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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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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7-2 오직 독서뿐

 

박지원朴趾源(1737~1805)

조선 후기의 문인, 실학자.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미중美仲 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이다. 과거 시험을 포기하고,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등과 함께 이른바 북학파의 리더 역할을 했다. 젊은 시절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고생했고, 한때 홍국영의 위해를 피해 황해도 금천군의 연암협에 은거햇다. 1780년 삼종형인 박명원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연행에 참여해서, 열하까지 다녀왔다. 그는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문장가였다. 그의 문장과 『열하일기』는 늘 뜨거운 쟁점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문체반정 당시 정조가 문체를 타락시킨 장본인으로 지목해 반성문 제출을 요구했을 만큼 당대의 문풍이 그의 영향 아래 있었다.

이 책에 실은 글은 그가 여러 척독에서 한 책 읽기에 관한 언급과, 선비의 몸가짐과 행동거지를 설명한 「원사原士」에서 간추렸다. 그의 글은 사유의 깊은 힘과 함께 생동하는 비유로 읽는 이의 의표를 찌른다. 사물에 대한 기호학적 사유와 인식론의 바탕 아래 펼쳐지는 묵직한 생각들이 음미할 만하다. 공부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자세는 일반적 내용인데도 간결하고 힘이 있다.

 

마을의 꼬맹이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는데, 읽기 싫어함을 야단치자 이렇게 말하더군요. “하늘을 보면 파랗기만 한데 하늘 천(天) 자는 푸르지가 않으니 그래서 읽기가 싫어요.” 이 아이의 총명함이 글자 만든 창힐(蒼頡)을 기죽일 만합니다.

里中孺子爲授千字文, 呵其厭讀, 曰 : "視天蒼蒼, 天字不碧, 是以厭耳." 此兒聰明, 餒煞蒼頡.

- 박지원(朴趾源), 『창애에게 답함(答蒼厓)』3

자네는 신령한 지각과 재빠른 깨달음으로 남에게 건방을 떨거나 사물을 업신여겨서는 안 되네. 저들이 만약 얼마간의 신령한 깨달음이 있다고 하세. 어찌 스스로 부끄럽지 않겠는가? 설령 신령한 깨달음이 없다 해도 건방 떨고 업신여김이 내게 이익 될 게 무어겠나. 우리는 냄새 나는 가죽 부대 속에 겨우 몇 글자 감싸 둔 것이 남보다 조금 많은 데 지나지 않다네. 저 매미는 나무에서 울고, 지렁이는 땅 구멍에서 울지. 이 또한 시 읊고 책 읽는 소리가 아닐 줄 어찌 알겠는가.

足下無以靈覺機悟, 驕人而蔑物. 彼若亦有一部靈悟, 豈不自羞, 若無靈覺, 驕蔑何益? 吾輩臭皮帒中, 裹得幾箇字, 不過稍多於人耳. 彼蟬噪於樹, 蚓嗚於竅, 亦安知非誦詩讀書之聲耶?

- 박지원(朴趾源), 「박제가에게(與楚幘)」

독서를 정밀하고 부지런히 하기로는 포희(庖犧)씨만 한 이가 없다. 그 정신과 뜻은 천지만물을 포괄 망라하고 만물에 흩어져 있다. 이것은 다만 글자로 쓰이지 않고 글로 되지 않은 글일 뿐이다. 후세에 독서를 부지런히 한다고 하는 자들은 거친 마음과 얕은 식견으로 마른 먹과 썩어 문드러진 종이 사이에 눈을 부비며 그 좀오줌과 쥐똥을 엮어 토론한다. 이는 이른바 술지게미와 묽은 술을 먹고 취해 죽겠다는 꼴이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저 허공 속을 울며 나는 것은 얼마나 살아 숨 쉬는가? 그런데 이를 적막하게 ‘조(鳥)’란 한 글자로 말살시켜 버리면, 빛깔도 볼 수 없고 그 모습과 소리도 찾을 수가 없다. 이 어찌 마을 제사에 나아가는 시골 늙은이의 지팡이 위에 새겨진 새와 다르겠는가. 어떤 이는 그것이 너무 평범하므로 산뜻하게 바꾼다 하여 ‘금(禽)’자로 바꾼다. 이것은 책 읽고 글 짓는 자의 잘못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푸른 나무 그늘진 뜨락에서 이따금 새가 지저귄다. 부채를 들어 책상을 치며 외쳐 말했다.

“이것은 내 날아가고 날아오는 글자이고, 서로 울고 서로 화답하는 글이로구나.”

오색 채색을 문장이라고 한다면 문장으로 이보다 나은 것은 없을 것이다.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

讀書精勤, 孰與庖犧? 其神精意態, 佈羅六合, 散在萬物, 是特不字不書之文耳. 後世號勤讀書者, 以麁心淺識, 蒿目於枯墨爛楮之間, 討掇其蟫溺鼠渤, 是所謂哺糟醨而醉欲死. 豈不哀哉! 彼空裡飛鳴, 何等生意? 而寂寞以一鳥字, 抹摋沒郤彩色, 遺落容聲, 奚异乎赴社邨翁杖頭之物耶? 或復嫌其道常, 思變輕淸, 換箇禽字, 此讀書作文者之過也. 朝起, 綠樹蔭庭, 時鳥鳴嚶. 擧扇拍案胡叫曰 : “是吾飛去飛來之字, 相鳴相和之書.” 五釆之謂文章, 則文章莫過於此. 今日僕讀書矣.

- 박지원, 「경지에게(答京之)」2

자네, 재주에 공손하고 부드러운 바탕을 갖추고, 총명하고 신중한 자질을 갖추었겠다, 게다가 나이는 젊고 기력은 굳세니, 어찌 문사(文詞)의 말단에다 그저 심력을 쏟고 실지도 없는 데다 시간을 함부로 쓴단 말인가? ‘독서궁리(讀書窮理)’, 즉 책 읽고 이치를 따진다는 네 글자는 늙은 서생의 진부한 얘기요, 남을 권면하는 상투적 얘기일 뿐이라네. 하지만 대저 지금 실지에 공력을 쏟고 본령을 목표로 삼는다면, 자연히 마음이 안정되고 기운이 돌아가 쉴 곳이 있게 될 걸세. 인의(仁義)를 깊이 이해하는 것은 잠깐 만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닐세. 신중히 따져서 분명하게 분별하는 것은 절로 차례가 있는 법이지. 그렇다면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이고 나을 지를 덮어놓고 논할 수는 없지 않겠나. 수명을 기르고 집안의 도리를 온전히 하는 것은 반드시 독서궁리란 네 글자가 큰 실마리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는 못할 걸세.

以子之才, 旣有溫恭豈弟之質, 兼之以聰明粹謹之資, 加以年富力强, 則豈可徒費心力於文詞之末, 枉用工夫於無實之地哉. 讀書竆理四字, 此是老生朽譚而勉人例語. 然大抵及今, 下工於實地, 究竟於本領, 則自然心有所底定, 氣有所歸宿矣. 仁精義熟, 非可造次, 愼思明辨, 自有次第, 則功效得失, 未可先論, 而其爲養壽命全家道, 則未必非此爲之大端也.

- 박지원(朴趾源), 「어떤 이에게(與人)」

옛사람 중에 책 읽기를 잘한 사람이 있는데 공명선(公明宣)이 바로 그 사람이다. 옛사람 중에 글을 잘 지은 이가 있으니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이 그 사람이다. 왜 그럴까? 공명선이 증자에게 배울 때 세 해 동안이나 책을 읽지 않자 증자가 그 까닭을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제가 선생님께서 가정에서 생활할 때 생활하시는 것을 보았고, 선생님께서 손님 접대하시는 것을 보았으며 선생님께서 조정에 처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배웠지만 아직 능히 하지 못합니다. 제가 어찌 감히 배우지도 않으면서 선생님의 문하에 있겠습니까?”

물을 등지고 진을 치는 것은 병법에 나오지 않는다. 여러 장수들이 승복하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그러자 한신이 말했다.

“이것은 병법에 있는 것인데, 제군들이 살피지 못한 것일 뿐이다. 병법에 ‘죽을 땅에 둔 뒤에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古之人有善讀書者, 公明宣是已. 古之人, 有善爲文者, 淮陰侯是已. 何者? 公明宣學於曾子 , 三年不讀書, 曾子問之, 對曰 : “宣見夫子之居庭, 見夫子之應賓客, 見夫子之居朝廷也. 學而未能. 宣安敢不學而處夫子之門乎?” 背水置陣, 不見於法, 諸將之不服固也. 乃淮陰侯則曰: “此在兵法, 顧諸君不察. 兵法不曰‘置之死地而後生乎?’”

- 박지원, 「초정집서(楚亭集序)」 중에서

그대가 사마천의 『사기』를 읽었다 하나, 글만 읽고 마음은 읽지 못했구려. 왜냐구요. 「항우본기」를 읽으면 제후들이 성벽 위에서 싸움 구경 하던 것이 생각나고, 「자객열전」을 읽으면 악사 고점리가 축(筑)을 치던 일이 떠오른다 했으니 말입니다. 이것은 늙은 서생의 진부한 말일 뿐이니, 또한 부뚜막 아래에서 숟가락 주웠다는 것과 무에 다르겠습니까. 아이가 나비 잡는 것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요. 앞발은 반쯤 꿇고 뒷발은 비스듬히 들고,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해 가지고 살금살금 다가가, 손은 잡았는가 싶었는데 나비는 호로록 날아가 버립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고, 계면쩍어 씩 웃다가 장차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이것이 사마천이 책을 저술할 때입니다.

足下讀太史公, 讀其書, 未甞讀其心耳. 何也? 讀項羽思壁上觀戰, 讀刺客, 思漸離擊筑. 此老生陳談, 亦何異於廚下拾匙? 見小兒捕蝶, 可以得馬遷之心矣. 前股半跽, 後脚斜翹, 丫指以前手, 猶然疑蝶則去矣. 四顧無人, 哦然而笑, 將羞將怒, 此馬遷著書時也.

- 박지원, 「경지에게 답하다(答京之 之三)」 중에서

군자의 아름다운 말도 간혹 뉘우침이 있음을 면치 못한다. 착한 행실도 때로 허물이 있을 수가 있다. 독서에 이르러서는 1년 내내 해도 뉘우칠 일이 없고, 백 사람이 말미암아도 허물이 없다. 명분과 법이 비록 훌륭해도 오래되면 폐단이 생긴다.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맛이 좋아도 많이 먹으면 해가 생긴다. 많을수록 더욱 유익하고, 오래되어도 폐단이 없는 것은 독서뿐이다.

君子嘉言, 或不免乎有悔, 善行, 或不免乎有咎. 至於讀書也, 終歲爲之而無悔, 百人由之而無咎. 名法雖好, 久則弊生, 芻豢雖美, 多則害生. 逾多而逾益, 彌久而無弊者, 其惟讀書乎!

- 박지원, 「원사(原士)」 중에서

어린이가 책을 읽으면 요망하게 되지 않는다. 늙은이가 책을 읽으면 노망이 들지 않는다. 귀해졌다 하여 변하지도 않고, 천해졌다 해서 멋대로 굴지도 않는다. 어진 자라고 넉넉한 법이 없고, 부족한 자에게 무익한 경우도 없다. 내가 집이 가난한데 독서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어도, 집이 부유해도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幼者讀書而不爲妖, 老者讀書而不爲耄. 貴而不替, 賤而不僭. 賢者不爲有餘, 不肖者不爲無益. 吾聞家貧好讀書, 未聞家富而好讀書者.

- 박지원, 「원사(原士)」 중에서

독서의 방법은 일과(日課)를 정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고, 질질 끄는 것보다 나쁜 것이 없다. 많이 읽으려고 욕심내지 말고, 속히 읽으려고도 하지 말라. 몇 줄을 읽을지 정하고 횟수를 정해 놓고 날마다 읽어 나가라. 뜻이 정밀해지고 의미가 또렷해지며, 음과 뜻이 익숙해져서 저절로 외워지면 그다음으로 넘어간다. 글자를 익숙하거나 쉽게 여기지 말고, 어렵거나 까다롭게 여겨서도 안 된다. 난삽해 하지도 말고, 읽다가 그만두거나 건너뛰지도 말라. 반드시 그 음을 바르게 읽고, 높낮이를 제대로 해야 한다. 소리가 입에 머물되 웅얼거려서는 안 되고, 눈으로 따라가되 그저 흘려보내도 안 된다. 몸을 흔들며 읽더라도 어지러우면 못쓴다. 눈썹을 찌푸리지 말고, 어깨를 잡지도 말고, 입을 쪽쪽 빨아도 안 된다.

讀書之法, 莫善於課, 莫不善於拕. 毋貪多, 無欲速. 定行限遍, 惟日之及, 旨精義明, 音濃意熟, 自然成誦. 乃第其次. 字毋習, 字毋易, 字毋蹶, 字毋滑, 字毋澁, 字毋倒, 字毋傍. 必正其音, 必得其高低. 口留而毋凝, 目送而毋流, 身搖而不亂. 眉毋皺, 肩毋搦, 口毋咂.

- 박지원, 「원사(原士)」 중에서

닭이 울면 일어나 눈을 감고 무릎을 꿇고 앉는다. 간밤에 읽었던 것을 복습해서 가만히 다시금 헤아려 본다. 뜻이 잘 통하지 않는 곳은 없는지, 의미가 분명치 않은 점은 없는지, 글자를 잘못 읽지는 않았는지를 마음에 점검해 보고 몸에 체득해 보아, 스스로 얻은 점이 있거든 기뻐하며 잊지 말아야 한다.

鷄鳴而起, 闔眼跪坐, 溫其宿誦, 潛復繹之. 其旨有未暢歟, 其義有未融歟, 字不訛歟, 驗之於心, 體之於身, 其有自得, 喜而不忘.

- 박지원, 「원사(原士)」 중에서

등불을 켜고 옷을 갖춰 입는다. 엄숙하고 공경스런 자세로 책상 앞에 앉는다. 이어 다음에 읽을 새 글을 묵묵히 침잠하여 살핀다. 몇 줄마다 단락을 끊고, 서산(書算)은 치워 딴 곳에 둔다. 잠심해서 훈고(訓詁)를 살피고, 주석과 풀이를 꼼꼼히 점검한다. 같고 다름을 검토하고, 음과 뜻을 환히 익힌다. 평온한 마음으로 뜻을 너그럽게 하되, 멋대로 천착하거나 억지로 의문을 내서는 안 된다. 모르는 부분이 있더라도 되풀이해서 살펴야지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點燈畢服, 肅敬對丌. 乃次新篇, 默而沈翫, 數行斷章. 闔算移置, 潛究訓詁, 細閱註疏, 辨其同異, 曉其音義. 平心恕意, 勿私鑿, 勿强疑, 其有不得者, 反覆之而勿置

- 박지원, 「원사(原士)」 중에서

무릇 선비는 아래로는 농부나 물건 만드는 사람과 나란하고, 위로는 왕공과 벗이 된다. 지위로는 차등이 없고, 덕으로는 우아한 일에 속한다. 한 선비가 책을 읽으면 은택이 사해에 미치고, 공덕이 만세에 드리운다. 『주역』은 이렇게 말한다.

“나타난 용이 밭에 있어 천하가 빛나고 밝다.”

독서한 선비를 두고 말한 것이다.

夫士下列農工, 上友王公. 以位則無等也, 以德則雅事也. 一士讀書, 澤及四海, 功垂萬世. 易曰 : "見龍在田, 天下文明." 其謂讀書之士乎!

- 박지원, 「원사(原士)」 중에서

선비 아닌 사람이 없지만 능히 바른 자가 드물다.

누구나 책을 읽지만 능히 잘하는 자는 드물다.

何莫非士也, 鮮有能雅者也, 孰不讀書也, 鮮有能善者也.

- 박지원, 「원사(原士)」 중에서

이른바 책을 잘 읽는다는 것은 소리가 좋다는 것이 아니다. 구두를 잘 뗀다는 것도 아니다. 뜻을 잘 풀이하고, 얘기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所謂善讀書者, 非善其聲音也, 非善其句讀也, 非善解其旨義也, 非善於談說也.

- 박지원, 「원사(原士)」 중에서

비록 효성스럽고 우애로우며 충성되고 신의 있는 사람이 있다 해도 책을 읽지 않으면 모두 사사로운 지혜로 천착한 것이다. 비록 권모와 지략과 경륜의 꾀가 있어도 책을 읽지 않으면 다 주먹구구로 맞춘 것이다. 이는 내가 말하는 우아한 선비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우아한 선비란 뜻은 어린아이 같고, 모습은 처녀와 같다. 1년 내내 문을 닫아걸고 책을 읽는다. 어린아이는 약하지만 사모함을 오로지 한다. 처녀는 수줍지만 지킴이 확고하다.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 사람에게 거리낄 것이 없음은 오직 문 닫고 책 읽는 것뿐이다.

雖有孝悌忠信之人, 非讀書, 皆私智鑿也, 雖有權畧經綸之術, 非讀書, 皆拳數中也, 非吾所謂雅士也. 吾所謂雅士者, 志如嬰兒, 貌若處子, 終年閉其戶而讀書也. 嬰兒雖弱, 其慕專也, 處子雖拙, 其守確也. 仰不愧天, 俯不怍人, 其惟閉戶而讀書乎!

- 박지원, 「원사(原士)」 중에서

책을 읽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글재주를 풍부하게 하려는 걸까? 글로 널리 기림을 받으려는 것인가? 강학하며 도를 논하는 것은 독서의 일이다. 효제충신(孝悌忠信)은 강학의 실지다. 예악형정(禮樂刑政)은 강학의 쓰임이다. 책을 읽고도 실용을 알지 못하는 것은 강학이라 할 수 없다. 강학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실용이다. 그저 고상하게 성명(性命)이나 얘기하고 이기(理氣)나 자세히 따지면서 저마다 자기 생각만 주장해서 굳이 하나로 돌아가게 한다면, 담론하고 분변하는 즈음에 혈기가 드러나, 이기를 겨우 분변한다 해도 성정이 먼저 어긋나고 만다. 이런 강학은 해롭다.

夫讀書者, 將以何爲也? 將以富文術乎? 將以博文譽乎? 講學論道, 讀書之事也. 孝悌忠信, 講學之實也, 禮樂刑政, 講學之用也. 讀書而不知實用者, 非講學也. 所貴乎講學者, 爲其實用也. 若復高談性命, 極辨理氣, 各主己見, 務欲歸一, 談辨之際, 血氣爲用, 理氣纔辨, 性情先乖. 此講學害之也.

- 박지원, 「원사(原士)」 중에서

책을 읽어 무언가 하려고 하는 것은 모두 사사로운 뜻이다. 1년 내내 책을 읽고도 배움이 나아가지 않는 것은 사사로운 뜻이 해치기 때문이다. 제자백가를 드나들고 경전(經傳)을 고증하고 근거를 찾아, 배운 것을 시험이나 하려 들고 공리(功利)를 다급하게 여겨 사사로운 뜻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독서가 해를 끼친 것이다.

讀書而求有爲者, 皆私意也. 終歲讀書而學不進者, 私意害之也. 出入百家, 攷據經傳, 欲試其所學, 急於功利, 不勝其私意者, 讀書害之也.

- 박지원, 「원사(原士)」 중에서

천착을 미워하는 것은 사사로운 뜻 때문이다. 바야흐로 천착할 때는 경전(經傳)으로 증거로 삼지 않음이 없다. 천착하다가 막히면 또 경전으로 이를 되짚어 보지 않음이 없다. 계속 되짚어 보다가 경전을 고치고 주석을 바꾼 뒤에야 마음이 시원해진다.

所惡於鑿者, 爲其私意也. 方其鑿也, 未甞不以經傳證之, 鑿而有窒, 又未甞不以經傳反之. 反之不已, 改經易註而後, 快於心.

- 박지원, 「원사(原士)」 중에서

군자가 죽을 때까지 하루도 그만둘 수 없는 것은 독서뿐이다. 그런 까닭에 선비가 하루만 글을 읽지 않으면 얼굴이 우아하지 않고, 말이 고아하지 않으며, 갈팡질팡 몸이 기댈 곳이 없고, 안절부절 마음 둘 곳이 없어진다. 바둑 장기 두고 술이나 마시는 것이 애초에 어찌 즐거워 한 것이겠는가?

君子終其身, 不可一日而廢者, 其惟讀書乎! 故士一日而不讀書, 面目不雅, 語言不雅, 倀倀乎身無所依, 伈伈乎心無所適. 博奕飮酒, 初豈樂爲哉?

- 박지원, 「원사(原士)」 중에서

자제가 오만 방탕해서 빈둥대며 멋대로 굴어 안 하는 짓이 없다가도 곁에 책 읽는 사람이 있으면 머쓱해서 일어나고 만다. 자제가 비록 총명하고 준수해도 독서를 싫어하지 않음이 없고, 부인네가 비록 농사를 짓더라도 책 읽는 소리 듣기를 기뻐하지 않음이 없다.

子弟敖宕, 閒居肆志, 無所不爲, 旁有讀書者, 憮然而作矣. 子弟雖聰明俊秀, 莫不厭其讀書, 雖婦人夏畦, 莫不喜聞其讀書.

- 박지원, 「원사(原士)」 중에서

 

이덕무李德懋(1741~1793)

조선 후기의 문인.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무관懋官, 호는 형암炯庵, 아정雅亭, 청장관靑莊館, 영처嬰處 등 여러 이름을 썼다. 폭넓은 독서를 바탕으로 한 해박한 식견과 정감 넘치는 개성적 문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 즉 책만 보는 바보라고 했을 만큼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한 차례 연행을 다녀왔고, 규장각 검서관으로 발탁되어, 정조의 큰 사랑을 받았다.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 등과 함께 사가四家로 병칭되었고, 네 사람의 시집 『한객건연집韓客巾衍集』이 중국에서 간행되었다. 저서에 『청장관전서』가 있다. 『도서집성』, 『국조보감』, 『대전회통』, 『규장각지』, 『홍문관지』, 『규장전운奎章全韻』 등 많은 서적의 정리 · 교감에 참여하였다.

『청장관전서』 중에 수록된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는 연암 박지원이 몇 차례 빌려 가서 참고하고 인용했을 만큼 알찬 내용이 가득하다. 또 아동을 위한 학습서로 지은 『사소절士小節』의 「교습敎習」 가운데 독서에 관한 내용을 이 책에서 간추렸다. 구체적인 예시와 생활의 경험에서 나온 실례를 많이 들어 적용에 도움이 된다. 특히 어린이 독서 교육에서 지침으로 삼을 만한 내용이 많다.

 

경(經)ㆍ사(史)ㆍ자(子)ㆍ집(集) 할 것 없이 첫 권은 색깔이 반드시 손때가 묻어 더럽다. 심지어 썩거나 떨어져 나가 읽기조차 어렵다. 비록 세월이 오래된 것이라도 둘째 권부터 마지막 권까지는 씻은 듯이 말끔하다. 나는 매번 세상 선비들이 오래 버티는 마음이 없는 것을 탄식하곤 한다. 무릇 책은 첫 권을 시험 삼아 읽을 때는 단단히 각오하고 읽을 것 같이 하다가, 오래잖아 게을러 싫증내고 포기해 버린다. 그래서 둘째 권 이하로는 눈길을 주거나 손길도 닿지 않는다. 그래서 첫 권과 끝 권의 새롭고 낡은 것이 완전히 다른 물건 같다.

쥐 오줌에 더럽혀지지 않으면 반드시 좀벌레의 배나 불린다. 서적이 재앙을 입음이 지극하다 하겠다. 또 근래 어떤 집에서 『비해(裨海)』란 책 한 질을 보았다. 모두 반질반질 해서 손이 한번도 닿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선실지(宣室志)』나 『유양잡조(酉陽雜俎)』, 『이문총록(異聞總錄)』 같은 책은 모두 기름 때가 묻고 손때에 절어 마치 굴뚝 속에서 꺼낸 것 같았다. 이 몇 종류의 책은 모두 귀신이나 꿈 이야기, 또는 괴상한 이야기를 기록해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반드시 여기에 힘을 쏟는다. 식견은 없으면서 경솔하게 기이한 것은 좋아하기 때문이다. 비록 잗단 일이기는 해도 내가 일찍이 개탄하였다.

無論經史子集, 首卷色必垢暗, 甚至敗剝不堪讀. 雖年久者, 自次卷以下至于末卷, 其新如拭. 余每嘆世儒無耐久心, 凡書嘗試讀首卷, 若可牢確者. 而匪久懶厭, 仍拋之. 自第二以下, 則未嘗轉眼觸手. 故首尾之新舊, 判爲異物. 不汚鼠溺, 則必資蠧飽, 書籍之困厄極矣. 且近見誰家稗海一帙, 皆赫赫若手未嘗觸者, 而獨宣室志, 酉陽雜俎, 異聞総錄等書, 皆油暈垢蝕, 若拔自烟窰中. 此數書, 盡說鬼譚夢, 記災錄異, 故人必力焉. 坐於無識見, 而徑好奇故也. 雖曰細薄, 余嘗慨恨.

- 이덕무,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중에서

사람은 각자 재능이 있는 곳에 마음을 쏟게 마련이다. 『사기(史記)』란 책이 있다고 치자. 똑같이 한번 읽어도, 경륜에 힘쓰는 자는 일의 성공과 실패,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지는 자취만 보고 나머지는 모른다. 문장에 힘쓰는 자는 문장을 구성하는 편장자구(篇章字句)의 방법만 살피고 나머지는 알지 못한다. 과거 공부를 하는 자는 기이한 구절로 대구 맞추는 대목만 찾아서 따오고 기교를 섭렵하는 것만 보고, 그 밖의 것은 아예 모른다. 이것은 아랫 길 중에서도 아랫 길이다. 그밖의 자집(子集)이나 소설책도 또한 모두 이와 같다. 비록 한 방면으로 통한다 해도 대가는 아니다. 큰 선비는 안목이 몹시 멀어 나란히 행하고 함께 나아가 조금도 군색한 데가 없다. 우뚝하고 기운찬 것이 마치 대를 쪼개거나 벽돌을 쌓는 것 같을 뿐이다.

人各於才之局處焉專心. 若以一部史記言之. 同一讀也, 務經綸者, 所見無非成敗治亂之跡, 其它不知也. 力文章者, 所見無非篇章字句之法, 其它不知也. 業科擧者, 所見無非尋摘奇偶, 涉獵奇巧, 尤不知其它也. 是下之下也. 一切子集稗家, 亦皆如此. 雖有一條之通, 而非大方也. 鴻儒則眼目甚長, 幷行齊進, 不少窘束. 磊磊落落, 如破竹建瓴耳.

- 이덕무,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중에서

군자가 한가롭게 지내며 일이 없을 때 책을 읽지 않고 다시 무엇을 하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작게는 쿨쿨 잠만 자거나 바둑이나 장기를 두고, 크게는 남을 비방하거나 재물과 여색에 힘쏟게 된다. 아아! 나는 무엇을 할까? 책을 읽을 뿐이다.

君子閑居無事, 不讀書, 復何爲? 不然, 小則昏睡博奕, 大則誚謗人物, 經營財色. 嗚呼! 吾何爲哉? 讀書而已.

- 이덕무,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중에서

독서는 정신을 기쁘게 함이 가장 좋고, 그 다음은 받아들여서 활용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해박해지는 것이다.

讀書者怡神爲上, 其次受用, 其次淹博.

- 이덕무,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중에서

근래 일과를 정해놓고 독서를 하다 보니 네 가지 유익한 점이 있음을 깨달았다. 이 유익한 점은 정밀하고 미묘한 내용을 널리 알게 된다거나, 옛 일에 대해 통달함, 뜻과 재주에 보탬이 된다는 것 등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첫째, 대략 배가 고플 때 책을 읽으면 소리가 배나 낭랑해져서, 담긴 뜻을 음미하느라 배고픈 줄도 모르게 된다. 둘째, 조금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기운이 소리를 따라 흐르고 돌아 몸 속이 편안해지니 추위를 잊기에 충분하다. 셋째, 이런저런 근심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이 글자에만 쏠려 마음이 이치와 하나가 된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넷째, 병으로 기침할 때 책을 읽으면, 기운이 시원스레 통해 아무 걸림이 없어져서 기침소리도 문득 멎는다. 덮지도 춥지도 않고 배고프지도 배부르지도 않으면 마음이 아주 화평해지고 몸도 건강하다. 여기에 더해 등불은 밝고 창은 환한데 훌륭한 책이 앞에 놓여 있고 책상과 자리가 깨끗하기까지 하다면 읽지 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하물며 뜻이 높고 재주가 뛰어난데다, 나이가 젊고 기운마저 굳센 사람이라면 책을 읽지 않고 다시 무엇을 하겠는가? 무릇 나의 동지들은 힘쓰고 힘쓸지어다.

近日覺日課讀書, 有四益. 廣博精微, 通達古昔, 資輔志才不與焉. 一, 畧略飢時讀, 聲倍朗潤, 味其理趣, 不覺其飢也. 二, 稍寒時讀, 氣隨聲而流轉, 軆內適暢, 足以忘寒. 三, 憂慮惱心時讀, 眼與字投, 心與理湊, 千思萬念, 有時消除. 四, 病咳時讀, 氣通不觸, 漱聲頓已也. 如其不暖不寒不飢不飽, 心地和悅, 軆幹康安, 加之以燈紅窓白, 書帙精覈, 几席明潔, 則可不勝其讀矣. 况兼之以志高才達, 年少氣健之子, 不讀復何爲哉? 凡吾同志, 勉之勉之.

- 이덕무,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중에서

날마다 아이에게 글을 가르친다. 일찍 일어나 마시고 먹은 뒤 책을 읽으면 입이 둔해 잘 읽지 못한다. 먹지 않고 읽으면 배나 매끄럽고 빨리 읽는다. 매번 시험해봐도 번번이 그랬다. 내 생각에 음식의 기운이 청명한 기운을 막아서 그런 것인가 싶다.

日授童子書, 早起飮啖而讀, 則口鈍不成讀, 不以則倍利快. 屢試屢然. 意食氣壅滯淸明之氣而然也.

- 이덕무,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중에서

지난번에 손님이 혀를 차며 말했다. “문 나서면 모두가 욕됨 뿐이고, 책을 펴면 부끄러움 아님이 없네.” 내가 말했다. “모두 명언이구려. 하지만 낱알 같이 작은 것에 마음을 모우고, 두터운 땅을 밟고도 빠질까봐 두려워하듯 한다면 무슨 욕됨이 있겠소? 비록 생각지 않은 욕됨이 있더라도 내 스스로 취한 것은 아니질 않소. 책을 읽되 매번 실천에 마음을 두어 뼛속까지 스며들게 하고, 바깥 사물의 일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면 무슨 부끄러움이 있겠소. 다만 날마다 조금이라도 부끄러운 점이 있다면 독서가 아니고는 사람이 되지 못하니 공부를 할 뿐이지요.”

往有客咄咄曰: “出門都是辱, 開卷無非羞.”余曰: “儘名言耳. 然撮心于粒, 踏厚地如恐陷, 則何辱之有? 雖有橫來之辱, 非吾自取也. 讀書每以宲踐爲心, 浹洽骨髓, 不爲皮膜以外物事, 則何羞之有? 但日以少有羞焉, 則非讀書也, 不成人也, 爲工夫耳.

- 이덕무,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중에서

“평소 가슴 속에 답답하게 쌓인 기운이 있으면 이따금 까닭 모를 슬픔이 일어나 답답해 한숨을 쉬게 된다네. 「이소(離騷)」와 「구변(九辨)」을 소리 내서 외우면 감촉됨이 몇 배나 더하지. 그래서 평상의 마음으로 돌아와 『논어』를 읽으면 그 기운이 반드시 가라앉곤 했는데, 이 같은 경험이 여러 차례였다네. 그제서야 성인의 기상이 천년 뒤에까지 객기를 이처럼 변화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내가 자못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네. 집안의 젊은이로 비분강개한 사람이 있었네. 밤중에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말이 육수부(陸秀夫)가 송나라 마지막 임금인 상흥제(祥興帝: 남송의 마지막 임금 조병(趙昺))를 업고 바다로 들어가던 일에 미쳤지. 집안 젊은이가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솟아 줄줄 흐르지 뭔가. 나 또한 한동안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네. 그래서 시험 삼아 『논어』 중 증점(曾點)이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쐬겠다고 한 대목을 소리내서 외우고 나서야 겨우 두 사람의 말과 웃음이 평소처럼 되더군.”

김회묵(金晦默)이 말했다.

“형의 말이 어쩌면 내 마음과 이다지도 꼭 같은가? 나 또한 이 같은 기운이 있다오. 매번 벌레가 울고 달이 환할 때가 되면 감격함이 깊어지곤 하지요. 지난 해에 북한산에 올라가 『논어』를 읽을 때였소. 눈 온 뒤에 동쪽 성문에 올랐지요. 첩첩한 묏부리가 우뚝 솟았는데 눈 빛이 눈에 어지러웠소. 뜻이 몹시 엄숙해지더니 갑자기 즐겁지가 않았더랬소. 급히 돌아와 『논어』를 읽자 그제야 겨우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더군요. 형의 말이 과연 그러하오. 예전 여백공(呂伯恭)도 기개가 넘쳐 굳세고 사나웠는데, 병중에 『논어』를 읽고는 비로소 기질을 변화했다더군요. 옛날부터도 이와 같았을 뿐입니다.”

余曰: “平日胸中, 有磈磊氣, 時時作無故之悲, 而噓唏之極. 誦離騷九辨, 尤感觸層疊. 平心讀論語. 其氣必按下, 如此者數. 始知聖人氣象, 千載之下, 能点化客氣如此也. 僕得效頗深. 宗人有年少而慷慨者, 與僕夜語, 語次到陸秀夫負宋帝入海事, 宗人淚忽湧于眼. 僕亦惻愴良久. 試誦曾點浴乎沂風乎舞雩章畢, 二人者始言笑自若也.” 希文曰: “兄言何其與余心甚合也. 僕亦有此氣. 每當蟲吟月白之時, 感激者深. 去年上北漢山中, 讀論語, 雪後登東城門. 疊嶂峨峨, 雪色眩眼. 意甚蕭然, 忽忽不樂. 急歸讀論語, 始帖然恬靜矣. 兄言果爾也. 昔呂伯恭多氣凌厲, 病中讀論語, 始變化氣質. 自古爾爾也.”

- 이덕무,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중에서

학동인 구씨(具氏)의 아들 궁기(宮其)에게 이렇게 훈계했다.

“네 나이가 올해로 벌써 열 다섯 살이다. 무릇 사람의 나이가 15, 16세가 되면 어른의 틀거지가 7,8분 이상 갖추어지게 된다. 하지만 지금 네 행동은 다닐 때는 차분하지 못하고, 앉으면 몸을 흔들어댄다. 말하고 웃을 때도 절제가 없다. 책 읽기는 몹시 거친데, 그마저도 싫어한다. 대저 총명은 지극히 정채롭고 꽃다운 것이다. 가령 총명이란 것에 귀신이 붙어 네가 꾸준히 부지런히 힘들게 공부하는 것을 보게 한다면 네 뜻을 어여쁘게 여겨 네 가슴 속에 찾아와 머물 것이다. 네가 만약 술 취한 사람처럼 경박하고 미친 사람처럼 게으르다면 비록 잠깐 네 가슴 속에 왔다가도 마땅히 네게 침을 뱉고 급히 날아서 떠나갈 것이다. 너는 뺨에 살이 붙고 눈이 우묵하데다 미간 마저 넓으니 무슨 일인들 할 수가 없겠느냐? 사람들이 혹 네 모습을 기이하게 여겨, ‘사람 됨이 저와 같으니 굶지는 않겠군.’이라고 칭찬한다고 하자. 네가 이 말을 자부해서 독서를 두 번째 일로 삼을 테냐? 비록 너로 하여금 옛날의 부자인 도주(陶朱)와 석숭(石崇)처럼 황금을 울타리 사이에 버릴 정도가 된다고 해도, 뱃속에 문자가 하나도 없다면 너를 마주하는 사람마다 반드시 비루하고 더럽게 여기는 마음이 더할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음에 좋겠느냐? 도주와 석숭인들 어찌 일찍이 책을 읽지 않았겠느냐? 내가 너를 아껴서 훈계하는 것이니, 너는 힘쓰도록 해라.”

誡學童具氏子宮其曰: “汝今年已十五歲矣. 大凡人子十五六歲時節, 長者田地已七八分作基. 今汝行不安詳, 坐則搖身, 言笑無節, 讀書甚麤且厭. 夫聦明至精英者也. 假使聦明有神, 見汝若勤苦不已, 憐其志而來栖於汝胷中矣. 汝若輕浮懈怠如醉夫如狂子. 雖暫栖於胷中, 當唾汝而急飛去矣. 汝豊頰深目, 眉間濶, 何事不可作也. 人或奇汝貌, 譽之曰: ‘爲人如彼, 終不餓也.’ 汝自負此言, 而以讀書爲第二件事耶? 雖使汝爲陶朱石崇, 黃金棄籓籬間, 腹中無一文字, 人人對汝, 必增鄙吝之心. 汝其安於意乎? 陶朱石崇, 何嘗不讀書乎. 吾愛汝而戒汝, 汝其勉矣.”

- 이덕무,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중에서

선비가 독서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말 한마디, 동작 하나에도 반드시 성현의 일과 행실과 훈계를 생각해서, 이를 끌어와 준칙으로 삼아 전도됨이 없게 하려 하기 때문이다. 속인은 한 글자도 읽지 않는지라 지향점을 찾지 못하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이런 것은 족히 말할 것도 못된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었다고 말하는 사람조차도 과거 시험 보는 글에다 배운 글귀를 써먹을 뿐, 제 몸에다가는 한번도 시험해서 그 효험을 보려들지 않는다. 몹시 슬픈 일이다. 또 어떤 사람은 고서를 여러 번 읽어 입만 열면 인용하고 끌어오는데 그 마음가짐을 살펴보면 비루하고 아첨 잘하며 교활하고 속임수를 잘 쓴다. 앞서 인용하여 끌어온 것은 단지 말을 꾸며대는 꺼리로 삼은 것일 뿐이다. 이같은 독서는 비록 많이 한다한들 무슨 보람이 있겠는가? 그런데도 책을 읽고서 부드럽게 아첨하는 자를 사람들은 누구나 아끼니 아, 답답하다.

士貴讀書者, 一言語一動作, 必思聖賢事行訓戒, 引以爲準則, 可無顚倒. 俗人不讀一字, 專無指向, 恣情而行. 此不足道. 至於素稱多讀書者, 專用章句於科擧之文, 自家身上不一試而受其驗效, 可哀之甚也. 亦或有熟讀古書, 言言引據, 考其心術, 則鄙諂狡詐, 向所引據, 只爲粉飾口角之資, 此等讀書雖多奚以哉? 讀書而軟媚者, 人莫不愛之, 噫!

- 이덕무, 『사소절(士小節)』 중 「교습(敎習)」중에서

말과 행동이 몸과 마음 위를 향해서 기대어 돌아오지 않는다면, 늙도록 그저 허공을 나꿔채는 격이 되고 만다. 모두 독서를 제대로 하지 못한 연유이니, 참으로 맹랑한 사람이다.

言論行事, 不向身心上依歸, 則到老只是拏攫虛空. 皆由於不善讀書, 眞孟浪人也.

- 이덕무, 『사소절(士小節)』 중 「교습(敎習)」중에서

하흠(賀欽)이 말했다.

“오늘날 독서하는 사람은 단지 믿지 않는다. 그래서 소득이 하나도 없다.”

賀欽曰 : “今人讀書者, 只是不信, 故一無所得.”

- 이덕무, 『사소절(士小節)』 중 「교습(敎習)」중에서

책을 읽고 몸을 닦음에 으뜸으로 삼을 표준이 없다면 보람을 얻기가 힘들다. 강학하여 배우고, 살펴 성찰하며, 머금어 함양하고, 밟아 실천에 옮긴다. 이 네 가지는 지행(知行)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니, 포괄하는 바가 대단히 넓다. 우암 송시열 선생께서 학문하는 방법이었다.

讀書修身, 若無宗準, 不足以見其效. 講學省察涵養踐履, 此於知行, 其爲目甚要, 而所包甚廣, 尤庵先生爲學之方也

- 이덕무, 『사소절(士小節)』 중 「교습(敎習)」중에서

용촌(榕村) 이광지(李光地)가 말했다. “‘입은 육예(六藝)의 글을 읊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손은 백가의 글을 들추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어떤 일에 대해 기록한 글은 반드시 그 요점을 드러내고, 주장을 엮은 것은 반드시 그 깊은 뜻을 이끌어낸다.’ 이것은 한유(韓愈)가 독서에 대해 직접 말한 것이다. 요점은 기사(紀事)와 찬언(纂言) 두 구절에 놓인다. 무릇 책은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는 것이 마침내 손으로 써보는 것만은 못하다. 대개 손이 움직이면 마음이 반드시 따라가게 마련이다. 스무 번을 보고 외운다 해도 한 차례 베껴 써보는 효과만 못하다. 하물며 반드시 그 요점을 드러내려면 일을 살핌에 자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깊은 뜻을 이끌어내려면 이치를 따져 생각함이 정밀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만약 이 속에서 다시금 능히 같고 다른 것을 고찰해서 옳고 그름을 갈라 판단하고, 의심나는 것을 직접 기록하고 변론을 덧붙인다면 앎이 더욱 깊어지고 마음을 붙임도 더욱 굳세게 될 것이다.”이상은 이광지가 자제에게 과제로 준 초서(鈔書)의 방법이다.

李榕村光地曰 : “口不絶吟於六藝之文, 手不停披於百家之篇. 紀事者, 必提其要, 纂言者, 必鉤其玄. 此文公自言讀書事也. 其要却在紀事纂言兩句. 凡書目過口過. 終不如手過. 盖手動則心必隨之, 雖覽誦二十遍, 不如鈔撮一次之功多也. 況必提其要, 則閱事不容不詳, 必鉤其玄, 則思理不容不精. 若此中, 更能考究同異, 剖斷是非, 而自記所疑, 附以辨論, 則濬知愈深, 着心愈牢矣.” 右榕村課子弟鈔書之法.

- 이덕무, 『사소절(士小節)』 중 「교습(敎習)」중에서

의심스런 일이나 의심나는 글자가 있거든 그 즉시 유서(類書)나 자서(字書)를 살펴 점검해 보아라.

有疑事疑字, 卽時考檢類書字書.

- 이덕무, 『사소절(士小節)』 중 「교습(敎習)」중에서

책을 읽다가 좋은 뜻을 알게 되면 반드시 함께 공부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알려주어 오히려 미치지 못할까 염려하는 듯이 해야 한다. 효효재(嘐嘐齋) 김용겸(金用謙) 공은 늙어 흰 머리가 되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여 게을리 하지 않았다. 총명한 젊은이를 만나기만 하면 반드시 흔쾌히 손수 쌓여있는 책을 뒤적여서 옛 사람의 아름다운 일과 뜻이 담긴 말을 찾아 읊조리며 강론하고, 너무너무 기뻐하며 당부해마지 않았다. 내가 한차례 뵐 적마다 빈손으로 갔다가 가득 채워 돌아오곤 했다. 농암 김창협과 삼연 김창흡의 남은 풍도를 볼 수가 있었다.

讀書識得好義, 必樂告同人, 猶恐不及. 嘐嘐齋金公老白首, 好學不倦. 每逢聰明年少, 必欣然手檢積書, 窮尋古人美事旨言, 諷詠講論, 媚媚不厭, 申申不已. 予每一謁, 虛往實歸, 農巖三淵, 遺風可挹.

- 이덕무, 『사소절(士小節)』 중 「교습(敎習)」중에서

책을 볼 때는 무엇보다 먼저 서문(序文)과 범례(凡例)를 보고, 누가 지었는지, 교정은 누가 본 것인지, 권수는 얼마나 되고 목록은 몇 조목이나 되는지를 살펴 체재를 구별해야 한다. 멋대로 어지럽게 읽고는 스스로 박학하다 여겨서는 안 된다.

看書, 先看序及凡例著書人參校人卷帙幾何, 目錄幾條, 別其體裁. 不可鹵莽胡亂, 自命博學.

- 이덕무, 『사소절(士小節)』 중 「교습(敎習)」중에서

책을 볼 때 손가락에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기지 말라. 손톱으로 줄을 긋지도 말라. 책장을 접어 보던 곳을 표시해도 안 된다. 책머리를 둘둘 말아도 안 된다. 책 표면을 문지르지도 말라. 땀난 손으로 받아 읽지도 말라. 책을 베지 말고, 팔꿈치로 괴어도 안 된다. 책 위에 술병을 얹어도 안 된다. 청소하는 곳에서 책을 펴지도 말아라. 책을 보며 졸다가 어깨나 다리 사이에 떨궈 접히게 해서도 안 된다. 책을 던지지도 말고, 등불 심지를 돋우거나 머리 긁던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겨서도 안 된다. 힘을 주어 사납게 책장을 넘기지도 말고, 먼지털이처럼 창과 벽에 휘둘러 쳐도 안 된다.

看書, 勿涎指揭葉, 勿以爪劃行, 勿摺葉以標方看, 勿捲書腦, 勿揉書面, 勿以汗手承而讀之, 勿枕書, 勿以肚凭書, 勿以書覆酒缸, 勿開書於掃塵處, 勿看書引睡, 墮摺於肩肱間, 勿擲書, 勿以挑燈搔首之指翻葉, 勿用力猛翻葉, 勿揮撲窓壁以拂塵也.

- 이덕무, 『사소절(士小節)』 중 「교습(敎習)」중에서

주명여(周明璵)가 말했다.

“책을 쌓아두기만 하고 읽지 않으면 또한 자리에다 하늘이 낸 물건을 마구 없애는 짓이다. 두루 보아 널리 섭렵하는 것은 여유롭게 노니는 것과 같다.”

왕승건(王僧虔)이 자식을 경계하여 말했다.

“예전에 역사에 뜻이 있어 『삼국지』를 가져다가 책상 머리에 1백 일이나 놓아 두었지만 대충대충 보아 넘겨 그 가리키는 뜻의 귀추를 분변하지 못했다. 온 종일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인 셈이다. 남은 네 속임에 넘어가지 않는다.”

황산곡(黃山谷)이 단돈례(檀敦禮)에게 대답했다.

“『한서(漢書)』는 읽기에 가장 좋다. 다만 권질의 차례에 따라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나가, 한 시대의 일이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이게 해야만 저자인 반고(班固)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사마온공(司馬溫公)이 말했다.

“배우는 자가 책을 읽을 때 능히 첫 권부터 마지막 권까지 다 읽고 나서 그만두는 경우가 적다.”

학사(學士) 하섭(何涉)은 책상 위를 보면 책이 다만 한 권 뿐이었다. 한 권을 끝까지 다 읽기 전에 다른 책을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왕구산(王緱山)은 책을 읽을 때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부지런히 교정을 보았다. 비록 수백 권 안에 있는 지극히 세밀한 풀이까지 한 글자도 허투루 보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독서란 입신(立身)과 비슷하다. 본말이 있어야만 하니, 구차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책장 위에 있는 책 몇 권을 잠깐만에 대충 들쳐보고 문득 싫증을 내서 던져 버린다면 거칠고 지리멸렬해져서 앞서 읽은 것은 잊어버리고, 뒤에 읽은 것은 놓치게 된다. 대체 학문에 무슨 도움을 받겠는가? 그저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놀다가 뜻을 잃게 되는 것일 뿐이다.”

周明璵曰 : “積書不讀, 亦座暴殄, 汎覽博涉, 等於漫遊.” 王僧虔戒子云 : “往年有意於史, 取三國誌, 置床頭百日, 復徒業, 曾未辨其指歸, 終日自欺欺人. 人不受汝欺也.” 山谷答檀敦禮 : “漢書最好讀. 然須依卷帙先後, 字字讀過, 使一代事, 參錯在胸中, 便爲不負班固”. 溫公言 : “ 學者于書, 少能從第一卷讀到卷末止.” 見何涉學士案上惟一書, 未終卷誓不他讀. 王緱山每讀書, 自首至尾, 吃吃丹鉛, 雖數百卷中苛細箋註, 不輕放一字, 曰 : “ 讀書與立身相似. 要須有本末, 非可苟而已也. 今架上數冊稍遊其藩, 輒厭倦棄去, 鹵莽滅裂, 忘前失後, 何曾受學問之益? 直玩物喪志耳.”

- 이덕무, 『사소절(士小節)』 중 「교습(敎習)」중에서

남의 집의 책을 점검해보니, 첫 권은 반드시 낡고 더러운데, 둘째 권부터 마지막 권까지는 손 한번 대지 않은 것처럼 깨끗했다. 선비의 뜻이 처음에는 부지런 하다가 나중에는 게을러짐을 알 수가 있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선생은 책을 남에게 빌려 주었다가 그 사람이 돌려줄 때 종이에 보프라기가 일지 않았으면 반드시 읽지 않은 것을 나무라며 다시 주곤 했으므로 그 사람이 읽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어떤 사람은 책을 빌려갔다가 읽지 않고는 꾸지람 듣는 것을 꺼려 책을 밟거나 그 위에 드러누워 낡고 더러워지게 한 다음에 돌려주기도 했다. 이는 특히나 어른의 후의를 알지 못하는 도리에 어긋난 행동이다.

檢人家書帙, 首卷必壞汗, 而自第二卷至于末卷, 新鮮若手未觸者, 士志之始勤而終怠, 可知也. 同春堂宋先生, 書籍借人, 人或還之, 而紙不生毛, 則必責其不讀, 更與之, 其人不得不讀之. 有一人借書不讀, 憚其呵責, 踏臥卷上, 使之壞汗, 始還之, 此又乖舛, 不知長者厚誼也.

- 이덕무, 『사소절(士小節)』 중 「교습(敎習)」중에서

어린이에게 글을 가르쳐 줄 때 한꺼번에 여러 줄씩 가르치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총명하고 민첩한 사람이 조금 읽고 금세 외우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둔한 사람에게 여러 줄을 가르치는 것은 약한 말에게 무거운 것을 지우는 것과 같다. 어찌 먼데까지 다다를 이치가 있겠는가? 글은 적은 분량을 익숙하게 읽어 뜻을 아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이처럼 한다면 비록 둔해서 잘 외우지 못해도 용서해주는 것이 옳다. 그저 여러 번 읽기만 하고 잘 외우지 못하면, 뜻을 더해 그 외우는 것을 감독하여 살피면 된다.

授小兒書, 切忌多行. 聰敏者, 少讀善誦, 不是好品, 使鈍者多行, 猶弱馬負重, 豈有致遠之理? 書貴少行熟讀知義. 若如此, 則雖鈍而不善誦, 怒之可也. 虛算而不善誦, 加意督察其誦, 可也.

- 이덕무, 『사소절(士小節)』 중 「교습(敎習)」중에서

어린이에게 글을 가르칠 때 번다하게 말하는 것을 가장 꺼린다. 모름지기 그 재주와 품성의 높고 낮음에 따라서 상세하거나 간략하게 풀이해 주어야 한다. 어린 아이가 어찌 묵직하고 안정됨이 있겠는가? 어리석고 약하지 않으면 반드시 번잡하거나 나부대게 마련이다. 높고 오묘한 문장의 뜻을 설명해 준다 해도 그저 하품하고 기지개를 켜면서 건성으로 네네 할 뿐이다. 벌떡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정과 의리 때문에 억지로 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전(傳)에서는 “중인 이하로는 상등의 것을 말해 줄 수가 없다”고 했다.

授小兒書, 煩言最是大忌. 須當隨其才品之高下, 詳畧解說. 小兒嘗有沈重安靜者哉? 非昏弱, 則必煩躁, 若說與高妙文義. 只欠伸唯唯而已. 有躍起之心, 情義以之阻隔. 傳曰, 中人以下不可以語上.

- 이덕무, 『사소절(士小節)』 중 「교습(敎習)」중에서

어른과 마주 앉아 가르침을 받을 때는 두 손을 모우고 바른 자세로 앉아 공경하여 듣고 자세히 여쭈어야 한다. 책 읽는 소리는 온화하면서도 나약해서는 안 된다. 맑되 촉급해서도 안 된다. 되풀이 해 읽지 말고, 중간에 끊어져도 안 된다. 시끄러워서도 안 되고, 안으로 삼켜도 안 된다. 거꾸로 읽거나 속여 읽지도 말아라. 글자를 빼먹고 읽거나 줄을 건너뛰며 읽어도 안 된다. 어지럽게 몸을 흔들거나 자주 고개를 돌려도 못 쓴다. 하품하고 기지개 켜거나 한숨 쉬고 기침을 해서도 안 된다. 강의를 들으면서 곁에서 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도 안 된다. 글자를 보면서 다른 일을 흘깃 거려도 안 된다. 무릇 책과 마주해 읽고 외우고 강의하고 질문할 때, 부채를 만지작거리거나 허리띠로 장난치고, 자리를 당기거나 버선을 매만지며, 손톱으로 가려운 데를 긁고, 건들건들 덜렁덜렁대지 않으면서 묻기를 거칠게 하고 듣기를 싫어하는 자를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對長者受敎, 拱手正坐, 敬聽詳問. 讀書之聲, 溫而無懦, 淸而無促, 勿複也勿絶也, 勿聒也勿吶也. 勿倒讀勿譌讀, 勿落字讀勿越行讀, 勿亂搖身勿頻回頭, 勿欠伸勿噫咳, 勿聽講而旁聽他言, 勿視字而偸視他事, 凡對書讀誦講問, 而不摩扇弄帶, 刮席撫襪, 爬癢剔甲, 搖搖浮浮, 麤問厭聽者, 未之見也.

- 이덕무, 『사소절(士小節)』 중 「교습(敎習)」중에서

책을 읽으면서 기운을 돋워 소리를 빨리 내면 듣는 자가 괴로울 뿐 아니라, 제가 먼저 싫증이 나서 계속하지 못한다.

讀書而盛氣疾聲, 不惟聽之者厭之, 先自厭而不之繼也.

- 이덕무, 『사소절(士小節)』 중 「교습(敎習)」중에서

군자는 책 읽는 틈틈이 울타리를 엮거나 담장을 쌓고, 뜨락을 쓸거나 거름을 쳐야 한다. 말을 먹이고 막힌 도랑을 치며, 방아 찧는 일도 때때로 한다면 근골이 단단해지고 뜻이 안정되게 할 수가 있다.

君子讀書之暇, 縛籬築牆. 掃庭除糞, 飼馬决渠, 舂米之事, 可時時爲之, 則筋骨堅而志慮定也.

- 이덕무, 『사소절(士小節)』 중 「사물(事物)」 중에서

 

홍석주洪奭周(1774~184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백成伯, 호는 연천淵泉. 명문가의 후예로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홍낙성洪樂性이다. 어려서부터 천재로 소문났고, 1795년 전강殿講에서 수석했다. 이조판서 등 여러 벼슬을 거쳐 대제학과 좌의정 등의 직임을 맡았다. 방대한 문집과 여러 저작을 남겼다. 저서에 『연천집』, 『학해學海』, 『동사세가東史世家』 등이 있고, 편서도 많다. 문간文簡의 시호를 받았다.

이 책에 인용한 글은 그의 독서 비망록이라 할  『학강산필鶴岡散筆』 중에서 독서 관련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선현의 아름다운 일화와 자신의 구체적 체험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소개했다. 깊은 학문의 바탕에서 울려나오는 가르침은 학문하는 마음가짐을 다잡게 하고, 수시로 자신의 공부를 점검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피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며 알차다.

 

세상 사람들은 늘 독서가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배움은 진실로 책을 읽지 않고는 안 된다. 하지만 독서란 배움의 한 가지 일일 뿐이다. 배움은 독서에만 그치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배우는 자가 도를 구하는 것에는 세 가지가 있다. 엄한 스승과 좋은 벗을 따라 날마다 그 가르침을 듣는 것이 첫 번째다. 옛 사람의 책을 읽는 것은 두 번째다. 길을 떠나 유람하면서 견문을 넓히는 것이 세 번째다.”

길을 떠나 유람하는 것은 배움에 있어 아무 상관이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선비로서 일의 변화를 여러 번 겪어보지 않아 뭇 사람의 정리에 통하지 않고서 능히 도를 이룰 수 있었던 사람은 없었고, 또한 천하의 큰 일을 능히 담당할 수 있었던 사람도 없었다. 이 같은 것들은 방 안에서 우두커니 앉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부터 문 닫아걸고 혼자 앉아 있었던 성인은 없었다.”

멋있는 말이다.

世恒以讀書者爲學. 學固不可以不讀書. 然讀書者, 學之一事, 學不止於讀書已也. 余嘗謂: “學者之所以求道, 其事有三. 從嚴師良友, 日聞其指誨, 一也; 讀古人之書, 二也; 行役游覽, 以博其聞見, 三也.” 行役游覽之於學, 宜若無所與也. 然士不更歷事變, 不通於衆人之情, 未有能造於道者, 亦未有能當天下之大事者也. 若是者, 非塊然於一室之所能得也. 朱夫子曰:“自古無關門獨坐底聖人.” 信哉!

- 홍석주, 『학강산필(鶴岡散筆)』 중에서

역천(櫟泉) 송명흠(宋明欽) 공은 일찍이 『논어』를 읽으면서 50번 읽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매번 읽을 때마다 반드시 책에 마음을 온전히 쏟았다. 비록 읽다가 마지막 장까지 이르렀더라도 한 가지 생각이라도 다른 것에 미치면 버려두고 읽은 횟수에 포함하지 않았다. 3년째에 이르러서야 겨우 숫자를 채웠다. 선배들이 책을 읽을 때 마음 닦는 공부의 정밀하고 엄격하기가 이와 같았다.

櫟泉宋文元公, 嘗讀論語, 以五十遍爲限. 每讀必專心於書. 雖讀至卒章, 若有一念及它, 則棄去不算. 至三歲始滿數. 前輩讀書治心之工, 其精且嚴如此.

- 홍석주, 『학강산필(鶴岡散筆)』 중에서

영조 때 경전을 외우는 강경(講經)의 제도를 엄격하게 시행했다. 대과(大科)와 소과(小科), 그리고 회시(會試)에서 모두 경전 한 권을 암송한 뒤에야 과거 시험을 볼 수 있었다. 과거 시험에 응시하는 자들이 이를 몹시 괴로워하여, 서로 모여 시끄럽게 떠들었다.

참판(參判) 이의철(李宜哲, 1703~1778)이 말했다.

“책을 외우는 데는 묘방이 있는데 제군들이 모르는구나.”

이의철은 당시 큰 선비로 받들어졌고, 더욱이 경전에 깊은 조예가 있었다. 여러 유생들이 그 말을 듣고는 그만의 비방이 있을 것으로 여겨 삼가 앞 다퉈 가르침을 청했다.

이의철이 말했다.

“오직 열심히 읽으면 된다네.”

여러 유생들이 모두 머쓱해져서 저도 몰래 웃고 말았다. 하지만 책을 외우는 묘방은 실로 이것 밖에 없다. 성인이 다시 세상에 온다고 해도 능히 바꿀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이 구양수(歐陽修)에게 글짓는 법을 물었다.

구양수가 대답했다.

“다른 방법은 없다네. 오직 부지런히 책을 읽고 많이 써보아야 하네.”

이의철의 말은 또한 구양수의 말과 같다.

英廟時, 嘗申嚴講經之制. 凡大小科會試, 皆背誦一經而後許赴. 應擧者多苦之, 方相與聒聒. 李參判宜哲曰:“誦書有竗方, 顧諸君未知耳.” 李公時方以宿儒見推, 尤邃於經. 諸生聞其語, 意其有獨得之秘也, 聳然爭請敎. 李公曰: “唯熟讀耳.” 諸生皆憮然失咲. 然誦書竗方, 實不外是, 聖人復起, 不能易也. 或問爲文于歐陽公. 公曰:“無它術, 唯勤讀書而多爲之耳.”李公之言, 亦歐陽子之言也. 李公, 陶庵李文正公之門人也.

- 홍석주, 『학강산필(鶴岡散筆)』 중에서

유안세(劉安世)가 말했다.

“집안의 자제가 일 년 내내 책을 읽지 않을망정, 단 하루라도 소인과 가까이하게 해서는 안 된다.”

주자께서 그 말에 맛이 있다고 지극히 칭찬하셨다. 사람이 책을 읽지 않으면 마음이 제멋대로 놀아 온갖 사특함이 그를 망치고 만다. 그 해로움이 실로 크다. 하지만 올해 책을 읽지 않더라도 내년에 읽을 수가 있다. 저 소인들은 아는 것은 적으면서 아첨하기를 좋아한다. 가져오는 것은 즐기며 놀 거리이고, 익숙한 것은 약삭빠르고 경박한 태도다. 어느 집안이고 아이들은 심지(心志)가 안정되지 않아 정욕이 싹트기 쉽다. 음란하고 문란한 말이 한 번 귀에 들어가면, 나중에 비록 엄한 스승과 좋은 벗이 아침저녁으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더라도 방법이 없다. 이른바 소인이란 반드시 크게 간사하고 교활하거나 잰 체하고 음험한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뒷골목의 시속을 따르는 무리로 제 입으로는 능히 사람을 아낀다면서 남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남의 수명을 해치는 자들이다. 이런 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아아!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劉元城言: “人家子弟, 寧可終歲不讀書, 不可一日近小人.” 朱夫子極稱其有味. 人不讀書, 則心放而百邪棄之, 其害固大矣. 然今歲不讀, 明年猶可及也. 彼小人者, 寡識而喜諛, 所進者玩好之具也, 所慣者儇薄之態也. 人家子弟, 心志未定, 情慾將萌. 淫媟之語, 一入其耳, 後雖有嚴師良友, 朝夕而先後之, 亦無及矣. 所謂小人者, 非必大奸巨猾包莊凶險之謂也. 委巷流俗之徒, 自謂能愛人, 而壞人心術, 戕人壽命者, 比比是也. 嗚呼! 可不懼哉?

- 홍석주, 『학강산필(鶴岡散筆)』 중에서

소동파가 만년에 어떤 사람에게 보낸 편지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제가 젊은 시절 옛 사람에 대해 의논하기를 즐겼습니다. 나이가 들어 세상의 이런저런 변화를 겪고 보니, 이따금씩 그 말이 과했던 것이 후회됩니다.”

참 진실한 말이다. 선현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평지 위에서 옛 사람의 득실을 점검하는 것은 아주 쉽다. 막상 일이 바로 앞에 닥치면 한없이 어려운 점이 있음은 알지 못한다.” 

대저 백 번 듣는 것은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곁에서 구경하는 것은 또 자신이 직접 당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자잘한 일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천하의 지극히 중요한 일을 맡고, 천하의 지극히 어려운 일을 감당하는 것이야 말할 것도 없다. 역사책에 실린 것은 열에 하나도 상세하지가 않다. 지금도 어떤 사람과 얼굴을 마주해서 얘기를 나눈 뒤 물러나와 전달할 때 능히 그 본뜻을 다 전달하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 하물며 천 년 백 년의 뒤에 짤막한 글에 남은 것을 주어 모아서 한 구절 한 글자의 사이에서 그 옳고 그름을 갈라 내는 것은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東坡晩年與人書, 有曰: “軾少時好議論古人, 旣老, 涉世更變, 往往悔其言之過.” 誠乎哉, 是言! 先賢有言: “吾輩從平地上, 點檢古人得失甚易, 不知事到手頭, 却有無限難處.” 夫百聞者, 不如一見. 傍觀者, 又與身親當之, 絶異. 細事猶然, 況任天下之至重, 當天下之至難者乎? 且史冊所載, 十不詳一. 今與人對面而譚, 退而傳之, 能盡其本意者, 或尠矣. 況由千百載之後, 掇拾於斷簡之所遺, 而剔抉其是非於一句一字之間, 不亦難乎?

- 홍석주, 『학강산필(鶴岡散筆)』 중에서

내가 평소 기억력이 부족해, 일찍이 1백여 번씩 읽었던 것도 몇 달 뒤에는 문득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어서는 점점 더 심해져서 사서삼경 외에는 능히 외울 수 있는 것이 없다. 오직 평생토록 연독(延篤, ?-167))의 「이문덕에게 주는 글[與李文德書]」만은 몹시 아꼈다. 십여 세 때 한번 보고 그 자리에서 외우고는 이제껏 50년이 되도록 한 글자도 잊은 적이 없다.

이제 그 핵심이 되는 말을 여기에 적어둔다. 그 글은 이렇다.

“내가 일찍이 동틀 무렵이면 머리를 빗고서 사랑채에 앉곤 했다. 아침에는 『주역』과 『서경』, 『주례(周禮)』와 『춘추』를 외웠다. 저녁에는 안채의 섬돌을 서성이고 남쪽 다락에서 시를 읊조리고, 백가(百家)와 여러 사람의 것도 틈틈이 익혔다. 아득히 귀에 가득하고, 찬란하게 눈에 넘쳐서 어질어질 기뻐하며 혼자 즐거워 하였다.이때에는 하늘이 덮어주고 땅이 받쳐주는 것도 몰랐고, 세상에 사람이 있는 줄도, 내게 몸뚱이가 있는 지조차도 알지 못했다. 비록 고봉(高鳳)이 책 읽다가 폭우가 쏟아지는 지도 모르고, 고점리(高漸離)가 축(筑)을 연주할 때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했다 해도 내게 견주면 댈 것도 아니었다. 또 스승을 모시고 공부한 뒤로는 자식으로서 불효에 빠지지 않았고, 신하로 불충에 떨어진 적도 없었다. 위 사람과 사귈 때는 아첨하지 않았고, 아래 사람과 사귈 때는 깔보지 않았다. 이제 죽어서 지하에 가 돌아가신 아버님과 먼 조상을 뵙더라도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가 있다. 이렇게 하고도 선에 머물지 않는 자는 예(羿)에게 활쏘기를 가르치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연독의 자는 숙견(叔堅)이니, 후한 때 사람이다.

余素短記性, 雖曾讀百餘遍者, 數月之後, 輒多遺忘. 旣老愈益甚, 自三經四書以外, 無復能成誦者. 唯平生酷愛延篤與李文德書. 自十餘歲, 一覽卽誦, 至今五十年, 未嘗忘一字也. 今記其要語于此. 曰:

“吾嘗昧爽櫛縱, 坐於客堂. 朝則誦羲文之易, 虞夏之典, 歷姬公之典禮, 覽仲尼之春秋. 夕則逍搖內階, 詠詩南軒, 百家衆氏, 投間而作. 洋洋乎其盈耳也, 煥爛乎其溢目也, 紛紛欣欣兮其獨樂也. 當此之時, 不知天之爲蓋, 地之爲輿, 不知世之有人, 己之有軀也. 雖高鳳讀書, 不知暴雨, 漸離擊筑, 傍若無人, 方之於僕, 未足況也. 且吾自束修以來, 爲人子不陷於不孝, 爲人臣不陷於不忠. 上交不諂, 下交不瀆. 從此以後, 下見先君遠祖, 可不慚赧. 如此而不以善止者, 恐如敎羿射者也.”

篤字叔堅, 後漢人也.

- 홍석주, 『학강산필(鶴岡散筆)』 중에서

제갈량(諸葛亮)은 책을 볼 때 큰 뜻만 살폈다. 도연명은 독서를 좋아했으나 깊은 이해를 구하지 않았다. 한유는 자신의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아(爾雅)』는 벌레와 고기 이름을 풀이했으니, 틀림없이 통 큰 사람이 아닐 것이다.”

예로부터 호걸의 선비는 사물의 이름을 따지고 풀이하여 고증하는 따위의 자질구레한 것에는 마음을 쏟지 않았다. 하지만 학문의 길은 정밀하고 거친 것을 따지지 않는다. 공자께서 사람들에게 시를 배우게 하시면서 또한 초목과 조수의 이름을 빼놓지 않으셨다. 후대의 배우는 자가 한 시대를 호령한 옛사람의 재주도 없으면서, 문득 앞의 몇 분의 주장을 구실로 삼으려 드니 또한 망령됨을 면치 못한다. 나 같은 사람은 흰 머리가 되도록 책벌레로 살았지만 조금도 아는 것이 없다. 한두 차례 붓을 끼적인 것 또한 서당 학동들의 질문에 대답하기에도 부족하다. 잠시 남겨 두고 없애지 않는 것은 나의 못남을 기록해 두려는 것뿐이다.

諸葛武后觀書, 獨觀其大義, 陶元亮好讀書, 不求甚解. 韓退之詩曰: “爾雅註蟲魚, 定非磊落人.” 自古豪傑之士, 固未有溺心于名物訓詁之瑣細者也. 然學問之道, 不遺精粗. 孔子敎人學詩, 亦不廢草木鳥獸之名. 後之學者無古人命世之才, 而遽欲藉口於數公之說, 亦不免鹵莽之歸矣. 若余者白首蠹書, 曾無一斑之窺, 而一二拈筆, 亦不足備塾蒙之問難. 姑存而弗去, 適以志吾媿耳.

- 홍석주, 『학강산필(鶴岡散筆)』 중에서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종일 배불리 먹고서도 마음 쓰는 곳이 없다면 딱한 노릇이다. 장기나 바둑이 있지 않은가? 이것이라도 하는 것이 아무것도 않는 것보단 낫다.”

선유(先儒)가 말했다.

“성인께서 사람들에게 장기나 바둑을 가르치신 게 아니다. 다만 마음 쏟는 바가 없는 것이 해로움을 강조해서 말씀하신 것일 뿐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성인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바르고 공평해서 폐단이 없다. 누르고 올림에도 지나친 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 말을 바둑이나 장기 두는 무리에게 듣게 한다면 어찌 핑계거리가 되기에 충분치 않겠는가? 대저 공자의 시대에는 후세와 같은 도박의 풍조는 없었다. 학문의 길은 방심을 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 바둑이나 장기는 마음을 쏟고 뜻을 다하지 않고는 이길 방법이 없다. 이 또한 방심을 구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옛날에 이른바 노름이란 것도 이제 와서 고증할 길은 없지만, 내 생각에 또한 마땅히 법도와 형상이 담긴 바가 있어서 오늘날처럼 떠들썩 다투며 빼앗느라 위의를 상실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춘추시대에 지금의 마조(馬弔) 놀이 같은 것이 있었다면 성인께서 어찌 이런 가르침을 내리셨겠는가? 그래서 나는 말한다. 책을 읽어 뜻을 풀이하는 것은 그 시대를 먼저 살피지 않을 수 없다고.

孔子曰: “飽食終日, 無所用心, 難矣哉! 不有博奕者乎? 爲之猶賢乎已.” 先儒謂: “聖人非敎人博奕也, 特甚言無所用心之害耳.” 愚謂: 聖人立言, 平正無弊, 未嘗有過於抑揚者, 斯言也, 使博奕之徒得之, 豈不足以藉口乎? 蓋夫子之時, 未嘗有後世賭博之風也. 爲學之道, 莫先於求其放心. 奕碁者, 不專心致志, 則無繇取勝, 是亦求放之一術也. 古所謂博, 今不可攷, 意亦當有法象所寓, 而不至如今世之喧鬨爭奪, 喪其威儀者. 若使春秋之時, 有如今馬弔之戱者, 聖人寧有是訓耶? 愚故曰: 讀書解義者, 不可不先考其時也.

- 홍석주, 『학강산필(鶴岡散筆)』 중에서

학문의 방법은 방심, 즉 흐트러진 마음을 구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눈을 감고 오도카니 앉아 오로지 흐트러진 마음을 구하려고만 들면 타고난 자질이 높은 사람의 경우 불교의 좌선(坐禪)이나 도가(道家)의 수신(守神)에 그칠 뿐이다. 그만 못한 사람은 도리어 마음의 병을 얻는 빌미가 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옛날의 군자는 가만히 있을 때는 시서(詩書)와 서책을 공부했고, 움직일 때는 금슬(琴瑟)과 활쏘기, 말 타기 등을 익혔다. 용모를 바로하고 절도를 삼가서 밖으로 드러난 모습을 절제했다. 욕심을 막고 정신을 집중해서 내면을 길렀다. 생각이 없을 수야 없지만, 생각하면 반드시 한 가지에 몰두했다. 일도 늘 있게 마련이지만, 일처리는 한결같음을 주로 했다. 이런 몸가짐을 지녀 오래도록 잊지도 않고 억지로 조장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하면서도 그 마음을 보존하지 못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있지 않았다.

주자(朱子)가 말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거처에서는 공손히 하고, 일 처리는 신중히 하며, 남을 대할 때는 성실로 하라’는 것이야 말로 마음을 보존하는 방법이다.”

또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흐트러진 것을 알아 이를 구하려 한다면 마음은 이미 흐트러진 것이 아니다.” 또 말했다. “3백 가지나 되는 예의(禮儀)와 3천 가지의 위의(威儀)가 모두 마음을 보존하고 기르는 것이다.”

이를 안다면 이단에 흐르지 않을 수 있다. 이를 안다면 또한 마음의 병을 근심하지 않을 수 있다.

學問之道, 求其放心而已矣. 然閉目兀坐, 而唯放心之是求, 則天資高者, 爲釋氏之坐禪, 道家之守神而已, 其下者, 鮮不反祟其心疾. 古之君子, 居則有詩書簡策之講, 動則有琴瑟射御之習. 正容謹節, 以制其外. 遏欲專精, 以養其內. 未嘗無思也, 思必致乎一. 未嘗無事也, 事必主乎一. 持之以久, 勿忘勿助. 如是而心不存者, 未之有也. 朱子曰:“孔子言, ‘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便是存心之法”. 又曰: “知其放而欲求之, 則心已不放矣”. 又曰: “禮儀三百, 威儀三千, 皆是涵養也”. 知此則可以不流乎異端矣. 知此則亦可以無憂乎心疾矣.

- 홍석주, 『학강산필(鶴岡散筆)』 중에서

범중엄(范仲淹)이 말했다.

“나는 밤에 잠자리에 들 때, 스스로 하루 동안 먹고 마시고 봉양한 비용을 헤아려 본다. 내가 한 일과 걸맞으면 코를 골며 달게 잔다. 그렇지 않으면 저녁 내내 편안할 수가 없다.”

『국어(國語)』에 경강(敬姜)의 말이 실려 있다.

“밤에 허물을 헤아려 찜찜함이 없은 뒤라야 편안하다.”

옛날의 군자는 비록 밤중에 잠자는 중에도 스스로를 다스리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나는 젊어서 잠자리에 들 때마다 삿되고 망령되며 바르지 않은 생각이 뒤죽박죽 일어나곤 했다. 비록 억지로 제어하려 해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문득 옛글을 가만히 외워서 이겨 내곤 했다. 근래에는 정신과 기운이 멍해져서 누웠다 하면 잠이 들어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 잠깐씩 깨면 그 틈을 타고 딴 생각이 싹터 남을 면치 못한다. 옛사람의 말을 생각하면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적이 없다.

范文正公言: “吾遇夜就寢, 自計一日飮食奉養之費, 與所爲之事, 相稱則鼾鼻酣寢. 不然則終夕不能安.” 國語載敬姜之言曰: “夜以計過無憾, 而後安.” 古之君子, 雖在宵寐之中, 未有弛其自治之功者也. 余少每就枕, 邪妄不經之念, 雜然而興, 雖欲强制而不可得. 輒黙誦古書以勝之. 近則神氣嗒然, 臥輒成眠, 不復有它念. 然時或暫醒, 不免有乘隙而萌者. 思古人之語, 未嘗不自媿也.

- 홍석주, 『학강산필(鶴岡散筆)』 중에서

내가 어려서 꿈에 복희(伏羲)를 뵈었다. 괘(卦)를 그리는 모습이었다. 16살 때 꿈에는 공자를 뵈었다. 방 가운데 안석(案席)에 기대어 계셨다. 내가 절을 올리고 다시 나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그러자 이렇게 훈계하셨다.

“네 게으름과 불성실함을 없애도록 해라.”

내가 여쭈었다.

“역(易)의 이치가 궁금합니다.”

대답하셨다.

“한 해 겨울만 힘 쏟으면 알 수가 있다.”

또 여쭈었다.

“『춘추(春秋)』에 쓴 달과 날의 이름에 과연 모두 포폄(褒貶)이 있는지요?”

“하나하나 모두 뜻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다고 전연 뜻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잘못이다.”

물러나오는데 자로(子路)가 작은 집의 동북쪽 모퉁이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채 묻지 못한 채로 잠을 깼다. 그런데도 또렷이 한 마디도 잊혀지지 않았다. 당시에는 내가 새로 정주(程朱)의 책을 얻어 깊이 빠져서 밥 먹고 잠자는 것조차 거의 잊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꿈에 나타나는 것도 이와 같았던 것이다.

그 뒤로 점차 기욕(嗜慾)의 허물에 빠지고, 나가서 벼슬살이를 함에 이르러서는 다시는 옛사람 꿈을 더 꾸지 않았다. 이제 늙어 흰머리가 되고 보니, 지난날 꿈꾸던 때에서 50년이 지났다. 하지만 게으르고 불성실한 병통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으니, 아! 누구를 탓하겠는가.

余幼時嘗夢見伏羲, 彷彿有畫卦狀. 十六歲夢拜孔子, 子方隱几于室中. 余旣拜而復進請敎, 則戒之曰:“去爾之慢與不誠.” 余問:“易理可識否?” 答曰:“用力一歲之冬, 亦可識也.” 又問: “春秋書月日名字, 果皆有褒貶否?” 曰:“以爲一一皆有意者, 非也, 謂全無意義者, 亦非也.” 退見子路立小軒東北隅. 欲有所問, 未果而寤. 猶歷歷無一語忘者. 方是時, 余新得程朱書玩賾之, 殆忘寢飱, 其發於夢寐者如此. 及其後漸溺於嗜慾之累, 至出而仕宦, 則益不復夢古人矣. 今余老白首, 距宿昔之夢, 適五十年矣. 而慢與不誠之病, 未有一毫減也. 嗟乎, 當誰咎哉.

- 홍석주, 『학강산필(鶴岡散筆)』 중에서

포양(包揚)은 육구연(陸九淵)의 문인(門人)이다. 뒤늦게 주자에게서 배운 사람이다. 그가 주자의 말을 기록한 것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책이란 것은 마음이 빠져드는 큰 함정이다.”

『주자어류(朱子語類)』를 편집하던 사람이 크게 놀라

“이것은 선생의 말씀이 아니다”

라 하고는 서둘러 이를 삭제하고 싣지 않았다. 대저 포양의 학문은 진실로 육구연의 학설을 능히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선생께서 말씀하지 않은 것을 어찌 감히 엉터리로 지어내어 속이려 했겠는가?

공자(孔子)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죽은 사람은 빨리 썩게 하고, 벼슬에서 물러나면 빨리 가난해지려고 한다[死欲速朽, 喪欲速貧].”

제자 유약(有若)이 처음에는 공자의 말씀이 아니라고 의심했다. 나중에야 까닭이 있어서 하신 말씀임을 알았다. 주자의 말 또한 연유가 있어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여조검(呂祖儉)이 책을 읽다가 병이 났다.

주자가 그를 나무라며 말했다.

“맹자(孟子)께서는 ‘학문의 도(道)는 오직 흐트러진 마음을 구하는 데 달려 있다’고 하셨네. 이제 한결같이 문자에만 빠져서 이 마음 전체를 온통 책 위로만 내달리게 하고, 자신의 존재마저 알지 못하였으니, 비록 책을 읽은 들 또한 무슨 보탬이 있으랴!”

또 말했다.

“성인의 책은 반드시 사람에게 병이 나게 만들지는 않는다. 자칫 사마천이 빌미를 만들게 될까 염려스럽다.”

책이 함정이 된다고 말한 것 또한 반드시 이 같은 종류의 말일 뿐이다. 제자백가의 말 중에는 사람의 심지를 빠뜨릴 수 있는 것이 정말 많다. 지금 세상에 고증학을 하는 사람이 말로는 성인의 경전을 공부한다고 하면서, 일찍이 조용히 함양해서 마음으로 얻어 몸으로 체득하지 못한 채, 자질구레하게 명물(名物)과 훈고의 말단에만 온통 마음을 쏟는다. 게다가 온 세상을 내몰아 죽을 때까지 내달리면서도 돌아올 줄 모른다. 주자에게 이를 보게 했더라면 함정이라고 말하지 않았을 리가 거의 없다. 하지만 포양이 이 말을 기록한 것은 본래의 뜻이 상세치 않다. 오로지 한 구절만 내세운 것은 그 뜻이 육구연을 위해 구실을 삼으려 했던 것일 뿐이다. 이 또한 자세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包揚顯道, 陸氏之門人, 而晩學於朱子者也. 其錄朱子語曰:“書者, 溺心之大穽.” 輯語類者見之, 大駭曰: “此非先生之語也.” 亟削之, 不載. 夫顯道之學, 固未能捨陸氏也. 然先生之所不言, 亦豈敢架虛而肆誣哉? 孔子曰: “死欲速朽, 喪欲速貧.” 有子始疑其非孔子之言, 而終乃知其有爲而發也. 朱子之言, 蓋亦有爲而發歟? 呂子約讀書而生疾, 朱子責之曰: “孟子言, ‘學問之道, 唯在求其放心’, 今一向耽着文字, 令此心全體都奔在冊子上, 更不知有己, 雖讀得書, 亦何益耶?”又曰: “聖人之書, 必不至使人生疾, 恐只是太史公作祟耳.” 其謂書爲穽, 亦必爲此類言耳. 夫諸子百家之書, 可以溺人心志者, 固多矣. 今世爲攷證之學者, 名爲治聖人之經矣. 曾不能從容涵泳, 得之心而體之身, 屑屑馳騁於名物詁訓之末. 又且敺一世而趍之終身而不知返. 使朱夫子見之, 其不謂之穽也, 亦幾希矣. 然顯道之錄是語也, 不詳本指, 專標一句. 其意則固欲爲陸氏藉口耳, 此又不可以不之察也.

- 홍석주, 『학강산필(鶴岡散筆)』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했다.

“이치를 궁구만 하고 일은 익히지 않는 것을 그대는 배움이라 말하기에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군자의 학문은 다만 세세한 범절이나 일상의 일에 그치지는 않는다. 대개 장차 천하의 큰 일을 맡고 천하의 큰 변화에 응함을 가지고서는 어디를 가든 마땅함을 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천하의 일은 갑작스레 일어나므로 생각지도 못할 것이 또한 많다. 어찌 일일이 이를 익힐 수 있겠는가?”

내가 말했다.

“물론 그렇다. 천하의 일 중에 비록 갑작스러워 생각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해도 또한 어찌 일마다 익힐 수가 있겠는가? 작은 것을 익히면 큰 것도 미루어 알 수가 있다. 일정한 일을 익혀두면, 바뀌는 것도 통할 수가 있다. 이를 독서에 견주어보자. 글자마다 묻고 구절마다 배워서 수십 권을 읽은 뒤에는 다시 스승을 기다리지 않고도 진실로 능히 1백여 권을 정독할 수가 있다. 그럴진대 비록 평생 처음 보는 책과 만나더라도 또한 시원스레 아무 막힘이 없게 될 수가 있다. 또 큰 일에 임해 큰 변화에 대응하는 사람은 진실로 이치에 밝지 못한 것을 근심해야 하지만, 사실은 그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것이 더 걱정이다. 하루아침에 당황하여 마음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비록 평소에 익숙히 익혀 아무 의심이 없던 것조차 뒤죽박죽이 되어 길을 잃고 헤매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때문에 군자는 평소 거처할 때 엄숙하게 정신을 한데 모아서 기쁨과 성냄으로 그 마음이 휘둘리게 해서는 안 된다. 욕심으로 그 참됨을 흔들어놓아도 못 쓴다. 비록 틈을 엿보아 파고들어 온갖 생각의 단서가 뒤얽혀도 내 고요한 마음만은 늘 평소와 같아야 한다. 이것을 익히지 않고서 능히 큰 일에 임하고 큰 변화에 응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감히 믿을 수가 없다. 대저 삼군(三軍)의 무리를 거느리는 사람은 반드시 아무 일이 없을 때에 이를 기른 뒤라야 일이 생겼을 때 이를 쓸 수가 있다. 자사(子思)의 ‘계신공구(戒愼恐懼)’즉 경계하고 삼가며 두려워한다는 말과, 맹자의 ‘구방심(求放心)’, 그리고 정이(程頤)의 ‘주일무적(主一無適)’ 즉 마음을 하나로 모아 딴 데로 가지 않게 한다는 ‘경(敬)’은 모두 큰 일에 임하고 커다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군대를 기르는 일에 해당한다.”

평소 훈련된 군대가 유사시에 응집력을 발휘할 수 있다. 제 힘만 믿고 훈련을 게을리하면 일이 발생했을 때 손 쓸 도리가 없다. 자사는 삼가고 경계하고 두려워하라고 주문했다. 맹자는 마음이 달아나지 않게 꼭 붙들라고 했다. 정이는 한 곳으로 집중해서 제멋대로 돌아다니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표현이지만 가리키는 뜻은 같다. 큰 일을 거뜬히 해내고, 큰 변화에 당황하지 않으려면 평소의 마음 훈련이 필요하다.

或曰:“窮其理而不習其事, 子以爲未足言學矣. 然君子之學也, 非獨於細節已也, 非獨於常事已也. 蓋將以任天下之大事, 應天下之大變, 無往而不得其宜也. 天下事有出於倉猝, 而不慮者亦多矣, 又安得事事而習之哉!”曰: “是固然矣. 天下之事, 雖非倉猝而不慮者, 亦安得事事而習之哉. 習之於小, 而其大者可推也. 習之於常, 而其變者可通也. 譬之讀書, 字字而問之, 句句焉受之, 數十卷之後, 不復待師長, 苟能精百餘卷也, 則雖遇平生未見之書, 亦可以沛然而無窒矣. 且臨大事應大變者, 固患其理之不明, 而尤患於其心之不定. 一朝倉皇方寸失守, 雖平日熟講而無疑者, 鮮有不顚倒而迷繆. 是以君子平居燕處, 肅然凝神, 不以喜怒撓其中, 不以耆慾蕩其眞. 雖投間伺隙, 萬端膠擾, 而吾之湛然者, 恒自若也. 不習乎此, 而能臨大事應大變者, 吾未之敢信也. 夫行三軍之衆者, 必養之於無事之時, 而後可以用之於有事之日. 子思子之戒愼恐懼, 孟子之求放心, 程夫子之主一無適之敬, 是皆臨大事, 應大變者之養兵也.”

- 홍석주, 『학강산필(鶴岡散筆)』 중에서

옛날의 저서는 높고 낮음에 따라 대개 다섯 가지 등급이 있다. 세상의 책 읽는 사람 또한 그렇다. 가장 으뜸은 도를 밝혀서 덕을 바로 세우는 것이니, 육경 사서와 여러 성현의 말씀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 다음은 세상을 경영해서 실용에 닿는 것이다. 성인의 경전은 이를 아우르고 있다. 역대의 역사책과 예악병형(禮樂兵刑)에 관한 책들이 또한 여기에 포함된다. 그 다음은 표현을 잘 다듬어 보기만 좋게 한 것이다. 그 다음은 사물을 고찰하고 견문을 넓히는 것이다. 문장이 풍부하기로는 육경보다 나은 것이 없다. 「우공(禹貢)」의 산천과 『시경(詩經)』의 새 짐승과 초목, 『예기(禮記)』와 『악경(樂經)』의 각종 기계와 이름 및 제도 또한 배우는 자가 마땅히 마음을 쏟아야 할 것들이다. 하지만 오로지 이것만 하는 데 그치면 또한 밖으로 겉돌아 말단이 될 뿐이다. 또 그 아래는 소설과 자질구레한 이야기이니, 놀며 떠들며 파적거리로 삼는 것일 뿐이다. 음란하고 외설스런 말과 괴상망측한 이야기는 사람의 심지를 흔들고 사람의 보고 들음을 현혹시킨다. 이는 명교(名敎)의 죄인인지라, 저서의 부류에 넣기도 어렵다. 옛날의 저서는 대략 이렇게 다섯 등급이 있었다. 그 높고 낮음을 진실로 알 만하다.

책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또 마땅히 마음자리를 살피는 것이 먼저다. 진실로 그 마음이 자기를 반성하고 실지에 힘쓰는 데 놓인다면, 비록 소설이나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읽더라도 또한 덕을 바르게 하고 쓰임에 나아갈 수가 있다. 진실로 그 마음이 붕 떠 있어 중심으로 삼는 것이 없다면 비록 육경과 사서를 읽는다 해도 또한 심심풀이를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古之著書者, 其高下大率有五等. 世之讀書者亦然. 太上, 明道以正德, 六經四書, 群聖賢之言, 是也. 其次, 經世以致用, 聖人之經兼乎是者也, 而歷代史乘, 禮樂兵刑之典籍, 亦與焉. 其次, 修辭以美觀. 其次, 稽物以洽聞. 文章之富, 未有尙于六經者也. 禹貢之山川, 詩之鳥獸草木, 禮樂之器械名數, 亦學者之所宜究心也. 雖然, 專以是而已, 則亦外且末矣. 又其下, 則小說

- 홍석주, 『학강산필(鶴岡散筆)』 중에서

 

 

홍길주(洪吉周(1786~1841)

조선 후기의 문인 학자.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헌중憲仲, 호는 항해沆瀣다. 대제학을 지낸 홍석주의 아우다. 그의 동생은 정조의 외동 사위인 홍현주洪顯周이다. 과거에 급제했으나, 30대에 벼슬길에 뜻을 버리고, 문필활동에 전념했다. 문집은 시기별로 『현수갑고峴首甲藁』, 『표롱을첨縹聾乙籤』, 『항해병함沆瀣丙函』 등의 방대한 글을 남겼고, 이 밖에 『서림일위書林日緯』, 『숙수념孰遂念』, 『수여방필睡餘放筆』 4부작 등의 저작을 남겼다. 이 밖에 기하학에도 깊은 조예를 지녔다.

벼슬길을 멀리한 채 글쓰기에 몰두한 그는 폭넓은 사유와 흥미로운 지적 사유의 궤적을 유니크하게 보여준 작가다. 그의 사유는 대단히 현대적이고, 감각적이다. 기호학의 사유 방식과 흡사하다. 그는 거대 담론보다는 소소한 일상 속의 깨달음을 더 중시했고, 복잡한 현상 속에 감춰진 이치 찾기를 즐겼다. 사물의 현상에서 의미를 뽑아 내서 이를 종횡무진으로 엮어 사유를 확장하곤 했다. 이 책에는 『수여방필』 4부작과 그 밖의 산문에서 가려 뽑은 독서 관련 내용을 수록했다. 일상에서 포착하는 각성과 제언을 담아 후학을 권면한 내용이다.

 

맹자가 말했다. “학문의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자기에게서 돌이켜 구하는 것일 뿐이다.” 오늘 한 마디를 읽으면 반드시 이와 같이 하고, 내일 한 사람을 보면 반드시 이처럼 한다. 또 이튿날 한 가지 일을 들으면 꼭 그렇게 한다. 읽은 책이 나날이 더 많아지고 세상에서 듣고 본 것이 날로 더욱 넓어지면 고금과 천하의 좋은 점이 모두 내게 갖추어져서, 고금과 천하의 악함은 터럭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될 것이다.

옛날에 위기지학(爲己之學), 즉 자기를 위한 학문이라고 일컬었던 것은 이 방법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성인이 거룩하게 된 까닭은 이것을 모았기 때문일 뿐이다. 군자는 배움에 있어 힘 쏟지 않는 곳이 없다. 하지만 반드시 중점을 두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거두는 보람이 크다. 내가 중점을 두는 것은 자기에게서 돌이켜 구하는 것일 뿐이다.

孟子曰 : "學問之道, 無他焉, 反求諸己而已矣." 今日讀一言而必如是, 明日見一人而必如是, 又明日聞一事而必如是. 至於所讀之書日益多, 而聞見於世者日益廣, 則古今天下之善, 皆備於我, 而古今天下之惡, 無一毫之留焉. 古之稱爲己之學, 循是而已矣. 抑聖人之所以聖, 集是而已矣. 君子之於學, 無所不力, 而必有所以爲主, 夫然后用功約而取效大. 吾之所以爲主者, 反求諸己而已矣.

- 홍길주, 「좌성(左省)」

사람이 아이 적에 책을 두세 번만 읽고도 곧바로 외우거나, 또 간혹 7,8세 때에 능히 시문을 지어 입만 열면 문득 사람을 놀래키기도 하였으나 정작 어른이 되어 늙어서는 성취한 바가 남보다 특별히 나은 점이 없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똘똘한 재주가 쉬지 않는 부지런함만 같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또 기름을 태워 새벽까지 애를 쓰며 쉬지 않고 흰머리가 흩날리도록 하더라도 능히 스스로 일가의 말을 이루지 못하는 자가 있으니 그 까닭은 어째서일까? 혹 겨우 백여 권의 책을 읽고도 붓을 내려 종이에 폄에 쟁그랑 소리를 내며 환히 빛나 만 권을 외운 자가 뒤에서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한다. 혹 똑같은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사람은 한 글자도 남김없이 외웠는데도 식견은 늘지 않고 저작에 볼 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반 넘어 잊어버렸으나 핵심 되는 알맹이를 모두 파악해서 펼쳐 글을 지으면 이따금씩 똑같이 되곤 하니 그 까닭은 어째서인가? 재주는 부지런함만은 같지 못하고 부지런함은 깨달음만 같지 못하다. 깨달음이란 한 글자는 도덕의 으뜸가는 부적이다. 옛사람의 책 가운데 경전과 역사책의 종류 같은 것은 한 글자도 허투루 지나가서는 안 된다. 그 나머지 자질구레한 것들은 하나하나 정밀히 궁구하여 심력을 나눌 필요가 없다. 가령 한 권의 책이 대략 70, 80면쯤 된다면 그 정화로운 것을 추려 내면 십여 면에 지나지 않는다. 속된 선비는 처음부터 다 읽지만 그 알맹이의 소재는 알지 못한다.

오직 깨달음이 있는 자는 손가는 대로 뒤적이며 지나쳐도 핵심이 되는 곳에 저절로 눈길이 가 닿는다. 그래서 한 권 안에서 단지 십여 면만 따져보고 멈추어도 전부 다 읽은 사람보다 보람이 두 배나 된다. 이런 까닭에 남들이 바야흐로 두세 권의 책을 읽을 적에 나는 이미 백 권을 읽어 치울 수 있고, 보람을 얻는 것도 또한 남보다 배나 된다.

人有兒時, 讀書二三遍, 卽誦者. 又或七八歲, 能作詩文, 發口輒驚人者. 及其壯而老, 所成就, 無甚過人. 始知了了之才, 不如兀兀之勤也. 復有焚膏繼晷, 矻矻不休, 以至于白首紛如, 而不能自成一家言者, 其故何也? 或僅讀百餘卷書, 而下筆伸紙, 訇鏗煒燁, 誦萬卷者, 瞠乎后. 或均之讀一部書, 一則誦不遺隻字, 而識解不加長, 著作無可觀. 一則忘失過半, 而盡輸其精華膏液, 浹于肺肝, 發爲文, 往往逼肖, 其故何也? 才不如勤, 勤不如悟, 悟之一字道德之元符也. 古人書如經史之類, 一字不可放過, 餘書或瑣瑣者, 不必一一精究, 以分心力. 假如一卷書約七八十葉, 捃其菁華不過十數葉 , 俗士從頭盡讀, 而不知其菁華之所在. 唯有悟者, 信手披過而菁華處, 自觸于眼, 一卷之內, 只究了十數葉而止, 其見功倍于盡讀者. 以故人方讀二三卷書, 我已了却百卷, 而見功亦倍於人.

- 홍길주,『수여방필』

연천 선생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책을 읽는 것에 다섯 가지 등급이 있다. 으뜸은 이치를 밝혀 몸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옛 것을 널리 익혀 일에 응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문사를 닦아 세상에 이름을 울리는 것이다. 그 다음은 기억력이 뛰어나 남에게 뽐내는 것이다. 가장 아래 길은 할 일 없이 시간만 죽이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것은 한 가지인데, 그 읽는 까닭은 이 같은 다섯 가지의 차이가 있다.”

淵泉先生常云: “人之讀書有五等, 上焉者明理以淑身, 其次博古以應事, 其次修辭以鳴世, 其次强記以夸人, 最下者聊以遣閑而已. 讀書一也, 其所以讀則有此五者之異.”

- 홍길주, 『수여난필』

성현의 글을 읽는 것은 덕에 나아가고 행실을 닦아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예컨대 《논어》 한 권을 읽었는데, 한 사람은 마치 자기 말처럼 다 외우지만 막상 어떤 경우에 닥치면 일찍이 생각이 책 속에 미치지 못하고 그 행동하는 바를 살펴보면 한결같이 읽은 것과는 반대로 한다. 한 사람은 능히 한두 장도 외우지 못하지만, 화나는 일이 생기면 문득 맹렬히 반성하여 이렇게 말한다. “《논어》 중에 한 구절이 있는데 내가 그 말을 자세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생각해보니 화가 날 때 마음대로 하면 뒤에 반드시 어려움이 있다는 식의 말이었다.” 하고는 마침내 참고 이를 가라앉혔다. 뜻하지 않은 재물과 마주해서는 또 맹렬히 반성하여 이렇게 말했다. “《논어》중에 한 구절이 있는데 내가 그 말이 자세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재물을 앞에 두면 모름지기 의리에 합당한지의 여부를 헤아려 보라는 뜻이었던 듯하다.”고 하고 마침내 물리쳐서 취하지 않았다.

이 두 사람 가운데 마침내 어느 사람이《논어》를 제대로 읽은 것이겠는가? 또 어떤 사람은 일이 닥치면 먼저 경전에 나오는 경계하는 말을 꺼내서 의논하는 자의 입을 막고, 인하여 장차 자기가 한 옳지 않은 일을 그럴 듯하게 꾸미고 왜곡해서 의리에 합당하게 행한 것으로 여기게 한다. 이런 종류의 사람은 비록 요순이라도 감화시킬 수가 없다. 또 늘상 자기의 단점을 말하여 남들로 하여금 다른 말을 할 수 없게 하면서 장차 옳지 않은 일을 하고 나쁜 말을 할 때에는 도리어 먼저 그 좋지 않은 점을 말한 뒤에 이를 좇는다. 이 같은 사람은 또 일찍이 생각이 책 속에 미치지 못하는 자의 죄인이라 하겠다.

讀聖賢書, 爲其進德修行, 增益其所不足也. 如讀論語一部, 一則盡誦如己言, 而遇事, 不曾思到卷中, 考其所爲, 一反其所讀, 一則不能誦其一二章, 有忿懥, 輒猛省曰: “論語中有一句, 吾不能詳記其語, 而想是忿而任情, 後必有難等說.” 遂忍而平之. 臨不意之貨, 又猛省曰: “論語中有一句, 吾不能詳記其語, 而想是臨財, 須較量其合義與否之意.” 遂却而不取. 這兩人究竟誰是會讀. 又有一等人, 遇事, 却先說起經傳中立戒語, 以杜設者之口, 仍將自己做的不義事, 文飾曲成, 以爲合義而行之. 這般人, 雖堯舜不可化. 又有恒言自己短處, 使人無可更說, 將做不善事, 發不善言, 却先說破其不善處而後從之. 如此等人, 又是不曾思到卷中者之罪人也.

- 홍길주, 『수여방필』

옛 사람을 잘 모방하는 것이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이렇게 일러 주었다.

“밥을 먹은 효과는 정채가 빛나고 피부가 윤기나는 데서 드러난다. 이 정채와 피부에 어찌 일찍이 밥알의 형상이 있겠는가? 책 읽은 보람은 일을 행함에서 드러나니 문장 또한 이 같을 뿐이다. 밥알이 변화하여도 오히려 지게미와 비슷한 것이 있으니 바로 대변이다. 체해서 소화되지 않고 곧장 내려가면 먹은 것이 그 형상 그대로이다. 만약 반드시 잘 모방하는 것을 잘 읽은 보람으로 여긴다면 대변이 곧장 내려가는 것을 잘 먹은 효과라고 말할 수 있겠구나.”

有以善摸倣古人爲好文章者, 余告之曰: “喫飯之效, 見於精采敷潤而體膚充澤. 是精采體膚, 曷嘗有飯粒之形象耶? 讀書之效見於行事, 文章亦如此而已. 飯之所化, 尙有髣髴於糟粕者, 唯大便也. 滯不化而直下, 則所啖者宛然其形. 若必以善摸倣爲善讀之效, 則大便直下, 方可謂之善啖之效耶?”

- 홍길주, 『수여난필』

연천 선생이 젊어서 책을 읽을 때 날마다 분량을 정해 두었다. 그리고 일과 외에 몇 권의 책을 한가할 때에 나누어 읽었다. 예를 들어 어떤 책은 세수한 뒤 호좌건(虎坐巾)을 얹을 때 본다. 또 어떤 책은 안채에 있을 때에 속으로 외운다. 어떤 책은 베갯머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때 외우고, 어떤 책은 잠자리에 들어 미처 잠들지 않았을 때 외운다. 모두 날마다 한 두 페이지를 넘지 않았지만, 달이 쌓여 해가 지나자 이미 너덧 질의 책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원래의 일과와는 서로 방해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약관이 되기도 전에 이미 고금을 널리 살필 수 있었다. 승지(承旨)와 각신(閣臣)이 되었을 때도 『한서(漢書)』를 읽었다. 비록 하루 종일 공무를 보거나 임금을 모셔 밤 깊은 뒤에 퇴근해 돌아오더라도 반드시 등불 아래에서 책을 가져다가 서너 줄 읽은 뒤에야 자리에 들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과는 하나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사정이 있다고 거르게 되면 일이 없을 때에도 또한 게을러지게 마련이다.”

또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권의 책을 다 읽을 만큼 길게 한가한 때를 기다린 뒤에야 책을 편다면 평생 가도 책을 읽을 만한 날은 없다. 비록 아주 바쁜 중에도 한 글자를 읽을 만한 틈만 있으면 문득 한 글자라도 읽는 것이 옳다.”

先生少時讀書, 旣有逐日定課. 而用課外書數種, 分屬於閑時. 如某書則獨於盥後施虎坐巾時觀. 某書則獨於在內舍時黙誦. 某書則枕上未起時誦, 某書則就枕未睡時念. 皆日不過一二頁, 而積月踰歲, 已了却四五袟. 幷不與原課相奪. 以故, 未弱冠已博極今古. 爲承旨閣臣時, 讀漢書. 雖終日 在公或陪駕罷還夜深之後, 必取書於燈下, 讀三四行然後寢. 曰: “課不可闕一, 以故而廢, 則無故時亦怠矣.” 又嘗曰: “必欲待長久之暇, 可了一部書然後, 開卷則平生無可讀書之日. 雖於劇奔忙中, 有可讀一字暇, 便宜讀一字.”

- 홍길주, 『수여연필』

세상 사람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천하에는 서적이 너무 많아서 다 읽을 겨를이 없다. 문장과 도술은 옛것만 못하다. 모름지기 이러한 사정을 알았던 진시황이 나와, 경전이 아니면서 긴요치 않은 것을 가려 불태워 버린 뒤에야 바야흐로, 책을 읽어 배울 수가 있었다.”

이것은 일반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또 한 가지 주장이 있다. 천하에 무릇 책이라 이름 붙여진 것은 모두 읽을 만하고 볼만하다 여기는 것이니, 이 또한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는 말한다.

“경전과 역사 등 좋은 책은 진실로 읽지 않을 수 없다. 나머지 책은 얻는 대로 보아 어떤 것은 읽고 어떤 것은 읽지 않아도 모두 안 될 것이 없다. 경전이 아니고는 보탬이 없다고 말한다면, 전국시대 제자백가 이하는 모두 불 태워야 마땅할 것이다. 작은 이치라도 볼만하다고 말한다면 근세의 자질구레한 총서나 잡찬도 모두 식견과 깨달음을 계발하는 데 보탬이 있을 것이다.”

世恒言: “天下書籍, 綦多無暇徧閱. 而文章道術浸不如古. 須有知事之秦始皇出, 擇其非經不急者, 而焚之然後, 方可讀書而爲學.” 此非通論也. 又有一種之說. 以爲天下之凡以書名者, 皆可讀皆可觀, 斯亦行不得. 余則曰: “經史等好書, 固不可不讀. 餘書隨得隨觀, 或觀或否, 都無不可. 以言乎非經無益, 則戰國諸子以下, 俱屬當燒, 以言乎小道可觀, 則近世叢瑣雜纂, 皆有助發識悟處耳.”

- 홍길주, 『수여난필』

책을 읽을 때에는 대충 건성으로 보아 넘김을 면치 못한다. 매번 고요히 누워 예전에 읽은 것을 생각하다보면, 문득 수 십 년간 깨닫지 못했던 오묘한 뜻을 깨닫곤 한다. 배움이 넓은 선비가 마땅히 때때로 책을 덮고 예전 읽은 여러 책을 가슴속에서 오르내리게 하면 반드시 큰 보람이 있을 것이다. 배운 것이 적은 자는 다만 마땅히 노력하여 많이 읽을 뿐 여유롭게 한가히 앉아 예전 읽은 것을 생각하는 데 자신을 내맡겨서는 안 된다.

讀書時不免泛然看去. 每靜臥念平昔所讀, 忽悟累十年未造之奧. 博學之士, 宜時時掩卷, 以舊讀諸書, 上下于胸中, 必大有功效. 所學謏寡者, 惟宜矻矻多讀, 不可悠悠閑坐, 自諉以思舊讀

- 홍길주, 『수여난필』

천하에는 책을 함께 읽을 만한 사람도 없고, 함께 읽지 못할 사람도 없다. 시서(詩書)와 육예(六藝)를 지은 옛 작자는 모두 죽고 없다. 내가 책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한들 장차 누구와 함께 말하겠는가? 그래서 천하 사람 중에 더불어 책 읽을만한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 산의 나무꾼이나 들의 농부, 저자의 장사치나 거간꾼의 경우, 그가 혹 한 글자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거나, 또 일찍이 나와 더불어 평소 한 마디 말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만나서 그 하는 행동을 보면 눈길이 노니는 바와 발길이 가는 곳, 손에 들고 다니는 것과 입에서 나오는 말에서 천하에서 날로 쓰는 떳떳한 윤리와 인정의 선악, 그리고 별들과 비바람, 산천과 숲과 못, 안개 구름과 새 짐승의 변화가 뒤섞어 그 사이에 오간다. 그 소리와 모습이 천하의 지극한 문장 아님이 없는 지라, 내가 모두 얻어서 이를 읽는다. 그래서 천하 사람 중에 더불어 책을 읽지 못할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天下之人, 無可與讀書者, 天下之人, 無不可與讀書者. 詩書六藝古作者, 皆逝矣, 我之有契於書, 將誰與語諸! 故曰, 天下之人, 無可與讀書. 然彼山之樵野之農, 衖市之賈儈, 其人或不識一字, 又未嘗與我有一言之素也. 遇而視其爲, 則目之所遊, 足之所循, 手之所携, 口之所發, 凡天下日用彛倫人情之善惡, 與夫星辰風雨山川林澤煙雲鳥獸之變, 雜然迬復于其間. 蓋其聲音狀䫉, 莫非天下之至文, 而吾皆得以讀之. 故曰, 天下之人, 無不可與讀書.

- 홍길주, 「送金性原宰江東縣序」

매번 옛 사람의 문집이나 다른 사람이 지은 시문을 읽다가, 이따금씩 격조에 아낄 만한 것이 있어 나와는 완전히 다른데도 마음으로 이를 아껴 마치 제 입에서 나온 것 같은 경우가 있다. 대개 그 체제는 비록 달라도 정취의 사이에 절로 서로 감응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문인들이 한 가지 법만을 굳게 지켜 자기와 다른 것을 배척함은 바로 정취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옛 사람의 아름다운 작품과 다른 이의 빼어난 구절을 읽어도 그 좋은 점을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마침내 그 아름다움을 취하여 자기의 것으로 만들지도 못한다.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깨달은 것이 다만 글이 이루어진 뒤에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일 뿐, 글이 이루어지기 전에 생각을 얽어 이리저리 표현해 낸 경로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다른 이의 안내를 받아 이름난 누각과 기이한 경치를 구경하고 돌아와서 누각에서 바라본 강과 산, 아지랑이 낀 숲의 빼어난 경계나 경치 속에 있는 대와 나무, 바위의 기특함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살피지 않은 것이 없으면서, 문득 말미암아 간 길이나 어느 고을을 거쳤는지, 또는 어느 주막에서 자고 어느 고개를 넘었는지, 아니면 어떤 시내를 건너 이곳까지 이르렀는지는 한번도 묻지 않아, 훗날 안내자가 없이는 죽을 때까지 그 장소에 능히 이를 수 없는 것과 같다.

옛날에 이름난 작가나 이전 시기의 거장을 본받으려면 모름지기 먼저 그 사람이 글을 지을 때 마음이 말미암아 들어간 경로를 찾아 이를 훔쳐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바야흐로 잘 배웠다고 할 수 있다. 자기가 구하는 것이 반드시 모두 그 사람이 생각을 엮은 경로와 꼭 맞지는 않는다 해도 이처럼 노력하면 반드시 융합되어 묘리를 깨닫는 날이 있게 될 것이다.

每讀古人集及他人作詩文, 往往有格調好尙, 與我絶異, 而心愛之, 不啻若自其口出者. 蓋其體雖不同, 而情趣之間, 自然有相感者故也. 文人之膠守一法, 而斥異己者, 政坐不識情趣耳. 讀古人佳作及他人傑句, 非不曉其佳處, 而終不能奪其美而有之. 無他焉. 所曉者, 秪是句成以後, 著見之佳處而已, 不思其句成以前搆思轉折之路徑故也. 譬如隨人指導, 至名樓異境而還, 樓之所眺, 江山煙樹之勝, 境之所有, 竹木巖石之奇, 未嘗不一一領略, 而却不曾問其所由之程途, 歷某州, 宿某店, 踰某嶺, 渡某溪, 而至此. 異日無指導者, 則身終不能至其所矣. 欲傚古名家, 若先覺鉅匠者, 須先求其人作文時, 神思所由入之徑路, 攘以爲己有, 方稱善學. 己之所求, 未必盡與其人搆思之徑路相合, 而如是用功, 必有融然造玅之日.

- 홍길주, 『수여난필속睡餘瀾筆續』

옛 사람의 좋은 작품을 읽을 때에는 모름지기 먼저 그 뜻이 말미암아 들어간 경로를 찾아보아야 한다. 대저 그런 뒤라야 능히 가져다가 자기의 소유로 삼을 수가 있다. 그래야 훗날 글을 지으면 문득 그 묘처에 방불하게 될 수가 있다. 지금 사람들은 옛 사람의 글을 읽으면 한갓 겉으로 드러나는 광채와 기세만 보고 먼저 놀라서 문득 스스로 미칠 수가 없다고 단정 짓고는 오직 그 찌꺼기만 주워다가 공령문에 쓸거리로 삼는다.

讀古人佳作, 須先尋其意匠所由入之徑路. 夫然後能取爲己有, 而他日作文, 便可髣髴其妙處. 今人讀古人文, 徒見其外著之光耀氣勢, 已先眩駭, 便自畫以不可幾及, 唯拾取糟粕, 以資功令之用.

- 홍길주, 『수여방필』

장별제(張別提)가 일찍이 말했다. “글 배우는 자가 나이가 아직 장성하지 않고 식견이 투철하지 않은데도 읽은 책이 문득 많게 되면, 앞서 읽은 것은 나중 읽은 것에 묻힌 바가 되어 능히 펴서 이를 활용하지 못한다.” 이 말은 얼핏 들으면 이치에 어긋난 듯하다. 하지만 따져보면 또한 속된 선비의 말은 아니다. 대개 사람 중에는 진실로 들은 것이 적은데도 능히 그 아는 바를 다 쓰는 사람이 있고 또한 많이 읽고서도 저술에서 핵심을 꿰뚫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장별제의 주장은 혹 격동됨이 있어 편 것 같다.

張別提嘗言: “學書者, 年未壯, 識解未透, 而所讀書卷遽多, 則先讀者, 輒爲後讀者所埋, 不能發而用之.” 此言驟聞甚乖理. 然究, 亦非俗士之言. 蓋人固有寡聞而能盡用其所知者, 亦或有多讀而不能逢原於著述者, 張之說似或有激而發耳.

- 홍길주, 『수여연필』

나는 책을 읽을 때 능히 수백 번을 넘지 않는다. 『수여방필』에서 이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젊었을 때 「화식전(貨殖傳)」을 읽었는데, 겨우 이백여 번 만에 비록 꿈속에서도 이를 외어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마음이 다른 사물을 생각하면서도 입은 익숙하게 줄줄 외워 이미 십여 행을 내려가곤 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장차 마음을 보존하려는 것인데 마음을 놓아둠이 읽지 않을 때보다도 심함이 있었다. 그래서 버려두고 다른 글을 읽었다. 이제 삼십 년 뒤에 익혀 외우려 하면 서너 줄도 능히 내려가지 못한다. 책을 펼쳐 너덧 번 읽은 뒤에야 비로소 다시 외우게 된다.

어떤 사람이 한 책을 문득 천여 번에 이르도록 읽은 이가 있었다. 도대체 무슨 재주로 그 마음을 다잡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한 권의 책을 수천 번 읽으려면 모름지기 먼저 수백 번을 읽어, 내가 「화식전」을 읽은 것처럼, 익숙해지면 바로 버려둔다. 그 사이에 다른 책을 읽다가 한두 해 지나 조금 껄끄러운 듯이 여겨지면 다시 수 십 백 번을 읽어 아주 매끄럽게 되면 그만둔다. 이렇게 몇 십 년이 지나 몇 천 번을 채우게 되면 마음이 방종함에 이르지 않고도 힘을 얻음이 또한 깊게 될 것이다.”

余讀書不能過數百籌, 前筆言之矣. 少時讀貨殖傳, 纔二百餘籌, 雖於睡夢中, 誦之不錯一字, 心思他事物, 而口吻慣滑, 已下十數行. 讀書將以存心也, 而心之放有甚於不讀時. 以故捨而讀他書. 今於三十年之後, 欲溫誦之, 則不能下其三四行. 展卷讀四五遍然後, 始復誦. 人有讀一書, 輒至千餘籌者, 未知能有何術以操其心也. 余嘗謂: “欲讀一書累千籌, 須先讀數百籌, 慣熟如余之貨殖傳, 卽棄之, 間以他書, 經一二歲, 覺其稍澀, 而更讀幾十百籌, 太滑則止. 如是, 經幾十年而滿幾千籌, 則心不至放, 而得力亦似深.”

- 홍길주, 『수여연필』

계서(季緖) 유협(劉勰)은 작가의 반열에 들지도 못했으면서 남의 글 헐뜯기를 좋아하여 당세 거공들의 비웃는 바가 되었다. 대저 다른 사람의 글을 망령되이 헐뜯어서는 안 된다. 그 편장과 체제, 자구와 색상이 갑자기 내 안목을 놀래키는 것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쉽게 평을 내려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읽은 책을 내가 다 읽은 것이 아니고, 내가 읽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이 다 읽지 않은 것도 아니다. 저 사람이 비록 명성이 낮고 배움이 부족하더라도 간혹 어쩌다 내가 미처 살피지 못한 것을 알 수도 있거늘 하물며 박식하기가 나보다 나은 사람일 경우이겠는가.

인품의 높고 낮음과 문사의 좋고 나쁨은 능히 스스로 아는 경우가 드물다. 오직 가슴 속에 담긴 서적의 많고 적음은 마땅히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 스스로 부족한 것을 알아, 다른 사람의 작품 중에 내 눈에 익지 않은 것과 만나게 되면 마땅히 조심스럽게 “이는 잘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라고 말해야 한다. 요즘은 그렇지가 않으니, 툭하면 소곤소곤 입을 놀리면서 “옛날에는 이런 것이 없었어.” 라고 말한다. 어찌 등 뒤에서 야유하는 자가 있음을 생각지 않는단 말인가. 옛 말에 이르기를, “본 바가 적으면 괴이한 바가 많다.”고 했는데 바로 이 같은 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

劉季緖未造作者之列, 而喜詆訶文章, 爲當世鉅工所嗤笑. 大抵他人文不可妄詆, 至其篇章體格字句色象之忽駭吾眼目者, 尤不可容易下評. 他人所讀書, 我未必盡讀, 我所未讀, 他人未必盡不讀. 彼雖諛聞淺學容或偶知, 我未及究, 況其博洽過我者乎. 人品之高下, 文詞之工拙, 尠有能自知. 惟胸中書籍之多寡, 宜未有不自知者. 旣自知其寡矣. 遇他人作不慣吾眼者, 宜惕然曰: “是必吾所未知也.” 今也不然, 輒呫呫動其喙曰: “古無是也.” 獨不慮背後有捓瘉者耶? 古語云: “少所見, 多所怪.” 政爲此等人道.

- 홍길주, 『수여방필』

한번은 책상 위에《설부(說郛)*》를 놓아 두었다. 손님이 우연히 그 중에 한 권을 꺼내어 채소 심는 것에 관한 말이 있는 것을 보고 물러나 다른 사람에게《설부》는 농사책이라고 말했다. 또 일찍이 유가서 한 책을 얻었다. 빈 면에다가 잡병을 앓은 경험을 몇 조목에 걸쳐 써 놓았는데 손님이 마침 보고 의가서(醫家書)라고 생각했다. 이는 진실로 어리석은 사람일 뿐이다. 학식이 넓은 선비도 또한 간혹 이 같은 병통이 있다. 기효람(紀曉嵐)이 사고전서(四庫全書)를 교감할 때에 권질이 너무 많아 두루 살펴볼 겨를이 없었으므로 왕왕 한두 군데를 들춰 보는 데서 실수가 생겨 마침내 그 전부를 가리곤 하였다. 이 어찌 앞서 손님이《설부》를 본 것과 다르다 하겠는가. [세상에서 한 가지 일을 가지고 한 때를 가늠하고, 한 마디 말로 한 사람을 단정하는 것이 모두 이 같은 종류이다.]

* 설부(說郛): 명나라 도종의(陶宗儀)가 편찬한 총서(叢書)다. 백 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으로 각종의 이야기를 갈래별로 모았다. 뒤에 욱문박(郁文博)과 청나라의 도정(陶挺)이 증보하였다.

嘗丌寘說郛, 客偶抽其一卷, 見有種菜語, 退告人曰: “說郛農圃書也.” 又嘗得儒書一冊, 有錄雜病經驗數條于其空葉者, 客適見以爲毉家書. 是誠陋者耳. 博雅之士, 亦或有此病. 紀曉嵐校勘四庫全書, 編袟浩瀚, 未暇編閱, 往往偶摘其一二疎失, 遂蔽其全部. 是何異客之觀說郛者耶? [世之以一事盖一時, 一言蔽一人者 皆此類也.]

- 홍길주,『수여방필』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