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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4 전통 과학 건축

 

글 / 손영식●사진 / 이응준, 최진연

1997,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099

 

082

빛12ㄷ  176

 

빛깔있는 책들 176

 

손영식-------------------------------------------------------------------------

공학박사.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보수과장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 건립사무국 과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한국 성곽의 연구』『옛다리』가 있고, 공저로 『북한의 문화 유산』 등이 있으며 그 밖에 여러 논문이 있다.

 

이응준-------------------------------------------------------------------------

한국사진작가협회 상업사진분과위원으로 있다. 한국도로공사, 국제관광공사 사진공모전에서 입상했고, 문화재보호사진전에서 입상했고, 문화재보호사진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주요 촬영 책자로는 『문화재대관 보물편』 중 · 하권, 『한국 고미술 진품 도록』『문화재대관 사적편』 상 · 하권 등이 있다.

 

최진연-------------------------------------------------------------------------

제6회 대한민국 사진전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한국의 옛 성곽"을 주제로 4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현재, 사진연구소를 운영하며 대한뉴스 사진부장을 맡고 있다.

 

|차례|

 

머리말

봉수대

석빙고

천문대와 관측 기구

성곽

고분

다리

참고 문헌

 

남산(목멱산) 봉수  조선시대의 중앙 봉수로 1로에서 5로에 이르는 전국의 모든 봉수 결과가 이곳으로 집결되었다.

적대봉 봉수대  전남 고흥군 금산면 거금도에 있는 이 봉수대는 해안에서 접근해 오는 적의 활동을 관찰하기 좋은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시설 규모나 형식으로 보아 세종 29년에 제시된 연변 봉수에 접근된 시설 기준을 갖춘 봉수대로 여겨진다.

무악산 동봉수  압록강 만포진에서 출발하여 의주, 평양 등 내륙 지방을 통해 무악산 동쪽 봉수에 이르러 경봉수인 목멱산 봉수에 전한다.

조선시대 봉수망

대소산 봉수대  경북 영덕군 축산면 대소산에 위치한 봉수대로 보조 봉수대의 역할을 하는 간봉이다. 전통 사회의 최첨단 통신 수단인 봉수대와 오늘날의 첨단 통신 시설인 중계탑이 같은 장소에 위치하고 있음은 우연이 아님을 보여 준다.

수원성 봉돈 외부  봉수대는 외적의 침탈에 대비하여 성곽 안에 위치한 경우가 많았다.

수원성 봉돈 내부  봉돈 내부에는 봉군의 숙식과 물건들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을 마련하여 봉수 근무에 필요한 시설을 갖추었다.

대소산 봉수대  내지 봉수는 연변 봉수와 달리 위험성이 적어 연대 높이는 10척(3미터)을 넘지 않게 하고 짐승의 침입에 대비하여 봉수대 주변에 담장을 둘러치기도 하였다.

목멱산 봉수 내부  목멱산(남산) 봉수는 임금이 있는 서울의 도성에 위치하여 매일 보고되는 전국의 봉수를 신속히 보고 받을 수 있는 경봉수였다. 서울시 중구 남산 정상 팔각정 옆.

『화성성역의궤』의 화성 봉수대  정조 20년(1796) 수원성을 조성하면서 만든 봉수대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수원성의 동문인 창룡문과 남문인 팔달문 사이 동남쪽에 위치해 있다.

봉돈 외부

봉돈 내부

영산 석빙고  겨울철에 채집한 얼음을 보관하였다가 필요할 때마다 사용하도록 고안된 빙고는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과학 정신이 깃들어 있는 자랑스런 문화 유산이다. 경남 창녕군 영산면 교리.

창녕 석빙고 영조 18년(1742)에 높이 6.1미터, 길이 19미터의 규모로 축조되었다. 창녕군 교육청 앞 개울 건너편에 있다.

청도 석빙고의 홍예틀 구조(위)와 홍예틀 사이에 얹은 판석(아래)  홍예틀을 일정 간격으로 세우고 이를 구조재로 하여 그 사이를 석재로 쌓거나 판석을 얹었다. 빙고 구조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빙실 천장을 이루는 홍예틀 구조에 있다.

경주 석빙고 환기 구멍

영산 석빙고 환기 구멍

안동 석빙고 출입문과 계단

영산 석빙고 문지도리 홈  인방석과 상부에 걸친 이맛돌에 문을 닫기 위한 문지도리 홈 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돌문이나 나무로 된 문을 달았으리라 생각된다.

안동 석빙고 출입문  출입문은 얼음을 넣고 꺼내는 데에 지장이 없는 한도내에서 최소한의 크기로 만들었다. 특히 이 빙고는 옆면인 동쪽으로 출입문을 낸 특수한 형태를 보여 준다.

현풍 석빙고  봉토에는 잔디를 심어 복사열을 막고 빗물에 의해 봉분이 씻기지 않도록 하였는데 이는 외기의 영향을 덜 받는 우수한 구조였다.

경주 석빙고 석비  빙고 주위에는 흔히 이같은 모양의 석비를 세워 축조에 관련된 사항들을 적어 놓고 있다.

경주 석빙고  남한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영조 14년(1738)에 완성된 것을 3년 뒤(1742)에 옮겨 개축한 것이다.

경주 석빙고의 빙실 구조  빙실의 각 벽면은 잘라낸 돌을 정밀하게 짜맞추고 바닥은 길고 평평한 장대형 식재를 사용하였다.

안동 석빙고  원래는 안동군 도산면에 있던 것을 안동댐 건설로 수몰이 예상되자 1976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 개축한 것이다. 세 개의 환기 구멍만 없으면 커다란 고분 같아 보인다.

안동 석빙고의 빙실 구조  약 22.4평 규모로 앞뒤는 수직벽으로 처리하고 측면은 일정 간격을 띄워 홍예틀을 구성한 전형적인 빙실 구조의 한 예를 보여 주고 있다.

창녕 석빙고  외부에서 보면 마치 큰 봉토 고분처럼 보이는데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창녕 석빙고의 빙실 구조  자연석에 가까운 장대석을 이용하여 수직에 가깝게 일정 높이를 쌓아 올린 다음 아치 모양으로 이어 붙였다.

청도 석빙고  입구 쪽에 석비가 남아 있어 그 비문을 통해 공사 기간, 동원 인원, 소요 재료 등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이 빙고는 현재 천장을 구성하는 홍예보 4개만 남아 잇어 밖에서 내부 구조를 들여다 볼 수 있다.

현풍 석빙고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빙고로 남북으로 긴 장방형의 형태를 띠고 있다.

현풍 석빙고의 빙실 구조  깬 돌을 바닥에 깔고 중앙에 배수구를 두었다.

영산 석빙고  뒤쪽에 작은 개울이 있었는데 옛날에는 그 곳에서 얼음을 채취한 듯하다.

영산 석빙고의 빙실 구조  바닥에는 자갈들이 깔려 있고 벽면은 큰 가공석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해주 석빙고  사진의 나무 그림자로 보아 출입구가 남쪽을 향한 석빙고로 보인다. 38.6평으로 현존하는 석빙고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마니산 참성단(사적 제136호)  단군시대부터 제천단을 마련하고 하늘에 대례를 올린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관상감의 관원들이 천체 관측을 위해 자주 이용했다.

혼천의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측정하는 천문 시계로 기원전 2세기경 중국에서 발명됐다. 개인소장.

자격루(국보 제229호)  중종 31년(1536)에 제작된 물시계로 일정 시각이 되면 자동적으로 종, 북, 징 등을 쳐서 시간을 알려 주는 장치가 있었다. 덕수궁 소장.

앙부일구  조선시대에 사용했던 해시계로 그림자가 비치는 면이 오목한 가마솥과 같은 반구형으로 되어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측우기(보물 제843호)  세종 때 세계 최초로 발명되어 조선조 말까지 관상감과 각 도의 감영에서 우량을 측정하는 기구로 사용했다. 기상청 소장.

경주 첨성대(국보 제31호)  아담한 술병 모양으로 뛰어난 조형미와 견실한 축조 기술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첨성대는 동양 최고의 관측대로 일명 점성대라고도 하는데 당시 신라인들의 활발한 천문 관측활동을 가늠케 한다.

난간 내부 구조  상단의 난간 역할을 한 정자석 구조는 장대석 상하단의 2단 구조이다. 장대 난간 높이는 64센티미터로 활동하기에 안전한 높이로 보인다.

상단 내부  정상부의 정자석 내부는 천문 관측의 활동 공간으로 바닥에 판재를 깔면 2, 3인이 활동 가능한 면적이 된다.

고려 첨성대  고려 첨성대는 가구식으로 돌기둥을 세워 대를 조성한 것이다(북한문화재도록』 사진).

관상감 관천대(사적 제296호) 원경(위)과 석축(아래)  당시 북부 광화방 서운관에  축조된 소간의대이다. 장방형의 장대석을 이용하여 바깥을 둘리고 내부에는 규격이 조금 작은 막돌을 채워 기단을 조성하였다.

관천대(보물 제851호)  여러 차례 옮겨지면서 기단이 없어지는 등 원래의 형태가 많이 훼손되었으나 현존하는 천문대 가운데 계단과 간의대석의 원형이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다.

관천대 내부 간의대석  난간 내부 가운데에 간의대석과 관측 받침석이 설치되어 있다.

남한산성의 남문  이 성은 북한산성과 더불어 한양 도성을 남북으로 호위하는 역할을 해왔다.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삼년산성  신라 자비왕 13년(470)에 축조한 산성으로 완공하기까지 3년이 걸려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산지의 지세를 최대한 이용해 적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축조한 산성은 1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아 그 공법이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낙안읍성  읍성은 주로 왜구의 침략이 잦았던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해안 지역에 많다. 전남 승주군 낙안면에 있는 낙안읍성은 둘레 1,384미터의 성벽이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수원성 성벽  성벽의 재료나 축조 방법에 따라 성곽의 용도 및 성격이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일정 지역을 보호하는 방어력을 제공하는 시설로서의 기능에는 변함이 없었다.

성벽의 명칭

몽촌 토성  자연 지형을 잘 이용한 백제시대 주요 성곽 가운데 하나로 풍납 토성과 함께 도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

수원성 여장  여장은 성벽 위에 설치한 낮은 담장과 같은 구조물이다.

  치는 성벽에 접근한 적의 측면을 공격하여 격퇴시킬 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만든 구조물이다. 수원성의 남포루.

옹성의 여장과 현안  옹성에는 몸을 숨기는 여장과 끓는 기름이나 물을 부을 수 있는 현안을 설치하여 적의 접근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하였다.

수원성 팔달문  적의 접근을 어렵게 하기 위해 성문 주변에 옹성, 적대, 육축 등의 보호 시설을 하였다.

경주 대릉원  삼국시대의 왕이나 귀족의 무덤은 권력을 과시하고 신성성을 높이기 위해 대형화되었다.

장군총 현실의 평천장  절석이나 판석을 이용하여 벽체를 조성하고 벽체 상부를 판석이나 장대석으로 덮는 형식이다.

장군총의 구조

강서 소묘 현실의 말각조정천장  네 모퉁이를 좁혀가며 천장 부분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주로 현실의 규모가 큰 경우에 사용됐다.

약수리 벽화 고분

고령 고아동 벽화 고분 현실 북벽

궁륭천장(사아천장)의 구조

무녕왕릉의 터널형 천장

김유신 묘  봉토 주변에 십이지신상을 새긴 호석을 둘렀다. 봉토를 보호하는 시설로는 이 밖에도 토류석, 즙석 등이 있다.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다리로 통일신라시대의 높은 기술 수준을 보여 준다.

여주 사곡리 흙다리  나무로 교각을 세우고 뗏장이나 흙으로 상판을 조성하여 만든 흙다리는 생활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가설한 것이 대부분이다.

함평 고막천 석교  보다리 형식으로 가설된 석교이다. 전남 함평군 학교면 고막리.

고막천 석교의 다리 구조  교각 받침석을 물 속에 설치하고 가공한 돌로 2, 3층의 교각을 설치하여 다리 바닥을 받치고 있다.

보다리의 구조

창덕궁 금천교  구름다리 형식은 많이 가설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남아 있는 다리가 상대적으로 많은 이유는 구조의 안정성 때문이다.

구름다리의 구조

배다리 가설에 이용된 북조선(위)과 조선(아래)  이 배를 배다리 가설에 이용할 때에는 배의 앞쪽과 뒤쪽에 닻줄물레를 달고 닻을 강에 내려 배가 움직이지 않도록 하였다.

배다리 추정도  일정한 간격으로 배를 띄워 가로목을 설치한 뒤 그 위에 기다란 목판을 깔아 만든 배다리는 필요할 때마다 임시로 가설한 다리였다.

송광사 청량각 누교  누교는 다리의 연결 기능과 정자의 휴식 기능을 동시에 갖춘 다목적 다리이다. 누각은 구조적으로 안정된 석조 홍예교 위에 주로 설치했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