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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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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2. 12. 17:04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58 세상의 모든 최대화

 

 

 

황유원 시집

2016, 민음사

 

대야도서관

SB110685

 

811.7

민67ㅁ  219

 

민음의 시 219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를 읽으면 이토록 풍부한 이미지들이 시 한 편 한 편에서 이렇게 다양하게 끓어오를 수가 있단 말인가 하고 놀라게 된다. 그다음엔 다양한 지점들을 연결하는 시적 화자의 보폭과 리듬, 라임 등등과 함께 여행을 끝낸 후의 저녁의 흐린 빛, 고즈넉함까지 선물받게 된다.

- 김혜순(시인)

 

황유원의 작품들은 얼음의 밑바닥을 흘러가는 무결처럼 적막하고 견고한 시 세계를 전편에 걸쳐 유지하고 있다. 사념적인 요소 역시 날것으로 엉뚱하게 등장하여 시 세계를 망쳐 놓지 않고 낱말 하나하나의 내부로 스며든다.

- 서동욱(시인, 문학평론가)

 

그에게는 죽는 시늉하거나 아픈척 하며 군중을 모으는 기존의 작태를 찾아볼 수 없다. 그는 활달했다. 모든 랭보들의 특징은 징징대지 않는 것, 부채 의식 없이, 급가속으로 상상의 세계를 야금하는 대장간은 우리 시에서 차려져 본 적이 별로 없다.

- 작품해설에서 | 성기완(시인, 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

 

황유원

1982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2013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시집 『세상의 모든 최대화』로

제34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차례

 

1부

 

루마니아 풍습

북유럽 환상곡

풍차의 육체미

바람 부는 날

새처럼 우는 성(聖) 프란체스코를 위한 demo tape

새들의 선회 연구 -한 장의 사진

간단한 몇 가지 동작들

쌓아 올려 본 여름

비 맞는 운동장

총칭하는 종소리

바라나시 4부작

 

2부

 

레코드 속 밀림

구경거리

지네의 밤 -Massive Attack

개미지옥(前) -백주(白晝)의 악마

개미지옥(後)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전변(轉變)

달팽이 집을 지읍시다

몬순 블루스

변신 자라

공룡 인형

크레파스로 그린 세계 열기구 축제

잘린 목들의 합창

돌고래시 -자크 메욜에게

 

3부

 

초겨울에 대한 반가사유

세상의 모든 최대화

인벤션

매달린 것들은 다

극치의 수피즘

논스톱 투 브라질

halo

항구의 겨울

밤의 황량한 목록들

양 모양의 수면 양말

끝없는 밤

바톤 터치

天天來

해성장

시베리아 주제에 의한 다섯 개의 사운드트랙

 

4부

 

전국에 비

오디토리엄

레코드의 회전 -Billie Holiday

1시 11시

사랑하는 천사들

많은 물소리

한려수도

첩첩산중

모두가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있었다

가을 축제

인식의 힘 -Notes on Blindness

일체감

 

작품 해설 │ 성기완

조선어 연금술사 통관보고서

 

새들의 선회 연구

- 한 장의 사진

 

일단 사진으로 찍으면 정지.

한곳으로 집중되는 힘들과 지금 막

펼쳐지려 하는 힘들이 만들어 내는

그대들의 온갖 선(線)들도

그대로 정지.

 

그러나 찍기 전까지는 선회,

찍고 난 후에도 선회,

둥글고 둥글게 사과를 깎는 것처럼

공중의 껍질을 밀어내듯 부드러운 과도(果刀)의 동작으로 선회

새들이 선회한 자리에선 사과 향기가 나고

 

더 큰 원을 그려 봐야 원은 끊어지지 않아

다만 바닥에 떨어지는 사과 껍질처럼 착지할 뿐

천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꼭 천 년 후에도 그럴 것처럼

깎아 놓은 사과의 속살 같은 하늘 남겨 두고서

그대로 착지.

 

그리고 그 자리에 다름 아닌

네가 있을 것.

내가 지른 사과를 부리로 쪼아 먹으며

부드러운 턱 운동과 함께

그 자리에서 가장 둥글게 울고 있는

네가 있을 것.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과가 산산조각 날 때

퍼지는 향기에는 상처 하나 없음을 수상히 여기다

그냥 거기 드러누워 언덕이 되어 버리는

언덕이 되어 그 향기 들이마시는

너는 잇을 것.

 

흔적도 남지 않는 삶이 아니라

다 살아 낸 삶이 남아 있는 흔적과

이제 다 끝났다는 착각의 평화가 동시에 미끄러지는

넉넉하고 공평한 언덕,

평일이 모두 종말한 후

혼자 남겨진 주말의 완벽한 휴식 같고

졸음이 꼳아지는 베개 위로 흘러내리는

내용 없는 오후 같은 너의 언덕

 

거기 항상 내가 있을 것.

어떤 새가 또 태어나는 동안

어떤 새는 새로 태어나기도 한다고 말해 주는 내가

너처럼 나도 그렇게 항상

네 옆에 있을 것.

비 그치고 나뭇가지에 줄줄이 매달린 물방울 열매들

그걸 따 먹는 새들의 목구멍이 순간 얼마나 맑고 시원해지는지!

옆에서 함께 숨죽이고 지켜보는 심정이 되어

찰칵, 그대로 정지했다가

 

함께, 다시 날아오를 것

 

달팽이 집을 지읍시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돌아 버린 것들 틈바구니에 있느나 돌아 버린 건지 아니면 나도 원래 그들 중 하나여서 내가 너희들을 더욱 돌아 버리게 한 것들 중 하나였는지 한참을 헷갈리느라 정말이지 아주 돌아 버릴 지경인데……

 

   하루는 몸속에 팽이 하나 돌려 놓고

 

   그 팽이가 쓰러질 때까지 생각해 본다

 

   자꾸만꿈만꾸자는 그 말,

   그 속으로 들어가면

   끝없는 나선계단을 걸어 내려가야 하는 주문처럼

 

   몸속에 팽이를 돌려 놓고

   서서히 거기

   빠져들어 본다

   내 몸 안으로 나를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가게 해 본다

 

   인체의 신비를 모두 파헤치고 난 후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극도로 나른해질 때까지

 

   모든 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일임을 알게 됐을 땐

   팽이는 이미 멈춰 있을 것이고

 

   쓰러지고 나서도 생각해 본다

   절벽 끝으로 몰린 머리가 새하얘질 때까지

 

   팽이는 힘이 다하고 나면 제풀에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슬퍼하고 자시고 ㅘㄹ 것도

   그럴

   겨를도 없이

 

   그러나 저 보름달!

   보름달이 뜨면

   슬퍼하는 이 여럿

   기뻐하는 이도 여럿

 

   강강수월래를 추며 다 같이 돌아 버리는 밤이 여럿

 

   달팽이 안에서 달팽이 밖으로

   달이 팽이처럼 돌아간다

   제자리에서 최고 속도로

   최면을 걸어

   나는 달팽이라고

   라르고(Largo), 라아르고오오오오

 

   달팽이 속의 달이 뜨고

   그 둥그런 탄창 같은 달이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달팽이 속의 팽이처럼 돌아가기 시, 작, 하, 고,

 

   그럼 나는 그걸 한 번 힘껏! 후려쳐 보는 것이다

   더욱 빨라지는 강강수월래

   달팽이 안에 천둥이 치고

   번개가 껍질을 박살 내고

 

   달팽이의 술주정!

   빈 술병 위를 기어가는 달팽이!

   번개 문양으로 박살 난 술병 위를 지그재그로 기어 다니는,

   집에서 쫓겨나 급한 김에 자기 집만을 들쳐 메고 나온

   늙고! 무능한! 달팽이!

 

   잊을 만하면 언제나

   잊지 못할 일이 날 들이받고

   밤새 나는 아주 멀리 가서

   아침이면 아주 먼 거리가 되어 있곤 했다

 

   그 위로 왕소금 같은 비가 내리고

 

   지치면 오늘도 그냥 그 자리에서 곯아떨어지는 이가 여럿

 

세상의 모든 최대화

 

화물칸에 일렉기타를 한 만 대쯤 싣고 가는 세상에서 가장 길고, 무거운 마음

 

   그 속을 누가 알겠냐마는 철로만은 알지,

   짓밟힌 몸길이를 짓밟힌 시간으로 나눠 기차가 절망하기 시작한 지점에서부터 자기 합리화에 성공하는 지점까지 걸린 속도를 계산해내며 자기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짓밟고 가는 기차의 무게를 참고 견디지

 

   기차가 아무리 짓밟고 가도 손가락도 발가락도 잘리지 않는 건 손가락도 발가락도, 아무것도 없어서

 

   손가락을 잃은 기타리스트는 알지 흉측한 음악을 만들 바에야 약을 먹고 죽는 게 낫다는 걸

   발가락이 없는 애벌레는 알지 발가락이 없으면 기어서라도, 가고 싶은 곳엔 가고 봐야 한다는 걸

 

   말하자면 비시각적 음표들의 시각적 극대화

 

   그러나 약은 치료하기도 하는 것,

 

   병명보다 더 많은 치료제를 잔뜩 싣고 가던 기차가 마침내 말기에 다다라 포기하고 탈선할 때

   눈 내린 들판에 처박힌 기차에서 동그란 알약들이 쏟아져나올 때의 기분이란

 

   그 기분 누가 알겠냐마는 환자들만은 알지,

   환자들은 꿈속에서 거기까지 걸어가 그 약을 모두 주워 먹은 다음날 아침 병실에서 깨어나 기차의 차가운 몸을 이해하지 넘어진 채 몸을 뒤로 돌리던 기차를 이해하며 몸을 정확히 당신들 반대편으로 돌리지

 

   현실도피는 없어, 현실의 최대화만이 있을 뿐

 

   오늘밤 그들의 기도가 기차처럼 길어져 결국 지구를 몇 바퀴씩이나 돈 기도들의 속도가 기차를 조금씩 허공에 뜨게 해 마침내 이륙한 기차를 바라보며 철로가 난생처음으로 편안해질 수 있다는 희망,

   을 품자마자 기차는 곤두박질치고

   지진처럼 지축이 흔들려 복부를 강타당한 남자처럼 철로가 신물을 토할 때 신물 위로 기타가 쏟아지는 기분

 

   그 기분은 누가 알까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꿈에서 엎질러진 아이나 알까

 

   아무리 길게 써도 저 레일에는 모자랄 것이므로 여기서 그만둬도 상관은 없겠지만

 

   고요한 밤, 캐롤을 싣고 가다 넘어져 모두 엎질러버린 아주아주 거룩한 밤, 깨진 전구를 뛰어넘어 크리스마스의 본질을 거침없이 이해하고 산타를 엉망진창으로 때려눕히고

 

   지구가 한 바퀴 돌기 전까지 기타를 모두 수리해야 하는 수리공의 마음은 망가진 리프(riff)들을 밤새 고치고 있는 기타리스트밖에 모르지

 

   너에겐 싣고 가다 넘어져 모두 엎질러 버릴 만한 그 무엇이 있나? 넘쳐서 어쩔 수 없이 들켜버리는 리듬이라도 있니?

   넘쳐서 어쩔 수 없이 들켜 버리는 리듬을 타고 비옥한 꿈속을 달리다 넘어지는 곳이 늘 절벽 앞이어서 느껴보는

   아찔함, 그 뒤에 웅크리고 앉아 그 리듬을 정면으로

   견뎌본 적 있니!

 

   구겨진 리듬을 잘 펼치면 과연 어디까지 펼쳐질 수 있을지, 무엇까지 덮어볼 수 있을지를 가늠하며 최대한 붉은 와인을 박스째 주문해

 

   뱃속에 와인을 만 박스나 싣고 가는 기차가 오늘밤 도무지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유를 누가 이해하겠냐마는

   사랑을 한 박스나 마시고도 제대로 서 있는* 조니 미첼은 이해하지, 어쩌면 술집을 이름표처럼 달고 다니다 이름을 아무 데서나 콸콸 쏟아 버리던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이해하지

 

   잠시 동안의 짧고 굵은 경악과 모든 최대화에 따르는 극심한 부작용, 그때마다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경적을 울리며 긴 열차 한 대 빨려들어오는 느낌, 결국 일망타진 당하고 마는 느낌을

 

   너무 긴 문장에겐 이제 그만, 쉼표를

 

———

 

* Joni Mitchell, 「A Case of You」중에서.

** Amy Winehouse.

 

바람 부는 날

 

   바람 부는 날 야외에서 한 접시의 물회를

   바람 속에 흔들리는 모든 것들의 친화력과 공평함

   그러나 고층 빌딩의 견고함

   원피스의 펄럭임은 야외에 달린 커튼

   걸어다니는 커튼, 긴 머리의 자유로움과

   저 여잔 머릴 가르길 참 잘했다는 생각

   바람 부는 날 멀리서 바라보면 바람에 천천히 흔들리고 있는 빌딩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플라스틱 테이블에 올려진 물회에 뜨거운 밥 한 그릇을

   소주 한 병을 시키고 잔 세 개를 부딪칠 때 불어오는 바람

   바다보다 더 바다 같은

   바람보다 더 바람 같은 바람의 통로 안에 담겨 한 접시의 물회를

   이제 더 큰 바람이 불어오겠지

   암 그렇고말고

   바람 속에 흔들리던 것들 죄다 이륙하고 테이블이 뒤집히고 원피스가 팬티 위로 올라가고 술병이 차례로 추락할 거야 만물지중(萬物之衆)이 낙하하고 비행하는 난장판이 펼쳐질 거야 그 전에 딱,

   한 접시의 물회를

   바람이 사라지기 전에 어서 마지막 잔을 비우고 그 속에 한 잔의 바람과 평화를

   이 세상 모든 바람이 지금 여기로 불고 있다는 착각

   지금 이 바람은 우릴 모른 척하고 지나간다는 확신

   이 모든 접시들과 수저들이 처음 보는 우릴 기억하고 있다는 믿음

   이 모든 게 바람이 하는 젓가락질이라는 망상

   그 와중에도 이 골목은 계속 길어져서 아무리 긴 바람도 결국 빠져나가지 못할 거란, 그러나 바람에는 길이가 없을 거란

   헛된, 몽상

   그러나 얼음이 다 녹기 전에 한치 학꽁치 미주구리 문어 대가리

   바람 속으로 날아드는 새들이 생선을 다 채가기 전에 쌈장을 찍고 마늘을 올려서

   김에도 싸서 너의 입에 한 번,

   나의 입에 한 번

   바람 속에 흔들리는 모든 것들의 친화력과 공평함

   오늘 왜 난 자꾸 눈물이 날까

   이봐 그러고 있지 말고 저길 좀 봐

   어느새 일렬로 늘어선 소주병들이 진한 방풍림 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이봐 앞에 앉아서 자꾸 핸드폰이나 쳐다볼 바엔 차라리 지나가는 여자 다리를 쳐다보지 그래

   난장판이 되기 직전 빈 접시의 바람을 집어먹는 나무젓가락의 튼튼함

   우리가 이제부터 불어올 모든 바람을 이 한 잔의 공간 속에 모두 쑤셔 담을 순 없겠지만

   마침표같이 눌러놨던 동멩이들 죄다 굴려 버리는 바람

   그러나 어딘가에선 반드시 멈출 돌멩이들을 바라보며

   바람 부는 날 바람 속에 흔들리는 모든 것들의 취기에 시원한 사이다 한 잔씩을 따라 주며

   너도 한 잔,

   나도 한 잔

   빈 잔은 이제 그냥 빈 잔으로 남겨 두고

 

 

간단한 몇 가지 동작들

 

   우리 함께 땀 흘릴 때 땀구멍에서 새어 나오는 오래된 기도 냄새가 있어

   일인용 침대처럼 홀로 삐걱이던 밤, 젖은 수건처럼 비틀어 짰을 기도의 오래된 물

 

   냄새의 모든 단추를 풀고 들어가면 나오는 깊은 산정호수가 있어

   타오르며 한사코 공중에 매달리는 물안개와 그 속으로 안기는 새들의 자욱한 날갯소리

 

   그리고

 

   커튼이 없다면 지금 이 방으로 부는 바람은 아무

   쓸모도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커튼이 흔들리고 있어

 

   그럴 때 사방에선

 

   서서히

 

   프로펠러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지친 손가락들 잘려 나가는 대신 풀들이 땅 가까이로 좀 더

   몸을 눕히고 구원처럼 나는 너에게로 조금

   가까워지고 시간은 밤, 계절은 여름으로

   가까스로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동안

   다시 그때 그 주발의 오후로

 

*

 

   그날의 커튼은 기억하지 바람이 어떤 순서로

   어떤 강도로 허공을 쓰다듬었는지

   그날의 바람은 기억하지 하늘에 내고선

   공중에 적은 다음 바람에 날려 버리지

 

   시원한 열차에 올라 창밖 풍경을 다 갖고 싶어라고 말해 버리자, 리듬에 맞춰

   시원찮은 문장들 따윈 바람에 날려 보내며

 

   그동안, 새들이 낳고 먹이고 길러 낸 둥근 평화

   우리가 컵에 담으면 컵이 되고 바다에 담으면 바다의 바닥까지

   내려가 보는 물처럼 될 순 없겠지만 그동안 새들의 선회를 낳은 둥근 평화

   우리가 사물 소리를 잘 내는 흑인처럼

   지나가다 내 보는 헬리콥터 소리만으로 갑자기 모두

   얼굴 가리고 고개 숙이게 만들 순 없겠지만

   둥근 호수의 면상에 이는 무수한 파문, 떨어지면서 으악이 되는 모든 음악의 속 시원함

 

   그동안에도 새들의 알은 단단해지고 그 안의 출렁이는 평화,

   네 안으로 이주하는 내 입속 새 떼들의 젖은 날개에서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들의 표면장력이 튼튼해지고

   네가 회전할 때, 네 몸에서 떨어지는 땀방울들이 그리는 포물선의 아름다움

 

   그때 그 시간이 그리는 완벽한 걸음걸이와 그 안의 둥근, 평화

 

   우리가 동화 속 연인들처럼 동이 특 때까지 놓지 않고 켜 놓은 환한 양손이

   우리보다 먼저 졸다

   살짝, 가볍게 벌어지고

 

   이윽고 완전한 한 마리의 새로 펼쳐진 그것은

   불 꺼진 손안에 그대로 안긴 채

   다시 우리의 잠 속으로 날아들게 되는 거겠지

 

*

 

   숨 한 번 크게

 

   들이쉬자 하나의 둥글고 고요한 호수로 펼쳐졌다

   뒤늦게 그

 

   위로 지나가는 한 척의 쾌속정이 일으키는 수만의 물결들의 단추를 수면의 사방 끝까지 다

 

   잠가 주고 나면

 

   어느새 여기도 빈방이 되어 버린다 다른 모든 방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방은 볼 것도 없어' 당신은 그렇게 말했지만

 

   반쯤 열린 문틈으로 훔쳐본 커튼

   바람이 없으면 죽은 거나 다름없는 백색의 커튼은

 

   침묵 속에 목매단 채

 

   내리쬐는 햇살 속에

 

   환히

 

   타오르고 있었다

 

개미지옥(後)

-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이것은 싸구려 여인숙에서 꾸는 꿈

   찬비에 젖은 하루, 딱딱해진 발바닥이

   <♨욕실 완비>된 꿈자리에서 풀어지는 이야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한 마리 벌레의 예기치 못한 외박

   속에서 식지 못하고 부글, 부글거리는……

 

   마침내 뜨거운 욕탕으로 기어들어 간 개미 소년은

   몸에서 벗겨져 영혼처럼 물속에 풀리는 지렁이 살냄새도 망각한 채

   다시 한 번 그 생각에 골몰했다

 

   (집을 버리고 길을 떠도는 까닭은

   여인숙에서 꾸는 꿈이

   개미집에서 꾸는 꿈과

   다르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비바람 속에서

   휘적휘적 걸어갈 만큼 시야 넓은 곤충은 없었으므로……)

 

   개도 아니면서 속으로 개소리를 지껄이다가

   다시 한 번 무지막지한 질투에 사로잡혀

   질투, 투쟁, 쟁취……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한마디 한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지렁이 비린내로 진동하던 욕탕은 어느덧

   어제 죽여 버린 암개미 냄새로 들끓고 있었고

 

   암개미가 떠나간 방에 남아

   나는 홀로 방 청소를 했었지

   계집의 유령 같은 바람이

   시종일관 밖에서 창문을 두들겨 대던 밤

   계집의 흔적이 남은 방에 홀로 갇혀

   벌이라도 받는 학생처럼

   깨끗해진 방 가운데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죽어 가는 암개미의 시체를, 시취를,

   아니 차라리 암개미의 더러운 말들을 치워 버리기 위해

   멍든 암개미를 업고 공동묘지로 잠입했던 지난밤

   죽인다,

 

   진짜 죽여 주신다

 

   ……내가 인생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죽여 주신다, 정말 나의 인생은!

 

   죽인다는 말은 내가 끝장난다는 말

   너한테 이길 수는 도저히 없다는 말

   그러나 지는 게 영광이라는 말

   그리하여 너는 이제 끝장낸다는 말

   그냥 지금 죽어 버려도 여한이 없다는 말

   차라리 사라지고 싶다는 말

   다른 삶은 무가치하게 만들어 주시는 말

 

   욕탕 속의 개미 소년은 자신이 만든 말놀이에 도취돼

   수학 시간에 배운 몽상을 노래했다

 

   결국 도형들의 세상

   원이라면 참 좋겠지만

   너무 많은 삼각형

   사각형은 차라리 두 마리

   그리고 버려진 다른 두 마리를 남겨 두지만

   너무 많은 두 마리

   너무 많은 혼자

 

   그러나 어젯밤에 하지 못한 수학 숙제가 생각나자

   곧장 회초리를 맞는 기분이 되었고

   창밖에는 여왕 폐하가 불호령을 내리시는지

 

   벼락은 우선 찢고 본다

   찢기는 것이 하늘이든

   너희들의 가죽이든

   번개가 함께하는 것은 그 때문

   벼락을 잘 보라고

   벼락에 찢겨진 것들을

   너희들은 똑똑히 쳐다보라고!

 

   개미 소년은 금세 두려워져

   박살 난 유리창 같은 표정으로

   악마에 사로잡힌 목구멍으로 외쳤다!

 

   악마! 마귀! 귀신!

 

   ……

 

   바닥에 떨어진 단어들은 더듬이가 잘린 개미 떼처럼

   맴을 돌다가 소용돌이 같은 몽상으로 변해 갔고

 

   그러자 자연스레 어제저녁의 설교가 떠올랐다

   개미들 모두 모여 똥구멍에 새카맣게 힘을 주고

   언덕에서 들었던 설교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회색 풍선의 무리 아래로

         깊어 가는 저녁 하늘, 화살표로 그어지는

         철새들의 이동 경로

         똑바른 화살표는 평화와 안정감을 주지만

         이탈하는 한 마리 새는 묘한 쾌감을 줍니다

 

   그러나 여왕 폐하께서 곧 이어서 말씀하시길,

 

   ---저 또라이 새!

 

   그러자 어디선가 갑자기,

 

   ---어딜 가나 또라이 같은 놈들 하나씩 있어

        숨통이 트이는 법이지요 (웅성웅성)

 

   이것은 어제 여왕 폐하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은

   이웃집 개미 친구의 어록에서 발췌한 문장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개미새끼!

 

   ---개미귀신은 또라이 개미들을 잔뜩 잡아먹어서

        언젠가 명주잠자리가 되어 하늘을 날겠지요

 

   이것은 악마에게 사로잡혀 길 잃고 방황하는

   처량한 개미 소년의 어록에서 발췌한 문장……

 

   방황에 지친 개미 소년은 이윽고 따뜻하고 축축한 잠에 빠져들었다

 

   …… 그때 나는 그녀를 업고 데이트 중이었지

   사랑스러운 그녀는 속옷 가게 앞에 나를 멈춰 세우더니

   저 팬티 예쁘지 않아? 우리 다시 사랑할지도 모르는데

   그때를 위해 한번 입어 봐도 될까? 씨불였어

   우린 아직 데이트 중이었는데, 속옷 가게 앞에서

   그녀는 마치 우리가 헤어진 연인이라도 된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나는 아직 꿈속에서도 너의 더듬이 길이를 외울 수 있을 정돈데……

   자꾸 날씨가 추워진다며 그녀는 나를 꼬옥 안았다 등 뒤에서

   어리둥절해질 정도로 세게, 그럴수록 세계는 더욱 차가워졌지만

   나는 그녀를 꼬옥 붙들고 침착히 주위를 살핀 후

   어두운 숲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결국

   그토록 뜨거웠던 욕탕도 식고 말고

   불타오르던 사랑은 불태우는 사랑이 되고 말고

   그 온갖 잿빛들 위로

   생전 처음 추락해 보는

   저 하늘 위

   한 마리

   새

 

   피가 빠져나가는 육신처럼

   당신의 음모를 엿들었을 때처럼 아득한

   현기증을 느꼈을 때

   지금껏 더할 나위 없이 고요하던 창밖

   푸른날개긴밤나비의 펼쳐진 양 날개 같던 새벽이 희미하게 접혀 오는 대지 위로

   자욱이……

   안개가 일고 있었다

   얼마나 더 많이, 오래 밟혀야 하는지

   그 광활했던 세상이 별안간 얼마나, 협소해질 수 있는지! 깨닫게 해 주며

 

   이제 불과 백 미터 앞으로 다가온 병정개미 군단이 일으키는 자욱한 군홧발 소리가

   개미굴 같은 귓속 무참히 짓밟으며

   성큼,

   성큼

 

   쳐들어오고 있었다

 

*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

 

레코드 속 밀림

 

 

1

 

예술은 두 종류,

차가워지거나 뜨거워지거나

 

목이 쉬면 빛이 바래는 가사가 있고

휘발된 노래 밑바닥에 반정부군처럼 살아남아

지구 반대편 지원군을 불러모으는 가사가 있지

그러거나 말거나 변함없는 사실은

 

마음을 다하면

판은 돌아가는 거

 

2

 

봄밤, 짐승들이 합창하는

레코드 속 밀림의 고요

식지 않은 피를 싣고서 최대한 무리하지 않게

어슬렁거리는 무리들

 

이것이 바로 열대우림에서 맞는 봄밤

따뜻한 비를 맞는 호랑이들의 피부에 핀 착한 꽃들이 질 때

그들을 달래며 저어보는 부드러운 밀림서(書)

 

호랑이는 두 종류,

찢어지거나 불타오르거나

 

밤의 정적 속에 점화되는 눈알들의 냉정함

밤의 고요 속에 이글대는 살가죽의 뜨거움

 

그걸 헷갈리면 당신은 끝장

 

마음이 다하면, 결국

판은 그만 돌아가는 거

 

3

 

울울창창 밀림이 깊어만 가는 밤이고

그래 봤자 무료한 반복재생

겨우 ㅁ과 ㄹ의 자리바꿈에 불과하겠지만

 

마음이 다한 자린 이미 겨울이어서

두꺼운 침묵 한 장 껴입고 사냥을 나설 때

얼굴엔 짜작, 단번에 금이 가는 거

 

잊고 지냈던 화려함들은 어느새 훌륭한 장작이 되어 있었네

그 위에서 불타는 마음

 

4

 

호랑이 요리는 두 종류,

꽁꽁 언 눈알의 단단한 차가움과

가죽의 뜨거운 화염

 

차가운 눈빛 삼킬 땐

밀림에 찬비 내려

 

이글거리던 내장이 식고

칼로 썬 화염 씹어 먹을 땐

뜨거운 아궁이 속에서 들끓는 비명

누구라도 뻘뻘 땀을 흘리지

젖는 건 마찬가지

 

있을 수 없지 밀림의 암전(暗轉)이란

호랑이의 얌전은 가당치 않아

 

그러므로 우리란,

산산조각 난 레코드판에서

죽지도 못하고 기어이 기어 나오고 있는 것

 

마음이 있는 한.

 

개미지옥(前)

- 백주(白晝)의 악마*

 

잠시 그 생각에 골몰해 있던 개미 소년은

어느새 대열에서 멀어져

혼자 남은 자신을 발견했다

 

당황해서, 불개미도 아닌데

두 더듬이로부터 통통한 배에 이르기까지

온몸은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열심히 고기를 굽는 불판처럼 정상을 독차지한 태양은

오로지 자신만의 사업에 골몰하고 있었는데

 

어제 여왕 폐하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은

이웃집 개미 친구를 떠올린 개미 소년은

더욱 벌겋게 달아오른 몸으로

한동안을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개미는 고기도 아닌데

뜨거워진 태양에 어쩔 줄을 몰랐고

검은색 거대한 갑충들이 코 고는 소리가

기다란 풀을 간질이는 몽상적 오후 한 시였다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개미 소년이 떠올린 짓이라곤

즉석에서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일,

그렇다고 개미는 식물성도 아닌데

마치 새파란 풀잎처럼 떨리는 음성으로

 

오, 하늘의 흰 구름 떼는 달달한 빵 조각!

제가 한입 뜯어먹어도 폐가 되진 않을는지?

 

오, 하늘의 흰 구름 떼는 방금 잡은 신선한 양고기!

제가 한입 뜯어먹어도 놀라시진 않을는지?

 

그러나 노래는 영 신통치 않았고

오로지 배가 고프다는 사실만을 떠올려 줄 뿐이어서

개미 소년은 힘을 아끼기 위해 다시금 멈춰 섰다

노래 부른다고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꾸짖으시던 어른 개미들을 떠올리며

어른들 말씀이 다 틀린 건 아니었구나

생각하며 먹을 걸 찾아 주위를 둘러보던 중

저 멀리,

송장벌레 사내들이 지렁이 아가씨를 습격하고 잇는 광경이 포착됐다

 

지렁이 아가씨는 수치심에 몸을 배배 꼬고 있었지만

지렁이 아가씨의 꼬리에 얻어맞은 송장벌레 한 마리의 허벅지가

퍼렇게 멍이 드는 꼬락서니를 지켜보며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영 틀린 건 아니었구나

생각하며 다가가 말을 건넸다

 

--- 송장벌레 선생님들, 안녕하신지

       바쁘신 와중에 죄송한 부탁이지만

       감히 제가 이 파티에 동참해도 될는지 여쭙고자

       이렇게 용기 내어 말을 걸어 봅니다

 

--- 우훼훼, 개미 선생도 원 별말씀을 다!

       즐거움은 나눌수록 배가 되는 법

       불개미들의 어록에 이런 속담은 없나 보죠?

 

늘 모든 걸 혼자서 독차지하던 개미 소년은

심한 부끄러움에 대충 말을 얼버무렸고

선생이란 말에 다시 한 번 얼굴 붉히며

감사를 표하고 파티에 참석했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지렁이 비린내 진동하는 몸 이끌고

개미 소년은 다시 길을 떠났네

구름 떼는 그새 나쁜 일이 있었는지

영 어두운 표정으로 변해 있었고

개미 소년은 잘 알지도 못하는 길을

별 수 없이 열심히 걸었네

 

(둘이 같이 고기를 굽다가

하나가 돌연 채식주의자로 변해 버렸을 때

남은 하나는 좋아라 고기나 씹었어야 했을까

아니면 불판을 엎어 버렸어야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잡초처럼 조금씩

악(惡)이 싹텄고

 

악의로 가득 찬 개미 소년은 뜨거웠던 자신의 붉은색 이마가

서서히 식어 가고 잇음을 느꼈다

 

하늘에서 회충같이 얇고 긴

 

비가 내리고 잇었다

 

*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지네의 밤

- Massive Attack

 

   누구도 지네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아주 멍청한 밤일세

 

   허물을 벗을 때마다 아주 길어지는 지네들이 기어 다니는

   아주 검고, 붉은!

   빛나는 키틴질의 밤이란 말일세

 

   어디선가 자네 마누라가 허물을 벗고 잇을 아주 은밀한 밤이라고 말하면 자네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지네의 밤,

   온 마디가 하나의 악절인

   여러 편의 악장이 이어진 교향곡이 방구석을 기어 다니는 아주 웅장한 밤이란 생각이 들지, 않느냔 말일세

 

   그 많은 다리가 고작 한 마리의 것이라니

   그 많은 다리가 한꺼번에 움직일 때마다 와르르 연주되는 음악은 썩, 훌륭하지 않은가! 이 말일세

 

   상상할 수나 있겠나?

   수백만 년 전, 우리가 고작 네발로 기어 다녔을 뿐이던 시절

   그때 어디 감히 음악 같은 게 있었겠나

 

   자네가 침대 위로 무지막지하게 내팽개쳐지기 시작할 때

   누군가는 이미 먹히고 있고

   누군가는 이미 먹고 있다는 걸

   이제 자네도 알 만한 나이가 되지 않았는가, 이 말일세

 

   누군가는 은밀히 어둠 속에서 하이힐을 벗고 잇고

   누군가는 더욱 은밀히 구석에서 입맛을 다시고 있다는 걸

   지네나 자네나 둘 다 모른 척, 잠들어 봤자

   우리는 다리가 아주 많이 달린 징그럽고 아름다운 꿈에 실린 채 또 온갖 곳들로 데려가지고 있겠지

   거기 털은 또 얼마나 많이 나 있겠나?

 

   몇 시산을 걸어 올라간 끝에 도달한 아주 높은 언덕, 위에서 수백 미터나 되는 열차,

   소화불량이던 역의 플랫폼과 대합실 전부를 집어삼키고 가는 열차가 겨우 한 마리 다족류로 보인 적이 있다네

   데칸고원에서 였지

   그러나 한 마리 지네가 낳는 새끼의 수는 또 얼마나 많은가, 이 말일세

   거기 다리는 또 몇 개나 달려 있겠나?

 

   지네의 밤,

   생각만으로 혼미해지는

   믿을 수 없이 빛나는 횡설수설의 밤일세

 

   나는 인류의 미래보단 지네에게 할당된 다리 수를 믿겠네

   지네가 계속 태어나 열차보다 오래 살아남을 거란 쪽에 내 두 다리를 걸겠네

   갓 태어난 지네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보게, 지네가 기어 다닐 땐 문틈으로 바람 부는 소리가 난다네

   문도 안 열어 놨는데 문은 이미, 벌써, 언제나 열려 있었고

   지네가 늘어날수록 바람은 더 크고 아름다워져 문을 미친 듯이 열어제끼고 박살 날 만큼 세게! 닫아 버리겠지

   세상 모든 지네들의 다리를 헤아리다 바람 속에서 잠들어 버리고만 싶은 밤일세

 

   갑자기 모든 게 너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네

   자네는 이걸 고작 유사 생물학적 키네틱아트 정도로 생각하고 있나?

   쉽고 간단할 것, 그네라도 타는 것처럼

   그러니 자네도 한번 지네를 타고 인간이 한 번도 기어들어 가 보지 못한 곡선 속으로 기어들어 가 지네처럼 둥글게 몸을 말고 빛나 보는 게 어떻겠나

 

   지네는 술에 떡이 돼 바닥을 기어 다니는 여대생으로 둔갑할 수도 있고

   술이 깨고 나면 기립할 수도 있을 것이네 물론 지금의 자네나 나 같은 모습으로도

   그러곤 사랑하는 이들을 힘껏 껴안아 줄 테지

   사랑하면 두 팔로만 안아도 좋은데

   몇십 개의 팔에 안기는 기분은 또 어떻겠나!

 

   테이블 위에는 자신을 통째로 토하며 죽어 가는 지네가 담긴 하나의 술병이 놓여 있고

 

   쓰러진 솔병에서 흘러나온 술은 테이블 위로 활짝 펼쳐지다 모서리에 이르러 줄줄 혹은 뚝뚝 떨어지는 거겠지

   또다른 지평으로, 부드러운 평면으로! 오늘 밤, 네가 갖고 놀던 장난감이 너를 갖고 놀고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될 때까지

   나는 모든 다리들이 연결된 모든 몸뚱아리들을 밤새 지맘대로 끌고 다니는 것을 허용하노라

 

   지네의 밤,

   빛나는 키틴질의 밤이고

   최상급의 모든 나머지를 무력화시켜 버리는 밤

 

   저기 길고 놀라운 웃음소리가 꺄르르르르 기어가고만 있네

 

   지네 한 마리가 한 번에 들 수 있는 악기 수는 또 얼마나 많겠나?

   지네 한 마리가 한 번에 들 수 있는 모든 기타와 보컬들과 드럼들과 베이스들이 내장한 온 마디가 저려오는 경련과 발작 들이 구불구불 기어 다니는 바닥은 분명,

   간지러울 거야 그럴 땐 바닥에 드러누워 하하하히히히히 드르륵드르르륵! 하루 종일 열렸다 닫혔다도 해 보고 웃음으로 제 얼굴 뒤흔들다 얼굴이 와장창! 무너져 내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나쁜 거? 나쁜 건 없지

   그런 건 이미 무수한 다리들을 빌려 이 땅에서 서서히 증발하고 있을 거야

 

   털이 너무 많이 난 횡설수설,

   광란의 로큰롤일세

 

변신 자라

 

꿈에 변신하는 자라를 보았다

육안으로 볼 때마다 그것은

시도 때도 없이 근처 사물들 중 하나로 변해

나는 그것이 자라인지 뻔한 사물들 중 하나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꿈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인해

그것이 본래 자라이며

어려서부터 완벽하게 익힌 엄폐술을 통해

끝없이 사물로 변해 가는 중이며

어딘가로 끝없이 향해 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변신한다는 건

본모습을 가린다는 것

가장 흔한 무언가로

이를테면 대웅전 앞의 석등이나

연못에 가라앉는 대야로 변해

잠시 세상 속에 섞여 들어

세상에 둘도 없는 네 모습을 가린다는 거

불과하다

그것은 그것에 불과하다

사회적 통념의 확대재생산

기껏해야 자기 위안으로서의 이론적 지식들

그것은 한갓 벽에 불과하다

변신 자라가 얼마나 충실히 주변의 사물로 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하등 차이가 없는 것

자라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

넘어서지 못한 채

벽 앞에 선 채

사물처럼 굳어 가고 있다는 거

그런다고 감추고 싶은 과거가 숨겨질 줄 아는가

모든 착각이 일시적이길 바라며

영원한 이합집산에 그치고 마는가

내가 시선을 거두지 않으면 자라는 계속 사물로 남을 것이다

그 상태를 죽을 때까지 유지할 것이다

내가 여지껏 배운 지식이란 무엇이었나

물속에서 나오려던 자라는 순간 자신을 쳐다보는 나를 느끼고는

낡은 질그릇 비슷한 무언가로 변해 다시 물속에 가라앉았고

내가 그걸 꺼내려고 손으로 집자

몇 조각 진흙으로 허물어지고 말았다

나무 사발로 변했더라면 괜찮았을 것을

 

공룡 인형*

 

마당은 공룡 인형들로 무너질 듯하다

한때 지구의 주인이었던 것들이

이제 작은 고무 인형이 된 채 마당을 걸어다니다 이렇게 문득

정지해 있는 것이다

누가 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듯

더 이상 잡아먹지도

으르렁거리지도 못하고

마당에 늘어져 잇는 공룡들

가끔 누가 와서 가지고 논다

그들에게 목소리와 동작을 부여하는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과 음성

공룡의 상상력에 대해서라면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작고 말랑말랑한 고무 인형이 되어

아이의 몸 빌어 움직이게 될 날이 올 줄은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을까

마당에 저녁이 오고

지겨워진 아이가 공룡들 내팽개친 채 자릴 떠나면

그들은 쓰러진 채 고요하고

다시 일어설 줄을 모른다

같은 어둠이지만

한때는 이불처럼 덮고 자던 어둠이

이제는 모든 움직임을 잃은 인형들을 덮어 주기 위해 천천히

마당 위로 깔릴 때

아이는 조금 늙어 있고

바람 한 번 불자

중생대부터 있어 온 은행나무 잎 마당에 떨어진다

은행나무는 자신이 은행나무 인형이 되는 꼴을 보게 될 날은

아마 없을 거라고 확신하는 듯하고

마당은 이 온갖 것들로 인해 잠시

폐허가 되어 본다

누가 와 재생 버튼이라도 누르고 간 듯

폐허가 되어 흘러갔고

오래전이라고도

오랜 후라고도 말할 수 없었다

 

* Inspired by 『Sentimental Journey / Spring Journey』, 아라키 노부요시.

 

크레파스로 그린 세계 열기구 축제

 

아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예술은 늘 크레파스의 몫이었지

진한 크레파스 냄새 교실 구석구석 배어서

머리는 곧잘 어질어질해졌어

어질어질해져서 환상은 시작됐지

 

아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별은 늘 크레파스의 몫이었지

허나 노란색 크레파스의 몸 열심히 도화지에 문질러 봐도 낮에는 소용없었어

검은 물감 쏟아져 세상이 온통 어둑어둑해질 때

그제야 찬란한 무독성 빛은 시작됐지

 

아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낮은 너무 경박스러웠고

밤이 새도록 세상은 철썩 철썩

파도 소린지 채찍 소린지 모를 기묘한 리듬을

얇은 문틈으로 흘려보냈어

 

곧잘 반으로 뚝,

부러지곤 하던 크레파스

반으로 부러진 크레파스의 옷은 금세 누더기가 되고 말았지만

아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아무도 크레파스를 욕하진 않았지

크레파스 향에 중독된 마음

저녁을 온통 물들이던 크레파스의 부드러운 각질

그림 좀 못 그렸다고 아무나 픽, 죽어 버리진 않았지

 

우리가 크레파스만큼 진했고

크레파스만큼 작았을 때

희멀건 수채 물감과는 감히 섞이지도 않았고

부러진 크레파스들 틈에서 잠들면

세상은 본드 같은 거 없이도

알록달록 잘만 부풀어 올랐지

28색이 다 뭐야, 16색이면 족한걸

더러운 건 필요도 없었고

더러워질 필요도 없었지

 

크레파스 온통 손에 묻히고

씻지 않아도 더럽지 않았던

아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열기구 같은 건 그림책에서밖에 못 봤지만

매일 16종의 열기구에 매달린 영혼들은

밤낮으로 두둥실 그림 속 그림 밖 온갖 나라들로 사라져갔네

 

이제 아이는 아닌 아이가

창문을 열어 이리저리 낡은 하늘 뒤적거려 보지만

동료들과 피운 담배 연기가 이 도시의 하늘 꽉 채운, 너무

두꺼운 경치만이 펼쳐질 뿐이어서

마치 처음 만들어진 엔진과 프로펠러

같은 심정이 된 아이는 마침내 떨리는 두 손 앞으로 내밀어

타자를 치기 시작하네

오로지 열기구에 대해서

 

새하얀 하늘 위에 그어지고

어두운 팔목 위에 그어지던 거대한 열기구 같은 문장들이

아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열기구가 세운 찬란한 비행기록들과

런던 파리 리에주 부쿠레슈티

크레파스처럼 아주 기이 --- 러진 열기구에 폭격당한 도시들의 이름을 지나

폭탄 가득 실은 거대한 구름 떼 구경하러 집 밖으로 뛰쳐나와 머리 위로 검고 육중한 그림자

드리우는 와중에도 하늘에서 시선 떼지 못한 채

점, 저엄, 부풀어 오르는 탄성을 내뿜다 사라져 버린 시민들의 인화성 몽상에 이르자

 

바람을 먹은 문장들은 압정이라도 밟은 양 비틀,

 

거렸고 비틀, 비틀

 

거려서 타르르르르! 다시 환상은 시작됐지

 

아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예술은 늘 크레파스의 몫이었지

그건 문방구에서 훔칠 수도 있고

짝지한테 "야 그것 좀 줘 봐"

하고 잠깐 빌릴 수도 있어서

빌딩 숲 사이로 아무도 몰래 한 무리의

열기구들을 떠오르게 하는 것쯤

내겐 여전히 일도 아니지

 

* "아이가 아이였을 때(Als das Kind Kind war)", 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오프닝에서 나오는 페터 한트케의 시의 반복구.

 

총칭하는 종소리

 

빗속에 울리는 종소리

그것을 우중(雨中) 행군이라 총칭한다

모든 것을 총칭하느라 아주 멀리까지 퍼진 종소리가

좍좍 비를 맞으며

불완전 군장으로

판초도 없이 푹

숙이고 간다

속옷까지 젖어 버린 종소리

이 지경까지 헐벗은 행군

종소리는 좌우로 밀착하고 종소리는 불현듯

천둥을 함축한다

구름을 소화한다 번개를 배출한다

전투기를 잡아먹고 초음속 비행하는 소리를 흉내 내는 구름들

과거시와 현대시와 미래시를 압축하고 속으로 깜빡깜빡 비상등을 켜 보며

격추당하는 소리를 흉내 내는 삐뚤빼뚤 사선들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고요

종 속에는 기합이 모여들지요

총동원할 것

물집을 식량을 다양한 군사 지식을

뭉쳐서 장음(長音)이 되는 온갖 단음(短音)들을

이를테면 바다가 넓은 줄 알아 무한정 마셔대는 고래들*처럼

불가능을 진동시키며 오로지 웅웅거림으로써만 기능할 것

집중된 독재자의 연설

뻗어 나간다

마이크 없이

온몸을 마이크로 쓸 줄 알아서

퍼붓는 빗속에 플러그를 꼽아 버리며

종은 종 안의 인간을 여기 다 풀어놓기로 한다

종소리는

죽지 않는다 낙오하지 않는다 오직 적멸에 들뿐

푹 젖은 상하의 탈의하지 않는다

그 앞에 고개 숙이고 땅바닥에 최대한 가까워져

절하는 세상 모든 빗소리들

그 대량의 고개 숙임들 위로 종은 또 한 번 와락 종 속의 내부를

쏟아내고야 만다

귓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가 장착되고

만장일치로 폭발을 시도하기로

이제 제발 작작 좀 해라

세상의 장단에 좀 놀아나면 어때

해가 좀 뜬다

계급도 군번도 없다

빗소리 잦아 들어

이때를 경배하라

마른 종의 침묵이 귓속 심해로 가라앉는 소리

속에서 쫙

벌어진 채 다시는 붙지 않는

다리처럼 턱관절처럼

연한 식물의 줄기들 같은 흔들림 속에서

쥐 죽은 듯 취침할 것

좌로 취침하든

우로 취침하든

아무려면 어때

그것을 궁극의 잠꼬대라 총칭한다

이것이 내 몸에서 난 소리라는 사실에 뒤늦게 놀라 뒤틀리며

그 놀람이 내려친 맑음 속에서

골 때리도록

골 때리도록

이토록 청정한 무량광 속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너라는 운해에 스며들고 있었다

운해의 성분들을 뒤엎고 갈아치우며

도처에서 세워지고 무너져 내리는 음향의 적멸보궁이 되어

와라

와서 나의 극광이 되어라

허공 속으로 쫙

찢어지는 번개처럼

한달음에 달려가 두 눈 꽉 감고

최선의 소리로

최전선의 소리로

확! 거기 뛰어들어라 울려 퍼져라

두 발 쭉 뻗어 버려라

가서 너의 극락이 되겠다

 

* "鯨知海大無糧飮", 出處未詳.

 

비 맞는 운동장

 

비 맞는 운동장을 본 적이 있는가

단 한 방울의 비도 피할 수 없이

그 넓은 운동장에서 빗줄기 하나 피할 데 없이

누구도 달리지 않아 혼자 비 맞는 운동장

어쩌면 운동장은 자발적으로 비 맞고 있다

아주 비에 환장을 한 것처럼

혼자서만 비를 다 맞으려는 저 사지(四肢)의 펼쳐짐

머리끝까지 난 화를 식히기 위해서라면

운동장 전체에 내리는 비로도 부족하다는 듯이

벌서는 사람이 되어 비를 맞고

벤치에 앉은 사람이 되어 비를 맞고

아예 하늘 보고 드러누운 사람이 되어 비를 맞다가

바닥을 향해 엎드려뻗쳐 한 사람이 되어 비를 맞아 버린다

혼자 비 맞고 있는 운동장, 누가 그쪽으로

우산을 든 채 걸어 들어가는 걸 본 적이 있다

검은 우산을 들고 있어서 멀리서 보면 무슨 작은

구멍 같아 보이는 사람이 벌써 몇 바퀴째

혼자서 운동장을 돌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도 비 맞으며 뛰놀진 않는 운동장

웅덩이 위로 빗방울만 뛰노는 운동장에서

어쩌면 운동장 구석구석에 우산을 씌워 주기 위해

어쩌면 그건 그냥 운동장의 가슴에 난 구멍이

빗물에 이리저리 떠다니고 있는 건지도 몰랐지만

공중을 달려온 비들이

골인 지점을 통과한 주자들처럼 모두

함께 운동장 위로 엎질러지는 동안

고여서 잠시, 한 뭉테기로 휴식하는 동안

우산은 분명

운동하고 있었다

혼자서 공 차고 노는 사람이

혼자서 차고

혼자서 받으러 가듯

비바람에 고개 숙이며 간신히 거꾸로

뒤집어지지 않는 운동이었다

상하 전후 좌우로 쏟아지는 여름의 십자포화(十字砲火)를 견디며

마치 자기가 배수구라도 되겠다는 양

그 구멍 속으로 이 시의 제목까지 다 빨려 들어가 버려

종이 위엔 작은 구멍 하나만이 남아 있을 때까지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자신을 소멸시키겠다는 듯이

가까스로 만들어 낸 비좁은 내부 속으로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소릴

집중시키고 있었다

 

쌓아 올려 본 여름

 

여름이다

혼자 점심을 사 먹고 운동장 계단에 앉아 있는 여름

괜히 끊었던 담배 한 갑을 사서 정말 딱

한 대만 피우고 계단 위에 누워 보는 여름이다

개미들이 무언갈 미친 듯이 찾아 헤매는 여름

동네 아저씨 하나 학교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오갈 데 없이 앉아 보는 여름이고

땃 한 대 피운 담배곽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통째로 줘버리는 여름

그 누군가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눈알 속의 여름이다

개미들아 내게 올라타서 놀다 가라

더 이상 날지 못하고 천천히 기는 매미들아

내 옆에 와서 생을 마쳐라

고장난 티비나 세탁기 컴퓨터 삽니다

그래도 괜찮다

안 괜찮을 건 또 뭐야

나는 콘크리트 위에서 죽은 매미의 몸을 흙 위로 옮겨 주는 여름이고

공 차는 소리와 구름이 흘러가는 색깔이 구분되지 않는 여름

누워 있는 나를 슬쩍 구름 위로 옮겨 주는

힘이 남아돌고 시간이 남아도는 여름이다

아까 그 아저씨가 애들이 하는 축구를

승부차기까지 다 보고 있는 여름이고

그물은 골의 힘만큼만 출렁이다가

곧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여름

여름은 이윽고 자리를 비우고 잠시 화장실에 갈 것이다

수돗물 틀어 놓고 그 소리 듣고 있자면

잠시 폭포 앞에 서 보는 기분

여름이다

땀과 물이 뒤섞여

배수구로 집중되고 있는 여름

잠깐 누워 있던 여름이 깜박 조느라

구름 떼로부터 도처에 자유낙하 중인 여름

오면 오고

가면 가는 여름이다

짧은 치마를 입고 또각또각 걸어가는 여자보다는

그여자의 다리와 볼록한 궁둥이를 멍하니 쳐다보다 고개를

돌리고 마는 노인의 표정에 더 반응해 보는 여름

너는 자꾸 치마를 끌어내리고

나는 여름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본다

여름이다

지난해 여름에 이어

또다시 여름

내년 여름은 아직 안 왔지만

내년에도 여름은 오는 거겠지

어떤 확신에 가까운 여름

여름에게도 얼굴이라는 것이 있다면 참

볼만할 거야

운동장처럼

하얗게 웃고 있을지도

모든 것을 증발시키며

정신이 증발했을 때

홀로 버려질 몸뚱이처럼

드러누워 있는 운동장 위에 홀로

드러누운 여름

나는 여름의 타오름 속에 슬쩍 몸을 끼얹고

잠시 같이 타올라 보는

여름

여름이다

여름이고

여름이고

여름이고

여름

나는 돌을 쌓듯이 거기 여름을 쌓아 놓고

발로 한번 차 본다

 

바라나시 4부작

 

연날리기

 

갠지스 강변에 가면 늘 연 날리는 아이들이 있지

하늘 끝까지 풀어 올린 연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생각할 때

마음 다 놓아 버리고선 어두워진 강변 신나게 내달리지

 

그러던 어느 날 보이지 않던 연들 강풍에 흔들리고

팽팽하던 실들 낚싯줄처럼 요동치기 시작하면

잊고 있던 실에 마음 베이는 아이 하나둘쯤, 있었는지도 몰라

 

하늘이 없었다면 떨어질 것도, 다시 띄울 것도 없었겠지만

어차피 우린 모두 하늘에 담겨 헤엄치는 아이들

한때 하늘을 점령할 듯 연 날리던 아이들

 

그동안 너무 많은 연을 띄웠으므로

팽팽히 당겨진 수만 개 연줄들로 뒤엉킨 마음은

아직도 줄 놓는 법 알지 못하지

 

누가 뭐래도 하늘엔 줄이 없어

줄 달린 연들이 어쩔래야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어차피 우린 모두 하늘에 빠져 익사하는 아이들

 

POSTCARD

 

   안녕, 늘 오랜만인 당신. 내가 흰 소들에 대해 말해 준 적 있었던가. 골목에서 사람들의 이야기 빼곡히 담긴 신문지나 아직 밥 냄새 채 가시지 않은 종이 접시 다윌 꼭꼭 씹어 먹는 소들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누군가에게 엽서 한 장 쓰고 싶어지는 저녁이야

 

   오전에는 파리 떼처럼 잉잉대며 하늘 유영하고 있는 수백 마리 연의 무리 올려다보다 그만 그동안 우리 함께 하늘로 띄웠던 몇 개의 연들을 떠올려 버렸어. 이젠 연줄 모두 끊어 버린 하늘인 척해 버려도 괜찮은 걸까, 하고 생각했을 때 방금 화장터에 도착한 20인분의 목재가 구석에서 풍기던 유난히도 쓸쓸하고 축추한 냄새

 

   오늘도 일곱 시면 텅 빈 배를 붙잡고 태양은 죽어 가지만 어쩌겠어. 이미 열기는 식었고 네가 내 메일 읽느라 밥을 태울 일도 이제는 없을 텐데. 그러나 창을 열면 어느새 새로운 계절이 도착해 있을 저녁은 과연 지금 어디쯤 오고 있을까, 라고 쓰고 저녁 하늘에 붙어 보려 애쓰는 우표들을 한없이 바라보는 날들이 있어. 지금 네가 읽는 하늘은 어떤 표정의 구름들 배달하고 있을까, 당신의 하늘 아래 서서 몰래 올려다보고 싶어지는 자녁에

 

다시, 연날리기

 

온종일을 날고 달리고 뒤엉키고 부서지느라

결국 만신창이가 되고 만 연은

초져녁 조용한 강물에 수장시켜 주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골목에 남은 빛 쪼아 먹던 새들은

검붉게 번진 하늘 너머로 떼 지어 흡수되는 중이었고

골목 여기저기 버려진 혹성처럼 처박혀 있는 노인들

적막한 그들의 얼굴은 이미

바람 모두 쫓아낸 하늘의 심심함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방문 앞에 이르러 열쇠를 찾고 있을 때

언제부터였을까,

모르는 새 나의 발목에 감겨 여기까지 풀려 온

연줄을 보았다

(그때 몇 겹의 비린 바람

도처에서 서서히 일어나고……)

 

이 밤, 외로운 누군가 나를 날리며 놀고 있는 것일까

 

당신의 발목에도 어쩌면 연줄이 감겨 있는지요

우주의 가장 어두운 아래층에서, 생의 마지막일 무엇처럼

그렇게 나를 간신히 붙들고 있는 당신

혹은 내 간절히 붙들고 싶던 당신

각기 다른 장소, 다른 시간 속에서 우린

사이좋게 둘이서, 고요한 하늘에 나란히 손잡고 빠져

보기 좋게 익사하고 있었습니다

 

아르띠 뿌자*

 

떠나 버렸다고

버려 버렸다고 믿은 것들 전부

다시 다 되돌아왔다

내가 달려 나가 줍지 않아도 남이 주워다

대문 앞까지 가져다주는 날 있었다

그놈에게 한바탕 욕지거릴 하더라도

돌아온 것, 다시 내쫓을 순 없었고

 

가트**에서 푼돈 주고 사 강물에 띄워 보낸 디야***

떠나보낸 줄 알고 뒤돌아보면 이미

그 자리에 없다

사라진 게 아니라 디야 파는 아이가

떠내려갈까, 금세 다시 떠올려 좌판에 되돌려 놓은 것

누가 거기다 대고 꽃 모두 시들 때까지 온갖

 

추잡한 욕 퍼붓는 것 보았지만

어떤 침몰한 기억도 깊은 강바닥 물고기들이 알아보곤

그 앞에서 잠시 놀다가는 법

 

피어난 죄로 무참히 꺾여서

헐값에 팔리고

다시 실에 묶여 떠내려가지도 못하는 빛,

 

그 빛을 사고 또 샀다

모든 여정(旅程) 탕진하고

마침내 두 주머니 텅 빈

부랑자가 되어 있었을 때까지

 

……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물에 푹 젖은 연처럼 무거워진 몸으로

누가 울고 있었다

 

한 번 뒤돌아볼 때마다 깊어지는 수위를 느끼며

 

그럼 이제 안녕,

이라는 말에 스미는 뒤늦은 추위를 느끼며

 

이미 멀리

 

떠내려가 있었다

 

* 불로써 신께 경배드리고 은총을 받는 제식.

** 강으로 이어진 계단.

*** 작은 양초와 꽃을 담은 나뭇잎 보트.

 

풍차의 육체미

 

그냥 풍차가 됐으면

바람 불면 돌아가다

바람 자면 멈추는

돈키호테도

로시난테도 아닌

그냥 븅 븅

힘차게 제자리를 지키고픈

달려가서 안기고픈 남자의 규모로

븅 븅

잘리지도 않아서 영원히 자를 수 있는 공중을 썰며

븅 븅

호프나 한잔하고 부리는 호기로

정오 조금 지난 시간에 벌써 뒤풀이를 계획하는 아저씨 아줌마들이

일단 목부터 축이고 볼 때

그 목구멍들을 통해 넘어가는 힘으로

븅 븅

네가 런던에서 파리로 넘어가는 버스에서 보고 반한 육체미

븅 븅

내가 암스테르담에서 보고 매달려 돌아가고 싶던 힘찬 팔

난 지금 혼자 콩나물해장국 한 그릇을 비운 후 장충단공원에 앉아

문자나 주고받으며 당신들의 잡담을 엿듣고 있을 뿐인데

여긴 풍차가 하나도 없는데

난 갑자기 풍차가 되고 싶고

븅 븅

뭐라도 잡고 돌리고 싶고

뭐라도 븅 븅 돌아갔음 좋겠는데

여름바람에 감사하며

담배 피는 영감탱이들을 피해 부채 부치고 있는 할머니의

고약한 표정도 예쁘게 봐줄 수 있는

풍차가 됐으면

븅 븅

꽃받 오가는 꿀벌들의 날개 소리를

딱 100배만 확대한 음량으로

븅 븅

위풍당당

힘차게

난 버스도 안 타고 있는데

갑자기 내려서 좀 걷고 싶은 기분이고

식당에서 보던 야구경기를

여기저기 계단에 앉아 손에 스마트폰을 든 사람들이 이어서

봐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고

계속되는 경기

븅 븅 븅

계속되는 안타

붕 부웅 붕

계속되는 향기

부웅      부우웅   브응

소리를 녹음해줄 순 있지만

모양을 녹화해줄 순 있지만

지금 이 향기를 첨부해줄 순 없네

내가 풍차가 아니라서

힘찬 팔이 아니라서

마음에 드는 사실 몇 가지

부우웅븅 븅  븅

풍차는 없어도

딱 몇 초만

풍차가 됐으면

 

halo*

 

그것은 하나의 침몰이다

 

아침에 날기 시작해 저녁 무렵 진화한 새들이 하나둘

떨어질 때 일어나는 세계의 변형이자

밤부터 얼기 시작해 새벽 무렵 정점을 찍은 투명함이 긴장을

 

놓아 버리자마자 엎질러지는

 

물바다, 거대한 선박이 항해할 때 동반되는

소리의 커다란 모호함이다

 

덜 녹은 얼음들이 뜬 채로 밤 지새우는 동안 녹이 슨

면도날, 거울의 절벽에 매달린 채 점점 둥글어져 가는

핏방울, 그저 그런 선상(船上) 파티에 참가할 때

배에서 내리면 발 디딜 곳 하나 없다는 생각만으로

머릿속 한복판이 대서양처럼

새하얘짐이다

 

어쩌면, 하나의 탄생이다 의지와는 상관없는

 

웅장하고 불안한 선박의 노골적인 엔진 소리 같은

 

그것은 고문에 가까운 하나의 이미지, 제 발로 살아 움직이는 고래들처럼

물속에 물을 토하며 거대해진다

포악하게, 악착같이, 굴착기처럼 파고드는

물속에서만 본색을 드러내는 웅장한 소리

혹은 백상아리의 피부를 쓰다듬는 물결들의 환희이거나

이빨에 물어 뜯겨 너덜거리는 살들의 춤

얼음을 깨며 쇄빙선은 싱싱해지고

 

눈 속에 구명보트 같은 눈빛 숨기고 얼어 가는

생선들은 선박의 마음을 이해하느라 더욱 단단해져 간다

그것은 하나의 무너짐,

깨진 얼음들이 살 위로 쏟아져 흰 빛 아래 방치됨이고

 

밤은 물컵처럼 시원해진다

희미하게 전진하며 나의 흰 배가 너의 흰 배 위에 가닿듯

그것은 밤새 퇴고하는 손이 그리는 궤적의 탁월함

 

닻을 내리고 쉴 것이다

 

* Alva Noto + Ryuichi Sakamoto의 곡.

 

일체감

 

가벼운 새는

풀숲에

풀잎 엮어 집을 짓고

무거운 새는

나무 위에

나뭇가지 엮어 집을 짓는다

그것은 섭리

집은 자기

집주인을 닮았다

그러므로

자기 집이 없는 사람

이를테면

자이나(Jaina) 수행자들은

누운 곳이 곧 자기 집이므로

이 세상이 다 그와 닮고

노숙자들이 한참을 배회하다

잠드는

지하철역과 골목은

점점 노숙자들을 닮아 간다

집을 버린 사람과

집에서 버려진 사람은

아무래도 서로 다른 걸 닮아 가는데

오늘은 텅빈 뱁새 집 하날

조심스레 따다

식탁 위에 올려 두었다

그건 버린 집이 아니라

다 써서 버려진 집

잠시

맑고 포근한 시절의 너를 떠올렸다

물결은 오늘 모든 바다에서

잔잔하게 일겠고

이윽고 식탁에서

없는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투명하게

무음으로

없는 소리가 울려 퍼지자

세상은 거의 사라졌다

 

인식의 힘

- Notes on Blindness*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내리는

빗소릴 듣고 있었고

내리는 비가 때리는

물질들이 내는 소릴 듣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둔탁한 소릴 내다

창을 열면 크고 선명해지는

빗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빗소리는 무엇 하나 소외시키지 않았으므로

비로소 간극 없이 이어진 세계 속에서

내리는 비가 때리는 온갖 물질들이 내는 소릴 듣고 있었다

내리는 비가 때리는 물질들을 하나씩 분간해 낼 때마다

세계는 확장되고 있었고

세계는 재구성되고 있었고

때로 한밤중에

가는 물줄기 어딘가 부딪치고 있을 때

밤비 오시나

엄마 또 자다 깨 오줌 누시나

분간해 낼 수 없을 때도 있지만

침대에 누워서도 듣고

창문을 열어 두고도 듣고 있었다

문득 뒤돌아보면

고요한 실내

잠시 비 그치면 다시

고요한 세계

그러나 다시 빗소리 들려오기 시작하면

때로 나는 그게 다시 멀리서 비 내리기 시작한 건지

아니면 벌거벗은 네가 욕조에 들어가 샤워를 하기

시작한 건지 분간해 낼 수 없고

그럴 때마다 세계는 뒤섞이고 있었고

세계는 재구성되고 있었다

이어지는 빗소리 속에서

볼 수 있었으면 없었을 세계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없었을 세계

비가 내리지 않을 땐 정말로 없는 세계 속에서

모든 물질들이 내리는 빗속에서 어깨동무하는 광경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게 돼 버렸을 때까지

비는 내리고 있었고

뭐가 뭔지 아는 것 따윈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돼 버렸을 때까지

비는 내리고 있었고

비는 때리고 있었고

나는 그 모든 물질들의 한가운데 있었다

나는 여전히 창가에 머물고 있었고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신학자 존 헐(John Hull)이 실명 이후 3년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한 일기를 그대로 사용하여 제작된 단편 다큐멘터리.

 

초겨울에 대한 반가사유

 

내가 여기서 가만히 팔을 괴고 앉아 있는데 저기 식탁 위

에 놓인 물병이 흔들,

리고 있다면 저 흔들림은 나만의 흔들림

 

에서

이 세상의 흔들림

 

까지.

 

찬 마룻바닥 위

벽에 걸린 가을 풀 거꾸로 말라가는 시간 속에서

반가사유상의 왼발바닥이 새하얘진다

 

창밖에는 길어 온 물항아리 하나 하늘에 떠 있다

흔들흔들

출렁이다가

 

엎질러지는 날개들

박살나는 물항아리의

예리하고

빛나는 펼쳐짐으로

 

넓어지는 접촉면

발에서, 무릎으로

골반으로 가슴으로

번져오는 추위 속에

마침내 시려오는 머리.

 

반가사유가 뭐 별건가

시원한 바람 한 줌, 십 분여의 뻥 뚫린 환기보다 못한 것

 

엔터키 때리듯 벌떡!

일어나 창 쪽으로 달려가려다 말고

한 칸,

또 한 칸 스페이스바 누르듯

저린 발 뗀다

 

금동여래입상이 뭐 별건가

정말 오랜만에 다시 하늘색이 된 하늘

창을 열고 그 앞에 선 자라면 누구라도 잠시, 확장될 것

 

얼굴은 활주로 같은 것

그 위를 무허가로 비행하는 표정들

자주 착륙하는 낯익은 표정들과

한번 이륙한 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표정들 속에서

금동여래입상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반가사유상의 사유가 새하얘지고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금동여래입상의 차이는 오로지 넘버뿐

 

스페이스 바는 누르고

엔터키는 때린다

거꾸로 할 수 있다면

날 놀래킬 것

 

그럴 때마다 촛불들이 쓰러지는 저녁 바다

불바다가 되는 수평선 수직선

경계선 따위

그 온갖 선(線)들

 

저 불이 밤바람에 옮겨붙으면, 저 불이 더 불어나면

안 된다

안 되지만

 

뭐 안 될 것도 없다

그럴 때마다 브레이크 브레이크, 멀리 해안도로에서 타이어 타는 냄새

물이 불어나듯

넘치는 불의 계절

물불 같은 거, 가리질 말 것

 

손가락도 없는 눈으로

잡을 수도 없는 구름이나 오래 매만져보는 이 늦가을, 마지막 날 아침

스페이스바 길게 누르고 있는 동안만큼

반가사유상의 사유가

엎질러지고 있는 저 하늘

 

여래입상 따위

엔터,

엔터,

거기 털썩

주저앉혀버려

 

북유럽 환상곡

 

누가 또 시벨리우스*를 풀어 놓았나 등 푸른 생선같이 차가운 하늘

 

떨리는 손 숨기기 위해

손의 멱살을 쥐어 본 적 있습니까

손톱자국 네 개 희미하게 남아

손에게 미안해지는 저녁

 

북극해는 오늘 아침 심한 배신을 당해

노을 닿는 곳마다 맑은 핏물은 우러나오고

 

잠이 오지 않을 땐 베개 속에 낮에 주워 모은 철새의 깃털을 넣어 줘 보지만

그것은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만

 

감기약 캡슐처럼 감정은 여러 종류

채 다 번역하지 못한 낮은 잘 씻긴 유리 재떨이에 기대어 주는 요즘

감기 기운 너머로 담뱃갑 속 빼곡한 천사들처럼

새들의 흰 날개는 펄럭이고

 

주르륵 늘어진 실밥을 당기면

툭,

하고 단추가 떨어지듯

또 해는 지고

 

꿈이 너무 찰 땐 베개 속에 작년 봄에 주워 모은 목련을 넣어 줘 보지만

그것은 어디론가 안전하게 추락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그래도 잠이 오지 않을 때 베개를 뜯어 보면 속에는 죽은 새들의 물컹한 내장

(그건 그저 고깃덩어리고)

꿈이 너무 안락할 때 베개를 뜯어 보면 속에는 꽃잎 속에 들어갔다 갇혀 버린 벌레들의 세계

(흔해 빠졌어, 너 같은 거)

 

누가 또 시벨리우스를 다 잡아들였나 더 이상 싱싱하지 않은 하늘

 

투명한 기침 소리를 믿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니?

라고 누가 말할 땐 굳이 콜록거리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다짐하는 것도

희미해진 시벨리우스 냄새 속에서 밤새 바느질을 해 보는 것도

조금은 도움이 되는 요즘

 

진한 피 맛을 볼 때까지 하늘을 사랑하는

 

* Jean Sibelius

 

 

 

 

posted by 황영찬
2018. 11. 28. 11:47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57 별처럼 꽃처럼

 

 

 

나태주 꽃시집

2017, 푸른길

 

대야도서관

SB114165

 

811.7

나883ㅂ

 

진정 꽃은 나에게도 사심 없이 좋아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었고 거기에서는 자연스럽게 많은 양의 시가 태어났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 보냐! 그만큼 나는 철없는 인간이었다.

이러한 고마움과 철없음이 또다시 한 권의 시집으로 남게 되었다. 꽃같이 예쁘게, 오래 세상에 남아 숨 쉬기를 축원하는 마음 크다.

_ '책머리에' 중에서

 

나태주

 

시인.

1945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하여 1960년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공주사범학교에 입학하며 운명적으로 시를 만났다. 집안 내력에 문사적 기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사모하는 여학생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궁리하다가 시를 만난 것이다. 그 시절 신석정과 김영랑, 김소월의 시를 읽고 청록파 3인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등 시인들의 시를 만나 많은 도움을 얻었으며, 『한국 전후 문제 시집』은 좋은 교과서가 되었다.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군에 입대하여 주월 비둘기부대 병사로 근무했다. 제대 후 교사로 복직하면서 다시 한 여성을 만나 호되게 실연의 고배를 마시고 비틀거리다가 그 비애감을 시로 표현한 「대숲 아래서」란 작품으로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는데, 심사위원은 소년 시절 좋아했던 박목월, 박남수 두 분이었다.

그 후 오늘까지 여러 권의 시집(37권)과 산문집(13권), 두 권의 동화집, 네 권의 시화집, 여러 권의 시선집을 내고 2006년도에는 시 전집을 냈다. 2014년 가을에는 그의 시 「풀꽃」을 기념하여 공주에 공주풀꽃문학관이 개관되고 풀꽃문학상이 제정되었다.

 

차례

 

책머리에


1부_ 참 좋아

별처럼 꽃처럼 / 우체통 곁에 / 프리지어 / 눈, 매화 / 찔레꽃 / 산수유 / 노루발풀꽃 / 매화꽃 아래 / 꽃·10 / 달리아 / 오늘의 꽃 / 국화 / 동백·2 / 등꽃·2 / 백매 / 앵초꽃 / 야생화 / 제비꽃 옆 / 꽃나무 아래 / 벚꽃 이별 / 비파나무 / 겨울 장미 / 목백합나무 / 봉숭아 옆에 / 채송화에게 / 물망초 / 오동꽃 5월 / 용담꽃 / 꽃신 / 솔체꽃 / 술패랭이 / 칸나 / 아내의 꽃 / 싸리꽃 / 팬지·3 / 매화 아래 / 마른 꽃 / 모란꽃 / 족두리꽃 / 모란꽃 지네 / 다시 제비꽃 / 꽃잎·3 / 꽃·9 / 수수꽃다리 / 영산홍 / 동백꽃·2 / 팬지·2 / 난 / 연·2 / 풀꽃·3 / 제비꽃 사랑 / 꽃·8 / 붉은 꽃 한 송이 / 연·1 / 개양귀비 / 꽃그늘 / 제비꽃·5 / 목련꽃 낙화 / 쑥부쟁이·2 / 섬수국 / 옥잠화 / 그래서 꽃이다 / 물봉선 / 봉숭아·2 / 매화꽃 달밤 / 개화 / 꽃잎·2 / 수선화·3 / 수선화·2 / 구절초·2 / 꽃·7 / 꽃·6 / 팬지·1 / 꽃·5


2부_ 꽃 피워봐

강아지풀에게 인사 / 풀꽃과 놀다 / 풀꽃·2 / 동백·1 / 오랑캐꽃 / 민들레꽃 / 서양 붓꽃 / 꽃 피는 전화 / 혜화동 네거리 / 연꽃 / 연꽃 그림 / 동백꽃·1 / 투화投花 / 카네이션 / 카네이션을 어머니께 / 꽃이 되어 새가 되어 / 무궁화 꽃이 피었군요 / 꼬리풀들에게 / 꽃·4 / 동백정 동백꽃 / 배꽃 지다 / 배꽃 달밤 / 낙화 앞에 / 줄장미꽃·3 / 은방울꽃 / 산수유꽃만 그런 게 아니다 / 노랑 / 산딸나무 / 꽃향유 / 봄맞이꽃 / 꽃을 꺾지 못하다 / 구절초·1 / 제비꽃·4 / 산수유꽃 진 자리 / 능소화·2 / 영춘화 / 백목련·2 / 수국·2 / 벚꽃 아래 / 풀꽃·1 / 붉은 꽃 / 둥굴레꽃 / 꽃잎·1 / 그 마을에 가서 / 산촌엽서 / 꽃 피우는 나무 / 백목련·1 / 애기똥풀·2 / 목백합나무 그늘 아래 서서 / 애기똥풀·1 / 봉숭아·1 / 분꽃·3 / 산란초 / 풀꽃 그림 / 민들레 / 붓꽃·2 / 쑥부쟁이·1 / 나팔꽃·3 / 꽃·3 / 개망초 / 놀러 오는 백두산 / 씀바귀꽃 / 나팔꽃·2 / 풍란 / 늦여름의 땅거미 / 메밀꽃이 폈드라 / 분꽃·2 / 산벚꽃나무 / 나팔꽃·1 / 백일홍 / 단풍 / 강아지풀을 배경으로 / 난초 / 저녁 일경一景


3부_ 기죽지 말고 살아봐

순정 / 야생화 들판 / 백두산의 꽃 / 누이야 누이야 / 꽃·2 / 줄장미꽃·2 / 줄장미꽃·1 / 메꽃·2 / 구절초를 찾아서 / 다시 혼자서 / 여뀌풀꽃은 꽃이 아니다 / 데이지꽃 / 하나님, 여기 꽃이 있어요 / 플라워 바스켓 / 나는 파리에 가서도 향수를 사지 않았다 / 기쁨 / 쪽도리꽃 / 난쟁이나팔꽃을 보며 / 꽃·1 / 석류꽃·2 / 얼라리 꼴라리 / 협죽도 / 풀꽃 엄마 / 꽃들에게 미안하다 / 실루엣 / 두벌꽃 / 제비꽃·3 / 자운영꽃 / 붓꽃·1 / 꽃 한 송이 / 분꽃·1 / 제비꽃·2 / 달맞이꽃 / 7월 / 드라이플라워 / 팬지꽃 / 등꽃·1 / 똥풀꽃 / 일년초 / 크로바꽃 / 막동리를 향하여·19 / 설란 / 앉은뱅이꽃 / 겨울 난초 / 꽃집에서 / 난초를 가까이하며 / 능소화·1 / 들길 / 변방·52 / 양달개비 / 패랭이꽃빛 / 변방·3 / 화엄사의 파초 / 산란초 / 수선화·1 / 동국冬菊 / 아카시아꽃 / 맥문동을 캐면서 / 메꽃·1 / 자목련꽃 꽃그늘 / 철쭉꽃 / 산철쭉을 캐려고 / 석류꽃·1 / 자목련꽃 필 무렵 / 봄날에 / 갈꽃 핀 등성이마다 / 처세 / 칡꽃 / 꽃밭 / 제비꽃·1 / 수국·1 / 들꽃 / 들국화·3 / 들국화·2 / 들국화·1 / 감꽃

 

별처럼 꽃처럼

- 혜리에게

 

불타는 대지 위에

홀로 피어 있는 꽃처럼

 

어둔 밤하늘 한복판에

혼자 눈떠 반짝이는 별처럼

 

짧은 인생길 짧지 않게

지루한 세상 지루하지 않게

 

살다 가리니 오로지

아름다이 숨 쉬다 가리니

 

어디만큼 너는 나의 별이 되어

반짝이고 있는 것이냐

 

어디만큼 너는 나의 꽃이 되어

숨어 웃고 있는 것이냐.

 

프리지어

- 서울 보광동 송플라워 주인

 

당신 올해도 죽지 않고

살아오셨네요

그것도 샛노랑 옷

새로 차려입고

사뿐사뿐 나비도 나오기 전

나비걸음으로 오셨네요

 

당신 올해도

살아오신 기념으로

꽃을 드려요

그것도 샛노랑 꽃을 드려요

꽃은 프리지어

새 마음 새 세상

새 사랑을 담아 드려요

 

부탁의 말씀은 오직 하나

올해도 당신 부디

행복하시기 바래요.

 

· 10

 

예쁘다고 말해도

말이 없고

예쁘지 않다고 말해도

말이 없다

 

언제 왔느냐 물어도

대답이 없고

언제 갈 거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다

 

다만 좋다고 말하면

조그맣게 웃고

사랑한다 말하면

미소 지을 뿐이다.

 

오늘의 꽃

- 임현진

 

웃어도 예쁘고

웃지 않아도 예쁘고

눈을 감아도 예쁘다

 

오늘은 네가 꽃이다.

 

백매

- 김애란 피디

 

매화는 매환데 백매화

아직도 추운 계절에 저 혼자

새하얀 블라우스 차림

 

매운 향기 머금고 그래도

차마 울지는 못한다.

 

야생화

- 백승숙 여사

 

마주 앉아만 있어도

열리는 풍경

 

생각만 해도 마음속에

흐르는 강물

 

두 사람 사이

두 사람 사이에

 

눈 감고 아무 말이 없어도

오가는 이야기

 

바라보기만 해도 글썽

눈물 고이던 날이 있었다.

 

모란꽃

- 이금희 아나운서

 

날마다 아침마다 아침마당

눈부신 모란꽃 이금희

이금희 아나운서

이슬 속에 피어 더욱 눈부셔라

보아도 또 보고 싶어라.

 

· 9

 

  웃어도 웃고 울어도 웃고 입을 다물어도 웃고 입을 벌려도 웃고 앉아서도 웃고 서서도 웃고 누워서도 웃기만 하는 너! 숨이 넘어가면서도 웃을 너! 아주 많은 너! 결국은 나!

 

풀꽃 3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꽃 · 8

 

예뻐서가 아니다

잘나서가 아니다

많은 것을 가져서도 아니다

다만 너이기 때문에

네가 너이기 때문에

보고 싶은 것이고 사랑스런 것이고 안쓰러운 것이고

끝내 가슴에 못이 되어 박히는 것이다

이유는 없다

있다면 오직 한 가지

네가 너라는 사실!

네가 너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사랑스런 것이고 가득한 것이다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

 

꽃 · 7

 

다시 한 번만 사랑하고

다시 한 번만 죄를 짓고

다시 한 번만 용서를 받자

 

그래서 봄이다.

 

꽃 · 6

 

누군가 이 시간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살맛이 날 것이다

 

어딘가 이 시간 당신을 위해

기조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더욱 살맛이 날 것이다

 

더구나 당신이 세상으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드디어 당신은 꽃이 될 것이다

 

팡! 터져버리는 그 무엇

알 수 없는 은은한 향기, 그것은

쉬운 일이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꽃 · 5

 

아무렇게나 저절로

피는 꽃은 없다

 

누군가의 억울함과 슬픔과

기도가 쌓여 피는 꽃

 

그렇다면 산도 바다도

강물도

 

하늘과 땅의 억울함과 쓸픔과

기도로 피어나는 꽃일 것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군요

- 이제인 시인에게

 

무궁화 꽃이 피었군요

장미꽃이 핀 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방 안에 갇혀 있던 다섯 달 사이

 

처음 멀리 계단을 올라

뚝방이 있는 곳까지 가 보았더니

무궁화 꽃 위로 잠자리들도 날고 있더라구요

 

달맞이꽃은 이미 피었다 지고 있고요

습기 머급은 바람 풀꽃 내음 머금은 바람

후끈 코끝에 스며들어요

개망초 꽃들도 새하얗게 피어 있구요

 

다들 반가워요

잘들 있어줘서 고마워요.

 

· 4

 

가깝지 않지요

아주 멀리 그대 살고 있기에

오늘도 나 이렇게 싱싱한 풀입니다

 

숨소리 들리지 않지요

아스라이 그대 숨소리 향기롭기에

오늘도 나 이렇게 한 송이 꽃입니다

 

풀 가운데서도

세상에서는 없는 풀이요

꽃 가운데서도

누에 보이지 않는 꽃입니다.

 

꽃 · 3

 

꽃을 보라!

 

눈여겨 꽃을

노려보고 있노라면

푸들푸들 살아나기 시작하는

선, 선, 꽃잎의 선

 

꽃 속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꼬불꼬불 고갯길이

아득한 가늘은 들판길이

숨었다

 

꽃 속에 보리밥도 없어

끼니를 거르고 돌아앉아

한숨 쉬던 젊으신 어머니

둥그스름한 어깨

어린 누이들의 야윈 볼따구가

숨었고

 

꽃 속에 갓난애기

포대기에 싸안아 업고

지아비 마중 나선

해 저물녘의 한 지어미가

살고 있다

 

꽃 속에 충동적으로

부풀어 오른 옷 벗은 여인네

푸진 엉뎅이 빠알간

입술이 벙싯거리기도

하느니

 

아으, 이

짜릿한 거!

 

꽃 · 2

 

꽃은 식물의 성기

꽃들이 그들의 성기를 만개시켜

만천하에 공개하고 있다

어머어머, 꽃 좀 보아요

너무나 예쁘잖요

그러게 말이야

수군거리며 사람들이

흠흠, 꽃을 향하여 코를

대보기도 하고 입술을

들이밀기도 한다

어머어머, 이 사람들 좀 보아

어디다 코를 대고 입술을

디밀고 이러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그러게 말이야

여기저기 꽃들이

투덜거리는 소리.

 

꽃 · 1

 

꽃들은 땅의 젖꼭지

봄이 와서 통통 부어오른

땅의 젖꼭지

다가가 가만히

빨아먹고 싶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외워 보고 싶다.

 

수국 · 1

- 누이 연주에게

 

허투루 슬퍼 말아야지.

허투루 마음을 주지 말아야지.

 

마음 깊이 하고픈 말일수록

더욱 말하기를 삼갈 일이요,

 

수다스런 바람의 희롱 앞에서도

행여 웃음일랑 팔지 말아야 했다.

 

차라리 독한 향기는

치마 끝에 차는 것!

 

 

 

 

 

posted by 황영찬
2018. 11. 20. 15:10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56 그 길에 네가 먼저 있었다

 

 

 

나태주 신작 시집

2018, 밥북

 

대야도서관

SB127726

 

811.7

sk883ㄱ

 

 

나태주

 

·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시인이 됨.

· 1973년 첫 시집 『대숲 아래서』 이후, 『틀렸다』 까지 38권 출간.

· 산문집 『풀꽃과 놀다』, 『꿈꾸는 시인』, 『죽기 전에 시 한 편 쓰고 싶다』, 『혼자서도 꽃인 너에게』 등 여러 권 출간.

· 동화집 『외톨이』 출간.

· 시화집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너도 그렇다』, 『선물』 등 출간.

· 시선집 『멀리서 빈다』, 『풀꽃』, 『지금도 네가 보고 싶다』, 『별처럼 꽃처럼』,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 등 여러 권 출간.

· 받은 상으로 흙의 문학상, 충청남도문화상, 현대불교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시와 시학상, 편운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정지용문학상, 고운문화상, 공초문학상, 유심작품상, 난고문학상 등.

· 1964년부터 2007년까지 43년간 초등교단에 재직, 정년퇴임.

·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 공주문화원장 8년 역임.

· 현재는 공주풀꽃문학관 주거 시인.

 

다행스런 일

 

내 시는 세상에 보내는 러브레터.

지향 없는 하소연이며 고백.

늘상 외롭고 애달프다.

 

나의 시는 바람이 써주는 시.

꽃이 대신 써주고 새들이 대신 써주는 시.

그래서 다시금 외롭고 애달프지만은 아니하다.

 

2018년 신춘

나태주

 

차례

 

다행스런 일

 

1부

 

네가 있어 / 떠나는 너 / 꽃구경 / 철부지 마음 / 노래로 / 해거름 녘 / 너를 두고 / 호수·1 / 늦여름 / 아리잠직 / 느낌으로 / 목소리 듣고 싶은 날 / 개울 길을 따라 / 변명·1 / 변명·2 / 이른 아침 / 새 / 네 앞에서 / 두 개의 지구 / 꽃필 날 / 말랑말랑 / 금세 / 호수·2 / 손인사 / 재회·1 / 재회·2 / 가을날 맑아 / 계단 / 입술 / 포옹·2 / 봄비 / 만나지 못하고 / 맨발 / 고칠 수 없는 병 / 사랑은 이제 / 선물 아침

 

2부

 

좋은 때 / 행운 / 작은 마음 / 흔들리며 어깨동무 / 은행나무 아래 / 장갑 한 짝 / 이별 이후 / 종이컵 / 희망 / 풀베기 / 담장을 따라 / 봄은 아프다 / 부모 노릇 / 축복 / 고향 / 차 / 좋은 세상 / 어머니 앞에 / 쌍가락지 / 송년 모임 -‘예술의 기쁨’에서 / 감동-낙타시편·1 / 잔인무도-낙타시편·2 /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 / 오르막길 / 한 사람 / 봄, 그리고 / 어리버리 / 생일날 / 팔불출 / 잘못 든 길 / 대화 / 벼랑 / 울컥 / 아침의 생각

 

3부

 

동백 / 양란 / 별꽃 / 인디안 앵초 / 오월 카톡 / 두둥실 / 가지 않는 봄 / 연정 / 초여름 / 여행에의 소망 / 포옹·1 / 그 날 / 시 / 질문 / 그리움 / 주기도문 / 새벽 / 그분 / 그 골목길 / 한 말씀 / 여행지의 꿈 / 아버지의 집으로 / 악수 / 간단한 일 / 귀국 / 여행길 / 시작법 / 조금씩 오는 생각 / 영월행·1 / 영월행·2

 

4부

 

급한 말 / 러시아에서 / 이제는 / 유산 / 걱정인형·1 / 걱정인형·2 / 버림받음으로 / 바람 부는 날 / 모른다 하랴 / 부서진 돌 / 잠시 쓴다-혜리에게 / 김남조 선생 / 봄날의 끝자락 / 봄 꿈 -취환 회장 / 다시 만남 / 봄처럼-오지현 시낭송가 / 삐비-김주영 작가의 자수 / 초롱꽃 -소화 데레사 수녀 / 통화 -반경환 평론가 / 버들잎 하나-임현진 / 벌개미취-김지헌 시인 / 진보랏빛-김금용 시인 / 폭포 앞에서 / 몽실이 -강나영 피아니스트 / 코맹맹이 소리-김인순 교사 / 리슬한복 / 겨울 모시옷-오현 스님 / 좋으신 인연-다시 오현 스님 / 인생을 묻는 젊은 벗에게 / 며늘아기에게 / 오직 감탄사 하나로-공주 땅에서의 백범 선생

 

그 길에 네가 먼저 있었다

 

개울물이 흐르고 있었고

개울물이 소리를 내고 있었고

꽃이 피어 있었고

꽃이 고개를 흔들고 있었고

 

저게 누굴까?

몸을 돌렸을 때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낯선 얼굴

 

네가 너무 예뻤던 것이다

그만 눈이 부셨던 것이다

 

그 길에서 그날 너는

그냥 그대로 개울물이었고

꽃이었고 또 개울물과

꽃을 흔드는 바람결이었다.

 

- 개울 길을 따라

 

네가 있어

 

바람 부는 이 세상

네가 있어 나는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된다

 

서로 찡그리며 사는 이 세상

네가 있어 나는 돌아앉아

혼자서도 웃음 짓는 사람이 된다

 

고맙다

기쁘다

힘든 날에도 끝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우리 비록 헤어져

오래 멀리 살지라도

너도 그러기를 바란다.

 

아리잠직

 

못생긴 것이

못생긴 것이

이쁘지도 않은 것이

 

오래도록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마음속 깊숙이 들어와

제가 아주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한다.

 

네 앞에서

 

너는 내 앞에 있을 때가

제일로 예쁘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너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

 

내 앞에서는 별이 되고

꽃이 되고 새가 되기도 하는 너

 

나도 네 앞에서는

길고 긴 강물이 되기도 한다.

 

만나지 못하고

 

가까이 왔다가

그냥 간다

 

돌아서

길을 돌아서라도

보고 싶었는데

 

못 보고 가니

많이 섭섭

 

그래도 다음

만날 약속 있으니

그나마 다행.

 

종이컵

 

너무 쉽게 버려 미안하구나.

 

축복

 

잠자는 아기

일하는 아빠

기도하는 엄마.

 

벼랑

 

사람들은 죽으려고

뛰어내리지만

 

꽃들은 살려고

뛰어내린다.

 

아침의 생각

 

사랑은

두 사람이 마주 보는 것일까?

 

사랑은

두 사람이 한 곳을 보는 것일까?

 

사랑은 끝내

두 사람이 가까이 마주 서 있는 것일까?

 

이 아침 다시 한번

해 보는 생각이다.

 

동백

 

봄이 오기도 전에

꽃이 피었다

너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

눈 속에서도 붉은 심장을

내다 걸었다.

 

초여름

 

너도 좋으냐

살아있는 목숨이

 

그래 나도 좋다

살아있는 목숨이.

 

 

쓰레기는 쓰레긴데

사람들 마음에 오래 머물다

버려지는 쓰레기가 될 것인가

이내 버려지는 쓰레기가 될 것인가

 

날마다 그것이 난제였다.

 

새벽

 

새벽 시간 잠 깨어

귀가 가렵다

 

하나님이 천사들이랑

또 내 얘기

하시나 보다.

 

잠시 쓴다

-혜리에게

 

너 지금 어디 있느냐?

어디서 나를 보고 있느냐?

 

오늘도 구름 높고 하늘 높고

바람은 푸르다

 

바람 속에 너의 숨결이 숨었고

구름 위에 너의 웃음이 들었다

 

너 부디 오래 거기 있어 다오

지구 한 모퉁이에서 잠시 쓴다.

 

봄처럼

-오지현 시낭송가

 

기다리지 않았음에도

찾아와 가슴에 안기는

부드러운 바람

 

어찌 기다림이

없었겠느냐?

 

다만 멀리서

스스로 돌아옴만이

눈물겹고 고마울 따름.

 

삐비

-김주영 작가의 자수

 

어머니 어머니

세하얀 등성이에 혼자 서서

오래도록 그렇게 보고 계셨군요

 

나는 아직도 어린 아이

아장 아장걸음으로

당신 앞으로 가요.

 

초롱꽃

-소화 데레사 수녀

 

동화 속 여자아이

책 밖으로 잠시 외출 나왔나 보다

 

손에는 초롱꽃 모양

물동이 하나 들고

 

동화 속 샘물의 물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려고 했을까

 

책 밖의 샘물을 길어

동화 속으로 가져가려고 그랬을까

 

맑은 이마 맑은 눈

나이가 가늠이 되지 않는다.

 

 

 

 

 

 

posted by 황영찬
2018. 11. 16. 14:30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55 천부경 81자 바라밀

 

 

 

박용숙 지음

2018, 소동

 

대야도서관

SB 128830

 

259.3

박65ㅊ

 

천부경에 숨겨진 천문학의 비밀

 

천부경 해설의 새로운 이정표

《천부경》은 지구가 스스로 돌면서 태양을 돈다는 지동설의 경전이다. 서구문명은 오랜 동안 지구 둘레로 태양이 돈다고 주장하는 천동설을 지지했다. 또 지구라는 땅덩어리가 맷돌처럼 바다 위에 떠있다고 했다. 이것이 허구라는 사실이 폭로된 지 600년이 넘었지만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문명을 반성하지 않는다. 서구는 한쪽을 이성적인 문명으로 여기고 다른 쪽을 비이성적인 미개 문명으로 치부해 왔다.

 

신이 작성한 최초의 문서, 《천부경

'불경'은 그 문자를 풀이한 설법이다

이 책은 《천부경》의 "삼사성환오칠일묘연의 도"가 지구의 자전 공전을 뜻하고, 전체 9 × 9 = 81자가 고대 천문학자들이 사용하는 비밀 문자임을 밝힌다. 이 비밀의 문자를 풀면 요지부동의 《천부경》 81자가 불교의 《반야경》과 만난다.

 

· 《천부경》의 숫자는 천문학의 상징들이다

· 천지인이 지동설의 열쇠다

· 금성, 해, 쪽달이 만나면 생명의 탄생이 시작된다

· 이승은 지구이고 저승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궤도이다

· 동양 고전과 불교에서의 무無는 마고다

· 석가는 새벽별을 보고 지동설의 깨달음을 얻었다

· 사르트르와 니체 또한 새벽별의 의미를 알았다

· 불경은 천부경을 풀이한 설법이다

· 노자 《도덕경》의 주제도 지구 자전 공전이다

· 도道란 사람이 걷는 길이 아니다

 

저자 박용숙朴容淑 은 1935년 함남 함주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국문학과와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U.C. 버클리 아시아센터 연구교수를 거쳐 동덕여자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를 지냈다.
인문학자로서 인류의 시원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였고, 철학, 고전, 미술, 역사, 문학 등 분야를 망라한 독서로 동양과 서양 문명, 샤머니즘과 근대문명(기독교, 불교, 유교 등)을 통섭하는 데 천착해왔다.

이는 지속적인 책 집필로 이어져, 《한국 고대 미술사론》(1979), 《한국의 시원사상》(1985), 《전통미술의 재발견》(1988), 《황금가지의 나라》(1993), 《지중해 문명과 단군조선》(1996), 《한국 미술사 이야기》(1999), 《한국 현대미술사 이야기》(2003) 등 전통문화와 미술비평에 관한 많은 저서가 있다. 일본의 제일서방第一書房에서《샤머니즘으로 본 한국고대미술문화 사론シヤ?マニズムよりみた朝鮮古代文化論》(1985)이 출간되기도 했다.

이 책《천부경 81자 바라밀》은 우리 전통 사상의 핵심을 이룬 《천부경》이 지구 자전 공전의 천문학 이치를 담고 있는, 고대 천문학자의 비밀문서라는 데서 출발한다. 기독교와 불교 문명이 시작되기 전의 상고사를 다룬《샤먼제국》, 인류의 사상과 역사를 일구었던 최초 문명에 관한 도상학적 고찰인《샤먼문명》 등의 전작에 이은 샤먼 시리즈 완결판이자, 출발이 되는 책이다.

 

        목차

 

저자의 글

여는 글

 

제1장 | 제석님과 지동설

    어루하! 제석님

    하늘의 길목과 이정표

    금성, 해, 쪽달이 만나면 좀생이혼이 내린다

    만명굿, 지상에서는 금성을 칭송한다

    좀생이혼을 부르는 굿판의 진동

    이승과 저승, 부정풀이굿

    자전하며 공전하는 사물놀이

    《천부경》 81자는 지동설

 

제2장 | 새벽별 마고 이야기

    《천부경》의 첫 걸음, 괴물 ‘마고’

    금성이 창조주다

    석가는 새벽별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마고 이야기

    메두사의 빛은 해탈의 텍스트

    우주의 진동음은 원시음악이다

    인人은 빛과 그림자의 중계자

    ‘천지인’은 지동설의 열쇠다

    무無는 《천부경》의 문고리

    카오스와 무無

    동양 고전과 불교에서의 무無는 마고다

 

제3장 | 마고의 손

    손은 우주의 이치를 셈한다

    수는 천문학의 기호

    《천부경》으로 들어가는 수 1, 2, 3

    4는 사계절이다

    5는 이승과 저승의 플랫폼

    6은 혼불이다

    7은 하늘의 중심이자 모태

    8은 지구 자전 공전의 궤도다

    9는 지구의 공전궤도

    십十은 공空이다

    민속, 놀이, 우주춤

 

제4장 | 마고의 정원

    마고 거울과 천문 관측

    《천부경》 81자는 지구 자전 공전의 경문이다

    지구의 타원궤도

    자전은 24시간, 공전은 24절기

    지구 궤도에 이변이 생겨도 지구는 돈다

    2·3二三은 지구 자전 궤도의 메타포이다

    우주운행의 신성비례

    노자 《도덕경》의 주제도 지구 자전 공전이다

    원효와 바라춤

 

제5장 | 마고의 돌

    돔과 해탈

    일승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돔의 천창과 앙명인중천지일

 

제6장 | 오! 마고의 빛과 열반

    빛과 그림자가 하나가 되다

    천창으로 좀생이혼이 내린다

    《천부경》과 석굴암

    동굴 속의 빛

    불교와 게마트리아

    상법시대와 정법

 

제7장 | 《천부경》 81자 풀이

    도道란 사람이 걷는 길이 아니다

    윤회와 세속

    《인부경》

 

나가는 글

참고문헌

 

제석굿  날개를 의미하는 장삼에 꼬깔을 쓴 제석이 천문도(달력)의 상징인 부채를 쥐고 춤을 추고 있다. <무당성주기도도>의 부분, 서울대학교박물관.

만명굿  만명卍明은 점을 치는 새벽별 여신이다. 왼손에 달력(24절기)을 쥐고 오른손에는 좀생이혼을 부르는 방울을 흔들고 있다. <무당성주기도도>의 부분, 서울대학교박물관.

쌍영총 전실(스케치)  천정을 목재로 井자 모양을 엇갈리게 쌓앗다. 돌이나 옹기로 만든 완벽한 돔을 모방한 것이다. 공간의 내부는 빛이 차단된 흑천으로, 길게 생긴 아치형이다. 양쪽 벽면에는 벽화가 있고 두 개의 돌기둥을 거대한 뱀이 휘감고 올라간다. 고구려, 5세기. 그림 출처 : 《한국미술전집 : 벽화》, 동화출판공사.

부정풀이굿  굿을 시작하기전에 굿판을 정화하는 의식으로 여섯명의 쟁이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무당성주기도도>의 부분, 서울대학교박물관.

바빌로니아 천문도  수메르인들이 그린 태양계 모습. 아카드왕의 인장에 새겨진 천문도로, 이 시대에 태양 중심의 지동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림 출처 : 제카리아 시친, 《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왕자 이야기에 등장하는 스핑크스  날렵한 사자 몸매에, 어깨에 날개를 단 여자의 얼굴이다. 오이디푸스 왕자에게 수수께끼 문답을 내고 잇다. 기원전 5세기, 파리 루브르박물관

우리나라 <천상열차분야지도>  유럽 천문학자들도 풀지 못하는 이상한 천문도로 알려져 있다. 중심에 모두 세 개의 원이 있는데 큰 것 두 개는 겹쳐 있고 작은 원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작은 원의 이름은 '자미원'이며 속에 북극의 별들이 배치되어 있다. 성신여자대학교박물관. 그림 출처 : 양홍진, 《디지털 천상분야열차지도》

이집트의 스핑크스  사자 몸에 날개를 달고 얼굴은 사람이다. 피라미드는 춘분날 해가 뜨는 방향에 앉아 있다. 두 손에 단지를 들고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오로라, 새벽의 여신>  귀도 레니 작. 새벽의 여신 오로라가 마차를 타고 달리고 있다. 새벽별을 만나려는 태양 아폴론은 아름다운 처녀들에 둘러싸여 잇고 새벽별 오로라는 이미 하늘에 떠 있다. 횃불을 든 아이는 새벽별과 태양과 달을 맞이하기 위해 탬버린을 두드린다. 흑백의 두 말은 빛과 그림자가 나란히 있는 것을 암시한다.

거인족 타이폰typhon을 죽이려는 제우스  거인족은 날개를 달고 있다. 하체는 두 마리의 뱀이 결가부좌한 것처럼 꼬인 모습이다. 지구 자전 공전의 도를 의미한다. 이들은 천문학자이자 점성술사들이다. 기원전 6세기.

금동 천문도  중심부의 북극(천개)을 가리키는 둥근 원이 자미원이다. 그 속에 움직이지 않는다는 여러 항성들이 그려져 있다. 북극성, 작은곰자리, 큰곰자리, 오리온자리, 시리우스, 알파성, 수소자리, 묘성 등이 원 안에 들어 있거나 아니면 어정쩡하게 한 다리를 걸쳐놓고 있다. 조선시대, 양산 통도사박물관.

하무라비의 손  구데아 신상의 합장에는 지구 자전 공전의 도가 숨어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고려시대의 청동거울  고려시대, 지름 24cm, 국립중앙박물관.

무구 가위  신라의 왕들이 각종 의식을 행하던 안압지 바닥에서 발굴되었다. 그곳에서 굿판이 열렸음을 말해 준다. 용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듯한 가위 손잡이의 모양새에 주목해 보자. 일반적으로 아가리는 구슬의 존재를 상기시킨다. 그 아가리에 보배 구슬을 물고 있었을 것이다. 가위는 지구를 상징하는 용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측된다. 경주 안압지 출토, 통일신라, 국립경주박물관.

<천상열차분야지도>  천문도의 중심에 자미원(북극)이 있고 그 둘레로 두 개의 원이 겹쳐 있다. 두 개의 원 중에서 아래쪽으로 기울어진 원은 북극인 작은 원을 정중앙에 두고 있지만 위쪽으로 더 올라 간 원은 북극의 자미원을 아래쪽으로 밀어내고 있다.

첨성대  첨성대 축조에 들어간 돌은 365개. 네모의 꼭지는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킨다. 각각 지구 공전 길이와 사계절을 상징한다. 추분날 정오에 꼭대기의 화혈로 해가 수직으로 내려와 안을 환하게 밝힌다. 통일신라.

미트라의 개벽도  미트라교도(무두루천사)가 가부좌를 하는 동굴(벽사)에서 새벽별을 보고 일승의 깨달음을 얻은 후 자아의 상징인 알을 깨고 암흑의 방을 박차고 나오는 순간이다. 양쪽으로 벌린 두 손에는 거대한 뱀의 머리와 꼬리 양쪽이 동시에 잡혀 있다. 지구 자전 공전의 도를 깨달았다는 뜻이다.

방상씨 가면  흑천의 문을 박차고 나온 해탈자의 표정을 짓고 있다. 네 개의 눈은 사계절을 의미한다. 사계절을 깨닫는 것이 곧 해탈이다. 주요 민속자료 제16호,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뿔배  소뿔이 모티프가 된 잔이다. 뿔 끝쪽에 소머리가 있지만 두 개의 뿔은 아주 작다. 기다란 뿔 하나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토기가 청동기와 함께 옛 무덤에서 발굴되는 이유를 현대 고고학은 설명하지 못한다. 《성서》의 "흙으로 사람을 지었다"는 비유가 실은 지구의 자전축 X十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야 지역 출토, 동아대학교박물관.

<십우도>  목자가 한 마리의 야생 소를 순치시키는 이야기다. 모두 여덟 장면에 소가 등장하며 검게 그려진 소가 점차 흰 소가 된다. 빛과 그림자가 변화하는 상황을 관측한다는  의미로, 여기서 소가 엎어놓은 돌바가지 톨로스이고 소머리의 보이지 않는 중뿔이 새벽별이다. 새벽별이 나타나는 춘분 때 목자는 해와 북두칠성이 나란히 있는 하늘을 보며 해탈자가 된다.

금관과 수소뿔 금관장식  5세기경. 경주 출토. 위는 서봉총금관(국립경주박물관), 아래는 고령금관 장신구(삼성미술관 리움).

석굴암 주존불  석굴암은 엎어놓은 돌사발이다. 천창의 빛이 가부좌한 불상의 이마에 박힌 보석을 때리면 찬란한 광채가 흑천을 밝은 빛으로 채우고 법의 꽃이 핀다. 항마촉지인과 함께 지구 자전 공전의 깨달음을 나타낸다. 통일신라.

무용총 주실 천장 벽화  돔 양식의 구조물로 천정에 황도십이궁의 별자리가 그려져 있는 부도이다.

고행주의 석가  석가가 파라문에 입문하여 혹독한 고행을 하던 시절의 모습. 가부좌로 두 손을 모았지만, 잡은 건지 놓으려는 건지 모호한 상태다. 봄 여름과 가을 겨울의 두 회전이 미묘하게 꼬리를 물며 돌아가는 지구 자전 공전의 원리를 보여준다. 2~3세기, 인도 라호르박물관.

코만 있는 서있는 비너스  팔을 오므려서 사각형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얼굴을 원형, 하체의 성기 부분을 삼각으로 읽으면 ○□△(원방각)의 이미지다.

의상법사가 지은 《화엄일승법계도》.  두 마리의 용이 서로 꼬리를 물고 비틀며 돌아간다.

지구 위에 올라선 미트라 영웅  '말을 타다'는 일차적인 메타포다. 미트라는 사계절을 의미하는 네 개의 날개를 달았고 거대한 뱀이 몸을 휘감고 있다. 얼굴은 메두사의 가면이다. 메두사를 우리는 도깨비라고 한다. 도상에서 미트라가 두 개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두 개의 열쇠는 춘분점에서 지구가 몸통을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반대로 추분점에는 왼쪽으로 기울인다는 뜻이다. 몸을 휘감은 뱀은 지구로부터 회오리모양으로 치솟아 미트라의 몸을 휘감고 올라가 어깨와 뒷머리를 돌아 그의 입속으로 들어간다. 이는 지구와 메두사(금성)가 만난다는 삼사성환의 비유다. 이 도상은 16세기에 로마의 미트라 신전에서 발굴한 벽화의 모사품이다. 출처 : David Ulansay, 《The Origines of Mithraic Mysteries》 

 

 

posted by 황영찬
2018. 11. 5. 12:22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54 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2

 

 

 

이종호 글 · 사진

2015, 북카라반

 

대야도서관

SB108573

 

911

이75ㅎ  2

 

불국사와 석굴암부터 백제역사유적지구까지

 

UNESCO World Heritage of KOREA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종묘, 남한산성, 백제역사유적지구, 하회마을과 양동마을,

해인사 장경판전, 수원 화성, 강화 · 고창 · 화순 고인돌 유적, 조선 왕릉,

불국사와 석굴암, 경주역사유적지구,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한국의 건축물을 대변하는 궁궐은 많지만, 창덕궁이 유일하게 세계문화유산에 지명되었을 정도로 남다른 특이성을 갖고 있다. 세계에서 단일 목조 건물로 가장 규모가 큰 종묘와 남한산성도 한국의 자랑스런 세계문화유산이다.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백제역사유적지구와 하회마을과 양동마을, 해인사 장경판전, 수원 화성도 세계문화유산에 속한다. 한국은 '고인돌의 나라'로 불러도 좋을 만큼 많은 고인돌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데, 특히 강화도와 전남 화순, 전북 고창 지역의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조선시대의 왕릉은 거의 전부 한양을 중심으로 100리 안에 잇다. 경주 지역은 1995년 한국의 간판스타라 볼 수 있는 불국사와 석굴암이 최초로 지정되었고, 2000년 경주역사유적지구라는 명칭으로 경주시 전부를 포괄해 지정되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인 한라산천연보호구역, 성산일출봉, 거문오름 용암동굴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종호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페르피냥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문부성이 주최하는 우수 논문상을 수상했으며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연구했다. 과학기술처장관상, 태양에너지학회상,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으며, 기초 없이 빌딩을 50층 이상 올릴 수 있는 ‘역피라미드 공법’을 비롯해 특허 10여 개를 20여 개국에 출원하는 등 이론과 실제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그동안 『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전2권), 『과학문화유산답사기』(전3권), 『미스터리와 진실』(전3권), 『황금보검의 비밀』, 『과학 삼국유사』, 『과학 삼국사기』, 『고대 신전 오디세이』,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파라오의 저주』, 『천재를 이긴 천재들』(전2권), 『세계 불가사의 여행』,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노벨상이 만든 세상』,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한국의 유산 21가지』 등 100여 권을 집필했다.

 

차례

 

머리말

 

제8장 강화·고창·화순 고인돌 유적

고인돌의 나라

고인돌은 거석문화의 발자취

한국 고인돌의 차별성

강화 고인돌 유적

고창 고인돌 유적

화순 고인돌 유적

 

제9장 조선 왕릉

동구릉
건원릉 | 현릉 | 목릉 | 숭릉 | 원릉 | 휘릉 | 혜릉 | 경릉 | 수릉

홍유릉
홍릉 | 유릉
사릉
광릉
서오릉
명릉 | 경릉 | 창릉 | 익릉 | 홍릉
서삼릉
예릉 | 희릉 | 효릉
파주 삼릉
공릉 | 순릉 | 영릉
온릉
파주 장릉
김포 장릉
태강릉
태릉 | 강릉
의릉
헌인릉
헌릉 | 인릉
선정릉
선릉 | 정릉
정릉
영녕릉
영릉 | 영릉
장릉
융건릉
융릉 | 건릉

제10장 불국사와 석굴암
불국사
절대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
불국사의 구성
석가정토
청운교와 백운교 | 자하문과 회랑 | 대웅전과 무설전 | 다보탑 | 석가탑
아미타정토
칠보교와 연화교 | 극락전 | 비로전
연화장 세계
석굴암
석굴암의 건축 구조
팔부신중 | 금강역사 | 사천왕 | 항마촉지인 본존불 | 십일면관음보살입상 | 대범천과 제석천 |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 십대제자상 | 감실의 조각상
종합건축물 석굴암

제11장 경주역사유적지구
대릉원지구
신라 무덤의 고구려 유물 매장
왕의 숫자보다 많은 금관
발굴의 한 획을 그은 천마총
남산지구
신라의 사찰, 남산
남산 돌아보기
제1구역 : 서남산 (1) | 제1구역 : 서남산 (2) | 문화재 보고, 삼릉골 | 제2구역 : 남남산 | 제3구역 : 동남산 (1) | 제3구역 : 동남산 (2)
명활산성지구
황룡사지구
모전석탑 분황사
월성지구
계림
경주 월성

제12장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한라산천연보호구역
성산일출봉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거문오름
용암동굴
만장굴 | 김녕굴 | 벵뒤굴 | 용천동굴 | 당처물동굴

 

■ 북방식은 비교적 넓고 편평한 땅 위에 세워 네모난 상자 모양의 방을 만든 다음 바닥에 시체를 안치하고 그 위에 뚜껑돌을 덮은 것이다. 중국 랴오닝성 가이핑의 스펑산 고인돌.

■ 강화도 하점면 부근리의 강화지석묘는 북방식 고인돌의 상징적인 유적이다. 남한에서 발견된 북방식 고인돌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다.

■ 강화도 고려산 북쪽으로 삼거리 고인돌군(위), 서남쪽 하단에는 오상리 고인돌군이 있다. 오상리 지역에는 고인돌 12기가 모여 있다.

■ 고창 고인돌의 특징은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 등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혼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상석곽식이 45기나 있다. 고창 고산리 고인돌.

■ 운곡리 24호 고인돌은 길이 6미터, 너비 4.5미터, 높이 3.5미터로 추정 무게 297톤인 국내 최대의 고인돌이다.

■ 감태바위 고인돌군과 감태바위 채석장은 화순 고인돌군 중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고인돌 군락지다.

■ 핑매바위 고인돌은 고인돌 자체는 7기에 불과해 가장 적지만, 춘F7호로 명명된 핑매바위 고인돌과 춘F5호, 도로 아래쪽의 춘F6호가 있다.

■ 화순 고인돌의 가장 큰 특징은 뚜껑돌이 100~200톤을 상회하는 대형 고인돌 수십 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 건원릉은 고려 왕릉 가운데 가장 잘 정비된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헌정릉 제도를 기본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조선 왕릉의 교과서다.

■ 현릉은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능이다. 문종은 세자로 있었던 기간이 30년인 반면 재위 기간은 2년 3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 목릉은 선조와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 능으로 건원릉 동쪽 언덕에 있다.

■ 숭릉은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능이다. 동구릉 9개 중 입구에서 볼 때 가장 좌측에 있다.

■ 원릉은 재위 기간이 가장 긴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의 능이다. 쌍릉으로 조성되었으며 병풍석을 만들지 않고 난간석을 이어 붙였다.

■ 휘릉은 인조 계비 장렬왕후 조씨의 능이다. 병풍석이 없고 십이지신상을 새겨 방위를 표시한 12칸의 난간석을 둘렀고 봉분 뒤로 3면의 곡장이 있다.

■ 혜릉은 경종의 원비 단의왕후 심씨의 능으로 동구릉 내 유택 중 유일한 원 형식이다.

■ 경릉은 헌종과 효현왕후 김씨, 계비 효정왕후 홍씨를 모신 동구릉 중 9번째 능이다. 왼쪽이 헌종의 능이고 중앙이 효현왕후의 능, 오른쪽이 효정왕후의 능이다.

■ 수릉은 추존 익종과 신정왕후 조씨의 능이다. 합장릉이지만 단릉처럼 봉분과 혼유석을 하나만 두었다.(출처_문화재청3)

 

 

 

■ 훙릉은 고종과 명성황후 민씨의 능이다. 홍릉이 남다른 것은 명 태조의 효릉을 본떠 만들었기 때문이다.

■ 유릉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능이다. 조선 왕릉 중 유일한 동봉삼실의 합장릉이다.

■ 사릉은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의 능이다. 사릉 정자각은 배위청이 짧아서 전체 건물의 모습이 정사각형이라는 느낌을 준다.

■ 광릉은 세조와 정희왕후의 능이다. 풍수가들은 광릉을 2마리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형상이라고 한다.

■ 명릉은 숙종과 계비 인현왕후 민씨, 인원왕후 김씨의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의 능은 동원 쌍분으로 조영하고, 인원왕후의 능은 오른편 언덕에 단릉(아래)으로 모셨다.

■ 경릉은 추존왕 덕종과 소혜왕후 한씨의 능이다. 덕종의 능(위)은 대군 묘로 조성되어 매우 간소한 반면 소혜왕후의 능은 왕릉 형식을 갖추고 있다.

■ 창릉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 한씨의 능이다. 예종은 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지만 재위 기간은 14개월에 불과했다.

■ 익릉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의 능인데, 서오릉에 있는 능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있다.

■ 홍릉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 서씨의 능으로 조선 왕릉 42기 중 유일하게 왕의 유택이 지금까지 비어 있다.

■ 예릉은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능이다. 조선 왕조의 상설 제도를 따른 마지막 능이다.

■ 희릉은 중종의 제1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능이다. 중종은 '왕비가 무던하고 지조가 높고, 태사의 덕이 이보다 더할 수는 없다'며 끔찍이 대했다.

■ 효릉은 인종과 인성왕후 박씨 능이다. 효성이 지극했던 인종을 기려 능호도 효릉으로 정해졌다.

■ 공릉은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 한씨의 능이다. 규모가 크고 병풍석이 없는 원 형식이다.

■ 순릉은 성종 비 공혜왕후 한씨의 능이다. 공혜왕후는 한명회의 넷째 딸로 순릉과 마주 보고 있는 공릉의 장순왕후와 자매지간이다.

■ 명릉은 영조 맏아들 추존 진종과 효순왕후 조씨의 능이다. 영릉이 간소한 것은 세자와 세자빈의 예로 조성했기 때문이다.

■ 온릉은 중종의 첫 번째 부인인 단경왕후 신씨의 능이다. 단경왕후는 '죄인의 딸'로 낙인 찍혀 왕비 책봉 7일 만에 폐출되었다.

■ 파주 장릉은 인조와 인열왕후 한씨의 능이다.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능원 양식으로 평가받는다.

■ 김포 장릉은 인조의 부모인 원종과 인헌왕후 구씨를 모신 능이다. 병풍석과 나간석을 두르지 않은 쌍릉 형식이다.

■ 태릉은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 윤씨의 능이다. 왕비의 봉분 1기만 있는 단릉이다.

■ 강릉은 명종과 그의 비 인순왕후 심씨의 능이다.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마련한 쌍봉릉이며, 두 능 모두 병풍석을 둘렀다.

■ 의릉은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이다. 의릉은 쌍릉이지만 왕릉과 왕비릉이 각각 단릉의 상설을 모두 갖추었다.

■ 헌릉은 태종과 원비 원경왕후 민씨의 능으로 같은 언덕에 무덤을 달리해 안장한 쌍릉으로 왼쪽이 태종, 오른쪽이 원경왕후 민씨의 능이다.

■ 인릉은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합장릉으로 봉분이 하나이며 봉분 앞의 석상도 하나만 설치했다.

■ 선릉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으로 하나 이상의 능이 같은 능호를 사용하지만, 각각 다른 언덕에 조성된 동원이강릉이다.

■ 정릉은 중종의 능으로 첫 번째 계비 장경왕후 윤씨가 있는 서삼릉의 희릉과 동원이강을 이루고 있다.

■ 정릉은 태조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이었지만, 태종이 즉위하면서부터 정릉의 위상은 확바뀌어 푸대접을 받는다.

■ 영릉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이다. 현재의 영릉은 풍수지리상 최고의 길지라고 알려졌다.

■ 영릉은 효종과 인선왕후 정씨의 능오, 좌우로 이웃한 다른 쌍릉과는 달리 앞뒤로 나란히 있는 동원상하 형식이다.

■ 장릉은 단종의 능으로 다른 왕의 능이 한양 내에 있는 반면 유일하게 강원도 영월군에 있다.

■ 융릉은 장헌세자 장조와 현경의왕후의 합장릉으로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이다.

■ 건릉은 정조와 효의왕후 김씨의 합장릉으로 재실 위 높은 언덕에 모셔져 있다.

■ 불국사는 "안개와 구름을 삼키고 토한다"는 토함산 서쪽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불국사 입구.

■ 불국사의 건물은 장대하고 독특한 석조 구조 위의 목조건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 청운교와 백운교는 석가모니불의 불국세계로 통하는 자하문에 연결되어 있다.

■ 자하문은 붉은 안개가 서린 문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몸에서 나온다는 자금색 광채를 말한다. 또한 자하문 좌우의 회랑 구조는 궁중의 것과 유사하다.

■ 대웅전은 아미타정토의 극락전보다 한 층 높은 위치에 있다. 창건 당시에는 석가여래와 미륵보살, 갈라보살의 삼존상이 모셔져 있었다고 한다.

■ 다보탑은 온 우주의 근본 형상처럼 네모나고 둥글고 뾰족한 원형과 방형과 삼각형이다.

■ 석가탑은 '무영탑'이라고도 불리는데, 현진건의 소설로도 유명한 아사녀와 아사달의 애처로운 사랑 이야기는 불국사를 찾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 극락전은 아미타불이 있는 서방의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곳이다.

■ 비로전의 주인은 비로자나불인데, 비로자나불은 "빛을 발하여 어둠을 쫓는다"는 뜻이다. 불단에는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 석굴암은 화강암을 다듬어 석굴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은 인공 석굴로 자연석을 뚫고 굴을 만든 고대 인도나 중국의 석굴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토함산 석굴암 입구.

■ 석굴암은 윤회의 12단계인 12지연기를 나타내는 법당으로 꾸며져 있다. 그러므로 석굴 법당은 불교미술의 정수인 불상들의 총집합체다.

■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의 동서남북의 네 지역을 관장한다는 천왕이다. 동방 지국천과 북방 다문천.

■ 석굴암의 본존불은 조각상 가운데 가장 중심적 존재로 중앙의 본존불은 높이 3.4미터에 이르는, 대좌까지 합치면 5미터나 되는 큰 불상이다.

■ 십일면관음보살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11개의 얼굴 모습을 갖추고 있는 관세음보살이다.

■ 삼층석탑은 높이 303미터인 팔각원당형 기단 위에 방형의 3층 탑신이 놓여 있는 특이한 형태다.

■ 대릉원지구에는 신라 미추왕릉, 경주황남리고분군, 경주노동리고분군, 경주노서리고분군, 동부사적지대, 경주 오릉, 재매정 등이 있다. 미추왕릉(위)과 경주 오릉(아래).

■ 봉황대는 신라 고분 중 황남대총 다음으로 규모가 큰데, 고분 위에 커다란 느티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무덤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 호우총은 광개토대왕 때 고구려에서 만든 명문이 있는 호우가 발견되어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 신라의 왕릉급 무덤에서 출토된 금관은 모두 6점이다. 이 중에서 교동 금관을 제외한 황남대총 북분 · 금관총 · 서봉총 · 금령총 · 천마총 금관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것이다. 위로부터 황남대총 금관, 금관총 금관, 서봉총 금관, 금령총 금관, 천마총 금관.

■ 천마도의 용도는 '말다래'다. 말다래는 말안장에서 늘어뜨려 진흙이 사람에게 튀는 것을 막는 장식이다.

■ 신라 최초의 사찰로 알려진 흥륜사는 1910년경에 우연히 금당터가 보이는 토단과 신라 최대의 석조 · 석불 등이 발견되어 흥륜사터로 추정하고 있다.

■ 월정교는 통일신라 최고 전성기의 화려한 궁성 교량으로 신라 왕경 서쪽 지역의 주된 교통로로 사용되었다.

■ 나정은 박혁거세가 태어난 곳이다. 이곳에는 그를 기리는 유허비를 비롯해 신궁터로 추정되는 팔각건물지, 우물지, 담장지, 부속건물지, 배수로 등이 있었지만 현재는 공터다. 나정과 남간사지 당간지주(아래).

■ 포석정은 물이 포어 모양을 따라 만든 수구로 흐르면 물 위에 띄운 솔잔으로 술을 마시며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면서 즐기도록 인공적으로 만든 수로다.

■ 용장사곡 삼층석탑은 '아득한 구름 위 하늘나라 부처님 세계에 우뚝 솟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다. 남산 전체를 기단으로 삼고 해발 약 400미터 지점에 자리를 잡았다면 용장사곡 삼층석탑은 높이가 404.5미터에 이른다.

■ 자연 암반에 6미터 높이에 새겨진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의 머리는 거의 입체불에 가깝고 그 아래는 선으로만 조각되어 있다.

■ 열암곡 석불좌상(위)은 발견 당시 불상의 머리만 없었는데, 2005년에 발견했다. 침식곡 석불좌상은 머리와 광배는 사라졌지만 삼단대좌를 갖추는 등 나머지 부분들은 대체로 남아 있다.

■ 천룡사 삼층석탑은 원래 무너져 있었는데 1989년부터 석탑 자리를 비롯해 주변을 발굴 조사하면서 복원한 것이다.

■ 서출지는 이름 그대로 글이 나온 연못이다. 그리 큰 연못은 아니지만 연꽃과 수백 년 된 배롱나무들이 제철에 절경을 이룬다.

■ 미륵곡석불좌상(위)은 ,경주 남산에 있는 석불 가운데 가장 완전한 것'이고, 보리사마애석불은 얼굴은 두툼하고 세밀하게 조각해 자비 넘치는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다.

■ 명활산성은 다듬지 않은 돌을 시용한 신라 초기의 산성으로 남쪽의 환등산을 둘러싸고 테뫼식 토성을 먼저 쌓았다가 나중에 북쪽에 골짜기를 둘러싼 포곡식 석성을 쌓았다.

■ 황룡사터는 진흥왕 14년에 사찰을 지으려고 한 장소가 아니라 궁궐을 지으려고 했던 곳이다. 황룡사터와 목탑 심초석(아래).

■ 분황사는 '향기로운 왕'이란 뜻으로 선덕여왕 대인 634년에 세워졌다. 분황사탑은 전탑 양식을 채택했으나 재료는 벽돌이 아니고 석재다.

■ 내물왕릉은 신라 17대 내물왕의 무덤으로 높이 5.3미터, 지름 22미터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며 밑둘레에는 자연석을 이용해 둘레석을 돌렸다.

■ 현재 남아 있는 월성 유적으로는 조선시대 때 축조된 석빙고뿐이다. 월성은 위에서 바라본 모습이 반달 모양 같다고 해서 '반월성'이라고도 부른다.

■ 한라산은 해발 1,950미터의 산으로 약 180만 년 전에 시작한 화산 활동으로 형성되었다.

■ 한라산 정상에는 옛날 신선들이 백록을 타고 물놀이를 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는 화구호가 있으며 백록담으로 불린다.

■ 성산일출봉 분화구의 최고 정상은 182미터이며 분화구 내의 최저고도는 98미터다. 한때는 분화구 안에서 농사를 짓기도 했다는데 현재는 온통 억새밭이다.

■ 성산일출봉 분화구 안에는 풀밭이 펼쳐져 커다란 원형 경기장을 연상케 한다. 이 풀밭은 예부터 나무는 거의 없고 억새와 띠 등의 식물군락을 이루고 있다.

■ 제주 사람들은 오름 주변에 마을을 세웠고, 오름에 기대어 밭을 일궈 곡식을 키우고 목축을 해서 생활했다. 또한 신앙의 텃자리로 신성시하는 한편, 죽어서는 오름에 뼈를 묻었다.

■ 만장굴은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굴이다. 동굴의 지질은 알칼리 감람석 현무암으로 약 30만 년 전부터 동굴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돌거북(아래).

■ 벵뒤굴의 '벵뒤'는 순수 제주어로 중산간 지역의 널따란 벌판, 평평한 대지를 뜻한다. 광대한 용암대지가 형성된 곳을 일컫는다. 벵뒤굴의 용암 기둥.

■ 용천동굴은 전형적인 용암동굴로 동굴 내에는 종유관, 종유석, 석순, 석주, 동굴산호, 동굴진주 등 석회동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동굴생성물이 성장하고 있다.

■ 당처물동굴의 천장에 빽빽하게 군집을 이루면서 생성되어 있는 종유석은 그 형태가 다양하면서 기형적인 형태가 많이 있다.

 

posted by 황영찬
2018. 10. 16. 14:47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53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  강 시집

2016, 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전철 4호선,
선바위역과 남태령역 사이에
전력 공급이 끊어지는 구간이 있다.
숫자를 세어 시간을 재보았다.
십이 초나 십삼 초.
그사이 객실 천장의 조명은 꺼지고
낮은 조도의 등들이 드문드문
비상전력으로 밝혀진다.
책을 계속 읽을 수 없을 만큼 어두워
나는 고개를 든다.
맞은편에 웅크려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갑자기 파리해 보인다.
기대지 말라는 표지가 붙은 문에 기대선 청년은 위태로워 보인다.
어둡다.
우리가 이렇게 어두웠었나.
덜컹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
맹렬하던 전철의 속력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가속도만으로 레일 위를 미끄러지고 있다.
확연히 느려졌다고 느낀 순간,
일제히 조명이 들어온다, 다시 맹렬하게 덜컹거린다. 갑자기 누구도
파리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나는 건너온 것일까?

 

시인 한  은 1970년에 태어나 1993년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네 편이 실리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과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등을 출간했다.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는 침묵의 그림에 육박하기 위해 피 흘리는 언어들이 있다. 그리고 피 흘리는 언어의 심장을 뜨겁게 응시하며 영혼의 존재로서의 인간을 확인하려는 시인이 있다. 그는 침묵과 암흑의 세계로부터 빛나는 진실을 건져 올렸던 최초의 언어에 가닿고자 한다. 뜨겁고도 차가운 한강의 첫 시집은 오로지 인간만이 지닌 ‘언어-영혼’의 소생 가능성을 점검해보는 고통의 시금석인 셈이다.

 

시인의 말

 

어떤 저녁은 투명했다.

(어떤 새벽이 그런 것처럼)

 

불꽃 속에

둥근 적막이 있었다.

 

2013년 11월

한  강

 

차례

 

시인의 말

 

1부 새벽에 들은 노래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새벽에 들은 노래

심장이라는 사물

마크 로스코와 나

마크 로스코와 나 2

휠체어 댄스

새벽에 들은 노래 2

새벽에 들은 노래 3

저녁의 대화

서커스의 여자

파란 돌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이천오년 오월 삼십일, 제주의 봄바다는 햇빛이 반.

물고기 비늘 같은 바람은 소금기를 힘차게 내 몸에

끼얹으며, 이제부터 네 삶은 덤이라고

 

2부 해부극장

조용한 날들

어두워지기 전에

해부극장

해부극장 2

피 흐르는 눈

피 흐르는 눈 2

피 흐르는 눈 3

피 흐르는 눈 4

저녁의 소묘

조용한 날들 2

저녁의 소묘 2

저녁의 소묘 3

 

3부 저녁 잎사귀

여름날은 간다

저녁 잎사귀

효에게. 2002. 겨울

괜찮아

자화상. 2000. 겨울

회복기의 노래

그때

다시, 회복기의 노래. 2008

심장이라는 사물 2

저녁의 소묘 4

몇 개의 이야기 6

몇 개의 이야기 12

날개

 

4부 거울 저편의 거울

거울 저편의 겨울

거울 저편의 겨울 2

거울 저편의 겨울 3

거울 저편의 겨울 4

거울 저편의 겨울 5

거울 저편의 겨울 6

거울 저편의 겨울 7

거울 저편의 겨울 8

거울 저편의 겨울 9

거울 저편의 겨울 10

거울 저편의 겨울 11

거울 저편의 겨울 12

 

5부 캄캄한 불빛의 집

캄캄한 불빛의 집

첫새벽

회상

무제

어느 날, 나의 살은

오이도

서시

유월

서울의 겨울 12

저녁의 소묘 5

 

해설 | 개기일식이 끝나갈 때 · 조연정

 

피 흐르는 눈 3

 

허락된다면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초여름 천변

흔들리는 커다란 버드나무를 올려다보면서

그 영혼의 주파수에 맞출

내 영혼이 부서졌다는 걸 깨달앗던 순간에 대해서

 

(정말) 허락된다면 묻고 싶어

 

그렇게 부서지고도

나는 살아 있고

 

살갗이 부드럽고

이가 희고

아직 머리털이 검고

 

차가운 타일 바닥에

무릎을 꿇고

 

믿지 않는 신을 생각할 때

살려줘, 란 말이 어슴푸레 빛난 이유

 

눈에서 흐른 끈끈한 건

어떻게 피가 아니라 물이었는지

 

부서진 입술

 

어둠 속의 혀

 

(아직) 캄캄하게 부푼 허파로

 

더 묻고 싶어

 

허락된다면,

(정말)

허락되지 않는다면,

아니,

 

회복기의 노래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회상

 

아무것도 남지 않은 천지에도

남은 것들은 많았다 그해 늦봄

널브러진 지친 시간들을 밟아 으깨며

어김없이 창은 밝아왔고

흉몽은 습관처럼 생시를 드나들었다

이를 악물어도 등이 시려워

외마디소리처럼 담 결려올 때

분말 같은 햇살 앞에 그저

눈 감으면 끝인 것을

텃새들은 겨울부터 아니 그전 겨울부터 아니아니 그 전 겨울부터

목 아프게 지저귀고 있었다

때론 비가 오고 때론 개었다 세 끼 식사는 한결같았다 아아

사는 일이 거대한 장례식일 뿐이라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어린 동생의 브라운관은 언제나처럼 총탄과 수류탄으로

울부짖고 있었고 그 틈에 우뚝

살아남은 영웅들의 미소가 의연했다

그 해 늦봄 나무들마다 날리는 것은 꽃가루가 아니었다

부서져 꽂히는 희망의 파편들

오그린 발바닥이 이따금 베어 피 흘러도

봉쇄된 거리 벗겨진 신 한짝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천지에서 떠밀려온 원치 않은 꿈들이 멍든 등을 질벅거렸고

그 하늘

그 나무

그 햇살들 사이

내 안에 말라붙은 강 바닥은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모든 것이 남은 천지에

남은 것은 없었던 그해 늦봄

 

그때

 

내가 가장 처절하게 인생과 육박전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헐떡이며 클린치한 것은 허깨비였다 허깨비도 구슬땀을 흘렸다 내 눈두덩에, 뱃가죽에 푸른 멍을 들였다

그러나 이제 처음 인생의 한 소맷자락과 잠시 악수했을 때, 그 악력만으로 내 손뼈는 바스러졌다

 

저녁의 소묘 4

 

잊지 않았다

 

내가 가진 모든 생생한 건

부스러질 것들

 

부스러질 혀와 입술,

따뜻한 두 주먹

 

부스러질 맑은 두 눈으로

 

유난히 커다란 눈송이 하나가

검은 웅덩이의 살얼음에 내려앉는 걸 지켜본다

 

                                    무엇인가

                                   반짝인다

 

반짝일 때까지

 

파란 돌

 

십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투명한 물결 아래

희고 둥근

조약돌을 보았지

해맑아라,

하나, 둘, 셋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러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난 눈을 떴고,

깊은 밤이었고,

꿈에 흘린 눈물이 아직 따뜻했네

 

십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동안 주운 적 있을까

놓친 적도 있을까

영영 잃은 적도 있을까

새벽이면 선잠 속에 스며들던 것

그 푸른 그림자였을까

 

십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그 빛나는 내[川]로

돌아가 들여다보면

아직 거

눈동자처럼 고요할까

 

캄캄한 불빛의 집

 

그날 우이동에는

진눈깨비가 내렸고

영혼의 동지(同志)인 나의 육체는

눈물 내릴 때마다 오한을 했다

 

가거라

 

망설이느냐

무엇을 꿈꾸며 서성이느냐

 

꽃처럼 불 밝힌 이층집들,

그 아래서 나는 고통을 배웠고

아직 닿아보지 못한 기쁨의 나라로

어리석게 손 내밀었다

 

가거라

 

무엇을 꿈꾸느냐 계속 걸어가거라

가등에 맺히는 기억을 향해 나는 걸어갔다

걸어가서 올려다보면 가등갓 안쪽은

캄캄한 집이었다 캄캄한

불빛의 집

 

하늘은 어두웠고 그 어둠 속에서

텃새들은

제 몸무게를 떨치며 날아올랐다

저렇게 날기 위해 나는 몇번을 죽어야 할까

누구도 손잡아줄 수는 없었다

 

무슨 꿈이 곱더냐

무슨 기억이

그리 찬란하더냐

 

어머니 손끝 같은 진눈깨비여

내 헝클어진 눈썹을 갈퀴질하며

언 뺨 후려치며 그 자리

도로 어루만지며

 

어서 가거라

 

저녁의 소묘

 

어떤 저녁은 피투성이

(어떤 새벽이 그런 것처럼)

 

가끔은 우리 눈이 흑백 렌즈였으면

 

흑과 백

그 사이 수없는 음영을 따라

 

어둠이 주섬주섬 얇은 남루들을 껴입고

 

외등을 피해 걸어오는 사람의

평화도,

오랜 지옥도

비슷하게 희끗한 표정으로 일히도록

 

외등은 희고

 

외등 갓의 바깥은 침묵하며 잿빛이도록

 

그의 눈을 적신 것은

조용히, 검게 흘러내리도록

 

새벽의 들은 노래

 

봄빛과

 

번지는 어둠

 

틈으로

 

반쯤 죽은 넋

 

얼비쳐

 

나는 입술을 다문다

 

봄은 봄

 

숨은 숨

 

넋은 넋

 

나는 입술을 다문다

 

어디까지 번져가는 거야?

 

어디까지 스며드는 거야?

 

기다려봐야지

 

틈이 닫히면 입술을 열어야지

 

혀가 녹으면

 

입술을 열어야지

 

다시는

 

이제 다시는

 

해부극장*

 

한 해골이

비스듬히 비석에 기대어 서서

비석 위에 놓인 다른 해골의 이마에

손을 얹고 있다

 

섬세한

잔뼈들로 이루어진 손

그토록 조심스럽게

가지런히 펼쳐진 손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이

안구가 뚫린 텅 빈 두 눈을 들여다본다

 

                (우린 마주 볼 눈이 없는걸.)

                (괜찮아, 이렇게 좀더 있자.)

 

* 17세기 이탈리아의 해부학자 안드레아 베살리우스의 책. 수년간의 급진적 해부 연구 끝에 인간의 뼈와 장기, 근육 등 정교한 세부를 목판에 새겨 제작했다. 독특한 구도의 해골 그림들이 실려 있다.

 

해부극장 2

 

나에게

혀와 입술이 있다.

 

그걸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견딜 수 없다, 내가

 

안녕,

이라고 말하고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고 말하고

정말이에요,

라고 대답할 때

 

구불구불 휘어진 혀가

내 입천장에

매끄러운 이의 뒷면에

닿을 때

닿았다 떨어질 때

 

*

 

그러니까 내 말은,

 

안녕.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심이야.

 

          후회하고 있어.

 

          이제는 아무것도 믿고 있지 않아.

 

*

 

나에게

심장이 있다.

통증을 모르는

차가운 머리카락과 손톱들이 있다.

 

그걸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나에게 붉은 것이 있다, 라고

견디며 말한다

일 초마다 오므렸다 활짝 펼쳐지는 것,

일 초마다 한 주먹씩 더운 피를 뿜어내는 것이 있다

 

*

 

수년 전 접질렸던 발목에

새로 염증이 생겨

걸음마다 조용히 불탈 때가 잇다

 

그보다 오래전

교통사고로 다친 무릎이

마룻장처럼 삐걱일 때가 있다

 

그보다 더 오래전 으스러졌던 손목이

손가락 관절들이

다정하게

고통에 찬 말을 걸어온다

 

*

 

그러나 늦은 봄 어느 오후

검푸른 뢴트겐 사진에 담긴 나는

그리 키가 크지 않은 해골

 

살갗이 없으니

물론 여위었고

역삼각형의 골반 안쪽은 텅 비어 있다

엉치뼈 위의 디스크 하나가

초승달처럼 곱게, 조금 닳아 있다

 

썩지 않을,

영원히 멈춰 있는

섬세한 잔뼈들

 

뻥 뚫린 비강과 동공이

곰곰이 내 얼굴을 마주 본다

혀도 입술도 없이

어떤 붉은 것, 더운 것도 없이

 

*

 

몸속에 맑게 고였던 것들이

뙤약볕에 마르는 날이 간다

끈적끈적한 것

비통한 것까지

함께 바싹 말라 가벼워지는 날

 

겨우 따뜻한 내 육체를

메스로 가른다 해도

꿈틀거리는 무엇도 들여다볼 수 없을

 

다만 해가 있는 쪽을 향해 눈을 잠그고

주황색 허공에

생명, 생명이라고 써야 하는 날

 

혀가 없는 말이어서

지워지지도 않을 그 말을

 

거울 저편의 겨울

 

1

 

불꽃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파르스름한

심장

모양의 눈

 

가장 뜨겁고 밝은 건

그걸 둘러싼

주황색 속불꽃

 

가장 흔들리는 건

다시 그걸 둘러싼

반투명한 겉불꽃

 

내일 아침은 내가

가장 먼 도시로 가는 아침

오늘 아침은

불꽃의 파르스름한 눈이

내 눈 저편을 들여다본다

 

2

 

  지금 나의 도시는 봄의 아침인데요 지구의 핵을 통과하면,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꿰뚫으면 그 도시가 나오는데요 그곳의 시차는꼭 열두 시간 뒤, 계절은 꼭 반년 뒤 그러니까 그 도시는 지금 가을의 저녁 누군가가 가만히 뒤따라오듯 그 도시가 나의 도시를 뒤따라오는데요 밤을 건너려고 겨울을 건너려고 가만히 기다리는데요 누군가가 가만히 앞질러 가듯 나의 도시가 그 도시를 앞질러 가는 동안

 

3

 

거울 속에서 겨울이 기다리고 있었어

 

추운 곳

 

몹시 추운 곳

 

너무 추워

사물들은 떨지 못해

(얼어 있던) 네 얼굴은

부서지지도 못해

 

나는 손을 내밀지 않아

너도

손을 내미는 걸 싫어하지

 

추운 곳

오래 추운 곳

 

너무 추워

눈동자들은 흔들리지 못해

눈꺼풀들은

(함께) 감기는 법을 모르고

 

거울 속에서

겨울이 기다리고

 

거울 속에서

네 눈을 나는 피하지 못하고

 

너는 손을 내미는 걸 싫어하지

 

4

 

만 하루 동안 비행할 거라고 했다

 

스물네 시간을 꼭꼭 접어서 입속에 털어넣고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 도시의 숙소에 짐을 풀면

오래 세수를 해야지

 

이 도시의 고통이 가만히 앞질러 가면

나는 가만히 뒤처져 가고

 

네가 잠시 안 들여다보는

거울의 찬 뒷면에 등을 기대고

아무렇게나 흥얼거려야지

 

스물네 시간을 꼭꼭 접어서

따가운 혀로 밀어 뱉어낸 네가

돌아가 나를 들여다볼 때까지

 

5

 

  내 눈은 두 개의 몽당양초 뚜욱뚝 촛농을 흘리며 심지를 태우는데요 그게 뜨겁지도 아프지도 않은데요 파르스름한 불꽃심이 흔들리는 건 혼들이 오는 거라는데요 혼들이 내 눈에 앉아 흔들리는데요 흥얼거리는데요 멀리 너울거리는 겉불꽃은 더 멀어지려고 너울거리는데요 내일 당신은 가장 먼 도시로 가는데요 내가 여기서 타오르는데요 당신은 이제 허공의 무덤속에 손을 넣고 기다리는데요 기억이 뱀처럼 당신의 손가락을 무는데요 당신은 뜨겁지도 아프지도 않은데요 꼼짝하지 않는 당신의 얼굴은 불타지도 부서지지도 않는데요,

 

거울 저편의 겨울 7

- 오후의 미소

 

거울 뒤편의

백화점 푸드코트

 

초로의 지친 여자가

선명한 파랑색 블라우스를 입고

두 병째 맥주를 마시고 있다

 

스티로폼 접시에

감자튀김이 쌓여 있다

 

일회용 소스 봉지는 뜯겨 있다

 

너덜너덜 뜯긴 경계에

달고 끈끈한 소스가 묻어 있다

 

텅 빈 눈 한 쌍이 나를 응시한다

 

너를 공격할 생각은 없어

라는 암호가

끌어올린 입꼬리에 새겨진다

 

수십 개의 더러운 테이블들이

수십 명의 지친 쇼핑객들이

수백 조각의 뜨거운 감자튀김들이

 

나를 공격할 생각은 마

 

너덜너덜 뜯긴

식욕을 기다리며,

 

거울 저편의 겨울 8

 

흰 지팡이를 짚은 백발의 눈먼 남자 둘이서

앞뒤로 나란히

구두와 지팡이의 리듬을 맞춰 걷고 있었다

 

앞의 남자가

더듬더듬 상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뒤의 남자는 앞의 남자의 등을

보호하듯 팔로 감싸며 따라 들어갔다

 

미소 띤 얼굴로

유리문을 닫았다

 

거울 저편의 겨울 4

- 개기일식

 

생각하고 싶었다

(아직 피투성이로)

 

태양보다 400배 작은 달이

태양보다 400배 지구에 가깝기 때문에

달의 원이

태양의 원과 정확하게 겹쳐지는 기적에 대하여

 

검은 코트 소매에 떨어진 눈송이의 정육각형,

1초

또는 더 짧게

그 결정의 형상을 지켜보는 시간에 대하여

 

나의 도시가

거울 저편의 도시에 겹쳐지는 시간

타오르는

붉은 테두리만 남기는 시간

 

거울 저편의 도시가

잠시 나의 도시를 관통하는

(뜨거운) 그림자

 

마주 보는 두 개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서로를 가리는 순간

완전하게 응시를 지우는 순간

 

얼음의 고요한 모서리

 

(아직 피투성이로)

짧게 응시하는 겨울

의 겉불꽃

 

거울 저편의 겨울 9

- 탱고 극장의 플라멩코

 

정면을 보며 발을 구를 것

 

발목이 흔들리거나, 부러지거나

리듬이 흩어지거나, 부스러지거나

 

얼굴은 정면을 향할 것

두 눈은 이글거릴 것

 

마주 볼 수 없는 걸 똑바로 쏘아볼 것

그러니까 태양 또는 죽음,

공포 또는 슬픔

 

그것들을 이길 수만 있다면

심장에 바람을 넣고

미끄러질 것, 비스듬히

 

(흐느끼는 빵처럼

악기들이 부풀고)

그것들을 이길 수만 있다면

당신을 가질 수도,

죽일 수도 있다고

 

중력을 타고 비스듬히,

더 팽팽한 사선으로 미끄러질 것

 

피 흐르는 눈

 

나는 피 흐르는 눈을 가졌어.

 

그밖에 뭘 가져보았는지는

이제 잊었어.

 

달콤한 것은 없어.

씁쓸한 것도 없어.

부드러운 것,

맥박 치는 것,

가만히 심장을 문지르는 것

 

무심코 잊었어, 어쩌다

더 갈 길이 없어.

 

모든 것이 붉게 보이진 않아, 다만

모든 잠잠한 것을 믿지 않아, 신음은

생략하기로 해

난막(卵膜)처럼 얇은 눈꺼풀로

눈을 덮고 쉴 때

 

그때 내 뺨을 사랑하지 않아.

입술을, 얼룩진 인중을 사랑하지 않아.

 

나는 피 흐르는 눈을 가졌어.

 

마크 로스코와 나 2

 

한 사람의 영혼을 갈라서

안을 보여준다면 이런 것이겠지

그래서

피 냄새가 나는 것이다

붓 대신 스펀지로 발라

영원히 번져가는 물감 속에서

고요히 붉은

영혼의 피 냄새

 

이렇게 멎는다

기억이

예감이

나침반이

내가

나라는 것도

 

스며오는 것

번져오는 것

만져지는 물결처럼

내 실핏줄 속으로

당신의 피

 

어둠과 빛

사이

 

어떤 소리도

광선도 닿지 않는

심해의 밤

천년 전에 폭발한

성운 곁의

오랜 저녁

 

스며오르는 것

번져오르는 것

피투성이 밤을

머금고도 떠오르는 것

 

방금

벼락 치는 구름을

통과한 새처럼

 

내 실핏줄 속으로

당신 영혼의 피

 

마크 로스코와 나

- 2월의 죽음

 

미리 밝혀둘 것도 없이

마크 로스코와 나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는 1903년 9월 25일에 태어나

1970년 2월 25일에 죽었고

나는 1970년 11월 27일에 태어나

아직 살아 있다

그의 죽음과 내 출생 사이에 그어진

9개월여의 시간을

다만

가끔 생각한다

 

작업실에 딸린 부엌에서

그가 양쪽 손목을 칼로 긋던 새벽

며칠 안팎에

내 부모는 몸을 섞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점 생명이

따뜻한 자궁에 맺혔을 것이다

늦겨울 뉴욕의 묘지에서

그의 몸이 아직 썩지 않았을 때

 

신기한 일이 아니라

쓸쓸한 일

 

나는 아직 심장도 뛰지 않는

점 하나로

언어를 모르고

빛도 모르고

눈물도 모르며

연붉은 자궁 속에

맺혀 있었을 것이다

 

죽음과 생명 사이,

벌어진 틈 같은 2월이

버티고

버텨 마침내 아물어갈 무렵

 

반 녹아 더 차가운 흙 속

그의 손이 아직 썩지 않았을 때

 

심장이라는 사물

 

지워진 단어를 들여다본다

 

희미하게 남은 선의 일부

또는 ㄴ이 구부러진 데

지워지기 전에 이미

비어 있던 사이들

 

그런 곳에 나는 들어가고 싶어진다

어깨를 안으로 말고

허리를 접고

무릎을 구부리고 힘껏 발목을 오므려서

 

희미해지려는 마음은

그러나 무엇도 희미하게 만들지 않고

 

덜 지워진 칼은

길게 내 입술을 가르고

 

더 캄캄한 데를 찾아

동그랗게 뒷걸음질치는 나의 혀는

 

저녁의 소묘 5

 

죽은 나무라고 의심했던

검은 나무가 무성해지는 걸 지켜보았다

 

지켜보는 동안 저녁이 오고

 

연둣빛 눈들에서 피가 흐르고

어둠에 혀가 잠기고

 

지워지던 빛이

투명한 칼집들을 그었다

 

(살아 있으므로)

그 밑동에 손을 뻗었다

 

저녁 잎사귀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밤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찾아온 것은 아침이었다

 

한 백년쯤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내 몸이

커다란 항아리같이 깊어졌는데

 

혀와 입술을 기억해내고

나는 후회했다

 

알 것 같다

 

일어서면 다시 백년쯤

별 속을 걸어야 한다

거기 저녁 잎사귀

 

다른 빛으로 몸 뒤집는다 캄캄히

잠긴다

 

 

 

posted by 황영찬
2018. 10. 12. 08:50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52 유네스코 선정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1

 

 

 

이종호 글 · 사진

2015, 북 카라반

 

대야도서관

SB108008

 

911

이75ㅎ  1

 

불국사와 석굴암부터 백제역사유적지구까지

 

UNESCO World Heritage of KOREA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종묘, 남한산성, 백제역사유적지구, 하회마을과 양동마을,

해인사 장경판전, 수원 화성, 강화 · 고창 · 화순 고인돌 유적, 조선 왕릉,

불국사와 석굴암, 경주역사유적지구,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한국의 건축물을 대변하는 궁궐은 많지만, 창덕궁이 유일하게 세계문화유산에 지명되었을 정도로 남다른 특이성을 갖고 있다. 세계에서 단일 목조 건물로 가장 규모가 큰 종묘와 남한산성도 한국의 자랑스런 세계문화유산이다.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백제역사유적지구와 하회마을과 양동마을, 해인사 장경판전, 수원 화성도 세계문화유산에 속한다. 한국은 '고인돌의 나라'로 불러도 좋을 만큼 많은 고인돌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데, 특히 강화도와 전남 화순, 전북 고창 지역의 고인돌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조선시대의 왕릉은 거의 전부 한양을 중심으로 100리 안에 잇다. 경주 지역은 1995년 한국의 간판스타라 볼 수 있는 불국사와 석굴암이 최초로 지정되었고, 2000년 경주역사유적지구라는 명칭으로 경주시 전부를 포괄해 지정되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인 한라산천연보호구역, 성산일출봉, 거문오름 용암동굴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종호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페르피냥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문부성이 주최하는 우수 논문상을 수상했으며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연구했다. 과학기술처장관상, 태양에너지학회상,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으며, 기초 없이 빌딩을 50층 이상 올릴 수 있는 ‘역피라미드 공법’을 비롯해 특허 10여 개를 20여 개국에 출원하는 등 이론과 실제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그동안 『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전2권), 『과학문화유산답사기』(전3권), 『미스터리와 진실』(전3권), 『황금보검의 비밀』, 『과학 삼국유사』, 『과학 삼국사기』, 『고대 신전 오디세이』,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 『파라오의 저주』, 『천재를 이긴 천재들』(전2권), 『세계 불가사의 여행』,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노벨상이 만든 세상』,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한국의 유산 21가지』 등 100여 권을 집필했다.

 

차례

 

머리말

 

제1장 창덕궁

한국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궁궐

공간 구성과 배치
돈화문 | 금천교 | 진선문 | 인정문 | 인정전 | 상의원 | 내병조 | 선원전 | 선정전 | 희정당 | 대조전 | 경훈각 | 함원전 | 성정각 | 승화루 | 낙선재 | 궐내각사

한국 조원의 대명사, 후원
부용지 지역 | 연경당 지역 | 존덕정 일원 | 옥류천 일원

 

제2장 종묘

선왕에 대한 제사의 장소

종묘 제도

격식과 장엄함의 대명사, 종묘
신도와 어도 | 망묘루 | 향대청 | 공민왕 신당 | 재궁 | 정전 | 공신당과 칠사당 | 영녕전 | 악공청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

 

제3장 남한산성

역사의 현장, 남한산성

남한산성 돌아보기
남문 | 암문 | 수어장대 | 서문 | 군포와 매탄지 | 옹성과 치 | 북문 | 벌봉 | 여장과 포루 | 장경사 | 성벽 | 동문 | 동암문

남한산성 행궁

 

제4장 백제역사유적지구

공주

공주 공산성 | 공주 송산리 고분군 | 무령왕릉 | 무령왕릉의 출토 유물

부여

부여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 부여 능산리 고분군 | 부여 나성 | 부여 정림사지

익산

익산 왕궁리 유적 | 익산 미륵사지

 

제5장 하회마을과 양동마을

하회마을

한국의 4대 길지

3년을 적선하라

전통적인 유교마을

마을 전체가 역사 유물
양진당 | 충효당 | 화경당 | 염행당 | 주일재 | 하동고택 | 원지정사 | 작천고택 | 옥연정사 | 겸암정사 | 삼신당 | 병산서원 | 화천서당

양동마을

양동마을의 건축
관가정 | 무첨당 | 향단 | 서백당 | 상춘헌 | 근암고택 | 두곡고택 | 이향정 | 심수정 | 안락정과 강학당 | 동강서원 | 옥산서원 | 독락당

 

제6장 해인사 장경판전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

불력으로 외적을 격퇴하다

대장경을 만들다

고려 최대의 국책 프로젝트

장경판전

 

제7장 수원 화성

정조, 조선 제2의 도시를 짓다

신도시 건설이 최선이다

다목적 기능의 신도시

철저한 설계도면에 의한 다양한 건축

정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정약용의 설계안

첨단 과학 기자재를 사용하다

수원 화성 돌아보기
장안문 | 북서적대와 북동적대 | 서북공심돈 | 화서문 | 서장대와 노대 | 서암문 | 서포루 | 서남각루 | 팔달문 | 남수문 | 봉돈(봉화대) | 창룡문 | 동북공심돈 | 연무대 | 화홍문 | 방화수류정 | 창성사 진각국사대각원조탑비

 

참고자료

 

■ 창덕궁은 지형지세를 활용한 자유로운 공간 구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주변 경관과 조화를 중시해 한국적인 궁궐의 특색을 잘 보여준다.

■ 돈화문에서 돈화는 『중용』의 '대덕돈화大德敦化'에서 취한 것으로 '교화를 도탑게 한다'는 뜻이다.

■ 금천교 네 모서리에 있는 산예라는 상상의 동물은 그 표정은 무섭지 않고 오히려 귀엽고 친근감을 준다.

■ 인정전 좌우로 회랑이 감싸고 회랑 안에는 네모난 널찍한 마당이 있는데, 이 마당이 만조백관이라고 할 때의 '조朝', 백관들이 모여서 왕에게 조회를 하던 뜰 곧 조정이다.

■ 선정전은 '정치를 널리 펼친다'는 뜻을 갖고 있는 편전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다포집이다.

■ 선정전이 공식적인 업무 공간이라면 희정당은 다소 사적인 업무 공간이다. 다시 말해 '여러 신하들을 한가로이 접견하는 곳'이다.

■ 대조전은 왕과 왕비의 침실이자 왕자와 공주의 탄생지였고, 어린 왕자와 공주를 교육하던 곳이었다.

■ 경훈각은 대조전 서북쪽에 있는 단층 건물로 초익공계의 무익공 양식으로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 성정각의 정문으로 들어서면 건물의 오른쪽에 정면 6칸 측면 2칸의 누마루가 있는데 남쪽에는 보춘정, 동쪽으로는 희우루가 있다.

■ 낙선재는 헌종이 후궁을 위해 마련한 사적인 공간이다. 낙선재에는 헌종의 후궁인 경빈 김씨의 처소인 석복헌과 대왕대비인 순원왕후의 처소인 수강재가 있다.

■ 정조는 즉위하자 역대 왕과 자신의 시문과 글씨 등 왕과 직접 관련되는 자료들을 보관할 집을 후원에 짓게 하니 이것이 규장각과 주합루다.

■ 옥당은 '옥같이 귀한 집'이란 의미로 국가의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는 곳 혹은 출세가 보장되는 인재들이 모인 곳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 부용정은 후원의 꽃이라고도 불리는데 연꽃 모양을 형상화했다. 부용정 내부에 설치한 창은 팔각형으로, 인간을 의미한다.

■ 영화당에서 나와 왼편 담장으로 두 개의 문이 보이는데, 금마문과 불로문이다. 불로문(아래)은 창덕궁 안에서 돌로 된 유일한 문으로 늙지 않는 문이라는 뜻이다.

■ 궁궐 안의 다른 건물들이 단청과 장식을 화려하게 한 것에 비해 연경당은 단청을 하지 않았다.

■ 취규정(위)의 취규는 "별들이 문장을 주관하는 별자리로 모여든다"라는 뜻이며, 취한정의 '취한'은 "푸른 소나무들이 추위를 업신여긴다"라는 뜻이다.

■ 역대 왕들을 모신 종묘는 최고의 사당 건축이자 가장 숭고한 신전이다.

■ 조선의 종묘는 정면이 매우 길고 수평성이 강조된 독특한 형식의 건물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건축 유형이다. 종묘의 신위 배치도.

■ 신도는 혼령만이 드나드는 길이고 어도는 제사 담당자인 왕과 세자가 이동하는 의례의 길이다.

■ 망묘루는 "사당을 바라보며 선왕과 종묘 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 공민왕의 초상을 모신 사당에는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가 한자리에 있는 영정과 공민왕이 직접 그렸다고 전해지는 <준마도>가 봉안되어 있다.

■ 정전은 신위를 모신 신실인 감실 19칸, 그 좌우의 협실 2칸의 박공지붕 건물로 왕의 신위가 늘어나면서 계속 증축되었다.

■ 칠사당은 왕실 제례 과정에 관여하는 7명의 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 영녕전은 제2대 정종이 사망하자 그의 신위를 봉안하기 위해 정전의 서쪽에 세운 별묘다.

■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조선시대의 모든 제례 중에서도 가장 격식이 높은 왕실 의례다.

■ 종묘대제는 2012년부터는 1년에 2차례씩 열리는데 '어가 행렬', '영녕전 제향', '정전 제향'으로 나뉘어져 더 품격을 높였다.

■ 남한산성의 남문은 성곽의 서남쪽에 있는 4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한 중심문으로 유일하게 문루에 현판이 걸려 있다.

■ 남한산성에 현재 남아 있는 암문은 모두 16개인데, 제6암문은 1637년 한밤중에 습격해온 청군을 크게 물리친 곳이라 하여, 이 부근을 '서암문 파적지'라고 부른다.

■ 장대는 전쟁 때나 군사훈련을 위해 마련한 장수의 지휘소여서 성내의 지형 중 높은 곳, 즉 지휘나 관측이 용이한 곳에 설치한다.

■ 장경사는 1894년 갑오경장으로 승군제도가 없어질 때까지 전국에서 뽑힌 270여 명의 승려가 교대로 산성을 보수하거나 경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 성벽을 보면 남한산성이 천혜의 요새라는 사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오죽 했으면 '천작지성'이라고 했을까?

■ 동문은 일반적인 성문 구조로 되어 있으며, 거칠게 다듬어진 자연석을 막돌쌓기로 하고 면만 바르게 쌓았다.

■ 현절사는 병자호란 때 적에게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했던 홍익한, 윤집, 오달제의 우국충절을 기리는 사당이다.

■ 행궁은 정궁에 대비되는 용어로 왕이 궁궐을 벗어나 거둥할 때 머무는 별궁 또는 이궁, 임시궁궐을 말한다. 남한산성 행궁 배치도.

■ 좌승은 '앉아서 이긴다'라는 뜻으로 반드시 이길 만한 계책을 써서 적을 물리친다는 의미다. 남한산성 행궁 내의 좌승당.

■ 금서루는 공산성 답사의 시작이다. 원래 그 터만 남아 있었는데 성내로 진입하는 차도로 이용되다가 1993년에 복원되었다.

■ 공북루는 공산성의 북문이다. 옛 망북루의 터에 신축한 것으로 강 사이를 왕래하는 남북 통로의 관문이다.

■ 송산리 고분군은 나지막한 구릉에 있는데, 이곳은 예부터 '송산소'라고 불리던 곳이다.

■ 무령왕릉의 구조는 단순한데, 자연 암반을 파내어 공간을 만든 뒤에 벽돌을 쌓은 것이다. 무령왕릉 내부 모습.

■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은 모두 108종 2,906점에 이르고 있으며 국보로 지정된 유물만도 12점에 달한다. 위에서부터 관모, 금제 뒤꽂이, 왕비 귀걸이, 왕비 금동 신발.

■ 부소산은 해발 100미터 정도의 나지막한 구릉으로 이곳에 고구려 군사를 방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왕궁과 시가를 방비하는 최후의 보루였던 부소산성을 건설했다. 부소산성 입구.

■ 능산리 고분군은 그 많은 고분 가운데 부여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봉분이 비교적 잘 남아 있고, 규모면에서도 큰 축에 드는 무덤들이 모여 있다.

■ 정림사지에서는 여러 시대에 걸친 유물이 출토되었지만, 그중에서 정림사지 탑은 백제 시대의 부여를 대표한다.

■ 왕궁리 오층석탑은 익산의 미륵사탑을 본떠서 만든 백제계 석탑으로 높이 9미터, 기단 면석에 두 탱주를 갖추었다.

■ 동서로 172미터, 남북으로 148미터에 이르는 미륵사터에는 서석탑(위), 1993년에 복원된 동석탑, 당간지주 2기 등이 남아 있다.

■ 서석탑 해체 과정에서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유물들이 발견되어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해체 보수 중인 서석탑.

■ 하회마을의 물길이 S자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학자들은 S자보다는 태극 모양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회마을 전경.

■ 양진당은 풍산 류씨의 대종가로 문중의 대소사가 이곳에서 논의되었다. '입암고택' 현판은 입암 류중영을 지칭한다.

■ 충효당은 서애 류성룡의 종택으로 하회마을을 대표하는 가옥이다. '서애종택'이라고 부르지만, 현재의 충효당은 엄밀한 의미에서 서애 사후에 지은 집이다.

■ 화경당은 원래 만수당으로 불렸는데, 영남의 전형적인 사대부 집의 면모를 보여준다.

■ 염행당은 양진당, 충효당, 화경당과 더불어 하회마을을 대표하는 4대 건축물이다.

■ 작천고택은 양진당, 충효당 사이의 길을 따라 서쪽으로 낙동강을 향한 우측에 있다. 1934년 대홍수로 유실되어 현재는 안채만 남았다.

■ 병산서원은 한국 최고의 서원 건축으로 꼽힌다. 경내에는 복례문, 만대루, 입교당, 동재, 서재, 고직사, 장판각, 내삼문, 존덕사, 전사청 등이 있다.

■ 관가정은 풍수적으로 지맥이 흘러드는 위치에 있는데, 관가정이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 자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 향단은 검박함과는 거리가 멀다.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과시적 입지, 정면에서 보나 측면에서 보나 3개의 박공면이 강하게 드러나는 등 특이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 서백당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 전통 건축의 대표라 할 수 있으며 양동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다.

■ 심수정은 형을 위해 벼슬을 마다하고 노모 봉양에 정성을 다한 이언적의 동생 이언괄을 추모해 지어진 정자다.

■ 안락정은 양동마을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앞쪽에 툇마루를 둔 '일一' 자형의 평면집이다.

■ 옥산서원은 '동방오현'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이언적을 배향한 서원이고, 무변루는 끝이 없는 누각이라는 의미로 원래는 납청루였다.

■ 독락당은 정면 칸살이 4칸으로 일반적인 양식을 벗어나 있다. 이언적이 낙향한 이듬해 지어진 건물로 말년을 보냈는데, 옥산정사라고도 불린다.

■ 계정은 정자로 사용되었으며, 계곡의 반석 위에 가느다란 기둥을 세워 쪽마루를 덧댄 특이한 구조다. 편액은 한석봉의 글씨다.

■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은 불교 경전 일체를 한자로 새긴 현존 세계 유일이자 가장 완벽한 불교 문헌 목판 인쇄물이다. 가야산 해인사 입구와 팔만대장경 입구.

■ 목판의 양쪽에 새겨졌던 불전들은 원래 강화도의 선원사에 보관되었으나 1398년에 한양의 지천사를 거쳐 현재의 해인사로 이관되었다. 강화도 선원사터.

■ 일본은 1502년 오키나와 슈리성 밖의 원감지라는 연못에 건물을 짓고 고려대장경을 보관하기도 했다.

■ 유능한 각자공 1명이 경판 2장을 만들기도 어려웠을 텐데, 팔만대장경을 만들기 위해 동원된 연인원은 무려 100만 명이 넘는다.

■ 「팔만대장경」은 몽골군의 공포에서 고려인이 살아남아 싸워야 한다는 신념을 심어주었다. 해인총림海印叢林 입구.

■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들은 그 이름과는 달리 무슨 창고나 헛간처럼 생겼기 때문에 그 외관을 보고 실망하기도 한다.

■ 법보전은 앞의 건물과 같은 규격으로 나란히 놓여 있는데, 중앙 칸은 안쪽 높은 기둥열이 있는 곳까지 벽으로 되어 비로자나불상과 양측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봉안했다.

■ 「팔만대장경」은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목각판에 옻칠을 했다. 따라서 내구성이 강해 75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부패하거나 쥐와 좀벌레가 갉아먹는 일이 거의 없다.

■ 정조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 공간을 만들기로 했는데, 수원은 한양과 남쪽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자 상업활동을 위한 도시였다.

■ 정조는 사도세자의 시호를 장헌으로 고치고 어머니의 존호를 혜빈에서 혜경궁으로 높였다. 수원 <화성능행도> 일부.

■ 수원 화성이 다른 성곽과 차별되는 것은 상업적 기능과 군사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평산성 형태로 설계되었다.

■ 정조는 젊은 실학자 정약용에게 '삼남의 요충이요, 한양의 보장지지로 만세에 길이 의지할 만한 터'인 수원 화성을 건설토록 했다. 한강의 배다리 재현 모습.

■ 거중기는 적은 힘으로 큰 물건을 들어올림으로써 인력을 절약할 수 있고 무거운 물건이 떨어지는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 수원 화성에는 4개의 성문이 있는데 북문인 장안문과 남문인 팔달문이 가장 크다. 장안문은 건물 높이만 해도 32척9치로 반원형의 둥근 벽체로 벽돌로 축조되었다.

■ 수원 화성에는 적의 집중적인 공격이 예상되는 화서문과 팔달문 근처에 서북공심돈과 남공심돈을 두었고, 동북공심돈은 구릉지에 있기 때문에 치성 위에 구축할 필요가 없어 성벽 안쪽에 독립적으로 원형으로 축조했다. 동북공심돈(위)과 서북공심돈과 화서문.

■ 서장대는 수원 화성에서 가장 높은 팔달산 정상에 있는데, 돌로 쌓은 대 위에 있는 2층 누각이다. 서장대(위)와 서노대.

■ 서포루는 수원 화성 서장대 북쪽으로 약 200미터 거리에 잇는 성곽 시설물이다. 성 몸에 '철(凸)' 모양을 붙여 치성을 만들고 그 위에 집을 지었다.

■ 팔달문은 한양의 남대문이나 동대문과 같은데 문루의 네 귀에 높은 기둥이 없는 것이 다르다.

■ 봉화대는 변방에서 발생하는 군사적인 긴급 사태를 중앙에 급히 알리기 위해 설치된 것이다.

■ 연무대는 전쟁 지휘소로 장수가 장병들을 모아 놓고 훈련을 하거나 지휘하는 곳이다. 그 주변에는 탁 트인 넓은 공터인 활터가 있다.

■ 방화수류정은 전시에 적군 감시와 지휘소 기능을 하면서도 평시에 휴식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posted by 황영찬
2018. 9. 14. 13:58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50 임금의 도시

 

 

 

이기봉 지음

2017, 사회평론

 

대야도서관

SB128708

 

911.0028

이18ㅇ

 

서울의 풍경과 권위의 연출

 

너무나 익숙해서 보이지 않았던

우리 풍경의 재발견!

 

문명은 어떻게 권위를 시각화했는가?

서울의 3단계 풍경은 어떻게 권위를 연출해내는가?

풍경의 아름다움 너머 우리 풍경의 원리를 밝힌다!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우리 풍경을 보고도 그 보편성과 특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아름답다고만 했지 그 아름다움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인식되는지에 대해서는 간과했다."

 

이기봉

 

1967년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에서 태어나 수원 수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 ·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 2월부터 2009년 3월까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책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그 후 현재까지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고대도시 경주의 탄생』, 『지리학교실』, 『조선의 도시, 권위와 상징의 공간』, 『평민 김정호의 꿈』, 『조선의 지도 천재들』, 『근대를 들어올린 거인 김정호』, 『땅과 사람을 담은 우리 옛 지도』, 『슬픈 우리 땅이름』, 『천년의 길』 등이 있다.

 

차례

 

프롤로그 - 우리 풍경의 뿌리를 찾아서

 

1 임금의 도시, 서울의 탄생

    성씨가 다른 새로운 왕이 즉위하다 / 고려의 흔적을 지워라
    최후의 수단, 천도 / 천도를 둘러싼 임금과 신하의 줄다리기
    사는 곳이 곧 권력이다 / 명분을 가진 자가 모든 걸 가진다
    태조의 승리 / 마침내 태어난  '임금의 도시'

 

2 보이지 않는 서울의 풍경

    신도시 한양의 청사진 / 궁궐 앞에 주작대로 대신 시장이 있다?
    계승과 단절, 두 마리 토끼를 잡다 / 조선시대에 태평로는 왜 없었을까?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경복궁 / 과거 보러 가는 선비의 한양 구경
    시야를 통제하며 3단계 풍경을 만들다 / 나라의 근본, 종묘와 사직
    골육상쟁의 기억을 품은 창덕궁 / 세종의 효심, 창경궁
    왕기가 서린 경희궁 / 임금의 풍경을 연출하라

 

3 우리 전통건축물은 왜 작을까?

    위치가 바뀌면 풍경이 바뀐다 / 외국의 건축물은 왜 이리 거대한 걸까?
    하늘을 찌를 듯한 삼국시대의 탑들 / 권위를 시각화하는 또 다른 방법

 

4 한국 풍경의 기원을 찾아서

    서울 풍경은 유교 때문에 생긴 것일까? / 법흥왕, 죽음까지 혁신하다
    가장 오래된 3단계 풍경 / 풍수는 지배자를 위한 사상이었다
    명당은 살기 좋은 땅일까? / 지배와 피지배의 살풍경이 남아 있는 풍수
    땅의 논리인가, 하늘의 논리인가? / 하늘, 배경으로 밀려나다
    이데올로기의 풍경

 

5 장소가 만든 역사의 풍경

    거대도시 경주의 풍경 / 그 많던 높은 목탑들은 어디로 갔을까?
    낮은 석탑이 만든 감은사의 3단계 풍경 / 목탑에서 석탑으로
    궁예, 견훤, 왕건, 그리고 도시 삼국지 / 개성은 최초의 풍수 도시였다

 

6 임금과 공간의 정치학

    고려는 풍수 때문에 망한 걸까? / 위태로운 왕권과 훈요십조
    천도가 아니면 새 나라를?묘청의 서경천도운동 / 고려 최후의 시도
    풍수는 어떻게 한반도의 문화유전자가 되었나

 

7 방어력 없는 성곽의 비밀

    선조, 도성을 버리고 피난 가다 / 한양은 왜 무방비로 함락되었을까?
    명당은 방어에 유리할까? / 서울 성벽은 왜 해자가 없고, 낮을까?
    왜 높은 성벽을 만들지 않았을까?
    산이 드문 곳에는 높은 건물을 짓고, 산이 많은 곳에는 낮은 것을 만든다
    소 잃고 산성 고치기 / 산성의 나라가 된 조선

 

8 감시와 통제의 밤 풍경

    보신각의 종소리는 아름다웠을까? / 음모의 밤 / 야경꾼과 딱다기
    물시계는 누구를 위해 흘렀을까?

 

9 사라진 정원의 풍경

    우리나라에는 왜 정원이 별로 없을까? / 임금의 정원
    높고 웅장하게 솟은 경회루 / 조선의 미니멀리즘, 향원정
    골짜기에 숨겨진 절경, 창덕궁 후원 / 손가락이 아닌 달을 봐야 정원이 보인다
    외부로 펼쳐진 정원 / 가공하지 않은 자연 속 정원

 

에필로그 - 보이지 않는 우리 풍경을 어떻게 볼 것인가

 

 

태조 이성계의 어진

고려시대 홍건적과 왜적을 물리치며 불패의 무장으로서 명성을 쌓아가던 이성계는 자신을 따르는 강력한 사병세력을 기반으로 신진사대부의 지원을 받아 마침내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왕위에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왕조를 지키는 것이다. 새로 왕위에 오른 이성계에게는 새로운 왕조의 정통성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었다.

태조 왕건상

개성 현릉(왕건릉)에서 발견된 태조 왕건상. 머리에는 황제가 쓰는 통천관을 쓰고 있다. 불상 형식으로 제작된 왕건상은 불교의 나라였던 고려의 운명과 궤를 같이 했다. 원래 이 상은 개성 종묘에 봉안되어 제례에 쓰였는데, 이성계의 명에 의해 종묘와 함께 마전군으로 옮겨졌다가 유교예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왕건릉에 매장되었다. 1992년 능 공사 중에 발견되어 북한의 국보로 지정되었다.

고려의 중심 개성

① 1720년쯤의 개성 모습(「광여도」). ② 공민왕릉. ③ 선죽교. 송악산을 등지고 세워진 개성은 제1의 명당이라고 불렸으며, 몽고의 침입 때문에 강화도로 옮긴 기간을 제외하고 왕건이 도읍한 이래 400여 년간 고려의 수도였다. 이성계가 모셨던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묘 등 도시 곳곳이 왕씨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또 이성계의 즉위를 반대하다 선죽교에서 죽임을 당한 정몽주처럼 왕위를 찬탈한 이성계에 대한 반감이 상당했다. 이와 같이 개성은 여전히 고려의 도시여서 이성계에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성계는 이를 극복하고 성공적인 왕조를 열기 위해 천도를 추진했다.

개성 첨성대와 서운관

고려시대 하늘을 관측했던 첨성대는 서운관에서 관리했다. 서운관은 하늘을 관측하고 절기를 측정하는 업무를 봤다. 서운관은 천문과 지리 현상을 모두 관장하고 그에 따른 길흉까지 점치는 기관이었다.고려가 쇠약해지면서 천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때 큰 역할을 하였다. 조선 건국 후에도 존속하다가 세종 때에 관상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 1392

○ 1392.7.17 이성계 왕위 등극

 

    태조 : 왕조의 정당성과 왕권 강화를 위해서 천도가 필요하다. 한양으로 천도 시도.

    배극렴 · 조준 : 반대. 궁궐과 성곽을 짓지 않고 수도부터 옮기면 백성들이 곤란해질 것입니다.

 

● 1393

○ 1393.1.2

    태실중고사 권중화

    계룡산으로 천도 건의

 

    정요 : 왕비가 편치 못하고, 초적이 나타났으니

              (계룡산 행차를 중단해야 합니다).

    태조 : 내가 하지 못하면 후손들은 더욱 할 수 없을 것이다.

○ 1393.2.10

    계룡산 수도 건설 공사 시작

○ 1393.12.11

    하륜의 반대 상소로 계룡산 수도 이전 백지화

 

    하륜 : 계룡산은 국토에서 남쪽에 치우쳐 있고, 풍수상 '반드시 망할 땅'입니다.

              대신 무악을 천거합니다.

 

● 1394

○ 1394.8.11

    태조 무악 시찰. 서운관 관원과의 논쟁

 

    서운광 관원 : 무악은 좋지 못합니다. 개성에서 궁궐을 다시 짓는 게 좋습니다.

    태조 : 개성이 지기가 쇠했다고 상소를 올린 곳이 서운관이다. 다른 곳은 어디가 좋은가?

    서운관 관원 : 가장 좋은 명당은 개성이고, 그다음이 한양입니다.

○ 1394.8.12

    태조, 한양으로 행차

 

    태조 : 형세를 보니 도읍으로 삼을 만하다. 조운이 잘 통하고, 사방으로 거리가 균등해 나라 ㅇㄴ영에 편리할 것이다.

    무학대사 : 사면이 높고 수려하며 중앙이 평평하니, 도읍이 될 만합니다.

    신하들 : 반드시 도읍을 옮겨야 한다면 한양이 좋습니다.

 

    정도전 : 국가의 흥망은 인간 세계에 있는 것이지 지기의 성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석린 : 무악은 수도로 삼기에 너무 좁습니다.

    이직 : 수도 이전은 하늘과 백성들을 설득시킨 후에 가능합니다.

○ 1394.8.24

    한양으로 천도 확정

○ 1394.10.25

    태조 한양으로 천도 선언

○ 1394.10.28

    한양에 도착하여 집무 시작

개성 성균관

공민왕 때 유학을 전담하게 된 성균관은 조선 건국의 핵심세력인 신진사대부들을 대거 양성한다. 나라의 흥망이 풍수에 있지 않다고 말하는 정도전은 강경한 유학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정도전을 제외한 다른 개국공신들은 오랫동안 이어온 풍수를 판단 근거로 인정함으로써 신진사대부 역시 풍수의 영향력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한양도성도」

18세기 후반 편찬된 『여지도』에 수록된 지도로 시각적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궁궐과 종묘사직, 산세, 간선도로 등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지도를 보면 한양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를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복궁

종묘

사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남대문(숭례문)

동대문(흥인지문)

북대문(숙정문)

수선전도로 본 한양의 도시 설계

한양은 북쪽으로는 북악산, 남쪽으로는 남산, 서쪽으로는 인왕산, 동쪽으로는 낙산에 둘러싸여 있고, 청계천이 한가운데로 지나가는 지형이다. 조선 건국 때 정궁으로 지어진 경복궁이 왼쪽에 자리잡고 있고, 종묘는 궁궐 왼쪽에 사직은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동대문과 서대문을 잇는 동서대로는 직선으로 곧게 나 있는 반면, 남대문에서 시전으로 이어지는 남대문로는 활처럼 휘어져 있다. 서대문은 일제에 의해 철거되어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육조거리 : 정무를 담당한 여섯 부서,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와 한성부 관청이 있었다.

 

운종가 :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이는 거리라는 의미로 국가에 물자를 보급하는 시전이 설치되어 중심 상업 지역 기능을 했다.

한양과 북경의 도시 구조 비교

두 도시 모두 『주례』「고공기」를 바탕으로 건설되었지만, 구조에서 확연한 차이를 볼 수 있다. 북경의 경우, 한눈에 보기에도 직사각형과 좌우대칭의 형태로 엄격하게 '좌묘우사', '전조후시'의 원리가 적용되어 있다. 자금성에서 천안문을 거쳐 외성 정문인 영정문까지 마차 아홉대가 나란히 지날 수 있는 대로가 직선으로 놓여 있다. 반면 한양의 경우 경복궁이 중앙에 위치해 있지 않고, 시장이 경복궁 앞에 위치해 '전조후시'의 원리가 지켜지지 않았다. 또한 경복궁과 남대문까지 직선대로를 만들지도 않았다.

숭례문(남대문)에서 광화문 가는 길

숭례문에서 경복궁으로 가기 위해서는 직선도로 대신 두 번에 걸쳐 꺾어지는 복잡한 길로 돌아가야 했다. 숭례문에서 출발해서 지금의 종로인 운종가에서 한번 꺽고, 육조거리 앞에서 다시 한 번 꺽어야 경복궁에 도착할 수 있었다.

1900년대 남대문로

1900년대 구한말 당시 남대문로의 모습. 임금이 사는 궁과 정문인 남대문까지의 길이 휘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건물들 너머로 북악산이 보인다. 낮은 초가집과 기와집으로 이뤄진 풍경에서 북악산은 지금보다 훨씬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광화문광장(육조거리)에서 본 경복궁

어느 대문에서 어느 길로 와도 보이지 않던 경복궁이 육조거리로 들어서는 순간 북악산과 함께 시야에 펼쳐진다.

육조 거리에서 바라본 광화문 옛 풍경

고층건물이 즐비한 오늘날 과거의 광화문 풍경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현대의 흔적을 지우고 조상들이 보았을 권위의 풍경을 그려보아야만 우리 풍경을 이해할 수 있다.

종묘의 3단계 풍경

하늘에서 종묘를 내려보면 종묘의 정문인 외대문과 정전의 방향이 일치하지 않고 틀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진입로에서부터 외대문과 보현봉을 일치시키기 위해 진입로가 정북이 아니라 서북북 방향을 향해 있다.

「동궐도」로 본 창덕궁 구조

정문과 정전이 일직선상에 위치한 일반적인 궁궐들과 달리 창덕궁은 특이하게 돈화문에서 인정전까지 진입로가 어긋나 있다. 돈화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고, 금천교를 건너 왼쪽으로 꺽어야만 정전인 인정전이 나온다. 이렇게 조성한 이유는 창덕궁 앞에 종묘가 있어서 3단계 풍경을 위한 진입로 조성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창덕궁의 독특한 궂는 3단계 풍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다.

 

돈화문 안의 보현봉

돈화문 앞에서 바라보면 문 틀 안에 보현봉이 한 폭의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다. 서울이 산에 둘러싸인 지형이라 해도 이런 멋진 광경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돈화문을 보현봉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세웠으며 이 문이 엄밀한 구도 하에 건축되었음을 보여준다.

함춘원 방향에서 본 창경궁의 3단계 풍경

창경궁은 이미 지어진 종묘와 창덕궁 때문에 3단계 풍경을 연출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종묘와 창덕궁처럼 하늘산을 보현봉이 아닌 인왕산 왼편의 안산으로 잡아 창덕궁과 전혀 다른 새로운 풍경을 구현했다.

「동궐도」속 창덕궁과 전경

창덕궁과 창경궁은 쌍둥이처럼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창덕궁은 정전, 정문, 진입로가 남향이지만 창경궁은 동향이다. 홍화문 앞부터 함춘원의 언덕이 시작되기 때문에 나중에 지어진 창경궁은 지형의 제약을 받았고, 그 결과 3단계 풍경의 하늘산도 바뀌었다.

경희궁의 3단계 풍경

경희궁 역시 창덕궁과 마찬가지로 숭정문 방향과 진입로를 조정해서 인왕산을 배경으로 하는 3단계 풍경을 구현하고 있다.

거리에 따른 북악산과 광화문 비율 변화

조선시대에 없었던 태평로에서 광화문을 바라보면 북악산에 비해 경복궁은 매우 작게 보인다. 궁궐이 초라하게 보인다는 것은 임금의 권위가 약화되는 일이다. 이 때문에 한양의 도시계획자들은 하늘 - 산 - 궁이라는 세 가지 요소의 적절한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숭례문에서 경복궁까지 직선도로를 만들지 않았다.

근정전의 앞뜰

근정전의 아름다운 자태도 유심히 살펴봐야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앞뜰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앞뜰의 규모에 따라 근정전의 크기와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에 너무 넓어서도 좁아서도 안 된다. 근정전의 크기에 비례해서 앞뜰도 조성되었다. 거대한 북악산이 근정전과 일치되어 근정전 뒤로 숨어들어 간 것처럼 보이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

5층 목조건물인 법주사의 팔상전은 상륜부의 높이까지 22.7m로 조선시대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① 자금성 태화전과 ② 오사카성 천수각

자금성의 정전인 태화전은 3단 월대 때문에 시각적으로 경복궁 근정전보다 훨씬 거대하게 다가온다. 오사카성의 천수각 역시 높은 축대 위에 지어져 우뚝 솟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축대나 언덕 위를 이용해 건축물을 더욱 높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세계의 거대건축물

① 태국의 왓아룬 사원. ② 티베트의 포탈라궁. ③ 이탈리아의 밀라노 대성당. ④ 인도의 타지마할. ⑤ 이집트의 피라미드. 아름다운 세계의 거대건축물의 감상은 잠시 뒤로 하고 그 너머를 살펴보자. 공통적으로 주변에 다른 높은 자연물 혹은 인공물이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건물 너머 우뚝 솟은 산이 있는 풍경은 세계적으로 보면 결코 보편적인 풍경이 아니다.

황룡사 복원도

황룡사 9층 목탑은 낮게 잡은 추정치조차 80m에 가까워서 23m를 넘지 못했던 조선시대 어떤 건축물과 비교해도 압도적인 높이를 자랑한다. 하지만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어서 실제 모습이 어땠는지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남아 있지 않지만 삼국시대에는 높은 목탑들이 많이 건축되었다.

복원된 미륵사지 석탑

미륵사지는 목탑을 중앙에 두고 두 개의 석탑이 양옆에 세워졌다. 복원된 석탑의 높이는 27.7m이다. 중앙에 있었던 목탑은 50m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는 황룡사와 같은 시기 세워졌는데 미륵사 목탑을 세웠던 백제의 기술자가 황룡사9층목탑에도 참여하였을 것이다.

인왕산에서 본 경복궁

인왕산 기슭에 위치한 배화여자대학교에서 내려다본 서울 시내 전경이다. 지금은 고층건물에 가려져 잇어 상단부만 보이지만 과거에는 경복궁 전체와 내부까지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경복궁처럼 다른 곳에서 궁궐 안을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은 보편적인 모습이 아니다. 임금의 권위를 손상시킬 뿐 아니라 경비 등 안전상 문제까지 있다. 이처럼 궁궐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가 궁궐 가까이에 존재한다는 것은 여러 모로 일반적인 경우라고 할 수 없다.

종묘 정전

종묘는 유교사회였던 조선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유교에서 조상에 대한 제사만큼 중요한 의식은 없었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가장 먼저한 일 역시 종묘를 짓는 일이었다. 그래서 역대 왕과 왕비들의 신주를 모신 종묘는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로 여겨졌다. 신주가 늘어남에 따라 계속 증축하였고, 그 결과 지금처럼 옆으로 길다란 모습이 되었다.

경주 대릉원의 황남대총

고대로 갈수록 고분의 크기는 곧 지배자의 권력과 비례했다. 대릉원에는 왕과 왕비, 귀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대형고분이 총 23기가 모여 있다. 이 고분들은 신라가 지방 지배를 강화하여 고대국가체제로 넘어가면서 지배층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알려준다. 이 중 황남대총은 대릉원의 고분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누구의 무덤인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두 개의 무덤으로 이루어져 잇으며 남분은 남자, 북분은 여자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네페리티티 흉상

아크나톤이 주도한 개혁의 영향을 받은 아마르나 예술의 대표작이다. 측면얼굴을 보여주는 기존 이집트 예술의 정통을 깨고 사실주의 묘사가 두드러진다. 아크나톤의 개혁이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 · 문화 · 사회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준다. 관습법에서 율령의 통치체제로 발돋움하는 법흥왕 시기에도 사회 전 분야에서 변혁의 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감은사지 전경

감은사는 문무왕 수중릉으로 알려진 대왕바위 근처에 있다. 과거 감은사지의 진입로는 현재 논밭과 도로로 변해서 정면 방향을 제대로 감상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진입로를 지나쳐서 감은사지 오른쪽에 만들어진 주차장을 통해 절터로 올라가 탑을 감상하고 돌아간다. 감은사지뿐만 아니라 많은 유적지가 이렇게 주차장에서부터 관람을 시작하게끔 동선이 짜여 있다. 문화유산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문화재 자체도 중요하지만 문화재가 만들어내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의 건축자가 의도했던 대로 원해 정문 진입로에서부터 문화재를 감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탑평리 7층 석탑(위)과 신세동 7층 전탑(아래)

탑평리 7층 석탑은 남아 있는 신라 석탑 중 가장 높은 탑으로 높이가 14.5m이다. 신세동 7층탑은 벽돌로 쌓아올린 높이 17m의 전탑으로 현존하는  신라 탑 중 가장 높다. 거대목탑들이 많았던 삼국시대와 달리 통일신라 이후에는 10m 안팎의 3층 석탑이 주류가 되었다.

감은사지 3층 석탑

신라 최초의 3층 석탑인 감은사지 3층 석탑은 당시 경주시내에 세워졌던 높은 탑들에 비해 작은 규모이다. 경주를 벗어나 산이 배경에 놓이면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석가탑

감은사지 3층 석탑과 석가탑은 같은 3층 석탑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초기 3층 석탑인 감은사지 3층 석탑은 화강암을 사용한 목탑 양식으로 육중함과 웅장함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8세기 중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불국사의 석가탑은 아름다운 비례와 날렵함을 구현했다.

① 철원 도성 복원도

궁예는 중국 도성을 본따 평야지대인 철원에 도성을 세움으로써 자신의 웅대한 이상을 담아냈다. 사각형의 도성과 직선으로 뻗은 도로망에서 알 수 있듯이 한양보다 중국의 도성과 훨씬 닮아 있다.

② 후백제의 견훤이 수도로 삼았던 동고산성

견훤의 궁궐이 있었던 동고산성은 평야지대인 철원과 달리 낮은 산정상에 자리를 잡고 있다. 삼국시대와 후삼국시대의 많은 도시들이 동고산성처럼 방어에 유리한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③ 위에서 내려다 본 경주 시가지 원경

천년고도 경주는 풍수적으로 명당과 거리가 멀다. 경주는 산과 멀리 떨어져서 하천을 낀 평야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평야지대에 입지한 도시가 세계적으로 꽤 있는 편이지만 방어에 좋은 구릉에 만들어진 도시가 더 많았다.

송악산을 등지고 있는 만월대터

왕건이 도읍한 개성은 여러모로 한양과 많이 닮아있다. 고려 제일의 명당으로 꼽힌 개성은 사실 궁궐이 들어서기에 지형이 고르지 못했는 데 높은 축대를 사용해 이를 해결하였다. 만월대 너머로 송악산이 보이면서 서울에서 볼 수 있는 3단계 풍경과 같은 구도임을 알 수 있다.

개성의 외성과 황성, 궁성의 구조

개성은 지형에 맞게 동서대로와 남북대로를 만들었다. 외성의 남대문인 희빈문에서 출발해서 남북대로를 따라 황성의 동문인 광화문을 서쪽으로 들어가 북쪽으로 꺾기까지 만월대의 정궁을 볼 수 없다. 지형부터 성과 도로망까지 한양과 유사한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일월오봉도

용상 뒤에 놓는 병풍으로 해와 달은 왕과 왕비를 상징한다. 임금이 용상에 앉았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그림이다. 다양한 자연물을 이용해 임금의 권위를 표현했으며, 권위를 시각화하려는 싣의 일환이다.

도선국사

신라 말에 할동했던 도선은 풍수지리의 대가였다. 훈요십조에서 볼 수 잇듯이 왕건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고려시대 활발했던 임금풍수에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다.

 

● 왕건(942년)

서경에서 3년마다 백일 이상 머무를 것(훈요십조)

호족 사이의 위태로운 왕권

 

● 숙종(1099년)

김위제의 주장에 따라 남경 재창설

여진의 성장

 

● 인종(1135년)

묘청의 난(서경 천도 운동)

이자겸의 난과 금나라의 성장

 

● 공민왕(1360년)

한양과 백악으로 시도

원나라의 쇠퇴와 외적 침입

 

부산진순절도

임진왜란의 시작을 알리는 왜군의 부산진 침략을 그린 기록화. 영조 때 화가 변박이 그렸다.

한양 도성 성곽

18km에 이르는 한양 성곽은 언뜻 보기에는 단단한 방어 준비로 보인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차례 큰 전쟁에서 서울의 성곽은 전투 한번 제대로 치루지 않고 함락됐다.

콘스탄티노플 성벽과 단면도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명성이 높았다. 방어를 위해 해자와 삼중의 성벽을 갖추고 있었으며 성벽 높이는 10미터가 넘었다. 성벽을 넘기 위해 다양한 공성도구가 사용되었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그러나 1453년 콘스탄티노플은 20톤 무게의 초대형 우르반 대포를 동원하고 방어군보다 열 배가 넘는 군사를 동원한 오스만 제국에 50일 넘는 공방전 끝에 마침내 함락된다.

옹성이 축조된 흥인지문 성벽

동대문(흥인지문)은 4대문 중 유일하게 옹성이 축조되어 있지만 실제 방어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가 강했다. 풍수에서 볼 때 서울은 동쪽이 약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름에 之를 넣어서 4자로 짓고, 옹성을 쌓았다.

중국의 산해관 성벽

만리장성 동쪽 끝에 위치한 산해관은 천하제일관이라는 현판대로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던 청나라조차 넘지 못한 요새였다. 높이 14m에 달하는 성벽을 자랑하는 산해관을 청나라는 무력으로는 끝내 함락시키지 못하고, 산해관을 지키던 오삼계의 협력으로 간신히 통과할 수 있었다.

오사카성의 해자

넓은 해자는 성벽과 함께 평지에 위치한 성의 방어력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해자는 성벽으로의 접근성과 기동성을 떨어뜨리는데,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너비와 깊이를 갖추어야 한다.

풍납토성

풍남토성은 발굴 초기에는 도성을 방어하는 작은 토성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추가 발굴조사를 통해 많은 유물과 함께 10m가 넘는 토성과 해자가 발견되면서 거대한 규모가 드러났다. 현재는 백제의 수도 위례성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구려가 쌓았던 백암산성

중국과 잦은 전투를 벌여야 했던 고구려성은 높은 성벽과 치 같은 방어력을 높이는 구조로 축조되었고, 중국 요령성의 백암산성처럼 지형을 최대한 활용해 지어졌다.

경천사지 10층 석탑

충목왕 때 세워진 경천사지 10층 석탑은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화려하고 장식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원나라의 부마국이었던 고려는 사회 전반에서 원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이런 상항에서도 풍수의 전통은 뿌리 깊게 자리 잡아 풍수에서 파생된 건축원리가 조선까지 이어진다.

한양도성과 동일한 도시 원리의 낙안읍성

낙안읍성의 구조는 한양과 동일한 도시원리로 그대로 옮겨놓았다. 남문 밖 진입로에서부터 걸어오면 금전산이 남문 위로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읍성 안으로 들어서면 읍성에서 궁의 역할을 하는 동헌이 보이지 않는다. T자로 난 대로의 왼쪽으로 꺽어 가다가 동헌 앞에서 비로소 오른쪽을 돌아보면 동헌과 금전산이 하나처럼 펼쳐진 풍경을 볼 수 있다.

남한산성의 성벽

남한산성의 성벽 높이는 평지성에 비해 높지 않지만 산비탈 자체가 성벽 역할을 하면서 높은 방어력을 가지게 해준다.

남한산성 행궁

병자호란으로 삼전도의 치욕을 겪은 조선은 남한산성과 북한산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산성 내부에 행궁을 지으면서 장기항전을 준비했다.

제야의 종 행사

오늘날 제야의 종 행사는 지나간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축하하는 송구영신의 상징적인 행사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조선시대 백성들에게 보신각종은 지금보다 훨씬 권위적인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보신각종은 통금 사이렌처럼 출입을 제한하고 시간을 통제하기 위한 기준이었다.

보신각

보신각은 종로 통운교에 설치되어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렸다. 매일 오전 4시에 33번을 타종하고 오후 10시에 28번 타종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때 복구했으며, 현재의 보신각종은 세조 때 주조한 원각사종을 사용하고 있다.

자격루 모형

현재 덕수궁에 있는 자격루는 물받이통과 항아리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장영실이 만들었던 자격루는 일정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종이 치게 설계된 정교하게 만들어진 기계장치였다.

세종 때 만들어진 다양한 발명품

위에서부터 앙부일구, 측우기, 혼천의이다. 조선시대에는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측정하기 위한 다양한 도구가 발명되었다. 발명품들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왜 이러한 발명품들이 만들어졌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발명품들은 예측할 수 없던 날씨와 시간과 같은 자연현상을 통제의 영역으로 편입시키고자 한 노력의 일환이다.

웅장한 경회루 전경

경회루는 여러모로 독특한 정원이다. 규모에서 경회루는 중국과 일본의 일반적인 누각보다 훨씬 더 큰 규모를 자랑한다. 또 연못과 연못 안의 섬 모두 사각형의 단순한 구조를 띠고 있는 점 역시 특이하다. 정원을 만들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담을 두르고 나무를 심어 시야를 막고 분리된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경회루 왼쪽으로 보이는 인왕산에서 알 수 있듯이 경회루는 탁 트인 시야를 보여준다.

동양의 대표적 정원들의 사계절

① 졸정원, ② 퇴사원, ③ 고락쿠엔, ④ 금각사. 이 정원들은 연못과 누각을 만들고, 수석 등을 배치해서 장소마다 , 또 같은 장소에서도 시선에 따라, 그리고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다른 풍광을 보여준다. 동양의 이상적인 정원은 분리된 공간에 무릉도원의 이상적 모습을 담고자 했다.

성락원

성락원은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었다. 중국과 일본의 정원과 마찬가지로 공간을 세분화해서 시시각각 달라지는 풍경을 구현하고 물줄기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경회루 전경

자연경관에 대한 시각적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회루의 크기는 커졌고, 대신 자연과 대비되는 인공연못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었다.

경회루 누각에서 본 풍경

경회루에서는 멀리 인왕산과 경복궁의 여러 전각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연스럽게 다듬어진 기둥이 액자틀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인왕산이 한 폭의 그림에 담긴 것처럼 펼쳐진다. 아기자기하게 꾸민 내부의 인공경관을 감상하는 중국과 일본의 누각과 달리 경회루는 탁 트인 외부 경관을 감상하기 위해 만들었다.

조선 3대 누각이었던 촉석루

밀양읍성의 영남루와 평양성의 부벽루와 함께 3대 누각으로 불렸던 촉석루는 남강 옆에 세워졌다. 경회루와 마찬가지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풍경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연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게 큰 누각을 지었다. 도시입지에 풍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한국은 중국 · 일본과 달리 도시 가까이에 큰 산이 들어서 있었다. 그 결과 공간을 분리해서 인공적으로 꾸미기보다 이미 도시 안에 들어와 있는 자연공간을 이용하는 경관 감상이 더 유행하였다.

향원정

지금의 향원정은 고종 때 지어진 것으로 경회루와 동일한 조성원리가 적용되었다. 높게 솟은 북악산과 인왕산을 가리지 않고 연못과 인공섬을 단순하게 원형으로 만들어서 화려한 자연과 조화를 추구했다.

비원의 여러 모습

위에서부터 차례로 ① 부용정. ② 청의정. ③ 애련정이다. 창덕궁은 평지에 자리 잡은 경복궁과 달리 산줄기 허리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를 이용하여 골짜기 자체를 밖과 단절된 공간으로 사용했다. 비원을 둘러싼 산과 능선이 담장 역할을 하면서 골짜기 안의 화려한 자연 자체가 정원의 풍경이 된 것이다.

세검정도

조선시대 정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자 자체보다 정자가 위치한 공간과 풍경을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밖에서 정자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정자 안에서 펼쳐지는 풍경이 중요하다. 한국 정원이 중국, 일본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이유는 도시 가까이에 산이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별다른 인공적인 요소 없이도 뛰어난 풍광이 있는 곳에 정자를 세움으로써 풍류를 즐길 수 있었다.

인공정원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안압지

문무왕 때 조성된 안압지는 신라가 망하면서 폐허가 되었다가 1975년 발굴되면서 복원되었다. 굽이치듯이 설계된 연못의 외양은 동양의 인공정원 방식을 잘 보여준다. 굽이치듯이 설계된 연못의 외양은 동양의 인공정원 방식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현재 복원된 안압지는 인공정원에서 가장 중요한 외부와의 차단이 안 되어 있어서 과거의 정취를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posted by 황영찬
2018. 8. 31. 13:27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48 관동대로

 

 

신정일 지음

2008, 휴머니스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26066

 

981.102

신74ㄱ

 

· · ·

송강 정철이 관동팔경을 노래한 길

한강 지나 대관령 넘어 동해에 이르는 자연과 생명의 길

서울에서 평해까지 구백이십 리 열사흘 길에 깃든 역사와 문화를 되새긴다.

 

서울에서 평해까지 옛길을 걷다

영남대로와 삼남대로를 다 걷고 나니 왠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그 이유는 평해로, 즉 관동대로를 아직 걷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동대로는 수도 한양과 경기 지방의 동부와 강원도를 이어주는 길이다. 다른 옛길과는 달리 자연이 온전히 보존되어 강바람과 산내음을 즐기며 걸을 수 있었고, 율곡, 신사임당, 김시습, 허균, 정철, 이색 등 역사적 인물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여러 명의 우리땅걷기 도반들이 함께하여 옛길 걷는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지난 몇 년간 사라진 옛길을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영남대로, 삼남대로 그리고 관동대로를 가슴과 발에 새겼다. 답사를 준비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지도 작업이다. 언제나 해왔던 일인데도 새로 걸어가야 할 곳을 살필 때마다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한다. 이제 이 길의 끝에서 새로운 길을 생각한다.

 

한강 물길 지나 대관령 넘어 동해까지

지도 위 점선으로 남겨진 옛길 관동대로를 되짚어본다

 

첫날 흥인지문에서 남양주 다산 생가까지 : 밤마다 길을 걷는 꿈을 꾸다

이틀째 마재에서 용문까지 : 매연은 보약이요 소음은 풀벌레 노랫소리이니

 

사흘째 용문에서 원주 문막까지 : 산속이 넓게 열렸으나 지세가 깊이 막혔고

 

나흘째 문막에서 횡성까지 : 원주는 몰라도 문막은 안다

 

닷새째 횡성에서 문재 정상까지 : 돈 되지 않으면 걷지 마소

 

엿새째 평창에서 대화장까지 : 좋은 경치 기묘하여 그려내기 어렵네

 

이레째 진부에서 횡계까지 : 가을비는 지루한 장마처럼 내리지 않는다

 

여드레째 대관령에서 강릉까지 : 한양에서 나귀 타고 이레 걸린 대관령

 

아흐레째 정동진에서 망상 해수욕장까지 : 길은 거역할 수 없는 나의 운명이다

 

열흘째 동해역에서 삼척까지 :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일수록 준비는 소홀해지고

 

열하루째 삼척 동막에서 호산교까지 : 아는 것이 있어도 아는 척하지 말자

 

열이틀째 삼척 신남리에서 울진 매화리까지 : 타관에서 온 나그네는 바로 길을 묻는 사람

 

열사흘째 매화리에서 평해까지 : 길 끝에서 언제나 또 다른 길은 시작되고

 

 

 

신정일 辛正一

 

그는 여간해서 집에 붙어 있질 않는다.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많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길 위에서 먹고 쉬고 자는 사람이다. 금강, 섬진강, 한강, 낙동강, 영산강을 따라 걸었고, 400개가 넘는 산을 오르내렸다. 최근 몇 년간 조선시대 주요 간선도로 걷기에 집중하여 부산에서 서울에 이르는 구백육십 리 길 영남대로와 해남에서 서울에 이르는 구백이십 리 길 삼남대로를 걸었고, 지난 2007년에는 서울에서 평해에 이르는 구백이십 리 길 관동대로를 열사흘 동안 걸었다. 《관동대로》는 《영남대로》와 《삼남대로》에 이어 '옛길을 걷다' 시리즈를 일단락 짓는 책이다.

혼자 걷는 것만으로는 마음에 차지 않아 20년 전 '우리땅걷기' 모임을 만들어 수천 명의 길동무와 함께 우리 땅 방방곡곡을 걸었다. 그는 요즘 마음이 설렌다. 동해안 해안선을 따라 부산 해운대와 두만강 하구를 잇는 동해 트레일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아직 북녘땅을 밟는 것이 어렵지만 길만 열린다면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순례 길 못지않은 걷기 코스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물론 길이 열린다면, 누구보다 먼저 길을 떠날 사람이다.

그간 두 발로 써내려간 책으로는 《다시 쓰는 택리지》(전 5권),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고을을 가다》(전 3권), 《한강 따라 짚어가는 우리역사》, 《영남대로》, 《삼남대로》등이 있다. 그 외 《한국사의 천재들》(공저),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공저),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 《똑바로 살아라》등 다양한 역사교양서를 집필했다.

 

차례

 

서문  과거와 현재가 살아 숨 쉬는 관동대로

 

첫 구간

 

첫 구간 지도

 

첫날  | 밤마다 길을 걷는 꿈을 꾸다 |

             흥인지문에서 남양주 다산 생가까지

 

              시작이 반이다 | 동대문에서 만난 나그네들 | 십리 갈 길손과 천리 갈 길손의 차이 | 서

              울을 떠나면서 | 신설동을 지나서 가는 관동대로 | 중랑천 아래를 흐르는 냇물 | 망우리

              고개를 넘자 구리에 이르고 | 나그네가 나그네에게 길을 묻다 | 그 이름 높았던 석실서원

              | 내일이면 나는 도로 산으로 가네 | 김씨가 사라진 자리에 조씨가 들어서다 | 평구에서

              총총히 작별 인사 나누면서 | 한강물이 크게 소가 되었으니 덕소 | 길을 나섰으니 돌아갈

               길이 없다 | 다산이 태어난 늠내리

 

이틀째  | 매연은 보약이요 소음은 풀벌레 노랫소리이니 |

                마재에서 용문까지

 

               두 강줄기가 모이는 모서리 | 지난 일 아득해 온통 꿈인데 | 서거정이 극찬한 수종사 | 모

               든 길은 매연과 소음으로 넘쳐나고 | 귀와 눈은 열고 마음은 비우고 | 누 밖에는 긴 강이

               요 들 밖에는 산인데 | 양근나루는 서울로 가던 길목 | 길은 흐르는 강과 같다 | 정다운

               사람과 이별할 적에

 

사흘째  | 산속이 넓게 열렸으나 지세가 깊이 막혔고 |

                용문에서 원주 문막까지

 

                꿈속에서 꿈을 꾸다 | 산속이 넓게 열렸으나 지세가 깊이 막혔고 | 한가한 가운데 일이

                많으니 산 구름이 웃는다 | 남쪽 고개 구름은 북쪽 고개 구름과 잇닿아 있고 | 구둔재를

                넘어가는 길 | 제대로 된 길만 만나도 행복하다 | 재는 넘을수록 높고, 내는 건널수록 깊

                다 | 걱정도 쓰라림도 먹은 뒤 이야기 | 밤이 오면 쉴 곳이 있을 것인가 | 문막다리로 해

                서 문막장 보러 다녔어 | 관리들 욕을 했던 욕바위 | 달래강이 변하여 섬강이 되다

 

나흘째  | 원주는 몰라도 문막은 안다 |

                문막에서 횡성까지

 

                잠이 보약이다 | 조엄의 묘가 있는 작동 | 반가운 나그네는 오면 반갑다 | 십리 밖에 서

                있어도 오리나무 | 들이 적어 부드럽고 근면하다 | 실로 동쪽 지방의 아름다운 고을이다

                | 보부상들이 자주 드나들었던 원주 | 남이 갓 쓰고 장에 가니 투가리 쓰고 간다 | 뭐 할

                라고 걸어가요 | 치악산에 얽힌 전설 | 게으른 놈이 책장 센다 | 달을 보고 그해의 농사

                를 점치다 | 마고 할미 전설이 깃든 들언지 바우 |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만 남았다

 

닷새째  | 돈 되지 않으면 걷지 마소 |

                 횡성에서 문재 정상까지

 

                 어딜 가나 돈타령 | 여기는 전재 정상입니다 | 안흥에서 찐빵을 안 먹고 갈 수 있나 | 그

                 리운 송이버섯 향기 | 골짜기가 좁아 사람 살 곳은 적은데

 

두 번째 구간

 

두 번째 구간 지도

 

엿새째  | 좋은 경치 기묘하여 그려내기 어렵네 |

              평창에서 대화장까지

 

                 할 말은 조금 남겨두라 | 가을 산이 능히 병객을 치료한다 | 옛 역이 깊은 산속에 자리하

                 여 | 나그네 가는 길이 많이 높아서 | 이원수와 주모가 만난 대화 주막 | 율곡의 어머니

                 사임당 신씨 |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 | 대화리 서쪽에 있는 아홉사리고개

 

이레째  | 가을비는 지루한 장마처럼 내리지 않는다 |

              진부에서 횡계까지

 

                  길이 끝나는 산에 구름은 잔뜩 끼어 있고 | 이별의 장소, 누정 | 정자는 사람이 모이고

                  머무르는 곳 | 내 속은 온통 따뜻해 | 적멸보궁이 있는 상원사 | 비 내리는 옛길을 걸으

                  며 | 두메산골 횡계리의 탈바꿈 | 대관령의 첫머리 횡계

 

여드레째  | 한양에서 나귀 타고 이레 걸린 대관령 |

                대관령에서 강릉까지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서다 | 길은 국사성황당에 이르고 | 울면서 넘고 넘어와 웃는 대

                    관령 | 강릉의 산수가 천하의 제일 | 강릉 김씨의 시조 | 길손들이 쉬어가던 제민원 |

                    강릉부 서쪽에 있던 구산역 | 몇 집 되는 초가집은 모두 그림 같아 | 김씨, 치씨, 소나

                    무가 많다 | 관동별곡의 고장 | 허균과 허난설헌 | 걷는 것은 중노동이다 | 채재공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 | 오늘 못 가면 내일 가면 되지

 

아흐레째  | 길은 거역할 수 없는 나의 운명이다 |

                정동진에서 망상 해수욕장까지

 

                    안인진에 있는 해령사 | 바닷가 마을 정동진 | 마음 졸이며 밤재 터널을 지나다 | 맑은

                    물 흐르는 옥계 | 걷는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안다 | 길은 거역할 수 없는 나

                    의 운명이다

 

세 번째 구간

 

세 번째 구간 지도

 

열흘째  |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일수록 준비는 소홀해지고 |

                동해역에서 삼척까지

 

                    여행, 삶의 또 다른 축복 | 어둠 속에서 길은 시작되고 | 그대여 묵호를 아는가 | 가을

                    풍경이 절정인 죽서루 | 육향산 아래에 있는 척주동해비 | 나그네는 조그마한 일에도

                    감격해야 하고 | 기러기는 저물어도 쉬지 않는다 | 길은 늘 내 삶의 곁에 있고

 

열하루째  | 아는 것이 있어도 아는 척하지 말자 |

                 삼척 동막에서 호산교까지

 

                      공양왕 무덤이 있는 궁촌 |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 | 아름다운 초곡입니다 | 한

                      줄기 저녁노을에 산이 붉게 물든다 | 세월의 무게가 쌓인 돌무더기 | 진달래가 두 번

                      피면 가을날이 따뜻하다 | 믿을 것은 지도뿐인데 | 이 길이 아닌가 보다 | 소공령을

                      지나가는 차마고도 | 오후가 저무는 길가에서 홍시를 따다

 

열이틀째  | 타관에서 온 나그네는 바로 길을 묻는 사람 |

                  삼척 신남리에서 울진 매화리까지

 

                       점선이 보이는 길에 옛길이 남아 있고 | 옛길 그대로 남아 있는 관동대로 | 싼값으

                       로 열남도 되고 열녀도 되고 | 날마다 맛 좋은 집 | 나뭇잎 밟는 소리를 선물로 주다

                       | 남사고를 모신 화산사 | 나그네 베개에 날이 차니 꿈 못 이루는데 | 망양정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니 | 남사고가 태어난 수곡리 | 성류굴이 있는 울진 | 길에서 아는 사

                       람을 만나다

 

열사흘째  | 길 끝에서 언제나 또 다른 길은 시작되고 |

                  매화리에서 평해까지

 

                       11번지가 좋으니 걸을 수 있다 | 망양정이 나라 안에 으뜸가는 정자 | 누가 꽃을 꺽

                       어줄 것인가 | 울진과 평해의 경계 망양교 | 옛길에 새로운 길이 들어서고 | 마지막

                       으로 무를 서리하다 | 비단같이 맑았던 금강 | 소나무 숲 너머로 달이 떠오르고 | 이

                       산해의 유배지 평해 | 월송 황씨의 본고장 월송리 | 중봉 조헌의 유배 생활 | 어딘가

                       로 늘 떠나는 꿈을 꾼다 | 평해는 군이었다

 

우리땅걷기 길벗들의 답사 후기

역사의 길에 발자취를 남기다

정말 원한다면 길을 나서라

 

18세기 진경문화와 북학사상의 산실이었던 석실서원 터

서원부원군 한확의 묘와 다산 정약용 생가가 있는 능내리

양문에서 지평으로 넘어가는 그루(그릇)고개

택풍당 입구 표지석

섬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한 김제남 신도비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의 무덤 근처에 세워 죽은 이를 기리는 비석이다. 김제남은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의 아버지로, 광해군 때 외손자 영창대군의 역모사건에 휘말려 사약을 받고 죽었다. 인조반정 이후 복권되어 신도비가 세워졌다.

가파른 고개를 올라가 만난 교항리 석조 불두  임진왜란 때 왜병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오지만 토속적인 얼굴과 머리만 따로 지연석 위에 올려놓은 양식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흥 찐빵 축제를 위해 만들어놓은 섶다리아 징검다리

더운 날씨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자 나타난 문재 터널

대관령 옛길 표지석

관동팔경의 하나인 삼척 죽서루

척주동해비

삼척 소공대비  황희 정승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월송리 소나무 숲

월송정 관동팔경의 하나로 울진 평해에 있다.

 

 

 

 

posted by 황영찬
2018. 8. 24. 15:48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47 고구려 소수림왕 6 구부의 꿈

 

 

 

김진명 역사소설

2016, 새움

 

대야도서관

SB112084

 

813.7

김78ㄱ  6

 

"공자를 폐하고

한(漢)의 바다를

멸하리라!"

 

미천왕 을불, 고국원왕 사유, 이후 4년,

긴 침묵 끝에 소수림왕이 되어 돌아온 김진명!

진정한 <고구려>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진명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작가이다. 대부분은 작가들이 신춘 문예나 전국적인 규모의 문학상을 통해서 등단한 반면 김진명은 그러한 이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말 그대로 장편 소설 두 권으로 문단에 나타나서 천문학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자리 잡았다. 그 후로 발표하는 소설마다 김진명은 대중적인 호응을 얻으며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만한 대중적 인기를 가진 작가는 한국에 드문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김진명은 문학적인 평론에 있어서는 그리 큰 작가로서 취급되고 있지는 못하다. '극단적 민족주의자'라거나 '과도하고 거친 상상력의 작가'라는 편이 김진명을 따라다니는 일종의 꼬리표이다. 그러나 작가 자신은 그러한 평가에 신경쓰고 있지 않다. 작가 자신은 "다만, 나는 작품 한 편 한편마다에 목숨을 다해 내가 아닌 우리의 문제를 담아낼" 뿐이라 답하고 있다.

문학이나 습작과는 거리를 가졌던 김진명은 어려워진 가정 형편과 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불행을 당한 형의 영향을 받으며 소설가가 되었다고 한다. 김진명의 문제 의식은 체계적이고 정돈된 서구 사회와 한국 사회의 차이점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의 문제 의식은 한국 사회가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인가이다. 그런 점에서 김진명은 과거 한국의 현대사를 뒤돌아보고 다양한 시각에서 문제들을 검토하고자 노력한다. 그 결과 그의 소설들은 통념을 뒤집는 역사 해석과 인물 평가, 사건 이해를 함축한다. 아마 이 과감한 문제 제기와 이해 방식이 독자를 김진명의 소설로 끌어들이는 주요한 흡인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속도감있는 김진명의 문체 역시 독자들이 소설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흥미롭게도 김진명은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꼽고 있다. 김진명은 이 책이 주는 주제 의식뿐만 아니라 글쓰기의 간명함에 감동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김진명은 간단하고 명확한 글을 쓰고 있으면 그 글은 대중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김진명의 대표작으로는 한일 관계의 새로운 지형도를 펼쳐 보임으로써 베스트셀러가 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일제의 문화재 약탈과 광개토대왕비의 비밀을 파헤친 『몽유도원(구판 : 가즈오의 나라)』, 금융 대란과 함께 찾아온 우리의 정신 문화 위기와 그 극복을 위한 『하늘이여 땅이여』, 한국 현대사 최대의 미스터리 10.26을 통해서 미묘한 한미 관계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보여준 『1026(구판 : 한반도)』, 고대사 문제를 새롭게 조명해낸 『천년의 금서』,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나라 고구려의 이야기를 최근의 국제정세와 함께 풀어낸 『고구려』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차례

 

한(漢)의 바다

누구의 탓인가

구부의 손바닥

부처의 여인

선비

보이지 않는 것들

복조리나 주어라

흙색 깃발 아래서

불편한 군사

하나뿐인 벗

제왕과 공자

뿌려두었던 씨앗

혼자라도 가겠다

서어산

모용선비의 왕

요서 정벌

두 전쟁

서어산에 오른 불길

왕위에 어울리지 않는다

구부의 군사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