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0 실크 로드 - 사막을 넘은 모험자들
장 피에르 드레주 지음, 이은국 옮김
1996,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2115
082
시156ㅅ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004
마르코 폴로가 지칭했던 '카타이'는
어디를 일러 말함이었으며, 고대 로마인이 언급했던
'세르국'은 지구상의 어디를 가리키는 말이었을까.
1513년 포르투갈인이 중국을 발견하기 이전에도 서양과
동양 사이에는 끊임없는 왕래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동양의 신비를 좇아 험난한
여행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모험가들이
적지 않았고, 낙타 등에 물건을 가득 싣고 서쪽으로
발길을 재촉했던 장사꾼들도 적지 않았다.
이름하여 실크 로드 --- 그곳에는
동서 교류의 전설적인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다.
고대 그리스 · 로마 시대부터 동서양의 두 문명은 비단길, 향신료길, 도자기길 등 다양한 통로를 통해 문화를 교류하고 있었다.
1271년, 베네치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가 중국으로 떠났고, 25년 뒤에야 고향으로 돌아왔다.
1298년, 제네바의 한 형무소에 수감된 그는 우연히도 루스티셀로 드 피즈라는 문필가와 감방을 같이 쓰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여행담을 낱낱이 털어놓았다.
이렇게 해서 <동방견문록>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여러 나라의 황제 폐하, 국왕 전하, 공작, 백작, 후작을 비롯한 각하, 그리고 기사, 부호님들과 모든 시민들이여, 별의별 수많은 인종으로 가득 찬 세계 각국의 다양한 모습들이 궁금하고, 또한 그들의 관례와 풍습을 알고 싶으시다면 이 책을 읽어 보도록 하십시오.
여러분들은 이 책 속에서 고대 그리스 여러 나라와 지중해 동부 연안의 여러 나라, 그리고 알프스, 피레네 산맥에 접해 있는 모든 나라들, 다시 말씀드리자면, 대 아르메니아와 소 아르메니아, 페르시아, 터키, 타타르, 인도, 중동과 유럽 대륙 오지의 수많은 지역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불가사의한 일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이야기들을 명료하고 짜임새 있게 담고 있습니다. 베네치아의 현명하고 훌륭한 시민 마르코 폴로가 두루 경험한 것,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것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가 직접 체험하지 않은 일도 어느 정도 실려 잇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조차도 그가 믿고 인용해도 될 만한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은 신빙성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여러 진기한 사실들을 보고 들은 대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이 책은 거짓이 아닌 참되고 진실된 사실만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잇기 때문에 결코 지어 낸 이야기라는 비난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중에서.
차례
제1장 중국에서 로마로
제2장 순례자의 시대
제3장 상인의 시대
제4장 마르코 폴로
제5장 선교사의 시대
제6장 항해사의 시대
기록과 증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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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피에르 드레주 Jean Pierre Drege
장 피에르 드레주는 프랑스 극동문제연구소 회원이며 문학박사로, 프랑스 고등사범학교 연구소장으로 재직중이다. 중국의 역사와 문화, 문헌을 연구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저서 중에서 1986년 로잔 미술도서관에서 펴낸 <실크 로드>는 7개 국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혔다.
옮긴이 : 이은국
1956년 출생. 아주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동 대학원 졸업.
파리 제4대학(소르본) 박사 과정 졸업(문학박사).
현재 아주대학교에 출강중이며,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음.
번역서로는 <빠담 빠담 빠담> <살로메> 등 다수.
"스키타이인과 사르마트인이 우리와 동맹을 맺기 위해 외교사절단을 보내 왔다. 또한 시리아인과 인도인도 다른 선물과 함께 금은보화와 진주를 가득 실은 코끼리떼를 이끌고 왔다. 그들은 4년이나 걸린 길고 먼 여행길에서 겪었던 일을 세세히 늘어놓았다. 피부색만으로도 그들이 아주 먼 곳에서 왔음을 알 수 있었다."
플로뤼스, 1세기 말엽
메소포타미아의 모든 분지에서 파르티아 제국 군주들의 얼굴이 새겨진 금속화폐가 대량 발견되었다. 왼쪽은 초기 황제 중의 한 사람인 미트리다트 1세(B.C. 171~138)이고, 오른쪽은 여러 차례에 걸쳐 로마의 공격을 막아낸 볼로제즈 3세(147~191)이다.
침구류 판매, 로마 시대 부각, 피렌체 공립박물관.
"그가 양모에서 섬유를 뽑아 낸 것은 몇몇 나무에서 섬유를 추출하던 원리와 마찬가지였는데, 이것은 당시 대단히 호평을 받았다. 네아르크는 마케도니아인이 양모로 결이 곱고 질 좋은 천을 짜내어, 방석과 말 안장을 만든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아마 껍질을 이용해서 짜내는 세리카(비단)와 비슷하다고 했다."
스트라본 《지리학》
<한무제와 이별하는 광경>. 둔황 323호 동굴 벽화, 중국.
<근위병 상>, 토기, 진나라 시대, 중국 린퉁 박물관.
B.C. 221년부터 210년까지 진나라를 통치했던 진시황의 무덤이 1974년에 발굴되었는데, 그의 시신을 지키도록 흙을 구워 만든 실물 크기의 병사(약 7,000개)가쏟아져 나왔다.
<청동 비마상>, 한나라 시대.
"왕국의 동쪽 국경에 있는 한 마을의 북쪽 신전 앞에는 예전에 용들이 사는 큰 호수가 있었다. 용들은 말로 둔갑하여 암말들과 동침했다. 암말들은 용의 성격을 지닌 망아지들을 낳았는데, 이 망아지들은 성질이 고약하고 거칠어서 길들이기가 무척 까다로웠다. 그러나 망아지들의 자손들은 성격이 유순하고 순종적이었다. 이런 까닭에 이 왕국은 많은 명마를 기를 수 있었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산적떼에게 강탈당하는 상인들>, 중국 둔황 45호 동굴 벽화.
"그 시대에는 함께 여행하는 외국인 상인 단체가 수십 개나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거래를 앞질러 할 욕심으로 밤중에 몰래 길을 떠나는 상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10리도 못 가서 산적들에게 살해당하곤 했다. 산적들은 재물을 약탈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도 모두 살해했다.
《현장전》
"사방을 둘러본 그는 인적도, 말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 광활한 평야를 발견했다. 밤에는 별만큼 많은 악령들의 불씨가 사방에서 빛났다. 그리고 낮에는 무시무시한 바람이 불어와 모래를 휘저으며 폭우처럼 모래비를 내렸다. 그런 끔찍한 돌풍 속에서 그의 마음은 두려움으로 막막했다."
《현장전》, 7세기
<노자를 방문하는 공자>
노자 상.
불교전래에 대한 도교계의 반응은, 노자가 몸소 서역으로 건너가 많은 오랑캐를 개종시킨 결과라 생각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노자가 바로 부처가 되었으며, 불교는 도교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종교라고까지 생각했다.
선하는 모습, 인도 아잔타 동굴 벽화.
현장은 아우랑가바드 근교에 있는 아잔타 동굴에 관해 짤막하게 묘사하고 있다. "왕국(인도)의 동쪽 국경지대에는 깎아지른 듯한 산봉우리들이 첩첩이 서 있었으며, 그 주위를 험한 바위가 둘러싸고 있었다. 이 산의 깊은 골짜기에는 절이 하나 있었는데, 높게 치솟은 절의 건물과 깊숙이 자리잡은 승방 사이는 커다란 바위가 막고 서 있었다. 그리고 아잔타 동굴을 배경으로 별채와 석탑들이 계곡을 향해 있었다." 아잔타 동굴에 천불화(千佛畵)가 그려져 있었다.
<위구르 왕자들과 공주들>, 9세기경 중국 베제클리크 시원 벽화.
혼합 종교인 마니교는 대상무역의 담당자였던 소그디아나인들에 의해 위구르 왕국에 전파되었다. 투르판(중국쪽 중앙아시아의 대분지)에서의 발굴 작업으로, 마니교가 위구르의 지배 계급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782년, 네스토리우스 사제의 비석, 석제물, 파리 귀메박물관.
1623년과 1625년경에 발견된 네스토리우스교의 비석은 시안(西安)의 '비림(碑林)' 내에 보존되어 있다.
"상인이었던 나는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자주 만나곤 했다. 특별히 나는 바그다드에 관한 소식을 듣기 위해서 그리고 함께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동무를 만나기 위해 외국 상인들을 찾았다. 바그다드는 미트레이지왕의 궁전이 해변가에 자리잡고 있으며, 매일같이 세계 도처에서 오는 배들이 닻을 내리는 멋진 항구도시였기 때문이다."
<신드바드의 모험>
알 아드리시의 지도.
9세기부터 12세기에 걸쳐, 저명한 이슬람 지리학자들이 바그다드에 많이 살았다. 이 지리학자들은 그리스, 페르시아 또는 인도의 고대사 등을 해독하면서 지리학적 지식을 흡수했다. 시칠리아의 로제 2세 때의 지도 제작자였던 지리학자 알 아드리시의 평면구도형 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12세기에는 아직도 프톨레마이우스의 견해가 지속되고 있었다. 1844년에 제작된 이 사본에서는, 거의 처녀지였던 아프리카 해안선들이 아래쪽에 넓게 위치하면서 중국 해안선과 인접하고 있고, 몇 개의 섬만으로 경계가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인도에서의 후추 따기. 《불가사의한 이야기》 중, 퀼론 왕국편에서, 파리 국립도서관 고문서실.
"이곳의 후추는 자연적으로 쭈글쭈글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마치 우리가 밀을 실을 때처럼 포장도 하지 않고 배에다 그대로 실어 놓습니다."
마르코 폴로.
마르코 폴로의 출발. 알렉산더 소설 중에서, 축소화, 옥스포드 대학 도서관.
"그들은 대운하라고 부르는 그 유명한 운하 근처로 나를 데려갔다. 작은 배들이 운하를 건너 다녔고 건물 가까이에는 400톤 이상이나 되는 많은 범선들이 있었다. 그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 바로 이 운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들은 상당히 크고 높았으며, 고급 석재의 옛날 건물도 모두 채색되어 있었다."
필리프 드 코민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인류의 첫 조상인 아담과 이브를 손수 만드신 이래, 기독교인 사라센인, 이교도인, 타타르인 혹은 다른 어떤 사람도 마르코 폴로만큼 세계 도처의 진경(眞景)을 보고 체험하고 연구한 사람은 없었으며, 또 그렇게 신비스런 사실을 전한 사람도 없었다. 누구도 마르코 폴로보다 많이 여행하지는 못했으며, 보고 듣고 견문을 넓힐 기회를 갖지 못했다."
루스티첼로 드 피세, 1298
타타르 복장을 한 마르코 폴로. 18세기 수채화, 베네치아 코레박물관.
전설 속에서 마르코 폴로는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마르코 폴로가 타타르의 고유의상을 입고, 활과 검으로 무장한 이 그림을 보면, 그가 상인이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마르코 폴로와 그 일행. 카탈루냐 지도서에서 발췌. 파리 국립도서관.
샤를 5세의 <카탈루냐 지도>에는 폴로의 여행에 관한 그림이 실려 있다. 이것은 마르코 폴로의 견문담을 주제로 해서 1375년 완성되었다. 그것은 중세에 유행했던 세계 사람들에 대한 환상적인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로.
마르코 폴로의 여행로. 중국의 화북(華北) 지방을 향해 떠난 마르코 폴로는 그의 아버지와 숙부가 펏 여행 때 갔던 여정과는 다른 행로를 택했다. 마르코는 15년 뒤 해상로를 이용해 돌아왔는데, 그것은 중국과 유럽 간에 해상로를 이용한 최초의 여행이었다.
쿠빌라이칸의 궁에 도착한 마르코 폴로. 축소화, 《불가사의한 이야기》에서, 파리 국립도서관 고문서실.
<마르코 폴로 상>. 1477년 목판화, 누렌베르크.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마르코 폴로는 대칸을 배알하고, 자신이 맡았던 업무와 그 일의 처리과정을 상세히 보고했다. 또한 그는 여행중에 목격했던 진귀한 일에 대해 아주 상세하고 흥미롭게 설명했는데, 그의 이야기를 경청한 대칸과 신하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들끼리 "저 젊은이는 나이가 들면 틀림없이 큰 재목이 될 것"이라고 수군댔다.
<대칸의 화폐 발행>, 축소화, 《불가사의한 이야기》에서. 파리 국립도서관 고문서실.
보나티가 데생한 마르코 폴로.
"그들은 세 번이나 서신을 보내 유럽인에게 무례한 언사를 했다. 따라서 모든 기독교인의 절대 권위자이신 교황께서 권위를 가진 주교를 그들에게 보내고자 하셨다. 그러면 책임을 맡은 주교가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그들로부터 회답을 얻어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교황의 칙사가 하려는 얘기에는 무엇이든지 경청을 하고, 또한 그 이상 하고 싶은 말이 없는지 항상 물어 보기 때문이다."
기욤 드 뤼브록, 1254
<범세계적 수로도>(세부도). 1634년 장 귀에라르, 파리 국립도서관.
15세기에 접어들어 항해술과 지리학의 발달은 세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다. 포르투갈의 노력 덕분에, 인도와 유럽 간에는 아프리카를 우회하는 해상 지름길이 발견되었다.
"카타이는 중국과 다른 왕국이 아니다. 그리고 폴로가 얘기하는 대제(大帝)는 중국의 왕과 다른 것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중국은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데도 타타르와 페르시아로 알려져 있다."
마테오 리치, 7세기 초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상, 작자 미상의 나무에 그린 그림, 17세기 프랑스학파, 프랑스 베르사유국립박물관.
"제독이 말했다. 그것은 육지가 확실하다. 그렇다면 적어도 취저우와 항저우. 적어도 둘 중에 한 곳이 전방 400km 지점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해류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봐서 확신할 수 있다. 그래서 어제 북서 방향으로 항진하면서 기온이 냉랭함을 느꼈던 것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항해일지》 1492년 11월 1일
포르투갈인의 일본 도착. 17세기 카노학파, 남 보부의 병풍 그림. 종이, 파리 귀메 박물관.
"포르투갈의 범선 한 척이 일본의 항구도시인 야마가와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전쟁중이었으므로, 저 또한 흡족한 영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일본에는 도둑떼가 들끓어서, 우리 고을에 포르투갈이 있는 것을 모르고 약탈을 하러 온 타 고을의 도둑떼가 그들 중에 알폰소 바스라는 사람을 공격하고 살해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가 매년 각하께 올리듯이 명예로운 서신을 제게 보내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이곳으로 포르투갈인이나 페르시아인을 보내셔서 각하의 전갈이나 편지를 전해 주신다면 저는 마땅히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의로 그들을 극진히 대접하겠습니다."
사쓰마 번(蕃)의 다이묘(大名)인 시마주 다카히사가 고아의 총독에게 보내는 편지. 1561년
비단길.
예수회 마테오 리치 신부, 17세기 말 채색판화, 프랑스 퐁텐성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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