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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 18. 14:42 내가 읽은 책들/2019년도

2019-005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

 

 

양정무 지음

2017, 사회평론

 

대야도서관

SB114046

 

650.4

양74ㅁ   1

 

원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미술

미술하는 인간이 살아남는다

 

몰라서 난처했던 당신을 위한

미술 이야기

 

유명하다는 전시회에 가봤지만 다리만 아팠던 당신,

박물관 가이드의 설명을 열심히 들어도 머리가 하얘지는 당신,

맘먹고 미술책을 펼쳐도 열 페이지를 넘기기 힘든 당신,

안내서의 해설이나 인터넷 자료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당신,

미술이나 여행, 역사 이야기만 나오면 온화한 표정으로 과묵해지는 당신,

그래서 제대로 배우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당신을 위한 책!

 

'인문학의 꽃' 미술의 세계에 들어선 당신에게

 

미술은 원초적이고 친숙합니다. 누구나 배우지 않아도 그림을 그리고, 지식이 없어도 미술 작품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미술은 우리에게 본능처럼 존재합니다. 하지만 미술의 역사는 그 자체가 인류의 역사라고 할 만큼 길고도 복잡한 길을 걸어왔기에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단순해 보이는 미술에도 역사의 무게가 담겨 있고, 새롭다는 미술에도 역사적 맥락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미술을 본다는 것은 그것을 낳은 시대와 정면으로 마주한다는 말이며, 그 시대의 영광뿐 아니라 고민과 도전까지도 목격한다는 뜻입니다.

선진국들이 박물관과 미술관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통해 세계와 인류에 대한 자신의 이해의 깊이와 폭을 보여주며, 인류의 업적에 대한 존중까지도 담아냅니다.

하루 살기에도 바쁜 것이 우리네 삶이지만 미술 속에 담긴 인류의 지혜를 끄집어 낼 수 있다면 내일의 삶은 다소나마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미술에 담긴 원초적 힘을 살려내는 것, 미술에서 감동뿐 아니라 교훈을 읽어내고 세계를 보는 우리의 눈높이를 높이는 것, 그것이 이 책의 소명입니다.

- 양정무 교수, 미술 이야기를 시작하며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어린 시절, 다락방에서 발견한 백과사전의 삽화에 마음을 빼앗긴 후 미술을 운명이라 믿게 됐다.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미술사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이자 한국예술연구소 소장이다. 19대 한국미술사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존스홉킨스 대학교와 메릴랜드 미술대학에서 방문교수로 미술사를 연구하는 등 학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서양 미술의 발전을 상업주의와 연결시킨 연구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학시절 도서관보다 박물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미술관, 박물관 가이드를 가장 재미있게 하는 학생으로 유명세를 탔다.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술사를 풀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어서 지금도 여러 단체와 기관에서 강의 요청이 끊이지 않는 인기 강사다.

‘인문학의 꽃’으로 불리는 미술사를 우리 사회에 알리는 데 관심이 많다. 국립중앙박물관 강의를 비롯해 다양한 대중강연과 학술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네이버, 매경이코노미 등 여러 매체에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시간이 정지된 박물관 피렌체』, 『상인과 미술』, 『그림값의 비밀』이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는 『신미술사학』, 『조토에서 세잔까지-서양회화사』, 『그리스 미술』이 있다.

 

차례

 

  미술 이야기를 시작하며

 

I 원시미술 - 미술을 아는 인간이 살아남는다

01 섹시한 돌멩이의 시대

02 그들은 동굴에서 무엇을 했을까

03 동굴벽화에 숨겨진 미스터리 코드

04 인류가 4만 년 동안 그려온 이야기

05 우리 가까이의 원시미술

 

II 이집트 미술 - 그들은 영생을 꿈꿨다

01 3000년 동안 최강대국의 지위를 누린 나라

02 변하지 않는 완벽한 세계를 그리다

03 피라미드가 들려주는 불멸의 꿈

04 네바문에서 투탕카멘까지, 고대 문명의 르네상스

05 너무나 화려했던 황혼의 빛

06 미술의 영원한 주제, 삶과 죽음

 

III 메소포타미아 미술 - 삶은 처절한 투쟁이다

01 수로가 열어준 문명의 강

02 신전을 짓고 제물을 빚어 번영을 기원하다

03 광야에서 도시혁명이 시작되다

04 권력의 목소리, 권력의 얼굴

05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결정판

 

작품 목록

사진 제공

더 익어보기

 

프랑스 내륙의 천연 돌다리 퐁다르크는 여름이면

사람들로 북적대는 이름난 휴양지다.

그러나 아직 빙하기가 끝나지 않았을 3만 년 전으로 돌아가면,

우리 조상은 이곳에서 추위와 짐승들에 맞서

사투를 벌여야 했을 것이다. 인류는 그 모든 위협을 극복하고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이곳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깊은 동굴 속에 그 비결이 숨어 있다.

- 퐁다르크, 프랑스

 

예술이 삶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

- 오스카 와일드

 

빗살무늬토기, 서울 암사동 집터에서 출토, 신석기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우리나라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빗살무늬토기 제작 과정

 

주먹도끼,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출토, 구석기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연천에서 발굴된 이 주먹도끼로 인도 동쪽에는 주먹도끼를 만들 만한 능력이 없었다는 학설이 뒤집어졌다.

 

돌도끼 제작 과정

존 프레레, 「서퍽 지역 혹슨에서 발견된 부싯돌 무기에 대한 기술」, 1800년 1797년 골동품 수집가 존 프레레는 약 40만 년 전에 만들어진 주먹도끼를 발견하고 세상에 알렸지만 그 발견은 19세기 중엽에야 인정받았다.

 

광고는 20세기의 동굴벽화다.

- 마셜 맥루한

 

라스코 동굴이 있는 몽티냑 몽티냑은 와인으로 유명한 보르도에서 약 180킬로미터 들어간 내륙에 위치한다.

라스코 동굴 입구 단면도

황소의 방, 프랑스 라스코 동굴, 1만7000년 전 라스코 동굴의 입구에 들어서면 황소의 방이라 불리는 넓은 홀을 만날 수 있다. 대상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그림 솜씨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어마어마한 크기에 놀라게 된다.

황소의 방 파노라마, 라스코 동굴, 1만 7000년 전

입으로 안료를 뿌리는 기법으로 채색된 말

찰스 나이트, 퐁데고메에서 그림을 그리는 크로마뇽인 예술가들, 1920년, 미국자연사박물관 구석기인이 상체를 벗고 있는 것으로 묘사했지만, 동굴벽화가 그려지던 당시는 빙하기였기 때문에 실제로는 온몸을 다 가린 옷차림이었을 확률이 높다.

라스코 동굴에서 출토된 기름 램프, 1만7000년 전 우묵한 곳에 기름을 담고 심지를 만들어 불을 붙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엑시알 갤러리의 입구, 라스코 동굴, 1만7000년 전 황소의 방을 나와 곧바로 직진하면 엑시알 갤러리의 입구가 나온다. 다양한 동물의 묘사가 벽면의 자연적인 생김새와 어울려 역동적인 효과를 연출한다.

아일랜드 엘크, 라스코 동굴의 엑시알 갤러리, 1만7000년 전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동물을 볼 수 있다는 점은 동굴벽화의 중요한 감상 지점 중 하나다.

앱스에서 샤프트로 내려가는 사다리, 라스코 동굴, 1만7000년 전 둥근 천장 아래로 샤프트로 내려가는 가파른 철제 사다리가 설치돼 있다.

내장이 튀어나온 들소와 다친 남자, 라스코 동굴의 샤프트, 1만7000년 전 황소와 사람이 만들어내는 서사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라스코 동굴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다.

네이브, 라스코 동굴, 1만7000년 전 복도를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검은 암소, 오른쪽에는 물을 건너는 사슴 떼가 묘사돼 있다. 원래는 복도 바닥이 더 높았지만 사람이 다니기 편하도록 땅을 평평하게 골랐던 듯하다.

사슴 떼, 라스코 동굴의 네이브, 1만7000년 전 바위 형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물을 건너는 사슴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검은 암소, 라스코 동굴의 네이브, 1만7000년 전 검은 암소는 흔히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지곤 한다.

두 마리의 유럽 들소, 라스코 동굴의 네이브, 1만7000년 전 유럽 들소 두 마리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는 듯하다. 두 들소의 뒷다리가 겹쳐져 있어 공간감과 깊이감을 준다.

라스코 동굴 Ⅱ를 보수하는 화가들 1983년 개장한 라스코 동굴 Ⅱ도 만들어진 지 수십 년이 지났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보수가 필요하다.

베제레 계곡의 절벽 원시시대 베제레 지역은 풍요로운 곳이었기에 다양한 동물들의 교차점으로 기능했다.

베제레 계곡의 절벽을 활용해 지은 집 베제레 계곡의 절벽 아래에서는 구석기시대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레제지 마을의 크로마뇽 호텔 실제로 호텔 뒤에는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의 일종인 크로마뇽인의 유적이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두개골 두 발로 걸을 수 있었던 원인猿人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중 제일 처음으로 발굴된 화석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복원도

네안데르탈인을 복원한 밀랍 인형

호모 사피엔스의 이동 경로 오랜 세월 아프리카 대륙에 머물던 호모 사피엔스는 10만 년 전에서 4만 년 전 사이, 네안데르탈인이 먼저 정착해 있던 유럽 대륙으로 빠르게 퍼져나간다.

네안데르탈인 석상 레제지국립선사박물관 앞에는 과거 자신이 누비고 다녔던 베제레 계곡을 응시하는 듯한 네안데르탈인이 육중하게 서 있다.

파블로 피카소, 황소(state I)(왼쪽)와 황소, 1만4000년 전,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 일부(오른쪽) 왼쪽의 작품은 '황소' 연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피카소는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를 보고 영감을 얻어 이 그림을 그렸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들소들, 알타미라 동굴, 1만4000년 전 구석기 화가는 알타미라 동굴 천장의 들어가고 나온 표면을 이용해 다양한 자세의 황소를 역동적으로 그려냈다.

점박이 말과 손자국, 프랑스 페슈 메를 동굴, 2만2000년 전 점박이 말 두 마리가 각자 반대 방향으로 머리를 돌리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당시 이 지역에 점박이 말이 서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퐁다르크 천연 돌다리 퐁다르크가 있는 프랑스 중남부 지역에는 우리나라 중부 지역처럼 석회암 침식으로 만들어진 깊고 아름다운 동굴이 많다.

매머드 형상의 손바닥 자국, 프랑스 쇼베 동굴, 3만2000년 전 쇼베 동굴 입구에는 자신을 증명하듯 손바닥 자국이 집요하게 찍혀 있다. 이 손바닥 자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동굴곰, 쇼베 동굴, 3만2000년 전 다소 귀여운(?) 모습으로 표현됐지만, 실제 동면하고 있던 동굴곰은 머물 동굴을 찾아다니던 인간에게 큰 위험 요소였을 것이다.

동굴곰의 머리뼈가 놓인 제단, 쇼베 동굴, 3만2000년 전 발견 당시 삼각형의 돌 위에 마치 제단에 올린 것처럼 동굴곰의 머리뼈가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세 마리의 사자, 쇼베 동굴, 3만2000년 전 연속 사진을 찍어놓은 것처럼 사자 머리 세 개를 겹쳐 그려놓아 운동감이 느껴진다.

마지막 방, 쇼베 동굴, 3만2000년 전

종유석에 그려진 반인반수 쇼베 동굴 가장 깊숙한 곳에서는 두 반인반수가 겹쳐 그려진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최고의 예술은 언제나 가장 종교적이고

최고의 예술가는 언제나 독실한 신자다.

- 에이브러햄 링컨

 

사냥 당한 소, 프랑스 니오 동굴, 1만1000년 전 창 또는 화살에 찔린 동물이 묘사돼 있다.

기우제를 묘사한 산족 벽화 산족은 소를 잡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기우제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서 소는 진짜 소가 아니라 '비의 신'을 상징한다.

내장이 튀어나온 들소와 다친 남자, 라스코 동굴의 샤프트, 1만7000년 전

안드레아 만테냐, 세바스티아노 성인, 1480년, 루브르박물관 중세에서 화살은 종종 질병을 상징하는 은유로 사용됐다. 특히 흑사병이 발생했을 때 이 은유는 세바스티아노 성인을 통해 크게 유행했다.

앙리 브레이, 주술사, 1920년경 프랑스 세 형제 동굴에 그려진 동굴벽화를 재현한 그림으로, 사슴과 인간이 결합되어 주술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산족 주술사와 춤을 추는 사람들 중앙의 동물처럼 기어 다니는 주술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다.

니콜라스 빗선, 시베리아의 샤먼, 1692년 인류학자가 최초로 기록한 시베리아 지역 주술사의 모습이다. 머리에 사슴뿔을 달고 몸에 짐승 가죽을 둘렀다.

사자 인간, 4만 년 전, 독일울름박물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조각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발렌도르프의 비너스, 2만8000년 전, 빈자연사박물관 이 조그만 조각상은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미술품 중 하나로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발렌도르프의 비너스

흙으로 빚은 여인상, 5000년 전, 국립중앙박물관

홀레펠스의 비너스, 3만5000년 전, 블라우보이렌선사박물관

차탈회위크 유적지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에 있는 33만 평 규모의 신석기시대 유적지로,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차탈회위크 복원도 차탈회위크 유적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복원한 모습이다. 언덕을 따라 집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계단식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과 집 사이의 공간이 없으며, 출입은 옥상으로 했다.

두 개의 사자 장식을 한 의자에 앉은 어머니 신, 8000년 전, 아나톨리아문명박물관 차탈회위크에서 발견된 육중한 몸의 여신상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만든 구석기시대의 신앙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음을 암시한다.

복원한 차탈회위크의 예배소 벽에 걸린 황소 모형을 통해 구석기시대부터 존재했던 황소 숭배 신앙이 이 시대까지 지속됐음을 알 수 있다.

황소 벽화, 차탈회위크 유적지에서 출토, 8000년 전 거대한 황소를 사냥하는 그림으로 추정된다.

위 황소 벽화의 복원도

 

예술은 인간의 본성이요, 자연은 신의 예술이다.

- 필립 베일리

 

나미비아 칼라하리 사막 부근에 살고 있는 산족 우리에게는 부시맨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산족은 아직도 남아프리카 곳곳에 1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호주 카카두국립공원의 노우랜지 록 노우랜지 록은 아주 오래전부터 호주 원주민들에게 신성한 장소로 인식돼 온 공간으로, 깎아지른듯한 절벽이 인상적이다.

엑스레이 기법으로 그려진 벽화, 카카두국립공원, 노우랜지 록 이 그림에는 대상의 내부를 그대로 그린 것 같은 엑스레이 기법이 잘 드러나 있다.

호주 원주민의 창세 신화, 카카두국립공원, 노우랜지 록

미미 신, 카카두국립공원, 우비르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진 미미는 생긴 것처럼 매우 변덕스러운 신으로 전해진다.

호주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울룰루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인 울룰루에 가면 시간과 날씨의 년화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지는 웅장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소용돌이 모양의 추상 벽화, 울룰루-카타추타국립공원 원주민만이 알고 있는 추상적인 기호가 가득하다. 울룰루에 가면 현지 원주민이 직접 벽화를 소개해주는 관광 코스가 마련돼 있다.

손과 사냥도구가 그려진 벽화, 카나본국립공원 손자국과 함께 그려진 부메랑, 그물 등의 사냥도구가 그림을 그린 부족 공동체의 정체성이라고 보기도 한다.

잭슨 폴록, 넘버 1, 1948년, 뉴욕현대미술관 미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인 잭슨 폴록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운동을 이끌었다.

그림 오른쪽 위에 잭슨 폴록의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마왈란 마리까, 하늘에서 본 시드니, 1963년, 호주국립박물관 호주 원주민 화가 마왈란 마리까는 비행기에서 바라본 시드니를 호주 원주민만의 표현 방식으로 소화해냈다.

오귀스트 앵그르, 물에서 태어난 비너스, 1848년, 프랑스콩데미술관 18세기 서구 화단은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를 스린 그림만을 아름답다고 인정했다.

제퍼슨 데이비드 칼판트, 줄리앙 아카데미의 부그로 아틀리에, 1891년, 드영미술관 19세기에 확립된 미술 아카데미의 전통은 아직도 우리나라 미술 교육에 짙게 남아 있다.

폴 고갱,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1891년, 오르세미술관 타히티로 떠나기 전의 자신을 그린 작품이다. 고갱의 뒤편 왼쪽에는 1889년 완성한 '황색 그리스도', 오른쪽에는 1889년 완성한 '그로테스크한 얼굴 형태의 항아리'가 그려져 있다.

폴 고갱,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1898년, 보스턴미술관 이 작품은 고갱이 타히티 섬에서 그린 그림 중 하나다. 개인적인 일로 괴로워하며 완성해낸 그림으로, 제목에서 느껴지듯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가로 크기가 무려 3미터70센티미터가 넘는 대작이다.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1907년, 뉴욕현대미술관 종래의 모든 조형 규칙을 파괴한 피카소의 파격적인 이 그림은 당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오른쪽 두 여인의 얼굴은 입체파 탄생의 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그림의 모델은 바르셀로나의 아비뇽 거리에서 몸을 팔던 여성이라고 전해진다.

에른스트 키르히너, 모리츠부르크의 목욕하는 사람들, 1909년, 테이트모던미술관 모든 걸 벗어던지고 느긋하게 쉬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른하게 느껴진다.

아프리카 가면(왼쪽)과 '아비뇽의 처녀들' 부분(오른쪽)

 

동굴벽화를 그리든 인터넷을 이용하든

인간은 언제나 비유와 우화를 통해

역사와 진실을 이야기해왔습니다.

우리는 뿌리까지 이야기꾼입니다.

- 비번 키드론

 

울산 태화강 상류 울산 지역의 공업화로 심각하게 오염됐던 태화강은 최근 각계의 노력으로 옛날의 맑은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어 가볼 만하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보정한 이미지 단단한 바위에 뾰족한 도구로 300개가량의 형상을 새겨 놓았다.

장생포고래박물관

빗살무늬토기,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에는 곡식을 저장할 목적만으로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무늬가 과하게 들어가 있다.

마왈란 마리까, 하늘에서 본 시드니, 1963년

 

 

잔잔하게 흐르는 나일 강은

여유롭게 뱃놀이를 즐기며 이집트의 풍광을

만끽하기 좋은 관광지다. 하지만 5000년 전 이집트인은

매년 반복되는 나일 강의 범람처럼 인간의 삶도

생과 사를 오가며 영원하리라 믿었다.

범람이 잦아들면 비옥해지는 토지처럼

사후의 삶도 풍요로우리라 생각했다.

- 나일 강 유역, 이집트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저세상에 가면 신이 두 가지

질문을 할 거라고 믿었지.

'인생에서 기쁨을 찾아냈는가?'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했는가?'

-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 카터 챔버스의 대사

 

기자의 대 피라미드, 기원전 2530~2460년경, 기자 낙타 행렬과의 비교를 통해 피라미드의 규모를 짐작해볼 수 있다.

나일 강 유역에 새겨진 나일로미터 이집트인들은 나일로미터로 나일 강의 범람 수위를 쟀다.

센네젬의 무덤 벽화(부분), 기원전 1300년~1200년경, 테베 남자는 소를 몰며 밭을 갈고 여자는 그 뒤를 따르며 씨를 뿌리고 있다. 소와 나무의 표현이 사실적이다.

네페르마트와 왕비 이텟의 무덤 벽화(부분), 기원전 2600년경, 이집트박물관 인물의 이목구비 등 구체적인 형태는 훼손되었지만 새를 잡고 밭을 가는 행위는 잘 드러나 있다.

아스완 하이 댐 반복되는 나일 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건설한 세계 최대 규모의 댐이다.

트라야누스 황제가 세운 신전, 100년경, 아길키아 섬 규모는 작지만 이집트 고유의 파피루스 모양으로 장식한 기둥이 눈에 띈다.

칼립샤 신전 부조, 기원전 20년, 아스완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이집트 파라오처럼 표현되어 있다. 로마가 이집트 문화를 존중했음을 알 수 있다.

 

유행은 한때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 이브 생 로랑

 

아부심벨 신전, 기원전 1250년경, 아스완 바위산을 깎아 만든 신전에서 위엄이 느껴진다. 관람객은 람세스 2세의 거상 사이에 난 문을 통해 신전에 입장한다.

구슬과 신성문자로 장식한 고대 이집트 목걸이, 제작연도 미상, 베를린박물관 각종 상징물 모양의 작은 장식이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다. 화려한 색채가 시선을 끈다.

투탕카멘 펜던트, 기원전 1350년경, 이집트 박물관 각종 상징물이 완벽한 수준으로 조화를 이루었다.

아메넴헷 왕과 헤맷 왕비의 무덤 벽화, 기원전 1800년경, 리슈트 정면성의 원리에 따라 그려진 왕과 왕비, 각종 물건들이 보인다. 채색이 지금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르메르 왕의 팔레트, 기원전 3100년경, 이집트박물관 이집트박물관에 간다면 꼭 보아야 하는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몸체부분이 세 단으로 나뉘어 있고 단마다 그림이 새겨져 있다.

아멘호텝 3세의 신하 라모세의 가족 무덤에 새겨진 부조, 기원전 1355년경, 테베 짙은 눈화장이 두드러진다. 얼굴은 측면, 눈은 정면으로 표현되어 있다.

나르메르 왕의 팔레트(뒷면, 부분) 각각 크기가 다른 세 명의 인물과 커다랗게 그려진 매가 화면 곳곳을 차지하고 있다.

네바문 무덤 벽화의 악사와 무희, 기원전 1400년경, 영국박물관 자유롭고 유연한 동작으로 춤을 추는 무희와 정면을 바라보며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의 모습에서 정면성의 원리는 높은 신분의 인물에게만 적용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메넴헷 왕과 헤맷 왕비의 무덤 벽화(부분, 왼쪽)와 네바문 무덤 벽화의 악사와 무희(부분, 오른쪽) 신분이 높은 사람을 그릴 때는 정면성의 원리에 충실히 따랐지만 신분이 낮은 사람은 정면성의 원리에 따르지 않았다.

나르메르 왕의 비서실장(뒷면, 부분) 한 손에 나르메르 왕의 슬리퍼를 든 '비서 실장'이 작게 그려져 있다.

거대한 매가 당당한 모습으로 파피루스 위에 서 있다. 상 이집트(매)가 하 이집트(파피루스)를 정복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집트 항공기의 날개에 그려진 호루스 호루스는 지금도 이집트의 상징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깃발을 든 병사들 뒤로 거대하게 조각된 나르메르 왕이 걷고 있다. 오른쪽에는 목이 잘린 적군의 시체가 즐비하다.

나르메르 왕의 팔레트(앞면, 부분) 거대한 황소가 성벽을 파괴하고 있다. 황소의 발 아래에는 쓰러진 적군이 짓밟히는 모습이 보인다.

나르메르 왕의 팔레트(뒷면, 부분) 섬세한 황소 머리 문양이 장식된 나르메르 왕의 의복에 실제 황소 꼬리가 매달려 있다.

나르메르 왕의 팔레트(앞면, 부분) 팔레트의 맨 윗부분의 황소 두 마리 사이에 물고기처럼 생긴 신성문자가 보인다. 신성문자는 나르메르 왕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헤시라의 초상, 기원전 2610년경, 이집트박물관 커다란 나무 패널에 새겨진 조각으로, 이집트의 서기이자 의사였던 헤시라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파쉐리 미라, 기원전 664~332년경, 루브르박물관 얼굴과 온몸은 붕대로 감았으며 교차하여 모은 팔 위로는 호루스 모양의 장식을 덮었다.

영국박물관에 전시된 미라를 둘러싼 관람객 이집트인의 내세관에 따르면 박물관에 전시된 미라와 미라를 구경하는 관람객 사이에는 아무런 경계도 없다.

라호테프와 그의 부인 네페르트, 기원전 2570년경, 이집트박물관 부부가 나란히 앉아 있는 인체 조각상이다.

라호테프와 그의 부인 네페르트(부분) 두 조각 다 눈을 그려 넣는 대신 유리알을 사용했다. 그 덕분에 조각이 사람 같은 눈빛을 지니게 되었다.

서기 좌상, 기원전 2450년경, 루브르박물관 책상다리를 하고 글을 쓰는 모습이 마치 살아 있는 듯 생생하다. 눈에 유리알이 박혀 있어서 형형한 눈빛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소인 세넵과 그의 가족, 기원전 2200년경, 이집트박물관 위쪽에는 부부가, 아래쪽에는 두 아이가 조각되어 있다.

러노페르의 조각, 기원전 2500년경, 이집트박물관 입상이며 뒤쪽의 기둥과 조각이 발을 딛고 있는 받침대가 그대로 남아 있다.

 

모두가 시간을 두려워하지만

피라미드만이 세월을 비웃는다.

- 아라비아 속담

 

세프세스카프 마스타바, 기원전 2500년경, 사카라 주로 귀족의 무덤으로 만들어진 마스타바는 고대 이집트의 초기 무덤 양식이다.

조세르 왕의 계단식 피라미드, 기원전 2660년경, 사카라 마스타바보다 훨씬 커진 규모가 눈에 띈다. 계단식 피라미드는 훗날 대 피라미드로 발전한다.

기자 대 피라미드, 기원전 2530~2460년경, 기자 세 개의 거대한 피라미드가 모여 있다. 우리는 보통 '피라미드'라고 하면 이 모습을 떠올린다. 단 한 사람을 위한 무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규모다.

조세르 왕의 좌상, 기원전 2610년경, 이집트박물관 위엄을 갖춘 다소 경직된 자세로 제작되었다. 원래 유리나 수정으로 눈을 만들어 넣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는 소실되었다.

기자의 대 피라미드, 기원전 2530~2460년경, 기자 각각 쿠푸(왼쪽으로부터 첫번째), 카프레(두번째), 멘카우레 왕(세번째)의 무덤이며 가장 큰 것이 쿠푸 피라미드, 윗부분에 마감재가 남은 것이 카프레 피라미드다.

쿠푸 피라미드의 내부 구조

진시황릉 근처 병마용갱에서 발견된 진흙 병사들, 기원전 246~208년, 중국 산시성 이곳에는 6000개 이상의 병사 모형이 묻혀 있었다고 한다. 이 병사들의 생김새는 모두 다르다.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표면

멘카우레 왕과 하토르 여신, 노메의 의인화 형상, 기원전 2460년, 이집트박물관 왕과 여신들의 당당함이 느껴진다.

카프레 왕의 조각상(부분), 기원전 2500년경, 이집트박물관 왕의 어깨 뒤로는 매의 형상을 한 호루스가 있다. 이 호루스는 왕을 수호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님과 동시에 실질적으로 조각상의 목을 받치는 역할을 한다.

조세르 왕의 좌상(부분) 카프레 조각상과 비교하면 거친 마감과 다소 부자연스러운 신체 표현이 엿보인다.

대 피라미드 앞에 위치한 스핑크스, 기원전 2650년경, 기자 얼굴 부분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그 규모와 생김새에서 당당한 위용이 느껴진다. 마치 파라오의 무덤을 지키는 파수꾼 같다.

스핑크스와 꿈의 석비, 기원전 2650년경, 기자 앞쪽에 자리한 석비는 투트모세 4세가 세운 기념비다. 여기에는 1000년 동안 모래언덕 아래 묻혀 있던 스핑크스를 발굴한 사연이 적혀 있다.

카프레 왕의 계곡신전 기둥, 기원전 2500년경, 기자 돌을 깎아 만든 기둥과 벽면이 정확한 직각을 이루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기술력을 알 수 있다.

태양의 배, 기원전 2650년경, 기자 카프레 신전에서 발굴했으며 모든 부속이 조각난 채로 발견되었다. 길이가 약 4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배다.

고대 이집트 신성문자 각종 새, 사람, 눈 등 여러 모양의 그림으로 이루어진 문자다. 이 문자는 19세기에 들어서야 해독되었다.

낙소스의 스핑크스, 기원전 570년경, 델포이고고학박물관 그리스인들은 이집트 문명을 폄훼하려는 의도로 몇몇 이집트 신의 이름을 부정적으로 지었다.

 

부귀에는 날개가 달려있고

권세는 하룻밤의 꿈이다.

- W. 쿠퍼

 

신왕국 왕들의 무덤이 있는 왕들의 계곡, 기원전 1519~1000년경, 룩소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사막 계곡 같지만 곳곳에 파라오들이 묻혀 있다.

네바문 무덤벽화, 늪지의 새 사냥, 기원전 1350년경, 영국박물관 선명한 색채와 세밀하게 표현된 동물들의 모습이 인상 깊다.

네바문 무덤벽화, 연못이 있는 정원, 기원전 1350년경, 영국박물관 연못을 둘러싼 나무들과 연못 안 다양한 물고기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나무 열매도 다채롭게 채색되어 있다.

연못이 있는 정원(부분) 왼쪽, 오른쪽의 새와 물고기가 각각 왼쪽, 오른쪽을 향해 있다. 또 새는 한쌍, 물고기는 한 마리씩 그려져 있다. 약간의 예외도 있어서 더욱 흥미롭다.

사자의 서(부분), 기원전 1275년경, 영국박물관 망자의 영혼이 신들의 안내를 받으며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 그림 속에서 차분함과 엄숙함이 느껴진다.

사자의 서(부분) 망자를 안내하는 호루스와 심판관의 자리에 앉아 있는 저승의 왕 오시리스의 모습이 보인다.

하트셉수트 장제전 조각, 기원전 1480년경, 데이르 알 바하리 조각상의 얼굴이나 외형에 여성 파라오의 정체성이 반영되었으며 파라오의 상징물을 양손에 들고 있다.

하트셉수트 장제전, 기원전 1460년경, 데이르 알 바하리 자연 암반을 깎아 만든 엄청난 규모의 사원이다. 3층으로 되어 있는 이 사원은 균형잡힌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우아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품고 있다.

하트셉수트 장제전 입구, 기원전 1460년경 자신의 사후를 위해 거대한 사원을 지을 만큼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하트셉수트 여왕이 웅장하고 위엄 있는 파라오의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아멘호텝 4세 조각, 기원전 1350년경, 이집트박물관 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개혁적인 왕이었던 아멘호텝 4세의 조각상이다. 그의 개혁 정책으로 미술에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아멘호텝 4세 조각, 기원전 1350년경, 이집트박물관 이 조각상에서 아멘호텝 4세는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아보기 어려운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 미술에서 전무후무한 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네페르티티로 추정되는 조각상, 기원전 1350년경, 루브르박물관 아멘호텝 4세의 치세 기간 미술에 나타난 변화를 잘 보요주는 조각상으로, 신체표면과 옷주름이 인상적이다.

아크나톤 가족의 모습을 담은 부조, 기원전 1350년경, 베를린이집트박물관 아멘호텝 4세와 그의 부인 네페르티티 왕비, 딸들이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다. 태양의 신 아톤의 손길이 아멘호텝 4세 가족을 축복하듯이 보듬어준다.

네페르티티 왕비의 흉상, 기원전 1340년경, 베를린이집트박물관 깔끔한 형태와 엄숙한 표정에서 왕비의 위엄이 느껴진다. 목의 길이는 비현실적으로 길지만 머리에 쓴 관과 어우러져 균형을 이룬다.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정면), 기원전 1340년경, 베를린이집트박물관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 기원전 1330년경, 이집트박물관 투탕카멘 미라의 얼굴을 덮고 있던 이 화려한 황금마스크에는 무려 11킬로그램의 금이 사용되었으며 각종 화려한 보석들로 장식되었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궤짝, 기원전 1330년, 이집트박물관 이 궤짝에는 전차를 타고 전장을 누비는 용맹한 투탕카멘의 모습이 묘사되었다. 적군들은 모두 쓰러지거나 도망치고 있다.

투탕카멘의 황금 의자, 기원전 1335년경, 이집트박물관 황금으로 만들어진 투탕카멘의 의자는 기본적인 구조와 장식 측면에서 모두 높은 완성도를 보인다. 의자 다리의 형태, 뒷면과 옆면의 장식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의자의 뒷부분과 양옆에는 고개를 들고 있는 코브라의 모습이 장식되어 있다. 이 코브라는 파라오를 보호하는 상징물이다.

의자 등받이에는 태양신 아톤에게서 나오는 빛이 투탕카멘과 그의 부인을 감싸고 있다. 투탕카멘은 이집트 역사에서는 가장 불운했던 왕이지만 후대인에게는 화려한 미술 작품의 주인공으로 기억된다.

 

모든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다.

-세네카

 

람세스 2세의 미라, 이집트박물관 80년의 재위동안 신왕국의 번영을 이끌었던 람세스 2세의 생전의 권위와 미라의 모습이 극적 대비를 이룬다.

람세스 2세의 조각상, 기원전 1200년경, 룩소르 신전 람세스 2세의 조각상은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만들어져 잇다. 이 조각 역시 람세스 2세의 청년 시절 모습을 담았다.

상공에서 본 카르나크 대신전, 룩소르 카르나크 대신전은 밀라노 성당처럼 거대한 성당이 7개 정도 들어가는 규모다.

스핑크스의 길, 카르나크 대신전 아문 신전 내부의 길 양쪽에 열 지어 있는 스핑크스를 닮은 조각상 때문에 '스핑크스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사실 이 조각상은 스핑크스가 아닌 아문신의 상징이다.

카르나크 대신전 중 아문 신전의 내부, 기원전 1500~1100년경, 룩소르 거대한 규모의 카르나크 대신전은 신왕국의 번영과 파라오의 막대한 권력을 나타내는 증거다. 신전 곳곳에는 파라오와 신들의 조각이 서 있다.

카르나크 대신전의 열주전 6층 건물 높이의 기둥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카르나크 신전 내부에는 형태가 온전하게 보존된 창문이 남아 있다. 고대 이집트인의 뛰어난 석재 가공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templo de debod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데보드 신전, 기원전 200년경, 마드리드 1968년 이집트 정부는 수몰 위기에 처한 아부심벨을 이전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스페인 정부에 이 신전을 선물했다. 현재 스페인마드리드에 있다.

룩소르 신전 앞의 오벨리스크, 기원전 1300년경, 룩소르 태양신을 상징하는 이 오벨리스크는 30~40미터에 이르는 돌덩이를 통째로 깎아 만들었다.

로마 성 베드로 광장의 오벨리스크, 기원전 2494~2345년경, 로마 기원후 40년 로마의 칼리굴라 황제가 이집트에서 약탈해왔다. 유럽의 도시 곳곳에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트가 있다.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도 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카르나크 대신전의 열주전

아부심벨, 기원전 1250년, 아스완 아부심벨은 람세스 2세가 자신과 아애 네페르티리를 위해 지은 것으로, 한때 수몰될 위기에 처했지만 안전한 위치로 옮겨졌다.

아부심벨 대신전 입구의 람세스 2세 거상, 기원전 1250년

아부심벨 소신전, 기원전 1250년경 자연 암반을 깎아 만든 이 신전은 람세스 2세의 부인인 네페르티리를 모시고 있다.

어둠에 싸인 저승의 신 프타 아부심벨 내부에는 일 년에 두 번 햇빛이 들어오는데, 그깨 저승의 신 프타에게는 빛이 비치지 않는다. 철저한 계산에 따른 설계 덕분이다.

이 모형을 통해 지금은 수몰된 원래 아부심벨 신전의 위치와 이전 후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아부심벨 신전을 통째로 이전하는 것은 엄청난 대공사였다. 크레인을 동원하여 거대한 신상을 재조립하고 있다.

로제타스톤, 기원전 196년경, 영국박물관 나일 강 하류 로제타에서 발견된 이 비석은 이집트 신성문자 해독의 열쇠가 되었다.

남아 있는 파편을 통해 재구성한 로제타스톤의 전체 모습

샹폴리옹이 해석한 이집트 상형문자표 왼쪽이 그리스 알파벳이고 오른쪽이 이집트 상형문자다.

샹폴리옹이 읽어낸 '프톨레마이오스'와 '클레오파트라'

 

죽음을 무시하지 말고 인정하라.

죽음 역시 자연의 섭리 중 하나이므로.

- 베르톨트 브레히트

 

장군총, 413~490년경, 중국 집안현 장군총은 폭 33미터, 높이 13미터로 이집트의 일반적인 피라미드와 비슷한 크기다.

석촌동 고분군, 2세기 후반, 서울 석촌동 서울 석촌동에 위치한 백제 고분군 덕분에 가까운 곳에서도 우리 조상들이 만든 피라미드를 만날 수 있다.

경주 대릉원 전경, 4~6세기, 경주 멀리 작은 언덕처럼 솟아 있는 것이 모두 무덤이다. 12만 평의 대지에 23기의 고분이 모여 있다.

카노푸스 단지, 기원전 1200년경, 베를린이집트박물관 카노푸스 단지 안에는 창자, 폐, 간 등 장기가 보관되어 있다. 뚜껑 모양은 각 장기의 수호신을 형상화한 것이다.

키키 스미스, 무제, 1986년, 휘트니미술관 12개의 유리병에 침, 눈물, 오줌 등 인간의 체액을 담아 보여준다.

키키 스미스, 누트, 1993년 몸통이 사라지고 팔다리만 남은 누트 여신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신화가 사라져 버린 현대사회의 단면을 상징한다.

하늘의 여신 누트, 기원전 1250년경, 영국박물관 고대 이집트인은 하늘의 여신 누트가 몸으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고 믿었다.

정복수, 사람2, 2009년 인간의 신체를 내장 기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하나의 기계로 표현했다.

 

중동의 지배자였던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는

만국의 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파괴되어 흔적만 남아 있다.

그러나 2500년 전 저 문을 거쳐 도시에 들어서면

누구나 거대한 왕궁과 곳곳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 앞에서

완전히 압도되었을 것이다.

척박한 땅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도시를 세우고 문명을 일궈온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미술을 자신을 지키는 방패이자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무기로 사용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 페르세폴리스의 만국의 문, 이란

 

경작지가 생기는 곳에 다른 기술과 예술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농부야말로 바로 인간 문명의 선구자이다.

- 대니엘 웹스터

 

문명을 잉태한 두 강 사이의 땅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오늘날 이란과 이라크 지역에 해당된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유역은 비옥한 토질 덕분에 인류 역사상 농업이 제일 먼저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 강 하류 지역의 생활상 오늘날 두 강 하류에 사는 사람들은 갈대를 이용해 집을 짓고 살고 있다.

바빌로니아 수로 지도 점토판, 기원전 1680년경, 노르웨이, 개인소장 이 점토판에는 구석구석 물이 흘러들도록 만들어진 체계적이고 조밀한 수로 시스템이 새겨져 있다.

 

예술은 사람들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수단 중 하나다.

- 레프 톨스토이

 

현재의 우루크 과거의 영광은 사라지고 흙무더기처럼 보이는 폐허만 남아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6000년 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대도시였을 것이다.

백색신전과 지구라트, 기원전 3000년경, 이라크 현재 우루크에 남아 있는 백색신전은 훼손되어 그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다.

백색신전과 지구라트 상상도 원래는 이렇게 높은 기단 위에 신전이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사에서 발견된 도기, 기원전 5000~4000년경, 루브르박물관 곡식 저장용 그릇으로 추정되는 이 도기는 농업 활동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물이기도 하다.

텔 알 우바이드에서 발견된 도기, 기원전 4500~4000년경, 보스턴미술관 수사에서 발견된 도기와는 달리 추상적인 형태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와르카 병, 기원전 3200~3000년경, 이라크국립박물관 이라크의 국보급 화병으로, 메소포타미아 초기 미술의 특징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국립박물관이 대대적 약탈을 당했을 때도 도둑맞았던 와르카 병은 몇 달 만에 훼손된 채 다시 돌아왔다.

여성의 두상(아난나 추정), 기원전 3200~3000년경, 이라크국립박물관 이 마스크는 아난나 여신 또는 여사제의 모습을 본뜬 것으로 추정된다.

눈의 우상, 기원전 3300~3000년경, 영국박물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이렇게 눈이 강조된 작은 조각상이 다수 발견되었다.

텔 아스마르 조각상군, 기원전 2900~2350년경,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등 눈을 크게 뜬 채로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과 신전에서 발견됐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이 조각상들은 신에게 기도나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누구나 역사를 만들 수 있지만

위대한 자만이 역사를 기록할 수 있다.

- 오스카 와일드

 

우르 복원도 우르는 두꺼운 성벽과 해자를 각춘 도시였으며 바다에 접해 있었다.

우르 지구라트(신바빌로니아 시기 복원), 기원전 600년경, 이라크

우르 왕조 무덤 발굴 장면 이 무덤이 발굴 되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초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푸아비 왕비 장신구 발굴 당시의 모습으로 온전한 형태를 알아볼 수는 없지만 다양한 귀금속으로 만들어진 장신구였음을 알 수 있다.

푸아비 왕비 장신구(복원), 기원전 2550~2450년경, 영국박물관 화려한 금과 라피스 라줄리 장식이 우르 문명의 도시적 성격을 보여준다.

푸아비 왕비 원통 인장, 기원전 2550~2450년경, 영국박물관 라피스 라줄리를 사용해 호화롭게 장식된 인장에는 악기 연주자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황소 머리 장식의 악기, 기원전 2550~2450년경, 영국박물관 푸아비 왕비 무덤에서 발굴된 유물로 산산조각 난 것을 복원했다.

황소 머리 장식의 악기(부분) 전체 4단으로 나뉘어 있고 각 칸에 동물, 사람, 반인반수의 모습이 자개로 장식돼 있다.

양과 황금가지, 기원전 2550~2450년경, 영국박물관 좌우대칭의 나무 위에 양이 발을 걸치고 올라가 있는 장식품이다. 황금으로 만든 나뭇가지와 선명하게 채색된 양이 인상적이다.

우르의 군기, 기원전 2550~2450년경, 영국박물관 최초 발굴자인 레오나르도 울리가 군기라는 이름을 붙여 계속 그렇게 부를 뿐 실제로는 깃발이 아니라 어떤 장식품의 부속물이었으리라고 추정된다.

우르의 군기 평화 면 삼단으로 나뉜 화면에 연회 장면이 자개장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1단 : 왕과 귀족들 2단 : 가축을 이끄는 사람들 3단 : 곡식을 나르는 사람들

우르의 군기 전쟁 면 그림 풍은 만화와도 비슷하지만 다루고 있는 내용은 무척 잔혹하다.

1단 : 권력자 앞에 선 포로 2단 : 우르 군대와 포로 행렬 3단 : 전차와 포로의 시신

아카드 통치자의 두상(사르곤 추정), 기원전 2250~2200년경, 이라크국립박물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권력자를 표현하는 방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나람신 전승비, 기원전 2230년경, 루브르박물관 적들을 밟고 서있는 위풍당당한 나람신 왕의 모습과 처참하게 쓰러져 있는 적군의 모습이 대비를 이룬다.

구데아 입상, 기원전 2090년경, 루브르박물관 우르 제3왕조 시기의 조그만 도시국가 라가시의 왕 구데아는 자신의 모습을 새긴 조각상을 여러 개 남겼다.

구데아 좌상, 기원전 2120년경, 루브르박물관 이 조각상은 머리 부분이 소실되었지만 몸에 새겨진 글자를 통해 구데아 왕의 조각상임을 알 수 있다. 무릎에는 신전의 설계도면이 새겨져 있다.

함무라비 법비, 기원전 1750년경, 루브르박물관 아랫부분에는 법 조항이, 윗부분에는 함무라비 왕과 신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높이 2.25m)

함무라비 법비(부분)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 조지 오웰

 

현재의 하투샤 히타이트 제국은 한때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호령했지만, 지금은 폐허가 되어 버린 수도 하투샤를 제외하고는 번영을 증명해 줄 유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하투샤 복원도 하투샤는 두 겹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상 도시와 하 도시로 나뉘어져 있었다.

사자의 문, 기원전 1300년경 하투샤의 성문들 가운데 하나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용맹함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사자 조각상이 문에 새겨져 있다.

사자의 문 디지털 복원도

카데시 전투, 기원전 1250년경, 이집트, 아부심벨 신전 람세스 2세의 아부심벨 신전 내부에 있는 부조로 이집트 군대가 히타이트 군대를 무찌르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카데시 전투 도해

히타이트 - 이집트 평화비문, 기원전 1258년, 이스탄불고고학박물관 이 비문은 세계 최초의 강대국 간 평화조약이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 입상, 기원전 850년경, 영국박물관

님루드 왕궁 상상도, 1853년 님루드를 발굴한 고고학자 오스틴 레이어드의 책에 실린 그림으로 님루드는 평화롭고 풍요로운 도시로 묘사되어 있다.

라마수, 기원전 883~859년경, 영국박물관 무게 10톤 이상의 거대한 돌을 통째로 깎아 만든 수호 신상으로, 성문이나 왕궁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유물의 도난을 막기 위해 미군 탱크가 국립이라크박물관 앞을 지키고 있다.

라마수, 기원전 883~859년경,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라마수는 사람의 머리, 사자 또는 황소의 몸통, 날개를 가진 상상의 동물로 용맹함의 상징이었다.

님루드 궁전 왕좌의 방 상상도, 1854년 왕궁 내부의 왕의 접견실은 화려하게 채색된 부조로 장식되어 있었다.

영국박물관 아시리아 전시실 영국박물관 아시리아 전시실에는 아시리아 왕궁 유적에서 뜯어온 대규모 부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생명의 나무, 기원전 865~860년경, 영국박물관 이슈르나시르팔 2세의 궁전에서 발견된 이 부조는 원래는 왕좌 뒤에 새겨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슈르나시르팔 왕의 사자 사냥, 기원전 865~860년경, 영국박물관 전차에 오른 채로 사자를 사냥하는 아슈르나시르팔 2세의 모습이 묘사된 이 조각은 님루드의 궁전에서 발견되었다.

적에게 화살을 쏘는 아시리아 궁수들, 기원전 883~859년경, 영국박물관 이슈르나시르팔 2세의 궁전에서 발견된 이 부조에는 강물로 뛰어든 적들을 향해 활을 쏘고 있는 아시리아 군대의 용맹한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라기스 전투, 기원전 700~692년경, 영국박물관 유대의 중요 도시였던 라기스를 아시리아 군대가 공격한 사건을 표현한 부조 작품으로 총길이 12미터에 이른다.

라기스 전투(부분1) 유대 군사들이 성탑에서 화살을 쏘며 저항하고 아시리아 군사들은 사다리를 놓고 성채를 오르고 있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라기스 전투(부분2) 산 채로 포로의 살가죽을 벗기는 모습을 표현한 부조.

라기스 전투(부분3) 손이 묶인 채 끌려가는 유대 포로들의 모습과 적군의 머리를 들고 행진하는 아시리아 군인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라기스 전투(부분4)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이 아시리아 왕 앞에서 무릎을 꿇고 생명을 구걸하는 장면이다.

루브르박물관 아시리아 전시실 루브르의 아시리아 전시실에는 사르곤 2세의 코르사바드 왕궁에서 가져온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길가메시 조각상, 기원전 722~705년경, 루브르박물관 이 조각상의 모델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영웅 길가메시로 추정된다. 푸아비 왕비 무덤에서 발견된 악기(아래)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길가메시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목재 운반, 기원전 700년경, 루브르박물관 왕궁을 짓기 위해 멀리 떨어진 레바논에서 목재를 운반해오는 과정을 부조로 새겼다.

아슈르바니팔 왕의 사자 사냥, 기원전 645년경, 영국박물관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 아슈르바니팔 왕이 맨손으로 사자를 제압하고 있는 장면을 새긴 부조이다.

죽어가는 암사자, 기원전 645년경, 영국박물관 화살을 맞아 다리가 마비되어가고 있는 암사자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화살을 맞고 죽어가는 사자, 기원전 645년경, 영국박물관 일부러 거칠게 표현한 배경은 화살을 맞고 몸부림치는 사자의 역동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

프레드 파라드, 아슈르바니팔 청동 조각, 1988년, 샌프란시스코 한 손으로는 사자를 제압하고, 다른 손에는 점토판을 들고 있는 모습의 이 조각상은 정복군주이자 문화 군주였던 아슈르바니팔 왕의 복합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홍수 신화 점토판, 기원전 600년경, 영국박물관 아슈르바니팔왕의 점토판 도서관에서 발견된 이 점토판에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일부인 홍수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들라크루아,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1827년, 루브르박물관 아시리아 제국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비극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소재는 19세기 유럽 예술가들의 동경을 불러일으켰다.

 

평화는 예술의 보모이다.

- 세익스피어

 

이슈타르 문(복원), 기원전 575년, 베를린페르가몬박물관 메소포타미아의 여신 이슈타르의 이름을 붙인 이 문은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으로 들어가기 위한 입구였다.(폭 30m, 높이 14m)

이슈타르 문 조각을 발굴한 독일인들은 조각을 하나하나 분류하고 맞춰서, 문의 형태를 복원했다.

이슈타르 문에 새겨진 색색의 동물 부조는 정복 지역의 대표적 동물을 새긴 것이다.

바빌론 복원도 바빌론은 벽돌로 지은 거대한 성채로 둘러싸여 있으며, 중앙에는 지구라트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슈타르 문 복원도 이 문을 지나는 각지로부터 온 사신 또는 포로들은 거대한 바빌로니아 제국의 위엄에 주눅이 들었을 것이다.

바벨탑 복원도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바벨탑의 높이는 90미터에 달했다고 한다.

바벨탑 석비, 기원전 604~562년경, 노르웨이, 개인소장 '지구라트 카딩기라키(탑 바벨)'라는 쐐기문자 단면도와 구조도가 새겨진 이 석비는 바벨탑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 중 하나이다.

키루스 원통, 기원전 539년경, 영국박물관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가 신바빌로니아 정복 후 만든 것으로 피정복민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파라바하르 문양, 기원전 486~465년경 페르세폴리스의 벽면에 새겨진 파라바하르 문양은, 페르시아 문명의 상징물이자 조로아스터교의 상징이기도 하다.

샤를 시피에, 페르세폴리스 상상도, 1892년 프랑스의 고고학자 시피에가 남긴 페르세폴리스의 상상도로, 높은 기단 위에 세워진 도시 페르세폴리스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는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되어 지금은 기둥과 터만 남아 있다.

페르세폴리스 평면도

페르세폴리스 입구 페르세폴리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111개씩 2단으로 이루어진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만국의 문, 기원전 486~465년경, 이란 파르스 주 페르세폴리스의 왕궁 입구에는 역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라마수 조각이 세워져 있다.

대접견실(아파다나), 기원전 486~465년경, 이란 파르스 주 흔적만으로도 거대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이곳은 페르시아 제국의 왕이 피지배민들을 접견하던 곳이었다.

대접견실 기단 부조 대접견실의 기단에는 각지의 사신들이 새겨져 있다. 위로부터 순서대로 박트리아인, 소그드인, 리디아인의 모습을 새긴 부조이다.

대접견실 계단 부조 대접견실로 향하는 계단 옆 벽에는 페르시아 근위병들의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100개의 기둥이 있는 궁전, 기원전 486~465년경, 이란 파르스 주 100개의 기둥이 있던 이 거대한 건축물은 페르시아 제국의 회의실로 쓰이는 공간이었다.

다리우스 왕 궁전 기단 부조, 기원전 486~465년경, 이란 파르스 주 궁전의 기단 부분에도 앞선 왕국이 세운 왕궁들과 마찬가지로 부조가 새겨져 있다.

다리우스 왕 궁전 기단 부조 부분(위)과 아슈르바니팔 왕의 사자 사냥(아래) 다리우스 왕의 궁전 기단에 새겨진 사자 조각은 아시리아의 사자 조각에 비해 정형화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만국의 문의 기둥머리

그리스 에렉테이온 신전 기둥

이집트 카르나크 신전 기둥

페르세폴리스 기둥 구조

수사의 다리우스 왕궁 기둥머리, 기원전 510년경, 루브르박물관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이것은 기둥 전체가 아닌 머리 부분이다.

수사의 다리우스 왕궁 벽돌 장식, 기원전 510년경, 루브르박물관 푸른색으로 채색된 바탕에 페르시아 군대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알렉산더 대왕 금화, 기원전 336~323년경,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의 금화를 모두 녹여 자신의 얼굴을 새긴 금화를 만들었다.

페르시아 금화, 기원전 400년경, 애슈몰린박물관 페르시아 제국 초기 아케메네스 왕조 시기에 제작된 금화로, 순금을 재료로 왕의 이미지를 새겨 제작했다.

베히스톤 산 실크로드의 중심지에 해당하는 지역에 위치한 베히스톤 산은 평지에 우뚝 솟아올라 있어 웅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베히스툰 비문, 기원전 486년, 이란 지상 100미터 높이의 암벽에 가로 25미터 높이 15미터 규모의 거대한 비문이 새겨져 있다.

posted by 황영찬
2019. 1. 10. 16:35 내가 읽은 책들/2019년도

2019-004 타박타박 서울유람

 

 

· 사진 김혜영

2017, 시공사

 

대야도서관

SB114695

 

981.1602

김94ㅅ

 

· 사진 김혜영

 

(사)한국여행작가협회 총무이사. 걷기 여행을 즐기는 여행 작가다.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평범한 풍경도 색다르게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각종 기업체 사외보와 신문, 웹진, 잡지 등에 여행 기사를 기고하고 방송 매체를 통해서도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다. 소소한 여행 에피소드는 네이버 블로그 '토토로의 여행공작소'에 기록하며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저서로는 <주말여행 버킷리스트 99> <5천만이 검색한 대한민국 제철여행지>와 <경북 걷기 좋은 길> <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111> 외 2권의 공저가 있다.

 

차례

 

프롤로그

 

첫 번째 유람 _ #종로구

나만 알고 싶은 뒷골목의 숨은 보석
신문로 경희궁 둘레길

서울 토박이도 모르는
행촌동 서울성곽 동네길

철거된 아파트 밑에서 발견한 옛 명승지
서촌 예술가의 길

조선 시대 선비의 별장 터를 찾아가는
부암동 백사실ㆍ석파정 계곡길

문학과 자연에 취하는
청운동 인왕산 자락길

고운 이름 불러주고픈
삼청동 별별 카페 골목길

창덕궁 담장길에 머문 예술의 향기
원서동 공방길

북촌과 서촌이 식상해졌다면 주목할 만한 곳
익선동 타임머신길

‘그땐 그랬지’ 고개 끄덕이며 걷는
동숭동 대학로 역사길

성곽길을 따라 내려가면 휘황찬란한 별천지
이화동 마을 박물관길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숭인동 만물시장길

명불허전, 전통의 향취가 살아 있는
인사동 전통문화거리

900여 채의 한옥과 빌딩 숲의 조화
북촌 한옥마을길

 

두 번째 유람 _ #중구 #용산구 #강남구

을지로 골목에선 누구나 시간 여행자
을지 유람길

남산에 오르면 모두가 미니어처 세상
예장동 남산공원길

서울 변두리부터 최고 번화가까지 완전 정복
중림동 약현성당 순례길

‘역사길’이라 쓰고 ‘낭만길’이라 부르는
정동 근대건축물 답사길

한낮 공원에서 즐기는 피크닉
동부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 정원길

때때로 카페놀이, 가끔은 문화생활
이태원동 경리단길

이색 박물관과 도서관이 궁금해
신사동 도산공원길

조선의 왕과 왕실에 얽힌 역사 이야기
삼성동 선정릉 솔숲길

 

세 번째 유람 _ #마포구 #서대문구 #은평구

인스타그램에서 뜨는 핫 플레이스
망원동 시장 골목길

문화를 만들어가는 카페 집합소
상수동 카페 골목길

홍대 뒷골목에서 보물찾기
서교동 홍대 땡땡거리

기찻길 옆 한옥 카페
염리동 경의선 숲길

먹고 걷고 사랑하라
연남동 빈티지 골목길

서울에서 가장 멋진
안산 메타세쿼이아 숲길

연인들의 식도락 데이트 코스
연희동 연희맛길

미래의 계획도시를 걷고 싶다면
상암동 DMC 문화 거리

은빛 억새와 함께 한밤의 축제를
상암동 하늘공원 억새밭길

 

네 번째 유람 _ #성북구 #노원구 #성동구 #송파구

소박한 듯 세련된, 고고한 듯 소탈한
성북동 역사 인물 탐방길

옛 간이역이 데려다준 추억의 길
공릉동 폐경춘선 철길

개나리와 꽃사슴이 반기는
응봉동 개나리동산길

수제화 골목과 빈티지 카페의 앙상블
성수동 구두 장인의 거리

낭만을 안다면 연인과 함께 걸어요
광장동 아차산 생태공원길

골목길인가 만화방인가
성내동 강풀만화거리

봄날의 화려한 꽃놀이
방이동 몽촌토성 벚꽃길

 

다섯 번째 유람 _ #서초구 #관악구 #영등포구 #구로구 #양천구

흥얼흥얼 콧노래 부르며 걷고 싶은
반포동 허밍웨이길

언덕 위에서 즐기는 달콤한 휴식
반포동 서리풀공원 숲길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상도동 서달산 잣나무 숲길

유모차도 갈 수 있는 숲속 데크길
관악산 무장애 숲길

철공소마저 작품이 되는 창작인들의 아지트
문래동 샤링골목길

신생 수목원과 오래된 철길의 환상적 만남
항동 수목원 옆 철길

서울에 하나뿐인 향교 마을
가양동 양천향교 답사길

 

찾아보기

 

나만 알고 싶은 뒷골목의 숨은 보석

신문로 경희궁 둘레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1번 출구 → 도보 14분(857m) → 경희궁 → 도보 3분(219m) → 서울역사박물관 → 도보 5분(320m) → 멘쯔 → 도보 1분(82m) → 커피스트 → 도보 1분(35m) → 성곡미술관 → 도보 11분(692m) → 세종예술시장 소소 → 도보 2분(150m) → 세종이야기 → 도보 6분(395m) →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도보 5분(281m) → 경복궁

 

서울 토박이도 모르는

행촌동 서울성곽 동네길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 → 도보 6분(360m) → 돈의문 터 → 도보 2분(147m) → 경교장 → 도보 8분(520m) → 기상청 서울관측소 → 도보 8분(483m) → 월암근린공원 → 도보 3분(170m) → 홍난파 가옥 → 도보 3분(191m) → 권율 장군이 심은 은행나무 → 도보 1분(78m) → 딜쿠샤 → 도보 5분(303m) → 까사펠리체 → 도보 15분(990m) →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철거된 아파트 밑에서 발견한 옛 명승지

서촌 예술가의 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 → 도보 6분(381m) → 대림미술관 → 도보 2분(156m) → 백송 터 → 도보 7분(428m) → 통인시장 → 도보 1분(30m) → 효자베이커리 → 도보 1분(50m) → 옥인길 → 도보 2분(150m) → 옥인피자 → 도보 2분(105m) →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 → 도보 7분(470m) → 수성동계곡 → 도보 12분(770m) → 대오서점 → 도보 4분(230m) → 청전 이상범 가옥 → 도보 5분(330m) → 이상의 집

 

조선 시대 선비의 별장 터를 찾아가는

부암동 백사실ㆍ석파정 계곡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 1711번 버스로 10분(6개 정류장) + 도보 1분(84m) → 세검정 → 도보 2분(139m) → 송스키친 → 도보 10분(686m) → 백사실계곡 → 도보 21분(1.4km) → 부암동 골목 → 도보 8분(520m) → 서울미술관 → 도보 1분(80m) → 석파정 → 도보 3분(217m) → 소마 → 도보 4분(250m) → 무계원

 

문학과 자연에 취하는

청운동 인왕산 자락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 → 7022 · 7212 · 1020번 버스로 15분(5개 정류장) → 윤동주문학관 → 도보 5분(350m) → 청운문학도서관 → 도보 3분(190m) → 인왕산 자락길 → 도보 50분(2km) → 사직공원 → 도보 4분(250m) → 사직동그가게 → 도보 4분(240m) → 홍건익 가옥 → 도보 2분(130m) →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 도보 1분(100m) → 라면점빵

 

고운 이름 불러주고픈

삼청동 별별 카페 골목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 → 도보 3분(190m) → 감고당길 → 도보 6분(430m) → 화개길 → 도보 4분(253m) → 삼청동 카페 거리 → 도보 11분(732m) → 눈나무집 → 도보 4분(243m) → 삼청공원 → 도보 8분(540m) → 복정길 → 도보 4분(292m) → 차 마시는 뜰 → 도보 5분(326m) → 정독도서관 & 서울교육박물관 → 도보 4분(279m) → 별궁길

 

창덕궁 담장길에 머문 예술의 향기

원서동 공방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 → 도보 7분(479m) → 창덕궁 → 도보 5분(366m) → 버거뱅 → 도보 2분(122m) → 싸롱 마고 → 도보 1분(63m) → 원서동 공방길 → 도보 8분(544m) → 원서동 빨래터 → 도보 1분(86m) → 고희동 가옥 → 도보 3분(200m) → 책방무사 → 도보 2분(100m) → 중앙도서관 → 도보 1분(50m) → 계동길 → 도보 7분(454m) → 북촌문화센터

 

북촌과 서촌이 식상해졌다면 주목할 만한 곳

익선동 타임머신길

 

지하철 1 · 3 · 5호선 종로3가역 4번 출구 → 도보 2분(120m) → 열두달 → 도보 1분(50m) → 익선동 골목길 → 도보 1분(70m) → 빈티지보니 & 수집 → 도보 1분(30m) → 식물 → 도보 8분(530m) → 운현궁 → 도보 9분(603m) → 서순라길 → 도보 12분(785m) → 종묘

 

‘그땐 그랬지’ 고개 끄덕이며 걷는

동숭동 대학로 역사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 → 도보 1분(81m) → 마로니에공원 → 도보 9분(540m)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 사적지 → 도보 7분(430m) → 창경궁 → 도보 14분(928m) → 성균관대학교 명륜당 은행나무 → 도보 10분(670m) → 정돈 → 도보 1분(81m) → 학림다방

 

성곽길을 따라 내려가면 휘황찬란한 별천지

이화동 마을 박물관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 → 도보 8분(520m) → 쇳대박물관 → 도보 7분(494m) → 이화동 벽화마을 → 도보 이동 → 이화동 박물관 골목 → 도보 이동 → 개뿔 → 도보 1분(50m) → 낙산성곽길 → 도보 12분(817m) → 창신동매운족발 → 도보 17분(973m) →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 도보 8분(493m) → DDP 서울밤도깨비야시장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숭인동 만물시장길

 

지하철 1 · 6호선 동묘앞역 3번 출구 → 도보 4분(264m) → 낙산냉면 → 도보 5분(365m) → 동묘 구제시장 → 도보 1분(69m) → 동묘 → 도보 12분(716m) → 황학동 주방 거리 → 도보 3분(152m) → 황학동 벼룩시장 → 도보 1분(70m) → 신당창작아케이드

 

명불허전, 전통의 향취가 살아 있는

인사동 전통문화거리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 → 도보 5분(310m) → 조계사 → 도보 3분(186m) → 체신기념관 → 도보 5분(278m) → 꽃, 밥에 피다 → 도보 1분(70m) → 인사동 전통문화거리 → 도보 2분(120m) → 쌈지길 → 도보 5분(320m) → 아름다운차박물관 → 도보 7분(466m) → 탑골공원 원각사지십층석탑

 

900여 채의 한옥과 빌딩 숲의 조화

북촌 한옥마을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 → 도보 6분(424m) → 대장장이화덕피자 → 도보 2분(150m) → 가회동 공방 골목 → 도보 2분(130m) → 북촌로11길 → 도보 6분(386m) → 북촌전망대 → 도보 10분(666m) → 백인제가옥

 

을지로 골목에선 누구나 시간 여행자

을지 유람길

 

지하철 2 · 3호선 을지로3가역 2번 출구 → 도보 1분(33m) → 오구반점 → 도보 2분(110m) → 커피한약방 → 도보 2분(126m) → 타일 · 도기 골목 → 도보 3분(209m) → 노가리 골목 → 도보 3분(140m) → 노포 골목 → 도보 5분(289m) → 세운대림상가 조명 거리 → 도보 2분(115m) → 기계 · 공구 골목 & 피에타 거리 → 도보 6분(358m) → 방산시장 & 광장시장

 

남산에 오르면 모두가 미니어처 세상

예장동 남산공원길

 

지하철 3 · 4호선 충무로역 4번 출구 → 도보 5분(314m) → 남산골한옥마을 → 도보 12분(760m) → 남산공원 산책로(북측 순환로 입구) → 도보 13분(840m) → 와룡묘 → 도보 3분(230m) → 못멱산방 → 도보 16분(1.1km) → 남산봉수대 → 도보 3분(180m) → N서울타워 → 도보 50분(3.2km) → 장충단공원 → 도보 6분(400m) → 태극당

 

서울 변두리부터 최고 번화가까지 완전 정복

중림동 약현성당 순례길

 

지하철 1 · 4호선 서울역 1번 출구 → 도보 2분(100m) → 문화역서울284 → 도보 1분(50m) → 공예누리 → 도보 10분(610m) → 닭한마리칼국수 원조집 → 도보 4분(236m) → 중림동 약현성당 → 도보 3분(285m) → 염천교 수제화 거리 → 도보 2분(127m) → 칠패시장 터 → 도보 10분(584m) → 남대문시장 → 도보 7분(465m) →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 도보 8분(545m) → 재미로 → 도보 12분(815m) → 명동대성당

 

‘역사길’이라 쓰고 ‘낭만길’이라 부르는

정동 근대건축물 답사길

 

지하철 1 · 2호선 시청역 2번 출구 → 도보 1분(50m) → 덕수궁 → 도보 5분(300m) → 정동전망대 → 도보 4분(260m) → 정동길 → 도보 4분(230m) → 서울시립미술관 → 도보 2분(140m) →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 도보 3분(200m) → 정동제일교회 → 도보 1분(85m) → 남도식당 → 도보 1분(90m) → 덕수궁 중명전 → 도보 5분(300m) → 이화학당 심슨기념관 → 도보 4분(265m) → 구 러시아 공사관 탑 → 도보 12분(759m) → 성공회서울성당 → 도보 8분(520m) → 카페 이마 → 도보 8분(513m) → 구 서울청사

 

한낮 공원에서 즐기는 피크닉

동부이촌동 국립중앙박물관 정원길

 

지하철 4호선 이촌역 1번 출구 → 도보 2분(120m) → 교토마블 → 도보 8분(507m) → 국립중앙박물관 → 도보 4분(294m) →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정원 → 도보 4분(350m) → 국립한글박물관 → 도보 6분(389m) → 용산가족공원 → 도보 16분(1km) → 아지겐(본점)

 

때때로 카페놀이, 가끔은 문화생활

이태원동 경리단길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1번 출구 → 도보 10분(647m) → 바다식당 → 도보 3분(232m) → 삼성미술관 리움 → 도보 14분(900m) → 남산공원 → 도보 10분(633m) → 경리단길

 

이색 박물관과 도서관이 궁금해

신사동 도산공원길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3번 출구 → 도보 9분(631m) → 스페이스씨 → 도보 7분(471m) → 강서면옥→ 도보 1분(80m) → 퀸마마마켓 → 도보 4분(276m) → 도산공원 → 도보 1분(10m) → 리버사이드길 → 도보 3분(192m) → 호림아트센터 → 도보 7분(472m) →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조선의 왕과 왕실에 얽힌 역사 이야기

삼성동 선정릉 솔숲길

 

지하철 2호선 분당선 선릉역 8번 출구 → 도보 2분(136m) → 최인아책방 → 도보 7분(480m) → 정릉~정현왕후릉~성종릉~선정릉 출입구~선정릉 외곽 담장길 → 도보 20분(1.36km) ※꽤 먼 거리이므로 선릉역으로 돌아와 지하철 탑승 후 9호선 봉은사역에서 하차, 1번 출구로 나오면 봉은사로 가기 편하다. → 봉은사 → 도보 11분(705m) → 페이보리스 원

 

인스타그램에서 뜨는 핫 플레이스

망원동 시장 골목길

 

지하철 6호선 망원역 2번 출구 → 도보 5분(349m) → 망원시장 → 도보 3분(219m) → 어쩌다가게 → 도보 1분(20m) → 구내식당 → 도보 7분(483m) → 소쿠리 → 도보 2분(105m) → 수바코 → 도보 3분(226m) → 딥 블루 레이크 → 도보 3분(216m) → 사프란블루 → 도보 2분(126m) → 만일

 

문화를 만들어가는 카페 집합소

상수동 카페 골목길

 

지하철 6호선 상수역 4번 출구 → 도보 4분(262m) → 만뽀 → 도보 이동 → 상수동 카페 거리 → 도보 3분(230m) → 주택가 카페 골목 → 도보 3분(172m) → 앤트러사이트 → 도보 8분(565m) →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 도보 5분(358m) → 절두산 순교성지 → 도보 19분(1.24km) → 선유도공원

 

대 뒷골목에서 보물찾기

서교동 홍대 땡땡거리

 

지하철 2호선 · 경의중앙선 · 공항철도 홍대입구역 6번 출구 → 바로 → 경의선 책거리 → 도보 6분(348m) → 땡땡거리마켓 → 바로 → 철길왕갈비살 → 도보 10분(636m) → 도토리숲 → 도보 4분(235m) → 홍대프리마켓 → 도보 7분(436m) → 땡스북스 → 도보 2분(150m) → KT&G 상상마당 → 도보 5분(270m) → aA 디자인 뮤지엄 → 도보 4분(287m) → 퍼블리크 → 도보 1분(100m) → 홀라인 → 도보 1분(50m) → 로렌스길

 

기찻길 옆 한옥 카페

염리동 경의선 숲길

 

지하철 5 · 6호선 · 경의중앙선 · 공항철도 공덕역 1번 출구 → 도보 4분(223m) → 공덕역 경의선 숲길 → 도보 5분(333m) →달팽이가 그린 집→ 도보 1분(45m) → 커피 향 깊은 그 한옥 → 도보 12분(800m) → 빅 베어 브레드 → 도보 9분(551m) → 서강대역 경의선 숲길 → 도보 9분(567m) → 홍대입구역 경의선 숲길 → 도보 1분(75m) → 김진환제과점

 

먹고 걷고 사랑하라

연남동 빈티지 골목길

 

지하철 경의중앙선 가좌역 1번 출구 → 도보 8분(519m) → 가좌역 경의선 숲길 → 도보 4분(282m) → 사는게꽃같네 아트플라츠→ 도보 7분(475m) → 동진시장 → 도보 1분(10m) → 연남동 골목 → 도보 1분(10m) → 베무쵸칸티나 → 도보 1분(40m) → 헬로인디북스 → 도보 5분(353m) → 낙랑따라

 

서울에서 가장 멋진

안산 메타세쿼이아 숲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4번 출구 → 서대문 03번 마을버스로 20분(9개 정류장) → 서대문자연사박물관 → 도보 6분(383m) → 안산 메타세쿼이아 숲길→ 도보 40분(2.5km) → 봉원사 → 도보 10분(655m) → 연세대학교 → 도보 9분(596m) → 제중원 & 수경원 → 도보 17분(1.15km) → 미분당

 

연인들의 식도락 데이트 코스

연희동 연희맛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4번 출구 → 서대문04번 마을버스로 10분(5개 정류장) + 도보 1분(63m) → 독일빵집 → 도보 1분(60m) → 메뉴팩트커피→ 도보 3분(170m) → 시오 → 도보 2분(136m) → 연희김밥(본점) → 도보 2분(150m) → 메리앤올리버 → 도보 4분(266m) → 알로하연희동 ×코끼리플레이트 → 도보 6분(393m) → 연희문학창작촌 → 도보 5분(327m) → 작은 나폴리 → 도보 2분(89m) → 피터팬제과 → 도보 3분(173m) → 연희동칼국수 → 도보 2분(100m) → 크림필즈 → 도보 3분(140m) → 미란

 

미래의 계획도시를 걷고 싶다면

상암동 DMC 문화 거리

 

지하철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 9번 출구 → 도보 7분(458m) → 김영섭초밥 → 도보 4분(294m) → 물빛문화공원→ 도보 5분(311m) → DMC홍보관 → 도보 6분(427m) → 디지털파빌리온 → 도보 2분(158m) → 한국영상자료원 → 도보 2분(136m) → 상암동 MBC 신사옥 → 도보 1분(56m) → 로네펠트→ 도보 11분(710m) → 구룡근린공원 → 7737 · 7013A, B번 버스로 7분(1개 정류장) + 도보 4분(258m) → 북바이북

 

은빛 억새와 함께 한밤의 축제를

상암동 하늘공원 억새밭길

 

지하철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 2번 출구 → 도보 12분(792m) → 평화의 공원 → 도보 15분(1km) → 하늘공원 메타세쿼이아길→ 도보 10분(646m) → 하늘공원 → 도보 10분(678m) → 마포농수산물시장

 

소박한 듯 세련된, 고고한 듯 소탈한

성북동 역사 인물 탐방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 도보 8분(510m) → 무명식당 → 도보 5분(317m) → 최순우옛집→ 도보 10분(605m) → 누부티스 → 도보 6분(372m) → 길상사 → 도보 1분(56m) → 효재 → 도보 14분(955m) → 심우장 → 도보 2분(130m) → 북정마을 → 도보 8분(522m) → 수연산방

 

옛 간이역이 데려다준 추억의 길

공릉동 폐경춘선 철길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 4번 출구 → 도보 3분(223m) → 시간을 거니는 철길 숲길 → 도보 11분(747m) → 구 화랑대역→ 도보 1분(70m) → 목예원 → 도보 5분(364m) → 육군사관학교 → 도보 4분(239m) → 소라분식 → 도보 10분(600m) → 태릉 & 강릉 숲길 → 도보 30분(숲길 1.8km) → 강릉

 

개나리와 꽃사슴이 반기는

응봉동 개나리동산길

 

지하철 경의중앙선 응봉역 1번 출구 → 도보 12분(788m) → 응봉산 개나리동산 → 도보 26분(1.7km) → 용비교→ 도보 9분(567m) → 서울숲공원 → 도보 1분(21m) → 언더스탠드 에비뉴 → 도보 7분(495m) → 소녀방앗간 → 도보 2분(112m) → 푸르너스가든

 

수제화 골목과 빈티지 카페의 앙상블

성수동 구두 장인의 거리

 

지하철 2호선 성수역 → 역내 도보 이동 → 슈스팟 성수 → 도보 1분(70m) → 프롬 SS → 도보 4분(238m) → 성수동 수제화 거리 → 도보 5분(336m) → 구두테마공원 → 도보 6분(384m) → 주택가 벽화골목 → 도보 3분(183m) → 소문난 성수감자탕 → 도보 5분(320m) → 성수동 카페 거리

 

낭만을 안다면 연인과 함께 걸어요

광장동 아차산 생태공원길

 

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1번 출구 → 도보 4분(255m) → 서울어린이대공원 → 도보 6분(411m) → 신토불이 떡볶이→ 도보 19분(1.26km) → 아차산생태공원 → 도보 18분(1.17km) → 비스타워커힐서울 산책로 → 도보 16분(1km) → 광나루순대 → 도보 13분(840m) → 광진교8번가 → 도보 5분(347m) → 광나루한강공원

 

골목길인가 만화방인가

성내동 강풀만화거리

 

지하철 5호선 강동역 4번 출구 → 도보 1분(10m) → 강풀만화거리 → 도보 6분(395m) → 성내전통시장→ 도보 7분(453m) → 성내동 주꾸미 골목 → 도보 1분(76m) → 독도 주꾸미

 

봄날의 화려한 꽃놀이

방이동 몽촌토성 벚꽃길

 

지하철 2호선 잠실나루역 1번 출구 → 도보 5분(308m) → 성내천 벚꽃길 → 도보 18분(1.2km) → 몽촌토성길 → 도보 18분(1.2km) → 한성백제박물관 → 도보 1분(30m) → 더한스아리아 → 도보 5분(360m) → 소마미술관 → 도보 1분(30m) → 잇 → 도보 25분(1.8km) → 석촌호수 벚꽃길

 

흥얼흥얼 콧노래 부르며 걷고 싶은

반포동 허밍웨이길

 

지하철 3 · 7 · 9호선 고속터미널역 8번 출구 → 도보 2분(100m) → 센트럴시티 파미에스테이션 → 도보 이동 → 스튜디오 300 → 도보 5분(358m) → 지하철 3 · 7 · 9호선 고속터미널역 5번 출구 → 도보 1분(20m) → 허밍웨이길 → 도보 35분(2.4km) → 지하철 4 · 9호선 동작역 1번 출구 → 도보 18분(1.2km) → 서래섬 → 도보 11분(688m) → 세빛섬 → 도보 5분(240m) → 반포대교 달빛무지개분수

 

언덕 위에서 즐기는 달콤한 휴식

반포동 서리풀공원 숲길

 

지하철 3 · 7 · 9호선 고속터미널역 3번 출구 앞 센트럴육교 → 도보 6분(417m) → 서리풀공원 숲길 → 도보 14분(900m) → 누에다리 → 도보 1분(80m) → 몽마르뜨공원 → 도보 8분(504m) → 서래마을 → 도보 7분(461m) → 37.5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상도동 서달산 잣나무 숲길

 

지하철 7호선 상도역 5번 출구 → 도보 6분(382m) → 가야 → 도보 5분(250m) → 서달산 잣나무 숲 → 도보 20분(1km) → 달마사 거북바위 → 도보 5분(200m) → 동작대 → 도보 7분(400m) → 국립서울현충원 상도동 쪽 출입구 → 도보 15분(1km) → 국립서울현충원 정문 → 도보 11분(759m) → 노을카페

 

유모차도 갈 수 있는 숲속 데크길

관악산 무장애 숲길

 

지하철 2호선 신림역 3번 출구 → 6614번 버스로 14분(6개 정류장) + 도보 1분(20m) → 관악산 시도서관 → 도보 17분(1.6km) → 숲속 작은 도서관 → 도보 20분(1.1km) → 관악산 무장애 숲길 → 도보 3분(180m) → 열녀암 → 도보 30분(1.3km) + 6514번 버스로 15분(7개 정류장) + 도보 3분(22m) → 백순대볶음

 

철공소마저 작품이 되는 창작인들의 아지트

문래동 샤링골목길

 

지하철 2호선 문래역 7번 출구 → 도보 4분(215m) → 문래창작촌 → 도보 1분(60m) → 쉼표말랑 → 도보 2분(150m) → 치포리 → 도보 3분(173m) → 빛타래 → 도보 16분(1km) → 타임스퀘어

 

신생 수목원과 오래된 철길의 환상적 만남

항동 수목원 옆 철길

 

지하철 7호선 천왕역 2번 출구 → 도보 1분(25m) → 연희김밥(천왕점) → 도보 8분(475m) → 항동철길 → 도보 15분(1km) → 푸른수목원 → 도보 7분(440m) → 옐로우트리카페

 

서울에 하나뿐인 향교 마을

가양동 양천향교 답사길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2번 출구 → 도보 6분(371m) → 옛날국수가게 → 도보 1분(79m) → 양천향교 → 도보 6분(388m) → 겸재정선미술관 → 도보 1분(34m) → 궁산근린공원 둘레길 → 도보 6분(361m) → 소악루 → 도보 10분(600m) → 공암나루근린공원 → 도보 15분(980m) → 그라나다카페 → 도보 1분(60m) → 허가바위(공암바위) → 도보 2분(68m) → 허준박물관 → 도보 1분(34m) → 광주바위 & 구암공원 → 도보 12분(773m) → 이가 바지락칼국수

 

 



 

 

 

 

posted by 황영찬

2019-003 뿌기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③ 고려

 

 

 

이병희 지음

2015, 가람기획

 

군자도서관

SE070153

 

911

뿌298ㄱ2   3

 

쟁점과 사료로 풀어쓴 새로운 한국사

 

풍부한 사료와 충실한 해설로 다시읽는 한국사

왕건의 건국에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까지, 화려한 고려 왕조 속으로!

 

사람이 제 구실을 하며 올바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를 하나만 지적해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來歷을 거짓이나 꾸밈없이 제대로 기억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려 부모와 형제, 스승과 친구를 알지 못하고 자기가 누군지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인지도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다면 설령 그 삶이 유복하더라도 그것을 그의 정당한 삶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을 잘 기억하는 것은 곧 나를 나일 수 있게 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그리고 그 기억은 거짓 없는 사실에 기초한 것이어야만 한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해도 진짜라고 믿었던 집안의 족보가 조작되었다면 자기의 뿌리를 의심하고 방황하게 될 것은 당연한 일일 터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을 우리는 ‘역사歷史’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역사를 자신의 존망을 걸고 똑바로 알아야만 한다. 역사란 그저 단순한 호기심에서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자기 역사를 모르고서는 사람이 제 구실을 할 수가 없고 자기 역사를 잘못 알아서는 남의 삶을 사는 것이 되기에, 정신을 차리고 온갖 힘을 다하여 이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같은 이치로, 우리가 한국 사람으로서 이 시대를 올바로 살아가려면 우리 역사 곧 국사를 바르게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국사는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에 대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개정 신판 간행사」에서

 

지은이

이병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문학 석사 ·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목포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사 학위 논문은 「고려 후기 사원 경제의 연구」(1992)이며, 대표 논저로 「고려 시대 전남 지방의 향 · 부곡」(1998), 「고려 후기 농지 개간과 신생촌」(2003), 「고려 시기 사원의 술 생산과 소비」(2013) 외에 다수가 있으며, 저서로는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3』(2002), 『고려 후기 사원 경제 연구』(2008), 『고려 시기 사원 경제 연구』(2009) 등이 있다.

 

차례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개정 신판 간행사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초판 간행사

「고려편」 개정 신판 머리말

초판 머리말

 

Ⅰ. 정치 영역

        1. 호족의 지원을 받아 통일하다 · 고려와 호족 종합

        2. 중앙 관제를 확립하다 · 3성과 도병마사

        3. 지방 행정 제도를 정비하다 · 5도 양계와 주현 · 속현

        4. 지방 세력을 견제하다 · 사심관과 기인

        5. 군사 제도의 형성과 변천 · 경군과 주현군

        6. 벼슬길에 오르는 두 가지 방법 · 과거제와 음서

        7. 지배층의 갈등, 고려를 흔들다 ·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

        8. 무신들이 난을 일으키다 · 무신란

        9. 무인, 국정을 운영하다 · 무인 집권과 정방

        10. 원이 내정에 간섭하다 · 원의 간섭과 부원 세력

        11.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 반원 정책과 전민변정

        12. 고려, 역사 속으로 저물다 · 위화도 회군과 고려의 종언

 

Ⅱ. 경제 영역

        1. 지배층에게 토지를 나누어주다 · 전시과

        2. 농업은 경제의 중심 · 토지 소유와 농업 생산

        3. 물화의 교역이 활기를 띠다 · 국내의 상업 활동

        4. 철전, 동전, 그리고 은병 · 화폐의 주조와 사용

        5. 각종 물품을 생산하다 · 수공업

        6. 땅에서 세금을 거두다 · 결부제와 전조

        7. 현물과 노동력을 걷다 · 공부와 요역

        8. 농장, 사전에서 발달하다 · 농장의 발달

        9. 사원도 경제 활동의 주체 · 사원 경제

 

Ⅲ. 사회 영역

        1. 고려 특유의 행정 구역 · 향 · 부곡 · 소

        2. 향리, 향촌 사회를 이끌어가다 · 향리와 향촌 사회

        3. 관료 조직의 하층 구성원 · 남반과 서리

        4. 기술관도 양반으로 승진하다 · 의관, 역관, 일관 및 기타 기술관

        5. 가장 낮은 사회 계층 · 노비와 양수척

        6. 재혼은 자유, 재산 분배는 평등 · 가족 제도

        7. 절, 수행과 교화의 공간 · 사원과 촌락

        8. 농민과 노비, 들고 일어나다 · 농민 · 노비의 난

        9. 고려 왕조 400년 도읍지 · 개경

        10. 대몽 항전기 39년 도읍지 · 강도

        11. 개경에 버금가는 제2의 도시 · 서경의 위상

        12. 바다 실크로드의 종착지 · 해양 도시 벽란도

 

Ⅳ. 사상 문화 영역

        1. 유교를 다스림의 원리로 삼다 · 시무 28조와 유교 정치 이념

        2. 고려의 공교육과 사교육 · 국자감과 12공도

        3. 고려를 밝힌 부처의 불빛 · 팔관회와 연등회

        4. 불교 사상의 통합을 꿈꾸다 · 천태종과 수선사

        5. 고려 이전의 역사를 정리하다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6. 위대한 유산 · 금속활자와 청자

        7. 다양한 사상이 유행하다 · 도교와 풍수지리설

        8. 부처의 힘으로 나라를 구하자 · 팔만대장경

        9. 새로운 유학을 받아들이다 · 성리학의 수용

        10. 불교를 배척하다 · 배불론

        11. 소리 없는 혁명 · 목면과 화약

 

Ⅴ. 대외 관계 영역

        1. 거란을 세 번 물리치다 · 강동6주와 귀주대첩

        2. 동북 땅을 둘러싼 긴장과 갈등 · 여진 정벌과 동북9성

        3. 세계 속의 ‘코리아’ · 국제 교역의 발달

        4. 거대한 적, 몽골과 싸우다 · 대몽 항쟁과 삼별초

        5. 원나라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다 · 동녕부와 쌍성총관부

        6. 남쪽의 침략, 북쪽의 침입 · 왜구와 홍건적

        7. 국내적으로 황제국을 표방하다 · 외왕내제 의식

 

부록

        왕 계보도

        연표

        찾아보기

        각 장별 아이콘 설명

 

완사천. 전라남도 나주시 송월동에 있는 샘이며, 전남기념물 제93호다. 왕건이 궁예의 장군으로서 후백제 견훤과 나주에서 싸울 때 목이 타서 샘(완사천)가에서 빨래하던 처녀에게 물을 청하자 처녀는 바가지에 물을 떠 버들잎을 띄워서 공손히 바쳤다. 왕건은 이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곧 장화왕후 오씨였다. 장화왕후에게서 태어난 아들 무武가 제2대 왕 혜종이 되었다.

태조 왕건(877~943)의 초상화. 왕건은 후삼국 분열 시기에 호족의 지원을 끌어들이고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귀부를 받으며, 후백제의 신검군을 황산에서 격파함으로써 936년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개경에 남아 있는 회경전 터. 회경전은 조선 시대의 경복궁에 해당하는 정전正殿이었으며, 인종 이후에 선경전으로 고쳐 불렀다.

고려의 5도 양계. 고려는 전국을 5도와 양계로 나누었다. 5도는 양광도 · 서해도 · 교주도 · 전라도 · 경상도였으며 안찰사를 파견하였고, 양계는 북계와 동계로 병마사를 파견하였다. 삼경은 초기에는 수도인 개경과 서경(평양), 동경(경주)이었으나 문종대에 남경(서울)이 설치되면서 경주의 중요성이 하락하였다. 12목은 성종 때에 지방관이 파견된 대표적인 고을이었다.

삼태사묘 바깥 전경. 삼태사묘는 고려 개국공신인 김선평金宣平 · 권행權幸 · 장길張吉 삼태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중종 35년(1540) 안동부사 김광철이 현 위치에 묘를 건립하였으며, 경상도 관찰사 권철이 제전祭田을 설치하고 노복을 주었다. 또한 명종 11년(1556) 안동부사로 부임한 권소는 제전과 곡물을 더해주고 권씨 성을 가진 수석 호장戶長에게 맡겨 이식을 취하여 매년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철제 금은입사 사인참사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검이다. 마魔를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진 주술형 검인 참사검斬邪劍 중 하나로, 십이간지 중 호랑이를 상징하는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에 제작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서곡리에 있는 벽화에 그려진 그림으로, 관료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은 음곽선으로 윤곽을 먼저 잡은 다음, 그 위에 묵선墨線으로 그렸다. 얼굴의 세부와 손에 쥔 홀笏, 소매의 주름 등은 묵선으로 그렸고, 얼굴의 코 · 입술 · 관모 등은 묵선으로 그린 다음 붉은 채색을 하였다. 벽화가 그려진 무덤은 공민왕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무덤의 주인은 고려 후기의 문신인 권준으로 확인되었다.

고려 현종 때 상서좌복야尙書左僕야射를 지낸 인주이씨의 시조 이허겸李許謙의 묘 앞에 세운 재실(원인재). 이허겸은 이자연의 조부이고 이자겸의 고조부이다.

주로 손을 써서 상대를 공격하거나 수련하는 전통 무예의 하나인 수박희를 하는 모습. 고구려 시대 고분 벽화에 수박희를 행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 시대에 이미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매우 중요한 무예로 여겨져 무인들은 이를 익혀야 했다.

격구. 무신들이 무예를 익히는 방법으로 하던 놀이다. 타구打毬 또는 포구抛毬라고도 한다. 오늘날의 골프 또는 하키와 같이 막대기로 공을 치는 경기다. 격구擊毬에는 말을 타고 하는 기마 격구와 궁중이나 넓은 마당에서 하는 보행 격구가 있다. 무신이 한 기마 격구는 구장에서 말을 타고 막대기로 공을 쳐서 구문 밖으로 내보내는 놀이다.

『동국이상국집』. 이규보의 시문집이며 53권 13책이다. 아들 함涵이 고종 28년(1241)에 전집全集 41권을, 이듬해에 후집後集 12권을 편집하여 간행하였으며, 고종 38년에 고종의 명령으로 손자 익배益培가 분사대장도감分司大藏都監에서 증보판을 간행했다. 조선 시대에도 여러 번 간행된 듯하다.

종묘에 있었던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영정.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조선 건국을 정당화시킬 목적으로 고려 공민왕 내외의 영정을 그려 조선의 종묘에 봉안하였다.

공민왕릉. 개성직할시 개풍군 해선리에 있으며, 일명 현릉이라고도 한다. 왕비 노국대장공주의 무덤인 정릉正陵과 나란히 있는 쌍무덤으로, 서쪽의 것이 현릉이다. 봉분은 지름이 13미터, 높이 6.5미터이며, 둘레돌은 화강석을 사용하였고 면석面石에는 12지신상이 돋을새김되었다. 석호石虎, 석양石羊, 장명등長明燈, 문인석과 무인석이 서 있다. 공민왕릉의 능제는 고려 말기의 능 형식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조선 시대로 이어졌다.

삼척에 있는 공양왕릉. 공양왕(재위 1389~1392)은 신종의 7대손이며 정원부원군 왕균의 아들이다. 고려 마지막 왕으로 이성계 세력에 의해 폐위된 뒤 원주에 추방되어 공양군으로 강등되었다가 2년 뒤 삼척에서 살해되었다. 공양왕릉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도 있는데, 문화재청에서는 고양시에 있는 것을 공식 안정되고 있다.

어제비장전변상. 『어제비장전』 제6권(1977년 무렵에 발견)에 삽입된 위의 판화는 초조대장경에서 인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5점의 변상도 가운데 위의 그림은 제3도로서 전 · 중 · 원경으로 전체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산수 속에 인물들을 적절히 배치한 일종의 산수 인물화다. 산과 구름, 내川와 나무의 배치가 매우 자연스러워 판화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으며, 인물의 형태나 몸짓도 상당히 세련된 격조 높은 그림이다.

「미륵하생경변상도」 하단에 그려진 농민의 모습. 불화는 불교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림이지만, 때로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전하기도 한다. 이 불화에는 농민들이 곡식을 베고 옮기는 것이 그려져 잇어 당시 농민의 생활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 시대에 사용했던 철제 농기구로 위의 사진은 낫이다. 낫은 곡물을 수확할 때 사용하는 농기구다.

행상의 모습. 행상에는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물품을 파는 상인도 있고, 소규모로 가까운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호매呼賣 행위를 하는 상인도 잇다. 고려 시대에도 이런 행상이 잇어 백성 사이를 오가며 필요한 물품을 공급했을 것이다.

고려 시대의 화폐. 성종 때 칠전을 주조해 사용하도록 했으나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숙종 때 해동통보 · 해동중보 · 삼한통보 등 많은 동전을 주조하여 사용토록 하였다. 은병은 가치가 커서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없었으며, 주로 지배층이 고액 거래에서 사용했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고려 시대에 유통된 동전이다.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靑銅銀入絲蒲柳水禽文淨甁. 고려 시대 대표적인 정병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높이가 37.5센티미터로 국보 제92호다. 수양버들이 늘어져 잇으며 오리를 비롯한 물새들이 헤엄치거나 날아오르는 풍경이 그려져 잇다. 상감청자와 나전칠기 등 상감 기법이 발달하던 11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퍙안북도 동창군 학성리에서 출토된 11세기 초의 고려 시대 화살촉.

염제신 초상. 전남 나주시 삼영동 충경서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보물 제1097호다. 비단에 채색하였고 작자는 미상이나 공민왕이 그렸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전체적으로 필치가 섬세하고 작품의 품격이 뛰어나 고려 시대 초상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그림의 주인공인 염제신은 충혜왕 · 충목왕 · 충정왕 · 공민왕 · 우왕 등 고려의 다섯 왕을 섬긴 권세가다.

통도사국장생석표. 선종 2년(1085) 호부의 승인을 받아 세웠으며, 가로 60센티미터, 세로 166센티미터이다. 보물 74호이다. 고려 시대 사원에는 종종 국가의 승인을 받아 세운 장생표가 있는데, 사원의 권역을 표시하였다. 장생표가 세워진 영역 내의 민과 토지에 대해서 사원은 배타적 · 독점적 지배를 할 수 있었다. 통도사에는 여러 개의 장생표가 세워졌으나 현재는 2기만이 남아 있다.

사천매향비. 경남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에 있는 고려 말기의 매향비로 1977년에 발견되었으며, 보물 제614호다. 우왕 13년(1387)에 매향한 곳에 세운 비석으로 4,100인이 결계結契하여 국태민안國泰民安과 미륵보살의 하생下生을 염원하는 총 204자의 축원문이 큰 바위 밑면(길이 1.6미터, 너비 1.2미터)에 새겨져 있다.

정도사 5층석탑 조성 형지기形止記. 1905년 폐사지의 5층석탑을 해체하여 서울 경복궁으로 옮길 때 탑 속의 유합鍮合 안에서 종이에 묵서墨書한 형태로 발견된 문서다. 이 형지기는 54행 2,000여 자에 이르는데, 현종 10년(1019)에서 현종 22년에 이르기까지 경산부京山府의 임내였던 약목군(오늘날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의 향리와 백성들이 자기 지역 내의 정두사에 5층석탑을 건립하는 과정을 기록하였다.

개성 첨성대. 고려 시대에는 천문 관측을 위한 기관으로 서운관이 있었으며 천문 관측도 활발했다. 『고려사』「천문지」에는 일식과 혜성의 출현이나 주요 행성들의 여러 가지 이상 현상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고려 시대 기술관이 있던 일관日官은 해와 달, 별의 움직임을 세밀히 관측했으며 역서曆書를 편찬했다. 사진은 고려의 옛 궁성터인 만월대 서문 밖에 있는 고려 시대 천문 관측 건축물로, 첨성대엿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정至正 14년(1354) 노비 문서. 고려 공민왕 때의 노비 문서로 「소지所志」4장 「입안立案」 2장 모두 6장으로 되어 있으며 보물 제483호다. 공민왕 때 직장동정直長同正으로 있던 윤광전尹光琠이 소윤少尹의 관직을 가진 자신의 적장자嫡長子 단학丹鶴에게 노비를 상속해주는 증서다.

고려 말 호적. 사진은 1391~1392년 무렵에 작성된 화령부和寧府 호적의 일부로 추정되는 문서다. 닥나무 종이에 쓰여 있으며 원본은 세로 56센티미터, 가로 50센티미터 내외인데, 모두 8폭을 이어 전체 386센티미터이다. 첫째 폭은 사심 이성계가 소유하고 있는 노비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으며, 둘째 폭은 호구 성적을 위한 세부 규정, 셋째 폭에서 여덟째 폭은 실제 시행된 호적의 내용을 담고 있다.

거창 둔마리 고분 벽화의 주악천녀상. 적외선 사진을 통해 남쪽에 3명, 북쪽에 2명 등 주악무도천녀奏樂舞蹈天女들이 그려져 있음이 밝혀졌다. 사진 위쪽의 천녀는 빗어 올려 얹은 머리에 둥근 관을 썼고 얼굴은 타원형이며 입에는 피리를 물고 왼쪽 손은 위로 올려 과일 같은 것이 담긴 접시를 들고 있다. 사진 아래의 또 다른 천녀도 마찬가지로 머리에 보관을 썼으며 입에는 피리를 물고 있다. 천녀들의 상의는 어깨에 스카프 같은 것을 걸쳐서 앞으로 늘어뜨려 불교 계통의 옷이라는 느낌을 준다. 고려 시기 여인상을 엿볼 수 있다.

수덕사 대웅전.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에 있는 건물이며, 국보 제49호로 단층 맞배지붕 주심포柱心包 집이다. 외관은 각 부재部材가 크고 굵기 때문에 안정감이 있으며 측면이 특히 아름답다. 건물의 건립 연대(1308)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다른 건물의 건립 연대를 추정하는 기준을 제공한다.

관촉사석조미륵보살입상.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관촉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석불로, 보물 제218호다. 높이 18.12미터나 되는 커다란 불상이며 관을 쓰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얼굴은 이마가 좁고 턱이 넓으며 옆으로 길게 째진 눈, 넓은 코, 한 일一 자로 꼭 다문 큰 입이 토속적인 느낌을 준다. 목은 굵고 삼도三道가 있으며 귀는 어깨까지 내려와 매달린 느낌이다. 이 불상은 광종 19년(968)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에 있는 고려 중기의 건물로 곡보 제18호다. 정면 5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 주심포계 건물이다. 이 불전佛殿은 1916년의 해체, 수리 때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하면 고려 우왕 2년(1376) 중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구조 수법이나 세부 양식이 묵서명 연대의 건물로는 볼 수 없고, 적어도 13세기 초까지 올려볼 수 있다.

운문사 전경. 경북 청도군 운문면 호거산에 있는 사원으로 진흥왕 21년(560)에 창건된 것을 608년 원광국사圓光國師가, 신라 말기에는 보양국사寶壤國師가 중건하였다. 숙종 10년(1105) 원응국사圓應國師가 중창하였다. 무인 집권 시 민란이 일어났을 때 이곳이 근거지가 되었다.

고려 궁궐 모형도. 축대를 쌓고 그 위 경사면에 건물들을 계단식으로 배치함으로써 여러 건물들이 하나의 건축군으로 묶이고 건물의 지붕이 층층으로 나타나고 있다. 만월대의 중심 축대 위에는 회경전 · 장화전 · 원덕전과 그 밖의 건물들이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고려궁지에 위치한 유수부 이방청.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에 강화로 수도를 옮기고 고종 21년에 세운 궁궐과 관아 건물이 있던 곳. 정궁 이외에도 많은 궁궐이 있었다. 조선 인조 9년에 이곳에 행궁을 지었으며,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함락되었다. 그 후 다시 강화 유수부 건물을 지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거의 불타 없어져 지금은 동헌과 이방청만 남아 있다.

대화궁 토성터. 묘청이 서경 천도를 요청하자 인종 6년(1128) 8월에 왕은 서경으로 가서 임원역지에 궁궐을 신축할 명당을 잡게 하고, 11월 공사에 착수하였다. 인종 7년 2월 공사가 끝나자 이를 대화궁이라 하였으며, 인종 9년에는 임원궁성을 쌓고 팔성당八聖堂을 건조하였다. 토성은 대화궁을 둘러싼 성이다.

배 모양이 새겨진 동경. 개성시 용산동에서 나왔으며 지름이 17.2센티미터다. 거울의 뒷면 한가운데에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돛단배를 대범한 솜씨로 돋을새김을 했는데 이것은 고려 사람들의 활발한 해상 활동을 잘 반영하고 있다.

최승로(崔承老, 927~989)는 경주 출신의 유학자다. 그가 성종에게 올린 시무 28조는 대부분 채택되어 고려의 정치 제도와 사회 운영의 기본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현전하는 내용은 28조 가운데 22조다.

국자감은 성종 때에 창건하였으며 충렬왕 때 성균관으로 고쳤다. 공민왕 16년(1367) 규모를 확대하여 당대의 유학자 이색과 정몽주를 교관으로 삼아 학생들을 가르치게 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김육이 중건했다.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의 공양자상으로 일본 대덕사에 소장되어 있다. 불화에 보이는 여인은 치마 위에 저고리를 착용하고 있으며, 치마에는 꽃무늬로 추정되는 문양이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또 뒷머리를 크게 올려 붉은 끈을 매고 있다.

고려 시대 연등회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고려 시대 불화 「관경변상도」

영통사대각국사비. 개성직할시 용흥동 영통사 터에 있다. 몸체는 높이 3.06미터, 너비 1.61미터, 두께 24센티미터며, 전체 높이는 4.32미터다. 귀부龜趺 · 비신 · 옥개석玉蓋石으로 구성되어 잇으며, 귀부는 화강석, 옥개석과 몸체는 대리석이다. 비의 글은 당대의 학자이며 명문장가인 김부식이 지었고, 글씨는 오언후가 고려 전기에 유행한 구양순체 해서로 써서 새겼다. 비문에는 어려서 불가에 들어가 송나라에서 천태종과 화엄종을 배우고 돌아와 천태종을 개창하기까지 대각국사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인종 3년(1125)에 세웠다.

보조국사 지눌 영정. 보조국사는 송광사의 제1세 사주社主로서 이 진영은 다른 작품에 비해 독특한 점이 잇다. 주장자를 짚었고 의자도 다른 것에 비하여 웅대하며 장식적인 미가 돋보인다. 또한 옆면에 조각된 화초도는 매우 사실적이다. 안면의 묘사도 대단히 개성이 강하게 표현되어 고승다운 풍모가 잘 나타나 잇다.

『삼국사기』는 명종 4년(1174) 사신을 통해 송나라에 보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초판을 간행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 13세기 후반에 성암본誠庵本이 만들어졌는데, 현재는 일부만 일본 궁내청에 소장되어 있다. 다음으로 조선 태조 3년(1394)에 3차 간행, 조선 중종 7년(1512)에 4차 간행이 있었다.

『삼국유사』는 5권 2책으로 구성되었다. 현재까지 고려 시대의 각본刻本은 발견되지 않았고, 완본으로는 조선 중종 7년(1512) 경주부사 이계복李繼福에 의하여 중간重刊된 정덕본正德本이 최고본最古本이며, 그 이전에 판각된 듯한 영본零本이 전한다.

『직지심체요절』. 정식 서명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우왕 3년(1377) 7월 청주목의 교외에 있던 흥덕사에서 금속활자인 주자로 찍어낸 것이 전한다. 상하 2권 중 지금까지 전하는 것은 하권 1책(첫 장은 결락)뿐이며,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이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높이 42.1센티미터, 입지름 6.2센티미터, 밑지름 17센티미터 크기로 간송미술관 소장이며 국보 제68호다. 구연부의 아랫부분에는 꽃무늬를 둘렀고, 굽 위로는 연꽃 무늬를 둘렀다. 몸통 전체에는 구름과 학을 새겨 넣었다. 세련미의 극피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도갑사도선국사비. 도갑사를 창건한 도선국사와 중창한 수미선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로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 경내에 있다. 귀부龜趺와 비신碑身, 이수를 모두 갖춘 전형적인 석비로, 전남유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어 있다. 도선국사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걸쳐 활동한 승려로, 그의 풍수지리 사상은 고려 · 조선 시대를 통하여 큰 영향을 끼쳤다.

선암사도선국사진영. 도선은 신라 하대에 성행했던 선종 계통의 승려인데 고려 시대 이후에는 선승보다도 풍수지리설의 대가로 더욱 유명해졌다. 진영은 선암사와 도갑사에 전해오고 있다. 선암사에 있는 진영은 1805년에 화사畵師 도일道日에 의해 조성되었다. 오른손은 자연목의 주장자를 곧게 세워 잡고 왼손은 설법 자세를 취하고 잇으며, 그림 왼쪽에는 높은 탁자 위에 함이 놓여 있다.

해인사 대장경. 부처의 힘으로 몽골 군대를 물리치기 위하여 강화에 대장도감 본사를 두고 진주 등지에 분사分司를 설치, 고종 23년(1236)에 시작하여 고종 38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16년 만에 완성하였다. 이 대장경은 1,500여 종, 6,800여 권으로 경판 수는 81,000여 매에 이른다. 처음 강화도 선원사에 소장되었다가 조선 태조 7년(1398) 서울의 지천사를 거쳐 현재의 해인사로 이관되었다. 국보 제32호이며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안향 초상화. 안향의 영정은 경북 영주시 소수서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보 제111호다. 비단에 채색하였으며, 충숙왕 5년(1318)에 제작되었다. 충숙왕이 안향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궁중에서 일하던 원나라 화가에게 그리게 한 것으로 반신상半身像이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왼쪽을 바라보는 모습을 그렸으며, 붉은 선으로 얼굴의 윤곽을 나타내었다. 시선의 방향과 어깨선에서 강직함을 엿볼 수 있다.

이제현 초상. 화폭 상단에 적힌 제문題文에 따르면 충숙왕 6년(1319) 이제현 나이 33세 때 충선왕을 시종하여 중국을 유람한 일이 있었는데, 충선왕은 진감여陳鑑如라는 원나라 화가를 시켜 이 그림을 그리게 했다고 한다. 또한 당대의 석학인 탕병용湯炳龍이 찬贊을 지었다. 심의深衣를 입고 공수拱手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인물을 중심으로 위쪽에는 제문과 찬문을 여유있게 배치했다.

이색 영정. 이색(李穡, 1328~1396)은 본관이 한산韓山이고 호가 목은牧隱이며, 시호가 문정文靖이다. 이제현의 문하생이며,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공민왕 16년(1367) 대사성이 되자 성균관의 학칙을 새로 제정하고 많은 제자를 길러내 성리학 발전에 공헌했다. 위화도 회군 이후 실권을 잡은 이성계를 반대해 유배 당하기도 했다.

『삼봉집』.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 성리학자인 정도전(鄭道傳, 1337~1398)의 시문집이다. 14권 7책이며 권근이 서문을 썼다. 『삼봉집』 권9에는 『불씨잡변』이 실려 있는데, 불씨윤회설, 인과설, 심성변心性辨, 불씨의 자비, 지옥설, 화복설, 걸식 등에 대해 비판했다. 불법이 중국에 들어온 후 불佛을 섬기다가 화를 입은 실례를 들었으며, 끝으로 불교는 이단이므로 배척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배불排佛의 정당성을 역설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문익점의 목화 시배지. 고려 말 문익점이 목화 재배를 시작한 곳으로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 있으며, 사적 제108호로 지정되었다. 공민왕 12년(1363) 문익점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할 때 가져온 목화씨를 장인인 정천익에게 부탁하여 이곳에서 재배하도록 했다. 처음 재배한 이곳은 배양培養마을로 불린다.

강감찬이 태어난 낙성대.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강감찬의 출생지로 서울유형문화재 제4호다.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진 날 장군이 태어났다고 하여 낙성대라는 이름을 얻었다. 1974년 6월 10일 완공한 사당 안국사安國祠 안에 강감찬 장군의 영정이 있다.

윤관(?~1111) 영정. 1910년 무렵 후손들에 의하여 제작되었으며, 1987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0호로 지정되었다. 고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한 이후 예종 때에 이르기까지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여진과의 싸움에서 많은 공을 세운 명신이며 명장이다.

스페인의 안토니오 에레라가 제작한 서인도제국 지도가 들어 있는 책의 초판본 표지(1601). 에레라는 지도 동쪽에 한국과 일본을 그려넣었으며, 한국을 섬으로 표현하고 'Cory'라는 명칭을 붙였다.

제주도 항파두리성.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고성리에 있다. 해발 190~215미터 지점에 있는 항파두리 토성은 삼별초가 원종 12년(1271) 9월에 제주도로 들어와 군사력을 재정비하는 시기에 축성한 것이다. 본래 토성으로 총길이 6킬로미터에 이르는 외성을 쌓고, 안쪽에 다시 석성으로 800미터의 내성을 쌓은 이중 성곽이었으며, 각종 방어 시설뿐 아니라 궁궐과 관아까지 갖춘 요새였다.

 왕건 청동상. 왕건릉(현릉) 확대 공사 과정에서 1993년에 출토되었다. 높이는 발바닥에서 내관 뒷면 정중앙 상단까지 135.8센티미터다. 머리에 쓰고 있는 관은 황제가 쓰는 통천관通天冠이다. 고려 광종 때 조성되어 개경의 봉은사에 모셔져 있다가 조선 세종 때 왕건릉 옆에 묻은 것으로 추정된다.

 

 

 

 

 

posted by 황영찬

2019-001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서윤후 시집

2016, 민음사

 

대야도서관

SB110691

 

811.7

민67ㅁ  221

 

민음의 시 221

 

이제 겨우 그는 첫 번째 미로를 통과한 셈이다.

어려운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

아직도 헤매고 다니는 내 뒷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나는 그가 좋고, 그의 시가 참 좋다. 적어도 그는 세계를

깔보거나 비웃지 않으며, 자기를 과시하지 않는다. 그의 시가

자아내는 내밀하고 친숙한 분위기는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을

떠올리게 한다.

- 작품 해설에서 | 장이지(시인)

 

서윤후

 

1990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2009년 《현대시》 신인 추천으로 등단했다.

 

어디 가서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어겼다

 

2016년 2월

서윤후

 

차례

 

1부

 

가정

희디흰

퀘백

나의 연못

희미해진 심장으로

곰팡이 첫사랑

거장

예컨대, 우리 사랑

취미기술

상속

코발트블루

계피의 질문

사탕과 해변의 맛

파리소년원

포기

오픈 북

종이의 생활

 

2부

 

에너지

다정한 공포

메종 드 앙팡

레오파드 소년들

소년성(小年性)

무명 시절

설탕의 신비

눈치의 공감각

말라리아

시리얼 키드

욕조 속의 아이들

구체적 소년

발육의 깊이

덴마크 다이어트

노력하는 소년

탈무드 버리기

사우르스

해변으로 독립하다

방물관(房物館)

요트의 기분

투명한 산책

 

3부

 

스무 살

하나 이상의 모뎀과 둘 이하의 잉꼬

어제오늘 유망주

외상(外傷)

스웨터 입기

독거 청년

감염된 나라에서

아프레게르 푸줏간

화염

무사히

편애

90년대의 수지

유니크

1995

1997

1999

커뮤니티

퀴즈

 

작품해설│장이지

달콤한 상처

 

90년대의 수지

 

   사람들이 황금을 내놓던 날 고장 난 저울도 무게를 감추고 허리띠를 내놓았다 그런 어른들의 날들은 우리와 상관없는 일들처럼, 학급에 한두 명은 있을 법한 수지라는 이름의 아이를 알게 될 확률처럼, 물질도 절망도 수지도 유행하던 나날

 

   불소 용액 받아 가던 수지, 창가에 걸터앉아 칠판지우개를 털어 내던 수지, 미처 알지 못해 이름만 알던 수지도 그땐 모두 똑같은 획순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설를 부를 때 어색해하던 표정이 이상하게 닮았던 날들

 

   우리는 IMF라는 말을 배웠다 열대야를 펼쳐 이름을 팔던 벼룩시장, 소년일보에 게재된 이름 모를 아이의 논설문, 내가 알던 수지와는 상관없는 일들이 자꾸 발생했다 급식소엔 강냉이죽 끓이는 냄새가 났었고

 

   언제부터 기억을 절약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훌쩍 커 버렸을 수지에 대해 생각하면, 이름은 자라고 얼굴은 자라지 않은 사진만 수지라고 부를 수 있을 때, 저울은 가벼워졌고 사람들의 장롱은 배가 나오고 있었다

 

   이젠 아끼지 말아야지, 수지는 옆에 없고 수지맞을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때의 수지가 몰래 적어 냈던 장래 희망, 이루어진 것이 있다면 중고가 된 이름을 떠올리는 것 나눠 쓸 수 있는 이름 때문에, 그 날들을 헐값으로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유니크

 

숨바꼭질 하는 기분 같았어요

들켜서도 안 되고 영영 잊혀서는 더더욱 곤란한

 

나만 좋아하는 것 같았던 싱어송라이터 오빠, 어느 날 친구가 오빠의 노래를 흥얼거려

새 것이 헌 것이 되는 기분 때문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진짜 영역 표시를 해요

나만 모르게 하면 괜찮다는 생각으로

냄새라도 남기게 되는 날엔 감각이 폐업하는 날

코에 온종일 몰두하는 피노키오 이야기처럼

거짓말로 뚜렷해지려고

 

나 여기에 숨어 있어 숨기고 싶지만 조금은 알려 주고 싶은 이상한 기분

빨간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나를 보고 누가 불이 났다고 소리를 친다면

되도록 쉽게 되도록 안타깝게

난 꺼질 수 없어요

 

 

 

 

커뮤니티

 

   공동체라는 낱말에서 빠져나옵시다. 그렇다면 공동체라는 글씨는 희미해질 것입니다. 모든 이름을 불러줄 수 없습니다. 헷갈린 이름 위에 반창고를 붙여 줍니다. 다정한 건 어렵지 않습니다. 조금 친밀해졌다면 개인 체조를 해 봅니다. 가만히 누워 있거나 부리나케 뛰어다니거나 팔을 접어 베개로 삼는 모양으로부터. 공동체는 만화경 속을 들여다보듯 어지럽습니다. 하나가 되는 일이 가장 많이 갖는 일입니다. 공동체라는 낱말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가까워지지만 같아질 수 없는 부등호를 만듭시다. 숫자는 이름보다 편리합니다. 숫자로 된 편지를 씁니다. 공통된 취향을 고백합니다. 그림자들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콜라주로 만든 몽타주가 생깁니다. 데칼코마니는 사라진 미술 기법입니다. 공동체라는 낱말에서 빠져나옵시다. 사이사이에 거리를 조성합시다. 무단횡단을 해봅시다. 사이렌이 울릴 것입니다. 공동체라는 낱말이 마침내 사라집니다. 세계는 무너집니다. 블록들을 다시 하나씩 쌓아 봅니다. 선별된 입구들이 마침내 하나의 복도로 통합니다. 인사를 합시다. 처음 본 사람처럼, 공동체는 끝났습니다. 하나들의 집합이 됩시다.

 

1999

 

   머릿수가 이름이었던 무리들이었다 잘못 띄어쓰기한 글자들처럼 행렬했다 윗도리와 아랫도리처럼 어울렸다 세상 모든 구멍의 주소를 공유했다 더러운 빨래들에게서 가까워지는 냄새가 났다 미생물이 가장 좋아하는 온도에서 섞였다 조금 우쭐대는 법을 배웠다 우린 이것을 용기라고 불렀다 시계탑 앞에서 시간을 보지 않았다 비둘기 앞에서 우표를 떠올리지 않았다 맞댄 어깨가 기울어질수록 표본실의 비커에 물이 넘쳐흘렀다 증발하고 있었다 어두워진 이름들이 번져 갔다 운동장의 정글짐을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무리들이 동시에 다 같이 ㅇ르자 흔들리기 시작한 건 수ㅜㅁ기고 싶은 덧니처럼 몽정처럼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은 간지러운 통증 얼룩으로 남은 용기

 

어제오늘 유망주

 

   최대한 늦게 출발하도록 달리고 있는 너를 보고 있어 아직은 결승점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도 너란다 시선과 희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호루라기 부는 건

 

   절망을 투시할 줄 아는 사람

   그러나 기적 앞에선 캄캄한 사람

 

   쥐구멍 찾아 직접 드나드는 너의 아침과 저녁은 같은 궤도에 진입했구나

 

   다녀오겠습니다 (                      ) 다녀왔습니다

   건조한 실내악

 

   집에 처음 보는 정물화가 걸려 있어 못 박힌 벽이 아까워서 주워 왔단다 사과와 포도 사이 벌레도 죽어버릴 것 같은 명암에 가려진, 달리기가 느린 너

 

   가방 속엔 꺼낼 어둠의 다발이 많아 이름 앞에 놓인 모든 형용사들이 징그러운 책을 펼치면 기울어지는 흰 종이 검은 글자 사이의 멀미, 빗나간 밑줄들

 

   어디에 멈춰서 운동화 끈을 묶을 것인가

   돌파구는 무엇인가

   애쓰는 발꿈치로 밀고 나가는 트랙에서

 

   너는 꼭지를 잃은 사과

   너의 목덜미를 누군가 아직 베어 물지 않았다면

   그것은 분명 맛있을 것

 

가정

 

눈곱 낀

일요일의 사람들

 

누군가 선물로 해 준 작명

얼어붙은 이름을 자꾸 불러 주자

녹기 시작한 피

 

동생이 형처럼 엄마가 언니처럼

누나가 아이처럼 아빠가 유령처럼

 

커튼을 열고 환기를 시키는 동안의

혼숙

 

희디흰

 

   흰 옷을 입고 있었다

   어떤 얼룩을 기다리는 것처럼 조용하게

 

   애어른 같은 아이를 키우는 집은 행복할 것 같다고 옆집 사람은 어머니에게 말했다

 

   공사장에 다녀온 사람은 불을 끄고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었을 때에도 검은 발바닥은 검은 발바닥이었다 더려워도 더럽다고 할 수 없었다

 

   팔레트의 굳은 물감

   두 번째 신는 흰 양말

 

   마른 빨래를 개키던 어머니를 돕고,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며 조용히 책도 읽었다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는 깨끗한 손이 있었다

 

   타일이 풍기는 표백제 냄새

   깨끗하다고 믿는 중독

 

   그의 발바닥을 그렸다 검은 생각들이었기 때문에 깊은 밤 속에 파묻혀 아버지가 화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우는 일만 하던 어머니의 표백된 얼굴이

 

   자꾸 생각나지 않을 때마다 나는 병에 걸렸다

   흰 색을 잃어 가는 여전히 흰 옷 같은 나의 세포

 

   나에게 묻는 것들이 무엇인지

   보호하는 이 깨끗한 색으로부터

   나는 가장 위험했다

 

상속

 

아버지는 줍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옛날 사람의 말로, 아직 쓸 만한 것에 대해 후한 마음의 두께라는 것은

주어다 몰래 꽂은 위인전집이나 백과사전의 두터움

 

숙제로 키우는 양파와 고구마가 잘 자라지 않을 땐

창틀을 보았다 온갖 죽은 벌레를 볼 수 있는 학습이 있었다

 

책은 내가 읽고 아버지는 책을 꽂는다 어느 날은 분리수거장을 서성이다 빈손으로 돌아온다

 

줍고 버리고 줍고 버리는

 

버릴수록 나는 읽을 게 많아졌다 고구마에 작은 싹을 보았다 그만큼 바라보았는데

겨우 이만큼 자랐네 한숨 쉬는 창가

입김 사이로 다 읽은 책들이 다시 버려진다

 

계피의 질문

 

   아버지가 되는 꿈을 꿨다. 아들은 계피나무 우거진 언덕에서 사탕에 베인 혀로 휘파람을 불었다 박하향이 흐르는 곳으로 담을 넘다가

 

   깨진 무릎에서 나던 피는 언제부터 흐르던 생일일까 계피 사탕을 문 나의 어머니가 아들을 불렀다 내 이름에선 왜 계피 냄새가 나지 않을까

 

   아들은 자라는 동안 뼈에 그늘이 드는 병에 걸렸다 햇빛에서 작아지는 아들을 업고 계피 나무 숲으로 갔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그런 산책을 하다가

 

   아들은 넘어져 주머니 속 박하사탕이 깨졌다며 울었다 맛있을 것 같아서 오랫동안 남겨 둔 사탕을 그만 까마득하게 잊어버려 울었던 사람이 있었지, 그게 누군데요?

 

   꿈에서 작별인사 할 때, 아들은 나에게 어디 가냐고 물었다 심부름 할 것이 있단다, 아들이 싫어하는 계피 사탕을 주머니에 가득 넣고서

 

   꿈인 줄 알았는데 정말 꿈이라서 안도하면 나는 도둑으로 몰리게 될까 언젠가 아버지 외투에서 계피 냄새가 났었는데, 좋지도 싫지도 않은 등에 처음으로 업히던 날에

 

퀘백

 

   아브라함 평원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탈 수 없는 꽃마차가 붉은 벽돌 길을 횡단한다 이민자들의 줄은 끝이 보이지 않고 나와 동생, 차례를 기다리며 이곳에서 귀한 검은 눈알을 꺼내 두었다

 

   감자를 깎으며 내리는 눈을 보았다 감자밭이 뒤덮여 버렸네, 동생이 말했다 빨간 십자가만 유일하게 뒤덮이지 않는 색깔이었는데 색맹이 있어 나와 동생은 서로의 양말을 섞어 신고선 시린 발들을 식탁 밑으로 숨겼다

 

   학교에서 눈보라를 뚫고 돌아온 동생이 그림을 보여 줬다 단 한 자루만 짧아져 가는 크레파스를 만지며 우리에겐 왜 두 개의 눈이 있을까? 동생이 그랬다 껍질들을 길게 깍아 쥐구멍 앞에 놓아 주었다

 

   성당의 종소리가 울리면 커튼을 뒤집어쓰고 성호를 그었다 너는 나를 믿지? 동생은 대답했다 오빠도 색깔을 모르잖아 불 꺼진 벽난로 앞에서 그날 밤 한 개의 그림자를 나눠 덮고 잠에 들었다

 

   나와 동생은 무슨 색의 털실로 엉켜 있었는지, 다 하얗다고 믿는 동생은 일 년 내내 폭설이었다 다 검다고 믿는 나는 동생을 업고 긴 터널을 건넜다 우리는 단지 조금 다른 높낮이의 울음소리를 냈다 구별되는 슬픔이 있었다

 

다정한 공포

 

공포 영화를 되감기 하면서

귀신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장면을 본다

 

나란히 이불을 덮으면 다시 시작하는 영화

다가올수록 섬뜩해지는 건

여전하기 때문이다 너의 옆에 잇어 준다

 

손에 땀이 나면 어떡하지, 스스로 끈 형광등 불빛을 초조하게

걸린 외투를 의심하며 성장하는 동공

 

망설이다가 줄거리를 헤매게 될 때

제자리에 있는 것들이 무서워지는 건

여전하기 때문이다 너의 옆에 있어 준다

 

어둠을 필요로 할 때 본 영화를 다시 볼 때

덜 무섭게 예고된 장면을 먼저 말해 주는 착하지만 착하지 않은 옆자리

 

눈 가린 두 손 뒤로 의심의 속눈썹 자라고

끝난 뒤 시시하다고 생각하면 사라지는

너의 옆에 있어 준다

비디오는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데

 

서늘한 여름은 자꾸 빨라진다

정지 버튼을 누를 때

빨간 빛이 손가락을 뚫고 터진다

 

메종 드 앙팡

 

괘종시계가 무서워 돌아가려다

꽃 없는 화분을 자주 깨뜨렸다

넘어지면서 집의 구조를 무릎으로 익혔지만

아이들은 말을 배우지 못했다

 

아무런 소리 없이 잠긴 방에서

딸꾹질 소리가 멈추지 않고

요절을 꿈꾸듯 사물들이 위태롭게 장식되어 있었다

 

수도꼭지를 젖 대신 물고 잠이 든 아이들의 천식

물 찬 기침을 하던 그날엔

장작에 불이 잘 붙지 않았다

 

벽난로의 어두운 입 속으로 흘러드는

웃풍을 맞으며 입김을 배웠다

그래도 내뱉을 수 있는 것이 있어

자꾸 죽는 것에 실패하는 아이들

 

모든 형광등과 식물들이 죽었다

아이들 소음에 가끔 깨어나는 부모가 있어

데려가 달라고 떼쓰면

멍 자국 같은 그림자 하나 문 앞으로 온다

 

아이들을 거둬 줄 보모가 왔는데

문을 열어 줄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다

기침하는 날이 자꾸 많아져야 했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인기척밖에 없었다

집엔 부스러기들만 자꾸 생겨나고 있다

 

말라리아

 

나 죽어도 돼?

   죽음을 허락하는 사이가 되었을 때 여름이 찾아왔다 님프의 동굴을 헤매다가

   더위를 맞이하는 일은 곧 천천히 죽어가는 것

   홍조도 가시지 않은 아이들은

   고삐를 물고 여기저기 머리를 들이밀며, 우스운 병도 쉽게 잊기로 한다

   저물녘에 꾼 꿈들은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가끔 물방개 튀어 오르는 소리에 놀라겠지만

   버려진 신발을 찾아 헤맨다

   가랑비를 기다리며 목구멍을 벌리고 있는 목숨을 생각한다 혀를 보여 준다는 것은 비밀이 늙어 가는 일

   아이들은 손잡고 숲을 거닐며 감염의 가능성을 배제한다

   서로를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피가 섞였어

 손만 잡고 놀았는데 돌림병이 나돌았지 곪아서 옮아서 살아 있음을 느끼는 축제가 끝나고 예보를 전한다

   곧 비가 올 건가 봐, 우중충해졌어

   네 얼굴이

 

아프레게르 푸줏간

 

   고기 반찬을 보면

   심장 밖을 뛰쳐나간 사람들이 생각나

 

   버려진 아이들아, 꿈으로 팽창한 실핏줄을 터뜨리며 울어라, 말했지만

   거긴 붉은 고기가 맛있어 보이는 푸줏간이었구나

 

   그만 이곳에서 떠나가거라, 들렸지만

   노인들은 갈 곳이 없었다 아직 주인의 이름을 이마에 새기지 않은 아이들이

   저렇게 늙기 싫어 저렇게 늙기 싫어

   희한한 귀신 놀이를 하고 있다

 

   폐허에 붉은 벽돌을 다시 쌓아 올릴 사람, 늙은 노인들을 모시고 다른 나라로 갈 사람, 폐허가 될 때까지 다시 싸올 사람, 잠만 자고 꿈을 축낼 사람

   불발된 총알처럼 한 시간 뒤엔 문밖을 나선다, 돌아오는 일이 제 심장에 방아쇠를 당기는 일처럼 여겨지면

 

   망설임 속에 피어나는 핏덩이들

   말랑말랑한 고기

   숨 쉬는 육식

   먹고 싶은 것을 예쁘다고 말해 주는 거울 앞에서

 

   거대한 것이 무섭다는 것보단 맛있을까 봐

   그래서 입맛을 다시게 될까 봐

   함부로 꼬리를 자르고

   아이들의 숨통부터 알아볼까 봐

 

   과거를 조감하는 푸줏간 근방의 칼질이

   칼질 없이 피를 가졌다는 심장이 태어나고

   고기반찬을 먹었다 죄책감 없이

 

무사히

 

   청동으로 만든 종이 울린다 끝나는지 시작하는지 알 수 없는 일정한 간격, 소리가 들리는데 움직이는 사람 없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태어난 적 없는 것처럼 투명하게 사라지라고 해서

 

   별일들이 잦아드는 언덕엔 피고름 맺힌 리본이 흔들렸다 무서워서 못 본 걸로 하니, 금세 잊혔다 네 번의 종이 다시 울리면, 네 시에 하기 좋은 일들을 했다 거리의 고양이에게 밥을 주기에 이른 시간이란 없었다

 

   우산을 챙긴 날의 맑음은 수고스럽다 아침밥을 걸렀지만 점심밥 먹을 시간이 왔다 신발 끈 풀리고도 조금 더 걸었다 허리 숙이는 일이 거추장스러웠다 다시 비가 와 우산을 펼쳤는데 펴지질 않앗다 빗속을 뚫고 종이 울렸다

 

   보건소의 기침들과 성당의 풍금 소리, 파이프의 납땜 소리 모두가 종소리보다 작았지만 오래 났다 출발한 적 없는 아이들이 도착을 위해 서둘 때도, 종소리는 났다 시계보다 조금 일찍 시간을 맞췄다 어차피 그렇게 될 테니까

 

   모를수록 살 만해졌다 밑줄 없는 세상에 잘 미끄러졌다 누가 버리고 간 세계인가 누가 주인인 척하는가 보살핌은 그렇게 만지기만 해도 아픈 폭력이 되었다 종은 규칙적으로 소리를 냈다 오늘 내리는 산성비

 

   흘러내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살며시 살아 냈다

 

나의 연못

 

   1.

   우리는 아직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은 동생

 

   2.

   고요한 교실

   투명한 햇빛에 흩날리는 먼지 바라보다

   철제 필통을 떨어트렸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귀가 빨개졌다

 

   간밤에 깎은 연필들이 부러졌다

   아무것도 적을 수 없는 흰 종이 앞

   화분에서 길 잃은 꽃말처럼

   나는 나의 이름을 외웠다

 

   3.

   내가 자주 가는 연못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물방개 튀어 오르고 발을 담가도 혼나지 않을 깊이, 연못을 잊은 사람들은 오랜 잠수 시합을 하고 있거나 저수지에 갔을까 바다가 되기엔 담가야 할 발목들이 부족한 이곳은

 

   내가 자주 오던 연못이었다

 

   4.

   눈에 흰 천을 두르고 숨바꼭질 했다

   아이들이 박수 치며 여기야, 아니 저쪽이야

   귓속말로 내게 바람처럼 불어왔다

 

   손으로 만질 수 있었다 술래가 바뀔 차례인데 방 안엔 아무도 없었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다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을 뿐

 

   5.

   손을 갖다 대면 온도계는 아주 조금 움직였다

   아직 나에게 남은 에너지

 

   집에 가는 길엔 모르는 여자아이의 손을 잡았다 빨개진 귀는 누가 물들이는 걸까 두 뺨 붉게 달아오르는 나란한 거리에서 발생된 체온

 

   6.

   나는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처럼

   책상 밑에 숨는, 아직은 작고 연약해서

   이불이 너무 커 밤새 이불 밖을 나오지 못했다

   창문 밖에 나를 데리러 올 사람이 있어

   연못처럼 조용한 성격에

   내일의 연필을 깎아줄 수 있는 솜씨를 지닌

   아무도 없는 방에서 손뼉 치고

   여기야, 바로 여기에 있어

   숨은 적 없이 숨어 있게 된 방 안

   죽은 손목시계는 멋으로 차고

   고장 난 태엽을 돌리며 나는 오랫동안

   나를 맴돌았다

 

   7.

   초인종 누르지 않고도 찾아드는 은인들에게

 

   연못이 바다보다 더 어려운 둘레라는 것을

   설명하지 못하고 굳어 갈 때

 

   풀이 죽은 동생이

   죽은 따옴표로 흰 접시를 채웠다

 

   밥을 먹을수록 말수가 사라지는 동생

   이 병신아

   소리 없이 우는 건 누가 알려줬냐고

 

   멱살을 흔들던 그림자가

   연못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무것도

   입지도 벗지도 않은 채 낱낱이

 

   나의 연못에 온 첫 손님이었다.

 

방물관(房物館)

 

   방 안의 모든 압정들이 쏟아진 날, 소년은 움직일 수 없었다 오래전 잠근 문은 전망이 어렵고, 떨어진 세계지도 뒤 편은 아무것도 없이 눈부셨다

 

   모든 사물이 긴장했다 자꾸 커지는 발을 숨길 수 없었던 소년, 다치지 않으려고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더니 어루만져 준 적 없는 등이 불편해졌고

 

   믿을 것이 바닥 밖에 없었던 생일날, 누군가 방문을 열어 줄 것 같다는 예감을 통째로 박제시킨 바깥의 중력들을 관측했다

 

   압정을 밟아 피가 흐르는 최초의 박물관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소년을 구경하던 모서리가 침묵을 긋고 그 틈으로 쏟아지는 미세한 고요함이 숨죽이고 서 있다

 

외상(外傷)

 

   보리차 끓이는 동안엔 할 일이 많아진다. 일단 엄마부터 찾고, 집에 누워 있는 사람이 없으면 서 있는 사람은 나 혼자. 빈집에 주전자만 끓고 있다. 갈증이 난다. 냉장고엔 물이 없고 모락모락 혼자서 나는 김, 손에 쥔 게 아무것도 없을 땐 손잡이가 잡고 싶어진다. 조금씩 열려 있는 문들 마저 닫고 주전자 뚜껑만 반쯤 열어 놓는다. 넘쳐흐르지 않게 파수꾼처럼 지켜본다. 식탁에 앉아 숙제한다. 대합실 안 사람이 된다. 우는 소리 들리면 불을 끄고 밸브를 잠그면 된다. 다시 식어 갈 때까지 잊고 있으면 된다. 보고 싶어서 갈증이 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물소리를 듣는다. 물의 인기척을 들으며 조금씩 자란다. 주인 없는 보리밭의 저녁이 오면 주전자를 창문 곁에 내놓고, 안개를 거둔다. 수증기가 지나자마자 나는 고소한 냄새, 주전자에 가라앉은 검은 보리알들이 나를 쳐다본다. 나는 한 모금씩 말라 간다. 아직 숙제가 남아 있고 단내와 탄내가 동시에 난다.

 

거장

 

   우리는 만난 적도 없는데 헤어지기 바쁩니다 이름 불러준 적 있는데도 생각나는 게 향기뿐인 사람처럼 선생님, 십 분 정도 늦을 것 같습니다.

 

……에게. 이름보다 먼저 도착한 엽서를 샀습니다. 벌거벗은 소년이 피리를 부는 삽화가 그려진…… 선생님, 요즘 건강은 어떠신가요? 교차로엔 움직이지 않는 차들이 너무 많습니다.

 

죄송하지만 십 분 정도 늦을 것 같습니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사람의 뼈를 붙잡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밤 기분은요 탁자에 걸터앉아 모질게 의자를 바라보았어요 선생님이 편안하신 곳에서 봬요

 

   같은 커피를 마시고 다른 카페인으로 뒤척이는 카페에 들어가 계신다면……

   창가에서 선생님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전쟁을 상상했어요 죽는 것이 사는 방법이라는 말 창문 하나에 역설적인 온도에는 누가 관여하나요? 어디에도 없는 실내는 오로지 사람일까요?

 

   질문이 너무 많아 죄송합니다

   선생님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만들어서…… 면목 없습니다 저 같은 사람에겐 머플러를 선물하고 싶어요 목젖을 녹일 수 있을 만큼 따뜻한…… 그러면서 사랑을 고백하는 거죠 체온은 상납하기 쉬운 마음이잖아요

 

   그러니까…… 선생님,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선생님은 아시죠? 모든 걸 다 아는 사람이잖아요 모르는 걸 모를 뿐이라고,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거의 도착했습니다. 방금 첫눈을 맞았어요

   꽃다발을 사려고 했는데 마카롱을 삽니다

 

선생님은 말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뵙자고 했습니다 감당이 안 되는 난파선에서 물 대신 불을 생각하던 날엔, 가여운 밤을 출렁이며 보냈어요

   이제 저 멀리 선생님이 보여요. 아주 흐릿하게

   첫눈을 맞고 있는 선생님이 그곳에 서 계셔서

 

   다행히도…… 라고 운을 띄우는 말들로 포장한 불행을 지피며 벽난로에 겨울을 욱여넣고, 십 분 사이에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고…… 꽁꽁 언 마카롱을 녹이기 위해 얼마나 달콤한 말들을 해야 할지

 

   아직도 연인들이 발생하는 골목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목도리를 둘러주며

   사랑하는 사람을 바깥이라 생각하는 고백이

   리본을 달 만한 일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하시나요?

 

   귀찮은 제 질문들이 행여나 선생님의 안경을 뿌옇게 김 서리게 만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급해지는 건 시계가 아니라 시계를 찬 사람들임을

 

   선생님, 꽁꽁 언 마카롱을 녹일 만한

   그런 따옴표를 줍고 싶습니다만

   홀로 집에 가는 그 길에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설령 비가 오는 날이더라도

   끝끝내 모르는 척 해 주십시오 일기예보가 틀려도

   살아 낼 수 있는 십 분이 제게도 생긴다면

   부디 목례하며 지나칠 수 있는 밤의 세계에서

   안녕히, 또 안녕히

 

편애

 

   선생은 나를 좋아했다 주머니엔 아직 많은 질문과 숫기와 어리광이 잔돈처럼 짤랑거렸지만 그는 나를 아꼈다

 

   다시 찾아간 선생의 집에서 하루는 간병하는 사람처럼 그의 곁을 지켰다 너무 늙은 당신이 나를 헷갈려하고 있었다

 

   창밖엔 목마 탄 아이들이 거인처럼 보이는 숲이 있었다 울창한 흰머리가 겨울을 알아차리는 동안 담요 밖을 나서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고 했다

 

   선생은 내 이름을 자주 불러 줬다 나의 이름은 당신의 희망적인 낱말 카드였을까 커튼을 치고 싶은 날씨였을까

 

   검버섯들이 말줄임표가 되어 있는 당신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이제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습니다 그만 자라나고 싶어서

 

   문밖을 나설 때 선생은 어서 오너라 인사했고 그에게 쓴 쪽지를 부인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 준 만큼 걸어야 했던 산책이었다."

 

   유리로 된 숲이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거인보다 땅을 기는 거인이 더 무서워 보였다 목마에서 내려온 내 얼굴아 얼음장에 비친 내 얼굴아

 

   투명하니

   뾰족하니

 

예컨대, 우리 사랑

 

   옛날 사람들이 들려주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 버려지고도 다시 주워 깁는 그런 이야기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귀신이 되어 소문이 되어 떠돌던 예컨대

 

   종이로 접을 수 없는 생물과 잡아 본 적 없는 손이 모두 따뜻할 때, 없었던 표정을 짓게 되고 우리 사이에 아름다운 낱말을 발명하면서 즐겨 하던 옛날 사람들의 놀이와 같은 것

 

   기억을 잃었던 사람이 있었지, 그것조차 기억 못하는 사람, 파도에 발을 씻고서 다시 백사장을 밟는 사람, 옛날 사람들은 우리에게 아주 촌스러운 이름을 빌려주었다

 

   끝말잇기가 끝나지 않고, 태어나 죽을 때까지 불러도 부를 수 없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옛날 사람에겐, 편지를 부치지 못했다 크고 넉넉한 봉투가 없어서

 

   온실 속엔 향기가 없는 꽃이 피었다 아무도 꽃을 꺾지 않는 정원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괜찮았다 바라봐 줄 사람만 있다면 살아야하는 것이 씨앗인 오늘

 

   손목시계에 밥을 주고, 열대어를 가만히 바라보던 사람 나눴던 대화를 종종 잊으면서도 곧잘 들어 주던 사람 옛날 사람들이 들려주길 우리는 사랑에 어설펐던 귀신이라고

 

소년성(小年性)

 

가는 팔목은 흰 이마와 잘 맞아 떨어졌다. 엎드려 있는 나를 울고 있다고 여기던 사람들. 사실 몸을 숙이는 건 쉬운 일이었다. 평면을 벗어나는 몸의 마지막 표정. 그래프는 날뛰고, 달력은 단호하며 날씨는 마음과 나란해지기 쉬운 기울기였다. 가내수공업이 끝날 줄 모르던 밤, 졸면서 만든 규격이 나를 엉성하게 만들었다. 근사한 걸작이 곧 태어날 거라고 장담하면서, 나는 맨 처음으로 수치심을 길렀다. 잠든 나를 깨워 계집애 같은 사내아이를 어쩐지 실수라고 여기면 나는 나의 목격자가 되었다. 증언이 필요한 꿈결과 이름에 써 버린 행운과 주입된 슬픔으로 살아갈 온 마음은 시험판이었다. 치명적인 오류지만 결코 멈춰 버리진 않는 그 방 안에 나는 설계된 적 없는 자세로 처음 나를 감지한다. 엎드려 있으나 잠이 비껴가고 슬픔으로 젖지 않는 주소로 나는 배달되었다. 나는 멸종 위기가 아니다.

 

구체적 소년

 

   청중들은 기다린다. 소년이 모자 속에서 무엇을 꺼낼 것인지에 대해 어깨 너머의 앵무새는 알고 있다 새로움을 위해 거짓말을 펼쳐야 했던 소년을, 앵무새가 소년의 거짓말을 똑같이 따라할 때 비로소 거짓말은 근사한 마술이 된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박수를 친다 암표를 팔지 않는 공연에서, 소년이 낡은 구두를 벗고, 벗겨진 지팡이를 내려놓는다 예전 사람들에게서 빌려온 것들을 놓자 이젠 사라질 수 있겠다고

 

   소년은 거짓말을 발명한다 미래의 누군가가 거짓말을 연기하게 될 것, 가장 긴 박수 소리에 외롭지 않을 모험을 건 소년은 일부러 연필을 부러뜨렸다 비둘기 꺼내는 장면 다음, 토끼를 꺼내는 장면 다음에도 흰 색이 필요했기 때문에

 

   찾아 준 청중들에게 바치는 소년의 말과 행동들, 가여운 앵무새는 날개를 잊었고 새로운 거짓말을 배우기엔 이제 늙어 버렸다 조명은 아직 소년 발끝에 걸려 있는데, 어둠 속에서도 청중의 눈동자는 빛났는데, 얼어붙은 손이 꺼낸 것은 파란 장미

 

   자꾸 새로워지길 원하는 매표소, 거짓말은 노인들에게 암표가 되어 팔려 나갔고, 앵무새 없인 할 수 없는 마술에 이미 거리를 떠도는 소년들은 모자에 동전을 구걸했다 세계의 모든 고요는 이미 매진이다 소년에겐 더 이상 할 수 있는 침묵이 없다

 

무명 시절

 

예고되지 않은 비가 내리면 이름 없는 날이 깊어진다

 

우산이 펴지질 않았다 낙담하면 생기는 그늘 속에 사라진 비운의 소년들이 개구리처럼 우는 곳으로

서로의 명찰을 잊기로 하자

 

농담보다 편한 별명까지 강수량은 차올랐다 소년들의 발 냄새가 났다 울 수 있는 거리에서

이름도 모르게 활자들이 무럭무럭 수배된

담벼락의 몽타주에 자기소개가 번져 가자 침을 뱉었다

 

찾고 싶은 찾을 만한 사람이 없어서 우리는 공짜로 얻은 이 골목길을 누비는 거라고

골목에 그어 놓은 그들에 있어도

비 맞는 자세로 젖은 이름을 말린다

 

고장 난 우산이 멀쩡하게 펴지면 불러 보지 못한 이름들이 쏟아진다

색색의 개구리가 튀어 오른다

 

레오파드 소년들

 

식물도감은 우리를 호명하지 않았다

풀밭 위에서 햇빛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날 때

우리는 그 이유를 헤아리지 않았다

 

이곳의 질서는 흙 밑에서 발굴되곤 했다

일광욕을 할 때면 비릿한 햇빛은 우리를 간지럽혔다

발자국보다 잎맥이 더 푸르기를 바라는 햇빛은

우리의 송곳니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입을 다물고 숨기는 동안

입 속 단내의 팔 할은 우리를 키우면서

젖보다 달콤하고 거름보다 맛있는 양식을 주었고

꼬리를 뿌리로 착각하지 않아야 하는 진화를 주었다

 

발톱은 우리가 가진 가장 건강한 유물이라는 것을

간지러운 자리마다 생긴 무늬를 긁으며 자라나자

풀밭 위의 수컷과 암술들은 꽃가루보다

더 어지러운 소문을 흩날렸다

이제는 햇빛보다 밤이 더 즐거워, 속눈썹으로

풀밭의 밤을 들어 올리면, 스스로 야행성이 된다

꽃의 포효에 밤이 숨죽이고 우리들을 훔치려고 하면

그날엔 몸살을 앓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향기 나는 털갈이를 위해 서로의 등을 부비며 뛰논다

발바닥에 잔뿌리가 한 뼘 더 자라나 있다

헷갈리는 우리들의 탄생에 대하여

입을 다물고 있는 저 도감도 뱉어 낼 책갈피가 없다

 

곰팡이 첫사랑

 

   생물시간이 끝나면 다시 다정해지는 버릇 끝나는 종이 울리면 시작되는 실험 다정하게 너를 안아줄수록 자꾸 커지는 상상력

 

   아플수록 가까워졌고 잊을수록 뚜렷해졌다 무수히 많은 변인과 경우의 수를 두고 떠올리는 늙은 미래의 모습 노년의 너라면 할머니

 

   비가 오는 날의 하교 너에게 우산 주고 온 날이면, 우산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잃어버린 것들에게도 다시 생기는 이름. 작명하기 좋은 습도

 

   따뜻할수록 징그러워졌다 번식하고 싶은 마음, 몰래 한 자위는 도둑질 같아서 너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했다 옆집 할머니

 

   알코올램프의 심지처럼 꿈틀꿈틀, 생물 시간이 되면 궁금한 게 많아져 잡은 손의 눅눅함과 다른 유전자를 가진 피부가 맞닿는 느낌은 감염의 증상

 

   창백한 얼굴에 핀 검버섯을 보았다 노년의 너를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교복에 보라색 물이 들어가는 병, 수군대며 아이들이 너와 나를 관찰하고 있다

 

사탕과 해변의 맛

 

 

해변에 버려진 것 중엔 내가 가장 쓸모 있었다

버려진 사람들이 잃은 것을 대신해 다시

버려진 사람을 줍는 세계에서

우리의 수도는 어느 쪽이었을까

한 뼘의 파라솔이 그늘을 짓고 우리는

통째로 두고 간 유실물로 남겨져

하나의 관광지를 이룬다

 

*

파도의 디저트가 되네 하나밖에 모르는 맛으로 사탕처럼 둥글게 앉아 녹아가는 연인들

철썩이는 파도가 핥아 가네

발가락부터 녹으며 조금씩 둘레를 잃어 가는 사랑이여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던 연인들이 전투적으로 질투하고 비로소 세계는 달콤해지고 온화해지네

 

*

해변이라는 말을 좋아해

물에 젖는 건 싫어하지만 햇볕이 남아 있는 단어들은 아껴 먹으려고 남겨둔 사탕 같은 것

 

*

내가 먹어본 사탕 중엔 네가 제일 별로였어

 

너처럼이라는 직유가 가진

설탕과 소금 사이의 결정체

 

*

네 말에 끈적끈적해진 나는

입안의 상처들을 혀로 만지작거리며 피가 달다고 생각했다 달콤함을 모르고 조금씩 사라져간다

 

*

바다가 범람하는 세계에서

너는 고작

오리발이었어

 

*

옷소매의 끝엔 해변이 있어

서툰 세수와 훔친 눈물로 적셔놓은

사탕이 녹을 때까지만 출렁이는 해변에서 나는

말라가지 않는 헤엄을 배워

 

안간힘을 다해서

 

설탕의 신비

 

   너는 마치 설탕 속에 빠진 개미

 

   사탕수수밭에 도착한 포로들이 무당벌레를 손톱으로 터뜨리며

   명령을 기다리는 중

 

   잠을 졸여 내일의 수확량을 채우자

   돌아갈 수 있다는 졸렬한 희망을 내뱉자

 

   제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은 달콤해 제자리를 떠나야만 했던 맛을 벌써 잊은 거야? 대답을 기다리는 혀만 텁텁해지고

   설탕은 먹기 좋게 네모가 될 수 있다는데

 

   각설탕은 기계의 것

   각설탕은 기계의 몫

 

   입 안 가득 설탕을 물고 바다를 건너던 도망자에게 내린 벌은 설탕 속에 빠뜨리는 것

   벗어나도 설탕 녹아도 설탕 털어내도 설탕

   끈적거리는 심장을 핥아야만 나아갈 수 있는 개미떼 행렬에 합류하면

 

   다시 일손은 넘쳐나고 포로들은 줄을 서서 익어가기를

 

   땀 흘리는 노동 앞에서

   포로들의 목덜미엔 처음 맛보는 짠맛의 설탕 열리고

   소금을 몰래 긁어모으는 당직자들

 

   이제 포로들은 소금을 채취하기 위해

   깊어지는 인중을 걷고 또 걸어야 한다

 

시리얼 키드

 

   풀장엔 밀크. 멀건 수면 속에서 발장구친다. 유통기한에 부치는 자유형은 빠르게. 가볍게 스푼을 들지만 바삭바삭하게. 우리는 비주류와 견과류 사이에서 태어난 잡곡. 혼혈이 되고 나니 모두들 맛있다고 풀장에 밀크를 넣어 준다. 단지, 우리는 맛있으면 된다. 우유와 가장 잘 어울리면 되는 우리의 장래는 칼슘이 보장되어 튼튼하다. 호랑이도 우리 편이다. 예의를 지킬수록 영양소는 흩어지는 법. 무서울 것이 없는 우리를 주식으로. 식탁 위에서 미끄러질 일만 남았다. 풀장의 밀크. 가파른 물살은 희고 부드럽게, 우리는 점점 더 고소하게. 숟가락을 넘나들며 수중발레, 풀장은 우리 것. 시나몬 파우더도 초코를 입은 땅콩도 허우적거리기 바쁜 밀크. 밀크는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시리얼이 되지 못해 안달난 가공식품들. 어설프게 밀크 속으로 빠져 봤자 건더기일 뿐. 밀크만 충당하는 스펀지 같은 너희들과 달라. 수줍게 떠오르자 풀장은 비좁고, 우리는 서서히 녹는다. 우리는 우유라는 말을 모른다.

 

종이와 생활

 

   나는 내 종이를 다해 편지를 씁니다

 

   종이는 얇고 투명하게 우리 사이를 넘기다 베인 상처로 조금씩 행간을 만듭니다 그 정도의 눈금이 좋아서 나는 온힘을 다해 나의 종이를 낭비합니다

 

   또각또각 연필이 똑바로 걸어가는 일이 측은합니다 들려주지 못한 이것은 종이로 접은 사람이 내게 읽어 준

   왼손으로 편지를 씁니다

 

취미기술

 

네가 좋아하면 그걸로 됐어

이미 죽은 것이니까

 

토끼의 심장을 손에 쥐고선 자두처럼 한입 베어 무는 싱거움

모르는 낱말 없는 사전을 들고

다 아는 듯 말하지도 못하는 자랑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나타날 때까지

열렬하게 실패하는 꿈을 꾸고 싶어

 

목줄이 힘줄로 팽팽해지는 착각

연습은 이것으로 끝내 볼게

캐치볼을 끝낸 아이들이 잃어버린 공이 되어

바람을 조금씩 빼앗기기 전에

 

고백은 자꾸 쉬워지고

살면서 기억하게 된 거절들이 매표소에서 편도 기차표를 발권해

어디론가 떠나가게 되면서 돌아오는

내가 싫어 부메랑을 던지면

 

밀렵을 두려워하는

사냥꾼의 눈동자를 볼 수 있어

 

그 속에 이름 없는 꽃밭을 일구고

씨앗이 저지른 향기들을 무심코 사랑하게 되자

사서함 속에 넘쳐 나는 빈 엽서들

누가 몰래 쓰고 간 내 이름은

사랑 받으면서 이미 죽어 버린 것

 

알비노를 앓는 토끼 두 눈에 그제야 맛잇어 보이는 심장

먹음직스럽게 숨을 쉴 때마다

예뻐지고 위험해지는 나는 너의 악취미

 

덴마크 다이어트

 

   우리는 다 잘한다 피를 거꾸로 속이며 노력한다 할 건 다하는 질량들, 보존되어 가는 교과서 속 알고리즘 반대로 해야 멋있는 줄 아는 껍데기들, 벗으면 날 줄 알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빼야 한다 나머지가 생기지 않도록

 

   권리는 없었다 뾰족해지면 어른들은 우리를 꼭지점이라 부를 것, 기억될 방점이 생길 거야 몸속의 뼈들이 장작으로 나타날 때까지 땔감으로 쓰기엔 너무 젖어 있는 둘레, 서로를 껴안아 주지 못했다

 

   모서리가 생겼다 우리를 꼭짓점이라 불러 주는 사람들, 오늘은 생일이다 우리 이름을 부피가 아닌 피부로, 아니면 그냥 피로 불러 주길, 가파른 곳으로 갈수록 설 자리 없는 청정 지역이 보인다

 

   어제의 식단이 내일이 되는 것은 유감이었다 서로의 손을 잡고 울었다 도형이 되는 일, 야윈 부엌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서로를 껴안아 주었다 근거 없는 상처들이 생겨났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