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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8. 31. 13:27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48 관동대로

 

 

신정일 지음

2008, 휴머니스

 

시흥시립대야도서관

SB026066

 

981.102

신74ㄱ

 

· · ·

송강 정철이 관동팔경을 노래한 길

한강 지나 대관령 넘어 동해에 이르는 자연과 생명의 길

서울에서 평해까지 구백이십 리 열사흘 길에 깃든 역사와 문화를 되새긴다.

 

서울에서 평해까지 옛길을 걷다

영남대로와 삼남대로를 다 걷고 나니 왠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그 이유는 평해로, 즉 관동대로를 아직 걷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동대로는 수도 한양과 경기 지방의 동부와 강원도를 이어주는 길이다. 다른 옛길과는 달리 자연이 온전히 보존되어 강바람과 산내음을 즐기며 걸을 수 있었고, 율곡, 신사임당, 김시습, 허균, 정철, 이색 등 역사적 인물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여러 명의 우리땅걷기 도반들이 함께하여 옛길 걷는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지난 몇 년간 사라진 옛길을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영남대로, 삼남대로 그리고 관동대로를 가슴과 발에 새겼다. 답사를 준비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지도 작업이다. 언제나 해왔던 일인데도 새로 걸어가야 할 곳을 살필 때마다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한다. 이제 이 길의 끝에서 새로운 길을 생각한다.

 

한강 물길 지나 대관령 넘어 동해까지

지도 위 점선으로 남겨진 옛길 관동대로를 되짚어본다

 

첫날 흥인지문에서 남양주 다산 생가까지 : 밤마다 길을 걷는 꿈을 꾸다

이틀째 마재에서 용문까지 : 매연은 보약이요 소음은 풀벌레 노랫소리이니

 

사흘째 용문에서 원주 문막까지 : 산속이 넓게 열렸으나 지세가 깊이 막혔고

 

나흘째 문막에서 횡성까지 : 원주는 몰라도 문막은 안다

 

닷새째 횡성에서 문재 정상까지 : 돈 되지 않으면 걷지 마소

 

엿새째 평창에서 대화장까지 : 좋은 경치 기묘하여 그려내기 어렵네

 

이레째 진부에서 횡계까지 : 가을비는 지루한 장마처럼 내리지 않는다

 

여드레째 대관령에서 강릉까지 : 한양에서 나귀 타고 이레 걸린 대관령

 

아흐레째 정동진에서 망상 해수욕장까지 : 길은 거역할 수 없는 나의 운명이다

 

열흘째 동해역에서 삼척까지 :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일수록 준비는 소홀해지고

 

열하루째 삼척 동막에서 호산교까지 : 아는 것이 있어도 아는 척하지 말자

 

열이틀째 삼척 신남리에서 울진 매화리까지 : 타관에서 온 나그네는 바로 길을 묻는 사람

 

열사흘째 매화리에서 평해까지 : 길 끝에서 언제나 또 다른 길은 시작되고

 

 

 

신정일 辛正一

 

그는 여간해서 집에 붙어 있질 않는다.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많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길 위에서 먹고 쉬고 자는 사람이다. 금강, 섬진강, 한강, 낙동강, 영산강을 따라 걸었고, 400개가 넘는 산을 오르내렸다. 최근 몇 년간 조선시대 주요 간선도로 걷기에 집중하여 부산에서 서울에 이르는 구백육십 리 길 영남대로와 해남에서 서울에 이르는 구백이십 리 길 삼남대로를 걸었고, 지난 2007년에는 서울에서 평해에 이르는 구백이십 리 길 관동대로를 열사흘 동안 걸었다. 《관동대로》는 《영남대로》와 《삼남대로》에 이어 '옛길을 걷다' 시리즈를 일단락 짓는 책이다.

혼자 걷는 것만으로는 마음에 차지 않아 20년 전 '우리땅걷기' 모임을 만들어 수천 명의 길동무와 함께 우리 땅 방방곡곡을 걸었다. 그는 요즘 마음이 설렌다. 동해안 해안선을 따라 부산 해운대와 두만강 하구를 잇는 동해 트레일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아직 북녘땅을 밟는 것이 어렵지만 길만 열린다면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순례 길 못지않은 걷기 코스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물론 길이 열린다면, 누구보다 먼저 길을 떠날 사람이다.

그간 두 발로 써내려간 책으로는 《다시 쓰는 택리지》(전 5권),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고을을 가다》(전 3권), 《한강 따라 짚어가는 우리역사》, 《영남대로》, 《삼남대로》등이 있다. 그 외 《한국사의 천재들》(공저),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공저),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 《똑바로 살아라》등 다양한 역사교양서를 집필했다.

 

차례

 

서문  과거와 현재가 살아 숨 쉬는 관동대로

 

첫 구간

 

첫 구간 지도

 

첫날  | 밤마다 길을 걷는 꿈을 꾸다 |

             흥인지문에서 남양주 다산 생가까지

 

              시작이 반이다 | 동대문에서 만난 나그네들 | 십리 갈 길손과 천리 갈 길손의 차이 | 서

              울을 떠나면서 | 신설동을 지나서 가는 관동대로 | 중랑천 아래를 흐르는 냇물 | 망우리

              고개를 넘자 구리에 이르고 | 나그네가 나그네에게 길을 묻다 | 그 이름 높았던 석실서원

              | 내일이면 나는 도로 산으로 가네 | 김씨가 사라진 자리에 조씨가 들어서다 | 평구에서

              총총히 작별 인사 나누면서 | 한강물이 크게 소가 되었으니 덕소 | 길을 나섰으니 돌아갈

               길이 없다 | 다산이 태어난 늠내리

 

이틀째  | 매연은 보약이요 소음은 풀벌레 노랫소리이니 |

                마재에서 용문까지

 

               두 강줄기가 모이는 모서리 | 지난 일 아득해 온통 꿈인데 | 서거정이 극찬한 수종사 | 모

               든 길은 매연과 소음으로 넘쳐나고 | 귀와 눈은 열고 마음은 비우고 | 누 밖에는 긴 강이

               요 들 밖에는 산인데 | 양근나루는 서울로 가던 길목 | 길은 흐르는 강과 같다 | 정다운

               사람과 이별할 적에

 

사흘째  | 산속이 넓게 열렸으나 지세가 깊이 막혔고 |

                용문에서 원주 문막까지

 

                꿈속에서 꿈을 꾸다 | 산속이 넓게 열렸으나 지세가 깊이 막혔고 | 한가한 가운데 일이

                많으니 산 구름이 웃는다 | 남쪽 고개 구름은 북쪽 고개 구름과 잇닿아 있고 | 구둔재를

                넘어가는 길 | 제대로 된 길만 만나도 행복하다 | 재는 넘을수록 높고, 내는 건널수록 깊

                다 | 걱정도 쓰라림도 먹은 뒤 이야기 | 밤이 오면 쉴 곳이 있을 것인가 | 문막다리로 해

                서 문막장 보러 다녔어 | 관리들 욕을 했던 욕바위 | 달래강이 변하여 섬강이 되다

 

나흘째  | 원주는 몰라도 문막은 안다 |

                문막에서 횡성까지

 

                잠이 보약이다 | 조엄의 묘가 있는 작동 | 반가운 나그네는 오면 반갑다 | 십리 밖에 서

                있어도 오리나무 | 들이 적어 부드럽고 근면하다 | 실로 동쪽 지방의 아름다운 고을이다

                | 보부상들이 자주 드나들었던 원주 | 남이 갓 쓰고 장에 가니 투가리 쓰고 간다 | 뭐 할

                라고 걸어가요 | 치악산에 얽힌 전설 | 게으른 놈이 책장 센다 | 달을 보고 그해의 농사

                를 점치다 | 마고 할미 전설이 깃든 들언지 바우 |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만 남았다

 

닷새째  | 돈 되지 않으면 걷지 마소 |

                 횡성에서 문재 정상까지

 

                 어딜 가나 돈타령 | 여기는 전재 정상입니다 | 안흥에서 찐빵을 안 먹고 갈 수 있나 | 그

                 리운 송이버섯 향기 | 골짜기가 좁아 사람 살 곳은 적은데

 

두 번째 구간

 

두 번째 구간 지도

 

엿새째  | 좋은 경치 기묘하여 그려내기 어렵네 |

              평창에서 대화장까지

 

                 할 말은 조금 남겨두라 | 가을 산이 능히 병객을 치료한다 | 옛 역이 깊은 산속에 자리하

                 여 | 나그네 가는 길이 많이 높아서 | 이원수와 주모가 만난 대화 주막 | 율곡의 어머니

                 사임당 신씨 |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 | 대화리 서쪽에 있는 아홉사리고개

 

이레째  | 가을비는 지루한 장마처럼 내리지 않는다 |

              진부에서 횡계까지

 

                  길이 끝나는 산에 구름은 잔뜩 끼어 있고 | 이별의 장소, 누정 | 정자는 사람이 모이고

                  머무르는 곳 | 내 속은 온통 따뜻해 | 적멸보궁이 있는 상원사 | 비 내리는 옛길을 걸으

                  며 | 두메산골 횡계리의 탈바꿈 | 대관령의 첫머리 횡계

 

여드레째  | 한양에서 나귀 타고 이레 걸린 대관령 |

                대관령에서 강릉까지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서다 | 길은 국사성황당에 이르고 | 울면서 넘고 넘어와 웃는 대

                    관령 | 강릉의 산수가 천하의 제일 | 강릉 김씨의 시조 | 길손들이 쉬어가던 제민원 |

                    강릉부 서쪽에 있던 구산역 | 몇 집 되는 초가집은 모두 그림 같아 | 김씨, 치씨, 소나

                    무가 많다 | 관동별곡의 고장 | 허균과 허난설헌 | 걷는 것은 중노동이다 | 채재공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 | 오늘 못 가면 내일 가면 되지

 

아흐레째  | 길은 거역할 수 없는 나의 운명이다 |

                정동진에서 망상 해수욕장까지

 

                    안인진에 있는 해령사 | 바닷가 마을 정동진 | 마음 졸이며 밤재 터널을 지나다 | 맑은

                    물 흐르는 옥계 | 걷는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안다 | 길은 거역할 수 없는 나

                    의 운명이다

 

세 번째 구간

 

세 번째 구간 지도

 

열흘째  |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일수록 준비는 소홀해지고 |

                동해역에서 삼척까지

 

                    여행, 삶의 또 다른 축복 | 어둠 속에서 길은 시작되고 | 그대여 묵호를 아는가 | 가을

                    풍경이 절정인 죽서루 | 육향산 아래에 있는 척주동해비 | 나그네는 조그마한 일에도

                    감격해야 하고 | 기러기는 저물어도 쉬지 않는다 | 길은 늘 내 삶의 곁에 있고

 

열하루째  | 아는 것이 있어도 아는 척하지 말자 |

                 삼척 동막에서 호산교까지

 

                      공양왕 무덤이 있는 궁촌 |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 | 아름다운 초곡입니다 | 한

                      줄기 저녁노을에 산이 붉게 물든다 | 세월의 무게가 쌓인 돌무더기 | 진달래가 두 번

                      피면 가을날이 따뜻하다 | 믿을 것은 지도뿐인데 | 이 길이 아닌가 보다 | 소공령을

                      지나가는 차마고도 | 오후가 저무는 길가에서 홍시를 따다

 

열이틀째  | 타관에서 온 나그네는 바로 길을 묻는 사람 |

                  삼척 신남리에서 울진 매화리까지

 

                       점선이 보이는 길에 옛길이 남아 있고 | 옛길 그대로 남아 있는 관동대로 | 싼값으

                       로 열남도 되고 열녀도 되고 | 날마다 맛 좋은 집 | 나뭇잎 밟는 소리를 선물로 주다

                       | 남사고를 모신 화산사 | 나그네 베개에 날이 차니 꿈 못 이루는데 | 망양정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니 | 남사고가 태어난 수곡리 | 성류굴이 있는 울진 | 길에서 아는 사

                       람을 만나다

 

열사흘째  | 길 끝에서 언제나 또 다른 길은 시작되고 |

                  매화리에서 평해까지

 

                       11번지가 좋으니 걸을 수 있다 | 망양정이 나라 안에 으뜸가는 정자 | 누가 꽃을 꺽

                       어줄 것인가 | 울진과 평해의 경계 망양교 | 옛길에 새로운 길이 들어서고 | 마지막

                       으로 무를 서리하다 | 비단같이 맑았던 금강 | 소나무 숲 너머로 달이 떠오르고 | 이

                       산해의 유배지 평해 | 월송 황씨의 본고장 월송리 | 중봉 조헌의 유배 생활 | 어딘가

                       로 늘 떠나는 꿈을 꾼다 | 평해는 군이었다

 

우리땅걷기 길벗들의 답사 후기

역사의 길에 발자취를 남기다

정말 원한다면 길을 나서라

 

18세기 진경문화와 북학사상의 산실이었던 석실서원 터

서원부원군 한확의 묘와 다산 정약용 생가가 있는 능내리

양문에서 지평으로 넘어가는 그루(그릇)고개

택풍당 입구 표지석

섬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한 김제남 신도비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의 무덤 근처에 세워 죽은 이를 기리는 비석이다. 김제남은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의 아버지로, 광해군 때 외손자 영창대군의 역모사건에 휘말려 사약을 받고 죽었다. 인조반정 이후 복권되어 신도비가 세워졌다.

가파른 고개를 올라가 만난 교항리 석조 불두  임진왜란 때 왜병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오지만 토속적인 얼굴과 머리만 따로 지연석 위에 올려놓은 양식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흥 찐빵 축제를 위해 만들어놓은 섶다리아 징검다리

더운 날씨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자 나타난 문재 터널

대관령 옛길 표지석

관동팔경의 하나인 삼척 죽서루

척주동해비

삼척 소공대비  황희 정승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월송리 소나무 숲

월송정 관동팔경의 하나로 울진 평해에 있다.

 

 

 

 

posted by 황영찬
2018. 8. 24. 15:48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47 고구려 소수림왕 6 구부의 꿈

 

 

 

김진명 역사소설

2016, 새움

 

대야도서관

SB112084

 

813.7

김78ㄱ  6

 

"공자를 폐하고

한(漢)의 바다를

멸하리라!"

 

미천왕 을불, 고국원왕 사유, 이후 4년,

긴 침묵 끝에 소수림왕이 되어 돌아온 김진명!

진정한 <고구려>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진명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작가이다. 대부분은 작가들이 신춘 문예나 전국적인 규모의 문학상을 통해서 등단한 반면 김진명은 그러한 이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말 그대로 장편 소설 두 권으로 문단에 나타나서 천문학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자리 잡았다. 그 후로 발표하는 소설마다 김진명은 대중적인 호응을 얻으며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만한 대중적 인기를 가진 작가는 한국에 드문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김진명은 문학적인 평론에 있어서는 그리 큰 작가로서 취급되고 있지는 못하다. '극단적 민족주의자'라거나 '과도하고 거친 상상력의 작가'라는 편이 김진명을 따라다니는 일종의 꼬리표이다. 그러나 작가 자신은 그러한 평가에 신경쓰고 있지 않다. 작가 자신은 "다만, 나는 작품 한 편 한편마다에 목숨을 다해 내가 아닌 우리의 문제를 담아낼" 뿐이라 답하고 있다.

문학이나 습작과는 거리를 가졌던 김진명은 어려워진 가정 형편과 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불행을 당한 형의 영향을 받으며 소설가가 되었다고 한다. 김진명의 문제 의식은 체계적이고 정돈된 서구 사회와 한국 사회의 차이점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의 문제 의식은 한국 사회가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인가이다. 그런 점에서 김진명은 과거 한국의 현대사를 뒤돌아보고 다양한 시각에서 문제들을 검토하고자 노력한다. 그 결과 그의 소설들은 통념을 뒤집는 역사 해석과 인물 평가, 사건 이해를 함축한다. 아마 이 과감한 문제 제기와 이해 방식이 독자를 김진명의 소설로 끌어들이는 주요한 흡인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속도감있는 김진명의 문체 역시 독자들이 소설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흥미롭게도 김진명은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꼽고 있다. 김진명은 이 책이 주는 주제 의식뿐만 아니라 글쓰기의 간명함에 감동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김진명은 간단하고 명확한 글을 쓰고 있으면 그 글은 대중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김진명의 대표작으로는 한일 관계의 새로운 지형도를 펼쳐 보임으로써 베스트셀러가 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일제의 문화재 약탈과 광개토대왕비의 비밀을 파헤친 『몽유도원(구판 : 가즈오의 나라)』, 금융 대란과 함께 찾아온 우리의 정신 문화 위기와 그 극복을 위한 『하늘이여 땅이여』, 한국 현대사 최대의 미스터리 10.26을 통해서 미묘한 한미 관계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보여준 『1026(구판 : 한반도)』, 고대사 문제를 새롭게 조명해낸 『천년의 금서』,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나라 고구려의 이야기를 최근의 국제정세와 함께 풀어낸 『고구려』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차례

 

한(漢)의 바다

누구의 탓인가

구부의 손바닥

부처의 여인

선비

보이지 않는 것들

복조리나 주어라

흙색 깃발 아래서

불편한 군사

하나뿐인 벗

제왕과 공자

뿌려두었던 씨앗

혼자라도 가겠다

서어산

모용선비의 왕

요서 정벌

두 전쟁

서어산에 오른 불길

왕위에 어울리지 않는다

구부의 군사

 

 

posted by 황영찬
2018. 8. 21. 12:28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46 고구려 고국원왕 5 백성의 왕

 

 

김진명 역사소설

2016, 새움

 

능곡도서관

SF081805

 

813.7

김78ㄱ  5 c. 5

 

"우리 젊은이들이

           <삼국지>를 읽기 전에

    <고구려>를 먼저 알기 바란다."

 

김진명

 

부산 출생. 첫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후 발표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현실과 픽션을 넘나들며 시대의 첨예한 미스터리들을 통쾌하게 해결해주고, 일본ㆍ중국의 한반도 역사 왜곡을 치밀하게 지적하는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이다. 그의 소설들이 왜 하나같이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는지, 그의 작품을 읽어본 이들은 알고 있다. 뚜렷한 문제의식을 지닌 작가, 김진명. 그의 작품으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베스트셀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비롯해, 철저한 고증으로 대한민국 국호 韓의 유래를 밝힌 <천년의 금서>,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어떤 역사논리로 이루어졌는가를 명확히 규명한 국보급 대작 <몽유도원>, 충격적인 명성황후 시해의 실체를 그린 <황태자비 납치사건>, 한국 현대사의 최대 미스터리 <1026>, 한국인을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힘을 그린 밀리언셀러 <하늘이여 땅이여>, 인류를 구원할 마지막 지혜를 다룬 <최후의 경전>,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그려낸 <카지노> 등과 자신의 집필과정을 기록한 작품 <대한민국 7대 미스터리-김진명 작가노트>가 있다.

 

차례

 

꿈은 징조가 아니다

다 묶지 못한 매듭

오늘을 보고, 내일을 보고

사유의 길

사신은 어디로

대륙을 자르다

평곽의 전화

재사의 길

흩어지다

누구를 위한 나라이냐

알 수 없는 소년

해를 쫓는 이유

이상한 장군

구부의 소

약속을 지키다

형제가 건넨 붉은 꽃

최후의 전쟁

태왕은 존재해야 하는가

기다리는 이 없어도

간도, 쓸개도, 염통도

농부가 밉구나

이련의 분노

백성의 왕

 

 

 

 

posted by 황영찬
2018. 8. 17. 13:30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45 고구려 고국원왕 4 사유와 무

 

 

김진명 역사소설

2016, 새움

 

능곡도서관

SF081804

 

813.7

김78ㄱ 4 c. 5

 

"우리 젊은이들이

           <삼국지>를 읽기 전에

    <고구려>를 먼저 알기 바란다."

 

김진명

 

부산 출생. 첫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후 발표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현실과 픽션을 넘나들며 시대의 첨예한 미스터리들을 통쾌하게 해결해주고, 일본ㆍ중국의 한반도 역사 왜곡을 치밀하게 지적하는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이다. 그의 소설들이 왜 하나같이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는지, 그의 작품을 읽어본 이들은 알고 있다. 뚜렷한 문제의식을 지닌 작가, 김진명. 그의 작품으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베스트셀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비롯해, 철저한 고증으로 대한민국 국호 韓의 유래를 밝힌 <천년의 금서>,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어떤 역사논리로 이루어졌는가를 명확히 규명한 국보급 대작 <몽유도원>, 충격적인 명성황후 시해의 실체를 그린 <황태자비 납치사건>, 한국 현대사의 최대 미스터리 <1026>, 한국인을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힘을 그린 밀리언셀러 <하늘이여 땅이여>, 인류를 구원할 마지막 지혜를 다룬 <최후의 경전>,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그려낸 <카지노> 등과 자신의 집필과정을 기록한 작품 <대한민국 7대 미스터리-김진명 작가노트>가 있다.

 

차례

 

모용황

아버지와 아들

고구려의 두 왕자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동맹제

태자 책봉

왕자의 슬픔

을불의 이유

노장의 귀환

최비의 웅지

동맹군

번개가 가른 성패

눈 위에 서리가 내리고

잘못 뿌린 씨앗

동맹의 끝

모용부의 천하

색다른 태자

모용부의 사유

뜻밖의 구원자

하성 공방

여노

한순간의 분노

창조리의 길

잘못 쏘아진 화살

엇갈린 칼

남자의 사랑

미천왕

 

 

 

posted by 황영찬
2018. 8. 16. 11:25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44 고구려 미천왕 3  낙랑 축출

 

 

김진명 역사소설

2012, 새움

 

시흥시중앙도서관

SA219275

 

813.7

김78ㄱ 3 c. 2

 

"우리 젊은이들이

           <삼국지>를 읽기 전에

    <고구려>를 먼저 알기 바란다."

 

김진명

 

부산 출생. 첫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후 발표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현실과 픽션을 넘나들며 시대의 첨예한 미스터리들을 통쾌하게 해결해주고, 일본ㆍ중국의 한반도 역사 왜곡을 치밀하게 지적하는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이다. 그의 소설들이 왜 하나같이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는지, 그의 작품을 읽어본 이들은 알고 있다. 뚜렷한 문제의식을 지닌 작가, 김진명. 그의 작품으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베스트셀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비롯해, 철저한 고증으로 대한민국 국호 韓의 유래를 밝힌 <천년의 금서>,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어떤 역사논리로 이루어졌는가를 명확히 규명한 국보급 대작 <몽유도원>, 충격적인 명성황후 시해의 실체를 그린 <황태자비 납치사건>, 한국 현대사의 최대 미스터리 <1026>, 한국인을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힘을 그린 밀리언셀러 <하늘이여 땅이여>, 인류를 구원할 마지막 지혜를 다룬 <최후의 경전>,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그려낸 <카지노> 등과 자신의 집필과정을 기록한 작품 <대한민국 7대 미스터리-김진명 작가노트>가 있다.

 

차례

 

서진의 조건

숙신의 반란

두 역적

천하지계

낙랑의 두 여인

최비의 분노

개마대산의 전설

칼을 빌리는 꾀

진군보다 어려운 퇴군

사면초가

혼례 비용

기다림의 끝

물러서는 사람과 끌어내는 사람

서안평

십 년을 기다린 서진

두 개의 깃발, 두 개의 봉화

이상한 선봉군

인과의 힘

숫자의 비밀

신출귀몰한 용병

무계의 계

장창 방진

낙랑 축출

 

 

 

 

posted by 황영찬

2018-042 고구려 미천왕 2 다가오는 전쟁

 

 

 

김진명 역사소설

2016, 새

 

능곡도서관

SF081802

 

813.7

김78ㄱ 2 c. 5

 

"우리 젊은이들이

           <삼국지>를 읽기 전에

    <고구려>를 먼저 알기 바란다."

 

김진명

 

부산 출생. 첫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후 발표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현실과 픽션을 넘나들며 시대의 첨예한 미스터리들을 통쾌하게 해결해주고, 일본ㆍ중국의 한반도 역사 왜곡을 치밀하게 지적하는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이다. 그의 소설들이 왜 하나같이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는지, 그의 작품을 읽어본 이들은 알고 있다. 뚜렷한 문제의식을 지닌 작가, 김진명. 그의 작품으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베스트셀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비롯해, 철저한 고증으로 대한민국 국호 韓의 유래를 밝힌 <천년의 금서>,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어떤 역사논리로 이루어졌는가를 명확히 규명한 국보급 대작 <몽유도원>, 충격적인 명성황후 시해의 실체를 그린 <황태자비 납치사건>, 한국 현대사의 최대 미스터리 <1026>, 한국인을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힘을 그린 밀리언셀러 <하늘이여 땅이여>, 인류를 구원할 마지막 지혜를 다룬 <최후의 경전>,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그려낸 <카지노> 등과 자신의 집필과정을 기록한 작품 <대한민국 7대 미스터리-김진명 작가노트>가 있다.

 

차례

 

숙신

주 대부의 시련

군사 원목중걸

최비의 셈법

한상보도

일진일퇴

밥 푸는 을불

아달휼

을불, 숙신을 얻다

세상에 나온 청패

병법을 역이용하다

옥에 갇힌 재사

대방지계

재사의 정체

번나발과 태수

최비의 초청

동생이 되어버린 모용외

다루를 찾는 부녀

숙신의 세월

창조리의 손님

기상천외의 지략

평양성

 

posted by 황영찬

2018-041 고구려  미천왕 1 도망자 을

 

 

김진명 역사소설

2016, 새움

 

능곡도서관

SF081801

 

813.7

김78ㄱ  1 1

 

"우리 젊은이들이

           <삼국지>를 읽기 전에

    <고구려>를 먼저 알기 바란다."

 

김진명

 

부산 출생. 첫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후 발표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현실과 픽션을 넘나들며 시대의 첨예한 미스터리들을 통쾌하게 해결해주고, 일본ㆍ중국의 한반도 역사 왜곡을 치밀하게 지적하는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이다. 그의 소설들이 왜 하나같이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는지, 그의 작품을 읽어본 이들은 알고 있다. 뚜렷한 문제의식을 지닌 작가, 김진명. 그의 작품으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베스트셀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비롯해, 철저한 고증으로 대한민국 국호 韓의 유래를 밝힌 <천년의 금서>,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어떤 역사논리로 이루어졌는가를 명확히 규명한 국보급 대작 <몽유도원>, 충격적인 명성황후 시해의 실체를 그린 <황태자비 납치사건>, 한국 현대사의 최대 미스터리 <1026>, 한국인을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힘을 그린 밀리언셀러 <하늘이여 땅이여>, 인류를 구원할 마지막 지혜를 다룬 <최후의 경전>,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그려낸 <카지노> 등과 자신의 집필과정을 기록한 작품 <대한민국 7대 미스터리-김진명 작가노트>가 있다.

 

차례

 

작가의 말

 

마성의 등장

을불

낙랑군

떠나는 을불

세 가지 물음

저가와 여노

엉뚱한 상인

재색을 겸비한 여인

모용외

두 영웅, 마주치다

낙랑지계

직찰대

백제의 자객

깊고 깊은 계략

양운거

 

posted by 황영찬

2018-040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① 고조선 · 삼국

 

 

 

서의식 지음

2015, 가람기획

 

대야도서관

SB108495

 

911

뿌298ㄱ2 1

 

쟁점과 사료로 풀어쓴 새로운 한국사

 

풍부한 사료와 충실한 해설로 다시 읽는 한국사

 

고조선의 건국에서 신라의 삼국통일까지

우리 역사의 시원 속으로!

 

사람이 제구실을 하며 올바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를 하나만 지적해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來歷을 거짓이나 꾸밈없이 제대로 기억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려 부모와 형제, 스승과 친구를 알지 못하고 자기가 누군지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인지도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다면 설령 그 삶이 유복하더라도 그것을 그의 정당한 삶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을 잘 기억하는 것은 곧 나를 나일 수 있게 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그리고 그 기억은 거짓 없는 사실에 기초한 것이어야만 한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해도 진짜라고 믿었던 집안의 족보가 조작되었다면 자기의 뿌리를 의심하고 방황하게 될 것은 당연한 일일 터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을 우리는 ‘역사歷史’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역사를 자신의 존망을 걸고 똑바로 알아야만 한다. 역사란 그저 단순한 호기심에서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자기 역사를 모르고서는 사람이 제 구실을 할 수가 없고 자기 역사를 잘못 알아서는 남의 삶을 사는 것이 되기에, 정신을 차리고 온갖 힘을 다하여 이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같은 이치로, 우리가 한국 사람으로서 이 시대를 올바로 살아가려면 우리 역사 곧 국사를 바르게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국사는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에 대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개정 신판 간행사」에서

 

지은이

서의식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및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사학과에서 문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신라의 정치구조와 신분편제』(2010), 『한국고대사의 이해와 ‘국사’ 교육』(2010)이 있다.

 

차례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개정 신판 간행사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초판 간행사

「고조선 · 삼국편」 전면 개정판 머리말

초판 머리말

 

Ⅰ. 원시

        1. 지금 우리가 사는 땅에 인류가 처음 등장하다

           인류의 등장과 현생인류의 시작

        2. 우리 조상들이 요서 지방에 터전을 마련하다

            빗살무늬토기 문화와 동이

        3. 원시의 동이 사회에서 문화가 일어나다

            동이 문화의 발흥

        4. 황하 유역의 세력과 다투며 요서의 예맥 사회가 요동치다

            동이 사회의 변동

        5. 인의를 중시한 예맥 문화가 사방으로 전파되다

            예맥 사회와 문화

 

Ⅱ. 고대 사회의 형성

        1. 청동기 시대가 열리다

            청동기 문화의 성격과 전개

        2. ‘단군사화’가 담고 있는 우리나라 고대사상像

            단군사화의 내용과 그 역사성

        3. 단군왕검이 조선을 건국했으나 정권을 기자에게 넘기다

            왕검조선의 건국과 사회 변동

        4. 기자조선(진국)에서 삼한이 나오다

            기자조선과 진국

        5. 위만조선과 진국의 지배층이 따로 살길을 찾다

            위만조선의 흥망과 예맥 사회의 변동

        6. 예족의 일부가 동진하여 따로 나라를 세우다

            부여 · 예 · 옥저

 

Ⅲ. 고대 사회의 재편

         1. 진국체제의 부활을 꿈꾸며 진한이 신라로 일어서다

             진한과 신라

         2. 고구려가 건국하여 북방의 여러 나라를 통합하다

             고구려의 건국

         3. 백제가 건국하여 마한을 재편하다

             백제의 건국

         4. 변한 제국이 가야 연맹을 결성하다

             가야와 변한

         5. 예맥족 일부가 바다를 건너 일본 열도로 향하다

             예맥족의 일본 열도 도항 이주

 

Ⅳ. 고대의 정치 체제와 사회 구성

        1. 지배층과 피지배층

            제가와 하호

        2. 함께 논의하고 합의하여 정치를 운영하다

            공론·합의 기구와 정치 체제

        3. 통치 계급의 두 부류

            수장층과 종사자층

        4. 이중적 신분 구성

            신라의 골품 제도와 중위제

        5. 지방에 살아도 부에 소속한 사람이 서울 사람이었다

            왕경인과 지방민

 

Ⅴ. 고대 정치의 전개

        1. 부 중심으로 권력을 나누고 지방을 지배하다

            삼국의 부와 부체제

        2. 율령을 반포하여 국가 체제를 정비하다

            삼국의 율령과 그 성격

        3. 왕족을 지방 장관으로 파견하여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다

            중앙집권적 지배 체제의 성립과 운용

        4. 지배층에게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주다

            식읍과 녹읍

        5. 국왕이 빈민을 구휼하고 민생을 돌보다

            진대법과 제방 · 시사

 

Ⅵ. 고대의 문화

         1. 고구려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고분벽화

             고구려 고분벽화와 그 세계

         2. 삼국이 불교를 받아들이다

             삼국의 불교 수용

         3. 무령왕릉에 숨겨진 백제의 역사와 문화

             무령왕릉

         4. 백성을 가르치고 인재를 양성하다

             삼국의 교육제도

         5. 신라가 젊은 인재를 양성하다

             화랑과 국선

         6. 역사를 편찬하다

             삼국의 역사 편찬

         7. 백제가 요서 지방을 영유하고 일본과 교류하다

             백제의 해외진출과 교린

         8. 삼국이 일본에 문화를 전하다

             삼한 · 삼국 유민의 일본 열도 진출

 

Ⅶ. 통일전쟁의 전개

         1. 삼국이 통일을 위해 다투다

             삼국 통일전쟁의 기본 줄거리

         2. 고구려가 영토를 크게 확장하여 고조선의 옛 땅을 많이 회복하다

             광개토대왕릉비

         3.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다

             진흥왕 4대 순수비와 적성비

          4. 고구려, 수·당의 침입을 물리치다

              살수대첩과 안시성 싸움

          5. 삼국통일의 역사성과 의미

              신라의 삼국통일과 그 의미

 

부록

        고조선·삼국 왕 계보도

        연표

        찾아보기

        각 장별 아이콘 설명

 

 

홍적세 후기의 한반도와 주변 지형

홍적세는 세계적으로 기후가 매우 추웠던 시기로 빙하시대라고도 한다. 200만 년 전에 시작해 1만 2000년 전쯤에 끝났다. 오늘날 한반도 지형은 마지막 빙하기인 뷔름빙기가 끝나고 충적세(마지막 홍적세 빙기인 뷔름빙기가 끝나서 기후가 따뜻해진 뒤부터 현재까지로 후빙기라고도 한다)로 접어든 1만 2000년 전에 이루어졌다. 이때 빙하가 녹아서 올라간 해수면 높이가 100m 이상이나 되었다고 한다.

라미피테쿠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우리나라 구석기 유적 분포도

우리나라 구석기 시대 유적은 1935년 함경북도 동관진(오늘날 온성군 강안리)에서 처음 발견한 이래 지금까지 50곳 정도 더 발견했다. 남한에서는 1964년에 공주 석장리에서 구석기 유적을 찾아낸 뒤로, 1978년에는 연천 전곡리, 1988년에는 파주 가월리와 주월리에서 국제 학계에 주목을 받은 대규모 구석기 유적을 찾아냈다. 하지만 유물 연대와 성격 등은 여러 설이 제기되어 아직 정확한 판단은 내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연천 전곡리 주먹도끼(양면핵석기)

외날찍개(위)와 쌍날찍개(아래)

주먹도끼는 재료가 되는 돌에서 먼저 큰 파편을 떼어낸 다음, 떼어낸 돌의 양면을 돌아가며 엇갈리게 쳐서 만들었다. 손에 쥐고 사용했기 때문에 주먹도끼라고 부르며, 양면을 떼어내고 알맹이를 썼기 때문에 양면핵석기라고도 부른다. 프랑스 아슐에서 이 같은 주먹도끼가 처음 발견되었기 때문에 흔히 아슐리안형 석기라고 부른다. 구석기인들은 처음에 냇돌이나 돌덩이의 한쪽 면을 떼어서 날을 세운 찍개를 썼지만, 이어서 손에 쥐기 좋도록 형태를 다듬은 주먹도끼로 발전시켰다.

석기 만드는 방법

복원된 흥수아이 1호

충북 청원군 문의면 노현리 두루봉 흥수굴에서 나온 어린아이 뼈를 복원한 모습. 흥수굴에서는 5~7세 정도인 두 어린아이 뼈가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나왔다.

간석기

돌 전면을 갈아 만든 것이 많지만, 연대가 오래된 것 가운데는 필요한 부분만 갈아 만든 것도 적지 않다. 신석기 시대부터 간석기를 만들어 썼으나, 청동기 시대에 들어와 종류가 다양해지고 형태가 정형화되었다. 청동기 시대에도 농기구는 여전히 석기였다.

여러 가지 고기잡이 도구

서울 암사동 움집 마을 복원

1925년 한강 대홍수 때 일부가 망가진 채로 발견된 이후 1967년부터 다시 몇 차례 발굴 조사한 결과, 수렵 · 채집으로 생활하며 마을을 이룬 듯한 집터 5기와 빗살무늬토기 몇 점, 그리고 돌도끼 · 돌화살 등 석기가 많이 나왔다. 집터는 둥근꼴과 사다리꼴로 된 길이 5.5m, 깊이 1m인 움집터로 화덕 자리도 있었다. 유물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해보니 기원전 3000년으로 나왔다.

조가비 가면

부산 동삼동 신석기 유적에서 나왔으며, 주술사가 악귀나 재액을 물리치는 데 쓴 듯하다.

여신의 얼굴

우하량 여신묘 유적에서 출토된 높이 22.5cm, 폭 23.5cm의 여성 두상이다. 앞면은 선홍색을 띠며, 입술 부분에는 홍색 칠을 했다. 머리 뒤쪽 부분은 없는 데 형태로 보아 벽에 붙였던 것으로 추츨된다.

곰발소조

우하량 여신묘에서 발견된 곰발 모양의 소조. 이로써 제사의 주신이 웅녀였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해졌다.

우하량 2지점 발굴 당시

우하량 2지점 제단

동산취 원형 제단

동산취 유적의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원형 제단이다. 동산취 유적은 야트막한 구릉들이 널리 펼쳐진 지역에서 그중 가장 높은 구릉의 정상에 조성되어 다른 구릉들에서 우러러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사해 출토 토기(위), 국보 195호 토우장식장경호(아래)

요녕성(遙寧省) 부신(阜新) 사랍향(沙拉鄕) 사해(査海)에서 출토된 토기(위). 두꺼비와 뱀(용)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국보 195호 신라 토우장식항아리(아래)에 같은 주제의 토우 장식이 보인다.

반달모양돌칼

곡식의 낟알을 거두는 데 쓰던 청동기 시대 도구. 한쪽이 곧고 다른 한쪽의 둥근 모양이 마치 반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돌칼의 한복판이나 등 쪽에 구멍이 한 개 내지 두 개 뚫려 있는데 이 구멍 사이에 끈을 꿰어 끈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사용했다. 요하 유역에서부터 한반도 남단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출토된다. 이 지역에 반달모양돌칼이 많이 나오는 사실은 당시 생산 활동에서 농업이 차지한 비중이 그만큼 컸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칼은 일본으로도 전파되었다.

농경문 청동기

정확히 어디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전광역시에서 나왔다고 전한다. 앞뒤 양면에 그림을 새겼는데, 앞면에는 새 두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서로 마주보는 모습을, 뒷면에는 밭을 가는 남자를 새겼다. 머리채가 긴 사람이 따비를 두 손으로 잡고 발로 힘차게 밟고 있으며, 그 밑에 보이는 가는 선은 밭고랑이다.

대곡리 출토 유물

여기서 나온 유물 가운데 잔무늬거울은 기하학 무늬가 아주 섬세하여 당시 주조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제작 기술로 미루어, 기원전 3세기의 유물로 추정하고 있다.

민무늬토기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토기. 신석기 시대에 유행하던 빗살무늬토기가 청동기 시대에 들어오면서 점차 없어지고 대신에 민무늬토기가 사발 · 보시기 · 접시 · 잔 · 항아리 등으로 널리 쓰였다. 대개 적갈색을 띠고 있는데, 노천에서 낮은 온도로 구웠기 때문이다. 빗살무늬토기는 뾰족바닥과 둥근바닥이 많았지만 민무늬토기는 대부분 납작바닥이다. 철기 시대에도 민무늬토기가 쓰였지만 이는 청동기 시대 것과 질적으로 다른 경질 토기이다.

강화도 고인돌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화강암으로 만든 덮개돌 크기가 길이 7.1m, 너비 5.5m에 이르는 대형 고인돌이며 지상에서의 높이는 2.6m이다. 대략 남북 방향으로 놓인 긴 굄돌 두 개로만 덮개돌을 떠받쳤다. 근처 삼거리 · 하도리 등에도 고인돌이 10여 기 남아 있어 당시 사히 규모가 대단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제왕운기

무씨 사당 화상석 벽화

산동성 가상현(嘉祥縣)에서 청나라 건륭 연간에 발굴된 무씨 사당 후석실 벽화. 서기 147년 중국 한나라 시대에 만들었으며 『삼국유사』가 전하는 단군 사적과 매우 비슷한 내용을 보여준다.

여러 가지 철기

철로 만든 농기구는 대규모 농경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는 곧 계급 사회를 불러 왔다. 전쟁 형태도 보병전에서 철로 만든 긴 칼과 말을 이용한 기마전으로 바뀌었다. 진나라, 한나라가 강대국이 된 까닭은 바로 이 철기를 발판으로 한 강력한 군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울진봉평리신라비

이 비의 비문은 기존 문헌 사료에 나타나지 않은 내용을 적잖이 담고 있어서 신라사 연구에 커다란 활력을 불어넣었다. 먼저 신라 정치사에서 핵심 주제인 6부 문제와 관련해 '신라육부'라는 구절이 주목된다. 『삼국사기』에는 '진한육부'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진한이 곧 신라임을 일러주는 표기 변화이다. 또 '노인(奴人)'과 '노인법(奴人法)'이란 용어가 보이는데 여기서 노인은 간(干)에 예속된 존재로서, 법흥왕 때의 노인법은 그동안 노인이 받아오던 차별을 없애 일반인으로 편제하는 내용을 담은 법이다.

오르혼 강변에 있는 옛 돌궐비

몽골고원 오르혼 강기슭에 서 있는 옛 돌궐비에는 고구려가 'Bokli'로 표기되어 나타난다. 돌궐어에서는 B가 M의 음가를 갖기도 하므로 고구려가 '무구리(畝久理)'로 되어 있다. 모두 맥구려(貊句麗)의 표기라 할 것이다. '맥'과 '구려'는 같은 뜻이므로,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동의어 중첩의 용어로서, 여러 맥족이 모여 건설한 나라임을 나타낸 이름이라고 하겠다.

석촌동 백제 고분

서울시 송파구 석촌동에 있는 백제 무덤으로서 가장 규모가 큰 3호분은 순수 돌무지무덤이다. 기단은 3단까지로 제3단 바닥에서 돌넛널인 딸린 덧널을 확인했다.

서울 몽촌토성 전경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백제 읍성으로서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평지 위에 자연 구릉을 방벽 삼고 구릉이 낮거나 끊어진 부분과 출입문 좌우벽은 다져쌓기를 한 토성이다. 전체적으로 마름모꼴이며 성 동서남북에는 출입구가 트여있는데, 동쪽에 조그만 외성이 있다. 시루 · 세발토기 · 낫 · 손칼 · 화살촉 같은 갖가지 철기와 중국 서진 시대 회유전문토기, 고구려 유물도 함께 출토되었다.

수로왕릉

고라이 신사(위), 고라이 산 도로표지(아래)

가나가와 현(神奈川県) 나카 군(中郡) 오이소쵸(大磯町)에 있는 다카쿠신사(高来神社)의 입구에는 원래 이 신사가 고라이 신사(高麗神社)였음을 알려주는 푯돌이 놓여 잇다. 고라이 신사 뒷산의 이름이 고라이 산(高麗山)이어서 이곳이 본디 고구려로부터 건너 온 도래인(渡來人)들의 밀집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류지 안내석

안악3호무덤 행렬도

안악3호무덤은 황해도 안악군 오국리에 있는 고구려 벽화 무덤이다. 이 무덤은 규모가 남북 33m, 동서 30m, 높이 6m에 이르는 웅장한 무덤으로, 4세기 동방 문화를 대표하는 세계적 유적으로 손꼽힌다. 무덤칸은 언덕을 파내고 반지하에 돌로 쌓았는데, 널길 · 널방(선실) · 앞방 · 좌우 옆방 · 널방(현실) · 회랑 등으로 마치 지하 궁전처럼 지었다. 이 벽화는 널방(선실) 동벽에서 북벽으로 이어지는 'ㄱ'자 회랑에 그린 행렬도이다. 행렬은 소가 끄는 수레에 탄 주인공을 중심으로 주변에 남녀 시종들이 있고, 앞에는 보병 악대와 곡예꾼들, 뒤에는 기마 악대와 기마 기수, 맨 바깥에는 호위 보병과 기병들로 구성되었다.

안악3호무덤 서쪽 옆방 서벽 남자 주인공

이 주인공은 고구려에서 왕만 썼다는 백라관을 쓰고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 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남벽에는 여주인을 그렸고, 옆방과 동쪽 옆방에는 디딜방아를 다루는 하녀, 마굿간, 외양간, 용두레 우물, 부엌 등 고구려 생활상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영일냉수리신라비

이 비는 말추(末鄒)와 사신지(斯申支) 두 사람이 국가를 상대로 절거리(節居利)의 재(財)에 대해 자신들이 일정한 권리가 있음을 주장한 사실과 관련하여 이를 일절 불허함을 공론으로 밝혀 후세에 남긴 내용을 담고 있다. '절거리'는 조세선납인의 직명(職名)으로 짐작된다.

단양적성비

신라 제24대 진흥왕 때 세운 비석이다. 단단한 화강암을 물갈이한 뒤 글자를 아로새겼다. 이사부를 비롯한 여러 신라 장군이 왕명을 받고 전투에 나가 고구려 지역인 적성을 공략한 뒤, 자기들을 도와 공을 세운 적성 출신 야이차와 가족 등 주변 인물을 포상하고 적성 지역 백성들을 위로하고자 비를 세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창녕순수비

진흥왕이 창녕 행차 때 모인 신하들을 알려주는 수가인명(隨駕人名)이 있어, 갈문왕 · 대등 같은 중앙 귀족을 비롯하여 영역 확보를 위한 전진 기지의 군사령관인 사방군주 · 당주 · 촌주 등 당시 신라 지배 체제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진흥왕 22년(561)에 세웠는데, 이로 보아 그 이전에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황초령순수비

신라 진흥왕 29년(568) 황초령에 건립한 순수비로 함경남도 장진군에 잇는 비석이다. 비문에는 비를 세우게 된 연유와 의의, 그리고 진흥왕의 업적과 순회한 목적, 수행한 사람들의 직위, 이름들이 적혀 있다.

천마총 금관

삼국의 고분군 분포

집안의 고구려 고분 분포

장군총(위), 장군총 평면도(아래)

길림성 집안현 통구(通溝)에 있는 고구려 고분이다. 1905년 일본인 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에 의해 처음 학계에 알려졌다. 무덤의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어 왕릉으로 상정되었으며, 광개토대왕릉, 산상왕릉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잇으나 대체로 장수왕의 무덤으로 본다.

태왕릉 묘실

무기단적석묘

천마총 천마도

바로 하늘로 날아오를 듯 생생한 천마다. 이 그림은 말이 달릴 때 말 탄 사람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 양쪽에 늘어뜨려 놓는 말다래에 그렸다. 자작나무 껍질을 여러 겹 겹쳐 그 위에 고운 자작나무 껍질을 입혀 각각 사격바무늬로 14줄씩 누비고 가장자리에는 너비 1.2m짜리 얇은 가죽단을 돌렸다. 천마는 예부터상제가 하늘에서 타고 다닌다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여겼다. 천마 몸에 있는 반달무늬는 남주 러시아에 토대를 둔 고대 스키타이 미술에서 보석으로 장식한 습관에서 비롯된 듯하다. 최근에는 천마도 속 동물이 기린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삼실총 역사상

길림성 집안현에 있는 고구려 고분으로 세 개의 널방으로 구성된 구조로 인하여 삼실총(三室塚)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공성도 · 역사도 · 신선도 · 사신도 등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특히, 역사상(力士像), 갑주무사상(甲胄武士像), 장사상(壯士像), 개마무사상(鎧馬武士像) 등 인물상이 돋보인다.

무용총 무용도

무용총이란 이름은 바로 이 춤추는 그림이 잇다고 해서 붙인 것이다. 널방 동남벽에 무덤 주인으로 보이는 기마 인물을 중심으로 오른편에다 출타하는 주인을 노래와 춤으로 전송하는 모습을 새긴 그림이다. 고구려 옷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점박이무늬 옷에 긴 소매를 늘어뜨리고 소매춤을 추고 있다.

무용총 수렵도

고구려에서 사냥은 군사 훈련이자 가장 인기 있는 체육 종목이었다. 동맹 같은 국가 제사가 있을 때는 왕도 직접 대규모 사냥에 참가하곤 했다. 무용총 널방 오른쪽 벽에 그린 사냥도에는 조우관을 쓴 무사 하나가 달리는 말 위에서 호랑이를 겨누어 활 시위를 당기고 잇다. 조우관은 벼슬아치들이 쓰던 관으로 관모 양옆에 새 깃털을 꽂아 벼슬의 높고 낮음을 가렸다.

무용총 접객도

무용총은 중국 길림성 집안현에 있다. 광개토대왕릉비 북서쪽 약 1km 지점에 각저총과 나란히 자리잡았다. 접객도는 널방 장벽에 있다.

해신과 달신

길림성 집안현에 있는 고구려 오회분 4호묘 벽화이다. 하반신은 용의 모습을 한 신들이 각각 삼족오가 있는 해와 두꺼비가 그려진 달을 머리 위로 받들고 있다.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다양한 상상 속 그림은 우리나라 고대 문화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차돈순교비

헌덕왕 9년(817)에 만든 듯한데, 그렇다면 527년에 이차돈이 순교한 지 무려 290년 뒤에 이차돈을 기리고자 세운 셈이므로 왜 이리 늦어졌는지 자못 궁금하다. 모두 6면으로 되어 있고 제1면에는 이차돈이 순교하는 장면을 돋을새김 했고, 제2~6면에는 정간(井間)을 치고 정간마다 글자를 새겨 넣었다. 경주시 백률사에 있다가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겼다.

무령왕릉

1971년 7얼 6일. 1,442년 동안 잠들어 있던 무령왕과 왕비가 부활했다. 무덤 들머리가 벽돌과 백회로 빈틈없이 막혀 있어 도굴꾼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채 수많은 껴묻거리와 함께 고스란히 세상 빛을 보았다. 왕과 왕비는 머리 방향을 들머리인 남쪽으로 두고 각각 널방 동쪽과 서쪽에 자리잡았다. 널방 둘레는 연꽃 무늬를 새긴 벽돌이 빼곡하다. 무령앙릉은 중국에서 한나라 이래 남조에서 왕과 지배층 사이에 유행하던 벽돌무덤이다. 길이모쌓기와 작은모쌓기로 번갈아 쌓았고, 아치를 이룬 천장까지 최고 높이는 2.93m이다.

무령왕릉 지석, 매지권

'다리' 새김 은팔찌

왕비의 왼쪽 팔목에 끼여 있던 은팔찌로 팔찌 안쪽에 "庚子年二月多利作大夫人分二百州主耳"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다리'라는 장인이 대부인 곧 왕비를 위해 왕비가 돌아가기 6년 전인 경자년(520)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팔찌 바깥면에는 용 세 마리가 힘차게 감돌고 있다.

『화랑세기』 필사본

신라 성덕왕 때 학자 김대문(金大問)이 화랑의 유래를 적은 책으로, 판본이 전하지 않고 『삼국사기』에 아주 일부만 인용되어 있다. 그런데 1989년에 조선 후기 필사본으로 보이는 『화랑세기』를 김해에서 발견했다. 이 필사본은 모두 16장 32면으로 후반부가 일부 빠졌다. 여기에 나오는 내용은 충격적으로 근친혼 · 동성애 · 다부제(多夫制) 등 고대 사회 실상을 생생하게 그려놓았다. 아직 진본인지 판명되지 않았지만 진본이라면 고려 시대 이전에 쓴 역사책으로, 유교 영향을 받지 않은 역사책 가운데 최초로 발견한 역사책인 셈이다.

울주 천전리 각석

울산 대곡리(반구대)에 있는 바위그림 유적인데, 선사 시대 바위그림뿐만 아니라 신라 화랑이 남긴 글씨도 남아 있다. 이곳에는 계곡이 있는데 울산에서 경주로 가는 실목이며 뱃길을 따라 경주로 들어갈 수도 있어, 선사 시대를 비롯하여 삼국 시대에도 주요 길목인 듯하다. 그래서 선사 시대 그림과 신라 화랑이 새긴 글씨가 동시에 있는 듯싶다. 신라 화랑들이 새겨놓은 이름 · 간지 · 관명이 바위 아래쪽에 있다.

칠지도

곧은 칼몸 좌우로 가지 모양 칼이 셋씩 나와 있어 칼날이 모두 7개이므로 칠지도라는 이름을 붙였다. 칼몸 앞뒤에는 60글자 정도가 금상감(金象嵌)되어 있고 테두리를 가는 금선으로 둘렀다. 이 글자 풀이와 관련해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삼는 등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하지만 백제 왕의 '말'을 극존칭인 '성음'이라고 한 점과 상대방 왜왕에게는 경어가 전혀 없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백제가 왜왕한테 하사한 칼이 분명하다. 길이 74.9cm짜리 철제 칼로 오늘날 일본 나라 현 덴리 시 이소노카미신궁에 있다.

고마 신사 현판

일본에서는 고구려를 '高麗'라고 쓰고 고마라고 읽는데, 고려가 아니라 고구려임을 밝혀 '고'자와 '려'자 사이에 '구'자를 새겨 넣은 현판이다. 글씨를 쓴 조선인 정삼품 조중응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다.

백제왕신사

오사카(大阪) 히라가타(校方市)에 위치한 신사이다. 백제가 멸망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왕족의 후손이 지었다고 하며, 백제국왕과 우두천왕(牛頭天王)을 모시고 있다. 이 신사는 백제왕의 조상을 모신 곳으로 백제 계통과의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준다.

오사카 난바의 백제역

백제사(히가시오미) 전경

시가 현(滋賀県) 히가시오미 시(東近江市)에 있는 천태종 사원. 스이코 천황 14년(606), 고구려 승려 혜자(慧慈)와 함께 이곳에 온 쇼토쿠 태자가 건립했다고 한다. 백제의 용운사(龍雲寺)를 본따 절을 지었다고 하여 백제사라 한다.

나라의 백제사

나라 현(奈良県) 기타가츠라기 군(北葛城郡) 고료쵸(広陵町)에 있는 사찰. 전승에 의하면 이 절이 자리잡은 곳은 백제대사(百済大寺)의 고지라고 한다. 백제대사는 7세기 전반에 창건된 관사로서 나중에 헤이조쿄로 이전 대안사(大安寺)가 되었다.

백제사(히가시오미) 안내문

백제사(히가시오미) 연혁

신라선신당

미카도 신사 본전

왕인 박사 묘

백제는 왜와 오랫동안 교류하면서 많은 사람이 직접 건너가 선진 문물을 전했다. 왕인도 그중 한 사람인데 우리 기록에는 없고 일본 기록에만 나온다. 근초고왕 때 건너간 아직기가 소개해 왕인이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건너갔다. 이때 백제는 제철 기술자 · 직조공 · 양조 기술자 등을 함께 보냈다.

광개토대왕릉비

중국 길림성 집안현에 있다. 높이 5.34m, 각 면 너비가 1.5m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비석이다. 414년에 장수왕이 고구려 제19대 왕인 아버지 광개토대왕을 기리고자 세웠으며 호태왕비(好太王碑)라고도 한다. 고구려 건국 내력과 광개토대왕의 대외 정복 활동, 왕릉 관리 문제가 담겨 있다.

광개토대왕릉비 탁본

호우총 청동합

경북 경주시 노서동 고분군에 있는 신라 무덤에서 청동호우(壺玗)가 나와 이 무덤을 호우총이라 불렀다.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 岡上廣開 土地好太 王壺玗十)'이라는 글을 예서체로 돋을새김해 놓았는데, 장수왕 3년(415)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씨는 광개토대왕릉비의 글꼴과 매우 비슷하며, 광개토왕을 기념하는 의례행위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산진흥왕순수비

진흥왕이 북한산 일대를 두루 돌아다니며 살피고, 이를 기념하여 세운 비다. 비신 뒷면에 총탄 자국이 마구 박혀 있는 등 여러 군데가 이미 심하게 손상되었으며, 더 망가질까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진흥왕의 다른 순수비는 자연석을 그대로 썼지만 이 비석은 직사각형으로 다듬은 석재로 자연암반 위에 2단으로 층을 만들어 세웠다. 1816년과 이듬해에 추사 김정희가 직접 와서 비문을 읽은 사실이 새겨 있다.

충주고구려비

충북 충주시에서 발견된 고구려 석비로 일반적으로 중원고구려비로 알려져 있다. 비의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대체로 장수왕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한다. 글씨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마모되었지만,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알려주는 표현이 확인되어 사료로서 가치가 매우 크다.

살수대첩 민족화

로만 글라스

황룡사9층목탑 모형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