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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7 궁중 유물(둘)

 

글 / 이명희●사진 / 한석홍, 임원순

1997, 대원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18023

 

082

빛12ㄷ  168

 

빛깔있는 책들 168

 

|차례|

 

궁중 유물의 가치

과학기기류

가구류

현판류

제사에 쓰이는 용구

    종묘 제도

금속 공예류

악기류

노부(鹵簿)류

무구류

조각류, 기타

참고 문헌

 

창덕궁 측우대  궁중 유물은 왕실의 전유물이 아니라 한 시대 장인들이 창조한 귀중한 우리 민족의 문화 유산이다. 그러므로 궁중 유물을 보존, 정리하고 궁중 생활을 일반인에게 이해시켜 살아 있는 교육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보물 844호. 높이 30.3센티미터, 가로 · 세로 45.3×45.5센티미터.

보루각 자격루(自擊漏)  1536년(중종 31)에 만들어진 물시계로 시각 표시 및 신호 장치가 없어진 채 물그릇만 남아 있는데 세종대의 물시계를 참고하여 제작된 듯하다. 국보 229호. 

앙부일구(仰釜日晷)  솥 모양의 안 바닥에 시각선이 그려져 있고 영침(影針)은 북극을 향해 비스듬히 세워져 있다. '한양북극고 37도 39분 15초(漢陽北極高三十七度三十九分十五秒)'라는 명문이 있으며 1713년 이후 제작된 듯하다. 보물 845호 - 2. 지름 24.3센티미터, 높이 10센티미터.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  조선 태조 4년(1395) 돌에 새겨 만든 천문도이다. 태조는 하늘의 뜻에 의해 조선 왕조가 세워졌음을 나타내기 위해 이것을 제작하게 했는데 하늘의 모습을 담고 그것을 형상화하여 차례대로 분야에 따라 그린 그림이란 뜻을 지닌다. 천문도의 중심이 되는 큰 원 안에는 북극을 중심으로 1,464개 별이 283개 별자리로 그려져 잇는데 이것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별을 새긴 것이다. 주위에는 28수의 명칭과 적도수도(赤道宿度)가 기록되어 잇다. 국보 228호. 가로 122.5센티미터, 세로 211센티미터, 두께 12센티미터.

평면 해시계  1881년 대표적인 해시계 제작자 강윤이 만든 것으로 오석(烏石)에 삼각형의 시침을 세운 것이다. 높이 22.7센티미터, 지름 33.5센티미터, 두께 5.3센티미터.

신법지평일구(新法地平日晷)  중국의 해시계를 본떠 18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시각선과 절후선이 그려져 있다. 보물 840호. 가로 58.9센티미터, 세로 38.2센티미터, 두께 16.3센티미터.

숭정(崇禎) 9년명 신법지평일구  명대 말기에 중국에서 서양 선교사들의 감독 아래 이천경(李天經)이 제작한 서양식 평면 해시계이다. 보물 839호. 가로 119.5센티미터, 세로 58센티미터, 두께 14.6센티미터.

간평일구(簡平日晷)와 혼개일구(渾蓋日晷)  두 가지 해시계가 한 번에 그려져 있는데 모두 절후선은 원을 이루고 그와 직각으로 만나는 선이 시각선이다. 작도가 정확하고 선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보물 841호. 길이 129센티미터, 폭 52.2센티미터, 두께 12.3센티미터.

성좌판(聖座板)  둥근 놋쇠판 앞뒤에 각각 별자리를 표시하여 쉽게 별을 찾아볼 수 있게 만든 것으로 한쪽은 북반구를, 다른 쪽은 남반구의 하늘을 보여 준다. 높이 77.5센티미터, 지름 34센티미터.

창덕궁 풍기대(風旗臺)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재기 위해 깃발을 단대를 꽂아 두었다. 8각형 윗면에 지름 10.5센티미터의 구정이 있어 깃대를 꽂게 되어 있는데 제작 연대는 조선 후기로 보인다. 보물 846호. 높이 228.1센티미터, 하부대 가로 · 세로 62.8×61.5센티미터, 상부 8각주 지름 43.2센티미터. 화강석.

(鍼) 금동상(金銅像)  동제 상으로 인간의 전신에 흐르는 경혈(經穴)을 전후면에 음각선으로 각선하고 각선상에 음점으로 경혈을 표시한 것이다. 궁중 내의원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높이 86센티미터.

석제 약연(藥碾)  약을 갈아 분말을 만들 수 있는 기구로 투포환과 같은 공에 목제 손잡이를 끼워 사용하였다. 높이 8.4센티미터, 가로 33.4센티미터, 폭 8.4센티미터, 지름 12.5센티미터.

평형 저울과 추  평형 저울은 철제 수평봉 양쪽에 유제 접시를 달아 수평을 이루도록 되어 있다. 유제 추는 양면이 평면이고 상하가 반원형이며 가운데를 잘룩하게 처리하였다. 오십량, 삼십량, 이십량, 심량, 이량, 일량, 시전 등을 음각으로 새겼다. 저울 높이 49.8센티미터, 지름 20센티미터.

화각척(華角尺)  화각으로 만든 자로 6개 모두 동일하다. 반쪽에 백적색 눈금을 표시하고 사이에 모란문, 화문을 장식하여 화려하게 처리하였다. 길이 52.1센티미터, 폭 1.4센티미터.

주칠 나전3층농  나전3층농에 주칠을 하여 일반적인 의류 수장구와 구분되는 왕실공예품이다. 무지개빛 자개에 십장생과 칠보 등의 문양을 담아 간결하고 정선된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가로 87센티미터, 폭 44.9센티미터, 높이 217센티미터.

홍련(紅輦)  임금의 거둥 때 타는 가마로 난가라고도 한다. 가마 추녀 네 곳에는 닭을 닮은 난새라는 검은 새가 술(流蘇)을 물고 있고 바탕 4면에는 용, 기린, 해태, 범, 코끼리들이 금빛으로 그려져 있다. 이 연은 좌우 16명이 들게 된다. 가로 109센티미터, 세로 109센티미터, 높이 246센티미터.

초헌(軺軒)  종2품관 이상이 타는 가마이다. 흑색 바탕에 들채가 있고 교의(交椅) 받침대 위에 교의를 안치하였으며 바닥에 돗자리를 깔았다. 들채 아래에는 2개의 다리를 대고 사이에 가죽을 댄 쇠바퀴를 달았다. 좌대 가로 50센티미터, 좌대 세로 51센티미터, 높이 210센티미터, 길이 508센티미터.

주칠 나전2층농  은은하고 화사한 무지개빛 농으로 십장생, 칠보, 화조 등 다채로운 무늬를 장식하여 여성적인 취향을 드러내고 있다. 백동(白銅) 장식을 써서 색감과 조화를 꾀하였으며 주칠 자개농은 왕실용으로 쓰이는 품위 있는 것으로 일반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가로 86.7센티미터, 폭 45.6센티미터, 높이 150.4센티미터.

3층책장  조선시대 선비들의 생활 공간인 사랑방에 설치한 실내 서가이자 치장용으로 서안, 탁자, 문갑과 함께 중추적인 가구이다. 이 책장은 문 중앙부에 한 쌍의 매화, 국화, 난을 조각하고 채색을 입힌 뒤 인두불로 지져 오동 무늬와 조화를 이룬 왕실 가구이다. 가로 127.6센티미터, 폭 55.5센티미터, 높이 193.7센티미터.

지장(紙裝) 4층책장  중앙과 측널에 나뭇결 무늬 대신 소박하게 종이를 구획하는 선감을 선명하게 드러내어 법도 있는 왕실 문방 가구의 특징을 보여 준다. 가로 48.3센티미터, 폭 31.2센티미터, 높이 128센티미터.

사방탁자  서안, 문갑, 연상, 책장과 더물어 안채, 사랑채에 놓이며 서책 등을 올려 놓아 문방생활을 메워 주었다. 가로 45.3센티미터, 폭 37.3센티미터, 높이 159.3센티미터.

2층의걸이장  배나무, 오동나무를 주로 사용하며 기둥, 쇠목, 동자주, 문변자에는 배나무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의걸이장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성행하였다. 가로 82.6센티미터, 폭 43.4센티미터, 높이 158센티미터.

약장  받침과 몸체를 분리하고 각 면 모서리에 화려한 금속 귀잡이를 장식하였다. 약장 상단에 5개의 큰 서랍을 두고 약명을 기록하였으며 작은 서랍 80개를 두었고 하단 역시 약명을 적은 21개의 서랍을 배치하였다. 가로 100.6센티미터, 세로 27.5센티미터, 높이 123센티미터.

약장  전면에 84개의 서랍을 갖추고 상단 4개 서랍을 제외하고는 각 서랍마다 고유의 약재를 넣을 수 있는 약명을 명기하였다. 가로 96.3센티미터, 세로 34.2센티미터, 높이 82.5센티미터.

용문의(龍文椅)  접을 수 있게 만들어져서 운반하기 편리하다. 주색을 칠하고 금채 운룡문을 손잡이, 등받이, 의자 다리에 장식하였다. 높이 91센티미터, 의자 폭 56.7센티미터, 의자 깊이 40센티미터.

쌍룡문(雙龍文) 채색탁자  응접 탁자 모양의 소형 탁자로 네 다리는 구족형(狗足形)이다. 가로 52.6센티미터, 폭 29.2센티미터, 높이 30.7센티미터.

주칠 나전문갑  중요 서류나 기물을 깊숙이 보관하는 용도 외에 필통, 연적, 향꽂이 등 생활 용품을 놓는 실내 치장 가구이다. 주칠 바탕에 십장생 문양을 장식한 왕실 가구이다. 가로 87.3센티미터, 폭 29.1센티미터, 높이 38센티미터.

쌍룡문 주칠 원반  주칠과 용 무늬로 보아 왕의 전용 소반으로 보인다. 여의주를 중심으로 좌우에 한 쌍의 용을 배치하여 금칠하고 금선의 운문과 청색 운문을 적절히 배치하였다. 높이 32.5센티미터, 지름 55센티미터.

주칠 서안  문갑형 책상으로 궁중용인 까닭에 재목에 있어서도 간결 소박함을 보이며 무늬 없는 배나무에 투명한 주칠을 하여 명쾌감을 주고 있다. 가로 78.5센티미터, 폭 31.5센티미터, 높이 35센티미터.

주칠 나전구족반(螺鈿狗足盤)  행자목(杏子木)에 주칠과 나전으로 화려하고 호사스럽게 장식한 품격 높은 반이다, 높이 39센티니터, 지름 63센티미터.

평상  마족(馬足)형의 낮은 네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으며 소나무로 만들어 검붉은 옻칠을 하였다. 마루나 방에서 사용하는데 방 안에서는 보료를 깔고 취침용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제작 시기는 20세기 초로 추정된다. 가로 90.5센티미터, 높이 209.5센티미터.

 

경대(鏡臺)  영창비가 사용한 것으로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었으나 1991년 한 · 일 외교 협정에 의해 우리나라로 돌아오게 된 문화재 가운데 하나이다. 가로 22센티미터, 세로 30.8센티미터, 높이 30센티미터.

바느질함  붉은 색과 검은 색 옻칠을 하였으며 3개로 분리된다. 둘레에 검은 칠을 입히고 이동하기 쉽도록 손잡이를 달았다.

죽제 수제물(手提物)  굵은 대나무 한 마디를 이용하여 여성들이 항상 사용하는 생활 용품인 화장구를 휴대할 수 있게 만든 죽제 핸드백이다. 보기 드문 여성용 수장구오서 개화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가로 19.5센티미터, 폭 12센티미터, 높이 14.3센티미터.

상어피 술병  원통형 병으로 뚜껑을 갖추고 있으며 뚜껑 속에는 옻칠을 한 술잔을 병 입쪽에 덮고 다시 그 위에 뚜껑을 덮게 했다. 구한말의 휴대용 술병으로 보인다. 길이 41.3센티미터, 지름 9.5센티미터.

좌등(坐燈)  주칠과 흑칠을 조화롭게 하여 만든 등으로 등 머리에 쇠로 된 손잡이가 있어 어디든지 자유롭게이동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빛을 조화롭고 밝게 하기 위해 사면에 화문(花文) 유리를 사용하였다. 높이 75센티미터.

요사등(料絲燈)  호형 주등이라고도 한다. 유리 구슬을 세공하여 장식한 것으로 중국 명대에 기원하였다. 높이 37.5센티미터, 지름 25.8센티미터.

하엽연(荷葉硯)  매우 크고 위엄 있는 이 벼루는 유명한 압록강 징니석(澄泥石)으로 만들어졌다. 벼루집은 굴곡이 있는 벼루 모양에 따라 나전칠기로 모양새 있게 만들었는데 뚜껑에 정교한 운룡문을 자개로 박았다. 조선 중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가로 81센티미터, 세로 51센티미터, 높이 4센티미터.

송월연(松月硯)  달 모양의 묵지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소나무를, 오른쪽에는 기암을 양각으로 나타내고 아래쪽에 파도 문양을 조식하였다. 재질은 일본 우전석(雨畑石)이다. 가로 18.2센티미터, 세로 28센티미터, 높이 4.5센티미터.

규연(圭硯)  규형(圭形) 벼루로 넓은 전대를 돌렸으며 이 넓은 테에는 편복문 3개씩을 대칭적으로 양각하였다. 가로 14.5센티미터, 세로 24.2센티미터, 높이 9센티미터.

열수연(列宿硯)  묵지에 9개의 돌기형 주문(珠文)과 벽면에 같은 형태의 주문을 6개 배치하여 하늘의 별자리를 보는 듯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재질은 단계(端溪) 자석(紫石)이다. 가로 17.3센티미터, 세로 18.9센티미터, 높이 2.4센티미터.

해악연(海嶽硯)  꽃 또는 별 모양을 한 벼루로 묵지와 묵상 사이에 한 마리 소가 누운 형상을 양각하였다. 재질은 단계 자석이다. 가로 17.3센티미터, 세로 19센티미터, 높이 3.7센티미터.

나전칠 연상  문방구를 수장하는 기물로 서안, 책장과 함께 선비들의 생활을 보여 준다. 상단에는 벼루와 먹, 붓과 연적을 넣을 수 있는 두 칸을 마련하고 서랍에는 서류와 서한을 보관하도록 하였다. 가로 29.5센티미터, 세로 27.1센티미터, 높이 26.3센티미터.

어제 유서통(御製諭書筒)  국왕이 내린 유서를 넣는 통으로 유서는 국왕이 각 지방에 부임하는 관원에게 내리는 명령서를 말한다. 높이 82.7센티미터, 지름 13.8센티미터.

죽제 용기(편지통)  길이 41.7센티미터, 지름 9센티미터.

옥제 필통  위는 흑록색 원통형 필통으로 아무 문양도 새기지 않고 자연석 결무늬를 살렸으며 오른쪽은 적갈색 원통형 필통으로 몸체 전면에 십장생 문양을 양각한 것이다. 위 : 높이 17.8센티미터, 지름 15.7센티미터. 아래 : 높이 16센티미터, 지름 13.5센티미터.

목제 필통  높이 17.2센티미터, 지름 18.5센티미터.

'각궁방 매득전답 물허면세(各宮房買得田沓勿許免稅)' 현판  고종 9년(1872) 10월에 어필로 써서 내린 교령으로 그 해 교명을 받아 판에 새겨 걸었다. 그 내용은 '각궁방에서 사들인 전답은 면세를 허락하지 말라'는 것이다. 36×46센티미터.

'춘방(春坊)' 편액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걸려 있던 편액. 춘방은 세자시강원의 다른 이름으로 순조 29년(1829) 당시 세자로 있던 익종이 쓴 것이다. 134×85센티미터.

영조 어제시(御製詩) 현판  영조는 숙종 38년(1712)에 출궁하였는데 이 현판은 출궁 회갑이 되는 1772년에 옛 잠저인 창의궁에서 감회를 적은 것이다. 그 내용은 '61년이 되니 내 회포 간절하고 전후 임진년에 사모하는 마음 더욱 깊네'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글씨는 영조의 어필이다. 53×94센티미터.

'구저회갑(舊邸回甲)' 현판  영조의 잠저인 창의궁 양성헌에 걸려 있던 현판으로 1772년에 쓴 영조 어필이다. 영조가 출궁한 지 60년이 되었음을 이른다. 42×100센티미터.

'산실구봉안(産室具奉安)' 현판  왕비, 빈이 아기 낳는 것을 주관하는 궁내 산실청에 걸려 있던 현판으로 영조가 80세에 쓴 어필이다. 40×70센티미터.

 

'어제어필건구고궁소지(御製御筆乾九古宮小識)'  영조의 잠저인 창의궁 벽에 걸려 있던 현판으로 영조 6년(1730)에 내건 영조의 어제어필이다. 42×86.5센티미터.

'등세심대상화구점(登洗心臺賞花口占)'  정조가 즉위하던 해(1777년) 3월 세심대에 올라 꽃 구경을 하고 즉석에서 시를 지어 제신에게 보이고 화답하게 한 시로 5언 율시이다. 글씨도 정조의 어필(1791년)이다. 49×50센티미터.

'우성고사추(雨聲孤寺秋)' 현판  창덕궁 안 영화당에 걸려 있던 현판으로 선조 어필이다. 30×100.7센티미터.

'만수무강(萬壽無疆)' 현판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왕 이은9李垠)이 8세 때인 광무 8년(1904)에 쓴 것이다. 37.5×106센티미터.

'염자보민(念玆保民)' 현판  흑판에 백색자로 횡서하고 양각하였다. '이 백성 보호하기를 생각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51×156센티미터.

'실사구시(實事求是)' 현판  백판에 흑자 예서로 횡서하고 양각하였다. 순조 11년(1811)에 청의 명필 옹방강이 쓴 글이다. 36×129센티미터.

'서하호조(書下戶曺)' 현판  영조가 1734년 자필로 써서 호조에 내린 현판으로 '씀씀이를 절약하여 재력을 축적하고 공물을 고르게 펴 백성을 사랑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57×59센티미터.

수교(受敎) 현판  위의 현판은 모든 신하가 당직 중에는 공사(公事)가 아니면 하청(下廳)할 수 없다는 임금의 분부를 새긴 것이다. 아래 현판은 비록 대관이나 문형(대제학)이라 하더라도 선생이 아니면 이 당에 오를 수 없다는 임금의 분부를 새겼다. 각 현판 길이 206.5센티미터.

경연청(經筵廳) 좌목(座目)  경연청에 종사하는 17인의 성명, 자, 생년, 본관이 기록되어 있다. 1871년 판각. 내부 27.5×66.6센티미터, 외부 38.5×78센티미터, 전체 길이 58×105센티미터.

서연회(書筵會) 강식(講式)  서연에 부착한 현판으로 서연에서 왕세자의 회강(會講)에 관한 식례(式例)를 적은 것이다. 41×84센티미터.

칠보향로  3족에 뚜껑을 갖춘 향로로 뚜껑에는 높고 투박한 손잡이를 갖추고 잇고 향로의 몸체에는 물소뿔과 같은 손잡이를 양쪽에 달고 있다. 높이 28센티미터, 입지름 13.1센티미터, 뚜껑 지름 12.2센티미터.

칠보향로  높은 3족에 뚜껑을 갖추었으며 몸체에는 용트림 형상의 머리 없는 용체 손잡이를 부착하였다. 향로 뚜껑은 밑바닥이 둥근 소형완을 엎어 놓은 형태이다. 높이 22.5센티미터, 입지름 10.5센티미터, 뚜껑 지름 7.7센티니터.

유제 향로(鍮製香爐)  3족향로로 용머리형으로 조각된 뚜껑이 있으며 몸체는 원형이다. 제사 때 하늘에 있는 혼을 불러오기 위해 향을 사르는 데 쓰인다. 높이 18센티미터.

옥제 향로  왼쪽 옥제 향로는 수각(獸脚)형의 3족을 갖추고 몸체에는 용문과 화문을, 뚜껑에는 운문과 용문을 투각하였다. 오른쪽 향로는 3족과 뚜껑을 갖추고 있고 몸체에는 수복강녕을 기원하는 란문과 수문을 대칭적으로 양각하고 있다. 왼쪽 : 높이 21센티미터, 지름 13.7센티미터. 오른쪽 : 높이 27센티미터, 지름 12.2센티미터.

유관세이(鍮盥洗匜)  제사 때 제관이 손 씻는 의식을 하는 유제 제기이다. 세뢰(洗罍)의 물을 관세이에 넣고 세수를 하고 제사에 임한다. 높이 24.2센티미터, 지름 21.5센티미터.

가이(斝彛)  술을 담는 제기로 가을과 겨울 제사 때 맑은 샘물인 현주(玄酒)를 담는다. 높이 20.8센티미터, 입지름 16.2센티미터, 다리 높이 2센티미터, 대 : 높이 13센티미터, 입지름 28.1센티미터, 다리 높이 4.5센티미터.

황이(黃彛)  받침과 그릇에 두 눈이 양각되었는데 이는 음(陰)과 신(信)을 상징한다. 가을과 겨울 제사 때 맑은 물을 담아 사용하는 유제 제기이다. 높이 20.8센티미터, 입지름 16.4센티미터, 다리 높이 2.1센티미터. 대 : 높이 13.4센티미터, 입지름 28센티미터, 다리 높이 4.5센티미터.

조이(鳥彛)  크고 넓은 그릇 위에 술을 담는 준기(尊器)가 올려졌다. 모두 봉문이 양각되어 있어 남쪽과 예를 상징한다. 봄, 여름 제사 때 기장과 향초로 빚은 울창주를 담는 유제 제기이다. 높이 20.8센티미터, 입지름 16.3센티미터, 다리 높이 2센티미터. 대 : 높이 13.5센티미터, 입지름 28센티미터, 다리 높이 4.5센티미터.

계이(鷄彛)  크고 넓은 그릇 위에 준기가 올려져 있으며 계문이 양각되어 동쪽과 인(仁)을 상징한다. 봄, 여름 제사 때 사용하며 맑은 물을 담는 유제 제기이다. 높이 21센티미터, 입지름 16.5센티미터, 다리 높이 2센티미터. 대 : 높이 13센티미터, 입지름 28.2센티미터, 다리 높이 4.5센티미터.

상준(象尊)  코끼리 모양 준기이다. 코끼리 등 위에 원형 준기를 따로 얹은 것으로 봄, 여름 제사 때 흰빛 술인 앙재를 담는 유제 제기이다. 가로 36센티미터, 세로 11.6센티미터, 높이 35센티미터.

희준(稀尊)  소 모양의 준기이다. 봄, 여름 제사 때 단술인 예재(醴齋)를 담는 유제 제기이다. 가로 24센티미터, 세로 11.6센티미터, 높이 35센티미터.

산뢰(山罍)  술을 담는 준기로 산과 뇌문이 양각되어 있다. 사시제에 사용하며 청주를 담는다. 높이 27.5센티미터, 지름 13.5센티미터.

호준(壺尊)  술을 담는 동이로 가을, 겨울 제사에 흰빛 술인 앙재를 담아 사용하는 유제 제기이다. 높이 22.5센티미터, 지름 11.5센티미터.

용준  술을 담는 항아리로 용문이 양각되어 있으며 궁중 제사가 끝난 뒤 백관이 모여 음복 의식을 거행할 때 왕의 음복주를 담는 유제 술항아리이다. 높이 27.8센티미터, 입지름 12.5센티미터.

저준(箸尊)  짐승 머리 모양의 귀가 양쪽에 달려 있는데 이는 양(陽)을 상징한다. 가을과 겨울 제사 때 단술인 예재를 담아서 사용하는 유제 제기이다. 높이 24.5센티미터, 입지름 12.5센티미터.

(爵)  잔과 같이 쓰이는데 종묘 대제 등 큰 행사에 삼작을 올리며 단술, 앙재, 청주 등을 담아 헌작하기도 하는 유제 제기이다. 높이 21.8센티미터, 지름 19.1센티미터.

(簋)  원형의 유제 제기로 하늘을 상징한다. 찰기장과 메기장을 담는다. 가로 23센티미터, 세로 18센티미터, 높이 15.3센티미터.

(簠)  벼와 기장을 담는 유제 제기로 형태가 방형인 것은 땅을 상징하기 위함이다. 가로 28.5센티미터, 세로 24센티미터, 높이 11.5센티미터.

용찬(龍瓚)  신을 모시는 신관례(晨관課禮) 절차 때 향기가 있는 울창주를 담는  유제 제기이다. 높이 4.7센티미터, 전체 길이 41.6센티미터, 지름 16.8센티미터.

(鉶)  소, 양, 돼지고기에 소금과 양념을 넣어 끓인 국을 담는 유제 제기이다. 높이 14.5센티미터, 입지름 9.6센티미터.

등잔  제례 때 기름을 채워서 등불을 밝히는 유제 제기이다.

용작(龍勺)  헌작 때 준에 담겨 있는 술을 떠서 잔에 채우는 기능을 한다. 전체 길이 36센티미터, 지름 9.5×6.4센티미터.

(豆)  고기붙이를 담는 데 쓰는 제기로 굽이 높다. 위는 목제, 아래는 유제 두이다.

진설상(陳說床)  역대 제왕과 왕비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고 제사 올릴 때 차리는 상과(위) 감실 밖의 차림이다.(아래)

종묘 의궤도 부분(종묘 전도)

철제 십장생문 투호(投壺)  투호놀이는 궁중이나 높은 벼슬아치들이 즐기던 것으로 한 사람이 모두 12개의 깃이 없는 대살을 투호 속에 던져 넣는 놀이이다. 이 투호는 궁중유물전시관 소장품으로 영조대에 제작되었다. 높이 50.1센티미터.

청동제 1마패  말 한 필을 양각하고 상단에 고리를 만들어 몸에 착용할 수 있게 하였다. 영조 31년(1755년)에 제작된 것이다. 두께 0.8센티미터, 지름 9.8센티미터.

청동제 2마패  말 두 필을 양각하고 뒷면에는 전서체 상서원 각인을 새겼다. 경종 3년(1723)에 제작되었다. 드께 0.7센티미터, 지름 9.5센티미터. 앞면(오른쪽)과 뒷면(왼쪽).

청동제 3마패  말 3필을 양각으로 조식하였으며 왼쪽은 경종 3년(1723), 오른쪽은 영조 6년(1730)에 제작되었다. 두께 0.7센티미터, 지름 9.6센티미터, 각각의 앞면(위)과 뒷면(아래)

순장패(巡將牌)  청동제로 마패와 같은 형태이다. 앞면에는 전서로 '순패'라 양각하고 뒷면에는 '신(信)'이라 새겼다. 두께 0.7센티미터, 지름 10.5센티미터.

은제 주전자  주전자 몸체 양쪽에는 원형의 선 안에 와문(渦文)과 도금 문양을 돌리고 그 속에 계수나무 아래 방아 찧는 토끼를 새겼다. 왕실의 품위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높이 29센티미터, 밑지름 9.5센티미터.

은부(銀釜)  뚜껑을 갖춘 대형 은솥이다. 왕실 전용 용기로 크기, 재질, 작풍이 주목되는 것이다. 높이 39.5센티미터, 입지름 52센티미터, 뚜껑 지름 53.8센티미터.

은제 주전자  몸체는 구형이며 부리를 길게 달았다. 양쪽 몸체에 도금한 길상문을 새겼다. 높이 25센티미터, 밑지름 9센티미터.

은제 바리  몸체와 유사한 뚜껑을 갖추었으며 주둥이는 둥근 몸체와 달리 좁아지게 처리하였다. 높이 20.5센티미터, 입지름 12센티미터, 뚜껑 지름 13센티미터.

은제 탕기(湯器)  뚜껑에 꽃봉오리와 같은 작은 손잡이를 갖추고 뚜껑 면 사방에는 전서체로 수(壽)자를, 탕기의 몸체에는 작은 이화문을 선각하였다. 높이 11센티미터, 지름 17센티미터, 뚜껑 지름 18.4센티미터.

금제 도금 연엽식기  뚜껑과 몸체가 활짝 핀 연꽃처럼 만들어진 식기이다. 꽃잎 10개가 만개한 형상의 뚜껑이 몸체를 둘러싸고 잇는 왕실 전용 용기이다. 높이 14센티미터, 지름 18.3센티미터, 뚜껑 지름 18.7센티미터.

은제 표자(瓢子)  복숭아를 반으로 갈라 놓은 듯한 표자로 고리가 달린 손잡이 쪽에는 복숭아 잎과 나뭇가지가 양각되어 있다. 왼쪽 : 높이 5센티미터, 지름 13.3센티미터. 오른쪽 : 높이 3센티미터, 지름 8.8센티미터.

은제 화형(花形)  높이 2.7센티미터, 지름 6.6센티미터, 밑지름 3.1센티미터.

은제 도금 찻잔  다례용(茶禮用) 은제 잔으로 오른쪽에는 불로초와 같은 화문 손잡이가 갖추어져 있고 왼쪽에는 물고기 형상의 손잡이가 부착되어 있다. 각각 높이 5.5센티미터, 지름 7.8센티미터, 뚜껑 지름 8.2센티미터.

칠보화병  높고 긴 나팔꼴 목을 가진 화병으로 주둥이는 외반(外反)되고 어깨 상부는 굵은 띠를 돌렸다. 청 말기에 우리 왕실에 전해진 듯하다. 높이 41.6센티미터, 지름 17센티미터.

칠보화종로  뚜껑과 손잡이를 갖춘 화종로(火種爐)로서 배를 불려 부드러운 사각형으로 만들었다. 청대 작품. 높이 11센티미터, 지름 14.6센티미터, 밑지름 14.1센티미터.

칠보그릇  뚜껑을 갖춘 종지와 접시로 뚜껑과 몸체에 들국화, 모란, 작약을 장식하였다.

칠보합  작은 소형완 2개를 합친 듯한 모양의 원형 칠보합으로 몸체와 뚜껑이 동일한 크기이다. 주둥아 주위에 연판 형식의 화판을 돌려 마무리하였다. 높이 5.5센티미터, 지름 9센티미터.

칠보합  높이 8.2센티미터, 지름 7.5센티미터.

유제 등잔과 등잔대  2개소에 안상(眼象)을 갖춘 낮은 굽 위에 넓은 받침대를 돌렸다. 접시형 받침대 중앙에 등잔대를 세웠으며 뒤쪽에는 3단 걸이를 만들어 등잔걸이를 상하로 이전하며 조도(照度)를 조정케 하였다. 특히 심지를 정리하는 칼이 부착되어 있어 흥미롭다. 왼쪽 : 높이 33.5센티미터, 오른쪽 : 높이 33.9센티미터, 등잔 지름 9센티미터.

유제 촛대  여섯 잎의 화형(花形)으로 된 대형 받침 중앙에 가운데 배가 부른 듯한 원형 촛대 기둥을 세웠다. 육각형의 바람막이 판이 잇으며 심지를 다듬는 가위와 고리가 붙어 잇는 것이 흥미롭다. 높이 75.5센티미터.

은제 연적  밑바닥은 평지이고 상면을 둥근 구멍으로 처리하여 내부를 볼 수 잇게 하였다. 둥근 구멍을 중심으로 초문을 장식하고 몸체에 입사 형식의 둥근 문양대를 4개 배열한 소박한 연적이다. 높이 2.3센티미터, 지름 5.3센티미터.

종묘 제례악  조선조는 개국 초기에 악기 제조를 중국에 오다가 세종 때에 이르러서는 직접 만들어 썼다. 특히 편경의 경석(磬石) 재료는 우리나라 것이 뛰어나 중국이 도리어 수입해 갈 정도였다.

편종(編鐘)  중국의 대표적인 아악기로 우리나라는 고려 예종, 조선 태종 때에 중국에서 들여왔으나 세종 11년부터는 주종소(鑄鐘所)를 두어 편종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쓰게 되었다. 편종을 한 단에 8개씩 걸며 이 틀의 양편에는 용두가 조각되어 있고 다섯 개의 목공작(木孔雀), 색사유소(色絲流蘇) 등의 화사한 장식을 갖추었다. 높이 27.3센티미터, 지름 18.2×14.7센티미터.

편경(編磬)  16개의 경(磬)을 음률의 순서에 따라 두 단으로 나누어 걸고 틀의 받침은 백아(白鵝)를 썼다. 틀의 양편에는 봉두가 조각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세종 7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길이 55.5센티미터, 폭 20.6센티미터.

특종(特鍾)  편종과 같은 타악기로 큰 종 한 개로 되어 있다. 제향악을 시작하려면 박의 지휘에 따라 먼저 특종을 한 번 친 뒤 축을 세 번 치고 북 한 번 치기를 세 번 반복하면 다시 특종을 울리고 음악이 시작된다. 높이 60.8센티미터, 지름 18.5×12.5센티미터.

특경(特磬)  종묘 제례악과 문묘 제례악의 연주가 끈날 때 치게 되는데 세 번 칠 때 그 처음과 끝에 맞춰 특종을 한 번씩 치고 나면 박을 쳐서 연주를 끝내게 된다.

철제 은상감 적  끝부분이 일부 손상되었으나 은으로 찬란한 꽃무늬 장식이 상감되어 있어서 궁중에서 연주된 악기로 추정된다. 길이 53.4센티미터, 지름 2.3센티미터.(위)

철제 적  순조, 헌종대에 진찬 때 편성된 기록이 남아 있는데 대금의 제도와 같게 되어 있다. 길이 64센티미터, 지름 2.3센티미터.(아래)

(祝)  나무 상자 모양의 틀 안에 둥근 방망이를 넣어 내려치는 타악기의 일종으로 음악의 시작을 알려 준다. 종묘 제례악, 문묘 제례악에 편성되어 사용된다. 가로 44.5센티미터, 세로 44센티미터, 높이 34센티미터.

(拍)  여섯 조각의 단단한 나무에 구멍을 뚫고 줄로 엮어서 사용하는 타악기이다. 음악의 시작과 끝, 궁중 무용에서 춤사위의 변화를 지시한다. 길이 39.5센티미터, 두께 1.5센티미터.

가구선인기(駕龜仙人旗)  의장기의 하나로 흰 바탕에 도관을 쓴 신선이 거북을 타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물결과 청, 적, 황, 백 채색이 된 구름을 그렸다. 가로 135센티미터, 세로 150센티미터, 화염각 32센티미터.

주작기  군기의 일종으로 대오방기(大五方旗)의 하나이다. 진영 전문에 세워 전군, 전영을 지키는 역할을 하며 의장기의 하나로 대가, 법가 노부 등에 쓰였다. 가로 128센티미터, 세로 150센티미터, 화염각 34센티미터.

청룡기  군기이며 대오방기의 하나이다. 왼편 문에 세워 좌군을 지휘하였으며 의장기로 대가, 법가 노부에 쓰였다. 가로 123센티미터, 세로 141센티미터, 화염각 33센티미터.

벽봉기(碧鳳旗)  의장기의 하나로 황색 바탕에 벽봉을 그리고 청, 적, 황, 백의 구름을 그렸다. 대가, 법가, 소가 등에 쓰였다. 가로 140센티미터, 세로 192센티미터, 화염각 34센티미터.

황룡기  누런 바탕에 한 마리 용을 그리고 가장자리에 화염을 상징하는 헝겊을 달았다. 의장기로 사용할 경우 대가, 법가, 소가 노부에 쓰였으며 국왕이 친히 사열할 때는 5영에 명령하는 용도로 쓰인다. 가로 138센티미터, 세로 190센티미터, 화염각 34센티미터.

백택기  의장기의 하나로 고려, 조선조를 통하여 사용되었는데 백택은 신수로서 만물의 모든 뜻을 알아낸다고 하는 상서로운 짐승으로 여겨진다. 대가, 법가, 궁중 노부, 어장(御葬) 등에 쓰였다. 가로 131센티미터, 세로 139센티미터, 화염각 34센티미터.

삼각기  의장기의 하나로 백색 바탕에 삼색(三色)의 마문(馬文)이 그려져 있다. 대가, 법가, 소가 노부와 어장에 쓰였다. 가로 139센티미터, 세로 155센티미터, 화염각 33센티미터.

현무기  군기의 일종으로 대오방기 가운데 하나이다. 진영의 후위를 지휘하였고 의장기로서 대가, 법가 노부에 쓰였다. 가로 121.5센티미터, 세로 135센티미터, 화염각 33센티미터.

북두칠성기  군기의 일종으로 싸움터나 행진할 때 대장이 장수를 부르고 지휘하던 기이다. 기의 제도는 작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가로 130센티미터, 세로 147센티미터, 화염각 23센티미터.

의봉기(儀鳳旗)  대한제국 의장기의 하나로 청색 삼각기이며 봉문, 운문이 그려져 있고 화염오리와 드림 띠는 청색이다. 가로 170센티미터, 세로 203센티미터, 변 278센티미터.

적웅기(赤熊旗)  대한제국 의장기의 하나로 적웅문이 있는 황색 삼각기이며 화염오리와 드림 띠가 달려 있다. 가로 148센티미터, 세로 168센티미터, 변 234센티미터.

황룡기  누런 바탕의 사각기로 2마리 용과 청, 적, 황, 백의 구름을 그리고 가장자리에 화염을 상징하는 오리를 달았다. 의장기로 대가, 법가, 소가 노부에 쓰였다. 가로 20센티미터, 세로 40센티미터, 화염각 5.5센티미터.

좌독기(坐纛旗)  행진할 때 주장의 뒤에 서고 멈추면 장대의 앞 왼편에 섰다. 사명기, 인기 등의 군기이다. 가로 41.5센티미터, 세로 42.5센티미터, 화염각 6.5센티미터.

 봉선  전체 길이 222센티미터, 부채 길이 50.5센티미터.

공작선  전체 길이 256.5센티미터, 부채 길이 63.5센티미터.

치미선(雉尾扇)  전체 길이 261.5센티미터, 부채 길이 90.5센티미터.

적쌍룡단선(赤雙龍團扇)  전체 길이 257센티미터, 부채 길이 55.5센티미터.

언월도(偃月刀)와 철퇴(鐵槌)  언월도는 칼등을 두 갈래로 갈라 삭모를 드리웠으며 칼자루와 칼날의 이음새에 용머리를 새겼다. 칼 : 전체 길이 312센티미터, 철퇴 : 전체 길이 204센티미터, 퇴 길이 26센티미터.

패월도(佩月刀)  의식용 칼로 손잡이와 칼집에는 어피를 씌우고 홍색 칠을 하였다. 칼집 중앙에 장식 깃발을 단 것이 흥미롭다. 전체 길이 105센티미터.

삼인검(三寅劍)  사인검 곧 연, 월, 일, 시 가운데 하나를 갖추지 못한 것으로 풀이되며 사인검과 형태는 동일하다. 전체 길이 130센티미터.

사인참사검(四寅斬邪劍)  사인(寅年, 寅月, 寅日, 寅時)을 갖추어 제작한 것으로 실전용이라기보다 간사함을 참(斬)하는 벽사 호신용으로 간주된다. 전체길이 134.5센티미터.

(傳) 어도(御刀)  태조가 친히 사용한 것이라 전한다. 칼 몸은 등쪽으로 약간 휘어졌고 칼끝과 날이 매우 예리하다. 손잡이는 어피로 감싸고 머리에는 용두를 조각해 단청을 올린 것으로 제작 기법상 수작에 해당한다. 전체 길이 146센티미터.

방패  방패는 원래 장패(長牌)와 원패(圓牌)로 구분되면 이것은 장패에 속한다. 목판에 우피를 씌우고 청색 바탕에 귀면을 채색하였으며 중앙부에 꺾쇠 모양의 손잡이를 달앗다. 가로 39센티미터, 세로 83센티미터.

철편(鐵鞭)  자루 머리는 마름모로 처리하고 은상감하였으며 자루 끝은 붉은 단으로 감았다. 고들개에는 뇌문, 연화문 등을 은상감하였는데 솜씨가 뛰어난 장인의 작품인 듯하다. 길이 46센티미터, 고들개 9.5센티미터.

은상감 철퇴  실전용이라기보다 왕실의 권위와 위엄성을 보여 주는 상징물이다. 은상감으로 장엄하고 섬세한 기교를 담은 듬직한 철퇴로 현재 2점만 전해진다. 길이 74센티미터, 지름 9.5센티미터.

명패(命牌)  상아 제품으로 앞면에는 전서체로 '명(命)'자를, 뒷면에는 '시강원(侍講院)'을 음각하고 채색하였다. 이 명패는 임금이 신하에게 내려 참례 의사를 타진하거나 왕명에 의해 사형을 집행할 때 사형수의 목에 걸던 것이다. 가로 6.6센티미터, 세로 27.2센티미터, 두께 1.1센티미터.

쌍룡보개  정전 내부 어칸의 중앙 천장에 있는 닫집 천개(天蓋)이다. 채색 구름 사이에 여의주를 희롱하는 황금빛 쌍룡이 서려 있는 모양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하며 국태민안(國泰民安)의 뜻을 나타낸다. 104×189.5센티미터.

봉황보개  정전 내부 어칸의 중앙 천장에 있는 닫집 보개이다. 여의주를 희롱하는 황금빛 봉황 주위에 서운문(瑞雲文) 등을 화려하게 채색하였다. 100×185센티미터.

 

목장패(木將牌)  목제로 된 원형 대장패로 앞면에는 '좌우변포도대장'이 해서체로 음각되어 있고 뒷면에는 어압(御押)인 수결(手決)이 음각되어 있다. 두께 1.8센티미터, 지름 7.6센티미터.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