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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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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2'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2.02 2015-014 명화의 거짓말 - 성서 편
  2. 2015.02.02 2015-013 만인보 ⑧

2015-014 명화의 거짓말 - 성서 편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2014, 북폴리오

 

 

대야도서관

SB101475

 

654.23

나872ㅁ

 

"성서는 기묘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거침없고 지루할 틈 없는 나카노 교코식 명화 읽기

 

권위와 편견을 버려라, 그리고 즐겨라!

도발적인 호기심과 흥미로운 해석으로 가득 찬 성서 이야기

 

서양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미술 감상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나카노 교코 교수의 매혹적인 명화 해설서 <명화의 거짓말> 그 두 번째 이야기. 서양 문화의 기저를 이루는 영원한 베스트셀러. 그리스신화에 이어 이번에는 성서를 다룬다. 천지 창조, 아담과 이브,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담은 구약에서부터 수태고지와 세례자 요한,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최후의 만찬 등을 다룬 신약 이야기를 주제로 한 명화를 훑으며 성서의 주요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소개한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와 <E. T.>의 상관관계, 성모 마리아의 수태고지에 대한 다빈치의 숨은 견해,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에게 경배를 보내는 장면에 자신과 후원자들을 타임슬립 시킨 보티첼리,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모아졌던 욕망의 시선을 통해 읽는 서머싯 몸의 소설 <비> 등, 풍성한 이야기의 향연이 펼쳐진다.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종교화를 즐기고 싶은 사람, 혹은 종교화를 통해 성서와 역사와 화가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이교도가 보는 성서에는 '괴상한' 부분이 잔뜩 있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은 기묘한 이야기를 과연 화가는 이런 식으로 궁리해서 표현했던 것이구나, 하는 걸 알아차리면 갑자기 그 그림은 매력이 더 커질 것입니다._<저자 후기> 중

 

나카노 교코 中野京子

와세다 대학에서 독일 문학과 서양 문화사를 강의하고 있으며 다양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나는 꽃과 나비를 그린다 - 바로크 시대의 곤충화가 메리안의 일생(사이언스 북스)』『무서운 그림 1 · 2 · 3(세미콜론)』『무서운 그림으로 인간을 읽다(이봄)』『잔혹한 왕과 가련한 왕비(이봄)』『명화의 거짓말 - 그리스신화 편(북폴리오)』 등을 썼다. 서양 역사와 영화, 미술, 오페라, 뮤지컬 등 문화 전반을 종횡무진하는 독특한 시각의 미술 읽기로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다.

'명화의 거짓말' 시리즈는 서양 문화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고전이자 숱한 명화의 주제가 되어온 '그리스신화'에 이어 이번에는 '성서 이야기'를 다룬다. 역사는 물론, 영화, 광고, 뮤지컬 등 광범위한 문화적 지식을 곁들인 도발적인 질문과 해석을 통해 명화에 씌워진 엄숙하고 권위적인 이미지를 벗겨내고 독자들의 자유롭고 풍부한 감상을 유도한다.

 

나카노 교코 블로그 http://blog.goo.ne.jp/hanatumi2006

 

옮긴이 이연식

미술사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과정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일본의 우기요에浮世繪와 양풍화洋風畵에 대한 논문을 썼다. 학부에서는 그림을 그렸고, 현재 미술책 저술과 번역을 병행하며 미술사를 다각도에서 조명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미술 글쓰기를 주제로 강의도 하고 있다.

『미술영화 거들떠 보고서』『위작과 도난의 미술사』『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눈속임 그림』『아트 파탈』을 썼다. 옮긴 책으로는 『무서운 그림』(1권, 3권), 『맛있는 그림』 등이 있다.

 

진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아름답다. 하지만, 거짓 역시 그렇다.

- 랄프 왈도 에머슨

 

|목차|

 

성서에 나오는 이들

 

구약성서

코는 그만, 손가락으로 | 미켈란젤로 <아담의 창조>

지혜와 맞바꾼 영생 | 크라나흐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 / 마사초 <낙원에서의 추방>

인류 최초의 살인자 | 블레이크 <아벨의 시신을 발견한 아담과 이브> / 코르몽 <카인>

하늘까지 닿아라 | 브뤼헐 <바벨탑>

수수께끼를 내는 하느님 | 렘브란트 <이사악의 희생> / 카라바조 <이사악의 희생>

야곱보다는 시원시원한 에사오 | 빌만 <야곱이 꿈꾼 풍경> / 들라크루아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사랑이었을까? 루벤스 <삼손과 들릴라>

목을 든 미녀 | 알로리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들고 있는 유딧> / 젠틸레스키 <유딧과 하녀>

인더벌 :: 큰 죄는 일곱 개뿐? | 보스 <일곱 가지 대좌와 네 가지 종말>

 

신약성서

축복받았다고는 하지만 | 레오나르도 다빈치 <수태고지> / 로세티 <주님의 여종을 보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 브뤼헐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유명인과의 기념 촬영 | 알트도르퍼 <동방박사의 경배> / 보티첼리 <동방박사의 경배>

세례와 잘린 목 | 프란체스카 <그리스도의 세례> / 클림트 <유딧 Ⅱ <살로메>

제자들 | 카라바조 <성 마태오의 소명>

마리아 막달레나 | 티치아노 <성모 마리아 막달레나> / 크리벨리 <마리아 막달레나>

최후의 만찬 |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배신자의 입맞춤 | 조토 <예수를 배신함>

예수는 보았다 | 벨라스케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 티소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가 본 모습>

요한의 묵시록 | 뒤러 <묵시록의 네 기사들>

위대한 아들, 위대한 어머니 | 티치아노 <성모 승천>

심판의 날이 온다면 |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저자 후기

역자 후기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는 피렌체에서 몰락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각, 회화, 건축에서 수많은 걸작을 남긴 르네상스의 거인이다. 생전에 이미 '신과 같은 미켈란젤로'라고 찬사를 받았지만 정작 본인은 스스로의 재능에 회의를 품고 줄곧 고뇌했다. 60대 무렵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불쌍한 사내다. 그렇게 뛰어난 구석은 거의 없다. 젊었을 적부터 성냥이라도 만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진심으로 한탄하고 있다.

덧붙여 아래 사진 속 바티칸 근위병의 기발한 패션 역시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는 설이 있다. 정말 대단하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아담의 창조』

1512년, 프레스코화, 280×570cm, 시스티나 예배당 소장(바티칸 시국)


- 12년에 걸친 복원 작업으로 화면의 밝은 색채가 되살아났다.

- 손가락과 손가락이 막 닿으려는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순간, 뒷날 여러 이미지에 인용되었다.

- 하느님은 흰 수염과 흰 머리의 위엄 있는 노인으로 그려졌다.

- 여기 여자가 이브라는 설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 하느님을 떠받치는 것처럼 보이는 날개 없는 천사.

- 고대 그리스 조각 같은 나체 표현

시스티나 예배당(바티칸 시국(市國))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1472~1553년)는 작센 공의 궁정화가로서 혜택받은 인생을 보냈다. 특유의 구불구불한 선으로 표현된 여성 누드의 차가운 관능미는 알프스 이북에서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는 루벤스가 그린 풍만한 여체와 마찬가지로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루카스 크라나흐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

1530년, 유화, 81×114cm,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오스트리아)


- 하늘에 둥실 떠 있는 하느님의 얼굴. 나쁜 짓을 했다는 사실을 숨기려 해도 결국 들키고 만다.

- 하느님의 명령으로 아담과 이브를 추방하는 이는 케루빔(지품천사智品天使)이다.

- 낙원은 우거진 수풀 속에서 동물과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곳.

- 나긋나긋한 몸을 배배 꼰 창백하고 여윈 여체는 크라나흐 그림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북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다.

- 화면 위쪽의 사과나무에 휘감긴 것은 상반신만 여자의 모습인 뱀이다. 당시에는 뱀을 종종 이런 모습으로 그렸다.


마사초(Masaccio, 1401~1428년)는 아깝게도 페스트로 요절했지만 르네상스 양식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마사초 『낙원에서의 추방』

1425~27년경. 프레스코화, 208×88cm,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브란카치 예배당 소장(이탈리아).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년)는 시류를 전혀 따르지 않는 화풍을 구사했기 때문에 생전에는 거의 인정받지 못했으나 20세기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환상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시(특히 시집 『무구의 노래Songs of Innocence)』로도 이름이 높다.

윌리엄 블레이크 『아벨의 시신을 발견한 아담과 이브』

1826년경, 템페라, 33×43cm, 테이트 갤러리 소장(영국)


- 카인의 이마에 '낙인'이 찍힌 순간. 미켈란젤로를 숭배했던 블레이크는 그를 따라 울퉁불퉁한 근육을 세심하게 묘사했다.

- 불온한 검은 구름, 쫓기는 듯한 어둑한 태양……, 광기가 감도는 괴이한 표현은 200년 전의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현대적이다.

- 깜짝 놀라 몸을 뒤로 젖힌 아담, 몸을 굽히고 슬퍼하는 이브, 길게 누운 아벨의 시체.

- 시체를 묻기 위해 삽으로 깨끗하게 파놓은 장방형 구덩이.


◐ 페르낭 코르몽(Fernand Cormon, 1845~1924년)은 프랑스 아카데미의 중견 화가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의 밑에서 반 고흐, 로트레크, 베르나르, 그리고 후지시마 다케지(藤島武二, 1867~1943년)가 공부했다고 한다. <카인>을 발표한 것은 알타미라 동굴 벽화가 발견된 다음 해인 1880년이다. 고고학의 대유행에 편승해 이 그림도 호평을 받았다.

페르낭 코르몽 『카인』

1880년, 유화, 380×700cm, 오르세 미술관 소장(프랑스).


◐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1525년경~1569년)은 출생 연도도 출생지도 불명으로, 수수께끼가 많다. 1551년에 오늘날 벨기에 안트베르펜 화가조합에 등록했던 것이 알려졌다. 그 뒤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귀국한 1555년부터 죽기 전까지가 천재성을 훌륭하게 꽃피워낸, 짧지만 풍요로운 기간이었다.

타로카드 '탑'

피터르 브뤼헐 『바벨탑』

1563년, 유화, 114×155cm,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오스트리아).


- 위층은 이미 생활공간이 되었다. 빨래가 널려 있고 나귀가 짐을 나르고 있다.

- 탑 여기저기서 붕괴가 시작되고 있다.

- 왕이 시찰하러 왔다. 지상의 신인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는 석공들.

- 인간의 욕망을 흡입하여 불길한 생물로 변해버린 탑. 구름을 뚫고 올라가고 있다.

- 브뤼헐의 시대에 사용되었던 갖가지 건축기계가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 당시 번창했던 안트베르펜의 항만 풍경


◐ 하르먼스 판 레인 렘브란트(Harmensz van Rijn Rembrandt, 1606~1669년)는 플랑드르의 루벤스와 나란히 17세기를 대표하는 네덜란드 화가, '빛과 그림자의 마술사', '영혼의 화가' 등의 별명을 갖고 있다.

하르먼스 판 레인 렘브란트 『이사악의 희생』

1635년, 유화, 193×132cm, 에르미타주 미술관 소장(러시아).


- 천사의 부드러운 손이 아브라함의 울툭불툭한 손을 붙잡는다.

- 아브라함의 손에서 떨어지는 칼, 날이 잘 선 것처럼 빛난다.

- 아브라함의 커다란 손이 아들의 얼굴을 뒤덮는 모습이 잔혹하고 폭력적으로 보인다.

- 희생양으로 죽을 운명을 받아들이고 저항도 하지 않는 이사악.

- 이사악은 자신이 지고 온 장작 위에 뒤로 묶인 채 눕혀졌다. 목을 단숨에 베이고 불에 태워질 판이다.


◐ 미켈란젤로 메리시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Caravaggio, 1571~1610년)는 극적인 명암 표현으로 후세의 화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이탈리아 화가. 강렬한 빛과 짙은 어둠의 콘트라스트를 종교화에도 끌어들임으로써 동시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성격도 과격해서 싸움을 하다가 사람을 찔러 죽이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 죽었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카라바조 『이사악의 희생』

1603년경, 유화, 104×135cm, 우피치 미술관 소장(이탈리아).


◐ 미하엘 루카스 레오폴트 빌만(Michael Lucas Leopold Willman, 1630~1706년)은 지금은 거의 잊힌 독일인 화가.

미하엘 루카스 레오폴트 빌만 『야곱이 꿈꾼 풍경』

1691년, 유화, 87×105cm, 베를린 미술관 소장(독일).


◐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 1798~1863년)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등 여러 걸작으로 알려진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생부는 당시의 유명한 정치가 탈레랑으로 알려졌다.

외젠 들라크루아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1857년, 프레스코화, 751×485cm, 생 쉴피스 교회 소장(프랑스).


- 울창하게 우거진 숲의 묘사, 주의 깊게 배치한 나무들.

- 뒷날 고갱도 같은 제목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들라크루아의 이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 안쪽에 그려진 사람들도 야곱의 일행이다. 야곱이 부자였음을 알 수 있다.

- 야곱의 종자와 노예들이 가축을 끌고 재물을 싣고 서둘러 간다.

- 천사가 오른팔로 야곱의 허벅지를 꽉 쥐고 있다. 뒤엉킨 양쪽은 호각지세로, 마치 춤을 추는 한순간을 정지시킨 것 같다. 샐리 포터 감독의 영화 <탱고 레슨>에서 댄서 두 사람이 이런 포즈를 취했다.


◐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년)가 이 그림을 완성한 것은 겨우 32세 때다. 의상의 질감과 어두운 그늘을 묘사하는 훌륭한 솜씨, 색채와 빛의 풍요로움, 인물 묘사의 적확함, 드라마틱한 순간을 잡아내는 솜씨는 천재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삼손과 들릴라』

1609~10년, 유화, 185×20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영국).


- 들릴라의 복잡하고 모호한 표정이 보는 이의 상상을 한껏 자극한다.

- 삼손이 지닌 괴력의 원천인 머리카락을 능숙한 손놀림으로 잘라내는 사내.

- 벽감에는 비너스와 그녀의 아들인 큐피드의 상이 놓여 있다.

- 삼손이 무력해지면 방으로 밀고 들어오기 위해 병사들이 문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다.

- 사랑하는 여인을 믿고 아이처럼 잠든 삼손. 들릴라의 손은 삼손의 등을 사랑스럽게 쓰다듬는다.


◐ 크리스토파노 알로리(Cristofano Allori, 1577~1621년)는 피렌체의 화가다. 거의 이 작품만으로 후세에 이름을 남긴 셈이다.

크리스토파노 알로리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들고 있는 유딧』

1613년, 유화, 139×116cm, 피티 궁 소장(이탈리아).


◐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1652년경)는 여자임에도 이탈리라 미술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고 왕후 귀족으로부터 많은 주문을 받았다. 그 뒤 그녀는 오래도록 잊혔다. 후세 미술사가들이 여자는 수준 높은 역사화를 그릴 수 없다는 편견에 사로 잡혀서 그녀의 작품 대부분을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그림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최근에 비로소 그녀의 재능이 알려졌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유딧과 하녀』

1614~20년, 유화, 114×94cm, 피티 궁 소장(이탈리아).


- 바구니 안에 홀로페르네스의 창백한 얼굴이 보인다. 천에 묻은 피가 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 하녀라기보다 동지 관계로 보인다.

- 무슨 소리라도 났는지 돌아보는 두 사람. 유딧은 "침착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하녀의 오른쪽 어깨에 손을 얹는다. 긴박한 순간을 포착했다.

- 어둠 속에 떠오른 유딧의 새하얀 가슴께는 에로틱하지만 삼백안의 옆얼굴은 늠름하다.

- 그림에 등장하는 검의 의미는 '정의'. 그녀의 살인은 정당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녀는 검을 마치 쓰바키 산주로(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쓰바키 산주로>의 주인공)처럼 느긋하게 어깨에 걸쳤다.


◐ 히로니뮈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년경~1516년)는 생년도 불명이고 삶도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살아 있을 때부터 작품은 인기를 누렸고 장례식 때는 지역의 명사로 대우받았다고 한다. 그가 죽은 다음 해 루터가 교회 문에 면죄부에 대한 질문장을 붙여 드디어 종교개혁의 막이 올랐다.

히로니뮈스 보스 『일곱 가지 대죄와 네 가지 종말』

1475~80년경, 유화, 120×150cm, 프라도 미술관 소장(스페인).


- 아래 그림부터 시계 방향으로 '분노', '질투', '탐욕', '폭식', '나태', '색욕', '교만'.

- 애초에는 둥근 테이블에 그려져 있었는데, 뒤에 지금의 모양으로 바뀌었다.

- 노란 홍채 한가운데 동공이 있고, 거기서 예수가 오른쪽 옆구리의 성흔을 내보이고 있다. 아래에는 "마음이여, 마음이여, 하느님이 보고 계신다"라고 쓰여 있다.

- 네 귀퉁이의 그림은 보스가 그린 것이 아니라 뒷날 다른 사람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년)는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의 거장으로 꼽힌다. <모나리자>가 너무도 유명해서 초상화를 여럿 그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작품 대부분이 종교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수태고지』

1472년경, 유화, 98×217cm, 우피치 미술관 소장(이탈리아).

 

- 낮은 돌담은 주변을 모두 막고 있지 않고, 길이 구불구불 밖에서 안으로 이어진다.

- 레오나르도 특유의 웅대한 원경

- 처녀성의 상징인 흰 백합을 들고 무릎을 꿇은 채 마리아를 축복하는 대천사 가브리엘.

- 흰 백합에 암술과 수술이 분명하게 나뉘어 그려져 있다. 레오나르도가 처녀 수태에 회의적이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하게 되는 부분.

- 마리아의 차림은 이처럼 붉은 옷에 푸른 망토가 릴반적이다. 붉은 옷은 희생의 피를, 푸른 망토는 하늘의 진실을 나타낸다고 해석된다.


◐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 1828~1882년)는 당시 화단이 라파엘로를 최고의 모범으로 삼았던 것에 반발하여 라파엘로 이전의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재평가해야 한다며 '라파엘 전파'를 결성했다. 이후 그는 점차 신비주의적인 작품을 내놓았다.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 『주님의 여종을 보라』

1849~50년경, 유화, 72×42cm, 테이트 갤러리 소장(영국).

 

◐ 피터르 브뤼얼은 스스로에 대해 말하지 않았던, 비밀로 가득한 화가였다. 농민의 생활 풍속을 많이 그렸지만 자신은 농민이 아니었다. 여러 지식인들과 교류했고 합스부르크가의 후원을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브뤼헐은 농촌에 대해 흥미로워하며 어리석고 무지한 농민을 지적으로 관찰했을 뿐, 합스부르크가를 비판했던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미술사가도 있다. 그려진 것 이상을 추측하는 것은 미술사로서의 해석이 아니라 사회학적 해석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리도 상상력이 빈곤할까. 카를 5세와 펠리페 2세의 치세 동안 플랑드르에서 종교상의 이유로 살해된 사람의 수가 10만이라고도 하고 15만이라고도 한다. 동포가 개미처럼 짓밟히는 것을 목격하면서 자신의 그림만 팔리면 된다고 생각했다면 브뤼헐의 그림이 이렇게나 수수께끼 같을 이유가 있을까? 애초에 누구나 금방 알아차릴 수 있게 압제자를 비판하는 그림을 그렸다가는 무사할 수가 없었다. 확증이 없는 암시와 은유를 교묘하게 작품에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구소련 체제의 동구권에서 SF소설이 흥했던 것처럼.

 

 

피터르 브뤼헐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1566년, 유화, 116×165cm, 벨기에 왕립미술관 소장(벨기에).

 

 

- 여관 벽에는 합스부르크가의 '머리 둘 달린 독수리 문장'이 달려 있다.

- 등록하러 모인 사람들.

- 돼지 방광을 자신의 몸만큼이나 크게 부풀리는 아이.

- 겨울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돼지를 죽이는 부모. 아버지가 목을 따고 어머니가 피를 프라이팬에 받고 있다. 피로 소시지를 만들 것이다.

- 톱을 어깨에 진 요셉과 나귀에 탄 성모 마리아가 마을을 지난다. 그녀는 앞으로 이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예수를 낳게 되는데 누구 한 사람, 세계가 뒤바뀔 전조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 허물어지는 고성(古城)과 그 앞쪽에 지어지는 새로운 집(화면 위쪽) 종교화에서 '구약'과 '신약'을 나타낸다.

 

◐ 알부레히트 알트도르퍼(Albrecht Altdorfer, 1480년경~1538년)는 16세기 독일의 화가다. 순수한 풍경화의 전통이 없었던 서양 회화에서 풍경을 주로 그린  선구자로 여겨진다.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 『동방박사의 경배』

1530~35년, 유화, 109×77cm, 슈테델 미술관 소장(독일).

 

◐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년)의 최고 걸작 <비너스의 탄생>과 <봄>도 메디치 가문과의 관계 속에서 나왔다. 피렌체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산드로 보티첼리 『동방박사의 경배』

1475년경, 템페라, 111×134cm, 우피치 미술관 소장(이탈리아).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가리킨다.

- 예수의 발에 손을 내밀고 있는 이는 메디치가를 발흥시킨 코시모, 이 그림이 그려질 무렵에는 이미 죽었지만 동방박사 역으로 등장했다.

- 폐가의 무너진 천장에서 성스러운 빛이 내려와 아기 예수를 축복했다.

- 예수와 마리아의 배후에 늙고 무시당하는 존재로서 성 요셉이 서 있다.

- 무리 지은 사람들 속에서 이 그림을 화가에게 주문한 사람이 이쪽을 보며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가리킨다.

- 메디치가의 비호를 받았던 화가 보티첼리가 관람객을 바라본다. 군상회화에 화가가 자화상을 넣는 것이 관례였다.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 1420년경~1492년)는 회화에 기하학의 필요성을 주장한 최초의 화가로 알려졌다. 만년에는 『투시화법에 대하여』 같은 책도 썼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그리스도의 세례』

1448~50년경, 템페라, 167×116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영국).

 

- 일순 흰 구름인가 착각하게 하는 성령의 흰 비둘기.

- 조개껍데기로 예수의 머리에 물을 끼얹는다.

- 돌멩이투성이인 팔레스티나가 아니라 화가 자신의 고향 토스카나를 배경에 그렸다.

- 세례 요한은 무슨 옷을 입었는지가 『신약성서』에서 유일하게 언급된 인물이다. 낙타털 가죽과 가죽 끈이 그것이다.

- 다음에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이 서둘러 옷을 벗고 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뒤에 잇는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년)는 걸출한 개성으로 세기말 미술의 인기 화가가 되었다. 아름답고 화려한 작품은 합스부르크가 말기의 빈이라는 도시에 딱 맞았다.

구스타프 클림트 『유딧 Ⅱ(살로메)』

1909년, 유화, 178×46cm, 베네치아 근대미술관 소장(이탈리아).

미켈란젤로 메리시 카라바조 『성 마태오의 소명

1600년, 유화, 322×340cm,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소장(이탈리아).

 

- 천상의 빛을 받아 창틀이 또렷한 십자가 모양을 나타낸다.

- 수염 기른 남자는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 걸까, 자신일까, 아니면 고개를 숙인 청년일까? 예전에는 수염 기른 남자를 마태오로 추정했다.

- 한눈팔지 않고 돈을 세는 청년. 예수의 손가락은 그를 가리키고 있는 걸까? 즉 이 청년이 마테오인 걸까?

- 화려하게 차려입은 청년들은 예수가 살던 시대가 아니라 카라바조가 살던 16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패션을 따르고 있다.

- 예수의 손이 만든 이 모양이 익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에 나오는 하느님의 손이다.

- 등을 이쪽으로 향한 사도 베드로.

 

◐ 베첼리오 티치아노(Vecellio Tiziano, 1487년경~1576년)는 장대한 화풍과 화려한 색채로 온 유럽의 궁정에서 환영을 받았던, 베네치아파 최대의 천재 화가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뒷날 옷을 입은 비전도 두 점 나왔다.

베첼리오 티치아노 『성녀 마리아 맏달레나』

1533년경, 유화, 84×69cm, 피터 궁 소장(이탈리아).

 

- 마리아 막달레나의 어트리뷰트인 향유 항아리가 왼쪽 아래에 분명하게 그려져 있다.

- 수없이 그려진 마리아 막달레나 그림 중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하늘을 우러러보는 이 아름다운 그림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옷을 입은 모습을 비롯해 여러 버전이 제작되었다.

- 예수가 승천한 뒤 마리아 막달레나는 동굴에서 기도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이 그림도 그런 모습을 그린 것이다.

- 손과 손가락의 묘사는 무척이나 어렵다. 화가에 따라서는 손을 그리는 경우와 그리지 않는 경우에 따라 초상화의 가격에 차이를 두기도 했다. 천재 티치아노의 필치가 완벽하다.

- 빛나는 머리카락으로 알몸을 가린다(가리는 듯 가리지 않는 듯).

 

◐ 카를로 크리벨리(Carlo Crivelli, 1435년경~1494년경)는 보티첼리와 동시대의 화가다. 예리한 선묘와 과도한 장식성이 특징이다.

카를로 크리벨리 『마리아 막달레나』

1477년경, 템페라, 152×49cm,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소장(네덜란드).

 

◐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빈치 마을의 레오나르도'라는 의미다. 오래도록 미술서에는 '다빈치'라고 표기되었지만 이는 그저 '빈치 마을'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레오나르도'라고 쓰는 책도 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1495~97년경, 유화 · 템페라, 460×880cm,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소장(이탈리아).

 

- 복음 기자 요한.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는 여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예로부터 요한은 중성적인 청년으로 묘사되어왔다.

- 후광은 그리지 않았지만 창의 위쪽 벽틀이 반원 모양으로 예수의 신성을 나타낸다. 아랫부분에는 예전에 이웃한 주방으로 통하는 문이 설치되었다. 예수의 다리 부분이 그려져 있었을 테지만 이제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 주의 깊은 세정 작업으로 식탁의 음식이 쾌 잘 보이게 되었다.

- 오른손에 단검을 든 베드로. 만찬 뒤에 겟세마니 동산에서 적의 귀를 자른 에피소드에 근거한 표현이다.

- 은화 주머니를 쥐고 있는 모습으로, 배신자 유다임을 알 수 있다.

 

◐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6년경~1337년)는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다. 그때까지 평면적이고 형식적이었던 종교화에 인간적인 감정을 풍요롭게 불어넣었다. 같은 시대의 시인 단테도 그를 당대 최고의 화가라고 칭송했다.

조토 디 본도네 『예수를 배신함』

1304~06년, 프레스코화, 150×140cm, 스크로베니 예배당 소장(이탈리아).

 

- 베드로가 예수의 뒤로 다가가는 적의 귀를 자르는 장면. 귀가 팔랑 떨어지고 있지만 본인은 아직 아픔도 느끼지 못한다.

- 황색은 긍정과 부정 양쪽의 상징이다. 전자는 아폴론으로 대표되는 빛나는 태양의 색, 후자는 '배신자의 색', 유다에게 걸맞는 색이다.

- 횃불이 밤하늘을 비추는 가운데 수많은 곤봉과 창이 뒤엉킨 모습이 긴박감을 자아낸다.

- 예수를 잡으러 온 신전 측의 행사들과 종자들.

- 조토는 인간의 내면을 표정으로 그리려고 했다. 고귀한 예수와 야비한 유다의 대비.

 

◐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 1599~1660년)는 스페인 합스부르크가의 황혼을 유례가 드문 필치로 후세에 남겼다. 걸작 <라스 메니나스>는 프라도 미술관의 그야말로 성유물이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1631~32년경, 유화, 248×169cm, 프라도 미술관 소장(스페인).

 

◐ 제임스 티소(James Tissot, 1836~1902년)는 인상주의 시대의 풍속화가였는데, 50세 무렵 성당에서 예수의 환영을 본 뒤로 종교화를 여럿 그렸다.

제임스 티소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가 본 모습』

1886~94년, 과슈, 26×23cm, 브루클린 미술관 소장(미국).

 

- 붉은 망토를 걸치고 투구를 쓴 로마 병사.

- 성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전통적으로 책형도에 묘사되는 복음 기자 요한.

- 십자가에 매달린 이는 마리아 막달레나일 것이다. 그녀의 가슴께에 그려진 못 박혀 피투성이인 예수의 양발과 발받침.

- 가운데에서 살짝 왼쪽에 보이는 검은 굴은 골고다 언덕에 있던 매장소. 동굴을 그대로 이용했다.

- 저마다 나름의 생각을 갖고 모여든 구경꾼들이 멀리서 둘러싸고 있다.

- 화려하게 차려입은 예루살렘의 사제장들. '구세주라면 먼저 자신을 구해보라'며 조소했다는데, 이 그림에서는 그저 조용히 올려다보고 있다.

- 화면 중앙에는 성모마리아와 두 여자 신도가 있다(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 집행인이 준비한 마비약이나 진통제가 들어 있는 항아리.

 

◐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1471~1528년)는 이 작품을 발표하고 나서 독일뿐 아니라 온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보다 한 해 앞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완성되었지만 목판화라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해서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쪽이 훨씬 널리 알려졌다. 화면 가운데 아랫부분에 뒤러의 사인이 들어 있다(대문 모양에 D가 들어가 있다).

알브레히트 뒤러 『묵시록의 네 기사들』

1498년경, 목판화, 39×28cm, 개인 소장.

 

 

- 선악을 재는 저울.

- 흰 말을 타고 활을 든 '정복자' 혹은 '역병'(오른편 끄트머리), 붉은 말을 타고 검을 든 '전쟁' 혹은 '기근'(중앙0, 검은 말을 타고 저울을 든 '기근' 혹은 '전쟁'(왼편).

- 창백한 푸른 말을 타고 쇠스랑을 든 '죽음'. '죽음'을 따라오는 '저승'이 사교를 집어삼킨다.

- 사람들은 그저 죽임을 당할 뿐.

 

◐ 베첼리오 티치아노는 진정한 천재의 표본으로 젊었을 때부터 이미 완벽한 기량을 지니고 있었다. 이 그림을 완성한 것도 겨우 서른 살 무렵이었다. 베네치아의 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 수도원의 제단용으로 주문된 이 그림은 젊은 티치아노의 명성을 공고히 하고, 그 천재적인 재능을 온 유럽에 떨치게 해준 기념비적인 대작이다.

베첼리오 티치아노 『성모 승천』

1516~18년, 유화, 690×360cm, 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 수도원 소장(이탈리아).

 

- 비상하는 하느님을 이런 각도에서 그리면 위엄이 약간 떨어진다.

- 푸른 망토를 펄럭이며 기쁨에 겨워 양팔을 벌리고 하느님이 거하신 곳으로 올라가는 성모마리아.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 귀여운 아기 천사들이 나르는 구름은 그림 위쪽의 반원에 보태어 원형을 만들고, 그 중심에 마리아의 얼굴이 들어오도록 구성되었다.

- 하늘로 끌어올려지는 성모를 보며 기뻐하는 신도들.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는 동시대 사람에게 '신 같은 사람'으로 불린다. 그런 그에게도 콤플렉스가 있었다. 젊은 시절 친구와 다투다 코를 맞아 찌부러진 뒤로, 외모에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르네상스라는 시대 자체가 천재에게도 외관의 아름다움을 요구했고, 3대 거장 중 다른 두 사람, 라파엘로는 천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잘생긴 여성 킬러, 레오나르도도 외모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다. 그런데 '나는 왜'라고 생각했던 걸까? 이 그림 속 가죽에 그려진, 짐짓 뒤틀린 자화상은 자학의 결과라고 한다(정말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최후의 심판』

1536~41년, 프레스코화, 1440~1330cm, 시스티나 예배당 소장(바티칸 시국).

 

- 예수를 둘러싼 사도, 성인, 예언자, 대사교들.

- 화면 맨 위쪽에 엄숙하게 정좌했던 여태까지의 도상과는 달리 이 그림 속의 예수는 근육이 우람한 신체를 드라마틱하게 움직이고 있다. 곁에 있는 성모의 자태도 의미심장하다.

- 열두 사도 중에서 산 채로 가죽이 벗겨져 순교한 성 바르톨로메오. 손에든 가죽에 보이는 비참한 얼굴은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이라고 한다.

- 날개 없는 천사들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려는 죄인들을 무자비하게 주먹으로 때리고 있다. 화면 중앙에는 천사들이 최후의 심판을 알리는 나팔을 분다.

- 지옥의 판관 미노스는 몸에 뱀을 감고 있다. 미노스의 얼굴은 미켈란젤로에 적대적이었던 비아조의 얼굴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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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5-013 만인보 


高銀

2006,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796


811.6

고67만  8


창비전작시


나는 고은의 『만인보』를 읽으면서 인간에 대한 종교적 연민을 배운다. 나는 사람의 삶의 형태에 따라서 어느 쪽인가 하면 사람과 미움의 마음이 분명한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찌들어진 운명의 땅에 태어나 온갖 삶의 형태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사라져간 인간들에 대해서 사랑이나 미움보다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다만 『만인보』를 읽음으로 말미암아서 나 자신이 인간과 삶에 대해서 더욱 경건해지는 것만으로도 『만인보』와 그 작가 고은에 대해서 감사한다.

- 한양대 교수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이영희

 

일찍이 발자끄는 빠리의 호적부와 경쟁하겠다고 호언히였다. 뛰어난 소설가라면 모름지기 이만해야 한다. 그런데 한 시인이 있어 우리 민족의 호적부와 겨루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웠다. 고난으로 축복받은 이땅에서 살아갔던 평균적 인물들의 눈부신 삶과 탁월한 역사적 개인들의 평균적 삶의 자태를 교직한 『만인보』에서 시인은 문득 일천 강물 위에 은빛 도장을 찍는 달빛이 되어 독자들을 저 망망한 민중사의 바다로 인도한다. 소도둑과 혁명가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깨달음을 백과사전적 전개 속에서 추구하는 『만인보』는 진실로 민족서사시적 위엄을 스스로 갖추고 있다.

- 문학평론가 최원식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머리노래 금강 / 이름 몇 백 / 외할머니 오랜 동무 / 탁  류 / 장항 부두 1 / 순동이 / 장항 기생 / 굴뚝님 / 대천역 / 장항 부두 2 / 대천 이문구 / 나물장수 성산댁 / 봉림이 / 읍장 신중헌 / 짝 / 옛 외가 / 순남이 / 지서방 / 이관구 / 우영감 / 유재필 / 재필이 아버지 / 재필이 어머니 / 대천장 할망구 / 비인만 어부 / 구멍가게 나길섭 / 유영모 / 대천 노창길이 / 화양 정순이 / 행  인 / 솔리 추씨 / 송내 처녀 / 어린 거지 / 삼  절 / 은옥이 / 김돈중 / 제련소 소장 / 대천장 소장 / 대천장 임씨 / 인  월 / 대천 박형사 마누라 / 고봉산이 / 고서방 / 마서 나상하 / 화냥년 옥분이 / 나영순 / 복산이 아범 / 길  례 / 고  종 / 윤서방 / 삼남매 / 청라 도령 우활식 / 석봉이 / 복남이 누나 / 고광순 / 고광훈 / 본마누라 / 김수관씨 / 팔룡이 / 팔룡이 마누라 / 그  손 / 전상국 / 철  새 / 승철이 할머니 / 임  화 / 대복이 아버지 / 봉  자 / 두  로 / 다홍치마 / 뒷산 도사 / 서장옥 / 대천 호박 / 이한종 어르신 / 사모님 / 아기씨 / 머슴 석주 / 송광사 사미 / 귀먹짜가리 / 김학기 / 복산이 에미 / 상거지 노인 / 정순이 / 청라 배창덕 / 창덕이 마누라 / 채완묵이 / 대천장 여장군 / 여서방 / 창조 할아버지의 기절 / 창조 누나 / 박성춘 / 윤덕산 / 덕산이 마누라 / 그 움집 / 우군칙의 머리 / 대복이 아버지 / 대복이 어머니 / 부월이 / 앵  무 / 산업과장 / 보령군수 / 심봉사 / 심  청 / 부  채 / 최건달 전처 / 최건달 / 창호 큰어머니 / 귀동이 아버지 / 성삼문 / 창덕이 아들 형제 / 정  자 / 파리 부자 / 똥통쟁이 / 김암덕 / 신석공이 / 신석공이 마누라 / 신석공이 딸 / 신석공이 어머니 / 김주사 / 이먹고노장 / 대천동국민학교 돈선생 / 비인 염생원 / 삼거리 주모 / 상사병 / 화양 우희만 부부 / 원남이 아비 / 세 젊은이 / 권  율 / 만호 마누라 / 얌전이 / 장항 고진모 / 이발사 주백이 아비 / 주백이


순동이


흐린 물 금강 하류

장항제련소 굴뚝

그 굴뚝의 기나긴 연기 바다로 이어진다

누가 말했던가

조선에서 제일 적막한 장항읍 거리

이쪽에서 저쪽까지 한번 걸어가면 끝나는 거리

그 거리 어중간 국밥집 남창옥

술손님 밥손님 기다려보아야

하루 서너 패로

더 올 사람 없는 남창옥

한밤중 남포불 심지 줄여

불빛은 남겨두어야지

그 집 중노미 하루 하품 열 번

나이 서른이 넘어도

부여 고란사 중인가 땡초인가

계집을 흙 보듯 하고

그저 시키는 일

술청 닦고 쓸고 물 길어다 부을 따름


이 사람이 장항 토박이

이순동이

한산 이씨 순동이

옛날 옛적 고려 이색 이어서

정승 이산해 후손인데

이제 상밥집 중노니 신세라

제 고조할애비가 남인이면 어떻고

제 증조할애비가 농풀월이면 어떻단 말인가


남창옥 주인 마누라

불여우 마누라

이 닦을 때 소금 많이 쓰지 말라 하자

아예 순동이

모래 파다가

모래로 이 닦고 르르르르 헹구어내는데


그런 남창옥 잘되는 일 별로 없다

키우던 개도 슬슬 나가버린다


봉림이


그렇게 달밤에 박꽃 같더니

열다섯 살에

그 봉림이 단발머리

고무줄 줄넘기 멈출 줄 모르는

열다섯 살에


차령산맥이 강원도 오대산에서 비롯하여

원주 치악산으로 올라섰다가

그것이 경기 충청 서운산 흑성산 지나

차령 넘으면

청양 두메 이루다가

이윽고 보령 서천 들판을 건너뛰어

장항제련소 우뚝 솟아

그만 바다로 빠져버린다

그러나 거기서 끝장내지 못하고

다시 한번 솟아나

고군산 선유도 장자도 되어

거기에 동백꽃도 피는데


장항 선창가 봉림이 시집갈 때

시집가기 전날 밤

싱숭생숭

제련소 굴뚝에 대고

장항 선창가 고물상 딸 봉림이

얌전한 봉림이

제 아버지 친구가

서천군 문산면 봉림산 이름 따서

이름 지은 봉림이

다른 것은 그만두고

부디 부디 여드름만 없애주시오 하고 빌며

아버지 술 끊게 해주시오 하고 빌며

어둔 밤 눈물 흘리며 빌고 빌었다

그 여드름쟁이 봉림이


강바람인지 바닷바람인지 비단 같은 밤


순남이


금강 개펄 개흙 범벅으로

변변치도 않은 바지락 캐는 순남이

아버지가 글 배우면

화냥년 된다고

학교 보내지 않아

바지락 캐는 순남이

제 또래 아이들

책보 메고

딸깍딸깍 필통소리 내며

학교 파하고 오는 것 보아도

부러운 생각 눈꼽만치도 없이

개펄 비탈에 맨발 푹 빠지며

바지락 따개비

졸따개비 캐는 순남이


소원 하나

고군산 선유도

그 섬에 가보는 것

석양머리 불타는 바다 바라보며

어느새 저 혼자 캄캄한 처녀가 되어버린 순남이


은옥이


언제나 빨간 두 볼의 은옥이

1 · 4후퇴 때

경기도 연천에서 피난길 나섰는 데

의정부 지나

그만 부모가 폭격으로 죽어버리고

어린 은옥이 하나 살아나

제 이름 송은옥이만은 용케 붙들고

한강 건너

수원이라

천안이라

홍성 예산이라

이렇게 바닷가 대천까지 흘러오며

어느덧 시악시 꼴 박혔다

그 모진 고생으로

어설픈 초다짐밖에는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어느덧 무거운 시악시 꼴 박혔다

대천 복숭아 과수원 조만석이네 양녀로 들어가

키는 작으나

그 몸집 오동통하고 상냥하고

과수원의 고된 일

남정네 두 품이나 해내고


수문리 동네사람들

아이고 은옥이 좀 보아 은옥이 좀 보아

하고 이르던 시악시인데

그러나 이 고장이

충청도 잔반 땅이라

아무 막대기 하나 선 데 없이

그저 떠돌이로 온 은옥인지라

누구도 선뜻 데려가지 않았다

그런 신세라 워낙 은옥이도

늘 어린 시절 고향 그리워하며

시집을 가도

고향 총각한데 가겠다고 입버릇이었는데

어디 경기도 연천 포천이복사꽃 피던 춘색이던가

아직도 폿소리 포연 자욱한 싸움판이 아니던가


그래도 말이 씨 되어

그런 세월 지나서

휴전이라고

총소리 뚝 그쳤을 때

이때다 하고

은옥이 머릿수건 벗고

고향 달려가

실컷 울고불고

양친부모 허묘라도 써두고 나니

마침 총각 있어

만나자마자 성례 치르고

싸움 끝난 폐허에서

가시버시 되니

그렇게 시작하여

떡두꺼비 아들 낳아

그 아들 업고

친정 오듯

대천 수문리 과수원집에 와서

며칠 머물며

어린것한테

과수원 찬바람 마구 쏘이고 돌아갔다

 

대천 이씨네 사랑방 머슴들 입초시에는

으례 은옥이 방덩이가 올랐는데

누가 보기나 했나

그 박속 같은 방덩이

그 살살살 눈 녹는 방덩이

사철 안식교 구제품이나 걸치고

손등 터 구리셀린 바르지 않는 날 없으나

그 손등 손가락 가지런히 예쁘디예쁜 손가락

그 은옥이 방덩이는 고사하고

그 손가락도 이제 없다

 

자 포 떨어졌거든

졸장기라도 두어보아

어서

 

석봉이

 

전실 자식 남매 석봉이 석근이 앞세우고

석봉이 에미 재취로 들어와서

또 아들 낳으니

그게 원수지 어디 형제이겠는가

의붓아비야

남의 자식 꼴 못 보고

에미는 에미대로

전실 자식도 자식이요

새 자식도 자식인지라

 

그저 불 때면

매운 내에 눈물바람으로 날 저무는구나

 

이런 집구석에서 견디다가

석봉이는

제 누이 석근이 데리고

그놈의 집구석 뛰쳐나갔다

 

한사코 남의 집 중 노릇 따위는 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 좋더니

끝내 남의 호주머니에 잘도 드나들었다

 

석근아

이 오라비가

너 굶겨 죽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훔쳐온 돈 쏟아놓으면

단발머리 석근이가

그 돈 얌전히 팽기며 훌쩍거린다

 

오빠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여 !

 

이 계집애가 짜기는 왜 짜

 

팔룡이

 

무창포에서

헌 유자망이나 만지작거리다가

대천으로 온 팔룡이

여기 와서

무슨 대수가 있나

막벌이는 거지 사촌이기 십상이지

 

한 마리 용도 거추장스러운데

여덟 마리 용으로 이름 지어놓았으니

아이고

그놈의 용트림에 얽히고 설켜

길이 트인 적 없는

팔룡이

 

어느덧 세상을 제대로 보기 싫어하여

아이들도 질색이고

아이들 노래도 질색이고

이른봄 개나리 피어도

그 개나리 꽃가지 낫으로 쳐내버리고

 

어찌 이런 인간이 되었는지

세상과는 도무지 맞지 않은 사람

최팔룡이

남의 품 팔러 가서도

반품에 그냥 돌아와버리는 사람

딱도 한 사람 최팔룡이

 

정순이

 

관촌 이씨네 높다란 토방머리

오뚝 서서

비 온 끝

분주한 낙숫물 떨어지는 것

언제까지나 바라보는

열다섯 살 정순이

눈 흰창 어찌나 그리 깨끗한지

그 정순이 눈 한번 더 보고지고

열흘은 기쁘리라

 

어서 바람 불어라

내가 연 날려

그 정순이

하늘 드높이 떠오른 연 바라보도록

언제까지나 바라보도록

열흘 아니라 달포는 기쁘리라 아흐 정순이

 

부월이

 

대복이 누나 부월이

아무것 없어도

꼭 하나 손바닥 반절짜리 거울

낡아서

좀 벗겨진 거울

 

그 거울 하나하고 있으면

한나절 온데 간데 없지

시집가면

살림 한번 매섭게 해낼 부월이

 

어쩌다가 백분 사서 바르는데

그 곱돌덩어리

그 부스러기 빻아 바르는데

그것 혀끝에 닿으면

쉬어터진 개살구맛 그대로라

거울 속 얼굴 찡그렸다가 이내 편다

 

거울 보다가

아무도 없는데

제풀에 흠칫 놀라

거울 두고 일어나

재빨리 부엌으로 간다

솥에 물부터 붓고

아궁이에

축축한 것 넣고

어렵사리 불 피운다

건넛마을 감나무에서

감 툭 떨어진다

대복이네 집에야

무슨 감나무 있겠는가

 

부월이 숨겨둔 거울

캄캄한 거울

 

얌전이

 

그 외보조개 웃어 써먹어보지 않고

조만호 딸 얌전이

아니 조만호 딸이 아니라

조만호 마누라 딸 얌전이

머리 곱게 곱게 딴 가시내야

팔월 한가위

널 한번 드높이 뛰어오르지 않고

널뛰며 깔깔대는

동네 시악시들

그 말만한 시악시들 웃음소리 들으며

명절 다음날

어머니 앞에서

어머니 실 감는데

실타래 두 손에 걸어 풀어주누나

밥도 하루 두 끼면 되고

무엇 하나 군입 다시지 않고

우물에 가도

동네 아낙네 뜸할 때

얼른 가 물 길어 온다

그 넓고 밋밋한 이마에 땀방울 돋아

마늘밭

묵은 소매 거름도 혼자 준다

그래도 어머니는

늘 딸에 성이 안 차

아 배추밭 벌레 안 잡고 무엇 하였어

허나 어찌 한 몸에 두 가지 일이겠는가

그 말 들으며

기명 치고 나서

그때에야 남새밭으로 나가는 얌전이

누구 하나 쳐다본 일 없으매

정작 동네 어른도

다른 동네 사람이나 다름없이 낯설어라

까치 까마귀도 낯설어라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도 낯설어라

치마 곱다랗게 기워 입은

열여덟 살 얌전이

속으로만 잉잉거리는 얌전이

 

주백이

 

이발장이 아들 주백이

어릴 때부터 없는 일 잘도 만들어내더니

국민학교 졸업하고

홍성으로 갔는데

거기서 천안으로 갔는데

천안에서 더 나아가

서울 갔는데

3년 뒤 서울 여자 하나 차고 왔다

불과 열여섯살에

벌써 계집이 생겨 차고 왔다

그런데 동네 아낙네 눈 무섭다

암만해도

여염 년이 아니라

놀던 계집이었다

하룻밤 자고 나더니

촌집 답답해하며

부채 부치는 꼴이

석박지에 얌전히 밥 먹을 년 아니었다

 

키 껑충한 주백이 아비

그것도 며느리라고

이발해서 번 돈으로

닭 사다가 닭 고아 먹이고는 했다

 

어느 날 주백이 나가고 없는 날

주백이 어미

빨래하러 나가고 없는 날

아버님

나 그 사람보다

아버님이 좋아요

아버님이 좋아요

하며

마루끝에 둔 삐뚝구두 뒤축으로

마룻바닥 콩콩 찍어대었다

치마 걷힌 다리살 살짝 드러나서

 

주백이 아비 울타리 보니 울타리가 마구 떨렸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