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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7 사리구

글 / 김희경●사진 / 손재식
1996,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3088

082
빛12ㄷ 48


빛깔있는 책들 48

김희경------------------------------------------------------------------------

함남 영흥 출생으로 동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미술사)를 전공했다. 현재 '한국미술사학회' '한국범종연구회' 평의원으로 있으며 동국대에 출강중이다. 탑파연구로 제1회 우현상을 수상했다. 편저로 「한국탑파목록」「한국탑파사리목록」「한국탑파연구자료」「한국범종목록」「탑속에 설치된 사리장치」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한국범종소고」「한국탑파사리장치소고」「한국건탑인연의 변천」「한국탑파의 사리병양식고」「한국탑파연구의 과거와 현재」등과 저서「탑」(한국의 미술2, 열화당)이 있다.

손재식------------------------------------------------------------------------

신구전문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했고, 대림산업 홍보과와 대원사 사진부에서 근무하였으며,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85년 유럽 알프스 촬영 등반, 87년 네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촬영 등반 보고전을 가진 바 잇으며, 사진집으로 「한국 호랑이 민예 도록」이 있다.

|차례|

사리
사리용기
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용어해설

 

▲ 송림사 5층전탑 사리기
전각형 금동 사리기 안에 녹색 유리제 사리병이 서아시아식 유리잔 안에 넣어져 안치되었다. 국립박물관 소장

▲ 분황사 석탑 사리구(일부) 현존 고신라 유일의 탑으로, 1915년 수리 당시 제2층과 3층 사이 중앙의 석함 속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이들 유물의 큰 특징은 여성용 물품과 장신구가 많다는 것이다. 또 이 사리구와 함께 상평오수 등의 화폐가 보임으로써 고려시대에 탑의 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청동제 사각감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청동제 사리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사천왕상 오른손에 탑을 받들고 있어서 북방 다문천임을 알 수 있다. 얇은 동판을 두들겨 만든 것으로 상의 앞면만을 표현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오른쪽) 오른손을 허리에 대고 왼손에 창을 든 형태인 동방 지국천이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왼쪽)

금동 사리외함 뚜껑 안쪽에 706년에 사리구를 장치하였다는 내용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4면에는 99기의 소탑이 새겨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은제, 금제 사각합
외함 속에 들어 있던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리구(일부) 석가탑에서 발견된 2점의 동경은 모두 문양이 없으며, 그 중 하나는 약 4분의 1만 남았다. 수정제 구슬, 곡옥 들도 함께 넣어져 있었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은제 사리함 왼쪽은 내합이고 오른쪽은 외합이다. 내합 안에는 사리 36알이 들어 있었고, 내합은 외합에 넣어져 사리외함 속에 안치되어 있었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불국사 3층석탑 금동 사리외함 각면에 옛 모양의 안상이 투각된 기단 위에 동판을 투각하여 도금한 전각형 상자함을 얹은 것이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장방형 탑문 금동 사리함 앞뒷면 중앙에 목탑 형식의 3층탑과 좌우에 보살상을 조각하였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불국사 3층석탑

▲ 사리구 갈항사지 석탑에서 나온 사리용기로 왼쪽부터 서탑의 동제 외용기, 서탑의 금동 사리병, 동탑의 금동 사리병, 동탑의 동제 외용기이다. 이들은 모두 각 탑의 기단 밑에 장치되어 있었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금동 내함의 문짝 안팎 가득히 신장 입상이 선으로 음각되었다. 이들의 양식적 특징으로 9세기 후반의 작품임을 추정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도리사 금동 사리구 6각 원당 부도형으로 기단, 몸체, 옥개의 세 부분으로 되었다.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 보살 입상 선산 도리사 금동 사리기의 한면에 새겨진 보살상이다.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 토탑 서동리 동 3층석탑에서 발견된 작은 토탑 99기이다. 이 탑들은 틀로 박아 구운 후 호분을 바른 것이다. 이러한 탑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내용에 의거하여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사리구 위 오른쪽 것은 짙은 녹색의 두꺼운 유리제 사리병이고, 왼쪽은 사리공의 중앙에 안치되어있던 회백색의 활석제 뚜껑 있는 둥근 항아리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사리구(일부) 왼쪽 것은 "불정존승다라니"라는 먹글씨가 있는 회백색 원통형의 작은 항아리이고, 오른쪽은 청동 사리호이다. 이 청동 사리호는 왼쪽의 납석제 항아리보다 제작 연대가 아래이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탑지석 법광사지 3층석탑의 건립과 이건, 중수 등이 연대를 달리하면서 각면에 새겨져 있다. 연질의 회흑색인 납석제인데 간단 명료한 문자로 음각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비석형 탑지석이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청동제 소호 신라의 사리용기는 유리제 사리병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이 청동제 소호같은 금속제 병은 그 예가 드물다. 안성군 이죽면 미륵당의 석탑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전한다.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 납석제 사리석호
'함통 4년(863)'이라는 명문이 있다.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 동천리 출토 청동 사리함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동제 8각 사리구 8각 부도형으로 몸체 안에 녹색 유리제 사리병이 안치되었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전 흥법사 염거화상탑지
구리로 만들어진 탑지판으로, 회창 4년(844)에 염거화상이 입적하였다는 내용이 음각되었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전 염거화상탑 현재 경복궁에 있는 탑으로 탑지의 명문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부도임이 밝혀졌다.

▲ 선림원 석탑내 발견 소탑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 왕궁리 5층석탑 사리구 위 오른쪽은 금동 경관 내합으로 아래의 순금제 「금강경」판이 넣어져 다시 금동제 외함 속에 안치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순금판경은 국내외에서도 그 유래가 없는 보물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금제 방형 사리합 왕궁리 5층석탑의 제1탑신 상면 동쪽 구멍 속에 있었다. 이 속에 사리병이 넣어져 있었고, 합 표면에 연화문, 연주문, 어자문 등이 새겨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오른쪽)

▲ 유리제 사리병 왕궁리 5층석탑의 금제 사리합 속에 넣어져 있었다. 목이 길고 금제 연봉오리로 마개를 하였으며, 그 밑에는 병을 받치기 위한 앙련대좌가 마련되었다.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통화 23년명 탑지석(앞면) 고려시대에 들어 탑지석의 크기가 소형화되는 경향인데, 그러한 현상을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 금강산 이성계 발원 은제 도금 사리구 왼쪽부터 은제 도금 탑 모양의 사리기, 8각 원당형인 감, 원통형 명문판과 함께 발견된 청동 바리와 백자 바리. 1932년 금강산 월출봉의 석함 속에서 발견된 사리구로 홍무 24년(1391년)에 매납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수종사 부도 사리구 1939년, 수종사에 있는 고려시대 부도 안에서 발견되었다. 중국 용천요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청자유개호 안에 금동 9층탑, 은제 도금 6각갑, 수정제 사리탑, 항목 등이 들어 있었다. 위는 청자유개호, 가운데는 은제 도금 6각감, 아래는 금동 9층탑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법주사 팔상전 사리구 5장의 동제 지판 가운데 일부이다. 이 지판의 명문은 점각되었다.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 법주사 팔상전 사리호 얇은 은 바탕에 도금한 사리호는 마개에 호박을 박아 넣었다. 이 사리호는 다시 금동 연화 타출문 환형 받침 위에 안치되었다.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