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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25. 09:08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73 모차르트 - 신의 사랑을 받은 악동

 

미셸 파루티 지음, 권은미 옮김

2009, 시공사

 

 

시흥시군자도서관

SE011672

 

082

시15ㅅ  11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1

 

생기발랄하고 천진난만했던 천재 중의 천재,

모차르트! 그는 35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오페라 <마술 피리>를

완성한 직후였다. 그는 기적과도

같은 재능으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음악을 창조해 냈다.

음악가를 하인 취급하던 시대를 살았지만,

그는 자유인이었다. 그를 자유롭게

한 것은 바로 음악이었다.

 

1971년 여름.

작열하는 태양빛이 텐트를 뚫고 들어왔다.

숨막히는 텐트 속에서는 한 독일 삽화가가

이미지 재현에 몰두하고 있었다.

로테 라이니거.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이제 막 여러 인물들이 태어나고 있었다.

파파게노, 파파게나, 레포렐로, 피오르딜리지,

돈 조반니, 피가로, 밤의 여왕…….

그들은 모두 빛과 그림자의 경계선상에 도착해 있었다.

그림자놀이로 본 모차르트, 그것은 놀라운

마술이었다. 가볍고 암시적인 실루엣은 독특한

특징으로 오페라 대본을 환기시키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을 주었다. 거기에는 음악이 있었다.

장중하고도 가벼운 음악이…….

 

모차르트에 대한 사랑, 그리고 가위 하나와

검은 종이만 있으면 로테 라이니거는 오페라 속의 인불들을

멋지게 그려낼 수 있었다. 그녀의 펜 끝에서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시 판 투테>,

<마술피리>의 주인공들이 차례로 탄생했다.

 

음악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대본 : 다 폰테, 시카네더

무대 장치 및 의상 : 로테 라이니거

LA VENDETTA, OH LA VENDETTA!

(복수, 그래, 복수다!)




 

차례

 

제1장 신이 주신 재능

제2장 신동에서 작곡가로

제3장 음악가와 하인

제4장 깨져 버린 환상

제5장 이제 나의 행복이 시작된다!

제6장 볼프강을 위한 레퀴엠

기록과 증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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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미셸 파루티 Michel Parouty

1945년에 태어났으며, 철학, 문학, 음악 이론을 전공했다. <국제 오페라>지에서 기자로 활동을 시작했고, 1986년부터 프랑스의 고전음악 잡지 <디아파종>의 상임 멤버로 활약하면서 국내외의 다양한 출판사업에 참여했다. <알페> <몽살바> <오페라 캐나다> <무대 잡지> <1막 잡지> <목요일의 사건> 등은 그가 출판에 참여한 잡지들이다. 1986년 페이아르 출판사에서 나온 <교양 음악의 안내>의 공동 저자이기도 한 그는 최근 오비에 몽테뉴 출판사에서 <라 트라비아타>를 출판하기도 했다.

 

옮긴이 : 권은미

1956년 대구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파리 제4대학(소르본)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불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전문 번역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번역서로는 <불행한 존재>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인간과 성(聖)> 등이 있다.


제1장

신이 주신 재능


1756년 1월 27일, 가는 눈발이 잘츠부르크에 내리고 있었다. 게트라이데가 9번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마치 우리에 갇힌 곰처럼 방안을 빙빙 돌고 있었다. 침실에서 발자국 소리와 속삭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 왔다. 사랑하는 아내 안나 마리아가 지금 일곱번째 아이를 낳고 있는 중이었다. 아기는 볼프강이었다.


"레오폴트(아래)는 그저 평범한 인물로, 천재성은 없었으나 나름대로 재능이 있었다. 그가 남긴 《바이올린 교본》과 몇몇 교회 소나타곡은 볼프강의 초기 음악교육에 발휘되었을 그의 뛰어난 교육적 재능을 보여 준다. 그의 어머니(위)는 쾌활하고 냉정하며 상상력이 풍부하나, 소극적이고 가벼운 사람으로 보인다. 자식들의 증언에서도 그녀의 참모습을 알아낼 수 없었다."

에마누엘 부엔초트


열한 살 때의 나네를. 역시 신동이었던 그녀는 동생의 성공으로 그늘에 가려졌다. 그녀는 33세에 자작과 결혼했고, 1829년에 죽었다.

여섯 살 난 볼프강의 초상. 그가 입고 있는 의상은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에게서 받은 것으로, 황후의 아들 막시밀리안이 입던 옷이다.


화려한 도시 빈

1760년 요제프 황태자와 이자벨라의 결혼식 때 황궁에서 열린 축하연. 황태자의 결혼식은 황실의 화려한 축제를 여는 구실로서 백성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적절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즐거워하는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고독감, 즉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적당한 순간 두각을 드러내야 하는 것은 공식 직함을 찾는 음악가들의 운명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에서의 일자리보다 더 매력적인 장래가 어디 있겠는가? 앞줄에 앉은 한 소년의 모습에서 2년 후 빈 궁정에서 환영받게 될 여섯 살의 볼프강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의 수도

요제프와 이자벨라의 결혼 축하 음악회. 1558년부터 1806년까지 독일 신성 로마 제국의 중심지였던 빈은 마리아 테레지아 시절, 계속 번창하는 도시였고 인구도 8만 8,000명에서 17만 5,000명으로 늘어났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수도는 외국인에게도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이러한 전통은 20세기까지 남아 있으며 모든 예술분야에도 반영되었다. 한 국가가 유럽 인종의 완벽한 결집체를 이루었다면 그것은 바로 합스부르크 제국이었다. 모차르트 당시 빈은 계몽주의 시대 유럽의 등대였으며 그 도시를 특징짓던 세계주의가 그 증거였다. 18세기 말, 빈의 활력이 가장 화려한 빛을 발했던 부분은 바로 황실의 보호 아래 벌어졌던 각종 예술활동, 특히 음악분야이다.

빈 궁정의 꼬마 볼프강.  "우리는 3시부터 6시까지 황후와 같이 있었소. 황제께서 친히 아이가 바이올린 연주할 방까지 안내해 주셨소."

1762년 10월 16일

레오폴트

볼프강과 퐁파두르 후작부인.

그림 남작.

콩티 공(公)의 다과회

이 풍속화는 1766년 여름 볼프강이 두번째로 파리를 방문했을 때 미셀 바르텔레미 올리비에가 그린 것으로 콩티 공의 저택 템플궁의 거울홀에서 펼쳐진 장면이다. 당시 열 살이던 볼프강은 하프시코드 앞에 앉아 있다. 그 옆에는 라모 작품의 명해석가인 테너 피에르 젤리오트가 서 있다. 악기를 조율하고 있는 그는 왕실악단의 바이올린 및 기타 연주자이다. 프랑스에서는 모임을 자주 가졌다. 그들 모임에는 항상 음악이 뒤따랐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음악에 큰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모차르트는 몇 년 후 1778년 5월 1일 편지에서 "의자와 탁자, 벽에게 연주해야 한다."고 불평했다.


여덟 살 된 작곡가의 본격적인 첫 작품. 두 곡의 <하프시코드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K. 6~7>로, 1763~1764년 겨울 동안 작곡되었다(위). 1716년의 프랑스 하프시코드(아래).Six Sonates pour le clavecin qui peuvent se jouer avec l'accompagnement de violon ou flute traversière... Oeuvre III. [KV 10-15]

피아노에 앉은 볼프강(아래)과 소나타 모음곡 표지(위). "지금 나는 엄청난 지출을 감당해야 하오. 영국 여왕에게 (그녀의 요청으로) 헌정될 볼프강의 소나타 여섯 곡을 인쇄해야 하기 때문이오."

1764년 11월 27일

레오폴트

30세의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와 아홉 살 된 볼프강과의 우정이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문화에 젖어 있던 바흐는 독일 음악보다 덜 엄격한 아름다운 선율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


제2장

신동에서 작곡가로


모차르트는 이제 열한 살이 되었다. 그는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고, 어린 두 어깨 위에는 영광의 무게가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신동의 후광은 끝났다. 이제 볼프강은 자신이 '꼬마 괴물'이 아니라 진정한 음악가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야 했다. 그가 시선을 돌린 곳은 오페라의 나라 이탈리아였다.

어린 볼프강.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할레에 있던 그는 1712년에 런던에 정착했고 1742년 <메시아>를 작곡했다. 그는 이탈리아식 오페라 및 오라토리오 장르의 최고 권위자였다.

모차르트 당대의 유명 작곡가였던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위)와 요한 아돌프 하세(아래). 원래 테너 가수였던 하세는 이탈리아 오페라 세리아 작곡가가 되었다. 그는 어린 볼프강에 대해 "언젠가 이 아이가 우리를 능가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음악가의 초상화. 이 그림을 통해 열두 살경의 볼프강을 연상해 볼 수 있다. "볼프강의 오페라 <보아라, 바보 아가씨>에 관해서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이가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빌어먹을 음악가들 전부가 들고일어났다는 것뿐이오. 그런 음모가 꾸며졌소. 엄청나게 나쁘게, 파멸시킬 만큼……."

1768년, 9월 14일

레오폴트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와 <알체스테> 이후 1768년 최고의 영광을 누렸다.

밀라노의 테아트로 두칼레(궁정극장). 이곳에서 모차르트의 <폰토의 왕 미트리다테>와 <루치오 실라> 그리고 하세의 <루지에로>가 초연되었다. 1776년 화재가 난 이 극장은 2년 후 '스칼라'라는 이름으로 다시 개관되었다.

학자이자 교수로서 전유럽의 존경을 받았던 마르티니 신부.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 "누나가 로마에 와 봤으면 싶어. 이 도시는 분명 누나 마음에 들 거야. 로마에 있는 수많은 다른 것들이 균형 잡힌 선을 갖고 있듯이 성 베드로 성당에도 균형미가 있어."

1770년 4월 14일

볼프강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이미 글루크가 영광을 받았던 황금박차훈장을 볼프강에게 수여했다.

황금박차훈장을 달고 있는 볼프강. 1777년 잘츠부르크에서 그려진 이 초상화에는 그가 볼로냐와 베로나의 음악원 회원임도 쓰여 있으며, 볼프강의 평소와는 다른 격식 차린 모습이 담겨 있다.

오스트리아의 여제이며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여왕이었던 마리아 테레지아는 정치가이자 예술애호가인 계몽군주로, 1762년에는 볼프강을 친절히 맞아 주었으나 1771년에는 그의 앞길을 막았다. 


제3장

음악가와 하인


밀라노와의 작별은 모차르트에게 쓰라림을 주었다. 변덕스러운 이탈리아는 어제까지만 해도 연인으로 떠받들던 모차르트를 더 이상 거들떠보지 않았다. 볼프강은 잘츠부르크에 갇혀 지냈다. 자극을 찾아 빈으로 가 보기도 했지만, 고향에서 풍기는 우울함을 떨쳐 버릴 수는 없었다. 궁정음악가로서의 고달픈 생활에 적응해야 했다.

19세기에 그려진 그림의 이미지처럼 모차르트와 잘츠부르크는 항상 같이 연상되었다.

그러나 1773년, 그에게 잘츠부르크는 감옥처럼 느껴지는 비좁은 시골도시였다.

"내 동생은 상당히 귀엽게 생긴 아이였다. 그러나 천연두자국으로 얼굴이 약간 흉해졌다. 게다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왔을 때는 안색이 이탈리아인처럼 누래졌다."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그는 훗날 친구 에커만에게 프랑크푸르트에서 보았던 어린 모차르트를 이야기했다. "나는 일곱 살이던 모차르트가 여행중에 연주회를 열었을 때 그를 보았네. 그때 나는 열네 살쯤이었는데 가발을 쓰고 긴 칼을 찬 꼬마아이를 아직 똑똑히 기억하네."


"하느님 앞에서 정직하게 말하는 바이지만 당신 아들은 내가 아는 작곡가 중 가장 위대합니다. 그는 감각이 뛰어날 뿐 아니라 작곡에 대한 최고의 지식도 갖고 있소."

레오폴트 모차르트에게 한 하이든의 이야기


밀랍 위에 그려진 모차르트와 하이든.

볼프강의 사인.


"어제 난 코미디극인 <유행을 좇는 가족>을 보ㅓ 갔어. …… 누나의 뮌헨 동생이. 1774년 12월"

볼프강이 누나에게


"볼프강의 오페라는 리허설 과정에서 무척 인기가 많았소. 그래서 가수들이 작품을 더 잘 배울 수 있도록 공연은 1월 5일로 연기되었소. …… 한마디로 이 곡은 놀랄 정도로 인기가 있소. 이제 성공은 극장에서의 공연에 달려 있소. 하지만 배우들이 우리에게 호감을 갖고 있으니 잘 될 것이오."

1774년 12월 28일

레오폴트

<바이올린이 있는 정물>. 우드리. 18세기. 파리 루브르박물관.

잘츠부르크의 콜로레도 대주교. 볼프강과 그의 아버지는 그를 '계율가'라는 암호로 불렀다.


제4장

깨져 버린 환상


다시 숨이 트였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음악활동에 간섭하려는 자들이 부과해 놓은 독재적 제약과 지긋지긋한 단조로움에서 탈출하고자 투쟁했고, 잘츠부르크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자신의 재능이 세상에 빛을 발하리라 확신했던 그는 부푼 희망을 안고 뮌헨을 향해 떠났다. 스물한 살, 아직도 환상을 가질 수 있는 나이였다.


"저는 요즘 계속 최고의 기분입니다. 모든 압박에서 벗어나니 마음은 새털처럼 가볍기만 합니다."

1777년 9월 26일

볼프강

레오폴트 모차르트.


"사랑하는 아빠, 저는 시인이 아니기 때문에 단어와 구절을 예술적으로 배합해서 시를 쓸 수 없어요. 그리고 화가도 아니므로 명암의 효과를 낼 줄도 몰라요. 또 손짓과 몸짓으로 저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줄도 몰라요. 무용가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음을 통해서는 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요. 저는 작곡가거든요."

1777년 11월 8일

볼프강

모차르트 음악의 세련된 경쾌함은 눈부신 창의와 단련된 표현에서 나오는 완벽한 균형의 결과이다. 프라고나르의 <그네>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18세기의 상투화된 천박성과는 다른 것이다. 유쾌한 느낌을 주는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우수의 그늘이 배어 있다.

마리아 안나 테클라 모차르트 연필화. 1777-1778.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박물관.


"나는 내 사촌누이가 아름답고 총명하며 유쾌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그녀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고 뮌헨에서도 얼마 동안 지냈습니다. …… 우리는 서로 잘 통합니다. 그녀와 짓궂은 농담을 하면서 사람들을 비웃는 것이 아주 재미있어요."

1777년 10월 17일

볼프강

필리프 메르시에의 <음악회>. 현대 영어의 아카데미(academy)는 연구기관, 교육기관, 훈련기관 따위를 뜻한다. 그러나 모차르트 당시의 독일에서는 음악회를 준비하는 단체였으며 더 나아가 음악회 자체를 의미했다.

알로이지아 베버는 뛰어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가수였다. 모차르트가 그녀를 위해 쓴 콘서트 아리아 <테살리의 사람>은 높은 C음계 위의 G음계까지 올라간다.

프라고나르의 <음악 레슨>. 교사로서의 볼프강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편지에서 그는 단조로운 레슨에 대한 혐오감과 재능 없는 학생을 대할 때의 견디기 힘든 지루함을 밝혔다. 그는 가르친다는 것은 단지 피아노밖에 칠 줄 모르는 사람에게나 맡겨야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천재임을 알았고, 천재성은 가르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볼프강의 어머니 장례식을 치렀던 파리의 이노상 교회와 묘지. "하느님의 은혜로 저는 이 모든 일을 꿋꿋하고 담담하게 견디어 냈습니다. 어머니의 상태가 몹시 심각했을 때 전 하느님께 두 가지만 즉 어머니를 위해선 행복한 죽음을, 그리고 저에게는 힘과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1778년 7월 3일

볼프강

1781년의 모차르트 가족. 나네를, 볼프강, 레오폴트 그리고 고인이 되어 그들과 함께 있는 안나 마리아의 초상화가 보인다.


"만약 너의 어머니가 만하임에서 돌아왔더라면 죽지 않았을 텐데……. 너는 더 나은 때에 파리에 도착했을 것이고, 가여운 너의 어머니는 아직 잘츠부르크에 있을 텐데."

1778년 8월 27일

레오폴트


제5장

이제 나의 행복이 시작된다!


모차르트는 투쟁을 포기하고, 또다시 구역질 나는 콜로레도 밑에서 고통 속에 몸을 내맡기기로 했다. 그러나 그의 창작의 샘물은 이탈리아 · 독일 · 프랑스 음악과의 접촉으로 더욱 풍부해졌다. 대중은 아직 알아주지 않았지만, 모차르트는 자기 자신이 비할 데 없는 천재임을 확신했다.

18세기 그림으로 작곡에 열중하는 모차르트.

모차르트. 바바라 크라프트, 1819년, 빈 음악동우회.

"이곳 빈에서 저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유익한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 저에겐 많은 영광이 주어졌고, 계약조건도 훌륭합니다. 잘츠부르크에서는 제대로 된 대우나 격려도 받지 못하면서 기껏 400굴덴을 위해 괴로워해야 합니다. 그 결과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언제나 같은 것입니다. 끔찍한 모욕을 받은 다음 다시 떠나야하는 거겠죠."

1781년 5월 12일

볼프강이 레오폴트에게

1774년 빈 궁정의 작곡가로 임명된 안토니오 살리에리. 1790년 <코시 판 투테>의 계획적인 방해로 모차르트를 난처하게 했지만, 그는 경쟁자라기보다는 선배였을 뿐이다.

모차르트와 카타리나 카발리에리. 모차르트는 그녀를 위해 <후궁으로부터의 탈출>에서 콘스탄체라는 인물을 그렸고, 빈에서 <돈 조반니>가 초연되었을 때 그녀가 엘비라 역을 맡자 아리아 <미 트라디>를 추가로 작곡했다.

19세기 판화로, 쇤브룬궁의 요제프 2세 앞에서 연주하는 모차르트. 황제는 그림에서처럼 감상에 몰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빈의 성 슈테판 대성당. 여기서 볼프강과 콘스탄체가 1782년 8월 4일 결혼식을 올렸다. 볼프강이 죽기 얼마 전인 1791년, 그는 이 성당의 악단장인 레오폴트 호프만의 무보수 보조직 임용과 함께 호프만의 사후 그의 자리를 이어도 좋다는 약속을 시청으로부터 받았다.

콘스탄체 모차르트의 초상화(1802년). 그녀는 낭비벽이 있었으며 부주의했다는 등 무성한 소문으로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의 많은 자료에 따르면 그녀는 오히려 재정문제를 처리하는 데 유능했고, 남편의 음악을 꾸준히 성원해 주었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전기작가인 프리드리히 슐리히테그롤은 콘스탄체가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나 살아 남은 두 아이의 훌륭한 어머니였으며, 모차르트의 어리석은 결정과 지나친 행동을 견제했던 훌륭한 아내였다."라고 기록했다.

<피가로의 결혼>에서 최초로 수잔나 역을 맡았던 낸시 스토레이스.

1790년 빈의 프리메이슨 모임. 그림에서 제일 오른쪽의 얼굴이 모차르트로 확인되었다. 프리메이슨 결사는 단원의 정신적 진보수준에 따라 세 계급으로 나누었는데 입문자(apprentice), 동료(fellow), 지도자(master)가 그것이고, 각 계급에 독특한 상징물과 표지가 있었다. 모차르트가 언제 지도자가 되었는지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빨리 진급했다고 한다. 프리메이슨 결사는 단원에게 일정한 규율과 의무를 부과했다. 프리메이슨의 사상, 특히 형제애와 자비심의 영향은 그의 후기작품에 분명히 드러난다. 프리메이슨을 위한 그의 첫 작품인 가곡 <동료장인의 여행>은 1785년 3월 26일 작곡된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그의 진급 축하의식 때 쓰였을 것이다. 모차르트의 프리메이슨적 작품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칸타타 <프리메이슨의 기쁨>이다. 프리메이슨적 음악은 율동적이고 형식적인 것이 특징이다.


제6장

볼프강을 위한 레퀴엠


1787년, 모차르트는 서른한 살이었다. 앞으로 4년은 오래 전부터 그랬듯이 끊임없이 괴롭혀댄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어두웠던 이 시기에 모차르트는 자신의 최대 걸작을 작곡했다.

미완성된 이 초상화는 1789~1790년 사이에 알로이지아의 남편 요제프 랑게가 그린 것이다.

19세기의 모차르트 전기작가인 오토 안은 젊은 베토벤이 모차르트를 만나러 왔던 장면을 묘사했다. "모차르트의 요청에 따라 베토벤은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그것이 평소 외워 두었던 기교적인 작품이라 여겨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그걸 눈치챈 베토벤은 자유롭게 즉흥연주를 할 수 있는 주제를 달라고 그에게 간청했다. …… 어찌나 훌륭하게 피아노를 치던지 모차르트는 몇몇 친구들이 있던 옆방으로 들어가 큰소리로 "저 사람을 지켜보시오. 언젠가 온 세계를 떠들썩하게 할 것이오."라고 말했다."

 

니슬레의 석판화로, 체를리나에게 치근덕거리는 돈 조반니와 1막 마지막 부분의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을 표현했다.

모차르트와 콘스탄체 사이의 여섯 아이 중에 두 명만 살아 남았다. 카를 토마스(오른쪽)는 공무원이 되었고, 프란츠 볼프강은 작곡가가 되어 자신의 작품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라고 서명했다. 둘 다 독신으로 자식 없이 죽었다. 이 초상화는 1798년도에 제작되었다.

<코시 판 투테>의 초연 프로그램. 이 오페라의 핵심 주제가 되는 욕망과 이성 사이의 갈등은 모차르트 당대의 사람들은 물론 다음 세대에게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 19세기에는 원래 대본 대신 다른 이야기로 대체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오페라의 근본적인 모호성은 현대의 청중에게 가장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마술피리>의 초연 프로그램. 이 작품은 요정이야기. 철학적 우화, 프리메이슨적 오페라였으며, 그 이상으로 훌륭했다.

1791년 판화로 표현된 새잡이 파파게노(위). 가운데와 아래 그림은 1793년 공연된 <마술피리>의 장면으로, 타미노가 동물을 불러모으고 자라스트로가 등장하고 있다.

걸작의 기

독일 오페라를 쓰고자 했던 모차르트에게 <마술피리>를 제안한 사람은 시카네더였다. <마술피리> 대본구성의 바탕이 된 것은 테라손 신부의 소설 <세토스>와 브라니츠키의 오페라 <오베른, 요정들의 왕>이었다. 대본의 상당부분을 쓴 시카네더는 그 스스로 초연 때 파파게노 역을 맡기도 했다. '밤의 여왕'의 궁전을 위한 이 무대는, 1816년 베를린 공연 때 독일의 위대한 건축가 카를 프리드리히 신켈이 디자인한 것이다.

<마술피리>의 등장인물

<마술피리>의 궁성은 세 쌍의 인물에 집중된다. 젊은 타미노는 사랑하는 파미나 곁에서 입문의식을 치러 낼 준비가 되어 있다. 새잡이 파파게노는 타미노의 상대인물인 것 같다. 순진한 어린아이 같은 파파게노는 파파게나를 찾지 못할 경우 기꺼이 죽을 각오를 한다. 그리고 빛과 미덕을 상징하는 현자 자라스트로는 밤의 여왕으로 표현되는 어둠의 세력과 싸워 승리를 거둔다. 그림은 신켈이 디자인한 자라스트로의 정원무대장치이다.

프리메이슨의 영향

<마술피리>에 나오는 괴물과 요정, 변신(變身) 등의 줄거리는 마치 동양의 우화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프리메이슨에 대한 모차르트와 시카네더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주인공이 겪는 입문의식과 고대 이집트에 대한 암시, 숫자 상징으로 명백해진다. 하지만 그런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보여 주는 사랑과 우정, 지혜의 메시지이다. 그림은 1818년 뮌헨 공연시 시몬 크바글리오가 구상한 밤의 여왕이다.

"그의 마지막 숨결은 마치 <레퀴엠>의 팀파니 파트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그 소리는 아직 내 귀에 생생하다."

모차르트의 처제

소피 하이벨

"나는 내 재능을 다 펼치기 전에 생을 마치게 되었다. 인생은 너무나 아름답고 내 생애는 무척이나 전도유망하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운명을 바꿔 놓을 수 없고, 누구도 자신의 죽음을 예측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될 것이다. 이제 나의 생을 마감한다. 여기 내가 미완으로 남겨서는 안 되는 <레퀴엠>이 있다."

모차르트

덕이고

분발이 

 

 

 

 

posted by 황영찬
2014. 7. 10. 09:17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070 보고 싶은 님

 

하정님 지음

1998, 예영카뮤니케이션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9935

 

811.6

하746보

 

약속

 

정다운 님 반가운 님

언제 뵙게 되오리까

밤이 새고 날이 밝아

또 한 날 접혀지니

안타운 이 마음은

소쩍새 울음소리 따라

산등성을 넘어 보네

 

내 사랑 예수님

그 언제 오시려나

내 가슴에 묻어 둔

오신다는 그 약속

빛나는 눈물 방울되어

햇빛에 반짝이네

 

반짝이다 떨어지는

눈물 방울엔 아쉬움만

소록소록 새어나오네

 

하정님

지은이 하정님은 1948년 서울 출생으로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학교)을 졸업했으며 1973년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 동부 버지니아주에 살며 부군과 대학생인 두 딸과 함께 주님을 잘 섬기는 가정주부이고 지난 1993년에 첫 시집 『기뻐서 울고 싶어라』를 출판한 바 있습니다.

 

차례

 

주님 생각 · 큰 날개 · 은빛 날개 · 약속 · 그리움 · 내 청춘의 날들이여 · 땅 투기 · 메마른 사랑 · 말씀의 옷 · 사랑의 모양 · 참즐거움 · 내 사랑 드리고 싶네 · 길 · 내 기도 · 그 곳 · 마음과 생각 · 그리운 님 · 아름다운 곳 · 기다립니다 · 내 하나님 · 마음의 바다 · 과거 · 희망의 꽃 · 달리는 세월 · 농촌의 즐거움 · 사슴 한 마리

 

영광의 그 길 추수할 날 · 바람 · 발자욱 · 베짱이 · 내 사랑 · 잡초 · 내 주님 · 거미 · 은혜의 빛 · 참사랑 · 올라가세 · 짝사랑 · 성난 파도 · 참기쁨 · 그사랑 · 밤 바람 · 보드라운 꽃잎 · 님 발자욱 · 인생은 종이배 · 꽃잎 한 조각 · 떠난 님 · 부끄러운 인생 · 빈 마음 · 사랑은 수수께끼 · 귀한 사랑 · 눈송이 사랑 · 춤추는 내 사랑 · 약속의 님 · 국화꽃과 파랑새 · 갈보리 십자가 · 찬란한 주님 영광 · 그리운 그 날이여 · 해바라기 · 청소년 · 참소망 · 천성문 · 차돌멩이 · 측량 못할 사랑 · 영생의 삶 · 세상 끝날 · 주님 오시는 날 · 보고 싶은 님

 

내 청춘의 날들이여

 

봄날의 내 청춘 찾을 길 없어라

봄은 피고 지는데

내 청춘은 지기만 하네

 

싱그러운 여름 같은 마음도

애달픈 가을 같은 마음도

모두 흩날려 버렸네

 

겨울 같은 차거운 마음

한 구석에 움추렸네

파릇파릇 새싹도 간 곳이 없어라

푸른 잎도 간 곳이 없어라

 

단풍잎 되어 부서져 버린 날들이여

나는 너를 어디 가서 찾으리

찾을 수 없는 내 청춘의 날들

아쉬움만 쌓여가네

 

아쉬움은 미련인가

덧없이 지나버린 내 청춘의 날들이여

나는 너를 목 놓아 불러 보네

 

땅 투기

 

먹자 놀자 잠자자 하던 인생

만족할 날 없으리

입맛도 잠시요 노는 것도 지루하리

잠자는 게으름 마귀는 손뼉쳐 주고

내 인생 내 맘대로 휘둘러 보나

만족은 없고 기쁨도 잠시라

흘러가는 공간 속에

꽂꽂이 서 있지 못하는 인생이라

한판 승부 어디다 걸었나

땅 위에 깃발 꼽았나

땅 땅 땅

땅소리 소란하여

발 펴고 잠 못 자고

내 땅 네 땅 누가 주었나

땅자락이 웃음짓누나

너는 내게 묻힐지라

나는 네게 묻히지 못함이여

 

메마른 사랑

 

내 영혼에 사랑이 메말랐네

주기도 싫은 사랑

받기도 싫은 사랑

부서진 마음이어라

 

물 위에 떠내려가는 뗏목처럼

흐르고 흐르는 마음이어라

흐르고 흘러버린 강물

돌이킬 수 없어라

 

강물도 흐르네 내 마음도 흐르네

정수기 받쳐 걸러 보나

미련만 걸러지네

메마른 사랑 속에

미련이 웬말인가

 

걸러져서 앙금 앉은

내 마음은 부서지네

돌 바위에 철썩이는

파도처럼 부서지네

갈급한 내 영혼에

찬바람만 스며드네

 

과거

 

보라빛 꿈이련가

다홍치마 나풀거리던 시절

흘러 버린 빗물 같구나

검정띠 띠고 가던 마을 아낙네

호호 백발 늙어 버린 지금이어라

오 ~ 애잔한 세월이여

내 꿈 싣고 달려가 버린 세월이여

다시 못 만날 인연만 지어 놓고

떠나 갔구려

또 보고 싶은 젊은 날의 시간들이여

영영 돌아올 희망 없이

자취를 감추었구려

슬퍼해도 손짓해도

돌아올 수 없는 과거 그대여

보라빛 내 꿈 싣고

먼지도 남김없이

날아가 버렸구나

 

앞장 서시오 어차피 나는

당신을 따라가야 하는

서글픈 인생이올시다

 

농촌의 즐거움

 

덩덕꿍 덩덕꿍

어깨춤이 절로 나네

애간장 녹이는 피리 소리

내 마음 녹여지고

 

영글은 과일 가지

늘어져 흥이 나네

에헤라 즐거운 가락

풍년을 읊어 보세

 

춤추자 내 날개춤

기쁜 풍년 대풍년

오곡백과 영글었네

덩덕꿍 얼시구

 

어깨가 들썩들썩

좋아라 대풍년

농촌의 즐거움

땀 흘린 소산일세

 

너의 침묵

 

앞뜰에도 뒤뜰에도

꽃은 만발하건만

내 마음의 꽃밭은

피지도 못하고 시들었나

유난히 추웠던 겨울

잘도 견디고 터져 나온

뜨락의 꽃봉오리야

추울 때도 말없이

잘도 견디어낸 너의 침묵

나도 배워 온갖 세찬 비바람도

잘 견디는 너의 모습 닮으련다

 

사슴 한 마리

 

산 속에 홀로 된 사슴 한 마리

슬픈 눈 굴리며 어디로 가고 있나

하염없이 홀로 가고 가다가

벼랑 위에 우뚝 서

먼 산을 바라보네

가고 간들 산뿐이라

길 없는 험난한 산골짝

뉘라서 나를 반기리요

어디로 가야하나

산 속이 고향이건만

갈 곳 찾는 슬픈 마음

갈 곳 몰라

고개만 두리번거리누나

 

추수할 날

 

산천초목 푸르르니

산새가 노래하네

오곡백과 익을 날도 멀지 않았고

익은 곡식 추수할 날

물결처럼 다가오네

추수할 일꾼들

밭에 나가 열심이나

열매 없는 밭을 보니

찬서리 두렵구나

적막한 이 가슴엔

슬픔만 쌓여 가네

 

바람

 

사막에 바람 부니

먼지가 자욱하고

갈대밭에 바람 부니

공허한 소리 흩날리누나

 

내 마음에 바람 부니

인생 여정 쓸쓸하고

뒷동산에 바람 부니

부엉이가 화답하네

 

들녘에 바람 부니

메밀꽃이 떨어지는데

바람은 어디서 오는가

너도 몰라라

나도 몰라라

 

베짱이

 

베짱이가 찌꺽찌꺽

구슬프게 울부짓네

하룻밤 풋사랑

나눌 자 없음이요

가엾은 이 내 사랑

가져갈 자 없음이라

엎드려 노래하는

개구리가 부럽구나

찬 이슬 이불 삼아 누워 보네

아득한 밤 하늘이라

구슬픈 이 내 가슴

그 누가 알리요마는

이 내 가슴 내 몸 베틀에

눈물 실을 짜누나

 

인생은 종이배

 

인생의 절반은 내일을 생각하고

인생의 절반은 지난날을 생각하누나

생각하던 내일도 지나고 생각하니

어설픔뿐이요

지난 일 생각해도

뿌연 안개와 같구나

내 생명이 시간을 만들었나

시간이 내 생명 업고 돌아갔나

시간은 멈출 줄 모르는데

내 마음 멈추고 어딜 서성이나

과거와 미래의 여로에서

마음 가는 곳 없어

앞도 뒤도 볼 수가 없구나

인생은 슬픔도 기쁨도 아니어라

종이배 접듯이

접었다 풀어 버리는 그런 것

인생은 종이배

그냥 흘러흘러 가는 것

 

꽃잎 한 조각

 

아름다운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정다운 사람과 다정다감일까

풍족한 물질 위에 앉아

만족한 웃음지음일까

 

좋은 환경에서 멋진 교육 받고

좋은 직장 가짐일까

가진 재능을 만인이게 알리는 것일까

아픈 곳 없이 오래오래 잘 사는 것일까

 

아무리 열거를 해 본들

잠시 지나가는 기차 소리와 같은 것

청춘을 불사른들 노년이 안락한들

풀의 꽃과 같은 인생

 

잠시 피고 지는 꽃

아름다워도 잠시요

부끄러워도 잠시요

꽃은 떨어지고 잎은 마르고 지니

 

인생의 아름다운 삶이랴

오직 꽃잎 한 조각

 

부끄러운 인생

 

서럽고 부끄러운 인생이여

작은 입 열고 닫아

상처만 내었구려

 

작은 혀가 뿌리는

날카로운 씨는

상대방의 가슴 밭에

비수처럼 꼽혀지고

 

그래서 얻어지는 것은

상대방의 아픔보다

몇 갑절 더 아픈 내 가슴

 

말하지 말자 듣지도 말자

서러울 때 그저 속으로 울자

울지도 못하고 비명에 가는

인생도 많쟎은가

 

입열어 나팔 불어도

가슴 속은 여전한데

긴긴 세월 찬바람을

오늘 어찌 바꾸리

 

빈 마음

 

동지 섣달 밤 하늘엔

찬 이슬 맺어지고

도토리 까는 다람쥐는

바쁘기만 하구나

 

종일토록 달리던 차

잠자러 들어가고

한산한 길거리엔

소음도 자고 있네

 

소음에 절은 나무

맥없이 늘어지고

여울목 개울가에

쉬고 싶은 이 내 심사

 

푸른 초장 그리워

산 속으로 달려가는

빈 마음뿐이어라

 

사랑은 수수께끼

 

사랑은 수수께끼 같아라

쉽게 풀면 쉽고 어렵게 풀면 안 풀리는

저마다 다르게 풀어 보는 수수께끼

알쏭달쏭 꽃바구니 속

아른아른 아지랑이

알 것 같고 모를 것 같은 사랑이어라

사랑 사랑 수수께끼 사랑

너도 몰라 나도 몰라

그러나 난 느낄 수 있지

수수께끼 풀어 버리는 그 기쁨

그것이 사랑이야

사랑 사랑 수수께끼 사랑

오늘도 내일도 매일매일 풀어 가는

사랑은 수수께끼야

 

국화꽃과 파랑새

 

송이송이 맺힌 이슬

아침 햇살에 반짝이고

들녙에 핀 야생 국화

꽃 향기 뿜어내네

찬바람에 나부끼는 국화 꽃잎

파랑새 날아오라 손짓하누나

국화꽃 향내 맡고 날아온 파랑새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 벗삼아

예쁜 노래 부르며 날개를 퍼득이네

종일토록 아름다운 국화꽃과 파랑새는

못난 인생 비웃으며 둘이서 속삭이네

속절없는 인생살이에 노예된 인생들아

향기도 노래도 없이

눈동자 굴리며 어디를 보는가

주인 없는 야생 국화 향기 가득하고

공중에 머무는 파랑새도 기쁘건만

생각하는 인생들은

향기도 없고 기쁨도 없구나

날아라 파랑새야 마음껏 날아라

날고 싶은 인생들은 마음뿐이란다

 

청소년

 

청춘도 아니어라

노년도 아니어라

질퍽한 흙탕물에 목욕하고 나온 양

텁텁하고 껄끄러운 가슴은

긴 한숨만 쉬누나

 

따스하고 잔잔한 온천물에

앞뒤로 뒤집어 헹궈 보고픈

행주 같은 마음은

비눗물 없이 빨아 놓은

빨래더미 같구나

 

아름다운 노래 어디 갔나

사랑 노래 어디 갔나

지나간 청춘이

엄하게 뒤돌아보고

돌아온 노년이

한심하게 바라보누나

 

바닥에 내려앉은

청소년 시절이여

한심타 푸념 말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자

 

차돌멩이

 

올망졸망 차돌멩이

반들반들 윤기 나네

크고 작음 상관없이

생김생김 꼭 같구나

 

빛깔빛깔 꼭 같아라

단단함도 꼭 같아라

흐르는 물줄기 따라

데굴데굴 구르는 차돌멩이

 

구르고 굴러 그토록 단단한가

물결에 부딪히고

바람에 흔들리고

빗물에 상처 입고

 

세상 풍파 이기느라

반들반들 해졌는가

모든 역경 다가와도 미끄러져 내리는

차돌멩이 껍질을 나도 닮고 싶구나

 

올망졸망 세상 근심

다 미끄러져 내려라

세상을 이기려네

세상을 이기려네

 

보고 싶은 님

 

보고 싶은 님이 있어

잠 못 이루네

어느 때 뵈오리까

 

알고 싶은 이 가슴은

타다 남은 숫덩이 되어

재가 되려 하네

 

열화 같은 이 내 사랑

내 님은 아실는지

모르시기에 아니 오시나

 

내 님이시여 이 내 사랑

모른다 마옵소서

당신 때문에 태어난 이 생명

 

기억하여 주옵소서

살아서 못 뵈오면

죽어서는 뵈올는지요

 

아 ~ 보고 샆은 이 가슴은

울지도 못하누나

울지도 못하누나

 

 

 

posted by 황영찬

2014-069 여기! 내가 찾던 여행지 100

 

· 사진 유정열

2014, 상상출판

 

 

대야도서관

SB099503

 

981.102

유74ㅇㄱ

 

이번에는 여기로 국내여행 가자!

 

내 생애 최고의 여행을 꿈꾸는 사람을 위한 감성가이드북!

 

주말 · 1박2일 · 당일여행 일정에 따라

어떤 여행이든 OK!

 

유정열 작가의 시선은 따뜻합니다. 아무리 어두운 세상도 그의 시선을 거치면 금세 밝아집니다. 유정열 작가의 시선은 예리합니다. 같이 여행을 하면서 똑같은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그의 시선. 유정열 작가가 오랫동안 발품을 팔아 만들어 낸 결과물이 이제 세상 빛을 보려합니다. 그 힘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기에 기대 또한 큽니다. 그가 따뜻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 송일봉

 

서른이 되던 해였다. 24시간 장거리 버스를 타고 성자의 나라 어느 산을 넘고 있었다. 결승점을 눈 앞에 둔 마라토너처럼 지쳐갔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버스가 산허리를 돌아설 때, 어둠 속 산 아래에서 빛나고 있던 작은 마을. 아, 별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그리고 『여기! 내가 찾던 여행지 100』을 받아들고 다시 깨닫는다. 사진으로도 시를 쓸 수 있구나. 사진도 찬란한 시어가 될 수 있구나. 이제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시인들이 태어나겠지. 그래서 성자의 나라 시골 마을보다 더 많은 별들이 세상에서 빛나게 되겠지.

여행가 · 사진가 · 작가 박동식

 

유정열 작가의 사진은 간결하다. 간결함 속에 바람 내음과 햇살의 따사로움, 사람의 향기가 가득 들어있다. 유정열 작가의 사진은 아름답다. 그의 렌즈가 잡아낸 우리나라의 모습은 빛을 흠뻑 받은 찬란한 꽃망울처럼 반짝인다. 이 책에는 탐나는 그의 사진을 훔칠 수 있는 비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친절한 그의 설명과 함께 하면 누구라도 행복한 사진 여행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니, 당장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사진 속 여행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지구별 워커홀릭』『안녕, 여행』 작가 채지형

 

유정열

 

사진가이자 여행가이다.

일러스트레이터라는 별도의 직업도 있다.

사진을 세상과 자신을 이어주는 끈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한 장으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 풍경을 담아낼 수 있고, 세상의 보이지 않는 이면도 드러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세상을 방랑하는 동안 카메라는 분신처럼 따라 다녔고 그걸로 열심히 세상을 담았다.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며 소통하는 즐거움이 사진에 있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길 위의 행진을 멈추지 않는다.

지난 10년 동안 여행에서 마주한 풍경을 사람들에게 글과 사진으로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민국 베스트 촬영지 55』, 『놀라운 우리나라 여기가 어디지?』와 공저 『서울여행사전』, 『대한민국 여행사전』, 『대한민국 머물기 좋은 방 210』, 『여행작가들은 여행 가서 뭐 먹을까?』, 『서른이 되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28』 등이 있다.

 

목차

 

Prologue

계절별 추천여행지 BEST 5

 

강원도

001 구룡령 옛길 | 홍천군 내면

      가을 냄새가 물씬 피어난다

002 설악산 흘림골 | 양양군 서면

      기암 위에 깊어가는 가을

003 상고대 | 춘천시 동면

      엄동설한에 피는 서리꽃

004 자작나무 숲 | 인제군 인제읍

      노란 단풍이 전하는 가을 속삭임

005 운탄고도 | 정선군 사북읍

      광부의 애환 서린 길

006 준경묘 | 삼척시 미로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

007 청령포 | 영월군 남면

      천혜의 절경 속에 둘러싸인 외로운 감옥

008 공현진해변 읍바위 | 고성군 죽왕면

      격렬한 파도의 유희

009 산천어축제 | 화천군 화천읍

      겨울아! 물러 섰거라

010 추암해변 | 동해시 추암동

      한명회의 능파대, 사람들의 추암

011 풍수원 성당 | 횡성군 서원면

      찬찬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곳

012 양떼목장 | 평창군 횡계리

      몽글몽글 양떼들의 오물오물 합창

013 한탄강 얼음트레킹 | 철원군 갈말읍

      추워야 제 맛이다

 

전라도

014 사도 | 여수시 화정면

      안나네 민박집은 사도에 있다

015 세량지 | 화순군 화순읍

      마음속에 쏟아지는 봄 햇살

016 곡성 기차마을 | 곡성군 오곡면

      추억을 나르는 기찻길

017 전주 한옥마을 | 전주시 완산구

      명랑한 문화와 전통이 숨 쉬는 곳

018 명옥헌 원림 | 담양군 고서면

      백일 동안의 붉은 연정

019 금성산성 | 담양군 고서면

      남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

020 화엄사 흑매 | 구례군 마산면

      붉게 달아오른 홍매화

021 덕유산 | 무주군 설천면

      곱디고운 능선이 펼쳐진다

022 미륵사지 | 익산시 금마면

      상상하는 재미가 잇다

023 옥정호 | 임실군 운암면

      그곳에 가면 붕어가 산다

024 선운사 꽃무릇 | 고창군 아산면

      애틋한 그리움 선홍빛으로 물들다

025 대한다원 | 보성군 보성읍

      차밭의 아름다움은 패턴이다

026 위도 띠뱃놀이 | 부안군 위도면

      어기여차 칠산 바다로 돈 실으러 가자

027 정도리 구계등 | 완도군 완도읍

      골목을 벗어난 아이들처럼

028 순천만 | 순천시 대대동

      S자 물길이 참 섹시하구나

029 가거도 | 신안군 흑산면

      가히 살 만한 섬

030 비금도 | 신안군 비금면

      거시기 달짝지근한 섬이어라

031 홍도 | 신안군 흑산면

      뒤돌아보며 눈물 흘리는 섬

032 조도군도 | 진도군 조도면

      새들처럼 훨훨 날아보자꾸나

033 관매도 | 진도군 관매도리

      사랑한다면 관매도처럼

034 산포수목원 | 나주시 산포면

      잘빠진 메타세쿼이아 길

035 소등섬 일출 | 장흥군 용산면

      활짝 웃어보자구요 장흥

 

경상도

036 창녕 우포습지 | 창녕군 유어면

     우포늪에서 들려오는 생명의 노래

037 불영사 | 울진군 서면

      아름다운 사찰에서 마음을 씻는다

038 주산지 | 청송군 부동면

      깊고 그윽한 사색의 공간

039 근대문화유산 골목 | 대구시 중구

      다 같이 돌자 골목 한 바퀴

040 회룡포 | 예천군 용궁면

      커다란 항아리처럼 강물 돌아가는 곳

041 주상절리 | 경주시 양남면

      붉은 바다 위에 핀 재돌

042 경주 남산 | 경주시 배동

     늠비봉 석탑 앞에서 잠든다

043 진남교반 | 문경시 마성면

      길도 아름다울 수 있다

044 통영 미륵산 | 통영시 도남동

      이곳에 오르면 통영이 보인다

045 위양지 | 밀양시 부북면

      하얀 쌀밥 수북이 쌓였네

046 주남저수지 | 창원시 의창구

      깃털만의 세상

047 악양 평사리 | 하동군 악양면

      섬진강과 무딤이들이 낳은 풍요

048 물건 방조어부림 | 남해군 삼동면

      나무와 바다와 사람이 어우러지는 곳

049 지품면 복사꽃 | 영덕군 지품면

      봄날 마음을 달뜨게 하는 복사꽃

050 슬도 등대 | 울산시 동구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은 등대

051 하회별신굿탈놀이 | 안동시 하회마을

      걸지게 한판 놀아보세

052 함양 상림 | 함양군 함양읍

      함양사람들이 부럽다

 

충청도

053 화양구곡 | 괴산군 청천면

      속세를 떠난 이상향

054 온달산성 | 단양군 영춘면

      바보 온달의 거대한 배

055 삼년산성 | 보은군 보은읍

      천만 개의 돌로 쌓은 보은 삼년산성

056 마애삼존불 | 서산시 운산면

      1,400년 전의 살인미소

057 외연도 | 보령시 오천면

      망망대해 위에 안개에 가려진 섬

058 꽃지해변 | 태안군 안면읍

      나를 붙들어 준 바다

059 한산 모시 | 서천군 한산면

      인고의 세월 속에서 핀 단아함

060 예당지 | 예산군 응봉면

      겨울의 울림이 맴도는 호수

061 신두리 해안사구 | 태안군 원북면

      아파하지 마라

062 궁남지 | 부여군 부여읍

      선화를 위한 서동의 꿈꾸는 정원

 

부산

063 이기대와 오륙도 | 남구 용호동

      부산의 상징 이기대 해안산책로와 오륙도

064 영선동 | 영도구 영선동

      하늘과 바다 사이의 벼랑 끝에 걸려 있는 꿈

065 오랑대 | 가장군 기장읍

      슬퍼도 기뻐도 한결같은 바다

066 다대포 | 사하구 다대동

      모래와 황금빛 일몰이 그리운 곳

067 보수동 책방골목 | 중구 보수동

      헌책방에 관한 달콤한 추억

068 해운대 | 해운대구

      뜨거운 태양 아래 사랑이 익어간다

 

제주도

069 광치기해변 | 서귀포시 성산읍

      그날의 기억을 보듬어 주는 바다

070 금능으뜸원해변 | 제주시 한림읍

      누구에게나 파라다이스

071 한라산 백록담 | 제주시 조천읍

      은하수를 만질 만큼 높고 눈부시다

072 외돌개 | 서귀포시 서흥동

      파도에 닳아 더욱 처연한 바위

073 용눈이오름 | 북제주군 구좌읍

      억새와 빛이 만들어 낸 축제

074 가파도 | 서귀포시 대정읍

      바람이 넘실대고 청보리가 춤추는 가파도의 봄

075 군산오름 | 서귀포시 안덕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076 거문오름 | 제주시 조천읍

      신령스러운 세계자연유산

077 방주교회 | 서귀포시 안덕면

      물과 빛으로 빚어진 제주의 방주

078 이호테우해변 | 제주시 이호동

      바다를 지키는 트로이 목마

079 우도 | 제주시 우도면

      소는 사실 사람이었다

080 따라비오름 | 서귀포시 표선면

      제주 오름의 여왕

 

서울

081 달빛무지개분수 | 서초구 반포동

      오색커튼 같은 분수의 장관

082 선유도공원 | 영등포구 양화동

      마음도 가볍게 마실 간다

083 N서울타워 | 용산구 용산동

      서울 구경 1번지

084 창덕궁 후원 | 종로구 와룡동

      조선의 왕이 되어보자

085 하늘공원 | 마포구 상암동

      함께 산책하기 좋은 공원

086 서촌 | 종로구

      길을 잃어도 좋은 골목

087 북촌한옥마을 | 종로구

      한옥 사이로 느려지는 발걸음

088 안산 | 서대문구 봉원동

      500년 도읍지 서울의 야경

089 낙산마을 | 종로구 동숭동

      정감 어린 골목과 벽화가 있는 마을

090 백사동천 | 종로구 부암동

      서울이 품은 비밀의 정원

 

경기 · 인천

091 남한산성 | 경기도 광주시

      땅 위에 내려앉은 별

092 원당 종마목장 | 경기도 고양시

      목가적 풍경 속으로

093 수원 화성 | 경기도 수원시

      정조가 남긴 위대한 유산

094 조무락골 | 경기도 가평군

      조물조물 새소리 가득한 곳

095 두물머리와 세미원 | 경기도 양평군

      여름, 느긋한 연꽃 산책

096 풍도 | 경기도 안산시

      영원한 행복을 기다립니다

097 옥죽동 해안사구 | 인천시 옹진군

      푸른 바다 위의 하얀 사막

098 동막해변 | 인천시 강화군

      먹고 마시고 쉬어라

099 교동도 | 인천시 강화군

      어릴 적 상쾌한 줄달음의 추억

100 홍예문 | 인천시 중구

      무지개꿈이 스며 있는 문

 

Index

 

 

 

posted by 황영찬

2014-068 홍도와 흑산도

 

글 / 고동률●사진 / 박보하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39

 

082

빛12ㄷ  217

 

빛깔있는 책들 217

 

고동률-------------------------------------------------------------------------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8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현장검증」이 당선되었다. 산악전문지 『사람과 산』 등에서 기자 생활을 하였으며 현대그룹 계열사 홍보실에서 근무하였다. 저서로는 『성공과 실패는 법칙이 있』 등이 있다.

 

박보하-------------------------------------------------------------------------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으며 세 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가졌다. 1993년 『월간 사진 예술』에서 주최하는 올해의 사진가상을 수상하였고, 1994년에는 『Korean Culture』 사진 촬영으로 한국일보에서 주관하는 한국출판문화상 사진예술상을 수상하였다. 한국의 전통 문화를 주제로 한 사진들을 주로 촬영하고 있다.

 

|차례|

 

섬을 찾아서

외딴 섬의 아름다움

인간과 자연의 발자취를 따라

섬생활의 다양한 모습

여행중에 만나는 풍경

관광 안내

참고 문헌

 

장도와 내망덕도 뒤로 보이는 홍도  아득한 서해 한가운데 고즈넉이 떠 있는 홍도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의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절실히 느끼게 된다.

내연발전소로 올라가는 길에서 바라본 홍도 해안  홍도는 바다에 떠서 파도에 흔들리며 잘 그려진 풍경화를 감상하듯 바라보고 느끼는 섬이다.

홍도의 기암절벽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홍도는 보는 위치나 빛의 각도에 따라 모양과 느낌이 전혀 달라져 신비롭다.

남문바위  홍도항 오른편에 있는 남문바위 일대는 더 빼고 붙이고 할 것 없는 완벽한 조각 예술품인 동시에 잘 그려진 풍경화이다.

홍도의 일출  홍도 1구에서는 멀리까지 나가지 않아도 멋진 일출을 볼 수 있다. 밖에 나가 미리 아침해를 맞을 준비를 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창문만 열면 해가 떠오르는 장관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

병풍바위  12폭 병풍을 뒤로 비스듬하게 세워 놓은 것과 같다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12폭 병풍바위라고도 한다.

주전자바위  용왕이 바다의 질서를 관장하는 사해 충신들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하여 베푼 잔치에서 술을 담았던 주전자가 남아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홍도 앞바다의 밤을 밝히는 등대  홍도 2구에 있는 등대는 어두운 밤 서해를 헤매는 배들의 뱃길을 잡아 주고 있다. 등대 너머 멀리 독립문바위가 보인다.

독립문바위  서울의 독립문과 모양이 흡사하여 이름붙여졌다. 지난 날 중국으로 가는 배들은 반드시 이곳을 지나갔다고 한다.

흑산도 일주도로  상라산 정상에서 본 일주도로. 홍도 관광이 유람선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면 흑산도 답사는 이 일주도로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쌍룡동굴  두 마리 용을 눈 앞에서 만난 듯, 웅장한 바위의 무게가 눈길을 잡아 끈다.

칠성동굴  신라시대 청해진을 설치하여 서해 해상 무역을 장악한 장보고 장군이 당나라와 교역을 할 때 이곳에 칠성탑을 쌓고 안녕을 비는 용왕제를 지냈다고 한다.

촛대바위  날카로운 바위의 위용을 자랑하는 흑산 5경 촛대바위. 돛단배를 닮아 돛대바위라고 불리기도 한다.

고래바위.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  외딴 섬 처녀의 애환을 담은 이미자 씨의 노래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노래비로 일주도로 변에 있다.

홍도해수욕장  해안의 경사가 심하고 바닥이 암반이나 빠돌로 형성되어 있으므로 바다에 들어가는 것보다 해변에서 파도를 즐기는 기쁨이 크다.

지석묘군  선사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흑산도의 지석묘는 타원형 남방 형식으로 발굴 당시 빗살무늬토기, 생활용기 등이 출토되었다.

반월성  반월성은 원형을 많이 잃은 데다가 온통 풀숲으로 변하여 버렸다. 그러나 반월성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예리 항구의 아름다움은 오래도록 못 잊을 정취를 안겨 준다.

읍동리 삼층석탑  이승에서의 고달픈 생을 달래고자하는 섬사람들의 작은 정성이 모아지는 곳이다.

상라산 봉화대  중국 사신이 오는 길을 밝혔던 흑산도 봉화대는 시대가 바뀌면서 그 기능을 다하고 쇠퇴하여 이제는 허물어진 봉화대와 터만 남아 있다.

복성재가 자리잡고 있는 사리  『자산어보』를 남긴 손암은 흑산도에서 15년의 유배 생활을 하였다. 손암이 집을 짓고 살았던 곳으로 추정되는 자리에는 현재 복성재가 복원되어 있다.

지장암에 새겨진 면암 최익현의 글씨와 면암선생적로유허비  지장암은 산에 붙은 자연석으로 면암 선생의 친필이 남아 있어 유명한 곳이다. 면암의 문하생들은 지장암 앞에 그를 기리는 비를 세웠다.

실거리나무  덩굴져 뻗어 자라며 줄기에는 가시가 있다. 초여름에 노란 꽃이 피며 가을에 긴 타원형의 꼬투리가 생긴다.

콩짜개넝쿨  산지의 나무줄기나 바위에 붙어 자라며 원형의 잎이 성기게 난다.

청띠제비나비  날개에 청색 띠를 가지고 있는데 이 띠는 청색에서 황백색에 이르기까지 무늬의 변이가 심하다.

슴새  여름 철새인 슴새는 남해안의 외딴 섬이나 울릉도의 댓섬 등 무인도에서 살며 하루 종일 바다에 나가 생활한다.

금새우난초  남부 지방의 낙엽수림 밑에서 자라며 새우난초와 형태가 비슷하고 황색의 꽃이 피는 데서 이름이 붙여졌자. 노랑새우난초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도풍란  상록수림과 침엽수림의 나무나 바위에 붙어 자라며 풍란에 비하여 잎이 크다.

초령목  흑산도 주민들은 초령목의 가지가 신을 부른다고 믿어 매우 소중하게 여겼으나 몇 년 전 고사목이 되고 말았다.

흑비둘기  햇빛을 받으면 품위있는 흑자색으로 변하는 날개를 가진 흑비둘기를 흑산도 주민들은 길조로 여긴다. 후박나무 숲 주변에서 주로 서식한다.

진리 처녀당  흑산도 당집 가운데 보존이 가장 잘 된 진리 처녀당은 주변에 희귀목인 초령목, 용신당, 당샘 등을 두고 잇어 효험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홍도 1구.

홍도 2구  홍도 2구는 홍도 1구와는 달리 보기만 하여도 가슴 훈훈해지는 전형적인 섬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붉은빛을 띠는 홍도 해안의 바위  홍도는 바위들이 홍갈색이어서 섬이 빨갛게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홍도의 바위들은 전체적으로 붉은 색조를 띤다.

흑산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깃대봉  흑산도에서는 많이 걸으면걸을수록 얻는 것이 많다. 아무 길이나 선택하여 걸으면 그대로 산책길이 되고 등산로가 된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