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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25. 10:28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067 흙비

 

류경일 시집

2000, 포엠토피아

 

 

시흥시대야도서관

EM029726

 

811.6

류146흙

 

포엠서정시선

 

봄비 왔다가고 봄눈 오간 뒤

다들 봄볕 기다리는데

작년에 가꾸어 놓은 돌담 밑

살피꽃밭에는 아직 봄나물 돋지 않고

올 봄 새로 짓는 미루나무 까치둥지에

미장하듯 흙비만 내린다

 

이역 만리 고비사막, 알랴산사막,

타클라마칸사막과 황하유역에서

한낮에도 죽은 것들의 영혼이 실려와

이 땅에 수많은 발자국을 찍을 때마다

나는 곁에 와 부활의 주문을 외는

낯선 소리

가만 가만 바람소리에 귀 기울여

수천 년 전 사막이 잉태한

자잘한 영혼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다

 

설죽은 바람이 긴 여정을

모래밥으로 살아와

이 하늘 눈멀게 한지 닷새

 

이 땅에서 일어나 이 땅으로 스러지는 바람에

굽은 등짝 맡긴 나뭇잎 하나

청승맞은 흙비 쓸어

미루나무 옆 상여집터에 묻어둔 날

밤 내내 낙타울음이 내 귀를 밟았다

- 「흙비」전문

 

시인 류경일

1964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남

1992년 경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1년 계간 「우리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집 「빗방울 듣고 나는 말한다」(시와시학사 1999)

 

현, 창원시청 시보편집실 근무

 

연락처 : 창원시 북면 신촌리 춘광아파트 501동 1018호

전화 | 집 298-8221, 직장 280-2046,

손전화 | 017-739-8221

 

『시인의 말

 

한 술 밥보다 한 줄 시가 더 배불러 시를 쓴다. 한술 두술 떠먹은 시가 어느새 한 배 가득. 색깔은 곱지 않지만 이렇게 또 세상에 시 한 무더기 갈겨 놓는다. 더럽다는 사람은 피해 가겠지만, 가끔은 가까이 다가와 쳐다보기도 하고 만져보는 사람 한둘 있었으면 좋겠다.

 

|차례|

 

■ 시인의 말

 

제1장 호박꽃 속 벌소리

호박꽃 속 벌소리 / 오리무중 / 고로쇠나무 / 주목 / 그늘꽃 / 왕대나무 / 지구, 수심에 잠기다 / 조롱박씨 / 너도바람꽃 / 굴현고개 / 때론 나무도 자살한다 / 선돌 / 차꽃 피는 날 / 오매불망

 

제2장 슬프다, 돌꽃

슬프다, 돌꽃 / 지노귀굿 / 흙비 / 보리밟기 / 수도사 / 외가 가는 길 / 비 오는 날의 사진 한 장 / 밤낚시 / 정월초하루 / 죽순

 

제3장 나무에도 길이 있다

지붕을 얹다  / 고주배기 / 돌을 씹다 / 나무에도 길이 있다 / 자살 / 제석봉 고사목 / 남자강 연가 / 남새밭 / 칼바위 / 소지골 / 그끄제 내린 비로 / 머구 / 흰 고무신

 

제4장 도시의 억새

메뚜기 / 몸살 / 이 늦은 가을에 / 본동아지매 / 도시의 억새 / 창원경륜장 / 하회마을에서 / 상지골 할미솔 / 며느리밑씻개 / 대둔산행 / 겨울 통도사 / 대원사 다층석탑 

 

제5장 눈꽃 상여

골다공증 / 눈 내리는 강 / 고추 말리기 / 서리맞은 떨감 / 화왕산 억새 태우기 / 戀書 / 낙동강 1 / 낙동강 2 / 눈꽃 상여 / 가죽나무 / 송화마을에 내리는 눈

 

호박꽃 속 벌소리

 

젖은 듯 촉촉한 호박꽃 속

그 환한 사랑방에 손을 드리우면

오래 전 길 떠난 어린 마음도

세상 벌 소리 다 담은 살가운 꽃의 마음도

처마 같은 손톱 밑을 후비어 든다

하학길 호박벌 잡아채던 아이들 소리

그때 들리던 새소리 물소리도 삭고 삭아서

웅웅웅 잠꼬대로 피어나는 꽃 속

그 보드란 꽃잎에 찍힌

아이들의 엄지 약지 지문을 안은 채

씨받이 오골호박이 자리를 터는 까치언덕

오늘 아침 기어이 무서리 내려

입시울 붙어버린 호박꽃 두엇

 

슬프다, 돌꽃

 

흙 위에 손 얹으면 흙이 내 손 만지고

물 위에 손 얹으면 물이 내 손 어루던

그 쓸만한 땅, 쓸만한 개울은 다

콘크리트로 뒤덮인 이 도시

나는 꽃씨를 뿌린다

죽은 듯이 살아가는, 사는 듯이 죽어가는

이 땅의 힘 없는 흙들을 위해

홀쭉한 꽃씨 봉투를 이 악물어 뜯어

슬픔의 씨를 흩어 뿌린다

혹 북녘 땅 깊은 산중

바위틈에서 자라는 돌꽃이라도 피어날까

남도 북도 모르고 흐르다

제풀에 지쳐 썩어 가는 복개천 위에다

행여 그리운 님 오실까 침 묻혀 뿌리며 왼다

돋아나라 돋아나라 슬픈 돌꽃

 

나무에도 길이 있다

 

지리산 등줄 쉬어 내리다 머무는 봉나무골

산비탈 바위틈에서 빨치산처럼 숨죽인

씨알 작은 고종시를 딴다

외할아버지도 큰외삼촌도

앉았다 가신 하늘 가까운 자리에

덜 여문 엉덩이 걸쳐놓고

갈치 몰대로 감나무 가지를 꺾어댄다

진종일 이 나무 저 나무

이 하늘 저 하늘 옮겨 앉다 보면

나무 위에도 길이 생기고

낮달 같은 감 물대로 어루다 보면

벼랑 같은 나무 위가 오래된 널마루 같다

외할아버지 큰외삼촌도 어려워했던

먹바위나무 위 삼거리에 앉았다 내리면

어둠 덮치는 봉나무골

감꼭지 앉은 어설픈 일꾼의 머리 위로

빨간 까치밥들 어둑한 나뭇길 밝힌다

 

도시의 억새

 

억새가 이 도시 한가운데서

씨앗 다 날려보내고

마음 텅 빈 공터 만들어

저리 제 몸 흔들고 있다

바람의 행위예술인가

하늘이 전시한 설치조각인가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새 여름 올 때까지

한 자리에 서서

닳고닳은 마당을 쓸겠는가

삼백예순여날을 억새 아니고서야

게거품 물던 지난 시절 하얗게 잊고서

 

눈꽃 상여

 

따뜻한 남촌에 밤새 귀한 손이 와

들판과 산, 얼어붙은 연못이 모처럼 한 빛이다

 

하얀 밤을 뜬눈으로 지샌 외딴 가로등이

살쾡이 눈을 희번덕거리는 아침

까치 날아오르는 연못가 긴 모롱이 돌아

상여 하나 흔들흔들 흔들리며 섰다

 

이 세상 하얀 길 떠나는 이는 누굴까

길이 너무 많아 길 잃어버린 날

허물어지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님 소매 붙들고 떠나 보내지 못해

상여는 연못 수문 옆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눈빛에 묻혀 상주도 상여도 가물거리는

눈 온 날 아침 초라한 만장만 앞서

멀고 먼 황천길 꽃상여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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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