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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13. 14:37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35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

 

이현군 지음

2010, 청어람미디어

시흥시매화도서관

SH013419

 

981.16

이94ㅇ

 

역사지리학자의 서울 걷기 여행 특강

 

살아온 시간과 이야기를, 역사는 어디에 그 흔적을 넘길까요? 바로 땅에 남깁니다. 유물과 유적이 남아 있는 곳에 찾아가는 것은 그 자그마한 흔적을 통해 그 시간에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상상력을 발휘하게끔 유도하는 통로가 장소인 것이죠. 역사지리 답사는 바로 그 장소에 남아 있는 시간의 흔적을 만나러 가는 타임머신 여행입니다.

 

궁궐, 종로, 청계천, 북촌, 서울성곽까지

서울의 옛 길을 발견하는 즐거운 서울 걷기 여행

 

조선의 심장부, 궁궐과 종로 답사

나라의 중심, 경복궁 | 왜곡된 중심축, 광화문 | 조선 초기의 궁궐, 후기의 궁궐 | 탐관오리를 처벌한 다리, 혜정교 | 재개발 바람에 놓인 피마길 | 또 하나의 중심축, 종로 | 백성의 삶 속에 있었던 보신각 | 육의전과 주단거리 | 수도의 조건, 종묘와 사직

 

서울을 가르는 물길, 청계천 답사

답사의 출발지, 청계광장 | 청계천의 발원지, 청풍계와 백운동 | 청계천의 다리들 : 모전교, 광통교, 광교, 삼일교, 수표교, 오간수교 | 성 밖의 청계천 | 또 다른 물길이 있었던 곳, 인사동 | 정독도서관에서 가회동 한옥마을까지

 

한양 읽기의 하이라이트, 도성 답사

창의문에서 인왕산 정상까지 | 사라진 성문, 돈의문 | 구한말 개화기의 중심지, 정동 | 숭례문과 연못 | 남산과 두 개의 봉우리 | 시신이 나가는 문, 광희문 | 동대문에서 낙산까지 끊어진 성곽 잇기 | 한양의 좌청룡, 낙산 | 혜화문에서 오르는 북악산 정상

 

옛 지도를 보면서 현대 도시를 걷고, 걸으면서 느끼고, 느끼면서 상상하는 것이 바로 답사입니다. 현대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미래로 가도록 길을 안내해주는 것, 이것이 역사도시 답사이며, 도시 속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나가는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

 

지은이 이현군

농촌에서 자라서 대학 진학을 계기로 서울로 왔다. 서울대 지리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지리학과 대학원에서 「조선전기 한성부 성저십리의 지리적 특성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조선시대 한성부 도시구조」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사적 시간과 장소의 문화콘텐츠적 성격과 관광자원화」, 「역사도시 교육의 특성과 내용 구성의 문제」, 『한강의 섬』(공저) 등 여러 편의 논문과 책을 썼다. 현재 서울대 국토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이며 한국고지도연구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한양, 경성부, 서울을 답사하며 연구하는 모임인 서울스토리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leehyungoon@hanmail.net

 

|차례|

 

머리말_ 서울의 시작을 만나러 가는 길

 

답사를 떠나기 전에

옛 지도를 읽는 법

 

|1장|

조선의 심장부, 궁궐과 종로 답사

나라의 중심, 경복궁을 가다 | 백악을 찾아서 | 조선의 궁궐들 | 한양 지도에 경복궁이 없다? | 조선 후기 궁궐을 보다 | 왜곡된 중심축 바로잡기 | 종로에 남아 있는 조선의 기억 | 수도의 조건

 

|2장|

서울을 가르는 물길, 청계천 답사

청계천의 시작과 끝 | 청계천의 역사와 유래 | 21세기형 청계천을 걷다 | 도성 밖의 청계천 | 북촌으로 가는 길 | 북촌에는 누가 살았을까 | 한양의 중심 상권 | 도성 안에는 절이 없었을까 | 북촌 한옥마을을 가다

 

|3장|

한양 읽기의 하이라이트, 도성 답사

도성의 발견 | 창의문에서 도성 답사를 시작하다 | 도성 방어의 요지, 인왕산 | 한양의 우백호에 올라 | 길이 되어버린 성곽을 찾아서 | 구한말 개화기의 중심지, 정동 | 숭례문과 연못 | 남산, 그 흔한 이름 | 마지막 남은 통행금지 구간 | 광희문에서 동대문까지 | 끊어진 성곽 이어 보기 | 한양의 좌청룡, 낙산 | 혜화문에서 오르는 북악산 정상 | 도성 답사를 마치며

 

|4장|

성문 밖 이야기

성곽, 경계와 소통의 공간 | 성 밖을 나서다 | 도성 밖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 귀신을 통해 본 조선의 사람들 | 한양의 시작이자 끝인 한강 | 강은 길이다

 

맺음말_ 한양에서 서울의 미래를 보다

 

부록1_ 사진 찍기 좋은 곳

부록2_ 현장에서 유용한 답사 안내 요령

도성도(동국여도)

한양도(신편표제찬도환영지)

도성삼군문분계지도(어제수성윤음)

도성도(광여도)

한성부지도

도성도(대동여지도)

경조오부도(대동여지도)

조선팔도고금총람도.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경복궁 터는 고려시대에도 명당자리였다. 북악산 아래 위치한 경복궁 근정전 근정문.

도성전도(청구요람).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한성부 지도. 1901년경 제작.

정선의 <경복궁도>.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한양도(신편표제찬도환영지).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인왕산 아래 위치한 경희궁의 모습.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의 집터에 세워졌다. 창덕궁이 동궐, 이곳이 서궐로 불리며 사용되었으나 일제의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다.

조선시대 육조거리였던 광화문광장. 북악산과 경복궁, 광화문이 일직선에 놓여 있다.

조선팔도고금총람도 중 한양의 모습. 광화문 앞에 의정부와 육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광화문광장을 중심으로 육조의 표지석을 찾아볼 수 있다. KT빌딩 앞 경조아문(한성부) 표지석(맨위, 가운데)과 세종문화회관 근처 공조터 표지석(아래).

피맛골.

조선시대 성문의 개폐 시각을 알려주었던 보신각. 지금처럼 새해를 기념하는 타종식에만 사용되지 않고 백성의 생활 속에 함께 있었다.

사직공원 안에 있는 사직단의 모습. 토지 신과 곡식 신을 위한 2개의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새로 복원한 청계천이 시작되는 동아미디어센터 앞.

청운동 어느 바위에 새겨진 백세청풍. 조선시대 명승지 청풍계가 이곳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청계천 분수광장에서 동쪽에 있는 첫 번째 다리. 모전교.

광통교 아래 조각들. 태조 이성계의 계비의 능에 있던 석재를 태종 이방원은 광통교를 만들 때 썼다.

구 조흥은행 본점 앞에 조성한 광통교의 모형.

원래의 수표교는 청계천 복개 공사 때 장충단공원으로 이전된 후 아직 이 자리에 있다.

오간수교 뒤로 옛 오간수문의 모습을 재현해놓았다. 오간수문은 5개의 암문으로 성벽의 아래를 뚫어 물을 흘려 내보냈다.

오간수교 아래 옛 오간수문의 사진이 있다.

조선 전기만 해도 원각사라는 절이 이곳에 있었으나 폐사되고 그 후 서양식 공원인 탑골공원이 들어섰다.

탑골공원 정문 양옆으로 육의전과 경시서 표지석이 놓여 있다.

국보 2호 원각사지 10층석탑. 보호를 위해 유리막으로 둘러쳐두어서 다소 갑갑한 느낌이 든다.

정독도서관 자리가 사육신 성삼문의 집터였다. 화기도감도 이 부근에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왜병의 조총에 대항하는 화기를 만들기 위해 설치한 관청이다.

코리아목욕탕 앞에서 찍은 사진. 청와대를 기준으로 왼쪽 산이 인왕산, 오른쪽 산이 북악산이다. 두 산이 뚝 떨어지는 지점이 창의문이 있는 곳이다.

북촌 한옥마을에는 아직 수십 채의 기와집이 남아 있다. 서울 시내에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몇 남지 않은 곳이다.

안평대군의 정자였던 무계정사 터에는 무계동이라고 새겨진 암벽만이 남아 있다.

창의문 앞에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과 이곳이 청계천 발원지임을 알리는 표지석을 세워두었다.

도성 답사의 출발지. 창의문. 현판이 보이는 이곳이 창의문 밖이 된다.

정동에도 성곽이 지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안내문.

이화여자고등학교 옆으로 하마비가 세워진 오래된 문이 남아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옆 숭례성터길에는 성곽으로 사용되었던 돌을 쌓아두고 서울성곽이 지나는 자리였음을 알리는 안내문을 붙여두었다.

위용을 과시하던 남대문(위)은 방화로 소실된 후 복원공사 중에 있다. 남대문 옆 남지터 표지석(아래)은 이곳에 연못인 남지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일제시대 신사를 오르는 계단으로 사용되었던 남산 과학관 계단(위). 남산 정상과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일제는 남산의 국사당을 몰아내고 이곳에 신사를 세웠다.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과 똑같은 모습의 영빈관 정문. 이 안에 아픈 역사가 숨어 있다.

광희문.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가 출궁 후 머물렀던 정업원. 정순왕후를 동정한 이 일대의 여인들이 궁궐의 눈을 피해 채소를 파는 척하며 도왔다고 한다.

동대문운동장에서 이어지는 성곽은 동대문 동쪽 동대문교회 벽을 따라가면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주변에 벼룩시장이 늘어서 있어서 다소 어수선한 풍경의 동묘. 현제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동소문이라고도 불렸던 혜화문은 1995년에 복원되었으나 원래 위치가 도로인 관계로 도로 옆에 밀려나 있다.

사대문 중 북대문에 해당하는 숙정문. 음기가 서려 있다 하여 조선시대에는 성문을 주로 닫아두었다고 하는데, 열어두어도 다니기는 힘든 지점이다.

1968년 1 · 21사태 이후 출입금지 되었던 북악산에는 성곽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다. 태조 때 성곽을 쌓았던 당시 기록을 새겨둔 돌이 남아 있어 흥미롭다(아래).

조선시대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모화관은 19세기 말 독립관으로 개칭되었다.

이성계와 이방원의 일화가 남아 있는 살곶이다리는 조선시대 한양과 동쪽 지방을 잇는 주요 교통로였다.

효령대군의 정자였던 망원정은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연회장으로도 쓰였다. 망원동이라는 이름은 이 망원정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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