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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10. 12:25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33 문자의 역사

 

Geoges Jean 지음, 이종인 옮김

1996,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7205

 

082

시156ㅅ 1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

 

문자의 역사, 그것은 6천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일구어 낸 인류의 서사시이며,

메소포타미아에서 황하에 이르기까지의 문화가 담긴

장대한 인류 문명의 주춧돌이며, 그역사는

인류가 물려받은 기억의 총량이다.

 

역사적 사건을 기록

보존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문자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그리고 사건을 문자로 기록하는 사람은

왕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다.

14세기 중엽 프랑스의 성직자이며 궁신인

장 프루아사르는 푸아티에 전투로부터 시작되는

그 시대의 전사戰史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영국 여왕 필리파의 격려를 받으면서

영국의 귀족들을 방문했고 전투에서 포로가 된 프랑스의

기사를 찾아다녔다. 그는 자신의 책에다

<프랑스, 영국, 스코틀랜드, 스페인, 브리타니, 그리고

플랑드르의 연대기>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 책은 14세기 말까지의 역사를 다룬 것으로 백년전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탁월한 연대기 작가이며

역사가인 프루아사르는 역사 서술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차례

 

제1장 초라한 출발

제2장 신의 발명품

제3장 알파벳 혁명

제4장 필경에서 인쇄로

제5장 출판업자

제6장 문자해독자

기록과 증언

참고문헌

그림목록

찾아보기

 

조르주 장 Georges Jean

조르주 장은 멩 대학에서 언어학과 음운론을 강의했다. 40여 권에 달하는 저자의 저서 목록에는 8권의 시집 시론과 교육 이론에 관한 에세이. 여러 권의 시선집이 포함되어 있다. 1980년에는 프랑스재단에서 <언어의 즐거움>으로 상을 받았고, <언어 사이에서>로 루이스 라베 상을 받았다.

 

옮긴이 : 이종인

1954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영어영문과를 졸업했으며, 한국 브리태니카 편집 국장을 역임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번역서로는 <사랑의 속삭임> <절망이 아닌 선택> <서머싯 몸> <퍼그> 등이 있다.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

 

"인류가 지구상에서 살다 죽어 간 것이 100만 년이나 되었지만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6,000년밖에 되지 않았다."

르네 에티앙블

우르크에서 발굴된 이 진흙판에는 가장 오래된 문자가 쓰여 있는데, 제작 연도는 B.C.4000년 말 정도로 추정된다. 이 진흙판에는 오늘날의 사전과 비슷한 내용이 세로로 새겨져 있다.

네 귀퉁이가 둥글게 되어 있는 네모난 진흙판은 B.C.236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초기 3왕조 시대에 사용된 진흙판의 전형적 형태다. 진흙판에는 농부, 대장장이, 무두장이 등에게 당나귀를 빌려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나귀'를 가리키는 기호는 뒤로 향한 귀와 긴 목과 머리 등으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신'을 가리키는 기호는 오른쪽 맨 밑에 두 번이나 뚜렷하게 나와 있다.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에서 발굴된 진흙판에서는 나무, 곡물포대, 농기구를 나타내는 그림문자를 쉽게 읽을 수 있다. 손은 소유주의 표시일 것이다. B.C.4000년대 말 것으로 추정된다.

라가시의 통치자 구데아가 물이 철철 흘러 넘치는 물병을 들고 있다. 그 아래로 생명을 주는 물의 여신 게쉬티나나에게 바쳐진 글씨가 보인다.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 출토되었고 제작 연대는 B.C.2150년경으로 추정된다.

상형문자들은 성스러운 이름을 상징하는 타원형 테두리 장식 속에 들어 있었다. 이 문자들은 B.C. 12세기에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다스린 람세스 9세의 이름을 나타낸다.

테베 카르나크 신전 벽에 새겨진 이 상형문자는 뜻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아름답다.

코끼리 달력은 투트모시스 1세 때(B.C. 1450년경) 새겨졌다. 이것은 해마다 천랑성(天狼星)이 지평선 위에 떠오르는 날에 신들에게 바쳐야 하는 제물을 밝히고 있다. 달력에 따르면 천랑성이 뜨는 날은 여름 세번째 달의 28일이다. 오른쪽에서 세번째 세로 열에 별의 모습이 나와 있다.

20왕조 시대(B.C. 1100년경) 것으로 추정되는 금광 파피루스에는 네 개의 산줄기가 보인다. 맨 위쪽은 화강암으로 된 '금광산'이다. 그 아래로는 노동자들의 작은 집들이 들어서 있다. 오른쪽에 하얗게 보이는 것이 아문신의 신전이다. 그리고 맨 아래쪽의 도로는 돌과 바위로 표시되어 있다.

눈이 설화석고, 수정, 흑단 등으로 상감된 이 채색 석회상은 4왕조시대(B.C. 2620~2520) 작품으로 앉아서 작업하는 필경사를 표현했다. 이제 막 글을 쓰기 위해 정신집중을 하고 앉아 있는 그의 자세와 강렬한 표정은 글쓰는 사람의 영원한 표상이다.

B.C. 17세기에 제작된 파이스토스 원판에는 45개의 기호가 쓰여 있다. 동물, 일상용품, 집 따위의 형상을 본딴 기호들은 원판의 가장자리에서 안쪽으로 읽는 것 같다. 사용된 기호의 숫자를 감안할 때, 그리고 두세 가지 기호가 한 단어를 이루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음절체계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자가 처음 창조될 때 만들어진 그림문자 중 일부는 그 형태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 위에 보이는 두 줄의 글자들 중 왼쪽 것은 3,000년 전에 사용되던 것이고 오른쪽 것은 요즘 쓰이는 것이다. 위에서 아래로 해, 산, 나무, 중간, 밭, 경계, 문을 나타낸다.

이라크 코르사바드 소재의 사르곤 왕궁에서 나온 이 부조는 강을 이용하여 통나무를 나르는 페니키아 상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고대의 전승을 착실하게 기록한 역사가인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페니키아 사람들이 지중해 연안에 문자를 전파했다고 한다.

벽면 장식의 일부로 비스밀라의 또 다른 형태를 보여 준다. 아라비아 문자는 전통적 기법으로 모자이크 사각형 속에 쓰였고, 주로 파란색을 사용하여 알라의 99가지 이름을 썼다.

이들 폼페이 부부는 대단히 유명하다. 테렌티우스 네오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는 첨필과 왁스판을 들고 있다. 테렌티우스 네오는 파피루스 두루마리(볼루멘)를 들고 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대부분 첨필(이 필기도구는 다양한 형태로 여러 세기 동안 사용되어 왔다)로 글씨를 썼다. 네로의 비서 티로는 자칭 위대한 연설가인 네로의 웅변을 적어 놓기 위해 첨필과 왁스판을 이용했다. 청동 첨필의 한쪽 끝은 뾰족하게 되어 있어 글을 쓸 때 고른 획을 그을 수 있었다. 다른 끝은 주걱처럼 넓적해 왁스판의 글을 지우는 데 사용했다.

구텐베르크로 널리 알려져 있는 요한 겐스플라이슈(1397~1468)는 스트라스부르크에서 8년을 보낸 뒤 마인츠에서 자리를 잡았다. 은행가인 요한 푸스트에게 돈을 빌렸으나 빚을 갚을 수 없는 곤경에 빠졌다. 1455년 푸스트는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전부를 압수한 뒤 다시 그에게 임대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1457년 구텐베르크 인쇄소에서 나온 첫번째 책의 발행인 난에는 푸스트의 이름이 나온다. 구텐베르크는 10년 뒤 파산상태에서 죽었다.

높이가 약 117cm, 너비가 약 74cm인 로제타 스톤은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799년 8월 《이집트 통신》은 이렇게 썼다. "이 돌은 상형문자 연구에 상당한 성과를 가져올 것이다. 아니 그것을 해독하는 열쇠를 마련해 줄지도 모른다."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의 초상화(1831)

베히스툰 바위에 적힌 설형문자.

아서 에번스 경이 발굴한 크레타섬의 크노소스 왕궁의 재구성 모형도. 에번스의 말에 따르면 바다에서 약 4km 들어간 지점에 세워진 이 왕궁과 그 주변의 마을에만 약 8만 명이 살았을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의 헤라클리온 지역인 인근 항구에 살던 사람까지 합치면 크노소스의 인구는 10만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사야서>가 기록된 사해문서의 일부. 히브리 문자로 쓰여 있다.

장난기 가득한 타이포그래피. 필리포 마리네티 작 《미래주의적 자유 속에 놓인 단어들》(1919).

세종대왕의 초상화(상상도).

세종어제 훈민정음 머리말. 독립기념관 패널 원문. 《월인석보》 1권(1459) 초간본을 저본으로 1986년 4월 3일 김민수 복원. 저본은 1447년 판본으로 추정된다.

《훈민정음 언해》(1443) 낱자의 음가규정. 1443년 12월에 찾제한 정음은 자모 28자에 대한 발음을 한자로 표시해 놓았다. 예 : ㅋ은 쾌(快)의 ㅋ.

《훈민정음 해례》(1446) 제자해 1장 후면 자음, 기본자 다섯 자(ㄱㄴㅁㅅㅇ)를 그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각각 자형을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집현전 학사들이 연구하는 모습(상상도)과 세종대왕 때 집현전으로 쓰였던 천추전의 모습.

우리 말과 글의 과학적 연구에 평생을 바쳤던 주시경은 《국어문법》《국어문전음학》《말의 소리》등 여러 저서를 남겼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