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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3. 30. 15:52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34 탄허록呑虛錄

 

탄허 지음

2012, 휴

 

 

대야도서관

SB071780

 

224.2

탄94ㅌ

 

미래사회의 주인공에게 남긴

100년을 내다본 지혜 모음

 

유불선 3교 융합을 나침반 삼아

우주관과 생사관을 꿰뚫은 탄허 스님에게 듣는다

우리가 고요한 곳에서도 도 닦는 것은 시끄러운 데 쓰기 위함이다. 예를 들면 돈벌이하는 것은 가난한 데 쓰자는 것이요. 깨달음은 얻어서 수많은 중생구제를 하기 위함이다.

고통스러움을 어떻게 벗느냐 하는 데 있어 성인의 구원을 받는 방법도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남에게 의지하는 것으로 스스로 벗어나는 것만 못하다. 시끄럽고 고통스러운 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생사의 큰 문제를 자유자재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종교의 궁극적인 목표라 하겠다. - 본문 중에서

 

"물 한 잔으로 산불을 끌수는 없다.

한 개인, 한 종교인의 힘은 미약하다.

하지만 언젠가 그 한 잔 물이

동해물로 변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탄허

1913년 독립운동가 율재栗齋 김홍규金洪奎 씨를 부친으로 전북 김제에서 출생했다. 속명은 택성鐸聲, 신식 학교 교육이 시작된 시절이었으나 엄격한가통家統에 묶여 신교육은 엄두도 못 내고 집에서 수학했다. 20세까지 유학을 공부하다가 다시 3년간 도교에 심취하였는데, 지금 '노장 철학의 대가'로 손꼽히는 도교 지식도 이때에 흡수한 것이다.

탄허 스님이 입산한 것은 22세 때의 일로, 17세에 성혼하여 이미 아들까지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평생의 스승을 찾아 동서남북으로 구도의 편지를 띄우기 수년, 당시 오대산 상원사에 있던 한암 스님의 성화(聖華 : 훌륭한 이름)를 듣고 편지를 낸 데서 불교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첫 답장이 오고 다시 편지 왕래를 하기 3년, 갓 쓰고 도포 입은 유생은 "짧으면 3년, 길어야 10년"을 기약하고 오대산을 찾아들었으나, 한암 스님의 인품에 매료되어 이것이 영영 탈속의 길이 되었다.

스승인 한암 스님이 입적하기까지 21년 동안 줄곧 상원사에 머물렀던 탄허 스님은 6 · 25 이후 동래 범어사, 통영 용화사, 삼척 영은사 등지에 잠시 몸을 담았다가 격화하는 비구 · 대처 싸움을 피해 다시 상원사로 갔다. 이 시기를 제외한다면 그의 승려 생활은 오대산 상원사에서 보낸 것이 대부분이다.

1955년 한국대학(지금은 폐쇄됐음)의 요청으로 맡았던 노장철학老莊哲學 강의는 오늘날까지 명강의로 유명하다. 처음 1주일 예정이었던 것이 수강생들의 요청으로 두 번에 걸쳐 연장, 두 달간을 끌었다. 이 강연의 수강생 명단에는 함석헌 선생에서부터 양주동 박사에 이르기까지 당대 쟁쟁한 학자들도 적잖게 포함되어 있어 근의 명망이 어느 정도였는지 엿볼 수 있다.

한암 스님은 생전에 화엄경론의 집필을 기구했었는데, 수제자 탄허 스님의 10년에 걸친 대불사도 그의 유촉에 의한 것이다. 1961년 그 유촉을 받들어 방대한 규모의 화엄합론 번역을 시작했다.

'자구字句 하나하나에 피가 맺히는 난해한 연의演義 작업'에 매달려 발원한 지 10년만인 1971년 봄, 원문 10조 9만 5천 48자에 달하는 《화엄경》 80권 집필을 마쳤다.

부처가 행한 49년의 설법 중에서 가장 심오하고 위대하며 광대무변하다는 《화엄경》은 일본에서 번역 · 출판된 적은 있으나 논論을 번역, 주석한 학자는 없었다. 화엄학뿐만 아니라 동양사상의 집대성이라고나 할 이 집필은 원고지로 6만 2천 5백여 장이나 되는 대불사이며, 출판 경비가 당시 돈으로 무려 수천만 원으로 추정되어 탈고 2년 만이 지난 시점까지 출판 기금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이 예기를 들은 일본불교신도회에서 원고를 사겠다고 나섰지만, 탄허 스님은 이를 뿌리쳤다. 후대에라도 좋으니 우리나라 국민들의 손에 이 원고를 꼭 넘겨주고 싶은 염원에서였다.

우여곡절 끝에 이 원고는 1975년 《신화엄경합론》이란 이름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으며, 탄허 스님은 역해 완간 공로를 인정받아 동아일보사 주최 제3회 인촌문화상을 수상했다. 이 경전은 자상한 주석을 곁들여 우리말로 옮겨 놓음으로써 "원효 · 의상 대사 이래 최대의 불사"를 이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평생을 불교 경전 연구와 번역에 전념한 탄허 스님은 선교 양종에 수 많은 업적을 쌓았고, 이러한 체계 위에서 동양의 마음을 찾으려 애쓴 대표적인 학승이었다.

1983년 오대산 월정사 방산굴에서 세수世壽 71세, 법랍法臘 49세로 열반에 들기 전까지 탄허 스님은 동양의 역학 원리로 어제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내일의 역사를 예지한 선지식이자 선지자였으며, 비록 몸은 산간에 머물렀으나 눈은 우주의 운행을 꿰뚫어 보았다.

 

사진으로 보는 탄허 스님의 일생

 

탄허 선사 평복 진영

20세 때 입산 전 글방 앞에서

32세 때 동문수학한 속가 친구

월강 선생과 함께

1967년 3월경 10년 만에 드디어 63,000여 장에 달하는

《신화엄경합론》 번역 원고를 탈고하다.

1956년 가을 무렵부터 수도원의 교재로 쓰기 위하여 본격적으로 《신화엄론경합론》 등에 대하여 번역에 착수하다. 본경에는 《화엄경》 80권과 《통현론》 40권, 청량 국사 《화엄소초》 150권, 《회석》 7권, 《현담》 8권, 보조 국사의 《원돈성불론》 1권,  계환 선사의 《화엄요해》 1권과 탄허 스님의 주석 등 287여 권의 집대성이다.(탄허 스님 역저서 모음)

말년에 집필하던 대전시 유성 자광사慈光寺 전경. 대전에 자광사를 창건한 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장경과 소지품을 이곳으로 옮겨 '장경각藏經閣'이라 이름하고 장경 번역에 몰두하면서 제방의 지인들을 접견하며 출판을 계속하다.

1979년 대구 거사림居士林에서 수차례 청법하여 대구 극장에서 법문하시던 모습.

탄허 스님이 직접 쓰신 글씨와 열반에 드신 처소 오대산 월정사 방산굴.

1983년, 5년 전부터 보이기 시작한 미질微疾이 봄에 이르러 더욱 더 악화되다.

음력 4월 24일(양력 6월 5일) 오대산 월정사 방산굴方山窟에서 세수世壽 71세,

법랍法臘 49세로 열반에 드시다.

열반 당시 시봉 환원 수좌가 물었다.

"스님, 여여如如하십니까?"

"여여하지 몽롱하랴!"

제자 대규수중 수좌가 말했다.

"법연法緣이 다 된 것 같습니다. 한 말씀 남겨 주십시오."

"일체무언一切無言이다!"

때는 선사가 66세에 입적할 때를 예언하신 날이다.

열반 당시 사부대중 50여 명이 선사의 입적을 지켜보며 오열했다.

1986년 4월 24일(음력) 오대산 상원사에 부도浮屠와 비碑가 세워지다.

 

|차례|

 

사진으로 보는 탄허 스님의 일생

책 머리에_다언多言의 병

내가 만난 탄허

 

|1장|

예지_대한민국과 주변국의 미래를 보다

· 도道가 깊어지면 예지도 깨어난다

· '보통 사람과 다른 선견지명이 있다'

· 국난이 닥칠 것을 예지로 간파한 인물들

· 역사에도 인과응보가 있다

· 한반도가 세계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

· 대한민국과 주변국의 관계에도 음양의 이치가 작용하니

· 빙하가 녹고 일본 열도가 침몰하리라

· 동아시아가 세계사를 주도하리라

· 비책秘冊에 담긴 민족사의 수수께끼

 

|2장|

정치_지도자의 역량이 국운의 방향타

· 지도자가 신뢰받을 때 법法과 영令이 바로 선다

· 법과 형벌로 다스림은 하수의 정치다

· 탐심 있는 지도자를 경계하라

· 먹을 게 적은 것보다 공평하게 분배 못 하는 것을 걱정하라

· 국가의 미래를 밤새워 고민하는 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라

· 나라의 운명, 지도자의 심성에 달려 있다

· 국민을 위한 철학부터 갖추라

· 도덕을 숭상한 조상의 덕이 후세에 미치리라

· 미래 사회를 준비할 도의적 인물이 절실하다

· 국운이 트이는 시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3장|

철학_한 마음이 꿈을 일으키고 우주를 일으키니

· 술術은 도道가 아니다

· 아는 것보다 아는 것이 끊어진 각覺을 좇아야

·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놈이 제일 오래 사는 놈이다

· 마음은 우주의 본체

· 안목과 근기에 따라 수행법이 다르다

· 꿈인 줄 알면 해결되는 지혜

· 성인은 성性의 자리, 범부는 정情의 마음자리

· 생명이란 연緣을 만나 운행하게 되는 것

· 무엇으로 평생의 도道를 삼을 것인가?

· 교리에도, 불립문자에도 집착하지 말라

· 부처님은 오고가는 것이 없다

 

|4장|

생사_태어난 이여, 죽음을 피할 길 없구나

· 참선 문에 들어서면 알음알이는 벗어 던져라

· 예禮, 법法, 정情으로 살아가는 삶

· 한마디 이르면 살고 그렇지 못하면 죽는다

· 참선, 마음공부의 핵심

· 근기에 따라 생사를 초월하는 방편들

· 잘못된 수행법

· 삶과 죽음의 문제를 자유로이 해결하는 법

· 생사 문제를 해결한 선사들

· 고요한 곳에서 도를 닦는 것은 시끄러운 데 쓰기 위함이다

· 참되게 안다면 실행은 그 앎 가운데 있다

· 교敎와 선禪, 불교를 이끄는 두 개의 바퀴

· 지知와 覺, 앎과 아는 것이 끊어진 자리

· 생사일여관에는 두려움이 없다

생의 의미와 죽음의 초극

 

|5장|

종교_3대 성인이 세상에 온 까닭을 아는가

· 자기 자신自信을 회복하는 길

· 종교는 바로 내 마음

· 천당 지옥의 유치원 법문이 생긴 까닭은

· 시공이 끊어진 자리

· 우주 만유가 있는 그대로 평등하다

· 구원 받는 2가지 방법, 사참事懺과 이참理懺

· 인류의 소장성쇠는 불멸의 법칙

· 화엄학의 가르침,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

· 말세라도 정신을 차리면 도에 이른다

· 자신이 바로 서지 않고서 누구를 선도하겠는가

· 앞으로 다가올 미래, 종교의 교파를 넘다

 

Q & A 탄허 스님에게 듣는다

탄허 스님의 연보

 

"도가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예지 능력이 생길 수 있다.

날짐승이나 동물들도 예지 본능을 가지고 있는데,

하물며 사람의 예지 본능이야 어떠하겠는가."

"산불을 물 한 잔으로 끌 수는 없다.

한 개인 한 종교인의 힘은 미약하다.

하지만 언젠가 그 한 잔 물이 동해물로 변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우리는 '중생衆生'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서운 말인 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고요한 곳에서 도 닦는 것은 시끄러운 데 쓰기 위함이다.

돈벌이하는 것은 가난한 데 쓰자는 것이요.

깨달음은 얻어서 수많은 중생구제를 하기 위함이다."

"발심發心은 선후가 있을지라도

도道를 깨닫는 데는 앞뒤가 없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