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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6 풍속화(둘)

 

이태호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00

 

082

빛12ㄷ  177

 

빛깔있는 책들 177

 

이태호-------------------------------------------------------------------------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였고 같은 학교 대학원 미학 · 미술사학과를 졸업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전남대학교 교수로 있다. 주요 논문으로 「한국의 고대 산수화」「조선 후기 진경산수화」「겸재 정선의 가계와 생애」「김홍도의 진경산수」「다산 정약용의 예술 세계」「조선시대의 초상화」「1940년대 친일 미술」 등이 있으며 『고구려 고분 벽화』『조선 후기 회화사 연구』『그림으로 본 옛 서울』등의 저서와 평론집 『우리 시대, 우리 미술』이 있다.

 

|차례|

 

18세기 후반 풍속화의 전형을 완성한 단원 김홍도

    시대 양식으로서 풍속화의 정착

    조선 후기 화단에 우뚝 선 김홍도

    민중 삶의 정서가 가득한 30대의 풍속도

    완숙해진 50, 60대의 풍류적 사경풍속(寫景風俗)

    김홍도 풍속화의 회화적 성과와 그 영향

18세기 말, 19세기 초 풍속화의 유행과 변모

     정조 시절 김홍도와 함께 활동한 화가들의 풍속화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9세기 풍속화의 퇴조

    회화 기량이 퇴행한 19세기의 풍속화

    현실과 유리된 세시풍속류의 경직도 병풍

    성희 묘사를 담은 춘화첩의 유행

    구한말 기록적인 성격의 풍속화첩

맺음말

참고 문헌

 

장터길  김홍도. 『풍속화첩』 중에서. 종이에 담채. 54×22.7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노상의 선비와 아낙네(路上過眼圖)  김홍도. '행려풍속도 병풍' 중 제7폭으로 말 탄 선비와 소 타고 지나는 아낙을 포착한 부분이다. '행려풍속도'는 필력과 화면의 짜임새가 미숙하지만 갓을 쓴 선비와 관료, 머슴과 농어부들의 생활상 등 일상 속에서 흔히 대하는 소재들을 현장감 나는 배경 처리와 함께 회화적으로 이끌어 내려 한 김홍도의 의욕이 잘 나타나고 있는 작품이다. 1778년 작. 비단에 수묵 담채. 90.9×42.9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씨름  김홍도. 구경꾼을 가장자리에 둥그렇게 배치하여 승부가 막 판가름날 듯한 씨름판의 분위기를 연출한 이 그림은 김홍도의 천부적인 공간 운영 감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종이에 담채. 27×22.7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기와이기  김홍도. 먹줄을 내리고 기둥의 기울기를 가늠하는 목수의 한쪽 눈을 감은 표정 등은 대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 결과이다. 종이에 담채. 27×22.7센티미터.

신행  김홍도. 신행길에 나선 신랑의 행장을 그린 그림으로 맨앞 청사초롱을 들고 동갑내기 양반 신랑을 뒤돌아보는 아이의 불만스런 자세가 재미있다.

김홍도의 『풍속화첩』 중에서  '노상과안'은 '행려풍속도 병풍' 제7폭과 같은 주제의 그림인데 필선과 구도가 변화하였다.(위) 『풍속화첩』에는 '노상과안'보다 더 노골적으로 남정네가 여인 생활을 훔쳐보는 장면을 담은 '우물가'(아래)와 '빨래터'(가운데)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우물가의 정경은 가슴을 풀어헤친 한량의 장난끼어린 표정과 두 여인이 남정네의 가슴을 피한 자세, 나이 든 아낙이 우물에 오다 그 광경을 보고 주춤해서 불만스럽게 외면하는 몸짓 등 해학미가 넘친다. 

만월대 기로세연계도 부분  이 그림은 개성 지방의 은퇴한 관리 64명이 송악산의 만월대에서 잔치하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기록화이면서도 그림 안에 여러 일화들을 담아 풍속화식으로 재해석한 점이 김홍도다운 화풍을 잘 표현하고 있다. 1804년 작. 비단에 수묵 담채. 137×53.3센티미터. 개인 소장.

단원도(檀園圖) 부분  김홍도. 왼쪽에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는 김홍도가 거문고를 연주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 왼편에 나이 많은 인물이 정란이고, 가운데가 강희언이다. 이 그림을 통해 시회 아집(詩會雅集)의 풍습이 18세기에는 선비들뿐만 아니라 중인층까지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1784년 작. 종이에 수묵 담채. 135×78.5센티미터. 개인 소장.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  김홍도. 지필묵과 파초, 칼, 술, 책 등과 함께 앉아 비파를 켜는 모습이다. 섬세한 필치와 한적한 분위기가 50대 이후 김홍도의 심상을 유감없이 말해 주고 있다. 마상청앵도의 말 탄 선비와 동일인의 얼굴인데 김홍도의 자화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18세기 말. 종이에 수묵 담채. 27.9×37센티미터. 개인 소장.

어부오수도(漁夫午睡圖)  김홍도. 50대의 작품으로 낚시대를 세우고 노에 기대어 낮잠에 빠진 인물 그림이다. 18세기 말. 종이에 수묵 담채. 29×41.5센티미터. 개인 소장.

부전도(負錢圖)  김홍도. 등짐을 지고 성벽 밑을 지나가는 두 인물을 소재로 한 그림으로 풍속화적 재미가 넘친다. 19세기 초. 종이에 수묵 담채. 27×38.5센티미터. 호암미술관 소장.

목동귀가  김홍도. 중국 당시(唐詩)를 풍속화식으로 번안했다. 이 그림은 담백하게 우린 연한 먹색을 바탕으로 시원하게 부감한 공간감, 간일한 필치의 유연한 농담 구사, 얼기설기하면서도 분방한 독필의 사용 등 60대의 무르익은 원숙미와 회화적 깊이를 뽐내고 있다. 종이에 수묵. 34×25.3센티미터. 개인 소장.

쟁기질  김홍도의 『병진년화첩』 중에서. 일하는  장면이면서도 은둔적 풍취가 느껴지고 있다. 쟁기질 하는 농부의 모습은 소를 부리는 노동의 자세가 아니라 탈속한 무념무상의 표정을 하고 있다. 『풍속화첩』의 '논갈이'(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소와 쟁기를 든 농부의 힘든 모습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1796년 작. 종이에 수묵 담채. 26.7×31.6센티미터. 호암미술관 소장.

낚시  김홍도의 『병진년화첩』 중에서. 이 그림은 현감에서 파직된 다음해에 그린 것으로 사경풍속도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고 있다. 옥순봉, 사인암 등 단양 풍경과 산수인물, 화조, 영모 20점으로 꾸며진 『병진년화첩』은 50대 초반 김홍도의 자신감 넘치는 수묵 감각과 달필을 보여 주는 작품들이 여러 점 포함되어 있다.

회혼례도(回婚禮圖)  작자 미상. 회혼례를 소재로 한 이 그림은 인물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에서 대각선으로 배치하여 현장감과 실제감을 높이고 있다. 부분. 비단에 채색. 33.5×45.5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역안와수석시회도(易安窩壽席詩會圖)  정황. 오동나무와 버드나무 잡목의 담장 너머 마당에서 벌어진 남백종의 회갑 기념 시회 잔치를 포착한 것이다. 종이 위에 담채로 그린 이 작품은 의령 남씨 집안의 요청으로 제작된 기념화이지만 풍속화식으로 재해석하였다. 1789년 작. 종이에 수묵 담채. 25×57센티미터. 개인 소장.

자리 짜기  김득신. 김득신은 같은 주제를 그려도 김홍도와 달리 집안 정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잇다. 근경에 책 읽는 아이를 그리고 열린 문틈으로 얼굴을 빠끔히 내민 고양이를 배치하여 김홍도보다 현장감 나는 생활 풍속도로 살려 내었다.

자리 짜기  김홍도. 김홍도의 자리 짜기는 배경을 생략하고 인물의 자세를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자리 짜는 남편과 물레질 하는 아낙 그리고 그 뒤로 등 돌리고 앉아 책을 읽는 아이를 배치하였으나 현장감을 살리기보다는 각각 인물의 특징을 포착하고 있다.

귀시도(歸市圖)  김득신. 종이에 수묵 담채. 27.5×33.5센티미터. 개인 소장.

반상도(班常圖)  김득신. 종이에 수묵 담채. 27.5×33.5센티미터. 평양박물관 소장.

주막 거리  김득신. 화첩 그림으로 같은 크기의 '농가 풍속도'와 '주막 거리'는 여러 풍속도를 한 화면에 복합하여 주변 풍경과 섬세하게 조화시켰다. '주막 거리'는 주막과 대장간, 다리를 건너는 여행객, 논일하는 농부들을 함께 엮었다. 19세기 초. 종이에 수묵 담채. 28.5×36.8센티미터. 개인 소장.

풍속도 8폭 병풍  김득신. 노송이 있는 개울가 암반 위에서 봄을 즐기는 사대부들의 행락도. 제1폭(위). 봄꽃이 핀 강변의 어촌 나루터를 담은 장면. 제2폭(아래).

풍속도 8폭 병풍  김득신. 여름 논일을 하던 중간에 새참을 먹는 장면. 제3폭(위). 수수가 익어가는 한여름 원두막에 말 탄 아이들이 모여들고 있다. 제4폭(아래)

풍속도 8폭 병풍  김득신. 주막 거리 풍경과 들일 모습. 제5폭(위). 타작하는 가을의 농촌 풍물. 제6폭(아래).

풍속도 8폭 병풍  김득신. 추수가 끝난 지주가의 월동 준비 모습. 제7폭(위). 산행을 떠나는 지주와 그 일행을 향하여 허리를 굽히는 농민. 제8폭(아래).

처네를 쓴 여인  신윤복. 기와집 담벼락 옆에 처네를 쓰고 가는 여인의 뒷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배경 처리에서 개성적 필치를 엿볼 수 있지만, 사선식 화면 운영과 인물 처리에서 보듯 김홍도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1805년 작. 비단에 수묵 담채. 28.3×19.1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모를 쓴 여인  신윤복. 여속을 담담하게 그린 유형에 속한다. 화첩용으로 비단 바탕에 그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거문고 줄매기  신윤복. 김홍도 풍속화첩의 방식을 따라 배경을 생략한 것으로 평범한 여속을 그린 그림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다림질  신윤복. 일상의 여속을 묘사한 그림으로 아버지 신한평은 물론 조영석의 '바느질'로부터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던 건강한 생활 풍속도의 하나이다. 개인 소장.

어물 장수  신윤복. 김홍도의 '행상'(아래)과 동일한 구성을 하고 있다. 남자를 여자로, 아기 업은 아낙을 할머니로 바꾼 것이 다르다. 인물의 배치나 자세, 잔주름의 표현, 연한 설채 효과 등이 김홍도풍의 영향을 보여 준다. 그러면서도 일상의 여속을 주제로 한 것이나 얼굴과 가느다란 손가락 묘사에서는 신한평의 '젖먹이는 여인'과 닮아 있어 신윤복이 아버지 영향 아래 그림 공부한 필흔을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 초. 비단에 수묵 담채. 28.3×19.1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위).

연당의 여인  신윤복. 신윤복의 무르익은 회화성이 잘 나타난 화첩 그림이다. 그 주제도 소란스럽지 않거니와 비단 올에 스민 먹 선묘와 설채가 깔끔한 가작이다. 연못과 마당, 토방과 마루를 약간 부감한 적막한 후원의 분위기와 감칠맛 나는 담먹 담채의 색감에 신윤복 만년의 완숙한 필의가 더할 나위 없이 푹 배어 있다. 19세기 초반. 비단에 수묵 담채. 29.6×24.8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미인도  작자 미상. 19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 담채. 117×49센티미터. 해남 윤씨 종가 소장.

미인도  작자 미상. 1825년 작품. 종이에 수묵 담채. 114.2×56.5센티미터. 동경국립박물관 소장.

노상문승(路上問僧) 부분  신윤복. 봄풍경으로 처네와 장옷을 쓴 여인들이 나들이 도중 고깔 형태의 송라립을 쓴 두 젊은 승려에게 길을 묻는 장면이다. 아낙과 승려는 그의 풍속화첩에서도 몇 점 다루어 본 소재로써 나머지에 비하여 신윤복 냄새가 짙다. 1813년 작. 비단에 수묵 담채. 119.7×37.6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투전도  김양기. 세련된 회화성은 떨어지나 주제 설정면에서는 김홍도나 김득신 못지 않는 현장감을 살리고 있다. 투전에 열중한 네 사람과 음식상을 나르는 여인, 벽장 두껍닫이의 그림과 시렁 위의 방한모와 겉옷 등 각 인물의 개성적 표정과 방안 소품의 적절한 배치로 풍속화다운 분위기가 가득하다. 19세기 중엽. 개인 소장.

기방도  유운홍. 김홍도와 신윤복의 화풍을 계승하면서도 그 소재를 약간 새롭게 변용한 작품이다. 아기를 업고 새참내기를 넌지시 내려다보는 퇴기의 안쓰런 표정이 실감 난다. 19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 담채. 23.9×36.2센티미터. 개인 소장.

『서행일천리도권』 중 순안도중(順安途中)  임득명. 시종들을 거느리고 마주한 두 기마 인물 뒤로 추수가 끝난 가을 들녘과 산풍경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김홍도의 기려문승과 유사한 주제이다. 1813년 작. 종이에 수묵 담채. 28×13.6센티미터. 개인 소장.

아이와 바둑이(招狗圖)  적암 신광순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1847년 작이다. 섬세한 입체화법을 구사하고 있으나 원근 표현이 맞지 않는 등 회화적 수준이 떨어진다. 종이에 수묵. 35.3×29.5센티미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경직도 병풍' 중 달구경  작자 미상. 19세기 중후반. 비단에 수묵 채색. 149×44센티미터. 독일 게르트루트 크라센 소장.

'경직도 병풍' 중 새참  작자 미상. 19세기 중후반. 비단에 수묵 채색. 149×44센티미터. 독일 게르트루트 크라센 소장.

'경직도 병풍' 중 논갈이와 누에치기  작자 미상. 민간에까지 유행한 경직도는 대부분 화가가 알려져 있지 않다. 화원풍의 섬세한 채색화부터 조악한 필치의 그림까지 차이가 나는데 내용은 대체로 농가의 세시풍속을 복합해 놓은 것이다. 19세기 중후반. 비단에 수묵 채색. 149×44센티미터. 독일 게르트루트 크라센 소장.

'경직도 10폭 병풍' 중 모내기  이한철. 화원 집안 출신인 이한철의 이 병풍은 열 폭의 화면 모두 근경, 중경, 원경에 각각 다른 장면들을 배치함으로써 경직도류의 일반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한철이 김정희 문하에 드나들었던 만큼 배경 산수를 남종화풍으로 구사한 점이 다른 경직도류와 차이가 나며 각 폭에 간략하게 장면 설명을 묵서하였다. 19세기 중후반. 비단에 수묵 채색. 116×31.5센티미터. 동아대박물관 소장.

대쾌도(大快圖) 부분  전(傳) 유숙. 19세기 풍속도 가운데 현실과 유리된 양상을 띤 그림이다. 성밖 마당에서 벌어진 아이들의 씨름과 택견 장면. 구경꾼을 담은 그림인데 화면 왼쪽 상단에 "대쾌도…"라는 태평 시절을 빗대어 그렸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1846년 작. 종이에 수묵 채색. 105×54센티미터. 서울대박물관 소장.

춘화첩  경직도류의 병풍 그림과 대조적으로 19세기 풍속화의 또 한 경향은 성희 묘사를 직실적으로 담은 춘화첩의 유행에서 찾을 수 있다. 아직 이에 대한 각 작품의 공개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나 꽤 많은 화첩류가 전하는 것 같다. 비교적 안정된 묘사 기량을 보이는 화원풍부터 그 수준이 얄팍한 민간 화가의 솜씨까지 19세기에서 일제시대까지 지속적으로 복제된 듯하다.

춘화는 단순히 도색적인 성희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변해가는 도덕관과 생활 감정을 해학적이고 낭만적으로 담아 내었다. 절에 온 여인과 노승의 성희를 문틈으로 구경하는 동자승(위)이나 초가 마루에서 옛 기억을 살려 보려 시도하는 노인 부부(가운데), 보름달빛이 비치는 버드나무 아래의 낭만적인 표현들(아래)이 조선적인 멋과 회화성을 보여 주고 있다.

『기산풍속도첩(箕山風俗圖帖)』 중 '줄광대'  김준근. 이 화첩은 배경을 생략한 김홍도의 풍속화첩과 유사한 형식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또 각각의 내용과 형식에서 몇몇을 제외하고는 19세기 경직도나 평생도의 도상을 참작한 것이다. 19세기 말. 종이에 수묵 담채. 28.5×35센티미터.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소장.

『기산풍속도첩』 중 '투호'  김준근. 치밀하게 열심히 그렸으나 현장 사생의 생동감이 없고 조선 후기 풍속화의 말기적 현상이 드러나 있다. 그렇지만 기물의 원근 작도와 의습 처리의 입체감, 가벼운 채색의 신선함 등을 통해 서양 회화의 영향과 근대 회화로의 형식적 시취를 느낄 수 있다.

김윤보의 『풍속도첩』  23점으로 꾸며진 김윤보의 『풍속도첩』 가운데 세 장면이다. 김홍도 이후 농촌 풍속도를 총정리해 놓은 것이다. 특히 '타작'(첫번째)에서는 19세기 농민층 분해로 인해 지주층도 가벼운 노동이나마 직접 생산 활동에 참여해야만 했던 당시 실정을 반영하고 있다. 18세기 김홍도 '벼타작'(두번째)의 양반 표정과 좋은 대조를 이루며 변화된 사회상을 보여준다. '처가 방문'(세번째) '소작료 납입'(네번째). 19세기 말. 종이에 수묵 담채. 개인 소장.

『형정도첩(刑政圖帖)』 중 난장  김윤보. 19세기 말. 종이에 수묵 담채. 개인 소장.

『형정도첩』 중 '죄 지은 여인 매질'  김윤보. 『형정도첩』은 당시의 형벌을 증거하는 기록화이다. 특히 당시 관아에서 부당하게 민중들을 탄압했던 여러 비인간적인 체벌들을 증명하는 그림으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

『형정도첩』 중 '도박꾼 체포'  김윤보. 이 화첩의 장면은 김윤보가 직접 사생한 소묘풍이라기보다 이전부터 전해 오는 화본을 참작하여 그린 듯한데 도박장을 덮치거나 포도청 감옥에 음식을 반입하는 장면 등은 김윤보의 독자적인 해석인 것 같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