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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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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31'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10.31 2016-022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여행
  2. 2016.10.31 2016-021 그림에 차려진 식탁들
2016. 10. 31. 14:56 내가 읽은 책들/2016년도

2016-022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여행

 

금난새 지음

2003, 생각의 나무

 

시흥시대야도서관

EM037721

 

670.15

금19219클

 

"클래식음악이 대체 뭐길래 공부까지 해야 한다는 거야? 귀찮게시리."

지오디(god) 노래는 아무 준비 없이도 신나게 들으며 즐길 수 있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이렇게 바꾸어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클래식은 룰을 알고 즐기는 야구 게임과 같다"라고.

룰을 모르고 보면 아무 흥미도 가질 수 없는 게임에 불과하지만 몇 가지 룰을 익히면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는 야구게임 말입니다.

클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준비 없이 들으면 어렵고 막막한 것에 불과하지만

조금만 공부를 하고 들으면 음악이 주는 환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답니다.

지오디(god)의 노래가 특별한 룰을 알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공놀이라면,

클래식은 룰을 알아야 즐길 수 있는 야구경기인 셈입니다.

 

금난새

 

현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경희대 교수

행복을 선사하는 무대 위의 나는 새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베를린 음대에서 리벤슈타인에게 사사하였다. 1977년 최고 명성의 카라얀 콩쿠르에 입상하였고, KBS 교향악단과 수원시향의 지휘를 맡아 활약했다.

연주회 때마다 선보인 '파격'과 '독특한 시도'는 클래식 음악회는 딱딱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청중과 함께 호흡하는 무대를 만들어냈다.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는 지휘자 금난새를 스타덤에 올린 대표적인 간판 프로그램으로 6년간 전회 전석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클래식 음악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지휘자 겸 음악감독이자 '기업형 오케스트라'의 CEO로 각종 기업체 공연과 '도서관 음악회', '베토벤 페스티발', '포스코 로비 콘서트' 등 탁월한 기획력과 철저한 고객지향 서비스로 민간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새로움에 대한 부담보다 '도전' 그 자체를 즐기는 지휘자 금난새는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정다운 메신저로서 새로운 무대 창출로 클래식 대중화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1947년   부산 출생

1970년   서울대 음대 작곡과 졸업

1974년   베를린 음대 유학

1977년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쿠르 입상

1980년   KBS교향악단 전임 지휘자

1989년   KBS교향악단과 국내 최초 오케스트라 녹음 출반

             (생상 '동물의 사육제', 프로코피에프 '피터와 늑대')

1992년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1994년   '해설이 있는 청소년음악회' 기획 · 진행

1998년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단

2002년   CJ그룹과 오케스트라 후원 계약 체결,

             한국기업메세나 협의회 홍보대사

 

차례

 

머리말

 

1  클래식 음악에 관한

       몇 가지 질문

 

클래식 음악이란? | 클래식 음악은 서양음악을 뜻한가? | 클래식은 어렵다? | 클래식만이 고급음악이다? | 클래식을 권하는 이유

 

2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

      바흐헨델

 

요한 제바스티한 바흐,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 음악명문 출신 바흐, 의사의 아들 헨델 | 교회음악가 바흐 | 사업가 헨델 | 코스모폴리탄 헨델 | 진지한 바흐, 대중적인 헨델 | 스무 명의 자녀를 둔 바흐, 평생 독신으로 지낸 헨델 | 닮은꼴 죽음 | 고전음악의 모태, 바로크 | 탐험시대가 낳은 아이, 바로크 | 바로크 음악의 특징

| 쉽게 풀어쓴 음악상식 |   | 금난새의 추천음악 |

 

3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 대장간 집 아들 하이든 | 아이 같은 모차르트, 아버지 같은 하이든 | 마지막 궁정 음악가 | 교향곡의 아버지 | 자유를 갈망한 모차르트 | 모차르트의 오페라 | 너무 일찍 떠난 천재 | 하이든의 나라사랑 | 고전주의 음악을 완성하다

| 쉽게 풀어쓴 음악상식 |   | 금난새의 추천음악 |

 

4 고뇌하는 예술가 베토벤

      음악의 미식가 로시니

 

루트비히 판 베토벤, 조아키노 로시니 | 가혹한 어린시절 | 짧은 학력, 넘치는 학구열 | 계몽사상 | 프랑스 대혁명 | 빈으로 간 베토벤 | 당당한 음악가 베토벤 | 시련에 맞선 투쟁 | 마음의 세계를 표현한 말년 | 이탈리아 천재소년 로시니 | 청중의 인기를 한 몸에 | 작품과 작곡가 그리고 사회

| 쉽게 풀어쓴 음악상식 |   | 금난새의 추천음악 |

 

5 가난한 가곡의 왕 슈베르트

      귀공자 멘델스존

 

프란츠 페테르 슈베르트,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 뛰어난 재능을 보인 소년 슈베르트 | 축복 받은 탄생, 멘델스존 | 가난한 방랑자의 길을 택하다 |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잇는 다리 | 천진난만한 예술가 | 바흐를 부활시키다 | 가곡의 왕 슈베르트 | 지휘자 멘델스존 | 생의 끄트머리에서 남긴 걸작, <겨울 나그네> | 낭만파 음악

| 쉽게 풀어쓴 음악상식 |   | 금난새의 추천음악 |

 

6 피아노의 시인 쇼팽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닌 인기스타 리스트

 

피아노를 사랑한 쇼팽과 리스트 | 수줍은 음악 천재 | 영원한 조국사랑 | 파리를 떠들썩하게 한 천재음악가 | 피아노의 시인 | 조르주 상드와의 사랑 | 헝가리의 천재소년 | 오빠부대를 이끈 인기 스타 | 교향시와 피아노곡 | 성직자 리스트

| 쉽게 풀어쓴 음악상식 |   | 금난새의 추천음악 |

 

7 고전적 낭만주의자 브람스

      종합예술가 바그너

 

브람스파 vs 바그너파 | 가난한 천재, 브람스 | 일생을 바꾼 두 번의 기회 | 스승의 아내를 향한 일편단심 | 고전적 낭만주의 | 바그너와의 대립 - 표제음악과 절대음악 | 클라라를 뒤따른 죽음 | 바그너, 불우한 어린시절 | 오페라 카펠마이스터 | 혁명 그리고 도피 생활 | 종합예술론 | 바그너의 여인들 | 편안한 말년

| 쉽게 풀어쓴 음악상식 |   | 금난새의 추천음악 |

 

8 러시아 음악의 선구자

      차이코프스키림스키-코르사코프

 

러시아 음악의 발전 |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감추고 |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음악가의 길로 | 내성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차이코프스키의 사랑 | 후원자 메크 부인 | 러시아 음악을 세계로 |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교향곡 <비창> | 음악을 사랑한 해군장교 | 전문적인 음악가로 | 그림 같은 음악, 토속적인 음악 | 국민주의 음악과 5인조 | 황제에게 맞서다!

| 쉽게 풀어쓴 음악상식 |   | 금난새의 추천음악 |

 

9 프랑스의 자존심을 되살린

      드뷔시라벨

 

프랑스 음악의 자존심을 회복하다 | 형식을 거부한 반항아, 드뷔시 | 프랑스를 대표하는 음악가 | 인상주의와의 만남 | 다양한 음악에 대한 관심 | 전통을 계승하여 현대를 이끌어낸 라벨 | 신고전주의 | 관현악의 마술사 | 다양성과 조화의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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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와 음악사 연대표

CD 수록곡 해설

바이올린과 기타, 곤잘레스, 1913

음악은 미술뿐 아니라 다른 예술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우리가 어렵게 생각하는 클래식 음악도 음악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 속한 하나의 분야이지, 별개의 것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성녀 세실리아

음악의 수호성인인 세실리아에 관한 그림은 많이 그려졌다. 왼쪽은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미힐 반 코크셰의 작품이며, 오른쪽은 20세기 화가 막스 에른스트의 작품이다. 시대에 따라 그녀를 표현하는 방식이나 연주하는 악기의 변화된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클래식 음악이 어렵다는 편견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일지 모른다.

음악 파티, 필림 메르시

대개 클래식을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클래식도 당대에는 그 시대를 풍미했던 하나의 문화였다. 우리도 약간의 준비만 갖춘다면 누구라도 클래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캐나다 전자음악 앙상블

기계적 장치에 의한 음악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클래식은 어렵고 낯설 수도 있다. 하지만, 클래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만들어진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취향과 다른 것이지 음악 그 자체가 고급스럽다거나 어려운 것은 아니다.

악기 모양 과자들

18세기 후반 이후 사용된 과자 제조용 틀이다. 여러 가지 악기모양을 볼 수 잇다. 이런 틀을 보면 당시 클래식이 일상생활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집트 무덤에 그려진 벽화, 기원전 1400년경

활 모양의 큰 하프를 연주하는 음악가와 목이 긴 류트를 부는 동료가 그려져 잇다. 이처럼 오래된 음악의 역사 속에는 우리가 흔히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17세기에서 19세기 정도까지의 음악도 들어 있다. 클래식 음악도 피라미드, 스핑크스와 같이 오래도록 아끼고 소중히 해야 할 무형(無形)의 문화유산이다.

중국 당나라 때의 피리 부는 부인들

서양의 것이라고 클래식 음악을 폄하하거나 편견을 갖고 대하는 것은 옳지 않은 태도이다. 서양 고전인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우리의 국악이나 다른 여러 나라의 고전 음악은 지금의 음악이 있게 한 근원이며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멜포메네와 에라토, 풀림니아, 르 쉬외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홉 명의 뮤즈 중 멜포메네, 에라토, 풀림니아를 그린 그림. 멜포메네는 비극을 주관하며 에라토는 서정시 또는 노래를 주관한다. 풀림니아는 찬가와 무악을 담당한다.

바흐의 초상화, E. G. 하우스만, 1746년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이 <3성의 카논> 악보이다.

오르간용 코랄 <샛별은 아름답게 빛나고> BWV 739

바흐의 자필 악보 중 현존하는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가 아른슈타트의 오르간 주자로 있던 1705년경에 씌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중년의 헨델, 필립 메르시에, 1720

헨델은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를 배워 오페라를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의 대표 작품으로는 <수상음악>, <왕궁의 불꽃놀이>, <메시아> 등이 있다.

<수상음악>의 초판 표지

<수상음악>은 20개의 관현악곡으로 이루어진 모음곡이다. 전체적으로 명랑하며 화려한 느낌을 준다.

바흐의 초상화, 1715년

바이마르에서 궁정악단의 악사장으로 승진한 바흐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드레스덴 풍경, 베르나르도 벨롯토, 1748년

독일의 남동부 작센주에 위치한 드레스덴은 바흐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바흐는 드레스덴의 카톨릭 교회를 위해 <마태 수난곡>을 작곡하였고, 칸타타를 다수 작곡하였다. 1736년에는 드레스덴에서 궁정 작곡가의 칭호를 받기도 했다.

바흐의 막내 아들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

바흐의 아들들 대부분이 음악가가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막내 아들은 '런던의 바흐'라고 불릴 만큼 이름을 떨쳤다.

템즈강의 불꽃놀이

국왕이 참석한 가운데 1749년 5월 15일에 화이트홀 부근 템즈 강 위에서 행해진 불꽃놀이를 그린 그림. 이를 위해 헨델은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을 작곡했다. 이 곡은 <수상음악>과 함께 헨델의 곡중 가장 유명한 관현악 작품으로 손꼽힌다.

17세기 악기를 그린 정물화

종교 음악 중심이었던 음악이 17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변화되기 시작했다. 오페라의 등장으로 세속 음악이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이러한 음악들이 바로크 시대를 이끌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악기도 다양해졌는데 첼로, 바이올린, 만돌린 등이 그림에 보인다.

모차르트의 미완성 초상화, 요제프 랑게, 1782년경

모차르트와 의형제를 맺은 요제프 랑게가 그리다 만 미완성 초상화로 1782년부터 1783년 사이의 겨울에 그려졌다. 모차르트는 뛰어난 재능으로 인류 음악사에 영원히 남을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하이든의 초상, 루트비히 구텐브룬, 1770년경

같은 시대 활동했던 모차르트와 달리 하이든은 '파파 하이든'이라고 불릴만큼 점잖고 모범적인 성품으로 존경을 받았다.

1766년 여름 파리의 콩티 공(公) 살롱에서

모차르트가 반주를 하기 전 조율을 하고 있다(화면 왼쪽).

모차르트 일가, J. N. 델라 크로체, 1780년경

벽에 걸린 초상화는 1778년 7월 3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의 모친이다.

모차르트의 두 아들 칼과 볼프강

모차르트 사후 각각 13세, 6세 때의 모습.

콘스탄체 모차르트, 요셉 랑게, 1782

모차르트의 아내인 콘스탄체를 그린 초상화. 그녀의 형부인 요제프 랑게가 그렸다.

궁정 의상을 입고 있는 모차르트(위)와 난넬

이 의상은 1762년 가을에 여제가 하사한 옷이다. 난넬은 모차르트의 누이이다. 그녀 역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이름을 날렸다.

하이든 초상화, 크리스찬 루트비히 제하스, 1785년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릴만큼 많은 교향곡을 작곡한 하이든. 그는 고전주의의 이상인 '균형과 조화'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음악 형식이 교향곡이었기 때문에 그토록 교향곡을 좋아했다.

작은 새를 쥐고 있는 소년 모차르트, 조포니, 1764년

음악적으로 재능이 뛰어난 모차르트였지만 철없는 어린애 같은 행동과 천재적인 재능에 대한 시기로 유달리 적이 많았다고 한다.

파울 안톤 에스테르하지 후작(Paul Anton Esterhazy, 1711~62)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형으로 하이든을 부악장으로 고용하는 계약을 맺고 궁정의 음악적인 기초를 닦는 데 상당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하이든의 하프시코드

하이든이 런던에 머물 당시 사용하던 것이다. 이무렵 하이든은 때때로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면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천지창조>의 2개국 공용 악보

1800년 하이든 자신이 출판한 것이다. 헨델의 <메시아>와 함께 최고의 오라토리오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는데 헨델의 <메시아>를 듣고 감동 받아 작곡하게 되었다. 전체 31부 32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친숙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는 그의 종교적 믿음과 낙천적인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아우구스트 폰 클뢰버가 1817년 메들링에서 그린 초상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베토벤 석판화

처음으로 빈을 찾은 베토벤은 먼저 피아노의 거장으로 이름을 떨치고자 결심했다. 그 노력은 열매를 맺어 베토벤은 전통 깊은 빈 음악계에서 피아노의 최고봉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13세의 베토벤

어린 베토벤의 음악적 재능을 이용해 돈을 벌고자 한 아버지 때문에 베토벤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베토벤을 그린 세밀화, 크리스티안 호르네만, 1803

빈의 귀족 살롱에서 세련되고 우아한 연주가로 명성을 떨치던 시절의 베토벤의 모습이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들라크루아, 1830년경

18세기 말, 귀족 계급의 황포로 평민들은 기아에 허덕였고 귀족들도 세금을 내야한다는 평민들의 주장에 군대는 총칼을 들이댔다. 평민들의 분노는 폭발하였고 혁명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혁명 정신은 개인의 권리와 감성을 존중하고 평등에 입각한 사상으로 많은 예술에 영향을 미쳤으며 음악에서는 낭만주의가 도래하게 되었다.

<열정 소나타> 자필 악보 첫 장

1805년경 베토벤은 리히노프스키 후작을 위해 이 작품을 썼다. 그러나 후작이 무리한 요구를 하자 뛰쳐나와 이 악보를 들고 비오는 밤길을 걸어 트로파우로 갔다. 악보 위의 얼룩은 그때의 빗방울 자국이다. <열정>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운명>이 초연된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

<운명>은 엄격하고 절제된 짜임새로 고전파의 맥을 잇는 동시에 작곡가의 내면 감정을 잘 표현하여 낭만파 음악의 문을 연 작품으로 평가된다.

베토벤의 장례행렬, 1827

장례식에는 2만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체르니, 슈베르트 등은 관 뒤에서 횃불을 들고 뒤따랐다.

젊었을 때의 로시니, 빈첸조 카무치니, 1816년경

로시니는 18세 때부터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떨쳤다. 그의 오페라는 듣기 좋고 아름다워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젊은 날의 슈베르트, 작자 미상

서른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 그가 남긴 아름다운 음악들은 우리 곁에 남아서 오랫동안 그를 기억하게 한다.

멘델스존의 초상화, 제임스 워튼 차일드, 1829년

멘델스존이 처음으로 런던을 방문했을 때 그려진 그림. 멘델스존은 유복한 집안에 교양 있고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상류 사교계에서 인정을 받아, 곧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12세 때의 멘델스존, 칼 베가스, 1821

멘델스존은 슈베르트와 달리 경제적으로 부유한 아버지와 음악적 재능이 풍부한 어머니를 둔 행운아였다. 그는 괴테와 절친한 음악가였던 첼티로부터 음악교육을 받았다.

그린 더럼 대성당, 멘델스존, 1829년

멘델스존은 평생동안 조그만 화첩을 가지고 다녔는데 거기에는 그가 보고 들은 풍경을 그린 여러 가지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마왕>, 모리츠 폰 슈빈트, 1828년

괴테의 시 「마왕」은 여러 예술가들에게 작품의 소재로 널리 이용되었다. 슈베르트 역시 1시간만에 신들린듯이 <마왕>을 작곡했다고 한다.

멘델스존의 초상화, 작가 미상, 1835년

이 해에 그는 당시 독일의 가장 중요한 음악 중심이었던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의 지휘자에 취임했다.

피아노 치는 슈베르트, 그 뒤에서 노래하는 미하엘 포글, F. G. 발트 뮐러, 1827년

슈베르트의 많은 가곡들이 이런 형식으로 발표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슈베르트의 초상화, W. A. 리더, 1825년

슈베르트는 명예나 돈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생전에는 그 예술성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실을 잣는 그레트헨>의 자필 악보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 1816년 이 작품의 사본을 만들어 괴테에게 보냈으나 괴테로부터 답은 없었다. 슈베르트는 괴테의 수 많은 시에 곡을 붙였으나 생전에 괴테와 만나지는 못했다.

슈베르트의 초상화, 요제프 밀러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이라고 불릴정도로 많은 가곡을 남겼고 그가 만든 가곡의 가사와 곡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침대 위의 영면한 멘델스존, 에두아르트 벤데만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누이 파니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멘델스존은 누이가 죽은 후 약 6개월 뒤에 별세했다.

쇼팽 초상화, 아리 셰퍼, 1847년

쇼팽은 마치 시인이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시를 쓰듯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는

온갖 섬세한 방법을 이용하여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고자 애썼다.

리스트의 초상화, 빌헬름 폰 카울바하

리스트는 거의 19세기 전체에 걸쳐서 살았고, 베토벤과 살리에리, 체르니, 그리고 바그너에 이르기까지 많은 음악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파리 몽소 공원에 있는 쇼팽과 상드의 상, 자크 프로망 무리스 제작

쇼팽에 피아노를 연주하고 상드가 그 음색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 쇼팽은 낭만파에 속했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음악 자체로의 아름다움을 중요시 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매우 서정적이다.

임종의 자리에 누운 쇼팽, 크비아트코프스키

상등의 죽음 이후 건강이 나빠진 쇼팽은 1849년 10월 17일 새벽에 숨을 거두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프란츠 리스트, 1824년의 석판화

빈을 찾아간 신동 리스트는 베토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여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베토벤과 슈베르트가 남긴 피아노 음악의 유산을 이어받아 그 시대를 이끌며 낭만파로 넘어가는 다리 구실을 했으며, 피아노 음악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1836년의 리스트

20대 중반의 리스트이다. 리스트는 잘생긴 외모에 신들린 듯한 피아노 연주 솜씨로 많은 여성팬들의 인기를 얻었다.

헝가리 민족의상을 입은 리스트, 1839

이탈리아 출생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였던 파가니니는 리스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기교면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리스트는 스스로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리스트의 모습을 그린 수많은 스케치와 만화 가운데 하나

리스트는 바흐의 음악이나 오페라, 교향곡 등 모든 장르의 음악을 피아노 한 대로 표현해 보였고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부르크 극장의 객석 풍경, 구스타프 클림트, 1888년

부르크 극장이 폐쇄되기 직전에 그린 구(舊) 브루크 극장의 내부 전경이다. 부르크 극장은 1741년 궁정 무대로 설계된 것으로 부르크 왕궁 옆에 위치하고 있어 부르크 극장이라고 불린다. 표준 독일어 발음 공연으로 유명하며 독일어권 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극장으로 유명하다.

20세의 브람스

슈만의 부탁으로 프랑스의 음악가이자 화가인 J. J. B. 로렌스에 의해 그려진 연필화. 1853년 뒤셀도르프에서 슈만과 브람스는 처음 만난다. 이후 슈만은 브람스의 음악적 선배이자 재정지원가가 되어 브람스를 후원한다.

58세의 요하네스 브람스, 루트비히 미할레크

브람스는 낭만주의의 파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전주의의 맥을 이은 고독한 음악가였다.

바그너 초상, 렌 바하, 1873

바그너는 대담한 화성과 강렬한 감정 표현, 그림을 보는 듯한 회화적인 묘사를 중시하는 표제음악을 추구하면서 급진적 낭만주의 음악을 이끌었다.

반프리트에서 공상에 젖어 있는 바그너, 렌바하

바그너는 <지그프리트>, <라인의 황금>, <로엔그린>, <탄호이저> 등 여러 곡의 오페라를 남겼으며 이런 오페라들은 중세 전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바그너와 코지마, 1872

바그너와 코지마가 빈에 머물 당시 그려진 그림이다. 코지마는 아버지 리스트의 반대를 무릅쓰고 바그너와 결혼했다.

바이로트축제극장

1875년 독일 바이로트시에 독일 오페라 작품 상연을 위해 건립되었다. 바그너가 구상하고 루트비히 2세의 후원을 받아 건립되었으며 완공된 이듬해에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가 초연되었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사망한 해에 니콜라이 쿠즈네초프가 그린 작품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때로 서유럽 중심의 고전 음악 창작을 뛰어넘어 러시아 특유의 정서와 감성을 담고 있다.

차이코프스키 가족, 1848

차이코프스키가 여덟 살 때 찍은 사진으로 왼쪽 끝의 아이가 차이코프스키이다.

모스크바의 차이코프스키 음악원과 차이코프스키 동상

깊은 애수와 어두운 분위기가 풍기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예민하고 심리적 · 내적 갈등이 많은 그의 성격과 연관이 있다.

메크 부인

메크 부인은 평생 차이코프스키의 후원자로 그가 생계 걱정 없이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차이코프스키 최후의 사진 중 하나

차이코프스키는 발레음악을 작곡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백조의 호수>는 장대한 짜임새와 아름다운 선율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초상화, 발렌틴 세로프

그의 작품은 "색채적이고 명쾌하여 이해하기 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것은 림스키-코르사코프가 관현악기의 특징을 잘 살렸기 때문이다.

1885년의 림스키-코르사코프

이 해 그는 해군과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고 이후 모든 시간을 음악에 바쳤다.

림스키-코르사코프 부인의 초상, 프란츠자베르 빈터할터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전문적인 음악 애호가였던 그녀에게서 많은 음악적 지원을 받았다.

수중왕국의 사드코, 일리야 레핀, 1876

<사드코>는 11세기 노브고로트의 전설을 바탕으로 주인공 사드코가 원양항해에서 겪게되는 여러가지 모험담을 그린 것이다. <금계와>와 함께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금계>의 의상 디자인, 빌리빈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마지막 오페라인 <금계>의 의상으로 위는 세마한의 여왕의 의상이고, 아래는 도도왕의 의상 디자인이다. <금계>이야기는 푸시킨의 환상적인 이야기에 바탕을 두었다. 내용이 당시 제정 러시아를 비판한 것이라 하여 상연이 금지되었다.

러시아 국민주의 음악 5인조 중의 보르딘과 무소르그스키

국민주의 음악은 자기 민족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는 데 역점을 두었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 오는 민요나 춤곡, 옛 이야기를 주제로 음악을 만들었다. 러시아 국민주의 음악 5인조는 러시아의 음악적 특징을 유럽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야만의 음악, 폴 고갱, 1892

19세기 말은 민족 음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아울러 일부 작가들에 의해 이국적 음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시도되었다. 특히 드뷔시, 라벨 등은 자바 음악, 그중에서도 특히 가믈란의 이국적 음향이나 동인도의 '관현악' 합주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드뷔시의 초상화, 마르셀 바셰, 1884

프랑스가 낳은 20세기의 세계적인 음악가인 그는 인상파 음악의 창시자이다. 그는 형식적인 화상법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음악 세계를 개척하였다. 대표작으로는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펠리아드와 멜리장드> 등이 있다.

보디첼리의 <봄>

드뷔시는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봄>이라는 곡을 만들었다. 인간과 자연이 서서히 피어나 새로운 생명으로 개화하는 폭발적인 기쁨을 묘사한 이 작품은 당시의 다른 음악들에 비해 새롭고 독특하였다.

눈덮인 루앙 성당, 클로드 모네, 1894

틀에 박힌 음악보다는 자유롭고 참신한 것을 좋아했던 드뷔시는 미술계에 새 바람을 일으킨 인상주의와 문학의 새로운 사조인 상징주의에 빠져들었고 그 자신이 최초의 인상주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세상에 내놓았다.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공연을 위한 박스트의 무대 디자인

드뷔시가 작곡한 이 작품은 최초의 인상주의 음악이라고 불린다. 시인 말라르메의 시에 드뷔시가 곡을 붙인 것이다. 이 곡은 기존의 낭만주의 음악과 전혀 다른 독창적인 음악이었다. 내용면에서는 줄거리 전달이 아니라 느낌이나 분위기 전달을 위주로 하였으며 형식에 있어서도 선율, 화성, 음색, 리듬 등 형식상의 원칙을 과감히 탈피하였다.

드뷔시의 초상화, 자크 에밀 블랑슈, 1902년경

드뷔시는 색다른 음악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동양 음악에 매료되었으며 이국적인 음악을 많이 작곡하였다.

파자마를 입은 라벨의 초상, 이실 우브레, 1909년

드뷔시보다 13세 연하인 라벨은 스페인 바스크 출신인 어머니로부터 정서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이런 이유로 스페인의 춤곡인 볼레로에 영감을 얻어 나중에 발레음악 <볼레로>를 작곡하게 된다. 그 역시 드뷔시와 같이 인상주의 음악을 발전시킨 인물이다.

1941년 12월 초연된 <볼레로>의 의상 디자인

<볼레로>는 당시 최고의 발레리나였던 이다 루빈스타인 부인의 의뢰로 1928년에 작곡되었다. 스페인의 춤곡 '볼레로'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는데 15분에 걸쳐 같은 멜로디가 무려 169회나 반복되는 음악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곡이다.

라벨과 스트라빈스키

라벨의 음악은 유희적인 놀이와 고풍스러운 멋, 감각적인 것가 기계적인 것이 잘 조화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라벨의 임종

1937년 12월 28일 알베르 모로가 그린 것. 라벨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수년간 투병생활을 하다 사망하였다.

라벨의 오페라 <아이와 마법>의 초판본을 위한 앙드레 엘레의 표지 디자인.

1차 세계대전 당시에 작곡되었다. 상당한 규모의 관현악을 수반하고 있지만 필수적이지 않은 선율이나 음색을 제거하여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함이 있다.

 

 

 

 

posted by 황영찬
2016. 10. 31. 14:42 내가 읽은 책들/2016년도

2016-021 그림에 차려진 식탁들

 

이여신 지음

2016, 예문당

 

대야도서관

SB108232

 

650.4

이64ㄱ

 

역사 속의 명화에 담겨진 톡톡 튀는 음식 문화 이야기

 

브레첼에서 숯불고기까지

화려한 음식들의 향연

 

사람마다 생각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선생님은 사람에게 필요한 의, 식, 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우리는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지.

"맞아요. 저희도 그렇게 생각해요. 사람은 먹지 않으면 죽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음식을 그저 단순한 '먹을거리'로만 생각하기는 어려워.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결국 인류는 배불리 먹기 위해 행동을 한 경우가 많이 있거든. 음식은 인류가 탄생한 순간부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단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살던 원시 인류는 먹을 것을 찾아 다른 대륙으로 이동했고, 그러면서 세계 곳곳에 문명을 탄생시켰지. 그뿐이 아니야. 음식은 정치, 경제, 사회의 많은 분야에도 영향을 끼쳤어.

"우와! 음식이 역사에 미친 영향력이 엄청나네요."

그래, 그래서 선생님은 너희들에게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단다.

- 본문 중에서 -

 

지은이 이여신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졸업. 역사콘텐츠연구회 '어제그리고오늘'을 통해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교육을 할 수 있도록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저서로 『그림으로 들어간 사람들』, 『미래를 열어주는 세계 역사박물관』, 『특목고 엄마들』, 『어린이를 위한 고대문명사』, 『위인들의 재능이야기』 시리즈, 『천하무적 속담왕』 등이 있고, EBS 초등영어교재 『요요플레이타임』, 『똑똑 영어놀이터』를 기획한 바 있다.

 

차례

 

수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1ST DAY 식사준비를 해볼까?

 

빵 굽는 사람들  갓 구운 빵이 나왔습니다!

빵 굽는 사람(욥 베르크헤이데), 빵장수 부부(얀 스테인)

 

폴렌타  옥수수를 주식으로 먹는 나라

폴렌타(피에트로 롱기)

 

쌀밥  한국인의 영원한 밥

벼타작(김홍도)

 

파스타  누가 이탈리아에 파스타를 전했을까?

국수 만들기(중세의 건강서적 Tacuinum Sanitatis)

 

시장 구경  왁자지껄한 중세 유럽의 시장

시장풍경(피테르 아르트센), 시장 물건을 파는 농부들(피테르 아르트센)

 

저잣거리  조선 시대 저잣거리의 풍경

저잣길(신윤복)

 

봄나물 캐는 여인  오늘은 무슨 나물을 캘꼬

나물캐기(윤두서)

 

분주한 부엌  다듬고, 만들고, 차리고

부엌의 모습(빈센초 캄피), 밥상 준비(김준근)

 

수수께끼 레시피  전문 요리사와 요리책의 등장

기적의 양념(제안 조르주 비베르)

 

푸줏간 풍경  아무나 먹을 수 없었던 귀한 고기

푸줏간(안니발레 카라치), 푸줏간의 진열대(피테르 아르트센)

 

인스턴트  현대인의 식탁을 점령한 즉석요리

캠벨수프(앤디 워홀)

 

2ND DAY 차려진 식탁 엿보기

 

고구려의 밥상  고구려 사람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무용총 접객도, 안악 3호분-부엌

 

그리스와 로마의 만찬  향락과 식사 사이

파에스툼 유적의 프레스코화

 

영주의 식사  중세 귀족의 식단

베리 공작의 화려한 기도서(랭부르 형제)

 

무도회의 만찬  바이킹의 식사법, 뷔페

무도회의 만찬(아돌프 폰 멘첼)

 

소박한 식탁  감자와 콩을 먹는 사람들

감자를 먹는 사람들(빈센트 반 고흐), 콩 먹는 사람(안니발레 카라치)

 

추수감사절  아메리카 인디언과 '터키 데이'

첫 번째 추수감사절(장 레온 제롬 페리스)

 

농가의 결혼식  중세 시골 마을의 흥겨운 결혼식

농가의 결혼식(피테르 브뢰겔)

 

성 니콜라스 축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사람들

성 니콜라스 축제(얀 스테인)

 

새색시의 큰상  '큰상'을 받은 새색시의 마음가짐

신부연석(김준근)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회갑연을 차린 정조의 효성

봉수당진찬도(김득신 외)

 

개화기의 만찬  식탁 위에 올라온 낯선 서양음식

조일통상장정기념 연회도(안중식)

 

돌잔치  돌 맞은 아이는 무엇을 쥐었을까?

돌잔치(김홍도)

 

3RD DAY 디저트를 먹어볼까?

 

디저트  '식탁을 치우다'는 뜻에서 비롯된 말

빵과 과자가 있는 정물(게오르크 플레겔)

 

  우리 조상들이 먹었던 최초의 과자

씨름(김홍도), 엿 만들기(김준근)

 

치즈의 유혹  하늘이 내린 맛

리코타 치즈를 먹는 사람들(빈센초 캄피)

 

청어와 맥주  기름진 청어와 시원한 맥주 한 잔

청어와 맥주가 있는 정물(피테르 클레즈)

 

커피 한 잔  '이슬람의 와인', 커피

커피를 즐기는 투르크 여인, 커피 한 잔(빅토르 가브리엘 질베르)

 

초콜릿 소녀  올멕 문명에서 밀크 초콜릿까지

초콜릿 소녀(장 에티엔 리오타르), 초콜릿을 마시는 여인(장 에티엔 리오타르)

 

우유  태어나서 처음 먹는 음식

우유를 따르는 여인(요하네스 베르메르), 채유(조영석)

 

4TH DAY 밖에서 즐기는 식사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화려한 파리의 술집에 가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에두아르 마네)

 

파리의 레스토랑  '그 레스토랑'에 가고 싶다

파리 레스토랑의 실내(빈센트 반 고흐)

 

카페의 화가들  커피, 문학과 예술, 만남이 있는 곳

그레코 카페의 화가들(루트비히 요한 파시니)

 

풀밭 위의 휴식  야외에서 즐기는 티타임

휴일(제임스 티소)

 

새참 먹는 사람들  잠깐 일손을 멈추고 새참을 먹자

새참(조영석), 들밥(김홍도)

 

주막집  주막에서 술잔을 들고

주막(김홍도), 주사거배(신윤복)

 

어부들의 식사  생선찜과 한 잔 술에 피로를 풀다

강변회음(김득신)

 

난로회  야외에서 먹는 숯불고기의 맛이란!

야연(성협)

 

참고문헌

 

<빵 굽는 사람> 욥 베르크헤이데, 1681년, 메사추세츠 우스터 미술관 소장

 

<빵장수 부부> 얀 스테인, 1658년

 

브레첼은 빵을 만들고 남은 반죽을 얇고 길게 밀어서

꼬불꼬불한 하트 모양으로 만든 뒤 굵은 소금을 살짝 뿌려서 구워낸단다.

바삭바삭하면서도 짭짤하며, 씹을 때 쫄깃쫄깃한 맛이 나서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지.

 

<폴렌타> 피에트로 롱기, 1740년경, 카 레초나코 미술관 소장

 

폴렌타는 끓는 물에 옥수수가루 등의 곡물가루를 넣고 끓인 '죽' 형태의 이탈리아 요리란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많이 즐겨 먹는 대표적인 서민음식이지.

 

<벼타작> 김홍도, 무기년(1775~1780년) 추정,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농사가 '천하지대본(모든 일의 근본)'이었던 우리나라에서는

쌀이 재산의 가치로 매겨질 만큼 소중한 존재였단다.

오늘날처럼 쌀이 외면당해 남아도는 현실을 옛 사람들이 보면 어떤 심정일까 궁금해져.

 

<국수 만들기> 작자 미상, 연대 미상, 중세의 건강서적 『Tacuinum Sanitatis』 수록

 

스파케티는 이탈리아 국수인 파스타의 한 종류야.

파스타는 라자니아, 라비올리 같은 밀가루로 만든 이탈리아 국수를 아우르는 명칭이지.

마카로니 같이 길이가 짧고 안에 구멍이 뚫린 면도 파스타의 일종이란다.

 

<시장풍경> 피테르 아르트센, 1550년, 알테 피나코테크 미술관 소장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도시의 중심부에 있었던 광장인 아고라나 포룸이 시장으로서의 역할을 했지. 당시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경제적인 기능만 했던 곳이 아니야. 항시 많은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정치적인 역할도 했지.

 

<시장 물건을 파는 농부들> 피테르 아르트센, 빌라프 리하르츠 미술관 소장

 

<저잣길> 신윤복, 18세기 말 추정,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생선이 담긴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채소가 들어 있는 망태기를 옆구리에 낀 채

이야기하는 젊은 여성과 그여성을 마주보며 대화하는 나이 든 여인이 등장하고 있어.

젊은 여성이 생선과 채소를 사왔는지 팔러 가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제목이 <저잣길>인 걸로 봐선 팔러 가는 확률이 높아 보이는구나.

 

<나물캐기> 윤두서, 18세기 초 추정, 개인 소장

 

조선 시대에 나물을 캔다는 것은 반찬을 만든다는 의미도 있지만, 집에 곡식이

바닥나서 굶주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해. 백성의 대부분은 농민이었지만

그들은 양반이나 큰 지주들의 땅을 빌려 경작했던 소작농이었거든.

 

<부엌의 모습> 빈센초 캄피, 1585년경,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소장

 

[백은영]기산07-밥

<밥상 준비> 김준근, 19세기 무렵, 독일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소장

 

사경(새벽 1시부터 3시 사이)에 일어나 머리 빗고,

오경(오전 3시부터 5시 사이)에 시어른께 문안드리네.

이담에 신랑하고 친정에 가면,

밥도 굶고 한낮까지 실컷 자리라.

- 이 옥(조선 후기)

 

<기적의 양념> 제안 조르주 비베르, 1890년경, 올브라이트 녹스 미술관 소장

 

르네상스 이전 중세 유럽에서 양념은 신분의 상징이었지.

동양이 원산지인 후추, 육두구, 생강, 샤프란, 계피, 백리향, 바닐라 등의 향신료는

매우 비싸고 귀했기 때문에 특권계층에서만 구할 수 있었거든.

 

<푸줏간> 안니발레 카라치, 1580년경, 크라이스트처치 미술관 소장

 

<푸줏간의 진열대> 피테르 아르트센, 1551년, 웁살라대학 미술관 소장

 

소시지는 다진 고기에 소금과 허브, 돼지기름을

첨가하고 동물의 찬자(주로 돼지 창자)에 싸서

하루 동안 쟁여두었다가 끓는 물에 삶아 먹는 음식이야.

우리나라의 순대는 돼지기름 대신 피를 넣는 게 다르지.

 

<캠벨수프> 앤디 워홀, 1962년,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그는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미술뿐만 아니라

영화, 광고, 디자인 등 시각예술 전반에 혁명을 일으켰어.

살아있는 동안 이미 전설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통하지.

 

<무용총 접객도> 작자 미상, 5세기 경 고구려, 고분벽화

 

<안악 3호분-부엌> 작자 미상, 357년 추정, 고분벽화

 

오늘날 우리가 즐겨 먹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한국의 대표음식인 불고기, 너비아니, 김치, 된장 등이

바로 고구려 음식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야.

 

<파에스툼 유적의 프레스코화> 작자 미상, 기원전 475년경, 이탈리아 파에스툼 박물관 소장

 

그리스에서 가장 부유했던 아테네의 귀족들은 갈수록 특이한 음식을 찾았어.

과식으로 죽은 돼지를 진미로 간주했고 젖은 곡식을 먹여서 살찌운 거위고기 따위를 즐겼지.

 

<베리 공작의 화려한 기도서> 랭부르 형제, 1414년경, 샹티이 콩데 미술관 소장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서양 요리는 대부분이 코스 요리지.

하지만 수프에서 시작해 샐러드, 생선, 육류, 디저트, 과일과 치즈, 커피 등으로 이어지는

요즘의 코스 요리는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단다.

 

<무도회의 만찬> 아돌프 폰 멘첼, 1878년, 베를린 내셔널 갤러리 소장

 

이 바이킹식 뷔페가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착하게 된 것은 18세기 프랑스 황실에서부터야.

연회를 자주 베풀었던 프랑스 궁정에서 뷔페식 상차림은 아주 적합했지.

 

<감자를 먹는 사람들> 빈센트 반 고흐, 1885년, 반 고흐 미술관 소장

 

<콩 먹는 사람> 안니발레 카라치, 1580년경, 코로냐 갤러리아 소장

 

<첫 번째 추수감사절> 장 레온 제롬 페리스, 1912~1915년, 미국 의회 도서관 소장

 

추수감사절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와 함께 인디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시작되었어.

그 후 추수감사절 행사는 미국의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단다.

<농가의 결혼식> 피테르 브뢰겔, 1568년,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

 

뒤쪽으로 녹색 휘장이 드리워져 있는 여인이 바로 신부야.

마주잡은 손이 긴장하고 있음을 보여주지. 당시의 풍습에는 저녁까지

신랑이 신부 앞에 나타날 수 없었기 때문에 신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성 니콜라스 축제> 얀 스테인, 1660~1665년경, 암스테르담 라익스 미술관 소장

 

<신부연석> 김준근, 19세기 말경, 『기산풍속화첩』 수록, 개인 소장

 

큰상은 먹지 않는 게 관례였어. 그래서 큰상을 '눈요기상'이라고 했지.

눈요기로 보기만 하는 상이라는 뜻이야. 큰상은 물리고 나면 신부를 따라온 하인들이 먹었어.

큰상 외에도 '입매상'이라 하여 작은 상에 국수장국, 떡 등과 함께 술을 내어놓았지.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 신 사임당

 

<봉수당진찬도> 김득신 외, 19세기경,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한국요리는 조선 시대에 와서 가장 발전을 이루었는데

특히 궁중 음식은 한국요리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어.

전국에서 올라오는 진귀한 재료와 고도의 조리기술을 가진

주방 상궁과 숙수들에 의해서 다양한 종류의 맛깔 나는 음식이 만들어졌지.

 

<조일통상장정기념 연회도> 안중식, 1883년,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재미있는 것은 서양식 상차림에 우리 전통의 음식이 보인다는 거야.

높다랗게 쌓아올린 고임음식은 우리나라의 잔치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이지.

연회 역시 잔치라고 생각해 고임음식으로 격식을 차린 것이 재치 있지?

 

<돌잔치> 김홍도, 1781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태어나 만 1년이 되면 이를 기념하여 돌잔치를 치렀어.

요즘에야 태어나 맞는 첫 생일을 축하해주는 의미로 돌잔치를 치르지만, 옛날에는 좀 다른 이유로

잔치를 열었단다. 옛날에는 아기들이 질병에 걸려 죽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태어나서 1년이 되는 시기가 아이의 생존에 아주 중요했어.

 

<빵과 과자가 있는 정물> 게오르크 플레겔, 1610년경, 프랑크푸르트 시립미술관 소장

 

아랍사람들은 설탕으로 만든 과자도 즐겨 먹었어.

오늘날의 캐러멀도 만들었는데, 캐러멀은 아랍어로 '달콤한 소금으로 만든 공'이라는 뜻의

'쿠라트 알 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

 

<씨름> 김홍도, 18세기경,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의 왕들도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이부자리 안에서 조청 두 숟가락을 먹고 난 뒤 일과를 시작했다고 해.

이는 엿의 당분으로 잠든 뇌를 활성화시키는 과학적인 방법이란다.

 

<엿 만들기> 김준근, 19세기 말경, 국립기메박물관 소장

 

우리 조상들은 엿을 단순히 '과자'로만 여기지 않았어.

엿이 몸에 활력을 주고 머리를 맑게 해준다고 믿었지.

 

<리코타 치즈를 먹는 사람들> 빈센초 캄피, 1580년경, 리옹 미술관 소장

 

치즈는 모두 알다시피 소, 염소, 물소, 양 등의 동물의 젖에 들어있는 단백질을 뽑아

응고, 발효시킨 식품이야. 치즈의 맛은 원료, 숙성 방법, 발효균의 종류 등에 따라

다양한 모양과 맛을 내지. 현재 약 1천여 종의 치즈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람들이 즐겨 먹는 치즈는 그중 20여 종에 불과해.

 

<청어와 맥주가 있는 정물> 피테르 클레즈, 1636년,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 소장

 

맥주는 인류가 마신 가장 오래된 술이야.

인류가 정착해 농경생활을 하면서부터 맥주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탄생시킨 수메르 사람들이나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즐겨 마셨다는 것으로 봐선 문명의 탄생과 같다고 보여.

 

<커피를 즐기는 투르크 여인> 작자 미상, 연대 미상

 

서양 사람들은 자신들의 와인에 빗대 커피를 '이슬람의 와인'이라고 부른단다.

이처럼 커피는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이슬람의 음료였어.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이는 커피에 관한 터키의 유명한 속담이지.

 

고급스런 카페는 아니더라도 지금 이 순간은

그녀에게 천금 같은 시간일 거야.

그녀가 마시는 커피에서 짙은 향이 날 것 같아.

 

<커피 한 잔> 빅토르 가브리엘 질베르, 1877년, 개인 소장

 

<초콜릿 소녀> 장 에티엔 리오타르, 1744~1745년, 드레스텐 미술관 소장

 

카카오에는 커피와 마찬가지로 정신을 맑게 해주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효능이 있기 때문에 신성한 음료로 여겨졌지.

훗날 아스텍 문명 사람들도 카카오를 신의 열매라 부르며 귀중하게 여겼단다.

 

<초콜릿을 마시는 여인> 장 에티엔 리오타르, 1744년, 영국 국립미술관 소장

 

<우유를 따르는 여인> 요하네스 베르메르, 1658~1660년, 암스테르담 레익스 박물관 소장

 

인류는 오래 전부터 우유를 마셔왔어.

우유의 풍부한 영양소는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어주었고,

사람들도 그런 우유를 신의 축복이라고 여겼어.

 

그림 속에서 도포에 갓을 쓴 양반 여럿이 모여 소젖을 짜고 있어.

풍성한 도포자락이 젖을 짜기에 무척 불편해보이지?

이들은 아직 젖도 떼지 않은 어린 송아지를 한쪽에 떼어놓은 뒤

어미 소의 코뚜레를 움켜잡고 뒷다리까지 줄로 옭아매 꼼짝하지 못하도록 한 다음

그릇을 받쳐 들고 쪼그려 앉아 젖을 짜고 있어.

 

<채유> 조영석, 17세기경, 개인 소장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에두아르 마네, 1881~1882년, 코톨드 미술관 소장

 

인류의 역사에서 술집은 언제부터 있어왔을까?

아마도 인류가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닐까 싶어.

기원전 3900년 경 바빌로니아에 선술집이 존재했다는 증거도 있지.

 

<파리 레스토랑의 실내> 빈센트 반 고흐, 1887년, 크뢸러 뮐러 미술관 소장

 

특권 계층만 맛볼 수 있는 요리를 이제 누구나 돈만 내면 사먹을 수 있게 되었지.

이로써 레스토랑이라는 형태의 '음식점'이 생겨나게 된 거야.

 

<그레코 카페의 화가들> 루트비히 요한 파시니, 1852년, 함부르크 미술관 소장

 

그레코 카페는 1750년 무렵 문을 연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세 곳 가운데 하나야.

오늘날에는 유럽 카페 문화의 상징이 되어서 커피 애호가들은 성지 순례하듯 이곳을 찾는다고 해.

 

<휴일> 제임스 티소, 1876년경, 테이트 모던 갤러리 소장

 

당시 유럽에서는 커피, 초콜릿, 차 등이 전해지면서

티타임을 갖는 것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어.

특히 여성들은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담소를 나누며 차를 즐겼지.

 

<새참> 조영석, 18세기 초경, 개인 소장

 

<들밥> 김홍도, 연도 미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주막> 김홍도, 18세기 말경,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주사거배> 신윤복, 18세기 말경, 간송미술관 소장

 

주막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드나들었기 때문에 진풍경이 종종 벌어졌어.

손님이 많이 붐빌 때는 마치 잔칫집처럼 흥청거리기도 했고,

서울에서 과거라도 있을라치면 지방에서 과거 보러 온 손님들로 만원을 이루었어.

 

<강변회음> 김득신, 18세기경, 간송미술관 소장

 

어부들의 여유로운 식사 장면이 담긴 이 그림은 김홍도, 신윤복과 함께

조선의 3대 풍속화가로 꼽히는 김득신의 <강변회음>이야.

강변회음은 '강가에 모여앉아 술을 마시다'는 뜻이지.

 

<야연> 성협, 조선 후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후기 양반들 사이에선 화로에 숯불을 피워놓고 소고기를 구워먹는

이른바 '난로회'가 유행이었어. 음력 10월 초하룻날,

한양의 사대부들은 들판으로 나가 화로 안에 숯을 피워서 소고기를 구워먹었지.

 

술잔, 젓가락 늘어놓고 이웃 모두 모인 자리.

버섯이며 고기며 정말 맛이 있네 그려.

늙마에 이런 음식 좋아한들 어찌 식욕을 풀어보리.

고깃간 지나며 입맛 다시는 사람일랑 본받지 말아야지.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