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 양미경의 가슴으로 읽는 시
엮은이 양미경
2004, 은행나무
시흥시대야도서관
EM042185
811.6
양38가
버려야만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내 안에서, 그대의 얼굴과 그대의 목소리와 그대가 남긴
사소한 추억까지 몽땅 버린 뒤에야 그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가지려고 하면 결코 가질 수 없는,
다가서려고 하면 결코 다가오지 않는 그리움 하나.
양미경의 애송시로 꾸민 고운 선물 바구니!
맛과 향기가 각기 다른 과일 바구니를 선물 받은 느낌이랄까.
양미경이 가려 뽑아 그의 잔잔한 해설을 곁들여 들려주는 애송시들을 감상하다 보면 삶이 곧 시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 가까이 살아오는 시의 향기에 취해 나도 누군가에게 시로 꾸민 고운 선물 바구니 하나를 보내고 싶어진다.
- 이해인(수녀 · 시인)
책장을 넘길 때마다 농익은 시의 향기가 번져 나오는 느낌이다. 거기에다 양미경의 감상 노트를 읽으니 잘 버무린 양념처럼 아름다운 시들이 더욱 맛깔스럽게 다가온다. 양미경에게서 느껴지는 영원한 소녀의 상(像)은 그의 감성과 잘 어울려 시의 서정성을 한층 빛내준다.
- 이병훈(프로듀서)
바쁜 방송 일을 하면서도 시를 곁에 두고 사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보인다.
시가 사람을 맑게 만드는 것일까, 맑은 사람이기 때문에 시를 가까이하는 것일까.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의 마음도 그처럼 맑아졌으면 좋겠다.
- 고두심(탤런트)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어느 시인이 시를 읽지 않는 요즘 세대에게 한 말이 생각난다. '시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정말 맞는 말이었다. 시는 내게 있어 따지고 분석하는 무엇이 아니라 그냥 가슴에 전해져오는 느낌이었다. 어떤 뜻인지 무엇을 가리키는 건지 정확하게 몰라도 좋았다. 시 한 편에, 그 한 줄에 담겨져 전해오는 느낌이 좋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 양미경의 시 감상 노트 중에서
양미경
부산 출생. KBS 탤런트 공채 10기, 1985년 KBS 스승의 날 특집극 <푸른교실>로 데뷔했다. 그 이후 KBS의 <그대의 초상>, <형>, <징검다리>, SBS의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 <불꽃>, MBC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두 자매>, <그 햇살이 나에게>, <대장금> 등 다수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또한 <행복이 가득한 집>(KBS), <생방송 행복찾기>(SBS), <양미경의 노래마을>(TBS)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1985년 KBS 신인연기상을 수상했고, 2003년에는 MBC 연기대상 연기자 부문 특별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에세이집 《당신이 진실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1997)이 있다.
차례
하나... 사랑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하늘냄새_박희준
새벽 편지_곽재구
다시_박노해
말을 위한 기도_이해인
빨래_이해인
미라보 다리 아래_기욤 아폴리네르
엄마_정채봉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_정채봉
소경되어지이다_이은상
꽃잎 1_김수영
풀_김수영
사랑굿97_김초혜
배꼽을 위한 연가 5_김승희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_윤후명
내 안의 당신_유해목
겨울풀_이근배
비망록_김경미
둘... 새벽달처럼
새벽달처럼_김형영
눈물은 왜 짠가_함민복
푸른 밤_나희덕
너의 그림자_박용철
저녁에_김광섭
무지개_서정윤
홀로서기_서정윤
겨울연가_강계순
달리 할 말이 없네_허행
이중섭 1_김선영
이 순간_피천득
가정_박목월
섬진강 15_김용택
봄눈_나태주
옛날_김소월
초혼_김소월
타는 목마름으로_김지하
접시꽃 당신_도종환
셋...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바닷가 우체국_안도현
즐거운 편지_황동규
冬天_서정주
내 사랑은_송수권
눈 온 아침_신경림
꽃으로 잎으로_유안진
그 사람에게_신동엽
봄 꽃 편지_고두현
내게 당신의 사랑이 그러하듯이_조병화
사랑하는 별 하나_이성선
湖水 1_정지용
첫사랑의 눈동자 곁으로_강은교
민들레꽃_조지훈
그뭄_장석남
님의 침묵_한용운
창살에 햇살이_김남주
처음처럼_신현수
별 헤는 밤_윤동주
하늘 냄새
박희준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새벽달처럼
김형영
밤하늘에 구멍처럼 박혀 있던 달이
박힌 자리에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떠오르고 떠오르고 또 떠오르더니
새벽달이 되어 서녘으로 사라져가듯
점잖으신 걸음걸이로 사라져가듯
죽게 하소서, 그렇게
바닷가 우체국
안도현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 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니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었다
나는 세월에 대하여 말하자면 결코
세월을 큰 소리로 탓하지는 않으리라
한번은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줄지어 소풍 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내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우체통이 빨갛게 달아오른 능금 같다고 생각하거나
편지를 받아먹는 도깨비라고
생각하는 소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소년의 코밑에 수염이 거뭇거뭇 돋을 때쯤이면
우체통에 대한 상상력은 끝나리라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속 주머니에 넣어두는 날도 있을 것이며
오지 않는 편지를 혼자 기다리는 날이 많아질 뿐
사랑은 열망의 반대쪽에 있는 그림자 같은 것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삶이 때로 까닭도 없이 서러워진다
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보지 않고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
나는 편지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
바다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쓸쓸해지는 저물녘
퇴근을 서두르는 늙은 우체국장이 못마땅해할지라도
나는 바닷가 우체국에서
만년필로 잉크 냄새 나는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쓰는
소년이 되고 싶어진다
나는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사랑을 한 게 아니었다고
나는 사랑을 하기 위해 살았다고
그리하여 한 모금의 따뜻한 국물 같은 시를 그리워하였고
한 여자보다 한 여자와의 연애를 그리워하였고
그리고 맑고 차가운 술을 그리워하였다고
밤의 염전에서 소금 같은 별들이 쏟아지면
바닷가 우체국이 보이는 여관방 창문에서 나는
느리게 느리게 굴러가다가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
우체부의 자전거를 생각하고
이 세상의 모든 길이
우체국을 향해 모였다가
다시 갈래갈래 흩어져 산골짜기로도 가는 것을 생각하고
길은 해변의 벼랑 끝에서 끊기는 게 아니라
훌쩍 먼바다를 건너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파도 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넣거나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첫사랑의 눈동자 곁으로
강은교
봄이 오고 있다
그대의 첫사랑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눈동자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눈동자의 맨발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이 밟은 풀잎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이 나부끼는 바람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의 바람 위의 아침 햇빛이 꿈꾼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의 바람 위의 반짝이는 소리
곁으로 곁으로 맴도는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의 바람의 아침 햇빛의 꿈 엷은 살 속
으로 우리는 간다. 시간은 맨머리로
간다, 아무도 어찌할 수 없다.
그저 갈 뿐, 그러다 햇빛이
되어 햇빛 속으로 가는
그대와 오래 만나리
만나서 꿈꾸리
첫사랑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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