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4 옛 전돌
글, 사진 / 김성구
2003, 대원사
시흥시매화도서관
SH013806
082
빛12ㄷ 227
빛깔있는 책들 227
김성구-------------------------------------------------------------------------
경희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국립박물관에서 연수하였다. 부여 · 진주 · 대구 등의 국립박물관장과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을 역임하고,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옛기와』가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백제의 와전」「백제 · 신라의 와요」「한국 고대사원의 가람배치」 등이 있다.
|차례|
책 머리에
전돌의 기원
전돌의 분류
전돌의 변천
전돌의 제작과 가마터
맺음말
참고 문헌
십장생 굴뚝 전돌은 독특한 조형적 특성을 발휘할 수 잇기 때문에 그 동안 건축 문화의 발달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이 굴뚝은 샛담의 일부를 개조한 것으로 장생불사를 상징하는 십장생무늬를 감입하였다. 조선, 경복궁 자경전.
보상화무늬 전돌 보상화무늬가 장식된 화려한 전돌로 네 방향으로 부설될 수 있도록 각 모서리에도 네 쪽으로 나누어진 작은 꽃잎을 새겼다. 통일신라, 경주 안압지 출토, 가로 32.7×세로 31.2×두께 7.3센티미터, 경북대학교박물관 소장.
기하학무늬 전돌 기하학무늬는 마름모무늬 · 문살무늬 · 반원무늬 · S자무늬 · 동전무늬 등 매우 다양한데, 전돌의 긴 측면에는 마름모무늬와 다른 무늬가 조합되어 새겨진 것이 많다. 낙랑, 평양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문자 전돌 왼쪽부터 원흥 3년 · 건흥 4년 · 건무 9년 · 태강 9년 · 경원 원년 · 태강 7년의 기년명이 새겨져 있으며 특히 원흥 3년, 건무 9년의 기년명이 새겨진 전돌에는 제작자의 성씨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이채롭다. 낙랑, 평양 출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무녕왕릉 북벽 무늬 전돌을 4평 1수 방식으로 쌓아 올렸다. 북벽에 설치된 벽감에는 등잔이 놓여 있는데 연꽃이나 인동이 새겨진 전돌의 무늬가 제법 화려하다. 백제, 공주 소재.
화성 북암문 화성은 조선 정조 20년에 완성되었는데 성벽의 대부분이 벽전돌로 축조되었다. 북암문은 조그만 홍예문으로 쐐기 모양의 설형 전돌과 장방형 전돌로 쌓아 올렸다. 조선, 수원 소재.
수원 화성 장안문의 옹성 고대에는 건물의 벽이나 성곽, 담장이나 굴뚝 등을 쌓기 위한 벽전돌이 소수 예가 제작되었으나 조선시대에는 궁궐의 담장과 화성을 쌓기 위해 많은 수량이 제작, 사용되었다.
대안탑 당나라 때 만들어진 중국의 대표적인 전탑이다. 중국 시안시 자은사 소재.
분황사 모전석탑 우리나라 전탑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안산암을 전돌과 같이 가공하여 축조한 것으로 초충 탑신의 4면에 감실을 마련하고 인왕상을 배치하였다. 국보 제30호, 고신라, 현재 높이 9.3미터, 경주 보황동 소재.
송림사 5층전탑 1959년에 해체, 수리되었는데 높이가 16.13미터로 장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기단은 외장(外裝)을 돌로 축조하고 있는데 모서리기둥과 버팀기둥이 조각되었고 그 위에 9단, 7단, 7단, 6단, 4단으로 점차 체감되어 일정한 비례를 보이고 있다. 보물 제189호, 통일신라, 칠곡 구덕동 소재.
귀면무늬 전돌 사다리꼴의 특수 전돌로 무섭게 의장된 귀면의 두 귀는 전돌의 상단부 좌우에 높이 솟아 있었으나 파손되었다. 통일신라, 경주 출토, 가로 32.5~35.5×세로 16×두께 6.5센티미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전불 녹유가 사유된 연좌상의 전불로 일부가 파손되긴 하였으나 좌상의 여래불상이 3열로 연속 배치되고 있다. 벽면에 장엄용으로 사용되었을 경우 천불상을 연상할 수 있다. 통일신라, 출토지 미상, 가로 14.5×세로 26센티미터, 부산시립미술관 소장.
무녕왕릉 현실 땅 밑에 광을 파고 무늬 전돌로 축조하였다. 북쪽에 장방형의 현실을 두고 남쪽 벽 중앙에 널길이 있는 전실분으로 묘실은 터널형이다. 묘실의 전돌 쌓기는 4평 1수 방식을 따르고 있다.
송산리 6호분 현실 무늬 전돌로 축조된 전실분으로 묘실은 동서로 긴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전돌쌓기는 밑에서부터 10평 1수, 8평 1수, 6평 1수, 4평 1수로 무녕왕릉의 전돌쌓기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연꽃무늬 전돌 2매 1조로 조합되어 하나의 꽃 모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의장된 전돌(왼쪽, 가로 33.7×세로 8.6~15×두께 4.2센티미터)과 반절된 연꽃이 배치된 가운데 모서리에 잎이 마주난 인동무늬를 함께 새기고 있는 전돌(오른쪽, 가로 31.5×세로 13×두께 4센티미터)이다. 백제, 공주 무녕왕릉 출토,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연꽃무늬 전돌 2매 1조로 반절된 연꽃무늬 전돌(왼쪽, 높이 11센티미터)과 장방형 전돌의 좁은 측면을 두 구간으로 나누어 두 개의 연꽃무늬를 새긴 전돌(오른쪽, 가로 20.5×세로 14×두께 8센티미터)이다. 수요처가 부여에서 멀리 떨어진 공주의 무녕왕릉과 송산리 6호분에서 확인되어 직접적인 수급 관계를 밝힐 수 있었다. 백제, 부여 정동리 가마터 출토,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동전능격무늬 전돌과 동전무늬 전돌
연꽃사격무늬 전돌 장방형 전돌의 긴 측면을 세 구간으로 나누고 좌우 양쪽에는 연꽃무늬를, 그리고 그 중간에는 사격무늬를 배치하였다. 백제, 공주 무녕왕릉 출토, 가로 15.9×세로 32.2×두께 4센티미터,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문자 전돌(아래)과 명문 세부(위) 널길의 폐쇄 전돌로 사용되었는데, '양관와위사의'라는 글자가 새겨져 전돌의 제작 과정이나 전실분의 축조 배경을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백제, 공주 송산리 6호분 출토, 가로 31.3×세로 13.8×두께 4.4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연꽃무늬 전돌 표면에 7엽의 연꽃무늬를 새긴 장방형 전돌로 연꽃잎 안에 떡잎이 장식된 7세기 전반경의 양식을 보여 주고 잇다. 백제, 부여 궁남지 출초,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산경무늬 전돌 산경무늬 전돌은 두 종류가 출토되었는데 산, 나무, 불, 바위가 구름과 함께 잘 묘사되고 있는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백제, 부여 외리 유적 출토, 가로 29×세로 29×두께 4.5센티미터(위), 가로 28.7×세로 29.1×두께 4센티미터(아래),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귀형무늬 전돌 귀형은 동물 얼굴을 한 귀신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그 대좌가 각각 연꽃과 암반으로 이루어져 서로 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백제, 부여 외리 유적 출토, 가로 29×세로 29.4×두께 4.2센티미터(위), 가로 29.1×세로 29.2×두께 4.1센티미터(아래),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봉황무늬 전돌과 반룡무늬 전돌 봉황과 용은 『예기』에 기록된 것과 같이 기린 및 거북과 함께 4령으로 신성시되고 있는데, 백제의 무늬 전돌에 채용되고 있어서 당시에 유행한 길상과 벽사사상의 정신적 의지를 살펴볼 수 있다. 백제, 부여 외리 유적 출토, 가로 29×세로 29×두께 4.3센티미터(위), 가로 29.3×세로 29.3×두께 4.4센티미터(아래),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연꽃무늬 전돌과 구름무늬 전돌 연꽃무늬 전돌은 10엽의 연꽃잎을 반부조형으로 크게 배치하고, 꽃잎 안에 인동무늬 떡잎을 새기고 있는데 7세기 전반경의 장식적인 특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구름무늬 전돌에는 구슬 모양의 테두리를 두르고 8엽으로 의장된 상서로운 구름이 우회하고 잇으며 안쪽에 8엽의 연꽃무늬를 다시 새겼다. 백제, 부여 외리 유적 출토, 가로 28.8×세로 28.5×두께 4센티미터(위), 가로 29×세로 28.5×두께 4.4센티미터(아래),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특수 전돌 연꽃무늬와 인동무늬가 새겨진 특수 전돌이다. 전돌의 뒷면과 윗면에는 네모 난 구멍이 두 개씩 뚫려 있고, 양 측면에도 한 개씩의 구멍이 뚫려 있어서 특수한 곳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백제, 부여 군수리 절터 출토, 가로 28×세로 14×높이 14.9센티미터,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사냥무늬 전돌 토끼와 사슴을 쫓는 말 탄 무사가 묘사된 전돌로 사찰에서 사냥무늬가 새겨진 전돌이 사용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한데, 영묘사라는 절 이름과 관련하여 호국의 뜻이 내재된 것으로 생각된다. 고신라, 경주 영묘사터 출토, 가로 33×세로 14×두께 5.3센티미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보상화무늬 전돌 탁본 보상화무늬를 주무늬로 표면에 크게 배치하고 네 모서리에는 보상화의 분화가, 그리고 측면에는 사슴과 보상화당초무늬가 대칭을 이루면서 새겨지고 있다. '조로2년……'의 명문이 새겨진 보상화무늬 전돌과 똑같은 동범전이다. 통일신라, 경주 안압지 출토.
명문이 새겨진 보상화무늬 전돌 '조로2년 한지벌부 군약소사……'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서, 이를 통해 전돌의 제작 연대 및 날짜는 물론 군약이라는 사람의 이름과 직급, 그리고 출신지 또는 전돌의 제작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통일신라 680년, 경주 안압지 출토, 두께 7센티미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탑상무늬 전돌 여래상으로 신광과 두광의 광배를 갖추었고, 탑은 옥개에 풍탁을 단 3층탑으로 의장되고 있다. 통일신라, 경주 석장사터 출토,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박물관 소장.
누각무늬 전돌 공중누각과 같은 기와집 두 채가 구름을 사이에 둔 채 부조되고 있어 신라시대 건물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통일신라, 경주 출토,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누각귀면무늬 전돌 전탑의 모서리에 사용된 탑전돌로 반절된 귀면과 누각을 부조시키고 있는데 풍탁을 달았던 흔적으로 보이는 구멍이 나 있다. 통일신라, 울산 중산리 절터 출토,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불령사 전탑 무너진 것을 근래에 다시 세운 것으로 6층까지 남아 있다. 불령사 탑의 전돌은 탑상무늬 전돌과 누각무늬 전돌, 그리고 당초무늬 전돌 등 세 종류로 구분되고 잇다. 통일신라, 청도군 매전면 소재.
조탑동 5층전탑 기단 위에 화강석으로 초층 옥신을 축조하고 남쪽에 감실을 마련하고 그 좌우로 인왕상을 양각하였다. 초층 옥개부터 무늬 전돌로 쌓아 올렸는데 각 층이 점차 체감되고 있다. 보물 제57호, 통일신라, 안동 조탑동 소재.
신세동 7층전탑 높이가 17미터 가량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전탑에 속한다. 탑 기단의 사방에 신장상을 새긴 판석이 있고 초층 옥신의 남면에 감실이 마련되어 있다. 국보 제16호, 통일신라, 안동 법흥동 소재.
동부동 5층전탑 탑 기단을 화강석으로 쌓았고 탑신부를 무문 전돌로 축조하였는데 옥신의 각 층에는 감실이 있다. 2층의 옥신 남면에는 인왕상을 조각한 판석을 감입하였는데 옥개의 낙수면에는 기와를 이었다. 보물 제56호, 통일신라, 안동 문흥동 소재.
채유 사천왕상전과 복원도 경주 사천왕사의 목탑터에서 출토된 것으로 목탑의 벽면에 감장된 것으로 보인다. 갑옷을 입은 사천왕상의 탄력 있는 신체 표현과 사귀의 고통스러운 표정 등에서 통일신라 초기의 사실적인 조각 솜씨를 엿볼 수 있다. 통일신라, 경주 사천왕사터 출토, 가로 69.5센티미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연기법송'명 전불 장방형의 구획 안에 불상을 5구씩 두 줄로, 불탑을 5기씩 두 줄로 하여 각각 불상 10구와 불탑 10기를 음각하였다. 그리고, 탑과 탑 사이에 연기법송을 세로 네 줄로 새기고 있다. 통일신라, 경주 석장사터 출토.
연꽃무늬 전돌 정방형의 부전돌오 중심에 중판 양식의 연꽃무늬를 배치하고 그 둘레에 연화당초무늬를 새겼는데 발해에서 가장 성행한 무늬 전돌이다. 발해, 중국 길림 동경성 출토.
신륵사 전탑 탑 기단은 잘 다듬은 돌로 7단으로 높이 쌓았고 옥신과 옥개는 초화무늬가 새겨진 무늬 전돌로 축조하였는데 그 층수는 6층까지만 남아 있다. 고려, 여주 신륵사 소재.
신륵사 전탑 세부 탑신은 정방형과 장방형의 무늬 전돌로 축조되었다. 정방형 전돌은 두 측면에 초화무늬가 새겨져 모서리용으로 제작되었고, 장방형 전돌은 긴 측면과 짧은 측면에 초화를 새겼다. 초화무늬는 반절된 모양으로 2매의 전돌을 쌓아 올릴 때 하나의 꽃 모양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청자 전돌 가마터 청자 발생 초기에 해당하는 가마터이다. 가마의 길이가 40여 미터가 되는 반지하식 굴가마로 측면과 바닥이 잘 남아 있는데 측벽은 무문 전돌을 쌓아 만들었다. 고려, 시흥 방산동 소재.
덕수궁 유현문과 담 벽전돌로 높게 쌓여진 유현문의 홍예와 좌우로 연결되는 담장이 높낮이의 지형과 잘 조화되고 있다. 그리고 전돌의 특이한 조적과 색깔 차이가 궁궐 담장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꽃담 궁궐의 담은 전돌을 쌓아 올리는 조적의 방법과 줄눈의 차이, 그리고 전돌의 색깔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잇다. 때로는 여러 가지 꽃무늬나 길상무늬 등이 의장되고 있어서 꽃담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아담하고 간결한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경복궁 아미산 굴뚝 교태전 후원에 4기가 있다. 몸체는 6각형으로 각 면에 십장생과 매난국죽 그리고 길상무늬를 전돌로 짜맞추고 있다. 연기가 나오는 연가를 대여섯 개 정도 설치하고 지붕에 기와를 이었다.
덕수궁 함녕전 굴뚝 벽전돌로 조직된 4각형의 굴뚝이다. 몸체의 남쪽 면에 '수(壽)'자 무늬를 색깔 있는 전돌로 짜맞추고 있는데 지붕에 기와를 얹고 큰 연가를 설치하였다.
팔달문 전경 돌과 전돌을 사용하여 화성을 축조하였다. 여기에 사용된 돌과 전돌의 수량은 각각 18만 7,000개와 69만 5,000개에 이르고 기와는 53만 장이나 되었다.
전돌의 제작 과정 (『천공개물』에서)
평가마와 굴가마 가마의 천장과 몸체가 땅 속에 묻혀 있는 지하식 가마(위)이다. 평가마는 소성실 바닥에 단이 없는 무계단식 가마로 연도의 배연구가 세 개인 점이 특이하다. 굴가마(아래)는 소성실 바닥에 기와편으로 단이 축조된 계단식 가마로 연도의 배연구는 한 개이다. 백제, 부여 정암리 가마터.
'내가 읽은 책들 > 2014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106 HOW TO READ 프로이트 Sigmund Freud (0) | 2014.11.11 |
---|---|
2014-105 주말엔 서울여행 (0) | 2014.11.11 |
2014-103 바흐 - 천상의 선율 (0) | 2014.11.04 |
2014-102 HOW TO READ 다윈 Charles Darwin (1) | 2014.11.03 |
2014-101 우리 옛 도자기 (0) | 2014.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