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노자의 자기혁신]
설탕 같은 위로 넘치는 시대 … 우리 모두 당뇨병 걸릴 지경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만난 한형조 교수. 그는 “흔히 유학을 옛날 이야기로만 치부하지만 유학은 우리의 현실 문제에 대해 매우 친절하고 사무치게 일러준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한형조(54·한국학중앙연구원 고전한학·철학) 교수를 만났다. 전통찻집에서 마주 앉은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시선은 깊었다. 그와 인터뷰하는 내내 학자의 언변보다 수도자의 침묵과 문답을 주고받는 느낌이었다. 그에게 동양학과 고전은 경전이었고, 일상은 이를 체득해가는 도장이었다. 한 교수는 동양학의 언어로 상처를 정의하고, 치유를 매만지고, 행복의 실타래를 풀었다.
-지난 2~3년 위로와 힐링이 쏟아졌다. 유학에도 그런 코드가 있나.
“유학에는 위로가 없다. 유학은 신랄하다. 유학은 성찰의 학문이지, 위로의 학문이 아니다. 그래서 상처에 대한 접근도 다르다.”
-인간은 누구나 상처를 받는다. 결국 고통이 생기고, 우리는 비명을 지른다. 동양철학에선 ‘상처’를 무엇이라 표현하나.
“완고함이다. ”
-완고함이라. 무슨 뜻인가.
“내가 갖고 있는 고집과 편견을 말한다. 그게 완고함이다. 이런 고집과 편견의 토대가 사(私)적 자아다. 눈 앞에 펼쳐지는 모든 사태를 자기를 축으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인간의 오래된 습성을 말한다. 이게 굳어진 것, 그게 완고함이다.”
뜻밖이었다. 우리는 흔히 상처는 외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한 교수는 외부에서 날아오는 화살이 아니라 내 안의 완고함을 지적했다.
왜 그럴까. 그는 “사람들은 주위로부터 당한 것을 상처로 여긴다. 그런데 유학은 ‘자기 중심적’이라는 속성이 상처를 만드는 공장이라고 본다. 강한 자기 중심이 더 강한 상처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우리 사회를 당뇨병 환자에 비유했다. “요즘 위로가 너무 넘친다. 설탕을 너무 투여해서 당뇨에 걸릴 지경이다. 유학은 쓰다듬고 손을 잡아주는 것을 일시적 효과라고 본다.”
- 너무 혹독하지 않은가.
“유학에선 위로를 ‘진통제’ 혹은 ‘따뜻한 속임수’로 봤다. 일시적 효과에 그치는 마사지라는 거다. 시간이 지나면 풀렸던 어깨는 다시 뭉치게 마련이다. 그렇게 마음도 다시 뭉치는 거다.”
- 그렇게 뭉친 마음을 어떻게 치유하나.
“유학은 내가 받은 상처, 타인에게서 받은 부당한 대우를 자연과 운명의 거대한 손 안에서 피할 수 없는 길이라고 본다. 그걸 어쨌든 수용할 수밖에 없고, 또 수용해야 한다고 봤다. 천리(天理)라고 할 때 ‘리(理)’자 속에는 수많은 역사와 사회 운명이 포함돼 있는 거다. 누구나 그걸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없다. 그럼 무엇이 관건인가. 이걸 어떻게 타개하느냐. 그게 관건이다.”
-어떤 식으로 타개하나.
“문제의 중심에 자기가 있다는 거다. 그게 중요하다. 환경은 어떤 일을 구성하는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거다. 나머지 3분의 2는 내게 달렸다고 본다. 잘나가다가도 유배를 가는 선비의 경우는 역사 속에서 다반사였다. 이때 유배를 가는 상황은 3분의 1, 나의 대응은 3분의 2에 해당한다. 여기서 필요한 게 자기혁신이다. 내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다. 그걸 통해 나의 맷집을 키우는 거다. 힐링도 마찬가지다. ‘그 자식 참 나쁜 놈이지?’ 하는 맞장구는 위로는 주지만 맷집을 키우진 못한다. 그래서 유학은 섣불리 위로하지 않는다.”
이말 끝에 한 교수는 니체의 말을 인용했다. “니체는 ‘(상처가) 너를 죽이지 않는다면, 너를 키울 것이다’고 했다. 상처를 대하는 유학의 눈도 그렇다.”
이건 부모들의 자식 교육법에도 고스란히 통하는 팁이었다. 요즘 부모들 열에 여덟, 아홉이 자식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전전긍긍한다. 한 교수는 “그게 아니다”고 했다. “부모가 아이를 더 크게 성장시키려면 모든 걸 갖추어주는 배려는 독이 될 수 있다. 어느 정도 결핍을 허용하고, 그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걸어갈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인류사의 모든 문명은 결핍에서 성장하고 풍요에서 쇠퇴해갔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상처에 대한 치유는 어디서 시작되나
“눈앞에 펼쳐진 사태를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차갑게 봐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질 못한다. 사태 전체를 조망하지 못하고, 나의 관심과 편견 때문에 아주 좁은 길로 자신을 투영해서 본다. 인간의 모든 불행과 상처가 여기서 출발한다. 사태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치유가 시작된다.”
-왜 그런가.
“ 자기중심성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장자도 똑같이 말했다.”
-장자는 뭐라고 했나.
“우물 안에서 개구리가 잘 놀고 있었다. 어느 날 자라가 왔다. 개구리는 ‘여기가 얼마나 해피한 인생인지 모를 거다. 안으로 들어와 보라’고 했다. 자라가 들어가려다 다리가 걸려서 못 들어갔다. 대신 자라는 바다 이야기를 들려줬다. ‘바다는 하도 넓어서 수평선 끝이 안 잡힌다. 우(禹)임금 때는 10년 동안 아홉 번이나 홍수가 났지만 그 물이 늘어나지 않았고, 탕(湯)임금 때는 8년 동안 일곱 번이나 가물었지만 그 물이 줄어들지 않았다. 그 안에 엄청난 생명이 살고 있다.’ 그러자 개구리 왈. ‘뻥 치고 있네.’ 우물 안 개구리, 다시 말해 자기중심성. 그게 모든 병의 근원이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깰 것인가다.”
왼쪽부터 공자, 노자, 장자.
-동양철학에서 그걸 깨는 비법은 뭔가.
“노자와 장자는 ‘자망(自忘)’이라고 했다. ‘너 자신을 잊으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잊을지 구체적 훈련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훈련법이 가장 풍부한 건 불교다. 대신 출가자를 위한 전업 훈련법이 많았다. 반면 유학은 일상 속의 훈련법을 제시했다. 노장과 불교, 그리고 유학의 기본 구도가 똑같다는 게 신기하다.”
- 그게 어떤 구도인가.
“너의 상처는 너의 좁은 자아로 인해 생긴 거다. 좁은 자아를 깨라. 사회적 악이라는 것도 너의 작품이다. 너 같은 자아가 충돌해 생긴 거지, 다른 사람이 준 것이 아니다. 네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그래야 네 상처도 치유되고,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도 치유될 수 있다. 너는 피해자만이 아니고 가해자이기도 하다. 동양철학은 이렇게 말한다.”
-선비들은 어땠나 .
“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고, 문안하고, 독서와 명상을 했다. 아침부터 잘 때까지 일과표를 만들어 내가 천리(天理)와 함께 있으려 노력했다. 그게 자아를 깨는 것이었다.”
- 그 중 핵심이 뭔가.
“독서와 명상이다. 그걸 통해 궁리(窮理·이치를 곰곰이 따져보며 연구함)를 했다. 맹자는 말했다. ‘개나 닭이 집을 나가면 온 동네 사람을 풀어서 찾는데, 마음은 잃어버려도 찾을 생각을 않는다.’ 가령 손가락 중 무명지가 굽어졌다고 하자. 사람들은 용한 의사를 찾아 미국이라도 달려가고, 집을 팔아서라도 손가락을 고친다. 그런데 마음은 굽어져도 고칠 생각을 안 한다. 그래서 고전을 보고, 경전을 보며 궁리를 하는 거다. 굽어진 마음을 펴기 위해서 말이다.”
- 그렇게 궁리를 하다 보면.
“스티브 잡스가 이런 말을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한 분야에 필요한 지식을 바닥까지 파보는 사람이 없더라. 그게 충격적이다.’ 잡스는 궁리를 했다. 궁리를 하면 바닥까지 가게 된다. 그래야 사태를 제대로 알 수 있고, 진정한 혁신도 나오는 거다.”
-상처와 치유, 다음은 행복이다.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행복은 뭔가.
“삶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주자학자의 눈으로 요즘 한국인을 보면 ‘노(怒·분노)’와 ‘애(哀·슬픔)’가 주축이다. ‘희(喜·기쁨)’는 없다. 희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평이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 코드는 ‘노’와 ‘애’에서 ‘희’로 넘어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우리 삶에 ‘희’가 자리 잡을 때 ‘노’와 ‘애’는 별로 문제가 안 된다.”
- 그런 행복을 어떻게 일굴 수 있나.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라고 했다. 아무리 소유 양식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나이가 들고, 50대 사춘기가 오고, 정년 퇴직을 하게 되면 존재 양식을 감지하게 된다.”
한 교수는 “존재 양식은 충만감”이라고 요약했다. 이게 없으면 행복에 구멍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막연히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건강하면 행복할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존재 양식이 마련되지 않으면 불안과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물질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훌쩍 넘어서 유희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이게 나의 행복과 직결된다. 결국 인문학과 치유, 행복이 같은 코드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형조 교수=경북 영덕 출생. 경남고와 서울대 철학과 졸업.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로 있다. 동양철학과 고전에 능통하다. 옛 고전을 우리 시대의 언어로 불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 『왜 동양철학인가』 『왜 조선유학인가』 『조선유학의 거장들』 『붓다의 치명적 농담』 등.
한형조 교수의 추천서
유학은 일상의 철학이다. 한형조 교수가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 추천한 책들이 그렇다. 그는 “고민 고민하다가 딱 세 권을 골랐다. 그런데 정작 유학서가 없다”며 껄껄 웃던 그는 “그래도 이 책들에는 유학의 엑기스가 녹아 있다 ”고 했다. 다음은 각 책에 대한 한 교수의 추천 사유.
◆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지음, 정현종 옮김, 물병자리)=정현종 시인이 서문에다 ‘혼자 구원받기 미안해서 번역한다’고 쓴 책이다. 불교의 팔만대장경 핵심을 잡아서 현대적 언어의 대화체로 풀었다. 아주 얇은 책이다.
◆ 마음의 철학(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강분석 옮김, 사람과책)=제목은 다르지만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다. 유교에 수많은 경전이 있지만 로마의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쓴 『명상록』이 그 핵심 코드를 담고 있다. 번역이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 대승기신론 소·별기(은정희 지음, 일지사)=방대한 불교의 간략한 설계도다. 나는 이걸 ‘구원의 설계도’라고 부른다. 어렵다면 영역본을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일본 스즈키 선사의 영역본 『The Awakening of Faith: The Classic Exposition of Mahayana Buddhism』이 쉽고 명쾌하다.
[중앙일보] 2013년 8월 13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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