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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0. 23. 10:58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14 계룡산

 

글 / 정종수●사진 / 서헌강

1998,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3109

 

082

빛12ㄷ  186

 

빛깔있는 책들 186

 

정종수-------------------------------------------------------------------------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으로 있다. 논저로는 「조선초기 상장 의례연구」, 「계룡산의 도참 풍수지리적 고찰」 등 여러 편이 있다.

 

서헌강-------------------------------------------------------------------------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했으며 『샘이 깊은 물』 사진부장으로 있다.  사진집으로는 『한국 근대 100년 풍물전』 『제와장』 등이 있다.

 

|차례|

 

신들의 꽃밭 계룡산

산 이름의 유래

풍수지리적 특징

신도 경영과 국도 시기

명가람을 찾아서

계룡산의 어제와 오늘

드라이브 코스와 등산로

참고 문헌

중악단  신원사 경내에 있는 중악단은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대표적인 제단으로 조선시대에는 왕족이 모셨지만 지금은 일반 신도들이 모신다.

계룡산의 산태극 수태극도  계룡산은 신도안을 중심축으로 산과 물이 자람개비가 돌아가는 것처럼 태극의 모양을 이루어 예로부터 풍수지리적으로 뛰어난 대길지로 여겨졌다.

계룡산 수용추(위, 가운데)와 암용추(아래)  암용과 수용이 지하굴에서 하늘의 부름도 잊고 밀화를 즐기다가 노여움을 사 별거를 하게 되었고 그 뒤 차례로 승천하였는데 이 자리를 암용추, 수용추라 한다. 지하로 굴이 뚫려 잇어 한쪽에서 불을 지피면 연기가 통한다고 한다.

숙모전  처음에는 삼은각이라 했으나 세조 때 계유정난으로 억울하게 죽은 사육신과 단종, 안평대군, 금성대군, 김종서 등 280명의 초혼제를 지낸 뒤 초혼각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그 뒤 1904년 고종이 증축하여 숙모전이라 하였다.

대웅전 내부  내부에는 마루를 깔았고 뒷면 가운데에는 높은 기둥을 세웠으며 여기에 다시 후불벽을 치고 나무로 깎은 후불탱을 걸고 삼존불상을 안치하였다.

동학사 대웅전  경내 중심에 자리잡은 대웅전은 중앙에 장축의 계단을 낸 석축 기단 위에 원형의 주초석을 놓고 배흘림기둥을 세웠다.

삼성각 내부  도교와 불교, 무속이 습합된 삼성각의 내부에는 불단을 설치하였고 중앙의 칠성신을 중심으로 왼쪽에 산신도를, 오른쪽에는 나반 존자상을 봉안하였다.

석조 약사여래 입상  표충원 남쪽 계곡 부근에 자연으로 이루어진 석감 안에 고려 때 것으로 보이는 석조 약사여래 입상이 있다.

갑사 입구의 괴목단  괴목단은 마을의 당산과 같은 유형이다. 구전에 의하면 이 괴목이 영험이 많아 끊겼던 마을 제사를 다시 지내면서 단을 모았다는 뜻에서 괴목단이라 하였다고 한다. 나무 밑줄레가 31.6미터나 된다.

대웅전  19세기 후반에 지은 대웅전은 높은 석축 기단 위에 덤벙주초석을 놓고 둥근 기둥을 사용하여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을 서쪽으로 향하게 세웠다.

대웅전 내부  내고주를 세우고 후불벽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불단을 조성하고 삼존불을 안치하였다.

철당간과 지주  갑사의 철당간과 지주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원위치에 기단부까지 잘 남아 있으며 보물 제256호로 지정되었다.

대적전 앞 부도  고려 전기에 만들어졌으며 팔각의 탑신은 앞뒤 양면에 문과 자물쇠를 표현했고 그 좌우로 사천왕상을 배치하였다. 전체적으로 조각 기법이 탁월하고 웅건한 기상이 넘쳐 흐른다. 보물 제257호로 지정되었다.

갑사 동종  1583년 북방 호한을 평정하고 국왕의 성수를 축원하기 위해 선조 17년에 주조된 이 종은 어깨부터 가슴 부위에 이르기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배 부분부터 하단까지 거의 직선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동종 세부도  석장을 잡고 서 있는 보살 입상(위), 용으로 장식한 동종의 정상부(가운데), 종신에 장식된 9개의 연화문 유두(아래).

신원사 경내.

중악단 앞 5층석탑  신라 석탑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기 석탑으로 현재는 2층 기단 위에 4층의 탑신부만 남아 있다. 이 탑은 이곳이 원래의 신원사 터일 가능성을 보여 준다.

중악단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산신 제단인 중악단은 신원사 경내에 있으면서도 그 배치가 절이나 서원과는 무관한 하나의 독립적인 성소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대문을 열고 본 중악단 전경  다포 팔작집의 화려한 공포 구성을 통하여 건물의 위엄을 자랑하고 잇으며 궁궐형으로 중문, 안문을 닫고 지붕 위에도 궁궐식으로 잡상을 그대로 달았다.

수문장  수문장이 지키는 이중 삼문을 지나야 중악단에 들어갈 수 있다.

중악단 내부  단 가운데에 산신도를 모셨는데 호랑이 모습이 지극히 해학적이다. 이 전에는 위폐가 있었다고 한다.

뒤편 담장  처마, 공포, 담장의 치장 등이 매우 정제되어 궁궐 건축의 의장처럼 우아하면서도 장중한 위용을 간직하고 있어 조선 왕실의 제단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동양 최대의 개태사 가마솥  창건 당시에 제작된 이 솥은 스님들의 식사를 마련할 때 밥이나 죽 또는 국을 끓여 주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다. 현재 충청남도 민속자료 1호로 지정되어 있다.

삼존석불  개태사 법당 안에는 고려 초기에 화강암으로 조성한 석불 3구가 나란히 남쪽을 보고 서 있다. 이 가운데 본존불의 얼굴은 둥근 형상으로 입가에 약간 고졸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법당에 안치되기 이전에 남향으로 서 있는 삼존석불.

남매탑  동학사에서 갑사로 가는 계룡산 동쪽 중턱에 청량사 터가 있는데 이곳에 애틋한 사연을 간직한 남매탑이 사이좋게 서 있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