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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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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7 앵통하다 봄

 

 

임성구 시집

2016, 문학의전당

 

대야도서관

SB110690

 

811.7

시68ㅅ  43

 

시인동네 시인선 043

 

태양과 달과 별은 지는 법이 없다.

단지 어둠이 우리 곁에서 피고 지기를 매번 반복할 뿐이다.

 

그래서 나의 시는,

오뉴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불판 너럭바위 위에서도

시들지 않아야 하고……

 

어둠이 싱싱하게 자라나는 골짝에선

반갑게 어둠을 받아내고 지워내면서

하늘의 씨앗을 지상에 총총 뿌려

세상을 아름답게 가꿔내야 하고……

 

상류로 향하는 달빛 속 연어들처럼

힘차게 힘차게 은유의 비늘을 반짝이며

당신께로 좀 더 가까이 가고픈

무수한 열망과 절망 사이의 황홀한 키재기.

 

임성구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1994년 『현대시조』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오랜 시간 골목에 서 있었다』, 『살구나무죽비』 등이 있다.

E-mail : jaje@hanmail.net

 

시인의 말

 

누군가가 유기해서

 

척박한 땅에 자라난

 

못생긴 내 자식들아

 

네 진한 향기를 열어

 

나보다

 

신나게 고함치거라

 

파란만장을

 

웃게 하라

 

 

2005년 어느 앵통한 봄에서 다시 봄까지

임성구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눈꽃 경적을 울려라

도화역(桃花驛)

꽃물 한때

토란잎 우산

달빛 우포

바람 호루라기

방어진(方魚津)

잡초의 눈물

잡내를 없애다

일 하는 사람

삼나무 숲에 들다

노래하는 김광석

수선화 지는 날

서운암의 봄

가을 탁발(托鉢)

단풍나무 관절

초정을 읽다



제2부 깨끗한 짝사랑 같은

뱀사골의 봄

삼파귀타

봄, 산동마을

나비물

양후니 형아

부부

시(詩)

다시 낫을 들다

바다, 노래방

나무 물고기

각북(角北)에 앉아 있다

분신

고사목

차향[茶香]에 녹다

이른 아침 하늘수국

야한 생각


제3부 온몸 녹아서 꽃이 되기까지

러브체인

꽃, 다방

케냐

그 짓

나들이

앵통하다, 봄

봄 혹은 강변카페

달에게 사정(射精)하다

위양못 삼매경

에로틱 아이스바

천리향

밤꽃 여자

화인(火印)

어떤 동백 시집

잡초의 눈물 2

텍사스 에레나


제4부 공손한 절규

먹구야

공갈 연애(戀愛)

부재중이었던 그해 봄

할복(割腹)의 시(詩)

내 시의 아가리를 찢고 싶다

황소개구리 울음처럼

김수영을 읽다

잡초의 눈물 3

공손한 절규

불빛 시위대

저, 울대를 그냥

내 시로 창난젓을 담그다

잘 까분다는 것

잡초의 눈물 4

몸이 식어 간다

개 한 마리

참 어이가 없어서


제5부 그때 가난은 누가 낳았을까?

샐비어 엄마

그때 가난은 누가 낳았을까?

오동꽃 장의차

팔월

환승

인공세심(洗心)실험실

옻단풍

아니 기쁩니까?

42병동 먹구에게

파란 나물

문자의 궁합

시를 업은 항아리

다듬어진다는 것

묵비권에도 가시가 있다

막차 떠난 후 불시착

용담꽃 평설(評說)

어머니라는 이름과 아버지라는 이름 사이, 내 이름이 참으로 따뜻하게 피어 있었음을…


해설 자학(自虐)과 자존(自尊)의 굴레

        정용국(시인)

 

도화역(桃花驛)

 

오월로 뛰어가는 김천 라고 어디쯤에

복사꽃이 피었다. 흰 눈 펑펑 내리는 날

기차가 그냥 지나쳐도

손 흔드는 간이역

 

내일이면 지워질 이 역에서 쓰는 편지

반쯤 고개 내민 복사우체통 비둘기

천년을, 또 천년을 향해

눈꽃 경적 울린다

 

이른 아침 하늘수국

 

널 보면서

뭉퉁한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자욱한 안개 너머

소녀의 깨끗한 미소

 

한 번도

다가서지 못한

 

내 유년의 짝사랑 같은……

 

러브체인

 

허공 난간에 매달린 가난한 진물들이

 

서로를 보듬은 채 푸르게 몸을 꼰다

 

녹아서 꽃이 되기까지

 

그 꽃이 지기까지

 

앵통하다, 봄

 

우물가 앵두나무가 뽑히던 컴컴한 봄

꽃의 대중들은 못 들은 척 고개 돌린 채

잘났다 제 잘났다고 빨갛게들 떠든다

 

앵두 젖 훔쳐 먹은 달콤한 올가미들

순해서 더 푸른 달아 기도문만 외지 마라

운주사 석가모니는 왜 여직 주무시나

 

바들바들 떨며 진 한 송이 사람의 집

온몸이 녹아내린 식초 같은 절규인 양

화구구(火口丘) 앵두꽃무덤에는 재 냄새가 진동한다

 

공손한 절규

- 노숙에 든 도시

 

딱지로 오래 앉은 그 상처의 속내는

 

단 한 방울 눈물조차 될 수가 없었다

 

낮술에

젖어버린 생애가

작두를 탄다

맨발로

 

시위 못 당긴 화살처럼

방향 잃어 질척인 목숨

 

동굴 안 부러진 종유석으로 널려 있다

 

차라리

출구를 막아주오

 

저 울음의 비상구를…….

 

그때 가난은 누가 낳았을까?

 

지푸라기 바람이 대문 밖에서 불어온 날

재 발라 놋그릇 닦는 어머니가 흔들리고

 

아득한

쌀뜨물 쑥국

보글보글 끓고 있다

 

비 한 자루 골목 골목 어둠을 쓸어내던

70년대 새벽종이 두부장수로 왔다 가고

삼십 촉 농촌의 꿈은 장닭처럼 경쾌했다

 

오래된 봄 한 술 뜬 샛별아파트 두레밥상

자연 퐁퐁 거품처럼 초록세상 부푼다

 

저만치

정겨운 얼굴

쑥뜸으로 오고 있다

 

내 시의 아가리를 찢고 싶자

 

고아 같은 나무에서 자라난 예쁜 꽃을

 

콱 찢어 뭉개고 싶다,

세상 어디 발도 못 딛게

 

상처도

빛나길 열망하는

 

이 병신 같은

새끼

 

내 시로 창난젓을 담그다

 

쿰쿰하게 잘 썩은 세상

내 창자를 모두 꺼낸다

 

소금 대신 짠 눈물 섞인

백일 잠을 깨부수고

 

뜨신 네,

밥숟가락에게

 

개좆처럼 대들다

 

불빛 시위대

 

상남동 LED등은

마귀 같은 불빛 군중

 

저 거센 비바람에도

폐부까지 찌르는 말

 

부도난

살구나무죽비

처형하라

처형하라

 

개 한 마리

 

하루 해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물녘에

 

뉘 집 개가 짖는다

 

온 마을을 뒤흔든다

 

한쪽 귀

 

담을 넘어가 보니

 

힘없는 시가 놓여 있다

 

이 빠진 일상들이 새파랗게 질려 떤다

 

틀니 같은 행간들이 발악하듯 되짖는다

 

달걀로

 

바위 치던 자음들

 

내 낭심을 물었다

 

잡초의 눈물 3

- 아름드리나무 밑 잡초에게

 

아름드리나무 밑에서

시 한 편을 쓰겠다고

 

햇빛도 하나 없이

긴 사색에 젖지만

 

파문 져

영양실조에 걸린

해 한 포기

달 한 포기

 

악착같이 살아보겠단 그 결심도 네 앞에선

쉬-이 꺾여 우는, 빼빼 마른 영감(靈感)이여

 

아, 제발

무릎만 꿇지 마라

한낮 개꿈도

희망이다

 

잡초의 눈물 4

- 잡초에게도 등급이 있을까

 

번지레 잘났든디

학벌 아예 좋든지

 

길도 늪도 아닌 곳에

노둣돌 놓고 바라본 하늘

 

가을날

백발 꽃잎으로 번진

저 억새의 눈물 눈물

 

뜨거운 시 되겠다고 땅웃음 짓는 뿌리의 나날

 

밤은 어찌 날마다 불청객으로 찾아오나

 

못다 핀

혈전의 밤도

맥은 아직 살아 있다

 

할복(割腹)의 시(詩)

 

1

스스로 이 장검을

푹 찔러 넣는다

 

외마디 유서들은

"욱!"하고 쓰러지고

 

식어 쓴

문장들이 뚝 뚝,

애리한 몸에

 

2

봄이

긴 여름이

내 몸을 관통해갔다

 

몸 밖으로 흘러내린

늦가을 단풍 군무

 

벼랑을

뛰어내린다

 

아, 달라붙는

흰 서리꽃

 

시(詩)

 

바람 살짝 불어와도 마음 먼저 흔들려

주름으로 웃다가 팽팽하게 젖어가는

 

우포늪

가시연 같은

실안낙조 어부 같은

 

때 되면 호령하고 때 되면 회항하는

그들의 꿈은 늘, 가시 돋친 불화살

 

가슴에

새긴 마음 한 줄

검붉게 탄 초록바다

 

잡내를 없애다

 

얼마나 많은 욕심이 썩어서 문드러진 채

방 한 켠에 자리 잡고 울었는지 모른다

진갈색 염증들의 큰 눈이

나를 먹고 있었다

 

마흔에서 오십으로 휘어지는 이 길목

쓰러지지 않을 것 같던 한 욕심을 볕에 말린다

뽕잎을 따다 먹인다

내가 나를 먹인다

 

누에가 몸의 독소를 제거하는 푸른 한낮

오십은 육십을 먹고 칠십 팔십 백세를 먹고

가벼운 저 구름 속으로

실을 뽑아 올리겠다

 

분신

 

여자의 방 빠져나온 울혈의 날들이

전조등 하나 없이 저벅저벅 어둠 사린다

어머닌 이미 강을 건너시고

빈 배에 앉아 시를 쓴다

 

둥글게 매끄럽게 살란 말씀 새기는데

툭툭 터진 실밥처럼 보풀거린 문장이

자꾸만 갓길을 가고 있다

천길 벼랑 뾰족한 길

 

곁가지는 쳐내야, 모난 돌은 다듬어야

아름드리 된다는데, 꽃빛도 환하다는데

아직도 나를 태우며 가는 길이 아득만 하다

 

잡초의 눈물

 

이 척박한 땅에서도 푸른 꿈 안 버린 널

호미로 낫으로 쳐내겠다는 마음 한 켠

비릿한 풀물의 고함 천둥처럼 번진다

 

우후죽순 돋아난 날[刃]을 벼린 이 어둠

걷어내지 못하면서 감히 널 뽑겠다니

곁가지 피워 올린 꽃도 미안해서 못 보겠다

 

씀바귀 엉겅퀴꽃 구둣발로 앉은 나비야

 

발소리를 줄여라

안 온 듯이 다녀가거라

 

햇살아

밤새 고인 천둥눈물

남김없이 먹고 가거라

 

먹구야

 

섣불리 웃지 마라

 

장마의 날

있을 거다

 

함부로 짖지도 마라

 

우는 하늘

며칠이겠나

 

시인은

웃음도 울음도

 

절체절명에

 

쏟는

거야

 

  어머니라는 이름과 아버지라는 이름 사이,

내 이름이 참으로 따뜻하게 피어 있었음을……

 

갓길에 핀

풋 찔레꽃도

 

울음 매우

따뜻했네

 

가슴을 다

도려내놓고

 

빛 한 줌

들이기까지

 

우주를

오래 애돌아 와서

 

참회 눈물로

벙그네

 

42병동 먹구에게

 

부러진

갈비뼈도

터져버린

공기주머니도

 

어머니의

하늘비단

자락 자락을

다 꿰매면

 

저만치

폈다 지는 꽃

열매 한 알로

오리라

 

고사목

 

지리산

법계사 근처

산등허리 한입 물고

 

온몸으로 비를 맞는

까마귀 몇 마리

 

울지도

날지도 못해

 

우두커니

 

슬프다

 

삼파귀타*

 

바람이 불어왔다

조용히 밤도 왔다

 

어둠 밝힌 별 노래에

터져버려 아린 물집

 

달 등의

박꽃 하나가

손수건이 되어주었다

 

물풀 같은 그 여자

열여덟 필리핀 순이

 

젖은 밤을 보내놓고

풋감 떨어진 새벽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부엌문을 또 연다

 

*삼파귀타 : 필리핀의 국화.

 

용담꽃 평설(評說)

 

쪽빛 하늘 구릉 모서리

시집 한 권 놓여 있다

 

가끔은 하나님도 마음 편한 때 있나봐

정제된 꽃잎 페이지 남청 글씨 좀 봐봐

 

청개구리 한 마리가 앉은 자리 가을볕 자리

나비도 읽고 가고 잠자리도 읽고 가는

주머니, 향기주머니 무지개로 넘친 꽃밭

 

눈으로 퍼 먹고 냄새로도 저어 먹는

아침 산행 보폭 따라 앙가슴 열어놓은

간결한 한 다발의 시평(詩評) 시원하게 뜨겁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