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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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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6. 10:16 내가 읽은 책들/2014년도

2014-120 만인보

 

高銀

2006, 창작과비평사 

 

시흥시대야도서관

SB001791

 

811.6

고67만 3

 

창비전작시---------------------------------------------------------------------

 

"우선 내 어린시절의 기초환경으로부터 나아간다"고 한 작자의 말대로, 이번 세 권은 주로 어릴 때 알던 고향사람들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들을 제대로 논하려면 마땅히 따로 자리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로서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당장의 뿌듯한 감회는, 어떠한 가난이나 고난 속에서도 끊길 줄 모르고  이어져온 이땅 위 삶의 기쁨과 보람이다. 또한 이 기쁨과 보람을 담은 시인의 말, 겨레의 말에 대한 자랑스러움이며, 작자 자신도 이야기한 바 그 말 앞에서 삼가는 마음이다.

『만인보』의 서사적 풍요는 차라리 소설문학의 성취를 떠올린다. 그리고 고은 자신의 『전원시편』에 비해서도 "첫가을에 백리가 트인다"는 그의 시구대로 무언가 툭 트였다. 더러 장황하던 대목이 크게 가셨고 농사꾼의 일하는 기쁨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어떤 착심 같은 것도 자취를 감추었다.

- 백낙청(발문 중에서)

 

 

 

고  은  高  銀

1958년 처녀시를 발표한 이래 시 · 소설 · 평론 등에 걸쳐 130여권의 저서를 간행했다. 서사시 『백두산』『만인보』와 『고은시선집』 1 · 2 『고은전집』(전38권)을 출간했다. 현재 세계 시아카데미 회원(한국대표)이다.

 

차례

 

서문 밖 / 추석날 / 웃말 사람 / 뒤엄 / 선묘 / 도식이 아저씨네 집 / 잿정지 호박밭 / 김병천 / 도깨비불 / 굼벵이 새끼 / 외할머니 단짝 / 상술이 아버지 / 한 고려 군수의 풍류 / 반나절고개 / 나운리 가게 / 천읍 / 장마 뒤 / 똘 / 변산 대도 / 면장 고수장 / 옥정골 미친년 / 김양규 / 옥남이 어머니 / 신라 대안 / 이년아 / 산북리 아이들 / 모 심을 때 / 막내딸 / 효조지 마누라 / 턱점백이 / 갈퀴손 / 김기태 / 말봉이 어머니 / 유대치 / 턱점백이 신랑 / 동네 도둑 / 천덕꾸러기 / 2학년 담임선생 / 기생 초월 / 문옥자 / 벽 / 상복이 마누라 / 수진이 아버지의 풍류 / 정거장 / 미제 방죽 / 묵은 장 / 관노 또쇠 / 사랑재 사람 / 굶는 집 / 옹달샘 / 고조할아버지 / 삼 년 가물 / 노랑머리 / 자장 / 진구 에미 / 윗뜸 우열네 집 / 상묵이네 밭 / 도식이 할머니의 잔소리 / 사행이 아저씨의 아버지 / 진표 / 널뛰기 / 소반장수 / 차천자 / 이모부 동생 / 원수 / 나까무라 요네 선생 / 백광운 / 서낭당 / 상필이 형제 / 미쓰이 백화점 / 기백이 마누라 / 왕산악 / 개마고원 사냥꾼 / 귀녀 / 두문동 / 아베 교장 / 물캐똥이 / 병만이 아버지 / 종달새 / 은석이 누이 / 늙은 혁명가 걸걸궁상 / 이종남 / 논두렁 / 영창대군 / 허수아비 / 눈먼 상식이 어머니 / 두렁쇠 / 귀신 / 궁녀 옥야 / 고모네 집 뱃노래 / 진골 노름꾼 / 논개 / 칠성암 주지 / 아이들 싸움 / 백결선생 / 개똥벌레 / 한냥고개 / 옥정골 오리나무 / 신촌 예배당 / 소금장수 김두원 / 태성옥

跋文 『만인보』를 읽으며

찾아보기

 

서문 밖

 

옥정골 재 넘으면

서너 가호 뜸마을 있지요

에미는 생것장수로

박대 도다리 따위 함지박에 이고

이 동네 저 동네 도는데

어린아이 호묵이란 놈

에미 대신

솔가루나무 한 구럭 다지고 다져 해오지요

신통하기도 하지요

신통방통하기도 하지요

제법 두메라

금낭화 족도리꽃 호젓이 피는데

어린 호묵이란 놈 콧구멍 할미 들락날락하는데

나무 한 구럭 지고 내려오는데

느닷없이 뛰어가는 놈

산토끼 한 마리에

그만 놀라 나무 구럭 기우뚱 넘어지고 말았지요

순한 것끼리도 심심풀이로다가

달아나고

넘어지고 하지요

 

잿정지 호박밭

 

처서 무렵

늦호박꽃 뒤덮인 밭

비탈 일구어

척박한 비탈에는

호박이 제격이지

호박꽃뿐 아니라

호박깨나 열려 있는데

미운 맏며느리 뒤통수로 열렸는데

그 가운데

애호박도 눈에 번쩍 하는데

애호박 따는 큰애기 덕순이 홑적삼에 땀 들어간다

여름 다 갔구나

그 큰 여름 다 갔구나

중매 들어올 때마다

어느 귀신이 어깃장 놓는지

혼사마다 틀어지고 마는 덕순이

암 올해 동지까지는

호박떡 호박죽 호박고지 먹고

내년 춘삼월에는 시집가야지

어릴 때 떼 잘 써서

떼장이였던 덕순이

이제 눈에 세상 들어가

오마나 소리도 없이

눈 속에서 아귀 트는 겨울풀 보아도

오마나 소리도 없이

입 무거운 덕순이 시집가야지

 

반나절 고개

 

나운리 미제 사이 독점고개

황톳길

눈 녹는 날

그 고개 넘으려면

발 푹 빠져 반나절 걸린다

그래서 반나절고개

비 온 뒤

그 고개 넘으려면

반나절도 더 걸린다

그래서 반나절고개

진흙이 사람 발 안 놓아준다

빠졌다가 자빠졌다가

천하에 둘 없는 양반 거들먹거리는 양반

나운리 김재홍 영감땡감아

독점고개 한번 넘어보아라

네가 양반인지

황토구더기 진흙인지

반나절고개 넘어서

자갈길 나서면

토탄 캐는 논 바라보며

자갈길 나서면

그때의 맛이라니

살맛이라니

걸음에 새 힘 나서 성큼성큼

발굽에 바람 나서

김재홍 영감땡감 손자 손녀야

너희들일랑 제발 우자부리지 말어라

이 세상은 함께 사는 세상일 터

제발 덕분 버티지 말어라

땅 밟는 주제에

땅에 묻힐 주제에

 

변산 대도

 

예로부터 부안 변산

백제 유민들

세상 등져 살던 곳이렷다

백사 청송길 올라가

내변산 외변산은

대대로 독립처사 산채 가는 길이렷다

거기에

사천왕상이라기도 하고

장각 비각이라기도 하는 큰 도적이 있었으니

성이 박씨라 박장각이렷다

어찌나 걸음 하나 날으는지 장각이요 비각이렷다

하루 5백리 달리고도

소매자락 바람소리 자면 섭섭하렷다

본디 남의 싸움 말리다가

사람 죽인 뒤

늙은 어머니 업고

변산 골짜기 숨어들어

화전 일궈

사냥질 해먹고 사는데

거기에 도적떼 나타난 이래

그 도적에 끼어들어

상수리나무 하나 뽑아올려

땅이 맷방석만치나 솟아오르며 뿌리째 뽑아올려

마침내 산채 두령이 되어

3백 도적 거느리고 나섰것다

소두령 거느리고

졸개 거느리고

산채 식구들 다 거느리고

말 타고 견마 잡혀

부담농 실은 구종별배 거느리고

위엄 떨치며

대낮에 부자집 들어가 다 털었것다

누가 보기에도

그 집에 세도대가 빈객이 왔지

어찌 도둑 일행이겠느냐

이런 행차로

산채에 물화가 풍족하니

못 먹어 도둑 된 식구들 목구멍 원 푸는데

그러다가 졸개들이

영장 토포사에 무더기로 잡혀버리니

그들을 풀 생각에

영장나으리하고 담판하여

도적질 그만두어버렸것다

변산 빈 산채

누가 또 들어가 대대로 도적질 이어가렷다

 

천축 성현이여

곡부 성현이여

이 세상에 도적 없는 때 언제더이까

 

정거장

 

군산역 첫차 타고

떠나는 삼촌

그 삼촌 손 들어 작별하던 곳

얼마나 멋지던지

잿정지 길상이

아버지하고 돌아오며

연신 산에 대고

손 흔들었다

매놓은 소 보고

손 흔들었다

정거장 한번 다녀오면

그것이 큰 자랑이라

한 달 두 달은

그 자랑으로 살 만했다 신났다

나는 길상이가 부러웠다

우리집은

백년 가야

누가 정거장 갈 일 없다

떠나는 사람 없다

그것도 가난이라

그러나 길상이 그애가

미친개 물려

미친개처럼 마구 짖어댔다

나는 길상이가 무서웠다

할미산에 올라가

기적소리

기차 연기 바라보다가

정거장 생각하다가

미친 길상이 생각나자

다 그만두고 내려와버렸다

집에 와

술 취한 할아버지 보고 마음 놓았다

 

미제 방죽

 

미제 방죽 연꽃 다 떠나가버리고

그냥 맨물만 남아 가득할 때

여름마다

비 온 뒤 피던 연꽃 못 보고

그냥 맨물 가득할 때

거기에 돌 하나 던져

툼벙 ! 물소리 난 뒤

미제 아이들

용둔리 아이들

뚝길에 모여

연꽃 와라 연꽃 와라 연꽃 와라

외쳐댔지만

1945년 이래

비 오는 날

연잎사귀로 우산 받던 연 오지 않았다

연이 오기는커녕

물 속에서 마른 연줄기들이 썩어버렸다

그리고 6 · 25가 왔다

사람들이 서로 죽였다

우익과 좌익이여

 

묵은 장

 

새 장터보다

묵은 장에 더 먹을 것 푸짐하다

그러나

빈털터리 아버지 따라간

상진이

그 많은 먹을 것 그냥 지나간다

침도 못 삼키고

눈만켜고

이 세상은 절대로

먹고 싶은 것 공짜로 먹을 수 없다

돈 없이 먹을 수 없다

어린 상진이

열두 살에

진리 깨쳤다

배고팠다

 

옹달샘

 

용둔마을 옹달샘 하나 없었다면

무얼로 마을 삼으랴

그 옹달샘 어두운 물에

함박눈 하염없이 내려

없어지는데

그 고요 고요 고요

하필 눈 맞고

물 길러 간 양술이네 쪼깐이

작은 물동이 내려놓고

물 긷는 쪽박 든 채

눈송이 죽는 것 보는

고요 고요 고요

 

서낭당

 

서낭당에 돌 던져

 

가는 길 무사하기를 빈다

아버지한테 배운 것도 아닌데

네 살만 되면 돌 던진다

서낭당에 돌 던져

미운 사람 잘못되기를 빈다

손해보기를 빈다

그러나 미운 사람 죽기를 빌지 않는다

여기까지가

농사꾼의 묵은 저주이며

아무리 모진 사람도

여기까지가 저주이다

그런데 일제 말

배 곯을 때

눈 뒤집힌 사람들

걸핏하면 돌 하나 던져

부자 아무개 자식 죽게 해달라고

부자 아무개 애비 고종명하지 말게 해달라고

빌어 마지않았다

서낭당 돌무더기 자꾸 쌓였다

그 비는 것

박대곤이 여편네가

부자집에 고자질해서

빈 사람 수동이 녀석

부자집 가네오까네 바깥마당에 불려가서

그 집 머슴에게

그 집 큰아들 가네오까 다로에게

몽둥이찜질 당하였다

그 뒤 수동이 녀석

한밤중 부자집 가네오까네 집에 돌 던졌다

서낭당에 던지는 대신

던지며 비는 대신

귀신 형용으로

부자집 안방 창호지 뚫었다

그러다가 주재소에 잡혀갔다

콩밥 먹었다

한 달 콩밥 먹고 돌아왔다

늘 울었다

개가 짖었다

 

미쓰이 백화점

 

군산 3층 미쓰이 백화점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나는 무서웠다

처음 보는 찬란한 물건들이 무서웠다

일본사람 조선사람이 무서웠다

기어이

아버지와 나는

백화점 여자에게 쫓겨났다

이 백화점에는

당신들이 살 것이 없다고

묵은 장에 가라고

새 장터에 가라고

아버지는 쫓겨나와 웃었다

백화점 돌아다보고

야 오라고 해도 안 가겠다

나를 보고

저기 가 국밥 사 먹자

도회지는 무서웠다

2층 창으로 일본아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얼굴이 하얀 아이

좋은 옷 입은 아이

나는 그애가 무서웠다

뚜우 하고

항구의 기적소리가 났다 무서웠다

내가 무서워하지 않는 건

우리 동네 풀이다 잔소나무다

우리 동네 짖을 줄 모르는 개들이다

 

두문동

 

송도 부조현 고개 너머

칙칙한 솔밭

개풍 광덕산 밑 두문동입니다

이른바 고려 유신 72현 두문동입니다

신씨 조씨 고씨 서씨 임씨 맹씨들의 두문동입니다

이성계 등극에 등돌려

제 자식 제 손자 대대에 이르기까지

농사 장사에

망한 족속의 삶을 걸었읍니다

여기서 개성상인도 나고

여기서 개성 인삼재배도 나왔읍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망한 나라가 아니라

바로 그들이 망친 나라가

고려입니다

섣불리나마 칼 한 자루 들어보지 않고

어허 슬프고녀 슬프고녀 하고

사라진 왕조의 쑥밭 쪽에 대고

슬픈 노래 읊조리고만 있었읍니다

그들 72현은 그렇다 치고

그들의 자식 손자는 왜 두문동 처사로만 있게 하였읍니까

고려 유신 72현이 아니라 72인 어리석은 사람이었읍니다

그러나 거기서 장사 기술 썸뻑 익히고

인삼 재배 솜씨 으뜸이 되었으매

결국은 어진 사람은 어진 사람이었읍니다

보시지요 어느 나라에도

그 나라 중견 관리의 충성은 이것입니다

이것밖에는 더도 덜도 아닙니다 72현입니다

 

논두렁

 

두벌 김매는 날

아버지 정두네 김매는 날

점심때 되면

어머니는 그 집 밥광주리 이고 가고

나도 따라가

우선 두 식구 점심은 잘 때운다

농사꾼 밥 인심 하나 있어

굶는 집이야 모르쇠하건만

이런 들밥 인심 좋아

고봉밥 쌀 섞은 밥 한 사발 베어먹으며

찐 갈치토막 떼어먹으며

돼지비계국 마시다가 입 떼며

배부르고 나서 헤픈 웃음

누가 싱건지 같은 소리만 해도

나오는 눗음

그러나

정두네 김매는 날

정두 할아버지

양산 받고 논두렁 나와

김매기 앞장선 풍장꾼 셋더러

풍장 그만 치게 하고

그 세 사람도 김매게 한다

푸짐하던 풍장소리 뚝 끊기자

잘 되던 일

흥겹던 일 맥 놓아버리는데

불볕은 더 내리꽂히는데

 

한냥고개

 

화성 십 리 밖에 지지대가 있것다

정조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 무덤 다녀가다가

돌아다보고

돌아다보고 하는 곳이어서

신하들이 일부러 어가 행렬을 늦췄것다

그런데 이 고개가

임금고개 지지대고개 되기 전에는

한냥고개 도적고개였것다

과객이 고개 넘을 때마다

어디서 말소리 들리는데

그 소리인즉

한 냥만 내고 가거라

그냥은 못 넘어간다

어떤 사람은 갖은 꾀 다 내어

그저 다섯번째 넘는 판인데

이 거사야

다섯 번이나 공짜배기로 넘어가느냐

한 냥만 내고 가거라

화성고을 백성들 일컫기를

한냥고개 도적은 도적이 아니라

미륵당 미륵불이라 하였것다

때는 중종 조광조파가 무너지고

남곤이 권세 잡았으니

호조 창고에 곡식이 없어도

남정승 창고에는 쌀이 썩어나는 판이렷다

6도 재물이 다 들어와 썩어나는 판이렷다

바로 이때

한냥고개 한냥도적 뜻한 바 있어

이 고개 작파해버리고

관악산 도적 백 명을 거느려

남정승 집 탈탈탈 털어버렸것다

두목 배서방이 바로 한냥고개 도둑이렷다

그 뒤로 도둑고개가

지지대 임금고개 되었것다

그 뒤로 임금고개가

아리 아리 아리랑고개 되어

뭇 백성 넘었것다

넘어 간도땅으로 숟가락몽댕이만 가지고 갔것다

 

신촌 예배당

 

신촌 앞산 예배당은

기역자로 되어

저쪽은 여자

이쪽은 남자

기역자 모서리에 목사님 섰다

목사님이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면 저쪽에서는 우는 소리 나는데

이쪽은 싱겁다

목사님이 기도하면

저쪽에서는 아멘하는데

이쪽은 가만히 있다

그 뒤 목사님 떠나버리고

신촌 조달연씨가 장로로 예배 보았다

조는 사람이 많았다

일하는 사람들이라

앉아 있으면 잠이 왔다

장로 조달연씨가 목사보다 좋았다

꾸벅꾸벅 조는 사람 깨지 않게

설교도 기도도

큰 소리 내지 않고 마쳐주었다

꿩 대신 닭이 좋았다

다 해진 성경책이라

다른 사람의 것 빌려다 보는

조장로님이 좋았다

아이들도 좋아했으나

동네 개들도 좋아해 꼬리 내둘렀다

눈 펄펄 내리는 날

주일날

내앵 내앵 종소리 나면

동네 아이들하고 개하고 함께 뛰어갔다

앞산 예배당

떡 주는 예배당

기역자 예배당

조는 예배당

아이고 좋아 아이고 좋아

 

 

 

posted by 황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