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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7 창덕궁 Ch'angdok Palace

글 / 장순용●사진 / 김종섭

1995,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3074

082
빛12ㄷ 32


장순용------------------------------------------------------------------------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을 졸업하였다. 동양공전 건축과에 출갈하였고 현재 삼성건축설계사무소 대표로 있다. 창경궁 복원 정비 설계, 경희궁 복원 정비 설계 등을 하였고, 논문으로 '신라 왕경의 도시계획에 관한 연구'가 있다. 주요 보고서로 「부산 동래향교 실측조사 보고서」「경기도 문화재 실측조사 보고서」등이 있다.

김종섭------------------------------------------------------------------------

본사 사진부 차장

|차례|

머리말
창덕궁의 역사
창덕궁의 배치와 특징
보존과 관리
영문 개요
참고 문헌


 

▲ 창덕궁 전경
경복궁의 동쪽에 조성된 창덕궁은 경복궁의 상대적인 위치로 '동관대궐' 또는 '동궐'이라 불린다.

▲ '동궐도' 1826~1830년경 제작.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 창덕궁 전체 배치도

▲ 동궐배치도

▲ 대조전 1926년 4월 25일에는 조선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이 대조전에서 승하하여 창덕궁은 주인을 잃게 된다.

▲ 「조선고적도보」의 창덕궁 배치도 조선총독부에서 1930년에 발생한 책의 창덕궁 배치도이다. 붉게 칠한 부분이 당시에 남아 있던 건물인데 인정전과 대조전 일곽이 변경되기 전의 모습이므로 1917년의 화재 이후 1920년에 중건되기 이전에 측량한 것으로 보인다.

▲ 금천교 돈화문을 들어서서 60미터 정도 북쪽으로 진입하여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남류하는 개울 위로 금천교가 설치되었다.

▲ 금천교 귀면
홍예 사이로 설치되는 역삼각형의 석재를 「창덕궁수리도감의궤」에서는 "청정무사(蜻蜓武砂)"라 하였다. 뜻을 풀이하면 잠자리형 성곽돌이 되겠고 잠자리 두 눈 사이의 모습과 같아서 명칭된 듯하다. 조각된 귀면은 부정한 것을 물리친다는 벽사의 의미가 있다.

▲ 금천교 정문에서 들어오는 주방향에서 직각으로 꺾이어 설치된 점이 다른 궁궐의 다리와 다른 점이다.

▲ 옥새 역대의 왕들이 왕위를 계승할 때에는 정전의 대문 앞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여 옥새를 전달받은 다음 정전으로 들어간다.

▲ 선정전 인정전 동행각에 있는 광범문을 나서면 편전인 선정전의 외행각이 왼쪽에 들어서 있다.

▲ 선정전 일곽 선정전 외행각의 남쪽에는 정원(政院), 대청(待聽), 대전장방(大殿長房), 사옹원(司甕院) 등의 기관들이 좌우로 배치된다.

▲ 희정당과 대조전 일곽
내전 일곽은 외전과는 달리 건물의 중심축이 서남향이 된다.

▲ '동궐도'의 대조전 일곽

▲ '동궐도'의 돈화문 돈화문과 창경궁의 홍화문이 그림에서는 팔작지붕으로 표현되었으나 현황은 우진각 지붕이므로 동궐도가 작성된 이후에 개조된 것으로 보이나 개조된 시기와 이유는 미상이다.

▲ 돈화문 서측면 모습

▲ 돈화문 층계 목제의 계단이 한 번 꺾어져 2층으로 오르게 된다.

▲ '동궐도'의 금천교

▲ 인정문 현판 북악 이해룡의 글씨이다.

▲ 인정문 현재의 건물은 영조 21년에 건립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지금의 모습은 1912년경에 인정전의 행각을 전시장으로 만들면서 전시장 출입문의 기능으로 바꾸기 위해 벽체와 바닥의 구성이 변형된 것이다.

▲ 인정점 전경 인정전은 신하들의 하례식과 외국 사신의 접견 장소로 사용되는 국가 행사의 공식적인 건물로서 정면 5칸에 측면 4칸의 중층 팔작 지붕의 다포 구조이다.

 

▲ 인정전 정면 정조 6년(1782) 9월에는 이전에 없던 품계석을 인정전 앞뜰에 설치하였고 이 품계석은 다른 궁에도 설치하게 되었다.

▲ 인정전 당가 궁궐의 정전에는 한결같이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이 곡병 뒤에 설치되는 데 이 병풍은 국토를 지키는 오악(五嶽)의 신과 음양의 조화를 의미하는 해와 달의 표현으로 어좌를 둘러 국토와 창생이 임금을 중심으로 하여 국가가 경영된다는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다.

▲ 인정전 드므 인정전 상, 하월대의 좌우로 4개소에 설치되어 있는 드므는 불귀신의 접근을 막기 위한 일종의 벽사 시설이다.

▲ 선정전 평상시에 임금이 신하들과 국가의 정치를 의논하는 곳을 편전이라 한다. 선정전이 바로 외전(外殿)에 속하는 편전이다. 따라서 건물의 구성에서도 공식적인 치장이 가미되며 창덕궁에서는 인정전의 동쪽에 정전보다 뒤로 물러나 앉아 있다.

▲ 선정전 종단면도

▲ 선정전 횡단면도

▲ 선정전 평면도

▲ 선정문

▲ 궁전 출구 희정당으로 들어가는 남행각 건물이며 중앙부에는 어차(御車)가 접근하도록 현관을 돌출시키고 있어 궁궐 건물도 개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인다.

▲ 희정당 동측면 희정당의 앞뒤로 복도각이 연속된다.

▲ 희정당 정면 중앙부의 대청칸과 툇마루 앞에 분합문이 설치되었다.

▲ 희정당 서측면 경복궁 시절 모습과 달라진 것으로 툇마루 부분을 복도로 사용하여 건물 내부에서 여러 전각으로 통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폐쇄적인 모습이 되었다.

▲ 「조선고적도보」의 강녕전 경복궁 강녕전의 재목이 뒷날 희정당을 짓는 데 사용되었다.

▲ 희정당 북측면

▲ 희정당 대청 중앙부의 3칸은 전체를 응접실로 꾸미고 서쪽의 3칸은 회의실이 되고 동쪽의 3칸은 여러 칸으로 막아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 대조전 현판 이 전각은 국가의 기틀을 이어가는 세자를 큰 그릇으로 만들어야 국리민복의 안녕을 누릴 수 있다는 뜻에서 대조전이라 명칭하였다.

▲ 「조선고적도보」의 교태전 경복궁의 교태전이 뒤에 창덕궁의 대조전으로 이건된다.

▲ 인정전 보개 천장

▲ 대조전 대청 대청은 서양식의 쪽널 마루로 깔고 응접실을 꾸미어 중국풍의 의자를 갖추었다.

▲ 대조전 왕의 침실 대청을 사이에 두고 좌우에 4칸의 온돌방으로 하여 왕과 왕비의 침실이 된다.

▲ 왕비의 침실 왕비의 침실에 서양풍이 도입되어 침대가 놓인다.

▲ 함원전 일곽 대조전 뒤쪽에 동쪽으로 접속된 건물인 함원전은 경복궁의 교태전에 접속되었던 건순각과 같은 모습이지만 건물의 칸수와 기둥 간격은 약간 변형되어 있다.

▲ 함원전 누마루와 화계 함원전은 2칸 폭으로 6칸이 북쪽으로 뻗어나가고 그 북쪽 칸에서 동쪽으로 2칸 폭에 2칸 길이로 한 단 높게 누마루를 꾸미고 누마루의 3면에는 쪽마루와 아자 난간을 둘렀다.

▲ 경훈각 현재의 경훈각은 1920년에 경복궁의 자경전 북쪽에 있던 만경전을 철거하여 단층으로 건립된 것이다.

▲ 가정당 덕수궁의 가정당은 중화전 북쪽에 있는 즉조당과 석어당의 북쪽에 있던 건물로서 고종 광무 8년(1904)의 화재 때에도 무사하였다.

▲ 어차고 정면 5칸에 측면 3칸의 초익공 양식의 건물로서 현재는 내부의 벽체를 철거하여 진열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나 '동궐도형'에서는 좌우쪽의 칸이 온돌방으로 되어 이 부분의 지붕이 맞배 지붕으로 대청부의 지붕에 직각으로 구성됨으로써 팔작 지붕과 맞배 지붕이 결합된 일종의 공(工)자 형태의 독특한 지붕을 보여 주고 있다.

▲ 내의원 전경 희정당 동남쪽에 남향으로 자리하여 문간채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현재 내의원으로 소개되고 있는 건물인 성정각은 원래 동궁이 학문을 배우던 곳이다.

▲ 건물의 편액 「한경지략」에서는 "화제어약과 보호성궁의 글씨는 원해진이 쓴 것"이라고 하였다.

▲ 성정각의 남행각 내의원은 왕실의 의약을 담당하던 곳으로 인정전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현재 마당에는 약재를 다루던 돌절구가 남아 있다.

▲ 성정각 건물은 정면 6칸에 측면 2칸이며 동쪽 칸에는 반 칸이 돌출되어 뒤의 2칸과 같이 누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누마루 아랫부분은 개방되어 있다.

▲ 관물헌 이 건물은 장대석 기단을 갖춘 정면 6칸이나 앞뒷면의 퇴를 합하면 실제로는 측면 2칸 구조이다.

▲ 신 선원전

▲ 낙선재 장락문 12칸의 낙선재 남행각에 있는 장락문이 정문인데 현재는 서행각에서 2칸을 돌출시켜 승용차가 접근할 수 있는 현관을 두었다. 

▲ 낙선재 화계 북쪽 후원은 층단진 담장과 전돌로 쌓은 크고 높직한 굴뚝과 4단의 장대석 화계로 구성하여 지형의 변화를 살렸다.

▲ 한정당 정면 3칸에 측면 2칸, 홑처마 팔작 지붕에 각기둥과 굴도리를 사용한 소로수장 건물이다. 기단은 정면의 2칸 부분만 두 벌대의 장대석으로 두르고 앞마당에는 석분과 괴석으로 운치를 더하였다.

▲ 낙선재 순조 28년(1828)에 건립된 연경당보다 20년 뒤에 세워진 낙선재는 궁궐에 조영되는 주거 건축술로서 그 구성의 법식과 보존 상태가 훌륭하며, 특히 지형과 환경에 따라 자유 분방하며 다양한 건축물을 보여 주고 있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건물이다.

▲ 상량정 이 건물은 낙선재 화계 뒤쪽의 후원인 높직한 터 위에 자리한 육각정의 누각 건물이다. 「궁궐지」와 '동궐도형'에서는 육우정 곧 평원루라 기록하고 있다.

▲ 상량정 천장 구조 내부의 천장은 거까래가 노출되었으나 중도리 안쪽 육각형의 부분은 마름모꼴의 소란 반자로 구성하고 봉황과 용과 박쥐 문양으로 화려한 단청을 베풀었다.

▲ 만월문 상량정의 서쪽 담장에 있는 문으로서 전돌로 만월형의 출입구를 내고 좌우로 밀어 열게 된 넌출문이 달렸다.

▲ '동궐도'의 삼삼와, 칠분서, 중희당 오른쪽 윗부분 큰 건물이 중희당이고 그 오른쪽에 접속된 부분이 칠분서와 육각정인 삼삼와이며 이어서 복도로 연결되고 화면에는 없지만 승화루 곧 소주합루가 계속된다. 현재 중희당 자리는 후원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되었다.

▲ 승화루 정면 3칸에 측면 1칸의 이익공 겹처마 팔작 지붕의 중층 누각으로 위층에는 사면에 세살 분합문을 달았고 동쪽에 누로 오르는 계단이 설치되었다.

▲ 삼삼와 육각정인 삼삼와는 한 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기둥 하부로 2단의 장대석을 쌓고 그 위에 초석과 고막이를 돌려 놓고 그 위의 아래층 벽에는 전돌로 귀갑문 장식을 하였다.

▲ 칠분서, 삼삼와, 승화루 칠분서는 삼삼와에서 북쪽으로 1칸 폭의 6칸 건물로서 초익공 구조에 분합문을 설치하였다.

▲ 낙선재 계단의 석수

▲ 창덕궁의 꽃담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살피고 우리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보존과 관리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