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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9 재즈 - 원초적 열망의 서사시


아르노 메들랭, 프랑크 베르제로 지음, 장동현 옮김, 성기완 감수

1996,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2134


082

시158ㅅ 29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29


L'epopee du jazz, Au-dela du bop


마일즈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찰스 망거스,

오네트 콜먼, 그들의 이름은 곧 재즈이다. 열정과 회환이

녹아 탄생한 재즈는 1940년대부터 1960년대의

전성기를 거치며 흑인들의 리듬에서 전세계인의 음악으로

성장하였다. 이 시기에 프리 재즈, 웨스트 코스트 쿨,

하드 밥, 모들 재즈, 퓨전과 같은 다양한 재즈 스타일이 수많은

재즈 귀재들과 함께 태어났다. 새로운 음악 형식들이 탄생과

소멸을 거듭하는 가운데, 시간이 흐를수록 유독 더 많은

사랑을 받는 재즈의 매력은 무엇일까?


"재즈 - 아마도 그것은

문자 그대로 아무 의미 없는 음악일 것이다.

아니면 의미와는 작별을 했으리라,

오히려 그것에 집착하기 위해서."


알랭 제르베르,

<Le Matin>, 1982년 7월 9일


차례


제1장 비밥에서 무엇이 나올까?

제2장 하드 밥과 모던 재즈를 향해서

제3장 자유로 가는 길

제4장 변화로 가는 길

제5장 조각조각 찢어진 재즈

기록과 증언

그림목록

찾아보기


아르노 메를랭 Arnaud Merlin

1963년생인 아르노 메를랭은 소르본 대학과 파리고등음악원에서 음악을 공부한 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였다. 잡지 <재즈 오 Jazz Hot> <재즈 아 파리 Jazz a Paris> <몽드 드 라 뮈지크 Monde de la Musique>에 참여했으며, <재즈의 비망록> <프랑스에서의 재즈>를 공동 집필했다.


프랑크 베르제로 Franck Bergerot

1953년생인 프랑크 베르제로는 일찍이 대중음악과 재즈에 심취하였다. <재즈 오> <몽드 드 라 뮈지크>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파리 제10대학에서 재즈의 역사를 강의하고 있다.


옮긴이 : 장동현

1959년 안동 출생.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위대한 음악가 바흐> <시간의 도둑> <작지만 소중한 것들> <성공기업을 창출하는 폴러어십과 리더십> 등을 번역하였다.


감수 : 성기완

1967년생.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재즈 평론가로 활동중이다. <뉴스 플러스> <월간 음악> <상상> 등에 재즈와 록에 관한 글을 기고하였으며 <뮤직 비디오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공동 번역하였다.


제1장

비밥에서 무엇이 나올까?


부분적으로 흑인 노예들이 불렀던 영가에서 발전한 재즈는 유일하게 미국에서 발생한 음악형식이다. 그것은 흑인이 창조한, 흑인을 위한 음악이었다. 오랫동안 재즈는 단순한 오락거리로만 인식되었다. 그러나 1940년대 비밥의 출현과 함께 젊은 재즈 음악가들이 아방가르드에 합류했다. 밥이 모던 재즈의 문을 연 것이다. 이제 재즈의 기원과 아무 상관도 없는 아티스트들이 이 특별한 표현방식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찰리 파커(섹소폰을 불고 있는 사람)가 1949년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며 교사였던 레니 트리스타노 및 다른 연주자들과 연주를 하고 있다.

마일즈 데이비스, 리 코니츠, 제리 멀리건(왼쪽부터)이 캐피틀 레코드사에서 《쿨의 탄생》을 녹음하고 있다.

위의 앨범을 발매한 프레스티지 레코드사는 스탠 게츠, 제리 멀리건, 마일즈 데이비스(첫번째 LP판을 위한 연주에서), 리 코니츠 6중주단(조지 러셀의 초현대적 작곡에 기초한, 전설적인 앨범 《에즈 세틱(Ezz-thetics)》에서)의 작품을 통해서 일종의 새로운 개념을 보여 주었다.

포 브러더스. 테너 섹소폰 세 사람과 바리톤 섹소폰 한 사람, 즉 스탠 게츠, 알 콘, 주트 심스, 서지 찰로프샘 마로비츠의 반주로 연주를 하고 있다. 이들은 실제로는 아무 관계도 없었지만 레스터 영의 백인 웨스트 코스트 추종자 가운데 진정한 형제들이었다.

리 코니츠원 마시는 레니 트리스타노 문하에 속했다. 트리스타노의 냉정함과 지적인 접근법은 비판의 대상이었다. 즉 그의 주관심사가 내적인 집중, 상호간의 듣기, 끝없는 상상, 일상적인 형식에서 벗어난 진정한 화법이라는 점을 모두가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아트 페퍼 + 일레븐(Art Pepper+Eleven)》은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의 전형이다. 음반을 만들어 낸 음악가들(피트 캔둘리, 잭 셸든, 버드 생크, 빌 퍼킨스, 리치 카뮤카, 러스 프리맨, 멜 루이스)의 면면이 그렇고, 이스트 코스트 밥(디지 길레스피, 찰리 파커, 셀로니어스 몽크의 작품들)과 비교되는 면이 그렇다. 마지막으로 캘리포니아 편곡가들이 공유한 소리의 우아함을 볼 때도 그렇다. 이 음반 안에는 웨스트 코스트 음악의 패러독스가 존재한다. 일부 음악가들이 안락하게 돈을 벌던 할리우드와, 아트 페퍼가 마약 중독자로서 일생을 보낸 샌 퀜틴 형무소 사이 어딘가에.

데이브 브루벡(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극단적인 예인 유명한 <테이크 화이브(Take Five)>의 작곡가)은 다리우스 미요와 함께 공부했다. 그는 빌 스미스, 조 모렐로, 폴 데스먼드 같은 동반자들과 함께 캘리포니아 공동체의 외연을확대시켰다.

제임스 딘 같은 외모, 긴장이 풀린 듯한 스타일, 순수한 서정주의의 소유자였던 트럼펫 주자 쳇 베이커는 처음에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신통치 않은 모방자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후일, 루이 암스트롱 이후 최고의 즉흥연주가로 인정받았다.

펭귄 그림으로 유명한 드러머 셸리 만의 앨범 《더 스리 앤드 더 투(The Three & the Two)》는 현재 수집가들의 애호품이다. 이 실험성 강한 음악은 디지 길레스피의 빅 밴드와 마일즈 데이비스 9중주단에서 편곡가로 일하던 피아니스트 존 루이스의 열정어린 피아노 연주에 힘입은 바 크다. 루이스는 자신의 《모던 재즈 4중주단(The Modern Jazz Quartet)》(아래, 앨범 표지)과 함께 클래식 음악의 캐논 형식을 다시 찾았고, 작곡가 군터 슐러와 함께 '제3의 물결'을 만들어 냈다. 이 제3의 물결은 클래식 음악의 형식에 재즈의 즉흥연주와 필링을 결합한 것이다.

덱스터 고든은 쿨에 레스터 영의 가르침을 동화시킨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을 만들어 냈다.


제2장

하드 밥과 모던 재즈를 향해서


쿨이 웨스트 코스트에서 인기를 얻고 있을 때, 이스트 코스트의 흑인 음악가들 역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밥을 대규모 앙상블에 적합하게 만들었고, 형식을 풍부하게 만들었으며, 표현기법을 마스터했고, 새로운 리듬을 실험하고 있었다. 1950년대 중반이 되자, 그들은 미국 흑인 음악의 특징을 보존하기 위해 블루스와 흑인 영가에서 끌어낸 하드 톤(hardened tone)을 개발해 냈다.

마일즈 데이비스(위)와 셀로니어스 몽크(아래). 비범한 두 사람은 1950년대 중반 미국 흑인 음악을 풍요롭게 하는 데 주역이 되었다.

디지 길레스피의 빅 밴드(위)는 신세대 편곡가들과 일했다. 길 풀러, 조지 러셀, 존 루이스, 치코 오패릴, 테드 다메론(아래)이 그들이다. 다메론의 작품에는 오늘날 빅 밴드의 특징을 예고하는 유연함이 깃들여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의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밥 음악가들은 프랑스에서 선풍을 일으켰다. 1963년 녹음된 《파리의 버드 파웰(Bud Powell in Paris)》(위). 토미 포터, 보리스 비앙, 케니 도햄, 줄리엣 그레코, 마일즈 데이비스, 미셸 비앙, 찰리 파커, 1949년(아래).

패츠 나바로는 동료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코드 진행(chord progression)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그들이 코드 진행에 관해서 더 많이 알게 될 때, 코드 진행에 대해서 편안하게 될 때 우리는 진정한 모던 재즈를 만들게 될 것이다." 찰리 파커의 메시지에 들어 있는 근대성이 완벽하게 흡수된 것은 패츠 나바로와 그의 영향을 받은 클리포드 브라운을 통해서이다.

"그가 '내' 뒤에서 연주하는 것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몽크하고 같이 연주하려면 콜트레인처럼 연주해야 한다. 그 빈 공간하며 흐트러진 주법, 그는 늘 그런 식으로 연주하곤 했다."

마일즈 데이비스

《마일즈, 자서전》

1954년 12월 24일, 몽크와 마일즈 데이비스가 <와츠 뉴(What's New)>를 프레스티지사에서 함께 녹음했을 때 클리포드 브라운은 이 곡을 가수 헬렌 메릴을 위해서 즉흥연주를 했다. 이 곡은 재즈 역사에서 걸작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같은 해 브라운은 드러머 아트 블래키와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와 함께 하드 밥의 리더가 될 재즈 메신저스(Jazz Messengers)의 첫번째 공연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클리포드 브라운은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는데, 그 당시 드러머인 맥스 로치와 함께 있었다. 그때 맥스 로치는 색소폰 주자인 소니 롤린스도 포함되어 있는 5중주단을 이끌고 있었다. 오늘날까지 트럼펫 주자 가운데 브라운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특히 윈턴 마살리스의 초기 레코드를 보면 그 점이 매우 두드러진다.

메카시 상원의원(위)이 미국의 공산당 세력 확대에 대해 지도를 펴놓고 설명하고 있다. 이 '마녀 사냥'은 반동의 물결에 휩싸인 미국 사회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었다. 얼마 후에 매카시즘은 퇴조했지만 흑인에 대한 대우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1959년 8월 26일, 마일즈 데이비스는 그가 일하던 버드랜드 앞에서 "지나가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난폭하게 체포되었다(아래).

이 포스터의 사이키델릭한 느낌은 1960년대의 팝 음악 청중이 솔에 보여 준 관심을 증명하고 있다.


제3장

자유로 가는 길


존 콜트레인은 1960년대 초반 모던 재즈의 주역이었다. 그는 자신들의 음악을 지배적인 백인 문화에서 해방시키려는, 분노한 젊은 흑인 음악가들의 리더였다. 흑인 인권운동을 배경으로, 재즈 음악가들은 미국 사회 주류의 심미안을 거부하고 프리 재즈라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 냈다.

찰스 밍거스는 프리 재즈의 가혹한 비판자였다. 그는 프리 재즈가 이룩한 내용보다 그 업적에 더 비판적이었다.

첫번째 녹음(위, 《블루 트레인(Blue Train)》, 1957년, 블루 노트사) 후, 존 콜트레인은 비밥의 하모니 체계에서 탈출하려고 시도했다. 빌 에번스와 마일즈 데이비스(대표작으로 《카인드 오브 블루》, 1959년)의 모들 경향에서 그는 어렴풋이나마 해결책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 해결책 위에서 1961년, 그는 매코이 타이너, 지미 개리슨(아래), 앨빈 존스와 함께 유명한 4중주단을 결성한다.

콜트레인의 앨범 《옴(Om)》(위)과 파로아 샌더스의 《타우이드(Tauhid)》(가운데). 콜트레인의 1966년 이후의 밴드(아래).

《프리 재즈(Free Jazz)》

피아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콜먼과 돈 체리는 여전히 비밥에 등을 돌렸다. 그러나 그들의 목표는 두 악기 사이의 완벽한 앙상블을 유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역동적이고 자발적인 관계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사이에 미국 대도시에서는 흑인 거주 지역의 인구가 급격하게 늘었다. 1960년대에 와서 집단 거주 지역은 격렬한 인종폭동의 발원지였고, 이따금 경찰의 야만성을 드러내는 장소가 되었다. 인종차별(아래) 폐지에 대한 오랜 청원 끝에 지도자들은 단호한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사회적 평등과 문화적 차이에 대한 존중을 얻기 위한 투쟁은 갈수록 격렬해졌다. 아프리카로 돌아가자는 운동까지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정도였다(위).




마틴 루터 킹 목사(첫번째, 린든 B. 존슨 대통령과 만나는 모습)는 1963년 역사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워싱턴에서 25만명이 참여한 비폭력 행진을 벌인 것이다. 비폭력보다 대항 폭력을 선호한 맬컴 X(세번째)는 '블랙 파워' 운동의 선구자였다. 그 운동은 스토클리 카마이클과 '블랙 팬서즈'에 의해 전파되었다(네번째, 행진하고 있는 블랙 팬서즈).

많은 재즈 음악가들이 둘 이상의 악기를 연주했다. 대개 색소폰 주자들이 그랬다. 그들은 소프라노 색소폰에서 바리톤 색소폰, 심지어 플루트까지 다루었다. 프리 재즈는 이 현상을 체계화시켰다. 비록 '새로운 것'의 가장자리에 있었지만 롤랜드 커크는 둘 이상의 악기로 연주에 변화를 주었다. 그는 동시에 세 개의 색소폰을 불었고, 플루트로도 연주했으며, 호루라기와 사이렌을 이용하기도 했다.

두 개의 역사적인 프리 배즈 음반.

《오 예(Oh Yeah)》(위)는 찰스 밍거스가 취입한 고전적인 앨범인데 흑인 교회에 모인 청중들의 감탄사나 후렴구를 상기시키는 타이틀이다. 1959년 컬럼비아사에서 녹음해 혹평을 받은 유명한 <페이블즈 오브 포버스(Fables of Faubus)>는 《밍거스 아움(Mingus Ah Um)》(아래)에 들어 있다. 격렬한 풍자투의 가사는 아칸소 주지사 오벌 포버스가 1957년 리틀록에서의 학교 통합에 반대한 것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아웃 투 런치(Out to lunch)》

1960년대 후반, 앤서니 브랙스턴은 구조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프리 재즈가 이룩한 성과와 화해시켰다. 그의 악보(아래), 제목과 앨범 표지(위)는 그의 작업을 증명해 주고 있다.

1930년대 유럽 재즈의 선봉에는 미국의 즉흥연주들의 선도 아래 장고 라인하르트가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색소폰 주자 가토 바르비에리(위)는 돈 체리의 유명한 《컴플리트 커뮤니언(Complete Communion)》에서 오네트 콜먼과 합류하여 유명해졌다. 그는 1968년 남아프리카의 피아니스트돌라 브랜드를 만나 결정적으로 변신했다. 어릴 때 남아프리카의 크호사족과 접촉한 적이 있는 피아노 주자 겸 밴드 리더인 크리스 맥그리거(아래)는 1964년 다인종 6중주단인 블루 노츠(Blue Notes)와 함께 아파르트헤이트를 피해 탈출했다. 유럽에 정착한 그는 브라더후드 오브 브레스(Brotherhood of Breath)를 만들었다.

 

제4장

변화로 가는 길

 

 

1960년대와 그 이후에 프리 재즈의 선구자들이 거부했던 것들을 흡수하려는 음악가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테크닉을 감정의 방해물로 보는 대신 포용했다. 재즈는 세계 곳곳에서 마주치는 록, 클래식, 기타 전통음악 형식에 영향을 받으면서 그 지평을 넓혀 갔다.

두 앨범 표지. 위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네페르티티(Nefertiti)》이고, 아래는 조 핸더슨의 《인 앤 아웃(In'n Out)》이다.

어느 날 누군가가 듀크 엘링턴에게 아방가르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간단하게 대꾸했다. "아방가르드라면 나에게는 폴 곤잘레스가 있습니다."  이 말을 인용하면서 색소폰의 데이비드 머레이는 이렇게 덧붙였다. "만약 서정주의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폴 곤잘레스가 바로 그 화신입니다." 그러나 이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곤잘레스는 재즈사를 다룬 책들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빌 에번스는 1929년에 태어나 어린 시절 바이올린을 공부했다. 나중에 뉴올리언스에서 공부할 때 피아노로 바꿨다. 그는 1954년 무렵 하모니와 작곡을 마스터했다. 에번스는 1956년, 《뉴 재즈 컨셉션즈(New Jazz Conceptions)》에 이어 《에브리바디 디그즈 빌 에번스(Everybody Digs Bill Evans)》를 녹음했다. 그의 트리오 경력이 처음으로 성공을 거둔 것은 1961년 뉴욕의 빌리지 뱅가드에서 가진 라이브 녹음판이었다. 또한 1962년에 《인터플레이(Interplay)》에서 작은 그룹을 이끌기도 했다.

1965-1968년은 마일즈 데이비스에게 엄청난 창조의 시간이었다. 1965년의 《이에스피(E.S.P.)》, 1967년의 《소서러(Sorcerer)》, 1968년의 《피에 드 킬리만자로(Filles de Kilimanjaro)》가 바로 증거품이다. 그의 아내들-댄서인 프랜시즈 테일러, 배우인 시실리 타이슨, 가수인 베티 메이브리-의 얼굴이 차례대로 앨범 표지에 실렸다.

지미 핸드릭스(위)와 슬라이 스톤(아래)의 도움으로 마일즈 데이비스는 새로운 소리들과 리듬 스타일을 개발했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1969년 8월에 녹음한 《비치즈 브루(Bitches Brew)》는 그가 몇 달 전 《인 어 사일런트 웨이》에서 시도한 방향전환을 확인해 주는 음반이다. 이후 그는 몇 시간 동안이고 계속해서 모음곡들을 연주했다. 물론 녹음하기 위해서는 편집을 해야만 했다. 그는 록 스타들(그들의 제한된 테크닉을 경멸하는 것이 누구의 눈에도 확실했다.)과 함께 무대에 선 대규모 페스티벌에서 청중을 압도했다. 이 음악에 감명을 받는 백인 재즈 음악가들의 수가 늘어갔다. 1960년대 중반 이후 개리 버틴과 그의 더블 베이스 주자 스티브 스왈로는 컨트리 뮤직의 뿌리로 돌아가 밥 딜런의 초기 포크 록을 재해석했다. 기타 주자 래리 코리엘은 강력한 증폭기를 씀으로써 얻을 수 있는 새처레이션(saturation)과 피드백의 효과를 탐험했다.

재즈 록의 등장과 아울러, 재즈 페스티벌은 그 모습이 많이 변했다. 전자악기들이 무대 위에 등장했고, 그럼 섹션의 장관을 자랑하기 위해 테크닉에서뿐만 아니라 무대 위의 자리도 더욱 확대하였다.

웨더 리포트는 네번째 앨범 《미스티리어스 트레블러(Mysterious Traveler)》로 일반 대중의 인기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컬럼비아 레코드사의 전폭적인 후원도 얻었다. 그룹의 상업적 야망은 1976년의 《블랙 마켓(Black Market)》으로 이어졌다. 그 앨범은 아프리카와 브라질 음악의 영향이 최고조에 달한 작품이다. 다음 앨범은 저 유명한 <버드랜드(Birdland)>가 들어있는 《헤비 웨더(Heavy Weather)》이다. 1980년에 나온 《나이트 패시지(Night Passage)》는 파스토리어스와 어스카인의 연주기량이 절정에 오른 작품이다. 새 리듬 섹션(빅터 베일리, 오마르 하킴)이 가세한 그들의 마지막 앨범 《스포팅 라이프(Sportin' Life)》는 1980년대 수작이었다.


제5장

조각조각 찢어진 재즈


이제 20세기가 시작되면서 탄생한 재즈의 현재 위치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가장 최근에 나타난 흐름들은 과연 재즈의 숨이 끊어져 가고 있다는 신호일까 아니면 전통이 확대된다는 신호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재즈가 전세계적으로 주류에서 벗어난 다양한 음악 유형들에 영감을 주어 왔다는 사실, 즉 그것들이 이제 마감하려 하고 있는 세기를 위해 팡파르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앨범 《더 매저스티 오브 더 블루스(The Majesty of the Blues)》

'멀티컬러 필링'인 빌 프리셀, 제리 곤잘레스, 식선.

마일즈 데이비스와 디지 길레스피.

마일즈 데이비스.

셀로니어스 몽크.

아트 블래키.

가토 바르비에리.

 




posted by 황영찬

2015-038 금산사


글 / 김남윤, 이응묵, 소재구●사진 / 손재식

2007, 대원사



시흥시매화도서관

SH013814


082

빛12ㄷ 237


빛깔있는 책들 237


김남윤(연혁)-------------------------------------------------------------------

전남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서울대 및 동덕여대, 경기대 등에 출강하고 있다. 연구 논문으로는 「신라 법상종 연구」, 「진표의 전기자료 검토」, 「신라 미륵신앙의 전개와 성격」, 「고려 중기 불교와 법상종」 등이 있다.


이응묵(건축)-------------------------------------------------------------------

서울에서 태어나 한양대 건축공학과와 단국대 대학원을 졸업하셨다. 오랫동안 한국 전통 건축 분야의 설계와 조사 연구 활동을 해 오셨다. '새한 건축 문화연구소'를 경영하며 문화재관리국 등의 의뢰로 '금산사', '마곡사', '장곡사', '흥천사', '화엄사' 등의 「실측조사보고서」를 집필 간행하였다. 한국건축가협회 건축역사분과 상임위원과 대한건축사협회 전통건축연구원으로 계시다 1999년 타계하셨다.


소재구(유물)-------------------------------------------------------------------

국민대학교 국사학과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에 근무하고 있으며 「원각사지 10층석탑의 연구」, 「동문선의 불탑자료」, 「우리나라의 불탑」, 「고달원지 승탑편년의 재고」 등 여러 편의 논문이 있다.


손재식(사진)-------------------------------------------------------------------

1956년생으로 신구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불교 문화와 자연을 소재로 하는 작업을 주로 해오고 있다. 그동안 십여 권의 빛깔있는 책들에 이와 관련된 사진을 실었고 웅진출판사의 『한국의 자연탐험』 작업에 참여하였다. 현재 『사람과 산』의 객원 편집위원으로 있다.

|차례|


미륵 신앙의 본산, 금산사

금산사의 역사

금산사의 건축

금산사의 유적과 유물

금산사 가는 길

참고 문헌



금산사 전경

진표율사 부도  금산사 부도전 안에 안치되어 있는 이 승탑(부도)은 선암사 소요대사탑을 본떠 제작하였다.

석성문  '견훤성문'이라고도 하는 이 석성문은 사찰에 들어가는 관문으로 예부터 금산사를 수호하던 성문이다.

원명대사비  금산사에서 출가하고 수학한 중창주 원명대사 혜원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원명대사비는 부도전 안에 안치되어 있다.

뇌묵 처영의 진영  어려서 금산사에서 출가하였던 처영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금산사를 중심으로 승병을 모아 각종 전투에 참가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해남 대둔사의 표충사에 봉안되어 있다.

미륵전  절의 중심 금당으로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1층과 2층은 정면 5칸, 측면 4칸이며 3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줄어들었다.

미륵전의 서쪽 벽과 벽화  공포와 공포의 사이 벽에는 불교 설화를 그린 벽화들로 채워져 있다.

미륵전 내부  건물 외관은 3층이지만 전체가 터져 있는 내부에는 약 1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불상을 안치하기에 알맞다.

대적광전  화재로 불타버린 후 1994년에 복원된 대적광전은 정면이 7칸이나 되는 긴 건물로 처마 끝이 하늘로 향하고 있으며 넓은 대지에 착 가라앉은 듯한 차분함이 있다.

대적광전 내부  불당 면적이 90여 평이나 되는 건물 내부 또한 트여 있어 넓어 보이는데, 기다란 불단 위에는 5부처 6보살의 불상들이 모셔져 있다.

대장전과 지붕의 상륜 부재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인 대장전 지붕의 용마루에는 목탑 부재로 보이는 장식(복발, 원추형 쇠뚜껑, 보주 등)이 있다.

대장전 불상  목조의 거신광배 앞에는 석가모니불이 봉안되었다.

대장전 문살과 수미단  높이 1.07미터, 길이 4미터, 측면 1.8미터인 수미단에는 정교한 장식문이 투조되어 있다.

옛 금강문  사찰 경내의 진입로에 위치한 단칸으로 된 옛 금강문은 출입하지는 않고 금강신의 화상을 안치한 가람 수호 신문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금강문  금강문은 1994년에 절의 입구를 변경하면서 옛 금강문 왼쪽 앞에다 새롭게 세운 것이다.

명부전  정면과 측면이 각각 3칸씩이며 기둥마다 공포를 올린 주심포 양식의 건물이다.

명부전 내부  명부시왕상과 지장보살 후불탱화가 봉안된 명부전은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나한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80년대 후반에 소실된 뒤 1995년에 대적광전 뒤쪽으로 새로 이전하여 건립하였다.

나한전 내부  석가삼존불과 십육나한(위), 그리고 수십 기의 수행 아라한상(아래)을 한 곳에 봉안하고 있다.

적멸보궁  옛 나한전 자리에 세워진 계단 예배각으로, 이곳에서는 유리벽을 통해 방등계단에 있는 사리탑을 경배하며 예불을 드린다.

삼성각  적멸보궁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작은 건물이다.

금산사 방등계단 북서쪽에서 본 전경  방등계단과 5층석탑이 나란히 배치되었고, 남동쪽에 미륵전이 있으며, 동쪽의 팔작지붕 건물이 나한전이다.

미륵장륙삼존불  3층까지 모두 트인 내부를 꽉 채우듯 서 있는 거대한 이 삼존불상은 가운데의 본존미륵불상(11.8미터)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보살 입상(8.8미터)이 봉안되어 있다.

협시 보살상  신체에 비해 얼굴이 약간 큰 보살상은 머리 위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다.

방등계단 위에 있는 석종  인도 불탑의 형식에 뿌리를 두고 있는 계단 형식의 이 석종형 사리탑은 고려시대에 들어 완성된 형식으로 벽면의 돋을 새김 장식이나 탑신에 새겨진 용머리 장식 등은 금산사 석종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석종  받침 돌판의 네 귀에는 사자 머리를 새겨 놓았으며 돌판의 한가운데에는 연꽃잎을 둥그렇게 새겨 두르고 그 안쪽 테두리에 맞추어 탑신을 받도록 하고 있다.

5층석탑  2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려 놓은 이 석탑은 상륜부에서 보이는 이국적 스타일이나 석종 사리탑 앞에 탑자리를 마련한 것 등에서 고려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석련대  육중한 돌덩어리를 깎아 우아한 연꽃의 자태를 간직한 불상 대좌로 만든 보물 제23호인 이 석련대의 대좌 위에는 불상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6각다층석탑  점판암을 주된 재료로 사용한 이 탑은 기단부 위에 얹혀지는 탑신부를 부처님의 신체로 여겨 기단부를 연꽃 대좌 형식으로 만들었다.

노주  석조 대좌의 생김새, 두줄새김 기법의 사용, 그리고 인상, 연꽃의 표현 방식 등에서 고려 전기의 조형 양식을 보이고 있는 이 석조물은 원래 다른 석조물의 장식 부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등  이 석조물은 기둥돌이 짧고, 연꽃무늬가 질박하며, 지붕 처마선이 곡선적이고, 상륜부가 과장된 점 등에서 고려 전기에 유행하던 석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당간지주  탄탄하고 단정한 자세에 간결하고 갈끔한 장식과 야무진 돌다듬새가 돋보이는 이 당간지주는 금산사에 남아 있는 유적과 유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혜덕왕사진응탑비  바닥돌과 돌거북을 한 덩이의 돌에 새긴 조형미가 돋보이는 이 비의 빗돌은 크게 손상을 입어 글 전체를 읽기가 어렵다.

심원암 북강 3층석탑  이 석탑의 지붕은 금산사 5층석탑과 닮은꼴인 데다 층단받침이 한 단 새겨져 있어 5층석탑보다 먼저 세워졌으며,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부도전  금산사에서 심원암 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 부도전 안에는 혜덕왕사진응탑비와 고려 후기의 중창주인 원명대사비 등 2기의 석비와 12기의 승탑(부도)이 안치되어 있다.




posted by 황영찬

2015-037 나에게 힘이되는 말의 선물


후지와라 히로시 지음 / 강성욱 옮김

2014, 함께BOOKS

 



대야도서관

SB101318



199.1

후78ㄴ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248가지 말

 

THE WORLD WISDOM

성공했는데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

 

그 점에 흥미를 갖고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 것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습니다.

이 책은 지금까지의 저의 인생 경험에 더하여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보다 행복하고 보람 있게 살기 위하여

세상의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한지

짧은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이 책속에는 그런 248가지의 말이 담겨 있습니다.

 

후지와라 히로시

현대미술 아티스트. 가나가와 현 요코하마 시 출생. 유년기부터 미술, 특히 일본화와 친숙하게 지내면서 다도를 배웠다. 중학교 시절, 유럽의 현대사상가의 말을 접하고 말이 지닌 소중함에 깊은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후 저명인에 국한하지 않고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들은 말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미술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관심은 더욱 깊어졌다. 대학 졸업 후에는 현대미술 아티스트로 부유층을 주 고객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로 부터 배운 것을 바탕으로 본서를 저술하였다.

 

강성욱

일본의 니혼 대학교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잡지사 기자를 거쳐 출판사에서 근무하였으며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를 비롯하여 '7일간의 습관', '언어의 마술', '체인지 마이 라이프', '현명한 선택', '게으름의 기술', '화를 다스리면 인생이 변한다', '신데렐라 프로젝트',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위한 인테리어', 마음을 맛있게 채워즈는 일본 사찰 요리', '100가지 기본' 등이 있으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과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비밀의 숲', '재즈의 초상' 등의 초역과 감수를 맡았다.

 

contents

 

제1장

나를 다스리는 말

 

1. 중요한 것은 언제나 심플하다

2. 개성이란 무엇인가

3. 지금보다 좋은 지금을 만들기 위해

4. 과거와 현재와 미래

5.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

6. 좌절로부터 얻는 것

7. 외면의 아름다움이 퇴색하기 전에

8. 자신의 행동은 반드시 무의식이 보고 있다

9. 사람은 본능적으로 퇴화를 싫어한다

10. 재능보다 노력하는 자세를 칭찬하라

11. 질이 좋은 것은 사람에게 배움에 대해 가르친다

12. 아름답지 못한 것의 이유

13.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섬세하다

14.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찾는 것이 성장을 낳는다

15. 마음을 진보시키는 것과 퇴화시키는 것

16. 의견을 말해주는 사람을 소중히 한다

17. 사람은 취미에서도 자기 자신을 느낀다

18.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는 일의 어려움

19. 충실감은 곤란의 앞에 잇다

20. 성격의 좋고 나쁨이란

21. 커뮤니케이션과 성격의 관계

22. 의식과 성장 속도

23. 자기현시욕은 만족을 주지 않는다

24. 성장해도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자신이다

25.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교만이다

26. 도움을 청할 힘을 갖춰라

27. 놀라움이 없으면 매력도 없다

28. 실력과 결과는 반드시 균형을 이룬다

29. 실력이란 결과를 낳는 힘이다

30. 타인을 필요로 하는 것의 중요함

31. 운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방법

32. 인사(人事)와 천명(天命)의 관계

33. 거울은 누구를 위해 보는가

34. 재능과 노력에 대해서

35. 성장으로 이어지는 실패, 해서는 안 되는 실패

36. 매력이란 무엇인가

37. 인상은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합계치로 정해진다

38. 새로운 지식을 얻는 일이란

39. 품성을 결정하는 것은 생활태도이다

40. 재능은 사악한 마음에 깃든다

41. 재능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42. 재능이 있는 사람일수록 자존심이 세다

43. 매력과 노력

44. 유명하게 사는 일의 어려움

45. 세상에는 두 종류의 패자가 있다

46.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47. 상대(相對)된 것의 매력

48. 선행(善行)의 색깔

49. 타인의 휸내는 자신의 매력을 떨어뜨린다

 

제2장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말

 

50. 긴 안목으로 인생을 바라보라

51. 산다는 것

52. 괴로울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53. 자신의 손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자신에게 달렸다

54. 유머는 배려에서 생긴다

55. 평소의 반복이 지닌 강한 힘

56. 위급상황의 원인은 평소 나태함의 축적이다

57. 마음의 즐거움과 행복

58. 부과된 세 개의 의무

59. 자유는 마음속에 존재한다

60.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충실감

61. 인상은 바꿀 수 있다

62. 감사의 근본은 자기희생이다

63. 사람을 빈곤한 환경으로 이끄는 것

64. 주위의 모든 것은 정신에 영향을 준다

65. 원한은 절대로 풀 수 없다

66. 선량함을 빛나게 하는 것

67. 사회는 사람이 만든 인공물에 지나지 않는다

68. 질과 양, 무엇이 중요한가

69. 사랑과 경의는 얻기 어렵고, 혐오와 증오는 얻기 쉽다

70. 그림자는 빛의 반대 방향에 있다

71. 행복은 친한 사이가 아니면 알 수 없다

72. 외견은 내면과 똑같이 중요하다

73. 기회는 설명서가 없는 선물이다

74. 친구와 연인에게 불만이 있을 때

75. 평범한 생활이 지닌 비용대비 효과

76. 타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원하지 않기 위해

77. 인생의 의미를 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78. 질이 나쁜 것을 좋아하는 일의 폐해

79. 인간의 행운은 역경으로 시험받는다

80. 온화한 표정과 목소리는 지성적인 생활의 증거

81. 놀이와 쾌락의 조절

82. 돈과 시간은 사치스럽게 사용한다

83. 문제의 발견을 해결로 이어가기 위해서

84. 많은 인맥이 제공하는 선택의 안정성

85. 사람과 물건의 가치는 사용 방법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86.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의 코스트 퍼포먼스

87. 단점을 미화하면 결과는 멀어진다

88. 보다 많은 힘과 재력을 가지면 보다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

89.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

90. 선택하는 쪽은 선택받는 쪽보다 우위에 있다

91. 바른 선택지를 준비하는 일의 중요성

92. 타인의 불행에서 자신의 행복이 생기지 않는다

93. 행운은 슬픈 느낌의 장소나 사람을 싫어한다

94. 싫어하지 않는 것의 공과(功課)

95. 정말 위험한 상황이란

96. 계획의 중요성

97. 행복을 유지하는 어려움

98. 매력 있는 사람이란

99. 부모의 행복만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

100. 참는 것이 싫다면

101. 자신이 만족하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

102. 무슨 일이건 곤란하지 않을 정도로 하라

103. 뛰어난 재능에 뒤따르는 사명과 권리

104. 아름다운 것의 힘

105. 추함이 불러오는 감정

106. 길의 정오(正誤)를 확인하는 방법

107. 어떤 길을 선택해도 만족할 수 없을 때

108. 풍요로운 마음을 얻기 위해 필요한 환경

109. 아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

110. 물건은 가격이 아니라 가치로 판단하라

 

제3장

인간관계를 좋게 하는 말

 

111. 자신감이 없고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사람에게

112. 자신의 행동이나 재능은 타인을 위해 존재한다

113. 뒤끝의 중요성

114.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115.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의 필수 요소

116.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말

117. 타인에 대한 무관심의 폐해

118. 궁합에서의 상호보완

119. 자신의 감정을 꾸미지 마라

120. 타인의 컨트롤에 대해 품는 감정

121. 사람은 본질적으로 타인이 힘을 과시하는 것을 싫어한다

122.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나쁜 것으로 인식한다

123. 사람은 명칭만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

124. 사람은 항상 선인과 악인을 찾고 있다

125. 남성다움, 여성다움

126. 성격이 나쁜 사람, 성격이 좋은 사람

127. 아부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128. 대외적인 관계성을 만드는 방법의 종류와 차이

129. 쓸데없는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

130. 상대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131. 들은 말은 나중에 자신의 입에서 나온다

132.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힘

133. 시의심(猜疑心)이 초래하는 결과

134. 개성은 일로 표현하라

135. 형태가 없는 것의 컨트롤

136. 상대의 의견을 듣는 것의 중요함

137. 서로 닮은 사람끼리 무리를 이룬다

138. 소문의 무서움

139. 만남에 대해서

140. 취미의 유사함이 갖는 친근감

141. 말이 지닌 힘의 강력함에 대해서

142. 운은 함께 있는 사람에 의해 좌우된다

143. 이해할 수 없는 상대의 행동에 대해서

144. 적을 만들기는 쉽고, 내 편을 만들기는 어렵다

145. 타인에게 헌신하는 사람과 타인에게 용서받는 사람

146. 대인관계에서의 초인트

147. 말투나 성격은 만나는 빈도가 높은 사람을 닮는다

148. 지성의 정도를 증명하는 방법

149. 비웃음에는 이점이 없다

150. 타인의 곤란함에 관심을 갖는다

151. 상대를 판단할 때의 방법

 

제4장

일에 도움이 되는 말

 

152. 일을 즐기는 마음을 소중히 하라

153. 곤란한 상황에서의 대응이 그 후를 좌우한다

154. 위대한 기술과 재능은 후세에 계승된다

155. 난이도가 높은 일에 뒤따르는 위험성

156.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은 기술만이 아니다

157. 동기는 일에 짙게 투영된다

158. 아름다움의 추구는 주위에 대한 봉사이다

159. 질이 높은 일의 정의

160. 사람은 재미있는 것을 만드는 사람을 칭찬한다

161. 완벽은 그것을 지향하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162. 일을 계속하는 것은 대사(代謝)이다

163. 인품으로 일을 보완할 수 없다

164. 자신의 방식과 세상이 요구하는 방식

165. 작품을 기억에 남기는 일의 중요함에 대해서

166. 열심히 했다는 만족감의 위험성

167. 무언가를 해준다는 생각의 폐해

168. 허세나 무리는 영속성이 없다

169. 선택지가 늘어나면 일의 질은 향상된다

170. 목적이 없으면 정답도 없다

171. 문제가 복잡해지지 않게 하라

172. 큰 문제는 분해해서 대처하라

173. 동경심으로 일을 선택하는 위험성

174. 사람이 본능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형태

175. 낭비가 없는 힘은 시각적으로 아름답다

176. 예술 감각과 비즈니스 감각

177. 예술과 비즈니스

178. 감동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생긴다

179.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일이란

180. 지켜야 할 것과 바꿔야 할 것

181. 재능이라는 봉투에 담는 것

182. 상대의 지식과 지성에 관계없이 전해지는 것

183.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것을 창조할 권리가 있다

184. 사람은 무지한 분야일수록 바로 판단한다

185. 평가는 사용하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다

186. 경험이 얕을수록 알기 쉬운 것을 선호한다

 

제5장

성공을 생각하는 말

 

187. 모든 일에는 일어난 이유가 있다

188. 성공은 출생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189. 진정한 천재란

190. 과정의 중요성

191. 충실한 수확을 위해

192. 목적 달성은 동기의 강도에 달려 있다

193. 초조함은 질투를 낳고 성장을 저해한다

194. 사람은 서툰 것을 싫어한다

195. 좋고 나쁨을 아는 일의 중요함

196. 운명의 힘

197. 선악의 종류

198. 선악과 인과

199.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속도의 무서움

200. 혼잡은 커다란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201. 매력적인 것에는 동등한 희생이 따른다

202. 사랑과 질투, 선망과 시기는 표리일체이다

203. 사는 장소가 주는 영향

204. 성공은 안심감이 아닌 공포감을 증가시킨다

205. 성공한 사람일수록 겸손해진다

206. 자신에게 있어서의 성공

207. 기운(機運)을 타기 위해서

208. 흥미가 없는 일을 계속하는 것의 폐해

209. 적합한 규모는 사람마다 다르다

210. 미심쩍은 일이 있다면

 

제6장

욕망에 관한 말

 

211. 욕망이 동기인 관계는 위험하다

212. 강한 힘을 갖는 것의 무서움

213. 독점욕과 질투심

214. 사람이 가장 추하게 느끼는 모습

215. 욕망의 도움닫기 기간에 대해서

216. 소유와 영원은 환상이다

217. 욕심을 버려야 할 때

218. 욕망은 가진 순간부터 겉으로 드러난다

219. 사람이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220. 나쁜 사람에게 매료되는 심리

 

제7장

사랑에 관한 말

 

221.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222. 타인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란

223. 사랑과 경의와 호의의 차이

224. 애착의 위대함

225.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란

226. 사랑과 경의

227. 가족의 소중함

228. 사랑은 사랑을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229. 사랑받는 일의 중요함

230. 상대에게 애정을 받고 싶다면

231. 마음의 중요함에 대해서

232. 사람을 브랜드로 판단하지 마라

233.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영향

234. 자기애의 예외

 

제8장

감정을 다스리는 말

 

235. 위기감과 공포감의 차이

236. 공포심은 사전에 실패를 피하기 위해 존재한다

237. 감정은 전파된다

238. 화는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낸 감정이다

239. 선망을 느낄 때

240. 자존심을 제어하지 못하는 두 가지 원인

241. 인간은 비합리적인 생물이다

242.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243. 인류가 쌀아온 지성적인 생활의 진보를 위하여

244. 생각하는 것과 고민하는 것의 차이

245. 현실을 보지 않으면 공포는 증식한다

246. 상상력이 지닌 위험성

247. 공포를 행동의 동기로 삼지 마라

248. 완고(頑固)의 원인

 

과거와 현재와 미래

 

과거에 어떤 노력을 해왔는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현재이며, 현재부터 어떤 노력을 하는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미래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현재를 바꾸면 미래를 바꿀 수 있다.

 

좌절로부터 얻는 것

 

좌절은 그 후의 인생을 냉정하게 생각할 좋은 기회이다.

 

외면의 아름다움이 퇴색하기 전에

 

외적인 아름다움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도금처럼 벗겨지고 떨어진다.

빛나는 도금이 벗겨지기 전에 그 안을 빛내지 않으면 그 빚은 언젠가 사라져 버린다.

 

마음을 진보시키는 것과 퇴화시키는 것

 

사람의 마음을 진보시키는 것은 감동과 신선함이며, 퇴화시키는 것은 싫증과 식상함이다.

항상 지금보다 위를 지향하고, 새로운 것을 찾는 일이 정신을 젊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비결이다.

 


 

다른 사람에겐 쉽게 찾아가는 기회가 당신에게만 오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이 순간도 당신의 때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매 순간 당신의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기대감을 품으세요.

당신의 때가 오고 있습니다.

 


 

놀라움이 없으면 매력도 없다

 

타인이 보기에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물건, 사람, 행위 등에서는 매력이 생기지 않는다.

매력은 항상 놀라움이나 신선함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실력이란 결과를 낳는 힘이다

 

실력이란 결실을 맺는 힘, 즉 결과를 낳는 힘이다.

장기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힘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힘이라도 실력에 포함되지만,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힘은 실력에 포함되지 않는다.

 

품성을 결정하는 것은 생활태도이다

 

사람의 품성의 유무를 결정하는 것은 생활수준이 아니라 생활태도이다.

 

유명하게 사는 일의 어려움

 

무명에서 유명해진 사람은 많지만, 그 수에 비해 그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은 적다.

무명에서 유명해지는 것보다 유명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패자가 있다

 

세상에는 패자로 살아가는 패자와 승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패자가 있다.

승자는 항상 후자의 패자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정말로 곤란할 때 누군가 도와주기를 바라고, 그때 반드시 자신을 도와주는 한 사람이 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강한 마음이나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재능은 자신이 어떤 상황에 부닥쳐도 반드시 자신을 도와준다.

 

상대(相對)된 것의 매력

 

새로움과 그리움, 온후와 냉철, 용기와 겁 등과 같이 상대된 성질을 동시에 지닌 것에 매력을 느낄 때가 있다.

 

자신의 손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자신에게 달렸다

 

자신의 손을 쥐면 주먹이 되고, 상대의 손을 쥐면 악수가 된다. 즉 자신의 힘은 상대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협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의 손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부과된 세 개의 의무

 

식욕과 성욕, 그리고 수면욕은 인간이 풍요롭고 건강한 생활을 보내기 위해 반드시 충족되어야만 하는 세 개의 의무이다.

 


 

가슴속에 품은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들을 놓치지 마세요.

사소한 즐거움들을 누리는 것 또한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사람을 빈곤한 환경으로 이끄는 것

 

빈곤은 태만과 무지, 그리고 어리석음으로 인해 생겨난다.

 

원한은 절대로 풀 수 없다

 

원한을 완전히 풀기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어떤 형태로 복수해도 잃어버린 것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빛의 반대 방향에 있다

 

빛에서 얼굴을 돌려서 뒤만 바라보면 그림자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림자만 보는 것이 싫다면 눈이 부셔도 빛이 빛나는 방향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따금 우리의 삶에서는 게으른 사람들이 더 즐거워 보입니다.

그래서 열정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끔 이러한 상황이 당황스럽고 억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게으르면서 행복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던 사람은 결코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성실함을 유지하세요.

때가 차면 우리가 지난날 땀으로 쌓은 노력과 열정들이 그 진정한 가치를 드러낼 것입니다.

 


 

많은 인맥이 제공하는 선택의 안정성

 

자신이 직접 새로운 만남을 만드는 것은 시간과 수고가 들지만,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는 선택지를 늘려준다는 의미에서는 대단히 유효한 일이다.

 

계획의 중요성

 

인생은 계획이 있어도 곤란한 것이다. 그러니 계획이 없으면 더욱 곤란해지는 것은 명백하다.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어도 인생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명확하고 유연한 계획이 중요하다.

 

행복을 유지하는 어려움

 

상당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행복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은 행복을 유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서만 태어나는 것이다.

 

무슨 일이건 곤란하지 않을 정도로 하라

 

무언가가 너무 많아서 곤란한 것이나, 너무 없어서 곤란한 것이나 곤란함에는 변함이 없다.

무슨 일이건 곤란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추함이 불러오는 감정

 

사람은 본능적으로 추한 것을 기피하고 철저하게 배척하려고 한다.

추함은 그것을 본 사람에게 이유 없이 불안을 줄 만큼 대단히 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길의 정오(正誤)를 확인하는 방법

 

길을 잃었다면 주위를 둘러보라.

만일 주위에 존경할 수 없는 유형의 사람밖에 없다면 그 길은 당신에게 잘못된 길이다.

 

자신의 감정을 꾸미지 마라

 

자신의 본연의 감정이나 성격을 가장하고 계속 억누르면 타인과 잘 지낼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의 본래 감정과 성격을 억누르지 않고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쓸데없는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

 

맞지 않는 상대와의 관계일수록 화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

그런 상대는 냉정하게 대처하면서 거리를 유지하면 쓸데없는 다툼이나 싸움을 피할 수 있다.

 

들을 말은 나중에 자신이 입에서 나온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타인이 자신에게 한 말이다.

칭찬을 받는 사람은 상대를 칭찬하고, 경멸받는 사람은 상대를 경멸한다.

 

서로 닮은 사람끼리 무리를 이룬다

 

성격, 가정, 일, 센스, 수입 등이 닮은 사람끼리 커뮤니티나 집단을 형성한다.

 

지성의 정도를 증명하는 방법

 

타인에게 자신의 지성의 정도를 증명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무엇이 진정한 지성인가를 자기 나름대로 정의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자세를 표현하는 것이다.

 

타인의 곤란함에 관심을 갖는다

 

타인이 겪고 있는 곤란함을 경청하고 해결방법을 세우는 일은 타인뿐 아니라 앞으로 똑같은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또 일어났을 때 원만하게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곤란한 상황에서의 대응이 그 후를 좌우한다

 

아무리 곤란한 상황이라고 해도 굴하지 않는 열정을 잃지 않고 냉정한 태도로 대처하며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온정을 줄 수 있는 강인함이 남아 있다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그것들은 언젠가 반드시 전부 돌아온다.

 

위대한 기술과 재능은 후세에 계승된다

 

위대한 공적이나 재능, 기술 등은 후세까지 계승된다.

육체는 죽어 사라지면 그만이지만, 위업을 남긴 사람의 예지는 형태를 달리해서 후세까지 살아 숨 쉰다.

 

질이 높은 일의 정의

 

질의 높음이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힘의 강력함이며, 그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리 기술이나 돈이 있어도 질이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없다.

 

사람은 재미있는 것을 만드는 사람을 칭찬한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것이 훨씬 적다.

사람은 항상 따분함과 싸우고 있다.

그래서 재미있는 것을 만드는 사람이나 재미있는 무언가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보내는 것이다.

 


 

당신이 스스로 허락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당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근거 없는 비난과 부정적인 말에 휘둘리지 마세요.

어떤 자아상을 선택할지는 당신에게 달려있습니다.

당신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인품으로 일을 보완할 수 없다

 

일은 잘하지만 성격이 나빠서 평소에 불필요한 적을 만든다면 마이너스밖에 되지 않지만, 반대로 일을 못하는 것을 좋은 인품으로 보완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선택지가 늘어나면 일의 질은 향상된다

 

모든 일은 항상 선택지를 늘리도록 행동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선택지를 많이 보유하기 위해 필요한 힘을 갖추고, 늘어난 선택지 속에서 선택할 수 있다면 일의 질은 향상되고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사람이 본능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형태

 

직사각형, 정사각형, 타원형, 원형은 사람이 본능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형태이다.

 

예술과 비즈니스

 

예술을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삼으려 한다면 비즈니스라는 행위 자체에 경의를 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재능이라는 봉투에 담는 것

 

재능이란 노력과 경험을 담는 봉투와 같은 것이다. 봉투는 작아도 그 안에 넣는 노력과 경험으로 인해 점점 커진다.

봉투는 크지만 그 안을 채우는 노력과 경험이 적으면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없다.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것을 창조할 권리가 있다

 

인간은 도저히 자연의 아름다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대신 아름다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위대한 권리를 가지고 잇다.

 

모든 일에는 일어난 이유가 있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에는 그것이 일어난 이유가 잇으며, 모든 결과에는 반드시 결과와 관계되는 원인이 있다.

 

과정의 중요성

 

결과가 중요한 것은 명백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서 결과에 이르렀는가 하는 것도 결과와 똑같이 중요하다.

 

목적 달성은 동기의 강도에 달려 있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으면 목표의 높이에 호응하는 강한 동기를 지녀야 한다.

동기의 강도는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인내의 강도를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좋고 나쁨을 아는 일의 중요함

 

무언가를 구별하려고 할 때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모두 알아야 한다.

좋은 것은 나쁜 것을 알아야 비로소 좋은 점을 알 수 있고, 나쁜 것은 좋은 것을 알아야 비로소 나쁜 점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운명의 힘

 

노력없이는 운명을 개척할 수 없지만, 사람은 운명 앞에서 무력하다.

 

선악의 종류

 

선과 악에는 시대에 따라 판단이 바뀌는 것, 그 사람이 쌓은 공적에 따라 판단이 바뀌는 것, 그리고 어느 시대에도 판단이 바뀌지 않는 보편적인 것 세 가지가 잇다.

 

사랑과 질투, 선망과 시기는 표리일체이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짙듯이 사랑이 크면 질투도 강하고, 선망이 클수록 그만큼 시기심도 강하다.

 

사는 장소가 주는 영향

 

만일 성공을 원한다면 성공한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살아야 한다.

사는 장소가 지닌 분위기가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말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있어서의 성공

 

성공과 자유는 성질이 대단히 닮앗다. 사람마다 얼굴과 성격이 다른 것처럼 자신에게 있어서 성공이 무엇인지, 어떻게 되었을 때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미심쩍은 일이 있다면

 

진위에 관해 고민하고 있다면 일단 해보거나 아니면 실제로 보고 확인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자 후회하지 않을 방법이다.

 

독점욕과 질투심

 

감정 중에서 특히 주의해서 컨트롤해야 하는 것이 독점욕과 질투심이다.

이런 감정은 상대에게 커다란 불쾌감이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준다.

 

사람이 가장 추하게 느끼는 모습

 

사람이 가장 추하게 느끼는 모습은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먼저 행복을 결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해지고 싶은지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세요.

당신은 얼마나 행복해지고 싶습니까?

 


 

욕망은 가진 순간부터 겉으로 드러난다

 

욕망은 지닌 순간부터 영향을 발휘하기 때문에 말투나 말하는 내용, 행동과 같이 겉으로 여실히 드러난다.

욕망은 자신은 깨닫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숨기는 일은 어렵다.

 

사람이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갈망하는 것은 그가 유년기나 사춘기에 얻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은 사춘기를 지날 무렵까지 무언가 결핍되어 있다고 느끼면 어른이 되어서도 그것을 계속 추구한다.

 

나쁜 사람에게 매료되는 심리

 

나쁜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악(惡)을 부정하고 싶어 하며, 더 큰 악으로 그것을 감춤으로써 자신의 악이 눈에 띄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랑과 경의

 

타인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면 사랑과 경의를 함께 가질 수 있는 상대를 선택해야 한다.

사랑이 없는 경의와 경의가 없는 사랑은 어느 하나가 결여 되면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족의 소중함

 

세상에서 가장 행복을 주는 존재는 가족이다.

가족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의 길이, 사랑의 깊이가 당신에게 충실한 시간을 가져다준다.

 

마음의 중요함에 대해서

 

생활력이 있으면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과 선함이 없어도 가족을 부양할 수 있지만, 마음이 없으면 인생은 무의미해진다.

 

자기애의 예외

 

대부분의 경우 자기애는 혐오를 받지만, 타인을 빛내는 매력과 조합을 이루면 오히려 그 매력을 증가시키는 힘이 있다.

 

화는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낸 감정이다

 

사람이 화를 내는 이유는 대체로 정해져 있다. 가령 이런 상황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화를 낸다', '이럴 때 화를 내는 것은 옳은 일이다' 등과 같이 자신이 설정한 화의 정당성을 계기로 삼아 화를 느끼게 된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은 외로움이 있었기에 기쁜 것입니다.

휴식의 평안함은 치열한 삶이 있었기에 행복한 것입니다.

성공의 단맛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냈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즐거움은 그와 반대되는 고통이 있기에 성립할 수 있습니다.

고통은 당신을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은 당신을 즐겁고 행복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선망을 느낄 때

 

사람은 자신이 하려고 생각하면 할 수 있지만, 굳이 하지 않는 일을 타인이 할 때에는 선망을 느끼지 않는다.

선망은 자신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을 타인이 하는 것을 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언제나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인생을 즐겁게 만들거나 괴롭히는 것도, 자신을 속박하거나 자유롭게 하는 것도 결국 자기 자신이다.

 

공포를 행동의 동기로 삼지 마라

 

행동의 동기가 공포에서 연유하면, 행동의 실행 여부에 상관없이 공포도 사라지지 않을 뿐 아니라 행동을 하는 동안 공포와 권태감 사이에서 계속 갈등을 겪게 된다.

 

완고(頑固)의 원인

 

약한 자신을 숨기려고 하는 초조함이 긴장을 낳고, 그것이 완고의 원인이 된다.

 

 

 

 

 

 

posted by 황영찬

2015-036 태양계 연대기

 

파토 원종우 지음

2015, 유리창


 

대야도서관

SB10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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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역사, 우주적 상상력이 결합한

다큐멘터테인먼트

 

지구와 그 주변의 잊혀진 역사를 찾아서

 

B.C. 1만 500년, 지구와 화성, 행성 Z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고고학 유물, 역사 문헌, 고대 문학작품, 성서 등과 현대 천문학 연구결과를 집대성하여

지구와 태양계 행성의 고대사를 재구성한 인문과 자연의 우주적 판타지!

 

이것은 SF 한류의 창세기,

이 책의 영어번역을 금지시켜라!

 

한국의 드라마는 SF 속 상상력에서 많은 이야기를 빌려왔다. 이제 그 빛을 갚을 기회가 왔다. 원종우의 《태양계 연대기》. 이 하나로 한국의 SF는 그간 해외 작가들에게 진 빚을 갚는다. 한국이 만든 상상력의 산물 중 가장 거대하고 위대한 구라를 만나보시라. 이것은 SF 한류의 창세기다.

■ 김민식(MBC 드라마 PD, <뉴 논스톱> <내조의 여왕> 연출)

 

이 정도의 설득력이라면, 외계인은 존재해줘야만 하는 거다.

■ 김어준(딴지일보 총수)

 

이 흥미진진한 책에 실린 내용을 믿을지 말지는 전적으로 독자의 자유이다. 그러나 그 상상력을 즐기지 못하는 자는 고정관념의 노예임이 분명하다.

■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

 

연재 때부터 밤을 세워 읽은 우주적 상상력. 스필버그에게 빼앗기지 말아야 할 한국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영어 번역을 금지시켜야 한다.

■ 신철(영화제작자, 신씨네 대표)

 

과학은 증거에 기반하지만 새로운 과학은 상상력에서 나온다. 과학적 상상력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보라!

■ 이강환(천문학 박사, 과천과학관 연구사)

 

파토 원종우는 줄타기의 달인이고, 그가 발명한 구라논픽션은 사람들의 마음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줄타기다. 그가 줄을 타면 이야기는 사실과 구라 사이를 오가면서 출렁출렁한다. 그 출렁거림이 커지면 커질수록 파토는 한걸음 물러선다. 이 책은 거리두기의 미학을 아는 구라엔터테이너 원종우가 흔들어대는 거대한 줄타기 한마당이다.

■ 이명현(천문학 박사, SETI외계지적생명체탐사기구 코리아 조직위원회 사무국장)

 

나는 태양계 안에 외계문명이 존재한다든지 외계생명체가 지구에 왔다든지 하는 이야기에는 코웃음조차 아까워하는 과학자다. 하지만 파토 원종우의 《태양계 연대기》를 읽고 있노라면 그 세계에 푹 빠져들고 만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 이정모(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일단 이 책을 집어 든 사람들은 조심해야 한다. 엄청난 속도로 빠져들게 되는 이야기에 휩쓸리다 보면 머릿속에 빅뱅이 일어나고 결국엔 '멘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로 오랜만에 경험하는 맨탈 붕괴의 즐거움!

■ 장준환(영화감독, 《지구를 지켜라》 《화이》 연출)


원종우

필명 파토.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다가 20대 중반에 인디레이블 운동을 주창, 스스로 록 뮤지션으로 데뷔하고 음악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이후 영국에서 다시 음악을 전공했다.

1999년 딴지일보에 합류, 15년 동안 음악, 문화, 역사, 과학 등을 주제로 수백 편의 글을 썼으며 2008년 SBS 창사 특집 환경 다큐멘터리 <코난의 시대> 작가로 휴스턴 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다.

2012년에는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 : 유럽편》을 출간해 역사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최근에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전념해 팟캐스트 방송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 있네'로 1년 만에 2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과학자, 작가, 예술가들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과학 전시와 강연, 공연도 만들고 있다.

주변에서 '르네상스적 관심을 가진 지식인'으로 평가한다.


이 광대한 우주 속에

만약 우리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일 것이다.

- 칼 세이건


차례


추천사 이것은 SF 한류의 창세기

머리말 초고대 문명과 은비주의

개정증보판을 내며 과학적 사실과 엔터테인먼트의 결합


Chapter 1

외계인들은 지구 가까이에 있다


외계 생명체는 분명히 존재한다

UFO 현상에 대한 기본 전제

과학의 시각으로 접근해야

항성간 여행의 구체적 문제점들

과학 박스 - 세계의 외계행성 탐색 망원경


외전 1 : 외계인의 진실은 밝혀질 것인가


Chapter 2

화성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화성에도 생명과 문명이 있었다

무인 탐사선들의 활약

과학 박스 - 화성 탐사선과 탐사 로봇


Chapter 3

한때 풍요로 가득했을 화성, 누가 살해했나?


가로로 길게 그어진 거대한 흉터

경천동지의 대참사

화성의 생명체들은 살해된 것일까

과학 박스 - 화성의 과학적 팩트


Chapter 4

사라진 또 하나의 행성


티티우스 - 보데의 법칙

행성이 파괴되면서 벌어진 일

소행성 에로스의 비밀

과학 박스 - 소행성의 이해


Chapter 5

화성과 행성 Z 사이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이아페투스의 비밀

행성 간 문명 교류가 있었을까

과학 박스 - 외행성 탐사선 열전


Chapter 6

달의 정체를 밝혀라


달의 미스터리

달은 고대 외계인이 만든 강력한 무기였을까

지구와 행성 Z는 동맹관계였을까

고장 난 데쓰스타 이아페투스

과학 박스 - 아폴로 계획과 달 탐사


Chapter 7

BC. 1만 500년,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지구상의 모든 문명권에 대홍수의 기억이

신화와 전설로만 남은 초고대의 고등 문명

초고대의 우주전쟁

화성의 우주기지 이아페투스, 행성 Z의 우주기지 달

인류 문명은 5000년 전에 불쑥 나타난 것이 아니다

과학 박스 - 지구에서 벌어진 대재앙과 멸종


외전 2 : 초고대문명과 외계인의 증거들


Chapter 8

피라미드와 외계 생명체


인류 최대의 불가사의, 기자의 대피라미드

피라미드에 재기되는 의문들

현대과학과는 다른 초고대의 과학기술

대재앙 이후에도 회계인들은 지구를 방문했다

암벽화에 남아 있는 외계 생명체 방문의 증거

과학 박스 - 오리온자리


Chapter 9

모세의 정체를 찾아서


모세는 누구인가

모세는 왜 굳이 출애굽을 결행한 걸까?

모세와 외계인의 밀월과 결별

모세는 바보가 아니었다

초고대의 사상과 기술로 만들어진 유대교

과학 박스 - 원자력 이야기


Chapter 10

누가 화성적 세계관에 맞설 것인가


인류 고대사에 화성인이 나타났다

행성 Z와 예수

화성인이 지구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이유

석공 조합, 프리메이슨의 역사

프리메이슨이 근대를 개발했다

과학 박스 - 암석과 콘크리트를 사용한 건축의 차이


Chapter 11

화성인과 행성 Z인, 그리고 지금 우리


그들은 외계인이 아니었다

태양계 제국의 영광과 상처

대재앙 후의 태양계, 그 현재의 모습

과학 박스 - 네안데르탈인


외전 3 : 단편 《기나긴 노을 : Z의 이야기》


에필로그 우주적 신화 엔터테인먼트


<수태 고지>, 1486년, 카를로 크리벨리 작, 런던 국립미술관 소장. 공중의 물체에서 성모의 머리로 금색 광선이 발사되고 있다.

<십자가 처형>, 1350년, 코소보의 비오스키 데카니 교회 소장. 좌우측 상단에 특이한 비행체들이 보인다.


위 그림의 비행체들을 확대한 모습.

<예수의 세례>, 1710년, 아트 데 겔더 작, 영국 케임브리지 피츠 윌리엄 박물관 소장. 전형적인 원반형 UFO가 광선을 발사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이탈리아 몬탈치노의 산 로렌초 성당의 그림, 1600년. 인공위성 혹은 전파 송신기를 닮은 저런 기계장치는 17세기 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약 8000년 전의 아프리카 암각화. 우주복을 연상시키는 디자인도 흥미롭지만, 당시에는 그림에서 보는 목주름이 만들어질 수 있는 천의 세밀한 직조기술이 없었다.

케플러 우주 망원경

외계행성 탐색 시스템 KMTNet

거대 마젤란 망원경 GMT

2009년 12월 9일 새벽, 북구의 대자연에 둘러싸인 노르웨이 북단의 한 군사기지에서 놀라운 광경이 목격되었다.

 

1976년 바이킹이 찍은 이 사진은 인공적으로 만든 얼굴상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마스 글로벌 서베이어가 촬영한 인면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얼굴상과는 거리가 있다.

화성인의 기계 장치.

화성의 석상.

화성의 튜브.

미국 잡지 《놀라운 이야기들》.

화성의 아라비아 테라 지역.

이란 사사니안 플레이스의 매몰 유적.

화성의 비석.

포보스의 제단.

화성 표면의 금속성 잔해.

화성 표면의 강이 흘렀던 흔적.

화성 탐사 로봇의 크기 비교. 가운데 작은 것이 소저너, 왼쪽이 스피릿 오퍼튜니티, 오른쪽이 큐리오시티. 소저너와 스피릿 오퍼튜니티가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데 반해 덩치가 큰 큐리오시티는 원자력 전지를 탑재하고 있다.

화성의 모습.

매리너스 협곡.

그랜드캐니언의 위성 사진.

올림포스 산.

화성의 거대 화산들.

화성의 고도 분석 사진.

에로스 표면의 구조물을 3D로 형상화한 추정도.

화성의 위성 데이모스. 긴 쪽의 지름이 7.8킬로미터에 불과한 바위 덩어리다.


태양계의 행성들.

소행성대. 화성과 목성 사이의 너른 영역에 위치하고 있다.

소행성대에 존재하는 유일한 왜소행성 세레스. 지름 974킬로미터로 외부 구조는 대부분 물이 언 얼음이다.

오르트 구름을 포함한 태양계. 실제 오르트 구름의 영역은 이곳에 표현된 것보다 훨씬 크다.

아이페투스 근접 촬영 사진.

<스타워즈> 시리즈의 데쓰스타.

파이어니어호에 부착된 금속판. 인간 남녀의 모습과 지구의 위치, 전파망원경 등이 그려져 있다.

보이저 2호가 찍은 해왕성.

호이겐스 착륙선이 짝은 타이탄의 표면. 물처럼 보이는 호수는 액체 메탄이다.

달 표면의 '성'.

우주 전함.

아폴로 15호가 촬영한 유사 물체.

카시니 탐사선이 촬영한 아이페투스.

아폴로 계획의 로고.

아폴로 8호가 찍은 달에서 본 지구.

플로리다 주의 케이프 캐너배럴에서 발사되는 새턴 V 로켓.

아라랏 산의 노아의 방주.

기자의 피라미드군.

중국 시안의 피라미드군.

아틀란티스의 상상도.

로제타스톤. 1799년에 이집트 로제타에서 발견된 로제타석의 상형문자가 19세기 샹폴리옹에 의해 해독됨으로써 2000년 만에 이집트 문헌과 기록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BC. 1600년경의 은허 유적지에서 출토된 갑골문. 지금의 한자와는 달리 다분히 원시적인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BC. 3000년경 이집트 제1왕조의 암벽화. 몸통을 정면, 머리는 측면으로 묘사되는 인물이나 머리 위를 장식하는 뱀 조각, 매와 자칼 등 수천 년간 지속된 형식이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나타나 있다.

뿔이 달린 특이한 형태의 삼엽충. 아문이 많아 형태도 다양했고 원체 개체가 많았기 때문에 화석도 많이 남아 있다.

유카탄 반도에 묻혀 있는 대형 크레이터의 위치.

화성의 고도 사진. 헬라스 크레이터의 가공할 크기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미스터리 고대 유적.

중국에서 발견된 드로파 스톤.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된 돌 속의 X-레이 사진.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날개 가진 동물은 모두 이처럼 등 쪽에 날개가 붙어 있다.

엔진의 힘이 비교적 약한 프로펠러기들도 이처럼 날개가 위쪽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1937년 캐나다 밴쿠버 시청 근처에서 찍힌 UFO.

1927년 미국 오리건에서 촬영된 UFO.

1970년 미국 뉴햄프셔의 워싱턴 산에서 찍힌 시가형의 UFO.

피라미드 내부 투시도. 좁은 길들이 가파른 경사로 연결되어 있다. 위쪽에 Shaft라고 표기된 V자 형태 통로 두 개는 좁은 환기구멍으로 사람이 오갈 수 없다. 가운데 층층이 보이는 공간이 소위 왕의 방과 여왕의 방. 기울어진 검은 사각형으로 표현된 것이 소위 대회랑으로, 26도 각도로 우측으로 내려온다.

바알베크Baalbek의 '임산부의 돌'. 무게 1천 톤으로 추산되는 이 바위는 현대 과학 기술로도 옮길 수 없다.

이집트 아스완에 남아 있는 미완성 오벨리스크. 깎는 도중 금이 가서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길이 40미터 무게 1185톤. 이것을 정말 이동시켜서 세울 생각이었을까.

바그다드의 전지 항아리. 수천 년 전 인공적으로 전기를 만들었던 사실이 이를 통해 증명되었다. 그러나 단편적인 기술의 발견과 이를 통한 문명의 재편은 별개의 문제다.

8000년 전의 암각화.

이탈리아의 동굴벽화.

페루의 암벽화.

고대 오스트레일리아의 인물화.

탄자니아의 암벽화.

멕시코의 벽화.

오리온자리.

수성에서 VY 카니스 마조리스까지의 크기 비교.

아기 모세의 구출.

모세의 출애굽 상상도.

구약성서의 모세오경, 토라.

모세와 유대인의 방랑 궤적. 모세가 이끄는 유대인들은 이 붉은 선을 따라 40년이나 헤맨 끝에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

모세의 언약궤.

새로운 예언자.

미 해군 핵항모 USS 니미츠. 322.8미터의 길이에 6000명의 승조원을 실은 이 거대 함정은 연료 보급없이 20년간 운항 가능하다.

네바다 사막의 핵실험. 군인은 물론 민간인까지도 보호 장구 없이 관람했다.

위는 오리온 자리의 삼태성, 가운데는 기자 피라미드, 아래는 삼태성과 기자 피라미드를 슈퍼임포즈한 사진. 계산에 따르면 두 위치가 완벽히 일치하는 것은 BC. 1만 500년이었다.

외계인 모습의 사제. 외계인들이 지구에 간여하는 방식은 이런 형태가 아닌, 인간과의 제휴를 통한 간접적인 것이다.

프리매이슨의 문장.

솔로몬 성전의 복원 모형.

알 악사Al Aqsa 모스크. 성당기사단의 본거지였던 이곳은 솔로몬 성전이 붕괴된 후 그 자리에 세운 것으로, 지금은 이슬람 사원이 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곳의 지하에 많은 유물들이 숨겨져 있다고 믿어왔다.

바포메트.

1달러 지폐에 그려진 마스터 프리메이슨 워싱턴과 뒷면의 피라미드.

조지 워싱턴 기념탑. 1885년에 완성된 높이 170미터, 무게 9만 854톤의 이 탑은 당시로선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건축물이었다. 이런 이집트 오벨리스크의 형태가 어째서 워싱턴 기념탑이 되어야 하는지는 프리메이슨과 고대의 커넥션이 아니면 이해될 수 없다.

공사현장에서 사용되는 현대의 복합 도르래.

수원 화성 공사에 사용된 거중기.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높이 318m, 102층. 1931년에 철근 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어진 대표적인 마천루다. 1972년 세계무역센터가 완공되기 전까지 40년간 세계 최고층 건물이었다.

수단.

중국 시안.

보스니아.

멕시코.

미국.

프랑스.

카자흐스탄.

여호와의 문양.

네안데르탈인 추정도.

 

 

 


posted by 황영찬

2015-035 萬人譜 16 사람과 사람들

 

고은

2004, 창비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4

 

811.6

고67만 16

 

창비전작시

 

시인 고은은 20여년 전부터 한국사에 드러나고 숨겨진, 스러지고 태어나는, 추앙받고 경멸당하는, 아름답고 추악한, 떳떳하고 비굴한, 그 수많은 사람들을, 붓 대신 언어로, 그림 대신 시로, 거대한 민족사적 벽화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는 한국인이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지을 수 있고 짓지 않을 수 없는 숱한 표정들이 늘어서 있고 그들의 천태만상의 갖가지 삶의 모습들이 벅적거리고 있으며 절망과 한(恨), 운명과 열정, 기구함과 서러움의 삼라만상적 인간상들이 복작거리고 있다. 그것은 삐까쏘의 「게르니까」보다 더 착잡하고 내가 멕시코씨티의 정부청사 안에서 보았던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보다 더욱 거창한 서사를 담은 우리 한민족의 벽화를 이루고 있다. 고은은 『만인보』라는 벽화-민족사를 통해 우리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되새김질하며 그 역사를 만들어오고 혹은 그것에 짓밟힌 만상의 인간들을 사랑하며 껴안고 뺨 비비며 삶의 진의와 세계의 진수를 손가락으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고은이 그린 사람들에게서 한을 듣고 그가 그린 세계에서 향기를 맡으며 그의 만인화(萬人畵)에서 세계와 시대를 읽는다. 그리고 이제, 나는 여기 그가 그려준 거대한 벽화를 보며 분노와 치욕 그리고 운명과 사랑이 점철된 그의 '역사'를 듣고 오늘의 삶을 생각한다.

■ ■ ■ 김병익 문학평론가, 인하대 초빙교수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시인의 말

그 아낙 / 무명씨 / 김일성 / 마라도 애기무당 / 승렬이 무덤 / 에레나 / 최항 / 신건호 / 타인의 눈 / 홍길동 / 두 강물 / 제삿날 / 심유섭 영감 / 김동삼의 자손 / 호수 / 절망 / 노고단 밑 / 노예시인 / 아기 울음소리 / 소년 준호 / 신혼부부 / 김총각 / 만수 할머니 / 군고구마 장수 / 너와집 / 연애 / 귀향 / 가야금 / 수씨 딸 / 양형모 / 쯔쯔 영감 / 사진 한 장 / 고명욱 영감 / 설석우 / 그 홀아비 / 옥순이 옥분이 자매 / 엄면장 마누라 / 제석 / 신현구 / 5대의 피리 / 그해 8월 / 이휘소 / 어느 결혼 / 설악산 / 송탄 피난민수용소 / 다섯 시간의 결혼식 강좌 / 춘정 / 나 보기가 역겨워 / 사마귀 / 용돌리 두 집 / 이정순의 넋 / 사미승 등명 /과부 문씨 / 성혜랑 / 그해 겨울 들판 / 김석원 장군 / 여자 몸값 / 어느 부부 / 한 부엌 / 주저앉은 사람 / 고향 / 신국이 할아버지 / 노처녀 기명실 / 오르테가 킴 / 남자현 / 외팔이 박 / 국군 군번 1번 / 채병덕 / 신성모 / 다섯살 용식이 / 홍총각 / 수복 이후 / 폐허의 아기 / 빨갱이 1 / 빨갱이 2 / 빨갱이 3 / 빨갱이 4 / 꽃 금각(琴恪) / 교장 신진섭 / 여원재 / 변영재 / 한홍철 / 어떤 인민군 / 이종찬 / 허황후 / 김종원 / 거창 이복남 / 왕건 / 신중목 / 임채화 / 왕작제건의 씨 / 박영보 면장 / 시시한 원한인데 / 어떤 대동청년단 / 배꼽 깊은 사람 / 1 · 4후퇴의 아기 / 젖먹이 신이 / 이규완 자손 / 나, 김우남 / 할머니 / 간첩시절 / 김선기 / 돼지고기 세근 / 보안사 사병 정우신 / 제주도 중산간마을 / 옹기장수 맹길이 / 어떤 한약방 / 정순산 / 소위 학도병 / 망우리 묘지 / 칠석 장군 / 1950년 10월 3일 / 김윤근 / 인민군 / 추교명 / 최익환 / 다시 수복 / 나물도 이장 오영감 / 나물도 옆 무인도 / 장사꾼 오세도 / 늙은 농부 / 장봉도 / 영호 / 영호 누나 / 준모 고모의 마지막 밤 / 어떤 거지 / 경찰서 감방 10호 / 지장암 단풍 / 김춘보 / 이극로 / 이날치 / 상해 현계옥 / 남산 허백당 / 나윤출 / 이승태 / 사랑 / 노예 단천아 / 퇴계 모친 박씨

 

그 아낙

 

산정리 비탈

쉬웅! 꽝!

중포탄이 터졌다

돌덩이들

흙들

군용트럭에 탄 인부들

산산조각으로 솟아올랐다

솟아올라 흩어져 다 떨어졌다

 

자욱이 먼저 내려앉았다

 

한 아낙이 처박힌 머리 들고 일어섰다

왼쪽 팔이 남아 있다

어서 피 멎어라

 

타인의 눈

 

그 전쟁은

모르는 사람과도 주고받던 인삿말을 앗아갔다

느린 말씨도

순하디순한 말씨도 앗아갔다

말들이 빨라졌다

말들이 날섰다

가을 썬득썬득한 바람 속

사람들의 해맑은 눈빛들도 앗아갔다

차츰

사람뿐 아니라

소와 말의 눈도 자갈밭 머리에서 충혈되어 사나웠다

 

대전역전

껌팔이 아이 하나가

다른 아이 하나를 죽도록 패대고 있었다

삥 둘러서서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바람이 먼지를 일으켜세웠다

 

누구에게도

고향산천의 정든 얼굴은 없었다

 

너와집

 

밥 짓는 저녁연기 거룩하고 거룩하다

1945년 8월 10일 이전까지

한반도는 하나였다

1945년 8월 10일 이후

한반도는 둘이었다

북위 38도선을 그어

남쪽은 미군이 진주하고

북쪽은 소련군이 진주하기로 미국이 제안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은

한반도의 해방이었다

그러나

한반도의 분단이었다

 

한반도의 허리

강원도 인제군 소양강 언덕배기

옛 화전민

너와집 한 채에

북위 38도선이 지나갔다

 

북쪽 경비대가 차지했다

남쪽 경비대가 대들었다

서로 우리 집이라고

우리 땅이라고 외쳤다

공포를 쏘아대며

위협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묘안이 나왔다

이 집을

아예 허물어버리자

그러자

 

증조할아버지 적부터 살아온

두메산골 너와집이 없어졌다

그 집 주인

임봉술이 영감 62세

손녀 임가시나 14세

두 사람 이불짐 지고 떠났다

 

할아버지는 눈물도 없이 내내 울었고

손녀는 울지 않았다

다시 못 볼

저 아래 소양강을 보았다

 

사진 한 장

 

황해도 평산 젊은이 신도준이

1951년 8월

서부전선 임진강물

신새벽에 건넜다

아버지 어머니 젊었을 때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입에 물고

곧장 헤엄쳐 강을 건넜다

 

남쪽나라 서울이었다 폐허였다

거지노릇으로

남쪽 사람이 되었다

거지 작파하고

왕대폿집 심부름꾼이다가

구두닦이

구두 날라다주는 심부름꾼이다가

구두닦이 되어

 

판잣집 한 채 샀다

 

북의 고향 떠난 지 15년 뒤

그는 서울 충무로 3가 배우학원 이사장이었다

어머니 아버지 사진 확대해서

벽에 걸어두었다

누가 물었다

어느 시대 영화배우들이냐고

 

그 홀아비

 

1955년 겨울 영동 두메

경부선 기적소리가 멀리 들려왔다

기적소리 있으면

세상은 아직 세상 그대로였다

산들이 서로 벌거숭이

밤에는 덜덜 떨겠지

산들이 서로 벌거숭이 닮아

누가 누군지 몰랐다

 

오천산

미륵산

촛대봉

앞산

쌍봉리 뒷산

누가 누군지 몰랐다

 

아이들이 그리는 것은

벌거숭이 붉은 산

황토산

그리하여 황소 울음소리도

붉은 울음이었다

 

그런 산등성이 석양머리

한 사람 지친 걸음이 넘어온다

누굴까?

누구기는 누구

절반은 돌아버리고

절반은 제정신인 그 사람

 

마누라와

아이 둘 한꺼번에

박격포탄에 맞아죽고

황소 한 마리도 죽어버리고

혼자 살아남은 사람

머리숱 많은 이종수 그사람

 

소리는 기러기 소리인 듯

높은 소리였다

 

어허 3년 전쟁으로 몇백만명이 죽어갔다

그 죽음 가운데

이종수의 가족도 있었으니

빈 외양간 들어가

여보 마누라 여보 마누라

그리고

장섭아

차선아

차섭아

이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 그 사람

 

어느 결혼

 

결혼이 독립운동가 결합이고

신혼생활이 각각 독립운동이었다

아직 그들에게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었다 동지였다

 

1919년 1월 중국 남경

남경의 선교사 사택 한 방을 빌렸다

3 · 1운동 직전 창립한

신한청년당 당수 서병호

서간도와 북만 독립운동가 김필순이 하객으로 참석했다

 

김규식과 김순애의 결혼식

맞절을 했다

그리고 사진관에 가서 결혼 기념사진을 찍었다

 

서병호는

김규식의 손윗동서

김필순은

김규식의 처남

독립운동 가계의

동서가 되고

처남매부가 되었다 순수의 시대였다

 

신혼부부는 첫날밤 합방도 하지 못한 채

신랑은 제1차 세계대전 청산을 위한 빠리 강화회의에 갈 준비를 서두르고

신부는 빠리 강화회의를 받쳐줄

국내 봉기를 위해

부산으로 가야 했다

 

강연원고와 활동 구상 그리고 여권수속 배표 구하기

옷을 꿰매기

짐싸기로

며칠 밤낮이 지나갔다

 

하객 서병호는 본국으로

김필순은 만주와 연해주로 떠났다

1919년 3월이 오고 있었다

 

어느 부부

 

서울 후암동 일본인 병원 자리 한 내과의원에는 입원실이 셋이었다

입원환자 아홉

전쟁이 났다

으레 있어온 38선 충돌사건이 아니었다

사흘 뒤

나흘 뒤

서울을 내주어야 했다

 

환자들 하나둘 나갔다 의사도 떠났다

남은 늑막염 환자 백수길

나이 서른하나

몸 약한 아내의 간호밖에는

약도 없었다

 

6월 30일 콩나물국이 먹고 싶다 말하고 눈을 영영 감았다 야간중학 교사였다

서울 중앙청에는 인공기가 내걸렸다

아내는 다음다음해

피난지 칠곡 과수원 부근 판잣집에서 눈감았다

친정언니네가 입은 옷 그대로 종이같이 가벼운 시신을 묻었다

이런 죽음들 이런 삶들 전란 중에 있으나마나

슬픔도 별로 필요없었다

 

어떤 인민군

 

거창고을 산중에도

인민군이 왔다

인민군 몇명이

몇단위로 왔다

 

열아홉

열여덟

열여섯살짜리 풋내기였다

 

순 촌놈들이라

몇마디 말 오고가면

영락없는 산골아이들

밤 박꽃처럼

순박한 아이들

 

군기는 제법 엄했다

 

한 녀석이 외딴 마을에 가서

소녀를 꼬드겨 일을 벌였다

이 일이 알려지자

전우들의 심판으로

총살당했다

 

인민군은

국민학교 아이들에게

아니

인민학교 아이들에게 열심히 노래를 가르쳤다

 

원수와 더불어 싸워서 이긴……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태백산맥에 눈 내린다 총을 들어라 출정이다

 

그리고 「김일성 장군의 노래」도 가르쳤다

가르치다가

가르쳐

함께 노래 부르다가

그 여름날과 함께

어느날 사라졌다

 

그뒤 국군이 왔다 무거운 철모 쓴 국군이 왔다

우물물 검사한 뒤

우물물 실컷 마시고 싸움터로 떠났다

 

어떤 거지

 

식민지 후기

대구에는 대동단 사건의 주동자

이동하(李東廈)가 경영하는

하해(河海)여관이 있다

 

경북 유림단 사건으로 감옥에 갔다 온

이봉노(李鳳魯)가 경영하는

이화(李華)여관이 있다

 

또 하나 항일운동가

윤홍렬(尹洪列)과 황옥(黃鈺)이 묵고 있는

본정(本正)여관이 있다

애국자 뒷바라지 황봉이(黃鳳伊) 여인이 경영한다

 

고등계 형사 감시를 받는다

자주 그 여관에

예비검속 나와

붙잡혀가면

일주일도

10여일도 갇혔다 온다

 

그런 여관거리에

거지 행색의 사람

몇번씩 오락가락한다

애국자 이상훈(李相薰)이다

 

저게 누구야

저 거지 누구야

물으면

바로 저분이

독립운동가 이상훈 선생이시다!

 

사람들은 그 거지가

대구거리를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독립운동을 한다고 말한다

 

세 여관에는

이상훈

신재운

김찬기

허영 들이 자주 묵었다

하루 1원 정도의 숙박비 밀리기도 한다

 

 

 

 

posted by 황영찬
2015. 3. 25. 15:55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34 간송미술 36 회화


글 ● 백인산

2014, 컬처그라퍼



대야도서관

SB102157


653.11

백68ㄱ


우리 문화와 역사를 담은 옛 그림의 아름다움


세상 밖으로 나온 간송미술관

백인산이 읽어 주는 우리 옛 그림 베스트 36


간송미술관의 주옥같은 옛 그림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24년 동안 우리 미술 연구에 매진해 온 간송미술관 백인산 연구실장은, 독자들이 그림을 통해 우리의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읽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36폭의 옛 그림을 정성껏 골라냈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그림들에 얽힌 이야기와 깊이 있는 해설이 돋보이는 이 책은, 옛 그림을 제대로 일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최고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이 그림들은 우리 문화와 역사의 우수성과 독창성, 나아가서는 보편성까지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백인산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간송미술관에서 우리 미술과 문화에 대한 안목을 길러 왔고, 조선시대 회화를 중심으로 우리 문화와 미술에 대한 강연과 글쓰기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 현재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으로 있으면서 서울여대, 동국대, 이화여대 등에서 한국과 동양의 미술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조선의 묵죽』, 『선비의 향기 그림으로 만나다』, 『추사와 그의 시대』(공저), 『진경문화』(공저)가 있고,  「탄은 이정」, 「조선 중기 수묵문인화 연구」, 「조선 왕조 도석화」, 「삼청첩의 역사성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차례


     편집자와의 대담

     간송미술의 가치와 의미를 밝히다


01 신사임당 | 포도

    우리가 아는 사임당의 이름에 가장 가까운 그림


02 이정 | 고죽

    시련을 의지로 극복하고 탄생시킨 일세의 보물


03 이정 | 풍죽

    세찬 바람에도굴하지 않는 선비의 절개


04 이정 | 문월도

    은은한 달밤을 더욱 밝히는 맑은 정신


05 이징 | 고사한거, 강산청원

    왕실과 사대부가 사랑한 궁중회화의 품격


06 조속 | 고매서작

    세속의 명리를 버린 자유인의 자화상


07 김명국 | 수로예구

    최소한의 획으로 끌어낸 마음속 선심


08 이명옥 | 어초문답

    세상 이치를 논하는 현자들의 꾸밈없는 대화


09 윤두서 | 심산지록

    현세구복적 상징 속에 숨겨진 애달픈 현실 인식


10 정선 | 청풍계

    진경문화를 주도한 선비들의 자취가 스민 맑은 계곡


11 정선 | 목멱조돈

    시와 그림으로 화답한 평생지기의 우정


12 정선 | 단발령망금강

    30년간 그리고 또 그린 금강산의 아름다움


13 정선 | 풍악내산총람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겸재 진경산수의 본질


14 정선 | 서과투서

    노대가의 눈에 비친 따스한 일상


15 변상벽 | 자웅장추

    동물 그림에서 이루어 낸 또 하나의 전경


16 유덕장 | 설죽

    천재의 그늘에서 마침내 벗어난 노력가의 성취


17 조영석 | 현이도

    조선 후기 풍속화의 본격적인 시작


18 심사정 | 와룡암소집도

    세상이 버린 불우한 화가의 화흥


19 심사정 | 삼일포

    관념산수에 진경화풍을 더하다, 조선남종화의 탄생


20 심사정 | 촉잔도권

    화가의 인생을 닮은 험하고 아름다운 길


21 이광사, 이영익 | 잉어

    입신양명으로 시작하여 효성으로 마무리된 그림


22 윤용 | 협롱채춘

    고된 인생 속에 문득 스쳐 오는 봄바람


23 강세황 | 죽석

    담백한 문인의 심의를 담은 묵죽화의 새로운 경지


24 강세황 | 향원익

    멀어도 좋지만 가까이 봐도 맑은 연꽃 향기


25 김후신 | 대쾌도

    풍속화의 본질을 꿰뚫은 즐거운 그림


26 김홍도 | 마상청앵

    '단원다움'의 진면목


27 김홍도 | 황묘농접

    교감의 순간을 포착하는 섬세하고 따스한 필치


28 김홍도 | 염불서승

    삶과 예술, 예술과 종교의 혼연일체


29 김득신 | 야묘도추

    나른한 일상의 정적을 깨뜨리는 한바탕 소동


30 신윤복 | 미인도

    화가의 가슴속 가득한 봄기운을 풀어내다


31 신윤복 | 이부탐춘

    혜원이기에 가능했던 파격


32 김정희 | 고사소요

    단순함과 평범함 속에 감춰 둔 비범함


33 김정희 | 적설만산

    추사의 글씨를 닮은 강인한 묵란


34 조희룡 | 매화서옥

    매화 사랑으로 표현한 격정적이고 자유로운 정신


35 장승업 | 삼인문년

    천재가 살던 시대를 아쉬워하다


36 민영익 | 석죽

    조선 최후의 문인화가가 남긴 비바람 속 대나무


"이 책에 실린 36편의 그림은

조선시대의 문화와 예술,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이야기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그림들입니다."


01 신사임당

포도


申師任堂, 1504-1551

葡萄

비단에 수묵

31.5×21.7cm

간송미술관


자당께서는 묵적墨迹이 남다르셨다. 7세 때부터 안견이 그린 것을 모방하여 드디어 산수도를 그리셨는데 지극히 신묘했다. 또 포도를 그리셨다. 모두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것들로, 그리신 병풍과 족자가 세상에 널리 전해진다.

- 율곡이 사임당의 행장(行狀, 죽은 사람이 평생 살아온 일을 적은 글)에서 쓴 글


이 그림은 돌아간 증찬성 이 공李公, 이원수의 부인 신 씨가 그렸다. 사람의 손으로 그렸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자연스러워 사람의 힘으로는 범할 수 없는 것이다. 오행의 정수를 얻고 원기의 융화를 모아 이로써 참다운 조화를 이루셨다. 마땅히 그가 율곡 선생을 낳으실 만하다.

-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사임당의 초충도를 보고 쓴 글

신사임당, <훤원석죽>

(萱苑石竹 : 원추리꽃과 패랭이꽃)

종이에 채색

41.0×25.7cm

간송미술관


꽃밭에 원추리꽃, 패랭이꽃, 개미취꽃이 어울려 피었다. 꽃향기를 좇아 흰 나비 두 마리가 하늘하늘 날아들고, 땅에는 도마뱀이 몸을 틀어 먹잇감을 찾고 있다. 안정된 구도와 섬세하고 온화한 표현, 소박하지만 정갈한 채색에서 규방의 미감이 묻어난다. 그래서인지 이와 유사한 초충도 다수가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전해 내려온다.


임자 윤달 15일에 월성 김광국이 손을 씻고 삼가 배관한다.

壬子潤月之望, 月城金光國盥手敬觀.


우계와 율곡이 함께 유림을 머뭇거리게 했었는데,

청송의 글씨와 신 부인의 그림도 모두 세상에 이름을 날린 빼어난

재주였으니 이 또한 한 가지 기이한 일이다.

牛栗竝跱儒林, 而聽松書, 申夫人畵, 又皆名世絶藝, 亦一奇也.

- 영조시대 문인 동계東溪 조구명趙龜命, 1693-1737이 쓴 제사


줄기가 수척한 것은 청렴함이요, 마디가 굳센 것은 강직함이요, 가지가 약한 것은 겸손함이요, 잎이 많아 그늘을 이루는 것은 어진 것이요, 덩굴이 벋더라도 의지하지 않는 것은 화목함이요, 열매가 과실로 적당하여 술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재주요, 맛이 달고 평담하며 독이 없고, 약재에 들어가 힘을 얻게 하는 것은 쓰임새요, 때에 따라 굽히고 펴는 것은 도이다. 그 덕이 이처럼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으니, 마땅히 국화, 난 매화, 대나무와 더불어 선두를 다툴 만하다.

- 명나라 명필가, 화가 악정岳正, 1418-1472


02 이정

고죽


李霆, 1554-1626

枯竹 : 마른 대나무

검은 비단에 금니

25.5×39.3cm

간송미술관


전란 겪고 삼 년 만에 이렇게 모이니,

그래도 화첩 한 권 증표로 남겨 두셨구려.

부러질 뻔한 그대의 팔뚝 조물주가 보호해 준 덕에,

남은 생애 나의 눈동자도 흐리지 않게 되었소.

- 간이簡易 최립崔岦, 1539-1612


이 첩 하나가 잿더미 속에 떨어져 장갑粧甲에 불길이 미치고, 안쪽 면까지 번져 석봉의 서첩을 반쯤 태우고 돌아 나가더니, 석양의 대나무에 이르러 저절로 불이 꺼져 하나도 상하지 않았다. 이 어찌 기이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늘이 단련시키고, 귀신이 보호하는 선물이라 훼손되지 않은 것이니, 아! 경탄할 만한 일이로다.

- 해숭위海崇尉 윤신지尹新之, 1582-1657

앙상하고 가는 가지 위에 짧은 댓잎이 성글게 매달려 있다. 겨울을 견디기 위해 무성한 잎을 떨궈 낸 마른 대나무이다. 하지만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지와 굳센 댓잎에는 부드러운 듯 강인한 대나무의 특성과 상징성이 잘 드러나 있다.


만력갑오이월십이일탄은사우공산만사음촌우

萬曆甲午二月十二日灘隱寫于公山萬舍陰村寓


03 이정

풍죽


李霆, 1554-1626

風竹 : 바람에 맞선 대나무

비단에 수묵

127.5×71.5cm

간송미술관

짙은 먹으로 댓잎을 반복하여 겹쳐 놓았지만 미묘한 농담과 필력의 변화로 전혀 답답하거나 탁하지 않다. 오히려 굳세고 상쾌하며 거센 바람에 댓잎이 부딪하며 내는 소리가 들릴 듯하다. 댓잎 한 획 한 획에서 올곧고 당당한 조선 선비의 정신과 숨결이 느껴진다.


04 이정

문월도


李霆, 1554-1626

問月圖 : 달에게 붇다

종이에 담채

24.0×16.0cm

간송미술관


탄은의 매화와 대나무, 난 그림은 곳곳에 있으나 산수와 인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이제 그가 그린 망월도를 얻었는데, 주로 대를 치는 필법으로 간략하게 묘사해 지극히 거칠고 성긴 운치가 있다. 예전에 예찬은 대나무 그림에 스스로 글을 지어 말하기를, '내 가슴속 일기를 그렸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탄은의 뜻 또한 이와 비슷한가.

灘隱梅竹難蕙在在有之, 至於山水人物, 余未賞見之, 今得其所作望月圖, 盖以寫竹之筆法, 草草爲之, 極有疎散之韻, 昔荊蠻民自題其竹曰, 聊以 寫吾胸中之逸, 灘隱之意, 其亦類是耶.

- 金光國

손을 들어 달을 가리키는 고사의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번져 온다. 세상 밖의 이치를 깨달은 희열일 것이다. 험난한 시대를 헤쳐 가며 묵죽으로 일세를 올렸던 탄은의 마음속에는 이처럼 어린 아이와 같은 천진함이 가득했나 보다.


탄은의 묵죽도를 몹시 좋아하여 기회 있는 대로 보러 다니기도 하고 또 많은 묵죽도를 수집했는데, 탄은의 좋은 작품을 대할 때마다 "이분이 대를 이다지도 잘 그렸으니 산수화나 인물화 같은 그림도 잘 그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었다. 그러나 탄은의 산수화나 인물화는 보았다는 이야기조차 들어 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6, 7년 전 우연히 어느 골동상에서 진귀한 화첩 한 권을 입수했는데 그 속에서 탄은의 인물도 한 폭을 발견했으니 그때에 기쁘던 생각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 간송 전형필, 『고고미술』(1961년) 「탄은필灘隱筆 문월도問月圖」


05 이징

고사한거

강산청원

(쌍폭)


李澄, 1581-?

高士閑居 : 고사의 한가로운 삶

江山淸遠 : 강과 산이 맑고 멀다

검은 비단에 금니

각 117.5×57.0cm

간송미술관

산석과 나무, 나귀와 인물을 묘사한 필치의 정교함이 경탄스럽다. 먹과 달리 운용의 제약이 큰 금물을 이렇듯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화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징을 '나라의 손'이라 부른 까닭을 알 만하다.


06 조속

고매서작


趙涑, 1595-1668

古梅瑞鵲 : 늙은 매화에 앉은 까치

종이에 수묵

100.0×55.5cm

간송미술관


만약 공중에 뜬 솔개나 매처럼 하늘에 있어 본다면 다 알 수 있겠지만, 짚신 신고 지팡이 짚고 찾아 나서 그 봉우리와 골짜기를 돌아본 후 반드시 앉은 곳에 따라 화폭을 달리해야 본 바를 그려 낼 수 있을 터인데, 장차 이 그림을 어디에 쓰겠는가.


몇 번의 붓질로 까치의 자태와 의취를 정확하게 옮겨냈다. 야무지게 다문 입과 똘망한 눈동자에서 당당함과 고고함이 느껴진다. 군자로 불리는 매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명리를 초탈하여 지유인으로 살았던 조속의 삶과 정신을 보는 듯하다.


"창강은 공훈을 사양하고 절조로 일관하여,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심복하고 흠모했다. 지금 그 먹의 오묘함을 보니, 맑은 기운이 그 사람을 닮아 감탄스럽다."

- 조선 후기 문인, 이봉환李鳳煥, 1710-1770


07 김명국

수로예구


金明國, 1600-?

壽老曳龜 : 수노인이 거북이를 끌다

종이에 담채

173.0×94.0cm

간송미술관

처진 눈매와 주먹코가 맘씨 넉넉한 촌가의 노인을 떠올리게 한다. 초인적인 권위와 신성을 강조하여 괴기스럽게 과장 표현한 중국의 수노인과는 확연히 다르다. 어쩌면 김명국의 생김새와 성정이 이처럼 소탈하고 푸근했을지도 모르겠다.

시원스럽게 휘갈겨 쓴 '연담'이란 호 아래 거북이 한 마리를 그려 무병장수를 바라는 마음을 한층 강조했다. 두어 개의 점과 몇 가닥의 선뿐이지만 거북이의 형상은 충분히 드러났다. 감필법의 달인이었던 김명국이 아니라면 흉내 내기 어려운 필치와 감각이다.


08 이명욱

어초문답


李明郁, 1640-1713 이전

漁樵問答 : 어부와 나무꾼이 묻고 답하다

종이에 담채

173.0×94.0cm

간송미술관


어부가 나무꾼에게 말하기를 너는 천지만물을 보는 도를 아느냐?

나무꾼이 아직 모른다고 하고 그 방도를 듣기를 원하였다.

어부가 말하기를 무릇 세상의 물상을 보는 것은……

간결한 필치의 의복 묘사와 달리 초상화 기법으로 정교하게 그려 낸 얼굴 표현이 특이하다. 속진을 멀리하고 어부와 나무꾼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현자들의 삶과 성정을 옷과 얼굴의 대비를 통해 암시적으로 표출했다.


이명욱이 그림 그리는 재주가 정묘했으니 맹영광 뒤에 제일가는 사람이다. 근세에 이징이 비록 명화가로 칭해지지만 신묘하지는 못했다. 수년 전에 '이명욱'세 자와 '속허주필의續虛舟筆意' 다섯 자를 가지고 두 개의 인장을 새겨서 특별히 이명욱에게 하사하여 모사한 그림 밑에 찍게 하였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이명욱 같은 신묘한 솜씨로 이징과 견주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 것 같아 '속악치필의續樂癡筆意' 다섯 자로 고쳐서 새로 주려 했으나 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가 죽은 지 벌써 오래되었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 숙종


09 윤두서

심산지록


尹斗緖, 1668-1715

深山芝鹿 : 깊은 산속 영지와 사슴

종이에 수묵

127.0×90.5cm

간송미술관


풀은 길고 영지는 빼어나니, 깊은 산은 색다른 봄일세.

중원은 비바람 치는 밤이니, 이곳에 몸을 숨기기 좋으리. 효언

草長靈芝秀, 深山別有春, 中原風雨夜, 此地好藏身. 孝彦


감히 진나라 궁전에 들어가,

헛되이 이세二世로 망하게 했네.

오록충종五鹿充宗도 오히려 뿔이 꺾였으니,

말을 베는 명검이 상방尙方에 있었네.

학포가 추가해서 쓰다.

敢入秦宮裏, 空令二世亡,

充宗猶折角, 斬馬在尙方, 學圃追題.

자신의 심경을 한 마리 사슴에 빗대어 표현한 사의적인 그림이지만, 뿔에 난 돌기와 터럭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그려 낸 사슴의 양태는 매우 형사적이다. 사의성과 사생성이 공존했던 공제의 회화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10 정선

청풍계


鄭敾, 1676-1759

淸風溪 : 인왕산 동쪽 기슭 청운동 골짜기

비단에 담채

133.0×58.8cm

간송미술관


청풍계는 인왕산 기슭에 있는데, 그 골 안이 깊고 그윽하며 경관이 아늑하고 아름다워서 놀며 즐길 만하다. 집 안에 태고정과 늠연당이 있어 선원의 초상화를 모셨다. 후손들이 근처에 살고 있어서 세상 사람들이 창의동 김 씨라 한다. 시냇물 위 바위에 '대명일월大明日月 백세청풍百世淸風' 여덟 자가 새겨져 있다.

-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考』에 실린 청풍계에 관한 글

정선, <청풍계>

종이에 담채

33.7×29.5cm

간송미술관


백악산과 인왕산 사이 장동의 여덟 승경을 그린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에 들어 있는 작품. 비교적 작은 화면이라 청풍계 내의 건물들을 한편으로 몰고 주변 봉우리들로 에워싸 청풍계의 전모를 드러냈다. 세로 축으로 긴 화면을 가진 본문의 <청풍계>와는 또 다른 시각법을 적용한 화면 구성이다. 겸재는 이처럼 다양한 형식으로 청풍계를 여러 차례 그렸다. 겸재가 얼마나 자주 이곳을 드나들었으며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 만하다.

복건을 쓴 선비가 나귀에서 내려 청풍계 경내로 들어서고 있다. 겸재 자신이거나 타계한 스승 삼연의 생전 모습을 그린 듯하다. 작은 부분임에도 실감나게 표현되어 겸재가 산수 못지않게 인물에도 능숙했음을 알 수 있다.


11 정선

목멱조돈


鄭敾, 1676-1759

木覓朝暾 : 목멱산에서 아침 해가 돋아 오르다

비단에 채색

23.0×29.2cm (그림 크기)

간송미술관

정선, <시화환상간>

(詩畵換相看 : 시와 그림을 서로 바꾸어 보다)

비단에 담채

29.5×26.4cm

간송미술관

 

겸재와 사천이 석별의 정을 나누면서 '시와 그림을 서로 바꿔 보자'는 약속을 하는 장면이다. 정면으로 얼굴을 보이고 앉은 노인이 사천이고 그와 마주 앉아 있는 사람이 겸재인 듯하다. 맨상투 차림의 모습에서 격의없이 우정을 나누던 두 사람의 소탈하고 편안한 정취가 물씬 묻어난다.

 

자네와 나를 합쳐 놔야 왕망천이 될 터인데

그림 날고 시 떨어져 양쪽 모두 허둥댄다.

돌아가는 나귀 벌써 멀어졌지만 아직까지 보이니

강서에 지는 노을만 원망스레 바라본다.

-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

 

겸재 정선과 더불어 시가 가면 그림 온다는 기약이 있어,

약속대로 가고 오기를 시작하였다.

내 시와 자네 그림 서로 바꿔 봄에,

그 사이의 경중을 어찌 값으로 따지겠나.

시는 간장에서 나오고 그림은 손으로 휘두르는 것,

누가 쉽고 또 누가 어려운지 모르겠구나.

-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

 

새벽빛 한강에 떠오르니,

언덕들 낚싯배에 가린다.

아침마다 나와서 우뚝 앉으면,

첫 햇살 종남산에서 오르리라.

-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

일출의 햇살이 붉게 물든 강 위로 어부들이 고깃배를 몰고 나온다. '새벽빛 한강에 떠오르니 언덕들 낚싯배로 가린다.' 사천이 보낸 시구를 겸재는 이렇게 그림으로 바꾸어 놓았다.

 

12 정선

단발령망금강

 

鄭敾, 1676-1759

斷髮嶺望金剛 : 단발령에서 금강산을 바라보다

비단에 담채

32.2×24.4cm

간송미술관

단발령 고갯마루에서 일군의 선비들이 금강산을 바라보고 있다. 인물들의 윤곽만 간략히 그렸지만 그것만으로도 금강산의 절경에 감탄하는 모습이 절로 연상된다. 저들 중에는 삼연, 겸재, 사천이 모두 있을 것이다.

 

13 정선

풍악내산총람

 

鄭敾, 1676-1759

風岳內山總覽 : 풍악내산을 총괄해 살펴보다

비단에 채색

100.8×73.8cm

간송미술관

무성한 솔숲을 경계로 삼엄한 암봉과 부드러운 흙산이 대비를 이룬 가운데 금강산 곳곳에 자리한 명승과 암자들이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겸재는 이렇듯 절묘한 화면 구성을 통해 금강산의 기세를 담았고, 정교한 세부 묘사를 통해 금강산의 속살까지 생생하게 전해 주었다.

 

다섯 번 봉래산을 밟고 나니 다리가 피곤하여

쇠약한 몸은 금강산의 신령과 이별하려 하네.

화가의 삼매에 신령이 녹아들어 있으니

무명 버선 푸른 신 다시 신어 무엇 하겠나.

- 삼연 김창흡

 

14 정선

서과투서

 

鄭敾, 1676-1759

西瓜偸鼠 : 수박 훔치는 쥐

비단에 채색

30.5×20.8cm

간송미술관

잘 익은 수박 살을 훔쳐 먹고 있는 쥐와 밖에서 망을 봐주는 쥐들의 묘사가 정확하고 세밀하다. 자세와 눈동자를 통해 두 마리 도둑 쥐의 속내까지 읽어 낼 수 있을 정도이다. 기세 넘치는 겸재의 산수화와는 전혀 다른 우아하고 여성적인 조형미를 보여 준다.

 

15 변상벽

자웅장추

 

卞相壁, 1730- ?

雌雄將雛 : 암수탉이 병아리를 거느리다

 

머리에 벼슬을 이고 있는 것은 문文이고, 발에 발톱이 달린 것은 무武를 가짐이며, 적이 앞에 있으면 감히 싸우는 것이 용勇이며, 먹을 것을 얻으면 서로 알려 주는 것은 인仁이며, 밤을 지켜 때를 잃지 않는 것은 신信입니다. 닭은 이처럼 이 다섯 가지 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춘추시대의 전요田饒라는 사람이 노나라 애공에게 충언을 하며 닭의 덕성에 대해 한 말

종이에 채색

30.0×46.0cm

간송미술관

 

변상벽이 변고양이로 불리는 것은 고양이를 잘 그린다고 사방에 이름이 나서이다. 이젠 또 닭과 병아리를 그려 내니, 마리 마리가 털이 살아 있는 것 같다. (중략)

형형색색 세밀하여 실물과 똑같고, 도도한 기상 또한 막을 수 없다. 듣자하니 이 그림을 막 그렸을 때, 수탉이 잘못 알고 울어 댔다 한다. 그가 고양이를 그렸을 때도 쥐들이 겁을 먹었으리라. 기예의 지극함이 여기까지 이르니, 만지고 또 만져도 싫지가 않다. 되지 못한 화가들은 산수화를 그린다며 이리저리 휘두르니 거칠기만 할 뿐이다.

- 다산 정약용

작은 꿀벌 한 마리지만 병아리들을 먹일 요량에 어미 닭의 눈에는 흐뭇함과 자애로움이 넘친다. 일곱 마리의 노랑 병아리와 시골 아낙처럼 후덕한 암탉이 어우러진 장면이 정겹고 천연스럽다.

 

푸른 수탉과 누런 암탉이 일고여덟 마리 병아리를 거느렸다.

정교한 솜씨 신묘하니 옛사람도 미치지 못할 바이다.

靑雄黃雌, 將七八雛, 精工神妙, 古人所不及.

- 표암 강세황

 

흰털 검은 뼈로 홀로 무리 중에 우뚝하니, 기질은 비록 다르다 하나 5덕德이 남아 있다. 의가醫家에서 방법을 듣고 신묘한 약을 다려야겠는데, 아마 인삼과 백출과 함께해야 빼어난 공훈을 세우겠지.

白毛鳥骨탁獨超群, 氣質雖殊五德存. 聞道醫家修妙藥, 擬同蔘朮策奇勳.

- 후배 화가 마군후馬君厚, 1750경-?

큰 벼슬에 긴 꼬리를 가진 조선의 토종 수탉이다. 햇빛에 반사되어 검푸르게 보이는 두 가닥 꼬리 깃과 꽃송이를 닮은 붉은 벼슬이 탐스럽다. 목털을 부풀리고 날개 깃까지 벌려 허세를 부리니 제법 위풍당당해 보인다.

 

16 유덕장

설죽

 

柳德章, 1675-1759

雪竹 : 눈 맞은 대나무

종이에 채색

139.7×92.0cm

간송미술관

세 줄기 왕대가 바위틈을 뚫고 나와 하늘로 솟구쳐 있다. 잔가지와 잎이 거의 없는 늙고 큰 대나무가 상단이 모두 부러져 있으니 비장하리만큼 완고하게 느껴진다. 탄은 이정이 즐겨 그렸던 소재와 형식을 그대로 계승했지만, 너무 경직된 필치 때문인지 다소 평면적으로 보인다. 이런 까닭에 추사 김정희는 수운의 묵죽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탄은에게는 한 수 양보해야 된다고 했던 모양이다.

초록빛 댓잎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이 탐스럽다. 부드럽고 윤택한 필치는 자연스럽고 푸근한 느낌을 연출한다. 불굴의 기상이나 절조와는 거리가 멀지만, 이런 담담한 운치와 아취 또한 문인들의 이상이 아니던가.

 

대나무는 설죽을 그리기가 어려운데, 색을 칠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이는 대개 한번 색을 입히고 나면 천연의 자취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오직 그 초록 분가루를 칠했을 뿐인데, 신령하고 시원함이 날아 넘친다.

- 혜환惠寰 이용휴李用休, 1708-1782 「수운의 착색 설죽 병풍에 제하다題岫雲着色雪竹障」

 

계유년 여름에 수운 여든 늙은이가 그리다

歲癸酉夏, 峀雲八耋翁作.

 

17 조영석

현이도

 

趙榮祏, 1686-1761

賢已圖 : 장기 놀이

비단에 채색

31.5×43.3cm

간송미술관

장기판에 모여 있는 인물들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간략한 소묘풍의 필치이지만 어색함이 없다. 인물들의 자세와 표정을 통해 장기판의 행세는 물론, 구경꾼들의 성격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성중 김광수가 유령의 팔준 □ □ □ □ 2축을 가지고 나에게 현이도를 구하므로 황정경黃庭經을 거위와 바꾼 고사로서 드디어 즐겁게 그린다.

成仲以兪㱓八駿   □ □ □ □  二軸, 求余賢已圖, 用黃庭換鵝故事,  遂樂而作  □.

- 관아재 조영석


18 심사정

와룡암소집도


沈師正, 1707-1769

臥龍庵小集圖 : 와룡암에서의 조촐한 모임


그림을 천성으로 타고난 당대의 철장哲匠으로 현명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관아재 조영석, 겸재 정선과 더불어 그 명성이 같았는데, 혹자는 초충과 먹으로 용을 그리는 솜씨는 아무도 견줄 수 없다고 한다. 조영석, 정선 두 사람이 다 늙어서 세상을 떠났으니 지금의 대가를 논하자면 이 한 사람뿐이다.

-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가 1764년영조 40년에 현재玄齋 심사정의 집을 방문하고 쓴 글

종이에 담채

28.7×42.0cm

간송미술관


갑자년1744 여름 내가 와룡암에 있는 상고자김광수를 방문하여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며 서화를 논하는데 조금 있다가 하늘이 검은 돌처럼 새까매지더니 소나기가 퍼부었다. 그때 현재가 문 밖에서 비틀거리며 들어오는데, 옷이 흠뻑 젖어서 서로 쳐다보고 깜짝 놀라 말을 못했다. 잠깐 사이에 비가 그치자 정원 가득한 경치와 색채가 마치 미가米家 미불의 집안의 수묵도와 같았다. 현재가 무릎을 안고 뚫어지게 바라보다 갑자기 기이한 소리로 외치더니 급히 종이를 찾아 심주의 화의를 빌어 <와룡암소집도>를 휘둘러 그려 냈다. 필법이 윤택하고 흥건하여 나와 상고자가 서로 보고 감탄했다. 이에 조촐한 술자리를 마련하여 아주 기쁘게 놀다가 파했다. 내가 이 그림을 가지고 돌아와 늘상 사랑하고 아꼈다.

- 김광국

편복 차림에 공수한 채 시동을 거느라고 앉은 사람이 와룡암의 주인인 김광수이고, 갓 쓰고 도포를 입은 외출복 차림의 뒷모습이 와룡암을 방문한 심사정과 김광국일 것이다. 아마도 후원 뒷문을 등지고 앉은 인물이 심사정이 아닌가 싶다.


비 온 뒤 와룡암에 있으면서 흥에 겨워 석전을 방작하다.

雨後, 在臥龍庵, 乘興, 仿石田


19 심사정

삼일포


沈師正, 1707-1769

三日浦

종이에 담채

27.0×30.5cm

간송미술관


"우리나라의 이름난 산수를 널리 구경하지 않았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다만 금강산과 대흥산성을 구경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또 "왜 그처럼 넓지 못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가까이에 있는 북한산도 미처 유람하지 못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는 대체로 기이한 데 빠져 떠난 후에 돌아올 줄을 모르는 사람이다.

- 이덕무가 1764년 가을에 심사정의 집을 방문한 뒤 쓴 글

삼일호의 명물인 사선정으로 건너가기 위해 두 명의 선비가 호숫가 둔덕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다. 선비 일행을 이곳까지 데려왔을 구종과 나귀는 제 일을 마치고 돌아가고, 사공은 상앗대를 밀어 가며 조각배를 몰고 온다.


20 심사정

촉잔도권


沈師政707-1769

蜀棧圖卷 : 촉으로 가는 험한 길

종이에 담채

58.0×818.0cm

간송미술관


21 이광사 · 이영익

잉어


李匡師, 1705-1777

李令翊, 1738-1780

鯉魚

종이에 담채

120.5×57.5cm

간송미술관


원교 선생이 잉어 그림을 그렸는데, 머리와 눈만 그리고 마치지 못했다.

20년 후에 아들 영익이 동천 종형의 별장에서 이어 그렸으니 그때가 계사년 9월이다.

員嶠先生作鯉魚圖, 寫頭眼而未竟.

後二十年, 子令翊, 續成於洞泉從兄莊中, 時癸巳九月也.

마름과 부평초 사이를 노니는 세 마리의 작은 물고기가 담박하고 기품 있게 묘사되어 있다. 이처럼 잉어와 함께 어린 물고기를 그리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젊은 시절 고생을 이겨 내고 입신양명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세 마리를 그린 것은 이광사의 세 자녀를 의식했기 때문인 듯하다.


22 윤용

협롱채춘


尹愹, 1708-1740

挾籠採春 : 나물 바구니를 끼고 봄을 캐다

종이에 담채

27.6×21.2cm

간송미술관

한 여인이 긴 호미를 들고 옆구리에 망태기를 끼고 뒤돌아 서 있다. 도회지의 맵시 있는 연인들에게서 느껴지는 세련미는 없지만 꾸밈없는 소탈함이 정겹고 아련하다. 인물을 묘사한 필치 또한 이 여인처럼 투박하지만, 꾸밈없는 건실함이 진솔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비 젖은 싹 바람 맞은 잎 초록이 무성한데, 고운 손 검푸른 머리 한궁漢宮에서 나온다. 눈앞 가득 만물이 모두 이럴진대, 차마 그림 속에서 칠하고 바른 것으로만 보겠는가.

雨苗風葉綠董董, 纖手靑絲出漢宮, 滿眼蒼生總如此, 忍看塗抹畵圖中.

-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747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정지용鄭芝溶, 1902-1950의 「향수鄕愁」


23 강세황

죽석


姜世晃, 1713-1791

竹石 : 바위틈에 솟아난 대나무


"글은 한퇴지, 글씨는 왕희지, 그림은 고개지,

사람됨은 두목지, 광지는 이를 겸했다.

文之退之 筆之羲之 畵之愷之 人之牧之 光之兼之"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열 개의 지之자 평十之評'이라고 한다.

- 청나라의 명사가 표암豹菴 강세황의 자字가 광지光之인 것에 착안하여 중국 역대 시문서화의 대가들에 빗대어 쓴 글

종이에 수묵

30.0×44.6cm

간송미술관

강세황 <묵란>

종이에 수묵

29.8×21.0cm

간송미술관


한 포기의 난을 소박하게 베풀어 놓았는데 표암 특유의 단아하고 정중한 필치와 통활한 공간감이 돋보인다. 전체적으로 화보풍의 느낌이 없지 않지만, 유연하고 단정한 필치로 쳐나간 난엽과 난화는 탈속무구한 아취와 여유가 흘러넘친다. "우리나라에 본시 난이라는 것이 없어, 묵란에 대해서는 이름 있는 사람이 없다"며, 자신의 묵란에 대해서 은근한 자신감을 피력했던 표암의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수작이다.


내가 묵죽을 그리는 것은 얼추 알고 있으나 산수에 대해서는 본디 능하지 못하다. 창해옹이 내가 그린 대나무를 두렵게 여겨 산수만 그리게 하니, 이는 수염으로 내시를 질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성의를 뿌리치지 못하고 그림 한 권을 그려서 보내 본다. 훗날 보는 자들은 구하는 사람이 산수를 잘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억지로 시킨 잘못은 모를 터이니, 좋아할 수 없구나.

- 후배인 창해滄海 정란鄭瀾, 1725-1791의 요청에 응해 그림을 그려 주고 난 후 소감을 적은 글

"근세에 강표암은 대를 그리면서 한두 가지만 그리고 '분分'자나 '개个'자형 잎 서너 개만 해놓고 그만둔다. 이는 죽화竹畵일 뿐, 어찌 화죽畵竹이라 이를 수 있겠는가."

- 다산 정약용

 

"사람들은 세밀하고 무성한 대나무를 그리기를 바라지만, 게으르고 나약하며 눈도 어둡다. 두어 가지 대를 그리다 그마저 다 못하고, 목판에 새겨 여러 사람의 번거로운 부탁에 응한다."

- 표암 강세황

 

24 강세황

향원익청

 

姜世晃, 1713-1791

香遠益淸 :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다

 

산수화의 명가는 간혹 일컬을 만한 사람이 있으나, '살아 있는 것을 그리는 것'에 이르러서는 고요하여 들리는 바가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 해도 대체로 화원체畵院體에서 나와 공교롭게 세세하며, 수묵으로 들어가서는 필히 내달리듯 성급하다. 4백 년 동안 오직 상서尙書 강표암 만이 또렷이 드러난다.

- 자하 신위

 

 

종이에 채색

115.5×52.5cm

간송미술관

물과 땅에 있는 풀과 나무의 꽃에는 사랑할 만한 것이 대단히 많다. 진나라의 도연명은 오직 국화만을 사랑했다고 한다. 또 당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대단히 사랑한다. 나는 홀로 연꽃을 사랑한다. 연꽃은 비록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잔잔한 물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다. 속은 비어 통하고 겉은 강직하며, 넝쿨도 없고 가지도 없다.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다. 높이 우뚝 솟아 깨끗하게 서 있으니, 멀리서 바라볼 수 있지만 함부로 가지고 놀아서는 안된다. 나는 말한다. 국화는 꽃 가운데 은일자요, 모란은 꽃 중의 부귀자며, 연은 꽃 중의 군자이다. 아! 국화 사랑은 도연명 이후로 들은 적이 드물고, 연 사랑은 나와 같은 이가 몇이나 될까. 모란 사랑이 많은 것이 당연하리라.

- 주돈이

진초록 큰 연잎 위로 하얀 연꽃이 피어 색조의 대비를 이룬다. 꽃잎 끝에만 붉은빛이 살짝 감도는 일점홍 연꽃은 연지곤지를 찍은 여인처럼 사함과 순수함을 동시에 전해 준다. 연밭의 터줏대감인 청개구리가 그림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염계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연꽃은 멀리서 볼 수 있지만, 함부로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는데, 나는 '그림의 연꽃 또한 멀리서 보는 것이 좋다'고 하겠다.

濂溪先生謂, 蓮可遠觀, 不宜褻玩, 余則曰, 畵蓮亦宜遠觀焉, 豹菴

농도와 색조의 미묘한 변화를 주며 묘사한 연잎에서는 서양화풍의 영향이 감지된다. 여기에 숨기듯 그려 놓은 여치 한 마리는 크기는 앙증맞지만 그림의 운치를 돋우는 데 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25 김후신

대쾌도

 

金厚臣, 1735-?

大快圖 : 매우 즐거운 그림

종이에 담채

33.7×28.2cm

간송미술관

수염도 나지 않은 젊은 양반이 술이 억병으로 취해 세상을 다 가진 듯 의기양양 희희낙락하고 있다. 다른 술동무들이 취객을 밀고 잡아당기며 어르고 달래지만 쉽게 따라 줄 성 싶지가 않다. 곤혹스럽고 남감한 상황이지만 그림을 보는 우리는 그저 웃음만 나온다.

 

26 김홍도

마상청앵

 

金弘道, 1745-1806

馬上聽鶯 :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다

 

인생에서 날마다 접하는 백천 가지 일과 같은 세속의 모습을 옮겨 그리기를 잘했으니 저 길거리며 나루터, 가게, 시장, 과거장, 놀이마당을 한번 그려 내면 사람들이 모두 손뼉을 치며 기이하다고 소리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세상에서 말하는 '김사능金士能의 속화俗畵'가 바로 이것이다. 진실로 신령스런 마음과 지혜로운 머리로 홀로 천고의 묘한 이치를 깨닫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 표암 강세황이 제자인 단원檀園 김홍도의 그림을 두고 한 말

 

종이에 담채

117.2×52.0cm

간송미술관

김홍도, <호귀응렵>

(豪貴鷹獵 : 호탕한 귀인의 매사냥)

종이에 담채

28.0×34.2cm

간송미술관

 

어느 겨울 고을의 원님쯤으로 보이는 중년의 귀인이 휘하를 대동하고 매사냥을 즐기는 장면이다. 말 뒤로는 집사가 따르고, 그 뒤에 늙은 주모와 동자가 술상과 안주를 지고 따른다. 사냥매는 물론 짐을 지는 짐꾼과 사냥개까지 동원된 자뭇 성대한 행차이다. 매사냥의 풍부한 이야기들과 정취를 날렵하고 정확한 필치로 잡아냈다. 원숙한 기량이 한껏 발휘된 전형적인 단원 풍속화이다.

 

고운 여인 꽃 밑에서 천 가지 소리로 생황을 부는 듯,

시인의 술동이 앞에 귤 한 쌍이 놓인 듯하다.

금빛 베틀 북이 어지러이 버드나무 물가를 오가더니,

안개와 비를 엮어 봄강을 짜내누나.

佳人花底簧千舌, 韻士樽前柑一雙.

歷亂金梭楊柳崖, 惹烟和雨織春江.

- 이인문

나귀를 타고 가던 선비가 고개를 돌려 버드나무 위에 앉아 있는 꾀꼬리를 올려본다. 말을 모는 총각도 주인의 시선을 따라 같은 곳을 바라보고, 문득 멈춰 선 나귀는 귀를 종긋 세우고 숨을 고르고 있다. 매료된 듯, 아쉬운 듯, 혹은 아련한 듯한 선비의 표정이 복잡미묘하다.

 

27 김홍도

황묘농접

 

金弘道, 1745-1806

黃猫弄蝶 : 노란 고양이가 나비를 놀리다

종이에 채색

30.1×46.1cm

간송미술관

변상벽, <국정추묘>

(菊庭秋猫 : 국화 핀 뜰 안의 가을 고양이)

종이에 채색

29.5×22.5cm

간송미술관

 

얼룩고양이 한 마리가 잔뜩 경계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고, 먹잇감을 노려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염과 터럭을 수천 번의 붓질로 묘사하고, 눈동자의 미묘한 색조와 귓속 실핏줄, 심지어 가슴 부분의 촘촘하고 부드러운 털과 등 주변의 성글고 오롯한 털의 질감까지 정확하게 잡아냈다. 변상벽이 왜 '변고양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는지 여실히 보여 주는 걸작이다.

 

벼슬은 현감이고 단원이라 자호自號, 스스로 호를 지어 부름하며,

다른 한 가지 호는 취화사醉畵士, 그림에 취한 선비이다.

官縣監, 自號檀園, 一號醉畵士.

 

"일흔 살 여든 살이 되도록 젊음을 변치 말고 장수하시고,

모든 일이 뜻하시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28 김홍도

염불서승

 

金弘道, 1745-1806

念佛西昇 : 염불하며 서방정토로 올라가다

모시에 담채

20.8×28.7cm

간송미술관

김홍도, <노승염불>

(老僧念佛 : 노승이 염불하다)

종이에 담채

57.7×19.7cm

간송미술관

 

노승이 서쪽을 향해 합장한 채 염불을 하고 뒤에는 동자승이 육환장을 대신 들고 시립해 있다. "입으로 항하(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 외우고 또 그 모래알만큼 외운다(口誦恒河沙 復沙)"라고 쓴 제사에서 염불 공덕으로 극락왕생하려는 염원을 읽을 수 있다. 제사의 앞에는 '필유이심(必有以心)' 즉 '반드시 마음으로 함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의 글귀를 새긴 도장이 찍혀 있다. 단원 최만년기의 작품으로 죽음을 앞둔 노대가의 간절하고 신실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정갈하게 깎은 머리, 살짝 솟은 귀, 야윈 목에서 오랜 세월 구도의 길을 걸으며 정진한 노스님의 성품과 공력이 절로 느껴진다. 보름달처럼 피어난 스님의 두광에서는 남빛의 상서로운 기운이 번져 나와 하늘빛을 신비롭게 물들이고 있다.

 

29 김득신

야묘도추

 

金得臣, 1754-1822

野猫盜雛 : 들고양이 병아리를 훔치다

종이에 담채

22.4×27.0cm

간송미술관

 

긍재가 그린 풍속도는 세상에 많지 않은 작품이다. 사람들은 모두 단원의 풍속도를 첫 손가락에 꼽지만 복헌 선생의 연원에서 같이 나왔으니, 마땅히 함께 귀중한 것일 뿐이다. 위창 노부가 쓴다.

-  위창 오세창 《긍재풍속도첩兢齋風俗圖帖》

병아리를 입에 문 채 나 잡아 보란 듯이 뒤돌아보는 여유까지 부리는 고양이는 얄밉기 이를 데 없고, 어떻게든 제 새끼를 지키려고 눈에 핏발을 세우고 달려드는 어미 닭은 절박하기 짝이 없다.

마당으로 몸을 날려 도둑고양이를 후려치려는 주인장과 이런 남편이 혹여 다칠까 염려하는 아내의 자세와 표정이 매우 실감난다. 순간적인 장면을 스냅 사진 찍듯이 포착하여, 동영상의 정지 화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30 신윤복

미인도

 

申潤福, 1758경-1813이후

美人圖

비단에 채색

114.0×45.5cm

간송미술관

갸름한 얼굴에 반듯한 이마, 얄따란 눈썹과 갸름한 눈, 오똑한 코와 도톰한 입술, 흠잡을 데 없는 조선의 미인이다. 단정하게 빗은 머리 위에 얹은 트레머리가 탐스러움을 더해 주고, 목 뒤로 하늘거리는 몇 가닥 머리칼은 더없이 고혹적이다. 무심한 듯 몽환적인 표정이지만 맑고 그윽한 눈빛에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이 가득하다.

 

풀어헤친 화가의 가슴속에 봄기운 가득하니,

붓끝은 능히 만물의 초상화를 그려 낸다.

胸中萬化春, 筆端能與物傳神

 

31 신윤복

이부탐춘

 

申潤福, 1758경-1813 이후

嫠婦耽春 : 과부가 봄빛을 즐기다

종이에 담채

28.2×35.6cm

간송미술관

소복을 입은 과부의 품새와 야릇한 미소에는 농익은 춘심이 흥건하다. 옆에 앉은 과년한 처녀는 짐짓 못마땅한 표정이지만 발갛게 달아오른 볼과 과부의 치맛자락을 움켜쥔 손이 그녀의 속내를 알려 주고 있다.

신윤복, <월하정인>

(月下情人 : 달빛 아래 정든 사람)

종이에 담채

28.2×35.6cm

간송미술관

 

눈썹달이 은은하게 비추는 밤, 어느 집 담장 아래에서 남녀가 밀애를 나누고 있다. 초롱을 든 사내는 열망이 가득한 눈으로 여인을 바라보고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린 여인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고 있다. 욕망과 교태가 농밀한 남녀의 연정을 담아낸 그림이지만, 혜원 특유의 섬세한 필선과 세련된 색채가 적절히 균형을 잡으며 애틋하고 은근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32 김정희

고사소요

 

金正喜, 1786-1856

高士逍遙 : 뜻 높은 선비가 거닐다

종이에 수묵

24.9×29.7cm

간송미술관

 

"그림의 길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네. 자네는 그림에 있어 이미 격조를 얻었다고 생각하는가? 자네가 처음 배우기 시작한 것이 공재 윤두서의 화첩이네. 우리나라에서 옛 그림을 배우려면 과연 공재로부터 시작하겎지. 그러나 신운의 경지는 부족하지. 겸재 정선과 현재 심사정은 모두 명성이 대단하지만, 그들의 두루마기와 화첩에 전하는 것은 한갓 안목만 어지럽게 할 뿐이니 절대 들춰 보지 말게. 자네는 화가의 삼매경에서 있어, 천 리 길에 겨우 세 걸음을 걸었을 뿐이네."

- 추사가 아끼던 그림 제자였던 소치小癡 허련許鍊, 1809-1892에게 한 말

김정희, 예서대련

<대팽고회>(大烹高會)

종이에 묵서

각 129.5×31.9cm

간송미술관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

일생을 고고하게 살았던 추사가 죽음을 앞두고 깨달은 진리와 회한을 토로한 글귀이다. 일체의 기교를 배제한 글씨가 어린 아이처럼 천진하고 졸박하기만 하다.

 

좋은 반찬은 두부 · 오이 · 생강나물,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 손자, 이것은 촌 늙은이의 제일가는 즐거움이 된다. 비록 허리춤에 말斗만큼 큰 황금인黃金印을 차고, 음식이 사방 한 길이나 차려지고 시첩侍妾이 수백 명 있다 하더라도 능히 이런 맛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추사

 

33 김정희

적설만산

 

金正喜, 1786-1856

積雪滿山 : 쌓인 눈이 산을 덮다

종이에 수묵

22.9×27.0cm

간송미술관

 

난을 치는 것이 가장 어려우니, 산수 · 매죽 · 화훼 · 금어는 옛날부터 잘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홀로 난 치는 데 있어서는 특별히 들리는 소리가 없다.

 

난을 치는 법은 예서隸書 쓰는 법과 가까우니, 반드시 문자향과 서권기가 있은 연후에야 얻을 수 있다. 또 난을 치는 법은 화법을 가장 꺼리니 만약 한 붓질이라도 화법이 있다면, 그리지 않는 것이 좋다.

- 1848년 제주도에 유배되었을 때 아들 김상우金商佑에게 보낸 글

 

예서를 쓰는 법은 반드시 모지고 굳세며 예스럽고 졸박한 것으로 으뜸을 삼아야 하는 것이나 그 졸박한 것은 또한 쉽게 얻을 수 없다. 예서는 대체로 번지르르한 모습이나 시정市井의 기풍을 걸러내야 한다. 또한 예서 쓰는 법은 가슴속에 맑고 드높으며 고아한 뜻이 있지 않다면 손에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김정희, <국향군자>

(國香君子)

종이에 수묵

22.9×27.0cm

간송미술관

 

난 한 포기가 화면 한가운데 놓여 있다. 분수처럼 솟구쳐 올라온 두 줄기 잎이 대각으로 교차하며 좌우로 벋어 나가 시원스럽게 화면을 가른다. 화면 오른편 지면을 따라 "이것이 국향이고 군자이다(此國香也, 君子也)"라고 간단명료하게 써놓았다. 대담하고 파격적인 화면구성과 화면을 완전히 장악하는 필선의 힘도 놀랍다. 추사가 아니라면 발상하기조차 힘든 묵란화이다.

 

쌓인 눈 산을 덮고, 강 얼음 난간을 이루나,

손가락 끝에 봄바람이니, 이에서 하늘 뜻 알다.

거사가 제題하다.

積雪滿山, 江水闌干, 指下春風, 乃見天心, 居士題.

 

34 조희룡

매화서옥

 

趙熙龍, 1789-1866

梅花書屋 : 매화가 피어난 서옥

종이에 담채

106.0×45.4cm

간송미술관

 

조희룡 같은 무리들이 나에게 난 치는 법을 배웠으나, 끝내 그림 그리는 법칙 한 길을 면치 못하였으니, 이는 가슴속에 문자의 향기가 없기 때문이다.

- 추사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

매화 숲 외딴 서옥에서 선비가 책상과 마주 앉아 있다. 책상 위에는 책이 가득 쌓여 있지만 선비는 오로지 화병에 꽂혀 있는 한 가지 매화만을 바라본다. 선비는 두말할 것도 없이 매화 사랑이 유난했던 우봉 자신이다.

 

좀벌레 둥지 속에서 묵은 종이 한 장을 얻으니, 곧 20년 전에 그린 매화서옥도이다. 장난으로 그린 그림이나 자못 기이한 기상이 있었는데 연기에 그을려 거의 백 년 지난 물건과 같다. 그림도 이와 같거늘 하물며 사람임에랴! 펼쳐 보고 나니 절로 3생을 신선으로 태어난 느낌이다.

蠹窠中得一故紙, 乃卄載前所作, 梅花書屋圖也.

盖遊戱之筆, 而頗有奇氣, 爲烟煤所昏, 殆若百年物.

畵猶如此, 況人乎, 披拂之餘, 不覺三生石上之感, 丹老

 

35 장승업

삼인문년

 

張承業, 1843-1897

三人問年 : 세 사람이 나이를 묻다

비단에 채색

152.0×69.0cm

간송미술관

 

세노인이 만나 서로 나이를 물었다. 먼저 한 노인이 말했다. '내 나이는 얼마나 먹었는지 알지도 못한다. 단지 내가 어렸을 적에 천지를 만든 반고盤古씨와 친하게 지냈던 생각이 날 뿐이다.' 또 한 노인이 말했다. '바다가 변하여 뽕밭이 될 때마다桑田碧海 내가 숫자를 세려 나뭇가지 하나씩을 놓았는데 지금 내가 놓은 나뭇가지가 벌써 열 칸 집을 가득 채웠다.' 다른 한 노인이 말했다. '내가 신선들이 먹는 복숭아를 먹고 그 씨를 곤륜산 아래에 버렸는데 지금 그 씨가 쌓여 곤륜산과 높이가 같아졌다. 내 나이로 본다면 두 사람이란 것은 하루살이나 아침에 니왔다가 저녁에 죽는 버섯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 송나라 문인 소식이 지은 『동파지림東坡志林』 속 「삼로문년三老問秊」

손짓과 동작에서 어떤 노인이 무슨 자랑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바위에 기댄 동방삭은 선도를 훔쳐 낼 계략을 짜고 있다. 유려한 선묘와 정교한 색채의 조화가 딱히 흠잡을 데 없을 만큼 뛰어나다. 얼굴이 거뭇한 것은 흰빛을 내는 안료인 연백이 산화하여 변색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장오원 선생이 중년에 그린 것이다. 인물과 나무 바위의 필법과 채색은 신운이 생동한다고 할 만하다. 평생 그린 인물이 적지 않지만 이 폭과 같은 것은 많지 않으니 참으로 보배라 할 수 있겠다. 선생이 돌아가신 지 벌써 18년이 되었다. 이 그림에 글을 쓰다가 술잔을 기울이며 호기롭게 휘두르시던 모습을 상상해 본다.

此乃張吾園先生, 中年所作也, 人物樹石之用筆賦采, 可謂神韻生動,

其生平所畵人物, 亦不尠, 如此幅者不多得, 眞可寶也, 先生歸道山,

已十八年矣. 今題此畵, 想見引杯揮豪之風采云.

 

36 민영익

석죽

 

閔泳翊, 1860-1914

石竹 : 바위틈에 솟은 대나무

종이에 수묵

135.0×57.0cm

간송미술관

 

대나무의 정신을 능숙하게 그려 내니, 비바람 소리 들물가에 많기도 하다. 필치가 때에 따라 미친 듯 움직여 막힘이 없어야 군자가 지닌 성정의 참됨을 펼쳐 낼 수 있으리라. 을사년 춘분에 포화가 짓다.

是能寫出竹精神, 風雨聲多野水濱. 筆致動時狂不礙, 可長君子性情眞. 乙巳春分節, 蒲華題.

민영익, <묵란>

종이에 수묵

124.2×61.3cm

간송미술관

 

칼칼한 농묵의 붓질로 힘이나 속도의 변화를 두지않고 쳐낸 잎들은 마치 철로 만든 회초리처럼 굳건하다. 뿌리를 모두 드러내고 흙도 그리지 않은 것은 여백의 미를 살리고자 함이 아니라, 뿌리내릴 땅이 없는 망국대부의 비통함을 담아낸 것이다. '민원정이 천심죽재에서 그리다(閔園丁, 寫於千尋竹齋)'라는 관서로 보아 상하이 망명시절에 쳐낸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밑으로 '송석원을 쓸고 닦는 남자'라는 의미의 '송석원쇄소남정(松石園洒掃男丁)'이라 새겨진 인장을 찍었는데, 송석원은 인왕산 아래 있던 집안의 별장이니 인장에서도 망명객의 애환이 절절이 묻어난다.








posted by 황영찬
2015. 3. 23. 12:55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33 붓다 - 꺼지지 않는 등불

 

장 부아슬리에 지음, 이종인 옮김

1996, 시공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2133

 

082

시158ㅅ  28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28

 

기원전 6세기, 북인도의 왕자 싯다르타

가우타마는 가족과 부귀영화를 버리고 우주 만물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품고 그 답을 찾아 고행에 나섰다.

훗날 싯다르타는 붓다로 알려지며 전세계에 퍼진

불교의 창시자가 되었다. 실고 고통스러운 구도의 여정

끝에 붓다가 얻은 진리와 지혜의 실체는 무엇이며,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그분이 오셨다.

온 세상을 비추는 분, 세상을 보호해 주시는 분,

눈먼 세상에 부패의 고통을 꿰뚫는 안목을

주시는 분. 당신은 선한 싸움의 승자가 되셨고

선업으로 당신의 소원을 성취하였다.

정법(淨法)으로 완성을 이루셨으니

당신은 중생의 갈애를 해갈시켜 주시리라.

수렁을 건너셨어도 단 한 점의 죄도

없으시니 가우타마는 이제 굳건한 대지 위에 섰다.

그분은 급류에 휩싸인 중생들을 제도하시리라.

대덕(大德)이여, 당신은 거룩하시니

온 세상에 당할 자 없으며,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이 세상의 법에 물들지 아니하도다.

몽매에 빠진 이 세상을 깨울 수 있는 분,

지혜의 등불을 가지신 분, 그분은 당신뿐이로다.

오랫동안 고뇌를 겪고, 부패의 고통 속에서

괴로움을 받는 세상에 그분이 오셨다.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해 주시는 치유의 왕으로서."

<랄리타비스타라>, 23장

 

차례

 

La sagesse du Bouddha

 

제1장 붓다 시대의 인도

제2장 보살

제3장 깨달음과 첫번째 설법

제4장 가르침과 유행(遊行)

제5장 반열반(般涅槃)

제6장 가르침의 전파

기록과 증언

용어풀이

연보

참고문헌

그림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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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부아슬리에 Jean Boisselier

문학 박사이자 인도학 박사인 장 부아슬리에는 프랑스 동양학 학교위원, 프놈펜 박물관 큐레이터, 앙코르 유물보존위원회의 과학탐사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파리 동남아시아 예술, 고고학, 불교학의 권위자이며,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고고학적 탐사를 벌이고 그 분야에 관한 200여 편의 논문과 11권의 저서를 낸 바 있다.

 

옮긴이 : 이종인

1954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 브리태니카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번역서로는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번 <문자의 역사> 23번 <셰익스피어>와 <절망이 아닌 선택> <증발> <때로는 낯선 타인처럼> 등이 있다.

 

제1장

붓다 시대의 인도

 

붓다와 불교가 처음 등장한 B.C. 6세기는 아시아 전역, 즉 그리스 동쪽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정신적 운동이 벌어지던 시기였다. 인도에서는 그러한 움직임이 그보다 훨씬 전에 시작되었다. 그곳에서는 예수가 지상에 오기 이미 2,000년 전부터 우주관, 자기인식, 존재의 운명 등에 대한 사유가 집단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 있었고, 이러한 사유는 그 어떤 것보다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히말라야에 위치한 신화적인 아나바타프타 호수는 사자, 황소, 말, 코끼리 등이 살고 있는 지역에 물을 대는 4대 강의 수원이라고 한다. 이 호수는 세계가 파괴되었다가 거듭날 때, 맨 마지막에 사라졌다가 맨 처음에 다시 나타난다. 17세기 그림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강은 겐지스이다.

인도사의 최고대기(最古代期)인 B.C. 3000년경에 번성한 인더스 문화권은 현재의 파키스탄, 남부 아프카니스탄, 인도 3주인 펀자브, 라자스탄, 구자라트를 포함한다.이 시대는 보통 인더스 전단계(B.C. 4000~2300), 인더스 단계(B.C. 2300~1750), 인더스 후단계(B.C. 1750~1000)의 3단계로 나눠진다. 이 문화권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 자연적인 원인 때문인지 아니면 서족에서 동점(東漸)해 온 아리아족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다. 메소포타미아 문화권과 공통점이 많은 인더스 문화권은 도시적, 방어적, 상업적(항구와 선착장) 체계 및 도로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위는 인더스 문화권의 중요한 정착촌인 모헨조다로를 재구성한 것이다. 신비한 기명(記銘)과 장식이 새겨진 인장들(가운데, 아래)에서도 종교생활의 단서를 찾아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10세기 전반의 크메르 신전에서 브라흐마(사암 조각)는 베다에 기술되어 있는 창조신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브라흐마-시바-비슈누를 삼위일체로 보는 신관(神觀)에서는 중앙을 차지한 최고의 신 시바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비슈누가 나왔다고 한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아나바타프타 호수는 신비한 다섯 산맥에 둘러싸여 있다. 호수의 한가운데가 열락(悅樂)의 땅인 간다마다나인데 이곳에는 온갖 경이로운 존재들이 산다. 이곳에는 열반을 얻은 벽지불(辟支佛, 깨달음을 얻었지만 남을 위해 설법하지는 않는 붓다)이 기거한다. 궁극적인 열반에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 나타나야만 도달할 수 있다. 벽지불들은 달의 변화에 따라 치러지는 정화(淨化)의식을 올리기 위해 독특한 향을 내뿜는 나무 밑의 특정한 장소에 모여 있다. 그 옆에 있는 건물은 불교경전에 언급된 '그들을 기다리는 좌석'을 상징한다. 이 낙원에서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여기에 사는 존재들은 다른 존재에게 우호적인 감정만을 갖고 있다. 말과 코끼리들이 각각 색깔이 다른 것은 그들의 각기 다른 성질을 나타낸다.

원래 시바신의 시종이었던 마하칼라는 10세기 탄트라 불교에서는 수호신이 되고 8법왕의 하나가 된다. 이 그림은 18세기 티베트 그림에 끔찍스런 모습으로 나타난 마하칼라이다.

 

제2장

보살

 

역사상 실존했던 붓다의 생애는 전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생애 속에는 이적과 사실, 성과 속, 천상과 지상의 세계가 혼재한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까지 붓다는 한 사람의 보살('깨달음을 얻게 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6세기경 인도 아잔타 석굴의 벽화. 붓다가 아니라 대승불교의 중요한 존재 보살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림의 주인공이 어느 보살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구세주다운 장엄함과 인자함이 잘 드러나 있다.

부왕이 마련해 준 정원으로 가기 위해 동서남북 문을 나서면서 보살은 그때까지 보지 못했던 어두운 현실과 직면하게 된다.

《자타카》의 내용을 담은 B.C. 2세기경에 제작된 조각에는 동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위 부조는 원숭이에게 끌려가는 코끼리를 조각했다.

소승불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미래불인 마이트레야는 현재 도솔천에서 신으로 기거하고 있다고 한다.

대승불교에서 가장 유명한 두 명의 보살이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제작되었다. 위는 8~9세기에 캄보디아에서 제작된 청동조각상이고 아래는 11~12세기 중국 남부 타리 왕국에서 제작된 것이다.

《자타카》의 내용을 담은 예술품들은 기원후의 일상생활을 짐작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를 제공해 준다. 이 그림은 한 왕자의 이야기를 길게 다룬 <마하자나카 자타카>를 그린 것인데, 5~7세기의 아름다운 궁중생활을 엿볼 수 있다.

천에 그린 이 19세기 타이 그림은 베산타라 자타카의 내용을 담고 있다. 브라만들이 베산타라의 말 네 마리를 가져가 버리자 신들이 사슴으로 변하여 마차를 끌고 있다.

시련의 끝. 아버지인 시비왕은 베산타라 왕자의 아이들을 방탕한 주자카에게서 되사들였다. 베산타라 왕자 부부는 유형을 마치고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도성으로 돌아와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사랑하는 자식들과 재회한다. 붓다의 생애에서 주요 사건이 벌어질 때는 땅이 흔들리고 폭풍우가 휘몰아친다. 이 그림을 그린 무명의 화가는 베산타라 가족의 기쁨을 나타내기 위해 타이 전통무용에서 손동작을 빌려 왔다.

이 부조에서 보살은 속세로 내려오기 전 도솔천에서 신들에게 법을 가르치는 모습으로 나온다. 조각의 전반적인 구도가 완벽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엄숙하다. 9세기 센트럴 자바 지역에서 융성한 불교예술의 높은 경지를 알게 해준다.

 

"보살은 도솔천을 떠날 차비를 갖추었다. 그가 그곳을 떠나오자 그의 몸에서 엄청난 광휘가 솟구쳐 나왔다. 그 빛으로 삼천대천(三千大千) 세계는 환하게 빛나게 되었다. 그 빛은 신광(神光)보다 더 환하고, 더 풍성하고, 더 멀리 퍼졌다. 일찍이 그런 빛은 이 세계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

《랄리타비스트라》 5장

 

마야데비 왕비의 꿈은 바르후트 유적(B.C. 2세기에 세워진 거대한 불탑 유적지)에서 나온 원형 부조에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커다란 코끼리는 붓다의 화신이 아니라 마야데비의 꿈속에 나온 코끼리를 그린 것으로 보아야 한다.

붓다는 갠지스강의 중부 유역, 그러니까 우타르 프라데시의 중부 지역에서 활동했다. 붓다의 탄신지 카필라바스투는 네팔 남부에 있다.

'인간이 손을 대기도 전에' 신들이 먼저 껴안은 보살은 땅 위에 똑바로 서면서 자신이 마지막 삶을 보내기 위해 태어났음을 알았다. 그리고 동서남북 사방으로 차례차례 일곱 걸음을 내딛었다.

티베트 그림이 늘 그렇듯이 대단히 장식적인 구성을 가진 이 그림은 붓다의 탄생 설화를 종합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 그림에 묘사된 여러 세부사항은 《랄리타비스타라》에서 빌려 온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에는 붓다의 어머니인 마야데비 왕비가 '번개를 닮은 오른팔을 뻗쳐' 그녀를 반기는 듯한 무우수 나뭇가지를 잡는다. 왼쪽에는 땅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커다란 연꽃 위에 보살이 서 있다. 그의 위에는 나가 왕인 난다와 우파난다가 하늘 속에서 상체만 드러낸 채 보살을 씻기기 위해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 두 줄기를 쏟아 붓고 있다. 그 위의 공중에는 진귀한 일산이 등장한다. 그리고 연꽃 위에 선 보살은 우주의 시방(十方)을 사자(獅子)와 같은 얼굴로 쳐다본다. 그의 얼굴에는 삼십이상이 나타나 있다. 이어 그는 동서남북 상하로 방향을 잡으면서 각각 일곱 걸음을 간다. 그가 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연꽃이 땅에서 솟아오른다. 어머니의 태내에 신들이 마련해 둔 보전(寶殿)-붓다가 열 달 동안 어머니와 접촉하지 않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곳-은 탄신 후 대범천왕이 범천으로 가져가서 성물로 소중하게 보관한다. 보살의 유난히 긴 팔은 삼십이상의 하나이다.

"보살이 거처하게 될 첫번째 정원에는 온갖 좋은 위안물이 다 갖춰져 있었다. 소라고둥, 큰북, 중간북, 작은북, 비파 등이 저마다 아름다운 가락을 내뿜어 그가 깨어 있는 동안 형형색색의 소리를 빚으며 교향악을 들려주고, 나긋나긋하고 부드럽고 상냥하며 달콤한 목소리를 가진 여자들이 시종 매혹적인 노래를 들려주나니……."

《랄리타비스타라》 1장 

 

제3장

깨달음과 첫번째 설법

 

마지막 장애를 모두 극복한 보살은 마침내 오랜 탐구를 완성했다. 네 가지의 거룩한 진리(四聖諦)를 소유하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 되었던 것이다. 이제 보살은 자기가 발견한 법을 가지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그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보살이 마라를 항복시킨 사실 - 또는 욕망에 사로잡힌 중생들 위에 군림하는 모든 사악한 힘을 복속시킨 사실 - 은 비유의 방법으로만 묘사할 수 있었다. 신자들에게 마라의 위협을 좀더 사실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불교 경전 역시 이런 비유의 수법을 썼다. 이 그림이 경전의 내용을 그대로 재현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무튼 마라의 위협을 잘 드러내기 위해 가장 무섭고 악마적인 존재를 묘사하고 있다. 또 불교가 전파된 모든 지역에서는 악마를 나타내는 용어가 통일되어 있었다. 이 그림은 마라의 공격을 묘사한 중국의 비단 채색화이다.

스리랑카 폴론나루와에 있는 12세기의 석상은 선정에 들어간 붓다를 묘사하고 있다. 붓다의 생애 중 어떤 순간을 표현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법륜은 아소카왕 이래 불법과 포교의 대표적 상징이었으나, 5~6세기에 들어오면 인도에서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드바라바티 고대 왕국(오늘날 타이의 중부와 서부)에서는 7~9세기에 걸쳐 법륜이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어떤 때는 굉장히 커다란 법륜이 제작되었는데(지름이 1.83m가 넘는 것도 있다), 주로 기둥 위에 올려 놓거나 최초의 설법을 상징하는 네 마리 사슴으로 장식했다. 8세기에 제작된 위에 보이는 법륜이나 기둥에는 가끔 불법(佛法)을 새겨 넣기도 했다.

 

제4장

가르침과 유행(遊行)

 

자신이 발견한 법에 전적으로 헌신하기로 결심한 붓다는 그 가르침을 힘닿는 데까지 펼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설법을 듣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고 고통받는 것을 몹시 안쓰럽게 여겼다. 그래서 불교의 근본 교리를 전파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기로 결심한다.

목동과 암소. 중앙아시아 키질 동굴에서 발견된 벽화로 불법은 포교대상에 제한이 없고 누구에게나 이해될 수 있는 것임을 상징하고 있다.

승단에 들어가면 비구는 우선 여러 가지 계율을 지키도록 교육을 받는데, 이는 가르침을 쉽게 깨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제 자신이 그 가르침을 널리 전파해야 한다. 광배(光背)에 둘러싸여 연꽃 위에 앉은 붓다가 가르침을 베푸는 장면을 표현한 이 벽화는 중앙아시아 쿰투라에서 발견된 7세기 작품이다.

인도 북중부 지역 산치에 세워진 B.C. 1세기 탑에서 발견된 위 부조는 붓다의 존재를 보리수 밑의 보좌, 불족석, 법륜 등의 상징물로 설명한다. 이 상징물들은 부조 속에 그려 놓은 사건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위는 붓다가 카필라바스투로 귀향했을 때 석가족이 보는 데서 천도(天道)를 걸어간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아래는 범람하는 네란자라강을 묘사하고 있는데, 홍수의 피해자인 카샤파 형제(배를 탄 사람들)가 버린 희생제에 쓰이는 도구들이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다.

전지전능한 붓다가 될 사람이 잠든 아내와 갓난 아들을 내버려두고 도성을 떠났다. 가우타마의 아내는 남편이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혹은 자식을 아버지에게 소개하고 싶어했는지 알 수 없지만, 6년이 지난 지금 아들을 붓다에게 보이며 '유산'을 나눠 달라고, 왕위계승권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그림은 이 사건을 그린 5세기 그림이다. 그러나 불법의 발견 이외에는 어떤 것에도 미련이 없던 붓다는 가르침 이외에 유산으로 남겨 줄 것이 없었다. 아들 라훌라는 아버지 붓다의 권유로 붓다를 따라 반얀숲으로 가서 붓다의 두 수제자에게서 구족계를 받아 최초의 사미가 되었다.

B.C. 2세기에 바르후트에 있는 돌기둥에 조각된 원형부조이다.

슈라바스티에서 프라세나지트왕이 입회한 가운데 열린 토론회는 불교의 괄목할만한 교세 확장에 놀란 경쟁교단의 지도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런 토론회에서 승리자가 된 교단은 어떤 상황에서도 교세가 확장되게 마련이었다. 평상시에는 신통력 사용에 신중을 기했던 붓다도 이번만큼은 신통력을 보여 주어야 대중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먼저 '쌍둥이 기적(발에서 물을 뿜고 어깨에서 불을 뿜는 것)'을 보였고(위 부조) 뒤이어 '망고나무의 기적'을 보였다. 붓다는 망고 나무의 이파리에 자신의 균형잡힌 네 가지 모습-서 있고, 걷고, 앉아 있고, 누워 있는-이 드러나게 했다. 1734년에 제작된 아래 타이 그림은 네 가지 모습 중 세 가지만 재현하고 있다.

바르후트에서 나온 B.C. 2세기의 부조는 제석천의 신들 앞에 심어 놓은 마법의 나무 아래 앉아서 불법을 설파하는 붓다를 묘사하고 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하늘에서 내려오심'은 인기 있는 일화였다. 불교예술가들은 붓다의 평온함과 신들의 커다란 기쁨을 즐겨 묘사했다.

불교의 지옥은 기독교의 연옥과 비슷하다. 지옥에 들어간 중생은 계율을 위반한 죄에 대하여 가혹한 징벌을 받고 다시 태어나게 된다. 방콕에서 나온, 지옥을 묘사한 이 그림은 도덕심을 고취시켜 준다.

 

제5장

반열반(般涅槃)

 

붓다는 마침내 자신이 마지막 삶의 마지막 해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을 안 붓다는 더욱 설법에 전념했고 여러 단체, 특히 곧 지도자를 잃게 될 승단의 앞날에 대해 많이 조언했다. "나는 이미 인생의 여로를 지나 나이 80이 되었다. 이 세상에 있을 때 자기 자신을 의지처로 하라. 법을 등불로 삼고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라."

바르후트 유적에서 나온 B.C. 2세기의 부조는 붓다를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코살라국의 프라세나지트왕을 그렸다. 다졌던 왕은 붓다에게 많은 보시를 했고 국정을 포함하여 많은 사항에 대해서 붓다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마가다왕과 쿠시나가라 일대의 여섯 부족 왕들은 말라족에게 붓다의 유골을 공평하게 나누어 갖자고 요구해 왔다. 그러나 붓다의 장례식을 자기네 땅에서 거행하고 또 주관한 말라족은 유골을 모두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다른 부족들의 공손한 요구가 무력시위를 앞세운 위협으로 바뀌었다. 산치 스투파에서 나온 부조는 미연에 그친 유골전쟁을 그리고 있다.

 

제6장

가르침의 전파

 

"오, 비구들이여! 이제 중생들을 위해 길을 나서라.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고 자비심을 베풀어라. 불법을 설하라. 불법의 진수를 전하라. 수행이 얼마나 사람을 청정하게 하는지 보여 주어라."

《디뱌바다나》

(기원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게송으로,

제목은 '신통한 공적'이라는 뜻임)

 

브라만 계급으로 태어난 수제자 마하카샤파는 근엄하고 철저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이런 자질 때문에 그는 1차 결집을 주재할 수 있었다.

전륜성왕-바퀴를 굴리는 사람-은 삼십이상을 갖고 있다.

성물보관함이라든가 스투파 같은 불교기념물은 불교에서 처음 만든 것은 아니었다. 이들 기념물의 기원은 청동기시대나 철기시대에 세워진 고분건축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원후가 되면서 이들 구조물의 모습은 원추형으로 진화하여 스투파의 특징을 갖추었다. 아누라다푸라의 루반벨리세야 다가바(아래)는 19세기에 원래 모습대로 복구된 스리랑카 스투파인데 아주 초기의 모습을 재창조해냈다고 평가되고 있다. 카투만두의 보드나트에 있는 스투파(위)는 붓다들의 특징이라고 여겨지는 눈썹 사이의 털과 두 눈을 그려 넣어 아름답게 장식했다. 스투파의 양식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카슈미르 북동부에 있는 라다크 스투파는 티베트 형식에 큰 영향을 받았으나, 타이 수코타이의 와트 마하타트에 있는 14세기 스투파는 원시적인 형태의 스투파를 약간 길게 늘여놓은 꼴이다(가운데).

산치 대탑은 B.C. 2세기 또는 1세기경에 아소카왕이 세운 스투파의 유적 위에다 덧세운 것이다. 돌로 된 난간과 네 개의 기념비적인 기둥은 B.C. 1세기에 만든 것이다. 경건한 신자의 시주로 제작한 조각들은 목공, 금속공, 석공 등이 모두 동원되어 작업을 벌였다고 한다. 연속되는 한 편의 이야기를 묘사한 이 조각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고대 학파(바르후트)가 즐겨 다룬 자타카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붓다의 생애와 불교의 역사에서 빌려 온 장면들이 더 선호되고 있다. 서쪽 기둥에는 바퀴가 그려져 있어서 최초의 설법을 상징하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한편, 세 개의 스투파는 유골의 분배를 그리고 있으며, 가장 아래의 수평 부분에는 마라를 굴복시킨 일, 보리수 아래에서의 성도, 유골전쟁, 쿠시나가라 포위 등이 새겨져 있다.

첫번째 설법이 이루어진 곳을 기념하기 위해 아소카는 사르나트에 15.2m 높이의 돌기둥을 세웠다. 아래 부분은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고 위 부분은 사르나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불교사원 와트 프라 시산페트는 15-16세기에 당시 타이의 수도인 아유타야의 왕궁 근처에 세워졌다. 1767년 미얀마가 타이를 침략하면서 파괴된 이 사원은 그뒤 복원되지 않았다.

최초의 설법을 하고 있는 붓다.

관대한 원숭이의 이야기를 그려 넣은 2세기 부조.

중국 순례승 현장을 그린 7세기 초상화.

요하게

 







 

 

posted by 황영찬
2015. 3. 21. 12:43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32 만인보 - 70년대 사람들

 

高銀

1997,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3

 

811.6

고67만  15

 

창비전작시---------------------------------------------------------------------

 

인간이 인간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문학이다. 그런데 인간 혹은 인간적인 것의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면 이제까지의 인간이 아닌 다른 인간의 얼굴을 그려야 하는 예상치 못한 표현의 의무에 부딪쳐야 할 것이다.

인간의 얼굴은 어제의 얼굴이라는 것을 어느 경우이든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일의 인간은 어떤 얼굴일 것인가. 그것은 어제의 그것과 아주 많이 동떨어진 것인지 아닌지 쉽사리 판단할 노릇은 될 수 없겠다.

하지만 내일의 새로운 얼굴은 분명코 그 내일의 진실을 위해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놀라운 현실일 것이다. 이런 사실이야 말로 한 세기를 보내고 또 하나의 세기를 맞이하는 오늘을 가슴 설레게 한다.

여기서 내 의식의 전환기라는 점에서 나에게 고향이 되어준 70년대의 그 원시공동체적인 인간군상이야말로 그것이 박정희라는 반대쪽의 사람이든 함석헌이라는 동지쪽의 사람이든 나를 키워준 육친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머리말」에서


고은(高銀)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1958년 『현대문학』에 시 「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 등을 추천받아 등단.

1960년 첫시집 『피안감성』 간행. 이후 시 · 소설 · 수필 · 평론 등에 걸쳐 100여 권의 저서 간행.

1984년 『고은시선집』 간행.

1986년 『만인보』 간행 시작

1987 ~ 94년 서사시 『백두산』 간행.

제3회 만해문학상, 제1회 대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등 수상.

 

차례

 

한  현 / 김진현 / 강신석 / 젊은 그들 / 청주 한잔 / 정수일 / 이신범 / 백기범 / 문호근 / 이우회 / 가짜 김종필 / 오노다 / 입  심 / 춘  향 / 한명숙 / 호지명 / 홍길동 / 김윤식 / 박종규 / 박기출 / 어머니 ! / 김진수 / 어떤 조약돌 / 허  균 / 김성곤 / 차범석 / 민영규 / 민두기 / 동일방직 노동자 김옥순 / 귀  신 / 금강산 20년 / 이세중 / 대전 이일수 / 김경남 / 탈 / 여섯 대 과부들 / 백기완 마누라 / 반전태일 / 김태길 / 함석헌옹 부인 / 윤순녀 / 청맹과니 / 잡초 양승환 / 겨울 피란 / 이대용 / 장님 가수 이용복 / 임춘앵 / 지  선 / 다 내쳐버리고 / 김준보 / 전형필 / 채명신 / 모안영 / 한세옥 / 최형섭 / 눈 열 개 / 오창영 / 꼭  지 / 정인승 / 세 까마귀 / 이명박 / 이종찬 / 김사달 / 김효임 김효주 자매 / 쌍둥이 교도관 / 춘성 선사 / 그 할머니의 노망 / 게으름뱅이 / 청계천의 밤 / 지팡이 / 고광순 / 소  식 / 무덤도둑 유씨 형제 / 박영석 / 어떤 춘향가 / 임춘자 / 임종률 / 끄나풀 / 마루야마 천황 / 석  녀 / 늙은 농부 / 권정생 / 열두살짜리 점쟁이 / 월명과 더불어 / 성칠이 병국이 / 유성온천 옥화정 / 어떤 귀향 / 이학수 / 운허 스님 / 70년대 젊은이의 밤 유재현 / 백제 무왕 / 대기 주례 / 어린 함석헌의 스승 / 조학래 / 유종호 / 개집안 / 도동의 밤 / 신림동 산동네 이발사 / 김윤식 / 최인훈 / 이장규 / 정점이 할머니 / 임경명 / 섬진강 처녀 / 두 소리꾼 / 윤수경 / 이혜경 / 오  글 / 여  운 / 알몸 농성 / 탁명환 / 노여사 / 이승만 혹은 리승만 / 장봉화 / 초정약수 가족회 / 늙은 위안부 / 배꽃큰계집배움터 / 보리밭 / 에스컬레이터 / 어떤 아이 / 까  치 / '새얼' 모임 / 김진규 소장 / 강연균 / 거지 없는 날 / 허만 칸 / 김봉우

찾아보기

 

가짜 김종필

 

1961년 북한의 남로당 잔존인물 황태성이

임진강 건너

남한에 왔다 쉿

 

그는 경북 선산

김종필의 장모를 통해서

중앙정보부 김종필을 만나자 했다

김종필은 직접 만나기보다

그를 닮은

치안국 정보과 경감 박문병을 보냈다

서울 반도호텔 735호실

30대 미남이었던 김종필

그러나 그 무렵

아직 텔레비전 시대가 아니었으므로

신문이나 잡지 동판사진이

흐릿하였으므로

 

가짜 김종필이 만나든지

아니

진짜 김종필이 만나든지

끝내 황태성은 박정희 김성곤과의 옛 동지임에도

교수형으로

그 시체 내려졌다

 

김성곤

 

눈 서글서글

코 아래 수염 서글서글

마음속 횅뎅그렁하다

아이들이 돈 10원 달라 하면 듬뿍 2백원 준다

해방 직후

대구의 어느해 10월

박상희 황태성과 함께

그 가을의 항쟁을 주도한 재정부장이었다

 

그 뒤 사변 지나

두 마리 용으로 이름 지어

쌍용시멘트

쌍용증권

그리고 동양통신

 

그 두꺼운 손바닥

그 깊숙한 주머니 항상 두둑했다

 

궂은 날 질퍽질퍽한 인심

70년대 초

정계에 발 들여놓아

여당 공화당을 손아귀에 쥐었는데

 

항명파동으로

그 수염 몽땅 뽑혔다 온몸 짓이겨졌다

남산 지하실에서

'이 새끼 이 빨갱이새끼 제 버릇 못 버리고!'

그곳에서 나와

정치도

사업도

그리고 삶도 허허벌판

떠도는 구름이 차라리 옳았다

그렇게 구름이 되어 불현듯 떠나갔다

 

차범석

 

옛날 이야기일까봐

접싯불

참기름불 맑은 불빛 밑

아리따운 아가씨

정성껏 수놓은 수(繡) 같은 사람

그 수틀 위

작약꽃이거나

한쌍 두루미 가운데

암두루미 같은 사람

 

그가 한국 현대연극의 무대 위에서나 뒤에서나

언제나 팔짱 끼고

꼼짝 않고 서 있는 사람

부지런하기는

묵은 빚 일부 받아낸 듯한 이른 아침 잰거름의 사람

 

어디 한 극단 '산울림'만인가

여기도

저기도

그가 가면 알뜰살뜰한 연극 3막 5장이

막 올려

관객들은 그 집안 식구였다

 

말 한마디도 바지 아래

곱게 맨 옥색 대님같이 얌전하기만 하다

 

목포 유달산 제1봉 바위 비탈 아래

나이 먹어도 그대로인

이렇듯 곱단이 꽃의 남정네 태어날 줄이야

차범석 그 사람

 

전형필

 

증조부는 종로 운종가 일대

배오개 일대

상권을 손아귀에 넣어

10만석 거부

 

일제시대 아버지 전영기는 중추원 의관

그런 거부와

그런 유산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 유학 뒤

 

온갖 영달의 기회 가만히 놔두고

은근히

오세창과 교유하는 동안

일제가 가져가는 문화재들을 사들였다

고려청자 운학문 상감청자

그 향기로운 모습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석조 미륵보살 입상

아니

단원 혜원

아니 추사

그런 서화골동과 석물들이 모여

겨레의 문화를 너와 나 함께 지키다가 세상 떠나니

 

채명신

 

구 사이공 호치민시 도심에는

옛날 왕실 공주의 저택이었던 양관이 있다

그곳이 주월한국군사령부

첫 사령관 채명신은

그곳에만 있지 않았다

그 뒤의 이세호는 배가 나왔으나

그는 배가 나오지 않았다

눈썹이 처마처럼 튀어나와

건계의 햇빛이나 우계의 비를 막았다

 

월남전쟁은 무엇인가

월남전쟁으로 이룬 경기는 무엇인가

어쩔 수 없이

한국의 70년대의 자화상이었다

모독을 몰라야 하는

 

오창영

 

창경궁 동물원 이래

몇십년 동안

동물원의 새 한마리 남아 있지 않을 때

그 전쟁 이후

한푼

두푼 모급해서

 

호랑이와도 친구였고

돌고래와도

원숭이와도 친구였다

 

과묵하구나

다른 길 모르는 표정

머리숱 숯빛으로 짙구나

 

시시껄렁한 사람보다

짐승과 더 많이 산 사람

 

사람은 동물원 따위를 만들었다

그러기 전에 사람은

사람의 감옥을 만들었다

 

이명박

 

23세 이사

35세 사장

46세 회장

 

70년대 개발연대기에는

한 샐러리맨이 이렇게 솟아올랐다

 

그 이름 이명박은

언제나 정주영의 이름 옆에 있었다

 

부디 그의 신화가 더 이어질수록

개발이 악이 아니라 선이기를

개발이 정치가 아니기를

 

어디서 잠깐 스칠 때

그 작은 눈

그 볼품없는 얼굴만이 보인다

정작 그 지략과 추진력의 힘은 몸안에 있다

 

이종찬

 

일제 36년 끝장났을 때

중국 오지 중경에서

멀리 동으로 동으로

상해까지 오는 데도 아득하였다

 

상해에서는

바다 건너에 조국이 있다

 

작은할아버지 이시영옹 옆에

어린아이 종찬이 서서

사진 찍었다

 

그 어린이는 돌아와 가난했다

경기중학 다닌 뒤

그래서 사관학교로 갔다

흡사 서간도 신흥군관학교인 듯이

 

그 젊은이가 정보장교가 되어

여당에 몸담기까지

그 뒤

야당에 몸담기까지

그 정치 1번지 종로 일대의 한 시절

 

정치가 가야금 산조라면 얼마나 좋으리

달 밝은 밤

가야금 산조 마친 뒤의

그 고요라면 얼마나 좋으리

 

이승만 혹은 리승만

 

차라리 국부(國父)라는 것 없는 것도 심심치 않음이로다

리승만 혹은 승만 리

그의 구어체와 문어체의 무차별

지난날 상해 임시정부나

하와이 독립운동에서의

주머닛돈과 쌈짓돈의 무차별

오직 나를 따르라

 

나를 따르면 살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죽을 것이로다

 

그의 뜻대로

현대 한국정치는

그의 실패에 의해서 실패가 모방되고 있다

 

그의 생애는 갈등과 불화 그의 씰룩씰룩 안면 경련

그리고 전쟁이었다

그 전쟁 지나서 그는

지난날의 하와이로 떠났다

 

미국제 관에 누워 안면 경련 멈춘 평화로 굳어버린 채

고국에 돌아왔다

동아시아 군웅들이여

모름지기 그를 본받아 성취하고 실패하라

내일은 내일에 맡겨라

 

 

posted by 황영찬
2015. 3. 18. 16:42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31 선암사


글 / 이계표, 천득염, 최인선●사진 / 이돈기, 최인선

2003, 대원사



시흥시매화도서관

SH013813


082

빛12ㄷ  236


빛깔있는 책들 236


이계표(연혁)--------------------------------------------------------------------

전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전남대, 목포대학교 사학과 강사와 광주시사편찬상임위원을 역임하였다. 현재 광주대, 여수대학교에서 한국사를 강의하는 한편 문화재전문위원, 남도불교문화연구회장으로서 불교사 조사 ·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신라 하대의 가지산문」, 「신돈의 화엄신앙과 공민왕」, 「전남의 사찰 Ⅰ(연혁)」 등 여러 편이 있다.


천득염(건축)--------------------------------------------------------------------

전남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하버드대학교 미술학과에서 수학하였으며 문화관광부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전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건축사, 서양건축사를 강의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백제계석탑의 조형특성과 변천에 관한 연구」를 비롯하여 불탑 관련 논문을 20여 편 발표하였다. 저서로는 『전남의 전통건축』, 『운주사』, 『전탑』, 『향토사의 길잡이』, 『한국의 명원, 소쇄원』 등 다수가 있다.


최인선(유물)--------------------------------------------------------------------

전남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순천대학교 사학과 교수 겸 박물관 조사부장으로 있으며 전라남도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광양 옥룡사 선각국사 도선의 부도전지와 석관」, 「순천 금둔사지 석불비상에 대한 고찰」, 「강진 옥련사 목조석가여래좌상과 복장」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가지산 보림사』, 『한국철불연구』, 『광양옥룡사지 Ⅰ』, 『호남의 불교문화와 불교 유적』 등 다수가 있다.


이돈기(사진)--------------------------------------------------------------------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전라남도 순천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궁』, 『탈』, 『전남 동부지역 유적과 유물』 등 전통 문화에 관련된 사진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차례|


천년 고찰 선암사

선암사의 역사와 승려

가람 배치와 건축

선암사의 유물

선암사 가는 길

참고 문헌


조계산 선암사 전경



선암사 장승  입구의 부도밭을 지나면 길가에 장승 한 쌍이 서 있는데 모두 남자이다. 밤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몸통에는 '방생정계(放生淨界)'라는 글씨가 씌어 있다. 세 가닥 수염을 늘어뜨리고 눈을 부릅뜨고 있지만 왠지 친근한 느낌을 준다.

대각암 대선루  정유재란 때 전라도의 사찰은 왜군의 침략으로 거의 불에 타거나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선암사 역시 초도화되어 대부분 흔적조차 없게 되었다. 이 건물은 순조 19년(1819)에 중수한 것이다.

선암사 차밭  장경각 뒤로 난 좁은 문을 지나 경내를 벗어나면 차밭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만든 차는 맛과 향이 좋기로 소문나 있다.

호암 약휴 영정  선암사의 제5차 중창주로 정유재란 이후 모두 불타버린 선암사를 복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선암사 소장. 사진 : 성보문화재연구원.

「선암사중창건도」  선암사의 각종 건물은 물론 다소 떨어진 암자까지 그려져 있는 귀한 자료로, 선암사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특히 도면 위에 기문이 있어 가람의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승선교  다리의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속계에서 선계로 오르는 정취를 자아낼 만큼 주변의 경치나 분위기가 극적이고 아름답다. 반원형의 아치지만 물에 비친 반원과 이어져 가득한 원을 이룬다. 요석(중심돌, 아래) 아래는 조그마한 석재를 빼내어 신기한 모습을 이루는데 마치 용의 모습 같다.

강선루  사찰의 출입용 문루 역할을 하는 팔작지붕의 중층 누각이다. 사찰의 실질적인 경역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일주문  사찰의 권위를 표현하고 금표나 경계의 기능을 갖는다. 일주문 양쪽으로 담장이 연결되었고 돌계단으로 층계가 연결되어 있다.

만세루  강당에 해당하는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2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의 목조 건물이다.

대웅전  사찰의 주불전으로, 정유재란 때 모두 소실된 뒤 현종 원년에 경잠, 경준, 문정 세 대사가 주축이 되어 현재의 대웅전을 중수하였다고 한다. 현재 모습은 정면 3칸, 측면 3칸인 다포 양식의 팔작집으로 장엄하고 화려하다.

불조전  사찰의 개창자나 중창자, 중수자 및 역대 주지들이 모셔지는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목조 팔작기와집으로 주심포 형식에 익공 형식이 가미된 조선 후기 건물이다.

원통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아담한 건물로 정면에 각각 두 개의 기둥과 활주를 내어 사찰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사찰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T자형 평면을 이룬다. 내부에는 '대복전'이라는 순조 친필 현판이 걸려 있다.

장경각  각종 경전을 보관하는 건물이다. 주심포와 익공 형식을 혼합한 모습으로 조선 후기 목조 건축에서 흔히 나타난다.

삼성각  대웅전 북서쪽에 있는 조그맣게 간결한 건물이다. 여느 사찰의 삼성각과 마찬가지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응진당  선암사의 경역 내에서는 가장 뒤쪽에 있는 조그마한 승원이며 이 영역의 주불전이다. 중심축 좌측에는 달마전이, 우측에는 진영당이 배치되어 있다.

진영당  선암사 큰스님들의 진영을 모셔 놓은 곳으로 조촐하고 조그마한 건물이다.

무우전  선암사에서는 제일 외진 곳에 위치하여 선방으로는 적격이다. 사찰의 요사체라기 보다는 양반집을 연상케 하는 건물이다.

대변소  '뒤ㅅ간'이라는 현판이 붙은 T자형 건물이다. 바닥의 짜임이 우수하고 남 · 여 칸을 구분하거나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도록 2열로 배치한 고려가 흥미롭다.

각황전 철조 여래좌상  각황전에 봉안되어 있는 주존불이다. 정유재란 때 크게 손상을 입어 정확한 조성 연대를 알 수 없으며 현재는 개금한 상태이다.

마애여래입상  높이가 5미터에 이르며 상호가 다소 이국적이다. 드러난 가슴 부위에는 卍자가 선명하고 크게 새겨져 있다.

천불전 금동 관음보살좌상  원대 라마교 불상 계열에 속한 이국풍의 보살상이다. 머리에 쓴 보관은 삼면관의 형태이며 화려하고 복잡한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처음 출토되었을 때는 검게 그을려 있었는데 지금은 개금하여 아주 화사해 보인다.

대웅전 목조 여래좌상  규모가 큰 목불로 위엄이 있어 보이나 조각 기법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조성 양식과 대웅전 건물의 중창 사실 등을 종합해 볼 때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응향각 목조 비로자나불좌상  높이가 55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소형 목조불로 조선 후기 양식을 보인다. 손을 가슴 앞에 모아 오른손 전체를 감싸는 특이한 수인 형식을 보인다.

팔상전 목조 아미타여래상  높이 82센티미터에 비슷한 형식을 보이는 2구의 불상은 17세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불조전 목조 53불상과 과거7불상  60불이 모두 거의 동일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상호를 약간 숙이고 눈은 수평이며 입은 작다.

동3층석탑  서쪽의 3층석탑과 함께 보물 제395호로 지정되어 있다. 두 개의 석탑은 외관상으로는 크기와 양식이 서로 비슷하여 동시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약간씩 다른 양식을 보인다.

동3층석탑 발견 금동사리탑  8각을 기본으로 한 원당형 탑이다. 중앙에 원추형의 기둥이 있는데 윗면을 반구형으로 파서 사리를 봉안하게 하였다. 그 기둥을 수정체 8각 뚜껑으로 덮고 다시 금동의 전각형 뚜껑을 덮게 되어 있다.

북부도  8각원당형으로 신라 석조 부도의 전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데, 선암사의 3부도 가운데 가장 뛰어난 수작이다. 보물 제1184호.

동부도  선암사 부도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석조물로서 기단부와 탑신부에 비해 옥개석이 과장되게 큰 것이 특징이다. 보물 제1185호.

대각암부도  탑신부에 비해 기단부 중대석이 균형을 잃고 있으나 옥개석의 장중함이나 하대석의 정교한 구름문은 통일신라시대의 기법을 보여 준다. 보물 제1117호.

선암사 입구 탑비전  현재 11기의 부도와 8기의 비가 있다. 이들 부도 형식은 대부분 오륜형이며, 계음당부도와 침굉당부도가 석종형을 하고 있고, 화산대사부도(아래) 만이 특수형으로 4사자부도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서부도전  승선교와 강선루를 지나 삼인당에 이르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이곳에서 왼쪽 계곡을 따라 약 100미터 정도를 올라가면오른쪽 산기슭에 서부도전이 위치한다. 여기에는 석종형과 오륜형의 조선시대 부도 12기가 봉안되어 있다.

선암사중수비와 사적비  2기 모두 귀부 위에 비좌를 마련하여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이수를 올려 놓은 통식의 귀부비이다.

괴불  가로 682센티미터, 세로 1,215센티미터의 거대한 석가모니 불화이다. 장중하면서도 간결하여 뛰어난 작품성을 보여 준다.

대각국사 영정  선암사에는 여러 조사들의 영정이 소장되어 있는데, 대부분 기록이 없어 정확한 조성 연대를 알 수 없다. 대각국사 영정은 가로 103센티미터, 세로 127센티미터로 오른쪽을 향한 측면상이다. 보물 제1044호. 사진 : 유남해.

'순치 14년' 명 범종  현재 대각암에 있으나 원래는 보성 대원사 부도암에 있었던 것을 옮겨 온 것이다. 높이는 83.6센티미터이며 주조의 조각미가 뛰어나 조선시대의 걸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은입사 향로  전형적인 고려 향완 형식으로 은입사 기법을 이용하여 문양을 넣었다. 동제로 깊은 완형 위에 넓게 수평으로 퍼지는 전이 달린 노신과 밑이 나팔 모양으로 퍼지는 높은 받침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높이 29.5센티미터.

'숭정 6년' 명 향로  노신과 받침이 분리되는 결구식으로, 나팔형으로 퍼지는 받침 하단 윗면에 가는 침을 사용해서 명문을 점선으로 새겼다. 전체 높이 32센티미터.

금란가사  대각국사 의천의 가사로 고려 선종 4년에 왕이 하사한 것으로 전한다. 긴 사각형이며 비단 바탕에 금실로 글자와 무늬를 전면에 가득 짜 넣었다.

용문탁의  금란가사와 함께 의천의 유품으로 전한다. 법상의 덮개, 곧 탁상보로 짐작되는 데 문양과 글씨를 금사로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길이 216.5센티미터, 너비 118센티미터.

삼인당  신라 경문왕 2년에 도선국사가 축조한 것으로 전한다. 타원형이며 연못 안에 긴 계란형 섬이 있다. 1996년 순천전통문화보존회(회장 박관수)의 지원으로 복원되었다.

달마전 석조  사각형의 석조 1기와 원형의 석조 3기가 조화를 이루면서 서로 잇대어 있다. 서로의 높낮이와 크기가 적절히 배치되어 있어서 아름다움을 더한다.

『』







posted by 황영찬
2015. 3. 18. 13:03 내가 읽은 책들/2015년도

2015-030 만인보  - 70년대사람들

 

高銀

1997,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802

 

811.6

고67만  14

 

창비전작시---------------------------------------------------------------------

 

인간이 인간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문학이다. 그런데 인간 혹은 인간적인 것의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면 이제까지의 인간이 아닌 다른 인간의 얼굴을 그려야 하는 예상치 못한 표현의 의무에 부딪쳐야 할 것이다.

인간의 얼굴은 어제의 얼굴이라는 것을 어느 경우이든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일의 인간은 어떤 얼굴일 것인가. 그것은 어제의 그것과 아주 많이 동떨어진 것인지 아닌지 쉽사리 판단할 노릇은 될 수 없겠다.

하지만 내일의 새로운 얼굴은 분명코 그 내일의 진실을 위해서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놀라운 현실일 것이다. 이런 사실이야 말로 한 세기를 보내고 또 하나의 세기를 맞이하는 오늘을 가슴 설레게 한다.

여기서 내 의식의 전환기라는 점에서 나에게 고향이 되어준 70년대의 그 원시공동체적인 인간군상이야말로 그것이 박정희라는 반대쪽의 사람이든 함석헌이라는 동지쪽의 사람이든 나를 키워준 육친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머리말」에서


고은(高銀)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1958년 『현대문학』에 시 「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 등을 추천받아 등단.

1960년 첫시집 『피안감성』 간행. 이후 시 · 소설 · 수필 · 평론 등에 걸쳐 100여 권의 저서 간행.

1984년 『고은시선집』 간행.

1986년 『만인보』 간행 시작

1987 ~ 94년 서사시 『백두산』 간행.

제3회 만해문학상, 제1회 대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등 수상.

 

차례

 

이우재 / 유영모 / 강희남 / 황한식 / 천영초 / 이호웅 / 민종덕 / 한  신 / 최권행 / 어느 고등학생 / 박희범 / 백작부인 이옥경 / 백영서 / 성남옥 / 안성열 / 박한상 / 김진홍 / 서임수 / 이위종 / 서경원 / 신인령 / 이양구 / 김영준 / 김  형 / 군부대신 이근택 / 정진동과 더불어 / 양  홍 / 권근술 / 손창섭 / 대전역 보선원 임씨 / 창신동 노파 / 고흥의 한 영감 / 오대영 / 권오헌 / 박영록 / 이이화 / 조승혁 / 박광서 / 은명기 / 김덕생 / 최정순 / 이을호 / 박지동 / 금호동 김씨 / 이경배 / 예  종 / 이종욱 / 음력 정월 명동성당 앞길 / 욕쟁이 아저씨 / 조정하 / 원  택 / 성  철 / 김사형 / 성  종 / 이직형 / 박종만 / 최민석 / 임중빈 / 문병란 / 지철로왕 / 한창기 / 이상신 / 조세희 / 이낙호라는 사람 / 스승들 / 삼  대 / 윤필용 / 윤구병 / 박완서 / 월산 선사 / 한경남 / 최장학 / 박재봉 / 김중배 / 어린이의 날 / 성한표 / 강문규 / 김지길 / 양관수 / 신라말 경명왕 / 제  칼 / 김도연 / 심재택 심재원 형제 / 정신 이상의 아내 / 권영빈 / 홍지영 / 정창렬 / 두 청소부 / 최  동 / 오직 '물러가라 !' / 신석초 / 송언형 / 김동우 / 이태복 / 함윤식 / 1971년 4월 19일 / 해남 일지암터 / 차옥숭 / 이근후 / 서중석 / 해부루 / 아브라함 집안 / 김상철 / 민주회복국민회의 / 조선 중종의 눈 / 김규동 / 김도현 / 이중한 / 최병서 김선주 / 조춘구 / 유인택 / 신직수 / 함병춘 / 이범석 / 안양노 / 박범진 / 박종태 / 김종규 / 안병직 / 김민기 / 양희은 / 재수생 / 단계벼루 / 김영환 / 박인배 / 양호민 / 윤걸이

 

조세희

 

우툴두툴한 마른 유자껍질 얼굴의 젊은 작가

갈색의 작가

막 건져올린

남대천 귀향의 연어이기도 한 작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것이 70년대 현실과 상징 사이

끈질긴 문학의 암초일 줄이야

 

그렇다 모두 다 난장이었다

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란

누구인가

 

조세희는 그것을 쓰고 시대의 잠수부가 되어

늘 물위에 떠오르지 않은 채

물속의 중세 근세를 헤험치다 솟아올라

물위의 오늘을 보았다

 

그는 끝내 글을 버리고 사진을 찍고 찍었다

 

박완서

 

개성 가는 길

개성 못 미쳐

개풍 있다

서울역에서 거기까지만 가도

경의선 살아나겠다

 

박완서

딸 여섯

아들 하나 출무성히 길러

시집 보낸 딸도 있는데

 

그 오랜 주부노릇 끝에 소설을 시작했다

 

저 50년대

전쟁과 전쟁 이후의 폐허에서

그 폐허의 순정이던

화가 박수근을 기억했다가 소설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가장 부지런한 소설가였다

때로는 인간에 대해서

무자비하리만큼 후벼내어

 

마치 고깔쓴 이승의 승무인 양 날렵하고

입안에 장수(長壽) 이빨이 다른 사람보다 많다

그 눈은 순하건만

세상을 볼 때는 칼날이기도 한가

 

그가 본 세상의 한 귀퉁이 피가 난다

 

이범석

 

놀랍다 그에게는 문학이 가능했다

어린 시절 경성고보 다니다가

그 길로 뛰쳐나가

대륙의 혁명가가 되었다

말 달리던 시절

그는 말 탄 전사가 되었다

그의 문학적 기질

그의 무용담(武勇談)의 주역이 되게 했다

 

청산리전투의 일선 지휘관

 

소만 국경

중국 오지

그리고 해방 후 돌아와

초대 국무총리였다

 

국가지상

민족지상

 

그러나 그의 민족청년단 계보는 무너졌다

어느 만큼 그의 우등불에는 허구가 깃들였고

어느만큼 그의 무골에는 낭만이 서려 있다

 

오로지 말 한필과

지난날의 벌판을 기억햇다

그러다가

말 남겨두고

그가 떠났다

철기 이범석

그의 이름 뒤에는 반드시 장군이었다


김민기


그 시절 비 오는 날

맨발로

도시의 거리를 헤매기도 하였지


어두운 시대

그가 지은 노래들은

국가(國歌)였지

독재의 나날

대학생에게도

제적생에게도


정작 그는 미행당하며

어디 가서 농사도 지었지


그러나 그의 노래는 한 시대의 광장과 골목에서 마음껏 퍼져나갔지


양희은


60년대 청년문화 그리고 통기타

서강대 사학과 여학생인데

이미 한 가족을 꾸려가는 가장이었다

양희은


그의 당당한 목소리에 와서

몇십년의 청승인 이난영 황금실 이미자가 아니었다

김추자가 나왔다


그런 노래 저쪽에서

70년대 「아침이슬」이 새로 들려왔다

응혈의 음색

투원반의 음향

슬픔도 슬픔이 아닌 의지


겨울공화국 나뭇가지들에 바람이 걸려 울었다


양희은과

양희은의 비겁할 줄 모르는 통기타


치사할 줄 모르는 노래

이 셋이 시대의 자유를 꿈꾸었다 모두와 함께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