외어서 노래도 하는 등 벗과 같이 친하고 형제와 같이 사랑하였다. 이는 모두 스스로의 영묘함에 자적하는 것으로 타인의 눈에 보일 만한 것은 못되었다

요리사가 아름다운 음식을 장만함에 있어 큰 곰의 발바닥과 살찐 닭의 발바닥과 잉어의 꼬리와 성성猩猩<중국에 전하는 상상 속의 짐승>의 입술과 금제옥회金虀玉膾<생선회 요리>에 생강과 계피를 섞고 소금과 매실을 조화하여 삶고 볶기를 알맞게 하며 신맛과 짠맛으로 간을 맞추어 공후公候에게 바치면 배부르도록 맛있게 먹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공후는 아름다운 요리를 즐길 줄은 알아도 요리사와 같이 아름다운 요리를 만들 줄이야 알겠는가? 내가 문장을 즐기는 것도 또한 공후가 요리를 즐기는 것과 같은 것이리라. 초에 담그면 응당 시고 간장에 절이면 응당 짠 것쯤은 아무리 공후라 하여도 대략 어림잡을 것이니, 내가 문장을 약간 지을 줄 안다는 것도 이와 같을 것이다. 어찌 일부러 스스로 겸손만 하고 스스로 찬미하지 아니함이 있겠는가?
■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중 '영처고 자서(嬰處稿自序)'편

무릇 통곡을 하는 데에도 도가 있는 법. 사람의 일곱 가지 감정 중 마음을 쉽게 통하게 하는 것으로 슬픔만 한 게 없다. 슬픔이 일면 으레 곡을 하게 되는데 그 연유에도 여러 단서가 있다. 때를 잘못 만나 의도한 일을 행하지 못한 것에 상심하여 통곡한 이로는 한나라 때 학자 가의賈誼가 있고, 흰 실이 본색을 잃은 것에 슬퍼하여 통곡한 이로는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묵적墨翟이 있으며, 갈림길이 동서로 나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통곡한 이로는 이기적 쾌락설을 주창한 전국시대 학자 양주楊朱가 있다. 또 길이 막혀서 통곡한 이로는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학자 완적阮籍이 있고, 불운한 팔자가 속상하고 한스러워 자기를 세상 밖으로 내쳐 통곡한 이로는 당나라 문장가 당구唐衢가 있다. 이들은 모두 품은 뜻이 있어서 통곡했던 것이지, 헤어짐에 상심하거나 하찮은 일 때문에 아녀자의 통곡을 흉내낸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의 시대에 비하면 오늘날은 더욱 말세이다. 국사는 나날이 그릇된 길로 가고 선비들의 행실도 갈수록 야박해진다. 친구 간에 대치하며 배척하는 것이 갈림길 나뉜 것보다 심하고, 어진 선비가 고난을 겪는 일은 길이 막힌 것보다 심해서 모두 세상 밖으로 도망갈 마음만 갖고 있다. 만약 이를 위의 군자들이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아마도 모두 통곡할 겨를도 없이 은나라 현자 팽함彭咸이나 초나라 지사 굴원屈原처럼 돌덩이를 끌어안거나 모래를 품고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자 할 것이다. 내 조카 친이 서실의 편액을 '통곡'이라 칭한 것도 다 이러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니, 그대들은 그 이름을 비웃지 말 일이다.
■ 허균의 『성소부부고』중 '통곡헌기(慟哭軒記)'편

날 때부터 다리를 절고 키가 작은 사람이 용모가 아름다운 사람과 나란히 서서 자신을 보면, 제 몸이 못난 것은 싫어하고 남이 아름다운 것만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신이한 도술을 가지고서 하루아침에 그 용모를 바꾸어줄테니 매우 위험한 곳으로 가라 한다면, 저들은 반드시 머뭇거리다가 악착같이 줄행랑을 치며 행여 뒤쫓아 오지는 읺을까 겁을 낼 것이다. 이를 보면 그 사람도 제 몸을 아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남들이 부귀한 것을 보면 모두 사생결단하여 목숨은 돌아보지 않고 급급하게 부귀를 구하려고 한다. 원하는 바를 얻을 수만 있다면 서로 밀치고 빠뜨리면서 마침내 제 자신을 죽이는 데까지 간다. 그러면서도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물욕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자신의 바른 성명性命을 바꿔버리기까지 한다. 이러하면 생김생김이 아름답게 타고났다 하여도 다리를 절고 키가 작은 사람의 비웃음을 어찌 받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 심낙수의 『은파산고(恩坡散稿)』중 '애오헌기(愛吾軒記)'편

가난하고 궁색할 때 사귄 이를 '지극한 벗'이라고 하는데, 그 사이가 아무 허물이 없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 때문일까? 또는 요행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서로 처한 상황이 비슷하고 겉모습이나 행적을 돌아다볼 필요가 없으며 빈곤이 주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을 부여잡고 수고로움을 위로할 때는 반드시 먼저 밥은 먹었는지 추위에 떨거나 더위에 지치지는 않았는지 묻고, 그런 다음에 살림 형편을 물어보곤 한다. 그러다 보면 말하고 싶지 않앗던 일조차 저절로 입 밖으로 나오게 마련이다. 진심으로 나를 측은하게 여기는 정을 느끼고 감격하는 바람에 마음이 그렇게 하도록 시킨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조차 꺼내기 힘든 형편도 이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입에서 바로 쏟아져 나와 억누를 길이 없게 된다. 어떤 때는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하루종일 아무런 말도 없이 베개를 베고 잠을 청한 다음 떠나곤 한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과 십 년간 나눈 대화보다 더 낫다.
그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친구를 사귈 때 마음과 뜻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말을 나누어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것과 같다. 벗을 사귈 때 마음의 틈이 없다면 서로 아무런 말없이 묵묵히 있어도 마냥 좋다. '머리가 하얗게 세도록 만나도 항상 새롭고, 길가에서 우연히 만나 사귄 이도 옛 친구나 다름없네'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재물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부탁할 것을 우려하여 먼저 자신은 가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의 기대를 끊기 위해 아무 말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교제에 힘을 쏟고, 손을 부여잡거나 무릎을 맞대고 앉은 친구 사이라고 해도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실의에 빠져 집으로 돌아가고는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나는 이로써 가난을 의논한다는 말이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것이 격분에 차 나온 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 박제가의 『초정전서』중 '송백영숙기린협서(送白永叔基麟峽序)'편

훌륭한 사귐은 꼭 얼굴을 마주해야 할 필요가 없으며, 훌륭한 벗은 꼭 가까이에 두고 지낼 필요가 없다. 마음으로 사귀고 덕으로 벗하면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도의로 사귀는 것이다. 옛사람과 벗해도 먼 것이 아니요 만 리나 떨어져 있는 사람과 사귀어도 먼 것이 아니다.

엄행수는 지저분한 똥을 날라다주며 먹고사니 지극히 불결하달 수 있겠지만 그가 먹고사는 방법은 지극히 향기로우며, 그가 처한 곳은 매우 지저분하지만 의리를 지키는 점에 있어서는 지극히 높다 할 것이다. 그 뜻을 미루어 보면 비록 만종의 녹을 준다해도 그가 어떻게 처신할지 알 만하다.
이상을 통하여 나는 깨끗한 가운데서도 깨끗하지 않은 것이 있고 더러운 가운데서도 더럽지 않은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먹고사는 일에 있어 아주 어려운 처지를 당하면 언제나 나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떠올리곤 하는데, 엄행수를 생각하면 견디지 못할 일이 없었다. 진실로 좀도둑질할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럴 때 엄행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를 더 확대시켜 나간다면 성인의 경지에도 이를 수 있을 것이다.
■ 박지원의 『연암집』중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편

산은 우리 인자仁者가 좋아하는 바이니 산을 보면 우리의 인仁을 보존할 수 잇을 것이요, 물은 우리 지자智者가 좋아하는 바이니 강을 보면 우리의 지智를 보존할 수가 있을 것이다. 눈은 온기를 덮어서 감싸주니 겨울에도 우리의 기운이 조화로움을 잃지 않도록 보존할 수가 있을 것이요, 달은 밤에 밝음을 내어 비춰주닌 밤에도 우리 몸이 다치지 않도록 보존할 수가 있을 것이다. 또 바람은 팔방에서 각각이 때에 맞게 불어주니 이를 통해 우리가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요, 꽃은 사시에 따라 각자 같은 종끼리 모여서 피는 모습을 보여주니 이를 통해서 우리가 질서를 잃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더군다나 김구용으로 말하면 가슴속이 깨끗하여 한 점 티끌도 남아 있지 않은데다가, 거처하는 곳의 산과 물 역시 밝고 푸르기만 해서 밝은 거울이요 비단 병풍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인데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벗이란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옛날 세상으로 거슬러 올라가 벗을 찾아본다면,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또한 지금 세상에서 당장 벗을 찾아본다 하더라도 우리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어찌 적다 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구용이 벗을 취하는 점이 이와 같으니, 이런 점에서 김구용이야말로 한세상의 독보적인 존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천지는 우리의 부모요 만물은 우리의 벗이니, 이렇게 본다면 어디를 간들 벗을 구하지 못할 리 있겠는가. 더군다나 하늘을 품고 잇는 산과 반복해서 흘러오는 물로 말하면, 우리로 하여금 익히도록 지도해주고 많이 알게 해주니 진정 우리의 유익한 벗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런 내용으로 육우당기를 지어주는 바이다.
■ 이색의 『목은집』「목은문고」중 '육우당기(六友堂記)'편

김군(김덕형金德亨)은 꽃밭으로 서둘러 달려가 꽃을 주목하며 하루 종일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 아래에 자리를 깔고 눕는다. 손님이 와도 말 한 마디 나누지 않는다. 이를 보는 사람들은 반드시 미친 사람 아니면 멍청이라고 생각하여, 손가락질하며 비웃고 욕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비웃는 자들의 웃음소리가 채 끊어지기도 전에 생동하는 뜻은 이미 다해버리고 만다.
김군은 진심을 다해 만물을 스승으로 삼는데 그래서인지 그림 그리는 기술이 천고에 으뜸이다. 그가 그린 <백화보百花譜>는 꽃병의 역사에 그 공로가 기록될 만하고, 향기의 나라에서 제사를 올릴 만하다. 벽癖의 공이 진실로 거짓되지 않음을 알겠다. 아아! 저 벌벌 떨고 빌빌대며 천하의 큰일을 그르치면서도 스스로는 지나친 병통이 없다고 여기는 자들이 이 첩을 본다면 경계로 삼을 만하다.

마음에 차는 옛 그림을 한 번이라도 보면, 비록 화폭이 온전치 않고 장정이 망가졌더라도 반드시 비싼 값에 이를 구입하여 목숨처럼 애호하였다. 아무개가 좋은 그림을 지녔다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찾아가 눈으로 보고 마음에 녹여, 아침 내내 보고도 피곤한 줄 모르고 밤을 새우고도 지칠 줄을 모르며 밥 먹는 것도 잊고 배고픈 줄도 알지 못하니, 심하도다, 나의 벽癖이여!
「벽설증방군효량癖說贈方君孝良」
■ 박제가의 『정유각문집』중 '백화보서(百花譜序)'편
■ 이규상의 『병세재언록』중 '석치(石癡) 정철조'편


"사람이 제 마음을 속이면 매사에 진실되지 못하니, 악한 짓을 하기는 쉽고 착한 일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학』에서나 선대의 하자들도 성신誠身의 도리를 말할 때는 언제나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 '자기 혼자만 아는 곳을 삼가라'는 등으로 자아성찰의 근본을 삼으라 하였지요. 우리 노사蘆沙<조선 후기 학자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호. 성리학의 6대가(六大家) 중 한 사람>선생도 일찍이 '그 마음을 속이면 천명天命을 속이는 것'이라는 말로 훈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성誠 자를 제가 거처하는 방 위에 걸고 아침 저녁으로 보며 그에 종사하려 하니, 그 의도를 기문으로 써주기 바랍니다."

誠은 의의가 광대하지만 본체本體는 지극히 진실하여 거짓이 없는 것이며, 작용作用은 지극히 꾸준하여 휴식하지 않는 것이다. 천지의 조화와 시간의 운행에서부터 미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들의 삶이 천태만상으로 일정하지 않은데 그 역시 성誠의 길일 뿐이다.
사람의 오성五性<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은 내면에 갖추어져 있고 칠정七情<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오(惡), 욕(慾)>은 움직이는 데서 감응된다. 이것이 차례가 정해지면 오륜五倫이 되고 분산이 되면 만사가 된다. 역시 다 진실하며 텅 비고 고요해 물건마다 모두 지니고 있는데 어느 때라도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옛날 성현들도 스스로를 위하고 남을 위할 때 이 몇 가지 것을 성실히 하려고 할 뿐이었으니, 어찌 따로 성誠이라는 것이 있겠는가. 다만 부여받은 기질이 맑고 탁함과 어둠과 밝음의 차이가 있고 욕심이 양심을 가리는 것도 얕고 깊음과 넉넉함과 모자람이 같지 않기 때문에 진실과 거짓, 옳음과 그름, 성인과 우인, 유능함과 무능함의 구분이 있는 것이다.
기품이 청명하여 주어진 성품을 온전하게 가지고 있으면 이는 성인의 성誠이 자연적으로 움직인 것이며, 기품이 충분히 청명하지 못하여 약간 물욕의 누는 있으나 그것을 능히 다스리게 되면 이는 현인의 성誠이 인위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남이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경우라 할지라도 삼가고 생각한 뒤 말해야 한다. 움직이는 때라도 살펴 좋은 것을 알고 실행하면 마치 그 일을 이성을 좋아하듯 해서 북돋고 길러 잠시라도 중단이 없게 하되, 그 일이 나빠서 버려야 한다면 악취를 싫어하듯 갈고 깎아 내어 뿌리도 남기지 말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말마다 성실하고 일마다 성실하여 조금이라도 사사로운 욕심을 부리거나 자기 마음을 속이는 일이 없게 되면 성誠의 도에 가까워질 것이다.
■ 최익현의 『면암집』중 '성헌기(誠軒記)'편

어눌하여 말도 잘하지 못했고, 성질은 게으르고 졸렬하여 세상 일에 어두웠으며, 바둑이나 장기는 더더구나 알지 못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이 욕을 해도 변명하지 않고, 칭찬해도 자랑하거나 뽐내지 않으며, 그저 책 보는 것만을 즐거움으로 삼아 추위나 더위, 배고픔이나 아픈 것도 전연 알지 못했다.
두보의 오언율시를 좋아하여 병으로 끙끙 앓는 사람처럼 골몰하며 웅얼거렸다. 심오한 뜻을 깨치면 몸시 기뻐하며 일어나 왔다 갔다 걸어 다녔는데, 그때 내는 소리가 마치 갈까마귀가 우짖는 듯하였다.
간혹 아무 소리도 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뚫어지게 보기도 하고 혹은 꿈꾸듯이 홀로 중얼거리기도 하니, 사람들은 그를 두고 '간서치看書痴(책만 보는 바보)'라 하였다. 그래도 그는 이 또한 즐겁게 받아들였다.
시문집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예나 지금이나 인가人家의 자제들이 밀랍 먹인 종이로 바른 창문에 화려하고 높은 책상을 두고 그 옆에 비단으로 장정한 서책들을 빽빽하게 진열해두고서, 머리에는 복건을 쓰고 흰 담요 위에 비스듬히 누운 채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얘기들을 지껄이고 기침이나 캉캉 뱉다가 한 해가 다 가도록 책 한 글자 읽지 않는 것이 참말이지 제일로 유감스럽다.

옛사람이 말하기 "책 일만 권을 읽으면 붓끝에 신기가 어린 듯하다"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글을 일천 번 읽으면 그 의미가 저절로 나타난다"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묵은 글을 싫증내지 않고 일백 번 읽는다"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일만 권의 책을 가지고 있으면 일백 개의 성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낫다"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책 오천 권을 읽지 않은 자는 내 방에 들어오지도 말라" 하였으니, 옛사람이 독서함에 있어서 얼마나 그 양이 많고 그 폭이 넓었는지를 알겠다.
■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중 '간서치전(看書痴傳)'편

아가위 꽃송이 활짝 피어 울긋불긋,
지금 어떤 사람들도 형제만 한 이는 없지.
저 할미새 들판에서 호들갑 떨듯,
급할 때는 형제들이 서로 돕는 법이라오.
항상 좋은 벗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저 길게 탄식만 늘어놓을 뿐.
환란이 일단 지나고 사태가 안정되어 몸이 편해지면,
비록 형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제는 친구만 못하게 여기도다.

常棣之華 鄂不韡韡 凡今之人 莫如兄弟
鶺鴒在原 兄弟急難 每有良朋 況也永歎
喪亂旣平 旣安且寧 雖有兄弟 不如友生
<상체常棣>
■ 이곡의 『가정집』중 '의재기(義財記)'편

올 적에는 달빛이 희미하였는데
취중에 눈이 깊이 쌓였네
이러한 때 벗이 있지 않으면
장차 무엇으로 견딜 것인가
나는 <이소>를 지녔으니
그대는 해금 끼고
한밤중에 문을 나서
이자李子(이덕무)를 찾아가세

來時月陰 醉中雪深
不有友生 將何以堪
我有離騷 子挾琴
夜半出門 干李子尋
-박제가

기질 다른 형제요
한 방에 살지 않는 부부라
사람이 하루라도 벗이 없으면
좌우의 손을 잃은 듯하리
<야숙강산夜宿薑山>

중원의 사람들은 친구를 자신의 목숨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어양漁洋 왕사진王士稹<청나라 초기 시인>은 "빙수와 우장이 달 밝은 밤에 모자를 벗고 맨발로 나를 찾아와서는" 이라는 시를 지었고, 소장형邵長衡<청나라 초기 문인>은 문집에서 왕사진과 이웃해 살며 나눈 아름다운 일을 회상하며 기록했다. 벗들의 만남과 헤어짐을 적은 것이다. 난 그 글들을 들여다볼 때마다 비록 다른 곳에서 태어나도 마음은 같을 수 있음을 느낀다. 백탑의 벗들과 더물어 감탄하며 즐거워한 일이 너무나 오래되었다.
■ 박제가의 『초정전서』중 '백탑청연집서(白塔淸緣集序)'편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