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8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①
오주석 지음
2005, 솔
시흥시대야도서관
EM050130
650.4
오76옛 1
우리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과 사고의 틀을
제시한 친절하고 깊이 있는 문화재 안내서!
훌륭한 예술품에는 반드시 그것을 만든 사람의 훌륭한 정신이 깃들어 잇고 그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술품을 통하여 사람과 시대의 정신을 만납니다. 예술과 정신과 삶이 하나인 예술품만이 영원한 생명력을 지니며 마력처럼 그 세계 안으로 우리를 끌어들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것을 추체험追體驗이라 부릅니다. 오주석 선생은 조선시대의 그림들을 격조 높게 풀어나가면서 어떻게 할지 머뭇거리는 우리를 그러한 영원의 세계 안으로 인도합니다.
강우방(이화여대 미술사학과 초빙교수)
오주석吳柱錫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코리아헤럴드 문화부 기자, 호암미술관 및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을 거쳐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그리고 간송미술관 연구위원,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히였다.
한국 미술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강연을 펼쳤던 그는, 2005년 2월 백혈병으로 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단원 김홍도』『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우리 문화의 황금기-진경시대』 등이 있다.
"옛 그림 속에는 역사가 있다. 다치지 않은 옛 그대로의 자연이 있고, 그것을 보는 옛사람들의 눈길과 그들의 어진 마음자리가 담겨 있다. 한마디로 옛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것이다. 또한 옛 그림은 아련한 지난 세월의 향내를 지니고 있다. 그것을 아꼈던 많은 아들의 고상한 입김과 정성스런 손때가 묻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그 모든 것이 작품을 그린 화가라는 한 인격체의 독특한 빛깔로 물들여져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 그림에서 한 분의 그리운 옛 조상을 만날 수 있다."
차례
책을 펴내며
1 호방한 선線 속의 선禪 김명국의 <달마상>
---옛 그림의 색채
2 잔잔하게 번지는 삼매경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3 꿈길을 따라서 안견의 <몽유도원도>
---옛 그림의 원근법
4 미완의 비장미 윤두서의 <자화상>
5 음악과 문학의 만남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옛 그림의 여백
6 군자의 큰 기쁨 윤두서의 <진단타려도>
7 추운 시절의 그림 김정희의 <세한도>
---옛 그림 읽기
8 누가 누가 이기나 김시의 <동자견려도>
9 들썩거리는 서민의 신명 김홍도의 <씨름>과 <무동>
---옛 그림 보는 법
10 올곧은 선비의 자화상 이인상의 <설송도>
11 노시인의 초상화 정선의 <인왕제색도>
---옛 그림에 깃든 마음
<달마상達磨像>
김명국金明國(1600~1662 이후), 종이에 수묵, 83×58.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명국의 <달마상>에는 색色이 없다. 먹의 선線, 그것은 형태이기 이전에 하나의 정신의 흐름이기 때문에 사물의 존재적 속성의 대명사인 색깔은 껴앉을 자리가 없었다. 색이 필요하지도 않았지만 거기에 색을 칠할 수도 없었다.
선과 선 사이로 하나의 매서운 기운이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이른바 필획은 끊어져도 뜻은 이어진다는 '필단의연筆斷意連'
옷주름 선뿐만 아니라 얼굴선,
관서 글씨의 선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이 호쾌한 선들을 관통하는 기氣의 주인은 김명국인가, 달마인가?
<달마상> 낙관 세부
김명국金明國
조선 중기의 화가. 도화서圖畵署 화원을 거쳐 사학 교수를 지내다가 1636년과 1643년 두 차례나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인물 · 수석水石에 독창적인 화법을 구사하였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설중귀려도雪中歸驢圖>를 비롯하여 <심산행려도深山行旅圖><노엽달마도蘆葉達磨圖><기려도騎驢圖><관폭도觀瀑圖><투기도鬪碁圖><은사도隱士圖><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등이 있다.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전傳 강희안姜希顔(1417~1464), 종이에 수묵, 23.4×15.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사관수도>는 고요한 그림이다. '고결한 선비가 물을 바라보는 그림'이니 고요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바라보는 선비의 시선이 물의 흐름처럼 잔잔하지 않은가? (…) <고사관수도>는 그러나 움직이고 있다. 작품 속의 모든 것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오늘 선비는 한가로움을 얻었다. 딱딱한 바위도 거리끼지 않고
펄퍼덕 엎드려서 팔짱을 끼고 그 위에 자연스레 턱을 괴었다.
선비는 매우 느긋하고 편안하다.
작은 공책만 한 공간은 끝없이 확장되고,
화면의 고요함과 평화로움 속에는
동양철학의 사색이 깃들어 있다.
<고사관수도> 인물 세부
<고사관수도> 도서 세부
강희안姜希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화가로서도 유명하지만 학자로서 더 유명하다. 집현전 직제학이라는 벼슬을 지낸 사대부 화가로서, 시와 글씨와 그림에 모두 뛰어나 사서화 삼절이라 불렸다. 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것은 많지 않은데,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는 그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화풍을 구사하고 있다.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안견安堅(1400?~1479?), 1447년 작, 비단에 수묵 담채, 38.6×106.2cm, 일본 천리대학교 도서관 소장.
오늘날까지 전하는 조선의 옛 그림 가운데 가장 귀한 작품을 하나만 들라고 하면 -- 물론 매우 비예술적이고 지각없는 질문이긴 하지만 -- 아무래도 <몽유도원도>를 들 수밖에 없다. <몽유도원도>는 한 편의 장대한 교향시다.
두루마리를 여는 순간,
우리는 대뜸 펼쳐진 황홀한 무릉도원의 전경에 압도된다.
마치 궁중아악 수제천의 시작을 알리는 박 소리가 그치자
모든 악사들이 일제히 강박 합주로 장엄한 첫 음을 울리는 것처럼,
안개 자욱한 무릉도원은 물결 같은 향기를 온 누리에 퍼뜨리며
화평한 기운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안평대군의 <몽유도원기夢遊桃源記>
안견安堅
화원 출신으로 도화원圖畵院 정4품 벼슬인 호군護軍까지 지냈다. 안평대군을 가까이 섬겼으며, 1447년 그를 위하여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그리고 이듬해 <대소가의장도大小駕儀仗圖>를 그렸다. 특히 산수화에 뛰어났고 초상화 · 사군자 · 의장도 등에도 능했다. 전칭작품傳稱作品으로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적벽도赤壁圖> 등이 있다.
<몽유도원도>의 무릉도원 세부
무계동武溪洞 각자刻字
<미텔하르니스의 마을길>
흡베마(1638~1709), 캔버스에 유채, 103.5×141cm, 런던국립회화관 소장.
<자화상自畵像>
윤두서尹斗緖(1668~1715), 종이에 담채, 38.5×20.5cm, 국보 240호, 개인 소장
<자화상>을 바라보는 나는, 이를테면 그림 속의 윤두서와 그것을 그리는 또 하나의 윤두서, 그 두 사람으로부터 동시에 철저하게 소외되어 잇다. 나는 그려진 윤두서의 고요함 속으로도, 그린 윤두서의 강한 의지 속으로도 들어갈 수 없다. 윤두서가 나지막이 윤두서에게 말을 건넨다. 너는 누구인가, 네가 나인가, 너는 도대체 어떠한 사람인가…….
여섯 자도 되지 않는 몸으로 온 세상을 초월하려는 뜻을 지녔구나!
긴 수염 나부끼고 안색은 붉고 윤택하니,
보는 사람들은 그가 도사나 검객이 아닌가 의심할 것이다.
그러나 그 진실하게 삼가고 물러서서 겸양하는 풍모는
역시 홀로 행실을 가다듬는 군자라고 하기에 부끄러움이 없다.
옛 사진 속의 윤두서 <자화상>
윤두서尹斗緖
젊어서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시서생활로 일생을 보냈으며 시 · 서 · 화에 두루 능했다고 한다. 특히 인물화와 말을 잘 그렸는데, 산수화를 비롯한 일반 회화작품은 대체로 조선 중기의 화풍을 바탕으로 한 전통성이 강한 화풍을 보이고 있다. 유작으로는 60여 점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는 <해남윤씨가전고화첩>을 비롯하여, <노승도老僧圖> <출렵도出獵圖> <백마도白馬圖> <우마도권牛馬圖卷> <심산지록도深山芝鹿圖> 등이 전한다.
<심득경沈得經 초상>
윤두서, 비단에 채색, 160.3×87.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짚신 삼는 사람>
윤두서, 삼베에 수묵, 32.4×21.1cm, 개인 소장.
<황현黃玹 초상>
채용신蔡龍臣(1850~1941), 비단에 채색, 94×65.5cm, 개인 소장.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
김홍도, 종이에 수묵 담채, 164×76cm, 개인 소장.
만약 하늘이 꿈속에서나마 소원하는 옛 그림 한 점을 가질 수 있는 복을 준다고 하면 나는 <주상관매도>를 고르고 싶다. 이 작품의 넉넉한 여백 속에서 시성 두보의 시름 섞인 영혼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뿐 아니라, 늙은 김홍도 그분의 풍류로운 모습을 아련하게 느낄 수 있으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옛 음악의 가락까지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봄 물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놓았으니
물 아래가 하늘이요 하늘 위가 물이로다.
이중에 늙은 눈에 뵈는 꽃은 안개 속인가 하노라.
<단원도檀園圖>
김홍도金弘道(1745~1806?), 종이에 수묵 담채, 135.3×78.5cm, 개인 소장.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
김홍도, 종이에 수묵 담채, 27.9×37cm, 개인 소장
<월하취생도月下吹笙圖>
김홍도, 종이에 수묵 담채, 23.2×27.8cm, 간송미술관 소장.
<선동취적도仙童吹笛圖>
김홍도, 비단에 채색, 130.7×57.6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시구詩句>
김홍도, 비단에 묵서, 25.7×19.6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백법留白法을 적용한 김유성金有聲(1725~?)의 <설경산수도雪景山水圖>
종이에 수묵, 42.1×29.1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진단타려도陳摶墮驢圖>
윤두서, 비단에 채색, 111.0×68.9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윤두서는 고사 속의 인물을 중심으로 화면을 구성하면서도 넓은 길이 한중간에서 꺾여나가도록 하고 그 끝을 아득하게 여백 처리함으로써 이제부터는 오래도록 온 천하가 평화로우리라는 희망을 암시하였다.
희이선생 무슨 일로 갑자기 안장에서 떨어졌나.
취함도 아니요 졸음도 아니니 따로 기쁨이 있었다네.
협마영에 상서로움 드러나 참된 임금 나왔으니
이제부터 온 천하에 근심 걱정 없으리라.
<숙종의 제시題詩>
선불기종仙佛奇蹤에 실린 진단 삽화.
진단의 얼굴 세부.
인물과 당나귀 세부.
<세한도歲寒圖>
김정희金正喜(1786~1856), 종이에 수묵, 23.7×61.2cm, 국보 180호, 개인 소장.
<세한도>는 꿋꿋이 역경을 견뎌내는 선비의 올곧고 견정堅定한 의지가 있다. 메마른 붓으로 반듯하게 이끌어간 묵선墨線은 조금도 허둥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너무나 차분하고 단정하다고 할 정도다. 초라함이 어디에 있는가? 자기 연민이 어디에 있는가?
석 자 종이 위에 몇 번의 마른 붓질이 쓸고 지나간 흔적에 지나지 않는 그림.
그러나 거기에는 세상의 매운 인정과 그로 인한 쓸쓸함,
고독, 선비의 굳센 의지, 옛사람의 고마운 정, 그리고
허망한 바람에 이르기까지 필설로 다하기 어려운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세한도>를 문인화의 정수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한도>의 화발畵跋.
<춘풍추수春風秋水>
김정희, 종이에 묵서, 각 폭 130.5×29cm, 간송미술관 소장.
<침계梣溪>
김정희, 종이에 수묵, 42.8×122.7cm, 간송미술관 소장.
우리 옛 악보인 <정간보井間譜>
<동자견려도童子牽驢圖>
김시金禔(1524~1593), 비단에 채색, 111×46cm, 보물 783호, 호암미술관 소장.
김시에게는 <동자견려도>가 있다. 작품의 됨됨이가 매우 깔끔하고 구도 역시 뚝떨어진 것이어서 이 역시 그의 마음이 화창하고 밝은 상태에서 제작한 걸작이 아닐 수 없다.
어린 소년과 고집 센 나귀의 힘겨루기.
끙끙거리는 동자의 모양새가 애처롭고, 저를 해치려는 것도 아닌데
꼬리를 드리우고 뒤로 움츠러들기만 하는 나귀가 딱하기도 하다.
저러다 동자가 그만 개울에 떨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는 좋은 꾀를 못 내고 억지힘만 쓰는 꼴이 우습기도 한데,
이들을 둘러싼 경치는 아랑곳없이 그저 조는 듯 무심하고 곱기만 하다.
<동자견려도> 세부.
김시金禔
조선 중기의 문인화가. 산수 · 인물 · 우마牛馬 · 화조 등 여러 분야의 그림에 뛰어난 자질을 보여 당시 최립崔笠의 문장. 한호韓濩의 글씨, 그의 그림을 일컬어 삼절三絶이라 하였다. 유작으로는 <동자견려도童子牽驢圖> <매조문향도梅鳥聞香圖> <선록완월도仙鹿翫月圖> <하산모우도夏山暮雨圖> 등이 전한다.
<이항복 초상>
작자 미상, 종이에 수묵 담채, 59.5×35cm,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씨름>
김홍도, 종이에 수묵 담채, 27.0×22.7cm, 보물 527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씨름>은 공책만 한 작은 화첩에 스물두 명이나 그려져 있고, 게다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제각기 다른 표정에 다른 자세를 하고 잇다. 이 작품이 척척 그려낸 스케치풍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화가라면 그려낼 수 없으리라고 판단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씨름판은 흥분과 초조로 서로 엇갈리며 점차 최고조를 향해 가는데
그 와중에도 단 한 사람 여유 만만한 이가 있었으니,
씨름꾼과 등을 진 채 목판을 둘러맨 떠꺼머리 엿장수가 그 사람이다.
씨름꾼 세부.
<무동舞童>
김홍도, 종이에 수묵, 27.0×22.7cm, 보물 527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무동>의 원형 구도는 화가가 운영한 뛰어난 화면 구성이 아닐 수 없다. 방사선 구도의 원심적인 요소가 신명 넘치는 우리 옛 가락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조성했다면, 원형 구도 자체로는 둥글게 둥글게 넘어 가며, 듣는 이를 하나로 묶어내는 우리 옛 장단의 멋을 참으로 잘도 재현해냈다.
북, 장구에 피리 둘, 대금, 해금까지 여섯 악기가 한데 어울려
한바탕 흥겨운 가락을 몰아가니,
잘생긴 무동 아이는 덩실덩실 소매를 펄럭이며 걸지게도 춤을 춘다.
춤추는 아이 세부.
<설송도雪松圖>
이인상李麟祥(1710~1760), 종이에 수묵, 117.4×52.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설송도>는 짐짓 보는 이를 전제하지 않고 혼자 그저 그려본 듯한 경계를 표방하며, 나를 알아달라고 남을 설득하려는 듯한 재주를 드러내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인상은 담담한 의취意趣를 화면 위에 은은하게 띄워본 것으로 만족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비 오는 날 홀로 거문고 정악곡을 뜯어보는 마음과 완전히 같은 것일 게다.
소나무와 바위는 한갓 자연의 일부분이 아닌, 인간 이인상의 자화상이다.
백설을 이고 선 늙은 소나무가 이인상의 높은 절개를 상징한다면,
날카롭게 결이 진 바위는 그대로
'얼음처럼 맑고 쇠처럼 단단한 마음' 그것이다.
저 늠름함과 굳셈으로 소나무와 바위는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의리의 마땅함이 어떠한 것인가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인상 초상>
작자 미상, 종이에 수묵 담채, 51.1×32.7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인상李麟祥
조선 후기의 서화가. 시 · 서 · 화에 능해 삼절三絶이라 했고, 그림에는 산수山水, 글씨에는 전서篆書에 뛰어났으며, 인장印章도 잘 새겼다. 저서에 『능호집』, 그림에 <설송도雪松圖> <노송도老松圖> <산수도山水圖> <옥류동도玉流洞圖> <검선도劍仙圖> <송석도松石圖>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 <한림수석도寒林秀石圖> 등이 있고, 글씨에 <대사성김식표大司成金湜表>가 전한다.
<설송도> 나뭇가지 세부.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정선鄭敾(1676~1759), 1751년 76세 작, 종이에 수묵, 79.2×138.2cm, 국보 216호, 호암미술관 소장.
<인왕제색도>는 진경산수화를 완성한 대가 겸재 정선이 일흔여섯 살의 고령에 그려낸 거작이다. 화필畵筆을 잡은 지 어언 60년, 그야말로 써서 닳아버린 몽당붓이 쌓여서 무덤을 이루었다고 하는 노화가의 원숙기에 작가만의 내밀한 심의心意를 더하여 이루어낸 걸작이 바로 <인왕제색도>다.
임종을 앞에 둔 60년 지기知己를 위해
칠순 노인 정선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그려낸 작품 <인왕제색도>.
궂은 날씨 속에서 사경을 헤매는 벗을 생각하며
그는 마치 쫓기는 사람처럼 조급한 마음으로,
이제 막 물안개가 피어올라 개어가는 인왕산처럼
이병연이 하루빨리 병석을 털고 일어날 것을 빌며 작품을 완성했던 것이다.
그 안개에 희망처럼 보일 듯 말 듯한 푸른 먹빛이 배어 있다.
<인왕산도仁王山圖>
강희언姜熙彦(1738~1782), 종이에 수묵 담채, 24.6×42.6cm, 개인 소장.
정선鄭敾
조선 후기의 화가. 중국 남화南畵에서 출발하였으나 30세를 전후하여 조선 산수화山水畵의 독자적 특징을 살린 사생寫生의 진경화眞景畵로 전환하였으며, 여행을 즐겨 전국의 명승을 찾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주요 작품으로는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금강전도金剛全圖> <박연폭朴淵瀑> <노송영지도老松靈芝圖> 등이 있다.
<금강전도金剛全圖>
정선, 1734년 59세 작, 종이에 수묵 담채, 130.7×94.1cm, 국보 217호, 호암미술관 소장.
<시화상간도詩畵相看圖>
정선, 1740~41년 65~66세 작, 비단에 채색, 29.0×26.4cm, 간송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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