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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6. 19. 16:42 내가 읽은 책들/2018년도

2018-030 다시쓰는 택리지 ② 전라 · 경상편

 

 

 

신정일 지음

2004, 휴머니스트

 

시흥시대야도서관

EM037823

 

981.1

신746택  2

 

신정일의 글은 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는 자기의 발이 도달한 산천 도처에서 금강의 여러 구비에서 울고 웃는다.

-김지하(시인 · 사상가)

 

신정일의 『다시쓰는 택리지』는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이 땅 구석구석을 누구보다도 많이 걸었던 그의 발이 쓴 국토교과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덕일(역사가 ·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신정일은 무당처럼 답사를 한다. 혼이 실리고 신명이 나는 답사…이렇게 신명나는 답사의 궤적을 따라가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행운이다.

-이정민(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신정일

 

문화사학자이자 답사가인 그는 1985년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발족하여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출발점이라 평가받고 있는 동학과 동학농민혁명, 그리고 묻혀 있는 지역문화를 발굴하고 재조명하는데 힘쓰고 있다.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으면서, 한국의 10대 강 도보 답사를 기획하여 금강. 섬진강. 한강. 낙동강. 영산강까지 답사를 끝냈고, 대동강. 압록강. 두만강 등 북한의강을 답사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저서로 『동학의 산, 그 산들을 가다』 『지워진 이름 정여립』『나를 찾아가는 하루 산행 1, 2』『금강 401km』『섬진강 따라 걷기』『한국사, 그 변혁을 꿈꾼 사람들』『신정일의 한강역사문화탐사』『신정일의 낙동강역사문화탐사』 등이 있다.

 

"내가 한발 한발 걸으며 지나온 산과 강, 그 길을 걸으며 내가 발견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였고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우리의 국토였으며, 그 국토를 몸서리치도록 사랑하고 잇다는 사실이었다."

-머리말 중에서



차례

 

머리

 

전라도(全羅道)


 

1. 첩첩산중의 대명사 무진장지역

인걸은 땅은 영기로 태어나는 것

산은 높고 그 물줄기는 길고

강낭콩보다 푸른 절개

상수리와 밤을 저장하던 무주

사돈의 팔촌에 정승 하나 없다

 

2. 후백제의 도읍지 온고을

온전한 땅 전주

전주를 굽어보는 남고산성

후백제의 도읍지 완산

남국의 인재가 몰려 있는 전주

세상에 오는 것은 돌아감을 뜻함이니

 

3. 금강의 하류 군산

오성산에서 금강을 바라보며

「탁류」의 작가 채만식

쌀의 집산지 군산

마한의 옛 땅이었던 익산시

동양 최대의 절터 미륵사

화암사 가는 길

구릿골, 그 유토피아의 땅

 

4. 고부고을에 얽힌 사연

내장산과 <정읍사>의 고장

동학의 땅 정읍

나라 안에서 가장 살 만한 땅

선운산이 있는 고장

모양성에는 여름 햇살만 남아

하늘에 제사 지내던 도선리 고인돌

3천여 명의 스님이 머물렀다는 선운사

법성포항에 있는 영광 굴비

 

5. 수진이 날진이가 쉬여 넘는 고개

해동청 보라매가 쉬여 넘는 고개

갈애바위의 전설

고을의 판세가 한양과 흡사하다

집강소를 설치하지 못했던 나주

작은 서울이었던 나주

 

6. 영산강유역의 고을들

영산강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나비축제와 함평 고구마

달은 청천에서 뜨지 않고

중국으로 가던 뱃길

섬진강의 발원지는 어디인가?

덕택산 방면에 어린 용이 보이다

 

7. 살제 남원, 죽어 임실

여러 산이 줄지어 있고 물 한줄기 둘러 흐른다

신포 개장국과 의견제

『산경표』를 지은 신경준의 고향

교룡산 자락에 펼쳐진 남원

남접이 시작된 선국사

운봉고원이 있는 곳

섬진강 물 맑은 유곡나루에

지리산녀가 사는 구례

화엄사의 각황전

모든 산의 으뜸인 지리산

남한의 3대 길지 운조루

 

8. 무등산을 바라보다

대나무가 많은 담양

광주 그 영원한 도시

풍속이 화순한 고을

백성은 순박하고 일은 간략하고

보성과 벌교 그리고 태백산맥

 

9. 산과 물이 기이한 순천

산과 물이 기이하고

금둔산과 낙안읍성

향일암과 한려수도

여수에 있는 진남관

땅이 남쪽 바다에 닿았다

 

10. 다도해 주변의 고을

장보고와 청해진

보길도 그 아름다운 곳

남쪽나라 따뜻하여 겨울에도 눈이 없고

불교 남방전래설은 설화로 남아 있고

진도 그 유배의 땅

벽파진에 다리가 놓이고

 

11. 낙원의 섬 이어도

삼다의 섬 제주도

제주도에 한라산이 있다

 

경상도(慶尙道)


1. 조령과 죽령의 남쪽에 있는 고을

황부자의 전설이 서린 황지

경상좌도와 경상우도

잊혀진 역사 가야

산과 물이 빼어난 경주

천년사직 신라가 저물어 가고

토착세력이 정계 진출이 이어지고

 


2. 예의범절이 두터운 고장

네 지역으로 갈라선 예안

퇴계 이황과 도산서원

민족시인 이육사

연화부수형의 하회마을

유성룡

왕건과 견훤의 싸움터였던 안동

모든 나무의 으뜸인 춘양목

조지훈의 고향 영양

 

3. 의성에서 만나는 일연스님

산수유꽃 노랗게 흐느끼는 의성

일연스님이 입적한 인각사

내가 오늘 갈 것이다

박인로의 고향 영천

동해의 끝 울릉도

미인과 바람과 향나무가 많다

맛있는 영덕 대게

평민 의병장 신돌석이 꿈을 키운 곳

남사고가 태어난 수곡리

 

4. 양동 민속마을

양동마을과 옥산서원

내 말을 놓네

도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태어난 곳

처용설화가 서려 있는 울산

영남대로는 웬 길인가

가산에 쌓은 가산산성

한국전쟁 당시의 싸움터

경상감사가 있던 곳

 

5.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밀양아리랑>의 고장

경상도에서 이름난 고장 밀양

사명대사가 태어난 고자리

도동서원 앞을 낙동강이 흐르고

가야의 땅 창녕

통도사가 있는 양산

부산에 동래가 있다

대마도 정벌

 

6. 나라 안에서 두 번째 큰 도시 부산

임진왜란이 일어나다

동래온천과 금정산성

부산의 어제와 오늘

 

7. 새재 아래 고을들

문경새재는 웬 고갠고

이필제의 난

사벌국이었던 상주

낙동강 변에서 제일 큰 낙동나루

물맛이 좋아 예천이다

윤장대가 있는 용문사

임을 여읜 슬픔이 이다지도 깊으랴

 

8. 영남은 조선 인재의 곳간

조선 인재의 보고 선산

산천은 의구하고 인걸은 간 데 없고

추풍령 고개 너머 김천

부족국가 가야국

매화산에 매화꽃이 피어나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9. 땅은 기름지고 기후는 따뜻한 성주

인물이 많은 성주

남명의 제자 정인홍

8도 유생들로부터 탄핵을 받다

 

10. 기질이 억세고 싸움하기를 좋아하고

동계 정온의 옛집

거창 양민학살사건

남덕유산에서 남강물이 시작된다

남명 조식과 지리산

영남 제일의 경치 진주

최경회의 뒤를 이어 논개도 죽음을 맞고

육십령을 넘어 전라도로

 

11. 남강 변에 펼쳐진 고을

좌안동 우함양에 얽힌 내력

구형왕의 무덤

의령에서 태어난 곽재우

쌍계사로 가는 길

일곱 왕자가 칠불이 된 칠불암

토지의 무대 평사리

하동포구 80리 강은 다시 하동으로 흐르고

섬진강에 하동연가가 흐르다

 

12. 남해 금산에서 바다를 바라보다

남해 금산의 보리암

외로운 성이 바다에 임했고

거제도 포로수용소

마산의 옛 이름 합포

 

금강의 발원지

비단강이라는 이름이 붙은 금강의 발원지 뜬봉샘은 신들이 춤을 춘다는 뜻을 지닌 신무산 정상 부근에 있다.

나제통문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역이었던 나제통문은 무주군 설천면과 무풍면 사이에 있다.

마이산

전북 도립공원에서 대한민국 명승으로 격상된 진안의 마이산. 두 귀의 모습이라 하여 마이산이라고 부른다.

덕지(덕진연못)

전북대학교 소유였던 덕진연못을 전북대학교 의대 건물과 맞바꾸어 지금은 전주시민공원이 되었다. 전봉준 · 김개남 · 손화중의 기념물과 신석정을 비롯한 여러 시인들의 시비가 서 있다.

남고산성

후백제를 창건한 견훤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산성으로, 산성 안에 남고사와 천경대 · 만경대 · 억경대 등의 대가 있다.

풍남문

호남제일문이라고도 부르는 풍남문은 전주부성의 남문으로 성 밖에는 남문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1894년에는 동학농민군이 남문을 열고 나가 완산칠봉에 진을 치고 있던 홍계훈의 관군과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옥구향교 자천대

최치원이 이곳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시름을 달랬다는데, 지금은 자천대에서 바다를 바라볼 수 없다.

미륵사지 석탑

무왕과 선화공주가 세웠다는 미륵사는 동양 최대의 절이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폐사가 되었다. 미륵사지 석탑은 지금 해체 수리 중이다.

익산 동고도리 석불

동고도리에 두 석불이 있다. 옥룡천을 사이에 두고 200미터쯤 떨어져 있는 이 석불은 평소에는 만나지 못하다가 섣달 해일(亥日) 자시(子時)에 옥룡천이 얼어붙으면 서로 만나 회포를 풀다 닭이 울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전설을 안고 있다.

화암사

나라 안에서 가장 깊고 그윽한 절로 꼽히는 화암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에 있다.

벽골제

고부의 눌제, 익산의 황등제와 함께 호남평야의 3대 저수지였던 벽골제는 사적 제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구릿골

광제국이라고 씌어진 좌측의 두 평 남짓한 방에서 증산 강일순이 9년 간에 걸쳐 천지공사를 펼치다가 1909년에 세상을 떠났다.

전봉준의 모습

초상화 속의 전봉준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만석보

태인천과 정읍천이 만나는 동진강 변에 세워진 만석보유지비. 조병갑은 백성을 동원하여 이 저수지를 만들고 임금을 주지 않았으며, 물세를 과도하게 받아 착복하였다. 이에 분개한 농민들이 일어나면서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되었다.

고부의 군자정

역대 고부군수들이 풍류를 즐겼던 군자정에는 수많은 비석이 있으니 온전한 것은 별로 없다. 영원히 잊지 못할 만큼 선정을 베푼 관리들이 과연 있기나 했을까?

위도 띠뱃굿(띠뱃놀이)

2003년 방사능폐기장 문제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부안의 위도 대리마을은 띠뱃굿으로 나라 안에서 이름이 높다. 정월 초사흘부터 보름까지 풍어를 부르고 마을의 액운과 질병을 막기 위해 벌이는 굿이다.

고창읍성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조선시대의 자연석 성곽으로 여자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있으며, 모양성이라고도 부른다.

신재효 고택

고창 고인돌

고창읍 도산리의 민가 디뜰 장독대 옆에 있는 북방식 고인돌들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선운산의 진흥굴

불교에 심취한 신라의 진흥왕이 왕비와 공주를 데리고 선운산의 자연석굴인 이 굴에 와서 수도를 했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갈애바위

옛 이름이 갈재인 호남터널을 지나 장성 땅에 접어들면 왼쪽으로 작은 산 하나가 보이고 그 정상에 갈애바위가 있다.

필암서원

하서 김인후를 모신 필암서원

나주 정수루

나주목사 내아(內衙) 가는 길에 자리 잡은 정수루는 역사의 현장을 바라본 채 그저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나주향교 대성전

나주향교 대성전은 서울문묘 · 장수향교 · 강릉향교와 함께 건축물이 장중한 편에 속하며 보물 제394호로 지정되어 있다. 100여 년 전 나주의 모습이다.

동학토평비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라도 53개 군현 가운데 집강소가 설치되지 않았던 곳이 나주와 운봉이었다. 그 사실을 최익현이 글로 지어 세운 것이 나주 동학토평비이다.

나주 반남고분군

반남 박씨의 고향인 나주시 반남면의 자미산성 주변의 대아리 · 신촌리 · 덕산리에는 반남고분군이 밀집되어 있다.

옛날 영산포

무안 자산서원

기축옥사 당시 정여립과 친교를 맺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곤재 정개청을 모신 서원이다.

목포

영산강물과 서해 바닷물이 합쳐지는 이곳의 형세가 마치 '길목쟁이'처럼 중요한 구실을 하여 목개라 부르다가 한자로 목포라고 하였다고 한다.

정약전 유배지

정약전의 유배지 사리에는 정약전이 유배생활을 했던 집이 복원되어 있다.

회사정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에 있는 회사정. 1565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구림 대동계는 중국에서 들어온 향악과 계의 기능을 접붙여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섬진강의 발원지 데미샘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봉황산 중턱에 있는 데미샘은 212킬로미터를 흘러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에서 남해로 들어간다.

오수 의견비

고려 때 사람 최부의 『보한집』에 의견(義犬)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귀래정

순창읍 가남리에 있는 귀래정은 신숙주의 동생 신말주가 형의 변절에 실망한 뒤 내려와 지었다고 한다.

순창 말 명당

순창시 인계면 마훈리 대마마을 뒷산에 있는 조선 8명당이라고 알려진 명당 터이다. 이곳의 말형국은 용마등공형의 명당으로, 말이 움직이며 하늘로 오르는 형국이라고 한다.

광한루 월매집

선국사

남원시 산곡동의 교룡산 중턱에 이치한 선국사의 보제루.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이 절에서 8개월을 머물렀으며, 김개남은 교룡산성에 집강소를 설치했었다.

황산대첩비

운봉읍 황산자락에 있는 황산대첩비

섬진강

"…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이라고 김용택 시인이 노래한 섬진강에 댐이 들어서면서 섬이 된 운암의 입석리 부근이다.

요강바위

순창군 동계면 장구목에 있는 요강바위. 얼마나 큰지 열 마을 사람들이 저녁 내내 싸도 채우지 못할 정도이다.

화엄사 4사자 석탑

국보 제3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인간세상의 희노애락을 상징하는 네 마리 사자가 탑의 몸을 떠받치고 있다. 경주의 다보탑 · 정혜사지 13층석탑과 함께 이형석탑의 하나로 꼽힌다.

구례 운조루

남한의 3대 길지로 알려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의 운조루는 조선 영조 때 낙안부사를 지냈던 유이주(柳爾胄)가 지었다고 한다.

매천 황현을 모신 매천사

매천이 살았던 구례군 광의면 월곡리의 매천사. 조선의 마지막 선비 황현은 『매천야록』『오하기문』 등의 저술을 남겼으며, 조선이 일본에 합병되자 아편을 마시고 순절했다.

담양 소쇄원의 광풍각

소쇄원은 조광조의 제자 양산보가 만들었으며, 광풍각은 송나라 때 사람 황정견이 주돈이의 인물됨을 일러서 "가슴에 품은 뜻의 맑고 맑음이 마치 비갠 뒤 볕이 나며 부는 바람과 같고 맑은 날의 달빛과 같다"는 데서 따온 이름이다.

금성산성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성이 담양의 금성산성일 것이다.

화순 대신리 고인돌

1990년대에야 사람들에게 알려진 화순 일대의 고인돌 중 대신리 고인돌들은 돌을 떼어낸 자국이 지금도 선명하다.

조광조 유허지의 비각

화순군 능주면에 있으며 송시열이 글을 썼다.

보성 차밭

보성의 봄은 유난히 푸르다. 푸른 물결 일렁이는 보리밭과 자운영 꽃밭 그리고 고랑마다 차를 따는 여인네들의 손가락도 바닷물처럼 푸르러 온통 푸르다.

소록도 납골당인 만령단

이곳에 모셔진 나환자 혼백의 수가 2003년 가을에 1만여 명을 넘어섰다. 후세에선 편히 잠드소서.

팔마비

고려 때 순천의 부사로 왔던 최석이 지방 사람들이 준 8마리의 말을 되돌려 준 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1616년 『지붕유설』을 지은 이수광이 고쳐 세웠다.

송광사

조계산 자락에 있는 절로, 신라시대에 혜린대사가 길상사라는 이름으로 지었던 암자를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이 크게 중창했다.

낙안읍성

나라 안의 다른 읍성과 달리 사람이 살고 있으며, 매년 음식축제가 열린다.

진남관

조선시대의 관아 건물 중 가장 컸던 곳으로 보이는 진남관은 전라좌수영 성의 중심 건물인 진해루가 있었던 곳으로, 정유재란 때 불에 타버리자 1599년 삼도통제사로 부임한 이시언이 새로 지은 객사이다.

다산초당 천일각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도암만 일대의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청해진

해상왕 장보고가 진을 치고 수병을 훈련시켜 해적을 무찔렀던 곳이다.

보길도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자 문장가인 윤선도가 자리를 잡고 세월을 보낸 곳이다.

해남 녹우당

윤선도의 옛집. 해마다 가을이면 은행잎이 소낙비 쏟아지듯 우수수 떨어진다고 하여 녹우당이라고 이름 지었다. 집 뒤편에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241호)이 있다.

미황사 부도

옛 통교사 자리에 자리 잡은 미황사의 부도밭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땅끝

토말이라고 알려진 이곳이 우리 국토의 끝이다. "땅끝에 서서 더는 갈 곳 없는 땅 끝에 서서"라는 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남도석성

사적 제127호로 지정된 남도석성은 고려 때 삼별초군이 쌓았다고 하나 그 이전부터 성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 근처에는 쌍홍교와 단홍교 등 두 개의 돌다리가 있다.

한라산

제주도 한복판에 솟아 있는 한라산은 남한에서 제일 높고, 정상에는 백록담이라는 분화구가 있다.

관덕정

세종 30년에 제주목사 신숙청이 군사를 훈련시킬 목적으로 지었으나 주로 공사를 의논하고 잔치를 베풀었다, 보물 제322호로 지정되어 있다.

1900년대 초의 제주 해녀

돌 · 바람 · 해녀가 많은 제주에서 강인한 정신력으로 바다물질을 한 해녀들은 제주도의 오늘이 있게 한 원동력이다.

대왕암 일출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문무왕은 죽어서도 용이 되어 왜구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고자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여 동해 바다에 묻으라고 하였다.

경주 불국사

불국사는 돌로 쌓은 축대를 경계로 축대 위쪽은 부처의 나라인 불국토이고 아래쪽은 중생들이 사는 사바세계의 땅이다.

경주 감은사지

신라의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지은 절이다. 감은사지 3층석탑은 신라의 탑으로는 규모가 가장 크고 국보 제112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주 남산

경주 남산의 불상 중 가장 크고 조각이 우수한 불상이 상선암 마애석가여래 대불좌상일 것이다. 아득히 깔린 경주 일대를 바라보는 부처님은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

경애왕릉

후백제의 견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신라 제55대 경애왕의 무덤이 남산 기슭에 있다.

퇴계 묘소

안동시 도산면 하계동에 있다. 가파른 돌계단을 한참 오르면 소나무숲 우거진 곳에 퇴계의 묘가 있고 멀리로 낙동강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도산서원

『택리지』에서 이중환이 가장 살 만한 곳으로 꼽았던 곳이 예안의 도산이다. 시냇가이면서도 고개가 멀지 않은 것이 그 이유였는데, 서원이 만들어진 것은 1570년이다.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

태백에서부터 비롯된 낙동강의 물줄기가 이 마을에 이르러 태극을 그리며 휘돌아 나간다. 이중환이 나라 안에서 살 만한 곳으로 지목했던 곳이다.

병산서원의 만대루

만대루에 올라서서 흐르는 낙동강 너머로 병산을 바라보면 『영가지』의 지도에 '청천절벽'이라고 이름이 씌어진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안동 의성 김씨 종택

영남의 4대 길지 가운데 한 곳인 내앞마을에 의성 김씨 종택이 있다.

봉화 청량사

낙동강 가에 자리잡은 봉화 청량산의 청량사

조지훈 생가

지조 높은 시인으로 알려진 조지훈의 생가가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에 있다.

청송 심부잣집

경주 최부잣집과 더불어 영남의 부잣집으로 소문난 청송 심부잣집은 9대에 걸친 만석꾼 집이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 옛날의 영화를 찾아볼 길이 없고, 그 집은 전통문화체험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의성 고운사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이름은 최치원의 이름에서 따왔다.

인각사 일연스님 비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스님의 비가 인각사에 있다.

장기곶

장기곶 등대와 등대박물관이 있는 장기곶은 한반도의 모습을 동물에 비교할 때 그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

울릉도

울릉도의 서울인 도동항. 100여 년 전만해도 울릉도의 인구는 100여 명 남짓했다.

영덕 대게

게 한 마리가 삼복 더위에 먹는 개 한 마리 값보다 비싼 영덕 대게

울진 망양정

관동팔경의 하나인 울진의 망양정

울진 신돌석 생가

한말의 의병장 가운데 가장 빼어난 활약을 펼친 쳥민 의병장 신돌석의 생가

양동 무첨당

희재 이언적의 본가인 무첨당은 16세기 초에 건립되었으며, 여강 이씨 대종가의 별당이다. 보물 제411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규모가 커서 큰 사랑채처럼 보인다.

용담정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가 깨달음을 얻은 곳이며, 경주시 현곡면 구미산 자락에 있다.

울산 석남사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에 있는 석남사는 비구니 수도도량으로 청정한 절 내음새를 맡을 수 있는 아름다운 절이다.

처용암

처용이 자랐다는 처용암. 아내의 부정 앞에서도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는 처용 설화를 오늘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청도 운문사 누운소나무

석남사 · 동학사와 함께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는 운문사 스님들은 중국의 백장선사가 말한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라는 가풍을 이어받아 노동과 공부를 함께 한다. 운문산 자락에 있다.

가산산성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에 있는 가산산성은 임진왜란 후인 인조 17년(1639)부터 18년까지 경상도 관찰사 이명웅이 쌓은 성이다.

낙동강과 금호강

대구시 화원관광단지에서 바라본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지점. 금호강과 낙동강의 물빛이 다르다.

갓바위 부처님

대구 팔공산에 있는 갓바위 부처님은 기도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은 다 들어준다는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찾는 절이다.

밀양 영남루

영남제일루라는 이름에 걸맞게 규모가 장대하고 아름다운 누각으로 밀양강 변에 있다.

달성 도동서원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한훤당 김굉필을 모신 도동서원

영산 만년교

보물 제564호로 지정된 영산의 만년교는 남천교 또는 원다리라고 부른다. 나무다리가 자주 떠내려 가자 정조 4년 영산의 백성들이 힘을 합쳐 세운 다리로, 석수는 백진기(白進己)라고 한다.

부산 태종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드리운 부산의 태종대. 멀리 펼쳐진 태평양의 푸른 파도가 가슴속으로 파고들 듯하다.

을숙도

낙동강 하구의 대표적인 삼각주인 을숙도는 갈대와 철새들의 삶터이자 부산 시민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이화령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중요한 고갯길인 이화령도 산 아래를 뚫는 터널로 한적한 고갯길이 되었다.

조령관

문경새재는 조선시대의 중요한 고갯길이었다. 그러나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은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해서 넘지 않았고 죽령은 죽 미끄러지기 때문에 넘지 않고, 오직 문경새재를 통해서만 넘었다는 속설이 있다. 영남지방의 선비들이 한사코 문경새재를 넘고자 했던 것은 문경이라는 이름이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견훤산성

속리산 문장대를 바라보는 상주시 화북면 장바위산에 쌓은 석축산성. 어떤 연유로 견훤산성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명확하지는 않다. 상주 가은현 출신이라고 알려진 견훤의 패배를 못내 아쉬워한 이 지역 사람들이 붙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견훤이 태어난 금하굴

문경시 가은읍 아차마을에 있으며, 견훤의 출생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견훤은 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의 기록에서 보듯 "큰 뜻을 속에 품고 때가 오기만 엿보면서 선비 · 백성 모으기에 마음을 기울였다"고 한다.

낙동나루

낙동강 1,300리의 물길 중에서 가장 컸던 나루로, 낙동강 700리라는 말은 부산에서 이곳까지의 거리가 700리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영주 금성단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 금성단은 단종복위사건으로 유배되어 왔던 금성대군이 순흥부사 이보흠과 단종복위를 위해 군사를 모의하다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자 후세의 사람들이 단을 세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소수서원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서원으로, 주세붕이 안향을 모시기 위해 세웠다.

예천 의성포

예천군 용궁면 장안사에서 바라보는 의성포 전경. 나라 안에 물이 휘돌아 가는 물도리 중에서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초간정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지은 권문해가 세웠다.

왜관 전적지기념관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했던 왜관읍에 세워진 기념비. 일명 워커라인이라고 불렀던 곳이다.

선산 죽장사의 탑

선산읍 죽장리에 있는 5층석탑은 우리나라에서 5층석탑 가운데 귬가 가장 큰 탑이다. 높이가 10미터에 이르며 국보 제130호로 지정되었는데, 지금은 법륜사라는 비구니 도량이 정갈하게 지어져 있다.

청량사

해인사 건너편 매화산 중턱에 자리잡은 청량사. 최치원이 이 절에서 즐겨 놀았다고 한다.

해인사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에 있는 해인사는 홍류동 계곡의 소나무숲을 따라가면 만나는 절이다.

성주 세종대앙 아들 태실

세종의 아들 문종을 제외한 수양 · 안평 · 금성 등의 여러 대군과 군 그리고 문종의 아들인 단종의 태를 모셨다. 성주군 월향면 인촌리의 선석사 앞에 있는 서진산 봉우리 정상에 있다.

대야성

김춘추의 사위 김품석이 성주로 있다가 백제군에 함락된 신라의 옛 성

동계 정온 고택

병자호란 때 화친을 강력하게 반대했던 동계 정온의 고택. 정온의 4대손인 정희량은 이인좌의 난 또는 정희량의 난의 주동자인 정희량이다.

거창 수승대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위천 변에 자리 잡은 수승대는 원학계곡에 있는데 거창 신씨인 신권과 퇴계 이황의 자취가 남아 있다.

거창 박산골

한국전쟁 당시에 거창군 신원면 이곳에서 거창 양민학살사건이 일어났다. 영국의 신문들은 이 사건을 접하고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논평했다.

덕천서원

지리산 천왕봉에서 비롯된 덕천강이 화살처럼 흐른다는 시천면에 접어드는 그 들목에 자리 잡은 남명 조식을 모신 덕천서원

진주 촉석루의 의암

임진왜란 당시 장수 출신의 논개가 이곳에서 왜장을 껴안고 뛰어내렸다 하여 의암이라 부른다.

함양 농월정

함양군의 화림동 계곡에 자리 잡은 농월정. '달을 희롱한다'는 뜻을 지닌 농월정은 2003년 가을 불에 탔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잇으랴!

정여창 고택

정여창의 후손인 정병호의 이름을 따서 '정병호 가옥'이라 부르는 이 집은 중요민속자료 186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하드라마 <토지>에서 최참판 댁으로 나온 집이 이 집이다.

산청 구형왕릉

가락국의 10대왕인 구형왕릉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에게 나라를 빼앗긴 뒤 이곳에 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하동 고소산성에서 바라본 섬진강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인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형제봉 아래 쌓은 석축산성.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를 흐르는 섬진강물이 일품이다.

하동 쌍계사

의상의 제자 삼법이 창건한 신라 때의 절. 최치원의 사산비문 중의 하나인 진감선사부도비가 있으며 국보 제47호로 지정되어 있다.

악양면 상신리에 있는 조부자집

악양의 넓은 들을 배경으로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인 조준의 후예들이 터를 잡고 살았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3일 동안 불에 탔으며, 그 뒤 다시 지은 집에는 후손 조한성씨가 살고 있다.

광양 매실마을

홍쌍리씨가 일군 광양시 다압면의 청매실농원. 장독대들이 이채롭다.

남해대교

충무공 이순신이 최후를 맞이했던 노량 앞바다에 '남해는 섬이 아니다'는 것을 설명하듯 남해대교가 서 있다.

남해 금산

비단을 두른 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금산에는 바다를 바라보는 절 보리암이 있다. 이곳에서 기도를 드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아랫자락에 아름답기로 소문난 상주해수욕장이 있다.

통영항

한국의 나폴리라고 부르는 통영항. 쫄복탕과 미륵도를 일주하는 드라이브 코스가 일품이다.

미륵산에서 본 한려수도

용화사와 미륵사를 품에 안은 미륵산 정상에서 바라본 한려수도. 이 일대에서 임진왜란 당시 한산대첩이 있었다. 미륵산 일주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 널리 알려져 있다.

거제 포로수용소

거제시 고현읍에 자리 잡은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시인 김수영은 거즈를 접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수로왕비릉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수로왕비릉

김수로왕의 비인 허왕후가 아들 열과 딸 둘을 낳으며 157세를 살고 묻힌 수로왕비릉이다.

 

 

 

 

posted by 황영찬