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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0. 22. 12:01 내가 읽은 책들/2013년도

2013-113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 -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유홍준 지음

1996,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EM007260

 

981.1

유95ㄴ v. 2 c. 3

 

놀라운 일이 여기 있다! 다른 사람이 가는 곳은 다만 석양머리 적막강산이다.

그런데 유홍준이 성큼성큼 그곳에 가면 거기 몇천년 동안 잠든 보물들이 깨어나

찬란한 잔치를 베풀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은 다만 눈감은 사물이다. 그런데 유홍준의 눈빛이 닿자마자

그 사물은 문화의 총체로 활짝 꽃피운다. 마침내 다른 사람과 유홍준은 하나가 되어

이 강산 방방곡곡을 축복의 미학으로 채우고 있다.

무릇 벗들이여, 이 책과 더물어 순례하라, 찬탄하라.

- 고은(시인)

 

유홍준교수의 '남도답사 일번지'를 따라가 보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흔히 만난다. 그만큼 그는 우리네 문화유산의 진면목을 일깨워주었고 그것을 사랑하게 해준 안내자이자 공로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둘째권을 펴내면서 첫째권의 명쾌한 논증 대신 유장한 해설로 문화유산의 역사성과 예술성을 더욱 깊이있게 드러내는 원숙한 경륜의 시각을 보여주고 잇다.

- 이태호(전남대 교수 · 미술사)

 

지은이 유홍준(兪弘濬)은 1949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미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하였으며,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박사과정의 예술철학 전공을 수료하였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미술평론부문으로 등단하여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를 역임히였다. 1985년부터 매년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공개강좌를 개설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80년대 미술의 현장과 작가들』(1986, 열화당), 편역서로 『미학에세이』(1988, 청년사), 번역서로 『회화의 역사』(H. W. 잰슨, 1984, 열화당) 등이 있으며, 「조선후기 문인들의 서화비평」 「단원 김홍도 연구노트」 등 한국회화사 관계 논문을 줄곧 발표해왔다. 현재는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 미학 ·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차례

 

두번째 책을 펴내면서

글쓰기와 책읽기의 행복한 만남

 

    지리산 동남쪽 - 함양 · 산청(상)

1 옛길과 옛마을에 서린 끝모를 얘기들

    농월정 / 박지원사적비 / 정여창 고택 / 학사루 / 함양 상림 / 단성향교 / 단속사터

 

    지리산 동남쪽 - 함양 · 산청(하)

2 산은 지리산

    산천재 / 덕천서원 / 대원사 / 가랑잎국민학교 / 지리산

 

    영풍 부석사

3 사무치는 마음으로 가고 또 가고

    사과밭 진입로 / 무량수전 / 대석단 / 조사당 / 선묘각 / 부석

 

    아우라지강의 회상 - 평창 · 정선(상)

4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이효석 생가 / 봉산서재 / 팔석정 / 아우라지강

 

    아우라지강의 회상 - 평창 · 정선(하)

5 세겹 하늘 밑을 돌아가는 길

    선아리랑 / 사북과 고한 / 정암사 / 자장율사

 

    토함산 석불사(상)

6 그 영광과 오욕의 이력서

    창건설화 / 정시한의 석굴 기행 / 소네 통감의 도둑질 / 일제의 해체수리

 

    토함산 석불사(중)

7 석굴의 신비에 도전한 사람들

    박종홍 / 야나기 / 고유섭 / 요네다 / 이태녕 / 남천우 / 김익수 / 강우방

 

    토함산 석불사(하)

8 무생물도 생명이 있건마는

    1963년 보수공사 / 전실문제 / 광창문제 / 보존문제 / 신라역사과학관 / 유치환 시 / 서정주 시

 

    민통선 부근 - 철원

9 한탄강의 비가(悲歌)

     한탄강 / 고석정 / 승일교 / 도피안사 / 궁예궁터

 

    운문사와 그 주변(상)

10 저 푸른 소나무에 박힌 상처는

    동곡의 선암서원 / 대천리 수몰마을 / 운문사 입구 솔밭

 

     운문사와 그 주변(중)

11 운문사 사적기와 운문적의 내력

    가슬갑사 / 이목소 / 운문적 / 일연 스님 / 비구니 승가대학

 

    운문사와 그 주변(하)

12 연꽃이 피거든 남매지로 오시소

    새벽예불 / 벚나무 돌담길 / 운문사의 보물들 / 목우정 / 남매지

 

    미완의 여로(상) - 부안 변산

13 끝끝내 지켜온 작은 아름다움들

    부안 장승 / 구암리 고인돌 / 수성당 / 내소사 / 반계 선생 유허지 / 유천리 도요지 / 개암사

 

    미완의 여로(하) - 농민전쟁의 현장

14 미완의 혁명, 미완의 역사

    고부향교 / 백산 / 만석보터 / 말목장터 / 녹두장군집 / 황토재

 

부록 1 / 첫번째 답사기의 정정과 보완

부록 2 / 답사일정표와 안내지도

 

흐르는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흐르는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는다

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

 

천길 벼랑에서 옷을 털고

만리로 흐르는 물에 발을 씻는다

振衣千仞崗 濯足萬里流

 

이경윤 「고사탁족도」(16세기, 고대 박물관 소장) / 탈속한 처사의 삶을 형상화한 조선중기 회화사의 명작이다.

 

작자 미상 「삼복탁족도」(부분) / 사대부의 고귀함이 아니라 세속적인 물놀이를 그린 조선후기의 속화로서 그림 오른쪽으로는 세 여인이 목욕하는 누드화가 그려져 있다.

거연정 / 전시숙이라는 문인이 소요하던 곳에 후손이 세운 정자로, 계곡 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 위에 정자를 세운 드라마틱한 배치로 행인의 시선과 발목을 잡는다.

농월정 / '달빛이 비치는 바위 못'이라는 뜻의 월연암 위에 정자를 세우고 그 이름은 '달을 희롱한다'는 뜻의 '농월정'이라고 했으니 그 낭만적 분위기를 알 만도 하다.

지족당장구지소 / 지족당이 산보하던 곳이라는 뜻으로 새긴 각자(刻字)는 매우 힘차면서도 정연하게 깊이 새겨져 있어 그것이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되었다.

허삼둘 가옥의 부엌문 / 전형적인 ㄱ자 팔작집인데 정모서리에 배치한 출입구가 자못 이채롭다.

 

할아범 새를 보러 밭둑에 앉았건만

개꼬리 같은 조이삭엔 참새가 달려 있네

 

맏아들 둘째아들 들일로 다 나가고

온종일 시골집은 삽짝문 닫혀 있네

 

소리개 병아리를 채려다 못 채가니

박꽃 핀 울밑에서 뭇닭이 울어대네

 

새댁이 함지 이고 꼿꼿이 내 건널제

누렁개 발가숭이 아이 앞뒤로 쫓아가네

翁老守雀坐南陂   粟拖狗尾黃雀垂

長男中男皆出田   田家盡日晝掩扉

鳶蹴鷄兒櫻不得   群鷄亂啼匏花籬

小婦戴捲疑渡溪   赤子黃犬相追隨

- 「시골집(田家)」 연암 박지원

박지원 사적비 / 안의국민학교 교정에는 연암 박지원이 이곳 현감으로 근무했던 것을 기념하는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정여창 고택 / 높직이 올라앉은 사랑채에는 양반가옥의 품위와 권위가 한껏 살아 있다.

함양 상림 / 1000년 전에 방수림으로 심은 100여 종의 나무들이 그대로 천연기념물로 되었고 지금은 함양 사람들의 공원으로 사랑받고 있다.

학사루 / 함양읍내에 있는 이 누각은 무오사화의 숨은 전설이 전해져 더욱 역사성을 느끼게 된다.

단성향교

단속사터 / 넓고 그윽한 맛을 동시에 갖춘 계곡 속의 분지에 자리잡은 단속사터에는 준수하게 생긴 쌍탑이 의연한 모습으로 그 옛날을 지키고 있다.

산천재의 벽화 중 경작도 / 산천재 툇마루 윗벽에는 세 폭의 벽화가 그려 있는데, 그중 경작도는 토벽공사를 하는 미장이 아저씨가 이와 같이 절묘하게 그림 부분을 살려놓았다.

덕천서원 / 남명 조식 선생을 모신 서원으로, 끝내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재야를 지킨 선생의 뜻을 기리고 있다.

대원사 전경 / 6 · 25동란으로 전소되어 근래에 중창한 절이지만 비구니 청정도량으로 깔끔하기 이를 데 없다.

대원사 9층석탑의 석인상 / 이 탑 1층 몸돌에는 8부중상이 돋을새김으로 새겨 있으면서, 네 모서리는 석인상이 머리로 받치고 있는 특이한 조각이 첨가되었다.

대원사 9층석탑(보물 1112호, 고려시대) / 철분이 많은 화강암으로 세워 붉은기가 감도는데, 훤칠하게 뻗어오른 맵시와 정성을 다한 석공의 조형적 성실성이 느껴진다.

대원사 장독대 / 대원사 원통보전 뒤쪽에 있는 장독대에는 통통하게 어깨가 부푼 전형적인 경상도 장독들이 늘어서 있다

가랑잎국민학교라는 별칭을 얻은 유평국교 / 이제 학생수가 3명으로 폐교 직전에 놓였다.

부석사로 오르는 은행나무 가로수 길 / 적당한 경사면의 쾌적한 순례길로 멀리 일주문이 있어 거리를 가늠케 한다.

부석사 당간지주 / 곧게 뻗어오르면서 위쪽이 약간 좁아져 선의 긴장과 멋이 함께 살아난다.

대석단과 안양루 / 9품 계단의 마지막 3단으로 자연석을 이어짠 돌축대와 봉황의 날갯짓 모습의 누각이 아름다운 그림처럼 펼쳐진다.

무량수전 /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건축으로 우리나라 팔작지붕집의 시원양식이다. 늠름한 기품과 조용한 멋이 함께 살아나고 있다.

선묘각 / 무량수전 옆에 조그만 헛간처럼 세워진 선묘각의 모습이 너무 소홀한 대접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부석사 삼층석탑과 전경 /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삼층석탑으로 단정한 기품이 살아있는데, 그 위 언덕에 앉아 안양루 범종루를 내려다보는 전망이 여간 호쾌한 것이 아니다.

조사당 측면 / 조사당 건물은 고려시대 맞배지붕의 단아한 아름다움의 표본이다.

 

아질아질 성마령아

야속하다 관음베루

지옥같은 정선읍내

십년간들 어이가리

 

아질아질 꽃베루

지루하다 성마령

지옥같은 이 정선을

누굴따라 나 여기왔나

- 정선아리랑의 일부

이효석 문학비 / 영동고속도로 태기산 소풍휴게소에는 이효석의 문학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효석 문학공원 / 이효석 생가로 들어가는 입구의 작은 공원에 기념조각으로 세워놓은 것이 얼마나 사람을 웃기는지 모른다.

아우라지 처녀상 / 정선아리랑을 기리는 마음에서 세운 이 아우라지 처녀상이 좀더 정선색시 맛을 띠었으면 오죽이나 좋았으랴마는……

 

아우라지 지장구 아저씨(뱃사공아) 나 좀 건네주오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언겨주게

정선읍내와 조양강 / 조양강이 반원을 그리면서 흘러나간 강변에 정선읍이 고즈넉이 앉아 있다.

 

싸움

 

나는 우리 옆집 아이와

가끔 싸운다

그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우리 엄마한테 말해서

니네 식구 모두

쫓겨나게 할거야

하고 돌아가는 것이다

그 말만은 하지 말라고

나는 사과한다

(사북국교 5학년 아무개)

 

아주머니

 

새로 이사 온 아줌마는

참 멋쟁이다

그런데 하루는 아주머니가

광산촌은 옷이 잘 껌어

하며 옷을 털었다

왠지 정이 뚝 떨어졌다

(사북국교 4학년 전형준) 

 

막장

 

나는 지옥이

어떤 곳인 줄

알아요

좁은 길에다

모두가 컴컴해요

오직

온갖 소리만

나는 곳이어요

(사북국교 6학년 노영민)

황재형 작 「앰뷸런스」 / 탄광촌 사람이 아니면 지금 이 작품에서 산천초목이 떨리는 마음을 다는 읽어내지 못한다.

정암사 전경 / 수마노탑에 올라 정암사를 내려다보면 골짜기에 들어앉은 절집이 더욱 아늑하게 다가온다.

정암사 일주문

 수마노탑 / 전형적인 전탑[벽돌탑] 양식이지만 벽돌로 쌓은 것이 아니라 마노석으로 세워진 것이 특징이다.

석굴 내부 전경 / 본존불을 중심으로 벽면과 감실에는 39분의 보살 천(天) 나한 등이 정연한 도상체계를 이루고 있다.

천장석 팔뚝돌 해부도 / 석굴 궁륭부는 팔뚝돌을 이용한 절묘한 역학관계로 구축되어 있다.(신라역사과학관의 모형도)

깨진 천장덮개돌 / 세 동강이 난 천장덮개돌에는 석굴 완공의 어려움을 말해주는 미완의 전설이 서려 있다.

1907년경 발견 당시의 석굴 / 석굴은 전실의 목조건축이 없는 개방공간으로 궁륭 앞부분의 일부가 허물어져 있다. 바로 그 부분은 광창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고 있다.

해체되는 석굴 / 1914년 6월 15일, 석굴은 본존불과 천장석만 남겨둔 채 지붕돌을 다 들어냈다. 목책에 갇힌 본존불의 얼굴이 안쓰러워 보인다.

해체된 석굴 / 1914년 9월 12일, 석굴은 완전히 해체되어 10대제자상들이 한쪽으로 널려져 있다.

복원된 석굴 전경 / 1915년 9월 13일, 3년간에 걸친 해체공사를 마치고 복원된 모습이다. 외벽에 콘크리트를 발라 석굴보존에 치명상을 주었지만 전실을 개방한 것은 발견 당시의 원형을 따르고 있다.

전실이 개방되었을 때의 석굴 / 일제시대에 석굴 관광 기념품으로 만든 그림엽서의 사진으로 굴절된 전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10대제자상 / 제각기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10대제자상은 그 시선의 방향이 참배객의 순례길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다.

본존불과 분리된 광배 / 석굴 전체 구조에서 가장 절묘한 부분은 본존불과 광배의 분리이다. 이로 인해 광배의 장식성은 사라지고 이미지의 유동성(流動性)이 살아났다.

요네다가 그린 본존불의 측량도면 / 정사각형의 한 변과 그 대각선 √2의 연속적인 전개를 보여준다.

요네다가 그린 석굴 측량도면 / 석굴구조의 치밀한 수리적 관계가 한눈에 증명되고 있다.

예배자의 정위치

11면관세음보살상 / 다른 부조에 비해 강하게 돌출시키고 6.5등신의 현세적 미인관을 반영하여 이상적인 미인관, 즉 '미스 통일신라' 상에 접근하고 있다.

콘크리트 이중돔 해부도 / 누수를 방지하기 위하여 콘크리트 이중돔을 씌운 것이 1963년 보수공사의 주요 골격이었다. 신라역사과학관에서 제작한 모형 해부도.

전실 목조건물로 막힌 석굴 / 석굴의 전실을 목조건물로 막음으로써 외견상 '석굴암'은 '목굴암'이 되고 말았다.

팔부중상 / 전실 양쪽으로 늘어선 팔부중상은 바깥쪽 한 분의 키가 세분과 다르다. 이는 전실이 전개가 아니라 절곡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석굴의 광창(光窓) 상상도 / 남천우교수는 석굴 전면에는 이와같은 광창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잇다. 신라역사과학관이 제작한 모형.

버려진 석굴 원석재(原石材) 중 광창 부분 / 석굴에서 내려오는 돌계단 한쪽에 있는 원석재 중에는 광창에 사용됐으나 빼어버린 호(弧)형의 돌이 있다.

본존불의 얼굴 /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조화로운 만남으로 석굴의 본존불은 이상적인 인간상, 신의 인간화를 동시에 보여준다.

 

목놓아 터트리고 싶은 통곡을 견디고

내 여기 한개 돌로 눈감고 앉았노니

천년을 차거운 살결 아래 더욱

아련한 핏줄, 흐르는 숨결을 보라

           …

먼 솔바람

부풀으는 동해 연잎

소요로운 까막까치의 우짖음과

뜻없이 지새는 흰 달도 이마에 느끼노니.

 

뉘라 알랴!

하마도 터지려는 통곡을 못내 견디고

내 여기 한개 돌로

적적(寂寂)히 눈감고 가부좌하였노니.

- 유치환 「석굴암 대불」

 

그리움으로 여기 섰노라

호수와 같은 그리움으로,

오! 생겨났으면, 생겨났으면,

나보다도 더 '나'를 사랑하는 이

천년을 천년을 사랑하는 이

새로 햇볕에 생겨났으면,

허나, 나는 여기 섰노라,

이 싸늘한 바윗속에서

날이 날마다 들이쉬고 내쉬이는

푸른 숨결은

아, 아직도 내 것이로다.

- 서정주 「석굴암 관세음의 노래」

유희좌(遊戱座)의 보살상 / 10개의 감실에 모셔 있는 존상 중에서, 나는 이 아름다운 유희좌의 보살상에서 가장 큰 감동을 받았다.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