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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0. 26. 11:11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15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②

 

오주석 지음

2006, 솔

 

 

시흥시대야도서관

EM050131

 

650.4

오76옛 2

 

우리 전통 미술 속에 스며 있는 옛사람들의 참된

마음결과 미의식의 진경眞境을 밝혀낸 명저!

 

조선의 땅에서 살아온 조선의 화가들, 문인들, 그리고 그들의 작품에 보내는 깊은 애정의 눈길을 본 적이 있다. 글씨든 그림이든 그렇게 오랫동안 관찰하며 작품세계에 빠져드는 그의 모습은 늘 경건하였다. 깊고 넓은 통찰력으로 그림 한 점 한 점을 그토록 아름다운 운율로 드러냈던 일은 일찍이 없었다. 우리가 지나쳤던 것, 모르고 있었던 것,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풀어내면서 오주석은 그림에 그려진 나무와 하나가 되고자 했으며 인물이 있으면 그와 하나가 되고자 했으며 마침내 화가와 하나 되어 그와 '놀면서' 흥에 겨워했다. 그는 항상 그림 앞에서 꼼짝 않고 하염없이 뚫어지게 그림 구석구석을 살피곤 하여 그의 그런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한데 홀연히 간 지 벌써 한 해가 지났다. 아! 슬프다. 조선의 그림이 이제 비로소 그 독자적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일본의 학계에서도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이제 누가 그 뒤를 이을 것인가. 늘 중국의 그늘에서 제 모습을 보지 못하였던 조선 그림의 세계를, 뒤에 오는 그 누군가가 그 정신을 이어받아 펼쳐 나가기를 마음 깊이 바랄 뿐이다.

강우방(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초빙교수)

 

오주석吳柱錫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더 코리아헤럴드 문화부 기자, 호암미술관 ·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을 거쳐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간송미술관 연구위원,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겸임교수, 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을 지냈다.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강연을 펼쳤으며, 2005년 2월 지병으로 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단원 김홍도』『단원절세보』『우리 문화의 황금기-진경시대』(공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등이 있다.

 

"우리 조상들의 마음은 늘 자연을 향해 열려 있었다. 수더분하고 맑고 깨끗했던 겨레의 전통문화, 그것을 일구어온 심지는 대자연에 대한 겸허한 마음, 거기서 우러난 생활의 경건함 그리고 지극한 정성스러움이었다. 꼭두새벽 작은 소반 위에 정화수 한 사발을 정갈하게 길어 놓고 아무도 모르게 소망을 빌었던 옛 아낙의 손길은 언제나 천지신명과 일월성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듯 곱고 깨끗한 마음결이 우리 옛 그림은 물론 음악과 무용, 옛 건축과 도자기 그리고 때묻은 목가구며 선인들이 짜낸 낡은 멍석자리 위에도 아직껏 고스란히 스며 있다."

 

차례

 

오주석의 책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출간에 부쳐

책을 펴내며

 

1 소나무 아래 산중호걸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 옛 그림의 표구

 

2 화폭에 가득 번진 봄빛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 문인화, 옛 선비 그림의 아정雅正한 세계

 

3 겨레를 기린 영원의 노래  정선의 <금강전도>

 

4 딸에게 준 유배객의 마음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5 뿌리뽑힌 조국의 비애  민영익의 <노근묵란도>

--- 조선과 이조

 

6 한 선비의 단아한 삶 <이채 초상>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김홍도, 비단에 채색, 90.4×43.8cm, 호암미술관 소장.

 

극사실 묘법을 썼으면서도 전체적으로 호랑이의 육중한 괴량감이 느껴지고 동시에 고양이과 동물 특유의 민첩 유연한 생태까지 실감나게 표현되었다는 점이 정말 경이롭다. 호랑이가 살아 있는 것이다!

 

범걸음이란 몸이 듬직하니 무게가 있으면서도

다리는 가볍고 사뿐사뿐하며, 그러면서도

천천히 놀리는 걸음걸이가 의젓한 것을 말한다.

또 발에 고르게 힘이 들어가 있어 몸이 앞으로 쏠리거나

뒤로 젖혀지지 않으며 허리에 힘이 가득한

느긋하고 여유작작한 걸음이다. <송하맹호도>를 보면

기력 충만한 범걸음이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像圖>

작가 미상, 종이에 채색, 80.3×46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건원릉(健元陵, 조선 태조대왕의 능)의 석호石虎

경복궁 근정전 월대(月臺, 대궐의 전각 앞에 놓인 섬돌)의 백호白虎.

<송하맹호도>의 호랑이 세부.

<송하맹호도>의 여백 구조.

<송하맹호도>의 낙관 세부.

<송하맹호도>의 호랑이 머리 세부.

<까치호랑이>

작가 미상, 종이에 채색, 86.7×53.4cm, 호암미술관 소장.

<까치호랑이>

작가 미상, 종이에 채색, 72×59.4cm, 일본 개인 소장.

<죽하맹호도竹下猛虎圖>

김홍도, 비단에 채색, 91×34cm, 개인 소장.

<죽하맹호도>의 호랑이 세부.

<송하맹호도>의 소나무 세부.

 

사람들 바른 선비 사랑하는 것

범 가죽 좋아함과 비슷하다네

살았을 땐 반드시 죽이려 하고

죽은 뒤에 아름답다 칭찬하니까

人之愛正士 好虎皮相似 生卽欲殺之 死後方稱美

- 남명 조식(1501~1572)

표구를 포함한 <송하맹호도> 전체 모습.

표구를 포함한 <채제공蔡濟恭 초상> 전체 모습.

<선면서원아집도扇面西園雅集圖>

김홍도, 1778년, 종이에 담채, 27.6×80.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김홍도, 종이에 수묵 담채, 117.5×52.2cm, 간송미술관 소장.

 

코앞까지 드리워진 실가지 이파리들을 보라. 마치 하늘에서 꽃비가 오고 있는 양, 가지도 없이 나부끼는 이파리로만 열을 지었다. 그린 이의 가슴 속에 봄볕이 이미 가득한데 구태여 가지까지 그려 넣을 필요가 어디 있으랴!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보인다 함은 아마 작은 것 안에 큰 것이 들어 있으므로

가능하리라. <마상청앵도>에서 큰 것을 머금은 작은 것이 무엇인가?

'시선視線'이다. 저 선비의 기품 있게 들린 고개를 보라.

매혹된 영혼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그 매혹의 대상은

대단한 그 무엇이 아니다. 일상에서 마주친 꾀꼬리 한 쌍일 뿐이다.

선비는 참 풍류를 안다. 그래서 그의 시선이 그림의 주제가 된다.

 

<마상청앵도>의 선비 세부.

 

형태가 닮았는지로 그림을 논한다면

그 식견은 애들 생각이나 마찬가질세

시 짓는 걸 '반드시 이렇게'라고 한다면

진정 시를 아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시와 그림 본래부터 한 가락이니

자연스런 솜씨와 맑고 신선함이 있을 뿐……

 

누가 말했나, 한 개의 붉은 점에도

가없는 봄기운을 모두 부쳐낸다고……

論畵以形似 見與兒童隣 賦詩必此詩 定非知詩人 詩畵本一律 天工與 淸新…… 誰言一點紅 解奇無邊春……

- 소식蘇軾(1036~1101)

<마상청앵도>의 제시 세부.

어여쁜 여인이 꽃 아래에서 천 가지 가락으로 생황을 부나

운치 있는 선비가 술상 위에다 밀감 한 쌍을 올려놓았나

어지럽다 황금빛 베틀 북이여, 수양버들 물가를 오고 가더니

비안개 자욱하게 이끌어다가 봄강에 고운 김을 짜고 있구나

佳人花底簧千舌 韻士樽前柑一雙 歷亂金梭楊柳崖 惹烟和雨織春江

 

 

<마상청앵도>의 구조.

을묘년 풍속병풍 가운데 제3폭 <수운엽출도水耘饁圖>(아래)와 제4폭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위)

김홍도, 1795년, 종이에 수묵담채, 각 100.6×34.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마상청앵도>의 꾀꼬리 세부.

<군선도群仙圖>

김홍도, 1776년, 종이에 수묵 담채, 132.8×575.8cm, 호암미술관 소장.

<지장기마도知章騎馬圖>

김홍도, 1804년, 종이에 수묵 담채, 25.8×35.9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송하담소도松下談笑圖>

이인문 그림 · 김홍도 글씨, 1805년, 종이에 수묵 담채, 109.3×57.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년에 이르러 자못 도道를 좋아해서

늘그막 집 자리를 남산에 터 잡았네

흥이 오르면 매양 혼자 그대로 떠나가니

뛰어난 경개를 그저나만이 알 뿐이라

걸음이 다다르니 물이 끊긴 그곳이요

앉아서 바라보니 구름 이는 그때로다

우연히 숲에서 나무하는 늙은이 만나

웃고 이야기하느라 돌아갈 줄 모르네

中歲頗好道 晩家南山陲 興來每獨往 勝事空自知 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 偶然値林叟 談笑無還期

(왕유의 한시 원문)

 

中歲頗好道 晩家南山陲 行到水窮處 坐看雲時 興來每獨往 勝事空自知 偶然値林叟 談笑無還期 起

(작품에 쓴 김홍도의 글씨)

<송하담소도>의 제시 세부.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

김홍도, 종이에 수묵 담채, 27.9×37cm, 개인 소장.

<단원도檀園圖>

김홍도, 1784년, 종이에 수묵 담채, 135×78.5cm, 개인 소장.

<금강전도金剛全圖>

정선, 1734년, 종이에 수묵 담채, 130.7×94.1cm, 국보 217호, 호암미술관 소장.

 

화성이라고까지 추앙받는 겸재 정선, 그는 과연 이 조물주의 걸작을 어떻게 그렸을까? 정선은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를 한데 묶어 한 개의 동그란 원으로 만들었다. 이 얼마나 대담하고 기겁할 발상인가!

 

일찍이 이광수는 흐린 날 비로봉 정상에 올랐다가

비구름과 안개가 순식간에 스러지며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의 장관이

눈앞에 펼쳐짐을 보고서 "나는 천지창조를 목격하였다!"고

목이 터져라외친 바 있다. 정선의 <금강전도>가 갖는

태극 모양의 간결하면서도 웅대한 구성은 바로 춘원이

도저히 필설로 표현할 수 없었다던 그러한 감개의 형상화다.

 <풍악내산총람도楓岳內山總覽圖>의 혈망봉 세부.

<금강전도>의 구조.

<금강내산도金剛內山圖>

정선, 비단에 수묵 담채, 28.2×33.6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금강전도>의 관지.

<웅연계람도熊淵繫纜圖>의 발문.

 

일만 이천 봉 겨울 금강산의 드러난 뼈를

뉘라서 뜻을 써서 그 참모습 그려내리

뭇 향기는 동해 끝의 해 솟는 나무(神木)까지 떠 날리고

쌓인 기운 웅혼하게 온 누리에 서렸구나

 

암봉은 몇 송이 연꽃인 양 흰빛을 드날리고

반쪽 숲엔 소나무 잣나무가 현묘玄妙한 도道의 문門을 가렸어라

설령 내 발로 직접 밟아보자 한들 이제 다시 두루 걸어야 할 터

그 어찌 베개맡에 기대어 (내 그림을) 실컷 봄만 같으리오!

萬二千峯皆骨山 何人用意寫眞顔 衆香浮動扶桑外 積氣雄蟠世界間

幾朶芙蓉揚素彩 半林松栢隱玄關 縱令脚踏須今遍 爭似枕邊看不慳

 

<사직송도社稷松圖>

정선, 종이에 담채, 61.8×112.2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금강전도>의 제시.

<금강전도>의 기년명과 아래 두 봉우리.

<풍악내산총람도>

정선, 비단에 채색, 100.5×73.6cm, 간송미술관.

<풍악내산총람도>의 사자암 세부.

<금강전도>의 의인화된 봉우리 세부.

<매화쌍조도梅花雙鳥圖>

정약용, 비단에 채색, 44.7×18.5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손바닥만 한 이 화조화가 주는 감동이 남다른 이유는 늙은 가시버시의 남루 위로 앳된 신혼부부의 사랑이 겹쳐진 까닭이 아닐까? 애써 정을 감추는 엄부로만 치부되어 온 조선시대 아버지 상에도 이렇듯 살가운 구석은 따로 있었다.

 

토종 매화는 원래 꽃이 작고 또 드문드문 적게 달린다.

그중에서도 홍매화가 더욱 그렇다. 그러나 향기는 가장 깊고 그윽하다.

<매화쌍조도>는 진자줏빛 꽃받침과 초록빛 햇가지가 한데 어울려

원래는 무척이나 화사하고 색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더욱이 꽃술을 호분으로 하얗게 칠하고 그 끝에는

금빛 도는 노란색으로 꽃가루 하나하나까지 점 찍었음에랴!

<석매도石梅圖>

김수철, 종이에 수묵 담채, 51.8×28cm, 개인 소장.

 

창문 열고 편히 앉아 『주역』을 읽노라니

가지 끝에 흰 것 하나 하늘 뜻을 보이누나

燕坐軒窓讀周易 枝頭一白見天心

<노량주교도섭도鷺梁舟橋渡涉圖>

김홍도, 비단에 채색, 163.7×53.2cm, 호암미술관 소장.

거중기

수원성(화성) 공사 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의 삽도

 

늙은이에게 한 가지 즐거운 일은

붓에 맡겨 마음껏 써나가는 것일세

 

어려운 운자韻字 맞춘다고 신경 안 쓰고

다듬고 고치느라 지체도 않네

 

흥이 나면 그 당장에 뜻을 실리고

뜻이 되면 그 당장에 글로 적을 뿐

 

나는 본래 조선朝鮮 사람이거니와

조선시朝鮮詩를 기꺼이 즐겨 쓴다네

 

시골에서 마땅히 시골 법을 쓴다는데

이러니저러니 말 많은 자 그 누구인가……

 

老人一快事縱筆寫狂詞 競病不必拘 推敲不必遲 興到卽運意

意到卽寫之 我是朝鮮人 甘作朝鮮詩 鄕當用鄕法 迂哉議者誰……

 

가경 18년 계유년(1813년) 7월 14일에 열수옹열洌水翁 정약용이 다산茶山의 동암東菴에서 썼다.

嘉慶十八年癸酉七月十四日 洌水翁書干茶山東菴

<매화쌍조도>의 제시 세부.

 

내가 강진으로 귀양온 지 여러 해 되자, 부인 홍씨가 여섯 폭 낡은 치마를 보내왔는데, 해가 묵어 붉은색이 다 바랜 것이었다. 이것을 오려서 서첩 네 책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주고, 그 나머지로 작은 족자를 만들어 딸아이에게 준다.

余謫居康津之越數年 洪夫人奇敝裙六幅 歲久紅渝 剪之爲四帖 以遺二子 用其餘爲小障 以遺女兒

 

훨훨 날던 저 새가

내 뜰 매화 가지에 머물렀네

맑고 고운 꽃향기를

다소곳이 찾아온 것인가

여기 머물러 여기 살면서

네 가족 모두 즐겁게 지내렴

꽃이 벌써 활짝 폈으니

그 열매도 탐스럽겠지

翩翩飛鳥 息我情梅 有烈基芳 惠然基來 爰止爰棲 樂爾家室 花之旣榮 有賁基實

 

깊숙하고 고요한 대숲 속의 집

창 앞에 서 있는 한 그루 매화

 

꿋꿋이 눈서리를 견디어 내니

말쑥하게 세 속 티끌 벗어났구나

 

해 가도록 꽃 필 뜻 없나 싶더니

봄이 오니 스스로 좋이 피었네

 

그윽한 향기에 정녕 속기俗氣 없어라

붉은 뺨만 사랑함이 또한 아니네

窈窕竹裏館 窓前一樹梅 亭亭耐霜雪 澹澹出塵埃

歲去如無意 春來好自開 暗香眞絶俗 非獨愛紅腮

- 정약용 「집 앞의 홍매紅梅를 읊은 시(賦得堂前紅梅)」

<매화쌍조도>의 새와 꽃 세부.

<정약용丁若鏞 초상>

작자 미상, 종이에 채색, 91.5×53.5cm, 개인 소장.

<자화상自畵像>

윤두서, 종이에 수묵 담채, 38.5×20.5cm, 국보 240호, 개인 소장.

<노근묵란도露根墨蘭圖>

민영익, 종이에 수묵, 128.5×58.4cm, 호암미술관 소장.

 

<노근묵란도>의 난은 버쩍버쩍 타들어 가고 있을지언정 아직도 화폭 위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회한을 획 하나하나 그리고 점점이 그대로 간직한 채……

 

<노근묵란도>의 난은 중국 대가들의 작품보다 더 매섭고

옹골찬 기세를 보인다. 그것은 작품이 기본적으로 민영익의

비극적인 삶에서 연유한 절절한 개인감정으로부터

흘러나온 까닭이겠지만, 한편으론 추사 김정희의 강경하면서도

엄정했던 예술 유산에 힘입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난이란 본래 부드러운 식물이 아니다.

여린 듯한 그 잎사귀를 가만히 만져보라.

민영익 사진.

 

이리 붓 대고 저리 획 긋다 머리칼이 하얗게 세니

깊은 밤 등불 돋우고 『초사』를 읽네

바람겨운잎, 비에 젖은 꽃되는 대로 그리자니

신강申江에 밀물 들어차고 달만 밝구나

東塗西抹成絲 深夜挑燈讀楚辭 楓葉雨花隨意寫 申江潮滿月明時

 

미인을 그리워하여 눈물 닦으며 우두커니 바라보네

길 막히고 중매 끊겼으니, 말을 맺어 전할 수도 없네

思美人兮 擥涕而 媒絶路阻兮 言不可結而

- 굴원

<무근란도無根蘭圖>

정사초, 1306년, 종이에 수묵, 25.7×42.4cm, 오사카시립미술관 소장.

<노엽풍지도露葉風枝圖>

민영익, 종이에 수묵, 31×56cm, 호암미술관 소장.

 

나라(중국) 안에 난 그리는 사람 드무니

마땅히 나라 밖에서 구해야 하리

그대(민영익)는 참된 이치 터득했구려

먹 향기 이파리에 드러나 바람을 타네

海內畵蘭人少 當於海外求之 君家能悟眞諦 墨香露葉風枝

- 포화蒲華

<묵란도>

이하응, 1881년, 종이에 수묵, 개인 소장.

 

너른 밭 물결치는 난 굴원은 많이도 심었으나

먹물로 친 두세 포기 그림 난꽃에 못 미치리

오늘날 나라의 향기 쇠잔하여 다 떨어지고

귀인자제 꽃다운 풀만 하늘 저편에 가득하네

漪蘭九畹誠多種 不及墨池三兩花 此日國香零落盡 王孫芳艸遍天涯

 

정사년(1917년) 10월 원정園丁 민영익의 그림에 제시를 붙여

고우古友 최린 형이 감상토록 드린다. 한강 기슭 늙은 백성 오세창.

丁巳小春題閔園丁畵 古友仁兄雅賞 洌上老艸衣 吳世昌

<백악춘효도白岳春曉圖>

안중식, 비단에 채색, 192.5×5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악춘효도白岳春曉圖>

안중식, 비단에 채색, 130×5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채李采 초상>

작가 미상, 1802년, 비단에 채색, 99.2×58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리 시대도 <이채 초상>과 같이 뛰어난 초상화를 남길 수 있을까? 나는 낙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초상 작가가 드문 까닭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주변에 저 그림의 주인공 같은 인물을 찾아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채 초상>은 한 인물을 핍진하게 묘사한 초상화이지만,

동시에 조선시대 전형적인 선비의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해낸

영원함을 보여준다. 초상 작가의 묘사 능력은 너무나 탁월해서

정면상을 그린다는 작업상의 어려움에 대한 고민을 조금도

느낄 수 없게 한다. 더구나 그는 세련된 기법의 차원을 넘어서서

대상의 본질을 향해 은은한 관조의 빛을 던짐으로써

초상 인물의 고매하고 반듯한 정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었다.

<당 태종 입상唐太宗立像>의 부분

작가 미상, 7세기, 비단에 채색, 271×126.8cm, 타이베이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배우 이치카와 에비조[市川가鰕藏] 초상>

도슈사이 사라쿠[東洲齊寫樂], 1794년, 니시키에[錦繪], 37.8×25.1cm,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서직수徐直修 초상>의 부분

이명기李命基 · 김홍도, 18세기, 비단에 채색, 148.8×72.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재순吳載純 초상>의 부분

이명기, 비단에 채색, 152×89.6cm, 호암미술관 소장.

전傳 <이재李縡 초상>

작가 미상, 비단에 채색, 97×56.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채 초상>의 화찬畵讚 세부.

 

저기 정자관程子冠을 쓰고 주자朱子께서 『문공가례文公家禮』에서 말씀하신 심의深衣를 입고 우뚝하게 꼿꼿이 앉은 이가 누구인가? 눈썹이 짙고 수염은 희며 귀가 높고 눈빛은 환하니 그대가 참으로 이채 계량季亮이라는 사람인가? 지난 자취를 돌아보면 세 고을의 현령, 현감(영유현령과 음죽 · 지례현감)을 지냈고 다섯 주州의 부사, 목사(선산부사府使와 상주, 충주, 나주, 황주목사牧使)를 제수 받았으며, 그 사업을 물으면 네 분 선생님의 글(공자孔子의 『논어論語』, 맹자孟子의 『맹자孟子』, 증자曾子의 『대학大學』, 자사子思의 『중용中庸』)과 여섯 경전(시詩, 서書, 역易, 예禮, 악樂, 춘추春秋)의 공부라고 한다. 하지만 이 혹시 세상 사람들을 속이고 헛된 이름을 도둑질하는 짓은 아닌가? 아! 네 조상의 향리로 돌아가 네 조상의 글을 읽어라! 그러면 그 즐길 바를 어렴풋이 알아 정자程子, 주자朱子의 제자 되기에 부끄럽지 않으리라.

화천 늙은이가 스스로 화제畵題를 짓고 경산 71세(1802년) 늙은이가 쓰다.

彼冠程子冠 衣文公深衣 嶷然危坐者 誰也歟 眉蒼而鬚白 耳高而眼朗 子眞是李季亮者歟 考其迹則三縣五州 問其業則四子六經 無乃欺當世而竊虛名者歟 吁嗟乎 歸爾祖之鄕 讀爾祖之書 則庶幾知其所樂 而不愧爲程朱之徒也歟

華泉翁自題, 京山望八翁書

<이채 초상>의 찬문 부분.

 

높은 관 넓은 띠로 몸가짐은 완연히 예법의 마당에 있고, 흰 머리칼 우뚝한 모습을 바라보니 산림에서 도 닦는 선비 얼굴에 방불하다. 스스로 높다고 여기지 않으나 평범함에서 높이 드러났으며 스스로 맑다고 여기지 않으나 막음이 그 속에 있나니, 이것은 대개 세상이 하나같이 좋아하는 바이다. 속일 수 없는 인품이 연원 있는 샘이나 향기로운 풀과 같은 것은 집안의 가르침을 받들어 온 때문이다. 그 학문이 세대를 이어가며 서로 전해왔는데, 이런 사람을 내가 누군지 알지 못하겠는가? 그 사람은 생각건대 나의 벗, 쉰아홉 살 화천옹이 아닌가?

저암 72세 늙은이(1803년)가 찬문을 짓고 기원 유한지가 쓰다.

峩冠博帶 宛周旋乎禮法之場 皓髮魁覿髴兮 山野之容 不自以爲高 而高出於凡 不自以爲淸 而淸在其中 是蓋世 攸好也 不可誣者 有自之泉芝 家訓所愛也 其爲學則 相傳之箕弓 若是者吾 不知誰歟 其人其惟吾友五十九歲之華泉翁乎 儀

著菴七十二歲翁讚 綺園書

<이채 초상>의 찬문 세부.

 

화락한 모습을 그대 천성에서 얻었으니, 정세하고 순수함이 그대 얼굴에 드러났네. 젊은 날 피어났던 꽃다운 재기才氣를 거두고서 중년에 쌓은 경전經典 공부 그 저력을 더했구나. 하루 종일 마주 대해도 싫증남을 모르겠고, 평생토록 더불어 사귀니 그 독실함을 더욱 보네. 겉모습 맑고 온화함은 화가가 능히 그리지만, 속마음 강직한 절조는 그 친구가 능히 알지. 일찍이 그대 할아버지 도암 이재 선생의 초상을 삼가 뵈었기로 대저 이 정신이 그분 마음과 흡사함을 알겠노라.

원교圓嶠 노인이 찬문을 짓고 송원松園 김이도金履度가 정묘년(1807년)에 쓰다.

豈弟得乎爾性 精粹著乎爾容 斂少日英發之氣 加中歲經術之工 終日相對而未覺其厭 終身與交而益見其篤 外貌之淸和 畵者能寫 哀操之剛介 其友能識 嘗拜 陶菴先生遺像 蓋知此精神之彷彿

圓嶠老人贊 松園丁卯書

<이채 초상>의 얼굴 세부.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