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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26. 15:20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92 삶으로서의 철학, 소크라테스의 변론

 

나종석 지음, 플라톤 원저

2010, 아이세움

 

신천도서관

SG031219

 

082

나67ㅇ 8

 

나의 고전읽기 8

 

인류를 이끌어 온 고전의 향기를 맡는다.

 

조국보다 진리를 더 사랑했던

소크라테스의 비극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의 철학적 활동이 어떻게

그의 비극적 죽음으로 이어졌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지극히 상식적으로 생각되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질문들이

왜 아테네 시민들의 분노와 공포를 자아냈을까?

아테네 도시 국가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위험한 인물로 평가되어 시민 법정에 세워진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삶의 근본 물음을 던지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 머리말 중에서

 

나종석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헤겔 철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앗다. 그 후 독일에 유학하여 헤겔과 비코에 대한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에 정치 및 사회철학에 관련된 여러 논문들을 발표하였다.

울산대학교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주로 관심을 갖고 탐구하는 주제는 서양의 정치철학이다. 특히 고대 그리스 정치사상, 독일 관념론 그리고 현대 정치철학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지금은 헤겔 정치철학과 현대 사회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다룬 저서를 준비하고 있다.

 

신준식

경상북도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회화과와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에서 수학하였다. 현재, 작업실 '일상'에서 작품 제작을 하며 온라인 문화커뮤니티 gallerykorea.net과 luxvillage.com을 운영하고 있다.

『가을반의 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 통치론』에 그림을 그렸다.

 

차례

 

머리말 · 철학적 사유를 통해 진리를 추구했던 철학자

프롤로그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소크라테스의 생애

소크라테스, 그는 누구인가?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문학적 허구인가?

『변론』의 기본 내용

 

2. 소크라테스의 무죄 변론 제1부

최초의 고발인들과의 대결

진실과 설득의 구별 - 소크라테스와 수사학

보이지 않는 적 - 과거의 비판자들

소크라테스의 지혜 -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적 논쟁 방법

 

3. 소크라테스의 무죄 변론 제2부

실재 고소인들에 대한 변론

나중의 고발자들 - '아니토스와 그 무리'에 대한 반론

 

4. 소크라테스의 무죄변론 제3부

소크라테스의 참다운 모습

소크라테스와 아킬레우스

철학적 삶을 위한 변호

선하고 정의로운 사람은 아무런 해도 입지 않는다?

-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역설

소크라테스와 민주주의

소크라테스 재판과 당시의 정치적 배경

 

5. 두 번째 연설과 세 번째 연설

두 번째 연설 : 형량에 대한 연설

세 번째 연설 : 사형 선고 뒤 배심원들에 대한 고별 연설

 

에필로그 · 철학적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더 읽을 책들

참고문헌

연표

소크라테스는 인간을 국가나 집단으로부터 독림된,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기초를 형성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아테네 시민은 군 장비를 스스로 마련해야 했는데, 갑옷과 투구를 갖춰 입는 중무장 보병인 '호플리테'는 중산층 신분을 나타낸다. 그리스 도자기에 그려진 호플리테으 모습.

크산티페는 악처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지만 이런 평가는 과장되었거나 사람들의 상상에 의한 것일 수 있다. 소크라테스에게 물을 끼얹는 크산티페. 1655, 블로멘탈, 스트라스부르 미술관.

당시 그리스의 귀족 자제들은 문법과 시가, 체육 교육을 받았다. 운동을 준비하는 그리스의 청년들.

키가 작고 눈은 튀어나왔으며 코는 납작하였다는 등 소크라테스의 외모는 볼품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천부적인 문학적 재능과 심오한 철학적 사유 능력을 겸비한 플라톤은 『변론』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삶과 철학을 가장 깊이 있고 탁월하게 전해 준다.

직업 군인이었던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를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인 인물로 표현해, 소크라테스에 대한 이해에서 플라톤의 『변론』과 비교가 되고 있다.

이탈리아 남서부에 있는 시칠리아 섬은 최초로 수사학이 발생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시칠리아에서 민주주의가 등장하기 전에는 신하들이 참주 앞에서 자유롭게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1550년에 만들어진 시칠리아 섬 지도.

아테네 시민들은 아고라에 모여 공공의 일에 대한 토론이나 연설을 즐겼다. 도시 국가의 중심지에 있던 아고라는 정치적인 광장과 시장을 겸한 독특한 공간이었다. 멀리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에서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파네스는 서로 진지하게 대화하는 사이로 그려진다. 고대 그리스의 '향연Symposion'은 시와 술과 대화가 어우러진 자리였다. <신들의 향연>. 1514. 지오반니 벨리니.

『일리아드』에는 아가멤논이 아폴론 신의 노여움을 사 그리스 병사들에게 역병이 돌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신에 대한 개인의 불경건한 행동이 공동체에 재앙을 불러온다는 아테네인들의 종교관을 엿볼 수 있다. 아가멤논의 황금가면.

아리스토파네스는 『구름』에서 소크라테스를 전형적인 소피스트로 묘사하며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주범으로 그리고 있다.

가르침의 대가로 소피스트가 받은 돈은 일반인들이 지불하기에는 너무 큰 액수였다. 아테네의 드라크마 주화. 올빼미는 아테나 여신을 상징한다.

그리스 고대 도시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터. 델포이 신탁은 내용이 모호하기로 악명 높았지만 신탁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다. 소크라테스는 델포이 신탁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철학적 활동을 신의 사명이라고 설명한다.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는 델포이의 신탁을 잘못 이해한 결과 전쟁에서 패하고 만다. 자신이 가장 현명하다는 신탁을 받은 소크라테스는, 신탁의 내용이 진실인지 검토하기 위해 아테네에서 지혜롭다고 소문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신의 뜻을 알기 위해 수행한 철학적 대화의 여정에서 온갖 비방을 받게 되자,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일을 헤라클레스가 치른 열두 가지 힘든 일들과 비교한다. 지옥의 문을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를 산채로 잡으려는 헤라클레스.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중앙에 대화를 나누고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 대화법의 특징을 '묵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하였다.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사람은 고의로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며 자신을 변론한다. 향락에 빠진 알키비아데스를 떼어 내는 소크라테스. 1791. J. B. 르노.

소크라테스는 신이 절대적으로 선하고 지혜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간적인 성격을 지닌 전통적인 아테네 신들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트로이의 전사 헥토르를 죽이면 자신도 죽게 될 거라는 말을 듣고도, 아킬레우스는 친구의 원수를 갚기 위해 헥토르를 죽인다. 불명예스럽게 사느니 죽음을 택한 것이다. 아들을 안고 헥토르의 죽음을 슬퍼하는 안드로마케.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킬레우스 못지않은 아테네의 영웅임을 은연중에 밝히면서, 아테네 시민들에게 철학적 삶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려 했다. 아킬레우스의 모습을 담은 그리스 우표.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아폴론 신의 명령에 따르는 전사로 자처하면서,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철학적 사명을 모숨을 걸고 수행할 것임을 천명한다. 바티칸에 있는 아폴론 조각상.

페리클레스는 전몰 병사를 위한 추도 연설에서 자식의 생명을 나라에 바치지 않고 평등과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소크라테스가 탈옥을 거부한 이유는, 탈옥을 국가가 자신에게 내린 부당한 판결에 대해 부당한 방식으로 보복하는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필로파포스 숲 속에 위치한 이곳을 소크라테스의 감옥이라고 주장하지만, 아테네의 감옥은 아고라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알키비아데스는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추구했던 철학적 삶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그는 권력만을 추구한 야심가였으며,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조국도 팔아 넘길 만큼 비열한 기회주의자였다.

니체는 소크라테스가 의도적으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자신의 도덕 원칙에 따라 일관된 삶을 살고자 했던 소크라테스의 참다운 모습을 망각한 것이다.

에게 해 카를라데스 제도의 가장 작은 섬인 델로스 섬은, 아폴론의 탄생지로 아테네인들이 신성하게 여긴 땅이다. 아테네는 해마다 한 번씩 델로스 섬으로 사절단을 파견한다.

소크라테스는 죽어서도 묻고 대화하는 철학적 삶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그렇게 사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스 도자기에 그려진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광경.

독배를 마시는 소크라테스. 철학적 삶이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이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그가 죽음 앞에서 그렇게 초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1787. 자크 루이 다비드.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헤겔은, '도덕적 자율성을 지닌 주체로서의 인간'이라는 자각을 심어준 소크라테스를 '세계사적 개인'으로 평가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소크라테스를 인류의 정신적 스승으로 높이 평가했으나, 그에 대한 사형 판결은 성실한 심리를 거쳐 확정된 것으로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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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