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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9. 26. 19:36 내가 읽은 책들/2011년도
2011-102 동양철학 스케치 1

김선희 지음
2009, 풀빛



시흥시대야도서관
SB039590

150
김54ㅅ


2500년의 지혜와 만나는 유쾌한 철학 여행!

《동양 철학 스케치》는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를 이끈 철학자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단순한 인물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의 사상이 어떠한 시대적 배경에서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하나하나 되새기며 따라가 보는 흥미로운 철학 여행이다. 그 유쾌한 여정 속에는 중국 · 인도 · 조선 · 일본을 넘나드는 사상들이 숨 쉬고 있고, 그 숨결 속에는 시대와 분리된 고민도 사람과 떨어진 철학도 없다는 깨달음이 있다.
이 책은 철학적 개념이나 이론뿐만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궁금해 하는 것, 즉 당대의 철학자들이 무엇을 문제로 삼았는가, 무엇을 보고 지향했는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생각의 지도를 그리고 사유의 구조를 형성했는가를 중심축으로 삼는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문제를 발견하고 이해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바꾸고 실천하고자 했던 철학자들의 고민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그 힘은 우리가 만나는 현실의 화두로까지 확장되어 오늘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줄 것이다.

지은이 | 김선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이화여자대학교와 수원대학교에서 철학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동양철학 그 불멸의 문제들》(공저),《철학, 문화를 읽다》(공저),《맹자》가 있고, 〈《천주실의》와 그 주변들〉,〈천학의 지평과 지향〉,〈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의 유교적 변용에 관한 연구〉등이 있다.

|차례|

동양 철학 여행을 떠나며
동양 철학 여행의 길잡이

제1부 문명 앞 선 선구자들

01 문명을 향한 도전 중국 고대의 신화와 사상
요임금은 왜 순에게 왕위를 주었는가 | 중국 역사, 하나라에서 열리다 | 하늘에서 통치 질서를 찾다-은나라 | 천명天命을 통해 보편적 질서를 세우다-주나라
02 인仁, 인간의 길, 정치의 길 공자의 철학
공자, 문명의 계승자 | 예禮, 타율에서 자율로 | 인仁, 사람다움의 조건 | 의義, 인仁의 기준 | 군자가 다스리는 사회 | 도덕 정치를 꿈꾸며 | 개인의 발견
03 도道의 형이상학과 무위無爲의 정치학 노자의 철학
노자 X파일 | 도와 만물 | 사람은 땅을 본받고 | 무위의 정치학 | 작은 나라의 백성 | 인의를 끊어라

제2부 세상 바꾸는 각자各自

04 자연과 자유의 함수관계 장자의 철학
장주와 《장자》를 찾아 | 고차원적 거짓말 |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버리고 | 혼돈을 지켜라 | 도와 하나된 세계 | 포정이 소 한 마리를 뚝딱 | 앉아서 잊기, 마음을 텅 비게 하기 | 《장자》속의 주인공들
05 도덕적 인간이 세상을 구한다 맹자의 철학
백 사람의 목소리 속의 울림, 맹자 | 인仁으로 정치하기 | 사람답게 사는 방법 | 고자와 인성을 논하다 | 사단四端, 마음속의 네 가지 선한 싹 | 우산은 왜 민둥산이 되었나 |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호연지기를 길러라 | 내 안에 모든 이치가 있다
06 공동체에 운명을 걸다 묵자의 철학
양주와 묵자는 이단인가? | 묵자, 묵가를 열다 | 세 가지 걱정과 세 가지 힘써야 할 일 | 차별적인 사랑과 차별 없는 사랑 | 전쟁을 반대하다 | 하늘은 모든 백성을 사랑하시니 | 현명한 자를 숭상하고 서로 화합하라 | 사치를 금하고 절제하라

제3부 나 넘어 깨달음 향해

07 깨달은 자의 길 인도의 사상과 불교의 성립
인도의 종교 전통, 《베다》|귓속말로 전하는 비밀의 깨달음 | 너의 아뜨만을 알아라 | 브라흐만과 아뜨만은 하나다 | 불교의 뿌리 | 진리의 바퀴를 돌리다 | 나라고 할 것은 어디에도 없다 | 모든 것이 그물처럼 이어져 있다
08 불교, 큰 수레로 중국까지 불교의 발전과 중국 전파
불교, 종교인가 철학인가 | 대승 불교의 시작 | 불교, 중국의 문을 열다 | 노장의 옷을 입은 불교 | 승조, 현학의 절정 | 중국에 온 불교에서 중국의 불교로 | 종파 불교의 시작
09 온 우주이자 하나의 마음 화엄종과 선종
화엄경과 화엄종 | 금사자상의 비유 | 화엄의 세계관-사법계설四法界說 | 깨끗한 마음이 곧 부처 | 달마도와 달마대사 | 선종의 성립 | 땔나무꾼 혜능 | 돈오頓悟와 점수漸修 | 문자를 넘어서 불성佛性을 보라 | 오늘 이 자리의 선禪

동양 철학 공부에 도움이 되는 책들 서가書架 탐험 안내도

동양 철학 스케치 2

제4부 극복 종합, 유학 창조적 혁신

10 새로운 창으로 유학을 보다
북송의 철학자들
11 천리天理를 실현하는 도덕적 인간 주희의 철학
12 본성에서 마음으로 왕양명의 철학

제5부 변화 모색하는 비판자들

13 격변기의 목소리들 명말明末의 사상 지형
14 푸른 눈의 유학자, 서양을 들여오다 서학의 전래와 영향
15 전통을 딛고 근대를 열다 청 대의 철학자들

제6부 조선 일본-사상적 변용 창조

16 성리학의 또 다른 깊이와 넓이 조선 성리학
17 변혁을 위한 사상적 모색 조선 실학의 도전
18 유학을 넘어 국학으로 근세 일본의 사상

동양 철학 여행을 마치며
동양 철학 공부에 도움이 되는 책들
사진 자료 제공에 도움을 주신 분들과 단체

제1부 문명 앞 선 선구자들

최초의 철학자들은 신이 인간이나 자연을 움직이고 운명 지운다는
신비주의적이고 신화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세계와 인간을 움직이는 근원적 원리가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다.

◆ 삼황오제를 누구로 볼 것인가?

▲ 신농 :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세 명의 황제 중 한 명으로 농경을 가르치고 약초를 찾아내 병을 다스렸다.

▲ 복희 :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세 명의 황제 중 한 명으로 팔괘(八卦, 만물을 상징하는 8개의 기호)를 만들고 그물을 발명해 어획과 수렵의 방법을 가르쳤다.

▲ 전욱 :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다섯 명의 제왕들 중 한 명으로 사려가 깊고 백성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천하를 잘 다스렸다.

▲ 제곡 : 고대 신화에 나오는 다섯 명의 제왕들 중 한 명으로 70년간 재위하며 시간과 절기를 관찰하는 방법을 농업에 응용했다.

삼황오제가 각각 누구인가는 문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확정된 정설이 없다. 삼황을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으로 보는 설도 있지만 수인燧人, 복희伏羲, 신농神農으로 보는 입장도 있고 오제를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당요唐堯, 우순虞舜으로 보기도 하지만 황제黃帝, 전욱顫頊, 제곡帝喾, 당요唐堯, 우순虞舜으로 보는 등 여러 가지 다른 설들이 있다. 학자들은 신화나 민간전승의 설화를 후대에 왕조의 계보와 맞추려고 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설이 나오게 되었다고 본다.

▲ 요임금
자연재해를 극복해 생산을 늘리고 객관적인 제도와 도덕성으로 나라를 다스린 중국 고대의 위대한 성인 중 한 사람이다.

▲ 순임금
이름난 효자로 요임금에게 발탁되어 천하를 다스렸다. 요임금과 함께 고대의 태평성대를 이끈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 순의 효심
순은 중국 역사상 가장 이름난 효자다. 순이 요임금의 인정을 받자 질투에 눈이 먼 순의 계모와 아버지, 그리고 동생은 여러 방법으로 순을 죽이려 한다. 지붕을 고치라고 해놓고는 사다리를 치우고 지붕에 불을 지른다거나 우물을 파도록 한 뒤 위에서 흙으로 덮어버리는 등 그들의 잔악함은 끝이 없었다. 그러나 순은 그 때마다 지혜로 위기를 모면했을 뿐 아니라 그들을 원망하지 않고 부모형제로서 극진히 섬겼다고 한다. 그는 이런 효성 때문에 요임금을 이어 천하를 다스리게 된다.

▲ 우임금
순임금에게 발탁되어 홍수를 막고 훗날 중국 최초의 국가인 '하나라'를 세운다.

◆ 우주의 근원인 상제
상제는 상上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하늘의 다른 표현이다. 동아시아인들에게 하늘天은 모든 생명의 시작이자 근원을 뜻한다. 만물을 낳는 생명의 근원인 셈이다. 고대인들은 하늘을 우주 전체의 근원적인 힘으로 여기고 종교적으로 숭배했다. 하늘을 우주 전체를 관장하는 궁극적이고 초월적인 힘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 주나라 무왕
문왕의 둘째 아들로 형이 은나라 주왕에게 피살되자 왕위에 올랐다. 동생 주공周公 단旦의 보좌를 받으며 주변 소국들을 연합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열었다.

◆ 하늘, 천하의 통치권을 주나라에 내려주다
《시경》은 주나라가 받은 천명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문왕이 백성의 임금이 되시니 하늘에 빛난다. 주는 비록 오래된 나라지만 하늘로부터 받은 명령은 오직 새롭다." (《시경詩經》<대아大雅>) 나라는 오래되었지만 '하늘로부터 받은 명령이 새롭다(기명유신其命維新).'는 말에서 '유신'이란 하늘이 보장하는 통치의 정당성이 새롭게 옮겨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주나라가 중원을 통치할 정당성을 하늘로부터 받았다는 뜻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천황 중심의 강한 통일국가를 형성하려 한 근대 일본의 사회 · 정치적 변혁을 명치유신明治維新이라고 불렀고, 과거 우리나라에서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군사정권이 권력 연장을 위해 헌법을 수정했을 때도 이를 유신維新헌법이라고 부른 것이다.

◆ 동아시아에서 공동체 의식이 강조되는 이유
농경 사회는 유목 사회와 달리 한곳에 많은 인구가 촌락을 이루어 함께 모여 살아야 한다. 농사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착 생활을 하는 인구가 점차 늘어나면서 가족을 중심으로 한 혈연 공동체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개인적이고 경쟁적으로 살기보다는 함께 협동하는 풍토가 형성되기 쉽다.

▲ 나루터를 묻고 있는 자로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일화로, 제자 자로가 공자를 모시고 길을 가다 농부에게 나루터를 묻는 장면이다. 이 일화에는 도道가 사라진 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좌절감과, 사명감을 굽힐 수 없는 공자의 심정이 서려 있다.

▲ ① 춘추 시대 국가들(위) ② 전국 시대 국가들(아래)
춘추 전국 시대는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로 구분되는데 기원전 770년~기원전 403년까지를 춘추 시대, 기원전 403년부터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는 기원전 221년까지를 전국 시대라고 한다. 춘추 시대에는 각 제후들이 자신의 세력과 영토를 넓히면서도 여전히 주나라 왕실의 권위를 존중한 반면 전국 시대에는 제후들이 주나라 왕실을 무시하고 스스로 왕이라 칭하며 권력을 차지하려 했다. 따라서 춘추 시대는 독자적인 세력을 가진 제후들이 수없이 난립해 많은 제후국들이 있었던 반면 전국 시대에는 비교적 강대한 나라들이 대립해 서로 권력 다툼을 벌였다.

◆ 유학의 다른 이름들
'유학'은 선진 시대, 말하자면 진秦나라 이전 시대에 활발했던 공자, 맹자 등의 학문 경향을 말한다. 이 말은 '유교儒敎', '유가儒家' 라는 단어와 바꿔 쓸 수 있다. 유가라는 말은 유학을 하는 학파라는 의미다. '가'라는 말은 학파라는 의미로 영어의 'school'과 비슷하다.세 단어 가운데 특히 우리에게는 유교라는 표현이 익숙하다. '유교 국가', '유교 문화권'과 같은 말이 그 예다. 그런데 유교라는 표현은 '교'라는 말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본래 동아시아 전통에서 '교'란 위대한 가르침이나 도리 혹은 학문 체계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 근대적이고 서양적인 의미의 '종교Religion'라는 개념만 남게 되었다. 물론 '유교'는 근대적 의미의 종교와는 다르다. 따라서 '유교=종교'라는 일방적 도식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 공자
유학의 창시자다. 최고의 덕을 인仁으로 보고 '극기복례克己復禮', 즉 "자기 자신을 이기고 예에 따르는 삶"을 살 것을 주장했다. 도덕적으로 각성한 군자가 사회를 경영하는 문명 국가를 꿈꾸었다.

◆ 공자에 대한 오해와 진실
공자만큼 극과 극의 평가를 받았던 사상가가 또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공자가 동아시아 문명의 상징이라면서 추앙하고 어떤 사람들은 동아시아 사회가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사회가 된 이유가 모두 공자 때문이라고 탓을 한다.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가장 먼저 철퇴를 맞은 것도 지배 계급의 이익을 위해 봉사했다는 비판을 받은 공자였고 유학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가장 먼저 복권된 인물도 공자였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이 땅의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고 한탄하는 사람들 중에는 공자가 다시 살아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고, 우리 사회의 정체성과 보수성을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들 중에는 공자가 죽어야 우리가 산다고 극단적으로 말하는 이들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극단적이거나 일면적인 평가가 공자 사상이 가진 한계와 가능성을 모두 덮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문화, 우리의 사유방식, 우리의 일상적 삶을 해석하고 이끌어나갈 중요한 지침뿐만 아니라 2천 년 넘게 동아시아 사회를 이끌었던 사상적 뿌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논어는 어떤 책?
《논어》는 공자가 죽은 뒤에 제자들이 스승에게 배운 것을 토론하고 그의 행적과 가르침을 바탕으로 사상적 핵심을 정리한 책이다. 공자와 그 제자들, 그리고 공자가 만났던 위정자들과의 대화편이라고 보아도 좋다. 공자와 그 제자들, 그리고 공자에게 정치적 자문을 구했던 위정자들 간의 살아있는 대화를 읽어나가다 보면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공자의 사명감과 자부심, 그리고 인간적 고뇌와 안타까움 등을 엿볼 수 있다. 고전으로서의 《논어》는 비록 오래되었지만 늘 새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굳어진 논설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대화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 주공周公과 노魯나라
공자의 고향인 노나라는 주왕조의 정치와 문화의 기초를 닦았다는 주공周公의 후예가 세운 나라다. 주공은 무왕의 동생으로 주나라 초기에 어린 조카 성왕을 대신해서 주나라의 제도적 기초를 마련하고 정치적 안정을 꾀한 다음 성成왕에게 권력을 넘겨준 인물이다. 이런 주공을 누구보다 존경했던 공자는 그가 활동할 당시 비록 약소국이었지만 주나라의 문화와 전통이 보존되어 있던 노나라에 강한 자부심을 느꼈다. 공자에게 국가를 평가하는 기준은 군사력이나 영토 등에서 얼마나 강한가가 아니라 그 나라 지배층이 얼마나 도리에 가까운가였다. 그러나 당시 천하를 호령하던 나라는 문명의 수준과 관계없이 군사력이나 생산력 등에서의 강대국이었다. 이런 약육강식의 정치 풍토에 공자는 강한 문제제기를 했던 것이다.

▲ 자공
춘추 시대 위나라의 유학자. 공자의 뛰어난 10명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언어에 뛰어났다. 제나라가 노나라를 치려고 할 때, 공자의 허락을 받고 오나라와 월나라를 설득하여 노나라를 구했다고 한다.

▲ 노자
중국 고대의 철학자로 도가道家의 창시자. 주나라의 쇠퇴를 한탄하고 서방西方으로 떠나는 도중 관문지기의 요청으로 《도덕경》상하上下 2편의 책을 써 주었다고 한다.

◆ 영역본만 250종이 넘는 《도덕경》
중국 사상가 가운데 노자만큼 현대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철학자도 없을 것이다. 《도덕경》은 동양에서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인기가 높다. 영어로 번역된 《도덕경》만 250여 종이 넘는다고 한다. 《도덕경》을 읽는 현대인들의 분야도 다양하다. 도가 철학에서 철학적 통찰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문학적 · 예술적 영감을 얻으려는 사람들도 많다. 그뿐만이 아니다. 현대 사회의 돌파구를 찾는 사람들도 《도덕경》을 읽는다. 이 가운데는 도가 사상이 현대 물리학의 핵심과 통한다고 보는 물리학자도 있고 노자의 사상을 심리학과 연관시켜 연구하는 학자도 있다. 이 밖에 환경이나 생태 문제, 여성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도가 철학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노자 철학에는 어떤 힘과 매력이 있는 게 분명하다.

◆ 도덕경은 교묘한 통치술에 불과한가?
어떤 사람들은 노자의 철학이 교묘한 통치술에 불과하다고 본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통치할까를 고민하는 위정자들에게 백성들을 어리제2부 세상을 바꾸는 각자各自의 길석게 만들고 욕심을 줄여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듯 자연스럽게 통치하는 무위의 정치는 대단히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였을 것이다. 노자 철학 안에 통치술의 측면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도덕경》안에는 제왕이 어떻게 정치해야 하는가에 대한 권고로 볼 수 있는 구절들이 많다. 중국의 황제들 가운데 4명이나 노자에 대한 주석서를 남겼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아마도 노자 철학에서 통치를 위한 기본적 지침과 방법론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자 철학 전체를 권력자를 위한 권모술수의 정치교본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노자가 제시한 통치 방법은 통치자 개인을 위한 방법이 아니라 사회적 안정을 위한 최소 정치의 지침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2부 세상 바꾸는 각자各自

양梁나라 혜왕이 맹자에게 묻는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사를 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까?"
"왕께서는 어찌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사를 강력하게 만드는 방법 즉 '이로움利'에 대해 물으십니까? 왕이 이로움을 구하면 대부들도 역시 어떻게 하면 자기 집안을 이롭게 할까 고민하고 선비들도 어떻게 하면 자기를 이롭게 할까 고민하게 됩니다.
이로움을 원하면 서로 싸우고 빼앗는 길로 가게 되지요.
왕이 따르실 길은 '이로움'이 아니라 바로 '인의'입니다."

▲ 장자
노자와 함께 도가를 대표하는 전국 시대 철학자다. 만물의 개별성과 상대성을 인정하고 자연의 변화에 따르는 삶을 살 것을 주장했다.

◆ 자유로운 변방의 철학
초나라는 천자의 나라였던 주나라로부터 문화적 · 정치적 구속을 덜 받았던 변방이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로운 사상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장자》안에도 주류 문화와 제도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 많다. 또 《장자》는 사변적이고 현학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사변적인 북방 문화와는 다른 남방 문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국 시대 유명한 시인 굴원도 초나라 사람으로, 그의 작품 《초사楚辭》는 남방 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 노자와 장자가 도가로 불리게 된 유래
장자는 노자와 함께 '도가道家'를 대표하는 철학자지만 장자가 적극적으로 노자를 계승하여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장자 사상의 분류로 여겨지는 내편에는 공자에 대한 언급은 있어도 노자에 대한 언급이 없는 등 노자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한 가지 근거다. 노자와 장자가 '도가'라는 이름으로 묶이게 된 것은 다양한 학문들이 정리되기 시작한 한나라 이후의 일이다. 도가라는 명칭이 처음 나온 것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였다. 사마천은 노자와 장자를 하나로 묶어 도가라고 불렀다. 그때부터 노자와 장자는 하나의 쌍처럼 노장 사상으로 불리거나 도가 사상으로 분류되었다.

◆ 장자 vs 맹자
장자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다른 철학자들도 장자와 마찬가지로 유한한 개인이 어떻게 수많은 갈등의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맹자도 장자처럼 유한한 개인을 중심에 두고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다만 이들 사이에는 초점과 방향이 달랐다. 맹자는 개인을 도덕적 자아로 선언하고 그러한 자아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지만 장자는 도덕적인 자아란 세상의 정해진 기준과 규칙에 속박된 존재라고 보았다. 개인의 삶이 어느 쪽을 향해야 하는가에서 두 사상가는 길을 달리한 것이다.

▲ 맹자
전국 시대 추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아 발전시켰다. 맹자는 인정仁政과 왕도 정치를 주장했다.

◆ 맹모삼천지교는 사실일까?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공부시키기 위해 세 번 이사를 갔다는 일화에서 유래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맹자》를 보면 맹자가 하급관리였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따라서 홀어머니가 어린 맹자를 어렵게 키웠다는 것은 맞지 않는 이야기다. 맹자 어머니의 일화는 《열녀전》이라는 한나라 때 유학자 유향劉向이 지은 책에 나오는 것인데, 이 책에는 민간에 떠도는 전설은 물론 유향 자신이 지어낸 내용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맹자 어머니의 이야기도 헌신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상을 만들기 위해 유향이 지어낸 것으로 보인다.

▲ 제자백가
춘추 전국 시대(기원전 8세기~기원전 3세기)에 활약한 학자와 학파의 총칭. 제자는 여러 선생을, 백가는 수많은 학파를 의미한다. 이는 당시에 수많은 학파와 학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사상과 학문을 펼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 합종연횡 그리고 종횡가는 무슨 뜻?
진나라가 가장 강성했을  때 주변 나라들 즉, 조趙 · 한韓 · 위魏 · 연燕 · 제齊 · 초楚 등 여섯 나라는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동맹을 맺었다. 이를 합종이라 한다. 이를 주도한 인물이 소진蘇秦이었다. 당연히 진나라는 이 동맹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 진나라는 여섯 국가의 동맹을 깨고 각각의 나라와 개별적인 협정을 맺었다. 이를 연횡이라고 한다. 연횡책을 주도한 이가 장의張儀였다. 소진과 장의는 한 스승 밑에서 함께 배운 사이로, 결과적으로는 장의의 연횡책에 의해 진나라가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게 된다. 소진과 장의를 비롯해 외교 정책과 진술을 연구한 이들을 '종횡가'라 부른다.

▲ 걸왕桀王
하나라의 마지막 군주로, 포악하고 사치스러워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대표적인 폭군으로 전해진다.

▲ 탕왕湯王
걸왕을 몰아내고 상나라를 세워 어진 정치를 펼쳤다고 한다.

◆ 정전제의 이상과 현실
정전제井田制는 하은주 삼대 시대에 시행되었다는 토지 제도로, 대토지를 보유한 귀족들이 나오기 시작한 춘추 전국 시대에는 이미 실현하기 어려운 이상적 제도에 불과했다. 백성을 위해 자기 땅을 내놓을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토지 문제는 당시 첨예한 갈등의 진원지였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도 좀 더 비옥한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맹자는 토지를 균증하게 분배해서 갈등의 씨앗을 없애고 백성들의 생계와 조세 문제를 모두 해결하자고 주장했지만 대부분의 토지를 거머쥐고 있었던 지배층에게 이런 주장이 쉽게 먹힐 리가 없었다.

▲ 묵자
전국 시대 제자백가 중 묵가의 대표적 인물이다. 전쟁을 반대하고 차별 없는 사랑을 주장하여 평화가 유지되는 공동체를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 《묵자》와《묵경》은 다른 책인가?
묵가의 사상적 배경을 이루는 것이 바로 묵가의 책 《묵자》다. 그런데 《묵자》는 묵자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다. 물론 짧은 시기에 이루어진 작품도 아니다. 《묵자》안에는 묵자 자신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글도 있고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기록한 것도 있다. 더 나아가 묵자 사후에 묵가 집단에서 정리해 놓은 것도 있다. 후기 묵가들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몇 편에는 독특하게도 논리학적인 사상이 담겨 있기 때문에, 보통 '겸애'로 대표되는 묵자의 사상과 성격이 구분된다. 그래서 <경상經上><경하經下> 등 6편을 따로 모아 '《묵경墨經》'이라 부르고 이를 묵자와 구별해 '별묵別墨의 작품'이라 구분하기도 한다. 《묵경》을 묵자 사상의 연속선상에서 파악할 것인가 아닌가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묵가 사사의 총괄적 성격을 갖는 결과물로 보는 경우가 많다.

◆ 전쟁터로 간 평화주의자들
묵가는 평화주의자들이었지만 그들 중 일부는 전쟁터를 떠나지 못했다. 더 큰 전쟁을 막기 위해 전쟁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묵가의 학자들은 전쟁 무기나 전술을 연구하고 직접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렇게 본다면 묵가들이 모든 전쟁을 반대하는 근본적 평화주의자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먼저 전쟁을 막기 위해 군주를 설득하고 실패하면 수비 위주로 전쟁에 참여해 전쟁의 피해를제3부 나를 넘어 최소로 줄이고자 했다. 이런 묵가의 수비 위주 <묵공>은 춘추 전국 시대 조나라의 10만 대군과 맞닥뜨린 인구 4천의 작은 성 '양성'을 위해 전쟁에 참가한 묵가의 지도자 '혁리'의 이야기로, 묵가가 활동하던 시대 상황과 묵가의 문제의식 등을 엿볼 수 있다.

제3부 넘어 깨달음 향해

아무나 성자는 아들에게 소금을 가져오게 한다.
"이 소금을 물에 넣고 내일 아침 다시 가져 오거라."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슈웨따께뚜는 소금물을 가지고 아버지 앞에 갔다.
"소금을 찾아보아라."
"소금이 녹아서 소금물이 되었으니 소금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소금을 맛보아라. 윗부분, 중간부분, 아랫부분의 물을 맛보아라."
"어느 부분이나 모두 짭니다."
"바로 그것이다. 물에 녹은 소금은 전혀 보이지 않지만 소금은 물의 모든 곳에 존재한다. 참된 존재 역시 볼 수 없지만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아뜨만이고 곧 너의 본질이다."

인도의 사상과 종교에 다가가기 위한 첫 번째 조건
인도인들에게 힌두교는 단순하게 종교만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고 문화며 인도인의 세계관이 축적된 사상 체계다. 그러나 힌두교에는 종교적 창시자도, 체계화되고 일관된 경전도 없다. 한 시대나 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천 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축적되어 왔기 때문에 그 어떤 사상 체계나 종교보다도 다양하고 상대적이다. 일면 모순적으로 보이는 힌두교 세계관 내의 비균질성, 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인도의 사강과 종교를 바라보는 첫 번째 조건이 될 것이다.

▲ 고타마 싯다르타
고대 인도의 종교 지도자로 불교의 창시자. 카필라국의 왕자로 태어났으나 왕위와 가족을 버리고 출가했다. 그 후 깨달음을 얻어 많은 사람들에게 평등과 자비의 정신을 가르쳤다.

◆ 불교 vs 힌두교
불교는 힌두교의 고대 형태인 브라만교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했다. 붓다는, 브라만교가 제의를 주관하는 사제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와 힌두교의 큰 차이 중 하나는 아뜨만을 인정하는가의 여부에 있다. 힌두교도 불교도 인생이 무상하며 집착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르러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힌두교가 아뜨만이라는 본질적 자아를 이야기한 데 비해 불교는 그 어떤 본잘적 자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 삼장법사는 누구?
삼장법사三藏法師는 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원래 인도에서 넘어와 불경을 한역하던 사람들을 일컫던 말이었다. 그러나 명나라 때 소설인 《서유기西柳記》에 불경을 한역한 것으로 유명한 당나라 시대의 현장(玄奬, 602~664)이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과 함께 불경을 구하러 서역으로 떠난 삼장법사로 소개된 후 현장을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 불교의 창시자는 노자?
전래 초기에 중국인들은 중화의식에서 비롯된 왜곡과 오해로 불교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왜곡의 예가 노자가 인도로 건너가 부처가 되었다는 '노자 화호설'이다. 중국 국경인 함곡관을 지난 노자가 인도에 도착해서 인도인들을 교화하고 부처가 되었다믄 것이 노자 화호설의 골자다. 이런 왜곡 또는 오해는 불교를 자신들의 전통 밑에 두고자 했던 중국인들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 한유
《맹자》를 높이고 불교를 배척하는 등 성리학의 학문 풍토를 만든 송나라 때의 사상가. 그가 개혁한 산문문체는 중국 산문문체의 표준이 될 정도로 문학에서도 공로를 세웠다.

◆ 불교의 오계 vs 유교의 오상
불교의 오계五戒는 속세에 있는 신자信者들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로, 살생하지 말라, 훔치지 말라, 음행淫行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 마시지 말라 등이다. 유교의 오상五常은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의 다섯 가지 덕목을 말한다.

▲ 구마라집
구자국(龜玆國, 오늘날 신장 쿠차에 속함) 출신으로 불교 사상가 겸 번역가. 401년 후진왕後秦王 요흥姚興에게 국사로 영접되어 경전 번역에 종사했다. 그의 유려한 역문 실력으로 당시 유행하던 반야般若 연구는 그 깊이를 더했고 《대지도론大智度論》등의 대승논부大乘論部도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 천태종과 지의智顗, 538~597
천태종은 화엄종과 더불어 중국 불교의 양대 산맥으로 인정받는 중요한 종파이다. 천태종이라는 이름은 창시자인 지의가 천태산을 기반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천태종은 우리에게도 친근하다.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대각국사 의천이 세운 종파가 바로 천태종이다. 의천은 당시 고려 사회의 문제였던 교敎와 선禪의 대립, 즉 이론을 중시하는 교종敎宗과 실천을 중시하는 선종禪宗 사이의 대립을 해소하고자 송나라에 유학해서 천태종의 가르침을 얻어왔던 것이다. 지의는 일찍부터 세파를 겪고 18세에 승려가 되기로 결심한다. 젊어서 불교의 진리를 깨달은 지의는 일찍부터 보통 사람들을 상대로 가르침을 편다. 지의가 활동한 수나라 때는 대중을 상대로 한 강연이 크게 유행했는데, 한번에 5천여 명이 지의의 설법을 들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지의는 이런 식의 대중 강연에 회의를 가졌던 것 같다. 제자가 많아질수록 부처의 진리를 깨닫는 사람의 수는 줄어든다고 느꼈던 지의는 결국 짐을 싸서 천태산에 들어가 수행과 집필에 전념한다.

▲ 대각국사 의천
고려 왕족 출신의 승려. 고려 중기에 5교로 나뉜 교종을 합쳐 새로운 천태종을 열었고 부처의 가르침과 선종의 참선을 아우르는 교관겸수를 주장했다.

▲ 법화경 그림
법화경 제2권의 변상도. 화면 오른쪽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른손을 들어 설법에 열중하고 있다. 그 주위를 아난과 가섭존자, 8대 보살, 그리고 사천왕이 에워싸고 그 앞에 청중들이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있다.

▲ 측천무후
당나라 고종 이치의 황후이며 중국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여 황제. 음탕하고 간악한 요녀라는 비난과 민생을 보살펴서 나라를 훌륭히 다스린 여걸이라는 칭송을 같이 받고 있다.

◆ 오악이란?
오악五岳의 개념은 중국의 오행사상五行思想에서 비롯되었으며, 오악에는 나라의 수호신이 거처한다고 믿어 성산으로 여겨 제사를 지냈다. 신라 때에는 토함산 · 계룡산 · 지리산 · 태백산과 부악(父岳, 지금의 팔공산)을 오악으로 삼았다.

▲ 김명국의 달마도
달마대사는 선종화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재의 인물로 손꼽힌다. 상반신의 옆모습을 포착했는데 달마대사는 두건을 쓰고 있다. 특히 팔자 눈썹, 부릅뜬 눈, 주먹 같은 메부리코, 짙은 콧수염과 구레나룻 등은 독특하고도 이국적인 풍취를 잘 드러내준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달마도를 그렸을까?
우리나라에서 달마도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고려 시대 중기부터라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은 없지만 공민왕도 직접 달마도를 그렸다고 한고 17세기 중엽부터는 스님들뿐 아니라 직업 화가들도 그렸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도 지금처럼 달마도가 유행했는지 풍속화로 유명한 김홍도도 달마도를 많이 그렸다고 한다. 이후 달마도의 인기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런 인기에는 불교 신앙 이외의 복잡다단한 기복적 요인들이 뒤섞여 있을 것이다.

▲ 10대 제자
부처의 많은 제자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10명의 제자. 각기 한 방면에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며 노장 가섭과 소장 아난이 대표적이다.

▲ 보조국사 지눌
선종의 가장 큰 종파인 조계종을 고려 불교의 중심으로 세운 고려 후기의 승려다. '내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임을 강조하며 불교의 수행과 이론을 통합하고자 했다.

◆ 중국화된 선禪, 조사선祖師禪
달마의 전통을 계승한 중국적 선을 조사선이라고 한다. 조祖란 부처의 마음의 근본을 밝혀서 실천과 앎이 완전히 합일되는 상태를 말한다. 부처의 교설에 근거한 실천을 강조하는 여래선과는 달리 조사선은 경전 속의 이론을 넘어서 온갖 언행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을 강조한다. 경전을 파격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물론 경전 자체를 부정하기까지 한다. 조사선으로서의 중국 선종은 나중에 일곱 가지 종파로 나뉜다. 다섯 종파와 다섯 종파 중 하나인 임제종에서 분화된 2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오가 칠종五家七宗이라고 부른다.

▲ 혜능이 방아 찧는 광경을 그린 <육조도정도六祖搗精圖>
혜능이 양자강을 건너 기주 황매黃梅의 빙무산으로 흥인대사를 찾아왔다. 대사가 혜능에게 물었다."너는 어디 사람인데 나를 찾아왔으며, 여기서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
"저는 영남 사람으로 신주의 백성입니다. 스님을 찾아온 것은 오직 부처가 되는 법을 구하기 위함입니다."
대사가 혜능을 질책하며 말했다.
"너는 영남 사람이고, 또한 오랑캐다. 어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사람에게는 남과 북이 있어도, 불성佛性에는 남과 북이 없습니다. 불성에 어찌 차별이 있겠습니까."
흥인대사가 한눈에 혜능의 사람됨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주변에 있으므로 혜능에게 방아 찧는 일을 하게 했다.

◆ 임제종과 도가사상
임제종은 임제의현(臨濟義玄, ?~866/867)이 세운 종파로, 선종에 끼친 도가 사상의 영향을 가장 분면하게 읽을 수 있는 종파이기도 하다. 구속 없는 자유를 추구하는 '무위진인' 등의 표현에서 장자의 영향이 확연히 드러난다. 임제종에서 강조한 '언어를 넘어선 직관의 세계'라는 구호 역시 '언어에 고착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장자 사상의 핵심과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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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