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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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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9. 18. 12:28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86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곽재구 시집

1999, 열림원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0186

 

811.6

곽73ㄲ

 

섬진강과

그의 사랑스러운 연인 보성강에게

75년 이후 그곳 모래 위에 발자욱을 남긴 모든 추억들에게

 

차례

 

1

산수유꽃 필 무렵

두 사람

밤 편지

큰눈 내리는 날

돌점 치는 여자

얼음주사위

따뜻한 편지

눈오는 밤에 춘향전을 읽다

얼음 풀린 봄 강물

칠석날

묵언 1

묵언 2

사월의 노래

배꽃

자장가

 

2. 연화리 시편

나무

누란

나뭇잎 배

계단

사마르칸트

하늘의 춤

산수유나무 아래서

민들레 꽃씨들은 어디로

기다림

고등어장수

수제비죽

분수

雪蓮

그리운 폭우

꽃을 드리는 이유

타클라마칸 사막

무지개를 위하여

참으로 오만하고 우아한 열정

쟈스민차

노란 꽃

하늘의 나무

촛불

소나기

가을의 시

백합

소년

타지크스탄

연꽃잎 우산

설해목

쓸쓸한 날의 춤

 

3

수선화 핀 언덕

겨울 시집

첫눈 오는 날

마음

가거도 편지

연기암에 올라

도문장터

선유도

낮달

용흥리 석불

0.75평

봉정리에서

모래톱이야기

바람소리

花心里에서

 

□ 시인의 말 / 강에서 만난 사랑스러운 날들

 

산수유꽃 필 무렵

- 산동에서

 

꽃이 피어서

산에 갔지요

 

구름 밖에

깊은 삼십 리

 

그리워서

눈 감으면

 

산수유꽃

섧게 피는

꽃길 칠십 리.

 

 

모든 별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머리칼을 지녔는지

난 알고 있다네

그 머리칼에 한 번 영혼을 스친 사람이

어떤 노래를 부르게 되는지도.

 

눈오는 밤에 춘향전을 읽다

 

눈오는 밤에

完版本 춘향전을 읽는다

찹쌀떡 사시오

찹쌀떡 사시오

거칠게 새겨진 목판활자

사이로 스며든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풀피리소리만 같다

날이 새면 경칩

옥문에서 풀려난 춘향이 앞장세우고

조선팔도 금수강산 유람 나서리.

 

칠석날

 

우리 할머니

채송화 꽃밭에서

손금 다 닳아진 손으로

꽃씨 받으시다가

 

이승길 구경 나온

낮달 동무 삼아

하늘길 갔다

 

반닫이 속

쪽물 고운 모시적삼도

할머니 따라

하늘길 갔다.

 

묵언 1

- 소금밭에서

 

한 고독이

한 고독을 눌러 죽이고

새로운 고독이 태어납니다

그러한 때

나는 패배자가 된

고독의 옆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승리자가 된 고독의

빛나는 웃음도 볼 수 없습니다

 

한 고독이

한 고독을 눌러 죽이고

서러운 고독이 태어납니다

그 빛나는 탄생의 신비 앞에서

한 햇빛이

다른 햇빛을 돌로 쳐 죽이는

끔찍한 모습을 만나기도 합니다.

 

나무

- 연화리 시편 1

 

숲속에는

내가 잘 아는

나무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나무들 만나러

날마다 숲속으로 들어갑니다

제일 키 큰 나무와

제일 키 작은 나무에게

나는 차례로 인사를 합니다

먼 훗날 당신도

이 숲길로 오겠지요

내가 동무 삼은 나무들을 보며

그때 당신은 말할 겁니다

이렇게 등이 굽지 않은

言語들은 처음 보겠구나

이렇게 사납지 않은

마음의 길들은 처음 보겠구나.

 

누란

- 연화리 시편 3

 

내가 처음 그대를 만난 곳은

사막 한가운데였습니다

돈황 버스 정류장 대합실에서

뜨거운 쟈스민차 한 잔에 마른 빵을 찍어 먹었습니다

바로 그때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났지요

 

네가 찾는 것은 이 세상에 단 한 군데밖에 없지

 

사랑하는 이여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가슴이 얼마나 설레였는지

당신은 모릅니다

삶과 죽음이 영원히 교차되지 않는 땅

영혼과 육체의 핍박이 한 번도 이뤄지지 않는 곳

사랑하는 이여 오늘도 나는

樓蘭으로 가는 모래밭 길을 걷고 있습니다.

 

나뭇잎 배

- 연화리 시편 4

 

강으로 가는

길목에서

매일 나뭇잎 배

하나씩을 띄웠습니다

 

나뭇잎 배에

나는 내 이름이나

영혼의 흔적 같은 것을

새기지 않습니다

 

어쩌다

당신이 내 배를 발견하곤

말하겠지요

난 너를 알아

네가 만든 이 작은 배도.

 

하늘의 춤

- 연화리 시편 7

 

당신으로부터

초록빛 만년필과

초록 빛깔의 잉크 한 병

선물 받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樹液이 적신

들판 저 멀리

눈부신 초록빛의 시 한 편

쓰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원고지를 남길 적마다

내게 하늘의 손을 주겠지요

그 손을 잡고 싶어요

당신이 내게 보낸 깃털 같은 그리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아늑하고 크낙한 하늘의 춤을 추고 싶어요.

 

산수유나무 아래서

- 연화리 시편 8

 

꽃뱀 한 마리가

우리들의 시간을 몰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바람이 보라색과 흰색의 도라지 꽃망울을 차례로 흔드는 동안

꼭 그만큼의 설레임으로 당신의 머리칼에 입맞춤했습니다

그 순간, 내 가슴 안에 얼마나 넓은 평원이 펼쳐지는지

얼마나 아름다운 색색의 꽃들이 피어나는지……

사랑하는 이여, 나 가만히 노 저어

그대에게 가는 시간의 강물 위에 내 마음 띄웁니다

바로 곁에 앉아 있지만

너무나 멀어서 먹먹한 그리움 같은

언제나 함께 있지만 언제나 함께 없는

사랑하는 이여,

꽃뱀 한 마리 우리들의 시간을 물고 어디론가 사라져 돌아오지 않습니다.

 

민들레 꽃씨들은 어디로

- 연화리 시편 9

 

그날

당신이 높은 산을

오르던 도중

후, 하고 바람에 날려보낸

민들레 꽃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하릴없이

무너지는 내 마음이

파, 하고 바람에 날려보낸

그 많은

민들레 꽃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기다림

- 연화리 시편 10

 

이른 새벽

강으로 나가는 내 발걸음에는

아직도 달콤한 잠의 향기가 묻어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산자락을 타고 내려온 바람 중

눈빛 초롱하고 허리통 굵은 몇 올을 끌어다

눈에 생채기가 날 만큼 부벼댑니다

지난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낡은 나룻배는 강둑에 매인 채 출렁이고

작은 물새 두 마리가 해 뜨는 쪽을 향하여

힘차게 날아갑니다

사랑하는 이여

설령 당신이 이 나루터를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다 해도

내 기다림은 끝나지 않습니다

설레이는 물살처럼 내 마음

설레이고 또 설레입니다.

 

고등어장수

- 연화리 시편 11

 

어느 날

강변 내 오두막집 앞에

한 고등어장수가 닿았습니다

먼 바다에서 온 그의 고등어들은

소금에 잘 절어 파랗게 빛났습니다

고등어 값은 너무 비쌌답니다

난 이렇게 말했지요

왜 고등어 값이 쌌다가 비쌌다가 그러지요?

먼 바다에서 온 고등어장수가

내게 말했답니다

당신 제일 가까운 곳의 사람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하면서

먼 바다 고등어의 값을 어떻게 셈하겠소?

 

수제비죽

- 연화리 시편 12

 

어제 저녁엔 수제비죽을 쑤었습니다

내 작은 오막살이 가득 멸치국 내음 가득 찼습니다

이 맛있는 내음 함께 맡아줄 이 없어 조금 서운했습니다

그때 한 나그네가 집 앞에 이르렀습니다

마중을 나간 내게 나그네가 말했답니다

"이 집에서 나는 향기는 처음 맡는 것입니다"

나는 그를 상석에 앉히고 한 대접 수제비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말했지요

"神이시여, 이 모든 향기가 그대의 은총입니다"

그가 나에게 물었답니다

"그대는 어떻게 나의 이름을 부르는 이

이 지상엔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神이시여, 내 그리운 그 사람 외에

또 다른 이름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 이름입니다."

 

雪蓮

- 연화리 시편 15

 

히말라야 산맥에 오르면

눈 속에 피는 연꽃이 있습니다

나 그대 위하여

그 연꽃이 되겠습니다.

 

그리운 폭우

- 연화리 시편 16

 

어젠 참 많은 비가 왔습니다

강물이 불어 강폭이 두 배도 더 넓어졌답니다

내 낡은 나룻배는 금세라도 줄이 끊길 듯 흔들렸지요

그런데도 난 나룻배에 올라탔답니다

내 낡은 나룻배는 흙탕물 속으로 달렸습니다

아, 참 한 가지 빠트린 게 있습니다

내 나룻배의 뱃머리는 지금 온통 칡꽃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폭우 속에서 나는 종일 꽃장식을 했답니다

날이 새면 내 낡은 나룻배는 어딘가에 닿아 있겠지요

당신을 향한 내 그리움의 지름길은 얼마나 멀고 또 험한 지……

사랑하는 이여,

어느 河上엔가 칡꽃으로 뒤덮인 한 나룻배가 얹혀 있거든

한 그리움의 폭우가 이 지상 어딘가에 있었노라

가만히 눈감아줘요.

 

꽃을 드리는 이유

- 연화리 시편 17

 

끝없이

정말 끝없이

여기가 천국의 끝이기나

한 것처럼

오만해질 것

 

그리하여

어느 날

눈 화안하게 트여 오는

순정한 지평 하나를 볼 것.

 

타클라마칸 사막

- 연화리 시편 18

 

버스를 타고 끝없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달리다 보면

차창 밖 어디에고 신기루 피어납니다 오아시스 마을

지나온 지 불과 이십 리 지도에는 앞으로 하룻길 더

달려야 새 오아시스 마을에 이른다고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평선 어디에건 오아시스 마을 자리하지

않은 곳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 향한 내 마음이

신기루와 다를 바 전혀 없습니다 저 광활한 사막

끝없이 펼쳐진 모래 언덕, 그 어디에도 그대 향한 내

그리움 스며들지 않은 곳 없습니다.

 

무지개를 위하여

- 연화리 시편 19

 

영혼은 어디에 있어요?

영혼의 강은 찾을 수 있어요?

영혼도 숨을 쉬나요?

영혼의 날개를 본 적 있어요?

그걸 좀 보여주세요

 

당신의 가슴에서

내 가슴에 이르는 저 기나긴

다리의 이름은 무엇인지요?

색색의 꿈으로 빚어놓은

저 섬세한 바람의 술렁거림은 무엇인지요?

 

한 번도 본 일이 없고

한 번도 꿈꾼 적 없으면서

그냥 그렇게 가슴에 와 부서지는

저 그리운 빛들의 축제는 또

무어라고 부르지요?

 

참으로 오만하고 우아한 열정

- 연화리 시편 20

 

빛살 터지는

강변을 거슬러 오르며

나는 내 언어의

금속세공업자가 됩니다

 

밟히는

모래 한 알 한 알마다

참으로 오만하고 우아한 열정이라

새겨 넣을 겁니다

떨어지는 빛살 한 올 한 올마다

꼭 그렇게 새겨 넣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하늘의 찬란한 기술을

다 익혔을 때

당신이 벗은 발로 내게 찾아오던

그날의 긴 설레임과 환희를

금빛의 강물 위에 새길 것입니다.

 

쟈스민차

- 연화리 시편 21

 

내가 처음 쟈스민차를 마신 곳은

돈황의 사막이었습니다

나는 돈황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쟈스민차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이미 당신을 깊게 사랑한 것은 아니었던지요

돈황

그 이름 속에 쟈스민 향기와 같은

당신의 향기가 스며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정말 알 수 없었답니다.

 

노란 꽃

- 연화리 시편 22

 

그 꽃의 이름은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높은 산으로 가는 길목에 앉아

호박죽 하나로 그리운 허기를 지우고 있을 때

우리 눈앞에 그 노란 꽃들 나타났습니다

산뻐꾸기가 울고 어디선가

하얀 나비떼들이 찾아왔습니다

너무나 깊게

당신의 무릎 위에

내 영혼을 눕히고 싶었습니다

바람이 일고

노란 꽃들이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하얀 나비떼들이 팔랑팔랑

바람 속을 날았습니다

내 가슴속에

함께 춤추고 싶은 꽃의 이름이 있습니다

눈부시게 노오란 그 꽃의 이름은 당신에게조차

말할 수 없습니다.

 

하늘의 나무

- 연화리 시편 23

 

긴 여행 끝에

우리는 한 포구에 닿았습니다

마실 물과 먹을 것이 다 떨어진

우리들의 낡은 배는

포구의 잔 불빛에도 자꾸만 흔들렸습니다

마을의 불빛과 고깃배들의 불빛이

싸리꽃처럼 곱고 아름다웠으므로

우리는 배고픔도 잊고

그 꽃송이들을 세기 시작했습니다

한 차례 흔들면 우수수 쏟아질 듯

하늘의 나무에 무수한 별들이 매달렸습니다

인간의 한 사랑이

8만 4천 년을 적신다는

그 땅의 이름은 무엇인지요?

얼마나 더 깊은 사랑을 만나야

그리운 그 바닷가에 닿을 수 있나요?

 

촛불

- 연화리 시편 24

 

사랑하는 이여

 

그대 산 너머 떠날 때

내게 촛불 하나 주었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밝히라는 따뜻한 言語인가요

사랑하는 이여 오늘밤

은하수 너머 당신이 사는 먼 마을까지

촛불 하나 들고 끝없는 하늘길 오르내리는

사내 하나 있습니다.

 

소나기

- 연화리 시편 25

 

저물 무렵

소나기를 만난 사람들은

알지

누군가를 고즈넉이 그리워하며

미루나무 아래 앉아 다리쉼을 하다가

그때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본

사람들은 알지

자신을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격정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이를 속인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분노라는 것을

그 소나기에

가슴을 적신 사람이라면 알지

자신을 속이고 사랑하는 이를 속이는 것이

또한 얼마나 쓸쓸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가을의 시

- 연화리 시편 26

 

오후 내내

나룻배를 타고

강기슭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당신이 너무 좋아하는 칡꽃 송이들이

푸른 강기슭을 따라 한없이 피어 있었습니다

하늘이 젖은 꿈처럼 수면 위에 잠기고

수면 위에 내려온 칡꽃들이

水深 한가운데서

부끄러운 옷을 벗었습니다

바람이 불고

바람이 불어가고

지천으로 흩날리는 꽃향기 속에서

내 작은 나룻배는

그만 길을 잃고 맙니다.

 

백합

- 연화리 시편 27

 

당신이 고통으로 흔들리는 그 순간마다

내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서

백합 한 송이 피어납니다

 

당신이 주체할 수 없는 정신의 방황으로

아름다운 긴 머리칼마저 흐트러뜨릴 때

내 마음의 뜨거운 골짜기에서

진실로 순결한 백합 한 송이 피어납니다

 

어느 날

당신은 나를 떠나겠지요

내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찬란한 바다

모든 파도가 슬픔으로 술렁이는

그날도 내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

백합 한 송이 피어납니다.

 

소년

- 연화리 시편 28

 

소라껍질을 귀에 대면

큰 도시의 시장이나 지하철 안에서도

바다 소리가 들려

어느 날 당신이 내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 바다 소리 들으러

소라고둥 하나 들고

마음의 먼 도시로 떠나가는

소년 하나 있습니다.

 

타지크스탄

- 연화리 시편 29

 

낡은 라다 승용차를 타고

나는 눈 덮인

높은 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밤은 먼 도시의 불빛들을

페르가나산 보석으로 치장하여 줍니다

지금부터 2,600년 전 한 인도 사내는

6년 동안 이 지상의 불빛들을

雪山 위에서 헤아렸습니다

그대여

내가 그대를 위하여

오르는 산의 높이는 불과 5,400미터입니다

그런데도 오르기가 너무 힘이 듭니다

오르다가, 산 아래 불빛들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나는 그만 그 중의 하나를 붙잡고

잠이 들고 싶기도 하답니다.

 

- 복종, 연화리 시편 30

 

밥을 먹다가

바로 앞 당신 생각으로

밥알 몇 개를 흘렸답니다

왜 흘려요?

당신이 내게 물었지요

난 속으로 가만히 대답했답니다

당신이 주워 먹으라 하신다면 얼른

주워 먹으려구요.

 

연꽃잎 우산

- 연화리 시편 31

 

강물이 고요한 목소리로 흐릅니다

바람이 산비탈을 따라 느릿느릿 내려오는 모습도 보입니다

뱃사공은 어느 산자락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날개가 하얀 큰 새가 모래사장을 따라 내려가고 있습니다

작은 빗방울들이 강물 위에 꽃맨드라미를 지피고 갑니다

이러한 날 당신은 중앙아시아의

어느 도시를 연둣빛 우산과 함께 걷고 있겠지요

즐거워하며 팔짱을 끼고 인도의 어느 꽃가게 앞이나

이집트의 古樂器店 앞도 기웃거리겠지요

난 당신의 그런 모습도 보기 좋답니다

언젠가 당신이 내게 찾아오는 날

난 당신에게 연꽃잎으로 만든 우산 하나 펼쳐 드릴 겁니다

그때 당신이 내게 어떤 표정을 지을 건지

가만히 생각해보는 산자락에 비는 그대로 내립니다

 

수선화 핀 언덕

 

내 나이

스물한 살이었을 때

 

강가의

나무에 앉아

나를 바라보던 새

 

수선화 핀

언덕을 넘어가자고

 

수선화 핀

언덕을 차마 넘어가자고.

 

선유도

 

섬과

섬 사이

새가 날아갔다

보라색의 햇살로 묶은

편지 한 통을 물고

 

섬이 섬에게

편지를 썼나 보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