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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27. 12:42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09 동강

 

글, 사진 / 진용선

2003, 대원사

 

 

시흥시매화도서관

SH013810

 

082

빛 12 ㄷ  233

 

빛깔있는 책들 233

 

전용선-------------------------------------------------------------------------

1963년 정선 신동읍 출신으로 인하대 독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1년 정선아리랑연구소와 정선아리랑학교를 세워 아리랑연구와 교육에 힘쓰고 있으며, 강원도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선아리랑 찾아가세』, 『한민족의 아리랑』 등 5권의 아리랑 관련 저서와 중국, 러시아, 일본 등지에서 아리랑을 채록해 『해외동포 아리랑』 CD를 내기도 했다.

 

|차례|

 

동강은 흐르는데

동강의 역사

동강의 이름

동강의 지질과 지형

동강 유역의 마을

동강 12경

동강의 생태

동강과 정선 뗏목

동강의 산들

동강 찾아가는 길

참고문헌

온달산성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확보하기 위해 충북 단양군 영춘에 온달산성을 쌓았다.

뗏목  동강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철도가 개설될 때까지 운목 수단으로 뗏목을 이용하였다.

「대동여지도」  정선에서 영월로 흐르는 동강 물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연촌강, 금장강 등의 이름이 눈에 띈다.

섶다리  동강 유역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다리로 겨울을 나기 위해 수동과 번들마을 사람들이 수백 년째 섶다리를 놓고 있다.

소골마을  석회암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칠족령 아래의 강변 마을로 십승지지의 한 곳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연포 섶다리  바새마을과 연포마을을 잇는 섶다리.

어라연  동강의 비경으로 널리 알려진 영월읍 거운리의 어라연. '고기 반 물 반'으로 알려진 곳이다.

섭새나루  만지와 어라연으로 가는 사람들이 건너던 나루터다.

하방소  고성리산성에서 내려다본 하방소이다. 강물이 애돌아 흐르는 절벽과 덕천리 제장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강정  절벽 아래로 흐르는 동강 물길과 어우러진 금강정은 동강 유역에 하나뿐인 조선시대 정자다.

낙화암  단종을 모시던 시녀와 시종이 단종의 승하 소식에 몸을 던진 곳이다.

월기 경춘순절비  낙화암에 몸을 던진 기생 경춘의 순절을 기리기 위해 2백여 년 전에 세워진 순절비이다.

붉은 뼝대  용이 하늘로 올라가서 용발자국이 나 있다는 가수리 수미마을의 붉은 뼝대이다.

상선암  영월 거운리의 정씨가 황쏘가리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 어라연의 상선암.


동강 12경


제1경 가수리 느티나무와 마을 풍경

가수리  가수분교 정문 옆에 선 느티나무는 가수리의 평화로움을 한층 더해 주고 있다.


제2경 운치리 수동 섶다리


제3경 나리소와 바리소

나리소  이무기가 살면서 물 속을 오간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제4경 백운산과 칠족령

칠족령  백운산 자락이 물굽이에 의해 수직으로 깎여 형성된 칠족령은 덕천리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제5경 고성리산성과 주변의 전경


제6경 바새마을과 앞 뼝창

앞뼝창  바새마을을 둘러싼 기암절벽은 옛날 절벽 위를 지나다가 은가락지를 잃어버린 마고할멈이 반지를 찾기 위해 긁어 놓아 지금처럼 되었다고 한다.


제7경 연포마을과 황토담배 건조장

황토담배 건조장  잎담배를 건조하기 위해 진흙으로 지었던 건조장은 동강의 풍취와 조화를 이루는 건물이다.


제8경 백룡동굴

종유석과 석순  백룡동굴 내부에 발달한 종유석과 석순은 다른 동굴보다 아름답고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


제9경 황새여울의 바위들


제10경 두꺼비바위에 어우러진 뼝대

두꺼비바위  먼 산을 향해 뛸 듯 웅크린 집채만한 두꺼비바위.


제11경 어라연

어라연  강 한가운데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등 집채만한 바위가 물 위로 솟아 있다.


제12경 된꼬끼리와 만지의 전산옥

 

 

동강할미꽃  동강의 바위 틈새에 붙어 자라는 미나리아제비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일반 할미꽃과는 달리 머리를 든 채 꽃을 피우고 크기도 작다.


떼꾼들이 부른 소리


오호차

이 낭구 보게 몸부림을 한다네

오오차

한 번만 더하이면 될 듯하네

오오차

이 낭기 지남석이 쩡얼어 붙었다네

오오차

어데가 절련지 절린데 마꿈

오오차아

무지 공산에 잘자란 낭기

오오차

이렇게 가도 한양을 간다네

오오차

둥글바위  물굽이를 막아선 바위로 자연암이라고 한다.


래프팅  된꼬까리에서 여울의 거센 물살을 타고 내려오는 레프팅은 동강의 대표적인 레포츠로 각광을 받고 있다.

나리소의 정적  가파른 절벽 아래로 고요히 흐르는 나리소로 나리소의 정적은 오래전 이무기 전설을 낳기도 했다.

수리봉  귤암리에서 가장 눈에 띄게 솟아 있는 수리봉.

 

 

 

posted by 황영찬
2015. 1. 20. 12:50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08 아주 특별한 사진수업

 

주기중 지음

2014, 소울메이트

 

대야도서관

SB101486

 

662

주18ㅇ

 

사진가 주시중이 들려주는 좋은 사진 찍는 법

 

사진,

이보다 더

황홀할 수

없다

 

"카메라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촬영자의 몫이다." 

 

평생을 카메라와 여행중인 포토저널리스트의 애정고백

 

사진은 이미지로 이야기하기 이전에 엄정한 기술이다. 기본을 차근차근 밟아나가야 사진에 깊이를 줄 수 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아주 특별한 사진수업'이다. 주제마다 적절히 수록된 비교 사진을 보면서 눈을 훈련시킨다. 사진학 강의와 비교를 해도 손색이 없는 책이다.

구본창 _ 사진작가,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부 교수

 

사진기자로 30년을 일한 저자의 연륜이 갈피마다 물씬하다. 실용적이면서 시각적인 책 만듦새는 포토저널리즘의 현장성을 반영한다. 사진 테크닉을 얻고자 하는 독자, 사진 찍기의 즐거움에 빠지고자 하는 아마추어, 모두에게 강력 추천한다!

윤광줌 _ 사진작가, 칼럼니스트

 

바라보기와 마음담기, 그리고 빛! 이 책은 평생을 카메라와 여행중이라는 포토저널리스트의 애정고백이다. 사진에 매혹된 이들에게 전하는 '사랑의 기술'이 개성 넘친다. 자신만의 사진을 만들고 싶은 이들이라면 일독하시라.

진동선 _ 사진평론가, 현대사진연구소장

 

사진 속에서 놀이하는 눈과 사진 밖에서 일하는 손을 가진 두 개의 마음을 더불어 읽는다. 자연과 사회와 자아, 어쩌면 어울릴 수 없고 도저히 아우를 수 없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려는 된통 고집스런 이가 바로 주기중이다. 영원히 자연인의 마음으로 찰나에 자신의 목숨을 거는 노릇이 문명의 이기인 카메라의 셔터로 언제나 완성되겠는가, 아, 하지만 그 긴 여정의 순간순간들이 마침내 그만의 느낌과 깨달음을 얻었다. 생에 대한, 삶에 대한, 그리고 현실과 현상을 주시하는 당신들의 눈에 대한 또 다른 빛의 이야기가 이 책에 온전히 담겨 있다.

최준 _ 시인

 

주기중

중앙일보 사진부장 · 영상에디터 · 뉴스방송팀장 · 멀티미디어팀장을 지냈다. 현재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포토디렉터다.

패턴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자연의 선과 색을 단순화해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풍경사진을 즐긴다. 현대사회에서 사진은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세상을 밝게 만드는 가장 훌륭한 매체라고 믿고 잇다. 또한 사진은 사람의 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누구나 기본적인 훈련을 받으면 좋은 사진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코노미스트>에 '주기중의 사진노트'를 연재했다. 페이스북에서 프로와 아마추어가 함께하는 사진그룹을 이끌며 전시회를 열고, 포토아카데미를 기획하며 사진의 대중화에 힘쓰고 잇다.

 

|

평생 삶의 결정적 순간을 찍으려 발버둥 쳤으나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프랑스의 사진가) ·

 

차례

 

지은이의 말 사진, 이보다 더 황홀할 수 없다

 

PART 1

바라보기

 

이름 붙이기

사람의 눈, 카메라의 눈

사진적인 눈, 포토아이

네팔판 마을버스

사냥과 사진

두루미와 고라니

독보다 커야 독 안을 본다

패턴인식과 연상작용

바람의 패턴

이미지의 문법

 

PART 2

마음담기

 

느리게 걷기

뭉크의 절규를 보다

사진과 시의 레토릭

완장찬 박달대게

소금꽃

순천만 단상

사진과 오디션

사진과 회화

색감정에 대해

공감각의 사진

 

PART 3

 

빛의 예술, 사진

빛의 방향과 사진효과

강남스타일

빛에도 품격이 있다

사진은 빛으로 화장을 한다

빛에도 색이 있다

노을에 물든 갯벌

실루엣사진의 미학

허상과 실상

반영, 레토릭을 담는 그릇

 

PART 4

꾸미기

 

작품감상의 게임

과장법과 대조법의 사진

반복법과 패턴사진

갈매기 솟대

구도와 길잡이선

프레임 안의 프레임

뺄셈의 사진

점묘화와 사진

그 순간이 그 순간이 아니야

형상과 배경

 

PART 5

카메라 다루기

 

사진의 기본

렌즈와 원근감

노출과 셔터타임

가장 좋은 카메라

 

추천의 글 사진 만발 시대의 아주 특별한 사진수업

『아주 특별한 사진수업』 저자와의 인터뷰

 

/

뭔가를 찍기 위해 길을 나서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평소 무심하게 지나치던 것들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사진에서 '본다'는 것은 '느낀다'는 것입니다. 영감이 '번쩍'하고 떠오른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입니다.

/

 

PART 1

바라보기

 

바라보기 01

 

이름 붙이기

 

사람들은 사진을 종종 그림과 비유합니다. 잘 찍은 풍경사진을 보면 흔히 "그림 같다"는 말을 하죠. 이 말에는 자연 상태의 피사체를 마치 그림같이 아름다운 색감과 구도로 표현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현실과 똑같아야 하는 사진이 그림처럼 인위적으로 아름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진과 그림은 사각형의 틀에서 이뤄지는 시각예술이라는 점에서 볼 때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면 사진은 문학, 특히 시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굿모닝>

 

바라보기 02

사람의 눈, 카메라의 눈

 

사진을 찍을 때 초보자가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어떻게 하면 실제와 똑같이 찍을까?' 하며 애쓴다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도 눈으로 보는 것과 똑같이 찍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눈과 카메라 렌즈는 기능이 비슷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설사 렌즈와 눈의 기능이 같다 하더라도 사진이 현실을 똑같이 묘사하는 것은 기계적인 복제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전라남도 구례군의 산수유마을

무안 갯벌

 

바라보기 03

사진적인 눈, 포토아이

 

훌륭한 사진가는 눈이 하나 더 있다고 합니다. 그 눈을 이른바 '포토아이'라고 합니다. 포토아이는 말 그대로 '사진적인 눈'을 뜻합니다. 포토아이는 시각을 바탕으로 하지만 눈으로 볼 수 있는 그 이상의 것을 봅니다. 선택적으로, 집중적으로, 깊이 있게 대상을 관찰하며 오감을 동원해서 봅니다. 그뿐만 아니라 미적 감수성으로 현실을 가공하고 그 안에 자신만의 감정을 투영합니다.

서설瑞雪이 내린, 강원도 양양군 오색리의 주전골 계곡 풍경

바라보기 04

네팔판 마을버스

 

여행을 가면 사진가는 늘 사주경계를 해야 합니다. 카메라의 스위치를 켜놓고, 언제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놓친 물고기가 커 보이고, 좋은 장면은 항상 빨리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네팔판 마을버스

 

바라보기 05

사냥과 사진

 

동물 다큐멘터리는 꾸준히 인기를 끕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본능적으로 생존법을 터득하고 살아가는 동물의 모습이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특히 맹수가 먹잇감을 사냥하는 모습을 곧잘 지켜봅니다. 포식자의 먹이사냥 과정은 사진을 찍는 과정과 놀랍도록 비슷합니다.

 

바라보기 06

두루미와 고라니

 

겨울 한탄강변 풍경입니다. 한 무리의 재두루미가 먹이를 먹고 있습니다. 강 건너에서 고라리 두 마리가 먹이 냄새를 맡았습니다. 녀석들이 꽁꽁 언 강을 건너 달려옵니다. 야생 재두루미와 고라니가 조우합니다.

두루미와 고라니

 

바라보기 07

독보다 커야 독 안을 본다

 

"독보다 커야 독 안을 본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면 사물의 형태나 위치가 쉽게 파악된다는 뜻입니다. 언론사 사진기자들이 휴대용 사다리를 들고 다니는 이유도 현장을 더 잘 보기 위해서입니다.

서울시청 광장 스케이트장

해운대 해수욕장 - 이동진

하늘에서 본 백담사의 모습

 

바라보기 08

패턴인식과 연상작용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이 2009 서울 빛 축제가 열릴 때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전시된 적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원래 1993년 대전엑스포 때 재생조형관에 전시하던 작품입니다. 고물 TV, 폐기된 자동차, 버려진 피아노를 이용해 거북선 모양으로 만든 대작입니다.

인천 영종도 상공에서 바라본 해안선의 모습

 

 

 

 

 

 

 

 

 

 

 

 

 

 

 

 

 

 

 

 

세운전자상가에 있는 한 전자제품 수리점의 모습

 

바라보기 09

바람의 패턴

 

자연은 경이롭습니다. 모래가 바다를 기억하는 걸까요. 거센 바람이 모래를 날리며 파도를 일으킵니다. 모래는 잔물결을 일으키며 해안으로 밀려듭니다. 바람은 모래언덕에 아름다운 조각을 새겼습니다. 모래언덕은 바람의 놀이터이자 아틀리에입니다. 모래의 물결과 파도이며 바람의 패턴이기도 합니다.

충청남도 태안군 신두리에 있는 해안사구의 모습

 

바라보기 10

이미지의 문법

 

시각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입니다. 일상생활에서는 물론이고 문학·미술·음악·사진 등의 예술작품은 시각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사람이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는 그 대상에서 반사된 빛이 망막에 맺히게 됩니다.

얼어붙은 한탄강 계곡의 모습

한탄강의 재두루미

겨울 민통선 바로 앞 한탄강변

순천만 흑두루미

이른 아침 순천만 흑두루미

 

/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이유는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셔터를 누르기 전, 그 순간의 느낌을 형용가 한 단어로 나타내보세요. 사진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나만의 느낌을 담는 작업입니다.

/

 

PART 2

마음담기

 

마음담기 01

느리게 걷기

 

사진을 잘 찍으려면 생활 습관부터 바꿔야 합니다. 사진은 느리게 걷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낫고, 자전거보다 걷는 것이 좋습니다. 느리게 걷다 멈추어 살피고, 또 걷다가 멈추어 살피고, 주위와 소통하며 교감하는 '선의 여행'을 해야 합니다. 지름길보다는 멀리 돌아가는 길이 좋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 화자가 말하는 것처럼 '풀이 무성한 길'이 낫습니다.

봄비에 떨어진 벚꽃

가로등 불빛이 만들어낸 칠엽수의 그림자

선운사의 풍경

 

마음담기 02

뭉크의 절규를 보다

 

아픔은 때로는 이렇게 흔적으로 남습니다. 삶이란 상처의 힘으로 견디는 것은 아닐까요.

나무판자에 박힌 못에서 흘러나온 녹물과 검은 곰팡이가 만든 형상(히로쓰 가옥)

 

마음담기 03

사진과 시의 레토릭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다."
- 프랑스의 물리학자인 아르망 트루소

사진은 대상을 보고 느끼는 연상작용을 통해 의미구조를 만들어 냅니다. 연상이란 하나의 관념이 다른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푸른 하늘을 나는 새를 보고 자유의 이미지를 떠 올리고, 장미를 보며 유혹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바로 연상입니다. 이때 두 관념 사이에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는 희박하지만 감성적으로 연결되는 고리가 존재합니다. '자유' 나 '유혹'은 원관념 '새'와 '장미'가 불러낸 마음의 상, 즉 '심상' 입니다. 사진은 이 연상작용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함으로써 이야기를 담고, 메시지를 전하며, 감상자가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듭니다.

<경주의 봄>

<송광사의 새벽>

걸어오는 재두루미 무리

 

마음담기 04

완장찬 박달대게

 

제철 만난 대게가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를 뿜어냅니다. 게가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심해의 어둠까지 가져온 걸까요. 박달대게가 사는 어두운 심해와는 달리 입이 토해내는공기방울은 투명하기만 합니다.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항 어시장에 나온 황금빛 박달대게

 

마음담기 05

소금꽃

 

사진은 대상의 크기를 사실적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접사렌즈를 이용해 작은 것을 확대하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경이로운 세계가 펼쳐집니다. 소금꽃은 언뜻 보면 물위에 둥둥 떠다니는 지저분한 부유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를 확대하면 보석같이 아름다운 소금 결정을 볼 수 있습니다. 시각의 반전입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소금꽃 - 오상민

 

마음담기 06

순천만 단상


 

프로라면 독창성으로 소재의 빈곤을 극복해야 합니다. 남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사람들의 눈에 익은 풍경사진의 허를 찔러야 합니다. 날씨의 좋고 나쁨으로 '운칠기삼'에 승부를 걸어서도 안 됩니다. 풍경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메시지를 담는 블루오션을 개척해야 합니다.

황금빛으로 물든 순천만의 풍광

짙은 코발트빛 하늘에 아름다운 초승달

 

마음담기 07

사진과 오디션

 

사진은 한때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소수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카메라의 가격도 비싼 데다가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큰 맘 먹고 카메라를 장만해도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장롱 카메라'로 전락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사진의 상향 평준화가 이뤄졌습니다. 2012년 말 기준으로 디지털카메라의 가구당 보급률이 80%에 이릅니다. 또 3천만 대를 넘어선 스마트폰까지 합치면 '1인 1 카메라'를 넘어 '1인 2카메라' 시대가 됐습니다.

울산 진하 해수욕장

강양항 일출

신새벽 칼바람을 맞으며 고기잡이에 나선 배

 

마음담기 08

사진과 회화

 

시각예술의 핵심은 '형태와 색'입니다. 이 두 요소를 구현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이른바 인상파니 입체파니 야수파니 하는 말은 바로 형태와 색을 다루는 화가들의 붓질에 따라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를 사조라고 합니다. 새로운 사조가 등장하는 데는 많은 변수가 작용합니다. 철학이라든가 개인의 세계관·가치관 등 시대정신이 반영됩니다. 과학과 물질 문명의 발전도 사조의 등장에 영향을 미칩니다.

노란색을 빨간색으로 바꾼 해바라기

 

마음담기 09

색감정에 대해

 

사진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를 꼽는다면 '형태와 색, 그리고 빛'을 들 수 있습니다. 빛은 색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진은 빛에 특별한 무게를 둡니다. 형태가 이성적인 개념이라면, 색은 감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형태는 보편적이고 설명적이며 논리적입니다. 이에 반해 색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정서적이고 심리적이며 개인적인 영역입니다.

「아버지와의 불화, 사랑의 실패, 고갱과의 깨진 우정, 동생에게 의지해야만 살 수 있었던 재정적 궁핍 등으로 인해 그는 늘 역경에 부딪혔고 그때마다 죽음을 생각했지만, 동시에 살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삶의 이유를 그림을 그리는 데서 찾겠다는 희망을 갖고, 그는 삶과 죽음 간의 기로에서 늘 줄다리기하는 심정으로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시각과 이미지』(김세리 지음)」

그늘진 담벼락의 거미 한 마리

곽상운 <나무>

 

마음담기 10

공감각의 사진

 

예술에서 감각은 한때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것으로 여겨져 저급한 영역으로 치부됐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문학과 미술, 음악 등 예술 전반에서 감각은 창의적이고 핵심적인 표현형식으로 대우받고 있습니다. 현대의 예술은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며 그 안에 많은 이야기를 담습니다.

<참새> - 변선구

<Improvisation> - 황소연

 

/

사진에서 빛은 영혼과 같은 것입니다. 어떤 사물이 보이는 것과 그 표면에 떨어진 빛을 보는 것은 다른 개념입니다. 빛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냥 바라보기만 하세요.

/

 

PART 3

 

01

빛의 예술, 사진

 

‘사진은 빛을 보는 것이 반’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진을 시작하면서 늘 ‘빛’이라는 말을 화두처럼 지니고 다녔습니다. 빛에 대한 중요한 깨달음은 뜻밖에도 빛 한 점 없는 암실에서 찾아왔습니다.

부산 문현동 돌산마을 풍경

전라북도 임실군 국사봉에서 바라본 새벽풍결

 

02

빛의 방향과 사진효과

 

사진 찍는 것을 '빛 사냥'이라고도 합니다. 빛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사냥'이라는 용어에는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피사체를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빛을 찾으라는 뜻입니다.

보여지는 것, 그 자체, 너무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 마라. '문화적 의미'를 담으려 하지 마라. 아직 이르다. 이런 것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먼저 대상의 표면에 떨어진 빛의 실체를 느껴야 한다.

_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필립 퍼키스 지음)

어두운 밤 북한강 물안개

역사광을 이용해 촬영한 유채꽃

 

03

강남스타일

 

해가 질 무렵, 남한산성에 바라본 강남의 모습.

 

04

빛에도 품격이 있다

 

흔히들 사진을 빛의 예술이라고 말합니다. 빛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사진에서 베어나오는 맛과 멋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05

사진은 빛으로 화장을 한다


반면에 사진은 빛으로 화장을 합니다. 사진은 2차원, 즉 평면입니다. 그래서 빛과 그늘을 이용해 입체감을 조절합니다. 우리는 사진을 찍을 때 빛을 봅니다.

한강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 어부.

 

06

빛에도 색이 있다

 

어둑해질 무렵, 여전히 볕이 드는 방 안에서 빛이 들어오는 쪽을 향해 편안한 의자를 놓고 앉는다. 완전히 해가 질 때까지 그곳에 머문다. 그저 빛을 지켜본다.

_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노트』(필립 퍼키스 지음)

 

하늘과 땅의 색이 뒤바뀌고, 낮과 밤이 교차하는 황홀한 순간.

 

07

노을에 물든 갯벌

 

 08

실루엣사진의 미학

 

실루엣은 사진용어이기도 합니다. 역광사진으로 피사체의 윤곽이 검게 나타나는 것을 실루엣이라고 말합니다.

실루엣 초상화는 '질루이 크레티앙Gilles Louis Chretien'에 의해 자동전사식 초상화 기법으로 발전했습니다.

인천의 선재도 해변, 할아버지와 손자.

 

09

허상과 실상

 

윤한수 성산대교 교각에 비친 가을밤을 즐기는 시민들의 그림자.

10

반영, 레토릭을 담는 그릇

 

반영은 사진에서도 아주 중요한 소재입니다. 실상과 허상의 적절한 면 분할을 통해 화면을 아름답게 구성할 수 있습니다. 빛의 난반사로 일그러진 허상으로 추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겨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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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합니다. 피사체를 보고 느낀 감정을 어떻게 '그림'으로 만들어낸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는 감각의 영역입니다. 미적 감각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서 갈고닦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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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4

꾸미기


꾸미기 01

작품감상의 게임


사진가는 감상자와 게임을 즐기려 합니다. 작품 앞에 선 감상자는 긴장합니다. 한 발짝 떨어져 전체를 보고, 바싹 다가가 부분 부분을 살피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느낌이 오면 가설을 세우고 퍼즐조각을 맞추어나갑니다.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들을 가동시키며 사진을 분석합니다. 그리고 패턴을 찾습니다. 구성요소들간의 인과관계를 따집니다. 마침내 퍼즐이 완성되는 순간, 긴장이 풀리며 강한 희열을 느낍니다. 카타르시스의 순갑입니다.


꾸미기 02

과장법과 배조법의 사진


현실의 한 부분을,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 속의 한 단면을 포착하는 사진은 그 속성상 '강조법'의 수사를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갑니다. 사진에서 강조법은 구도나 프레이밍으로 나타나 사진에 담는 메시지를 더욱 강하게 부각하거나, 극적인 화면구성을 위해 리듬감을 줍니다.


꾸미기 03

반복법과 패턴사진


패턴사진은 시각의 동선을 고려해 치밀하게 설계해야 합니다. 단순히 배열만 하면 정적인 사진이 되기 쉽습니다. 선의 흐름을 수평으로 할 것인지 수직이나 사선으로 할 것인지에 따라 사진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사물들 사이에 움직임이 있는 요소가 가미되면, 사진에 생동감이 생겨납니다. 시각적인 포인트를 줄 뿐만 아니라 규칙성이 더 도드라지게 부각됩니다.

인천 선재도의 바닷가 풍경.


꾸미기 04

갈매기 솟대


꾸미기 05

구도와 길잡이선


사진의 구도는 동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사각의 틀'을 이리저리 옮기며 구도를 잡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피사체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미적인 균형감과 일치하는 순간이 옵니다. 이때 가장 좋은 구도가 나옵니다.

문경새재의 풍경.


꾸미기 06

프레임 안의 프레임

 

두물머리 풍경.


 

꾸미기 07

뺄셈의 사진


"사진은 덧셈으로 시작해서 뺄셈으로 끝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덧셈'이란 사진을 찍을 때 가급적 많은 요소를 넣는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뺄셈'은 화면을 단순화해 추상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덧셈이 피사체에 대한 묘사와 설명이라면, 뺄셈은 상징과 표현의 개념입니다.


꾸미기 08

점묘화와 사진


점묘화는 점을 찍어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점묘주의pointillisme' 화가들은 선과 면 대신 수많은 점을 찍어 색과 형태를 표현했습니다. 점으로 이루어졌지만 떨어져서 보면 자연스럽게 섞인 색처럼 보입니다. 일종의 착시현상으로 모자이크와 비슷합니다.

김현동 <강형구의 응시>

바닥에 떨어진 벚꽃잎으로 점묘화 분위기를 낸 것.


꾸미기 09

그 순간이 그 순간이 아니야


사진은 순간포착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순간'은 2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물리적인 시간의 순간입니다. 기계적으로 카메라의 셔터막이 열렸다 닫히는 시간인 수십, 수백, 수천분의 1초를 말합니다. 짧은 시간에 세상의 단면을 포착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직관의 순간입니다. 이 '순간'이라는 말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이 1952년에 출간한 사진집 『결정적 순간Decisive Moment』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다시 별을 보자>

김아타 'On Air project' <한 시간의 섹스, 한 장의 사진>.


꾸미기 10

형상과 배경


게슈탈트이론에서 말하는 형상과 배경의 법칙에서는 사람의 시각은 대상을 선택적 · 적극적으로 탐색하며, 선택한 요소에 우선 순위를 두고 전체를 보게 된다고 말합니다. 선택한 요소는 형상으로 보고, 그 외의 요소는 배경으로 배경으로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형상과 배경의 법칙에 따르면, 사람은 무언가를 볼 때 그 대상을 형상과 배경으로 분리해서 봅니다.


/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는 카메라와 친해져야 합니다. 처음부터 기계적이고 물리적인 '숫자'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원리를 이해하면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줍니다. 똑딱이도 좋고, DSLR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손에 카메라가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


PART 5

카메라 다루기


카메라 다루기 01

사진의 기본


디지털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기본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진에서 손떨림과 수평 맞추기, 셔터 타이밍은 결국 사진을 찍는 사람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카메라다루기 02

렌즈와 원근감


카메라 렌즈는 눈의 원리를 모방한 기계장치입니다. 카메라 렌즈는 초점거리에 따라 표준렌즈 · 망원렌즈 · 광각렌즈로 분류합니다. 초점거리는 렌즈 표면에서부터 상이 맺히는 이미지 센서(필름)까지의 거리를 말합니다.

두루미 어미와 새끼가 하늘을 날고 있는 장면.

우리나라 '3대 오지' 중의 하나로 알려진 강원도 삼척시 중봉리에서 한 촌로가 눈보라를 헤치고 길을 갑니다.


카메라 다루기 03

노출과 셔터타임

벚꽃이 계곡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는 장면.


카메라 다루기 04

가장 좋은 카메라


사진은 두 번의 시각화 과정을 거칩니다. 첫 번째는 사람의 눈이고, 두 번째는 카메라 렌즈입니다. 사진가는 카메라를 들면 '사각형의 눈'을 뜨고 다닙니다. 그러다 사진을 찍는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인체의 모든 감각세포에 비상이 걸립니다. 아주 빠른 순간에 기계적인 계산을 하고 미학적인 감각을 작동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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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5. 1. 19. 12:31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07 렘브란트 - 빛과 혼의 화가

 

파스칼 보나푸 지음, 김택 옮김

1997,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2129

 

082

시158ㅅ  24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24

 

 

화려한 붓놀림, 풍부한 색채, 하늘에서

쏟아지는 듯한 빛과 어두움, 렘브란트 그림의

마력은 명성을 누리던 젊은 시절보다

고독과 파산의 연속이었던 말년에 더욱 빛났다.

강렬한 힘과 내면을 꿰뚫는 통찰력, 종교적

권능을 감지하게 하는 탁월한 빛의 처리 기법은

미술사의 영원한 신비로 남아 있다.

 

깃발이 펄럭인다.

북이 울린다, 아니 울리려 하고 있다.

대포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누가 쏘았을까?

저기 난쟁이 지신(地神)같이 생긴 기묘한 사내가

쏘았을까? 그는 정말 야릇한 옷을 입고 있다.

나뭇잎으로 덮여 있는 그의 투구는 어던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여인은 누구일까?

허리에 흰 새를 매달고 있는 그녀, 안에서 초롱

불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그녀는 누구일까?

여인은 무대 위로 나서고 있다. 우리를 향한

그녀의 얼굴에 씌인 기묘한 표정은 우리에게 뭔가를

설명하는 듯하다. 왜 이 두 인물은 행렬의 진행

방향과는 반대로 오른쪽으로 향하는 것일까?

그들이 행진을 방해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일까? 아니 그보다는

그러한 자세를 통해 군중들을 둘로 분할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들은

뒤쪽의 남자가 비스듬하게 들고 있는 긴 창의 방향에 따라

나아가고 있다. 균열은 구도의 오른쪽 구석에 두 개의 삼각형을

창출하고 있다. 그리고 좀더 가까이에서 보면 전체 구도가 네 개의

삼각형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본적인 분할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그밖의 모든 방향이 지시되고 있다.

폴 클로델

 

차례

 

제1장 도제기(徒弟期)와 야망

제2장 영광과 비탄

제3장 고독과 파멸

제4장 은둔과 죽음

기록과 증언

참고문헌

그림목록

찾아보기

 

파스칼 보나푸 Pascal Bonafoux

1949년에 태어난 파스칼 보나푸는 작가이자 미술사학자이다. 1980년부터 2년간 메디치 별장에 기거하면서 박사학위 취득을 위한 연구를 하였는데, 그가 택한 '서양화에서의 자화상'이란 주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미술사를 섭렵할 수 있게 해주는 대단히 매혹적인 주제였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7번 <반 고흐>를 쓰기도 했으며, <화가의 자화상> <렘브란트 자화상> <인상주의 화가들, 초상화와 그 뒷이야기들>이란 미술 전문서 외에도 <중상>이란 소설도 발표하였다.

 

옮긴이 : 김택

1968년 서울 출생. 성균관 대학교 독어독문과와 동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하였다. 불어와 영어에도 능한 그는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반 고흐> <모네> 등의 번역서가 있다.

<풍차방앗간>(위)은 오랜 동안 렘브란트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지만 오늘날에는 그 진품성을 둘러싼 논쟁이 분분하다. 그러나 1630년에 아버지를 모델로 제작한 아래 에칭화는 그의 작품임이 분명하다.

 

제1장

도제기(徒弟期)와 야망

 

1606년 7월 15일. 네덜란드의 레이덴에서 하르멘 헤리트스존 반 레인과 코르넬리아 빌렘스도히테르 반 소이트브루크의 아들 렘브란트 반 레인이 태어났다. 이 사실은 1641년에 간행된, 레이덴의 풍물을 소개하는 한 책자에 요하네스 오를러스가 기록한 것으로 렘브란트의 출생을 말해 주는 유일한 기록이다. 렘브란트의 명성과 영광에 이르는 삶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여러 가지 요소가 불확실함을 인정해야만 한다.

레이덴 시절, 렘브란트는 존경하는 어머니를 모델로 자주 그림을 그렸다. 1631년에 그려진 이 에칭화는 근엄한 어머니의 우수에 젖은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9세기에 건설된 레이덴은 전통적으로 루그두눔 바타보룸으로 불렀다. 이 평면도는 스페인의 포위공격이 막바지에 이른 1574년의 레이덴 모습이다.

성 엘리자베스 패널화를 그린 것으로 알려진 15세기 후반의 화가가 제작한 유화 <도르트레히트가 배경에 보이는 성 엘리자베스 날의 홍수>는 무너진 제방을 묘사하고 있다. 오른쪽 위 터진 제방을 통해 물이 꼳아져 들어오고, 남자들이 홍수를 피하기 위해 가족과 가재도구, 식량 등을 보트에 싣고 있다.

주연합의 그림 수집가들은 일상생활을 묘사한 그림에 흥미를 가졌다. 헨드릭 아베르캄프가 그린 <얼음 위의 오락>(위) 얀 스텐이 그린 <식사>(가운데), 렘브란트의 에칭화 <스케이트 타는 사람>(아래)은 모두 일상생활에서 그림의 소재를 취했다.

1616년, 아드리안 피테르츠 반 데 베네는 1609년에 체결된 12년간의 휴전을 그림으로 상징했다. 그림 가운데 앞쪽으로 나와 있는 부부는 마침내 자유를 얻은 주연합을 상징한다. 그러나 불화와 질투가 나무 뒤에 숨어 있다.

17세기의 판화에서 볼 수 있듯, 장식적인 박공 지붕과 많은 창으로 멋을 낸 동인도 회사 건물의 화려한 정면은, 해외무역을 통해 새롭게 부상한 주연합의 막강한 지위를 상징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북부 네덜란드의 선원들은 1595~1600년에 여러 차례 원거리 항해에 나서 인도 해안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창고를 세웠다. 향료무역이 짭짤한 수익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많은 석박들이 시장과 거래처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 앞다투어 출항을 서둘렀다. 1602년, 여러 회사들이 연합해 막강한 힘을 가진 동인도회사를 설립했다. <동인도 회사의 네덜란드 함대>라는 제목을 단 이 작품은 그들의 업적을 기념하려는 동인도회사의 의뢰를 받아 루돌프 바크로이센이 제작했다. 그림에 등장하는 선박 대부분은 다층갑판과 이중 선수루(船首樓)를 자랑하는 세대박이 범선이며, 무게가 600톤에서 1,000톤에 이르렀다.(당시 운행되던 선박은, 상선이건 해적선이건, 일반적으로이 정도 규모였다.)

네덜란드 화가 프란스 할스는 열정보다는 엄격함을 미덕으로 삼는 세대에 속하는 사람이다. 이 초상화는 그가 하를렘의 판사였던 파울루스 반 베레스타인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1575년 설립되어 전유럽에 명성을 떨친 레이덴 대학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 된 대학이다. 야곱 반 스바넨뷔르흐가 제작한 판화(위)를 보면 도서관은 학습의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도서관에는 가장 초기에 인쇄된 과학과 철학 관련 서적이 소장되어 있었다. 반 스바넨뷔르흐는 레이덴 대학의 해부학 강의실도 판화에 담았다.(아래) 이미 1600년대 초기에 많은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명 교수들이 해부학 강의를 했다.

<발람과 당나귀>(위). 1626년. 렘브란트가 이 작품을 그렸을 때 그는 약관 20세였다. 그는 그림에 'RL'이라고 서명했는데, L은 그가 태어난 고향인 레이덴을 의미했다.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피테르 라스트만의 작업실에서 스승의 <천사와 예언자 발람>(아래)을 보았을 것이고, 그림의 주제를 스승의 작품에서 빌려 왔음이 틀림없다. 렘브란트는 당나귀를 타고 있는 예언자의 모습은 라스트만의 그것과 비슷하게 처리했지만 천사의 경우는 주름진 옷의 곡선을 강조하여 라스트만의 정적인 표현과 달리 동적인 느낌을 부여했다. 이로써 렘브란트가 원화를 자유롭게 다루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매장>은 피테르 라스트만이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후에 그린 것으로 빛을 다루는 면에서 카라바조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빛과 그림자를 통해 양감을 나타내는 명암법)가 사용되고 있지만, 구도에서나 극적 효과를 창출하는 데에서 렘브란트의 그림과 비교할 수 없다.

얀 리벤스와 렘브란트는 공동작업실에서 같이 일했다. 렘브란트는 'RL'로 서명했고, 리벤스는 1635년경 제작한 그의 <자화상>(위)에 'IL'로 서명했다. 약자 L은 리벤스의 이름이거나 태어난 고향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바다, 하늘, 폭풍우, 구름, 안개는 네덜란드인의 삶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아래 그림은 살로몬 반 로이스달의 <나룻배>이다.

피테르 얀츠 산헤담의 <하를렘의 성 바보 성당>은 프레스코화나 유화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성당의 간소한 내부를 보여 준다.

<돌팔매질당하는 성 스테반>에서 렘브란트는 전유럽에 확산되고 있던 회화의 새로운 장르를 시도했다. 당시 회화는 역사 기술을 의미했다. 렘브란트는 돌로 쳐 죽이려는 사람들에 둘러싸였어도 평화로운 표정을 지은 성자의 얼굴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흰 수염을 기른 노인>(위, 1626)의 주인공은 렘브란트의 아버지였을 것이다. 노인은 <성전에서 상인을 쫓아내는 그리스도>(아래)의 몇몇 등장인물과 닮았다.

1626년에 렘브란트가 나무에 그린 이 그림에는 <티투스의 관용> <만리우스 토르퀴아투스의 아들의 비난> <브루투스의 판결>, <페틸리우스 케레알리스 앞에 반역자들을 잡아오다> 등 여러 제목이 붙어 있다. 이미 스무 살 때부터 그의 역사화 제작에서의 탁월성과 창조력이 돋보이기 시작했다. 홀(笏)에 가려진 사람은 렘브란트 자신이다.

1626년에 제작된 <염소를 훔쳤다고 토비트에게 질책당하는 안나>의 제재는 《성서》(<토비트서> 2:11-14)에서 얻은 것이다. 뜨거운 참새 똥에 맞아 눈이 먼 토비트는 아내가 데려온 동물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토비트는 아내를 불러 물었다. "그 녀석을 어디에서 가져왔소? 설마 훔쳐 온거 아니오! 어서 주인에게 돌려주구려. 훔친 가축을 먹을 권리는 없소." 아내가 말했다. "그게 아니랍니다. 급료에 덧붙여 받은 선물이에요." 그러나 토비토는 아내를 믿지 않았고 계속 염소를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일렀다. 그러자 아내가 말했다. "당신이 베푼 은혜와 선행은 어디에 있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그들을 위해 한 일을 알고 당신 편이 되어 줄 거예요." 토비트는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슬픔의 기도를 올렸다.

<큰 모자를 쓰고 지팡이에 기대어 있는 거지>(위, 1629)는 렘브란트가 여러 해 동안 레이덴의 거지들을 모델로 해 제작한 드로잉과 에칭화 중 하나이다. 그의 에칭 바늘은 찢어진 옷과 주름진 얼굴을 표현할 때 영감을 얻은 듯하다. 어머니의 얼굴을 표현한 에칭화(아래)는 1628년 작품이다.

<작업실의 화가>(1628경). 이젤 위에 기댄 채 빛을 가득 받고 있는 화판을 응시하는 화가는 렘브란트 자신이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완성된 그림일까, 거친 스케치일까? 그는 작업복 대신 고객이라도 맞이할 듯 성장하고 있다.

알브레히트 뒤러 같은 다른 화가들의 판화작품은 렘브란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지팡이에 기대어 있는 손이 불편한 거지>(위)에서 프랑스의 판화가이자 에칭화가인 자크 칼로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잇다. 아래는 칼로의 <목발 짚은 거지>이다.

콘스탄테인 호이겐스는 1626년경 얀 리벤스에게 초상화를 주문했다. 그는 최초로 렘브란트 비평을 썼으며, 특히 빛과 그림자의 사용을 자세히 다루었다.

호이겐스는 1629년에 제작된 렘브란트의 <은화 30전을 돌려주는 유다>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레이덴을 떠난 해인 1631년, 렘브란트는 <예언자 안나>를 그렸다. 안나는 부모를 따라 성전에 온 어린 예수가 메시아임을 알아보았다. 이 그림의 모델을 선 렘브란트의 어머니는 아들의 천재성을 알아보았을까?

<노파> 또는 <렘브란트의 어머니>는 헤리트 다우의 작품이다. 다우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스승의 그림을 모사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스승이나 동료의 그림을 베끼는 일이 흔했다. 모사는 '날조'가 아니라 학습하고 조언을 주는 한 방법이었다.

 

제2장

영광과 비탄

 

"유럽에서 보기 드문, 인도산(産) 희귀품으로 가득한 배들이 이곳에 도착하오. 이것을 보는 것이 과수원에서 자라는 과일을 보는 것만큼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소? 화려한 삶과 진귀한 물건을 이렇게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이 또 어디 있겠소?"

 

르네 데카르트

얀 반 데르 헤이덴이 그린 <암스테르담의 헤렌흐라흐트>(위)에서 부유층의 저택을 볼 수 있다. 렘브란트의 에칭화 <암스테르담의 전경>(아래)에는 항구, 배, 풍차, 시계탑, 창고 등 도시의 다양한 모습이 펼쳐져 있다.

르네 데카르트의 초상화는 프란스 할스의 그림을 모사한 것이다. 그림은 위대한 철학자와 재기 넘치는 초상화가의 조우를 들려준다.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는 1608년에 착공하여 1611년에 완공되었다. 거래는 건물 내부가 아니라 안뜰에서 이루어졌는데, 비가 오면 사람들은 회랑 안으로 몰려들었다.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의 안뜰>은 네덜란드의 화가 에마뉘엘 데 비테가 제작한 1653년의 것으로, 당시 막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해 온 비데는 건축화에 전념하고 있었다.

"어둠에서 내려오는 나선형 계단과 힐끗 보이는 황량한 복도는, 감상자로 하여금 빛나는 물질을 분비하는 이상한 조가비의 내부를 엿보고 있는 기분을 갖게 한다. 모호하며 설명하기 힘든 방법으로 정신을 비유하고 있는 이러한 구성은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사유, 심오한 사유, 그리고 인식이 풍부한 존재로부터 형성된 사유를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폴 발레리

《네덜란드를 다녀와서》 중 <데카르트와 렘브란트> (1926)

해부학 강의를 화폭에 담은 전통은 이보다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바스티안 에그베르츠 박사의 해부학 강의를 담고 잇는 토마스 데 카이세르의 그림(위)이나 피테르 미켈츠 반 미레벨트가 그린 반 데르메르 박사의 해부학 강의(아래)가 대표적인 예이다.

<튈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에서 튈프 교수 곁에 모여 있는 명사들은 의사가 아니다. 중앙의 인물이 들고 있는 명단에서 정부관리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림을 불후의 명작으로 만든 사람은 바로 화가 자신, 렘브란트이다.

해부학 강의실 건물 정면에는 튤립이 조각되어 있는데 튤립은 튈프 교수를 의미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교수의 이름은 네덜란드어로 튤립을 의미하며 네덜란드의 국화(國花)가 튤립인 것이다. 1622년 행정관에 임명되고 후에 두 번이나 시장에 당선된 튈프는 암스테르담 사회에서 성공한 인물이었다. 렘브란트는 이 그림을 위해 플랑드르의 유명한 해부학자이자 티치아노의 친구인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의 판화 <인간의 육체를 그리는 것에 대하여>(1543)를 연구했을 것이다.

렘브란트가 약혼을 기념해 그린 사스키아의 첫 초상화(위)에는 순종적이고 체념한 듯한 인상이 깃들여 있다. <깃털장식 달린 모자를 쓰고 미소 짓는 사스키아>(아래)를 위해 모델을 선 사스키아가 그것이 모델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임을 알았을까?

<십자가를 세우다>(위)에서는 대각선의 빛이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세우는 병사들 위로 쏟아지고 있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다>(아래)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그림은 1634년 주연합의 총독인 프레데릭 헨리의 주문에 따라 제작한 다섯 점 중 하나이다. 이 작품들의 공통된 주제는 그리스도의 수난이다.

단색으로 처리된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의 매장>(1639경)을 렘브란트가 총독을 위해 제작한 그림 다섯 점 중 하나의 습작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이 다섯 작품의 캔버스 양쪽 위가 둥글다는 사실을 참조할 때 이런 주장도 설득력을 지닌다.

렘브란트는 총독의 그림 주문을 연결해 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눈이 머는 삼손>을 콘스탄테인 호이겐스에게 주었다. 폭력적인 장면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구성의 대담성에서 볼 때 이탈리아 회화 전통과 유사한 면이 있다.

<팬케이크를 굽는 여인>(위)이나 제자인 페르디난트 볼이 그린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아래) 등 렘브란트는 그의 작업실에서 모든 종류의 주제를 소화해 냈다.

사랑하는 모델 사스키아

렘브란트가 그린 이 그림(위)은 <마우솔루스의 유골을 받는 아르테미시아> 혹은 <독배를 받는 소포니시바>로 알려져 있다. 제목이야 어쨌든 그림은 부부간의 정절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많은 그림에서 렘브란트의 환상을 대변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사스키아가 역시 모델이 되고 있다. <사스키아와 함께 있는 자화상>(아래, 1636)에도 사스키아가 등장한다.

여신과 여인

렘브란트는 사스키아를 있는 그대로 초상화에 담지 않았다. 사스키아는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플로라로 변신한 사스키아>(위)에서 사스키아는 이탈리아 농촌지방의 여신으로 등장한다. 아마 누군가에게 로마의 창녀들이 플로라의 가호를 기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작품을 그린 듯한데, 사실 그림에 흐르는 관능의 의미는 그림 자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렘브란트는 사스키아가 쓴 화관에 튤립 한 송이를 끼워 넣음으로써 로마의 여신에 네덜란드적 요소를 부여하고 있다. <사스키아 반 월렌보르흐의 초상>(아래)에서 렘브란트는 그녀를 우아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그녀의 모자는 렘브란트가 프랑스의 패션을 의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말해 준다. 두 작품은 모두 1634년에 제작되었다.

<사스키아와 함께 있는 자화상>(1636)은 그가 아내의 지참금을 낭비하고 있다고 헐뜯는 사람들에게 띄우는 답변이다. 렘브란트가 그들에게 잔을 들어 보이고 있다.

<세입 징수 장관 얀 오이텐보하르트> 혹은 <금을 계량하는 사람>. 1639년.

렘브란트가 분할 상환을 조건으로 구입한 신트 안토니스브레스트라트 집.

1639년, 렘브란트는 라파엘로의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의 초상화>(위, 1516)를 모사했다(아래).

이 드로잉 밑에는 '작업복을 입은 렘브란트'라는 메모가 붙어 있다.

<도살된 소>(1640)에는 3차원적인 조형감이 놀라울 정도로 잘 표현되었으나, 몇몇 전문가들은 그 진품성을 의심하고 있다.

메노파의 전도사이자 부유한 상인, 코르넬리스 클라츠 안슬로는 렘브란트가 제작한 초상화 세 점의 주인공이다. 드로잉(위), 유화(가운데), 에칭화(아래).

렘브란트는 종종 서두르지 않고 조심스러운 준비작업을 해 나갔다. 예를 들어 1640년에 그가 드로잉한 안슬로의 초상화가 그러하다. 1641년, 렘브란트는 이 그림을 얼굴 부분이 좀더 정확하게 묘사된 에칭화로 다시 제작했다. 시인인 요스 반 덴 본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렘브란트가 실제로 그리려 했던 것은 코르넬리스의 목소리이다. 그의 외관은 그를 재현한 것에 불과하다. 보여지지 않는 부분은 소리로 알 수 있다. 안슬로를 보고자 하는 사람은 그의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 렘브란트가 시도한 것은 하나의 도전이었다. 펼쳐진 책을 가리키는 손(아래)에서 안슬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은가? 같은 해(1641)에 렘브란트는 안슬로의 초상화를 하나 더 제작했다(가운데). 여기서 안슬로의 손은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여인을 향하고 있다.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기를 산 거장들은 부드럽고 빛으로 충만한 풍경을 사건이나 에피소드를 전개시키기 위한 배경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렘브란트의 풍경은 이러한 무대장치와 전혀 달랐다. 그는 있는 사실을 그린 것이 아니라, '신화'를 그렸다. 렘브란트가 일상의 삶에서 조심스럽게 취한 요소들은 그들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돌다리가 있는 풍경>(1637)의 왼쪽에는 선술집이 있고, 오른쪽에는 교회의 첨탑이 보이는데, 이는 17세기 네덜란드인의 삶을 구성하고 있던 두 개의 극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모델을 드로잉하는 화가>(1639)는 미술도구, 장식품으로 가득 찬 작업실을 보여 주고 있다.

니콜라스 브로이닝흐의 얼굴을 비추며 소매와 손을 가로지르고 있는 빛은 키아로스쿠로 기법의 정수를 보여 준다. 이 초상화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강렬함이며 이 강렬함의 신비는 빛을 빈틈없이 통제하는 렘브란트의 능력에 숨어 있다.

둔부에 손을 올려 놓고 있는 이 인물은 프란스 바닝 코크이다. 결혼 덕분에 부자가 된 그는 재산 이외에도 '퓌르메를란트의 영주'라는 명예를 얻게 되었다. 후에 그는 제임스 2세에게 작위를 수여받았다. 그를 그린 이 초상화는 바르톨로뫼스가 그린 <암스테르담의 고귀한 사수(射手) 길드의 이사>이다. 렘브란트의 <야경>보다 10년 후에 제작된 이 그림은 코크가 원하던 것을 정확히 그려 내고 있다. 우아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코크를 둘러싸고 미술품이 널려 있다.

렘브란트는 유화와 드로잉, 에칭화를 통해 여러 가지 옷을 걸친 사스키아의 웃는 모습, 순종적인 모습, 인내하는 모습, 기뻐하는 모습 등을 재현한다. 1641년 에칭화로 제작한 <크고 흰 머리쓰개를 한 병든 사스키아>(위)에서 사스키아는 뺨이 푹 꺼진 채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며 기진맥진해 있다. 1639년에 스케치로 그려 둔 <병상에 누운 사스키아>(아래, 오른쪽)를 기초로 에칭화 <사자(死者)를 보고 놀라는 청년>과 <처녀의 죽음>을 제작한 것은 렘브란트에게 어떤 예감이 들었기 때문일까?

1715년, <프란스 바닝 코크 대장의 부대>는 후에 왕궁이 되는 니베스타드호이스 2층에 전시되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두 문 사이의 벽에 맞추기 위해, 사람들은 위 25cm, 아래 15cm, 왼쪽 30cm, 오른쪽 10cm 정도를 잘라 냈다.

먼지와 세월의 때는 그림의 색조를 떨어뜨렸고, 그래서 코크 대장의 부대를 그린 이 그림은 <야경>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제3장

고독과 파멸

 

"비평가들이 뭐라고 말하든 간에 이 그림은 다른 모든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살아 남을 것이다. 이 그림은 구상이 예술적이고 인물의 다양한 배치가 무척 독창적이며, 무엇보다 강렬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이것과 비교할 때 다른 그림들은 놀이카드처럼 보이고 만다."

렘브란트의 제자 사뮈엘 반 호그스트라텐

 

《<야경>으로 알려진 <프란스 바닝 코크 대장의 부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면 <야경>(위, 세부)의 칼날 뒤쪽에서 밖을 응시하는 눈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렘브란트의 눈이다. 사뮈엘 반 호그스트라텐이 제작한 <슬리퍼>(아래)의 색조는 이 그림과 전혀 다르다.

에칭화 <세 그루의 나무>(1643)는 폭풍이 지나가는 여름 하늘을 묘사하고 있다. 놀랄 정도로 정확히 표현된 빛과 그림자의 대립은 고요함과 동시에 역동적인 힘을 전해 준다.

티투스의 유모 게르테 디르크스. 1642년경 제작된 렘브란트의 드로잉.

이 에칭화는 <프랑스식 침대>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렘브란트가 아니다. 이 제목은 그림의 주제를 제대로 담고 있지 않다.

<버드나무 밑의 성 제롬>은 《성서》를 해석한 그림일까? 은둔자의 생활을 담은 이 에칭화는 1648년에 제작되었다.

기독교적 신앙을 주제로 다룬 두 그림은 렘브란트의 작품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 연극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엠마오의 그리스도>(위)에서는 석조 벽감이 그리스도의 배경에 놓여 있다. 반면 <커튼 옆에 있는 성가족>(아래)의 열려진 장막은 무대장치처럼 장면을 틀 안에 밀어 넣고 있다.

초상화의 인물은 렘브란트의 아들 티투스로 추정된다. 티투스가 태어난 것이 1641년임을 감안할 때 이 그림은 1650년경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북부 네덜란드의 농부 의상을 입고 있는 이 여성(드로잉, 1642경)은 티투스의 유모이자 렘브란트의 정부인 게르테 디르크스로 보인다. 그녀는 한마디로 골칫덩어리였고 이런 이유에선지 그녀를 모델로 그린 작품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우아한 여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흐르고 있다. 잔잔한 빛은 여인의 얼굴과 진주, 그리고 가슴만을 비친다. 여인의 눈은 렘브란트와의 친밀성을 말해 준다.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헨드리케 스토펠스로 알려져 왔다. 그녀는 사스키아의 지위와 역할을 인수받은 듯 사스키아 같이 렘브란트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1650년 렘브란트는 에칭화를 통해 풍경을 표현하는 데 몰두해 있었다. 그렇게 볼 때 <조가비>는 예외에 속하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해외무역을 통해 벌어들인 부를 상징하는 듯하며, 조가비의 완벽한 나선형 구조와 표면의 부드러운 형태에 렘브란트가 매료되었으리라는 사실을 일러준다.

<책상에 앉아 있는 얀 식스>(위, 드로잉, 1655). 얀 식스는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1652년에 사업을 그만두었다. 그는 <식스의 다리>(아래, 에칭화, 1645)에도 등장한다.

크기(38.5×45cm)로 보나 빛과 그림자의 효과적인 사용으로 보나 <세 개의 십자가>는 렘브란트가 제작한 가장 중요한 에칭화의 하나이다.

합법적인 부인이 되지 못한 헨드리케의 이름은 렘브란트의 그림에 한번도 공식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창 밖을 내다보는 여인> 외에도 많은 그림에 등장한다.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말탄 폴란드인>을 렘브란트의 작품으로 믿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진품성을 의심하는 전문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렘브란트의 작품목록에서 제외된 다른 작품으로는 <황금 투구를 쓴 남자>가 있다.

<밧세바>(1654). 다윗의 잔인함에 고통받던 여인 밧세바와 교회로부터 시달림을 받던 헨드리케는 강요된 체념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강가에서 목욕하는 여인>(1655).

<창가에 선 헨드리케(?)>(1656~1657).

책상 너머로 필통을 달랑거리는 티투스는 이번에는 무얼 스케치할까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하다. 렘브란트의 재산목록에는 '티투스 반 레인이 사생(寫生)한 세 마리 강아지 그림'이 포함되어 있다.

렘브란트는 만테냐가 1506년에 제작한 <죽은 그리스도>(위)의 판화를 소장하고 있었다. 이 그림은 <요하네스 다이만 박사의 해부학 강의>(아래)의 모델이 되었다.

1723년에 발생한 화재로 <요하네스 다이만 박사의 해부학 강의>의 3/4이 소실되었다. 다이만 박사는 손만 보이고 박사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던 여덟 명의 관람자 중에서는 왼손으로 시체의 두개골을 들고 있는 조수만 불에 타지 않았다. 1632년의 첫번째 해부학 강의 장면보다 더 정확하게 상황을 전달하려 했던 렘브란트는 절개된 복부를 묘사해 넣었다.

 

제4장

은둔과 죽음

 

이제 자신의 소유가 아닌 신트 안토니스데이크의 빈 집에서 렘브란트는 자신의 작품인 시인 예레미아스 데카르트의 초상화를 찬양하는 H. F. 바테르로스의 시를 읽었다. 그는 파산과 악평, 소외를 근심했을까? 그는 파산했고 따돌림받았지만 자신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

넓은 갈색 깃이 달린 두툼한 외투를 입고, 헝클어진 반백의 머리 위에 하얀 모자를 쓴 렘브란트의 <자화상>(위, 세부)은 1663년경에 그려졌다. 배경으로 보이는 원은 시간을 상징한다. 아들의 초상화 <독서하는 티튜스>(아래)는 이보다 몇 년 전에 제작되었다.

위에서부터 <귀기울이려는 듯 앞으로 몸을 숙인 자화상>(1628), <주먹코를 한 자화상>(1628), <모피 모자와 밝은 옷을 입은 자화상>(1630), <화난 모습의 자화상>(1630), <소리를 지르듯 입을 벌린 자화상>(1630), <부드러운 모자를 쓴 자화상>(1634).

렘브란트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고 가장 다루기 쉬운 모델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렘브란트는 수많은 자화상을 얼굴 표현이나 다양한 예술적 기법을 연구하려는 시도만은 아니었다. 그의 자화상은 불안, 항변, 절규, 그리고 변화하는 삶의 태도와 감정의 기록이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100여 점이 될 것으로 추산하나, 그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기 힘들다. 제자들의 모사품, 렘브란트 자신의 개작, 최근에 제작된 위조품, 또한 그 자신이 그린 또다른 판본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자화상 목록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1658년의 이 자화상은 고독 속에서도 당당하고 자신감에 넘친 렘브란트를 보여 준다. 이마에는 주름살이 패어 있고 입가에는 잔잔한 미소가 서려 있다. 수수께끼 같은 의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경제적으로는 파산상태였지만, 자신의 힘은 파괴될 수 없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당한 렘브란트

각각 1629년(위)과 1634년(아래)에 제작된 자화상에서 렘브란트는 똑같은 갑옷을 입고 있다. 철제 목가리개는 렘브란트가 조국에 자유를 찾아 준 주연합의 시민군과 자신을 동일시했음을 일러준다. 군대경험은 없었지만 그는 고객들과 공유했을 애국심을 형상화하곤 했다.

대가

1640년의 <자화상>은, 금, 모피, 벨벳, 자수로 장식된 넓은 모자 - 그가 즐겨 쓰던 모자이다 - 를 쓴 렘브란트가 좁다란 난간에 팔을 기대고 선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의 자세는 라파엘로의 초상화에 묘사된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의 모습과 같다. 렘브란트는 경매장에서 그 그림을 모사한 적이 있는데, 당시 그 그림을 사들인 사람은 화상인 알폰소 로페즈였다. 풍부한 베네치아 색채는 로페즈가 소장한 또 다른 작품을 떠올리게 해준다. 그것은 푸른 소매 옷을 입고 있는 남자를 묘사한 것으로 흔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초상화>라 불리는 티치아노의 그림이다. 결국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에서 그린 이 자화상에 이탈리아 화가들의 '독창성'을 빌려와 융화시켰던 셈이다. 이탈리아 유학이 필요불가결한 것은 아니었다.

최후의 몇 년

1660년대에 제작된 세 점의 자화상에서는 화려한 장식이나 가식을 찾아볼 수 없다. 머리에는 흰눈이 내려앉았고 살이 오른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났으며, 권태와 회한으로 가득한 눈길은 무감각해 보인다. 렘브란트는 흰 모자에 금색선을 첨가해 배경, 머리카락, 얼굴과 조화를 이루게 했는데, 이로써 화가는 자신의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하다.

렘브란트가 1647년에 에칭화로 묘사한 얀 식스(위)는 파산 직전의 렘브란트를 구제해 주곤 했다. 렘브란트의 세계적인 명화들은 카이제르스크론 여관(아래)에서 팔렸다.

<수도사 차림의 티투스>(1660). 이 초상화의 모델은 아들 티투스이다. 렘브란트는 거친 수도복에 드리워진 갈색 그림자를 하나하나 묘사하는 기쁨으로 티투스를 그렸을까? 아니면 관객의 눈길을 티투스의 창백한 얼굴로 이끌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일까? 혹은 티투스로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를 표현하려 했던 것일까?

1891년 스톡홀름 미술관에서 다른 제목이 붙은 채 재발견된 <율리우스 키빌리스의 음모>(위, 가운데는 세부)는 원화의 1/4만 남아 있었다. 화재 때문일까, 아니면 그림의 힘과 사실성을 감소시키기 위해 고의적으로 잘라 낸 것일까? 원화의 구성은 아래에 있는 습작으로 확인할 수 있다.

렘브란트는 참을성 없는 수집가 하르멘 베케르를 달래기 위해 위풍당당하고 위엄 있는 <주노>의 초상화를 그렸다. 얼굴, 목걸이, 오른손에서 여신의 권능을 느끼게 만드는 이 초상화는 세부가 무시되어 있으며, 왼손과 왼팔은 가까스로 스케치만 끝난 상태이다.

램브란트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직물 제조업자 길드 이사들의 초상화>는 렘브란트의 마지막 집단초상화로 암스테르담 직물 제조업자들의 주문에 따라 제작되었다. 가운데는 렘브란트의 제자인 페르디난트 볼이 그린 <포도주 상인 길드의 초상화>이고 아래는 <직물 제조업자 길드 이사들의 초상화>를 위한 습작 드로잉이다.

렘브란트는 철학자의 초상화를 그려 달라는 시칠리아 거부이자 미술품 수집가의 주문을 받고, 1653년에 <호머의 흉상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긴 아리스토텔레스>를 제작했다. 렘브란트는 시인이자 철학자,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자 친구인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전사(戰士)의 미덕을 부여했다. 알렉산더 메달을 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장님 시인인 호머의 흉상에 손을 올려 놓고 있다. 메달에 각인된 알렉산더의 흉상과 렘브란트가 1663년 제작한 <알렉산더 대왕>(아래)은 무장을 하고 투구를 쓴 팔라스 아테나의 이미지를 빌려 형상화했다.

스트라스부르의 부유한 상인이던 프레데릭 리헬은 1660년 암스테르담으로 입성하는 열 살 난 윌리엄 3세를 호위하던 108명의 기마 친위대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실물 크기의 초상화 <말 위에 올라탄 프레데릭 리헬>을 통해 영원히 남기고 싶었던 것은 왕을 호위하던 영광의 순간이었다. 기마초상화는 네덜란드 회화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만약 <말 위에 올라탄 폴란드인>이 다른 사람의 작품이라면 이 그림은 렘브란트의 유알한 기마초상화가 될 것이다. (1655년에 렘브란트가 제작한 <말 위에 올라탄 해골>에서는 말과 사람 모두가 해골의 모습을 하고 있다.) 렘브란트가 기마초상화를 그렸다는 것은 티치아노의 <샤를 5세>나 로마의 조각상에 자기 작품을 견주어 보려는 의도였다. 성직자처럼 뻣뻣한 말은 기수의 중요성을 한층 부각시켜 준다. 배경으로 왕궁의 마차와 더불어 어렴풋이 어린 왕자의 옆모습이 보인다.

라파엘로의 <자화상>은 피렌체 체류의 흔적과 함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을 짐작하게 해준다. 1682년 10월 28일. 이 작품은 메디치가의 레오폴도 추기경의 소장품이 되었다. 레오폴도는 화가들의 자화상으로 컬렉션을 만들고자 했다.

1713년 팔츠의 선제후 요한 빌헬름 폰 데어 팔츠는 메디치가의 코시모 3세에게 루벤스의 <자화상>을 선물했다. 토스카나의 대공작들은 19세기 말 이탈리아가 통일될 때까지 미술품을 수집했다.

벨라스케스의 <자화상>은 코시모 다 카스틸리오네가 토스카나 대공작을 위해 스페인에서 구입했다. 필리페 4세의 긍정화가였던 벨라스케스의 허리춤에 왕궁 의전관실 열쇠가 보인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메디치가의 코시모 3세가 암스테르담을 방문했을 때 구입한 듯하다. 오늘날 이 그림은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유태인 신부>(1665)의 등장인물을 확인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이 여인은 누구일까? 하지만 렘브란트에게 중요한 것은 그림의 대상이 자아내는 느낌이었다. 풍요로운 색채 속에서 즐거움과 정다움이 솟아 나오고 있다.

렘브란트는 나이프를 이용해 남자의 소맷자락에 금을 입혔고, 그 도드라짐이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 물감을 긁거나 문지른 부분은 질감을 높여 주어, 단지 눈으로 보고 싶을 뿐만 아니라 만지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폐허>(두번째, 1650), <가족의 초상화>(첫번째)는 렘브란트가 죽은 해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세번째는 렘브란트의 가족들이 묻혀 있는 베스테르케르크의 드로잉이고, 네번째는 <자화상>(1665)이다.

<석고상을 그리는 미술 전공 학생들>. 에칭화, 1641경, 국립도서관, 파리.

<갈릴리 바다의 폭풍우>, 1633년. 렘브란트의 유일한 바다 풍경화이다.

<그리스도의 매장>, 에칭화, 1654년.

<유대인 신부>(세부), 1668년경.

<플로라로 변신한 사스키아>, 1635년.

<기도하는 다윗>, 에칭화, 1652년.

이 신비하고 작은 여자의 허릮에는 다양한 궁술(弓術)의 상징이 있다.

1650년 코크 대장의 앨범에 소장된 <야경>의 수채화 모사화는 원작이 잘려지기 전의 모습을 보여 준다.

<목사 얀 코르넬리츠 사일비우스의 사후 초상화>, 1646년.

<서재의 파우스트>, 에칭화, 1652년.

<눈먼 토비트>(세부), 에칭화, 1651년.

<왕좌에 오른 티무르 황제>, 드로잉, 1635년경, 인도의 세밀화를 모사했다.

<둑에 앉은 거지>(세부), 에칭화, 1630년, 자화상이다.

<아담과 이브>(세부화), 1638년.

렘브란트의 제자인 아브라함 퓌르네리우스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그림네세 슬로이스 다리의 모습>.

<아브라함의 번제(燔祭, 구약시대에 유태인이 짐승을 통째로 구워 신에게 바치던 제사 : 역주)>, 1636년.

<자화상>, 1627~1628년경.

<극락조>.

 

 

어느 초상화가 모방작일까? 렘브란트 조사계획 위원회는 위의 두 초상화의 진품성을 의심했다.

<호머의 흉상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긴 아리스토텔레스>, 1653년.

<자화상>, 16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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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17. 10:42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06 만인보

 

高銀

2006,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794

 

811.6

고67만  6

 

창비전작시---------------------------------------------------------------------

 

나는 김홍도의 풍속도에서 씨름꾼이나 엿장수, 매맞는 아이, 엿보는 소악패, 늙은 부부, 장에 가는 농민, 음흉한 양반 등등 거기 살아 있는 백성들의 표정과 동작을 보면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이승의 엄숙함을 느낀다. 이런 점은 중동이나 인도의 벽화 또는 두루마리 그림에서도 느끼며, 특히 브뤼겔의 그림을 보면서는 그가 뚜렷한 의도를 지니고 당대의 잡다한 민중을 모든 가치와 관념과 인식의 중심으로 파악하려 했다는 눈치를 채게 된다. 『만인보』는 마치 들꽃이나 잡초처럼 강산에 번성하고 스러져간 당대인의 모습을 시인 자신의 체험적 스냅사진 속에서 재현하고 있는 '이야기 시'이다. 작은 수백 수천의 조약돌을 모아 바다를 형성화해내듯이 그의 이러한 작업은 서사시가 흔히 놓치게 되는 서정성과 개개인의 자상한 인생 체험을 밑바탕으로 하여, 오히려 시인 고은의 전생애와 동시대를 총체적으로 담아내는 대하 서사시의 성과를 얻게 하고 있다.

- 소설가 황석영

 

신명의 언어로 충만한 시인 고은, 그의 신명의 언어가 그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 하나 하나와 살아서 만날 때 낳아지는 것이 『만인보』 연작이다. 그 만남을 지켜보는 시인의 시선에는 달관의 지혜가 담겨 있다. 그 지혜로 시인은 "사람의 추악까지 포함하는 승엄성"을 포착해내고 민중적 생명력의 온전한 모습을 길어내어 생동하는 한국어의 급박하면서도 여유 있는 리듬을 싣고 있다. 『만인보』의 만남이 거듭할수록 시인의 신명은 더욱더 살아 뜀뛸 것이다. 그가 시의 숨결을 놓치지 않는 한.

- 문학평론가 성민엽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성계육 / 관여산 조봉래 / 혹부리 / 입분이 / 천서방 / 임방울 / 두희종 영감 / 효부 / 쌍가매 / 박춘보 / 형제 머슴 / 춘  자 / 신  자 / 이삼만 / 양녕대군 / 진달룡이 / 달봉이 / 진달룡이 어머니 / 송만복이 / 기호 할머니 / 김규식 / 당북리 혹부리 / 왕눈이 가시내 / 육복술씨 / 나운리 방앗간집 마누라 / 광개토대왕 / 월명동 미인 / 기선이 / 재근이 / 오줌싸개 / 외사촌 용섭이 / 점  례 / 이종사촌 한선우 / 새말 조인구 아버지 / 이광수 / 개사리 문점술이 / 새말 조길연이 딸 / 김재선 영감 / 새터 울음보 / 용둔리 찐득이 / 독점 오복녀 / 삼형제고개 / 설소년 / 따따부따 / 백제 유민 부례 / 수복이 / 원당리 노망 / 독점고개 강도 / 눈에 홀린 총각 / 미제 황소아들 / 김종술이 / 재봉이네 장닭 / 도  선 / 수  염 / 호락질 / 미제 창순이 / 완  도 / 이차돈 / 형사 조태룡 / 홍종우 / 지곡리 서당 전총각 / 명산동 잡화상 며느리 / 신흥동 껄렁패 / 강집사 / 윤봉재 / 길남이 / 김시습 / 권오술이 여편네 / 선제리 도둑 / 관전이 외할아버지 / 귀녀 아버지 / 어린 완규 / 새터 상술이 어머니 / 미제 술집 심부름꾼 / 옥정골 고남곤이 / 하이하이 아낙네 / 황희 / 갈뫼 애무덤 / 아래뜸 우식이 / 시청 산업계장 김주갑 / 지서장 김충호 / 미제 공순이 / 창순이 아버지 / 산삼 재상 / 큰작은어머니 / 작은작은어머니 / 소래자 / 중식이 아버지 / 양반 나그네 / 정  철 / 김세규 서모 / 칙간 귀신 / 양귀비꽃 / 참판 똥 / 고려의 끝 / 원당 김상래 / 미제 김상래 / 가사메 전한배 / 전익배 / 어느 어머니 / 전상모 / 지곡리 강칠봉 / 전대복이 / 우하룡 / 말  례 / 가네무라 가네마쓰 / 문행렬이 아저씨 / 김도술 / 김덕구 마누라

찾아보기

 

관여산 조봉래

 

늘 우는 소리

웃방 흙바닥 나락 여덟 가마나 쟁여두고

아이고 뭘 먹고 살 것인가 하고

우는 소리

누가 인기척 내며 마당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아이고 목구멍에 거미줄 칠 날이

내일 모레여 하고

누가 양식 꾸러 온 것도 아닌데

지레짐작으로

두 끼 굶었다고

물만 먹고 앉았다고

남우세 모르고

우는 소리

임오년 계미년 모진 시절이건만

관여산 위아래 마을 어느 집도

그런 봉래네 집으로

양식 꾸러 가지 않았다

양식은커녕 삽 한 자루 빌러 가지 않았다

온 동네 짬짜미로

조봉래 따로 돌려놓아 버리고

어디 보자

봉래 너 아쉬운 때 있으리라

부엌 아궁이 재 가득해도

당그래 하나 못 빌고 올 날 있으리라

 

당북리 혹부리

 

당북리 혹부리 권오식이

만만치 않은 입심이라

 

왼쪽 볼에 척하니 하나 매달린 혹이라

동네 어른이 심심하던지 한마디

자네는 소 뒷다리 밑에 달린 것을

얻어다 달고 다니나 하자

영감님은 남의 부랄 떼어다

차고 다니십니까

그것도 하나 아니라 두 개씩이나

괜히 한마디 했다가 본전치기 못하고 말았다

 

말대꾸에 보리카락 들어가는 권오식이

그러나 저 혼자야 한없이 싱거운지라

한번 지게 받쳐놓고

지겟짐 그늘에 들어가 쉬기 시작하노라면

햇빛에 그늘 옮겨가는 대로

옮겨 앉아

일어설 줄 모르는 권오식이

 

눈앞에 두벌김 맨 검푸른 모 자라

왜가리 따위 앉을 데 두지 않는데

벌써 이른벼 나락 모가지 여무는데

찰벼 사납게 패는데

 

나운리 방앗간집 마누라

 

미룡리 신풍리 사이

나운리 방앗간집

방앗간은 헌 집 사서 자꾸 달아내고 올리고 하여

이층인지 삼층인지 모르고

두 채인지

몇 채인지 모르게 늘어나기만 한다

 

그 방앗간집 주인 영감은

방앗값 떼어내는 데 귀신이라

한 말 떼면

그게 한 말 가웃이다

그렇게 부자 되니 무엇하나

밤이나 낮이나

방앗간 먼지 속에서

누구 하나 못미더워라

눈에 불 켜 달고

여기저기 두리번댄다

 

손수 아시 찐 쌀 살펴보고

발동기 용수철 기름칠하고

언제 안채 들여다볼 겨를 있는가

 

겨우 늦은 점심에

소금김치 한 가닥 얹어

쌀 보리 섞은 밥 뚝딱 먹고 나면

담배 한 대 물고 나와버린다

 

그런지라

안채 마누라는

노상 얼굴 단장이나 하고

머리 가리마 짜르르 미끄러진다

뒤에서 보면

이게 어느 집 기생인가

 

어여쁜 낭자 지어

분냄새에 대낮에 모기 운다

바깥 방앗간 영감과 15년 차이라

저 혼자 나선 길에

군산 희소관 가서

일본 활동사진 보고 오는 길

 

그래도 미안스러운지

영감 주려고 궐련 두 갑 사온다

영감은 그냥 봉지담배 뜯어

종이에 말아 피우는데

 

월명동 미인

 

군산 월명산 밑 월명동은

언제나 인기척 귀한데

집집마다

사람이 사는지 안 사는지

하기야 3 · 1절날 깃발도 적적한데

그런 주택가 가로수도 심심하기 짝이 없는데

어쩌다가 미면 소달구지가

멋모르고 그 거리 들이닥쳐

쇠똥 질턱질턱 싸놓으며 지나간 뒤

그 쇠똥 꼬들꼬들해질 무렵

저녁 나절이라

그 누가 보아야지

그 누가 보아야지

월명동 미인 가네무라 히사꼬

양산 받고 바람 쐬러 나온다

소문으로는 몹쓸 병 걸려

죽는 날짜 받아놓았다 하나

세월이 갈수록

그 아름다움 무르녹아

그 히사꼬 한번 보면

그날 하루 내내

다른 것 보아서는 안된다 눈 버린다

그 깎아 박은 듯한 콧마루

그 코 아래

검은 점은 일부러 찍은 점이라거니

태어날 때

삼시랑 할머니가

보름달에 푸접하라고 찍어준 점이라거니

그 히사꼬 지나가는 거리

이제까지 그렇게도 적적하다가

이 집 창 드르륵 열리고

저 집 창 열리고 열려

월명동 미인 구경하는 늙은이 있고

일찍 돌아온 사내 있고

덩달아 휘익 휘파람 부는 아이도 있고

제 동네 미인한테 눈팔고 있다

한 눈이 아니라

두 눈 다 쏘옥 팔아버리고 있다

벌써 시청 쪽으로 가고 없다

월명동 미인

못이 되었으면

그 미인 치마라도 걸어두는

못이 되었으면

 

새말 조인구 아버지

 

봄볕에 나와

해바라기하다 그대로 앉아 죽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다 저녁때 아들이 가 흔들어 깨웠으나

이미 굳을 대로 굳었다

굳은 뼈 우드득우드득 분질러 눕혀놓고

아이고오 아이고오

곡성 냈다

늙은 아버지 세상 떠나도

슬픔 하나 없는 아들 조인구

 

하기야 사람 때리고 패는 데만 이골이 났지

어찌 슬픔 알겠느뇨

어찌 생사의 뜻 알겠느뇨

억지로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개사리 문점술이

 

문점술이

웃통 벗으면

그런 장사 없는데

괴적삼 입으면

언제나 꾀죄죄한 꼬라지라

다른 동네사람 멋모르고

멱살 잡고 떵떵거리다가

순하디순한 점술이 한번 화나면

그냥 상대방 번쩍 들어 개골창에 내던져버린다

 

체 언 빨래만도 못한 것이

나대기는

말복 풍뎅이 불에 대들 듯하고 있네

한마디 투덜

 

밥 세 사발 먹고도 서운한지

숭늉 두어 사발 먹는 점술이

일 나와

그렇게 먹어야

배 주릴 때 견디는 점술이

 

동네 조무래기들이

업어 달라고 졸라대면

셋이고 넷이고 한꺼번에 겹겹으로 업고

큰길까지 나가주는 점술이

 

순하디순하여

동네 아낙네도 내외하지 않고

하소 하소 하고

어이없는 반말 쌍말에도

꼬박 예 예 예에 하는 점술이

상고머리 희끗희끗

보리 베고 난 빈 밭에서

석양머리 붉은구름 한동안 보고

히죽 웃는 점술이

 

새말 조길연이 딸

 

허퉁하고 폭폭한들

어디에 대고 그 속 풀 곳 없다

새말 조길연이 딸 아리따운 처녀 양순이

왜 그런지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하고

여기서

저기서

고약한 헛소문만 떠도는데

아무개하고 붙었다더라

아무개하고 헛간 검불 속에서 붙었다더라

군산 묵은장 장돌림녀석하고 눈맞아

당장 여관 가서 치마 말기 풀지도 않고

그냥 나딩굴었다더라

이런 몹쓸 소리에

시집 길 꽉 막혀

어디서 멋 모르고 선보러 왔다가도

더는 발길 끊어지고 만다

 

그러나 정작 당자인 양순이는

늘 애벌레같이 굼실거리는

그 잘 생긴 입술에

흰 이빨 살짝 내보이며 웃을 뿐

세 또래 처녀가 귀뜀해 주어도

어디 남의 말 석 달 가랴

 

눈 지그시 감고 입술 지그시 깨물고만 있을 뿐

그년의 속 한번

천길도 깊어

아무 내색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한동네 웃말 전두수 아들한테

느지막이 시집갔다

시집가던 머리로

아이 들어 배가 불렀다

동네 흙빛 한번 새삼 붉었다

 

새터 울음보

 

아빠 한섭이는

좀도둑질하다가 잡혀

형무소 가고

엄마는 집 나가 소식 모르고

할머니 손에 닿아 자라는 아이

새터 울음보

 

울다

울다

울다 지치면

잠자고

잠깨면

목 쉬어 울어대는데

 

어린아이가 목 쉬다니

천벌이야 !

 

그 시절

그 마을 모두가 천벌 맞은 것이야 !

 

용둔리 찐득이

 

박석태

이 찐득이

죽은 지 3년 된다

찐득이 제사날

동네 우물마다

오늘이 찐득이 제사날이여

찐득이 제사날이여

 

오라고 하지도 않았건만

꾸역꾸역 판에 끼여들어

두부 다 먹고

김치 다 먹고

술도 다 먹고

저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 다 듣고

 

밀어내어도

밀려났다가 다시 오고

또 밀어내어도

또 밀려났다가 다시 오고

저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잔치에

찐득찐득 늘어붙어

실속 차릴 것 다 차리는 찐득이

 

그러다가 젊은이한테 맞아

코피 주르륵 흘려도

쑥잎으로 콧구멍 막고

다시 들어서서

잔칫상 한 자리 차지하고

굴비 찐 것 건드리고

부꾸미 한장 걷어 먹고

쇠고기산적 먹고

끄르륵 트림한다

 

그렇게도 홀대받아도

그렇게도 괄시받아도

그런 것 막무가내로

제 실속 차리는 찐득이

 

누군가가 그 성질 간파하여

못 받을 빚 받아오라 해서

빚진 집에 가서

아무리 몰아내고

도망치고

몽둥이로 쳐 몰아내어도

기어이 들어가

아랫목 차지하고

사흘 누워 있다가

밥도 안 먹고 누워 있다가

기어이 돈 받아가지고 돌아왔다

 

그 찐득이 박석태 죽어

제사날이었다

오마나

찐득이 귀신 우물 속에 있는가

두레박이 안 올라오네

 

원당리 노망

 

원당리 홍달표 할아버지 노망 들어

아직 깜깜한 꼭두새벽인데

아 큼큼

하고 일어나

이 방 저 방 문 열어젖히며

잠긴 문 문고리 흔들어대며

아아니 아직도 일어날 생각 없느냐

방고래 오래 지면

그 죄가 살인죄 다음이여

아아니

이러고서

어찌 삼시 세때

아가리에 밥 넣고 살겠느냐

이렇게 시작해서

한동안도 입 가만두지 않고

그 말라깽이 어디에

그렇게 잔 사설 가득 들어 있는지

 

하기야 노망들기 전에도

저 혼자도 늘 입 놀리기를 쉬지 않더니

밥 먹을 때나 좀 뜸한데

아니나다를까

어찌 내가 밥 먹는데도

말을 시킨단 말이냐

밥에 돌 섞어주고

반찬에 머리카락 넣어주는 년이

어디 내 며느리냐

나 죽이려고 양잿물 안 넣은 것만도 다행이다

아아니 이런 년하고 사는 놈이

어디 내 자식이냐

 

그것으로 모자라 청승으로 나아가는데

아이고 죽은 마누라가 알면

제사날

제사밥 얻어먹으러 와서

눈물바람으로 돌아가겠구나

우리 영감 불쌍하다고

 

고깃국 나오면

아들 국건더기까지

떠다 먹는 달표 할아버지

어찌 한마디 없을소냐

제 서방한테 주는 고기는 먹기 좋구나

못된 년 같으니라고

 

나 오늘 죽을 테니

너희들 일 나가지 말고 집에 있거라

이 연놈들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러나 그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곡리 서당 전총각

 

옥구들판에는 고씨 두씨 문씨 전씨라

지곡리에도 전씨 몇 가호 있다

지곡리에도 전씨 몇 가호 있다

지곡리 서당 이른 아침

학동들 서당에 올 무렵

먼저 와서

덩다랗게 팔짱 끼고 서 있는데

길게 딴머리하고 서 있는데

그게 누구냐 하면

지곡리 전씨네 아들

이 딱한 총각하고서는

서당 학동들 오는 길 막고

 

너 가지고 온 깜밥 내놔

너 가지고 온 먹 내놔

너 가지고 온 제기 내놔

 

글읽기는 동몽선습 첫줄부터 졸기 시작하는데

 

전총각 어머니 태몽에

거머리 꿈꾸고

전총각 뱄다는데

 

그렇게 다닌 서당이라

다른 아이들

어린아이들

사서삼경 다 떼었는데

전총각은

겨우 소학에서 졸고 있었다

 

그러나 살아갈 것이야

아이들 등쳐먹고

공갈하는 재조는 익혔으매

 

명산동 잡화상 며느리

 

군산 새장터 가는 길

벼랑길 지나

언제나 정갈한 곽씨네 잡화가게 있다

거기에는 없는 것이 없게

갖가지 물건이 잘도 차려져 있다

하얀 머리 상고 친 할아버지가

연한 옥색 조끼 입고

날 듯이 나와

물건 다독거리며 내주고

값을 받아도

정중하게 받는다

나이 어리면

잘 가거라

나이 어중뜨면

잘 가시게

인사성 하도 좋아

아나 하루살이야

절 받고 싶거든

문안인사 받고 싶거든

곽씨네 점방 가거라 할 정도인데

어쩌다 그 곽씨

볼 일 있거나

누워야 할 병 들거나 하면

그 시아버지 대신

며느리가 나온다

아서라 동백꽃 같은 그 며느리

검은 머리에 붉은 댕기 섞은 낭자머리

남치마에 흰저고리

자주고름아

어느새 봄이 와

저쪽에서 풋풋이 봄바람 온다

남편은 서울 유학 가서

방학까지는 독수공방

방 그슬린다고

참기름불만 조금 켰다가 꺼버리는 독수공방

깊은 밤

그 방의

그 며느리의 꿈속에 들어가고 싶은

몹쓸 소원이여

 

신흥동 껄렁패

 

군산에는 흥남동 개복동 신흥동

오룡동 명산동에

그 언덕바지 따라

일본사람들한테 밀려난 가난뱅이들이

올라가 이룬 산동네

식민지 달동네

초가집 빼곡이 덮인 언덕동네 있다

 

1920년 이래

조가비 겹겹으로 엎어둔 듯한

그 초가집 골목길 올라가면

몇 걸음에 숨이 차다

 

신흥동 오르막길 잘도 올라가는

아무일이 어머니

쩔뚝발이건만

아들 무일이 하나는

키다리로 길러낸 홀어미

 

그 홀어미 자식 무일이

아비 없는 놈이라

일찌감치 껄렁패 되어

옆구리 칼로 그어 흉터 만들고

새 옷도 생기면 찢어 꿰매어 입고

남의 옷도 새로 입고 나오면

임마 이리 와

너 나를 본떠라

하고 그 옷 쫘악 그어준다

 

그 무일이가 중학교 들어와

제일 뒷자리에 앉아

방인근 소설 「마도의 향불」 읽고

공부만 하는 놈 눈에 거슬리면

그 학생 도시락에

뱀 잡아 토막내어

밥에 박아두었다가

점심시간에 도시락 뚜껑 열다가

기절초풍하게 만든다

껄껄껄 웃는다

 

훈육선생이

너는 아비 없는 놈이라는 소리

듣기 좋으냐 하면

아비 없는 놈이

아비 있는 놈 되면

그럼 우리 어머니가 똥갈보란 말이요

우리 아버지 말고

딴 놈 붙어먹었단 말이요

하고 대드는 무일이

 

아무래도 무서운 곳 없다

경찰서 앞 지나갈 때도

다른 사람들 괜히 무서운데

무일이

이무일이

아비 없는 무일이는 당당하다

 

그러나 시험 때

시험 답안지 보여주면

그 학생한테는

그 무서운 낯짝에서

칼자국 난 낯짝에서

모처럼 달맞이꽃 웃음이 나온다

무일이 얼굴에도 웃음이 나온다

어려서 싸우다 빠진 이빨 해넣어

그 금니빨 빛나는 웃음 나온다

 

누가 군시렁거렸다

쳇 늑대도 웃을 때 있다

늑대인 줄 알았더니 여우밖에 안되는구나

 

그 무일이

인공 때 한탕 하고 나서

수복되고 붙잡혀

아침이슬이었다

 

늘 눈자위 붉은 기운찬 무일이

 

선제리 도둑

 

도둑질 떠나는 날

할아버지 무덤에 간다

할아버지 다녀오겠읍니다

할아버지 손자 잘 보살펴주십시오

 

그래서인가

도둑질 열 번 넘었는데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학교 다니는 아이놈이

학교에서 도둑질하다가 들켜

세 번인가 네 번인가 들켜

할 수 없이 퇴학맞았다

 

아버지도 스무 번 못 채우고 쇠고랑 찼다

 

도둑 마누라

도둑 어미

형무소 가서 울고 오랴

자식 손모가지

빨랫방망이로 찧어

손가락 병신 만들으랴

 

새터 상술이 어머니

 

상술이 어머니

입 삐죽이 기울어져

남의 이야기 아니면

그 입에서 나오는 것 없다

이 사람 만나

저 사람 이야기

저 사람 만나

이 사람 이야기

이렇게 남의 이야기로만 사는데

무슨 기생 풍류 잡힌다고

낭자 앙똥히 쪽지어

거기 귓발 파내는 귀지개 꽂고

성냥개비도 하나 꽂고

이 사람 이야기

저 사람 이야기

부엌 아궁이 재 퍼내다가

딴 생각에 빠져

재 둘러쓰고 넘어졌다는 이야기까지

생선에 환장하여

생선 가시까지 삼키다가

생밥 몇 숟갈 떠먹고

그 가시 가까스로 넘겼다는 이야기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그런데 그렇게도

남의 이야기 할 수 없는 밤중에는

잠자는 밤중에는

우줌을 푸짐하게 싸므로

큰 요강 두 개나 들여다놓아야 한다

함께 늙어가는 며느리

저녁마다 요강 두 개 들여다놓으며

아이고 우리집 거름 하나 걱정 없다

 

상술이 아버지는 두어 번 싸는데

상술이 어머니는

요강깨나 커야 한다

그래서렷다

상술이네 집 마늘밭

마늘 한번 잘된다

다른 집 것 반뼘인데

그 집 것은 뼘반이나 크다

 

옥정골 고남곤이

 

언제 자고

언제 오줌 싸는지

그저 일에 늘어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옥정골 고남곤이 아저씨

이마에 흉터 하나 번득이며

밭일 끝나면

밭두렁 풀 깎는 일

밭두렁 물러서자마자

산으로 가

푸장나무 대번에 한 짐 해 내려온다

얼굴에 땀 먹어

햇빛에 번득이며

 

그러나 종일 입 하나는

밥 먹는 것 말고는

열어본 일 없다

쉬어터졌나

바람 불어도

어 그놈의 바람 시원하다

한마디 없다

도대체 평생 말 몇마디 하고 죽을 것인가

이사람아 쓰다 달다 해보아

남의 밥 그냥 먹기만 하지 말고

해도

 

그 고남곤이 아저씨

입으로 말하지 않음은 물론이거니와

눈으로도

속으로도 말없다

 

하기야 말이란 한번 하기 시작하면

그 말에서 헤어날 줄 모른다

이 마을 저 마을 무덤들이 다 그런 무덤 아닌가

 

아래뜸 우식이

 

어릴 때 만주로 떠난 아버지 얼굴 모르고

열두살에 어머니마저 세상 작파했으니

그 어린 우식이사 나서서

집안 꾸려가야 했다

아래로 동생 우종이 있고

우만이 있는데

밥 해서

어린 삼형제 밥 먹는다

동네 아낙네들

처음에야 반찬도 나누어 주고

어쩌고 하지만

그게 어디 긴 세월 정성이겠는가

 

추운 날 문구멍 뻥뻥 뚫린 문으로

바람 들어오는 아침

그 추위에 지지 않고 일어나

마당 눈 쓸고

얼음 깬 항아리물 퍼

세수하고

세수한 얼굴에서 김 나고

우종아 일어나

우만아 일어나

그 소리

지나가는 사람이 듣고 빈 소리

아 그놈들 삼형제 잘도 살아가누나

 

한식날 어머니 무덤에 가서

우식이 서럽게 울고

우종이 멀뚱거리며 서 있고

우만이도 마른 풀 뜯으며 앉아 있고

엄마 엄마

실컷 불러보지 못하고 자라나서

먼 데 바라보고

 

이렇게 우식이 실컷 울고 내려오면

새로 힘 난다

아무리 이 세상 벅차도

뚫어

굴 만들 수 있는 힘 난다

우종아

저기까지 누가 먼저 가나 내기하자

요이 똥 !

 

요이 똥은 일본말인가

 

원당 김상래

 

미제 김상래하고

성도 이름도 똑같은

원당리 김상래

 

그러나 원당 김상래는 딴판이라

불알 두쪽 달랑거릴 뿐

가랑이로 찬바람 빠져나갈 뿐

 

어쩌다가 미제 신작로 네거리에서

미제 김상래 만나면

엄지손가락 끝으로

왼 콧구멍 눌러

오른 콧구멍에서 콧물 쏘아낸다

흥 !

 

소달구지 끌다가

소 잃고

달구지 팔고

그냥 깝깝하면 미제 네거리 나오는데

 

그 겉인사성 좋은 미제 김상래도

원당리 김상래한테는

지레 굳어져

말 한마디 헛쓰지 않는다

무엇하러 나왔어 ?

한마디가 인사

 

그러나 벌써 저만치 가버린 원당 김상래

그 뒷모습 당당하다

가진 것 없으나

기 죽어보지 않고

이 세상 괜스러이 자랑스럽다

때는 이른봄 뚝새풀 푸릇푸릇

미제 김상래는 논이 세 개나 있어

벌써부터 농사 걱정

못자리할 걱정

큰아이가

나무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자식 걱정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술 한잔 못 사먹는 쫌뺑이다

 

가사메 전한배

 

만경강 하구 짠바람 갯바람

가사메까지 와

더는 오지 않는다

그 가사메 뒷산

꼭 늙은 누에 한 마리로 누워 있는데

거기 해송 솔바람소리에 가면

잠꾸러기 전한배 꼭 늘어지게 자고 있다

 

말 하나는 늘 다정다감하여

자네 참 오래간만이네그려

자네 춘부장님께서 기간 기체 안녕하신가

어쩌고 양반 행세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자네 신수 훤해지셨네 그려

 

그러나 아무데서나 낮잠 자면

낮모기 뜯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누가 네다리 들어가도 모른다

그 코고는 소리 있어

비로소 천하태평 거기 잇다

 

한잠 실컷 자고 나

멍청하게 만경강 앞 염전을 바라다보며

아이고 어디 갈 데도 없구나

하고 다시 누워버린다

 

집에야 멍석에 넌 보리 새가 다 먹어도

서생원이 새끼 데리고 와 먹어도

 

지곡리 강칠봉

 

이것 봐라

이것이 미물하고 한 동아리인 주제

이것이

어렵쇼 천하를 논하는구나

 

지곡리 뒷산 소나무 그늘 낮에도 침침한데

거기 나뭇지게 뉘어놓고

가로되

앞으로 백년 지나면

뽕나무밭이 바다 될 것이여

 

부자 가난해지고

저기 저 가난뱅이 박명순이네 집에

고래등 기와집 설 것이여

 

입담은 척척 늘어붙는데

배운 것이 없어 그게 원수로다

그럴 바에야

김제 금산사 밑으로 가서

고수부 제자한테

그 무엇 좀

그 무슨 후천개벽 좀 배우고 오면 될 텐데

 

나무하느라 갈 수 있는가

나무도

산 주인 눈 피하여

도둑나무하느라

어디 갈 수 있는가

 

눈 하나 형형하니

나무하다가

갑자기 낫으로 땅 찍고

내가 이놈의 나무나 하고

풀이나 깎고

밤에 빈대나 실컷 물리고

 

과연 천하는 논할 만한데

 

 

 

 

posted by 황영찬
2015. 1. 14. 21:16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05 HOW TO READ 키르케고르 Soren Kierkegaard

 

존 D. 카푸토 지음 · 임규정 옮김

2008, 웅진지식하우스



시흥시대야도서관

SB038075

 

082

히66ㅇ  12

 

짧은 생애를 격렬하게 살다 간 키르케고르.

그는 실존 철학의 무서운 탄생을 알리는 철학자였으며,

심오하지만 까다로운 종교 사상가이자

동시에 시인, 반어가 그리고 유머가였다.

그의 영향을 받은 현대 사상들은 너무나 다양해서

공통점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그리고 여전히 키르케고르는 우리를 끊임없이 매혹하고 있다.

 

HOW TO READ

●  ●  ●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도발적인 작가와 사상,

그들의 글을 원전으로 직접 만난다

 

철학사에서 무한히 매력적인 주제,

키르케고르

 

"중요한 것은 나에게 진리인 진리를 찾는 것, 내가 기꺼이 그것을 위해 살고 또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이념을 찾는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을 탄생시킨 쇠렌 키르케고르. 그의 사상은 철학, 신학, 정신분석 그리고 대중문화 평론에 이르기까지 무한히 확장되면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키르케고르 자신의 의도는 자주 왜곡되어왔고, 우리는 그의 영향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포스트모던 시대 탁월한 연구자인 카푸토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키르케고르 철학의 지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키르케고르와 헤겔과의 관계, 그의 사유가 어떻게 하이데거, 사르트르, 데리다 등으로 이어지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힌다. 키르케고르의 삶과 사상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보기 드문 한 권의 해설서. 현대의 예언자로서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저 자그마한 덴마크인을 생생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HOW TO READ 시리즈

위대한 사상, 세기의 저작을 원전으로 직접 만나는 특별한 기회, HOW TO READ 시리즈, 이 시리즈는 세계적 석학들의 안내를 받으며 사상가들의 저작 중 핵심적인 부분을 직접 읽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읽는 척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제대로 읽을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우리시대 교양인을 위한 고품격 마스터클래스가 될 것이다.

 

존 D. 카푸토 John D. Caputo

포스트모던 사상과 현대 종교에 대한 탁월한 연구자,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 교수이며, 하이데거, 데리다, 아퀴나스 및 윤리학에 관한 다수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저서로 《종교에 대하여 On Religion》《신의 약점 : 사상 신학 The Weakness of God : A Theology of the Event》을 비롯해, 바티모(Gianni Vattimo)와 공동으로 저술한 《신의 사후 After the Death of God》 등이 있다.

 

임규정

현재 군산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고려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세인트올라프 대학교 키르케고르라이브러리 객원 연구원을 역임했다. 저서로 《헤겔에서 리오타르까지》(공저) 《공간물질, 시간 정신 그리고 생명 진화》(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불안의 개념》《죽음에 이르는 병》《유혹자의 일기》《키르케고르, 코펜하겐의 고독한 영혼》《키르케고르》《카사노바의 귀향》 등이 있다.

 

차례

 

■ HOW TO READ 시리즈를 열며

■ 저자 서문 : 눈부신 유산 그러나 복잡한 독해

 

1 나에게 진리인 진리

: 《기록과 일지》

2 심미주의

: 《이것이냐 저것이냐》

3 윤리적 실존

: 자유, 결단, 선택

4 신앙의 기사

: 《공포와 전율》

5 진리는 주체성이다

: 《후서》

6 익명성

: 인격을 갖지 않은 자

7 현대

: 《두 시대》

8 사랑

: 《사랑의 역사》

9 자기

: 《죽음에 이르는 병》

10 염세

: 슬픔과 혐오에 대한 찬양

 

■ 주

■ 키르케고르의 생애

■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역자 후기 : 저 무서운 자그마한 덴마크인

 

1

나에게 진리인 진리

: 《기록과 일지

 

'나에게 진리인 진리'는 독단이나 변덕,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아무것이나 믿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면의 결단을 뜻하며, 여기에서 '나에게'는

한 개인으로서의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진리를 의미한다.

'나에게 진리인'의 반대는 생명 없는 진리,

순전히 입에 빌린 말로서, 공허한 말들로 삶의 요구를 회피하는 것이다.

 

2

심미주의

: 《이것이냐 저것이냐

 

심미가의 경우, 모든 악의 뿌리는 권태이지 재물에 대한 욕망이나 게으름이 아니며,

이것들은 우리가 권태에 빠지지 않는 한 오히려 성스러운 것일 수 있다.

심미가는 마치 따분한 강의에 갇혀 있는 사람처럼

뭐든지 '재미있는' 혹은 즐거운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필요하다.

심미가가 고안해내는 전략들은 경작의 유비, 즉 작물의 윤작에 기초해 있다.

 

3

윤리적 실존

: 자유, 결단, 선택

 

《이것이냐 저것이냐》 제2권에서, 이행은 실존의

심미적 양상에서 윤리적 양상으로 이루어진다.

심미가는 순간 안에서 또 순간을 위해서, 덧없는, 우연한 쾌락을 위해서 산다.

따라서 심미적 삶에서 반복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윤리학에 대한 키르케고르의 견해에서는 모든 것은 반복의 가능성에 의해 결정된다.

윤리학에서 우리는 언제나 처음에 서 있고 또 미래는 앞에 있으며,

매일매일은 다시 "나는 한다"라고 말하는 새로운 요구를 제시한다.

여기에 키르케고르 철학에서의 '실존적 자기'가 도입된다.

 

4

신앙의 기사

: 《공포와 전율

 

저 유명한 아브라함과 이삭의 결박 이야기를 더듬는 《공포와 전율》

이 저작은 실존의 최고 단계인 제3단계 즉 '종교적' 단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키르케고르에게 이 이야기의 교훈은 윤리적 규범은 예외를 허용한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하느님, 즉 도덕법칙을 만드신 분이 만일 그렇게 선택하기만 한다면

그 어떤 규범이라도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심히 위험한 입장이며,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5

진리는 주체성이다

: 《후서

 

어째서 하느님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더 간단하고 덜 역설적인 방법을 찾지 않을까?

그것은 정확히 사변 철학자들을 쫓아버리기 위해서, 그리스도교를 또 다른 이론으로

바꿔버릴 자들을 좌절시키고 또 빗나가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교는 실천해야 할 그 무엇이지 철학적 난제가 아니다.

그것이 나타나는 것은 누군가가 신조의 명제를 긍정할 때가 아니라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행할 때이다.

 

6

익명성

: 인격을 갖지 않은 자

 

어떤 면에서 그의 익명성은 발생하지 않았을 논쟁을 유발함으로써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더 많은 주의를 집중시킨 별로 좋지 않은 전략이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현실성', 자신의 '사적인 특이성'을 독자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기 위해

모든 '포착하기 어려운 변증법적' 기술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책을 읽는 대중의 호기심 많은 일부 무리'는

그것을 다시 끌어들이려고 끈덕지게 시도하였다.

더욱이 그의 저작 모두는 심각할 정도로 자전적이어서

그 결과 그 자신의 인격이 우리가 밝히는 첫 자리이기를 간청할 정도이다.

 

7

현대

: 《두 시대

 

키르케고르, 니체 그리고 하이데거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인,

심지어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사상가로서, 우리에게 민주주의 제도에 의해

제기되는 하강 부분과 위험을 경고하였다.

이 사상가들은 플라톤처럼,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다 잊고

정부를 교육받은 소수에게 맡겨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키르케고르는 《신약성서》의 인류 평등주의적

요지를 통찰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단독의 개인' 혹은 '실존하는 가난한 영혼'에 대한

그의 관심의 진짜 함의였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8

사랑

: 《사랑의 역사》

 

키르케고르는 기본적으로 '차별적 사랑'과 '명령받은 사랑'을 구분한다.

전자는 우리가 보통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관능적 사랑과 우정을 포함한다.

키르케고르에게 차별적 사랑은 궁극적으로는 자기 사랑의 형태이다.

왜냐하면 나의 배우자나 자녀나 친구를 사랑함으로써

나는 훨씬 광범위한 나 자신의 범위, 나의 또 다른 확장된 자기와의 사랑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명령받은 사랑은 인류 평등주의적이고 또 비-차별적이며,

'이웃'을 향해 있다. 이웃은 절대적으로 이방인과 심지어 적까지 포함한다.

 

9

자기

: 《죽음에 이르는 병

 

이 저작은 '자기'에 대한 키르케고르의 '변증법적이고' 또 실존적인 개념에 대한

그의 가장 정교한 형식화를 담고 있다.

이 저작은 영혼의 건강과 그 건강을 위협하는 그에 대응하는 '질병'에 대한

은유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거니와, 그 질병은 절망이라고 불린다.

바로 그 '질병', 키르케고르가 여기에서 "절망"으로 부르는 것은,

심리학적 우울증이 아니라 정신의 균형 내지 내면의 역학의 심각한 붕괴를 의미한다.

절망은 자신으로부터의 어떤 이탈이며, 자신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10

염세

: 슬픔과 혐오에 대한 찬양

 

그의 마지막 저작들을 읽는 사람들은 키르케고르가 자신이 경고한 바 있는 절망,

즉 무한하고 영원한 것이 아닌 유한하고 시간적인 것에 대한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는 결론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일지 기록은 '염세'를 찬미하고 또 영원한 행복에 대한 전망이

세속적인 즐거움을 없앤다고 주장하는 수난의 복음을 찬양한다.

키르케고르는 세상이 싫어지는 것이 '영원에 합당할 정도로 성숙한 존재로'

만든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

키르케고르의 생애

 

1813년 5월 5일 쇠렌 키르케고르(Soren Aabye Kierkegaard) 태어나다.

1830년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하다.

1834년 4월 15일 일지를 쓰기 시작하다.

1835년 길렐라이에로 여름휴가를 떠나다.

1837년 5월 레기네 올센을 만나다.

1838년 8월 9일 아버지 미카엘 키르케고르 사망하다.

1840년 7월 종합 시험에 통과하다.

            9월 8일 레기네 올센에게 구애하다.

            11월 17일 신학교에 등록하다.

1841년 7월 16일 학위논문, <아이러니의 개념>을 변론하다.

            8월 11일 레기네와 파혼하다.

            10월 25일 베를린에 가서 셸링의 강의를 듣다.

1842년 3월 6일 코펜하겐으로 돌아오다.

1843년 《이것이냐 저것이냐》《공포와 전율》《반복》 출간.

1844년 《철학적 조각들》《불안의 개념》 출간.

1845년 《인생행로의 여러 단계 Stages on Life's Way》

1846년 1~2월 《코르사르》지의 공격을 받다.

           《결론으로서의 비학문적 후서》《두 시대》 출간.

1847년 《다양한 정신에서의 교화를 위한 강화집 Upbuilding Discourses in Various Spirits》

            《사랑의 역사》 출간.

             11월 3일 레기네 올센이 직업 외교관인 슐레겔(Frederik Schlegel)과 결혼하다.

1848년 《그리스도교적 강화집 Christian Discourses》《위기 그리고 한 연극배우의 삶에서의

             어떤 위기 The Crisis and A Crisis in the Life of an Actress》《저술가로서의 나의 삶의

             관점 The point of View of My Life as an Author》 저술(1859년 유고로 출판됨).

1849년 《들의 백합 공중의 새 The Lily of the Field and the Bird of the Air》《죽음에 이르는

             병》 저술.

1850년 《그리스도교의 훈련 Practice in Christianity》 저술.

1851년 《자기 시험을 위하여 For Self-Examination》 저술.

1851~1852년 《스스로 판단하라 Judge for Yourselves》 저술(1876년에 유고로 출판됨).

1852~1854년 공식적 침묵의 시기로 아무것도 발표되지 않음.

1854년 1월 30일 뮌스테르 주교 세상을 떠나다.

             1월 15일 마르텐센이 뮌스테르 후계자로 지명되다.

             12월 18일 대중 일간지 《조국 Faedrelandet》에 마르텐센에 대한 비판의 글을 싣다.

1855년 덴마크 성직에 대한 공격을 확대하여, 5월까지 계속하다.

             5월~9월 팸플릿 《순간 Moment》에 공격의 글을 계속 싣다.

             9월 25일 《순간》 마지막 호 발간. 일지 끝나다.

             10월 2일 프레데릭 병원에 입원하다.

             11월 11일 세상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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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5. 1. 14. 09:59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04 만인보

 

高銀

1997,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793

 

811.6

고67만  5

 

창비전작시

 

나는 김홍도의 풍속도에서 씨름꾼이나 엿장수, 매맞는 아이, 엿보는 소악패, 늙은 부부, 장에 가는 농민, 음흉한 양반 등등 거기 살아 있는 백성들의 표정과 동작을 보면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이승의 엄숙함을 느낀다. 이런 점은 중동이나 인도의 벽화 또는 두루마리 그림에서도 느끼며, 특히 브뤼겔의 그림을 보면서는 그가 뚜렷한 의도를 지니고 당대의 잡다한 민중을 모든 가치와 관념과 인식의 중심으로 파악하려 했다는 눈치를 채게 된다. 『만인보』는 마치 들꽃이나 잡초처럼 강산에 번성하고 스러져간 당대인의 모습을 시인 자신의 체험적 스냅사진 속에서 재현하고 있는 '이야기 시'이다. 작은 수백 수천의 조약돌을 모아 바다를 형성화해내듯이 그의 이러한 작업은 서사시가 흔히 놓치게 되는 서정성과 개개인의 자상한 인생 체험을 밑바탕으로 하여, 오히려 시인 고은의 전생애와 동시대를 총체적으로 담아내는 대하 서사시의 성과를 얻게 하고 있다.

- 소설가 황석영

 

신명의 언어로 충만한 시인 고은, 그의 신명의 언어가 그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 하나 하나와 살아서 만날 때 낳아지는 것이 『만인보』 연작이다. 그 만남을 지켜보는 시인의 시선에는 달관의 지혜가 담겨 있다. 그 지혜로 시인은 "사람의 추악까지 포함하는 승엄성"을 포착해내고 민중적 생명력의 온전한 모습을 길어내어 생동하는 한국어의 급박하면서도 여유 있는 리듬을 싣고 있다. 『만인보』의 만남이 거듭할수록 시인의 신명은 더욱더 살아 뜀뛸 것이다. 그가 시의 숨결을 놓치지 않는 한.

- 문학평론가 성민엽

 

고은(高銀)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1958년 『현대문학』에 시 「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 등을 추천받아 등단.

1960년 첫시집 『피안감성』 간행. 이후 시 · 소설 · 수필 · 평론 등에 걸쳐 100여 권의 저서 간행.

1984년 『고은시선집』 간행.

1986년 『만인보』 간행 시작

1987 ~ 94년 서사시 『백두산』 간행.

제3회 만해문학상, 제1회 대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등 수상.

 

차례

 

소리 제사 / 구시렁제 / 용남이 / 백운산 고아 / 만물상회 주인 내외 / 반찬 한 가지 / 미륵이 / 홍래란 놈 / 재선이 어머니 / 이몽학 / 미제 분임이 / 목수 동렬이 / 쥐  불 / 이용악 / 안주귀신 / 점백이 누나 / 상술이 장모 / 상술이 막내 / 김춘추와 김유신 / 사기꾼 사상가 / 어린 기섭이 / 쇠딱지 / 어청도 돌 / 사낙배기 쌍동이 어머니 / 개차반 / 잿정지 노파 / 홍대용 / 진자 오빠 / 중뜸 재수네 아기 / 진동이 / 작은당고모 / 수만이 / 백두개 사부인 / 영  조 / 곰보댁 / 문치달이 / 미제 유끼꼬 / 오복상회 며느리 / 방죽가 개똥이 누나 / 종석이 / 김재덕 / 아래뜸 달순이네 저녁 / 권상로 / 수철이 고모 / 김명술이 형제 / 정자나무 / 김절구 / 대보름 / 따옥이 / 상래 아저씨 어머니 / 해망동 / 점백이 / 명산동 유곽시장 용철이 / 계  백 / 군산 요단강 / 미제 김동길 / 웃말 쌍동이 / 쌀봉이 / 당북리 왕고모 / 군산 희소관 / 관여산 앉은뱅이 / 옥정골 각띠영감 / 조병옥 / 눈물단지 / 마정봉 / 두 장님 / 원당리 성구 아저씨 / 개사리 문순길이 마누라 / 문순길이 장모 / 전우 / 선제리 한약방 의원영감 / 세규 동생 / 잿정지 이부자네 딸년 / 독점 순자 / 미제 곰배정 영감 / 미제 진달풍이 / 눈 내리는 날 / 처녀 장사 / 미제 김기만 / 함경도 사람 / 계집종 갑이 / 군산 히빠리마찌 / 백두개 유서방 / 화산리 / 중마름 오의방이 / 오막살이 / 심부름 / 군산 전도부인 / 오성산 냇물 / 황등 순자 / 황등 돌산영감 / 팽  총 / 가사메 사람 / 개사리 문판수 / 화순이 / 북창 정염 / 홍성복이 / 신만순 / 파도소리 / 진규 할아버지 / 큰바람의 노래 / 육촌 금동이 / 나포 고자 / 장군리댁 / 오남이 내외 / 최전무 / 임영자 / 김도섭 영감 / 싸  움

 

미제 분임이

 

이른아침 물지게 지고

땅 보고 가는 분임이

그 눈썹 긴 분임이

 

그 마음속 열 길이나 깊어

그 무엇을 이루는지 알 길 없는 분임이

검정 치맛자락 이슬에 젖어

그 아래 바쁜 발등 젖어

 

물지게 물 하나도 흘리지 않는 분임이

 

미제 유끼꼬

 

해방 뒤에도

국민학교 졸업하고도

옛날 부르던 유끼꼬라 부르는

미제 홍설자

아버지가 똥지게 지고 지나가다가

원당리 부자집 딸년하고 가는 유끼꼬 보고

너 왜 인제 오니

하니

예 학교에서 일 있어서요 하고 얼른 지나쳤다

원당리 동무가

저 사람 누구냐 하니

우리 동네 일꾼이라고 했다

 

그런 유끼꼬 커서 큰아기 되더니

어찌나 그리 잘도 삐치는지

너 밥 먹었느냐고 하면

그럼 밥 안 먹는 사람도 있을까 하고

볼우물 엥하고 파이며

고운 입술 삐죽거린다

 

너 이쁘구나 하면

피이 마음에도 없는 말

침도 안 바른 입으로 하고

고운 입술 삐죽거린다

 

늙은 아버지 담배 다 먹고 일어나며

동네 사람들한테

이왕이면 웃는 낯으로 말해라 하니

이제 나 아이 아니어요 내가 알아서 할 일이어요

어찌 이다지 맵고 차가울까

 

방도는 하나 있다

관우 장비 같은 사내한테 시집 보내어

초죽음 몇번이면

유끼꼬

새 인물 나지

허리에 아지랭이 감기고

치맛자락에 노을 일기 시작하지

 

그 고운 입술

그 눈썹

그 부푼 가슴 녹은 땅 뚫고

솟는 새 숨인가

아리아리한 가슴 약 든 가슴

똥지게질로 키운 큰아기 가슴

 

5월 단오날 그네 솟아 어지러워라

그 아래에서도 어지러워라

 

미제 김동길

 

동네 돈만 걷었다 하면

덜컥 삼키고

동네 돈만 오면

용케 알아

덜컥 삼키는 미제 김동길이

어찌나 얼굴 번들번들거리는지

늘 팔자 펴진 신수였다

세수할 때도

반 시간이나 걸릴 때도 있는 김동길이

닦는 데 다시 닦고 닦고

수건질도 여러 번이다

제 어머니 환갑에는

군산 기생 열 명이나 불러다가

걸판지게 잔치 벌였는데

제 아우가 돈 50전 꾸어달라고 하면

이놈아 돈이란 꾸는 것이 아니라

버는 것이다 어쩌구 돌려보낸다

과연 미제 놀부 김동길이

3년 전인가 횡령사취라 해서

군산경찰서 지하실에 쇠고랑 차고 들어갔다가

곧 풀려나

콧대 더 높아졌다

어디 가나

무엇 먹을 것 없나 냄새맡았다

동네에 무슨 일 생겨나면

아니나다를까

어디 있다가

용케 나타난다

요긴한 때는 꼭 나타난다

산에서 똥 싸면

왱 하고 날아오는 똥파리인지라

 

미제 곰배정 영감

 

성이 곰배정가라

곰배정 영감으로 통하는

미제 웃말 정동필이 영감

수염끝이 배꼽까지 닿을 영감

그 헌걸찬 허위대에

목소리는 새된 소리다

꼭 부랄 발린 사내 목소리

 

금방 무너질 듯한 사랑채지만

기와집이라

조심조심 쓰는 기와집이라

아직도 덕 있어 먹을 것 흔하다

부자가 망해도 3년 먹을 것 있다더니

아직도 먹고 마실 것 흔하다

 

술 한잔 입에 안 대고

담배연기 모르는 곰배정 영감인데

그러나 종중일에는 앞장 서고

종중 일가

먼 일가 두루 보살핀다

한 달에 한 번씩 국거리 한 치룽씩 돌리기도 한다

 

일가뿐 아니라

남남한테도 돼지고기 내장 사다가 돌리기도 한다

떡했다 하면

몇 말씩 해서 돌리기도 한다

옛날 덕행 본받는지

웃말 가난뱅이 굶는 날

밤중에 그  집 단지

보리쌀 채워놓고 오기도 한다

 

핫옷 한 벌 없는 집에는

헌 솜 갖다 놓는다

그 솜 틀어다가

옷에 넣든지 이불에 넣든지 하라고 갖다 놓는다

 

그러던 곰배정 영감

항상 불그데데한 영감

물 데워라 해서 목간하고

손톱 발톱 깨끗이 깎고 나서

다음날 새벽 그대로 세상 떠났다

 

곰배정 영감 마누라도 손이 커서

광목 40마씩 나누어 주어

동네 사람들 복 입게 하고

초상집 일 돕는 아낙들도

광목 2마씩 행주치마 해 입혔다

 

그 곰배정 영감 상여 한번 느려터져

미제 선제리 사이 5리를 하루 내내 걸렸다

유소보장 펄럭이며

언제나 그 자리 있는 듯했다

지나가던 사람도 멈추고 어쩌다 자전거도 멈췄다

선제어 너머

대기마을 수성산 기슭에

큼지막이 무덤 쓰고 난 뒤

비가 알맞게 왔다

촉촉이 오다가 그쳤다

 

그 영감 떠 난 뒤 10년 동안

농사꾼들 비 오는 날 놀 때는

제기랄것 곰배정 영감이나 살아 있으면

고깃근이나 실컷 얻어먹을 텐데

제기랄 그놈의 곰배집 영감이나 살아 있으면

이런 날 오리지떡이나 얻어먹을 텐데

 

미제 진달풍이

 

괴팍한 대가리에서

기계충 떠나지 않는 달풍이

학교 가서도

선생한테 미움만 받는 달풍이

아이들한테서도

찐 감자 얻어먹지 못하는 달풍이

선생한테 혼나고

변소에 가 엉덩이 까 내리고 앉아

똥도 안 싸면서

실컷 울고 나오는 달풍이

 

1년 뒤 한 학년 올라가자

기계충 없어졌다

방귀 뀌는 버릇도 없어졌다

누더기옷도

새옷으로 바뀌었다

 

광산 갔던 아버지가 돌아온 것이다

 

미제 김기만

 

미제 부자 김재구 영감의 큰아들 기만이

제 앞으로 떼어준 논 2만 평 있고

밭 5천 평이나 있는데

그 논밭 날려버리고

다시 본가에 의지가지 살아간다

 

얌전하디얌전한 그의 어머니 아금발라

아들 기르는 데도

온갖 정성 다했건만

부자집 자식 사람 되기 어렵다

 

진작부터 양복 마춰 입고 나서서

군산 선술집 떠돌며

실컷 놀다가 온다

지친 몸으로 풀린 눈으로 온다

사흘 만에 엿새 만에

돈 떨어져 온다

 

그런 기만이 조용히 바라보는 사람 있다

바로 재구 영감의 서자 기선이다

그는 작은댁 소생인데

동네 사람 칭송이 자자하다

 

아무리 노라리판에 미친 기만이건만

제 배다른 동생 기선이만 보면

술이 화닥닥 깨어버린다

고개 돌려 속으로만 퍼부어댄다

이 첩의 넌 자식놈아 네가 나 비웃고 있지

 

그러나 기선이 고요한 얼굴

바람 한 점 안 받는 물 같은 얼굴

 

 

 

posted by 황영찬

2015-003 HOW TO READ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마크 A. 래톨 지음 · 권순홍 옮김

2008, 웅진지식하우스



시흥시대야도서관

SB038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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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READ

●  ●  ●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도발적인 작가와 사상,

그들의 글을 원전으로 직접 만난다


하이데거는 분명 지난 세기에 속해 있긴 하지만, 지금도 풀지 못한 엄청난 과제로 남아 있는 철학자다.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모호한 질문을 던지고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같은 더욱더 모호한 답변을 제시하는 하이데거의 철학은 '은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저자 마크 래톨의 서술을 따라가면, 인간 실존에 대한 무겁고 긴 하이데거의 전후기 사유를 명쾌하게 이해하게 된다. 또한 나치즘과 관련된 하이데거의 오점에 대해서도 저자는 하이데거의 견해에 준하여 새롭게 검토하고 있다. 그의 기념비적 저작 《존재와 시간》을 중심으로 인간 실존에 대한 하이데거의 혁명적인 분석을 살펴보는 여정. 이 책은 하이데거라는 쉽지 않은 세계를 탐색하려고 하는 용기 있는 독자들을 위한 훌륭한 안내서다.


HOW TO READ 시리즈

위대한 사상, 세기의 저작을 원전으로 직접 만나는 특별한 기회, HOW TO READ 시리즈, 이 시리즈는 세계적 석학들의 안내를 받으며 사상가들의 저작 중 핵심적인 부분을 직접 읽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읽는 척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제대로 읽을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우리시대 교양인을 위한 고품격 마스터클래스가 될 것이다.


마크 A. 래톨 Mark A. Wrathall

미국 브리검영 대학교 철학과 조교수다. 하이데거에 대한 주요 연구자로, 《다시 검토해본 하이데거 Heidegger Reexamined》《하이데거 소화하기 Appropriating Heidegger》《하이데거, 처리 및 인지과학 Heidegger, Coping and Cognitive Science》《하이데거, 본래성 및 현대성 Heidegger, Authenticity and Modernity》《하이데거 입문 A Companion to Heidegger》등 수많은 저서를 편집했다.


권순홍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하이데거에 관한 연구로 석 ·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군산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유식불교의 거울로 본 하이데거》《존재와 탈근거 : 하이데거의 빛의 형이상학》《하이데거와 근대성》(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사유란 무엇인가》《서양철학사》(공저)《헤게모니와 혁명 : 그람시의 정치이론과 문화이론》 등이 있다.


차례


■ HOW TO READ 시리즈를 열며

■ 저자 서문 : 그 자체로 인간 실존의 핵심적인 문제였던 철학자


1 현존재와 세계-내-존재

: 실존에 대한 형식적인 개념

2 세계

: 세상은 물리적인 존재들의 총합일까

3 세계-내-존재의 구조

: 제1절 유정성과 기본

4 세계-내-존재의 구보

: 제2절 이해와 해석

5 일상성과 '세인'

: 나의 생활은 타인의 것이다

6 죽음과 본래성

: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특징

7 진리와 예술

: <예술 작품의 근원>

8 언어

: 《언어에 이르는 도상에서》

9 기술

: <기술에 관한 물음>

10 사물들과 함께 거주하는 우리 죽을 자들

: <건축하기, 거주하기, 사유하기>


■ 주

■ 하이데거의 생애

■ 함께 보면 좋은 자료

■ 참고 문헌

■ 역자 후기 : 짧지만 명쾌한 하이데거 입문서


1

현존재와 세계-내-존재

: 실존에 대한 형식적인 개념


하이데거의 가장 혁신적이고 중요한 통찰 중의 하나는 인간 실존이, 우리가 언제나 어떤 세계 안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 철학의 맥락에서 볼 때, '마음'은 세계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 데카르트에서 비롯한 전통에 의하면, 세계 전체가 거대한 환영일지라도 마음은 줄곧 자신의 생각을 생각할 수 잇고 자신의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이와 반대로 하이데거는 세계 안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존재자만이 비로소 생각과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존재와 시간》의 상당 부분을 세계-내-존재와 관련되어 있는 사항들에 대한 상세한 현상학적인 기술에 할애한다.


2

세계

: 세상은 물리적인 존재들의 총합일까


우리가 물리적인 실재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을, 가령 우리의 활동을 체계화하고 우리 주변의 사물 및 타인과 맺고 있는 관계를 조직화하는 특정한 방식과 같은 것을 나타내려고 '세계'라는 말을 쓸 때, 거기에는 자연과학이 밝힐 수 없는 합당한 의미가 있을 수는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된 세계는 순순히 물리과학의 방법론을 활용해서 연구될 수 있도록 거기에 자신을 내어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세계가 물리적인 존재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세계란 무엇인가? 세계는 우리가 만나는 사물들과 우리가 행하는 활동들을 어떻게 조성하는가? 그리고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과연 무슨 뜻인가?


3

세계-내-존재의 구조

: 제1절 유정성과 기분


기분은 그가 유정성이라고 명명한 우리의 일반적인 존재 구조를, 즉 우리가 세계에 임해서 어떤 기분에 젖어드는 방식을 나타내는 예증이다. 그러나 'state-of-mind(마음 상태)'라는 말은 유정성(Befindichkeit)이라는 하이데거의 용어를 옮긴 말치고는 아주 잘못된 역어인데, 그래서 여기서는 그 역어 대신에 더욱더 정확한 역어인 'disposedness(유정성 또는 기분에 젖은 채 있음)'라는 말을 쓰겠다.


4

세계-내-존재의 구조

: 제2절 이해와 해석


날이 갈수록 철학자들은 우리의 감각적인 입력이 어떻게 세계에 대한 이해로 처리되는지를 설명하는 역할을 과학에게 양도하고 있다. 두뇌가 어떻게 물리적으로 가능하는지의 문제를 놓고 철학자들은 과학에 굴복할 것이다. 그렇지만 하이데거에 의하면, 이해하는 것은 두뇌가 아니라 세계 안에서 존재하는 인간의 능력 전체다. 게다가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두뇌의 상태가 아니라, 세계 내부적인 사물이다. 하이데거는 세계 내부적인 사물들에 대한 우리의 온갖 경험이 이해와 일종의 해석을 대동한다는 것을 시인한다. 그러나 이해와 해석은 두뇌의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이해와 해석은 세계 안에서 행동하는 방식들일 뿐이다.


5

일상성과 '세인'

: 나의 생활은 타인의 것이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공적인 주변 세계에는 의복과 유행에 대한 관행들, 대화와 표현에 대한 관행들 등등이 자리하고 있다. 신문을 집어 들고 텔레비젼을 켜고 앞뜰에서 이웃과 농담을 주고받을 때,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오늘 하루의 온갖 사건들을 생각하고 그 사건들을 놓고 대화를 나누는 방식들에 길들여지게 마련이다. 하이데거는 그 결과를 "세인의 독재권"이라고 칭한다.


6

죽음과 본래성

: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특징

죽음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닥친 가능성이다. 사실 죽음은 그저 그렇고 그런 가능성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은 현존재의 가장 고유한 기능성이다". 이것은 죽음이야말로 우리를 우리답게 존재하도록 만드는 것임을 뜻한다. 우리가 신들과 구별되는 것은 우리의 가사성(可死性)에서다. 우리가 동물을 비롯하여 여타의 생명들과 구별되는 것은 우리가 자신을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자로 경험한다는 사실에서다.


7

진리와 예술

: <예술 작품의 근원>


예술이 진리와 관련되어 있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은 예술 작품이 어떤 대상을 사실주의적으로 똑같이 재현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하이데거에게 예술의 '진리'는 재현의 정확성이나 정밀성에 달린 문제가 아니고, 우리에게 사물들이 실로 무엇으로 존재하는지를 현시하는 데에 있다. 예술 작품에서 " 진리가 생기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여기에서 무엇인가가 정확하게 묘사되고 재현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자 전체가 비은폐성 안으로 옮겨와서 거기에서 보존된다는 것을 뜻한다."

 

8

언어

: 《언어에 이르는 도상에서

 

하이데거도 언어에 대한 성찰이 사유의 핵심적인 과제가 된다는 생각을 했지만, 언어에 대한 탐구에서 그는 분석철학자들이 도출한 것과는 아주 다른 교훈을 도출했다. 분석철학자는 언어의 논리적인 구조를 연구함으로써 인간의 심적인 상태들과 태도들의 구조에 관해서 알고자 한다. 하이데거는 언어의 논리적인 구조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오히려 갖가지 언어들이 갖가지 세계-내-존재의 방식들을 확립하는 데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

 

9

기술

: <기술에 관한 물음>

 

하이데거가 볼 때, 기술은 약속을 제시하기보다는 위협을 가하는 것이었다. 그는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기술에 관해서 거듭 강연을 했고, 자주 기술에 관련된 글을 출간했다. '기술적인 탈은폐의 방식'에 하이데거가 몰두한 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단순한 현품으로 경험하게 되면 가치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그가 굳게 믿은 탓이었다. 사상가로서 그가 품은 사명은 이 시대의 위험을 깨닫도록 우리를 일깨우는 것이었으며, 기술 시대의 올가미를 피해 갈 수 있는 가능한 길들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10

사물들과 함께 거주하는

우리 죽을 자들

: <건축하기, 거주하기, 사유하기>

 

하이데거가 역설하듯이, 구원하고 영접하고 기다리고 인도하면서 사방에 순응하는 삶의 방식은, 그것이 "사물들 곁에서의 체류"가 되지 않고서는 견지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사물들이 우리의 일들과 의향들을 떠받치고 조건 짓는다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너무나 당연해서 우리는 자주 이 점을 간과하곤 한다. 예를 들어서 복사열 난방기, 전기 조명 시설, 스펙트럼을 이용해서 빛을 선택하는 창문 시설 등을 갖춘 초현대식 아파트에서 사는 것과 16세기에 지어진 농가에서 사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

하이데거의 생애

 

1889년 9월 26일 독일 메스키르히에서 태어남.

1903~1909년 1903년에 콘스탄츠(Konstanz)의 김나지움(Gymnasium)에 입학, 1906년 프라이부르크의 김나지움으로 전학.

1909년 오스트리아 펠트키르히(Feldkirch) 근방의 예수회 수련원에 지원했으나, 건강상의 문제로 2주 만에 퇴소.

1909~1913년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처음에 신학, 수학을 공부하다가 나중에 철학을 공부.

1913년 <심리주의에서의 판단론 Die Lehre vom Urteil im Psychologismus, Einkritisch-positiver Beitrag zur Logik> 이라는 학위논문을 제출해서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음.

1915년 <둔스 스코투스의 범주론과 의미론 Die Kategorien-und Bedeutungslehre des Duns Scotus>이라는 교수 자격 논문을 제출한 이후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사강사(Privatdozent)로 강의를 시작.

1915~1918년 군 복무.

1917년 엘프리데 페트리(Elfride Petri)와 결혼.

1919년 크렙스(Engelbert Krebs) 신부에게 '철학에 대한 내적인 소명' 때문에 '가톨릭의 교리 체계'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고 편지를 보냄.

1919~1923년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현상학(phenomenology)을 강의함. 후설(Edmund Husserl)의 조교로 일함.

1923년 마르부르크(Marburg) 대학교 철학과의 조교수로 부임.

1924년 아렌트와 연정을 나눔.

1927년 《존재와 시간》 출간

1928년 후설의 후임으로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부임.

1933년 국가사회주의당에 가입하고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총장에 임명됨.

1934년 총장직 사임.

1935~1936년 <예술 작품의 근원>에 관해서 프라이부르크, 취리히(Zurich), 프랑크푸르트(Frankfurt) 등지에서 강연.

1936~1940년 니체에 관해서 강의.

1944년 국민돌격대(Volkssturm)에 소집됨.

1945년 나치정화위원회(Denazification Committee)에서 심문을 받음.

1946~1949년 대학교에서 강의를 할 수 없게 됨.

1949년 브레멘(Bremen)에서 <사물 Das Ding> <강립(强立)하기 Das Ge-Stell> <위험 Die Gefahr> <전향 Die Kehre> 등을 강연.

1951~1952년 복직이 허가되면서 대학 강단에서 다시 강의를 할 수 있게 됨.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사유란 무엇인가? Was heiBt Denken?>에 대해서 강의.

1951년 다름슈타트(Darmstadt)에서 <건축하기, 거주하기, 사유하기 Bauen, Wohnen, Denken>에 관해서 강연.

1955년 뮌헨(Munchen)에서 <기술에 관한 물음 Die Frage nach der Technik>에 관해서 강연.

1959년 《언어에 이르는 도상에서》 출간.

1976년 5월 26일 프라이부르크에서 서거.

1976년 5월 28일 고향 메스키르히에 안장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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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

2015-002 만인보

 

高銀

2006,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792

 

811.6

고67만  4

 

창작전작시-------------------------------------------------------------

 

나는 김홍도의 풍속도에서 씨름꾼이나 엿장수, 매맞는 아이, 엿보는 소악패, 늙은 부부, 장에 가는 농민, 음흉한 양반 등등 거기 살아 있는 백성들의 표정과 동작을 보면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이승의 엄숙함을 느낀다. 이런 점은 중동이나 인도의 벽화 또는 두루마리 그림에서도 느끼며, 특히 브뤼겔의 그림을 보면서는 그가 뚜렷한 의도를 지니고 당대의 잡다한 민중을 모든 가치와 관념과 인식의 중심으로 파악하려 했다는 눈치를 채게 된다. 『만인보』는 마치 들꽃이나 잡초처럼 강산에 번성하고 스러져간 당대인의 모습을 시인 자신의 체험적 스냅사진 속에서 재현하고 있는 '이야기 시'이다. 작은 수백 수천의 조약돌을 모아 바다를 형성화해내듯이 그의 이러한 작업은 서사시가 흔히 놓치게 되는 서정성과 개개인의 자상한 인생 체험을 밑바탕으로 하여, 오히려 시인 고은의 전생애와 동시대를 총체적으로 담아내는 대하 서사시의 성과를 얻게 하고 있다.

- 소설가 황석영

 

신명의 언어로 충만한 시인 고은, 그의 신명의 언어가 그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 하나 하나와 살아서 만날 때 낳아지는 것이 『만인보』 연작이다. 그 만남을 지켜보는 시인의 시선에는 달관의 지혜가 담겨 있다. 그 지혜로 시인은 "사람의 추악까지 포함하는 승엄성"을 포착해내고 민중적 생명력의 온전한 모습을 길어내어 생동하는 한국어의 급박하면서도 여유 있는 리듬을 싣고 있다. 『만인보』의 만남이 거듭할수록 시인의 신명은 더욱더 살아 뜀뛸 것이다. 그가 시의 숨결을 놓치지 않는 한.

- 문학평론가 성민엽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작자의 말

정약전 / 찬밥네 / 미제 조막손이 / 판도 마누라 / 정순이 에미 / 효자 태현이 / 낙곤이 / 재동이 아저씨 막내아들 / 원당리 삼덕이 할머니 / 수레기 신딸 / 일  연 / 가사메 염전 / 새터 째보 모녀 / 염전꾼 박재걸 / 송만옥 영감 / 박해동이 장모 / 박해동이 / 주걱네 아들 / 아래뜸 김상선 / 조정규 / 아들 생각 / 옥정골 용술이 / 염전 우식이 / 중뜸 쪼까니 / 외할머니 동무 / 퉁  소 / 조장로 마누라 / 재천이 아저씨네 김치 / 미제 진필식 영감 / 남원옥 숙수 / 이인로 / 개야도 심청이 / 거지 내외 / 잿정지 과수댁 / 매  자 / 네 할아버지 / 기창이 둘째고모 / 외할아버지 / 명주 두루마기 / 두번째 마누라 / 옥정골댁 / 수동이네 제비 / 줄포댁 / 관여산 묘지기 / 노인단 / 소경 분례 / 월명암 화상 / 김창규 / 며느리 노릇 / 김유태 / 양증조할아버지 / 신자 누나 / 병술이 아버지 / 홍  련 / 영래 마누라 / 독점 사돈 / 칠룡이 / 정두 어머니 / 우  렁 / 술꾼 도술이 / 탄금대 / 창수네 집 / 혹부리 황아장수 / 동고티 오막살이 / 쌍무지개 / 그려 그려 / 쇠정지 재순이 / 윤  태 / 백제 소녀 / 윤사월 / 칠봉이 / 갈치장수 아주머니 / 상렬이 각시 / 지곡리 어르신 / 남복이 큰아기 / 고사떡 / 서자 강변 7우 / 길남이 / 미제 선술집 / 관옥이 / 관옥이 아버지 / 현조 현각 / 용섭이 어머니 / 두 동네 아이들 / 이  모 / 임  호 / 옥순이 / 남생이 의붓아버지 / 상철이 / 희  자 / 당북리 사람 / 청해진 / 참만이 / 묵은 소나무 / 백정 김태식 / 근봉이네 빚장이 / 성모 염복 / 진  수 / 이모부 한용산 / 수건이 여편네 / 막금이 / 묵은장 생선집 / 개바위 할아버지 / 이선구 / 상놈 달봉이 / 간장 거지 / 집 짓는 날 / 평안도 나그네 / 채순이

 

정약전

 

험준한 때 이 땅의 강기슭에 태어나

형제가 혹은 장살당하고

혹은 유배당하였다

신유사옥으로

정약전 그도 아우 약용과 더불어 유배당하여

최원악지 흑산도로 귀양갔다

그는 흑산이라는 이름이 무서워

모양이 비슷한 글자로 갈아

자산이라 하고 지냈다

그런 유배 16년 동안 파도에 에워싸여

날마다 미친 바다에는

배 한 척 뜨지 않는데

시를 쓰면 무엇을 쓰고 무엇을 노래하겠는가

그것도 헛것이매 그만두고

섬 안에 창대라는 그장이 하나 있어

그와 함께 지내며

흑산도 아니 자산도 바다 물고기에 정들었다

바다물새와 바다짐승 바다풀 바다벌레를 익혀나갔다

이로써 흑산어보 아니 자산어보가 이루어졌다

거기에 한마디 덧붙이기를

후세 사람이 이를 고치고 바로잡으면

이 책은 치병에도 이용에도 이치에도

물음에 답하는 태도 쓰이리라

또한 시인들도 이로써 이제까지 미치지 못한 바

그것을 노래할 수 있으리라

 

노랑가오리

모양은 청가오리와 비슷하나

등이 노랗고 간에 기름이 많다

멸치

 

'사기' 화식전에는 추천석이라 하고

'정의'에는 잡소어

'설문'에는 추백어

'운편'에는 소어라 하였다

지금의 멸치가 이것이다

이에 앞서

선물용으로는 천한 고기이다

 

바다벌레 바다좀

크기는 밥알만하고

새우처럼 곧장 뛰지만 수염은 없다

항상 물 밑바닥에 있다가

죽은 물고기를 보면

그 뱃속에 들어가 취식한다

 

이렇듯이 노랑가오리 배도 갈라보고

아쉬운 대로 고서도 뒤져 밝혀내고

바다 밑 물속까지 살펴보며

그 16년 동안 질도 귀양살이 가운데

눈감을 때가 와서

그저 눈 스르르 감으니

그의 죽음 슬퍼하는 자

오로지 파도소리

파도소리

파도소리

 

일  연

 

오랜 무신란 무도한 권세로 나라가 피폐하고

오랜 몽고 침노로 황폐하여

백성이 흘러다니고

무덤이 떠도는 세월이라

옛것 한 가지 남을 길 없는데

이때

여기저기 눈여겨보며

찾아다니며

옛 시절의 자취 모아

이윽고 아홉 권 유사를 지어냈으니

그대가 최씨 무신 권세 지나

원나라 복속 그 시절일망정

충렬왕의 부름받아 국사 된 것보다

얼마나 영화인가

국사임에도

국사 노릇으로 큰 도리 떨치기보다

늙은 어머니 봉양을 빌미로

개경 떠나 외시골로 숨어들어

늙은 어머니 시든 눈빛에 든 옛 시절도

옛 시절의 운행도 깨쳤으니

그 얼마나 영화인가

천년 뒤 그대가 모아 남긴 노래 태어나

 

간 봄 그리우매

모든 것 읊어 시름하여라

아름다우신 모습

주름 지니시려 하여라

눈 돌이킬 사이

만나고 지어라

님이시여 님 그리운 마음 가는 길

어느 다북쑥 마을에 잘 밤 있으오리

 

조정규

 

생육신 조려의 16대손 조정규와

그의 아내 박필양 사이

여섯 아들

용하

용은

용주

용한

용진

용원

 

이 아들 여섯형제 고스란히

한말 이후 왜의 침노에 맞서

혹은 태평양에서

혹은 중국땅에서

혹은 국내에서

나라 독립을 위해 활약하며

온갖 망명 투옥 투쟁을 되풀이하는데

이 여섯 아들에게 질세라

아버지 스스로도 우국지사라

 

이렇게 아들 여섯형제를 나라에 바친 아버지 있어

이 땅이 가망의 땅이거늘

그 아들 가운데

둘째아들이 곧 소앙 조용은이라

절대 평등의 삼균주의 부르짖은 조소앙이라

 

개인과 가정과 민족과 국가와 인류의

무지와 무력과 무산이 혁명된

화평하고 안전하고 자유스러운 삼균주의 사회를 실현하라

바로 그 조소앙이라

 

이인로

 

세상 볼장 다 보아버린 듯

영 어질어질할 때는

머리 깎고 중으로 숨었다가

다시 나오기도 하고

여러 해좌파 묵객과 사귀기도 하였으나

이인로

성깔 하나 급하여

환로에 나아갔다가 그만두어

어느 자리 궁둥이 풀 나본 적이 없구나

그러고 나서

선경에 들기 위하여

왠놈의 지리산 청학동을 헤매다 그만두기도 하여

느는 것이야 술이었구나

탄식이었구나

그러나 글과 글씨 수승하니 어쩌랴

정중부가 선비 다 죽이고 권세 잡고

정중부를 죽인 경대승이

권세 잡고

경대승 뒤 이의문이 잡고

몇 곱절 포악하다가

이의문을 죽인 최충헌 형제가

권세 잡아서 학정을 자행하다가

최충헌이 아우 충수를 죽이고

소위 최씨 세습 권세의 세상이 되어

학정이 쌓이고 쌓이는데

이런 때의 묵객

세상을 등지는 바 있을 법하여

술이나 먹고

잠이나 잘 법하여

분연히 궐기하여 세상에 나갈 뜻 죽일 법하여

 

에라 파한집 전편

마음에 드는 시만 논함이여

그 뒤로 파한집을 보완한다 하여

최자 보한집이 이어질 법하여

 

김창규

 

아래뜸 김동규는 자랑할 것 없으니

마마자국깨나 자랑하는 낯짝인데

영 남부끄러움 한 조각 그린 바 없는 낯짝인데

남의 물건 그냥 갖다가 쓰기가 일쑤인데

그 형에게 질세라

동생 창규는 한술 더 뜨는 인간인데

그 창규는

또 일본놈만 보면 사족 못 써

비 온 뒤 발 빠지는 진흙길에서도

넙죽 큰절을 해댄다

신풍리 방앗간 갔다 돌아오는 길

일본놈 자전거 타고 가는데

거기다 대고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 드렸다

그런데 그 큰절에 운 들어

그 창규는

대번에 군산부청 소사로 취직되어

부청 재무국 사무실 청소하고

출근부 챙기고

때로는 결재 맡으러

결재 서류 들고 다니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버지 제사날이나

욕장이 어머니 생일날

집에 오면

동네 어른들 보아도

턱만 보이며 거드름깨나 피워댄다

담배도

말아 피우는 담배 아니다

 

김유태

 

김병천 이사장 큰아들 유태 도련님

눈썹과 눈썹 사이 길목에

큰 점 하나 박혀

눈 꿈적거릴 때마다

그 점도 함께 끔적거린다

말소리는 쌀쌀맞은 편

우박 쏟아지는 날

아 거기 있지 말고 우리집으로 들어와

하고 말해도 말소리는 쌀쌀맞은 편

그러나 누구하고 손톱만큼 다툰 적 없다

공깃돌 열 벌이나 만들어

이놈으로 공기 놀고

저놈으로 공기 놀고 하다가

동생 봉태한테도 주고

동네 아이한테도 준다

눈자위 한번 허여번뜩한데

그 눈으로 쳐다보면

탱자나무 가시 사이 탱자 걸려 있다

그 겨울 지나

아무도 못 보는 매화꽃 있다

무엇이든지

맨 먼저 본다

남쪽 하늘에 새인지 점인지 하나

 

임  호

 

원당리 임호 양반

호걸 양반

과연 우행호시라

소 같은 위엄으로 느릿느릿 걸어가고

호랑이같이 눈빛 형형하여

그 양반 나서면

오리 십리가 빛나는데

게다가 한번 입 떼는 날이면

가는 테마다 청산이요

청산 따라 백운인데

경성 가서 전문학교 다니다가

원당리 돌아오면

그 사각모 쓰고 돌아오면

동네 어른들

원당리에서 인물 났다고 자랑인데

그 호걸 양반

전문학교 졸업 이후

경성에서 큰일 한다고 소문도 떠들썩했지만

그냥 내려와 구들 차지하고 뒹굴 뿐

밥만 축내는 식충일 뿐

8 · 15 이후에도

그 하고많은 군소 단체에도 나가지 않고

밥만 축내고

물만 축내는 수충일 뿐

노는 괴로움만 실컷 맛보다가

늙어가는 부모 앞에서

어느 날 먼저 세상 떠났다

그 호걸 양반이 남긴 책 스무 권

그 책들도 함께 묻었다

 

이선구

 

서수면 선구 아가씨

그 아가씨 걸어가면

온통 세상이 소리나는데

2월 추운 날도

그 황량한 밭두렁도 빛나는데

그만 일찌감치 사랑에 눈떠버려

바람둥이한테 첫사랑 바치고는

달밤에 몸도 바치고는

여자 중학교 4학년 퇴학해버리고

교복 세일러복 벗고

수수한 깨끼저고리에 몽당치마 입어도

어찌 그리 거룩하고 아리따운지 착한지 슬픈지

나이 18세에 마음 하나 늙어서

성난 오라버니가 강제로 보낸 시집 가서

한 달도 못 살고

청미래덩굴 깔린 친정 뒷산에 와

어릴 때 잘 놀러갔던 소나무

그 소나무에 목 매달고 늘어져버렸다

바람에 좀 흔들리며 매달렸다

 

어디에 한산이씨선구지묘 있겠느냐 그냥 흙 아니겠느냐

 

 

posted by 황영찬

2015-001 소쇄원

 

글 / 정재훈●사진 / 김대벽

2000, 대원사

 

 

시흥시립도서관

SA002604

 

082

빛12ㄷ  232

 

빛깔있는 책들 232

 

정재훈-------------------------------------------------------------------------

단국대학교 상과와 한양대학교 환경대학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문화재관리국장, 문화체육부 생활문화국장을 역임했다. 현재 문화재위원, 문화재보호재단 문화재조사연구단장으로 있으며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한국의 전통원『한국의 옛조경』, 『보길도 부용동원림』 등이 있고 공저로 『동양조경사』, 『북한의 문화유산』이 있으며 논문으로 「창덕궁 후원에 대하여」, 「신라 궁원지인 안압지에 대하여」 등 다수가 있다.

 

김대벽-------------------------------------------------------------------------

함경북도 행영 출생으로 해라시아 문화연구소 연구원이며 한국사진작가협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한국 가면 및 가면극』, 『문화재대관(무형문화재편, 민속자료편)』 등 중요민속자료 다수를 전담 촬영하였다. 

 

|차례|

 

머리말

조성 시기 및 배경

원에 담긴 사상

입지

원의 구성

맺는말

소쇄원과 관련된 문헌 및 그림

참고 문헌

원의 입구

 

작은 집 영롱하게 지어져 있어

앉아보니 숨어살 마음이 생긴다.

연못의 물고기는 대나무 그늘에서 노닐고

오동(梧桐)나무 밑으로는 폭포가 쏟아지네.

사랑스런 돌길을 바삐 돌아 걸으며

가련한 매화 보고 나도 몰래 한숨 지어

숨어 사는 깊은 뜻을 알고 싶어서

날지 않는 새집을 들여다보네.

小閣玲瓏起 坐來生隱心

池魚依竹影 山瀑瀉梧陰

愛石頻回步 憐梅累送吟

欲知幽意熟 看取近床禽

 

비탈따라 길 하나가 트여 잇고

계간의 사립문은 두 짝으로 닫혀 있네.

돌은 늙었는데 이끼가 깔려 있고

대숲으로 둘러싸인 정자는 깊어 보여

신선한 바람은 정자에 가득하나

계간에 걸린 다리엔 사람은 드물구나.

나 홀로 적적하게 꽃을 보고 있노라니

한가로운 구름 아래 석양은 푸르러라.

森崖開一逕 臨澗閉雙扉

石老苔平鋪 亭深竹亂圍

風來高枕滿 人到小橋稀

寂寂看花處 閑雲下翠微

 

우연히 방호(선경)의 경계에 들어오니

무단히 속세의 마음이 씻겨진다.

시내는 두 섬돌을 감돌아 올리고

대나무는 한 담장에 그늘을 덮었다.

깨끗한 땅에다가 침도 하마 못 뱉겠고

마루는 유현하여 노래가 절로 난다.

먼지 낀 관을 털기도 전에

높은 나무에서 새가 조롱을 한다.

偶八方壺境 無端洗俗心

溪圍雙砌響 竹覆一墻陰

地淨寧容唾 軒幽可着吟

塵冠彈未了 高樹有嘲禽

 

세고(世故) 때문에 좋은 약속 어기어

새봄이 다 지나서 사립문을 두드렸네.

담소를 하면서 작은 회포 풀어보고

쌓이고 쌓인 수심 깨트려 본다.

속세를 멀리하고 티끌 없는 이곳에는

마음만 한가하고 할 일은 많지 않네.

시냇가에 홀로 나와 달 뜨기를 기다리니

구름 밖의 저문 종이 은은히 들려온다.

世故違芳約 經春始叩扉

笑談開寸抱 愁恨破重圍

境遠塵常絶 心閑事亦稀

臨溪仍待月 雲外暮鍾微

 

송순(宋純, 1493~1583년)의 『면앙집(俛仰集)』 1권에 수록된 「외제양언진 소쇄정 사수 가정 갑오(外弟梁彦鎭瀟灑亭四首嘉靖甲午」

소쇄원 초정  소쇄원을 대표하는 정자인 초정은 1536년 정철이 태어나던 해에 지어졌다가 1985년 위교, 외나무다리와 함께 복원되었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이 정자를 세워

사람이 오고 가고 40년이 되었네.

시냇물은 서늘히 벽오동 아래로 흐르고

손님이 와서 취해도 깨지를 않네.

 

我生之歲立斯亭 아생지세립사정

人去人在四十齡 인거인재사십령

溪水泠泠碧梧下 계수령령벽오하

客來須醉不須醒 객래수취불수성

정철(鄭澈, 1536~1593년)의 시 瀟灑園題草亭 소쇄원제초정

 

「소쇄원도  1755년 목판으로 판각된 「소쇄원도」는 소쇄원의 「사십팔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으며 소쇄원의 원형을 상고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소쇄원의 자연 경관  소쇄원은 현실에서 느낀 좌절감을 아름다운 자연에 의탁하여 시문을 짓고 대의를 지키며 절개를 지키고자 한 의도에서 조영된 것이다.

광풍각  성리학자 주돈이의 행동 양식을 따르고자 이름지어진 광풍각에는 조선의 선비 정신이 담겨 있다.

원 안의 낙락장송

「사십팔영」  제월당 마루 위에 있는 김인후의 「사십팔영」은 소쇄원이 수많은 선비의 교우처이자 시문의 산실이었음을 보여 준다.

식영정과 주변 건물들  정면 두 칸, 측면 두 칸에 팔각지붕을 한 간결한 정자 형태의 건물인 식영정은 노자암, 자미탄, 부용당 등과 어우러져 시정 어린 정취를 뽐내고 있다.

환벽당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에 팔작지붕을 한 기와집으로 양산보의 처남인 김윤제가 고향에 돌아와 세운 서재이다.

 

어떤 지날 손이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의 주인아 내말 듣소.

인간 세상에 좋은 일 많건마는

어찌 한 강산을 그처럼 낫게 여겨

적막한 산중에 들고 아니 나시는고.

 

노자암 바라보며 자미탄 곁에 두고

장송을 차일(遮日)삼아 석경에 앉았으니

인간 6월이 여기는 삼추(三秋)로다.

 

창계(蒼溪) 흰 물결이 정자 앞에 둘렀으니

천손운금(天孫雲錦)을 그 누가 베어내어

이은 듯 펼친 듯 야단스런 경치로다.

산중에 달력 없어 사시를 모르더니

눈앞의 풍경이 사철따라 전개되니

듣고 보는 일이 모두 다 선계(仙界)로다.

 

짝 맞은 늙은 솔은 조대에 세워 두고

그 아래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버려 두니

홍료화(紅蓼花) 백빈주(白蘋洲)를 어느 사이 지나관저

환벽당 용의 소(沼)가 배 앞에 닿았구나.

 

「성산별곡(星山別曲)」

소쇄원 입구의 연못  호안을 자연석으로 축조한 연못으로 예전에는 물고기와 순채를 길렀다고 한다.

 

줄기는 눈 속에서도 곧고 의연한데

구름 실은 높은 마디는 가늘고도 연해

속대 솟고 겉껍질 벗으니

새줄기는 푸른 띠 풀고 나온다.

雪幹摐摐直  雲梢嫋嫋輕

扶藜落晩籜  解帶繞新莖

 

「사십팔영」 중 제29영 '오솔길의 왕대숲(夾路脩篁)'

 

위교  위태로운 다리란 뜻으로, 소쇄원을 찾아오는 손님은 이 다리를 건넌 다음 개울가에 선 버드나무 밑에서 주인을 불렀을 것이다.

 

장한(張翰)이 강동으로 돌아간 뒤

이 풍류를 아는 이 그 누구인가.

농어회를 미처 마련 못했으니

오래오래 물에 뜬 순채만 보소.

張翰江東後  風流識者誰

不須和玉膾  要看長冰絲

 

「사십팔영」 중 제41영 '못에 흩어진 순채싹(散池蒪芽)'

 

큰 대숲을 뚫고 골짜기에 걸쳐 놓아

우뚝하기가 허공에 뜬 것 같다.

숲과 못은 워낙 아름답지만

다리가 놓이니 더욱 그윽하네.

架壑穿脩竹    臨危似欲浮

林塘元自勝    得此更淸幽

 

「사십팔영」 중 제9영 '대숲 사이에 위태로이 걸친 다리(透竹危橋)'

 

 

 

광풍각 옆 느티나무  개울가 버드나무 밑은 소쇄원 주인과 손님이 만나던 곳으로 손님이 작대기를 두두리면 주인에게까지 들리게 되어 있었다.

 

손님이 와서 대막대기를 두드리니

몇 번 소리에 놀라 낮잠을 깨어

의관을 갖추고 맞으러 가니

벌써 말을 매고 개울가에 서 있네.

有客來敲竹  數聲驚晝眠

扶冠謝不及  繫馬立汀邊

 

「사십팔영」 중 제39영 '버드나무 개울가에서 손님을 맞으니(柳汀迎客)'

 

소쇄원 입구의 긴 담과 오곡문  소쇄원 입구에서 높이 2미터, 길이 약 5미터의 긴 담을 따라 들어가다보면 오곡문이라고 쓴 담을 만날 수 있다.

대봉대의 초정과 작은 연못  오곡문 담 안에 있는 방형의 작은 연못 옆 대봉대에는 초정이 건립되어 있다.

애양단과 동백나무  겨울에도 볕이 따뜻하게 드는 곳 애양단 담장 안에는 동백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오곡류의 계류에 설치되어 있는 나무홈대

 

소쇄원의 가운데 경치가

소쇄정에 통틀어 모였네.

쳐다보면 시원한 바람 나부끼고

귀기울이면 영롱한 물소리 들리네.

瀟灑園中景  渾成瀟灑亭

擡眸輪颯爽  側耳聽瓏玲

 

「사십팔영」 중 제1영 '자그마한 정자 난간에 기대어(小亭憑欄)'

 

바위 벼랑에 늙은 가지 드리웠고

이슬과 비를 맞아 언제나 맑고 시원해.

태평성대 누리며 오래 살아서

남녘 바람 지금까지 불어오누나.

巖崖承老幹  雨露長淸陰

舜日明千古  南風吹至今

 

「사십팔영」 중 제37영 '오동나무 대에 드리운 여름 그늘(桐臺夏陰)'

초정  소쇄원 계원의 중심에 있는 초정은 한 칸짜리로, 이 정자에 앉으면 소쇄원의 온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돌 위의 대나무 두어 그루는

상비(湘妃)의 눈물자국 아롱졌구려.

산새는 그 한을 알지 못하고

저물 무렵 스스로 돌아올 줄 안다.

石上數叢竹  湘妃餘淚斑

山禽不識恨  薄暮自知還

 

「사십팔영」 중 제32영 '해 저문 대밭에 날아든 새(叢筠暮鳥)'

 

한 이랑이 못 되는 방지(方池)

애오라지 맑은 물이 잔잔히 놀이 치네.

주인의 그림자를 물고기가 희롱하니

낚싯줄 드리울 맘이 없구나.

方塘未一畝  聊足貯淸漪

魚戱主人影  無心垂釣絲

 

「사십팔영」 중 제6영 '작은 못에 물고기 노닌다(小塘魚泳)'

 

샘물이 졸졸 흘러들어

높낮은 대숲 아래 못으로 흘러내려

떨어지는 물줄긴 물방아를 돌리는데

온갖 물고기가 흩어지며 노네.

委曲通泉脉  高低竹下池

飛流分水碓  鱗甲細參差

 

「사십팔영」 중 제7영 '나무홈대를 통하여 흐르는 물(刳木通流)'

 

온종일 졸졸 흐르는 물의 힘으로

방아는 저절로 공을 세우네.

경치는 천손(직녀)의 비단인 양 곱고

찧는 소리에 책장이 넘어가네.

永日潺湲力  舂來自見功

天孫機上錦  舒卷擣聲中

 

「사십팔영」 중 제8영 '구름 위로 절구질하는 물레방아(舂雲水碓)'

 

세상에 모든 꽃이

도무지 열흘 가는 향기가 없네.

어찌하여 시냇가의 저 백일홍은

백날이나 붉게 아름다운가.

世上閒花卉  都無十日香

何如臨澗樹  百夕對紅芳

 

「사십팔영」 중 제42영 '골짜기 시냇가에 핀 백일홍(櫬澗紫薇)'

 

깨끗이 심어져 범연치 않은 꽃

고운 자태는 멀리서 볼 만하네.

향기로운 바람이 골을 가로질러

방안에 스며드니 지란(芝蘭)보다 더 좋구나.

淨植非凡卉  閒姿可遠觀

香風橫度壑  入室勝芝蘭

 

「사십팔영」 중 제40영 '개울 건너 핀 연꽃(隔澗芙蕖)'

 

단 앞 개울은 아직 얼었으나

단 위의 눈은 모두 녹았네.

팔 베고 길게 누워 볕든 경치를 바라보니

한낮의 닭 울음은 다리까지 들리네.

壇前溪尙凍  壇上雪全消

枕臂迎陽景  鷄聲到午橋

 

「사십팔영」 중 제47영 '볕이 든 단의 겨울낮(陽壇冬午)'

 

티끌 많은 세상의 잡념을 버리려

자유로이 계단 위를 거닐었다네.

한가로운 마음을 시로 읊으니

읊으면서 속된 일을 잊게 되구나.

澹蕩出塵想    逍遙階上行

吟成閒箇意    吟了亦忘情

 

「사십팔영」 중 제23영 '긴 계단을 거니노라면(脩階散步)'

 

걸음마다 흘러가는 물결을 보며

거닐면서 시를 읊으니 생각이 더욱 그윽해.

물의 근원이 어디인지 아직 모르고

한갓 담장을 통해 흐르는 물만 바라본다.

步步看波去  行吟思轉幽

眞源人未沂  空見透墻流

 

「사십팔영」 중 제14영 '담장 밑을 통해 흐르는 물(垣竅透流)'

 

지척에서 졸졸 흐르는 물

분명 다섯 굽이로 흘러내리네.

그해 물가에서 말씀한 뜻을

오늘 은행나무 아래서 찾아보는구나.

咫尺潺湲池  分明五曲流

當年川上意  今日杏邊求

 

「사십팔영」 중 제15영 '은행나무 그늘 아래 굽어치는 물(杏陰曲流)'

거대한 암반  담장 밑을 통하여 흘러든 물은 경사가 급한 암반에서 세찬 폭포가 되어 떨어지기도 하고, 소 같은 웅덩이나 조담을 형성하는 등 변화무쌍한 풍경을 형성한다.

수구  장원봉 골짜기에서부터 흘러내린 물은 오고문 옆 담 아래에 뚫려 있는 수구를 총해 소쇄원 내 계곡으로 흘러내린다.

수구문  장대석 같은 자연석으로 담 밑을 받치고 개울 중앙에 자연석을 위태롭게 포개 쌓아서 양쪽으로 도랑이 흐르게 하였다.

밖에서 본 수구  위태롭게 쌓은 자연석이 장대석을 받치고 있다.

 

계류는 바위를 씻어 흐르는데

한 바위가 온 골짜기를 덮고 있구나.

흰 것을 중간에 편 듯이

비스듬한 벼랑은 하늘이 깎은 바로다.

溪流漱石來  一石通全壑

匹練展中間  傾崖天所削

 

「사십팔영」 중 제3영 '가파른 바위에 흐르는 물(危巖展流)'

 

못 물은 깊고 맑아 바닥이 보이는데

멱감고 나도 여전히 푸르구나.

세상 사람들은 이 좋은 곳을 믿지 않지만

뜨거워진 바위에 오르니 발에 티끌 하나 없구나.

潭淸深見底  浴罷碧粼粼

不信人間世  炎程脚沒塵

 

「사십팔영」 중 제25영 '조담에서 멱감다(槽潭放浴)'

 

드문드문 푸른 잎 그늘 아래로

어젯밤 시냇가에 비가 내렸네.

성난 폭포수가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니

마치 흰 봉황이 춤추는 것 같구나.

扶踈綠葉陰  昨夜溪邊雨

亂瀑瀉枝間  還疑白鳳舞

 

「사십팔영」 중 제38영 '오동나무 그늘 아래로 쏟아지는 물살(梧陰瀉瀑)'

 

물이 도는 바윗가에 둘러앉으면

소반의 채소 안주라도 흡족하다.

소용돌이 물결에 절로 오가니

띄운 술잔 한가로이 주고받거나.

列坐石渦邊  盤蔬隨意足

洄波自去來  盞斝閒相屬

 

「사십팔영」 중 제21영 '스며 흐르는 물길따라 술잔을 돌리니(洑流傳盃)'

상암  폭포의 서쪽 평평한 암반 위에는 두 사람이 마주앉아 바둑을 두는 그림과 함게 상석이란 글씨가 쓰여 있다.

달을 쳐다보면 바위 광석  조담 서쪽의 평평한 바위에는 광석이라 쓰고 사람이 반듯이 누워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밝은 하늘 달 아래 이슬 받으며

너럭바위 돗자리 대신이로세.

긴 숲이 흩날리는 맑은 그림자

밤이 깊어도 잠을 이룰 수 없네.

露臥靑天月  端將石作筵

長林散淸影  深夜未能眠

 

 

「사십팔영」 중 제13영 '광석에 누워 달을 보니(廣石臥月)'

 

바위 기슭의 넓고 평평한 곳에

대숲이 그 절반을 차지했구나.

손님이 와서 바둑을 두는데

어지러운 우박이 허공에 흩어지네.

石岸稍寬平  竹林居一半

賓來一局碁  亂雹空中散

 

「사십팔영」 중 제22영 '평상바위 위에서 바둑을 두니(床巖對棋)'

 

거문고 타기가 쉽지 않으니

온 세상을 찾아도 종자기(鐘子期)가 없구나.

한 곡조가 물 속 깊이 메아리치니

마음과 귀가 서로 알더라.

瑤琴不易彈    擧世無鍾子

一曲響泓澄    相知心與耳

 

「사십팔영」 중 제20영 '맑은 물가에서 거문고를 비껴 안고(玉湫橫琴)'

 

산을 만듦에 사람의 힘을 들이지 않고

만든 산을 가산이라 하더라.

형세를 따라 수림이 되고

의연한 산야인 것을.

爲山不費人  造物還爲假

隨勢起叢林  依然是山野

 

「사십팔영」 중 제16영 '가산의 풀과 나무(假山草樹)'

 

가을이 오니 바위 골짜기 서늘도 하고

단풍잎은 이른 서리에 놀랐구나.

고요하게 노을빛이 흔들리는 속에

춤추는 듯 그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秋來巖壑冷  楓葉早驚霜

寂歷搖霞彩  婆娑照鏡光

 

「사십팔영」 중 제44영 '골짜기에 비치는 단풍(暎壑丹楓)'

 

전하여 듣자니 시냇가의 풀은

아홉 가지 향기를 머금었다고

여울물도 날마다 뿜어 올려져

한가로이 더위를 삭히어 주네.

聞說溪傍草  能含九節香

飛湍日噴薄  一色貫炎凉

 

「사십팔영」 중 제34영 '세찬 여울가에 핀 창포(激湍菖蒲)'

 

하늘은 신선의 계교와 부합하며

맑고 찬 한 줄기 산골 도랑

하류에선 서로 섞여 흐르네.

오리들이 한가로이 졸고 있구나.

天付幽人計  淸冷一澗泉

下流渾不管  分與鴨閒眠

 

「사십팔영」 중 제33영 '산골 물가에서 졸고 있는 오리(壑底眠鴨)'

 

숲 끝의 매대는 그대로 넓은데

달이 떠오를 때엔 더욱 좋아라.

엷은 구름도 흩어지고

차가운 밤 얼음에 비치는 그 자태.

林斷臺仍豁  偏宜月上時

最憐雲散盡  寒夜映冰姿

 

「사십팔영」 중 제12영 '매대에 올라 달을 맞으니(梅臺邀月)'

 

매화의 빼어남을 곧바로 말하자면

돌에 내린 뿌리가 볼 만하구나.

맑고 잔잔한 물가에

성긴 그림자 황혼에 더 곱다.

直欲論奇絶  須看揷石根

兼將淸淺水  踈影入黃昏

 

「사십팔영」 중 제28영 '돌받침 위에 외롭게 핀 매화(石趺孤梅)'

화계  경사진 언덕에 자연석으로 쌓은 네 단의 축대 가운데 밑의 단은 원로이고 위의 두 단은 화계로 계류의 서쪽 산비탈 담 밑에 조성되어 있다.

 

북녘재(서울쪽)는 층층이 푸르고

동녘 울밑에 군데군데 누런 국화

벼랑가에 마구 심어 놓은 것들이

늦가을 서리 속에 어울리구나.

北嶺層層碧  東籬點點黃

緣崖雜亂植  歲晩倚風霜

 

「사십팔영」 중 제27영 '비탈길에 흩어진 솔과 국화(散崖松菊)'

 

몸소 느티나무 옆의 바위를 쓸고

아무도 없이 홀로 앉아서

졸다가 문뜩 놀라 일어나니

개미왕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自掃槐邊石  無人獨坐時

睡來驚起立  恐被蟻王知

 

「사십팔영」 중 제24영 '느티나무 옆의 바위에 기대어 졸다(倚睡槐石)'

소쇄원의 식생 현황도.

 

등뒤엔 겹겹의 청산이요,

머리를 돌리면 푸른 옥류(玉流)라.

긴긴 세월 편히 앉아 움직이지 않고

대(매대)와 각(광풍각)이 영주산보다 낫구나.

背負靑山重  頭回碧玉流

長年安不抃  臺閣勝瀛州

 

「사십팔영」 중 제4영 '산을 지고 앉은 자자바위(負山鼇巖)'

 

일찍이 여섯 잎 꽃이 피더니

향기가 가득하다 야단들이네.

붉은 열매 푸른 잎새 숨어 있더니

맑고 고와 눈서리가 사뿐 앉았네.

曾聞花六出  人道滿林香

絳實交靑葉  淸姸在雪霜

 

「사십팔영」 중 제46영 '흰 눈을 인 붉은 치자(帶雪紅梔)'

 

길은 하나련만 삼익우(三益友)가 잇달아

오르는 사이에 위태로움 느끼지 못하네.

워낙 세속의 인간은 근접을 못하는 곳

이끼 색은 밟혀도 또다시 푸르구나.

一逕連三益    攀閒不見危

塵蹤元自絶    苔色踐還滋

 

「사십팔영」 중 제5영 '돌길을 위태로이 오르니(石逕攀危)'

 

늙은 돌에 촉촉한 구름이 자욱하니

푸르디 푸른 이끼가 꽃인 양 하여라.

다른 언덕과 골짜기마다

번화함이 없이 그 뜻이 고절하다.

石老雲烟濕  蒼蒼蘚作花

一般丘壑性  絶意向繁華

 

「사십팔영」 중 제18영 '돌에 두루 덮인 푸른 이끼(遍石蒼蘚)'

광풍각  오곡류가 흐르는 계간의 하류에 위치한 광풍각은 정면과 측면이 세 칸, 팔작지붕으로 된 정자형 건물이다.

 

창이 밝으면 책을 읽으니

물 속 바위에 책이 어리 비치네.

한가함을 따라서 생각은 깊어지고

솔개와 물고기인 양 떠돈다.

窓明籤軸淨  水石映圖書

精思隨偃仰  竗契入鳶魚

 

「사십팔영」 중 제2영 '개울가에 누운 글방(枕溪文房)'

광풍각과 정원  광풍각은 소쇄원의 아름다운 경치가 정자 속으로 들어오게 만든 집이다.

 

봄이 복사꽃 밭에 찾아드니

붉은빛이 새벽 안개 속에 낮게 퍼진다.

바윗골 속에 취해 있으니

마치 무릉도원을 거니는 것 같구나.

春入桃花塢  繁紅曉霧低

依迷巖洞裡  如涉武陵溪

 

「사십팔영」 중 제36영 '복사밭에 봄이 찾아드니(桃塢春曉)'

광풍각 마루에서 바라본 원의 전경

광풍각 후원과 복숭아나무  고암정사와 부훤당이 있던 지역과는 낮은 담으로 분할되었으며(위), 담에는 작은 협문이 있고, 담장 안에는 복숭아나무가 심어져 있다.(아래)

광풍각  소쇄원에서 가장 중요한 글방 건물인 광풍각은 터진 사방으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소쇄원의 아름다운 경치가 정자 속으로 들어오게 만든 집이다.

제월당  소쇄원 서쪽 가장 높은 단 위에 건립되어 있으며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에 팔작지붕으로 된 간결한 집이다.

제월당  좌측 한 칸 방의 문짝을 들어올리면 전면과 측면이 개방되면서 탁 트인 시원한 공간이 된다.

 

빗방울이 은화살같이 쏟아지니

너울거리며 푸른 비단 춤을 추네.

향수 어린 고향 소리엔 비할 수 없어

그냥 안타까워라, 고요한 마음만 깨다니.

錯落投銀箭  低昻舞翠綃

不比思鄕聽  還憐破寂寥

 

「사십팔영」 중 제43영 '빗방울이 두드리는 파초(滴雨芭蕉)'

 

저 아득한 곳으로 사라졌는데

다시 이 고요한 곳으로 불어오니

무정한 바람은 대나무와 더불어

밤낮 생황을 분다네.

已向空邊滅  還從靜處呼

無情風與竹  日夕奏笙篁

 

「사십팔영」 중 제10영 '대숲에 부는 바람소리(千竿風響)'

제월당 마루 위에 걸린 「사십팔영」

소쇄원의 담  자연석과 황토흙을 섞어 쌓은 운치 있는 토석담은 원내와 원외를 분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쇄원의 담은 서쪽 경사진 산록(산기슭)을 내려오면서 직각으로 수없이 꺾어지는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데, 이 담은 소쇄원 입구에서 북북동쪽에 위치한 애양단까지 이른다.

오곡문에서 매대까지 이르는 담의 바깥쪽(위)과 안쪽(아래)

매대에서 제월당까지 이르는 담과 고사목  송시열이 쓴 '소쇄처사양공지려'라는 글자가 붙은 서쪽 담 옆에는 고사목 한 그루가 외로이 서 있다.


어렴풋이 삼파(三巴, 중국 사천성(泗川省) 동부에 있는 세 고을 파군(巴郡), 파동(巴東), 파서(巴西)를 말한다. 이 세 고을이 서로 어울려 잘 살았다고 하는데 '오곡문'이란 잘 어우러져 있다는 말이다)의 글자를 시늉낸 듯

아마도 구곡(九曲, 주자의 무이구곡을 의미한다)의 여울에서 나누어온 듯

진원(眞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곧바로 행단으로 통해지리라.

宛學三巴字  應分九曲灘

眞源知有泝  直透杏邊壇

양산보의 4대손 양진태가 쓴 「오곡문」


긴 담이 백 자[百尺]나 가로 뻗었는데

일일이 신시(新詩)를 베껴  놨더니

마치 병풍을 두른 것 같네.

비바람의 장난일랑 일지 말아라.

長垣橫百尺  一一寫新詩

有似列屛障  勿爲風雨欺


「사십팔영」 중 제48영 '긴 담에 걸려 있는 노래(長垣題詠)'

소쇄원 종단면도

「소쇄원도」  입면도와 평면도가 혼합된 그림으로 사방으로 돌려보면 보는 방향에 따라 건너다 보이는 공간이 정면으로 나타나게 그려져 있다.

 

남녘의 더위가 괴로운데

오직 이곳만은 서늘한 가을이네.

바람이 흔드는 누대 곁의 대숲

연못물은 나뉘어 돌 위로 흐르네.

南州炎熱苦  獨此占凉秋

風動臺邊竹  池分石上流

 

「사십팔영」 중 제11영 '연못가에서 더위를 식히니(池臺納凉)'

 

높은 묏부리에서 굴러온 바위에

몇 자 안 되는 솔이 뿌리를 내리네.

송화(松花) 몸에 만발하며

기세는 하늘의 푸르름을 지녔고녀.

片石來崇岡  結根松數尺

萬年花滿身  勢縮參天碧

 

「사십팔영」 중 제17영 '하늘이 이룬 솔과 돌(松石天成)'

 

벼랑 끝에 빈 마음으로 오래 앉으니

말끔히 씻어 주는 계곡의 바람 불어

무릎 상할까 두렵지 않고

한갓 구경만 하는 늙은이로다.

懸崖虛坐久  淨掃有溪風

不怕穿當膝  偏宜觀物翁

 

「사십팔영」 중 제19영 '걸상바위에 고요히 앉아(榻巖靜坐)'

 

콸콸 물은 층계진 돌을 돌아 흐르는데

다릿가의 두 그루 솔이 섰구려.

남전[藍田, 중국 섬서성 서안시 동남방에 있는 고을 이름으로 당나라 문장가 한유(韓愈)가 「남전현승청벽기(藍田縣丞聽壁記)」를 지은 것이 있는데 이를 인용하여 오히려 남전보다 여기가 더 유유자적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엔 오히려 일이 있어서

다툼이 이 조용한 곳에도 이르겠네.

㶁㶁循除水  橋邊樹二松

藍田猶有事  爭及此從容

 

「사십팔영」 중 제26영 '가로지른 다릿가의 두 소나무(斷橋雙松)'

 

서리맞은 뿌리가 속세를 싫어하나

자꾸만 돌 위로 드러나네.

몇 해나 길렀더냐 어린 자손처럼

곧은 속은 갈수록 굳어간다네.

霜根耻染塵  石上時時露

幾歲長兒孫  貞心老更苦

 

「사십팔영」 중 제30영 ''돌 틈에 서려 뻗은 대 뿌리(迸石竹根)'

 

벼랑가에 펄펄 나는 새들

때로는 물 속에 내려 놀고

마음대로 마시고 쪼으면서

잊다마다 백구(갈매기)에 값하는 것을.

翩翩崖際鳥  時下水中遊

飮啄隨心性  相忘抵白鷗

 

「사십팔영」 중 제31영 '벼랑에 깃들인 새(絶崖巢禽)'

 

정작 꽃 중의 꽃은

청화(淸和) 함이 사시에 갖추어 있는

띠집의 비스듬한 처마가 다시 좋아하고

매화와 대나무가 이 서로 아는 꽃.

定自花中聖  淸和備四時

茅塹斜更好  梅竹是相知

 

「사십팔영」 중 제35영 '처마에 비스듬히 핀 사계화(斜簷四季)'

 

어둑하여 산과 구름 알 수가 없네

창을 여니 동산에 눈이 가득하구나.

계단도 구별 없이 멀리까지 하야니

부귀가 여기까지 이르다마다.

不覺山雲暗  開窗雪滿園

階平鋪遠白  富貴到閒門

 

「사십팔영」 중 제45영 '넓은 뜰에 깔린 눈(平園鋪雪)'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