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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26. 20:39 내가 읽은 책들/2012년도
2012-009 조용헌의 사찰 기행

조용헌 지음
2005, 이가서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4103

226.911
조 656 사


그동안 한국의 절은 주로 미술사 쪽에서 많이 소개하였다. 탱화의 구도가 어떤가, 불상의 형태가 어떤가, 탑의 양식이 어떤가 등등. 미술사라고 하는 게 다분히 서구적인 시각에서 불교와 사찰을 보는 방식이다. 미술사를 통해서 이제까지 우리가 모르고 있던 부분들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시야도 확보하였다. 그러나 왠지 아쉬운 감이 있었다. 외부인이 갖는 한계라는 게 묻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 내부에서 절을 보던 시각은 소개되지 못한 감이 있다. 내부에서 보는 시각이란 천 년이 넘게 이 땅에서 절을 다니던 우리 조상들이 보던 시각을 말한다. 바깥이 있으면 안도 있는 법이다. 바깥을 돌았으니 이제 내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내부의 시각은 무엇인가.
절은 번뇌를 없애기 위한 장소이다. 거기에는 불교 사상이 있다. 절에서 종교적 영험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의 절에는 영험이 서려 있다. 어떤 절에서 도를 통하고, 어떤 절에서 병을 고쳤는가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절에는 풍수가 깔려 있다. 땅과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교감을 했는가는 절을 가 보면 안다. 영험이 어려 있는 사찰은 지령地靈이 깃들어 있다. 절에는 수천 년이 넘게 이어져 오던 우리 조상들의 민속 신앙이 숨어 있다. 산신이 있고, 칠성이 있고, 용왕이 있다. 절에는 역사가 있다. 천 년이 넘는 고찰마다에는 그 절마다의 독특한 역사가 들어 있다. 절에는 고승들의 행적이 배어 있다. 그 행적들을 추적하다 보면 나의 삶이 풍족해진다. 이 책은 이러한 부분들을 의식하고 썼다.
- 서문에서

조용헌

1961년 출생. 원광대학교 동양학 대학원 초빙교수. 불교민속학 전공.
지난 18년 동안 한 · 중 · 일 3국의 600여 개 사찰과 고택을 현장 답사함.
이 답사 과정에서 가산을 탕진하였으나, 그 대신에 강호의 수많은 기인, 달사들과 교류하면서 많은 이야깃거리를 장만하였다. 이 이야기를 밑천으로 하여 '강호동양학'이라는 장르를 개척하고 있는 중이다.
강호동양학의 구궁九宮은 유 · 불 · 선과 문 · 사 · 철이고, 그 다음에는 천문 · 지리 · 인사이다. 이 9개 과목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책을 집필 중이다.
저서로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方外之士』가 있다.

|차례|

서문

뜰 하나, 민중과 함께 흘린 눈물

선운산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과 비운의 동학혁명

선운산으로 들어가다
도솔암 배꼽에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상처는 치유되어야 한다

변산 불사의방
진표와 원효의 동상이몽
불가사의한 불사의방
불사의방에서 진표의 흔적을 찾다
몸을 던져 깨달음을 얻다

모악산 금산사
진표와 견훤의 눈물
모악산은 어머니의 산이다
미륵전이 역사를 가로지르다
미륵 신앙을 만나려면 금산사로 가야 한다

두승산 유선사
의상 대사가 나무를 심은 까닭

유선사의 회화나무
역사의 타임캡슐
황토현의 원혼들
유선사 삼존불

서방산 봉서사
진묵 대사의 은둔, 침묵의 저항
서산 대사와 진묵 대사의 선택
진묵, 민중 속으로 숨어들다
곡차를 좋아한 진묵

뜰 둘, 명당 혹은 하늘이 내린 고독

금강산 건봉사
만해의 발자국을 헤아리며 건봉사를 거닐다
터가 센 사찰을 좋아한 만해
사찰 마당을 가로지르는 물줄기
건봉사 불이문

북한산 승가사
북한산을 얻은 자가 천하를 얻는다
좌청룡 우백호
바위에 매달려 번뇌를 잊다
진흥왕의 발자취
승가사의 보름달

불령산 청암사
도선 국사를 춤추게 만든 명당
산으로 가는 사람들
도선이 찾아낸 천하의 명당

연암산 천장사
사찰 문에서 화살을 날리다
한국 선불교의 어머니 경허 선사
천장사 염궁문
경허의 제자들

뜰 셋, 토착 불교 혹은 상생과 조화

익산 미륵사
사찰에서 용의 비늘을 줍다
절터에 연못이 있는 까닭은
용이 드나들던 흔적
부처의 보디가드

미륵산 사자사
사자, 귀신을 물리치다
사자와 불교의 인연
미륵산엔 사자사가 있다

두승산 유선사
오른쪽엔 호랑이가 있다
절에 산신각이 있는 이유
호남의 삼신산

대둔산 안심사
산신은 주먹, 부처는 법
장군의 기상을 가진 대둔산
대둔산의 암자들
안심사 산신각

뜰 넷, 이유 있는 전설

승가산 흥복사
먹구렁이와 흥복의 사연
아내의 선행으로 목숨을 구하다
흥복사의 유래
흥복사를 찾는 이유

소요산 연기사
묏자리 잔혹극
연기 조사가 세운 연기사
명당을 둘러싼 암투
인과응보를 받은 전라 감사
물속에 가라앉은 연기사

지리산 칠불사
꿈의 선방 아자방
칠불사는 지리산에 있다
칠불사의 세 가지 비밀

뜰 다섯, 바다와 절

서해 망해사
노을에 던진 번뇌
좋은 사찰의 조건
바다를 바라보며 깨달음을 얻다
월명암 낙조대

임랑 묘관음사
바닷가 풍경 소리
바닷가 작은 절
파도 소리 바람 소리

동리산 태안사
냇물에 빠져 깨달음을 얻다
지혜가 깊었던 전강 스님
죽곡의 다리 위에서

뜰 여섯, 머리 깎고 스님이 되다

오대산 상원사
앉은 채로 육신을 벗은 한암 선사
오대산의 따스한 품
죽음의 미학

영구산 구암사
고고한 교학의 줄기
가난하고 초라한 그러나
지공 스님을 만나다

도봉산 망월사
육두문자의 달인 춘성 스님
도봉산 화강암
춘성이 남긴 일화들

수봉산 홍련암
선승의 매력
명산엔 명인이 있다
선문답
스승을 보면 제자를 안다

선운산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과 비운의 동학혁명
도솔암 마애불은 1500년 전에 살았던 검단 선사의 진상이다. 검단 선사는 선운사의 창시자이다.
그 미륵의 배꼽에는 신비스런 비결이 하나 숨겨져 있었다. 그러나 비결을 꺼내는 순간 벼락을 맞는다고 전해졌기 때문에 아무도 꺼내 보지 못했다. 세월은 흘렀다. 동학혁명이 일어나기 1년 전 1893년 가을, 동학도 300여 명이 도솔암 미륵불의 비결을 꺼내기 위해 도솔암으로 몰려갔다. 그들은 절실했다.
미륵불에 감춰져 있던 천고의 비결을 꺼냈다는 소문은 전라도 지역을 휩쓸었다.
3개월 뒤, 전주 감영으로 몰려간 양민의 수는 1만여 명이었다.

 

▲ 도솔암 마애불

▲ 선운사에 있는 도솔암 마애불. 지극히 민중적인 마애불로 한국 3대 마애불의 하나이다.

▲ 숲에 둘러싸인 도솔암 나한전. 스님이 쓸고 있는 것이 낙엽만은 아닐 게다.

▲ 도솔암 경내에 불자의 소망을 담은 연등들이 매달려 있다.

▲ 도솔암 마애불은 거대한 절벽에 새겨져 있다. 절벽 위에 도솔암 내궁원이 있다.

변산 불사의방

진표와 원효의 동상이몽

변산반도는 한국 불교의 성지이다. 특히 이곳에서 진표가 일으켜 세운 미륵 신앙은 한국 불교의 한 줄기를 이루어 왔다.
진표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깨달음을 얻은 곳이 변산의 불사의방이다.
일반인이 오르기 힘든 절벽 위에 있다. 바다의 용이 만든 불가사의한 공간이라고도 한다. 왜 하필 이곳이었을까?
변산반도는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대항해 최후까지 싸웠던 곳이다. 그들은 거의 몰살당했다. 변산반도엔 원효의 행적도 많이 보인다.
두 사람은 전쟁의 참혹함이 훑고 지나간 그곳에서 무엇을 했을까.


▲ 변산반도 불사의방 근처에 있는 개암사. 변산반도는 한국 불교의 메카이다.

▲ 벼랑 중간의 작은 터가 불사의방이 있던 자리이다. 아찔하고 아득하다.

▲ 내소사의 경내 모습.

▲ 변산 의상봉. 왜 우리 땅 도처의 명당자리엔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는지.

▲ 불사의방에서 내려다본 풍광. 진표는 이곳에서 대자연 말고 또 무엇을 보았을까.
모악산 금산사

진표와 견훤의 눈물

금산사 미륵전은 한국에서 가장 영험한 미륵 도량이다. 미륵을 만나려면 금산사로 가야 한다. 금산사 미륵전은 진표 율사가 변산의 불사의방에서 피를 토하는 수행 끝에 미륵불을 친견하고 돌아와 세운 한국 미륵 신앙의 본부이다.
이후 우리 역사에서 새 왕조를 세우거나 또는 제왕이 되고 싶은 사람들은 미륵 신앙을 찾았다. 견훤, 이성계, 정여립, 동학운동을 일으킨 민심이 모두 이곳에 닿아 있다. 후백제를 일으킨 견훤은 금산사에서 삼국 통일을 소원했지만 끝내 아들에 의해 금산사 지하실에 감금되는 비운을 겪는다.


▲ 금산사 경내의 모습. 천년 고찰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 금산사 미륵전. 원래 연못자리였는데 진표가 숯으로 메우고 미륵전을 지었다고 한다.

▲ 금산사 조사전에 모셔져 있는 진표 율사의 진영. 진표는 한국 미륵 신앙의 어머니다.

▲ 금산사 미륵전 안에 모셔져 있는 미륵불.

두승산 유선사

의상 대사가 나무를 심은 까닭

두승산 유선사엔 오래된 회화나무가 있다. 수백 년 수령의 나무이다. 오랜 풍상을 꿋꿋하게 견뎌 온 신목이다.
구전에 따르면 이 나무는 의상 대사가 심은 나무라고 한다. 신라의 의상 대사는 백제가 망한 직후인 1300년 전, 전라도 일대를 시찰하던 중 두승산에 올라 절터로 점찍으며 한 그루 한무를 심었다. 그는 왜 두승산에 올랐을까.
그리고 이곳에서 내려다본 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우뚝 솟아 있는 두승산. 연꽃봉우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 유선사 종각.

서방산 봉서사

진묵 대사의  은둔, 침묵의 저항

서방산 봉서사엔 조선 중기 임진왜란이라는 난세를 살았던 고승 진묵 대사의 행적이 남아 있다. 진묵은 우리 불교사에서  어른이었지만 소리 없이 살다 간 인물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 나라를 건진 서산 대사와 종종 비교된다.
서산은 현실에 참여함으로써 위대한 고승의 반열에 올랐고, 진묵은 민중 속으로 「은둔」함으로써 이름을 얻었다.
서산이 옳았을까, 진묵이 옳았을까. 색증시공으로 말하자면 서산은 색이었고, 진묵은 공이었을까.
과연 진묵은 현실과 역사를 외면한 승려였는가. 



▲ 서방산 봉서사의 대웅전. 서방은 '서방정토'를 뜻하고 봉서는 '봉황'을 뜻한다.

▲ 진묵 대사의 진영. 진묵은 조선 중기 서산대사와 쌍벽을 이룬 큰 스님이다.

▲ 봉서사에 모셔져 있는 나한. 널 다 안다는 듯. 얄미운 듯한 표정이 재미있다.

금강산 건봉사

만해의 발자국을 헤아리며 건봉사를 거닐다

금강산 자락, 민통선 안에 위치한 건봉사는 만해 한용운이 한때 머물렀던 절이다. 사람에게도 스타일이 있는 것처럼 절에도 스타일이 있다면 건봉사와 만해는 너무도 닮았다. 이 둘은 모두 풍운아였다. 건봉사는 한때 대사찰이었지만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이다. 그러나 집터에 남은 불가의 향기는 깊고도 진하다.
풍수로 풀어 보는 건봉사의 수수께끼들. 



▲ 건봉사 능파교.

▲ 건봉사 불이문 기둥에 새겨져 있는 금강저. 불도를 닦을 때 쓰는 도구이다.

북한산 승가사

북한산을 얻은 자가 천하를 얻는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북한산은 해동오악 중의 하나에 속한다. 북에는 백두산이, 동에는 금강산이, 서에는 묘향산이, 남에는 지리산이 있고 그 가운데에 북한산이 있다. 그만큼 북한산은 명산이다. 고구려 · 백제 · 신라는 북한산을 차지하기 위해 국운을 걸었다. 최종 승자는 신라였다. 국보 제33호인 진흥왕순수비는 이때 세워진 것이다.
북한산의 대표적인 사찰인 승가사엔 진흥왕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 북한산의 봉우리들.

▲ 북한산 비봉. 진흥왕순수비가 있었던 봉우리다.

▲ 승가사 108계단과 마애불. 불심에 다다르는 길은 끝이 없다.

▲ 승가사 대웅전. 절 마당에 서면 바위산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 승가사 석탑. 승가사는 신라 진흥왕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절이다.

불령산 청암사

도선 국사를 춤추게 만든 명당

도선 국사는 불령산에 오르는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상서로운 기운을 느끼길 며칠째, 마음이 비워지길 기다리면서 참아 온 산행이었다. 도선은 불령산의 험한 계곡을 지나 능선을 탔다. 목적지도 이정표도 없었다. 그저 오르기를 계속할 뿐, 산을 오른 지 두 식경쯤 지났을까, 막 능선을 벗어나 도선의 눈앞에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도선 국사는 체면도 잊은 채 어린애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렇게 세워진 절이 바로 수도암이다.


▲ 도선 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석주. 멀리 가야산 봉우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 대적광전에서 바라본 3층 석탑. 한참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탑인지, 탑이 나인지 알 수가 없다.

▲ 수도암에서 바라본 가야산 정상. 수줍은 거인 같기도 하고, 연꽃 봉우리 같기도 하다.

▲ 수도암 대적광전. 단아하면서도 장중하다.

▲ 대적광전에 모셔져 있는 석불. 석불이 표현하고 있는 수인手印은 '지권인'이다.

연암산 천장사

사찰 문에서 화살을 날리다

연암산 천장사엔 경허 선사의 체취가 남아 있다. 경허는 근대 한국 선불교의 어머니이다. 천장사 법당 앞에 서면 저 멀리 시골 풍경과 먼 산들이 눈 아래 들어 온다. 경허는 이곳에서 무엇을 했을까. 그는 활을 쏘고 있었다.
어떤 화살? 생각의 화살이다. 그래서 법당 앞을 지키는 문의 이름이 염궁문이다. 생각의 화살을 쏘는 문, 그 문에서 내가 던진 생각은 어디까지 날아갈 것이며 또 무엇을 맞히겠는가.

'염궁문' 경허 선사의 필체.

경허 선사의 진영.

연암산 천장사.

익산 미륵사

사찰에서 용의 비늘을 줍다

익산 미륵사는 한국 미륵 신앙의 발원지이다. 미륵사 터를 보면 원래 이 자리는 물이 차 있던 연못이었다. 미륵사뿐만 아니다.
경주 감은사와 황룡사, 양산 통도사 등도 물과 관련이 있는 절이다. 왜일까? 용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용을 숭배했다. 고대인들에게 용은 분명히 실존하는 영물이었다. 용과 부처는 어떻게 화해했을까.


▲ 미륵사지

▲ 미륵사 절터엔 주춧돌만 남아있다. 돌들은 또 무슨 생각으로 천년을 견디고 있을까.

미륵산 사자사

사자, 귀신을 물리치다

불교에서 사자는 귀신을 쫓는다. 무병을 치료하는 데 영험한 능력을 발휘한다. 일종의 퇴마사의 역할이다.
미륵산의 사자사는 이러한 무병 치료에 특히 효험이 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백제 무왕이 선화공주와 함께 지명 법사가 머무는 사자사를 방문하러 가던 도중 연못에서 미륵 삼존의 출현을 맞게 되었다는 대목이 있다. 1992년 사자암에서 「사자사師子寺」라고 새겨진 명문기와가 출토됨으로써 미륵산 사자암이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사자사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미륵산 사자사로 오르는 길. 이 길을 다 오르면 혹 천상이 아닐까.

사자사의 대웅전.

사자사 삼성각. 사자사는 백제 무왕의 사연이 얽혀있는 고찰로 밝혀졌다.

두승산 유선사

오른쪽엔 호랑이가 있다

두승산의 용머리에 올라타고 있는 유선사. 그 오른쪽 날개에는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다.
『스님. 호랑이를 만들어 놓고 정말로 효험은 보았습니까?』
『보았지요. 절에 우환이 없어졌습니다.』
『어떻게 저러한 호랑이 상을 만들어 놓을 생각을 내셨습니까?』
『선몽이 있었지요.』
『그 선몽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해 주십시요.』
『꿈 이야기를 자주해 버릇하면 사람이 천해집니다. 그쯤에서 짐작하시지요.』


두승산의 모습. 아슬아슬한 일곱 봉우리의 끝에 유선사가 자리하고 있다.

▲ 유선사. 유선사가 있는 두승산은 호남 삼신산의 하나이다.

대둔산 안심사

산신은 주먹, 부처는 법

대둔산은 장군들하고 인연이 많다. 현재 전해지는 달래 장군 터나 허둔 장군 터는 장군들이 공부하던 장소이다.
장군들은 이곳에서 마음과 몸을 닦았다. 그만큼 터가 센 곳이다. 터가 세다함은 기도발이 잘 먹힌다는 이야기이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이 있듯이 부처님이 「법」이라면 산신은 「주먹」에 비유된다. 산신도 등급에 따라 힘의 차이가 있다.
1급 산신은 높고 험한 바위산에 머무르면서 인정이 별로 없고 엄격한 반면, 2 · 3급 산신은 인정이 많아 쉽게 도와준다.
1급 산신은 인간들이 어지간히 기도해서는 들은 척도 안 한다. 그 대신 한번 도와주려 마음먹으면 크게 은혜를 베푼다.


▲ 안심사 사적비. 험산 준령 속에 자리 잡은 안심사는 기氣가 센 절이다.

▲ 대둔산의 풍채는 넉넉하고 다부진 장군을 닮았다.

▲ 안심사 감로수. 달다.

▲ 안심사 산신각.

승가산 흥복사

먹구렁이와 흥복의 사연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이라고 했지만, 한국 사람들의 심성으로는 「죄와 복」이다. 죄와 벌보다는 죄와 복을 문제 삼았다.
죄와 복의 함수관계는 무엇인가. 무엇이 이 둘 사이를 조절하는가. 바로 인과와 응보이다. 죄와 복에는 원인과 결과가 작용한다고 믿었다. 김제 만경의 너른 들판에 있는 절 흥복사에는 인과의 이치를 깨우쳐 주는 유명한 전설이 하나 전해져 온다.


▲ 흥복사. 죽다 살아난 못된 원님 흥복이 지은 절이라 하여 흥복사이다.

▲ 흥복사 미륵불과 대웅전. 미륵불의 짧은 몸통과 우직한 표정이 해학적이다.

▲ 흥복사 석탑. 석탑의 작고 둥그런 기단부가 색다르다.

소요산 연기사

묏자리 잔혹극

조선시대 풍수가 유행하면서 명당에 자리 잡은 수많은 절이 수난을 당했다. 사찰을 지키려는 승려 측과 이를 어떻게 해서든지 빼앗아 묏자리로 쓰려 하는 양반들 간에 밀고 당기는 공방전이 500 년간 계속되었다. 1630년대 전라 감사는 아버지의 묏자리를 쓰기 위해 절 하나를 완전히 파괴했다. 바로 고창의 연기사이다.


지리산 칠불사

꿈의 선방 아자방

동안거 중의 좌선이란 것은 방바닥에 때 묻히는 작업이다. 좌선이란 장시간 방바닥에 앉아 있어야만 하기에, 방바닥이 너무 뜨거워도 안 되고 차가워도 안 된다. 그런가 하면 좌선하는 사람이 불 때러 자주 아궁이에 들락거려도 분위기가 산만해지고 시간을 뺏긴다. 그러므로 한 번에 몽땅 불을 때 놓고 오랫동안 온기를 유지할 수 있는 온돌방이 좋은 선방이다.
칠불사 아자방은 한 번 군불을 때면 무려 49일 동안 온기가 남아 있다.

 


▲ 칠불사 입구에 있는 연못.

▲ 칠불사 아자방. 예전엔 한 번 불을 때면 49일간 온기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 칠불사 전경. 6 · 25 전쟁 때 폐허가 된 절을 통광 스님이 다시 지었다.

서해 망해사

노을에 던진 번뇌

망해사 마당은 바다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바라본 낙조는 장엄하고 붉다. 그 노을빛에 마음속 번뇌를 한 움큼 던져 본다.
바다는 말이 없고, 고깃배들은 갈 길을 간다. 이 풍경 앞에서 또한 침묵하고 있는 절이 망해사이다. 산중 사찰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는 바닷가 사찰, 그곳에선 바람도 불경이 된다.


▲ 망해사 전경. 소박하지만 심리적 여백이 느껴지는 조용한 절이다.

▲ 망해사 종각. 저 멀리 수평선 위에 종소리 몇 자락 올려 놓고 싶어진다.

▲ 월명암 전경. 능선의 넉넉함과 절의 고즈넉함이 한 폭 그림 같다.

▲ 월명암에서 바라본 변산의 풍광.

임랑 묘관음사

바닷가 풍경 소리

바닷가 사찰에서 느낄 수 있는 불심, 그것은 소리이다. 바닷가에 세워진 암자에 앉아서 창문으로 들리는 파도 소리를 듣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앉아서도 듣고, 누워서도 듣고, 밥 먹으면서도 듣는다.
밤이 되어 불을 끄고 이부자리를 펴고 누워 있을 때도 귓가로는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비몽사몽간에도 밖에서는 여전히 파도 소리가 들린다. 꿈속에서도 들린다. 이 경지를 불가에서는 「타성일편」, 즉 전체와 내가 하나가 되었다고 표현한다.
바로 관음의 경지이다.

▲ 묘관음사 길상선원과 대웅전. 남국의 정취가 느껴지는 사찰이다.

▲ 중국 남종선의 거두인 백장회해, 남천보원, 마조도일의 초상화.

▲ 향곡 스님의 진영. 향곡 스님은 성철 스님과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동리산 태안사

냇물에 빠져 깨달음을 얻다

전남 곡성군의 태안사로 들어가려면 섬진강 줄기의 하나인 냇물을 건너야 한다. 지금은 현대식 시멘트 다리이지만 옛날에는 징검다리였다. 상기중에 시달리던 전강은 이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발 아래로 흘러가는 냇물을 내려다보다 깨달음을 얻었다.
죽곡의 다리 위에서 흘러가는 냇물을 바라보며 「담담여수」의 경지를 궁리해 본다.


▲ 청화 스님이 조성해 놓은 인공 연못. 가운데 진신사리 3층 석탑이 있다.

▲ 태안사로 들어가는 계곡에 있는 능파각. 누각 아래로 계곡물이 흘러내린다.

오대산 상원사

앉은 채로 육신을 벗은 한암 선사

상원사의 한암 선사는 입적할 때 사진 한 장을 남기고 가셨다. 앉은 채로 턱을 약간 뒤로 젖히고 허공을 응시한 채 죽음을 맞이한 모습이다. 이 사진은 6 · 25전쟁 때 종군기자로 활동하던 선우휘 씨가 우연히 상원사에 들렀다가 선사께서 홀로 입적하여 계신 모습을 포착하여 찍은 것이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수도의 세계가 관념이 아닌 실존의 세계라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 준다.
선사는 죽음의 미학을 보여 준 것이다.

▲ 상원사 전경. 월정사와 함께 강원도를 대표하는 찰이다.

▲ 상원사 한암 선사의 좌탈입망을 담은 사진. 성보박물관에 있다.

▲ 한암 선사의 부도탑과 부도비.

▲ 상원사 동종.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이다.

▲ 상원사 영산전 앞 무명탑에 새겨진 불상.

영구산 구암사

고고한 교학의 줄기

구암사는 순창군 복흥면의 영구산 중턱에 있다. 구암사가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시기는 조선 후기의 대강백 설파와 그의 제자인 백파 때부터이다. 이후로 구암사는 조선 불교의 내노라하는 강맥을 배출하면서 명실상부한 교학의 중심지가 된다. 백파의 뒤를 이어 정관, 설두, 설유, 학명, 석전 그리고 최근의 운기 등의 강백이 배출되었다. 특히 석전 박한영의 밑에서 유명한 제자들이 배출되었다. 이광수, 최남선, 신석정, 조지훈, 서경보, 청담, 운허와 같은 인물들이 천재 스님 석전의 영향을 받았다.

▲ 추사 김정희가 비문을 쓴 비석. 원래 구암사에 있었는데 지금은 고창 선운사로 옮겨놓았다.

▲ 구암사 부도전. 백파, 설파, 정관 스님의 부도가 있다.

▲ 1920년대 구암사 전경. 한국 불교 교학敎學의 중심지였다.

도봉산 망월사

육두문자의 달인 춘성 스님

천하의 무애도인이자 걸승으로 일컬어지는 봄 춘자 춘성 스님. 그는 칼 대신 육두문자의 초식을 휘두른 해탈승이었다.
춘성 스님이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이 서울 근교 도봉산의 망월사이다. 원래 익산 미륵사에서 수행했으나 갑자기 경기 북쪽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사람이 그리워서이다. 한평생을 걸릴 것 없이 통쾌하게 살다 간 사람이 춘성 스님이다. 무외의 삶을 살다 간 사람.
내 자신 별 볼일 없이 초라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나는 춘성당을 생각하면서 힘을 얻는다.


▲ 도봉산은 우리나라 바위산을 대표하는 산이다. 기가 센 산이다.

▲ 도봉산 망월사의 입구. 좌측으로 동종이 보인다.

수봉산 홍련암

선승의 매력

선승의 매력은 어디에 있는가? 단숨함에 있다. 군더더기 없는 단순함이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에게 편안함을 주다가 어떤 때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한다. 선을 많이 한 스님일수록 단순하다. 배고프면 밥 먹고, 잠이 오면 자고, 일 없으면 앉아서 가만히 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선승이다.


▲ 비승비속, 비산비야의 내월리에 자리 잡은 홍련암. 그 절 참 정갈하다.

▲ 춘성 스님. 매사 거침없는 스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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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